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3. 중대재해 트라우마 대응 실태와 개선 방향 / 2019.06

[노동자의 힘으로 중대재해 막아내자] 

 

 

 중대재해 트라우마 대응 실태와 개선 방향 

 

 

장경희 / 회원, 충남노동인권센터 노동자심리치유사업단 두리공감 상임활동가 

 

 

책임을 전가, 축소, 은폐하려는 가해자

중대 재해 그 자체로도 그렇지만, 중대 재해 이후 트라우마를 바라보는 태도와 시각은 천차만별이다. 최근 충청남도 모 대기업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 이후 트라우마 예방을 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트라우마 예방을 위한 노사 간의 합의과정도 그렇지만, 합의 이후 회사와 근로복지공단의 태도에는 기가 막혀 분노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트라우마 예방 활동을 위해 고용노동부가 지정한 기관 중 하나였지만, 회사는 두리공감을 배제하고 싶어 했다. 배제하려는 마음이야 전부는 아니어도 일부는 이해하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예의 바르게 배제하고 싶어 했던 과정에서 확인된 회사의 태도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이 사람들은 직접 목격자가 아닙니다.” “저 사람들은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인데 힘들다고 합니다.” “근로자들은 어떻게든 놀고 싶어 하기 때문에 자기 보고식 설문지는 신뢰할 수 없습니다.” “고용노동부 트라우마 매뉴얼에는 2, 3차 피해자에 동일 부서를 명시한 적이 없습니다.” “그 많은 사람을 다 만나봐야 한다면 공장은 누가 돌립니까?”

모르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과오로 발생한 사건에서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그것의 직간접 피해가 퍼지고 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책임을 전가하고 축소하고 은폐하려는 시도는 분명한 죄다. 더불어 불특정 다수에게 낙인을 찍어 원래 그들은 문제가 많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형적인 가해자 레퍼토리다. 중대 재해 사망사고 현장에서 우리가 만난 대부분의 회사는 위와 같았다. 위 사건 당시 회의에 참석한 근로복지공단 담당자는 회사의 말이 맞다는 말 외에는 하지 않았다.

 

고통의 근원을 모른 채 자신을 탓하는 피해자

반면, 중대 재해를 경험하거나 동료의 처참한 죽음을 목격한 노동자들은 스스로 죄인이 된다. ‘내가 좀 더 일찍 발견했더라면’, ‘내가 혹시 스위치를 잘 못 누른 것은 아닌지’, ‘평소에 문제가 많았던 곳인데 주저하지 말고 개선을 요구하며 싸웠더라면’ 등이 첫 번째 동료의 죽음을 대하는 살아남은 동료들의 마음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찾아오는 죄책감, 두려움,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다. 차라리 이 상황을 만든 회사에 분노하며 고함을 치고 통곡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인 것이다. 동료와 자신이 당한 이 비참한 고통을 고스란히 가슴에 묻으며, 일상의 공포를 재경험하면서도 가
해자들의 지시를 받으며 일하고 살아내야 한다.  자신이 느끼는 고통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불면의 밤을 지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못난’ 자신을 탓한다. 이것이 트라우마다.

 

정부의 중대 재해 트라우마 대응 실태와 문제점

고용노동부는 2017년 ‘산업재해 트라우마 관리 프로그램 운영 매뉴얼’을 만들고 현재는 직업적 트라우마 전문 상담센터까지 운영하고 있다. 중대 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에 트라우마 위기에 대한 검토를 거쳐 고용노동부가 사업주에게 트라우마 프로그램 시행 명령(권고)을 내리게 된다. 그러면 사업주는 각 지역의 근로자건강센터, 직업적 트라우마 전문 상담센터 등과 연계하여 재해의 직간접피해자를 대상으로 트라우마 관리 프로그램을 시행하게 된다. 노동 현장에서 물리적으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고들과 그로 인한 신체적 손상, 사망 등에 대한 대응에서 정신적·심리적 대응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실행한다는 점에서 진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매뉴얼 시행 이후 많은 중대 재해 사업장에서 실행돼 왔다. 반면 매뉴얼과 그 시행과정에서 몇 가지 한계와 문제 들도 나타나고 있다.


첫째, 중대 재해 사건 처리 자체와 트라우마 예방 프로그램의 분리 문제다.


자연재해나 사회적·인적 재난의 원인, 사건처리 절차 및 과정, 재발위험의 방지와 안전대책 등이 심리적 위기 수준에도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중대 재해 현장에서는 이러한 통합적 접근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안전의 확보”라는 것은 사고 위험으로부터의 안전, 사고를 재경험하도록 만드는 장소·사람 등으로부터의 안전, 자신이 경험한 피해를 제기하고 시정을 요구하며 사고위험을 인식했을 때 배치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로서의 안전을 모두 포함한다. 또한 사건처리 과정 전반에서 노동자들의 참여를 보장하고 처리 결과에 동의 여부를 묻는 것은 원칙적 절차를 넘어 통제권과 자율성의 회복이라는 심리적 위기를 완화하는 주요한 기제가 된다. 하지만 고용노동부 매뉴얼에는 이와 같은 관점이 결여돼 있다.

중대 재해 사고와 트라우마 예방 프로그램을 종합적으로 안내하지 않는 문제가 나타난다. 사고의 원인과 처리 과정과 더불어 트라우마 예방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지, 누가 오는지 등을 전혀 안내하지 않는다. ‘해 주는 거니까 잠자코 해’라는 식이다. 당사자인 노동자들의 결정권과 통제권을 빼앗아 오히려 위기를 부추기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두 번째, 트라우마 예방 프로그램 자체의 한계다.

고용노동부 매뉴얼은 중대 재해 직후 직간접 피해자들에 대한 사건충격도 검사를 거쳐 고위험군에 대한 상담 및 전문기관 연계 등을 밝히고 있다. 많은 전문가가 주장하듯이 외상을 경험한 사람들의 심리적·정신적 고통의 수준을 객관적 지표로 측정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사람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증상과 발현 시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이 갖는 효과성을 확인하기 위해 사전 사후 검사가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되어선 안 된다. 심리상담의 경우도 각 지역의 근로자건강센터가 확보한 상담 인력의 부족, 1개소뿐인 직업적 트라우마 전문 상담센터 등의 한계도 있지만, 심리 상담만으로 급성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는 역부족이기 때문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전문치료기관 연계가 매뉴얼에 나와 있으나 그에 따른 비용이나 시간 등을 노동자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시스템도 개선이 필요하다.

세 번째, 사고의 원인을 제대로 밝히고, 철저한 현장 개선으로 안전한 현장을 만드는 과정이 트라우마 예방매뉴얼에 포함되어야 한다.


트라우마 예방을 위한 위기 개입은 보통 1개월에서 3개월 단기개입으로 이뤄지며, 고용노동부 매뉴얼 역시 그와 같은 기간을 명시하고 있다. 이 경우 두 측면의 대책이 세워져야 한다. 우선 트라우마 예방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기간에 철저한 원인 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처벌, 완전한 현장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트라우마를 완전히 예방할 수 없다. 다음으로 설사 위와 같은 개선이 모두 이뤄지더라도 이미 발생한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 증상들이 이후에도 계속될 경우 치료방안이 수립되고 제공되어야 한다. 급성스트레스 증상이 2개월 이상 경과되면 외상후 스트레스로 봐야하며 이는 보다 더 전문적이고 지속적인 관리와 치료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현재의 매뉴얼에 이 같은 내용들이 빠져있다.

마지막으로 트라우마 위기의 완전한 극복은 “신뢰”를 통해 이뤄진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분명한 가해자, 외부로부터의 위해적 상황 등은 ‘신뢰의 상실’을 초래한다. 중대 재해를 경험한 피해 및 생존자들은 회사와 정부기관을 불신하며 때로는 자신을 보호해주리라 기대했던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신뢰를 잃는다. 세상과 주변이 절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중대 재해 트라우마 예방에서 중요한 고리는 피해자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피해 및 생존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제대로 사과하며 그들의 요구를 알아차려 수용하고, 안전을 위해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그들에게 돌려주는 것이야말로 신뢰 회복의 실마리다. 이러한 과정이 트라우마 치유의 핵심이라고 하는 ‘사회적 지지’의 시작이다. 사람이 죽을 수 있는 노동은 이미 강제노동이다.

자동차 자율 안전주행처럼 소비자 또는 고객의 안전을 위한 기술은 나날이 발전한다. 하지만 그 소비자가 노동자로 살아가는 현장에서의 안전은 답보상태이거나 후퇴하는 듯하다. 그러니 관점과 태도의 문제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위험한 일을 하는 노동자이기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이기 때문에 죽게 된다.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 개인의 힘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이나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의 예방은 노동자가 죽지 않고 일하는 구조를 바꾸는 과정과 함께 가야만 한다.

 

[안내] 사고를 경험한 노동자 트라우마는 어떻게 극복되는가? 토론회


사고를 경험한 노동자 트라우마는 어떻게 극복되는가? 토론회

- 태안화력 트라우마 위기 대응 경과와 향후 과제를 중심으로


좌장 : 하효혈 (사회활동가와 노동자 심리치유 네트워크 통통톡)

기본발제 : 양선희 (대구근로자건강센터, 직업환경의학전문의)

토론발제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장경희 (충남노동인권센터 노동자 심리치유단 두리공감)

조성애 (공공운수노조,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 진상규명팀)

고병곤 (노동부 산업보건과)


일시: 2019년 3월 7일 목요일 오전10시

장소: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

주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국회의원실 송옥주, 이용득, 이정미, 한정애

주최: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 

[안내] 현장 치유 활동가 정신건강 관련 교육

현장 치유 활동가

노동자 마음건강 돌봄을 위해 발로 뛰고 싶은 현장 동지들을 초대합니다!

1강(12/6) 왜 우리는 노동자 정신건강을 말하는가?

2강(12/13) 주요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

3강(12/20) 업무상 정신질환 사례분석

4강(12/27) 노동현장의 심리적 위기와 대처 

주최 충남노동인권센터 노동자심리치유사업단 두리공감,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 노동안전보건위원회,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매주 18시 아산비정규직센터에서 진행합니다. 

참석문의: 두리공감 허윤제 팀장 (010-4477-2125)

특집3.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 함께하기 / 2018.10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 함께하기

- 치유활동가 허윤제 님 인터뷰

재현 상임활동가 


노동자 정신건강 관련해서 현장에서 함께했던 활동, 그 과정에서 느낀 고민 지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치유활동가 허윤제님을 만났다. 인터뷰는 지난 9월 21일 충남아산노동인권센터 노동자 심리치유단 두리공감에서 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시작한 활동

"저는 2011년부터 충남노동인권센터 노동자 심리치유단 두리공감에서 활동을 시작했어요. 두리공감은 충남도, 아산시, 금속노조, 공동으로 활동하는 현장, 개별 등의 후원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첫 활동은 지역에 있는 유성기업의 불법적인 직장폐쇄와 노조파괴 문제로 조합원들 정신건강 문제에 개입하면서였어요."

허윤제님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활동하면서 본인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는 어떻게 하면 사람을 살릴 것인가인데 이 점이 가장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이 투쟁하면서 다치거나, 자살하는 경우를 해마다 보면서 어떻게든 한 사람이라도 죽지 않게 살려보자는 마음으로 활동해왔는데 유성기업에서 한광호 열사 돌아가셨을 때는 일을 그만둬야 하나 생각할 정도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2차, 3차 피해는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현장에서 긴급하게 위기 지원 활동을 했어요. 처음부터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었는데 이 활동으로 사람이 살아나지는 않는 거 같아요.

노동자 개인적 원인이나 문제도 있겠지만 결국 현장에서 노동자의 정신건강을 나쁘게 하는 건 노동조건의 문제이고 관계의 문제이거든요. 회사가 노동자에게 가하는 괴롭힘, 업무 스트레스 등의 문제를 해소하지 않고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가 나아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실낱같은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지난 시간

"유성기업은 직장폐쇄 이후에 5년 동안 꾸준히 노동자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했어요. 개인, 집단 상담은 물론이고 공동체 프로그램 등을 통해 노동자들이 마음을 열고 힘들고 어려운 점을 이야기하도록 했어요. 이 과정에서 저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노동조합이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를 자신들의 문제로 받아 안고 주체적으로 고민하게 하는 것이었거든요. 그래서 현장에서 사업단을 구성하게 하고 늘 공동으로 진행하고자 했어요.

그러다 한광호 열사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일단 현장에서 상주하자는 생각으로 1주일에 2~3일 정도 내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조합원들이 굉장히 예민해져 있어서 낯선 사람을 경계하고 그랬거든요. 그러다 저희가 오랫동안 현장에서 함께 있으니까 경계심도 풀고 마음을 열고 각자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갑을오토텍 역시 직장폐쇄 이후였는데 투쟁 과정에서 분임조를 운영할 때라 분임조장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조합원들 상황을 같이 점검해보고, 몇 달간 집단 상담 등을 해왔어요."

유성기업의 경우 노동자들이 차량에 자살 도구를 가지고 다니거나, 정신을 차려 보니 베란다나 옥상에 있었다는 등 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이 위급한 상황이었다. 노동조합은 지속해서 정신건강 문제로 고통받는 조합원에 대한 산재 인정을 촉구하고 현장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임시건강진단 등을 요구했으나 관철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결국 국가인권위원회가 나서서 현장 노동자에 대한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했으나 아직 결과를 공유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 과정 역시 두리공감 활동가들이 함께해왔다.

모두가 개인의 문제로만 취급하는 문제

"개별 기업이나 자본, 정부, 지자체, 국회, 전문가들까지도 대부분 비슷한 시각인 것 같아요.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를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사실 이게 굉장히 어려운 문제인 게 만약 노동자가 일하다 현장에서 사고가 나거나 다쳤다, 그러면 원인이 너무나 명확하잖아요.

그런데 질병처럼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의 원인은 너무 다양하고 복합적이라서 업무로 인해 우울증 증상이 있는데 가정에서의 분란 등으로 인해 알코올에 의존하게 되었다고 하면 정신건강의 원인이 현장에서의 상황 때문인지 개별적인지 명확하게 밝히기가 어렵잖아요. 이렇다 보니까 개별 기업은 노동자의 스트레스가 개별적인 문제라고 주장하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개별의 문제라고만 단정할 수 있겠어요."

허윤제님은 일부 개별 기업에서 EAP(Employee Assistance Program) 제도라는 것을 만들어 현장 내 자체적인 상담실을 마련해서 노동자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상담하고 대응하는데, 이 역시 회사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일환이라고 말했다.

"노동자 개인의 정신건강이 생산성과 효율성에 영향을 미치니까 정신건강을 돌봐서 생산율을 높이겠다는 의도예요. 회사 복지 차원으로 제공하는 것과 다를 게 없는 거죠.

그런데 노동자들이 회사가 운영하는 이러한 시스템을 거부해요. 상담 과정에서 개인 정보도 많이 요구하고 나한테 정신건강 문제가 있다는 게 알려지면 인사고과나 구조조정 등에 있어 불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회사가 자신을 보호하지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모든 이야기를 다하겠어요.

심지어 저희 두리공감에도 말씀을 꺼리는 분들이 많아요. 내가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내가 약하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선입견으로부터도 자유롭기가 쉽지 않거든요."

허윤제님은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의 정신건강은 노동조건이나 업무 스트레스 등이 주요한 원인이라는 연구나 사례들을 전문가가 많이 발견해서 개별 노동자의 탓으로 돌리는 기업이나 자본에 영향을 미쳤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노동조합에서도 아직은 고민이 부족한 문제

"유성기업 문제 이후로 노동조합에서 투쟁이 어렵거나 뭔가 돌파구가 없을 때 정신건강 문제를 수단으로 활용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물론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를 드러낸다는 것 자체는 중요한 일인데, 문제를 드러내는 것 못지않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동조합의 계획이 무엇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걸 물었을 때 답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더라고요. 실제 노동자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를 적극적으로 고민하지 않거든요. 어렵기도 하고요. 그럴 때는 저희가 현장과 만나서 이러한 이야기를 나누고 조금 더 고민해달라고 부탁드리고 있어요."

허윤제님은 이런 사례들은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를 일상적으로 고민하지 못하거나, 고민하기 어려운 점이라며 아쉽다는 이야기를 했다.

"생각해보면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해결하려면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하는 노동안전보건 활동의 일환이 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현장에서 담당자도 세우고 이 문제를 적극 고민이 가능하도록요.

그런데 아직은 어려운 것 같아요. 현장에서 이 고민을 주도적으로 하는 주체도 별로 없고요. 그래서 두리공감에선 이제부터라도 현장 주체를 발굴해보자 고민하고 있어요. 일단은 시작으로 상담, 치유활동에 대한 양성과정과 매뉴얼 등을 고민하고 있어요.

상당히 고무적인 게 유성기업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하다 보니 이제는 현장에서 우리가 직접 해 보겠다 이야기 나오는 상황이에요. 처음에는 투쟁할 시간도 없는데 뭘 이런 거까지 해야 하느냐 이야기도 있고, 주요 투쟁 일정에 밀리기도 했는데 이제는 적극적으로 고민하게된 거예요."

허윤제님은 갑을오토텍의 경우 투쟁 백서를 만들고자 하는데 이때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 다른 상담, 치유 활동을 만들어가면서 주체 발굴 활동의 가능성을 조금씩 발견해나가는 것 같다고 한다.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의 가장 큰 원인

"현장에 가서 노동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실태조사 등을 해보면 개별 기업이나 자본이 노동자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을 때 우울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노동자는 이 회사에서 일하는 게 생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국 나의 노동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것인데 그렇지 않거든요.

그리고 여러 논문을 검토해보고 현장에 가서 봤을 때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들은 생계가 너무 힘들고, 고용이 늘 불안하고, 장시간 노동이 건강에 많은 영향을 미치겠더라고요. 아직 사회적 인식이 기업이 잘 살아야 나도 잘산다고 생각하잖아요."

지금까지 활동의 성과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라는 게 집단의 문제, 공동체의 문제라는 걸 알았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개별 기업이나 자본이 우리를 탄압해서 힘들어도, 노동자들이 마음이 나약해서 그런 거지 투쟁해서 이기면 괜찮아 지지 않겠어 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이제는 공동 활동을 하면 할수록 우리가 노동자 정신건강 문제를 중요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인식한 거예요. 내가 마음이 아프다는 걸 동료들에게 이야기하는 게 부끄럽지 않게 된 것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치유활동가의 의미

"제가 개인적으로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이 아니고 그렇다고 전문상담사라거나 전문가는 아니거든요. 그래서 저를 어떻게 소개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하는 활동이 현장과 전문가를 연결해주고, 그들에게 현장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무엇을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도록 해주는 코디네이터 역할과 노동자의 정신건강 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리고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사람이 치유 활동가라고 생각해요."

[연구 리포트] 더 이상 그들을 벼랑으로 내몰지 마라! /2015.12

더 이상 그들을 벼랑으로 내몰지 말라!

- 유성기업 노동자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와 과제

 

 

 

장경희 충남노동인권센터

 

 

2011518,

그들의 삶은 그 날, 그곳에 멈춰있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은 대한민국 민주노조 운동의 한 역사였다. 중소사업장이지만, 엄혹하던 시기 어용노조를 민주화했고, 눈 뜨고 코 베어가려는 자본의 의도를 간파했으며, 지역연대투쟁의 모범을 만들었다. 당시 부천지역(현재 유성기업은 충남 아산과 충북 영동에 소재하고 있다)의 수많은 사업장과 활동가들은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지원과 연대로 투쟁할 수 있었으며, 살 수 있었다. 90년대 초반 파업투쟁에 공권력이 투입되고, 97IMF로 구조조정의 한파가 밀려왔어도 그들은 당당했고 민주노조를 지키겠다는 의지는 확고했다. 민주노조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한 유성 자본의 탄압은 거셌다. 대통령은 주례연설에서 ‘1,000원짜리 부품이 완성차 라인을 끊었다.’며 사실을 호도했고, 용역 깡패들은 차량을 동원해 노동자들 13명에게 중부상을 입혔으며, 소화기와 도끼로 무장했다. 공권력은 노동자들에 대한 공포스런 폭력을 목격하고도 재산권 행사라며 노동자들을 막아섰다. 많게는 30여 년을 근무하던 직장에서 쫓겨나 자존을 지키려는 그 작은 소망하나로 모기와 파리가 넘쳐나고 습하디 습한 비닐하우스에서 100일을 견뎌냈다. 그러나 자본의 탄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유성기업 노동자를 살리자!’ 하나로 시작된 정신건강실태조사와 치유활동

 

현장에 복귀해서도 징계·해고, 감시, 협박, 통제, 나아가 인간의 본성까지 찢어 놓고야 말겠다는 자본의 의도는 계속됐다. 그즈음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살려야 한다는 지역의 목소리들이 있었다. 완강한 투쟁으로 자본의 구조조정에 맞섰으나 남은 건 사회적 고립이었고 그중 일부는 세상을 저버리고야 말았던 쌍용자동차의 노동자들처럼 만들어선 안 된다는 외침이었다. 적어도 이 사회의 정의를 위해, 노동자에겐 한없이 부조리하기만 한 탄압과 현실에 저항했던 이들을 절대로 고립시킬 수 없었다. 그런 두려움으로 유성기업 노동자들에 대한 정신건강실태조사는 시작됐다. 충남노동인권센터의 노동자 마음치유 사업단 두리공감의 시작이기도 했다.

 

정신건강실태조사는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지난 4년간 진행됐다. 동일한 진단지로 매년 노동자들의 정신건강상태를 점검해 왔다. 4년 동안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삶은 많이 변했다. 임금은 2011518일 이전보다도 내려갔으며, 일상이 돼버린 감시와 통제로 얼굴빛은 검게 변했다. 정상적으로 노동력을 제공하고도 회사가 주는 밥을 넘기지 못하는 이들이 넘쳐난다. 회사가 유성기업 금속노조 소속 노동자들을 상대로 낸 고소장이 1,000건이 넘는다. 징계는 매일같이 이뤄진다. 최근엔 회사경영난을 주장하며 강제 순환휴직까지 시키고 있으며 민주노조를 압박하기 위한 자본의 이 같은 행태를 거부한 금속노조원들에겐 기계와 유리창을 닦게 하고 청소를 시키고 있다. 극심한 탄압, 막무가내의 폭력을 경험했던 2011년과 현재, 유성기업 금속노조원들이 당해야 하는 고통은 여전하다.

 

2015년 정신건강, ‘위기상태로 확인

 

정신건강실태조사는 총 6개 항목으로 진행됐다. 우울장애, 사회심리스트레스, 불안 증상, 알코올 사용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직무스트레스 등이다. 이모든 지표에서 2015년 결과는 가장 좋지 않았다

 

 

- 우울 고위험군 연도별 변화

 

위 그림은 유성기업 금속노조원들(2012년 아산지회, 2013~ 2015년은 아산·영동지회 통합결과)의 우울증 고위험군 연도별 추이를 보여주고 있다. 매년 우울증 고위험군의 비율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비단 우울증만이 아니라 불안증세에서는 전년도에 비해 13.5%p가 증가했으며, 사회심리스트레스는 무려 22.9%p나 증가하여 약 64.5%의 노동자들이 고위험군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 같은 결과는 현재 유성기업 금속노조원들 상당수는 삶이 가치 있다고 느끼지 못하고 행복하지 않으며, 매우 우울하고 불안감 속에 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더욱이 외상후 스트레스의 경우 이전년도에 비해 12.4%p 증가한 53.6%의 노동자들이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었

는데 이는 2014년 모 국회의원이 전국소방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결과인 11.4%에 비해 4가 넘는 수준이다.

 

실태조사의 맹점이 한 가지 있다면, 이 결과가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지 드러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어떤 노동자는 회사 측 주요인사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라 할 수 있는 사내 식당에서 상상한다. ‘내가 칼을 들고 몇 발자국을 가면...’ 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주는 저 가해자를 없앨 수도 있다는 상상. 또 어떤 노동자는 말한다. ‘정신 차려 보니 아파트 옥상난간에 서 있는 나 자신을 보았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나는 내 목숨을 끊으려 나도 모르는 사이 그곳에 올라갔다. 아이들과 아내에게 고통을 안겨줄 수 없어, 정신병원 폐쇄병동을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다. 대부분의 유성기업 금속노조원들이 상상하고 말하는 현실이다.

 

유성기업 금속노조원들에게 남은 건, ‘악화된 환경

 

충남노동인권센터 두리공감은 지역 내 많은 사업장에서 정신건강실태조사를 벌여왔다. 그중 2014년에는 논산시 사회복지직 공무원의 자결사건을 계기로 지역 사회복지직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직무스트레스를 조사한 바 있다. 이를 유성기업 금속노조원들의 직무스트레스 진단결과와 비교해 보면, 그 결과 역시 참담한 수준에 있다. 직무스트레스의 원인이나 결과, 그것을 해결하는 주체는 고용주다. 노동자에게 능력 이상의 업무나 작업이 강요되고 있는지, 공정하고 합리적인 인사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 업무(작업)수행에 필요한 자원들은 제때, 충분히 제공되고 있는지, 수행결과에 대한 지지와 격려 또는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는지 등을 보는 것이 직무스트레스 항목이다. 두리공감이 실시했던 사회복지직 공무원들보다 유성기업 금속노조원들의 스트레스 수준이 매우 높게 나왔다. 직무요구항목을 제외한, 직무자율, 관계갈등, 직무불안정, 조직체계, 보상부적절, 직장문화 등의 항목에서 모두 높은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 있음이 확인되었다. 특정항목에서는 두 배 이상의 수준을 보이기도 했다.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탄압만이 아니라 유성기업 회사 측은 작업과정 전반에 걸쳐 노동자에게 강력한 스트레스 환경을 만들고 있다. 이는 원래 그랬던 것이 아니라 매우 고의적이고 체계적으로 노동자들을 괴롭히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장치들에 의해 변화된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유성기업 금속노조원들이 증언하듯이 공장문을 들어서는 순간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숨소리가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심리·정신건강 관련한 많은 책들서는 계속된 가해 행위가 두 가지의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한다. 하나는 그 가해행위를 일상으로 인식하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목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맞선다는 것이다. 유성자본이 원하는 것은 전자일 터이고, 후자는 유성기업 금속노조원들이 지금껏 해 오고 있는 일들이다. 그렇게 햇수로는 5, 4년에 걸쳐 사람이고자 저항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지금 남아 있는 건 사무치는 고립감이다.

 

 

위 그림은 2011년부터 현재까지 회사 측의 탄압과 그에 대한 투쟁과정에서 주변의 관계는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한 답변 결과다. 부모와 배우자의 관계는 큰 변화가 없이 아주 약간 개선되었다고 한다. 이례적으로 자녀와의 관계가 개선되었는데, 그 이유에 대해 한 노동자는 아이들이 불쌍하잖아요.”라고 답했다. 4년간 삶은 나아지지 않은 채 어려워져만 가고, 정신적인 고통은 가중되며, 이제 그 고통이 몸으로까지 전이되고 있는 이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아이들을 걱정한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반면, 주변 관계를 보면 친지관계, 이웃관계, 동료관계에서 모두 악화하였다고 응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약처럼 느껴질 수 있겠으나 이 같은 결과는 고립을 의미한다. ‘사람이고자, ‘자존을 지키고자, 나아가 삶과 가족을 지키고자 당당히 맞선 결과가 그들에게는 고립감으로 남아 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환자나 내담자에게 의사와 상담사들은 햇빛을 많이 보고, 좋은 친구를 만나며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 나갈 것을 권유한다. 가해를 통해 상처를 안겨 준 것이 사람이지만, 치유 역시 사람과 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성기업 금속노조원들은 지금, 외롭다.

 

너무 늦지 않기를

 

 

 

엄청난 탄압과 폭력 상황에 노출돼 있어도 유성기업 금속노조원들은 한 번도 흔들림 없이 투쟁해 왔다. 한때는 노동시간 단축과 야간노동철폐의 상징으로 사회적 지지를 받으며 투쟁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다양한 이유로 잊히고 있다. ‘더 어려운 사업장이 얼마나 많은데? 거기는 그래도 조합원이라도 있지’, ‘지금까지 지원했는데 더는 뭘 할 수 있을까?’, ‘이젠 좀 적당히 갈 때도 됐잖아?’ 긴 병에 효자 없듯이, 장기투쟁사업장이란 이름표가 붙으면, 으레 한 번쯤 가봐 주는 곳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 유성기업 금속노조원들은 고립감을 느끼며, 심신이 병들어가면서도 저항하며 투쟁하고 있다. 소위 정상비정상이라며 자신들의 상태를 위로하며 전선에 서 있다. 유성기업 금속노동자들이 지금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이제 사회적 문제이며, 사회적 해결 없이는 불가능한 지형에 놓여 있다. 이제, “유성 투쟁 승리를 넘어 유성기업 금속노동자 살리기를 위해 모여지고 보태져야 한다. 유성기업 금속노동자들의 정신건강과 심리치유를 위한 활동이 만 5년 차에 접어들고 있다. 그러나 치유를 위한 환경 역시 열악한 게 현실이다. 신경정신과 전문의의 도움도 받을 수 없고, 있다손 치더라도 의사들조차 시간이 지나면 눈치를 보곤 한다. 노동현장이나 분쟁사업장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담사들은 엉뚱한 해답을 내놓기도 하기에 찾고 또 찾아서 현장이해도가 높은 상담사를 배치해 왔다. 그러나 그분들만으로 버티기 어려운 지경에 놓여있다. 한달이면 자살기도와 같은 몇 건의 응급상황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정말 그래선 안 되지만 하늘의 운에 맡긴 적도 있다. 유성기업 금속노동자들이 그토록 열망하는 민주노조 사수 투쟁이 승리할 수 있도록 전선을 만들고 힘을 보태며, 연대를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이고 궁극적인 치유가 될 테지만, 지금 당장 고통받는 그들을 위한 치유공동체를 만드는 것도 그만큼 중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