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저희는 영어하는 기계가 아니에요 / 2018.07

저희는 영어하는 기계가 아니에요

- 국제회의 통역사 전소희 님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최근 한반도를 비롯해 전 세계가 평화의 길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6.12 북미 정상회담을 진행하는 동안 언론은 방대한 양의 기사를 쏟아냈다. 그 과정에서 각국 정상들 못지않게 ‘그림자’들이 주목을 받았다. 바로 통역사이다.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역사적인 순간이기에 각국 정상과 그들의 입에 전 세계가 주목했다. 이번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는 통역사로 일하는 전소희 님을 지난 6월 26일에 만났다.


사람들에게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역할

“한국에서 통역사는 주로 한국어를 영어로, 영어를 한국어로 통역하죠. 때로는 번역일도 하고요. 통역과 번역 중에 더 많이 하는 일은 대중없어서 뭐라 딱 말하기 힘들어요. 통역한다고 했을 때 방식도 다양해요. 정상회담이 열리는 걸 보면, 각 정상 옆에 앉아서 통역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분들은 어떤 장비나 기계 없이 한 사람 말이 끝나면, 다른 사람에게 통역해서 전달하는데 그걸 순차통역이라고 해요. 

순차통역은 정확도가 높다는 장점이 있어요. 그게 아니면 강연이나 포럼에서 외국인이 발제 할때 바로 통역해서, 청중들이 사용하는 통역기로 말을 전달하는 동시통역 방식이 있어요.”

통역사들은 현장에서 직접 일을 하는 경우도 많지만, 방송이나 언론에서 통역을 요구받는 일도 많다. 전소희 님도 얼마 전 북미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3일간 한 방송사에 출근해서 통역 일을 전담했다.

“방송국에서는 트럼프가 하는 말을 국민에게 바로 전달하고 싶으니까 저희 같은 통역사들을 섭외해요. 방송사에는 장비가 있으니까 트럼프가 현장에서 하는 말을 바로 듣고 즉각 통역해서 아나운서, 기자, 시청자에게 바로 전달하죠. 이럴 경우엔 장비가 굉장히 중요한데 방송국은 좋은 장비를 사용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가끔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는데 시끄러운 잡음이 들린다던가, 단어가 중간중간 하나씩 안 들린다던가, 버퍼링이 발생하고. 그럴 때면 스트레스가 극심하죠. 뉴스는 생방송이니까 편집도 불가능하거든요. 스트레스를 이렇게 받는 날은 머리도 아프고 몸도 힘들어요. 게다가 온종일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서 비좁은 부스에 들어가 있는데 거기에서 이어폰 끼고 초집중을 하니까 피곤하죠.”

전소희 님은 그나마 이번 북미 정상회담은 시차가 크지 않은 싱가포르에서 해서 다행이지, 다른 해외에서 정상회담이 있었으면 그 나라 시차를 맞춰서 일하느라 밤낮도 바뀌면서 생체리듬이 완전히 무너져힘들다고 했다.


업무를 위해 수 많은 준비가 필요한 통역사

“통역하는 분야 역시 엄청 다양해요. 어느 특별한 한 분야가 없죠. 통역사들이 한 분야에서만 일해도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수요가 없거든요. 그래서 일이 들어오는 대로 다해요. 정말 도저히 감당하기가 어려울 거 같다 그럴 때만 가끔 거절해요. 우리 같은 프리랜서들은 어떤 시기에는 일을 쉬엄쉬엄하면서 아이도 돌보고 그러고 싶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통역사는 그게 불가능해요. 한번 거절하면 일이 안들어오거든요. 일 자체도 성수기, 비수기 이렇게 딱 나뉘어서 성수기 때 부지런히 일해야 1년을 먹고 살 수가 있어요.”

통역사들은 다양한 분야를 그것도 외국어로 많은 사람과 국가 정상 등에게 정확한 언어와 뜻으로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공부하는데 상당히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공부를 정말 많이 해야 해요. 그런데 문제는 대체로 일을 줄 때 어떤 분야, 주제인지 자세히 알려주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아요. 그런 게 참 어렵죠. 보통은 제가 속한에이전시에서 문자로 일이 있는지 알려주거든요. ‘○월 ○일 ○시 장소 : ○○○’ 이렇게요. 일정표 확인하고 시간이 된다고 하죠. 정 못할 거 같으면 안 된다고 하고요.

그리고 나면 나중에 에이전시에 의뢰한 회사 쪽에서 연락을 줘요. 어떤 주제로 할 거고, 자료는 언제까지 줄 수 있고 이런 거 저런 거 미리 숙지해 달라 이렇게요. 그러면 그때부터 공부를 해야 돼요. 그나마 다행인 건 공부가 어렵고 쉽고를 떠나서 자료를 미리 주는 게 제일 좋거든요. 그런데 많은 곳에서 자료를 행사 당일 현장에서 줘요. 이런 상황도 예측이 불가능하죠. 한 달정도 먼저 주는 곳부터, 며칠 전에 주는 곳, 현장에서 주는 곳까지 다양하거든요. ”


급변하는 상황을 대처하며 일해야 하는 어려움

“하루 스케줄도 상황에 따라 너무 달라요. 보통 행사들을 생각해보면 이렇겠네요. 통역이 있는 날은 보통 오전 9시에 행사를 시작하니까 오전 8시까지 현장에 가요. 가서 발표자랑 관계자분들과 인사하고, 동시통역일 경우에는 장비를 체크하죠. 현장에서 새로 들어오는 자료도 있으니 파악하고 있고요. 동시통역으로 진행하는 경우에는 혼자서 오랫동안 할 수가 없어서 두 명의 통역사가 같이하거든요. 시간은 20~30분씩 교대로요. 두 명이 행사 시작해서 점심 먹을 때까지 쭉 교대하면서 통역하고 점심 먹어요. 물론 식사도 제대로 못 먹는 경우가 더 많아요. 오후에 들어오는 자료도 봐야 하고 새롭게 변하는 내용도 많고 그래서요. 오후에 일 시작하면 역시 교대로 오후 5~6시까지 일을 하고 마치면 진이 다빠지죠. 하루에 일을 얼마나 하는지도 상황에 따라 달라요. 1시간부터 시작해서 반나절, 온종일 뭐 이렇게요.”

전소희 님은 통역사들이 일하는 동안 굉장한 집중력을 발휘하다 보니 힘이 드는데 일하는 시기 자체도 몰려있어서, 일이 바쁜 시기에 체력 소모가 더 크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일을 하는 시기가 몰려있어요. 여름, 겨울에는 일이 거의 없고 봄, 가을에 일이 다 몰려있죠. 사람들 생각이 다 비슷해서 공휴일, 샌드위치 연휴, 날씨가 궂은날 이런 날에는 행사를 피하잖아요. 그리고 나면 날짜가 몇 개 안 나오니까 일하는 시기도 요일도 몰려 있어요. 전체적으로 1년 달력으로 보면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일이 없는 거 같아요.”

통역사 중 일부는 일이 없는 비수기 때 책 번역 일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전소희 님도 그러한데 번역일은 일하는데 들어가는 시간이 긴 데 비해서 그 시간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비용 역시 적어서 일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열악한 처우에서 일하는 통역사

“프로젝트나 당일 행사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6시간 일한다고 하면 90만 원 정도 받아요. 이 중 세금 떼고 에이전시에 수수료 내고 그러면 많이 깎여요. 만일 방송국이나 언론사에서 동시통역 한다 그러면 페이를 조금 더 받아요. 페이를 떼먹거나 깎아 달라는 경우는 정말 잘 없는데 가끔 에이전시에서 안주거나 일 끝나고 몇 주 지나서 돈을 주는 경우가 있어서 그때 페이가 얼마였는지 메모를 잘해야 해요.”

전소희 님에 노동조건이나 환경에 있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 물었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고도로 집중 해야 하니까 그 점이 가장 힘들어요. 집중하는 게 정신적인 측면이라면, 물리적인 측면은 귀를 잘 보호해야 해요. 어쨌든 소리가 안 들리면 통역을 못 하니까 늘 귀를 보호해야 하죠. 그리고 스트레스 때문인지 몰라도 두통이 심해요. 통역사들 대부분이 두통을달고 살아요. 내용이 어려울 때 스트레스도 많이 받아요. 특히 의학, 제약 이 분야는 정말 어려워요. 물리적으로 부스에서 일할 때 평수가 1평도 안 되는데 바람이 아예 안 통해서 답답한 것도 있어요. 전혀 쾌적하지가 않거든요. 다른 나라랑 비교해서 조금 그렇지만 유럽은 통역사들 협회가 있는데 거기는 입김도 세고 유럽 사회 제도나 문화가 있어서 통역사들 부스 환경과 노동조건을 이렇게 조성해야 한다는 강제조항이 있어요. 크기는 어느 정도 해야 하고 환풍기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런 걸 정하는 거죠.”

반면 한국은 통역사들이 조직되어 있지않고 그들의 노동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낮다 보니 강제하는 조치가 없다. 결국 한국의 통역사들은 현장 환경에 맞추거나 주최 측에 항의하는 등 개인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일이 몰릴 때가 정해져 있으니까 이때는 밤새워서 일하고 과로하고 이럴 때가 힘들죠. 무엇보다 제일 힘든건 점심 먹고 쉬는 것부터 시작해서 모든 상황을 내가 통제할수 없다는 게 제일 스트레스에요. 내가 일을 잘한다고 일이 잘되는 것도 아니고요. 정말 내가 흥미가 있고 잘 알고 있는 주제라고 해도 말을 이상하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너무 힘들어지는 거죠. 본인이 발표를 못 해놓고 일이 안 풀린다고 통역사를 탓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저를 전혀 고려 안 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굉장히 빨리하는 사람도 있고요. 그럴 때가 아주 힘들죠.”

전소회 님은 통역사가 아무리 업무 준비를 오래 하고 경력이 쌓이더라도 상황이 꼬이면 스스로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고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프리랜서의 유일한 장점 중 하나라고 해야 하나요? 지루해질 일이 없다는 거예요. 일이 따분하지가 않죠. 제가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발표자랑 저랑 빙의가 돼서 소통을 잘했다, 그럴 때도 기뻐요. 반면에 발표자랑 저랑 동문서답하고 있고 내용 숙지가 안 되고 그러면 힘들죠. 그리고 아무래도 프리랜서니까 자유로운 게 있죠. 일이 성수기에 몰려서 힘들기도 한데 반대로 비수기는 한가하니까 넉넉하게 공부도 하고 쉴 수 있는 시간도 있고요.”

앞으로도 통역사들이 즐겁게 보람을 가지고 일하기 위해서 어떤 점이 바뀌어야 할지 물었다.

“기본적으로 통역사를 기계 취급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 방구석에서 일하거나, 단추 하나 누르면 알아서 내용이 나오니까 또 하나의 기계 취급을 하거나 투명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걸 바꿔야겠죠. 외국은 행사를 주최하는 책임자나 사회자들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통역으로 수고한 스태프에게 인사를 꼭 해요. 그런데 한국이 주최하는 행사에서는 그러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그리고 외국은 통역사 중에 남성들이 많은데 한국은 절대다수가 여성이에요. 왜 그럴까요? 아무래도 우리가 하는 일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로 취급되고, 페이도 많지 않고, 열악한 환경이라 그런 거 같아요. 남성들은 아무래도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할 기회가 많잖아요.”

인터뷰를 읽는 독자와 통역사를 꿈꾸는 사람들, 관계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글쎄요 방금 말씀드렸듯이 통역사들을 단추 하나 누르면 자동으로 영어 하는 기계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줬으면 해요. 앞으로 오랫동안 이 일을 해야 하고 싶거든요. 그리고 통역사들이 조금이라도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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