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_특집2] 여성노동자 재생산권 침해와 인정투쟁의 역사

여성노동자 재생산권 침해와 인정투쟁의 역사

 

유청희 상임활동가

 

2020,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의 2세들이 앓고 있는 선천성 심장 질환을 대법원에서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근로복지공단의 산업재해 불승인 이후 소송으로 승인 받기까지 걸린 시간이 무려 10년이다. 대법원은 산재보험법의 해석상 모체와 태아는 단일체로 취급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고, “태아는 모체의 일부로 모()와 함께 근로현장에 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사고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판단해, 여성 노동자들이 업무로 입은 재해를 2세 질환의 원인으로 인정했다. 여성 노동자의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이 확인된 판결이다. 이 대법원 판결로 2세 산재가 산업재해보상법 적용 대상임이 확인되었다. 이 판결 이후, 현재는 개정법 시행 이전에 발생한 2세 질환에 대한 산재 소급 적용 여부나 보험 급여 지급 범위 등 많은 쟁점들을 두고 법 개정 논의가 진행중이다.

 

일반적으로 재생산 권리란 차별, 폭력 없이 원하는 시기에 임신을, 또 자녀의 수와 자녀를 가질 시기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국제적으로 이 개념이 통용되고 있고, 최근 한국에서는 낙태죄 폐지와 함께 성·재생산 건강 및 권리(Sexual and Reproductive Health and Rights, SRHR)가 활발히 논의되고 정리되었다.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에서 제시한 성·재생산권리 보장 기본법()에 따르면, 일터에서의 성·재생산권리의 보장(46)에서 모든 근로자에 대한 성적 권리와 재생산 권리가 보장될 것, 그리고 성적 건강과 재생산 건강을 침해받지 않을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에서도 여성 노동자의 재생산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임신한 여성에게 야간 노동을 금지하고, 노동자가 유산할 경우 유산 휴가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임신 중 특정 시기에는 근로시간 단축을 허용할 수 있게 한다. 또 노동자가 청구하면 생리휴가를 부여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업무로 인해 재생산권이 침해되고, 건강상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개인의 문제로 취급되어 드러내지 못했다. 또 드러내더라도 그 문제가 업무상 상관관계가 있음을 인정 받기 어려웠던 오랜 역사가 있다.

 

화학약품 때문에 무월경, 엘지전자 노동자들

 

1995년 경남 양산의 엘지전자부품() 여성 노동자 전체 20명 중 18명이 무월경 진단을 받았다. 노동자들은 전자제품 택트(TACT) 스위치를 조립하는 곳에서 일을 했고, 이 조립 과정에서 솔벤트 5200을 사용해 불순물을 제거했다. 노동부는 즉각 역학조사에 들어갔는데, 솔벤트 5200에 쓰인 2-브로모프로판이라는 물질이 무월경 증상의 원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 유해 화학물질을 아무런 보호장치도 없이 노동자들이 사용할 수 있었던 건, 당시 규제하고 있던 697종의 유해 화학물질에 2-브로모프로판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같은 솔벤트 5200을 사용했지만, 취급 시 필요한 철저한 환기, 방독면과 보안경 같은 보호장치를 해 두었던 일본에서는 동일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휴일에도 환기장치를 가동했어야 했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수칙을 지키지 않는 등 관리에 상당한 차이가 있었던 것이 밝혀졌다.

여성노동자들은 불임 판정을 받았고, 남성 노동자들 또한 무정자증 판정을 받는 등 피해가 심각했다. 노동부 역학조사 이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해당 피해 노동자들의 질병을 직업병으로 인정했다.

 

유해 노동환경이 원인이 된 제주의료원 노동자의 유산

 

앞서 언급한 제주의료원 산업재해(이하 산재) 승인건에서는, 여성이 임신 중 업무상 유해요소에 노출되었다가 출산 이후 여성과 2세가 분리된 상황에서 2세의 질환을 모체의 산업재해로 인정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었으나 결국 산재 승인을 받았다. 그렇다면 유산은 어떨까. 노동자 당사자에게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비교적 명확해 보이는데, 실상은 어떨까?

 

2020년 대법원에서 2세 질환을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제주도의료원 노동자들의 동료들 중 같은 시기 유산을 겪은 이들이 있었다. 2009년에서 2010년 사이 제주의료원 간호사 노동자들은 불규칙한 교대 근무, 타 병원 대비 2~3배가 넘는 1인당 환자 수, 약제 조제 시 화학물질 노출 등으로 유산하거나 선천성 심장 질환을 겪는 아이를 출산했다. 이때 유산을 겪은 여성 노동자들은 산재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이 건 전후로 국내에서 유산으로 산재신청 및 승인된 경우는 극소수로, 2010년도-2019년도 사이 모성보호 관련으로 승인된 산재는 7(유산 6, 불임 1)에 불과하다.

 

반도체 노동자 산재, 태아 산재로까지

 

반올림은 지난 520<반도체 노동자의 2세 직업병 피해자 3명 집단 산재신청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반도체 노동자 3명의 2세가 입은 재해에 대한 산재를 신청했다. 제주의료원 이후, 한국의 두 번째 태아 산재 신청 사례였다. 이날 산재보상 신청에 나선 세 여성 노동자들은 1990년대 초중반에 삼성 반도체에 입사해 10년 가까이, 혹은 10년 이상 일 했고 재직 기간 중 임신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도체 공정에서 이들은 지속적으로 유독물질을 취급했고, 이 중 한 명은 생식독성 물질을 포함한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되기도 했다. 이들이 출산한 2세 중 한 명은 선천성 거대결장증으로 태어나자마자 수술을 받았다. 다른 두 명의 2세들은 공통적으로 신장을 한쪽만 가지고 태어났다. 이들은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질환을 겪으며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반올림의 산재 신청 건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제주의료원 간호사 2세들의 선천성 심장 질환에 대한 산재 승인 대법원 판결 이후 법 개정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또 논의 중인 개정법안에서 소급 적용을 포함할 것인지도 쟁점으로 남아있는 상황이다.

대법원 판결 이후 산재보상보험법 개정 논의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2세 질환에 대해 요양급여 외에 휴업급여, 유족급여, 부모돌봄 휴업급여 등을 포함할지 여부와, 법 시행 전 소급 적용이 이루어질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재생산권은 노동권이다

 

월경은 여성의 재생산권과 연결되는 것으로, 임신을 원하건 원하지 않건 건강한 상태로 유지되어야 하고 일터는 그 권리을 보장하기 위한 조건들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엘지전자부품()와 정부는 책임지고 점검했어야 할 유해화학물질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여성 노동자들이 겪어야 했던 집단적 무월경 증상은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여성 노동자 건강권이 침해되고 있는 현실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었다. 제주의료원 노동자들의 유산과 2세 산재 사례 역시 과로와 더불어 유해 물질 취급 때문에 생긴 노동자 건강권 및 재생산권 침해 사례다. 노동자는 안전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면서, 임신을 할지 여부와 그 시기를 결정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제주의료원의 노동자들은 그 권리를 박탈당했다. 세 명의 삼성 반도체 여성 노동자들의 경우는, 안전하지 않은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와중에 임신을 했다는 점에서 위의 두 사례와 같다. 그러나 유해 환경이 태아의 질환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여성 노동자들이 무월경을 겪고, 유산하며, 선천성 질환을 가진 2세를 출산하는 일은 모두 유해 물질에 노출되었거나 야간 노동, 과로로 인한 것이었다. 이 사례들은 일터에서의 여성 노동자 재생산권이 침해된 사례의 극히 일부일 것이다.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유산과 같은 문제는 업무상 재해이고 노동권 침해의 결과이지만, 여전히 노동의 문제로 인식조차 안 되는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배후에는 그러한 재해가 개인이 감당해야 할 일로 치부되고, 공적인 일로 거의 드러나지 못한 뼈아픈 역사가 있다.

여성 노동자들의 재생산권 침해는 안전하지 않은 노동환경에서 발생한다.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다. 재생산권 역시 노동자가 반드시 보장받아야 할 권리임을 사업주와 정부가 인식해야 한다.

 

 

[연대발언] 임신 중 여성노동자 업무에 기인한 태아 건강손상 산업재해 인정을 위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 기자회견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에서 개최한 "임신 중 여성노동자 업무에 기인한 태아 건강손상 산업재해 인정을 위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 기자회견"에서 연대발언하였습니다. 

연대발언 내용과 기자회견문입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일하는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최민입니다. 현재 독일에서는 "임신 중 모의 보험사고로 인한 태아의 건강손상도 보험사고이다. 이 한도 내에서 태아는 피보험자와 동일하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보험에 의한 보호는 모체가 직접 직업병에 이르지 않는 직업상의 영향에 의한 경우에도 인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의 이런 조항 역시 그냥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1969년 태아 풍진에 걸려 출생하여, 중증 뇌손상을 가지게 된 어린이의 장애가 산재보험으로 보호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긴 법적, 사회적 논쟁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간호사로 어린이 병동에서 일하다 임신 중 풍진을 겪었기 때문에 생긴 선천성질환이었습니다. 

처음에 산재보험운영기관으로부터 급여를 거절당했던 이 어린이는, 지역사회법원에 소송 청구, 주 사회법원에서 항소심을 거치며 결국 연방헌법재판소에서 중요한 판단을 이끌어냅니다. 태아를 모든 보험급여로부터 배제하는 산재보험법의 규정은, 기본법 상 인간의 존엄 보호, 생명과 신체의 완전성에 대한 권리, 보편적인 평등의 원칙, 엄마가 받아야 할 보호와 돌봄의 권리에 반한다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바로 우리가 지금 주장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이후 이 판결에 따라 국가보험법이 개정되었고, 엄마가 직업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도, 임신 중 노출된 직업적 요인에 따라 발생한 태아의 질병 역시 산재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산재 보상에서 이런 변화가 생기자 이후 이에 따라 임신 중 여성 노동자를 특별히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법적 조항이 강화되었다는 점입니다. 독일에서는 임신한 여성 노동자에대해서는 위험성평가를 한 명씩 개별로 해서 위험을 평가하고 개선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법적 보호가 확립되지 않은 바이러스 등 생물학적 요인으로부터 보호 뿐 아니라 성과급 등 스스로 업무 강도나 노동 속도를 높여 일하게 되는 것조차 임신 여성 노동자들이 하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습니더.

이번에 생식독성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노동자들의 선천성 질환아 출산이 30%이상 높다고 나타난 연구결과가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기사로 알려졌다시피 이 결과는 방사선, 바이러스, 교대근무 등 임신 결과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요인들이 빠진 결과입니다. 비파괴 검사를 하는 제조업 다양한 현장이나 방사선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병의원 등에서 방사선에 노출될 수 있고, 정말 많은 가임기 여성노동자들이 교대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야간 교대근무는 유산 위험을 높이고, 조산이나 출생시 적은 체중 등 문제를 낳습니다.  또, 반올림에서 지적하신 것처럼 남성노동자에게 영향을 끼쳐 발생한 태아 손상도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시간을 미루어왔던 판결이 잘 결론날 뿐 아니라 이번 사건을 계기로 예방 측면으로까지 모성보호, 여성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입법이 넓어지길 바랍니다. 모든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권리, 노동자에게 유해한 물질에 대해 알권리,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에 대한 기업, 정부의 책임을 강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상의 변화로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그런 성과를 내기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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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운수노조는 산재보상보험법 위헌소송을 신청한다.

 

엄마의 노동조건이 태아에게 영향을 미쳤다면

선천적 장애를 가진 아이를 산업재해로 인정하라!

 

 

10년의 세월은 제주의료원 여성노동자와 선천적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에겐 고통의 시간이었다.

 

제주의료원에서 2009, 104명의 선천성 심장질환 아이 출산과 관련해 우리 노조와 당사자는 2012년 태아의 장애를 산업재해로 인정하라는 신청을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했다.
그러나 공단은 불승인했고, 서울행정법원은 여성근로자의 임신 중에 업무에 기인하여 태아에게 건강손상이 발생하였다면 이는 근로자에게 발생한 업무상 재해로 보아야 한다며 인정했다.

2016년 고등법원은 산재보험의 수급자는 업무상의 사유로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노동자여야 한다는 이유로 다시 결과를 뒤짚었다.

동년 6월 대법에 상고했고지만, 지금까지 대법원은 결정을 내리지 않아 부모와 아이들의 고통은 계속 되고 있다.

 

 

또 다른 제주의료원이 대한민국 곳곳에 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는 우송대 산학협력단에 자녀 건강 손상에 대한 산재보상 방안연구용역을 발주했다. 보고서는 한국의 16살 이상 40살 이하 가임기 여성노동자 354575명 중 3%106669명이 생식독성 유해물질을 다룰 것으로 추정했으며, 매년 생식독성 취급군에서 태어나는 170명의 선천성 질환아 중 42명은 사업장의 유해물질 탓에 질환이 생긴 아이들로 추정하고 있다. 최소한 추정해도 생식독성 취급군은 비취급군보다 선천성 질환아를 낳을 확률이 33% 더 높았다.

제주의료원은 상대적으로 안정되고 문제 원인추적이 가능했지만, 비정규직 파견노동 등 불규칙한 노동환경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작업환경측정, 건강검진에서 누락되는 경우가 많은 여성노동자들의 조건을 고려한다면 고용부 연구결과는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장애아를 출산한 노동자 부모들은 이유도 모른채 장애아를 출산한 자신을 탓하며 힘들게 지내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대법원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 제1호 업무상 재해에 어머니인 여성노동자의 업무에 기인한 태아의 건강손상이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적용)하는 것은 위헌이며, 또한 입법을 하였으나 불완전하고 불충분한 입법으로 노동자의 권리가 침해되었음을 인정하고,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하라

 

하나, 정부는 자녀 건강 손상에 대한 산재보상 방안연구 결과에 따라, 임신 중에 업무상 유해요소에 노출되어 자녀가 출산 후 사망하거나 선천성 질환을 가지고 태어난 경우도 업무상 질병의 범위에 포함되도록 산재보상보험법을 즉각 개정하라.

 

하나, 정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모성보호와 산업재해보상보험 정책의 획기적 변화뿐 아니라 여성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권리, 노동자에게 유해한 물질에 대해 알권리,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에 대한 기업, 정부의 책임을 강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시행규칙을 입법하라.

 

 

공공운수노조는 국가가 모성보호의무 및 사회보장사회복지증진 의무를 다해 헌법에 명시된 평등의 원칙을 위반하지 않도록 감시할 것이다.

또한 엄마, 아이 그리고 자신의 아픔을 숨겨야 하는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다시 촉구하면서 여성노동자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위해 노력하겠다.

 

 

201941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특집] 2. 여성노동자의 집단유산 등 산재인정!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 2015.2

[특집2]
여성노동자의 집단유산 등 산재인정!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김경희 후원회원(민주노총 제주지역본부 미조직비정규사업부장)

 

 

5년만의 산재승인

 

2014년 12월 19일, 임시로 만들어진 단체대화방의 메시지 도착 알림이 울린다. “원고승!” 병원에서 일하다가 선천적으로 심장질환을 가진 아이들을 출산한 간호사 4명이 제기한 행정소송의 결과이다. 태아의 질환이 산업재해로 승인되었다. 2014년 12월 30일, “띠릭!” 메시지 알림이 울린다. “오늘 질판위에서 집단유산 4명 모두 산재로 인정 되었다고 합니다!” 이 메시지는 곧장 산재 당사자들에게 전달되어 당사자들을 마음을 울린다. 뱃속의 내 아이와 이별한지 5년이 되어가는 시점이다.

유네스코 3관왕에 빛나며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제주, 한라산 기슭에 위치한 제주의료원의 간호사들의 이야기다. 2009년에서 2010년 사이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의 유산율은 약 40%로서 일반인구의 2배였고, 선천성 심장질환아 출산율은 일반 인구에 비해 10배가 넘었다. 문제를 감지한 노동조합은 노사합의를 통해 집단유산에 대한 역학조사를 실시하였고 조사결과 “집단유산이 업무상 연관이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후, 유산한 간호사 중 4명,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한 간호사 4명이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를 신청하였다.

근로복지공단은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한 4명의 간호사들에 대하여는 “아이들은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요양급여신청 반려 처분을 하였고, 당사자들은 처분에 불복하여 행정소송을 진행하였다. 집단 유산의 건은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역학조사를 의뢰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최초 신청 후 2년 만에 승인처분이 내려졌다.

늦었지만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이 제기한 산업재해가 모두 인정되었다. 비록 행정소송을 통해 산재가 인정된 선천성 심장질환아 출산 건에 대하여 근로복지공단이 항소한 상황이긴 하지만 말이다. 여성노동자들의 집단유산과 선천성 심장질환아 출산에 대하여 산업재해로 인정된 것은 국내 최초의 사례이고. 특히 선천성 심장 질환아 출산과 관련하여서는 태아의 질환을 산재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업무에 기인한 태아의 건강손상이 산업재해로 인정되다!

 

선천성 심장질환아 출산관련 최초 요양급여신청에 대하여 근로복지공단은 “근로자 본인이 아닌 자녀의 질병은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재해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려 처분을 하였다. 그러나 행정법원에서는 태아가 산재보험법의 적용을 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였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현행법상 태아는 원칙적으로 권리능력이 없으며, 모체와 태아는 단일체로 취급된다. 태아에게는 독립적인 법인격이 없으므로,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법적권리·의무는 모체에게 귀속되며, 이는 산재보험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보았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업무상재해에 대하여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근로자의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 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태아의 건강손상은 곧 모체의 건강손상에 해당하므로, 여성근로자의 임신 중에 업무에 기인하여 태아에게 건강손상이 발생하였다면 이는 근로자에게 발생한 업무상 재해로 보아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한 태아는 모체의 출산과 동시에 독립적인 법주체가 되므로 아이는 근로자에 해당되지 않지만, 현행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재해는 업무상의 사유로 근로자에게 재해가 발생할 것을 요건으로 하는 것이지 질병의 발병시점이나 보험급여의 지급시점에까지 근로자일 것을 요건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출산의 사정만으로 그 전까지 업무상 재해였던 것이 아닌 것으로 변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예컨대 은퇴자가 20년 전 석면으로 인하여 발생한 폐질환이 있다면, 현재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고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산재요양이 길어져 재해자가 실업상태라고 하여 보험급여가 정지되지는 않으며, 중대재해로 근로자가 사망하는 경우 근로자가 아닌 유족들에게 산재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이 현재 산재보험의 운영체계인 것이다.

행정법원은 덧붙여 태아를 보호함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임신한 여성근로자와 태아는 다른 근로자들에 비해 더욱 두텁게 보호되어야 할 대상이라고 하면서 업무에 기인한 태아의 건강손상을 산재보험에서 배제하는 것은 오히려 여성근로자와 태아를 불리하게 차별하는 것이고 국가의 모성 및 태아 생명 보호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며, 산재보험의 입법목적에도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판단하였다. 요약하면, 모체와 일체인 태아시절 발병한 질병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면, 그에 대하여 산재보험을 통해 보호받아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결론인 것이다.

 

 

 

▲ 2013년 4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연맹, 노동과 건강 등 7개 단체로 구성된 <병원사업장 여성노동자 건강권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준)>의 출범 기자회견.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업무에 기인한 여성노동자들의 유산 등이 최초로 산업재해로 인정되다!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의 집단유산 산재신청 후, 근로복지공단은 한국산업안전공단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간호사들의 유산이 업무상 인과관계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역학조사를 의뢰하였다. 결과는 유산과 업무 사이에 관련성이 있다는 것이다. 제주의료원의 노동환경에 많은 유해요소들이 감지되었다. 주요하게는 1) 약품분쇄작업, 2) 인력감소에 따른 노동 강도 및 시간 증가, 3) 3교대근무로 인한 생물학적 주기의 장애, 4) 체불임금과 휴무일 근무 등 높은 직무스트레스 등이다.

제주의료원에는 중증질환자가 많은데, 환자가 알약을 먹지 못할 경우 간호사들이 막자로 알약을 가루로 분쇄하여 복용하도록 하였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는 임산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약품을 5개 등급(A, B, C, D, X)으로 분류하고 있고, X등급은 인체와 동물 모두 태아의 기형이 증명된 약물로서 임산부와 가임기 여성에게 금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당시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의 분쇄 약품 중에는 D등급이 37종, X등급이 17종 포함되어 있었다. 약품 취급에 대한 주의사항이나 안전교육은 받지 못하였다.

교대근무에 대하여는 생물학적인 주기의 장애로 인한 호르몬 교란, 수면장애 등의 효과로 임신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세포면역 반응의 균형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추정하여 간호사들의 유산과 3교대 근무와의 관련가능성을 인정하였다. 또한,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은 평균 1주일에 45시간을 일하였는데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코호트 연구에서는 주당 근무시간이 41시간 이상인 경우에 20~40시간인 경우와 비교하여 유산발생 위험도가 1.5(95%, CI :1.3~1.7)로 나타났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여성노동자의 건강한 일터를 위하여

 

산업재해는 승인되었지만 제주의료원의 현장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 재해가 발생한 2010년과 달라진 것은 체불임금과 약품분쇄작업이 없어진 것뿐이다. 여전히 간호사들은 부족한 인력으로 불안정한 교대근무를 하고, 휴무일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 정원대비 현원의 비율은 2010년 61%에서 2015년 56%로 오히려 더 낮아졌다. 현장에는 재해발생 책임자로부터 산재발생에 대한 사과를 받고, 간호 인력충원과 교대제 개선에 대해 요구하고 쟁취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다.

 

업무에 기인한 유산 등에 대한 제주의료원 산재승인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민주노총은 시민단체·여성단체들과 함께 제주지역과 중앙에 공동대책위원회를 각각 구성하였다. 이번 산재승인의 결과에 힘입어 전체 여성노동자들의 건강한 일터를 위하여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공대위의 지속적인 활동이 반드시 필요하다

[특집] 3. End 2014, And 2015 / 2015.1

End 2014, And 2015



정리 : 선전위원회



선전위원회는 연구소 소장을 만나 지난 한 해 소회와 함께 2015년 새해 연구소가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Q. 2014년 노동안전보건 운동진영에게 의미 있었던 일을 꼽는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이 제기한 유산, 선천성심장기형 등의 발생에 대해 산재 인정이 된 사례, 대학병원 간호사들이 유방암을 직업병으로 인정해달라고 산재 신청한 사건, 7년의 싸움을 통해 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故 황유미 씨 백혈병이 법원에서 최종 직업병으로 인정받은 사건, 계속되는 중대재해·화학물질 폭발 사고, 지하철 기관사들의 자살, 우편체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안전보건 문제, 자동차 산업의 주간연속2교대 전환, 안전보건위험성평가 시행, 야간노동에 대한 특수건강진단 실시, 근로자건강센터 확대, 감정노동과 관련된 안전보건이슈 사회화 등등 그 어느 때 못지않은 중요한 사건이 많았던 한 해였다.


그 중 감정노동과 유산의 직업병 인정, 노동자의 자살 문제 등, 노동안전보건의 문제가 노동자 계급 전체의 문제로 부각된 점이 2014년의 가장 큰 변화이자 과제였다고 생각된다. 


Q. 지난 한 해 노동시간, 특히 자동차 산업의 주간연속 2교대를 빼놓고 이야기하긴 어려울 것 같다. 이를 어떻게 평가하고 이후 보완해 나가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노동시간단축은 자본의 입장에서도 중요한 문제다. 더는 시간을 늘려 생산을 유지하는 방식이 자본에게도 비효율적일뿐 아니라, 생산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노동자에게 최대한의 여유를 주는 것이 생산한 제품을 소비할 시간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결국, 어떠한 노동시간단축을 만들어 내느냐를 둘러싼 투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본다. 주간연속 2교대를 시행한 이후 노동시간이 줄었지만 평균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주는 임금 역시 줄었고, 공장 운영시간은 줄었지만 생산량은 교대제 변화전과 동일하게 유지된 사업장들이 다수다. 노동시간단축이 겉으로는 노동자 계급에게 유리하게 보였지만, 결국 자본에게 이익이 되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노동시간이 줄고, 생산량이 유지되는 과정에서 노동 강도가 증가하거나 비정규직의 투입 등 사회 전체적으로 고용불안이 증가되는 변화가 있었다. 


임금, 노동 강도, 고용의 문제를 모두 쥐고 갈 수 있어야 노동시간단축과 교대제 개선을 포함한 생산과정의 변화에 대한 노동계급의 올바른 입장을 견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현재 노동시간센터(준)에서 진행하고 있는 ‘자동차부품사 주간연속 2교대 이행 실태 조사와 노동자의 건강과 삶의 변화 연구’는 이후 노동시간단축과 관련된 노동운동의 방향에 중요한 단초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Q. 지난 한 해 연구소는 집중사업의 하나로 ‘노동안전보건운동을 통한 공공영역 현장의 조직화와 공공성 강화’를 고민했었다. 지난 한 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A. 작년 말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던 철도산업 민영화, 공공병원의 폐쇄 및 병원노동자 해고, 공공병원 노동조합 무력화 시도, 우편체신 노동자들의 안전보건 이슈 등 다양한 공공영역의 이슈가 있었다. 연구소에서 우편체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건강 문제에 관한 실태조사와 사회화에 개입하는 등의 작업을 수행하였고, 기관사 1인 승무화 시도 등과 관련된 안전보건 문제를 조사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였다. 작년 한 해 병원노동자들의 안전보건이슈가 어느 해보다 부각되었던 시기였으나, 이를 주요 투쟁의 과제로 가져가지 못한 부분이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공공영역의 민영화 시도와 자본의 구조조정 공세에 맞서 공공영역의 공적 내용을 지켜내고,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막아내기 위한 적극적인 노동안전보건영역의 개입이 2015년에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이 투쟁에 연구소도 함께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