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보이지 않는 굴레 속에서, 오늘도 달린다 / 2017.9

보이지 않는 굴레 속에서, 오늘도 달린다

이영일 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지난 7월이었다. 인터넷 인기 검색어 중 K5가 상위권에 랭크되었고, 내 차도 같은 차종이기에 무슨 내용인가 싶어 클릭해봤다. 관련 동영상들이 나열되었고 그중 하나를 보았는데 끔찍한 교통사고 내용이었다. 경부고속도로 양재 나들목 부근에서 발생한 버스추돌사고 이야기이다. 동영상에 달린 댓글은 운전기사에 대한 비난, 현대기아차를 비아냥거림 등으로 가득한 가운데, 나는 왜 버스 기사를 연민했을까. 검진을 통해 내가 여러 버스 기사 분들을 만나고 있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졸음운전으로 사고를 냈던 광역버스 기사는 전날 16시간을 넘게 운전 후 짧은 수면 뒤에 출근했던 터였다고 한다. 버스 기사는 어떻게 전날 16시간을 근무하고도 바로 출근할 수 있을까. 근로기준법은 59조를 통해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을 초과해서 근무할 수 없다고 분명하게 법으로 정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것은 근로기준법 59조 때문에 가능하다. 59조에서는 초과근무가 허용되는 예외업종(특례업종)을 정하고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운수업이다. ‘사용자와 노동자 대표 간의 합의를 통한’이라는 단순한 조건만 있을 뿐 초과근무에 대한 시간제한도 없기 때문에 사업주는 사실상 ‘합법적으로’ 노동자들을 자유로이 부리게 된다. 버스추돌 사고 기사를 보고 나서 이와 관련된 내용을 글로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이후 버스나 택시 기사분들을 검진하면서 평소보다는 좀 더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눴고, 지면을 빌려 일부분이나마 공유해보려고 한다.

우선 버스의 경우를 보자. 오전과 오후 두 개의 조가 있는데, 오전조의 경우 새벽 4시 40분 첫 발차를 시작으로 오후 4시 20분에 막차가 나간다. 오후조의 경우 13시 40분에 발차해서 밤 12시 40분을 막차로 끝이 난다. 버스 운행의 특성상 지하철처럼 정확히 시간을 맞춰서 들어오기란 쉽지 않다. 배차 간격 또한 여유가 없으며, 상시적인 교통정체 현상으로 인해 편안한 ‘휴식’은 쉽지 않을뿐더러 식사시간에 밥 한 끼 여유롭게 하는 것도 힘들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기사분들은 최소한 11시간 동안은 운전대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장시간 운전을 한다. 유럽의 경우 일일 운행시간을 9시간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처벌규정을 보더라도 외국의 경우 처벌의 정도가 높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안전규정을 어겼다 하더라도 사업주는 그저 180만 원의 과징금만 내면 된다.

택시의 경우는 버스와는 또 다르다. 이전에는 교대근무형태가 많았지만, 요즘은 차 한 대를 도맡아서 운행하는 방식인 일차제가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교대로 돌릴 인력은 부족하고 차량은 남아돌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시설의 확대와 잘 정비된 환승 시스템은 택시 이용률을 더욱 낮추었다. 또 하나 반드시 언급해야 할 것은 사납금이다. 사납금은 기본적으로 하루에 회사에 가져다 줘야 할 금액이다. 내가 검진을 나가는 한 택시회사의 경우 사납금은 일차제 일일 기준으로 13만 8천 5백 원이다. 교대제의 경우 운전 가능한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이보다는 좀 낮은 편이다. 유류비는 회사에서 일정 리터까지 지원해주지만, 식비나 간식비 지원은 없으며, 휴식을 위한 ‘휴게공간’은 거의 없는 것과도 같다. 사납금을 제외한 나머지는 운전자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사납금을 확보하려면 과연 얼마나 운전을 해야 할까. 적게는 12시간에서 많게는 16시간 정도의 노동을 통해 가능하다. 일차제 기사분들은 일하는 시간에 있어 자율권을 부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보통 저녁 5시 즈음에 출근해서 다음 날 아침 8시 즈음에 마친다. 손님이 많은 출퇴근 시간과 요금 단위가 높은 야간에 운전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반강제로 야간운전을 하는 셈이다. 기사들은 야간운전과 장시간 운전이라는 두 가지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든 구조 속에서 매일 매일을 ‘살아내고’ 있다.

지난 2월 졸음운전의 방지책으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일부 개정되었는데, 그 내용 중의 하나가 ‘퇴근 후 다음 출근까지 연속 8시간 휴식시간 보장’이다. 운수업 종사자들이 보면 피식 웃고 말 일이다. 더욱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한 적이 없다. 오히려 악법은 나쁜 것임을 분명하게 말했다. 그러나 악법이라도 그것은 모두의 합의로 만들어진 법이기에 그것을 따르지 않고 무시한다면 자신이 외치는 정의가 사람들에게 울림이 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기에 소크라테스는 기꺼이 미나리 독주를 들이켰다. 이 위대한 철학자는 공동체의 합의를 존중했고, 그 합의에는 ‘보편적 옳음‘이 들어 있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특례업종이 현실적으로 당장 사라질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군가의 퇴근 시간 이후에도 또 다른 누군가는 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보호 장치는 철저하게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의 근로기준법 59조는 현장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된 ‘합의된 옮음’이 더해져서 재탄생해야 한다. 버스나 택시 기사들의 졸음운전, 심지어는 거친 운전까지도 시스템이 결국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요즘은 운전을 하곤 할 때면 버스나 택시의 거친 운전에도 반응하지 않게 된다. 자연스럽게 양보하게 되더라. 여러분들도 화내지 말고 양보하시라.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