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과로사감시] 2020 동아시아의 과로사와 과로자살 : 심포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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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포지엄은 영어로 진행됐습니다만, 한글 자료가 있습니다. 
다음 링크에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www.dropbox.com/s/rv7vchq30zqmo2p/%EB%8F%99%EC%95%84%EC%8B%9C%EC%95%84%EA%B3%BC%EB%A1%9C%EC%82%AC%EA%B0%90%EC%8B%9C_%ED%95%9C%EA%B5%AD%EC%96%B4.pdf?dl=0

[건강한 노동이야기] ‘과로사’에 대한 왜곡과 잘못된 변명(2020.11.3, 최민, 민중의소리)

어떤 노동자의 ‘과로사’ 여부는 사망 순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망의 원인이 드러나야 결정된다. 그래서 과로사는 ‘의학적’이라기보다 ‘사회적’이고 ‘법적’인 개념이다. 2019년 한 해에만 과로로 인한 뇌심혈관질환 사망으로 산재 승인을 받은 사람이 503 명이었다. 이제는 과로사의 이런 점이 잘 알려질 때도 된 것 같은데,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때 아닌 ‘과로사와 지병’ 논란이 한창이다. 한진택배는 지난 10월 12일 과로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36세 택배노동자 사망 사건에 대해 “김씨가 평소 지병이 있었고 배송량도 200개 내외로 적은 편이었다”라고 해명하며 업무 관련성을 부인하였다. 이 업체는 약 2주 뒤인 10월 27일, 협력업체 트레일러 운전 노동자가 심야노동 중 사망했을때도, 다시 그의 지병을 거론하며 과로사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민중의소리 자료 화면

 

www.vop.co.kr/A00001523719.html

[성명] 국과수가 해야 할 일은 사인을 밝히는 것이지 택배노동자 과로사 폄훼가 아니다

<성명>

국과수가 해야 할 일은 사인을 밝히는 것이지 택배노동자 과로사 폄훼가 아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창설 목적에서 드러나고 있듯이 ‘범죄수사 증거물에 대한 과학적 감정 및 연구활동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을 검거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그런데 10월 29일자 문화일보 기사를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경찰청에서는 “정확한 사망 경위는 국과수의 서면 검증이 완료돼야 알 수 있을 것”, “1차 구두 소견에 따르면 현재까지 과로사와 관련해 인과관계가 검증된 부검 대상자는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올 해 확인된 택배노동자 과로 사망만 14명에 이르고 있고 앞으로 또 어떤 사망이 일어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는 노동·시민사회단체의 마음에 불을 지르는 기사이다. 


읽은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우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과로와 노동자 사망 간 인과관계를 부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의료인들의 입장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최종 결론이 난 것도 아닌 상황에서 경찰에 1차 구두 소견을 통해 ‘인과관계가 검증된 부검 대상자가 한 명도 없다.’고 밝힌 이유는 무엇인가. 경찰이 아직 마무리가 되지 않은 조사를 닦달해 의견을 빨리 내라고 채근했거나 국과수가 최종 검증이 완료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결과를 조기 발표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또는 문화일보에서 오보를 내는 실수를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내용이다. 


그 이유는 앞서 지적 했듯이 부검을 통해 과로와 사망 간 인과관계를 밝힐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는 많은 선행연구를 통해 높은 인과관계를 검증해 왔고 확인된 바에 따라 과로와 질병 간 인과관계가 밝혀지면 산업재해로 인정하고 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별표 3과 고용노동부 고시 ‘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 및 근골격계 질병의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에 따르면 최근 사망한 택배노동자의 대부분은 명확히 과로사 한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돌연사가 발생했거나 심장 통증을 호소하다가 사망한 노동자들은 충분히 ‘심근경색’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고 모두 주당 60시간 내외의 노동은 기본이었고 여기에 야간노동, 옥외노동을 수행하였기 때문에 노동시간이 30% 가산된다. 과로할 수밖에 없었던 업무 조건에 심근경색증이 동반되었다면 이는 빼도 박도 못하는 과로사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살을 선택한 노동자의 경우도 과로사가 분명하다. 유서가 명확한 단서이다. 대리점주로부터 가혹한 경제적 위협행위를 받았고 불법적인 ‘보증금 묻기’가 이루어졌고 이 때문에 생활고를 겪어야 했고 결국 빚,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빚의 무게 때문에 노동자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건 분명 직장 내 괴롭힘이고 이 때문에 사망한 것이다. 이 또한 현행 산업재해 인정기준에서도 충분히 인정하고 있는 과로사에 해당한다. 


따라서 국과수의 역할은 최종 결론도 안 난 사건을 유포하거나 부검을 통해 장시간 노동의 인과관계 밝혀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사망 노동자들의 사인을 분명히 밝혀내는 것이 진짜 해야 할 역할이다. 또한 경찰의 경우 나오지도 않을 결과를 다그쳐 내라고 닦달을 할 것이 아니라 과로사의 근본원인인 장시간 노동, 장시간 노동에 더한 옥외노동, 야간노동을 무리하게 지시한 원청과 원청의 요구를 가감 없이 받아 수행한 대리점주들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는 것이 진짜 해야 할 일이다. 언론은 국과수가 불러주거나 경찰이 과도하게 중간결과를, 그것도 구두로 이루어져 신뢰하기 어려운 결과를 발표하는데 단 한 조각의 의심도 없이 그대로 옮겨 적는 기사작성 과정을 반성해야 한다. 남들이 주는 기사를 의심하거나 팩트인지를 확인할 능력이 없다면 언론의 기능을 잃은 것이다. 


건강하던 노동자가 힘들다는 말을 하다가 어느 날 유언도, 유서도 없이 우리 주변에서 스러져 가고 있는 황망한 상황을 겪고 있는 이 때 생뚱맞은 언론의 보도 내용은 그 저의를 의심하게 한다. 분노에 가득 찬 모두에게 ‘웃기지마, 그 농민의 진짜 사인은 심정지야’라고 했던 과거 어느 대학병원 교수의 사망진단서를 보는 느낌이 드는 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가 정상사회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과수, 경찰, 언론은 더 이상 택배노동자들의 죽음을 폄훼하지 말라. 아무 이유 없이 죽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상상 자체가 불쾌하기 짝이 없다. 연이은, 더 이어질지도 모를 택배노동자의 죽음에 통탄해야 한다.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라. 시민사회는 눈 부릅뜨고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2020. 10. 29

과로사아웃공동대책위원회·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

[매일노동뉴스]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죽음의 노동

이번주 매일노동뉴스 칼럼, 이숙견 상임활동가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 과로자살 문제를 짚어주셨습니다. 노동자의 죽음 뒤엔 대기업 택배사의 영업이익 실적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것, 산재보상제도에서 더 이상은 배제되는 이들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상기하게 됩니다.

“늦어도 한참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특별한 대책’이 말 그대로의 ‘특별한 대책’이 되려면, 더는 안타까운 죽음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그동안 택배노조와 과로사대책위가 제기했던 문제를 최대한 수렴하고 반영해 근본적인 해답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http://m.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7172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죽음의 노동

20일 새벽 또 한 명의 택배노동자가 숨졌다.택배 일을 시작하면서 보증금 500만원, 권리금 300만원을 냈다. 대리점은 권리금까지 받고 ‘소장’이라는 직함을 주면서 배달구역을 넘겼지만, 한 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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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 통권 199호 / 2020.09

 

issuu.com/kilsh2003/docs/2020_9_-_-__

 

일터 202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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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특집 산재치료 후 정지’할것인가  직장복귀로 연결할것인가
■ 산재노동자의 재활과 직업복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 허공에 손 젓기’,산재 트라우마 재활기
■ 삶의 회복을 위한 산재보상제도를 만들어가자!

지금 지역에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국민동의청원에 함께 해주십시오

일터 정신질환 알아보기
직장내 자살 위험을 낮추기 위한 지침/사례

연구 리포트
코로나 시대,돌봄 노동의 시간은?

동아시아 과로사 통신
배달의 나라, 택배노동자의 과로사

A -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유예된 권리, 인턴의 노동력’은 어떻게 활용되는가

현장의 목소리
여성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와 불안정 노동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34
현장에서 전망을 찾다

문화로읽는노동
로봇이 간병을 한다면?! 

직환의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꿀잠 이야기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 여
업무상 재해 유족에 대한 특별채용 단체협약은 유효하다

여성노동 건강 상식
여성노동자의 건강, 스스로 그리고 함께

발칙 건강한 책방 
노동권의 문제에서 바라본 직장 내 성희롱

이러쿵저러쿵 52
“한노보연에서 뭐 할거야?”

안전보건동향


이훈구 동지를 추모하며

한노보연 이모저모

[매일노동뉴스] 과로사 책임, 강하게 물어야 한다

이번주 매일노동뉴스 칼럼은 입니다.

택배 노동자 김원종 님의 과로사를 통해 특수고용노동자란 이유로 보상에서 제외되고, 사업주는 책임을 회피하는 문제, 더 나아가 책임은 사업주가 제대로 져야한다는 점을 제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의·중과실을 응징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이 필요하다. 사용자가 노동자를 과로사하게끔 방치시켰으므로 중과실이 있는 것이다. 목숨에 붙은 정찰제 가격표를 뜯어 버리고, 과로사에 대해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한 책임을 묻게 해야 한다.”

http://m.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7037

 

과로사 책임, 강하게 물어야 한다

지난 8일 택배노동자 고 김원종님 사망으로 택배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택배노동자가 ‘특수고용직’이라는 그물에 묶여있고, 그래서 산재보험 적용이 곤란하다는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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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올 추석 택배 박스 3억 개, 배달 노동자 과로사 대책 마련하라!” (20.09.14, 뉴스Q)

▲ 여는 발언을 하는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양경수 본부장. ⓒ뉴스Q 장명구 기자

손진우 상임활동가는 “택배 노동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71.3시간에 달한다. 죽어나가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노동시간이다. 택배 노동자의 노동 중 공짜 노동인 분류작업은 43%나 차지한다”며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현장에서 적용되지 않고 있다”고 일갈했다.

http://www.newsq.kr/news/articleView.html?idxno=17852

 

뉴스Q:“올 추석 택배 박스 3억 개, 배달 노동자 과로사 대책 마련하라!”

‘물류운송, 배달 노동자 추석 연휴 물량 폭증 과로사 대책 촉구 기자회견’이 14일 오전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앞에서 열렸다.이날 기자회견은 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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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 코로나19와 추석 물량 폭증, 택배/운송/집배 노동자의 과로사 대책 즉각 마련하라

[기자회견문]

코로나-19와 추석 물량 폭증

택배, 운송, 집배 노동자의 과로사 대책 즉각 마련하라

 

전국동시다발 기자회견_세종충남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최진일 회원

코로나 19 방역조치로 배달을 권장하고 있지만, 정작 폭증하는 물량증가에 따르는 택배, 집배등 배달운송 노동자의 과로사는 무대책으로 방치되어 왔다. 이미 올해에만 7명의 택배 노동자가 과로사로 죽어나갔다. 지난 814일 노동자 시민의 거센 요구로 택배 없는 날이 시행되었지만, 그이상의 대책은 없었다. 이제 노동자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의 격상으로 더욱 늘어난 물량과 다가오는 추석으로 50%이상의 물량증가를 앞두고 불안과 공포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다단계 하청과 특수고용으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으로 택배 노동자들을 쥐어 짜 왔던 CJ, 저임금 심야노동을 바탕으로 24시간 배송을 내걸고 무한 확장해 온 쿠팡 등 재벌 택배회사들은 수백억의 흑자를 남기면서도 공짜 노동인 분류작업을 노동자에게 그대로 떠 넘겨 왔다. 연이은 과로사, 과로자살로 집배 노동자의 과중노동의 실태가 드러났지만 우정 사업본부는 추석 특송기에 또 다시 추가인력 투입 없는 현장으로 위탁택배와 집배 노동자를 몰아넣고 있다.

 

재벌 택배사에 밀려 알멩이 없는 대책발표로 지탄을 받은 정부는 지난 10일 국토교통부의 2차 권고안을 발표했다. 권고안에는 분류작업 인력 한시적 충원 휴게시설 확충 지연배송 사유로 택배기사에게 불이익 금지 권고안에 대한 이행 점검과 택배사 서비스 평가 반영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에 민주노총은 공짜노동인 분류작업을 전가로 노동자의 고혈을 짜내 수백억의 이익을 내왔던 재벌 택배 회사들의 분류작업 인력 추가 투입 즉각 실시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바이다. 아울러 우정 사업본부는 공공기관으로서 분류작업 추가 투입 즉각 실시를 선도하고, 매년 물량 폭증로 고강도 노동으로 내몰았던 집배 인력 추가 투입을 실시할 것은 강력히 요구한다.

 

지난 814일 택배 없는 날의 성사는 주문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기업의 이윤착취를 고객 탓으로 돌리고 회피했던 재벌 택배회사들의 주장이 근거 없음이 증명된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그 누구도 노동자의 죽음이 동반된 노동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라는 상식을 다시한번 확인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재벌 택배사 들이 대책의 이행을 끝까지 거부하거나, 회피한다면 강력한 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임을 밝히는 바이다.

 

똑 같은 노동을 하면서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위장 자영업자로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내몰려 임기 웅변식의 대책으로 넘어가는 행태는 이제는 끝장내야 한다. 노동부, 국토부는 택배, 집배, 화물운송 노동자의 과로사 대책을 비롯해 기본적인 노동권 보장, 산업안전 감독, 산재보상 등에 대한 근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특수고용노동자의 노조할 권리 보장을 위한 노조법 2조 개정과 더불어 과로사 없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투쟁을 끝까지 전개할 것이다.

 

2020914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0911택배,운송 기자회견 수정.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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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성명] 다시 과로하러 출근하는 택배노동자 보호가 절실하다.

다시 과로하러 출근하는 택배노동자 보호가 절실하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내건 택배없는 날 선전물



지난 14일 대한민국의 택배노동자들은 택배업무를 시작한 이래 최초로 일요일이 아닌 날에 공식적으로 하루를 쉬었다. 소위 ‘택배 없는 날’이었다. 노동자들은 꿀맛 같은 휴가였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앞으로 이런 날이 또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월요일인 오늘 다시 과로하러 출근한다. 노동자들은 일요일을 빼고는 아침 5시~7시에 출근해서 밤 10시~11시까지 일한다. 하루 3~4시간 자면 많이 자는 거다. 그리고 종일 화물을 분류하고(그것도 지붕도 벽도 없는 맨 바닥에서) 배송하고 집화하는 길거리 노동을 한다. 밥은 삼각 김밥으로 때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절대 아프면 안 된다. 병이 나 드러누우면 엄청난 민폐다. 동료들이 무조건 나눠서 일을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안 그러면 택배노동자들이 계약한 대리점이 대기업 원청으로부터 계약해지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니 숱하게 쓰러질 수밖에 없다. 

2018년 12월,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부개정 되었고 특수고용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조항이 어설프게나마 삽입되었다. 그러나 그조차 잠자고 있다. 올 해 드러난 사망만 12건이었다. 유족이 산재신청을 안 했다면 실제로 얼마나 많은 택배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했는지 알 수 없다. 이런 형국인데도 특수고용 노동자 보호한다는 산업안전보건법은 작동하지 않고 있다. 여기저기서 노동자들이 스러져 가고 있지만 고용노동부는 그 흔한 감독조차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 중대재해가 발생했으므로 작업중지가 이루어져야 할 형국이지만 이 또한 남의 집 얘기다. 코로나19로 배송 물동량이 크게 늘어나면서 이천지역에 대규모로 물류센터가 지어지고 공기단축 압력이 거세지면서 지난 5월 38명의 노동자를 화마에 가두더니 이제 목표는 택배노동자가 된 것이다. 

노동자들은 돈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코로나19로 증가된 노동시간을 줄여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노동자들이 장시간 일하는 것이 돈을 많이 벌려는 의도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노동자들은 스스로 노동시간을 줄일 수 없다. 원청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특수고용 노동자가 아니다. 대기업 원청의 ‘윤허’를 받아야만 하는 고용된 노동자인 것이다. 

CJ대한통운은 2019년 10조 원에 이르는 매출을 올렸으며 영업이익만도 1,700억 원을 넘었다. 롯데택배는 2.6조 원의 매출에 영업이익 100억 원을 넘겼다. 올 해의 성장률은 30% 이상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 수익력 속에는 택배노동자들의 과로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택배노동자들의 몸과 정신 에너지를 현금으로 흡수하고 있는 것이다. 제발 이젠 노동자의 에너지를 고갈시켜 기업을 살찌우는 행위를 그만 멈추고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줄여줄 생각을 해야 한다. 

택배노동자들이 분류작업에 과도한 시간을 쏟지 않도록 노동자를 더 고용해야 한다. 새벽출근, 야간 근무를 없애야 한다. 그러려면 역시 택배노동자 수가 늘어나야 한다. 고용대란이 발생하고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일자리를 늘리는 기업은 아름다운 기업이다. 그런데 늘어난 물량을 오롯하게 기존 노동자에게만 부과하는 것은 참으로 부도덕한 행위이다. 

위기극복에 유난히 한 목소리를 내고 단합이 잘 되는 대한민국 국민의 힘을 우리는 알고 있다. 모두 어렵게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다. 그 와중에 혼자만 더 잘 살겠다고 반칙을 하는 기업이 있다면 시민사회 모두는 이들 기업에게 등을 돌릴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대재해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 몰라라 불구경만 하고 있는 감독 당국인 고용노동부 또한 국민의 따가운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규제 당국은 당장 적극적인 감독과 택배노동자 보호를 위한 행정지침을 시행해야 한다. 

2020년 8월 17일

과로사OUT공동대책위원회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코로나 재난과 공무원 과로사 / 2020.06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코로나 재난과 공무원 과로사 

 

 

김영선 /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 

 

재난 때마다 공무원 과로사가 발생한다. K-방역모델이 국제표준으로 추진될 만큼 주목을 받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코로나19에 따른 비상상황으로 주말에도 출근해야 했던 전주시 공무원(43세)과 성주군 공무원(47세)이 2월 말 3월 초에 연이어 과로사했다. 

비상 근무로 20여 일간 하루도 쉬지 못하면서 쓰러졌다가 다시 현장으로 복귀한 포항시 북구보건소 감염관리팀장(53세) 또한 과로사 위험에 노출되기는 마찬가지였다. 4월 말 코로나19 관련 업무를 관리하던 합천군 공무원(56세)도 과로로 사망했다.

되짚어 보면, 폭염 등 기후 변화로 인한 재난 시기에도 사망 사건이 발생했고 이제는 매년 발생하다시피 하는 동물 전염병 때에도 방역 공무원의 과로사가 반복됐다. 지난 3월 말 파주시에서 수의사로 일하던 주무관(52세) 또한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매일 사무실에서 숙식하며 방역 업무를 담당하던 중에 과로사했다. 

일련의 사건은 재난 시기 공무원이 비상 근무에 따른 과로 위험에 어떻게 노출되어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   공무원 과로사는 재난 상황의 예외적인 사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누적되어 있던 과로위험이 재난 시기에 격발되어 표출된 시스템 상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


노동인권은 재난과 양립할 수 없는가?

재난은 길을 잃은 상태를 말한다. 재난의 영어 단어인 disaster의 어원은 행성이 궤도에서 벗어난 탓에 발생하는 미지의 사태들을 가리킨다. 전례 없는 사태는 안전을 위협하는 것은 물론 한 사회에 잠재되어 있던 문제들을 한꺼번에 드러낸다. 

무대 뒤편에 감춰졌던 사회의 취약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계기다. 노동자가 어떻게 취급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최전선, 초토화, 쑥대밭, 대란, 대공포, 창궐, 초유의 사태, 전시 상황, 군사작전, 포화 속, 총동원, 코로나 전사, 최전선 영웅 등으로 묘사되는 재난 상황에서는 권리와 원칙들이 쉽게 유예되거나 무력화되기 일쑤다. 무권리 상태로 내몰리는 형국이다.

재난 대응 시 휴게시간이나 쉴 공간 또는 숙소 등을 포함한 편의 조치는 찾아보기 어렵다. 방호복을 착용하는 경우 피로와 스트레스가 평상시보다 더 쌓인다. 방호복을 입고 있으면 한겨울이어도 땀이 비 오듯 흐른다고 말할 정도다. 

그렇기에 반드시 한두 시간 정도 쉬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언제 휴게시간을 가져야 할지, 그 규정은 어떻게 되는지 모른다고 토로한다. 주말 근무가 연속되지만 대체 휴무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하소연도 다반사다. 재난은 그런 권리들을 쪼그라들게 만든다.

복무 규정과 봉사자 이데올로기

과로사가 양산될 수밖에 없는 장치들을 보자. 

하나, 공무원은 복무 규정 탓에 과로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긴급 상황의 동원을 가능하게 하는 '복무 규정'(비상 근무와 근무시간의 변경 조항 등)으로 근무시간이 고무줄처럼 늘어나거나 수시로 변경되기도 한다. 

비상 근무의 종류, 발령 일시, 발령 사유 등의 기준은 꽤 구체적으로 명시된 데 반해 그 사용 제한에 대한 내용은 사실상 찾기 어렵다. '주말에도 출근(대체 휴무 없음)' 식 비상 근무를 방기하는 복무 규정은 공무원 과로사를 반복 양산하는 하나의 원인이 된다. 초과근무만 월평균 150~200시간에 달할 정도다. 비상 근무를 '여는' 조치와 함께 '닫는' 조치를 병기해야 할 것이다.

둘, 공무원에 부여된 헌신, 봉사, 수호, 사명감, 책임감 등 봉사자 이데올로기도 장시간의 비상 근무를 정당화한다. 봉사자 이데올로기는 재난 상황일수록 과로 위험에 대한 사회적 발언을 어렵게 만든다. 재난 상황의 공무원도 안전권, 건강권, 시간 권리가 전제되어야 하는 노동자임에도 말이다.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사명감을 갖추는 일과 별개로 휴게시간, 최소한의 휴식 시간, 대체 휴무, 초과근로 제한 등의 시간 권리를 가리는 방식의 비상 근무는 제한되어야 한다. 재난 시 공무원 과로사가 발생할 때면 헌신과 희생으로 미화되곤 한다. 재난 상황에서 봉사자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동원되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명감, 헌신, 희생이 전면에 내세워지는 가운데 죽음을 유발하는 '과로'의 문제는 은폐되는 효과가 발휘된다는 점이다. 봉사자 이데올로기는 공무원 과로사를 반복 양산하는 또 하나의 원인이다.

예외적 사례라고?

공무원 과로사를 재난 상황에서 발생하는 예외적인 사례라고 생각할 수 있다. 비상 근무 탓도 탓이지만 이러한 관점은 그간에 켜켜이 누적된 과로 위험을 간과하게 한다. 한국의 공무원 수는 OECD 국가와 비교해 최저 수준이다. 

이는 인력의 과소 상태를 방증하는 대표적인 지표다. 평상시 초과근무만 월평균 150시간에 달하는 경우도 발견된다. 과로 상태가 만성화되어 있음을 가늠케 한다. 지자체 현업 공무원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공무원 과로사는 재난 상황의 예외적인 사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누적되어 있던 과로 위험이 재난 시기에 격발되어 표출된 시스템상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 

바이러스 감염병 재난은 '신종'이라 이름을 갈아가며 반복 발생한다. 빈도도 높고 주기도 짧아지고 있다. 그 종류도 많아지고 있다. 재난의 반복성만큼이나 공무원 과로사도 예감될 수밖에 없는 문제다.

비상 근무에 따른 공무원 과로사, 되풀이될 문제인가? 그 고리를 끊어야 한다. 노동인권에 기초한 원칙에 따라 대응할 필요가 있다. 안전권, 건강권, 시간 권리를 명문화하는 것을 포함한 대응 원칙 말이다. '긴급 상황'이란 이유로 과로를 조장하는 방식의 대응은 또 다른 문제를 유발한다. 

OOO 전사나 영웅으로 호명하거나 직업정신을 앞세워 희생을 동원하는 방식의 대응은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을 낳을 뿐, 재난 대응으로는 부적절하다. 노동자 인권을 명시하는 것이 재난 대응의 첫걸음이자 모두의 안전을 담보하는 최선의 방역이다.

[동아시아과로사통신] 노동시간 제한이 부재한 과로사회, 일본 / 2020.05

노동시간 제한이 부재한 과로사회, 일본

이와하시 마코토 POSSE

 

일본은 '과로사'라는 말을 만들어낼 정도로 과로가 심각한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2019년까지 의미 있는 법적 노동시간 제한이 없었습니다. 이는 회사가 노동자에게 1년 동안 하루 24시간, 365일 일을 시켜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었습니다. 지금은 고용주들이 한 달에 100시간 이상의 연장근무를 시킬 수 없도록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과로사 역치'라고 불리는 월 80시간의 연장근무보다 20시간이나 많은 장시간 노동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일본의 과로사 현황

1980년대에 노동법률가, 의사, 노동운동가들이 함께 '과로사'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 직장에서의 일 때문에 발생하는 죽음과 질병의 숫자는 극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일본 정부의 과로사 백서에 따르면, 2018년 과로에 의한 뇌혈관, 심혈관질환 혹은 그 사망으로 산업재해보상보험에 보상을 신청한 사례는 모두 877건입니다. 이 중 업무관련성이 있다고 승인된 것은 238건 뿐이고, 이 중 82건이 사망 사건이었습니다. 2017년에는 업무상 과로에 의한 질환으로 승인된 것이 253건, 이 중 92건이 사망 사건이었습니다. 2002년 이후, 일본에서는 매년 100여 건의 과로사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고, 이는 4일에 한 명씩 과로로 사망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한 달에 100시간 이상의 연장 노동을 하거나, 2~6개월 동안 한 달에 80시간 이상의 연장 노동을 한 경우에만 과로사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산업재해로 인정하고 있는 사례들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점을 지적해야 합니다. 자신의 가족 중 한 사람을 잃은 유가족들이 나서, 그 죽음이 업무와 관련됐다고 '증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과로사 사례가 아예 보고되지 않거나, 특별한 이유가 없는 '급성심장사'로 처리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이런 점에서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과로 때문에 자신의 삶을 잃고 있는지 제대로 정보도 모으지 않고 있습니다.
  

▲  일본에서 과로사는 1980년대부터 꾸준히 문제제기되었다. 그럼에도 2015년 일본의 대기업 광고회사 덴츠에서 일하던 다카하시 마쓰리 씨가 과로자살로 유명을 달리했다. 여전히 장시간 노동과 블랙기업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 ANN 방송화면 캡쳐

 
일본의 블랙기업과 과로자살

과로자살은 말 그대로 과로에 따른 자살이라는 뜻입니다. 과로자살은 장시간 노동이나 업무의 양적, 질적인 변화에 따른 정신질환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2018년 자살을 포함해 과로로 인한 정신질환으로 산재 보상을 신청한 건수는 모두 1820건으로, 역사상 가장 많은 숫자였습니다. 이 중 정부가 산재로 인정한 것은 465건이고, 이 중 76건은 노동자의 자살 혹은 자살 시도였습니다. 과로사 피해자들이 주로 40대~50대의 남성 노동자들인 데 비해, 과로자살은 성별에 관계없이 젊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많이 발생합니다. 과로자살이 매년 늘어가는 이유는 노동자를 일회용품 취급하는 '블랙기업'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 만연한 장시간 노동과 일터 괴롭힘을 생각해보면, 465건이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은 아주 명확합니다. 경찰청에서 자살 사건을 수집해 분석한 결과, 2천여 건의 자살은 업무와 관련해서 발생한다고 합니다. 매년 2천여 명의 노동자가 업무와 관련된 이유로 자신의 목숨을 던지고 있는데, 정부는 이 중 100건도 안 되는 사례에 대해서만 보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산재인정을 위해 넘어야 할 난관들

이렇게 많은 사례들이 보고도 제대로 안 되는 이유는 1) 과로사라고 생각하는 경우, 가족을 잃은 누군가가 자료를 모아 산재보상을 신청해야 하고 2) 유가족이 스스로 과로의 증거를 충분히 모았을 때에만 정부로부터 산재 승인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노동자 가족들이 산재 보상 신청을 하지 않으면, 이 사건은 그대로 숨겨지게 됩니다. 그 죽음이 과로에 의해 발생했거나, 다른 업무 관련 문제와 관련이 높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노동자나 유가족이 신청하지 않으면, 정부나 지방 노동 관서에서는 먼저 나서 회사를 조사할 권한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유가족이 최소한 그 죽음이 업무와 관련되었다고 의심을 하고, 이 노동자가 극심한 장시간 노동이나 일터괴롭힘 혹은 다른 어떤 이유 때문에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는 믿을만한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 과로자살로 보고되는 데 필수적이라는 뜻입니다.

많은 고용주들은 직장 내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노동자들에게 연장근무를 강요해서 발생한 손해에 대해 책임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일터 괴롭힘과 관련된 많은 경우에서, 자살의 원인이 업무와 관련돼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유가족들이 중요한 증거를 성공적으로 수집한다 해도, 정부가 그 죽음을 업무와 관련되었다고 승인하고 보상을 제공할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가족들이 그 질병이 과로 때문이라고 생각한 사례는 877건이었지만, 그 중 238건만 업무와 관련이 있다고 승인되었습니다. 수백 명의 노동자, 유가족 들은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남겨졌습니다.

일본의 고용주들은 노동자들에게 장시간 노동을 시키는 것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노동자들은 수백시간에서 심하면 수천 시간에 해당하는 자신의 삶을 일하느라 빼앗기게 됩니다. 이를 멈추기 위해 노동조합과 사회단체들은 노동자들과 가족들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고, 정부나 회사로부터 정당한 보상을 요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현장의 목소리] 무늬만 프리랜서, 방송사의 책임을 묻는다- CJB 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원회 진재연 집행위원장 인터뷰 / 2020.04

무늬만 프리랜서, 방송사의 책임을 묻는다

- CJB 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원회 진재연 집행위원장 인터뷰

 

최민 상임활동가

 

한국 사회는 일하는 사람이 쉽게 억울하고, 억울한자리에 놓이는 곳이다. 2004년부터 청주방송에서 일했던 이재학 PD도 그랬다. 조연출로 입사한 뒤, 청주방송에서 다양한 방송프로그램의 조연출과 연출 업무를 했다. 매년 정규직 PD2배에 이를 정도로 많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왔다. 자유롭게 프로그램만 만든 게 아니다. 지자체 보조금을 따내기 위해 사업 계획서를 쓰고, 공무원들과 협의하여 방송을 제작하고, 프로그램 종료 후 정산하는 등의 대외 업무도 했다. 일상적으로 업무를 보고하고 결재용 서류를 써 냈다. 모두 청주방송 PD로서 한 일이다.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되는데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된다고 했던가. 2018년 문제가 생겼다. 동료 프리랜서, 비정규직 스태프들의 인건비 증액과 인원 보강을 나서서 요구했다. 그러자 갑자기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해고가 아니라 프리랜서 계약종료라고 했다. 억울한 마음에 직장갑질119를 찾았고,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시작했다. 소장을 접수한 지 14개월이 지난 뒤에야 1심 판결이 선고되었는데, 결과는 패소. 재판 과정에서 CJB는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이재학 PD를 위해 나선 증인들을 회유하기도 했다. 결국 고인을 돕기로 했던 증인 한 명이 진술을 번복하기까지 했다. 1심 선고 후, 어머니에게 전화하여 억울하고 억울하다는 말만 하며 울었다고 한다. 판결문을 받자마자 곧바로 항소장을 접수하고, 끝까지 싸워보겠다 다짐했지만, 분노와 억울함이 더 컸다. 결국 202024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게 없다, 억울해 미치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21956개 단체가 모여 ‘CJB 청주방송 이재학 PD 사망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명예회복,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고 이재학 PD 죽음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뿐 아니라, 방송계의 오랜 문제인 무늬만 프리랜서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움직임이다. 얼마 전인 323일 이재학 PD49재가 있었다. 대책위원회 진재연 집행위원장을 만나 대책위의 싸움에 대해 들었다.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를 파헤치고 해결하기 위한 싸움

이재학 PD의 경우, 직장갑질119 등을 통해 법정 투쟁을 함께 하고 있던 사람들도 있었고, 이전에 미디어오늘에 소송 과정이 보도되기도 하는 등 알고 있던 분이라 더 마음이 아팠다. 이재학 PD가 돌아가시기 전에도 방송 산업 내에 무늬만 프리랜서 문제가 너무 심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상황이었다.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일하는 드라마 제작 스태프들의 근로자성이 인정됐다고 하는데도 여전히 방송작가, 독립PD 등은 허울 좋은 프리랜서다. 방송작가나 독립PD들은 개편 때 잘리면 그만이다. 그런 경우 한 건, 한 건 법정에서 노동자성을 다투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재학 PD 사건의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명예회복도 중요한 과제지만, 방송사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목표로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코로나 영향으로 집회 한 번 잡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래도 49재는 같이 해야 하지 않나 해서 청주방송 앞에서 작은 집회로 진행했다. 조계종에서 천도제를 지내주셨는데, 큰 위로가 되었다.“

지난 227일 대책위원회는 회사와 합의를 통해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게 되었다. 그러나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린다는 합의하에 대책위원회와 회사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첫 회의부터 난관이었다. 회사 측에서는 고인이 억울하다고 한 재판 과정에 참여했던 사측 변호사를 진상조사위원으로 추천했다.

회사는 합의서에서 진상조사위 꾸리고 성실하게 임하겠다 약속했다. 합의문에는 객관적인 진상조사를 위해, 진상조사위원을 방송사 내부위원이 아니라 외부위원으로 구성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사측에서는 이재학 PD1심 재판 과정에서 동료들의 증언을 방해하고, 중요한 증거들을 은폐한 혐의가 있는 사측 변호사를 진상조사위원으로 추천했다. 이런 행동은 사실상 진상조사를 방해하는 것이다. 앞에서는 합의서 쓰고, 사과했다고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전혀 협조하지 않고 있다. 지금도 적당한 외부위원을 찾기 힘들다며 위원 구성을 계속 미루고 있다. 회사 내부 사람을 조사위원으로 넣어달라는 논리인데, 그렇게 되면 방송사 직원, 노동자들이 제대로 진술에 참여할 수가 없다. 일단 대책위 추천 진상조사위원들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49재가 끝나고 진상조사위원들이 현장조사를 했다. 1~5층 돌면서 직원들도 만나고 실제 일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는데, 그 자리에 전 보도국장인 고위 인사가 배석했다. 그러니 분위기가 얼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에도 청주방송 모기업인 건설사의 이두영 회장이 직원들 앞에서, 진상조사위원회를 청주방송 음해세력이라고 말하며, 조사에 협조하기 어렵도록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그 뒤로 회사 분위기가 긴장될 수밖에 없다.”

진재연 집행위원장은 청주방송 진상조사위원회는 관례적으로 요구하여 꾸리게 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재학 PD억울함의 실체를 밝혀야 하는 과제가 절실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재학 PD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의 도화선이 된 청주방송 비정규직 처우 문제를 제대로 파헤쳐야 한다. 동료들의 처우 문제를 제기했다가 해고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본인이 당했던 불공정함 뿐 아니라, 청주방송 내 비정규직 처우 문제를 밝히는 게 고인의 명예회복에도 중요하다. 이후, 문제제기 과정에서 폭언과 괴롭힘을 당했고, 소송 과정에서 위증과 은폐 시도가 있었다. 이러면서 믿었던 동료에게 배신당하기도 했다. 결국 이 과정을 거치면서 이재학 PD가 다른 출구가 없다고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회사와 함께 다시 짚어보면서, 회사도 반성하고 밝혀내는 것은 중요한 과제다. 유가족 입장에서도 중요한 문제다. 이재학 PD14년 동안 정규직보다 더 열심히 일했는데, 사측에서는 홈페이지 리뉴얼한다면서 이재학 PD가 연출했던 프로그램 보기도 삭제하고 있다. 유가족에게는 고인의 모든 흔적을 지우고, 명예를 훼손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재판도 이어가고, 진상규명을 제대로 하여, 고인이 어떻게 일했는지 밝히는 것, 그야말로 노동자였다는 걸 밝히는 게 중요하다.”

열악한 노동환경을 정당화하는 한 마디, ‘방송 펑크낼 거야?’

대책위원회에서 만든 카드뉴스 중 똑똑한 사람들이 많이 모인 방송국이 왜 후진적으로 운영되는지 너무나도 안타깝다는 메모가 인상적이었다. 방송국이 유난히 비정규직, 프리랜서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1991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부터, 중소제작사 지원 정책이라는 명목으로, 지상파 프로그램 외주편성 비율을 정해두게 된다. 외주제작사에 방송 기회를 일정 정도 이상 줘서, 외주제작사를 키워서 방송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IMF 이전까지만 해도 외주제작사의 직접고용이 어느 정도 유지되었지만, IMF이후에는 고용자체가 불안정해지면서 비정상적인 고용형태가 복합적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드라마 제작 현장을 예로 들면, 100명 중 5% 정도가 방송사 정규직이다. 나머지 95%의 비정규직도 고용 형태가 매우 다양하다. 프리랜서, 파견, 도급 등등. 아예 무계약 상태로 일하는 노동자도 많다. 구두계약조차 없는 상태로 일한다. 그러다보니 그냥 짤리는일도 여전히 많다.”

이 업계에서는 그래도 방송은 내보내야 하지 않냐.”는 말로 모든 것이 넘어가고 있기도 하다. 방송 나가야 한다는 것이 지상과제다. 그 외의 문제제기를 하기 어렵다. 그러니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후 수십 년간 특례업종으로 밤샘노동을 당연히 해 온 것이다. ‘방송 펑크 낼 거야?’라는 말이면 모든 게 정리돼 왔다. 우리가 관행이라 부르며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방송사 노동자들 사이의 위계나 서열 문제도 심각하다. 꼭 정규직-비정규직뿐 아니라, 직군별로나 고용 형태 별로 서로 이해도 높지 않고 경쟁하는 분위기도 있다. 같은 직군 내에서도 경력에 따라서 임금 차이도 크고 위계도 심하다. 노동자들 사이에 이런 차이를 줄이는 게 중요한데, 그러려면 시스템이 제대로 돼야 한다. 직군별로, 맡은 역할이나 일한 연차 등에 따라 임금이 정해진다든지, 표준적인 계약의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하는데, 방송계는 계속 주먹구구식으로 굴러가고 있다. ‘여기서는 10만원인데, 할래?’ 이런 식으로 계약을 맺는 경우가 아직도 많다.”

방송노동자들을 노동자가 아닌 척하는 방송사, 거기서 비롯된 열악한 노동환경과 장시간노동, 과로사와 안전문제, 저임금과 폭력적인 직장 문화 등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것도 4~5년 정도의 일이다. 진재연 집행위원장은 2016년 이한빛 PD의 죽음 이후, 방송작가유니온,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등이 결성되면서 이제야 얘기가 시작되고 있다고 본다. 방송계에서 프리랜서 방송 노동자들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모으고 조직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가 않다.

예를 들어, 이 투쟁에서도 청주방송 내 비정규직이 모이는 것도 쉽지 않다. 오히려 비정규직이나 프리랜서는 고용 불안이 너무 크니 불안해하고 있다. 회장 말 한마디에 사내 분위기가 얼어붙기도 하고, 대책위에 도움을 주던 분이 힘들다는 연락을 해오기도 했다. 방송계에서 몇 년간 문제제기가 이어지면서, 현장도 변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여전히 현장 노동자 모임하면, 누가 알까봐 걱정하는 수준이다. 사실상 방송 현장이 인맥으로 이어지는 주먹구구식 구조이다보니, 권리를 주장하고 문제제기하는 것이 고용 문제와 직결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방송사 정규직 노동자와의 관계도 쉽지 않다. 제작 현장에서는 정규직 노동자가 회사 관리자 역할을 하고, 업무를 지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 감정이 쌓이기도 하고, 이 사이에서 단결이나 연대로 한 발 나아가는 것도 어렵다. 그런 점에서도 노동자성 인정 문제가 중요하다. 그래야 노동자로 문제제기나, 싸움이나, 연대를 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

 

방송계에 만연한 무늬만 프리랜서

대책위원회는 청주방송뿐 아니라, 방송계 전반의 무늬만 프리랜서문제를 함께 제기하고 있다.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고용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없더라도, 처우 개선이나 조직화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남기고 싶다. 그래서 지상파 4사 앞에서 1인 시위도 진행하고 있다.

수많은 방송사와 제작사 안에 제3, 4의 이재학이 있다. 이재학 PD가 해고되기 전, 동료들의 처우개선 문제제기했던 순간을 떠올려본다. 그런 얘기를 하기까지 얼마나 고민했을지 생각해본다면, 그렇게 용기를 냈던 사람이 결국 비극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게 안타깝다. 장시간 노동하면서 임금도 제대로 못 받고, 부당한 처우에 목소리 한 번 내기 어려운 비정규직,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함께 내는 것이 이재학 PD의 뜻을 잇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책위에서는 무늬만 프리랜서 관련 실태조사도 하고 있고, PD 외에 다양한 방송직군 증언대회도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 상황에서도, 방송계 노동자는 고용 형태에 따라 천차만별의 처지에 놓인다고 한다. 재택근무하면서 안정적인 급여를 받는 정규직도 있지만, 일당 받는 직군들은 방송 하나 취소되면 생계에 직격타를 입는다. 반대로 별다른 예방 조치 없이 수십 명의 스태프가 장시간 촬영을 강행하여 불안감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모든 일하는 사람이 존중받으며,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지금 이재학 PD의 죽음에 대해 청주방송의 책임을 묻는다.

[일터 정신질환 짚어보기] 정신질환과 자살,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 2020.05

정신질환과 자살,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정여진 업무상 정신질환 연구팀

 

1. 들어가며

정신질환과 자살 모두 논란이 많은 영역이다. 현재 정신질환 자체를 부정하는 고전적인 반정신의학적 도전은 잦아들었다고 하더라도 일부 질환에 대해서는 그 타당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정신질환에 대한 공식적으로 내려진 명쾌한 정의는 없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임상가들은, ‘상당기간 지속되는 인지적, 정서적, 지각적(perceptual), 행동적, 기타 심리적인 역기능적 변화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고, 대체로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신체질환보다 정신질환에 대한 논쟁이 더욱 활발하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필자는 정신질환의 특수성, 특히 분류와 진단에 있어서의 특수성을 간략하게 다루고자 한다. 그리고 자살과 정신질환과의 연관성과 그 논란에 대해서도 덧붙이고자 한다.

 

2. 신체 질환과 다른 정신질환 진단의 특징

정신질환의 증상과 징후는 단순히 개인의 생존 기능에만 머무르지 않고, 대인 관계나 직업적 수행을 포함한 사회적 기능의 변화를 통하여 그 실체를 드러낸다는 점을 우선적으로 꼽아볼 수 있다. 그런데 생물학적 현상보다 심리학적 현상, 그보다는 사회적 현상이라는 더 높은 층위에 자리할수록 더 복잡한 기제들의 조합에 노출이 되며, 의도를 갖고 실천하는 인간에 의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개방된 체계에 가까워진다.1) 이러한 이유로 정신질환의 원인부터 증상의 발현까지 여러 층위의 무수한 요인들이 동시에 작용하여, 경우에 따라서는 무엇이 직접적인 원인인지 알기가 대체로 (신체질환보다) 어렵다. 더구나 사회적 규범에 따라 문화적 배경에 따라 이러한 정신과 행동의 변화는 달리 평가될 수도 있다.

다음으로는 정신질환의 개념과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누군가가 정신병적(psychotic)이라면, 현실적으로 정의를 내리기보다 어떤 때정신병적이라고 하는지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2) 현실 검증력이 손상되었다고 판단될 때 어디서부터 현실검증력(reality testing)’이 손상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신체질환 역시 정의와 진단기준을 둘러싼 무수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는 데다, 자료와 근거(유전학, 역학 등의 연구결과)가 축적되면서 정신질환에 대한 임상적 지침 역시 개정과 업데이트가 이루어지고 있다. 관건은 신체질환이건, 정신질환이건 당시의 과학적 근거들에 뒷받침된 최선의 결론이었는지 여부일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진단기준이나 척도상 절단점을 단지 잠재적인 합의로 받아들여야 한다.

끝으로 정신질환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불확실성을 지닌다. 뚜렷한 예측 인자들이 부재하는 데다, 당사자의 성향이나 인지기능, 사회적 자원 등의 상호 작용으로 증상의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고, 증상이 고정적이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더구나 사회적 관계는 의도를 갖고 행동하는 사람들 간에 형성되어 상호작용이 일어나는데, 정신질환의 증상이 여기에 영향을 끼칠 수 있고, 거꾸로 사회적 상호작용이 증상의 발현이나 중증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당연히 진단명은 전문가들끼리도 의견이 엇갈릴 수도 있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진단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진단은 자의적인 딱지 붙이기(labelling)을 지양하고, 치료에 있어 체계적인 도움을 주고, 사회적 지원, 법적 배/보상 등의 사회적 개입의 준거를 마련하여 이를 정당화해주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신질환의 진단 분류는 자연과학적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자연과학적 근거들이 등장한다면 한 질환이 두셋으로 나뉘거나 분류 체계상 거리가 멀어질 수도 가까워질 수도 있음은 물론이고, 사회 환경적 변화로 인해 더이상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되어폐기된 진단도 적어도 일부 생길 수 있다. 덧붙여 병인론적 기제가 밝혀지지 않은 점들이 많아 신체 질환에 비해 월등히 현상학적인 방법을 많이 쓴다는 점도 상기한 불확실성에 더 기여하고 있다. 증상은 각기 특정한 패턴으로 군집하여 나타나므로, 우리는 서로 다른 정신질환을 논할 수는 있다.3)

그렇다면 정신질환은 왜 생기는가? 가장 간단한 대답은 유전과 환경의 상호작용의 결과라는 것이다. 여기서 유전이라는 말은, 가족력이 있다는 뜻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현재까지 적지 않은 유전학적 성과들이 진단분류학에 기여하고 있는데, 흔한 오해와는 달리 유전학이 곧 결정론은 아니다. 반대로 환경의 영향을 강조하는 결정론도 있을 수 있다. 최근 환경적인 영향이 유전자 일부를 활성화하거나 억제한다는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 주목을 받고 있다.4) 사족으로 유전적 영향이 크다고 하여 치료가 불가능하거나 생물학적 치료만 가능하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한편, 환경적 요인에는 초기 생애적 환경(대개 정신치료는 여기에 초점을 둔다)도 있으나, 출생 전 태내 환경, 물리적/화학적, 사회적 환경 등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물론 정신질환이 나타나는 이유는 생물학적 변화로 설명할 수 있는 여지가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증상이 발현되는 것은 물리적, 화학적 뇌손상 때문이기도 하고, 이른바 신경전달물질 간의 불균형과 조절실패에 대해서도 익히 잘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의학적 처치의 표적이 된다. 그러나 과연 이들을 문제의 원인이라고 일컫는 것이 온당한가? 차라리 질환을 구성하는 결과가 아닌가? 조현병, 우울장애, 자폐증, ADHD등 환자들의 뇌발생상의 기능적, 구조적(비특이적) 이상의 근거들 역시 마찬가지이다.5) 환경적 요인들에 대한 개입이 무척 중요할 법한데도, 정신질환에 대한 1차적 예방-질환 발생의 결정 요인에 대한 개입-은 신체질환에 비해서도 거의 논의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정신질환만큼 개인화, 의료화가 문제인 영역이 있는데 바로 자살이다.

 

3. 자살과 정신질환, 그리고 논란

먼저 자살과 정신질환과의 연관성을 부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공의 수련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쓰이는 교과서인 Synopsis Of Psychiatry를 보면, 최대 95%의 자살 성공자들에게 정신질환이 있었으며, 우울증(80%), 조현병(10%), 치매나 섬망(5%), 알코올 의존(25%)이 차지한다고 한다. 정신과 환자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3~12배가량 자살 위험도가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사실에 기반하여 현 산재보상보험법 상 원칙상 자살을 고의적 자해의 일부로 보고, 산재 보상의 대상 범위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되어있으나, 정신적인 이상 상태에서 실행했을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는 예외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란의 여지는 여전히 남는다. 정신질환으로 자살을 고려할 때 대부분은 현실에 대한 왜곡된 인지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왜곡된 인지가 현실검증력의 저하와 동의어인지도 의문이 남는다. 앞서 현실검증력 저하 상태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은 언급하였다. 또한 정신질환의 결과로서의 자살이 틀림없다고 할지라도 그 개인의 동기는 고통으로부터의 탈출, 타인에 대한 복수, 자기 징벌 등 여러 양상을 보일 수 있기에 개인의 의도가 어디까지인지를 고려한다면 더욱 복잡하다.

물론 질병에 의한 결과로 간주하는 것은 장점이 있기는 하다. 남겨진 이들에게 적잖은 위안을 주며, 업무상 자살에 대한 보상을 비교적 쉽게 합의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럼에도 자살의 의료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들은 작지 않다. 어려운 철학적인 논의는 차치하고라도, 지금까지 정신질환의 사회적 관리나 예방에 관한 주류의 행보를 본다면 충분히 우려할만 하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자살의 원인은 운 나쁘게정신질환이 걸린 탓으로 되어, 고위험군 대상으로 한 정신질환에 대한 조기발견과 전문가에 의한 개인 치료가 강조되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자살이 발생한 사회적 경제적 맥락은 삭제되어버리고 만다.

 

4. 맺음말

이상으로 짧게나마 정신의학의 전통적인 견해, 이에 대한 비판, 그리고 필자의 관점에 대해 다루었다. 최근 일과 정신건강에 관한 관심이 커지고 활동가들의 고민도 깊어진 것으로 안다. 전술하였듯이 정신질환과 자살에 관한 논란의 지점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최종적인 목표는 일터의 정신건강 증진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질환과 질병이라고 부르는 결과에 이르기 전에 각종 위험요인들, 특히 환경적 요인을 통제하는 1차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아직도 신체 건강에 대한 사회환경적 요인의 중요성도 인정하지 않는 의사나 기타 전문가들이 대다수인데, 정신적 건강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1) 베르트 다네마르크 외 저. 이기홍 역. 2005. 새로운 사회과학방법론 : 비판적 실재론의 접근. 파주 : 한울아카데미.

2) Fulford, B. 2004. Insight and delusion: from Jaspers to Kraepelin and back again via Austin In X. Amador Ed, Insight and Psychosis, Awareness of illness in Schizophrenia and related disorders 2nd ed, pp. 51-78.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3) Sims, A. . 김용식, 김임렬, & 정성훈 역. 2003. 마음의 증상과 징후(3)서울 : 중앙문화사.

4) 그리고리 L. 프리키온, 애너 이브코비치, 앨버트 S. 융 저. 서정아 역. 2017. 스트레스, 과학으로 풀다 : 더이상 스트레스에 반응하지 않는 방법서울 : 한솔아카데미.

5) Sadock, B., Sadock, V., & Ruiz, P. 2015. Kaplan& Sadock's Synopsis of Psychiatry: Behaviora Sciences/Clinical Psychiatry (11th ed). New York: Wolters Kluwer.

[연구리포트] 노동시간 연구동향 살펴보기 – 건강영향을 중심으로 / 2020.04

노동시간 연구동향 살펴보기 건강영향을 중심으로

 

김형렬 노동시간센터 센터장

 

노동시간센터에서는 노동시간 관련 연구, 정책, 언론 동향에 대해 일터에 싣고자 합니다. 연구 분야는 의학분야와 사회학 분야를 나누어 각 분야별로 3~4개월에 1회씩 노동시간 관련 동향을 다루게 됩니다. 이번 4월호에서는 노동시간과 건강을 주제로 다룬 최근의 의학 분야 연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노동시간과 건강의 문제를 다룬 연구는 장시간 노동이나 교대근무가 건강에 나쁘다는 우리의 직관을 확인하게 하고,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는 근거가 됩니다. 모든 연구가 그렇듯 노동시간 관련 연구에서도 우리의 현실을 왜곡하고 잘못 해석한 연구들이 잘못된 정책에 활용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연구가 실천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연구를 위한 연구에 머무르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됩니다. 노동시간센터에서는 실천연구, 현장연구를 수행하고, 연구결과를 사회화하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연구 동향을 공유하는 것은 연구결과의 사회화를 위한 작업 중 하나입니다.

노동시간과 건강문제를 다룬 연구들은 노동시간의 어떤 요소를 다루느냐, 노동시간과 어떤 건강영향의 문제를 다루느냐, 어느 집단의 문제를 다루느냐, 연구방법이 타당한지,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연구인지 등을 검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노동시간은 주로 노동시간의 길이를 중심으로 장시간 노동을 일정하게 정의하고, 이의 영향을 분석합니다. 그러나 어느 시간에 일하느냐의 문제, 즉 교대제와 야간노동의 영향을 다루는 것도 노동시간 연구에서 중요합니다. 쉽지는 않지만 노동시간의 밀도를 다루는 노동강도의 문제나 직무스트레스와 같은 노동의 질적요소 등도 노동시간을 다룰 때 노동시간의 주요한 요소로 정의하거나 고려하게 됩니다.

노동시간의 건강영향은 그동안 우울증과 같은 정신건강, 뇌심혈관계질환을 중심으로 많이 다뤄졌는데, 최근에는 암발생이나 악화, 유산이나 불임과 같은 생식독성, 간 질환에 대해서도 다뤄지고, 문제음주나 흡연, 약물중독과 같은 건강행태, 결근이나 프리젠티즘과 같은 생산성의 문제를 다루는 연구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산업구조, 기술의 변화를 반영하여 과거 제조업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던 연구들이 최근 들어 서비스, IT, 공공영역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노동시간 연구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단순 설문조사로 현재 노동시간과 건강문제를 질문하는 연구도 있고, 노동시간의 구체적인 요소를 변수로 만들어 연구를 진행하기도 하고, 건강 문제를 증상만 다루기도 하고, 객관적인 질병을 확인하여 노동시간과 관련성을 보기도 합니다. 장기간 관찰하며 건강문제를 다루기도 하고, 면접을 통해 노동시간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 건강에 영향을 주는지 밝히기도 합니다. 더 좋은 자료를 만들어 진행하는 연구가 더 좋은 연구가 되겠지만, 자료 접근이 어려운 경우도 많고, 우리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연구는 연구비를 지급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적거나 감추고 싶은 연구이기도 해서, 좋은 자료를 확보할만한 시간과 돈, 접근의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연구비를 누가 냈고, 연구자가 누구이고, 자료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연구가 진행된 맥락을 잘 살펴봐야 합니다.

노동시간과 건강문제를 다룬 대표적인 학술지는 영국에서 발간하는 직업환경의학(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Medicine), 북유럽직업보건학회에서 발간하는 스칸디나비아 직업환경보건 학술지(Scandinavian Journal of Work, Environment & Health), 일본에서 발간하는 직업보건학술지(Journal of Occupational Health), 그리고 우리나라 직업환경의학회에서 발행하는 대한직업환경의학회지(Annals of Occupatioanl and Environmental Medicine)가 있습니다. 모두 영문으로 작성되어 있고, 유료로 구매해야 하는 경우도 많아 접근성이 떨어집니다. 국내 학술지도 영문으로 작성하고 있어 아쉬움이 많습니다. 필자는 많은 학술지 중에 영국과 북유럽, 한국에서 발간한 학술지를 중심으로 최근 6개월 동안 노동시간을 다룬 연구들을 살펴보았고, 이번 글에서는 5개의 연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출퇴근 시간과 건강관련 행태연구

첫 번째 소개하고자 하는 연구는 영국에서 발간한 직업환경의학 학술지에 실린 출퇴근 시간과 건강관련 행태(Commuting time to work and behaviour-related health: a fixed-effect analysis).” 입니다. 스웨덴에서 진행된 연구로 통근시간이 길어지는 것과 신체활동의 감소, 수면장애, 문제 음주 등이 관련 있다는 연구 결과입니다. 신체활동의 감소는 비만, 심혈관계질환으로 연결될 수 있는 문제여서 최근 장시간노동과 심혈관계질환의 관련성을 설명할 때 자주 활용하는 중간단계의 건강지표입니다.

이 연구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노동시간을 단지 일하는 시간으로 한정하지 않고, 비록 출퇴근 시간만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부분적으로 삶의 영역으로 노동시간의 개념을 넓히고 있다는 점입니다. 출퇴근 시간은 노동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노동시간의 영역으로 정의할 수도 있고, 혹은 노동시간의 영역에 포함하지 않더라도 삶의 영역은 노동시간에 영향을 받는 시간입니다. 또한 거주하는 장소와 직장의 거리는 노동자의 사회경제적 위치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이야기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연구를 한국에 적용해 본다면, 일단 도시, 농촌의 결과가 좀 다를 듯합니다. 워낙 장시간 노동을 하는 우리나라에서 출퇴근 시간의 영향은 미미할 수도 있어 보입니다.

 

장시간 노동과 사고, 자살의 관련성

두 번째 소개할 연구는 북유럽 저널에 실린 한국에서 장시간노동과 사고, 자살의 관련성, Association of long working hours with accidents and suicide mortality in Korea”.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으로 활동하시는 이혜은 선생님이 1저자로 쓰신 논문입니다. 우리나라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통계청 사망자료와 연계해서 분석한 논문으로 노동시간과 사고, 자살에 의한 사망의 관련성을 밝힌 연구입니다. 45~52시간 근무자가 35~44시간 근무자에 비하여 자살 위험이 3.89, 52시간 초과 근무자는 3.74배로 높게 나왔고, 연령, , 소득수준, 교육수준, 직업, 우울증상이 동일하다고 통계적으로 보정한 이후의 결과입니다.

장시간 노동이 우울증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는 비교적 다수 있었지만, 자살과 관련이 높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확인해준 연구는 매우 드물고, 통계청 사망자료와 같이 객관적인 자료를 이용하였고, 단면 연구가 아닌 시간을 두고 관찰한 연구라는 점에서 매우 확정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만큼 장시간 노동을 많이 하는 나라가 드물고, 자살의 발생이 높은 나라에서 진행할 수 있는 연구였습니다. 산재보상에서 근거로 제시되어야 할 논문이지만, 무엇보다 노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의 중요한 근거로 활용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연속 야간근무가 수면에 미치는 영향

세 번째 소개할 연구는 앞서 논문과 같이 북유럽 학술지에 실린 덴마크 연구로, “연속적인 야간근무 횟수가 수면시간과 수면의 질에 미치는 효과(The effects of the number of consecutive night shifts on sleep duration and quality).” 입니다. 경찰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인데, 야간노동을 연속해서 할 때, 어느 정도로 연속해서 근무하면 수면 시간과 수면의 질이 나빠질 수 있는지에 관한 연구였습니다. 야간 노동을 안 할 수 있으면 좋고, 불필요한 야간 노동을 줄이는 노력이 먼저여야 하지만 경찰서, 소방서, 병원 등 공공영역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일부는 불가피하게 야간노동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야간노동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건강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생깁니다.

한노보연에서는 좋은 교대제는 없다라는 책을 발간한 적이 있습니다. 정말 좋은 교대제란 없습니다. 심지어 공공영역에서도 불가피한 야간 노동이라는 말은 너무 쉽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24시간 생산하고 소비하는 사회를 지향하는 자본주의는 24시간 공공서비스의 필요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연속해서 수행하는 야간노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수면시간과 질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좋은 교대제란 없습니다.

 

노동시간과 탈모의 관련성

네 번째로 소개할 연구는 대한직업환경의학회지에 실린 노동시간과 탈모약 복용의 관련성(Relationship between working hours and probability to take alopecia medicine among Korean male workers: a 4-year follow-up study).” 입니다. 우리가 수행하는 건강검진 자료를 이용하여 노동시간과 탈모 간의 시간적 선후 관계를 반영한 연구입니다. 연구 결과, 노동시간이 긴 집단에서 탈모약을 복용하는 경우가 뚜렷이 높았습니다. 탈모가 있는 것과 탈모약을 복용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장시간 노동이 탈모와 관련이 있다고 해석하는 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장시간 노동의 영향이 매우 다양하게 검토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입니다.

 

장시간 노동과 결혼상태 변화의 관련성

마지막으로 소개할 연구는 역시 국내에서 발간한 학술지에 실린 연구입니다. 제목은 장시간노동과 결혼상태 변화의 관련성, The association between long working hours and marital status change: middle-aged and educated Korean in 20142015”. 여성의 노동시간이 60시간 이상이면 40시간 이하인 경우보다 이혼, 별거의 가능성이 4.26배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입니다. 이 연구에서 특징적인 결과는 남성의 노동시간은 결혼상태 변화와 관련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이렇듯 노동시간의 영향은 직접적인 건강영향뿐 아니라 사회적 건강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사회적 건강을 매개로 건강행태, 건강문제에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또한 노동시간의 영향이 젠더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특징도 확인됩니다. 노동시간의 문제는 우리나라 가정에서 고정화되어 있는 성역할, 양육의 책임 등의 문제와 긴밀한 관계를 통해 다양한 형태의 영향을 미칩니다.

 

최근 국내에서 노동시간과 건강영향에 대한 연구들은 국내자료를 이용한 연구가 증가하고 있고, 심혈관계질환이나 우울증을 넘어 탈모, 수면 등 다양한 건강영향이 검토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건강행태, 사회적 건강 등을 연구주제로 삼기도 하고, 노동시간의 길이뿐 아니라 야간노동의 주제도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현실에 반영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입니다.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초장시간 노동이 만연하는 방송 영역, 더욱 심각한 아동-청소년 연기자의 노동 / 2020.02

초장시간 노동이 만연하는 방송 영역, 더욱 심각한 아동-청소년 연기자의 노동

 

성상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활동가, 문화평론가

 

"12시간 일하고 12시간 쉬자!" 독자들에게는 이 말이 무척이나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루 12시간 일하는 것도 엄연히 노동법에 위배되는 상황인데 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일까. 그러나 드라마 촬영을 비롯한 방송 노동에서는 12시간 쉬는 것도 무척이나 감지덕지한 상황이 오랜 시간 이어졌다.

본래 이 구호는 2005년 결성한 전국영화산업노조에서 사용하던 문구였다. 문화예술과 관련된 업계 중에서는 가장 빠르게 노조가 생긴 편이었던 영화 영역은 다른 문화 영역의 노동과 다를 바 없이 매우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여 있었다. 노동인권을 고려하지 않는 무리한 야간 촬영, 장시간 촬영도 척박한 노동조건의 일부였다. 다행히도 영화노동은 10년 이상 지속된 영화산업노조의 투쟁과 활동의 결실로 표준 근로계약서를 정착시키는 것은 물론 열악했던 노동 환경이 차근차근 개선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주52시간 연장 제한 준수를 위한 움직임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영화 노동의 상황이 변화하고 있는 것과 달리 방송 노동은 201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열악한 상황이 주목을 받게 되었다. 오랜 시간관행으로 정착된 '쪽대본 문화'는 방송 촬영에 충분한 여유를 들일 수 없게 만들었고, 2000년 대 이후 방송업계에서 가속화된 프로그램 제작 외주화 는 '방송 산업 전문화'와 '방송 프로그램 다양성 추구'라는 명분과 달리 전형적인 하도급 노동의 체제를 방송업에 그대로 정착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방송국이 충분한 제작비를 지급하지 않은 상황에서 외주 제작사조차도 자기들이 살기에만 바빠 방송 노동의 문제는 등한시했다. 여기에 한국의 경우, 방송을 비롯한 문화예술 영역의 노동이 전반적으로 시장 규모에 비해 제대로 된 노동자 보호 제도가 정착 되지 못한 것은 물론 노동자들의 조직화도 충분치 않다는 제반 조건의 문제까지 존재한다. 

방송국이 자신이 만드는 프로그램에 제대로 된 책임 의식을 지니지 않는 사이 방송국은 방송노동자들을 쉽게 쓰다 버리는 휴지처럼 취급하는 일이 만연했다.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방송노동자들을 노동자로 인식하지 않은 사례는 무척이나 허다했다. 방송 노동에 대한 감수성이 미비한 상황에서 '쪽대본 문화'가 겹친 결과는 초장시간 노동이다.  

20년 1월 14일 화요일 오후 <아동 청소년 대충문화예술인 노동인권 개선 토론회>가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출처: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극히 일부의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방송 프로그램은 방송 예정 시간 하루 전, 심하면 몇 시간 전까지도 촬영이 계속된다. 또한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방송국 사이의 경쟁 속에서 한국 드라마의 평균 방송 시간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길어졌다. 방송 시간은 세계에서 제일 긴데, 준비 하는 시간은 세계에서 제일 짧은 기형적인 환경 에서 여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빡빡한 스케줄 속에서 촬영시간은 하염없이 길어졌다. 시간이 없으면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야간 촬영 장면이 있으면 최대한 밤 시간대를 활용해야 한다는 이유로. 여기에 아무리 노동시간을 길고 길게 만들어도 제동을 걸 존재나 제도도 없었다. 

제대로 된 수면이나 휴식을 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산재 사고는 끊이지 않고 발생했다. 업무 특성상 준비 작업과 철수 작업으로 다른 직군보다 더욱 길게 일하는 세트나 소품, 분장 등의 미술 분야 팀은 출퇴근 과정에서 크고 작은 교통사고를 당하기 일쑤였다. 폭염이나 한파가 찾아와도 노동시간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2018년 SBS에서 방송한 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에 참여한 방송노동자 한 명이 그해 7월, 사상 유래 없던 폭염 속에서도 76시간 촬영을 하다 집에서 잠시 수면을 취하던 중 과로사로 의심되는 돌연사로 세상을 떠난 사건이 대표적이다. 

'하루 12시간 노동'은커녕 주 70시간, 주 80시간 노동이 만연한 상황 속에서 방송노동자 대다 수가 힘겨운 상황에서, 더욱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분야가 있다. 소위 '아역배우'라는 호칭으로 익숙한 아동·청소년 연기자들이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아동과 청소년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 으로 성숙하는 단계에 놓여있기 때문에 세심하게 접근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이 상식은 최소한 방송 노동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방송 노동에 만연한 초장시간 노동환경이 그대로 아동·청소년 연기자들에게도 적용된다. 설사 등장하는 장면이 단 몇 장면에 불과 할지라도, 그 몇 장면을 찍는 시간까지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이 다반사이다. 장시간 촬영, 장시간 대기가 고착화된 상황에서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는 것은 물론 학교에 다니는 아동·청소년 연기자는 학습권을 침해받기까지 한다. 

지난 1월 14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를 비롯해 문화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인권·노동·언론 영역의 단체들이 모여서 결성한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 노동인권 개선을 위한 팝업(Pop-Up)'이 국회 토론회에서 발표한 아동·청소년 연기자 실태조사에 의하면 이 실태는 더욱 명확해진다. 조사에 참여 한 총 103명의 아동·청소년 연기자들 중 1일 최 장 12시간 촬영을 경험한 이들은 63명으로 60%에 육박했다.

심지어 이들 중 3명은 24시간 이상 촬영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대답하여 충격을 주었다. 이러한 초장시간 노동에 아동·청소년 연기자나 보호자의 동의를 받는 경우는 무척이나 드물었다. 단 18명의 응답자만 야간 촬영를 진행할 때마다 제작사가 동의를 구했다고 답변했다. 자연스레 이는 학습권에도 영향을 미쳤다. 단 2명의 아동·청소년 연기자만이 드라마 촬영 기간 중에 결석이나 조퇴를 한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성인들도 제대로 쉬지 않고 일하면 피로를 느끼는 상황에서, 한창 성장기에 놓인 아동·청소년 연기자들에게 초장시간 촬영은 더더욱 큰 피해를 줄 것은 명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아동·청소년 연기자들의 노동환경은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 그대로 놓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엔 방송노동환경이 전반적으로 열악한 것이 그대로 아동·청소년 연기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문제도 크지만, 한국 사회가 아동·청소년 연기자를 바라보는 시선도 함께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어린 나이부터 연기자 활동을 하는 아동·청소년들은 일찌감치 자신의 진로를 방송 영역의 노동으로 정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아직도 방송노동자들을 위한 의무적인 노동 교육도, 강고한 힘을 지닌 방송사나 제작사에 맞서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나 단체 의 힘도 미비하다. 게다가 현장에서는 PD의 힘이 지배적으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자연스레 아동·청소년 연기자 상당수는 연기 활동을 안정적으로 지속하기 위해 아무리 부당한 일을 겪어도 참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9살 때부터 연기 활동을 시작해 어느덧 배우로는 물론 가수로도 이름을 알린 양동근이 2015년이 되어서야 드라마 PD에게 정신적인 폭력을 받은 것을 고백한 것이 대표적이다. 청소년 시기를 지나 성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때부터 심어진 침묵의 기제가 아동·청소년 연기자들에게 강력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이 어렴풋이 드러난 사건이었다. 

여기에 아동·청소년 인권에 대한 인식과 감수성이 낮은 환경이 함께 영향을 미친다. 아동·청소년을 동등한 존재로서 대우하고 존중하기 보다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차별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2020년 현재에도 한국에서는 만연 한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방송 노동의 열악한 현실은 방송 노동 현장의 억압적인 문화와 열악한 인권 감수성이 결합하며 오랜 시간 동안 문제가 있어도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아동·청소년 연기자의 초장시간 노동환경은 연기자가 되기 위한, 또는 방송 환경에서 버티기 위한 당연한 '통과의례'로 여기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 통과의례는 과연 누구를 위한 통과 의례인가. 그저 시청률과 광고료에만 신경 쓸 뿐, 제대로 된 휴식이나 수면은 물론 학습권조차도 보장받지 못하는 무법천지의 방송노동환경은 얼마나 아동·청소년 연기자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가. 방송사나 제작사의 이권만을 신경 쓰는 방송 산업에서 한국의 아동·청소년 연기자는 열악한 방송 환경과 억압적인 방송 문화, 척박한 아동·청소년 인권의 '삼중고'에 오늘도 시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