[특집] 2. 왜 작업중지권인가 / 2014.5

[특집2] 왜 작업중지권인가


김재광 선전위원


‘작업중지권’의 맥락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은 국가와 사업주의 의무를 규정하는 대표적인 산업현장의 안전보건규제법이다. 법문에 노동자의 권리라는 명시적 단어를 찾을 수는 없으나, 사업주와 국가의 의무를 재구성하면 노동자의 권리를 구현할 수 있고, 이는 ‘알 권리, 참여할 권리, 거부할 권리’로 구분할 수 있다.

 

모든 법 제도가 그렇지만, 특히 노동관계법은 노동과 자본 간의 힘 관계의 산물이다. 산안법 ‘제26조 작업중지’ 역시 같은 맥락 속에 있다. 1990년 “사업주는... 위험이 있을 때...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시키는 등.” 이라는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조문이 산안법에 규정될 때 자본이 반발한 것도 단순히 문구 때문이 아니라, 당시의 노동과 자본 간의 긴장에서 비롯된 것이다.

 

1987년 이후 성장한 노동(조합)운동은 모진 탄압을 받으면서도 산업 전반 및 노사관계의 변화를 강제하고 있었다. 특히 제조업 노동자들은 1980년대 말, 1990년도 초 중반까지 특유의 ‘전투성’을 발산하고 있었다. 대공장과 중소공장에서 그 강도의 차이가 있었을지언정, 막 들어선 ‘민주노조’는 기존의 자본가가 설정한 일방적 현장질서를 위협하였다. 노동자들은 파업과 태업을 반복하며 현장의 질서를 변화시켰으며, ‘작업중지’라는 법 규정이 도입되기 이전에도 이미 ‘작업중지’는 일상 투쟁의 일부가 되어있었다. 오히려 처음 입법된 1항은 현실보다 뒤처진 것이었다. 따라서 자본가들은 1항의 문구 자체가 아니라, 노동자의 ‘무법 현장’을 합법화하여 질서로 보장한다는 것에 분노하고, 불안했다. 이후 5항까지의 개정은 국제사회의 기준이라는 명분도 있었지만, (제조업을 중심으로 하는) 현장에서의 ‘작업중지’가 일상적인 권리로 진전되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말도 많았던 2항과 3항의 조항이 1995~6년에 걸쳐 속속 도입된 후, 자본가들이 걱정했던 ‘현장의 무법천지’는 오히려 기우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현장의 열기는 급속히 식었다. 자본가들의 신경영전략은 노노갈등과 노동조합의 연성화를 일정하게 이루었고, 결정적으로 1997년 외환위기는 노동(조합)운동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규제 철폐, 민영화, 성과급, 경쟁력, 적기생산, 전사적 자원관리, 유연화’ 등등 온갖 자본의 용어는 현장과 사회 전체를 뒤덮었고, 마침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저항 이데올로기 또한 잠식했다. 이러한 와중에 노동현장은 점점 더 답을 찾을 수 없는 고용게임(누군가 남아야 한다면, 누군가 나가야 하는)의 늪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1987년 이후 근 10년간 유지되고 재설정되어가던 현장의 질서가 변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모든 산업과 현장에 똑같이 작용한 것은 아니었으나, 대세로 자리 잡은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 가운데 ‘작업중지’는 본래의 맥락을 상실하고 법 규정으로 남게 되었고, 제한적 시공간에서 극히 제한적으로 행사되게 되었다.    
  
재해의 이전(移轉)과 노동권으로서의 작업중지


‘작업중지’ 자체는 자연권이다. 위험을 직면하고서 또는 위험을 알면서 작업을 계속할 수는 없다. 위험을 알면 본능적으로 피하고 거부하는 것이 순리다. 이를 막는다면 살인과 다름없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자연권적인 권리와 반응이 제한되어 생명과 몸을 파괴하고 있다. 실로 당장의 ‘밥벌이’ 때문에 정작 지켜야 할 ‘밥줄’을 끊게 하는 기이하고도 비참한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다. 많은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는 생존을 위해 생명을 걸고 있다. 생명에 대한 본능이 환경과 처지에 의해 억압당하고 있는 것이다.

 

중대재해는 점점 더 열악한 노동계층에게 이전되고 있다. 사고에 의한 사망 재해 피해자는 대부분 하청과 비정규직 노동자다. 본능마저도 압살하는 야만적 강제는 자연권으로서의 작업중지권만으로는 극복할 수가 없다. 그래서 끔찍하다. 역설적이게도 의식적인 노동권적 자각만이 생명의 본능을 깨울 수 있다. 작업 중지가 권리로 형성하기 위한 조건은 현장의 질서를 현장의 노동자 자신의 것으로 하겠다는 의지이다. 이는 다분히 의식적인 공감이며, 그 자체가 이데올로기이다. 법문의 취약성을 보완하는 것은 그다음의 문제이다.

 

노동권적 자각, 즉 현장 질서를 노동자 자신이 규율해야 한다는 자각이 있어야만 사고가 발생하고 나서야 비로소 작업을 멈추거나 거부하는 소극적 작업중지권 행사(물론 이마저도 현실적으로 여의치 않다.)에서 나아가, 위험을 감지한 사전에 작업을 중지하고 거부할 수 있으며, 사고뿐 아니라 각종 직업성 질환에서의 위험에서도 같은 태도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작업중지권이 행사되기 위해서는 알 권리, 참여할 권리가 복합적으로 충족되어야 한다. 위험과 재해에 대한 정보와 철학을 통해 안전 감수성 향상하고, 더불어 참여를 통해 과정과 결과를 제대로 이해해야만 중지와 거부의 정당성을 스스로 구현할 수 있다. 세 가지 권리의 종합과 구현, 이러한 경험과 시도가 현장질서를 일하는 자의 것으로 긴장시키고, 노동자의 현장 통제력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주춧돌이 되는 것이다. 


몇 가지 과제


위와 같은 작업중지권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제가 있다. 

 

첫째, 현장통제력과 작업중지권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현장통제력을 확보하고 복원하는 것은 여러 경로가 있다. 이 중 안전보건 사항이 노동자의 현장질서를 확립하는 데 중요한 고리가 될 수 있으며, 이것이 사실상 일상 현장 규율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음을 자각하는 것, 노동권으로서 작업중지권을 확립하는 것이다. 문제는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작업중지권은 노동(조합)운동 전체 맥락 아래에 위치되는 것으로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이 현실에서 작용하기 어려운 이유와 원인에 대한 실증적, 이론적 고찰이 필요하다.

 

둘째, 산안법 규정의 보완이다. 
‘급박한 위험’을 명확히 정의하고, 대피 및 거부의 경우 ‘합리적 근거’를 작업자(노동자) 입장에서 간명하게 하여 제도적 차원에서 작업중지권을 보완하는 것이다. 최근 이와 관련해서 한 연구자는 ‘급박한 위험’과 ‘합리적 근거’를 ‘산업재해가 발생할 위험을 인지한 경우’로 바꾸자고 주장하였는데 참고할 만하다. 이외에도 작업 중지 행사가 현재 법 규정으로 보호받지 못한 사례와 현행법 규정의 취약성 역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셋째, 기업살인법의 현실화이다.
기업 살인법의 요체는 적정한 안전과 보건조치를 하지 않고 발생한 사망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기업살인법 자체가 노동권적 자각을 통한 작업 중지, 이로 말미암아 축적되는 현장통제력과 직접 관련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생명의 본능마저도 억압하고 매일 사망 위험 속에서 일하는 하청과 비정규직노동자의 환경을 고려한다면 한편으로 절실한 제도적 장치임이 틀림없다. 현재 조직력이 취약한 노동자들에게 노동권에 기반을 둔 작업중지권은 여전히 중요한 것이나, 다가서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는 조치는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이며, 작업중지권을 확대하기 위한 중요한 징검다리이기도 하다. 특히 원청의 책임문제는 중요하다. 이것이 배제된다면 효용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문제는 현행 산안법의 전반적인 한계와도 연관되어있다.

 

이것부터 시작하자


우선 전국에 산재해 있는 최근의 작업중지 사례를 취합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례의 배경과 경과, 결과를 종합하여 그 현실성과 의의를 재구성하고 이를 전국적 차원에서 공유해야 한다. 한편 작업중지권에 포함된 중지와 거부 개념을 명확히 하고, 사회적 정당성을 확고히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동시에 작업중지권을 이제는 행사할 수 없는 문구상의 권리로 대하는 태도를 일신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직종과 부문의 구체적 노동실태를 바탕으로 시도할 수 있고, 시도해야만 하는 구체적 중지와 거부에 대한 기획과 실행이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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