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 노동안전보건 운동, 직업병 예방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 2018.06

노동안전보건 운동, 직업병 예방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문송면·원진레이온 직업병 30년 무엇이 달라졌나]

 아이구 (한노보연 상임활동가)


예방에 앞서 드러나지 않은 직업병을 찾아야 

일하다 노동자들이 다치고 병들며 죽는 현실은 노동존중의 실상을 보여준다. 인권 유린 생명경시 그 자체다. 노동자의 몸, 마음, 삶보다는 이윤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사회구성원들 특히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해야 할 정부는 책임을 다하지 않아 왔다. 자본은 법 뒤에 숨거나 법 자체를 우롱해왔다. 법에 걸리더라도 돈으로 때우면 된다는 식이었다. 아래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금속 및 중금속 중독, 유기화합물 중독, 기타 화학물질 중독으로 인한 사망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  2017년 산업재해 통계 중 질병사망자 현황 (안전보건공단 2017년 산업재해 통계 자료중 인용)


 2017년 정부 통계상 사고 사망자 수는 964명이고, 질병 사망자 수는 993명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사고사망자 수를 질병사망자 수의 14%로 추정한다. 대략 5890명이 직업병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는 여전히 재래형 사고로 인한 재해가 만연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턱없이 부족하고 부실한 업무상 재해 즉 직업병에 대한 인식과 대응 수준을 의미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직업성 암을 비롯한 희귀질환과 뇌심혈관계질환으로 인한 직업성 사망 재해가 심각하게 은폐되고 있는 현실 역시 놓쳐서는 안 된다. 직업성 질환 재해 역시 마찬가지다.

 

직업병 예방을 위한 과제 

산업재해와 직업병에 대한 인식, 제도, 체계, 행동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노동자들이 병들고 다치고 죽는다. 당사자는 물론이고 가족의 삶까지 망가졌다. 참혹한 인권유린과 생명경시의 현실이 지속되어 온 이유는 명백하다. 제대로 바꾸지 않고 생색내기식의 대응을 반복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책임을 제대로 지지 않는다.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것도 규제의 대상으로 삼아서 경제력 강화에 장애가 되지 않는 선에서 해야 한다는 헛소리가 여전하다.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수를 임기 내 절반으로 줄이고, 재해율과 사고율을 낮추겠노라는 말뿐이다. 이 순간에도 노동자들은 다치고 병들고 죽는데 말이다. 

이윤보다 노동자의 몸과 삶을 중시하지 않는다면 안전제일이라는 구호는 거짓이다. 경제와 산업의 필요에 종속된 접근으로는 산업재해로 인한 사회적 경제적 손실을 막거나 줄일 수 없다. 소수의 전문가들에게 의존하기보다는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 각자에게도 스스로의 몸과 삶을 보다 건강하고 윤택하게 할 수 있는 구체적인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턱없이 부족한 보호 예방을 위한 예산과 인력의 문제에 대처해 나갈 수 있다. 또한 직업병을 일으키는 유해위험요인을 실질적으로 없애고 개선할 힘을 갖출 수 있다.

 정부의 책임을 노사자율에 떠넘기는 짓은 당장 멈추고 재해 발생 후 사후약방문식의 대응이 아니라 보호와 예방을 위해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조직의 획기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고용노동부에 기획재정부와 같은 위상의 권한과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 그것이다.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것을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실효성조차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안전보건 관련 사적 시스템을 공적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산업재해와 직업병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 첫걸음은 산업안전보건법을 제대로 만들고 지키는 것을 통해 직업병은 물론이고 산업재해에 대한 보호 예방의 의무를 정부와 사업주들이 다하는 것이다. 특히 유해위험요인이 더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떠넘겨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노동자 스스로도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해 안전 및 보건을 유지하고 증진해야 할 기준을 구체적으로 만들고, 이를 위해 필요한 쾌적한 작업환경에 대한 요구를 분명히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일상적이고 지속해서 사업장의 유해위험요인에 대한 실태를 파악·평가하여 관리·개선하는 권리 주체로 경험과 행동을 쌓아나가는 것에 애써야 한다.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의 경우 관행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검진, 측정, 점검, 근골조사, 위험성평가,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등 일상적인 안전보건 관련 활동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싶다. 



해당 사업장에 납품하는 회사의 노동자들이 처한 유해위험요인을 들여다보고 개선할 힘을 보태는 것도 의미 있는 시도다. 단위 사업장의 벽을 넘어 지역과 업종차원의 산업재해와 직업병에 대한 공동의 대응을 해보면 좋겠다. 산업재해와 직업병으로 위협받는 노동자들의 몸과 삶을 최우선시하고 제대로 지킬 경험과 힘을 키워나갔으면 좋겠다. 우선 산업안전보건법을 제대로 읽어보고, 자신과 현장의 노동을 제대로 보고 기록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노동안전보건 운동의 과제는 인식, 제도, 체계, 실천의 패러다임을 바꾸는데 나름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 싶다. 그 과정에서 대행적인 활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깨 걸고 또 다른 한 걸음을 내딛을 주체들을 만나서 머리를 맞대고 실천하며 힘을 키우는 것. 노동자들과 노동안전보건 활동 관련 주체들이 그 중심에 있다. 현실로 만들기 위한 꿈을 꾼다.

 

2015년의 경우, 암으로 사망한 76855명중 5% 내외가 직업성 암으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한 대한의사협회의 의견을 반영하면 직업성 암 환자의 예상 수는 3500명에 이르지만, 직업성 암으로 인정받은 경우는 35명뿐이었다. 

뇌심질환으로 인한 사망역시 업무관련성 여부를 제대로 따지기 보다는 개인질환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절대적으로 많다는 현실 역시 주목해야 한다.

특집 1. 문송면과 원진 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를 맞는 단상 / 2018.06

문송면과 원진 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를 맞는 단상

[문송면·원진레이온 직업병 30년 무엇이 달라졌나] 과거와 현재의 만남과 헤어짐

김동수 (한노보연 회원,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올해로 문송면과 원진 노동자들의 산재사망이 일어나고 사회화된 지 30년이 된다. 이 글은 한국의 노동자 직업병 문제를 대표하는 커다란 두 사건이 30년을 맞는 해에 어떤 부분이 해결되었고 어떤 부분이 문제로 있는지, 왜 그러한지에 대한 단상을 다소 논쟁적으로 기술한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은 그간의 30년을 연대기적으로 정리한 것도 과학적·체계적으로 분석한 글도 아니다. 

이 글은 30년이 주는 무거움을 나누고자 작성하기 보다는 필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떠오르는 단상들을 펼쳐놓은 글이다. 따라서 독자들께서 이 글 속에 등장하는 여러 사건과 수치들은 보기에 따라서 동의하기 힘든 부분도 있고, 숫자나 통계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문송면, 원진레이온, 김봉환 장례투쟁과 한국 노동보건운동의 시작

 문송면은 1973년생이다. 충남 서산에서 태어난문송면은 중학교 3학년인 1987125일 서울의 협성계공에 입사한 후 2개월이 지난 198828일 병가를 내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후 고향의 의원들에서 원인을 못 찾고 39일 서울대에서 수은중독과 유기용제 중독의심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629일 성모병원으로 병원을 옮겨 치료를 받다가 72일 사망하였다. 사망할때 그의 나이는 15세였다. 또한, 1988년 원진 노동자들의 투쟁과 1991137일간의 김봉환 씨의 장례투쟁은 한국 노동보건 문제의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1988년에 당시 나는 의과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1987년 군부독재 타도와 호헌철폐의 거대한 물결과 그해 여름을 달구었던 노동운동과 노동조합 조직화는 의과대학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의과대학의 경우 1980년대 초반부터 '민중의료'라는 고민이 있어서, 사회문제와 학내 문제에 대한 노력이 거부할 수 없는 대세였다. 

1988년 여름 문송면의 죽음을 직면한 젊은 예비의료인(의대, 치대, 약대, 간호대, 한의대)들은 어떠한 의료인이 될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문송면이 질병에 이르게 된 사회적 문제와 질병의 진단과정, 산재요양의 어려움 등의 첩첩한 문제들은 당시의 의료계에 매우 큰 고민과 직업적 진로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었다. 이러한 동기를 가지고 배출된 의료계의 전문 인력은 이후 보건의료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명제에 충실히 하고자 하는 운동과 흐름을 이루게 된다.

 

노동안전보건 문제, 30년 전과 현재 공통점과 차이점 

문송면의 질환을 진단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는 현재에도 비슷한 양상을 보여준다. 수은중독을 산재로 인정하는 과정은 매우 지난하였으며, 수은중독을 의심하는 의료진도 소수였으며 진단을 증명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현재의 시점에서 석면환자의 경우 과거에는 결핵으로 진단하여 결핵 치료를 받은 경우가 대다수였고, 본인들도 결핵으로 알고 가족과의 살가운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였던 이야기를 우리는 흔히 접할 수 있다. 호흡기내과 의사들 역시 석면폐를 미만성 간질성폐 질환(폐섬유화증)으로 진단하는 경우가 다반사고, 영상의학전문의들도 석면폐 판독을 쉽게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현상이 이렇게 유사하다고 하더라도, 과거와 현재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거에 수은중독은 매우 희귀한 경우였고, 현재의 석면폐증 또한, 다른 질환에 비해 유병률과 발병률이 낮은 희귀한 질환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의료진들 관심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과거 중독을 밝히기 위해 생체시료를 분석할 수 있는 곳이 몇 곳밖에 없었다면, 현재는 전국의 많은 기관에서 분석할 수 있다.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보면 사회/의료계의 관심이 부족하다는 공통점을 가지면서, 기술적인 발전의 측면에서는 다른 면을 갖고 있다. 과거에 기술적 측면에서 유해물질의 측정과 분석의 어려움이 있었고, 이 때문에 전국의 소수 기관이나 외국에 분석을 보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면 현재에는 시장성의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2015년 말~2016년 초에 집단적으로 발견된 메탄올 중독의 경우, 이를 진단하기 위한 생체시료 분석은 한국에서 실시하는 기관이 거의 없으며 외국에 분석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이유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시장성이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건강문제를 시장성의 문제로 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반성적 성찰이 필요하다. 

수은중독의 문제는 문송면 이후에도 여러 번 발생하였다. 2000년 경북 안동의 폐기물재생사업장의 3명의 노동자에서 집단 발생하였고, 2015년 광주 남영전구에서 형광램프제조시설 철거 작업을 했던 노동자에서 집단적으로 발생하였다. 이 문제들은 수은이라는 공통점 외에 차이점이 존재한다. 과거 문송면의 경우에는 전국의 거의 모든 작업장의 작업환경이 열악하였고 노동자들의 건강에 관한 의식이 낮았다면, 최근 수은중독의 문제는 소규모사업장과 하청노동자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제도 개선의 성과, 아직 남은 과제 

중금속, 유기용제 중독 등에 대한 제도적 진전은 여러 가지 경로로 이루어졌다. 과거 진폐를 중심으로 노동자 건강검진 제도가 발전해왔다면, 문송면의 사망과 원진레이온 중독을 시작으로 하여 중금속과 유기용제 등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산업재해추방 운동으로 표현되는 노동자 건강권 운동이 시작되었다. 대표적인 노동자들의 노력은 1995년경의 쇠사슬 투쟁이라고 일컬어지는 대우조선 노동자들의 집단유기용제중독 투쟁이었다.


[출처: 전국노동자연대] 


당시 노동자들은 조선소 노동자들에 대해 특수검진과 작업환경을 제대로 시행하고 임시건강 진단 시행을 요구하였다. 이 결과 1996년 전국 선박건조와 수리조선 업체 도장작업자들을 대상으로 유기용제 임시건강진단을 실시하였고, 요식행위로 인식되던 특수검진과 작업환경측정제도의 실질적 개선을 이루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후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노동조합이 특수검진과 측정의 기관선정권을 획득하는 사업장이 늘어났다. 이 외에도 포항의 망간중독 집단 발병, 부산의 D.M.F. 중독사망 사건 등을 통해 특수검진의 실효성 증대를 위한 사회적 여건이 마련되었다.

그 결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작업환경의 개선과 특수검진 유소견자의 감소 등의 효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성과의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과제가 남아있다. 과거에는 열악한 작업환경과 전통적인 직업병의 문제가 일반적인 현상이었다면, 현재에는 소규모사업장과 이주노동자, 하청노동자 등 취약계층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 취약한 소규모·하청·이주노동자 

이러한 전체 노동자의 문제로부터 소규모 취약 계층 노동자들로의 문제의 중심이동에도 불구하고, 제도는 여전히 과거의 형태와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특수검진과 작업환경측정은 시장에 맡겨졌고, 시장을 어렵게 하는 행위는 이적행위(?)로 간주하기 일쑤다. 최근에 와서 노동자 일반에 대한 특수검진 상 유소견율과 작업환경측정상 기준 초과율이 1%가 채 안 됨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를 현행대로 유지하여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반면, 10인 미만 사업장과 하청, 건설업 등에서 작업환경측정과 특수검진 실시율이 매우 낮다는 점과 전통적 직업병이 이들에서 주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보면 어디에 중심을 둘 것인가는 명확하게 보인다. 

말하자면 대기업 등에서는 기존의 작업환경측정과 특수검진의 유효성이 거의 없어져 가는 상황이지만, 소규모 취약계층 노동자들은 이들 제도의 혜택을 받고 있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교통 오지, 소규모사업장,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상업성이 없어서 제도적 접근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 이러한 점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지만, 누구도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2016~2017년의 야간 노동 특수검진 제도 시행을 앞두고서 벌어졌던 일련의 상황에서,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제도는 이제까지의 전통적 지지세력이자 이 제도의 산파로 자임하던 노동계로부터 차가운 대접을 받았다. 문송면의 사망과 원진레이온 집단 직업병 시절에 직업병 진단을 두고 임상의와 예방의학 간의 갈등이 있었으며, 임상적 직업병(환경병) 진단을 제대로 하는 노동자를 보호하는 학문의 일환으로 출발점을 가진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제도는 전통적 직업병의 감소와 작업환경의 개선이라는 시대적 변화와 함께 동반 성장하기 보다는 자신의 정체성과 생존이라는 생물체로서의 자기 보호적 측면이 더 강화되는 내외적 성장의 불균형 상태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통적인 직업병의 규모가 줄어들고 대기업 중심으로 노동환경의 개선에 따라 노동안전보건 운동의 관심도 변화 확장되었다. 2000~2003년 근골격계 질환 집단요양 투쟁은 몇 안 되는 노동안전보건 문제의 사회적 의제화이자 승리한 투쟁으로 판단된다. 근골격계 질환 문제를 IMF를 지나고 노동강도 강화와 결합하면서 노동운동의 핵심영역으로 위치 지웠던 것 또한, 건강의 문제를 사회적 맥락에서 풀어내려는 중요한 시도로 판단된다.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났던 집단요양 투쟁의 성과로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라는 제도적 성과를 얻었다. 그러나 이러한 조직화와 제도적 성과라는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씨앗으로 하여 조직적인 확장과 함께 의제의 확장으로 나아가는 데는 부족한 것으로 판단된다.

 

노동안전보건운동, 다시 변화 모색해야 

이러한 점에서 현재까지도 노동안전보건 운동진영은 문제제기집단으로 자신의 역할을 한정하거나 제한되어있고, 대안세력으로 자신을 확장하는 시각을 갖고 계속적인 시도와 연습을 통해 단련되는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 저러한 이유로 근골유해 요인조사제도는 몇몇의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시행되지 않거나 형식화되어버렸다. 

30년 전 문송면과 원진 직업병 문제가 산재의 인정과 보상의 문제에서 시작하였고, 그 이후에도 상당 기간 동안 집단요양 투쟁과 산재 인정의 문제가 노동안전보건 운동의 주요한 이슈였던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또한, 문제의 해결방식 또한 매우 투쟁적이고 자기희생적이었다. 그러나 전술하였듯이 노동자 건강 관련 이슈는 주요한 대상과 문제가 변화하고 있다고 볼 때, 노동안전보건 운동의 대응도 변화할 필요가 있다. 

산재 인정의 문제가 한국에서 첨예하게 된 이유는 모두가 알고 있다. 사회적 안전망(개인적으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용어다)이 부실한 한국에서 산재로 인정받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너무 극명해서, 이를 무시하는 것은 노동보건 활동가의 책무를 내버려 둠과 동시에 인도적이고 감성적인 문제까지 일으키게 된다. 알다시피 OECD 국가 중에서 상병수당(또는 상병급여)이 없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아플 때 일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며, 국가가 존재하는 이상 노동능력이 없더라도 생계를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국가의 의무이다.

 따라서, 현재 산재인정 투쟁 중심의 노동보건운동의 방식은 변화해야 한다. 상병수당을 도입하고, 산재인정은 곧 예방과 재발 방지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고의에 가까운 산재유발사업장에 대해서는 중과실 책임을 묻게 해야 하며, 건강하지 않은 노동자 상태를 가진 사업장은 사회에 공개되고 사회적 비판과 참여를 통한 시장 퇴출의 과정을 겪게 해야 한다. 

위 필자의 부정적 견해에도 불구하고 노동안전보건 운동의 지평 확장 또는 다른 출발점을 가지는 시도는 여러 가지 형태로 진행된 바 있다. 반올림 활동은 삼성반도체 노동자 백혈병 산재인정투쟁으로 시작해서, 최근 삼성 작업환경측정 보고서 공개의 문제라는 기업 영업비밀 대비 알 권리와 건강 문제라는 사회적 가치판단의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문제는 작업환경측정보고서에 실제 영업비밀이 들어가 있는가 아니냐는 기술적인 문제를 넘어서, 경제성장과 형평의 문제, 이윤과 생명의 문제라는 핵심적 가치충돌을 내포하고 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노동시간센터 등을 중심으로 한 장시간 노동과 야간노동에 대한 문제 제기는, 여러 가지 정치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야간노동 및 장시간 노동의 축소라는 사회적 흐름을 만들고 있다. 다른 예로는,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발암물질에 대한 여러 가지 시도는 노동안전보건의 영역을 넘어서 시민사회까지 확장되어가고 있으며, 작업장의 여러 가지 문제가 매개가 되어 노동안전보건 이슈가 시민사회와 연대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해외 사례에 비추어 본 노동안전보건 문제 

핀란드의 높은 수준의 노동자 보호제도는 노동조합의 높은 노동자 조직률과 함께 노사정 합의에 근거한 바 있다. 한국에서 이제까지 노동안전보건 영역의 운동은 주로 대기업과 금속노조를 비롯한 민주노총이 주요한 추동력이었다. 그러나 노동자건강문제를 조직노동자들에게만 의존하는 것은 한국 상황에서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한국에서 아직 노동안전보건 문제는 노사정 핵심적 이슈로써 제기된 바가 드물었으며, 다른 의제에 묻히거나 노사정 관계가 어려워지면 자동 소멸되는 상황이다. 물론 노동안전보건 문제가 다른 사회적 또는 노동문제에 우선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문제가 해결되면 연속적으로 해결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상대적 독자성을 가지면서 지속해서 문제를 제기할 주체와 시도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의 문제가 독자적으로 떨어진 섬과 같은 존재가 되어서는 다른 사회세력과 연대도 어려울뿐더러 사회적 주요 이슈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낮아진다. 네덜란드와 핀란드 등 국민의 수가 수백만 정도로 소규모 경제를 가지면서 수출 등 외부 국가와의 교역이 중요한 국가에서는 노동력이 국가생산력의 근간이며 노동력 고령화는 이를 가로막는 중요한 문제이다. 

이들 국가에서 노동자의 안전보건의 문제는 국가생산력의 문제로 접근한다. 한국에서 이러한 접근의 필요성과 가능성에 대해서는 철학적·윤리적 정당성과 함께 현실적인 경로와 주체의 문제 등 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이 시대의 화두이다. 4차 산업혁명은 플랫폼 노동 등 노사관계의 변화와 노동형태의 변화 등을 일으키고 있다. 수많은 비정형 노동과 아동과 취약계층 노동이 증가할 것이다. 이러한 노동형태의 변화와 새로운 직업성 질환과 상태에 대한 고민과 대응이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4차 산업혁명을 바라보는 다른 각도에서의 우리의 시각 확대도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오는 기술적 발전과 변화를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 보호에 활용할 방법을 고민하는 것은 아직 노동보건 운동의 시야에 들어와 있지 않다.

 

30년을 넘어, 새롭게 나아가야 

문송면과 원진 문제로부터 30년이 흘렀다. 30년이 한 세대라면, 이제 그 이후에 태어난 세대가 성인이 된 시대가 되었다. 노동자 건강과 관련 한 문제 또한 과거의 전반적인 열악한 노동조건과 엄혹한 사회적 억압에 대한 투쟁과 희생의 시대에서 이제 소수 또는 취약계층에게 문제가 집중되는 반면 노동자 건강문제에 대한 지평과 연대의 확대가 필요한 다양한 중층구조로 변화되고있다. 

문송면과 원진 30년이 지난 시점에 이제까지 직업적 원인으로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희생 위에 수많은 노동자 건강권의 발전과 함께 과제도 쌓여있다. 과거의 유산과 부채로부터 자유로운 세대들이 중첩된 문제들을 다양하고 다른 관점에서 풀어가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일터> 통권 172호 / 2018.06



● 특집

문송면·원진레이온 직업병 30년 무엇이 달라졌나  

- 문송면과 원진 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 맞는 단상 

- 노동안전보건운동, 직업병 예방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 2018년의 문송면을 만나다 

- 청소년 노동자의 건강권은 어떠한가

- 문송면·원진 산재사망 30주기 추모위 발족하다 

● 지금 지역에서는

광주근로자건강센터 정상화 이후 남은 숙제 

● 국제 노동안전건강뉴스

암 생존자들이 일터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 특별기고

"죽음을 부르는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에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 사진으로 보는 세상

● 현장의 목소리

간호사 침묵을 깨다 

● 노동자 건강상식

진통제에 대하여 

●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신명나게 일할 수 있으려면 

●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 與 

최저임금법 개정의 1등 공신은 '더불어민주당' 

● 발칙 건강한 책방

지워지지 않는 기억

● 이러쿵저러쿵

있기 

● 한노보연 이모저모


<일터> 통권 171호 / 2018.05




노동자가 만드는 <일터> 통권 171호/2018년 5월호

"이번 일터는 5.17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아이다호 데이'를 맞이하며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어떤 노동조건과 환경에서 일 하고 있는지, 성소수자의 건강과 삶은 어떠한지 고민해보고자 했습니다. 또한,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동운동과 노동조합이 어떤 역할을 고민해야 하는지도 이야기 나누고자 하였습니다."


● 특집

성소수자 노동자의 건강권 

- 성소수자의 건강과 삶은 어떠한가

- 노동조합과 함께, 성소수자의 평등한 세상으로 한걸음 더!

- 나는 성소수자 노동자입니다

● 지금 지역에서는

2018 최악의 살인기업은 삼성중공업

● 국제 노동안전건강뉴스

- 방글라데시 의료 공장들이 모범상 받아

- 아마존과 테슬라,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일터 목록에

● 국제 안전보건기준에 관한 비교 검토 연구

협약 비준만으로 산업안전이 달성 되는 것은 아니다

● 특별기고

6.13 지자체 선거 교육감 후보에게 묻는다

● 안전과 건강 칼럼

작업환경측정 결과 노동자가 온전히 볼 수 있어야

● 사진으로 보는 세상

● 현장의 목소리

어느 웹디자이너의 과로자살

●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현장과 지역에서 새로운 시도를 고민하다(2)

- 금속노조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최진일 조합원 인터뷰

●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82년생 김지영의 또 다른 이야기

● 노동자 건강상식

알아두면 도움이 될 고지혈증에 대한 상식

●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진단보다 치료가 우선

●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 與 

'노동존중'이라 말하기 위해서는

● 문화읽기

왕좌의 게임

● 이러쿵저러쿵

● 안전보건동향

● 한노보연 이모저모

[국제 안전보건기준에 관한 비교 검토 연구] 협약 비준만으로 산업안전이 달성 되는 것은 아니다 / 2018.05

협약 비준만으로 산업안전이 달성 되는 것은 아니다

- ILO 화학물질 협약을 통해 보는 산업안전보건법의 문제점

조승규 공인노무사, 노동자의벗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는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r Organization, 아래 ILO)의 국제기준과 한국의 법규를 비교하는 작업을 진행해오고 있는데, 이번 글에서는 작업상 사용되는 화학물질에 대해서 다루어보고자 한다. 화학물질과 관련한 ILO의 국제기준으로는 제170호 협약(작업장에서의 화학물질 사용상 안전에 관한 협약 : 아래 화학물질 협약)이 대표적이다. 이 협약은 1990년에 ILO에서 채택되었고 한국 정부는 2003년에 이를 비준하였다.

화학물질 협약을 비준했다는 것은 이미 한국의 법규가 작업상 화학물질에 대한 규제제도를 어느 정도는 갖추고 있음을 의미할 것이다. 화학물질에 관한 ILO 협약과 한국의 규정(산업안전보건법 제40조~ 제42조)을 아주 간단히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위 표를 보면 한국은 ILO에서 규정하는 내용에 해당한다고 볼 만한 제도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실제 한국에서 화학물질과 관련한 안전조치들이 잘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어난 산재들과 고군분투하고 있는 반올림을 떠올려보자. 노동자들이 이상적으로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를 잘 제공 받았다면 자신에게 치명적 위험을 가져다줄 수 있는 곳에서 그대로 일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계속 일하다가 쓰러졌다 하더라도 공정에서 사용된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가 있으므로 비교적 쉽게 산업재해를 인정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상황이 이렇게 진행되고 있지 않다. 괜찮은 것처럼 보이는 한국의 제도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한국의 산업안전보건법에 대해서 다양한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여기에서는 ILO의 지적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ILO의 지적을 통해 그럴듯하게 만들어진 한국의 산업안전 제도 안에 숨어있는 문제점들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ILO에는 CEACR이라는 전문위원회가 있는데, 비준된 협약이 각 국가에서 잘 이행되고 있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이 위원회가 2007년과 2010년, 2015년 3번에 걸쳐서 화학물질 협약과 관련하여 한국 정부에 지적을 한 바 있다. 그 지적 사항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노동자의 알 권리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이다. ILO는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를 영업상 비밀로 숨기는 것을 매우 예외적인 경우로 두고 있다. 이에 따르면 영업상 비밀의 주장은 1)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에 해가 되면 아니 되며, 2) 권한 있는 기관에 의해서 승인되는 방식을 통해야 한다(화학물질 협약 1조, 18조). 그러나 한국의 현행법은 1) 오히려 영업비밀 보호가 원칙이고 노동자는 장관이 인정할 때만 이를 확인할 수 있으며 2) 법원에 가기 전까지는 사용자가 영업비밀이라 주장하기만 하면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 영업비밀에 매우 관대한 규정 때문에 지금의 물질안전보건자료의 상당 부분은 영업비밀이라는 한 단어만 적힌 채 공란으로 비어 있는 실정이다. (다행히 정부가 제시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에서는 알 권리와 관련하여 어느 정도 보완이 이루어져 있기는 하다.)

두 번째,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의 부재의 문제이다. ILO는 화학물질 협약과 관련한 3번의 지적 국제안전보건기준에 관한 비교 검토 연구 모두에서 정부의 책임이 잘 이행되고 있는지 확인하였는데, 그렇게 계속 같은 지점을 확인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산업안전은 사업주의 의무와 노동자의 권리를 단순히 적어두는 것으로만 달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도의 실효성 확보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뒷받침되어야 작업장에서의 안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 관계 당국은 그런 태세가 되어있는지 의문이다. 한참 부족한 특별관리물질 리스트 등을 볼 때 계속적인 제도 개선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것 같은데, 이런 책임을 맡은 명확한 기관이나 부서가 존재하는지 그리고 있다면 제대로 운영되는지도 의문이다. 화학물질과 관련한 정부의 사업장 검사에서 법 위반율이 절반을 넘는 기괴한 현상은 단순히 과태료 인상이나 더 조사하겠다는 다짐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산업안전에 대한 정부의 중요도가 근본적으로 변해야 하고, 적절한 정부 기관과 인력, 제도가 준비되어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화학물질 협약을 우리 정부가 비준한 지는 어느새 15년이 되었다. 비준하지 않은 협약들도 상당히 많기 때문에 이들 협약의 비준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지만, 비준한 협약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도 중요하다. 사실 한국 정부는 ILO 170호 화학물질 협약에 대해서만 지적받은 것이 아니라, 산업안전 분야에서 비준한 모든 협약에 걸쳐서 지적을 받아왔다. 심지어 협약의 거의 모든 조항에 지적사항이 있는 경우도 있다. 정부의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이 계속 논의되고 있지만, 그 개정안 이후에도 산업안전 제도가 가야 할 길은 여전히 남아있다.

[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이야기] 진단보다 치료가 우선 / 2018.05

진단보다 치료가 우선

권종호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서울 시내의 지하철 건설 현장으로 출장 검진을 나간 날이었다. 새벽부터 때 묻은 작업복에 안전화 차림으로 줄을 서서 기다리던 노동자들은 한창 정선에서 채광이 한창이던 때 갱도로 내려가려는 광부들의 모습처럼 보였다. 서울 한복판에서 보는 1970년대 광부들의 모습에 이질감을 느끼던 것도 잠시, 이내 정신없는 문진이 시작되었다. 문진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여기저기 볼멘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매년 똑같은 폐기능 검사, 청력 검사를 뭐하러 하느냐." 
"검사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나아질 것도 없는 그런 검사들을 병원이 돈 벌려고 하는 것 아니냐." 
"차라리 그 돈으로 사람을 더 써주던가, 환풍기를 좋은 걸로 바꿔주던가, 소음이나 좀 줄일 수 있게 개선해 달라."

실제로 지하철 건설 현장의 상황은 매우 열악하다. 예를 들면, 지하철 건설 현장 위의 도로를 뒤덮은 철판 소음 같은 것이 있다. 밖에서는 그 위를 차로 지나면서 잠깐 소음을 접하지만 지하의 건설 현장은 그 소음을 직접, 그것도 작업 시간 내내 접하게 된다. 그럼에도 건설 현장 특성상 산재 사고의 위험이 크고 작업자들 간 의사소통을 하며 진행해야 하는 작업이 많기 때문에 귀마개에 귀덮개 까지 할 정도로 차음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때문에 다른 건설 현장에 비해 소음성 난청인 노동자들이 훨씬 많고 그 정도도 심각했다.

아무리 청력 검사를 하고 수십 명의 소음성 난청자가 나와도 개선되지 않는 현실에 볼멘소리가 나올만하다. 위험해서, 작업의 특성상 귀마개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니 이대로 청력 손상을 두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인가. 이럴 경우 매우 큰 소리는 줄여주고 주변의 작은 소리는 반대로 적정 수준으로 증폭시켜주는 귀덮개를 적절히 사용하면 청력 손상을 다소 완화 할 수 있다. 실제로 공항에서 일부 사용하고 있고 최근에는 공군에서도 2016년부터 2022년까지 1만 개를 공급하기로 했다.

지하철 건설 현장에는 매년 반복되는 청력 검사보다 위와 같은 보호구가 더욱더 절실하다. 이러한 보호구로도 부족하다면 추가적인 시설 개선도 필요할 수 있다. 즉, 검사를 통한 진단보다 문제 되는 질환에 대한 치료가 시급한 것이다. 현재의 상황은 감기 환자가 폐렴으로 진행되는 것을 확인하고도 적절한 항생제 치료 없이 감기약만 주는 것과 같다. 좀 더 자세히 비유하자면 폐렴이 악화되는 것을 매년 강제적인 엑스레이 촬영으로 확인하면서 제대로 된 치료는 전혀 하지 않는 매우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물론 정확한 진단과 조기 발견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의 궁극적인 목표는 적절한 치료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폐렴을 다시 예로 들면, 폐렴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하는 항생제는 폐렴의 원인이 되는 여러 종류 세균 중에 정확한 원인균이 세균 배양 검사를 통해 밝혀지지 않았더라도 정황상 예상되는 세균에 대해 효과가 좋을 것으로 보이는 '경험적 항생제'를 통해 치료를 먼저 시작한다. 더 큰 손상을 막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치료가 정확한 진단에 앞설 수 있다는 것이다.

특수건강진단,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 위험성 평가, 직무스트레스 및 뇌심 발병 위험도 평가 등 노동자들은 수많은 '진단' 과정을 매번 겪고 있고 이를 통해 발견된 노동 환경 문제들에 대한 개선 '처방'까지 그 안에 포함되어있다. 하지만 정작 실제 현장을 바꾸는 '치료'는 얼마나 되고 있는가. '치료'에 해당되는 시설 및 보호구 개선, 인력 충원 등에 '진단'에 사용되는 비용만큼이라도 사용되고 있는가. '진단'으로 행해지는 항목을 일부 조정해서라도 '치료'를 위한 비용으로 사용할 수는 없을까(실제로 특수건강진단으로 청력검사를 재검까지 모두 시행하는 경우 비용은 6만 원 정도. 반면 귀덮개 정가는 18만 원 정도다).

핸드폰이 컴퓨터의 성능을 뛰어넘는 시대, 청소 로봇이 상용화된 시대이다. 그만큼 노동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기술도 크게 발전해왔다. 하지만 노동 현장에서는 법적으로 정해진 '진단'과 '처방'에 사용될 비용이 있을 뿐 발전된 기술을 통해 '치료'하는데 쓰일 비용은 필요 없다. 누구도 강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수건강진단을 위해 길게 줄지어선 노동자들 사이의 볼멘소리는 이와 같은 비정상적인 '진단'과 '치료' 상황에 대한 당연한 불만인 것이다.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현장과 지역에서 새로운 시도를 고민하다 (2) / 2018.05

현장과 지역에서 새로운 시도를 고민하다 (2)

금속노조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최진일 조합원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황재민씨 산재 인정 투쟁에 돌입

"황재민씨 산재는 뇌·심혈관계 질환이다 보니 워낙 복잡한 문제여서 이것저것 확인할 자료가 많이 필요했다. 회사가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했다는 자료에 대해서도 반박할 근거를 만드는데 많은 공을 들였다. 내용적인 준비를 마치고 근로복지공단에 갈 때도 이미 불승인한 사건을 재심사해달라고 요청하는 초유의 일이라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갔다. 동료들도 마음이 통했는지 사전에 무슨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닌데 끝장을 보고 갈 마음으로 왔다고 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생각보다 쉽게 재심사를 받는 것으로 결정했다. 회사가 자료를 거짓으로 제출한 점, 노동조합이 대응해서 싸우고 있는 점, 공단 내 여러 복잡한 문제로 잡음을 만들면 안 되는 상황으로 인해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운이 좋다면 좋았다. 다시 산재를 신청하면서 현장 재해조사를 앞두고 있었다. 근로복지공단과는 이야기가 풀리는 데 문제는 회사를 설득하는 거였다. 회사는 현장 조사를 하면 노조에서 누가 참여할 거냐, 민주노총 조합원은 때려죽여도 참여시킬 수 없다고 완강히 거부했다. 결국, 논의해서 노조 추천으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이훈구 활동가가 현장에 들어가기로 결정해서 현장 조사를 진행했다."

근로복지공단이 처음으로 현장 조사를 나오다 보니 회사는 물론 동료 노동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굉장히 컸다.

"동료가 일하다 다쳤는데 산재를 신청하는 것도 처음이었고, 재해 조사를 나오고 산재 인정까지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처음인지라 현장 이슈가 됐었다. 이후 투쟁 끝에 결국 황재민씨는 산재를 인정받았다. 다들 고생 많이 했는데 무엇보다 황재민씨가 장해가 계속 남을 건데 그나마 산재를 인정받아서 앞으로 남은 인생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당장 보상을 얼마 받았느냐보다 굉장히 비극적인 일이었지만 그래도 이런 결과를 만들 수 있어서 보람을 느꼈었다."

산재인정 투쟁 이후 조금씩 변화하는 현장

"동료들이 산재인정 투쟁 전체를 지켜봤기 때문에 현장에 민주노조가 있다는 게 알려졌고, 저 친구들이 몇 안 되지만 제대로 활동한다는 인지도가 생겼다. 그리고 현장 노동조건에도 변화가 있었다. 이전에는 체조를 근무시간 15분 전에 의무적으로 했는데, 현장조사가 시작될 즈음 체조를 자율적으로 바꿨다. 설비도 변화가 있었는데 자동차 테일게이트(뒤 뚜껑)과 후드(앞뚜껑)를 이송하는 리프트를 설치했다. 설치한 지 1년 정도 됐는데 작업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도 있는 상황이다."

노동조합은 황재민씨 산재 인정 이후 현장에서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지속해서 이어나갔다.

"노동강도가 워낙 높으니까 현장에서 근골 환자를 찾는 캠페인, 잠깐 쉬는 시간에 앉을 수 있는 의자놓기 캠페인을 진행했다. 현장엔 의자랄 게 없어서 바닥에 굴러다니는 박스를 깔고 앉았었다. 그래서 노동부에 진정하고 현장조사 하면서 현장을 휘젓고 다니니까 회사에서 의자를 주더라. 조금의 변화는 만들었는데 제일 문제인 노동강도 자체를 낮추는 것까지는 아직 못 가고 있다."

지역 활동을 고민하게 한 '행복한 서산을 꿈꾸는 노동자 모임', 행서모

"조합원이 소수다 보니 어떤 활동을 할 수 있을지 막연한 게 사실이었다. 사실 동희오토에 있는 활동가들은 지역에서 하는 역할도 많고 할 수 있는 것도 많은 사람들인데 현장에서 소수노조라는 이유로 답답한 상황에 놓여있는 게 뭐랄까, 되게 아까웠다. 동희오토에서 민주노조 운동이 안 되고 힘든 건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 전체 비정규직 운동, 전체 노동조합 운동이 침체되는 거랑 분리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찌 되었건 지역 운동 속에서 돌파구를 마련해보자 하는 고민을 하다가 행서모 활동을 고민하게 되었다."

행서모는 몇 달씩 지역 운동에 대한 토론과 의제별 소모임 등을 진행했고, 박근혜 퇴진투쟁과 세월호 3주기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회원의 관심사에 따라 다양한 기획들이 제출되었고 그중의 하나가 '노동안전보건 활동가 되기'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이를 통해 지역에서 안전보건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과 모였다.



"한 차례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여기 모였던 사람들이 '노안활동가모임'를 구성해서 지금 두 번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노동안전보건 문제 외에도 3.8 여성의 날 행사나 청소년 대상으로 헌법을 강의하거나 지역에 산업폐기물매립장, 소각장 등이 들어오는 문제가 있어서 지역 시민사회단체들과 같이 대응하고 있다. 또 지역에서 '새움터'라는 노동안전센터를 만들었는데 그 활동에도 함께하고 있다. 특히 세월호 4주기 추모행사는 '안전사회를 위한 실천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안전과 생명에 관한 의제를 다루는 다양한 단체들이 참여하는 형태로 준비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어쩌다 보니 제가 상근자처럼 활동하고 있어 바쁘게 지내고 있다."

이전과는 다른 방식을 고민하는 요즘

"개인적으로는 지금 운동의 문제, 위기를 편하게 얘기해보자면 여러 '경계'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활동가와 대중, 조직된 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 노동운동과 시민사회운동. 그렇다면 이런 경계를 넘을 수 있는 지역 운동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고, 조직 자체도 기존의 방식과는 완전히 달라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행서모는 대표자나 집행국을 두지 않고 여러 팀이 유동적으로 움직이면서 개인들 차원에서는 수평적인 연대와 협력을 지향한다. 그런 지향에 맞게 모임을 운영할 생각이다."

최진일 조합원은 충분히 능력과 의지가 있지만, 기존의 노동조합 체계에서는 활동을 펼치기 막막했던 사람들이 지역에서 능력을 펼치는 것을 보면 즐겁다고 한다. 그런데 한편, 동희오토에서 현장활동에 공백이 생기는 건 아닌지 물었다.

"동희오토와 지역 활동, 이런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하는데 솔직히 벌여 놓은 일이 많아서 그럴 시간이 없다. 동희오토는 노동조합 회의도 있고 하니까 논의를 하는데 사실 지금은 답이 안 나온다. 당장 현장에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보고 주간 연속 2교대와 같이 현장에 쟁점이 있을 때 노동조합에 입장을 내고 선전하는 활동을 하게 될 것 같다."

지역과 현장을 꼭 나눠야 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지역에서 활동이 활발할수록 현장에서의 활동 시간과 고민이 부족한 문제는 계속 고민이 될것 같아 이점에 관해서 물었다.

"동희오토를 보면 현장 노동자들이 사측에 압도적으로 장악 돼 있다. 그러니 조합원을 조직하고 활동가를 만든다는 건 쉽지 않다. 아예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에서 노조를 만드는 게 아니라 민주노조가 있다가 깨진 사업장이라 더 어려운 것도 같다. 그리고 저 개인적으로는 활동가를 양성하는 데 관심이 없다. 오히려 활동가들이 자기랑 똑같은 사람을 만들려고 하는 거 그게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행서모는 굉장한 모순덩어리인 곳인데. 활동 목표나 방식은 활동가와 대중의 경계를 넘어서고,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활동을 고민한다. 그런데 실제로 행서모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견디기 어려운 피로와 스트레스를 견디며 활동을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런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좀 더 고민하고 새로운 시도들을 할 수 있기도 하다. 우리는 흔히 대중→조합원→간부→활동가→혁명가 이런 단계와 경계를 두는데 사람들은 무조건 단계적으로 성장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결국 활동을 통해 사람들을 조직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일텐데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떤 고민을 갖고 있는지 물었다.

"지금까지 활동의 끝은 조직을 만드는 거였다. 그런데 조직을 만들고 나니까 결국엔 여기도 저기도 조직만 다를 뿐 같은 사람들이었다. 이러면 그 조직은 활동력도 힘도 없다. 지금은 우리가 3.8 여성의 날 집회를 한다고 하면 어떤 내용을 준비해서 어떻게 그 운동을 발전시킬 건지가 중요한 거 아니냐는 생각이다. 그런데 지역에서 활동하다 보면 열심히 뭔가를 했으니 그걸 계기로 모임이나 단체를 만드는 걸로 귀결되는 걸 너무 많이 봐왔다. 행서모는 조직을 만드는 데 관심을 크게 두지 않을 거다. 기존에 운동 관행과 질서와 다르게 의제와 가치를 중심으로 사업을 펼치면서 틀과 형식을 흔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노동조합 운동이 기존에 틀을 벗어나서 다른 활동을 고민해보거나 기획해보는 것 자체가 너무 없는 것 같아 이런 고민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꿈과 목표는

"사실 동희오토 들어갔을 때 즈음 너무 나대지 말고 그냥 내 주변 사람들만 지키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바뀌지 않아서 활동에 있어서나 개인적으로 꿈, 목표 그런 건 없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넘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사회적 자아와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는 개인적 자아가 부딪히면서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다."

앞으로도 서산에서 계속 활동을 이어갈 것인지 물었다.

"지금 같이 활동하는 분들과 오래 같이 지내고 싶다. 비슷한 연배인 활동가들이 땅을 사서 같이 노후 대비를 한다는 얘기도 있더라. 이제 저도 이제 그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 나이인가 싶은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렸다.

"행서모가 만들어질 때 종종 하던 이야기인데, 쉽게 이야기하면 운동이 이 만큼 망했다 그럼 우리가 잘못해서 망한 거 아니냐 그렇다면 우리가 밥 먹듯 하는 활동이 잘못된 걸 수도 있다는 의심해보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고 해왔던 방식에 대해 의심해봐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은 것 같다. 지금도 아차 하면 어떤 문제들은 익숙한 방식으로 해결하고 돌이켜보면 잘못했다는 걸 깨닫는다. 앞으로 이런 고민을 같이 나누는 계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82년생 김지영의 또 다른 이야기 / 2018.05

82년생 김지영의 또 다른 이야기

- 컴퓨터 그래픽과 캘리그라피 디자이너 이현진 님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이번 'A-Z 다양한 노동이야기'가 만난 사람은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했고 지금은 캘리그라피 작가로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이현진 님이다. 이현진 님은 디자인 노동자로 겪었던 어려움, 한국의 남성 중심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문화로 인해 겪었던 상처,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소설 <82년생 김지영>과 같은 나이의 여성으로서 느끼는 여러 고민을 솔직하게 들려주었다. 이 인터뷰는 지난달 18일 서울역 인근 카페에서 진행했다. 

나를 소개한다면




"제 이름은 이현진이고요 아도르 캘리그라피 작가로 활동 중이에요. 아도르라는 이름도 많이 궁금하실 텐데, 어도얼이라는 고어에요. 러브라는 뜻인데 사람들이 편하게 아도르라고 불러서 지금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가 돼야겠다 생각한건 아버지가 표구사를 하셨거든요. 그 영향도 받고 재능도 물려받은 것 같아요. 무엇보다 386 컴퓨터 시대가 되고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는 일이 멋져 보여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가 돼야겠다 마음먹었고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어요."

이현진님은 본인을 소개하면서 지금껏 주어진 상황에서 창의적으로 재미있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어려운 상황을 지나왔던 이야기를 들으며 어떤 의미로 이 말을 해주셨는지 알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치였던 회사 생활

"저는 15년 동안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어요. 규모 있는 회사 디자인팀에서도 있었고 작은 에이전시 회사에도 있었고요. 회사 생활이 쉽지는 않았어요. 한국은 집단주의 사회잖아요. 그래서 저처럼 혼자 일 잘하는 사람을 싫어해요. 저는 항상 동료나 상사한테 미움을 받았어요. 저를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은 '나댄다'고 싫어하더라고요. '제발 일 좀 적당히 하자, 왜 그렇게 혼자 튀냐'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개의치 않으려고 했지만 그래도 당연히 상처가 됐어요."

이현진님은 계속해서 사람들과 관계가 틀어지면서 본인 탓이 아닌데도 나중에는 자신을 탓하게 될 정도로 마음에 상처가 생겼다.

"저는 회사 다닐 때 마지노선이 2년이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어느 면접장에선제가 계획적으로 2년마다 그만두는 거냐고 물어보더라고요. 만약에 제 성격에 문제가 있었으면 한 달도 못 버티고 그만뒀겠죠. 이런 상황이 서른 살부터 작년까지 계속 됐어요. 저는 잘못한 게 없는데, 억울한데 결국에 나만 회사를 그만두고 도망 나오니까 나한테 문제가 있는 건가 싶었죠. 한국은 참 이상한 게 무조건 회사에서 오래 버티는 자가 칭찬을 받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일도 못 하면서 무능력하게 회사에 오래 버티고 있는 게 사회의 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정말 많아요. 흔히 말하는 꼰대들이죠."

회사를 다니는 많은 노동자들이 이현진님에 이야기에 공감하고 다들 그런 경험들이 한 두 번쯤은 있을 것 같다.

"맞아요, 정말 많아요. 그리고 정말 본인 문제가 아닌데 당사자는 그렇게 생각하기가 쉽지 않아요. 본인이 '내 탓이 아니다'를 깨닫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면 이 고민이 계속되는거죠. 저는 회사에서는 사람들과 관계가 좋지 못했지만, 밖에만 나오면 제 실력을 다들 인정해주는 거예요. 그래서 오랜 시간 끝에 결심해서 밖으로 나오기로 했죠."

마지막으로 다녔던 회사는 남성 상사에게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까지 받았었다고 한다.

"남자 상사들이랑 후배 여자 직원이 저를 왕따 시켰어요. 저를 어떻게든 회사에서 내보내려고 그랬다는데 처음에는 왕따 당하는 줄도 몰랐는데 나중에 막내 직원이 저한테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그런데 왕따를 시키는 이유는 없데요. 그런데 이번에도 또 이런 일을 겪게 되니까 '아 회사에서 일을 잘 하면 그저 더 많은 일이 올뿐이고 열심히 하면 동료들에게 왕따를 당하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게다가 하루는 남자과장이 회의실로 불러내더니 자기한테 좀 싹싹하게 굴 수 없냐고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저 되게 싹싹한데 모르시냐고 물었더니 아니 여자답게 웃으면서 상냥하게 대해 달라는 거죠. 너무 화가 나서 당신 딸이 나중에 회사 다니는데 남자 상사한테 이런 이야기 들으면 어떨 것 같냐고 따지니까 또 그런 뜻은 아니래요. 결국, 그 일로 회사 생활을 정리하기로 했어요."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의 삶

"디자인 쪽은 3D도 아니고 4D라고 봐야 해요. 어느 회사나 디자이너 인건비를생각 안해줘요. 최소한의 인권도 보장해주지 않는 회사도 태반이고요. 저녁 있는 삶도 어렵죠. 회사는 마감 끝나서 조금 쉴만하면 일을 들고 오고, 퇴근이 6시인데 5시 반에 담당자한테 연락 와서 디지안 수정하고 퇴근하라고 연락 오고요. 일은 많이 하는데 돈은 또 안돼요. 제일 어려운 부분이죠. 십 년을 일해도 대기업 초봉도 안돼요. 그리고 갑인 회사에서 요청하는 디자인을 만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을이다 보니 갑에서 요청하는거에 일일이 맞춰주는 스트레스가 있어요."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그래도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저는 일을 너무 좋아했어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결과적으로 이거 아니면 다른건 없었던 거예요. 저의 언어, 회사가 원하는 언어를 시각적으로 만드는 작업이 너무 좋았어요. 사실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어요. 디자인이라는 게 새로운 걸 만드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디자인은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치는 것들 혹은 관찰하지 않는 것을 조합
해서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작업 같은 거예요. 그래서 디자이너는 관찰력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하나 디자인은 재배치가 중요한 것 같아요. 닌텐도 게임기가 나왔을 때 대중들이 그랬죠. 어떻게 이 게임기를 만들게 되었냐고요. 그랬더니 닌텐도 사장이 그런 말을 했죠. '사람들이 손쉽게 들고 다닐 수 있는 무엇과 게임을 합쳤다' 그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의미하는게 있다고 생각해요."


캘리그라피 작가로 새로운 출발

이현진님은 회사 생활을 하면서 병행했던 캘리그라피 작가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번에 회사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소재로 작품을 만들고 전시하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제가 소설 <82년생 김지영>과 같은 나이거든요. 그래서 여성으로서 회사에서 일하면서 겪는 고민과 고충을 2015년부터 카카오 그룹에서 운영하는 브런치라는 곳에 글을 썼어요. 그랬더니 이번에 만년필을 만드는 회사에서 제 이야기를 소재로 작품을 전시해보자고 이야기가 돼서 진행하고 있어요."

어떤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는지 궁금했다.

"제일 인기 있던 글이 '싹싹하게 굴지마' 인데 아까 저를 조용한데로 불러내서 자기한데 싹싹하게 굴면 안 되냐고 했던 남자 과장하고 나눴던 이야기인데요. 많은 사람이 공감해줬는데 사실 씁쓸하기도 했어요. 많은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는구나 그런 마음이 들었죠."

몸과 마음이 지칠 수밖에 없는 디자이너의 일상

아무래도 오랜 시간 작업을 하다 보니 아픈 곳은 없는지, 최근 과로와 일터 괴롭힘으로 사망한 웹디자이너의 이야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저는 목이랑 허리 디스크 있고요. 터널증후군은 기본이에요. 근육 주사도 맞고 MRI, 위내시경 검사도 정기적으로 받아요. 디자인 할 때는 한 번 자리에 앉으면 5∼6시간 이렇게 작업을 하거든요. 이렇다보니 거의 모든 병이 다있다고 보면 돼요. 웹디자이너분이 자살했다는 이야기는 지금 처음 들었는데요. 저도 스타트업 회사에서 일해 봤는데 그런데는 대부분 사장이 스티븐 잡스 병 걸린 애들이 많아요. 젊은 꼰대라고 해야 하나 어린 나이에 한 번 성공을 해봐서 그런가 자기가 천재인 줄 알고 다른 사람 말도 잘 안듣죠. 진짜 디자이너가 일하는 환경이 빨리 바뀌어야 할것 같아요."

디자이너의 삶이 바뀌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디자이너의 일에 대해서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 게 가장 문제예요. 이쪽 업계에서 하는 말이 남산에서 돌 던지면 맞는 사람이 디자이너라고 할 정도로 많은 디자이너가 일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현장은 너무 열악하죠. 그래서 일단은 디자이너에 대한 인식, 디자인 일에 대한 가치를 생각하는 사회 인식이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캘리그라피 작가로써 언제까지 활동할 생각인지 물었다.

"재미있어서 하는 일이니깐 죽을 때까지 해야죠. 좀 거창하게 말하면 제가 붓을 들 수 있을 때까지 하고 싶어요. 그리고 <82년생 김지영> 소설이나, 미투운동이 사회적 이유가 되고 있는데 이런 문제들이 계속해서 이슈가 되기를 바래요. 남자든 여자든 이 문제에 심각성을 알았으면 해요."


* 아도르 캘리그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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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nch.co.kr/@adore

[현장의 목소리] 어느 웹디자이너의 과로자살 / 2018.05

어느 웹디자이너의 과로자살

- 에스티유니타스 웹디자이너 유족 장향미 님 인터뷰

나래 상임활동가


“제 이름은 장향미입니다. 제 동생은 장민순이고요. 게임회사에 재직 중인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그는 ‘평범한’이란 단어에 힘을 줬다. 동생 죽음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무엇이 동생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무엇이 문제였고 해결되어야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지 수 없이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다니고 있는 회사 앞에서 유인물을 나눠주던 곳의 문을 두드렸다. 바로 서울남부지역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 ‘노동자의 미래’였다. 함께 자료를 모아 분석하고 결국 회사의 강압적 ‘야근’이 문제였다는 걸 확인했다. 그렇게 장향미씨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꾸려진 ‘공인단기·스콜레디자이너 과로자살 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에 참여하고 있다. 쉽지 않은 선택을 하게 된 진심을 물었다.

“제 동생의 일이기 때문에 제가 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동생이 왜 죽었는지, 뭐가 문제인지 꼭 알아야 했거든요. 저는 그만둘 수가 없었어요. 그만두면 제가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하겠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동생이 하고자 했던 일을 제가 하고 싶어요. 저 혼자 힘으론 불가능할거라 생각했고, 그래서 대책위 여러분들이 함께 해주셔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디자이너로서 열정이 많았던 동생의 죽음

“제 동생은 디자인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천부적으로 디자인 실력이 뛰어난 건 아니었지만 열정이 많았어요. 자기 꿈도 방에다 써놓았죠. 디자인에 도움이 되는 건 뭐든 배우려고 했어요. 서양화부터 디자인 강연같은 것도 찾아다녔죠. 디자인에 영감 주는 건 뭐든 사진으로 찍어놓고 기억했어요. 저는 디자인을 전혀 모르는데, 그런 저를 붙잡고 디자인 얘기를 한 게 동생이었죠.”

그런 그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장민순씨는 2015년 5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총 2년 8개월을 근무하는 동안, 거의 1년을 야근 제한 기준을 넘기도록 일했다. 그의 포괄임금계약, 실제 근무 시간은 근로복지공단에서 만성 과중한 업무로 인한 뇌·심혈관 질환의 산재인정 여부 판단 기준인 발병 전 12주 평균 업무시간인 60시간에 거의 근접한다. 특히 2017년 11월 한 달 간 집중적 야근이 이뤄졌다. 20시 이후 퇴근이 14회에 이르고 밤0시 이후 퇴근도 4일이나 됐다.

“야근문제가 굉장히 심하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만두라고 얘기를 많이 했죠. 하지만 그만두지 않았어요. 잘해보고 싶다고 그랬거든요. 우선 잠 잘 시간이 없는 게 제일 큰 문제였어요. 동생이 평소에도 불면증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잠 잘 시간도없어서 늘 피곤해 했죠. 주말이면 자기 방에서 잠만 잤어요. 밥 먹으라고 깨우면 일어나지도 못하고 계속 잠만 자는 경우도 있었고요. 평일에는 잠을 거의 못잔다고 했어요. 회사 일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요. 당연히 건강도 좋지 않았죠. 초반엔 몸무게가 굉장히 많이 빠졌어요.”

회사에 매여 있는 시간이 길다보니 당연히 친구, 가족의 얼굴조차 볼 시간도 없었다. 아침에 화장 할 시간조차 사치였다. 동생은 집에 와서 화장을 지울 기력조차 없이 잠드는 때가 많았다. 결국 장민순 씨는 지난해 12월 2일 언니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잠은 자면서 하냐? 머리가 맑을 때 일해야 한다’는 상사의 말에 폭발한 장민순 씨는 대성통곡을 하며 업무의 과중함과 상사의 문제를 털어놓았다. 견딜 수 없이 화가 났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 문제를 더 이상 덮어놓을 수만은 없다고. 바로 다음날 12월 2일 자매는 고용노동부 강남지청에 근로감독 진정을 접수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 강남지청은 ‘올해(2017년) 근로감독을 나가는 일정이 모두 끝났으니, 내년(2018년) 2월 이후에 신고 들어온 다른 업체들과 묶어서 근로감독을 나가겠다, 갑자기 단독으로 이업체만 근로감독을 나가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따위의 답변을 내놓고 자매의 SOS 신호를 무시했다. 결국 자매가 나서서 진정 준비에 들어갔고, 필요한 자료를 조금씩 모으기 시작했다.

해가 넘어가고 18년 1월 2일 동생은 언니에게 출퇴근 교통카드 기록을 보냈다. 그게 동생의 마지막이었다.

야근, 업무과중, 일터 괴롭힘… 동생을 괴롭혔던 것들

“한 명, 두 명씩 계속 만나면서 동생이 왜 죽었는지를 알고 싶어 계속 만났어요. 만난 분들이 공통적으로 한 얘기가 있어요.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업무지시, 체계적인 관리나 운영시스템이 전혀 없고, 업무성취감을 느끼기 어려운 환경, 투명하지 않은 의사결정 구조, 심각한 야근 문제요. 이게 다 에스티유니타스라는 회사에 다녔던 분들이 한 얘기예요.

문제가 많은 곳이니 경력이 있는 분들은 오래 남지않고 퇴사해요. 그러다보니 신입분들이 잘 몰라도 일을 맡아요. 여기 디자인부서는 디자인 말고도 요구 받는 게 많았어요. 예를 들어 디자이너가 기획도 볼줄 알아야 했죠. 그런 것까지 디자이너가 다 한 거예요. 제 동생도 그랬고요. 그런 식의 야근이 많았다고해요. 문제는 그 야근이 생산적인 게 아니고, 대표나 상사에게 보고 디자인 시안을 만드는데 그게 계속 까이고, 까이고 그러다 보니 야근이 잦아지고요. 그런 식으로 일을 하게 되면 자기 이름 걸고 디자인이 나가는데 만족스럽지 않게 나가니 자기 성취감도 없죠.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기계처럼 뽑아내니까요.”

더불어 중요하고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장시간 노동과 업무 과중도 문제였지만, 직장상사에 의한 괴롭힘과 주말 무료 노동도 고인을 힘들게 한 요인이었다.

“회사 홈페이지만 보면 권위적인 것과 정반대를 강조해요. 저도 이번 일이 있기 전에 여기가 그렇게 문제가 많은 곳일줄 몰랐죠. 모두 회사가 홍보하는 이미지는 가짜라고 하시더라고요. 회사의 사내문화도 자유롭게 참여한다고 하지만 사실 다 강압적이고, 인사고과에 반영한다고 했어요. 주말 응원 이벤트부터 시작해서 사내 합창대회, 체육대회 이런 행사도 모두요. 도대체 이게 자발적인 건가요?“

야근 없는 일터는 가능하다

흔히 IT(정보기술) 업계와 같은 열정, 창의, 젊음을 강조하는 산업에선 야근은 어쩔 수 없다는 소위 불문율이 존재한다. 이 말의 함정과 문제점, 그리고 정말 IT 업계에서 야근은 없앨 수 없는 것일까.

“넷마블도 불가피하다고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거의 없어졌죠. 그건 회사의 의지예요. 야근을 없앨 수 없다는 건 말이 안돼요. 사실 이 문제는 공짜로 사람을 부릴 수 있기 때문이에요. 포괄임금제로 묶어서 야간수당을 넣어버리면 얼마든지 일을 시킬 수 있죠.”

대책위와 장향미 씨의 요구는 ▲ 직장 내 야근근절, 직장내 업무 스트레스 야기 환경 개선 ▲ 에스티유니타스의 진정성 있는 사과 및 재발방지대책 마련 ▲ 책임 있는 직장 상사에 대한 징계이다. 그 중 가장 우선순위는 에스티유니타스의 야근 근절이다. 유족으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왜 그런 결정을 하게 됐는지 물었다.

“동생이 하고 싶었던 일이라서요. 동생이 죽기 열흘 전 가족들에게 얘기했거든요. 야근을 없애고 싶다고요. 그래서 제가 이걸 계속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료 분들 만나면서도 생각이 확고해졌어요. 우울증상을 겪은 게 제 동생만의 일이 아닌 걸 알게 됐고, 재직자 중에서도 많이 겪고 있을 거예요. 그래서 빨리 야근을 없애는 게 시급하다고 생각해요."

과로로 인한 동생의 우울증 악화 

회사가 얘기한 대로 고인은 평소 우울증을 앓아왔다. 에스티유니타스에 입사하기 전 2015년 5월엔 완치에 가까울 정도로 호전된 상태였다. 하지만 회사에서 근무하는 2년 7개월 동안 비인간적 근무환경,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로 우울증이 악화 되었고 과중한 업무로 인해 주치의에게 제때 상담, 치료를 받지 못했다. 겨우 가까운 병원에서 약처방전으로 대신한 것이 무려 10차례나 됐다. 결국 장민순 씨는 2017년 9월 우울증 악화로 휴직했다 복직했지만, 회사는 11월 한 달간 살인적인 야근을 시켰다. 4명이 해야 할 일을 고인에게 모두 맡겼다. 인력 충원도 없이 말이다. 그러면서 회사는 고인의 죽음의 원인은 우울증이라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제 동생의 죽음은 우울증이 원인이 아니고, 과로로 인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명백히 사회적, 회사의 타살입니다. 유난히 회사에 충성하는 분위기가 강한 우리나라와 일본에 과로자살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를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요인으로 제대로 바라보고 해결해야 해요.”

“야근 없는 회사가 제 동생의 유지예요”

그는 대책위 활동을 통해 사회 곳곳의 아픔을주목하게 됐다. 

“사실 저는 사회 이슈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거나 참여하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방관자였죠. 내 가족만 아니면 되고, 직접 나서기는 귀찮고, 내가 이걸 하다가 혹시 불이익이라도 받으면 어쩌나, 내가 안 해도 누군가 해주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지내왔어요. 뉴스에 나오는 일들이 저한테 일어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막상 제가 당사자가 되고 보니깐 나쁜 일은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더라고요. 다 각자를 위해 조금씩 이 사회를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면 내가 약자가 됐을 때 조금은 나은 세상이 되어 있겠죠?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온라인 교육업계의 근본적 문제를 드러내고 바꾸고 싶어요.”

특집3. 나는 성소수자 노동자입니다 / 2018.05

나는 성소수자 노동자입니다

- 웹디자이너 소리 님 인터뷰

나래 상임활동가


내가 다니는 직장에는 성소수자 동료가 있을까. 이상한 질문 같지만 우리 사회, 일터의 성평등, 인권감수성을 돌아보게 하는데 중요한 질문이다. 대부분의 성소수자들이 차별과 혐오로 인해 직장에서 진짜 자신을 꽁꽁 감춘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법으로 말이다. 이전보다 인권 감수성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직 우리 사회가 갈 길이 멀다. 노동과 성소수자, 그리고 건강 문제를 나눠보기 위해 마케팅 회사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하는 성소수자 노동자 소리 님을 지난 4월 24일에 만났다.

“지금 다니는 직장까지 총 4년간 직장생활을 했어요. 지금 제가 28살인데, 20대 초반부터 일했죠. 그때부터 겪은 일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인터뷰에 응하게 됐어요.”

웹디자이너 소리 님은 게이이면서 HIV/AIDS 감염인이다. 일하게 된 계기도 군 휴학을 하고 입대를 앞둔 찰나 에이즈 확진을 받게 됐고, 군대 면제가 됐다. 애니메이션 전공을 한 그는 당장 복학을 하기 어려웠고, 마침 아는 지인이 회사를 소개해줘 웹디자인과 연을 맺게 되었다. 현 직장은 10명이 채 안 되는 소규모 SNS 온라인 마케팅 대행사인데, 소리 님은 콘텐츠 제작 업무로 기획이 완성되면 웹자보, 카드뉴스 등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웹디자이너의 하루는 어떨까?

“집이 멀어서 회사까지 1시간 반이 걸려요. 출근하면 컴퓨터를 켜고 담배 한 대를 피우죠. 그래야 정신이 들어요. 앉아서 하루 스케줄 확인을 하는데 SNS콘텐츠를 몇 개 만들어야 하는지, 잔업이 있진 않은지 확인하고 만약 잔업이 있으면 오전에 잔업을 처리해요. 그 이후에 콘텐츠 작업을 하죠. 보통 SNS콘텐츠 작업을 끝내면 오후 4시 정도가 돼요. 추가업무로 블로그 체험단 운영 관리도 하는데, 이 일을 끝내면 딱 퇴근 시간이예요. 그런데 꼭 퇴근 시간에 대표가 일을 줘요. “이거 해야돼.” 이러면서 휙 던지죠. 그러면서 내일까지 해야한데요. 그런 일이 잦아요. 보통 그런 일이 있으면 야근이에요. 얼마 안 하면 저녁 8시에 퇴근하는데, 아니면 밤 12시죠. 모아니면 도에요.”

야근 문제는 웹디자이너에게 뗄래야 뗄 수 없는 문제다. 첫 직장도, 지금 다니는 직장도 야근이 일상적이었다. 지금도 최소 주 1회, 많게는 4일 야근이다. 개인에게 떨어지는 할당량이 항상 두 배로 떨어지고, 급작스럽게 처리해야 할 일도 매번 많다. 소위 을입장의 회사이다 보니 의뢰인의 말대로 무리하게 작업을 한다. 결국 ‘과로’는 웹디자이너의 몫이다.

또 한 가지 소리 님을 힘들게 하는 건 체계적이지 않은 회사 운영 구조다. 

“문제는 회사의 체계적이지 않은 운영구조예요. 보통 회의를 통해 기획이 완성되고 디자이너에게 업무를 주는데 그런 게 없이 일이 막 떨어져요. 대표가 일을 막 던지죠. 그러다 보니 당연히 이직률도 높아요. 제가 들어오고 나서 이미 절반 이상이 나갔어요. 보통 마케팅 회사는 기획자가 많아야 하는데 이 회사는 1명이에요. 얼마나 문제인지 아시겠죠? 심지어 제가 입사하고 1개월도 채 안 됐을 때 명함 디자인 업무를 줬어요. 디자인을 새로 하자고 해서 12개 시안을 만들었죠. 수정도 네, 다섯 번을 했어요. 처음엔 대표가 만족하더라고요. 그런데 갑자기 다음주에 저한테 와서 ‘이거 너무 쓰레기 같아서 못쓰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때 너무 속상했죠.”

그래도 일의 보람은 본인이 했던 작업물이 많은 곳에 뿌려졌을 때다. 기존에 있던 것들을 조합하고, 새로 창작하는 디자이너에게 최선을 다한 결과물을 ‘쓰레기’라고 평가당했을 때의 참담함은 곧 자신의 자존감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오로지 그 즐거움과 보람으로 회사생활을 버티는데 디자이너로서의 자존감마저 무너지면 너무 힘든 일이 된다고 서글프게 말했다.

당연히 과로와 스트레스는 몸에 좋지 않다.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 장염, 역류성 식도염에 시달린다. 소리 님은 덤덤하게 ‘장기는 포기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근골격계 질환도 당연히 심각하다. 목, 허리, 손목, 다리 안 아픈 곳이 없다. 

“아예 직종을 옮기지 않는 이상 똑같은 문제를 겪죠. 어디를 가도 똑같으니까요. 하다 정 힘들면 퇴사하고 다른데 들어가서 똑같이 스트레스받잖아요. 그렇다고 무급휴가를 회사에서 선뜻 내줄리도 없고요. 그러니 차라리 월급을 덜 받고, 덜 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정도예요.”

성소수자 노동자인 소리 님에게 직장 내 스트레스 문제는 더 복잡하고, 괴롭다. 단순히 스트레스 수준이 아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문제다. 그는 평균적인 틀에 맞추려고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이 회사라고 했다. 처음 다녔던 곳도, 2개월 짧게 다녔던 회사도 3년 가까이 일하는 지금의 직장도 마찬가지다.

“모든 회사에서 제가 들은 말이요, ‘게이처럼 굴지마라’였어요. 제가 첫 직장 다닐 땐 마른 체격이었거든요. 그때 저한테 ‘너는 너무 말라서 밤일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냐’라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성차별적 발언에 쉽게 노출됐고, 심지어 성소수자인지 집요하게 묻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런 사람이 모든 회사에 꼭 한 명씩 있었죠.

지금 직장에선 무슨 얘기까지 들은 줄 아세요? ‘너는 성소수자이고, LGBT¹ 쪽인거 상관없는데, 제발게이인거 티 좀 내지마라’고 하더라구요. 그 얘기를 한 사람은 나이도 많고, 직급도 높은 남성이에요. 사실 그 상황이 두렵기도 했죠. 아마 첫 직장이었으면 아무 얘기도 못 했을 거예요. 그런데 이번엔 무서운 것도 잊을 정도로 화가 났죠. 그래서 ‘내가 게이이건 말건 무슨 상관이냐, 지금 말한 거 불쾌하다. 그 말은 장애인한테 장애인 티 내지 말라고하는 것과 똑같다. 내가 만약 진짜 게이면 어쩔거냐, 말실수 했다고 생각하지 않냐.’라고 물으니깐 그러더라고요. ‘아직 우리 사회가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있다, 내가 나이가 많아서 너를 걱정해서 그런 거다’라고 대답하더라구요. 웃으면서 상황을 마무리하기 했는데, 그리고 나서 갑자기 그 상황이 무섭더라고요.”

성소수자 노동자들에게 직장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곳이지만 동시에 끔찍한 곳이다. 차별적이고 혐오적인 언행이 대부분 직장에서 벌어진다. 사실 혐오와 차별, 배제는 약한 사람에게 향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리 님의 경험이 여성인 필자에게도 낯설지않다.

“어디를 가든 물어봐요. 여자친구 있냐, 결혼할 거냐, 결혼 생각 없냐. 계속 물어봐요. 여자친구 없고, 결혼할 생각 없다고 한번 말을 하면 안 해야 되는데 결혼이 얼마나 좋고, 여자친구가 있어야 하고 그런 설교를 해요. 심지어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 혹시 남자 좋아하냐고 얘기하는데 정말 스트레스예요. ‘아니 왜 여자친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런 생각부터 들죠. 저는 굳이 애인이 있는지를 회사에까지 얘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저보고 매정하데요. 인정머리가 없다고요.”

최근 결남출이란 신조어가 있다. 면접을 보는 구직자에게 ‘결혼, 남자친구, 출산’에 관해 묻는 면접관의 질문을 줄인 것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채용과정부터 직장생활까지 성차별을 당하는 대표적 예다. 그런데 성소수자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마치 검열을 하듯, 세상이 정해놓은 평균을 강요하듯 끊임없이 묻고, 또 묻는다. 그들에게 너무 쉬운 질문이지만, 소리 님에겐 너무나 힘들고, 괴로운 질문이다.

“이거는 포괄적 문제죠. 여자면 무조건 남자친구가 있을 것이고, 남자면 여자친구가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이성애중심적이죠. 그리고 연애도, 결혼도 내가알아서 할 문제잖아요.”

소리 님은 커밍아웃²을 하지 않았다. 본인의 성정체성, 적적지향은 극히 개인적인 정보이고 사생활인데 그것을 굳이 회사에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최근 ‘게이 티를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사건을 겪은 후 얘기를 해야 하나 고민을 최근에 하기 시작했다.

“최근 그 일을 겪고 나서 되게 무서워졌어요. 내가 게이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게이 티를 내지 말았으면 좋겠단 얘기를 들으니깐 회사에서 커밍아웃 했을 때 엄청난 후폭풍이 있지 않을까.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게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고민은 드는데, 얘기해야지 편해지지 않을까 싶기도하고요. 그런데 후폭풍이 두렵죠.”

성정체성, 성적지향을 밝히는데 가장 큰 벽은 사람들의 차별, 혐오다. 문제는 그것이 일터 괴롭힘으로 작용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성적지향·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직장에서 본인의 정체성으로 인한 따돌림, 협박, 반복적 지적, 비난, 조롱, 물품훼손, 신체적 폭력, 성희롱, 성폭력 중 어느 한 가지라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중이 전체 516명 중 41.7%(215명)에 달했다.



“성소수자로서 받는 스트레스는 또 달라요. 차별적인 단어를 들었을 때 밝힐 수도 없고, 오히려 숨겨야 하죠. ‘게이들 너무 더러운 것 같아, 죽었으면 좋겠어’라는 혐오/차별적 말을 듣고 심지어 맞장구를 쳐야할때도 있어요. 자기를 숨기고, 부정까지 하면서 겪는 스트레스는 정말 심각하죠. 그래서 우울증도많아요.”

그렇다면 성소수자 차별, 혐오 문제에 대해 정부관계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받을 순 없을까? 하지만 소리 님은 있는 법제도 조차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는 문제를 지적했다. 한국은 2002년 ‘국가인권위원회법’을 제정했다.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에 ‘성적 지향’을 포함해 동성애 차별 금지를 강조했다. 지방자치단체 인권조례 등 자치규범이 있지만 최근 기독교, 보수집단 등에 의해 조례가 폐기 되거나 성적지향을 존중한다는 내용이 삭제되고 있다. 오히려 성소수자 인권이 후퇴되고 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도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폭력을 중단할 것을 한국정부에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혐오, 차별, 폭력 없는 평등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노동조합의 노력 또한 적극적으로 요구되는데 노동조합, 사회운동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물었다. 

“차별/혐오로 인한 폭력에 대한 규제가 필요해요. 일터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게 어느 정도까지 규제가 되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성정체성, 성적지향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것은 폭력이죠. ‘너는 게이처럼 굴지마, 여자처럼 굴지마, 남자처럼 굴지마, 화장하고 다녀’라는 식의 표현은 문제가 있는거잖아요. 언어에 대해 생각하고 조심하게 되다보면 행동도 조심스러워진다고 생각합니다. 말이 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 것들을 일터에서 풀어내는 게 노동조합의 역할이지 않을까요.”

소리 님은 성소수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HIV/AIDS 감염인으로서 겪는 문제가 많다고 했다. 많은 사람이 에이즈는 ‘죽음의 병’, ‘문란한 사람들이 걸리는 질병’, ‘동성애자들이 걸리는 질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정보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뒤엉켜 사회적 낙인과 편견으로 왜곡된 것이다.

“채용 건강검진, 직장 건강검진에 혹시 HIV/AIDS항목이 있진 않을까 두려움이 커요. 회사에 알려지면 어쩌지, 알려서 내가 해고되면 어쩌지. 그런 걱정을 많이 해요. 만약 입사 해도 계속 두려움에 떨어요. 감염인은 하루에 한번씩 약을 먹어야 하는데 낮에 복용할 땐 주변 눈치가 보여요. 몰래 숨어서 먹기도 하죠. 사람들이 ‘무슨 약이냐, 비타민이냐, 나도 달라’ 이렇게 얘기하기도 해요. 

약값 지원 문제도 심각해요. 대상은 늘고 있는데, 예산이 감소하고 있거든요. 약값을 선불로 내는 병원이 있어요. 그런데 예산이 부족해서 약값 환급금을 1년 뒤에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제일 먼저 확보되어야 하는 게 치료제 예산이예요. 예산이 부족하면 약을 못먹는 사람이 발생하게 돼요. 그러면 감염인수는 증가할 테고, 감염인이 크게 고통받게 되죠. 그런데도 최대로 잘 하는 게 현상유지예요. 아니면 심지어 예산을 깎기도 하고요.”

감염인을 터부시하고, 감염의 책임을 개인의 부주의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감염 사실을 알리기는 더욱 쉽지 않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모임에서 발행한 「행성인 회원을 위한 HIV/AIDS 가이드북」엔 10가지 에티켓 항목이 있다. 항목 중 가장 첫번째가 지지와 공감이다. 차별과 배제가 아닌 지지와 공감이 성소수자를, HIV/AIDS 감염인을 평등한 사회, 일터에서 건강하게 살아가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리 님이 우리에게 던지는 마지막 메시지의 울림은 크다.

“저는 사람들이 오지랖 좀 그만 떨었으면 좋겠어요.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도 없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가득찬 오지랖이요. 오지랖을 필거면혐오와 차별 없이 상대방을 먼저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요?”


※ 각주

1) 레즈비언(lesbian)과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transgender)를 가르키는 말로 성소수자를 가리키는 단어다.

2)  ‘벽장 속에서 나오다(Coming out of the closet)’라는 뜻에서 유래된 말로, 성소수자가 자기 주위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특집] 노동조합과 함께, 성소수자 평등한 세상으로 한 걸음 더! / 2018.05

노동조합과 함께, 성소수자 평등한 세상으로 한 걸음 더!

곽이경 민주노총 대외협력국장


노동자들과 ‘성소수자 노동권’ 이야기를 하면 꼭 나오는 이야기가 “주변에선 성소수자를 본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노동조합이건 어디건 정책이나 제도, 문화가 변화하려면 그 필요성이 두루 인정되어야 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조합에서 성소수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통로, 지지를 드러내는 사업, 실제로 제도를 바꾸는 과정, 연대의 경험이 쌓여야 한다.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성장과 함께 노동조합의 인식 변화도 그에 맞춰 필요성이 더 커지는 것은 물론이다.

성소수자를 위해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일은 상상 이상으로 많다. 민주노총은 노동자 대중조직이므로 성소수자 노동자도 그 일부이고, 이는 모든 노동자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성소수자의 요구를 모두를 위한 요구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노조는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자연스럽게 커밍아웃하고 지지받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아래는 일터에서 성소수자 노동자의 평등을 위해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몇 가지 예시들이다.

노동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많다

10여 년 전 한 전교조 조합원이 찾아왔다. 당시 차별 때문에 학교를 나오지 못하는 성소수자 학생을 돕고 싶어 성소수자 단체를 찾은 것이다. 나는 청소년 성소수자 편에 서고자 하는 그를 보면서, 교육노동자가 청소년 성소수자의 중요한 연대자이자 주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전교조는 최근 성소수자 청소년을 배제하는 성교육 표준안에 반대하는 신문광고를 싣고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교육노동자라면 평등한 학교를 만드는 주체가 될 수 있다. 모든 일터에서 이런 실천은 가능하고, 필요하다. 보건의료노동자라면 병원에서 성소수자 가족을 평등하게 대우하고, HIV/AIDS(후천성 면역 결핍 증후군)감염인에게 필요한 의료기회를 제공하도록 할 수 있다.

입원 또는 수술을 앞두고 보호자란에 서명이 필요한 경우를 대부분 겪어봤을 것이다. 보호자 서명은 실제로 가족관계를 확인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이것은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성소수자들에게 큰 벽으로 다가온다. 보호자 서명을 위해 먼 곳의 원가족이 급히 병원에 와야할 때도 있다. 언론노동자라면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인권에 기반한 보도원칙을 세우는데 힘쓸 수도 있다.

성중립화장실 설치 요구도 노동조합의 요구가될 수 있다. 왜 노동조합이 성소수자와 연대해야 할까? 사람을 중심에 놓는 가치관이 자신을 바꾸고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과 모든 이들의 삶을 바꾼다. 제대로 된 세상을 만드는데 노동자가 중요하다. 이것이 노동조합운동의 역할이다.


① 교육노동자가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안전한 학교를 만들어보자!

- 혐오와 괴롭힘을 당하는 청소년/학생 편에 서기

- 교사 및 학교 구성원을 위한 성소수자 인권교육, 성평등 교육을 진행해보기

② 일할 권리를 빼앗긴 에이즈 감염인과의 연대

- 채용시 검진을 포함한 직장검진에서 동의 없는 에이즈 검진 금지, 차별구제 노력

- 직장 내에서 에이즈에 관한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는 교육 진행

③ 트랜스젠더 노동자들이 평등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 만들기

- 성전환수술에 대한 의료보험 적용 및 병가 등 치료기간에 대한 지원. 성별변경 이후에도 직장에서 계속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교육 및 인

식전환 노력하기

- 채용시 굳이 성별을 기재하지 않도록 하는 성평등 이력서 요구

④ 양성으로만 구분된 일터를 바꾸기

- 남녀화장실이나 탈의실, 휴게실을 성중립 공간으로 바꾸기 (개인 화장실, 탈의실 등)

- 유니폼을 자유롭게 선택하게 하거나 성중립적인 유니폼을 제공하기

⑤ 가족 바깥의 권리를 보장하기

- 병원 등에서 가족만 보호자가 될 수 있는 제도를 바꾸기

- 기존 가족 중심의 각종 수당 및 복지 혜택을 가족 바깥의 사람들로 확대하기


커밍아웃이 가능한 일터, 지지받는 일터로의 변화

성소수자 노동자들의 바람은 자신을 숨기지 않고도 평등하고 안전하게 일하는 것이다. 일상의 대부분을 보내는 일터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 채 생활해야한다면 얼마나 답답하고 불안할까? 일터가 변하려면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생각이 먼저 변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성평등 교육 등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포함하여 교육하기 시작했다. 이런 교육은 더욱 확대 심화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성소수자를 직접 만날 때 사람들의 인식은 많이 바뀔 수 있다. 민주노총은 작년 영화 <런던프라이드> 상영회를 성소수자 단체와 공동주최했다. 성황리에 진행된 이 상영회를 통해 우리는 보수적이었던 노동자들이 어떻게 성소수자를 이해하고, 연대로 나아가는지알게 되었다. 이후 전국 각 지역에서 민주노총 지역본부가 단체들과 함께 상영회를 추진했다.

또한, 민주노총은 수년 전부터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하고 있다. 최근 2년은 기념 티셔츠를 만들어 전국 가맹·산하조직에 배포하고, 참가단을 꾸려 조합원과 함께 행진하기도 했다. 연대는 가장 효과적인 교육이기도 하다. 또한, 단위노조의 조합원이 나서서 성소수자 군인을 처벌하는 군형법 92조 삭제를 요구하는 민주노총 연대성명을 조직하기도 했다. 작지만 큰 움직임이다.


① 조합원 전반을 대상으로 하는 정기적이고 지속적인 교육

- 성소수자 노동인권 교육 진행하기. 또는 성평등 교육 등 정기교육에 관련 내용 포함하기

- 교육 진행시 성평등, 성인지적 관점을 견지하기

② 성소수자를 직접 만나고 연대하며 인식을 바꾸기

- 성소수자들과 함께 하거나 이해를 넓히기 위한 사업 진행하기. 영화상영회나 간담회 등을 개최하며 편견의 벽을 허물고 서로에게 필요한 것들을 알

아가보기

- 성소수자들의 투쟁에 함께하기. 퀴어문화축제 참여 등 성소수자와 연대할 수 있는 자리에 함께하기.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에 맞서는 현장에 연

명, 연대 등으로 함께 하기

③ 지속적인 캠페인으로 노동조합이 성소수자를 지지한다는 사실 알리기

- 성소수자들은 직장에서 커밍아웃하지 않았기 때문에 먼저 노동조합이 성소수자에게 열려 있고 이들의 권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것

을 알려야 함

-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 성소수자 동료를 지지하는 내용의 포스터나 리플렛 비치

-‘나는 성소수자 동료를 지지합니다’ 스티커 일터와 소지품에 붙이기 캠페인


성소수자들에게 실제로 도움 되는 노동조합

민주노총은 2015년 사무총국 처우 규정 개정을 통해 동성 배우자 및 혼인신고서를 작성하지 않은 배우자에게도 가족수당을 지급하기로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무처 상근자들이 이 조항을 통해 가족수당을 받게 되었다. 이 사례는 사회단체 등의 규약개정에 좋은 선례로 남아있다. 물론 비혼 등 가족을 이루지 않는 이들도 함께 적용받을 수 있는 내용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조합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노조 규약, 단체협약 등에 차별금지 규정을 넣도록 노력할 수 있다. 노조가 먼저 시작하면, 사회가 바뀐다.


① 단체협약에 성소수자 차별 금지 조항을 넣고 성별정체성이나 성적지향 때문에 배제되는 권리를 회복하기

- 직장 내 성폭력과 함께 혐오표현과 괴롭힘을 금지하는 조항 넣기

- 가족수당, 복지수당 등 이성애자 가족을 기준으로 부여되는 임금 및 혜택에 있어 평등을 실현하는 방법 찾기

- 단협에서 성소수자 가족들도 간병휴가, 가족돌봄휴가 등을 보장함으로써 현행법에서 배제된 권리를 노조가 먼저 보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기

- 입사 공고, 채용, 교육, 회의 등에서 개인의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을 존중하고, 혐오 및 차별을 근절하기

② 노동조합 강령 및 규약에 성소수자 평등의 가치를 명확히 하도록 개정하기

공공운수노조는 강령에서 성소수자를 포함하고있다.“우리는 장애인, 노령자, 실업자,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의 권익옹호가 평등사회 건설의 바탕임을 인식하며 모든 형태의 차별을 철폐하고 인간존엄성 유지에 필요한 생활조건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한다.”

③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함께 노력하기


성소수자 노동자가 주인공이 되는 노동조합

대중조직인 노동조합의 매력은 각양각색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한목소리를 내며 함께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조합에서도 여성과 성소수자, 이주민, 장애인, 청소년들이 목소리를 내고, 노동조합의 주요한 역할을 맡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노동조합에는 이 모든 사람이 함께 섞여있다. 민주주의는 ‘참여적 평등’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때 보다 확장되고 깊어질 수 있다. 참여적 평등이란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모습 그대로 의사결정과 각종 실천의 장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목소리가 더 작고, 존재감이 없고, 더 차별받는 사람들이 평등하게 참여하려면 더 각별한 노력을 쏟아야 한다.

민주노총은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이 보장되는 참된 민주사회를 실현”하겠다는 과제를 지닌 노동조합이다. 더 다양한 조직, 평등한 조직, 이를 기반으로 단결하는 민주적 조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도도 필요하고 제도의 정비도 필요하다. 성소수자 조합원이 모일 수 있는 당사자 모임을 지원하는 것, 성소수자들이 노조를 대표할 수 있도록 할당제도 및 조직을 정비하는 것, 성소수자들이 걱정없이 상담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는 것이 그 방법 중 하나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무엇이든 시도해보자.


※ 이 글은 민주노총에서 발행 예정인 성소수자 노동인권소책자를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특집1. 성소수자의 건강과 삶은 어떠한가 / 2018.05

성소수자의 건강과 삶은 어떠한가

재현 선전위원장


성소수자는 누구인가

성소수자는 남녀 동성애자를 포함하여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퀘스쳐닝(자신의 정체성에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특정 젠더 또는 섹슈얼리티로 자신을 한정 짓지 않는 자), 간성 등을 포함하는 LGBTQI (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Questioning, Intersex)를 총칭한다. 한국의 성소수자는 그 자체로 혐오에 대상이다 보니 많은 이들이 자신의 성적 지향을 밝히지 못하고 살아간다.

성소수자가 문제가 되는 사회

이 사회에서는 성소수자를 정신질환자로 여긴다. 그래서일까? 성소수자를 정신병 환자로 여기는 사람들은 성소수자가 꾸준히 전환 치료를 받으면 이성애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미 의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이러한 주장은 틀렸음이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했다. 1973년 미국 정신의학회는 전 세계적으로 정신과 질환 진단에서 표준으로 사용하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의 정신질환 목록에서 동성애를 삭제하기로 했다. 1990년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동성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하며 더는 성소수자가 정신질환자가 아니라는 점을 밝혔다. 이후 성소수자의 전환 치료를 주장하던 세력은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

오히려 전 세계는 1990년 세계보건기구 결정이 있었던 5월 17일을 기념하여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Transphobia, and Biphobia)' 행사를 진행하면서 성소수자의 인권 증진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한편, 보수개신교는 자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면서 성소수자를 죄악으로 여기는데 전념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차별금지법 제정, 인권조례 제정 등 성소수자의 인권 증진을 가로막는 데 일조하고 있다. 보수정치 세력역시 반공 이데올로기로 지지층 결집이 쉽지 않자, 성소수자에 대해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정치세력을 동성애 집단으로 매도하며, 자신들의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있다.

혐오는 성소수자의 삶 자체를 위협

지난 2017년 육군 A대위는 군대 밖에서 상호합의하에 업무와 무관한 사람과 성관계를 맺었는데, 상대가 동성이라는 이유로 군형법 92조 6항('군인 또는 준군인'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하는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으로 형사처벌 할 수 있다)에 의해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러한 반인권적인 판결은 당시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의 지시로 진행되었음을 확인했다. 당시 군은 의심이 가는 대상자 군인들에 통화 기록을 파헤치고, 개인의 성적지향을 강압적으로 진술하게 하는 면담 등을 통해 성소수자의 인권을 짓밟았다. 무엇보다 A대위는 성적지향이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일터에서 감옥에 갇히며 본인이 원치 않는 상황에서 성정체성이 밝혀지고, 생존권 자체가 박탈되었다.

문제는 한국 사회처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낙인이 판치는 세상에서 A대위와 같은 일은 어떤 성소수자 그리고 성소수자 노동자에게 나타날수 있는 일이라는 거다. 게다가 한국 사회는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이 알려졌을 때 일상적인 생활을 계속 이어가기가 결코 쉽지 않은 사회다. 한국 성소수자 건강 연구 '레인보우 커넥션 프로젝트' 연구팀 역시 '모든 인간은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를 경험하지만, 성소수자는 자신이 놓여있는 소수자 지위로 인해 차별과 폭력 등 편견적 사건을 겪게 되고 이들은 배제에 대한 예상, 정체성에 대한 숨김, 내재화된 동성애 혐오 등의 소수자만이 느끼는 스트레스를 경험한다'고 말했다(<한겨레 21> 낙인과 고립 그리고 죽음 2018.01.02).

몸과 마음의 건강마저 위협받는 성소수자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고통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 역시 비일비재하다. 성소수자 인권포럼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성소수자가 일반 인구보다 자살 경험이 9.25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낙인이 결국 생명까지도 위협한다는 사실을, 혐오 세력들이 반드시깨달아야 한다. (2017 성소수자 인권포럼, 한국인 LGB(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 건강연구)

성소수자들은 의료 영역에서도 방치되어 있다. 특히 트렌스젠더의 경우 성전환 과정과 이후 받아야 하는 의료적 조치가 있지만 대부분 건강보험에서 비급여 항목이기 때문에 이 모든 비용을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대부분 트렌스젠더들은 성정체성을 이유로 사회적으로 이른바 괜찮은 일자리에서 일할 확률도 낮고, 가족으로부터 지지와 동의를 구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성전환 수술에 들어가는 비용과 몇 년씩 호르몬 치료에 필요한 비용을 홀로 감당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미국이나 캐나다, 아르헨티나 등 해외에서 트랜스젠더의 성전환과 관련된 비용을 국가 의료보험 체계에서 보장하는 사례를 고민해야 한다.

성소수자를 포함해 모든 사람은 자신의 성적지향에 맞게 사랑하며 살아갈 권리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성소수자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사회를 모든 성소수자가 건강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연대적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함께 해야 한다.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현장과 지역에서 새로운 시도를 고민하다 (1) 금속노조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최진일 조합원 인터뷰 / 2018.04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일터>는 지난 2010년부터 3년여간 [노안활동가에게 듣는다] 코너를 통해 전국의 노동안전보건 활동가들이 현재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개인적인 고민과 꿈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독자들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자 하였다. 그리고 몇년이 지난 지금 그때 활동가들은 어떤 고민을 이어가고 있는지, 새롭게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펼치고 있는 동지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다시 시작하는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는 충남 서산에 있는 동희오토에서 자동차를 만들면서 지역에서 행복한서산을꿈꾸는노동자모임(행서모)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하는 최진일 조합원를 시작으로 연재를시작한다.

높은 노동강도를 견디며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전화나 문자로는 몇 번 이야기 나눴는데 이렇게 뵌건 처음이다.

최진일 조합원은 전날 밤 야간 근무를 마치고 민주노총 서태안 위원회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터에서, 현장에서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하는 활동가들 만나 다양한 고민과 활동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잘 부탁드린다. 우선 간단하게 본인 소개를 부탁드린다.




"아마 다들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동희오토에서 일하고 있다. 동희오토는 2006년 입사해서 일하다 2008년 해고되고 현대차 본사 앞에서 투쟁하면서 2011년 말에 다시 복직했다."

최진일 조합원은 함께 해고 된 8명의 동료들과 복직 투쟁을 했다.

"회사에서 법적인 해고 사유를 '이력서 허위 기재'라고 했는데, 그거야 회사 주장이고 현장에 투쟁이 있었다. 그때가 피치업이라고 회사가 노동강도를 높이려는 상황이었다. 당시엔 한국노총 조합원이었는데 대의원들 중심으로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면서 대응을 했는데 그것 때문에 회사에 난리가 났다. 제가 있던 업체는 폐업하면서 저를 포함한 동료들이 해고됐다. 이후에 민주노총에 가입해서 쭉 복직 투쟁을 했다."

당시 투쟁은 노동강도 저지 투쟁이었지만, 사실상 노조 민주화에 대한 투쟁 의미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회사는 아주 완강히 저항했다.

"동료들이 투쟁하기 이전에 동희오토에서 민주노조 투쟁을 시작한 게 2004년부터였다. 그때는 조합원도 300∼400명 정도 됐는데 그때도 노조 활동을 하려고 하면 조합원 소속 업체가 폐업되고 다시 업체가 들어오고 그런 게 반복되면서 지지부진한 상황이었다."

이미 민주노조 투쟁이 쉽지 않은 현장인데 여기에서 일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물었다.

"그때만 해도 동희오토처럼 완성차가 아닌 수십 개의 하청 업체 비정규직 노동자가 완성차를 만드는 현장이 여기 말고 없었다. 그래서 동희오토는 자본에는 꿈의 공장이라고 불렸다. 동희오토라는 현장이 비정규직 운동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뜨거운 감자여서 여기를 왔는데, 와보니까 활동가들이 곳곳에 있었다. (웃음) 입사할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현장에서 문제를 제기하면서 회사가 나를 뒷조사하고 해고까지 됐다."

현장에서 소소하지만 소중했던 시간들

언제부터 이른바 현장에 투신해서 운동해야겠다 생각했는지, 그런 결심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물었다.

"대학교에 입학했는데 선배들은 등록금 투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노수석 선배라고 시위 중에 돌아가셔서, 입학하자마자 열사 투쟁을 했고 그게 제일 큰 계기였다. 사실 동기들이나 선배들한테 농담으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대학에 갔을 때 운동권이 많이 있었으면 나는 안 했을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얼마 안 되는 사람들만 활동하다 보니 절실했던 게 있었던 것 같다."

노동강도가 높기로 악명이 높은 곳이라 일 자체가 어렵지는 않았는지 물었다.

"동희오토 가기 전에 이미 제조업 사업장에서 일은 해봤는데 컨베이어 노동은 여기가 처음인 데다 여기는 워낙 노동강도 자체가 높으니까 힘들었다. 게다가 노동강도가 점점 강해졌다. 입사했을 때만 해도 UPH라고 한 시간에 자동차가 나오는 속도가 32대였는데 지금은 60대가 나온다. 속도는 2배가 빨라졌는데 당연히 인원이 두 배가 늘지는 않았으니 힘들다. 교대하고 야간에 일하는 것도 처음 입사했을 때는 30대라 버텼는데 이제는 슬슬 힘들어진다."

최진일 조합원은 강도가 높은 일을 하면서도 소소한 활동들을 펼쳐왔다.

"처음엔 제가 일하던 업체 안에서만 알음알음 활동을 했다. 4∼5명이 소소하게 회사의 속셈을 알아야 한다고 (웃음) 속셈학원 모임을 만들고 활동했다. 얼마 하지는 못했는데 그러다 처음 집단행동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여성 노동자분이 신입 사원으로 들어왔는데 한 분이 야간에 일 적응을 못 해서 반장이 엄청 갈궜다. 면담 들어가면 울면서 나오고 그래서 마침 저랑 같은 조원이라 쉬는 시간에 조원들이랑 의논을 했고, 한국노총 위원장한테 이야기해서 해결해달라고 하자고 결정해서 10명 정도가 찾아갔다. 그때 한국노총 위원장이 안타깝다고 알겠으니 회사에 이야기하겠다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퇴근했는데, 다음날 현장을 가보니 업체 사장이 노발대발 난리를 쳤다. 한국노총 위원장이 문제 해결은 커녕 업체 사장한테 우리가 한 이야기를 고자질했다. 그 뒤로 현장에서 일하는 동료들은 한국노총이 누구를 위한 노동조합인지 분명이 알게 됐다."

온갖 멸시와 왕따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활동

이른바 현장 활동 주범으로 찍힌 최진일 조합원은 복직 이후에도 지금까지 현장에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단속을 받고 있다.

"동료들이랑 같이 해고됐을 때 아예 민주노총 조합원은 없었고 현장이 한국노총으로 싹 정리된 상황이었다. 회사는 우리가 복직하기 전까지 현장 관리를 했다. 민주노조 조합원 하고는 아예 말도 못 섞게 단속을 한거다. 물론 업체가 많다 보니 분위기가 조금씩 달랐는데, 의장 쪽에서 일했던 동지는 관리자들이 대놓고 욕하고 폭력적인 분위기를 만들길래 우리가 모여서 그 업체를 쳐들어가서 관리자랑 푸닥거리를 했던 적도 있다. 관리자들은 우리를 늘 감시하니까 동료들이 말 섞는 것도 못 했다. 밥 먹을 때도 옆에 아무도 앉지를 않았다. 언젠가는 제가 한 번 동료들 옆에 가서 앉아봤는데 한 이틀인가 지나서 한 놈이 따로 얘기 좀 하자더라. 그러더니 하는 말이 미안한데 애들이 네가 옆에 앉아서 정말 불편해한다고 그러지 말라고 그러더라. 그래서 그래 그러냐 그랬다."

복직 이후 꽤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분위기는 별로 바뀌지 않았다고 했다.

"막 복직했을 때처럼 긴장이 있는 건 아닌데 지금도 여전히 관리는 한다. 최근에 있었던 일인데 회식이 있었다. 회식 때도 다들 제 옆에 오기 힘들어하는데 조금 말이 통하는 동갑내기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술이 좀 들어갔는지 저한테 사장하고 너무 싸우지 말고 잘 지내라고 그러면서 나랑 같이 가서 사장한테 술 한잔 따라주고 오자는 하더라. 저는 됐으니까 너나 갔다 오라고 그래서 혼자 갔는데 다시 오더니 표정이 일그러져서 오더라. 이 친구 딴에는 뭔가
관계를 풀어보려고 한 건데 사장이 진일이랑 친하게지내지 말라고 했다면서 왔다."

이런 회식 자리도 너무 괴롭고 힘들 것 같았다. 나라면 저란 상황을 견딜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맞다. 사실 회식에 별로 가고 싶지 않다. 처음에는 일부러라도 꼭 갔었는데, 그때는 아예 회사가 회식 때 제가 앉아야 하는 자리를 만들고 옆에 관리자들로 포위시켜 버리기도 했는데 그나마 싸워서 관리자들이 옆에 없는 거다."

큰 전환점을 맞은 산재 인정 투쟁

동희오토 현장에 있는 활동가들에게 황재민 씨 산재인정 투쟁은 큰 전환점이 되었다. 이 전환점을 어떻게 마주하게 되었는지 물었다.

"현장에서 일하다 사람이 쓰러질 정도면 뭔가 이야기가 들리는데 그때는 전혀 몰랐다. 그런데 저희랑 알고 지내는 공장 형님이 정문 앞에 어떤 여성분이 피켓을 들고 있다고 전했다. 그래서 그다음날 동료들이랑 가봤는데 황재민 씨 아내분이었다. 일단 연락처 주고받고 다음에 상황을 들어보니 이미 산재를 한창 진행해서 심사청구가 끝나고 재심사청구를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그때만 해도 저희가 노안투쟁이나 산재 관련해서 고민이 적었기 때문에 이야기를 듣고 충남 갑을오토택에 있는 안재범 동지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 이훈구 동지께 도움을 요청했다."

동료들은 두 분에게 이번 일과 관련한 이야기를 듣고 생각보다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우리가 민주노총 조합원으로 복직은 했지만 별다른 활동을 못 하고 있는데, 이것마저 듣는다못하면 민주노조가 있는 게 별 의미 없지 않겠냐. 그래서 이게 보통 일이 아니란 건 알지만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도 다시 산재를 신청해서 진행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가 투쟁하면 회사가 황재민 씨에게 보상하고 산재는 법원에 가서 다툴 생각이었다. 그런데 안재범 동지와 이훈구 동지가 회사에서 공단에 거짓 자료를 제출하는 등 산재 조사 과정이나 절차상 문제가 있으니 근로복지공단에 재조사를 요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의견을 줬다. 비록 전례는 없지만 한번 해보자고 마음을 모았다."

<일터> 통권 170호 / 20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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