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중지권 판결 사례와 과제
중대재해 예방과 작업중지권 실현을 위한 ‘당장멈춰’ 팀
작업중지권 행사와 형법상 업무방해죄
산업안전보건법 제26조는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을 보장한다. 작업중지권과 관련된 각 주체의 권리・의무관계를 보자. 노동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권리가 있고, 이 사실을 지체없이 직속 상급자에게 보고하여야 한다. 직속 상급자는 보고받은 후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사업주는 위의 경우 작업을 중지시키고 노동자를 대피시키는 등 필요한 안전・보건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고, 그 이에에 작업을 재개할 수 있다. 사업주는 노동자가 급박한 위험이 있었다고 믿을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을 때 작업중지를 이유로 해고 등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되고, 이를 어길 시 사업주는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결국, 노동자가 작업중지권을 행사한 경우 ‘합리적인 근거’가 있었는지가 쟁점이 된다. 합리적 이유가 없다면 노동자는 징계책임을 질 수 있다. 그리고 작업중지 시간만큼의 임금공제 및 작업중지로 발생한 손해배상 등 민사책임을 질 수 있다. 아울러 업무방해죄의 형사책임을 질 수 있다. 책임의 범위별로 나누어보면, 일반적으로 징계책임이 가장 범위가 넓고 민사책임, 형사책임 순서로 범위가 좁아진다. 즉 징계책임이 가장 쉽게 인정될 수 있고, 민사책임, 형사 책임으로 갈수록 책임인정이 어려워진다. 형사책임이 인정되면 다른 책임은 인정된다고 보아도 무방하나, 형사책임을 면하더라도 징계 및 민사책임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아래에서는 형사책임 즉 노동자 무죄 사건을 소개하는바, 위와 같은 점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작업중지 시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경우 노동자가 지는 책임
업무방해죄는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경우에 성립한다(형법 제314조 제1항). ‘위력’이라 함은 사람의 자유의사를 제압·혼란케 할 만한 일체의 세력을 말한다. 대법원에 따르면 실제로 자유의사가 제압될 필요는 없고, 제압될 추상적 위험성만 있다고 평가된다면 업무가 ‘방해’되었다고 본다. 이를 업무방해의 “구성요건”이라고 한다. 그러나 빠져나갈 구멍은 있다. 형법 제20조는 정당 행위의 경우 즉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경우, 비록 업무가 방해되었더라도 위법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이하 “위법성 조각사유”). 대법원은 이를 “법질서 전체의 정신이나 그 배후에 놓여 있는 사회윤리 내지 사회통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는 행위”라고 하며, 구체적으로 “행위의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 행위의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 보호법익과 침해법익과의 법익 균형성, 긴급성, 그 행위 외에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다는 보충성 등의 요건”을 갖춘 경우를 정당행위라고 한다. 검찰은 구성요건 및 위법성 조각사유를 모두 증명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를 작업중지권 행사에 대입해 보자. 검찰은 노동자가 작업을 중지한 것이 사업주의 자유의사가 제압・혼란될 위험이 있다고 본다면 업무방해죄로 기소할 것이다. 그리고 검찰은 작업중지가 정당행위에 해당하는지 또한 고려하여야 하지만, 실제 판단은 대개 법원에서 이뤄진다. 작업중지가 형법상 정당행위에 해당한다면 무죄 판결을 내릴 것이다.
판결 사례
사건1: 수원지방법원 2010. 5. 19. 선고 2009고단5228 판결, 대법원 확정, 기아차 화성공장 사건1 조립1부 하체3반, 2009. 6. 10. (중지시간: 18:34-19:30) 18:04경 연료탱크가 컨베이어에서 장착 작업 리프트 내로 약 30도 기울어진 상태로 불완전 이송되어 차체 하부와 연료탱크가 맞물리자 관리자가 생산라인을 중단시켰다. 관리자는 원인을 파악하지 않은 채 18:34경 라인을 재가동했다. 노조 대의원 A는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는 이유로 19:30경까지 작업을 중지시켰다. 한편 같은 사고가 전날에도 발생하였으나 원인 규명은 없었다.
사건2/3: 같은 법원 2010. 11. 3. 선고 2010고단1672 판결, 대법원 확정, 같은 공장
사건2 조립2부 도어B반, 2009. 10. 22. (중지시간: 15:45-16:28) 노동자 X는 15:38경 도어 모듈 취부작업 중 모듈이 잘 빠지지 않자 힘을 주어 빼다가 모듈이 턱에 부딪혀서 전치 2주로 얼굴부위가 찢어지는 상처를 입어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생산라인은 일시 중지되었다. 관리자는 단순실수이며 ‘아차사고’라는 이유로 대의원이나 산업안전보건위원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은 채 라인을 재가동했다. 산업안전보건위원 B는 ‘안전사고’임을 주장하며 대책회의 등 절차를 거친 다음 작업을 재개해야 한다는 이유로 15:45경부터 16:28경까지 작업을 중지시켰다. 한편 사업주측이 일방적으로 작성한 회의록에는 도어 모듈 부분에 문제가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사건3 조립2부 도어B반, 2009. 10. 28. (중지시간: 22:20-24:00) 21:50경 유리창이 손괴되어 라인이 일시 중단되었다. 관리자는 ‘안전사고’가 아니고 다친 사람도 없으므로 청소 후 라인 재가동할 것을 주장했다. 산업안전보건위원 B는 이는 ‘안전사고’이므로 대책회의 등 절차를 거친 다음 작업을 재개해야 한다는 이유로 22:20부터 24:00까지 작업을 중지시켰다. 같은 사고가 발생한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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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1의 경우 법원은 A로서는 같은 사고가 전날에 이어 반복하여 발생했고, 원인이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을 계속하면 작업자가 다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았다. 아울러 해당 사업장에는 라인이 중단되었을 경우 노사가 원인 파악 및 대책 마련을 위한 협의를 하고, 협의를 통하여 작업자가 이해하거나 동의할 경우 라인을 재가동해왔던 관행이 있음에도, 그러한 관행을 준수하지 않은 관리자의 작업재개 지시를 거부한 것은 사회상규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사건2의 경우 실제로 노동자가 상해를 입었고 사건3의 경우 노동자가 다치지는 않았으나 유리창이 차량에 장착되기 이전에 파손될 경우 그 파편이 튀어 작업하던 동료가 다칠 가능성이 있어 두 경우 모두 ‘안전사고’라고 보았다. 아울러 사건2, 사건3의 경우 사건1과 마찬가지의 관행이 있었으나 관리자가 이를 존중하지 않고 작업을 재개하였으므로, B로서는 이 사건 각 사고의 원인 및 대책에 대하여 의견을 모으고 사고 발생 사실을 알림으로써 계속하여 유사한 안전사고의 발생을 방지하고 근로자들의 주의를 환기하기 위하여 이러한 행동을 하였다고 보아 사회상규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결국, 세 사건 모두 정당행위에 해당하여 위법성이 없어 무죄라고 보았다.
어떤 경우에 정당행위로 무죄가 되는가?
작업중지권 행사가 무죄판결을 받으려면 정당행위의 요건인 “행위의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 행위의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 보호법익과 침해법익과의 법익 균형성, 긴급성, 그 행위 외에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다는 보충성 등의 요건”을 갖춰야 한다. 법원이 위 사건들을 판결할 때, 위 요건을 빠짐없이 요구하고 그에 따라 판단한 것은 아니다. 다만 아래에서는 판례가 제시한 정당행위의 틀에 따라서 사건을 분석・평가한다.
우선 행위의 동기 및 목적의 정당성을 보자. 이는 작업중지권 행사에서 다른 동기나 목적이 주된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동기나 목적은 ‘마음속의 생각’이므로 결국 산업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충분한 상태였음을 밝힘으로써 간접적으로 증명된다. 법원은 노동자 유죄를 선고한 사건에서 노동조합 대의원이 라인별 생산 인원이 부족하다며 관리자에게 가동중단을 요구하였으나 거부당하자 임의로 작업을 중지시킨 것을 두고 ‘작업자의 생명·신체에 대한 급박하고도 심각한 위험’이 없었음을 들어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하였다(대법원 2004도8530 판결). 결국 생산 인원의 부족은 정당한 사유가 안 되며, 산재 발생의 구체적 가능성이 필요한 것이다.
법원은 위 가능성이 산안법상 작업중지권 행사요건인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과 같은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징계/민사책임에 비하여 형사책임이 더 엄격하게 지워짐을 고려한다면, 산안법상 ‘급박한 위험’의 정도에 이르지 않더라도 형사책임을 면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행위의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을 보자. 수단의 상당성(적합성)은 목적을 이루기에 적합한 것이면 충분하다. 방법의 상당성에 대해서는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여러 수단이 있다면 그 중 과도하게 상대방의 법익을 침해하는 방법을 택하면 안 된다는 의미로 새겨볼 수 있다. 사건의 경우 모두 작업중지 이후 사업장을 이탈하지 않고 분임 토의장에서 설명 및 토론이 있었으므로 작업재개 시 즉시 복귀가 가능했고, 작업중지 시간 또한 필요 최소한 정도로 추정되는바, 방법의 상당성을 충족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한편 사건에서 문제가 된 사업장에서는 단체협약에서 ‘안전사고’의 경우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작업중지 조치를 할 수 있게끔 되어 있다. 그러나 세 사건 모두 단협상의 절차요건 및 행사주체 요건도 충족하지 않았어도 정당행위가 인정되었다. 따라서 단체협약이 요구하는 절차를 준수하지 않더라도 방법의 상당성이 인정될 수 있다.
법익 균형성 및 긴급성을 보자. 법익 균형성이란 지키고자 하는 법익이 제한받는 법익보다 더 우월해야 함을 뜻한다. 작업중지권의 경우 사람의 생명 및신체의 안전과, 사업주의 사업장에 대한 지배통제권(경영권)이 충돌한다. 사건1의 경우 같은 유형의 사고가 전날 발생했으나 사람이 다친 것은 아니었다. 사건2의 경우 사측이 모듈에 결함이 있음을 인정하였으나 같은 유형의 사고가 발생했던 적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건3은 같은 유형의 사고도 없었고, 사람이 다친 경우도 아니었다. 즉 법원은 반드시 사람이 다친 이후이거나 이전에 같은 유형의 사고가 있어야만 법익균형이 충족되는 것은 아님을 밝혔다. 한편 긴급성이란 법익침해의 위협이 예상되어 긴급한 조치가 필요한 경우로 해석할 수 있는바, 이 또한 반드시 이전에 같은 유형의 사고가 있었거나 사람이 다쳐야만 긴급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보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보충성이란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다른 수단이 가능했다면 그 수단을 써야 한다는 의미로 새겨볼 수 있다. 세 사건 모두 ‘사고의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이 재개되었고 따라서 어떠한 시정조치 또한 없었다. 그러므로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없었으므로 작업중지권 행사는 불가피하였다.
정리해보자. 동기 및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려면 객관적으로 산업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상태여야 한다. 행위의 수단 및 방법의 상당성에 있어 작업장을 무기한 이탈하는 등의 과도한 방법을 사용하기보다는, 분임 토의장 등의 장소에서 대기하다가 원인이 규명되고 적절한 조치가 있으면 곧바로 복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단협상 행사 절차 및 주체요건을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 법익 균형성 및 긴급성의 측면에서, 동종 사건이 있었거나 사람이 다쳐야 하는 것은 아니고, 산재 발생 가능성이 있다면 위 요건이 충족된다. 마지막으로 사업주 측이 객관적으로 이해할만한 원인 규명 및 재발방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작업중지를 계속하여도 무방하나, 위 조치가 있는 경우 즉시 복귀해야 한다. 대상 판례들은 정당행위의 범위를 비교적 넓게 보아 작업중지권 행사를 충분히 보장함으로써, 노동자의 생명권과 건강권을 보장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만하다.
아쉬운 점은 있다. 대상 판례들은 작업중지권 행사가 당연히 업무방해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우리 헌법은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래서 대법원은, 쟁의행위가 곧바로 업무방해의 구성요건을 충족시키는 것으로 본다면 헌법상 권리행사에 위축을 가져온올 수 있기 때문에, 쟁의행위가 “전후 사정과 경위 등에 비추어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져 사용자의 사업운영에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는 등으로 사용자의 사업 계속에 관한 자유의사가 제압·혼란될 수 있다고 평가(전격성 및 막대한 손해 요건)”될 수 있는 경우에만 업무방해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고 보았다(대법원 2007도482 전원합의체 판결). 생명권 및 건강권은 헌법상 최고의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에 근거를 두는 권리이다. 작업중지권의 행사는 이러한 생명 및 건강을 지키는 것이므로, 작업중지권의 행사 또한 전격성 및 막대한 손해 요건이 충족되어 사업주의 자유의사가 제압·혼란될 수 있는 경우에만 구성요건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든지 또는 그보다 더 좁게 구성요건이 인정되어야 한다.
아울러, 법원은 어떨 때 작업중지권 행사가 정당행위에 포섭되는지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설명을 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노동자는 징계 및 민사책임을 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 또한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설명은 작업중지권의 행사 요건 및 절차 규정을 구체화함에 있어 일정한 기준 역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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