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013년 노동안전보건 10대 뉴스 / 2014.1

지난 2013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한노보연 송년회에서 ‘2013년 노동안전보건 10대 뉴스’ 앙케이트 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결과를 보면 ‘세계적 기업’에서의 산재 사망 사고와 공공의료에서의 안전보건 뉴스가 눈에 띕니다. 올 한해, 그리고 앞으로는 이와 같은 노동안전보건뉴스를 접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2013년 노동안전보건 10대 뉴스


한노보연 선전위원회

 

1위. 제주의료원 간호사 집단 유산 해결 나서 “임신·출산의 자기결정권 보장하라”

 

‘병원 사업장 여성 노동자 건강권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2013년 4월 29일 서울 대한문 앞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제주의료원 간호사 4명이 아이를 유산하고, 4명은 선천성 심장 질환아를 출산했다"고 밝혔다. 공대위는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의 유산율이 제주 지역의 평균 유산율보다 19%가 높은데 주야 교대제,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 X레이에서 나오는 방사능 물질, 1급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 등 생식독성 물질에 무방비로 노출된 것을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았다. 이와 함께 지자체와 병원이 제주의료원의 적자를 이유로 환자 내원이 힘든 한라산 초입으로 병원을 옮기고 노동자의 임금을 체납하여 간호사 이직률이 30%가 넘어 남아있는 간호사들의 노동 강도가 더욱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한편 근로복지공단은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의 2012년 12월 산재신청 (선천성 심장 질환아를 출산한 간호사 4명)에 대해 재해가 노동자 당사자가 아닌 자녀에 해당하기 때문에 산재가 아니라고 반려했으며, 역학조사 과정에서 아이를 유산한 간호사 4명의 아픔을 들쑤시기도 했다.

 

 

사진출처 : 뉴스제주

 

 

공동 2위. 고 황선웅 기관사 산재 인정

 

생전 정신 질환 판정을 받지 않았더라도, 지하철 기관사가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해 자살했을 경우 산업재해로 인정한다는 근로복지공단의 판정이 나왔다. 지난 2013년 1월 19일 공황장애 등의 증상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황선웅 기관사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이 산업재해를 인정했다. 16년 경력의 서울도시철도공사 소속 고 황선웅 기관사는 2012년 9월 출입문 가방 끼임 사고를 당했다. 이후 황 기관사의 사고 사례는 교육 자료로 작성돼 동료 기관사들에게 반복적으로 전파됐다. 황 기관사는 사고가 난 지 약 4개월 후, 출근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동료들은 황 기관사가 출입문 가방 끼임 사고 후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를 보였다고 증언했다. 특히 황 기관사 사례가 '기관사 잘못'의 대표 사례처럼 반복적으로 교육된 부분이 황 기관사에게 정신적인 불안감을 가중시켰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편 이번 산재 판정과 관련해 노무법인 필의 유상철 노무사는 황 기관사 사례는 사전에 정신 질환 확진을 받지 않았더라도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 지하철 기관사의 근무 환경 및 통제적 조직 문화가 정신적 스트레스 및 자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 가지의 큰 의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진 출처 : 매일노동뉴스

 

공동 2위. 진주의료원 폐업


경상남도가 지난 2013년 2월 26일 진주의료원 폐업 방침을 발표했다. 경상남도는 진주의료원이 매년 40~60억 원의 손실로 인해 300억 원의 부채를 안고 있으며, 이대로 가면 3~5년 안에 파산할 것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달랐다. 2011년 말 진주의료원의 부채비율은 63.9%로 300억 원의 부채는 진주의료원의 자산 규모를 감안하면 과도한 규모가 아니다. 또한 의료수익 대비 인건비 비율이 82.8%로 타 병원 보다 과도하게 높은 것이 경영 악화의 가장 핵심적 원인이라고 주장하지만, 진주의료원 노동조합은 6년째 임금을 동결해 왔고 7개월 동안 임금을 받지 못했다.


 

폐업 방침 발표 후 진주의료원 지키기에 나선 보건의료노조를 비롯해 시민사회단체는 철탑 고공농성과 도의회 점거, 폐업 철회 주민투표 추진 등의 투쟁을 전개했다. 또한 보건복지부 지자체의 일방적인 지방의료원 폐업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한 법안을 발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진주의료원은 지난 5월 29일 폐업했으며 6월 11일 진주의료원 폐업을 위한 경상남도 조례 개정안이 도의회를 통과, 뒤이은 7월 1일 공표 과정에서 홍준표 도지사는 이른 시일 내에 청산절차를 마무리와 진주의료원 건물을 매각 방침을 밝혔다. 그리고 현재 진주의료원 재개원 촉구를 위해 박성용 진주의료원 지부장이 창원 경남도청 앞에서 1월 18일 현재 130일째 도청 정문 앞에 자리를 깔고 노숙농성을 진행하고 있고, 진주의료원 폐업 저지 및 재개원 투쟁을 벌인지 326일째, 조합원들은 지난 14일 도의회 앞에서 진주의료원 재개원 조례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등 완강한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프레시안

 

공동 2위. 삼성 반도체 화성공장 불산 누출 사고


지난 2013년 1월 27일 삼성 반도체 화성공장 11라인 (반도체 칩 생산설비) 중앙화학물질공급장치(CCSS) 배관 교체작업 중 불화수소희석액(불산)을 공급하는 관 아래쪽 밸브가 녹아내리며 약 10리터가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현장에 들어간 협력업체 에스티아이(STI) 서비스 노동자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 삼성은 사고를 감추려고 사건 발생 16시간이 지나도록 경찰과 소방당국에 신고를 지체했다. 사고 이후 한노보연을 비롯한 인권·노동·환경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은 ‘삼성전자 화성공장 불산 누출 사고 은폐 규탄 진상규명 및 대책수립 촉구를 위한 대책위’를 구성했다.


사고 후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 결과 삼성전자 1,934건, 협력업체 70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따라 위반사항 가운데 712건에 대해서는 사업주를 형사입건했으나 검찰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143건에 대해서는 2억 4938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이와 같은 솜방망이 처벌은 결국 지난 5월 2일 또 한 번의 불산 누출 사고로 이어졌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공동 2위. 백혈병 걸린 반도체 노동자, 첫 산재 인정 결정


반도체 공정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노동자에 대해 처음으로 근로복지공단이 산업재해를 인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1973년에 태어난 고 김진기 씨는 1997년 LG반도체 청주사업장에 입사해 클린룸 4·5·6라인에서 임플란트 (이온 주입) 공정 예방정비(PM) 업무를 담당했다. LG반도체는 2001년 현대반도체와 합병해 하이닉스 반도체가 됐고, 2004년 하이닉스의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부가 분리되면서 김 씨의 소속은 다시 매그나칩으로 바뀌었다. 김 씨는 소속이 3차례 바뀌었지만 같은 공장에서 같은 직무를 수행했다. 하루 8~12시간 주·야간 반복 교대근무와 연장·휴일 근무에 시달려오던 김 씨는 2008년 5월 갑상선 기능 저하증 진단을 받았고, 2010년 5월 만성 골수 단핵구성 백혈병에 걸린 것으로 확인됐다. 김 씨는 발병 이듬해 숨졌다.


유족과 반올림은 김씨가 30대에 발병하기 매우 어려운 만성 백혈병에 걸려 사망했고, 담당했던 주치의는 ‘약 15년 동안 X-선과 관련된 업무를 지속해서 수행한 점으로 봤을 때 병과 직업적 노출의 상관성이 높다’는 소견을 밝혔다며 산재를 신청했다. 유족과 반올림이 제출한 김 씨의 최종 의견진술서에 따르면 김 씨가 일했던 임플란트 공정의 이온 주입 장치에는 고압 전류가 흐르기 때문에 X-선(전리방사선)이 발생한다. 또 김 씨와 같은 정비 작업자들이 임플란트 장비 내부에 들어가 일할 때 방사선과 유해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었다. 또 유족과 반올림은 의견서에서 클린룸에서 일하면서 저농도의 벤젠과 포름알데히드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또 업무 중에 방독마스크나 방사선을 막을 수 있는 보호구 등을 착용한 적이 없었다. 김 씨의 동료들도 혈소판 수치가 낮게 나오거나 백혈구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게 나오는 등 건강에 이상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 씨의 근로복지공단 산재 인정 결정은 반도체 공정에 근무하다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로서는 처음이어서 현재까지도 산재 인정 여부를 놓고 싸우고 있는 삼성 반도체 피해 노동자들의 재판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주목된다.

 

 

사진 출처 : 반올림

 

6위. 삼성 백혈병 6년, 삼성-반올림 첫 공식대화 열리나


삼성 백혈병 문제가 공론화된 지 6년 만에, 삼성이 처음으로 공식적인 대화를 제안했다. 삼성전자는 삼성 백혈병 문제가 공론화된 지 6년 만에 처음으로 “백혈병 발병자와 유가족을 직접 만나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는 입장을 전달하며 공식적인 대화를 제안했다. 반올림은 2013년 1월 22일 강남역 삼성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고 황유미의 죽음부터 160여 명의 노동자의 고통에 대한 책임자인 삼성의 대화 제의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여 실무협상단을 구성해 협상에 나선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번 삼성 측의 대화 제의는 삼성 백혈병 최초 제보자인 황상기 씨(고 황유미 부친)와 반올림이 삼성 백혈병 싸움을 진행한 지 6년 만에 이뤄졌다며 “삼성은 유미의 죽음이 개인적인 질병 때문이라고 몰아붙였고, 너무 억울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어 6년간 싸워왔다” “긴 시간 싸움을 진행하며 많은 여론과 국민들이 삼성을 질타해주셨기 때문에 삼성이 드디어 대화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8개월간의 실무협상을 마치고 12월18일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첫 번째 본 교섭이 열렸으나, 교섭을 시작하자마자 삼성전자 측은 ‘반올림’을 교섭 당사자로 인정할 수 없다며 협상을 사실상 파행으로 몰아갔다. 교섭단 구성과 관련해서 사전에 실무협의를 통해 양측이 합의한 사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은 이 모든 과정을 원점으로 돌리는 매우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하루 빨리 삼성은 반도체 노동자들의 직업병 문제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로 본 교섭에 임해야 할 것이다.

 

 

사진 출처 : 참세상

 

7위. 현대·기아차 46년 만에 주간연속2교대제 도입


2013년 현대·기아차 국내 모든 공장이 3월 4일부터 주간연속2교대제를 시행했다. 40년 넘게 밤샘노동과 최장시간 노동이 일상화됐던 국내 자동차공장과 노동자들, 울산·전주·아산·화성 등 주변 지역의 삶·문화 등에 전반적인 변화가 생겼다. 노동시간의 경우 1인당 10시간에서 8시간 30분으로 단축되고, 연간 근로시간 (근무 일수 230일 기준)으로 따지면, 개인당 평균 236시간이 줄었다. 오후 3시 30분 작업을 시작하는 근무조는 이튿날 오전 1시 30분에 잔업까지 끝나, 밤샘노동에서 벗어났다. 자동차업종은 한국의 대표적인 장시간 노동 사업장으로 꼽혀왔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2010년 기준 연평균 2,19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1,749시간보다 무려 444시간이나 많았다.

 

한편 주간연속2교대제로 노동시간이 줄면서 생기는 생산량 감소와 임금 축소는 노사가 한발씩 양보해 기존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기로 했다. 현대차 노조는 울산·아산공장의 시간당 생산속도(UPH)를 30대(402대→432대) 끌어올리는 등 노동 강도를 높이는 데 합의했다. 대신에 회사는 현재 시급제인 생산직 임금을 월급제로 전환해 기존과 같은 임금을 보장하기로 했다. 한편 현대·기아차가 주간연속2교대제 도입을 하면서 이전 근무형태와 같은 생산능력 및 생산량을 유지하기로 합의함으로써 노동강도가 강화되고, 임금 손실 등에 있어 나쁜 선례를 남겼다는 평가가 제기됐다. 생산성 향상을 전제로 한 근로시간 단축과, 이에 따른 임금삭감이 이후 부품사 등의 주간연속2교대 실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주간연속2교대제 시행에 따른 임금문제 등 제반 사항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정규직에 비해, 노동강도 강화에도 직격탄을 맞고 있어 후속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사진 출처 : 미디어 충청

 

8위. 아모텍 노동자 산재인정

 

2013년 3월 핸드폰 부품 회사 아모텍에서 2명이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또한, 지난 1월에도 뇌경색으로 한 명의 노동자가 쓰려졌다. 아모텍은 삼성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칩, 안테나 등을 만드는 1,000명 규모의 중견기업으로 4조 3교대로 24시간 가동되며, 삼성전자 등 원청의 납품 기일을 맞추기 위해 노동자들은 12시간 주야 맞교대로 휴일 없이 일했다. 사망자 중 고 임승현씨는 31살의 나이에 결혼을 앞두고 결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6개월 동안, 단 하루 연차휴가를 사용하고 매일 12시간 30분씩 일했다. 또 다른 망인인 고 권태영씨는 커먼모드필터(CMF 핸드폰 노이즈 방지 장치)의 품질, 불량률 개선, 설비 개선 업무의 총 책임자였다. CMF는 아모텍을 2011년 적자에서 2012년 1,800억 매출, 170억 영업이익으로 돌아서게 한 주역이다. 한편 아모텍은 2013년 영업이익으로 250억 원을 추정했는데, 이는 같은 장비, 같은 인력으로 2년 만에 영업이익이 11배나 증가한 것이다. 고 권태영씨는, 자신의 작은 실수로 회사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큰 업무를 수행한 것이다.


스마트폰 업종은 너무나 빨리 모델이 교체되고, 그때그때 기술개발과 마케팅, 물량생산에 따라 큰 수익 변동이 발생한다. 그래서 새로운 모델 생산이 시작되면 단시간 내에 엄청난 물량을 맞추기 위해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죽을 지경으로 일해야 한다. 사건 이후 인천지역 노동자 권리 찾기 사업단 등 시민단체들의 33일간 투쟁으로 전자산업 하청 노동자들의 현실이 세상에 드러나는 한편, 회사로부터 노동환경조건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사진 출처 : 프레시안

 

9위. 현대제철 당진 공장 아르곤 가스 누출 사고


2013년 5월 10일 오전 2시 25분경, 현대제철 당진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5명이 지름 5m, 높이 8m의 전로 제강공장 내화벽돌 설치 보수공사를 마무리하고 임시발판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바닥으로부터 아르곤 가스에 노출돼 질식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고가 난 보수작업은 평상시 3교대 근무와는 다르게 50명이 2개 조로 나뉘어 2교대로 24시간을 진행하는 죽음의 작업조로 불렸다. 또한, 전로에 아르곤 가스 관을 다시 설치하는 작업은 전로 보수작업이 모두 끝나면 이루어져야 하는데도 배관 하청업체인 ‘신화’는 보수작업이 진행 중인이던 9일에 아르곤 가스 배관을 연결했다. 이는 사실상 원청인 현대제철의 지시 없이 불가능한 작업이다. 한편 당시 작업을 하던 노동자들은 아르곤이란 유독가스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 번도 고지 받은 적이 없었다. 또한 가스감지기나 산소마스크도 전혀 지급받지 못했다. 사고 이후 노동부의 특별 관리감독 결과 현대제철 898건, 협력업체 156건, 건설업체 69건 등 총 1,123건의 산업안전법 위반사항이 적발되었다.

 

 

사진 출처 : 참세상

 

10위. 방글라데시 라나 플라자 붕괴 사고


“숫자만 가지고는 지난달 방글라데시에서 일어난 사건이 안겨준 공포를 설명할 수 없다.”

2013년 4월 24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외곽 사바르에 있는 라나 플라자 빌딩이 무너지면서 수백 명이 죽었고 수천 명이 다쳤다. 희생자 대부분은 이 건물에 입주한 의류공장 노동자들이였다. 사고가 있기 전 건물 벽에 균열이 생겼을 때 입주해 있던 은행이나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 그러나 의류공장 주인들과 건물 주인은 수출 선적 날짜에 맞추기 위해 위험 정도가 과장됐다며 노동자들을 공장에 들여보냈다.


한편 방글라데시 의류제조 · 수출업협회(BGMEA)는 사고 이후 국제노동기구(ILO)와 손잡고 노동자 인권 및 안전 개선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방글라데시에 진출해있는 다국적 의류 기업들은 하청공장의 노동조건을 개선에 함께하겠다는 의미로 협약에 동참했다. 그러나 사고 발생 이후 지금까지도 지난 사태의 교훈을 외면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인상 논의는 여전히 지지부진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공장 건물 전수조사를 약속한 바 있지만, 현재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작업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에 대해 경찰의 무차별 진압으로 맞서고 있다.

 

 

 

사진 출처 : 로이터 통신

 

<일터> 통권120호 / 2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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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13년 노동안전보건 10대 뉴스

지난 2013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한노보연 송년회에서 ‘2013년 노동안전보건 10대 뉴스앙케이드 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결과를 보면 세계적 기업에서의 산재 사망 사고와 공공의료에서의 안전보건 뉴스가 눈에 띕니다. 올 한해, 그리고 앞으로는 이와 같은 노동안전보건뉴스를 접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03

뉴스

사고와 비리로 얼룩진 영광 한빛원전 l 연아

07

지금 지역에서는

우정사업본부 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 즉각 실시

하라!!!

09

사진으로 보는 세상

어떤 신인배우의 수상소감 l 정하나

10

연구소 리포트

우편 노동자의 노동환경과 건강실태 연구 l 재현

18

칼럼

우리가 안녕하기 위하여, 공공성을 지키자 l 최민

20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아는 것이 힘이다?! l 이영일

23

문화읽기

무엇을 선택하는게 옳은가!?

- 영화 프라미스드 랜드(Promised Land)’를 보고 l 최민

35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층층이 쌓인 불안, 어떻게 무너뜨릴까 l 흑무

39

현장의 목소리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해체 시도에 맞선 34일간의 여의도 천막 농성을 마무리하며 l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김윤영

42

유노무사의 상담일기

더불어 여() l 노무법인 필 유상철

44

이러쿵저러쿵

두원정공 프로젝트를 마치며 l 김보성

46

성명

노동운동을 공격하는 박근혜정부는안전한 사회를 말할 자격이 없다. 철도사유화를 막는 투쟁이야말로 '안전한 삶을 위한 싸움이다!

48

후원

12월 후원회비를 납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터> 통권119호 / 2013.12

 

 

 

특집

2    2 0 1 3  현 장 연 구  나 눔 마 당

  -((1)  한 노 보 연  10 년 의  연 구,   성 과 와  과 제

(    (2) 앞 으 로 의  10 현 장 성 과   계 급 성

(    (3) 올 해 의  현 장  연 구

2008, 2009년에 이어 세 번째 개최된 현장연구 나눔마당은 10주년을 맞은 연구소가 그간의 현장연구 역사를 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자세로 현장연구를 계속해나갈지 짚어보는 자리였습니다. 또한, 연구소가 많은 역량을 투여했던 노동시간센터()의 주간연속 2교대제 변화 전후 비교 연구를 비롯하여 2013년 한노보연이 진행했던 연구 사업의 과정 및 결과를 발표하고 그 성과와 의미를 돌아보았습니다.

이번 일터 특집에서는 현장연구 나눔마당 1<한노보연 10년의 연구, 성과와 과제> 발표 및 토론 내용과 2, 3부에서 공유한 다양한 연구 사업 내용을 소개합니다.

03

뉴스

죽음의 공장’, 현대제철 당진공장 l 연아

06

지금 지역에서는

삼성직업병 피해자 6년만의 첫 교섭, 파행으로 끝나

피해자 교섭단 자격시비로 논의는 시작도 못해

08

연구소 리포트

버스노동자에게 빵과 장미를 l 청이

14

칼럼

집배원노동자의 중대재해, 반복되는 비극을 막아야 한다 l 김동근

17

사진으로 보는 세상

연대의 바늘 <강정의 코> l 최민

18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폐암에 걸린 선원의 억울한 이야기 l Dr.아이유

32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영업과 실적의 현장에서 사람을 외치다! l 정하나

36

문화읽기

죽지 않고 산다”, 살기 위해 산다

- KT 노동자들의 이야기, 다큐 <산다>를 보고 l 정하나

38

현장의 목소리

저희는 부당해고에 맞서 1년째 투쟁하고 있는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콜센터 상담원 노동자들입니다 l 민주노총 서울본부 서울일반노조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분회 조합원 유은영

42

유노무사의 상담일기

더불어 여() l 노무법인 필 유상철

44

이러쿵저러쿵

안녕하세요, 한노보연 신입회원 이태진입니다 l 이태진

46

일터 다시보기

“2012년 노동안전보건 10대뉴스를 돌아보며 l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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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긴급논평

[기자회견문]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하여 공개사과, 정당한 보상, 노동자 건강권 실현대책을 힘모아 쟁취합시다

[긴급논평] 현대제철 당진공장 또다시 사망사고 발생!! 비통한 심정으로 현대제철을 규탄한다!!

48

후원

11월 후원회비를 납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 이야기] 폐암에 걸린 선원의 억울한 이야기 / 2013.12

폐암에 걸린 선원의 억울한 이야기 

Dr. 아이유

A씨는 과거 40년 전부터 20년 이상 외국선박에서 선원으로 근무하고 폐암을 진단받은 후 산재요양 신청을 하였다. 다행히도 A씨는 폐암을 진단받고 수술을 한 뒤 재발이 없어 건강하게 지내고 있었다.

A씨는 20년 이상 기관사로 근무하며 선박 내 기관실에서 매일 생활하였는데 이틀에 한 번 꼴로 기관실에 있는 각종 설비를 유지·보수하는 일을 하였다. 그 과정에서 폐쇄된 기관실에 있는 각종 배관의 보온재를 뜯고 다시 감는 일을 반복하면서 보온재에 함유된 석면에 계속 노출되었다. 기관사 일을 그만둔 후 폐암이 진단될 때까지는 병원에서 사용하는 가스를 공급하는 장치를 만들고 설치하는 작업을 하였는데 이때에는 폐암 유발물질에 노출된 적은 없었다.

A씨도 자신의 폐암이 선박 기관사로 근무하면서 석면에 노출되어 발생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선원법에 따라 해양항만청에 산재 신청을 하였다. 그러나 해양항만청은 폐암이 발생한 지 3년 뒤에 신청하였다는 이유로 산재 신청조차도 받아주지 않았다. 나는 A씨에게 과거 수행하였던 일(기관사)로 인해 발생한 폐암이기 때문에 업무상 질병은 맞으나, 선원으로 근무하였기 때문에 선원법이 적용되어야 하고, 해당 선박은 산재보험 적용사업장이 아니므로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하는 산재 보상은 인정 못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하였다.

 “해양항만청에서도 인정을 못 해주겠다 하고, 근로복지공단에서도 산재가 안 된다고 하면 나는 억울해서 어떻게 합니까?”

나는 석면피해구제법에 대해 설명해 드리고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통지서를 가지고 한국환경공단에 신청하면 석면 피해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으나, 보상 금액은 산재보상에 비해 적다”고 이야기하였다. A씨는 매우 실망한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근로자가 산재를 당했을 때 주장할 수 있는 권리로는 민법의 손해배상청구권과 근로기준법의 재해보상청구권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방법은 시간과 돈과 노력이 매우 많이 들기 때문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법)을 비롯하여 공무원연금법, 군인연금법, 선원법, 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 주택법, 문화재보호법 등에 따른 산재보상을 신청할 수가 있다. 

A씨의 폐암은 선박 기관사로 근무하면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산재법으로 보상받기는 어려웠고 선원법의 적용을 받아야 하는데, 해양항만청에서는 폐암을 진단받은 지 3년이 넘었기 때문에 산재신청 자체가 안 된다고 하였다. 산재법에서는 재해 사실을 인지한 날로부터 3년 이후에 소멸하기 때문에 암을 진단받은 지 3년이 지났다 하더라도 재해 사실을 인지한 것은 산재신청 바로 전이기 때문에 산재 신청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선원법의 적용은 그렇지 않았다. A씨에게는 우선 석면피해구제법으로 조금이나마 피해보상을 받으시고 선원법으로 보상받으시려면 직업성 암이라는 의학적 소견을 낼 수 있는 대학병원의 교수를 소개해 드릴테니 나머지 과정은 노무사나 변호사를 찾아가셔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A씨는 폐암 환자다. 폐암을 진단받을 당시 수술이 가능한 상태였고 항암치료까지 받으면서 현재까지는 별 일 없을지 모르나, 언제든지 재발할 수도 있고 또 갑자기 전이가 빠르게 진행하면서 폐암이 악화하여 사망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A씨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해양항만청을 상대로 선원법에 따른 산재 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을 하거나, 선박회사를 상대로 근로기준법에 따른 재해보상청구권을 제기하는 것이다. 만약 승소한다 해도 이 분이 그때까지 살아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다.

A씨의 폐암은 명백한 업무상 질병이다. 그러나 산재법에 따른 보상도, 선원법에 따른 보상도 되지 않았다. 이를 어쩌란 말인가? 석면피해구제법에 따른 피해보상을 신청하여도 환경적 석면피해가 아니라 선원으로 근무하면서 발생한 폐암이라는 이유로 석면 피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A씨는 절망에 빠질 수도 있다.

나는 A씨가 해양항만청을 상대로 소송하길 바란다. 앞으로도 폐암과 악성중피종이 발생한 많은 선원이 선원법에 따른 산재보상을 계속 신청할 것이기 때문이다. 직업성 암임에도 불구하고 진단받은 지 3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산재신청을 받지 않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은 없애야 하지 않을까? A씨와 같은 노동자가 여기저기 산재보상을 받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그런 일도 없애야 할 것이다. 


[만평] 집배원 노동자가 아픕니다 / 2013.12



[연구소 리포트] 버스노동자에게 빵과 장미를

버스노동자에게 빵과 장미를

- 전북 버스운전노동자 노동조건 실태조사 보고


한노보연 청이

들어가며

오랜 기간 한국노총 사업장이었던 전북 버스업계에서 2010년부터 민주노총으로의 조직전환이 이루어지고, 이후 4년째 버스노동자들이 노조인정, 처우개선 등을 요구하며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4년째 이어지는 버스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 부분적으로 노동조건이 개선된 면도 있지만, 격일근무라는 교대근무 자체에서 비롯되는 장시간 노동, 휴식시간 부족은 여전히 버스노동자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고 있다. 임금 또한 여전히 월 170~180만 원에 불과해 생활임금에 못 미치고 있다. 이런 열악한 현실에 대한 토로는 많았지만, 지금까지 회사와 행정당국은 버스노동자들의 불만에 귀 기울이지 않아 왔고, 구체적 실태를 조사하거나 체계적으로 정리된 바도 없었다. 이번 연구는 버스노동자들의 호소가 집단적 경험임을 확인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구체적인 실태를 파악하는 기초 조사로서 시행되었다.

조사 결과

조사는 설문 ․ 심층면접 ․ 현장조사로 진행되었다. 설문에는 총 101명의 버스노동자가 참여했고 전원 남성이었다. 평균 나이는 49세로 50대 이상이 51.0%로 과반을 차지했고, 40대가 41.7%였다. 운전 경력은 평균 13년 7개월이었으며 현재 근무하고 있는 회사에서 경력은 평균 10년 7개월인 것으로 나타났다.

장시간 노동

이번 연구에서 가장 주목된 결과는 노동시간이었다. 설문 참여자들에게 ‘어제 근무한 시간표’를 작성하여 회사에 도착한 시간과 회사를 떠난 시간을 표시하게 하고, 이에 기초하여 회사에 있는 시간을 계산했다. 그 결과 버스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17시간 48분을 회사에 머물고 있었다. 18~19시간 근무하는 경우가 46.3%, 17~18시간 근무하는 경우는 34.7%였다. 이 중 ‘순수 운전시간’은 평균 15시간 28분가량인 것으로 나타났다. 15~17시간 운전하는 경우가 34.1%로 가장 많았고, 17시간 초과하여 운전하는 경우도 26.1%에 달했다.
2012년 10월 23일~30일, 8일간의 운행 일지 및 시간표 210건을 얻어 설문 조사 결과와 비교해봤다. 운행 일지 분석에 따른 총 근무 시간은 16시간 50분이었으며, 총 운전시간은 11시간 26분이었다. 총 운전시간에서 설문과 차이가 발생했는데, 이는 차고지에서 종점으로 이동하는 시간, 가스 충전 시간 등이 대기 및 휴식시간으로 계산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운행 회차

1

2

3

4

5

6

7

8

9

10

운행 버스 대수

191

191

191

191

191

191

189

138

129

109

휴식 및 대기 시간()

37

32

34

32

29

26

32

23

24

32

< 2012. 10. 23~10. 30 운행일지 분석-회차별 대기 시간 >

위 표는 회차별 대기 시간을 나누어 평균을 구한 것이다. 첫 번째 운행에서는 대기시간이 비교적 길지만 퇴근 시간과 맞물리는 회차에는 대기시간이 확연히 줄어듦을 확인할 수 있다. 대기 시간이 불안정하여서 버스노동자들은 충분한 휴식을 취하거나 식사를 마음 편하게 해결할 수 없다. 또한. 버스노동자들의 표현을 빌리면, 담배 한 대 태우고 화장실 다녀오고 버스 한번 청소하고 나면 30분이 지나간다. 운행 중간에 남는 대기시간이 절대 길지 않으며 이를 휴식시간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자투리 대기시간을 휴식시간이 아닌 노동시간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다.

임금

설문 참여 버스 노동자들의 지난해 총 급여액은 평균 2082만 원이었고, 본인 수입을 포함한 가구 월 소득은 평균 222만 원으로 도시 근로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 450여만 원의 절반 수준이었다.
노동조합을 통해 확보한 43여 건의 2013년 7월 임금명세서 중 24~26일 근무한 (실제 운전일수로는 12~13일) 18건을 분석해보면, 기본급은 평균 1,158,000원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여기에 연장 수당 362,000원, 야간 수당 144,000원, 주휴수당 198,000원 등을 합친 급여 총액의 평균이 2,070,000원으로 간신히 2백만 원을 넘겼으며, 여기서 다시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 공제액을 제외하고 실제 노동자가 받은 월 급여는 평균 1,713,000원에 불과했다. 평균 급여도 적을뿐더러 급여 총액 중 기본급이 차지하는 비중이 55.9%에 불과하여 수당 비중이 턱없이 높았다.

격일 근무에 따른 일과

비번 조일 때 하는 일을 물었을 때(복수 응답 가능) 응답자의 41.3%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에는 지난 한 달간 평균 5.4일 아르바이트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40~50%의 노동자가 버스 운전자로 12~13일간 공식적으로 일하는 외에도 추가로 5일 이상의 근무를 하는 셈이다. 아르바이트하는 응답자의 경우 하루 평균 89,700원의 임금을 받고, 평균 8.5시간 근무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렇게 해서 아르바이트를 통해 추가로 얻게 되는 임금은 평균 517,000원이었다. 가구 월 소득 평균이 222만 원이었으므로 아르바이트를 통해 얻는 수입은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며, 나아가 현재 전북 버스노동자들의 임금은 절반가량의 노동자들에게 아르바이트하지 않으면 사실상 생활이 어려운 정도의 저임금이라 할 수 있다. 저임금은 격일근무제도 아래에서 버스노동자들이 비번 조일 때 아르바이트를 나가게 하는 일차적인 원인이다.

운행 환경

하루를 기준으로 했을 때, 49.4% 운전자가 교통 신호를 10회 이상 위반하고 있으며 규정 속도를 위반하는 경우가 10회 이상이라고 응답한 경우도 46%였다. 이렇게 신호 및 규정 속도를 위반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이유에 대해 응답자의 절반이 각각 짧은 배차 간격(46.5%)과 휴식시간 부족(44.7%)을 꼽았다. 

“빨리 출발해서 빨리 가야 밥을 더 먹을 수 있어. 5분이라도. 그러니까 신호위반 하고 출발하고. 사람들, 손님들 타면 딱 봐갖고 없으면 막 가는 거예요.”

또한, 기종점에 휴식 공간, 화장실이 갖추어지지 않은 곳이 다수이고 조합원들은 이에 따른 불편을 많이 호소했다. 마땅한 휴식 공간이 없어서 차 안에서 쉬어야 하고, 식당이 없는 곳으로 운행할 때는 도시락을 싸서 다니며 식사를 한다. 특히 화장실이 갖춰지지 않은 종점이 많아 대다수 노동자는 노상방뇨로 생리현상을 해결해야 했다. 화장실이 있다 해도 수년째 청소가 이루어지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다. 화장실에 가면 똥파리가 인사한다는 버스노동자의 자조처럼, 많은 노동자는 기본적인 생리현상을 해결하지 못하는 처지에서 인간적 모욕을 심하게 느꼈다. 급한 볼일을 해결하려고 버스를 세운 채 화장실을 찾아다니다 울었다는 버스노동자의 이야기에 가슴이 멨다.

전주 회룡 종점에 시골길 한편 덩그러니 놓여있는 간이화장실. 관리 및 청소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노동 강도

< 주관적 노동강도 (보그점수) >

주관적인 노동강도를 6점(아주 편함)~20점(최대로 힘듦) 사이의 점수로 묻는 항목(평소 귀하의 업무가 얼마나 힘든지 다음 중 가장 가까운 숫자에 표시하십시오)에서 평균 점수가 15.2로 운전자들이 평소 업무를 매우 힘들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주관적 노동강도 (보그점수) >

노동 강도를 알아볼 수 있는 다른 지표로 업무 후 육체적/정신적으로 지치는 경우가 얼마나 자주 있느냐는 질문에서도 응답자의 54.9%가 업무 후 항상 육체적으로 지친다고 응답하였으며, 종종 육체적으로 지친다는 응답도 23.5%에 달하였다. 응답자의 59.6%가 업무 후 항상 정신적으로 지친다고 응답했고, 업무 후 종종 정신적으로 지치는 경우도 28.1%였다.

변수

구분

빈도()

백분율(%)

무응답

업무 후 육체적으로

지치는 경우

전혀 없다

1

1.0

2

간혹 있다

21

20.6

 

종종 있다

24

23.5

 

항상 있다

56

54.9

 

업무 후 정신적으로

지치는 경우

전혀 없다

1

1.1

15

간혹 있다

10

11.2

 

종종 있다

25

28.1

 

항상 있다

53

59.6

 

< 업무 후 육체적/정신적으로 지치는 경우 >

피로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 시행한 9개의 문항으로 이루어진 7점 척도 설문조사(Fatigue Severity scale)를 하였다. 응답자의 평균이 4.51로 고도의 피로군에 속하였다. 외국 문헌에 따르면 건강한 성인의 피로도는 2.3±0.7이며, 국내에서 건강한 중년 남성 생산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평균 피로도는 3.42점이었다. 
근골격계 질문에서는 허리 증상 호소자가 가장 많아 72.1%, 질환 의심자도 18.3%에 달하였다. 버스 운전은 앉아 있는 시간이 많고, 전신 진동에 노출되어 여러 근골격계 중 특히 허리에 부담이 많이 가는 직종이다. 설문 결과가 이를 잘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피로도 분포 >

수면 평가

근무일 평균 수면 시간은 5시간 44분, 비번인 날 평균 수면 시간은 6시간 36분이었다. 비번인 날 평균 50분 정도 수면을 더 취해 근무일의 피로를 해결하는 수면 양상을 보였다. 
주간 졸림증을 평가하기 위해 Epworth sleepiness scale(ESS)를 사용하였다. 응답자의 39.4%가 중등도 주간 졸림증, 23.2%가 심한 주간 졸림증을 나타냈다. 불면증을 평가하기 위해 불면증 지수(Insomnia Severity Index, ISI)를 사용하였는데 심한 불면증이 의심되는 응답자도 7.8%였으며, 중등도 불면증을 보인 경우도 30.4%에 달했다.
아르바이트하는 경우 주간 졸림증 정도는 확실히 심해졌다. 아르바이트하지 않는 경우 정상이 48%이고 심한 주간 졸림증 증상자는 13%였던 것과 달리, 아르바이트하는 경우에는 정상이 27%에 불과하고 심한 주간 졸림증 증상자가 33%나 되었다. 아르바이트 여부에 따른 이런 차이는 불면증에서도 나타났는데, 아르바이트하는 경우 불면증 평균 점수가 14.0점, 아르바이트하지 않는 경우 10.5점으로 나타나 아르바이트하는 경우 불면증 점수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종합하면, 버스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저임금으로 인해 비번 조일 때 아르바이트를 나가 피로도가 높아지고, 따라서 조금이라도 더 휴식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과속 신호위반을 하며, 여기에 피로가 덜 풀려 졸린 상태에서 운행하는 것이 겹쳐 안전을 위협받는 악순환을 경험하고 있었다.

버스노동자에게 빵과 장미를

높은 피로도, 낮은 수면의 질 등 버스노동자 건강문제의 핵심 고리는 바로 ‘장시간 노동’에 있다. 특히 운수노동의 특성상 수면 문제는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운수노동에서 장시간 노동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격일근무라는 근무제도 자체를 변경하는 것밖에는 대안이 없다. 가장 유력한 방안은 대도시에서는 이미 80%이상 시행되고 있는 1일 2교대제로의 변경이다.

교대근무 형태를 전환하기 위한 선결 조건은 임금 현실화다. 현재 다수의 버스노동자들이 생활임금 벌충을 위해 비공식노동(아르바이트)에 나서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볼 때, 임금 현실화가 수반되지 않은 근무형태 개선은 또 다른 임금 벌충의 현장으로 그들을 내몰게 될 것이고, 결국 그들의 건강과 안전이 위협받는 현실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전주 버스운송사업자들이 격일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버스 회사 5개 모두 수년째 자본잠식 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등 운송사업의 경영난 심화와 일정 정도 관련이 있다. 이러한 열악한 경영 상태는 근무제도 변경과 임금 현실화에 드는 재정을 버스회사 자체에서 해결하지 못할 것으로 보이며, 결국은 노사 간 협상에만 맡겨놓아서는 실질적인 개선이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또한, 버스운송의 공공재적 성격을 고려할 때 행정당국이 공영제 도입과 함께 노동조건 개선에 직접 개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종점지의 식당, 화장실, 휴식시설 문제 개선도 매우 시급하다. 식사와 대․소변은 인간이 생존을 위해 해결해야 하는 1차적인 생리적 욕구다. 버스노동자 노동환경에서 이 부분은 아예 고려조차 되지 않는 현실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심층면접 및 현장조사 중 조합원들이 가장 많이 꺼낸 이야기가 ‘버스노동자를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식당·화장실 문제와 봉건적인 노사관계, 버스노동자에 대한 고려가 없는 버스행정 등은 모두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것들이다. 

장시간 노동․저임금 또한 버스노동자를 노예 다루듯 대하는 회사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회사와 행정당국은 ‘비용의 논리’를 얘기하지만, 버스노동자들을 동등한 인간으로, 공동체의 일원으로 대했다면 이런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을 그대로 둘 수 있었을까? 버스노동자들이 처한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의 개선은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회사·시민·행정당국 모두 인간이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해 자각해야 할 것이며, 특히 전주시내버스 공동 관리위원회와 전주시는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즉각 문제 시정에 나서야할 것이다. 


[특집] 2013 현장연구 나눔마당 / 2013.12

2008, 2009년에 이어 세 번째 개최된 현장연구 나눔마당은 10주년을 맞은 연구소가 그간의 현장연구 역사를 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자세로 현장연구를 계속해나갈지 짚어보는 자리였습니다. 또한, 연구소가 많은 역량을 투여했던 노동시간센터(준)의 주간연속 2교대제 변화 전후 비교 연구를 비롯하여 2013년 한노보연이 진행했던 연구 사업의 과정 및 결과를 발표하고 그 성과와 의미를 돌아보았습니다. 이번 일터 특집에서는 현장연구 나눔마당 1부 <한노보연 10년의 연구, 성과와 과제> 발표 및 토론 내용과 2, 3부에서 공유한 다양한 연구 사업 내용을 소개합니다.

 

 

[특집1]
한노보연 10년의 연구, 성과와 과제


한노보연 공유정옥

1. 2003년부터 2013년까지의 연구개요

 

연구 주제

건수

근골

30

스트레스, 정신건강

10

노동조건과 건강실태 일반

9

교대제, 노동시간

6

노동강도

4

기타

3

 

기타; 지역실태, 1인승무대안, 산재요양복귀실태

 

업종

건수

설명

금속

35

자동차 및 부품, 조선, 철강, 화학소재

궤도

7

철도, 지하철(도철, 부산)

공공운수

6

공공전반,발전,우편,학교급식,버스

사무서비스

5

오픈에스이,사회보험,증권,농협,손해보험

병원

3

강원대, 고려대

기타

3

비정규실태,요양실태,경기중부지역

제약

1

 

특고

1

학습지

화섬

1

풀무원

 

○ 주제별로는 근골격계 질환이 압도적
○ 다양한 업종의 직무 스트레스 조사
○ 교대제와 노동시간 연구
○ 노동조건과 건강실태 일반에 대한 조사

 

2. 평가의 틀

1) 연구의 목표
10년을 관통하는 우리의 연구 목표는 무엇이었는가. 우리의 연구는 노동자의 건강을 향상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건강권을 매개로 한 노동자 운동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어떤 배경에서 시작한 사업이건 이를 통해 현장과 연구소 양쪽 주체의 운동적 성장을 목표로 했으며, 현장 노동자들을 조사와 연구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연구 과정과 결과에 참여하는 주체로 자리매김하고자 했다.

 

2) 연구의 기풍
이런 목표 설정을 통해 연구소는 독특한 기풍을 만들어왔다.
○ 주체의 중요성 ; 연구 사업을 매개로 만나는 현장과 연구소의 담당자들은 실무를 처리하는 수준을 넘어 운동적인 동반관계를 형성하고 각자의 운동적 역량을 강화하고자 했다.
○ 내용과 표현 ; 연구의 내용과 보고서, 선전물 등에는 각 연구의 소재나 주제에 국한하지 않고 노동자의 삶과 자본의 관계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를 담아내려 했다.
○ 지속성과 일상성 ; 일회성 조사연구가 아니라 연구를 매개로 한 지속적이고 일상적인 현장 활동을 만드는 데 비중을 두었다.

 

3. 평가

1) 한노보연의 연구는 운동에 어떤 이바지를 했는가
부족하나 진행 중이다. 혹은 진행 중이나 여전히 부족하다. 특히 최근 들어 연구의 배경과 취지, 그리고 이후 성과와 과제에 대한 공유가 연구소 안팎으로 점차 얇아질 뿐 아니라 그 고민 자체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 연구소의 운동적 전문성은 충분한가
연구소 초기에는 근골격계 투쟁에서의 경험을 통해 전문성과 전문주의의 경계를 긋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이 자동으로 전문주의의 실천적 극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전문주의를 지양한다는 선언은 이미 그 자체로 우리 자신이 전문주의 위험을 감지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며, 결코 지양 자체가 완결성을 가질 수는 없다.
한편 연구소가 목표로 한 ‘전문성’은 과연 충분했는가. 연구를 통한 운동을 펼치는데 크게 불편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으나 정세에 대한 진단이나 현장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전문성, 혹은 그런 진단과 판단에 대한 조직적 공유 수준은 아직 충분치 않다.

 

3) 일상성과 연속성은 얼마나 견지했는가
연구소가 일상적 현장 투쟁과 조직화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인식을 넘어, 구체적으로 무엇을 실현했느냐는 문제다. 근골격계 투쟁의 경우 유해요인조사 및 근골투쟁과 현장 개선의 로드맵을 마련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현장을 개선한 사업장들은 제법 많았다. 그러나 연구소의 로드맵에 핵심으로 담긴 내용(구조조정에 맞선 노동강도저하투쟁; 1% 실천단 조직, 현장의 요구 조직, 투쟁을 통한 개선, 이 과정을 통한 일상 현장활동의 재강화와 조직화)은 상당히 이상적인 것이며 지속해서 실행에 옮기기 쉽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또한, 현장 일상활동의 강화가 저절로 작업장에서의 통제권에 대한 지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현장활동과 노동운동 주체를 전체적으로 진단하면서 계속 새로운 일상 활동의 시도를 의식적으로 펼치고 태세를 갖추지 않는다면 일상성에 대한 강조는 빈말에 불과하다.

 

4) 사업 주체에 따른 차이는 무엇이 문제인가
연구 사업을 주로 담당하는 현장 주체가 개인이냐 조직이냐, 조합 내에서 결정단위냐 실무단위냐, 지역이나 조직적으로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느냐에 따라 연구 사업의 목표 수립과 달성에 차이가 크다. 연구소 내부 주체의 역할과 위상에 따라서도 차이가 크다. 하지만 개인의 실력과 조건에 의존하지 않고 조직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5) 운동적 목표에 문제는 없는가
연구 내용과 결과를 현장 안에서 일상 활동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지나치게 국한되어 중요한 메시지를 사회적으로 소통하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았는가? 연구소는 어떤 제도가 필요하다는 ‘깃발’을 만드는 것보다 그 깃발을 쥐고 흔들 ‘손’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더 주목했다. 그래서 연구소는 연구 내용을 사업장을 넘어 사회적 정책 제도 개선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활동에 집중하지 못 했다. 앞으로 우리가 연구를 통해 함께 만드는 이데올로기를 대중화하는데 힘을 좀 더 쏟아야 한다.
현장 운동이 가능한 주체들을 만나느라 주로 조직 노동자들을 만나온 것은 아닐까? 조직 노동자들이 아니라면 이런 현장 연구는 불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막연한 방향으로서가 아니라 과연 연구소가 미조직 영세사업장 노동자들과 더불어 할 수 있는 사업은 무엇이며 어떻게 가능한지 꼼꼼히 따져보고 꾸준히 시도해 보아야 한다.

 

6) 지금까지의 목표 설정은 이후 10년을 내다볼 때도 여전히 유효한가
이에 답하기 위한 정세 토론이 부족하다. 기성 활동가들의 경우 그런 고민과 토론이 어느 정도 연속됐지만, 신규 활동가들의 경우 그보다 긴장이 적은 상황에서 활동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을 내다볼 때,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이냐 만큼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조직적인 토론과 시행착오의 공동 경험을 얼마나 견지하느냐가 아닐까 한다.
이런 토론 속에, 1년 뒤의 현장성과 10년 뒤의 현장성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내다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지향을 달성할 수 있는 구체적인 연구의 내용, 방식, 주체에 대한 토론이 필요하다. 그 토론을 안에서만 나누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내어놓고 평가받기 위해 글쓰기와 모여서 떠들기에 한층 힘을 쏟아야 한다.

 

4. 제언

1) 전망을 세우는 주제
10년 뒤를 의식적으로 내다보면서 문제 인식을 가다듬어야 한다. 10년 전의 현장성이 지금의 현장성과 다르듯이, 10년 뒤의 현장성도 지금과 매우 달라질 것이다. 제조업 공동화, 고령화 사회와 같은 말들은 이미 현실에 바짝 다가와 있다. 지금 이기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질문하는 것만큼이나, 나중에 이기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우리 운동에 필요한 연구는 과연 무엇인지, 세상과 운동이 요구하는 연구 과제는 무엇인지 찾는 데 힘을 쏟자.

 

2) 사회화를 넘어선 사회화
연구소는 현장 연구의 결과를 해당 현장에 알리는 일에 상당히 공을 들여왔지만, 사업장 경계 바깥으로의 사회화는 상당히 빈약했다. 노동의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알리는 연구 활동은 사회화 기획을 포함해야만 의미가 있다.
우리가 해 온 사회화란 주로 현장투쟁 조직을 통한 사회화였다. 앞으로는 노동의 이데올로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무슨 연구를 해야 이놈의 자본주의를 이겨 먹을 수 있는지”를 찾는 것.

 

3) 새로운 운동주체 재생산
새로운 연구 주체와 그들의 관심사에 대한 의식적인 기획을 통해 새로운 운동주체들을 찾고 조직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현장 연구의 역동성은 어느 시대, 어느 업종, 어느 환경이건, 그 속에서 운동하는 주체들에 의해 구현되므로.

 

[특집2]
앞으로의 10년, 현장성과 계급성


정리 : 한노보연 선전위원회

 

김인아 (한노보연 회원, 연세대 보건대학원) : 연구소의 십 년 활동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근골투쟁이다. 처음으로 노동보건 문제를 운동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한 게 우리다. 둘째는 교대제와 노동시간 문제 제기다. 자본이 어떻게 가치를 만드느냐, 노동이 어떻게 구성되느냐를 노동자의 몸과 건강을 기반으로 문제 제기했다. 셋째로 2007년 이후 직업성 암 투쟁이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건 현장의 동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의 현장, 운동, 활동가는 그때와 다르다.

 

그럼 지금 우리는 어떤 현장성, 계급성을 가져야 하나? 처음 시작할 때는 연구소가 현장을 읽고 현장의 조직과 소통하며 문제를 제기해왔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역할을 못 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계급성 측면에서 우리는 그동안 중요한 이슈를 던져왔다. 이제는 그다음을 준비할 때다. 직업성 암, 정신질환과 같은 이슈를 제기해야 하는 게 아닐까? 반올림하면서 만나게 된 여성노동자 문제를 제기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현장을 만들기 위한 주제를 개발해야 한다. 우리의 전문성은 현장을 잘 읽어내는 능력이다. 노동자들 스스로 알고 있음에도 언어화하지 못하고 있는 걸 언어화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우리가 서 있는 지점을 명확히 보고, 앞으로의 현장성과 계급성을 고민하자.

 

이기만 (한노보연 회원, 두원정공지회) : 한노보연을 2002년 8월에 처음 만났다. 근골격계 투쟁을 해보겠다고 했더니, ‘환자 만들고 요양 보내는 것까지만 할 거면 차라리 투쟁하지 마라.’고 했다. 노동강도 저하 투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태도에 동의가 됐고, 21명의 요양자를 찾아내 투쟁을 시작했다. 이 환자들을 주체로 만들어야 한다며, 6개월 동안 1주일에 한 번씩 교육했다. 교육 내용은 다 신자유주의였다. 교육을 통해 환자들은 왜 자기가 아팠는지 알고, 이 투쟁이 반신자유주의 투쟁임을 깨닫게 되었다. 당시 115개 현장 개선안을 만들면서 노동강도를 낮추는 투쟁을 했다. 이때부터 라인별로 1명씩 실천단을 구성해서 지금까지 주 2시간씩 활동하고 있다. 실천단 활동했던 사람들이 두원 핵심 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3년에 걸쳐 전면적으로 현장을 개선했다. 그때도 한노보연이 분명한 관점을 갖고 현장을 설득했던 게 중요했다. 2002년 집행부 처음 시작할 때, 자본이 ‘두원정공은 이제 대안이 없다’고 했다. 우리도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 것인가가 과제였고, 노동강도 저하에서 대안을 찾았다. 거기서 출발해서 주간연속 2교대까지 왔다. 그 방향에서 두원정공이 사는 방식, 노동자들이 사는 방식을 내놓았다. 그리고 그 일을 한노보연이 같이 해 왔다.

 

김재광 (한노보연 운영집행위원) : 지난 10년 간 연구를 했던 이유는 한결같다. 우리의 연구는 현장을 조직하고 투쟁을 조직하는 수단이다. 연구가 현실을 폭로하고, 현실을 계급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계급적 관점의 대안과 해결을 얘기하지 않으면 한노보연에서 연구를 할 필요가 없다. 사업장에 집중하다 보니 사회적 이데올로기를 형성하는 데 힘을 많이 쏟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아쉬운 것일 뿐 연구 사업의 본질적인 목표에 대한 생각은 변함이 없다.


우리는 사업장이 요구하는 연구를 할 수밖에 없다. 다만 태도는 10년 전 두원정공에 가서 우리가 보였던, ‘투쟁과 연구는 이렇게 돼야 한다.’고 설득하는 태도여야 한다. 동시에, 우리 스스로 ‘이기기 위한 연구’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런 고민의 결과로 우리가 연구를 제안하고 설득하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연구소 성원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그 역사와 경험을 전달,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연구보고서와 같은 자료를 남겨야 하고, 이를 공유하는 사람을 남기고, 그 과정에서 조직을 남기는 것이다. 이 자리가 우리에게 중요한 전환이 되는 고민을 나누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송홍석 (한노보연 운영집행위원) : 근골 투쟁이 구조조정 저지 투쟁에 이바지했듯, 건강권 운동으로 우리가 노동 운동에 어떤 이바지를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조직노동자들을 주로 바라보고 연구를 해 오지 않았나 하는 평가를 들으며, 연구소가 조직된 비정규직 운동과 어떤 연구나 활동 계획을 하고 있었는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앞으로 조직된 비정규 운동에 기여했으면 좋겠다.

한편, 현장의 일상 안전보건 활동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제안하고, 이를 실제 함께 해 보고 그걸 평가하는 등 실질적인 일상 사업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쉽다. 두원정공에서 요양자들 대상으로 6개월 동안 교육을 지속적으로 했던 것처럼 초기에 시도가 있었지만, 최근 이런 부분이 많이 약화된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이다.


  

[특집3]

올해의 현장 연구


정리 : 한노보연 선전위원회

 

<2부>에서는 연구소 내 노동시간센터(준)의 프로젝트 연구진이 수행한 <노동시간 연구> 결과를 「주간연속2교대제 변화와 노동자 건강」, 「주간연속2교대 변화와 노동자 일상의 변화」이라는 두 가지 주제로 나누어 발표했다. <3부: 올해의 현장> 시간에는 3개 사업장에서 수행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3부 발제의 대상 사업장은 각기 다르나 모두 근골격계 질환을 주요 골자로 한 연구였다. 근골격계 질환 투쟁이 10년이 된 지금,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의 의미를 다시 짚어보는 시간이 되었다.

 

노동시간의 단축은 노동자의 건강과 일상에 큰 변화 가져와


노동시간 연구는 한노보연 노동시간센터(준)의 프로젝트팀이 직업환경의학회의 지원을 받아 착수한 연구 사업이다. 안성에 있는 자동차 부품공장인 ‘두원정공’이 2010년 주간연속2교대제로 전환되며 노동시간과 노동 강도도 달라졌는데, 이에 따라 노동자들이 몸과 생활로 느낀 변화를 자세히 추적했다.

「주간연속2교대제 변화와 노동자 건강」에서는 두원정공 노동자들이 주간연속 2교대제 전환 이전과 이후, 노동 강도, 직무스트레스, 음주와 흡연 등 건강 행동, 근골격계 증상 여부, 수면 건강에 대해 응답한 설문 결과를 비교한 결과를 발표했다. 또한, 2009년과 2012년 실시한 건강검진 결과도 비교하여 고혈압이나 비만도, 당뇨 등 뇌심혈관계 지표상의 변화도 살펴보았다. 한편, 이 연구에서 주간 근무자와 교대제 근무자로 따로 나누어 비교·분석하였다. 주간연속2교대로의 전환은 계속 주간 근무를 한 노동자에게는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효과를 주었으며, 주야 맞교대를 했었던 노동자들에게 있어서는 노동시간 감소 뿐 아니라 야간 노동하는 시간이 단축되면서 더 많은 건강상의 이점을 가져오는 것을 객관적인 수치로 확인할 수 있었다.

 

발제를 맡은 이혜은 연구원(한노보연 회원·가톨릭대 직업환경의학과)은 “교대제 전환 이후 노동강도는 전반적으로 감소했고, 건강 행동 중 금주와 운동 여부가 개선되었으며, 특히 수면의 경우 교대군에서 야간근무 시 수면의 질이 크게 좋아졌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편, “직무 스트레스 요인 중 직무 불안정 수치는 상당히 높아졌고 이는 교대군에서 증가 폭이 특히 심하다”고 지적했다.

근골격계 증상과 뇌심혈관계 지표는 이전보다 악화되었지만, 두원정공 노동자들의 나이가 많아진 것을 고려하였을 때 그 증가 폭이 매우 적은 것으로 이 또한 매우 의미있는 결과였다.

 

이어 김보성 연구원(한노보연 회원·서울대 사회학 박사과정)이 「주간연속2교대 변화와 노동자 일상의 변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김 연구원은 “‘3無원칙’을 고수하며 주간연속 2교대제를 도입한 두원정공의 사례는 작업장의 노동시간 길이와 배치의 전변을 통해 한국 자동차 산업 생산직 노동자들의 일상생활 및 가치관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물량 확보가 관건인 자동차 산업에서 그간 철저히 ‘일 중심’으로만 작업시간을 짜 왔고, 이 때문에 노동자들의 건강은 육체적·정신적 한계에 다다랐으며, 그들의 가족생활과 사회생활이 파괴됐다. 하지만 두원정공의 사례를 통해, 처음 도입 당시에는 임금과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 매우 컸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시간의 단축이 가정에서의 관계 회복, 여가시간의 적극적 활용 등 결과적으로 삶의 질과 만족도를 높이는 것을 연구를 통해 확인했다. 이는 두원정공이라는 개별사업장이 교대제의 전환을 꾀하면서도 ‘노동강도 강화 없는, 노동시간 연장 없는, 임금삭감 없는’ 3無원칙을 고수한 특별한 사업장이기에 가능한 결과일 수 있다는 연구의 한계점도 잊지 않고 언급했다.

 

2부 전체토론 시간에 한노보연 공유정옥 회원은 노동시간을 6시간으로 줄였다가 노동자들의 요구로 다시 8시간으로 연장한 미국 캘로그社의 사례를 들어 현재 자동차 대공장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한국사회의 노동시간 단축 흐름이 가져올 수 있는 함정에 대해 지적했다. 노동자의 계급연대 의식은 약화되고 왜곡된 가족주의와 소비주의로 경도되는 것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김재광 회원은, 이와 같은 조합원들의 일상생활 양상의 변화에 따라 조합원들의 활동을 조직하는 노동조합의 역할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금부터 어떤 사업을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준비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현장에서 조직 노동운동과 함께한 올해의 현장연구

3부의 첫 번째 발제는 「근골격계 질환 산재요양 실태와 경험」이라는 주제로 2003년부터 두원정공에서 근골격계 질환으로 산재요양을 다녀온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이다. 근골격계질환으로 산재요양을 다녀온 노동자들이 산재 신청부터 재활과 복귀의 과정을 거치며 어떤 경험을 하는지 알아보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산재요양 및 재활의 실효성을 되묻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했다. 

발제를 맡은 최민 회원(한노보연 운영집행위원·가톨릭대 직업환경의학과)은 “든든한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산재요양 후의 ’낙인효과‘, 즉 꾀병환자로 찍히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으며 이것이 요양기간 중 그리고 현장 복귀 후에도 큰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결과를 전했다. 또한 “처음에는 되도록 길게 쉬기를 원하나, 막상 요양기간에 치료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아,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는데도 ’차라리 빨리 복귀하는 게 낫다‘는 식의 모순적인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에 한노보연 김정수 소장은 “책임지고 제대로 치료를 맡아주는 의료인. 의료기관 자체가 부족하고 부실한 것이 현재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며, “모범사례가 될 만한 의료인을 모으고 기관을 설립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김재광 회원은 “요즘 잘 정착되고 있는 지역의 근로자건강센터 같은 좋은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 발제는 「전북버스 운전노동자 노동조건 실태조사」를 수행한 강문식 연구원(한노보연 회원, 아래로부터 전북노동연대)이 맡았다. 이 연구는 복수노조 체제의 불리한 여건 속에서 노동조건,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공공운수노조 전북버스지부의 5개 시내버스 지회 소속 노동자 101명을 대상으로 했다. 실태조사 결과, 전북버스 운전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18시간 근무, 빠듯한 운행일정과 부족한 휴식시간이라는 조건 속에 초고강도 운전노동을 감행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여러 가지 건강상의 문제가 나타나 조합원 대부분이 고도의 피로군에 속했다. 그 뿐만 아니라 버스 노동자를 무시하는 관리자 및 승객들의 의식과 저임금, 상시적 임금체납 문제와 같은 상황이 겹쳐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고 강 연구원은 힘주어 말했다. 그는 이런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행정적 개입이 필요하고 그러할 때에 모든 승객을 위한 안전성과 공공성이 담보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3부 마지막으로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와 함께 진행한 「경희대 청소용역 노동자 근골격계 부담작업 유해요인 조사」를 발표했다. 공공 서경지부의 6대 요구안 “⓵생활임금에 대한 대학의 책임 ⓶고용 및 노동조건에 대한 대학의 책임 ⓷노동안전에 대한 대학의 책임 ⓸노동기본권 보장에 관한 대학의 책임 ⓹노동인권에 대한 대학의 책임 ⓺원청-노동조합 간의 노사협의회 구성”을 쟁취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의 한 방편으로 연구사업이 진행되었다. 대부분 고령의 여성노동자로 이루어진 경희대 분회는 26의 진찰결과 정밀검사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사람은 2명, 약물치료와 같은 전문가의 치료가 필요한 수도 9명이나 나왔다. 조합원들로 하여금 개선되어야 할 작업조건이나 업무가 힘든 정도, 근골 증상 여부 및 심각성 정도 등에 대해 물었다. 발제자 김형렬 연구원은 경희대 분회 조합원들이 연구팀에 의지하지 않고, 아주 적극적인 연구의 주체가 되었음을 강조하였다. 근골격계 부담작업 평가부터 작업환경 개선이나 예방 및 관리 대안 짜기까지 조합원들이 연구진으로서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적극적으로 연구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김윤수 서경지부 조직차장은 “서경지부의 6대 요구안에서 기본적으로 원청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는 사업장과 노동자들의 안전보건상의 문제를 포함, 전체 노동권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는 근본원인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경희대 백영란 분회장은 현장연구 나눔마당에서 소개된 모든 연구가 흥미로웠지만,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연구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장시간 노동은 고령노동자뿐만 아니라 젊은 여성노동자의 건강에도 큰 문제를 초래한다며, 자신 딸의 이야기를 예로 들다가 눈시울을 적셔 모두를 안타깝게 했다.

 

[만평] 우리에겐 꿈이 있습니다 / 2013.11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 이야기] 하청노동자는 산재도 차별받는다?

하청노동자는 산재도 차별받는다? 

직업환경의학전문의 김길동

 

얼마 전에 만난 외래환자의 이야기입니다.

 

이 환자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했는데, 작업 도중 7미터 높이에서 추락하여 흉추 12번 골절로 치료를 받았던 환자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 환자가 이런 산재를 당하였는데 당시에 119를 불러서 병원으로 이송한 것이 아니라 동료가 회사 차로 실어서 병원에 이송했다는 것입니다. 7미터 높이에서 추락했다면 경추(목등뼈) 혹은 요추(허리뼈)에 무슨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르고, 특히 척추에 문제가 생겼다면 이송과정에서 잘못 옮길 경우 사지 마비 혹은 하지 마비 등의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데 동료들이 그냥 옮겼다니!

 

왜 그랬을까? 일반적으로 당연히 119를 불렀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왜 동료들이 옮겼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금세 이해가 되었습니다. 왜냐면 그 전에 KBS 추적 60분에서 산재은폐와 관련된 방송을 봤기 때문이죠. 당시 방송에 나왔던 회사와 같은 곳입니다. 방송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에서 급성 심근경색 환자가 발생했는데 119가 바로 옆에 있지만, 회사 차량으로 병원까지 이송하였고 의학 지식이 없는 동료들에 의해 이송되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응급조치도 없어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사망했던 사건을 보도했습니다.

 

마찬가지 상황이었습니다. 환자는 응급상황에 대처할 능력이 없는 동료들에 의해 병원에 옮겨졌고, 작업과정에서 추락해 발생한 명백한 산재지만, 산재로 치료받은 것이 아니라 공상으로 치료를 받았습니다. 당시 흉추 12번 골절로 진단된 환자는 치료를 받고 현장에 복귀했지만 하지 저림과 마비 등의 증상이 발생하였습니다. 결국, 2년의 세월이 경과한 진료에서 흉추 5~6번에 추가적인 압박골절이 발견되어 산재신청을 추가로 하기 위해 우리 병원을 방문했던 것입니다. 이 노동자가 애초에 산재로 처리됐다면 과연 다시 우리 병원을 방문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진출처> 추적60, “수치로만 안전한 나라’, 은폐되는 산업재해

 

그렇다면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요? 하청업체에서 재해가 발생했는데 왜 119를 부르지 않고 자신들이 환자를 실어 날랐을까요? 그것은 산재가 발생했을 때 받는 불이익 때문일 것입니다. 추적 60분에 방송된 내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심근경색이라는 응급상황이 발생했고, 소방서가 바로 옆에 있었지만 119를 부르지 않고 자신들이 실어 나른 것은 119를 부르는 순간 산업재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산재가 두려운 이유는 사내하청업체의 경우 산재 발생 자체가 원청인 현대중공업과의 이후 계약에서 불이익으로 작용할 가능성 때문입니다. 원청인 현대중공업 입장에서는 별로 상관없는 사내하청업체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실제로는 원청인 현대중공업이 조장하고 있습니다. 산재 발생의 책임에서 좀 더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현대중공업에서 산재발생 여부를 하청업체의 중요한 선정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지요.

 

20여 년 전 의과대학의 산재문제연구회에서 아픈데도 치료받지 못하고 산재신청을 못 하는 상황에 분노하던 현실이, 20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는 것에 기가 찹니다. 아프고 다친 것도 서러운데 하청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산재신청도 못 하는 상황을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까요?

 

[연구소 리포트] 철강업종 노동자의 교대제 및 건강영향 실태조사 연구 (2) / 2013.11

철강업종 노동자의 교대제 및 건강영향 실태조사 연구 (2)

 

한노보연

* 한노보연에서는 올해 2월부터 8월까지 금속노조와 함께 철강업종 노동자의 교대제 개선을 위한 실태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설문조사 방식의 연구 결과를 [일터] 9·10월호와 11월호에 걸쳐 연재합니다.

 

III. 설문조사 결과

4. 교대제로 인한 건강영향

1) 수면장애(일터 9·10월호)

2) 사고 위험; 교대근무자, 사고 경험 2배 높아

- 설문 참여자의 79.4%는 한 번 이상 사고로 다쳤거나 다칠 뻔한 경험이 있었다. 교대근무자의 54.9%가 이런 경험이 있어 주간고정의 27.5%보다 월등히 높았다. 교대근무자의 경우 밤 근무 중에 아차사고 및 사고로 다친 횟수가 2.06회로 다른 근무형태 및 근무시간대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대근무자의 경우 신체 리듬 교란과 수면 부족으로 사고 위험이 당연히 커지고 야간노동을 하면서 빈번해지는 아차사고는 큰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질병

빈도()

백분율(%)

위염 및 위(십이지장) 궤양

684

30.0

역류성 식도염

492

21.6

고혈압

465

20.4

불면증

373

16.4

만성 불안 및 우울증

141

6.2

당뇨

118

5.2

협심증, 심근경색

94

4.1

뇌졸중(뇌출혈뇌경색)

34

1.5

기타

82

3.6

 

3) 다른 건강문제들

- 교대근무 이후 진단받은 질병 중 위염, 소화성궤양(30.0%), 역류성 식도염(21.6%) 등 소화기계 질병의 유병률이 특히 높았다.

- 2011년 금속 수면연구와 비교할 때 위염, 고혈압, 당뇨병, 협심증, 뇌졸중 등 모든 질병에서 이번 연구 설문참여자의 유병률이 높았다. 양 연구 참여자들의 평균 연령에는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철강 노동자의 건강 상태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협심증, 뇌졸중 등 뇌심혈관계 질환 유병률이 일반 인구와 비교해볼 때 매우 높은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는 교대근무, 야간노동, 직무 스트레스, 작업환경(고온, 소음), 높은 소진감 등 유해 노동 환경에 철강노동자들이 더 많이 노출되었기 때문일 수 있다.

 

 

 

5. 노동 강도

1) 지금 하는 일, 얼마나 힘드십니까?

- 보그 점수는 자신의 업무가 얼마나 힘든지를 계량화한 것이다. 설문 참여자들의 평균 보그 점수는 12.6점으로 힘듦에 가까운 수준이고, 13점 이상으로 힘듦혹은 매우 힘듦에 해당하는 경우는 46.8%에 달했다. 교대근무자들에서, 특근횟수가 많을수록, 한 달 노동시간이 길수록, 제강이나 공무 업무를 하는 경우 보그점수가 높아졌으며, 지회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었다.

 

 

 

3) 노동강도를 높이는 주된 원인은 무엇일까?

- 노동강도를 높이는 주된 원인은 1위 교대근무, 2위 장시간 노동(잔업, 철야), 3위 설비 등 작업환경 문제(교대노동자)나 과도한 업무량과 다기능화(주간고정노동자)였다

 

 

 

4) 적정 노동강도는 어느 정도인가?

- 설문 참여자들은 현재 업무량과 노동시간의 75% 정도가 적절한 업무량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야간에는 그보다 10% 정도를 더 줄여야 심각한 피로를 겪지 않고 일할 수 있다고 답했다. 또 현재 부서 인원보다 30%가량 더 늘어야 적절한 인원이라고 평가했다.

 

6. 교대 근무의 문제점

1) 교대 근무, 뭐가 문제냐구요? 건강! 건강!! 건강!!!

- 철강 노동자들이 교대근무의 문제점으로 선택한 것은 생체리듬 파괴(35.4%), 수면부족/수면방해(26.8%), 건강문제(23.2%) 순으로 건강 관련 문제가 대부분(85.4%)을 차지했다.

 

 

 

 

2) 초과노동(잔업, 특근, 대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초과노동을 하는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연장근무수당 없이는 생활이 힘들어서’ 37.2% + ‘벌 수 있을 때 더 벌어두기 위해’ 19.1%)가 업무 관련 이유(‘내가 빠지면 전체 작업이 중단되므로’ 22.2% + ‘물량이 많아서’ 17.6%)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 나이별로는 30, 40대에서 연장근무수당 없이는 생활이 힘들어서의 응답이 높았고, 20, 30대에서는 벌 수 있을 때 더 벌어두기 위해라는 응답이 두드러졌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철강 일을 계속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부담감 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3) 현재의 교대근무를 다른 형태로 개선한다고 했을 때 무엇이 중요하나요?

- 임금, 노동 강도, 고용 안정, 심야노동 축소 등 다양한 사안에 대해 어느 것 하나도 놓쳐서는 안 된다는고른 문제의식을 보여 교대제 개선 시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함을 시사했다.

 

 

IV. 제언

1. 교대제로 인한 건강문제 실태 파악 및 대책 수립

- 설문조사에서 철강 노동자들의 불건강 상태가 상당히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우선 정확한 실태 파악을 위한 조사가 필요하고 이에 따른 적절한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 사내 보건관리시스템을 통해 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활용하고, 그것으로 부족하다면 종합적인 관리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2. 교대제 개선과 노동시간 단축

1) 교대제 위험은 제거 불가능. 하지만 위험을 줄이기 위한 개선은 가능!

- 철강사업장의 근무 일정은 야간근무가 낮이나 저녁근무와 같은 비중을 차지하며, 연속 야간근무가 5일이나 된다. 이는 교대제 가운데에도 악영향이 더 큰 형태이다.

몇 가지 개선이 가능하다. 첫째 야간 노동자의 노동 환경을 개선하여 야간작업 중에 느끼는 불편함이나 건강의 유해 요인을 줄여야 한다. 둘째, 조를 늘리면서 2~3일 주기의 빠른 순환으로 전환하고, 순방향(아침반저녁반야간반)으로 바꾸며, 야근한 날짜만큼 휴일을 보장하는 방안도 있다.

2) 실노동시간 단축이 관건

- 교대제 개선에서 중요한 것은 교대근무로 인한 건강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실질 노동시간의 단축이다. 이번 설문 참여자들은 기본적으로 잔업을 포함한 1일 노동시간이 법정 노동시간을 초과하고 있고, 여기에 대근, 특근 등 추가적인 노동시간이 더해져서 한 달 노동시간은 더욱 길어졌다. 실노동시간을 법정 노동시간 이하로 줄이고, 하루 노동시간의 길이도 함께 제한하여 '인간다운 삶'을 이루어나가야 한다.

3) 노동강도 완화는 반드시 필요

- 현재의 교대근무를 개선할 때 노동강도 강화를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구 중 하나였다. 노동강도 완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인력 충원이며, 설문 참여자들은 30%의 추가 인력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교대제 개선은 노동강도도 함께 줄이는 과정이어야 한다.

 

3. 교대제 개선을 위한 현장의 목소리와 힘을 모아야

- 현장의 적극적인 의견 수렴과 현장의 다양한 이해를 모아가는 과정에서 교대제 개선을 이루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장의 이해는 부서별이나 나이별로 다를 수 있고, 심지어 현실상황이나 제약 때문에 실제 필요가 왜곡되어 나타날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야간노동 최소화의 원칙, 하루 노동시간의 단축 등 교대제를 왜 개선하려고 하는지를 곱씹으며 조합원 교육과 토론/간담회를 통해 다양한 요구들을 다듬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본조, 지부, 지회 차원의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특집] 미나마타병, 그 고통의 역사 / 2013.11

지난 109일과 11일에 걸쳐 일본 구마모토현에서는 유엔환경개발계획(UNEP) 주최로 <수은에 대한 미나마타 협약>을 채택하는 행사가 성대하게 열렸습니다. 각국 정부 대표들이 참여하는 이 화려한 행사가 열리기 며칠 전, 미나마타 시민회관 한구석에서도 조촐하지만 뜻 깊은 행사가 있었습니다. 반세기가 넘도록 진실 규명을 위해 싸워 온 미나마타병 피해 주민들과 운동가들, 그리고 환경오염과 지역사회의 피해에 맞서온 28개국 36개 단체의 운동가들이 모인 자리였습니다. 나흘 동안 중금속 문제에 대한 워크숍과 미나마타병에 대한 심포지엄, 그리고 피해자들과 함께하는 현장 견학으로 이어진 이 자리에 한노보연도 초대받아 다녀왔습니다. 그 자리에서 보고 듣고 배우고 느낀 수많은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독자들과 나누고자 이번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경제발전을 위해 희생된 수만 명의 삶

미나마타병, 그 고통의 역사

 

한노보연 공유정옥

 

미나마타를 배우다

일본 지명에는 귀에 익은 이름이 많다. 일단 도쿄는 수도로, 삿포로는 맥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세계대전 때 원자폭탄이 떨어진 곳으로(요새 나가사키는 짬뽕 이름으로 유명하다). 사실 미나마타는 수은 중독 때문에 기억하는 이름이지만 그것 말고는 아는 게 없었다. 미나마타가 얼마나 아름답고 슬픈 곳인지 2013년 10월 초에 직접 가본 뒤에야 배웠다.

 

작고 아름다운 미나마타

미나마타는 일본 남부 구마모토현 서쪽 바닷가에 있는 작은 도시다. 육지가 팔을 뻗듯 둥글게 바다를 감싸고 있어 그 안쪽 바다는 시라누이해라고 부르고, 시라누이해 한구석에 조그마한 포구를 담고 있는 만을 일컬어 미나마타만이라 한다. 미나마타만 주변으로는 작은 촌락들이 흩어져 있는데, 한눈에 다 볼 수 있을 만큼 몇 채 되지 않는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형상이다. 시내에도 높은 건물은 찾아볼 수 없는 한국 여느 시골의 작은 읍내 느낌이다. 작고 늙었지만 정갈하고 아름다운 바닷가의 소도시, 그게 미나마타의 첫인상이었다.

 

국가와 지역 경제를 살리는 대공장

1908년, 일본 카바이드 상회가 설립되고 미나마타 공장이 가동을 시작했다. 이 회사는 나중에 다른 회사와 합병하여 일본 질소비료 주식회사로 이름을 바꾸고(현지에서는 이 회사를 칫소라고 부른다), 이후 암모니아, 카바이드, 아세틸렌, 아세트알데히드, 염화비닐수지 등 일본 최대의 화학 공장으로 자라났다.

칫소 공장은 소규모 어업 말고는 산업 기반이 없던 미나마타 경제에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 잡았다. 사람들은 칫소라는 이름조차 붙이지 않고 그냥 “공장”이라 불렀다. 국가도 무시할 수 없는 거대기업이 작은 어촌에 공장을 차렸다는 자랑스러움도 컸을 것이다. 칫소는 미나마타 지역에서 영주와도 같은 권력을 누렸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 영주가 수만 명의 삶을 앗아가리라고는 미처 상상도 하지 못했으리라. 

 

최초 환자 발생마을. (사진촬영: 공유정옥) 

 

죽어가는 동물들

일찍이 1920년대부터 미나마타 어업 조합에서는 칫소 공장 폐수 때문에 생기는 피해로 골치를 앓았고 몇 차례 이 문제로 칫소와 보상 교섭을 갖기도 했다. 칫소는 매번 ‘앞으로 피해가 발생해도 다시 보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전제로 소액의 보상금을 쥐어주었고, 어민들은 그 이상의 대책을 요구할 줄 몰랐다.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문제는 훨씬 심각해졌다. 미나마타만 안에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해 떠오르고, 빈 조개껍데기가 늘면서 바닷가에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파래와 미역은 색이 바래지고 뿌리가 잘려 떠다니고, 나중에는 식용 해조류가 아예 자취를 감췄다. 어획량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 바닷새들이 눈에 띄게 둔해져 ‘장대로 두드려 잡을 수 있을 정도’였고, 까마귀 떼가 미친 듯이 하늘을 날다가 바다 속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동네 고양이들은 땅에 코를 박고 맴돌거나 몸을 비틀며 펄쩍펄쩍 뛰다가 바다에 뛰어드는 ‘고양이 미친 병’을 보였다. 주민들은 불길한 징조에 불안했지만, 그 불길함이 무엇을 뜻하는지 관심을 두지 못했다.

 

1956년, 첫 미나마타병 피해자 발견

1956년 4월 21일, 칫소 미나마타 공장 부속병원 소아과에 6살 여자아이가 진찰을 받으러 왔다. 멀쩡하던 아이가 말을 제대로 못 하고 걷지도 못하며, 미친 듯이 소란을 피웠다. 이틀 뒤 만 세 살이 되어가던 여동생도 같은 증상으로 진찰을 받으러 왔고, 두 자매의 어머니는 옆집에 사는 아이도 같은 증상을 보인다고 말했다. 깜짝 놀란 의사들이 동네에 왕진을 가보니 그들 말고도 비슷한 환자가 여럿 있었다.

 

“만 5세 4개월. 4월 28일부터 걷는 것이 비틀비틀해지고, 말이 불명료해지고, 물건을 쥘 수 없게 되었다. 5월 9일 물을 마시게 하면 자주 흘리고 사레가 들었다. 5월 10일 서지 못하게 되다. 5월 17일 사지가 경직되다. 5월 21일 폐렴이 생기고 경련이 빈발했다. 전신 경련이 심하고 몸이 변형되고 의식을 잃다. 5월 23일 사망.”

이곳은 미나마타 만 깊숙한 곳에 작고 가난한 어부들이 사는 자그마한 마을로, 밀물 때면 창밖으로 낚싯줄만 던져도 바로 생선을 낚을 수 있었다. 5월 1일 칫소 부속병원 원장은 미나마타 보건소에 ‘원인불명의 중추신경질환이 다발하고 있다’고 정식으로 보고했다.

 

괴질 대책위원회와 구마모토 대학 연구반

사태가 심각함을 알게 되자 5월 28일, 미나마타 보건소와 시, 시의사회, 치소 부속병원과 시립병원 등이 모여 <미나마타시 괴질 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전염병으로 생각해서 환자들을 병원에 격리하고 온 동네를 소독하러 다녔다. 그 덕에 환자의 가족이나 같은 동네 주민, 더 나아가 미나마타 출신 사람들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전염병 환자로 낙인찍혀 갖은 사회적 차별을 받았다.

석 달이 지나도 문제의 원인을 찾지 못하자, 괴질 대책위원회는 구마모토 의대에 원인 규명 연구를 의뢰하였다. 구마모토 대학은 미나마타병 의학연구반을 현지에 파견하여 집안에서 사용하는 음식물과 인근 바닷물, 어패류 등 온갖 것들을 열정적으로 조사했다.

그 결과 1956년 11월, 구마모토 대학 연구반은 이 괴질이 전염병이 아니라 미나마타만 지역의 오염된 어패류 섭취에서 비롯된 중금속 중독으로 보인다고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정확히 무슨 중금속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어패류 섭취를 계속해서는 안 된다는 분명한 뜻을 담고 있는 발표였다. 그러나 이 결과는 지역주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았고, 곡식과 채소를 사 먹을 돈이 없는 가난한 미나마타 어민들은 여전히 오염된 해산물을 잡아 주식으로 삼고 있었다. 그것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원인인 줄도 모르는 채.

 

미나마타 사건의 책임이 있는 칫소정문(현재 JNC)    

 

12년간의 살인 방조

1956년 5월에 첫 환자가 보고되었고 그해 11월에 해산물 섭취로 인한 중금속 중독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일본 정부가 미나마타병을 정식 공해병으로 인정한 것은 1968년 9월 26일이다. 정부는 12년 동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칫소를 감쌌고, 칫소가 무사히 아세트알데히드 공장 문을 닫고 난 뒤에야 문제를 인정하고 나섰다.

그 12년에 대한 여러 자료를 읽다보면 기가 막힐 지경이다. 가령 1957년 구마모토 지방정부에서 미나마타산 해산물에 대한 규제를 검토했을 때 중앙정부 후생성에서는 “원인 물질을 아직 모른다”며 이를 만류했고, 1958년에 후생성 자체의 과학연구팀이 “원인물질을 규명하기 전이라도 식품섭취를 통제해야 한다”고 보고하자 다음 해에 별 이유 없이 이 팀을 해산하고 미나마타병 조사를 수산청으로 이관시켰다. 한 정부 부서에서 칫소 공장의 폐수 방출을 금지하려 하자 통산성(무역, 산업 담당 부처)이 나서서 “칫소와 같은 시스템을 가진 다른 공장들 주변에서는 비슷한 환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만일 칫소 공정이 원인이라면 다른 공장에서도 비슷한 환자들을 발견했을 것”이라며 폐수 규제를 가로막기도 했다.

한편 칫소는 공장 폐수를 사료에 타서 고양이에게 먹이는 실험을 통해 미나마타병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이미 1959년에 알고 있었지만, 이 결과를 철저히 은폐했다. 오히려 일본화학공업협회와 도쿄공업대학 교수 등을 동원해 “폭약설”, “아민 중독설” 등 엉뚱한 원인설을 내놓아 원인 규명을 교란한다. 

 

“이제 미나마타병은 끝났다.”

급기야 1960년이 되자 일본 정부는 “이제 새로운 환자 발생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1962년에는 수산청에서 담당하던 일체의 연구도 중지시켰다. 더는 환자를 찾을 노력도 하지 않았다. 이후 일본 정부의 공식 연구는 1968년 공해병 정식 인정을 하기까지 6년 동안 완전히 정지되었다.

첫 환자 발생 후 무려 12년, 일본 정부는 미나마타의 가난한 민중들이 오염된 해산물을 먹고 병들고 죽어가는 사태를 내버려뒀고, 이런 정부의 살인 방조 속에 칫소의 아세트알데히드 생산량은 1950년 5천 톤 미만이었던 것에 비해 1960년경에는 4만 5천 톤으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제2의 미나마타병 발생과 시민회의 결성

1965년, 미나마타에서 한참 떨어진 니가타시 부근 아가노 강 유역에서 미나마타병과 똑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이 강 유역에는 쇼와전공이라는 회사가 칫소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아세트알데히드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니가타 지역에서는 1964년부터 고양이들이 미쳐 날뛰다가 죽어가기 시작했고, 개와 돼지, 까마귀도 같은 증상을 보이다가 일 년 뒤 사람들도 쓰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니가타 미나마타병 연구는 상대적으로 빠르게 진전했다. 환자 발생 다음 해인 1966년 초에 쇼와전공의 공장폐수가 오염원으로 지목되었으며, 몇 달 뒤에는 공장 배수구 근처에서 메틸수은을 직접 검출하기도 했다. 피해자 가족 13명은 1967년에 회사를 상대로 위자료 청구 소송을 시작했다.

한편 미나마타에서는 1968년 1월에 <미나마타병 대책 시민회의>가 결성되었다. 이들은 니가타 지역 피해자들과 연대하여 정부를 상대로 온전한 보상과 공해문제 해결을 위한 투쟁을 시작했다.

그동안 고용안정과 임금보전을 위해 지역 주민들은 물론 자신들 내부의 수은 중독 문제를 외면하던 칫소 노동조합도 1968년이 되자 달라졌다.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며, 미나마타병과 싸우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해 8월, 공장 문을 닫고 남은 수은 원액 100톤을 한국에 수출하려던 칫소의 시도를 막아낸 것도 노동조합이었다.

 

보상, 분열, 그리고 다시 투쟁

깜짝 놀란 일본 정부는 1969년에 미나마타병 피해자에 대한 보상안을 내놓았다. 오랫동안 침묵하던 정부의 태도가 180도 달라지자 주민들은 매우 놀랐다. 하지만 정부의 보상은 일정한 기준을 만족하는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었고, “보상 처리 결과에 일체 이의 없이 따른다”는 확약서를 요구했다.

주민들은 각자의 처지에 따라 정부 보상안에 대한 찬성파와 반대파로 갈라서게 된다. 찬성파는 모든 보상 문제를 후생성에 일임하겠다는 태도를 밝혔고, 반대파는 자주적인 교섭과 소송을 통해 칫소를 상대로 보상을 받겠다는 입장이었다.

1969년, 전국 222명의 변호사가 참가하여 자주교섭파를 지원하는 변호단을 결성하고 마침내 칫소를 상대로 29가구 112명의 위자료 청구소송이 첫발을 떼었다. 1973년 3월, 4년간의 법정 투쟁 끝에 승소를 쟁취한 환자들은 도쿄에 있는 칫소 본사로 찾아가 직접 칫소와 교섭을 하기 시작했다. 일부 환자들은 이미 1971년 11월부터 칫소 공장 앞에서, 12월부터는 도쿄 본사 앞에서 농성을 시작하여 1년이 넘는 투쟁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들의 투쟁에 소송에서 이긴 자주교섭파 환자들이 합류하여 투쟁이 점점 거세어지자, 마침내 1973년 7월, 환경청의 중재로 이후 새롭게 인정될 피해자들에게도 보상금과 의료비, 연금을 지원한다는 칫소와 환자들 사이의 협정서가 만들어졌다.

 

칫소의 구원투수, 다시 정부가 나서다

1970년까지 미나마타병 환자로 인정받은 수는 고작 121명이었지만, 1973년의 판결로 600명이 추가로 인정되었다. 게다가 앞의 협정서로 칫소는 이후 발생할 환자들까지 보상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한편 정부는 판결 이후 밀려든 신청자들의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1976년에는 미처분자 수가 3천 명에 달하며 불만이 폭발 직전에 이른다.

그 대책으로 1977년 일본 정부는 미나마타병 인정기준을 개정했다. 이 기준은 신속한 처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미나마타병 인정을 훨씬 엄격하게 하여 이후 약 3년 동안 2천 명의 신청을 기각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렇게 기각된 피해자들은 대부분 더는 싸움을 이어갈 힘이 없었다. 1978년, 환자 4명이 기각을 취소해달라는 재판을 제기하여 승소했지만, 정부가 고등법원에 항소하자 3명은 소송을 취하했다. 남은 단 한 명이 대법원까지 가서 마침내 미나마타병임을 인정받은 것은 1997년의 일로, 소송을 제기한 지 무려 20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이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정부로부터 미나마타병을 인정받지 못한 다른 피해자들이 모여 집단 소송을 시작했다. 1980년에 시작하여 열여섯 차례에 걸쳐 원고들이 추가된 끝에 총 1,362명의 피해자가 원고로 나섰으며, 이후 1980년대 말까지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소송이 시작되어 총 2천 명의 피해자들이 소송에 임하게 되었다. 이들 소송은 1990년대 중반까지 이어지면서 차례로 원고들의 승소로 이어졌다.

그러나 소송에 패소한 정부가 항소를 제기하여 문제 해결은 더뎠고, 피해자들은 이미 평균 70세를 넘은 노인들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 때문에 1995년 들어 정부가 “정치적 해결”이라는 이름으로 화해를 제시하자 환자들 대부분은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소수의 질긴 싸움으로 지켜낸 진실

이때 유일하게 화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재판을 계속한 피해자들이 있었다. 칸사이 지방으로 이주해 살고 있던 피해자들이었다. 이들은 정부의 항소에도 끈질기게 소송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마침내 2004년 대법원을 통해 중앙 정부와 구마모토현이 미나마타병의 피해 확산을 막지 못한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얻어내었다. 이 판결은 반세기 동안 숨어있던 환자들로 하여금 다시 인정 신청을 할 용기를 불어넣었고, 2006년까지 3천7백 명의 피해자가 새롭게 나타났다. 1천 명의 원고가 다시 재판을 시작하기도 했다.

소수의 끈질긴 싸움은, 칫소와 정부가 은폐하려 애써온 문제의 실체를 집요하게 드러냈다. 마침내 2009년 의회에서는 미나마타 구제법을 만들어 이전에 정부가 인정하지 않았던 환자들에게도 보상금과 의료비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 구제 정책에는 2012년 7월 말까지 총 6만 5천 명 이상이 신청했다고 한다. 2013년에는 대법원에서 1977년에 사망한 여성을 사망 36년 만에 미나마타 피해자로 인정하기도 했다.

 

미나마타 심포지엄. (사진촬영: 김세은)

 

 

아직도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미나마타병의 피해자는 드러난 숫자만 수만 명, 미처 보상을 신청하지 못한 채 죽어갔거나 2세에게 태아성 미나마타병으로 이어질 영향까지 고려하면 그 수가 수십만 명에 달한다. 공장 하나가 남긴 상흔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끔찍한 규모다.

하지만 피해자 규모만큼이나 충격적인 사실은 미나마타 지역이 아직도 오염되어 있다는 것이다. 칫소에서 미나마타만으로 방출한 수은 양은 70에서 150톤 정도라 하는데, 공장 폐수 배출구 주변에는 지금도 수은을 함유한 폐기물이 4미터 깊이로 쌓여있다. 공장에서 미나마타만 쪽을 향한 58만 2천 제곱미터의 매립지에는 수은농도가 25ppm에 달하는 151만 톤의 폐기물이 매립되어 있다. 정부는 그 위에 14년 동안 60억 달러를 들여서 “에코 파크”를 조성했다. 엄청난 양의 수은을 전혀 정화하지 않은 채 벽으로 둘러싼 뒤 그 위에 흙을 덮은 것이다. 지진이 한번 발생하면 이 엄청난 수은이 순식간에 바다로 쏟아져 내릴 수 있다.

공장을 기준으로 미나마타만 반대쪽에는 하치칸이라는 저수지가 있는데, 콘크리트와 모래로 둘러싸인 56만 제곱미터 규모의 이 저수지에는 칫소 염화비닐공장에서 나온 오염물질들이 담겨 있다. 저수지 주변 주거 지역에는 땅으로 스몄다가 다시 땅 밖으로 삼출하여 나온 화학물질의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 오염물질들을 칫소와 정부가 책임지고 정화하지 않는 한, 미나마타 문제는 결코 끝난 게 아니라고 피해자들은 외치고 있다. 이미 목숨을 잃거나 회복 불가능한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하는 고통을 수만 명에게 안겨준 가해자들이 반드시 책임지고 정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나가며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 미나마타에는 서러운 민중의 한이 가득 서려 있었다. 지배계급의 잇속을 위해 치러진 침략전쟁이 그러했고, 그로 인한 원폭과 패전도 그러했으며 후쿠시마 원전사고 역시 그러했듯, 국가와 경제의 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일방적으로 고통을 떠안아야 했던 일본 민중들의 한. 단지 수은중독이라는 네 글자로 담을 수 없는, 담아서도 안 되는, 그 원통한 삶과 죽음 그리고 투쟁의 역사가 그곳에 있었다.

일본 정부는 미나마타병 문제가 잘 해결된 것처럼 보이기 위해 국제 수은 협약에 미나마타 이름을 붙이자고 주장했다. 미나마타 피해자들은 이를 반대했다. 12년 동안 칫소의 살인을 방조하고, 다시 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반세기 동안 피해자들을 기만해온 일본 정부가 그처럼 쉽게 면죄부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마음 때문이다. 이들은 모든 피해자에게 제대로 보상하고, 미나마타의 오염된 땅과 바다를 정화하며, 앞으로 이와 같은 참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수은 사용을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런 내용이 담기지 못한 협약은 미나마타 협약이라고 부를 수 없으니, 이번에 채택된 <수은에 대한 미나마타 협약>의 내용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협약에는 11월 20일 현재 93개국이 서명하고 미국이 가장 먼저 비준한 상태다. 미나마타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 대한민국은 아직 서명하지 않고 있다. 이웃 나라에서 수만 아니 수십만 민중의 삶을 앗아간 이 문제에 대해 우리도 조금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 하이 2016.06.09 04:15 ADDR 수정/삭제 답글

    좋은 정보 잘보고 갑니다

<일터> 통권118호 / 2013.11

 

 

 

 

                   26

특집

경제발전을 위해 희생된 수만 명의 삶 미나마타병, 그 고통의 역사

지난 109일부터 11일까지 3일에 걸쳐 일본 구마모토현에서는 유엔환경개발계획(UNEP) 주최로 <수은에 대한 미나마타 협약>을 채택하는 행사가 성대하게 열렸습니다. 각국 정부 대표들이 참여하는 이 화려한 행사가 열리기 며칠 전, 미나마타 시민회관 한구석에서도 조촐하지만 뜻 깊은 행사가 있었습니다. 반세기가 넘도록 진실 규명을 위해 싸워 온 미나마타병 피해 주민들과 운동가들, 그리고 환경오염과 지역사회의 피해에 맞서온 28개국 36개 단체의 운동가들이 모인 자리였습니다. 나흘 동안 중금속 문제에 대한 워크숍과 미나마타병에 대한 심포지엄, 그리고 피해자들과 함께하는 현장 견학으로 이어진 이 자리에 한노보연도 초대받아 다녀왔습니다. 그 자리에서 보고 듣고 배우고 느낀 수많은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독자들과 나누고자 이번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03

뉴스

전태일처럼 못해도... 도움이 되길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의 죽음 外  l  연아, 푸우씨

06

지금지역에서는

건강은 기본적 권리!

영세 중소 인쇄·제화사업장 안전보건관리 개선을 위한 성동지역 토론회열려

10

노동시간 세미나노트

노동시간 단축 운동의 정답은 무엇인가l  노동시간센터() 김경근

13

연구소 리포트

철강업종 노동자의 교대제 및 건강영향 실태조사 연구(2)  l  한노보연

18

칼럼

한노보연의 미래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l  김정수

21

노동시간이슈생각하기

누구를 위한 시간제 일자리인가l  노동시간센터()

24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하청노동자는 산재도 차별받는다l  직업환경의학전문의 김길동

34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지하철계의 막장, 나는 도시철도 기관사입니다.  최민

38

문화읽기

노동자의 희망을 노래하라

- 2013 이용석 가요제 참가기  l  푸우씨

40

현장의 목소리

작업중지권이 꼭 필요한 이유  l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조직차장 하해성

42

유노무사의 상담일기

더불어 여(l  노무법인 필 유상철

44

이러쿵저러쿵

한노보연 마라톤(!) 동호회 run KILSH를 소개합니다  l  최민

46

사진으로 보는 세상

Stop 돈벌이병원! Start 착한병원l  의료연대 서울지부 서울대병원분회 조직부장 우지영

47

성명

삼성반도체 백혈병 김경미 산재인정 판결에 대한 근로복지공단의 항소를 강력히 규탄한다. 국민 모두의 염원을 짓밟는 근로복지공단은 해체하라.

48

후원

11월 후원회비를 납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연구소 리포트] 철강업종 노동자의 교대제 및 건강영향 실태조사 연구 / 2013.9·10

 철강업종 노동자의 교대제 및 건강영향 실태조사 연구

 

* 한노보연에서는 올해 2월부터 8월까지 금속노조와 함께 철강업종 노동자의 교대제 개선을 위한 실태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설문조사 방식의 연구 결과를 [일터] 2번에 걸쳐 연재합니다.

 

I. 연구의 배경과 목적

철강업종은 대표적인 장치산업으로 경영의 효율성을 위해 교대근무로 24시간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국내 철강 대기업들은 43교대제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데, 최근 자동차 업종의 심야노동 철폐와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변화의 바람이 철강업종에도 일고 있다. 올해 모두 금속노조 산하 지회로 전환하면서 산별 통합을 이룬 현대차그룹 계열 철강사업장들에서 현대기아차의 주간연속2교대제변화에 맞추어 교대제 변경에 대한 요구가 일고 있으며, 현대제철에서는 53교대 도입을 지난 임단협 요구안의 하나로 상정한 바 있다.

올해 금속노조 철강업종분과에서는 53교대와 같은 교대제 개선을 2013년 임단협 핵심 공동요구안의 하나로 상정하였고, 그 근거마련을 위한 실태조사를 계획하였다.

연구소는 우선 이번 조사에서 철강 노동자의 교대노동 실태를 파악하고, 오랫동안의 교대노동이 노동자의 몸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확인하여 그 핵심적 원인이 자본의 필요에 부응하는 교대제 방식에 있음을 밝히려 하였다. 또한, 이번 조사를 통해 현장의 요구와 필요가 더욱 커지고 그 목소리가 모인다면, 앞으로 보다 체계적인 연구 활동을 통해 대안적 교대근무 변경을 위한 본격적인 사업이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II. 연구의 방법과 내용

본 연구조사는 설문조사를 주축으로 진행하였다. 설문의 주요 내용은 근무형태와 노동시간 / 사회경제적 생활 및 여가 생활 / 교대근무로 인한 건강영향 / 사고 경험 / 노동강도 / 교대제 관련 인식조사 등이었다.

 

III. 설문조사 결과

1. 설문 참여자 분포 및 특성

- 본 조사에는 금속노조 철강사업장 중 6개 지회(현대제철 인천지회, 현대제철 포항지회, 충남 현대제철지회, 현대하이스코 당진지회, 현대하이스코 순천지회, 현대비앤지스틸지회)

 참여하였다. 7,441명 중 2,468명이 설문에 참여하였으며, 참여율은 33.2%였다




2. 근무형태와 노동시간

1) 근무형태

- 설문 참여자 중 교대근무자는 84.3%였고, 주간고정근무자의 비율은 15.7%였다. 교대근무자의 93%43교대로 일하고 있었다.

2) 노동기간

철강업 총 교대근무기간은 평균 10.5, 20년 이상 교대근무를 한 비율은 18.4%에 달했다.

3) 노동시간

- 최근 3개월 동안의 1일 평균 노동시간은 8.3시간, 한 달 노동시간은 187.5시간, 한 달 잔업시간은 22.5시간, 한 달 대근 횟수는 2.5, 한 달 특근 횟수는 2.3회였다.

- 지회별로 초과노동의 정도에 따라 한 달 노동시간은 최저 160시간~최고 286시간으로 차이가 커졌다. 하이스코 순천/당진지회의 한 달 노동시간이 긴 편이었다.

 





3. 사회 경제적 생활 및 여가생활

1) 임금

- 세금을 포함한 1년간 총임금은 평균 6,962만 원이었다. 지회별로 임금 차가 심했는데, 현대제철 포항지회(7,617만 원)와 비앤지스틸지회(5,304만 원)2천여만 원의 차이가 있었다.

- 지회별로 연봉 중 잔업·특근 수당이 차지하는 비율 차이도 심하였다. 하이스코 당진지회가 12.8%(67.7만 원)로 가장 높았고, 비앤지스틸지회가 6.4%(28.4만 원)로 가장 낮았다.

2) 생활의 만족도

- ‘집안일(가사 및 육아)과 가족관계에 만족한다는 응답은 70.4%로 만족도가 비교적 높았지만 사회생활 및 여가생활에 만족한다는 응답은 44.3%, ‘경제적으로 만족한다는 응답은 48%로 절반이 안 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 교대근무자가 모든 영역에서 주간고정노동자보다 생활만족도가 낮고 불만족도가 높았다. 생활만족도는 사회적 건강을 알 수 있는 지표들 중 하나인데, 특히 사회 및 여가생활과 경제적 필요 충족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나 교대근무자들의 사회적 건강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으로 판단되었다.

- 노동시간에 따른 생활만족도 분석에서 노동시간이 짧을수록 전반적인 생활의 만족도가 높았다.




4. 교대제로 인한 건강영향

1) 수면 건강

변수

주간고정근무

 

교대근무자

 

주간 근무시

저녁 근무시

야간 근무시

평균 입면 소요시간

()

26.2

31.4

37.6

36.3

평균 실제 수면시간

(시간)

6.4

6.1

6.7

5.8

필요한 평균 수면시간

(시간)

7.6

7.7

7.7

8.1

평균 잠을 깨는 횟수

()

1.8

1.7

1.7

2.5

주관적인 수면의 질

(대체로 나쁘다+아주 나쁘다) (%)

32.8

40.8

41.4

84.4

수면 중 잠을 깨는 경우

(%)

72.6

66.2

69.6

92.2


<교대 시간대에 따른 근무형태별 수면 실태 분석>


종합적인 수면 건강의 지표라 할 수 있는 주관적인 수면의 질은 주간고정근무 교대(주간) 교대(저녁) 교대(야간)로 갈수록 악화하였다. 야간 노동이 수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뚜렷하게 드러난 셈이다.

- 평균 수면 시간은 교대 근무자가 야간 근무 때에 평균 5.8시간으로 가장 짧았고, 필요 수면시간을 묻는 설문에서도 8.1시간의 수면 시간이 필요하다 하여 실제 수면 시간보다 2.3시간이나 더 필요하다고 응답하였다.

- 누워서 잠들 때까지 걸린 시간은 주간고정근무자의 경우 26.2분인데, 교대근무자는 35.1분으로 교대근무자가 더 잠들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교대근무자들 내에서도 특히 저녁이나 야간 근무때 잠드는 것이 더 힘든 것으로 나타났다.

- 교대 근무자 중 야간 근무때 잠을 깬다고 응답한 비율이 92.2%에 달했고, 수면 중 잠을 깨는 횟수도 평균 2.5회로 수면의 질이 뚜렷하게 나빴다.

- 교대 근무자는 잠들기 위해 음주할 가능성도 높았다. 지난 한 달간 잠들기 위해 음주한 경험이 주 1회 이상이라는 응답이 거의 40%에 달했으며, 3회 이상이라는 응답도 12.4%에 달해 수면 장애로 인한 알코올 의존도 우려되었다.

- 응답자의 47.3%에서 중등도 이상(불면증 자가진단점수 15점 이상)의 불면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한 불면증(불면증 자가진단점수 22점 이상)도 응답자의 15.2%에서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2011년 금속 수면연구보다 입면 소요시간, 실제 수면시간, 주관적인 수면의 질, 수면을 위한 음주, 불면증 등의 항목에서 수면의 질이 더 떨어지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다음호에는 정신적·육체적 소진, 노동강도, 교대제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 등에 관한 내용이 실릴 예정입니다






[특집] 사진으로보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10년 / 2013.9·10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번 일터 특집에서는 연구소 창립 10주년을 맞아 이윤보다 노동자의 몸과 삶을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활동해 온 지난 10년의 발자취를 돌아보고자 했습니다. 사진과 함께 연구소 성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시죠~^^

 

사진으로 보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10 

  선전위원회

 

 


  1. 창립까지의 과정 (이훈구)

1998IMF 경제위기를 거치며 노동자에겐 폭력적인 구조조정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생산라인은 U자로 바뀌었고 컨베이어 속도는 야금야금 높아졌습니다. 인력은 줄고 작업량은 늘었습니다. 최소한의 안전조치도 뒷전이 됐고, 기초질서 지키기 등 현장통제는 강화됐습니다. 노동자 쥐어짜기는 더욱 노골적이었습니다. 자본은 위기를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전가하며 이윤을 확보했습니다. 그 결과 일터는 참혹한 골병과 죽음의 현장이 됐고, 노동자는 기계처럼 일할 것을 강요당했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 반복되는 작업으로 몸은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하지만 구조조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동자들은 알아서 기어야 했습니다.

 

2000년 초부터 더 이상 일하다 병들고 죽을 수 없다는 각오로 대우조선, 풀무원, 두원정공 등 개별현장에서 투쟁을 벼르기 시작했습니다. 2002년 경총 앞 노동조합, 노동보건단체, 정치사회단체 등이 산업재해 대책 마련 촉구를 위한 공동 집회를 열고 노동자의 골병과 죽음에 대해 자본의 책임을 물었습니다. 더 이상 일하다 병들고 죽지 않기 위해, 강화된 노동강도에 맞선 전면적 반격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한 공감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20031월 대전 경하장에서 12일로 노동보건연대회의가 주최한 노동강도 강화저지 투쟁을 위한 전국수련회를 가졌습니다. 전국의 동지들이 모여 노동강도 강화저지를 위한 공동요구안, 구체 대응방안, 공동투쟁 방안 등에 대해 현장의 현실과 고민 그리고 해결방안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강도 맞은 노동을 되찾기 위한 실천을 모색하였습니다. 이는 노동강도 강화와 근골격계 직업병 대응이라는 책자 발간으로, 현장 곳곳의 집단요양투쟁으로 번졌고 골병과 산재사망은 자본과 정부의 책임이라는 것을 보다 명확히 했습니다.

당시 설정한 고용, 임금, 노동시간, 작업방법, 작업량, 노사관계 등 노동강도와 관련한 전면적인 유연화 공세에 맞서기 위한 현장정치 복원이라는 과제는, 2013년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2. 근골격계 집단요양투쟁 (김재광)

200351, 무더운 봄. 113주년 세계노동절 대회에 그동안 보지 못한 시위대가 출현했습니다. ‘노동강도 강화 저지와 현장투쟁승리를 위한 전국노동자연대가 주관한 집회 대오였지요. 노동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들의 영정을 들고 죽음과 골병의 현장을 막연한 어느 때가 아닌, 지금 당장멈출 것을 촉구했습니다. 인도에서 구경하던 시민들이, 무엇을 당장 멈춰야 하는지 묻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현장노동자가, 이토록 많은 영정을 들고 독자 대오를 형성해 거리행진을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음영으로 표현한 고인의 영정에는, 사망일시와 사고발생 원인, 사업장이 담겼습니다. 고인들을 앞세우는 것이기에 결코 허투루 할 수 없어, 생전 기록을 하나하나 일일이 찾아내 영정을 만드느라, 며칠 밤을 새우며 많은 동지가 애썼습니다. 이렇게 최초의 대규모 영정시위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2002년부터 터져 나온 근골격계 직업병 집단요양 투쟁이 있습니다. 살인적인 노동강도로 인한 현장의 전염병, 근골격계 질환을 한국 사회가 주목해야 할 사회적 의제로, 현장이 반드시 조직해야 할 고통/과제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 투쟁을 계기로 전국의 현장 노동자, 노동안전보건활동가가 오랜만에 의기투합해 전국투쟁을 도모합니다. 영정 시위는 그 투쟁의 하나였습니다. 참으로 무더웠지만, 벅찬 순간이었습니다.

 

  

3. 20031024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창립 (김재광)

20031024, 지금은 용산개발로 사라진 철도웨딩홀에서 연구소 출범식이 열렸습니다. 웨딩홀이 출범 장소가 된 이유는 철도노조가 관리하던 곳이라 저렴했기 때문이었죠(^^). 158명이 연구소 창립의 발기인이었는데, 그 동지 중 일부는 현재 연구소 성원이고요, 다른 동지들도 대부분 각자의 공간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연구소 출범은 한국노동안전보건운동에 있어 하나의 역사이자, 성과입니다. 연구소의 출범은 단순히 연구소의 성원들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연구소 창립은 투쟁으로 성장한 전국의 현장노동자와 노동안전보건활동가의 헌신과 바람의 결실이었습니다. 사진 속 동지들이 10년 전 그때와 같이 쌩쌩하지는 않지만, 연구소 창립선언문의 정신은 지금도 여전히 명징하고 팔팔합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모든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 조건을 쟁취하고, 노동자 스스로 작업장을 통제하여 진정한 노동의 주인으로 설 수 있는 그날까지 쉼 없이 투쟁할 것이다 

 

 

4. 집단 산재인정을 위한 하이텍알씨디코리아 투쟁 (김재천)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에 위치한 하이텍알씨디코리아(이하 하이텍)에서 자행된 악랄한 노동조합 탄압으로, 13명의 조합원 전원이 집단 정신질환 직업병을 얻었습니다. 2005년 여름 하이텍 노동자와 노동안전보건활동가들이 산재인정을 위해 근로복지공단에 모였고, 사진에 보이는 4인의 대표단은 근로복지공단 정문에서 40여 일 넘는 시간 동안 노숙 단식투쟁을 전개했습니다. 당시 많은 연대 동지들이 500인 동조 단식 투쟁을 비롯해 다양한 방식으로 투쟁에 동참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동조 단식 투쟁은 당시 처음 기획한 생소한 투쟁이었어요.

밤새 차량 경적과 모기와 싸우는 것에 익숙해지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 40여 일 이라는 시간 동안, 물만 먹고 싸워야 했던 고통은 지금까지 생생합니다. 그렇지만 함께한 동지들이 있어 우리 투쟁은 즐거웠습니다.

 

 

 5. 한국 사회에 교대제 노동의 폐해를 알리다. (공유정옥)

2004년 연구소 회원들과 몇 개 사업장 노동자들이 모여 교대제의 문제와 대안을 함께 공부하고 토론했습니다. 그리고 20064대 실천 의제 중 하나인 교대제로부터 생명 지키기활동의 연장선에서, 2007[교대제 무한이윤을 위한 프로젝트]란 책을 출판합니다. 책을 제작하며, 교대제가 노동자의 몸과 정신,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관련 자료 수집, 외국어 자료 번역 등, 책을 하나 만들어내는 일이 그렇게 힘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러나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책이 당시 문화관광부가 지정한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어 각급 도서관에 쭉 깔렸다는 소식에 무척 기뻤던 순간도 생각납니다.

책이 나온 몇 년 뒤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최초로 수면장애를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기아자동차 노동자를 우연히 만났는데, 그분이 제게 말하기를, “산재신청을 위해 온갖 자료를 다 읽어봤는데, 우리 노동자 시각에서 쓴 가장 훌륭한 자료는 이 책이다. 꼭 읽어봐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말씀드렸죠, “그 책 저희가 만들었어요~^^”

지금도 교대제 개선을 고민하는 노동자들이 종종 묻습니다. 몇 조 몇 교대로 바꿔야 좋은 거냐고. 하지만 이 책에서 강조하듯이 좋은 교대제는 없습니다. 교대제 안에서 상대 비교를 한다 해도, 몇 조 몇 교대인지만 봐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교대제 문제는 결국 시간 혹은 노동자의 삶에 대한 지배력을 누가 얼마나 어떻게 갖느냐의 문제니까요.

 

 

 

6. 세상에 나온 삼성 반도체 노동재해 (공유정옥)

20074월 고 황유미의 아버지 황상기 씨가 삼성 반도체 노동재해 문제를 세상에 알렸습니다. 이를 계기로 연구소는 이 사안은 최소 10년간의 투쟁이 필요한 싸움이며, 삼성 반도체뿐 아니라 전체 전자산업에 있어 중요한 문제임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해 1120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사망사건 진상규명 및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발족에 함께하며 기자회견을 통해 세상에 삼성 반도체 노동재해 문제를 내놓았습니다. 이때 들은 바로는, 1984년 기흥공장이 만들어진 이래 최초의 집회(?)였다고 합니다.

그때 싸우고자 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만 있더라도 함께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물론 몇 사람의 백혈병 피해자가 더 있다고 듣긴 했지만, 당시는 정말 딱 황상기 씨 한 분만 계셨거든요. 더 많은 피해자를 조직해야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백 명이 넘고 이백 명에 육박하게 될 거라고는. 그런 끔찍한 상상은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7. 지역 운동체로서의 노둣돌 (손진우)

연구소 창립 5년이 흐르며, 무르익은 고민 중 하나가 노동자 건강권운동 확장을 위해 지역 운동체로 거듭나기였습니다. 08년 하반기 경기 수원지역에 또 다른 공간을 마련하게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최근 서울, 경기, 부산지역에서 노동안전보건의 고민을 갖고 노동현장과 시민사회, 지역운동과 다양한 사안/의제로 만나 교류, 연대하는 활동이 확대/심화한 게 아마 이런 고민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8. 국제연대운동의 한 주체가 되기 위한 발돋움 (이숙견)

20135, 생산품 도난방지를 이유로 굳게 잠긴 작업장에서 일하다 화재 발생으로 188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케이더 화재 참사 20주년을 추모하고 20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아시아 지역의 참혹한 노동안전보건의 실태(전자산업피해, 석면피해, 화재참사 등)와 이를 바꾸는 방안 (법률지원, 피해자조직화, 국제공동행동)을 마련하고자 태국 방콕에서 2년 만에 개최된 안로브 회의에 참석해 인사를 나누는 사진입니다.

아시아 노동재해. 환경재해 피해자 네트워크인 안로브(ANROEV, Asia Network for Right of 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Victims)회의는 2008년 삼성 백혈병 문제를 알리기 위한 계기로 참석한 이후 연구소에서 꾸준히 결합 중입니다. 전자산업의 유해위험성이 전 세계적으로 드러나며, 국제연대활동의 필요성에 공감이 커지며 연구소도 본격적인 국제연대운동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연구소는 다양한 국제회의 참석과 공동활동, 석면추방활동 등을 통해 국제연대운동의 한 주체로 자리매김해 왔는데요, 2012년부터 국제 연대팀을 구성, 가동 중이라 활동이 더욱 활발해질 것 같아요. 현재는 인도네시아 바탐지역의 전자산업 노동조합과의 연대, 전자산업노동자와 함께 하는 국제공동행동을 준비 중이고, 긴 안목으로 다양한 국제운동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9. 세상을 움직인 반올림 (이종란)

2011623일 삼성반도체 백혈병에 대한 역사적인 판결 선고 직후, 법정 밖에 대기하던 수 십 명의 기자에게 둘러싸여 판결 결과에 대한 소회를 말하는 순간입니다. 이날 서울행정법원은 고 황유미, 이숙영 씨의 백혈병은 산업재해라고 판결하지만, 나머지 세 분, 고 황민웅, 김은경, 송창호 님에 대해서는 증거부족으로 기각한다고 판결합니다. 산재신청 이후 4년 만에 받아낸 산재 인정 판결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한편 증거부족으로 산재 인정 판결을 받지 못한 세분 때문에 억울한 감정이 북받쳤습니다.

 

목이 메서 말을 하기 힘든 와중에 계속해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했던 것 중, 이런 말이 기억납니다. “아픈 노동자와 유족에게 증거를 요구하는 현재의 산재 제도는 시급히 바뀌어야 합니다

 

반올림은 삼성에 맞서, 기적 같은 승소를 이끌었다고 세상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산업재해를 노동자가 입증해야 하는 구조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10. 10년 이후의 연구소를 그리며 (김정수)

2012년 연구소 총회에서, “십 년 뒤 나는? 십 년 뒤 우리는?”이라는 주제로 회원 각자가 생각하는 자신과 연구소의 전망에 관해 얘기를 나눴습니다. 연구소의 전망에 대한 회원들의 생각이 독창적이고 기발했는데 명실상부한 전국조직 연구소, 국제적인 조직 연구소, 의료기관등 몇 가지 공통된 키워드가 제기됩니다. 연구소는 이때 나온 회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바탕으로 더 구체적인 전망을 마련하였고 두 번의 지역별 회원 토론을 거쳐 2013년 총회에서 연구소의 전망을 확정합니다. 의료기관을 기반으로 지역과 현장에서 노동안전보건운동의 새로운 흐름을 모색하고자 하는 (가칭) 노동안전보건센터, 노동시간에 대한 연구와 학습을 통해 심야노동 철폐, 노동시간 단축 등 노동자들의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이를 사회화하고자 하는 노동시간센터(), 아시아, 더 나아가 전 세계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국제연대활동이 바로 그것입니다. 지금 연구소 전망을 현실화하는데 한 발짝 다가서고 있습니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 이야기] 배치전 건강진단의 역설 / 2013.9·10

배치전건강진단의 역설   

한노보연 류현철

 

토요일 오전 문진을 위해 진료실 문을 들어선 50대 노동자는 사뭇 긴장된 표정에 연신 두 손을 부벼대고 있었다. 조선소에 입사하기 위해 배치전건강진단을 받으러 오셨는데 청력검사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56세의 노동자는 대형 조선소의 협력업체에서 중조립 단계에 해당되는 판넬 작업에 18년간 종사해왔으며 경력이 쌓이면서 주로 현장 작업관리를 담당해 왔다. 이전 일하던 회사에서 일거리가 없어서 한참동안 일을 쉬고 있다가 다른 조선소의 협력업체로 일거리가 들어와 취직을 하려고 보니 건강진단결과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다른 기관에서 배치전건강진단을 받아보니 청력에서 소음성난청 요관찰대상자(C1) 판정을 받았고, 4kHz에서의 청력역치가 65dB이상으로 나와 회사로부터 취업이 불가능 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우리 병원을 찾아서 다시 검사를 받았는데 여전히 같은 결과가 나온 것이다. 아직 대학을 끝마치지 못한 자식을 둔 아버지에게 직장을 잃는다는 것의 의미는 한숨 속에 진료실 천장과 바닥을 번갈아 응시하는 그의 멍하고 불안한 시선이 대변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조선소의 선박건조 업무는 대부분을 협력업체 통해서 이루어진다. 수주된 배가 건조되거나 혹은 해당분야의 공정이 끝나고 나면 협력업체를 통해 고용되었던 노동자들은 다시 뿔뿔이 흩어져 새로운 일감을 찾아 이곳저곳으로 직장을 옮기게 되는 것이 보통인지라 몇 개월 만에 일터가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직장을 옮기는 과정에서 회사는 보통 배치전건강진단을 요구한다.

사실 배치전건강진단이라기 보다는 이전에 폐지된 채용시 건강진단이 오히려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과거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사업주에게 채용시 건강진단을 실시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사업주가 건강상의 문제가 있는 사람들의 고용기회를 제한하는 것으로 잘못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하여 사업주의 의무조항을 2006년에 폐기하였고 채용이 결정된 이후에 특수건강진단 대상업무에 종사할 근로자에 대하여 배치 예정업무에 대한 적합성 평가를 위하여배치전건강진단을 실시하도록 규정하였다.

그러나 고용기회의 제한 및 규제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던 취지는 간데없고 채용전건강진단의무의 폐지

는 기업의 규제를 완화시켜주는 기능을 했을 뿐 배치전건강진단으로 이름만 바꾼 채 배제의 수단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조금만 검색을 해보면 조선소 취업을 소개하는 각종 인력업체가 입사에 요구되는 건강진단결과의 판정기준 대한 안내를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표 참고). 직업 의학적으로 보았을 경우에 입사 후에 최소한의 적정 관리만 이루어지면 업무에 아무 지장이 없는 수준의 검사결과에 대해서도 취업의 기회를 박탈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마땅히 사업주가 부담해야할 건강진단 비용도 회사에 취업이 되어 3개월 이상 근무하게 되면 환급해주고 취업이 불가능해지면 그마저도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소음성난청 요관찰대상이기는 하나 적정 보호구를 착용하고 관리한다면 업무에 지장이 없다는 업무 적합성 평가서를 써줄 수 있다고 했으나, 그의 낙담한 얼굴은 밝아지지 않았다. 협력업체를 옮겨 다닌 것도 건강진단에서 그의 청력에 이상이 나타난 것도 이미 오래전부터의 일이라 했다. 별문제 없이 직장을 옮겨 다니다가 수년 전부터는 소음성 난청 요관찰 대상자라는 판정에 대해 전문의로부터 업무에 지장이 없다는 소견서를 받아오라고 했고, 최근에는 전문의의 업무적합성 소견서마저도 소용이 없게 되었고 판정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무조건 취업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따위 현실은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개인의 직업과 미래의 계층을 미리 결정하는 시대를 그렸던 10년도 훨씬 전에 만들어진 헐리웃 영화 이야기와 맞물려 불쾌한 기시감을 일으킨다.

각종 직업성 질환의 인정기준에 대한 연구가 역으로 그러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례에 대한 직업병 인정의 배제기준으로 작용해왔던 것과는 또 다른 방향으로 노동자들의 건강을 지키고 적정 배치하고자 하는 건강진단이 오히려 취업에 있어서 차별과 배제의 기준이 되는 현실이라니. 또 한 번 한숨과 함께 진료실 문을 나서는 노동자의 어깨에는 벌써부터 닥쳐올 생활의 무게가 이미 천근처럼 올라앉은 듯 축 처져있었고 그의 낮은 탄식과 한숨은 무기력한 전문가의 귓전에서는 90dB을 넘어 치솟는 굉음처럼 울린다.

 

P.S. 이래저래 뒤져보니 산업안전보건법상 배치전건강진단의 의무조항이 사라졌다고 해서 회사에서 자체적인 기준을 두고 건강진단을 하는 것을 모두 불법으로 볼 수는 없단다. 특수한 상황에 따른 채용기준을 두는 것은 허용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가 특수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일지... 고용정책기본법(취업기회의 균등한 보장)이나 국가인권위원회법 등의 규정조건도 살펴봐야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