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젊어서 고생은 나이 들어 더 고생 / 2017.1

젊어서 고생은 나이 들어 더 고생

 


송홍석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 향남공감의원장



우리 병원이 위치한 경기도 화성 향남지역은 근처에 기아자동차 완성차 공장이 있고, 그곳에 부품을 공급하는 공장들, 제약단지, 그 밖에 많은 영세한 공장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건강해야 할 나이에 건강과 삶이 위태로운 노동자를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환자 1.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어요.

20대 초반의 앳된 모습의 여성이다. 두 달 전부터 소화가 전혀 안 되고 뭘 먹어도 속 쓰리다며 병원을 찾았다. 식욕도 없고 두통도 생겼다. 딱 스트레스에 의한 증상이었다. 위내시경을 했는데 전날 먹은 음식이 위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통상 6시간이면 연동운동으로 비워졌어야 할 위의 운동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고, 그 원인으로는 극심한 스트레스가 있었을 것이다.

전남 순천 출신인 그녀는 고등학교 졸업 후 꽤 많은 월급에 이끌려 연고도 없는 이곳에 왔다. 현대기아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꽤 잘나가는 공장에 비정규직으로 취업한 그녀는 가장 바쁜 부서에 배치되어 3교대로 근무한다. 25분 내로 식사를 마쳐야 했고, 4시간 연장근무가 밥 먹듯이 잦았다. 암막 커튼도 없는 기숙사 방안은 낮시간에 햇빛이 들이쳐 더욱더 잘 수 없다. 석 달 만에 5kg이 줄었다. 친구 만나기도 힘들고, 헬스클럽을 끊어놓고도 거의 다니지 못했다. 외동딸로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을 그녀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 이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 못 잔다고 한다. 얼마 전 같은 부서의 정규직 아주머니가 오셔서, 동료가 효험을 봤다는 멜라토닌 수면제를 처방받아 가셨다. 잠을 잘 수만 있다면 약값 10여만 원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그들에겐 중대한 건강과 삶의 문제다.

 

환자 2. 꿈과 희망을 찾아 떠나 온 자본주의 공화국 한국, 밤낮없는 그의 미래는?

이북 말을 쓰는 20대 중반의 젊은 남자가 두 달째 소화가 안 되고 속이 쓰리다며 진료실에 들어왔다. 위내시경을 해봤지만 역시나 젊은 사람답게 별것 없었다. 이런 경우 대부분 스트레스 때문이다. 함경북도 무산 출신인 그는 작년에 남한으로 왔다. 돈벌이의 선택지가 많지 않아, 밤 근무가 힘들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경기도 평택의 작은 철강회사에 입사했다. 주야 맞교대로 일한 지 두 달도 안 되어 탈이 났고, 밤 근무에 적응이 안 된다고 호소했다. 암막 커튼을 쳐도 밤 근무 때는 2시간 밖에 못 잔다 한다. 주간근무 때도 피곤하다. 새벽 5시에 집을 나서 라면으로 아침을 때우고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일한다. 안쓰러웠지만 증상을 개선하는 약물치료 말고 더 할 것은 별로 없었다.

몇 달 후, 그가 다시 찾아왔다. 그동안 속이 편해서 오지 않은 게 아니었다. 제때 병원 오기가 힘들어 약국 약만 먹으며 지냈고, 여전히 수면 부족에 시달렸다. 젊어서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직장을 비롯한 스트레스가 많아 힘들다고 토로한다. 친구도 시간이 안 맞아 만나기 힘들어 외롭다고 한다. 수면을 도와줄 신경안정제와 수면제를 추가로 처방하는 것 외에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꿈과 희망을 찾아 떠나 온 밤의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환자 3. 젊어서 고생은 나이 들어 더 고생

당뇨가 있는 40대 남자가 병원을 찾았다. 식후 혈당은 300이 넘었고, 지난 3개월의 혈당 조절을 판단할수 있는 당화혈색소 검사에서도 그동안 조절이 전혀 안 되었던 것으로 나왔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나이 들어 당뇨 합병증으로 온갖 고생은 다 한다고, 운동 같은 혈당조절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유리생산 설비의 프로그램업무를 하는 그는 아침 830분부터 오후 9시까지 일한다. 나는 운동은커녕, 쉬기에도 벅찬 그의 노동시간에 안타까움을 내보였다. 그러자 그는 6시에 퇴근하는 매주 수요일엔 시간을 낼 수 있다며 자존심에 생채기를 내기는 싫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리 장시간 일을 시켜도 매주 수요일은 정시 퇴근하는 날로 두는 사업장이 많긴 한 것 같다. 매주 수요일 정시퇴근제가 강제하는 현실을 보면, 정시 퇴근제를 주 2회로 늘리자는 사회적 캠페인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2012년 대선 당시 화제가 됐던 어느 후보의 슬로건 저녁이 있는 삶이 지금도 그가 등장할 때면 아이콘처럼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노동시간, 심야노동 문제는 그 자체로 삶을 규정하는 중요한 문제다. 이제 그것은 우리 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행해져야 하고, 정시 퇴근제, 노동시간 상한제, 휴일근로에 대한 법적 제한을 우리가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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