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저도 노동자입니다 / 2017.5

저도 노동자입니다.



조이 산부인과 전공의


 

추운 겨울이 아닌 5월의 장미대선을 앞두고 TV와 신문, 인터넷은 대선 관련 보도가 넘쳐났습니다. TV 토론에 대한 관심도 제가 기억하는 그 어느 대선보다 뜨거운 것 같습니다. 제가 일하는 대학 병원에는 20~30대의 전공의와 간호사부터 60대의 교수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일상적인 대화의 주제에 정치적인 이슈가 등장했던건 지금 이 상황에서는 이상한 일이 아니었죠. 그러나 그러한 상황들이 최근 저를 좀 불편하게 합니다.

 

제가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노동자는 저 자신, 대학병원의 전공의입니다. 대학병원의 전공의는 의대를 졸업하고 국가고시를 통과하여 의사 면허를 득한 의사의 신분으로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임과 동시에 전문의 시험 자격 조건을 얻기 위해 일정기간 정해진 과정을 수련하는 피교육자의 위치를 겸하고 있습니다. 환자들이 대학병원에 입원하는 경우 가장 자주 만나는 의사이며 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이 진짜 의사 취급을 안해주는 그 '레지던트' 말입니다.

 

전국의 대학병원의 전공의의 90% 이상은 주 100시간이 넘는 근무시간에 따른 만성 수면부족 및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역시도 전공의 1년차때 주 평균 120시간 정도 일을 했습니다. 전공의는 피교육자의 신분이고 의학 및 의술의 교육은 위계질서가 강한 환경에서 도제식으로 이루어지는 면이 크다 보니 대부분의 전공의는 본인이 노동자라는 인식을 갖기 어렵습니다. 전공의 수련을 마치고 사회에 나간 이후의 삶을 기대하며 하루하루 살고 있으니 더욱 그러하겠지요.

 

최근 2-3년간 전공의들에게 근무환경에 관한 가장 큰 이슈는 주 80시간 근무법입니다.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위해 국가정책으로 주 80시간 근무법이 입법 되었는데 일의 총량을 줄이지 않고 추가 인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근무 시간을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한 수많은 논쟁들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주 80시간 근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저는 80시간이라는 숫자 자체에 주목하게 됩니다. 근무시간 단축을 이야기 할 때 그 목표가 주 80시간인 직업군이 있었던가요. 근무시간 단축을 포함한 전공의 근무 환경 개선을 이야기하는 데에 가장 시급한 것은 우리 전공의들 스스로 자신을 노동자라고 인식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자신을 노동자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수많은 주위의 동료 전공의들과 이미 사회 기득권층인 교수들, 그들과 나누는 대선 이야기는 저를 불편하게 합니다. 정치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고 자신의 입장과 이익을 대변하는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모두 한결같이 오른쪽으로, 더 오른쪽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건지, 여전히 주 70시간 이상 근무중이고 근로계약서도 연봉협상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저는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일상에서 어떠한 이야기로 전공의가 노동자라는 인식을 확산할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이 되는 요즘입니다.

 

정치는 또한 가장 불편한 것이라고 했던가요. 이 불편함이 저에게는 또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겠지요. 대선 이후 이 불편함과 우리의 처지에 대한 이야기를 수면위로 끌어올리려 노력해봐야겠습니다. 전공의도 노동자라는 인식이 그 전공의가 수련을 마치고 사회에 나가 어떤 의사로 살 것인지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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