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목소리] 반쪽짜리 편집자 윤정기 씨의 고군분투기 /2016.1

반쪽짜리 편집자 윤정기 씨의 고군분투기

- 부당전보와 노동탄압에 맞서 싸우는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 출판지부 윤정기 조합원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


이번에 <일터>가 만난 윤정기 씨는 20145월 평소 좋아하는 인문학을 더 많은 독자들과 나누고 싶어 출판인의 길을 선택한 편집자다. 그런데 윤정기 씨에게 올 겨울은 유난히 춥다. 그 이유는 2014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추행 방지 위해 CCTV 설치?

“CCTV 얘기를 처음 언급한건 전자책(e-book)팀에 있던 김 차장님이었어요. 새로운 플랫폼 사업을 하는데 보안 문제와 함께 당시 쌤앤파커스 출판사에서 발생한 성추행 사건을 언급하며 CCTV를 설치하자고 사내 게시판에 글을 올리더라고요. 대부분 직원들은 반대했죠. 저도 직원들 사생활 침해 소지가 있으니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꼭 거쳐야 한다고 의견을 말했죠. 그런데 어느 날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CCTV를 설치하겠다는 공지를 띄운 거예요. 그리고 강병철 사장이 저를 포함해서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직원 3명을 부르더라고요.”


신입사원이 의견을 피력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신입사원으로서도 참고 넘어가기 힘든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죠. 게다가 면담에서 사장은 좋은 의미로 설치하려고 했는데 너희가 반대하니 달지 않겠다라더니, 대신 본인 책상을 저희가 일하는 (편집부) 사무실로 옮겨서 일을 잘하는지 지켜보겠다고 했어요. 어이가 없었죠. 어쨌든 결국엔 CCTV 설치도, 사장의 책상 이동도 중단됐어요.”

CCTV 사건이 이렇게 넘어가는 듯했지만 윤정기 씨는 교정만 하는 반쪽짜리 편집자가 되어야만 했다.

1회 기획회의를 했는데 사장이 제 기획안에 대해서 대놓고 면박을 주거나, 같은 기획을 발표해도 제가 하면 통과를 안 시켜주더라고요. 12월부터는 교정교열팀에 배정돼서 정상적인 편집 업무는 못 하고 교정교열만 했어요. 처음 입사했을 때보다 권한도 줄고 업무에서 배제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죠.”


그리고 결국 올해 3월 일이 터진 거군요.

. 올해 3월에 조직개편이 있었어요. 이때 정은영편집주간이 저를 부르더니 각 팀장들이 저를 까칠하고 비판적인 직원으로 생각해서 아무도 팀원으로 받으려 하지 않으니 권고사직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묻더라고요. 저는 말도 안 되는 이유라며 거부했죠. 편집주간도 일단 알겠다고 다시 얘기해보자고 했는데 다음 날 바로 파주에 있는 물류창고로 인사발령이 나더라고요.”

윤정기 씨는 처음 권고사직 얘기를 듣고, 이를 거부 했을 때 다른 게 돌아오겠다고 예상했는데 역시나,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다음 날 물류창고로 부당전보를 당한 이후 싸워야겠다고 결심한 윤정기씨는 회사 짐을 정리하면서 사내 인트라넷 게시판화면을 캡처하고 그동안 부당노동행위라고 할 만했던 증거들을 모았다.


파주 생활은 순탄했나요?

처음에 갈 때는 재고관리 업무만 할 거라고 했는데, 현장에 가보니 재고 파악도 어느 정도 상황을 아는 분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저는 박스 포장하고 책 배송하는 일을 주로 했어요. 일도 일이지만 출퇴근이 가장 힘들었어요. 집이 일산이라 파주까지 그나마 가깝기는 했는데, 일하는 곳이 대중교통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서 파주 롯데아웃렛에서 자전거로 20분씩 이동해야 했어요. 게다가 지각하면 시말서를 써야 했거든요. 잠자는 시간 쪼개서 회사와 법적인 싸움도 준비해야 하고 출퇴근도 해야 하니까 그게 제일 힘들더라고요.”


본격적인 싸움을 결심하면서 노동조합과 언론사 문을 두드리다



부당전보 공지가 있던 날, 저와 2월까지 같이 일하다 퇴사한 선배 A와 어떻게 할지 상의했어요. 결국을 포함해서 그동안 자음과모음에서 있었던 문제를 제보하기로 했어요. 그러고 나서 출판지부 부지부장과 면담하면서 노동조합에도 가입했죠.”

 

제보 이후 한겨레, 한국일보 등 주요 일간지를 통해 자음과모음의 일이 세상에 알려졌다. 한편, 자음과모음은 제보자들과 사태해결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출판지부와 윤정기/퇴사자 A씨를 상대로 형사 고소하고, 한국일보를 상대로는 언론중재위 신청으로 맞대응했다. 뿐만 아니라 자음과모음에서 책을 출판한 저자들에게 윤정기 씨가 평소 행실이 바르지 않은 직원이었다는 인신공격성 메일을 보내며 기사의 본질을 흐리는데 애썼다. 각종 소송에도 위축되지 않고 싸움으로 이어간 윤정기 씨는 20157월 말 현장에 복귀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회사는 윤정기 씨에게 2억여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이라는 폭탄을 던졌다

 

복귀는 했지만 업무는 여전히 교정교열이었어요. 강병철 사장과 정은영 편집주간은 사과 한 마디 없이 그저 분란 일으키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분란이 뭐냐, 하고 물어봤죠. 사무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편집주간이 저보고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이튿날엔 손배소 고소장을 받았어요. 회사와 책을 내려고 했던 저자들이 저의 사건으로 작업을 못하겠다고 하면서, 회사가 손해를 입었다고 손배 소송을 제기한 거죠. 그때는 정말 화가 많이 나더라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회사에 피해를 주는 건 피해야겠다, 하는 생각이었는데 너무 악의적으로구니까 이젠 정말 확실히 대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행히 지금 현재는 회사가 모든 소송을 취하했다고 들었습니다.

최근 정은영 편집주간이 ()자음과모음의 새 대표 이사로 선출됐어요. 사옥도 새로운 건물로 이사하고요. 그러면서 모든 소송(형사, 민사)을 취하하고 언론에 이 사실을 흘리면서 사태를 마무리 짓는 분위기를 만들더라고요. 출판지부와 출판노동자들이 계속 피케팅하고 집회도 하고 사태가 커지니까 회사가 정리를 한 거죠. 출판사와 관계 맺고 있는 저자들, 일부 출판관계자들이 중재하려고 노력했던 것도 한몫했고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싸움

소송을 취하하긴 했지만 노동조합에서 줄곧 교섭을 요구했어요. 요구안은 강병철 사장과 정은영 현 대표이사가 사과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는 거예요. 교섭에서 사과를 요구하는 이유는 사장이 제게 개별적이고 비공식적으로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공식적이고 공개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재발 방지 대책은 회사에 조합원이 저밖에 없다보니 단체협약은 어렵더라도 취업규칙을 변경하거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강제하려고 해요. 다행히도 회사가 줄곧 교섭을 거부해오다 최근 처음으로 교섭에 응하겠다는 답변을 보내왔어요. 지금은 교섭 날짜와 시간 등을 조율하고 있고, 20161월 첫 교섭이 열릴 것 같아요.”


현재 회사에서 윤정기 씨가 ()자음과모음이 직원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 대체 무슨 상황인가요?

소속 문제는 복잡하지만, 본질적인 발단은 입사 당시 소속을 근로자인 제게 통보도 없이 마음대로 계열사로 정했다는 점이에요. 애초에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으니 저로서는 알 방도가 없었죠. 저는 현재 자음과모음 출판사의 계열사인 더이룸출판사(구 이룸)’ 소속 직원으로 되어 있어요(현재 대부분의 직원들은 ()자음과모음 소속). 최근에 대표가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제 법적 사용자는 여전히 강병철 사장입니다. 더이룸출판사에는 4명의 노동자가 소속되어 있지만 하는 일은 물류, 교정 등 제각각이에요. 업무에 의한 소속의 구분이 전혀 아니라는 거죠. 단순히 5인 이하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으니까 이점을 회사가 노리고 있는 겁니다. 최근 교섭에 응하는 과정에서 회사는 갑자기 제가 ()자음과모음이 아니라 더이룸출판사 직원이라고 주장하고 있어요. 그런데 형식적 소속이 그럴 뿐이지 저는 지금껏 자음과모음이라는 출판사에서 일한 겁니다. 다만 월급을 더이룸출판사(구 이룸) 명의로 받았는데, 이 때문에 회사에서그렇게 주장하는 거죠. 지노위에서도 제가 자음과모음이라는 하나의 출판사 직원이기 때문에 (부당전직이 아닌) 부당전보를 인정한 건데 말이에요.”

 

강병철 사장과 정은영 편집주간은 그간 주요 일간지와 인터뷰를 통해, 윤정기 씨의 계열사 근로계약서 작성 문제는 201411월 노동부에서 감사가 나왔을 때 경영지원팀에서 형식적으로 계열사 근로계약서를 제출한 실수였고 이것으로 인해 불이익은 전혀 없다고 말해왔다.


지난 1,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는데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네요.



출판지부 조합원들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못 했을 거예요. 아내도 워낙 힘든 상황인걸 아니까 많이 이해해줬고요. 또 저보다 훨씬 힘들게 노동하고,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이 많은데 오히려 그분들이 저를 지지해주고 함께 연대해주셨던 게 가장 큰 동력이 되었던 것 같아요.”

 

윤정기 씨는 이번 싸움이 좋은 선례로 남아서 출판노동자들이 다시는 자신과 같은 일을 겪지 않게 된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이 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 2016년엔 반드시 승리해서 만큼이나 책을 만드는 노동자들의 가치가 존중받고, 반쪽짜리 편집자가 아니라 인문학 편집자 윤정기 씨의 책을 읽고 많은 독자들이 감동을 받는 한해가 되기를 바란다!

[현장의 목소리] 청년 알바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운다/ 2015.12

청년 알바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운다
- 부당해고에 맞서 투쟁하는 아름다운 청년 김영 씨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

 

 

올해 언론을 통해 롯데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진흙탕 싸움이 보도되면서 탐욕스러운 자본가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하기야 호텔, 백화점, 대형할인마트, 야구구단, 극장 등을 비롯해 편의점, 커피숍, 패스트푸드, 스낵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는 롯데그룹의 영향력을 생각했을 때 경영권의 의미는 평범한 노동자, 시민들은 상상하기 어렵다. 한편, 지금 여기 거대재벌 롯데그룹에 맞서 싸우는 아름다운 청년이 있다. 올해 24살인 김영 씨는 2013년 12월부터 3개월여 롯데호텔 뷔페에 있는 라세느 매장에서 일용직 계약직으로 일하다 하루아침에 해고당했다. 부당한 일을 겪기는 했지만, 알바니까 다른곳에서 일해도 그만일 수 있지만 김영 씨는 부당함에 맞서기로 했다. 세대별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의 조합원이기도 한 김영 씨는 또래의 청년들이 자신이 경험한 일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김영 씨는 2년 전 고향 전북 전주에서 서울로 상경했다. 고시원에서 사는 김영 씨는 스스로 생활비를 벌어서 생계를 꾸려야 하는 형편이라 알바를 해야했다. 그러다 인터넷 구인 사이트에서 장기간 일할 수 있고, 하루 2끼 식사를 지원하는 롯데호텔 알바에 지원했다.

 

 

* 김영 청년유니온 조합원

 

장기간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고 했는데 롯데 호텔에서는 일용직 계약으로 일했다. 어떻게 된 일인가?

 

"구인 게시물에서 분명 장기간, 상시적인 업무를 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정작 근로계약서를 쓰려고 보니 하루 단위로 계약하는 일용직이더라고요. 앞선 게시물이랑 내 눈앞에 있는 근로계약서가 다르니까 처음엔 의아했는데 그 자리에서 검은 정장을 입고 있는 중년의 인사과 직원에게 왜 일일 근로계약서를 써야 하는지 물어볼 용기가 안 나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계약서 쓰고 만일 일용직으로 일하는 거면 바로 나오자 생각했는데, 일을 하다 보니 계약서가 다분히 형식적이었다는 걸 알았어요."

 

형식적이었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일일 근로 계약을 맺었지만, 정규직 직원이랑 마찬가지로 직고용이었고 근무 스케줄은 물론 휴무 스케줄도 정규직 직원이랑 같이 조율해서 정했어요. 매일 아침 출근 도장 찍듯이 사무실에 수백 장 복사해져 있는 계약서에 두 장씩 사인해서 하나는 회사에 제출하고 하나는 제가 갖는 것 말고는 다를게 없었죠. 저처럼 일하는 사람들도 수십 명이었고요. 그래서 계약서는 다분히 형식적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일하고 싶은 만큼 오래 일할 수 있겠다 기대를 했어요."

 

현장에서 어떤 일을 했나?

 

"12시 출근해서 밤 10시에 마감했어요. 오픈 뷔페라서 점심, 저녁 시간에는 손님들이 달라고 하는 베이커리, 디저트 챙겨 드리고 그 외 시간에는 베이커리 만드는 곳에서 정규직 직원들 보조 역할을 했어요."

 

하루아침에 해고 통보를 받았다. 대체 그럴만한 사유가 있었나?

 

"2013년 12월부터 3개월가량 일했는데 크리스마스, 신정 연휴 등 공휴일에 다 나와서 일했어요. 지각도 한번 안 하고 근무태도가 나쁘냐고 지적받은 적도 없고요. 그런데 하루는 일하면서 정규직들은 노동조합에서 단체협약으로 얻어내서 휴일에 근무했을 때 수당을 받는다는 걸 알았어요. 그때 저처럼 일용직 알바들한테는 왜 적용이 안 되는지 궁금해서 근로계약서를 확인했죠. 보니까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는 사항은 취업규칙과 근로기준법에 따른다는 조항이 있어서 그 뒤로 인사과에 찾아가서 취업규칙을 보여 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인사과 직원이 인턴인지 알바생인지 물어보더라고요. 알바생이라고 하니까 굉장히 불쾌하다는 투로, 알바한테는 보여드릴 수 없으니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돌아가는데 손이 떨리고 심장이 뛰더라고요. 너무 모욕적이어서요."

 

김영 씨는 다음날 휴무여서 현장을 비웠다. 이때 롯데호텔은 김영 씨와 함께 일하는 인턴에게 찾아와 김영 씨가 뭐하는 사람인지, 어떤 사람인지, 취업규칙을 왜 보여달라고 했는지 아는지 등을 캐물었다.

 

"다음날 출근하니까 주임님이 어제 상황을 말씀하면서 농담으로 너 잘리는 거 아니냐고 다 같이 웃고 그랬는데, 마감 한 시간 전에 전화가 왔어요. 알바 지원할 때 구인 소개업체 분이더라고요.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까 제 업무에 여성 직원이 필요해서 내일부터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잘린 거죠. 처음 해고를 당한 건데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구나, 일할 때는 항상 가족이라고 했는데 눈엣가시가 되면 몇 마디 말로 쫓겨난다는 생각에 씁쓸했어요."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지만 사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 게 현실인데, 거대재벌 롯데에 맞서 싸울 생각을 했나?

 

"일하면서 매우 많은 또래 청년들을 만났어요. 인턴, 실습생, 알바 이렇게 나뉘는데 솔직히 일용직 알바인 저보다 인턴, 실습제도에 대한 문제의식이 더 있었어요. 인턴의 경우엔 최저시급 받고 딱 1년 10개월 일하고 끝나요. 인턴 끝나고 정규직 전환하는 사람들은 극소수고요. 그리고 나면 새로운 인턴 뽑아서 일을 시켜요. 실습생들은 주로 전문대 학생들인데 월 30만 원 받으면서 정규직이랑 똑같이 일해요. 그렇다고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는 것도 아니고, 단순 업무를 도맡아 해요. 그래도 실습생들 입장에선 대기업에서 실습했다는 이력 한 줄이 필요하니까 참는 거죠. 이런 친구들이 저처럼 어처구니없는 일로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싸움을 결심했어요."

 

김영 씨는 2014년 6월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고, 12월 중노위에서 부당해고를 인정했다. 롯데호텔은 사태를 진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김영 씨를 만나 돈으로 회유했다.


"중노위 판결이 있고 판정서가 송달되기 전에 회사에서 일할 땐 한번 본 적도 없는 인사과장이란 사람에게 직접 연락이 왔어요. 개별적으로 만나자고요. 그래서 3차례 봤는데 회사에서는 중노위 소송 취하하고, 언론에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복직을 포기하면 3,000만 원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나 김영 씨는 회사의 회유의 흔들리지 않았다. 다급해진 롯데호텔은 곧바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중노위를 이겼기 때문에 재판에서도 유리했을 것 같은데 법원의 판단은 뭐였나?

 

"중노위를 이겼기 때문에 우리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1심 판결에서 납득하기 힘든 논리로 지니까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내심 2심 가면 번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희망을 놓지 않았는데 패소하니까 마음이 꿀꿀해요. 2심 때는 알바가 있어서 제가 직접 공판장에 가지 못해서 결과를 전해 들었는데 뭐랄까 벽 앞에 서 있는 느낌을 받았어요."

 

2015년 6월 1심 재판부는 김영 씨의 부당해고에 대해 “평소 수행한 업무가 특별한 기능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단순한 보조업무에 불과하므로 상시적, 지속적 업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아르바이트 직원 상당수가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으로 복학 하거나 더 좋은 직장이 있으면 언제든지 일을 그만둘 수 있어 소송 참가인에게 근로계약 갱신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이 없다”고 판단했다. 법리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들며 롯데호텔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후 지난달 열렸던 항소심에서는 김영 씨와 롯데호텔이 매일 계약서를 새로 쓴 일이 기간제법 취지에 어긋나지 않으며 김영 씨에게 롯데호텔이 계약 갱신을 기대할 권리가 없다면서 항소를 기각했다.

 

거대그룹과 힘든 싸움을 하는 것도 그렇고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로 언론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다뤄지는 것이 힘들거나 부담스럽지는 않은가.

 

"제가 처음 싸움 시작할 때 큰 벽으로 느꼈던 건 20대 청년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 알바에 대한 인식이었어요. 해고당하던 날 저와 알바를 하던 친구가 알바인데 다른 데 가면 되지 않느냐, 대기업이랑 어떻게 싸우느냐고 말하는 게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언론을 통해 제 싸움이 다뤄지면서 이런 문제에 별 관심 없고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주변 친구들이 기사보고 메시지를 보내요. 권리 의식, 사회문제에 목소리 내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고요. 한편, 개인이 내부 고발자로서 문제를 터뜨리고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안에서 조직된 사람들의 집단적인 힘이 필요하구나, 그게 있어야 싸울수 있겠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이번 싸움에 목표가 있다면?

 

"신동빈 회장에게 걸림돌이 되고 싶어요 (웃음) 우선 부당해고를 인정받고 복직하는 거예요. 비록 알바지만 대기업과 싸워서 권리를 보장받고 당당하게 다시 복직한다면 이런 경험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될 또래 친구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당당히 걸어 들어가서 다시 일하고 싶어요. 복직하면 롯데호텔 노동조합에서 활동도 해보고 싶어요."

 

인터뷰가 끝나고 김영 씨는 학교 기말고사 공부를 위해 책을 펼쳤다. 또, 지금 사는 고시원이 여름에는 에어컨 한번 안 틀어주는 곳이라 내년엔 매달 5만 원씩 월세를 더 내고 창문 있는 방으로 옮기는 게 목표라고 했다. 롯데라는 거대한 자본에 맞서 싸우는 청년이자 소박한 꿈을 꾸는 아름다운 청년 김영 씨의 건투를 빈다!

[현장의 목소리] 끝까지 함께 투쟁해서 반드시 승리하자 /2015.11

끝까지 함께 투쟁해서 반드시 승리하자!

공장 부지 매각에 맞서 투쟁하는 금속노조 하이텍알씨디코리아분회 신애자 분회장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


하이텍알씨디코리아(하이텍)는 무선모형조종기를 만드는 회사로 그 시작은 1973년 태광산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이텍은 연 500억 원 이상의 순이익을 내는 흑자기업이었지만 노동자들은 월 100만 원도 안 되는 월급을 받으며 일했다. 이뿐만 아니라 하이텍 자본은 직장폐쇄, 휴업, 부당해고, 단협해지, CCTV를 통한 노동자 통제, 감시 등 노조파괴 공작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9월 회사는 노동조합에 공장 부지를 매각했다고 통보하며 새로운 공장으로 출근하라고 통보했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노동조합을 파괴하겠다는 하이텍 자본의 도발이 시작된 것이다. 7명의 조합원은 생존권 보장, 민주노조 사수를 요구하며 투쟁에 돌입했다.


하이텍 자본의 일방적인 공장 부지 매각 통보 공장 부지 매각 소식은 언제 접하셨나요?

914일에 공장에 임대 들어온 수선집 아주머니가 부지 매각 소식을 전해줬어요. 회사가 노동조합에 공식으로 얘기한 건 915일 교섭 석상에서였는데 11일에 240억 받고 공장 부지를 매각했다고 일방적 으로 통보하더라고요.


하이텍 자본의 일방통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공장을 3개월 안에 빌려줘야 한다며 공장이전 장소 와 시기는 추후에 통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회사와 임·단협 교섭 기간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전에 회사에서 전혀 언급이 없었나요?

교섭에서는 전혀 없었어요. 2014년에 공장부지를 매각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는 했는데 그때도 교섭은 아니었죠. 이때만 해도 회사에서는 공장부지 매각에 대해 노동조합의 입장을 말해달라고 요구했었어요. 공장 부지 매각으로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고 공장을 폐쇄하려는 의도가 분명해서 노동조합은 그 안을 받을 수 없다는 의사를 전달했어요.


신애자 분회장 사진 (출처 : 금속노조)


현재 이전했다는 공장은 확인되었나요?

917일에 회사가 현장 게시판에 공고를 붙이더라고요. 조합원 개별로 내용증명도 보내고요. 독산역 근처에 있는 대륭 2차 건물에 공장이 있으니 1012일부터 근무를 해라 이렇게 왔어요.


공장 설비는 있던가요?

가서 확인해보니 설비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준비를 완벽하게 하지는 못했는지 의자와 창문이 없었어요. 한 마디로 생색내기 하는 거죠. 분양 면적을 확인해보니까 56평인데 실 평수는 38평 정도 되겠더라고요. 지금 현장이랑 비교해보면 너무 작은데 공장 안에 식당 겸 휴게실, 노동조합 사무실까지 만들다 보니 공간이 안 나와요.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건 피하려고 장치를 마련한 것 같아요.


공장을 완전히 정리하지는 않겠다고 보이는데 실제 그런가요?

, 겉으로 보면 그렇죠. 그런데 지난 10여 년간 회사가 노동조합을 없애려고 탄압했던 걸 돌아보면 박천서 회장이 무슨 의도로 공장 부지를 매각하고 이전을 하려고 하는지 뻔하다고 생각해요.


공장을 돌리겠다는 하이텍 자본 신뢰할 수 없다


하이텍은 1996년 필리핀에 생산 공장 세운 지 2년 만인 1998년 국내 공장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려고 했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투쟁을 통해 이를 막았다. 이후 2002년 박천서 회장은 올해는 10억이 들든 20억이 들든 반드시 노동조합을 깨겠다고 천명하면서 일방적으로 단협을 해지하고 5명의 노동자를 해고했다. 2005년에는 노동자들 몰래 본사를 충북 오창으로 옮겼고, 2007년에는 자본금 5,000만 원 짜리 회사를 만들어 생산부서를 그 회사로 분리하고 평생 고용을 약속하며 이전을 강요했다. 회사의 강요에 못 이긴 비조합원 노동자들은 회사를 이전했으나, 1년여 만에 정리해고 당했다. 이후에도 하이텍 자본은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다가 201110여년 만에 임·단협을 체결해야 했다.


지난 상황을 돌이켜 봤을 때 회사를 신뢰하기 힘든 상황인 것 같습니다.

회사가 평생 고용보장을 하겠다고 약속했던 것도 깼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이번 공장이전이 노동조합을 정리하려는 목적이 분명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밖에서 볼 때는 공장을 운영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동안 당해왔던 조합원들 정서와 박천서 회장이 했던 행동들을 보면 고용보장은 믿을 수 없어요. 그래서 저희는 생존권과 민주노조를 사수하기 위해서 싸울 겁니다.


박천서 회장 만났다고 들었는데 뭐라고 하던가요?

공장 부지 매각 소식을 듣고 921일에 충북 오창 본사에 가서 박천서 회장을 만났어요. 사실 회사가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본사에들어가지도 못하고 정문에서 막혔는데 이날은 우리가 조금 늦게 갔더니 회사 경비가 느슨해져 운 좋게 본사 건물로 들어갈 수 있었어요. 건물 들어가서 3층 중역실을 가니까 박천서 회장이 딱 있더라고요. 회장 만나서 우리 조합원들 생존권 보장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얘기했더니 첫 마디가 니들하고 할 얘기 없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는 임금 따박따박 받아가면서 무슨 생존권을 이야기 하느냐고 하는 거예요. 그러더니 직원들을 불러서 우리를 막아 세우고 그 길로 도망갔어요. 우리가 잡아먹는 것도 아닌데 박천서 회장은 매번 우리만 보면 도망가기 바쁘네요.


2013년 박천서 집 앞에서 조합원들이 잠복근무하다 만났을 때도 박천서 회장은 나는 노동조합 일에 관여하는 바가 없으니 할 얘기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회사를 성장시키는데 가장 기여했던 노동자들이 본인들의 회사 본사에 마음껏 들어가지도 못하고 회장은 조합원들만 보면 도망치는 하이텍 자본을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는 이 공장을 지킬 것입니다

 

천막 농성에 돌입하면서 노동조합의 요구와 각오는 무엇인가요?

이 공장에서 계속 일을 하겠다는 거예요. 회사를 발전시켰던 노동자들이 버려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민주노조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들 오랫동안 투쟁으로 건강도 좋지 않아서 농성 투쟁 결의하는 게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농성하는 거에 대해서 조합원들이 많이 부담스러워 했어요. 근데 우리 상황이 조합원이 많지 않으니까 누구는 하고 누구는 안 할 수가 없거든요. 우리 싸움을 알려내고 확대하려면 발로 뛰는 수밖에 없는데 그 역할도 해야 하고 공장도 지켜야 하니까요. 그래서 다 같이 싸우자고 결의했어요. 그래서 지금 조합원들은 순번을 정해서, 저랑 부분회장은 격일로 공장을 지키고 있어요.


공장 앞에서 집회를 하는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분회 조합원들 (출처 : 금속노조)


아이가 아직 어린 조합원들도 있어서 육아에 대한 부담도 있겠어요

저만 해도 집에 가면 난리예요. 애들 반찬도 해야 하고. 밥을 자주 못 챙겨주니까 맨날 컵라면, 냉동 식품 사다 놓는 것도 미안하고. 빨래도 수북이 쌓여있고. 다른 조합원들도 마찬가지예요. 이렇게 하는게 버겁기는 한데 그래도 여기서 쫓겨나면 당장 갈곳도 없으니까 버텨야죠.


오랜 시간 투쟁하면서 지칠 법도 한데 계속 투쟁 할 수 있는 원동력이 있다면 그게 뭘까요?

'억울하기도 하고 포기할 수도 없다' 그런 심정인 것 같아요. 포기하면 공장에서 쫓겨나는 것 밖에 없으니까요. 지난 10년 동안 순간순간 힘들고 어려울 때도 있고 포기할까 생각도 했죠. 지금도 여전히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고요. 하지만 분회장이니까 책임도 있고. 개인이 포기하는 거는 다른 부분인 것 같아요.


지긋지긋한 하이텍 자본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뭘까요?

하이텍은 개인의 욕심으로 채워진 것이 아니라 여기서 일했던 노동자들이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해야 합니다. 노동조합도 인정해야 하고요.


힘든 싸움을 함께 이어나가고 있는 조합원들에게도 한 마디 부탁드려요

정말 힘들지만, 끝까지 함께 투쟁해서 반드시 승리 하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 오는 1127일 금요일 15시부터 하이텍 공장 앞에서 투쟁 기금 마련을 위한 주점을 연다. 이 행사에도 많은 관심과 연대 부탁한다.

문의 : 금속노조 서울지부 하이텍알씨디코리아분회 신애자 분회장 010 7434 4050

[현장의 목소리] 노동조합으로 하나가 되었어요 /2015.10

노동조합으로 하나가 되었어요

- 부당해고에 맞서 싸우는 민주노총 서산톨게이트지부 도명화 부지부장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


2009년 이명박 정권은 공공기관 경영 효율화를 목적으로 한국도로공사 소속 336개의 톨게이트 영업소 전체를 외주화하면서 7,00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했다. 그 결과 영업소 노동자들은 24시간 3교대로 일하며 최저임금을 받았다. 이마저도 비정규직이다 보니 매년 재계약에 대한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게다가 외주화한 영업소는 불법 수의계약을 통해 한국도로공사 (명예)퇴직자들의 전관예우 통로로 활용되었다. 그 결과 이들은 현재 2,000억 원이 넘는 톨게이트 운영권을 손에 쥐고 있다. 


서산톨게이트 영업소 용역업체 ‘이지로드텍’도 여기에 해당한다. 이지로드텍은 지난 3월 새로운 수의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3명의 노동자를 해고했다. 이에 해고 노동자를 비롯해 서산톨게이트 노동자들은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민주연합노조 서산톨게이트지부 조합을 만들고 조합원 3명의 복직과 요금징수원 정규직 전환, 단체협약 체결 등을 요구하는 파업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 47년 역사상 첫 번째 파업으로 각종 특혜비리, 불법운영, 노조탄압 등을 폭로하며 전국 336개 요금징수원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맞닿아 있는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도명화 부지부장을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던 명화 씨 하루아침에 해고당해

대구에서 결혼하고 아이 아빠 직장 때문에 서산에 왔어요. 애가 어릴 때는 대구에 자주 왔다 갔다 했는데 그때마다 톨게이트에서 일하는 아줌마들을 눈여겨봤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도로공사 직원인 줄 알았어요. 옷도 깔끔하게 입고 앉아서 일하고, 얘기들어보니 급여도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일자리 있냐고 전화를 했는데 이력서 들고 오라고 하더라고요. 그 뒤로 면접보고 일을 시작했어요. 회사 다니면서 도로공사 직원이든 외주 회사 직원이든 그런 걸 떠나서 일 자체가 재미있어서 열심히 일했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일을 열심히 하면 뭐하나 싶어요. 외주회사 사장 바뀌면 하루아침에 이렇게 잘리는걸.


▲  민주노총 민주연합노조 서산톨게이트지부 도명화 부지부장


열악한 노동환경으로부터 목숨을 지키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다

2013년에 공공기관이 에너지 절약해야 한다고 해서 요금소 부스에 에어컨을 못 틀게 했어요. 여기는 자동차 매연에 아스팔트 열기까지 더위가 장난이 아니거든요. 근데 에어컨을 못 틀게 하니까 얼음물을 들고 다녔는데, 관리자가 민감한 기계들도 많은데 물 튀면 안 되고, 또 화장실 자주 가면 안 되니까 물을 들고 가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아니 먹고 살려고 일하러 왔는데 그때는 정말 죽기 직전까지 일을 해야 하나 싶은 생각에 언젠가 동료들이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요금징수원 노동자들은 미납 요금을 받기 위해 때로는 목숨을 걸고 아스팔트 위에서 일해야 했다.


하이패스를 지날 때 요금이 미납 처리되는 차량이 종종 있어요. 그럴 때 몸으로 차를 막아서 운전자한테 요금을 받아서 미납률을 낮춰야 해요. 이게 다 실적에 포함되거든요. 푹푹 찌는 아스팔트에 서서 목숨 걸고 차를 막는 거죠. 상여금 지급하는 것도 백번 양보해서 실적 좋은 사람한테 많이 주는 거면 이해하겠는데, 누가 봐도 실적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일을 하는 사람한테 나머지 사람에게 줄 수당을 깎아서 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누가 지나가는 말로 노동부에 신고해야 하지 않느냐 그랬나 봐요. 그랬더니 사장이 그 말 한 사람 누구냐고 빨리 자수하라고 재촉하더니 나중에는 새벽에 문자까지 보내서 자수하라고 그러는 거예요. 도저히 가만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노동조합(당시 한국노총)을 만들었어요.


한국도로공사 요금소는 통상 퇴직자에게 위로금 명목으로 5년간 수의 계약을 맺어서 운영권을 주는 시스템이다. 이렇다 보니 사업주는 기간 내 이윤을 최대한 창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요금소에서 일 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안중에도 없다. 더욱이 노동조합은 사업주들에게 눈엣가시와도 같다.


예전 사장은 어버이날이라고 수당을 준 적이 있었어요. 그걸 하면 도로공사에서 가산점을 줬나 봐요. 통장에 입금 내역을 확인해서 위에 보고했는데, 다음 달에 수당 받은 만큼 반납하라고 하더라고요. 정말 너무 황당하고 불쾌하더라고요. 


지난 3월 1일 서산톨게이트 영업소의 운영권이 이지로드텍으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이지로드텍은 기존에 일하던 3명의 노동자를 해고했다. 공교롭게도 3명의 노동자는 모두 명화 씨를 비롯한 노동조합 간부들이었다.


새로 온 사장이 서산 요금소가 이미지가 안 좋다는 소문이 자자하다고 분위기를 잡더라고요. 아니 여기는 도로공사가 관여하는 곳도 아닌데 왜 우리를 나쁘게 생각하는지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심지어 새로운 사장이 도로공사 노조 만들 때 초창기 간부였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사장님도 우리 마음 잘 알 테니 같이 잘해보면 좋지 않겠냐고 하니 자기가 을일 때는 노조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갑이 되니까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고 하더라고요.


자신들에게 불리한 결과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이지로드텍

3명의 조합원 해고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는 용역근로자 보호 지침에 따라 고용 승계를 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지노위는 해고 노동자들이 이지로드텍에서 하루도 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당해고로 볼 수 없다고 판정했다. 


회사는 계속해서 해고가 아니라 면접 점수로 정당하게 채용을 하지 않은 것 뿐이라고 주장해요. 지노위도 우리 손을 들어준 거 아니라면서 저희를 복직시킬 의무가 없다고 말해요. 국민권익위원회가 복직시켜야 한다고 했는데도 지침은 지침일 뿐이라고 법적 강제력은 없다면서요.


파업을 결심하고, 민주노조 깃발을 올리다

노동조합은 사측과 교섭에서 해고자 3인 원직복직과 단협 60여 개 중 11개 미합의 사항 (조합활동 · 조합원 교육시간 월 2시간 보장, 타임오프, 노조사무실 지급 연 유급휴가 1일, 건강진단 추가비용 등) 체결을 요구했다. 그러나 사측은 노동조합의 요구를 들어 줄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반복했다.


회사에서 하는 말이 우리가 요구하는 거 말고, 한국노총에서 제시하는 단협을 가져오면 사인해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노동부에서도 하는 말이 사측이 주장하는 한국노총 단협은 자기들이 봐도 의미가 없을 정도로 있으나 마나한 조항이라고 하더라고요. 이러니 결국 파업을 하게 됐어요.


한편, 서산톨게이트 지부는 파업 결의 이후 사측이 아니라 상급단체인 한국노총의 반대와도 맞서서 싸워야 했다. 


파업한다니까 한국노총이 반대하더라고요. 아니 왜 우리가 한다는데 못 하게 하는지 의문이 들었죠. 준비하면서 어디서 들은 게 있어서 민주노총에서 천막 빌려서 농성장 만들고 앰프도 설치하고 집회신고하고 그랬거든요. 그랬더니 한국노총 톨게이트 노동조합 위원장이 난리를 치면서, 내가 하라고 한적도 없고, 나는 책임이 없다 그러면서 천막을 뒤엎더니 그 뒤로 사라졌어요. 그렇게 20일을 하루 3번 꼬박 집회하고 밥해 먹고 보냈는데, 이러고 한국노총만 바라보고 있으면 죽도 밥도 안 되겠다 생각이 들어서 민주연합 노동조합에 찾아가서 노동조합 받아달라고 했죠. 그렇게 한 달을 보내고 지금은 민주노총 세종충남지역본부와 지역에서 대책위까지 만들어져서 함께 투쟁하고 있어요. 저는 연대의 힘이 그렇게 큰 건지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파업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제가 다른 사람으로 태어난 것처럼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요즘은 사실 복직도 복직이지만 좋은 기회에 민주노총 만나서 내 의식이 달라져서 지금까지도 힘 잃지 않고 싸울 수 있는 게 고맙고 감사해요. 같이 근무해도 나이 차가 있고 안 친한 사람들은 멀어지게 되는데 파업하면서 온종일 붙어있으니까 이제는 한숨 쉬면 뭐 때문에 한숨 쉬는지도 알겠고 눈빛만 봐도 알겠어요. 복직되더라도 책임지고 톨게이트 노동조합을 알리고 다닐 거예요. 투쟁 사업장도 정말 많은데 그런데도 열심히 찾아다녀서 우리한테 많이 와주신 만큼 저희도 힘 실어주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힘든 싸움을 함께하고 있는 조합원에 게 전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렸다.

진짜 고맙고 감사하죠. 해고되고, 이렇게까지 끝까지 싸울 수 있을지 몰랐어요. 사실 나 하나 손 털어 버리면 그만인데, 못 그러겠더라고요. 여기서 내가 손 털면 남은 조합원들 다 잘릴 거예요. 우리 3명 잘렸을 때 같이 싸우면 나머지 해고는 막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이렇게까지 와준 언니 동생들 너무 고맙고, 복직하면 조합원들하고 더 친밀하게 근무해서 같이 정년 맞고 싶어요. 사랑합니다.


 

[현장의 목소리]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답이다! -부당해고에 맞서 싸우는 김명성 금속노조 마리오 아울렛 분회장 인터뷰 /2015.9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답이다!
- 부당해고에 맞서 싸우는 김명성 금속노조 마리오 아울렛 분회장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옛 구로공단)에 있는 마리오 아울렛은 2001년 국내 최초로 생긴 의류 아울렛 쇼핑몰로, 주말이면 10만 명 이상이 드나드는 동양 제일의 매장이다. 김명성 금속노조 서울지부 남부지역지회 마리오 아울렛 분회장은 8년 전 시설관리팀 정규직 노동자로 입사했다. 시설관리팀은 마리오 아울렛의 전기, 안전, 소방 등 시설 전반을 관리한다. 업무 특성상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일도 많았지만, 매장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사명감으로 일했다. 그런데 2014년 3월 마리오 아울렛이 시설관리업무를 외주화하면서 김명성 분회장을 비롯해 24명의 노동자에게 권고사직을 통보했다. 이후 지방노동위원회에서도 마리오 아울렛이 부당해고를 저질렀다며, 이를 철회할 것을 판결했지만 회사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현재 6명의 조합원은 지방노동위원회 판결 이행을 요구하며, 회사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하루아침에 일터에서 쫓겨난 마리오 아울렛 노동자들

 

2012년 마리오 아울렛은 60여 명의 계산직 노동자들을 외주화했다. 2013년에는 회사가 직접 경영하는 식음료팀 직원 10여 명을 권고사직하더니, 2014년엔 패션 사업부 직원 20여 명을 또다시 권고사직했다. 이후 현장에선 다음 목표가 시설관리팀일 거라는 소문이 횡행했다.

 

“시설관리팀을 외주화한다는 소문이 계속 돌다 보니까 내부에서 긴장이 있었어요. 그래서 노동조합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작년 2월 20일에 인사자문 직원이 권고사직을 발표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다음 날 노동조합 만들었는데, 결국 4월 1일에 시설관리팀을 외주화했어요.”

 

처음 만들 때, 한국노총 소속이었던 노동조합은 2014년 6월 상급 단체를 민주노총으로 변경하며 금속노조 깃발을 올렸다. 김명성 분회장(당시 부분회장)을 포함해 21명의 동료는 회사의 권고사직을 거부했다. 그러자 회사는 대기 발령을 내렸다.

 

“작년에 새정치민주연합 전순옥 의원실하고 마리오 아울렛 홍성열 회장이 면담하면서 알려진 내용인데, 홍성열 회장은 대기 발령시키면 우리가 새 직장 구해서 나갈 줄 알았는데 안 나가고 버틴 거라고 하더라고요. 저희가 임금을 받는 기준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가 아니라, 오후 7시까지 추가 고정 수당 1시간을 포함해서 받거든요. 그 부분이 임금의 30% 가까이 육박할 정도로 꽤 되는데 대기발령을 시키면서 임금을 70%만 주고 수당도 전혀 없으니까 다들 버티기가 쉽지 않았어요.”

 

회사는 시설관리팀 노동자들이 대기 발령에도 불구하고 그만두지 않자 제 발로 나가도록 다른 묘안을 찾았다.

 

“대기발령을 두 달 통보 했는데, 한 달 지나서 저희를 회사로 다시 부르더라고요. 그러더니 한 개에 200kg 되는 화분 600개를 매장에 나르고 정리하는 일을 시켰어요. 또 하루는 35도까지 올라가는 한여름 땡볕에 건물 외벽 페인트칠을 시키더라고요. 이때 4명이 일하다 쓰러져서 병원에 가고, 남아있던 사람들도 어지럼증을 느끼고 구역질하고 난리였는데 계속 일을 시켰어요.”

 

당시 노동자들은 폭염주의보에는 작업을 자제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회사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만일 쓰러지면 책임질 테니 작업을 계속하라고 강요했다. 그뿐만 아니라 7m 높이의 건물을 페인트 장대 연결봉으로 칠하라고 시키는 바람에 노동자들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사다리와 안전모, 안전화 지급을 요구했지만 이마저도 거부당했다.

 

약속은커녕 법도 안 지키는 마리오 아울렛

 

회사의 악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서울지방 고용노동청 관악지청이 마리오 아울렛이 지난 3년간 시설관리 노동자 19명에게 3억6천만 원의 임금체불을 지적하며 지급 명령을 내렸지만, 이것 또한 외면했다.

 

“노동자들이 노동법에 대해 배운 적도 없고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노동조합 만들고 노무사님 상담을 받아보니 24시간 당직 근무하면서 받아야 할 야간수당, 연장 수당을 못 받았던 체불임금액이 상당했어요. 문제는 노동부에서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는데 검찰에서 재조사를 하더라고요. 재조사 과정에서 홍성열 회장과 같이 조사를 받았는데 검찰 조사관이나 검사가 법 위반에 대해서 고의성 여부를 따져본다고 하더라고요. 느낌이 이상했어요. 결국에는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로 기소 건은 무혐의처분이 나왔어요. 답답했지요. 마리오 아울렛은 동양 최대 아울렛이라고 말하면서 과연 근로기준법을 모르고 야간수당을 안 줬을까요? 만약 몰랐다고 하더라도 법을 안 지켰으면 그에 합당한 처벌이 있어야 하지 않나요? 사업주가 최저임금이 안 되게 임금 을 주고, 최저임금이 얼마인지 몰랐다고 하면 고의성이 없어서 처벌을 안 받는 건가요? 저는 법을 모릅니다만 제가 생각하는 상식에는 맞지 않네요. 지금은 체불 건은 민사소송으로 다투는 중입니다.”

 

이후에도 마리오 아울렛 문제가 계속 불거지자 새정치민주연합 전순옥 의원은 지난해 12월 29일 국정감사에서 홍성열 마리오 아울렛 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해 반노동 행위의 책임을 물었다. 홍성열 회장은 국정감사에서 시설관리팀의 전문성을 확보할 목적으로 외주화했다고 주장했다.

 

“전문성 확보가 아니라 비용을 아끼고 싶었던 거예요. 처음엔 외주화를 하면 인건비가 30% 가까이 차이가 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자료를 보니 인건비 차이가 10%더라고요. 게다가 부가가치세는 별도고요. 계산해보면 한 달에 노동자 한 명당 4만 원 차이가 나는 거죠. 게다가 전문성은커녕 매장이 잘 돌아가지도 않아요. 일하는 직원들 얘기 들어보니 시설관리 직원들이 계속 바뀌고 있대요. 처음 온 사람이 일을 어떻게 제대로 하겠어요. 회사도 심각성을 알 텐데 자신들 잘못을 인정하기 싫으니까 쓸데없는 자존심이 세우면서 버티는 것 같아요.”

 

국정감사에서 홍성열 마리오 아울렛 회장은 ‘무분별한 권고사직과 130%에 이르는 높은 이직률에 대해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2014년 10월24일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각 의원실에 제출한 ‘중장기 고용확대전략’ 근거로 제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마리오 아울렛은 3년간 약 100여 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국정감사가 끝나자마자 2014년 12월 29일 분회장, 부분회장 등 조합원 5명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회사가 2014년 9월에 다시 두 달간 대기 발령을 통보했어요. 11월엔 시설관리팀원들 위축시키려고 영업부로 전환배치 한다고 했는데 저희가 별거 아니다, 일할 수 있다고 하니까, 직무를 맡을 수준이 안 된다면서 정리해고를 통보하더라고요.”

 

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 6월 5일 마리오 아울렛이 근로기준법 24조에서 정한 정리해고의 실질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점, 근로자 대표 등과 협의를 거치지 아니한 점 등을 볼 때 부당해고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마리오 아울렛은 지금껏 지방노동위원회 판정을 외면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회사가 지방노동위원회 판결을 지킬 거라고 기대했지만, 변화가 없자 싸움의 수위를 높이기로 했다.

 

“지방노동위원회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회사 앞에서 아침 1시간 선전전만 진행했어요. 나중에 들어가서 다시 일해야 하는데 우리 투쟁 강도가 세면 나중에 들어가서 일할 때 불편할 것 같아서 대화로 해결하려고 했죠. 그런데 이제는 회사가 지방노동위원회 판결을 지키지 않으니까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9시간씩 농성을 하고 있어요. 지금까지는 투쟁 계획이 있어도 제대로 싸우지 못했는데 이제부터는 할 수 있는 거 다해보려고요.”

 

 

 

마리오 아울렛은 최근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그 결과 영업팀 일부 직원을 총무팀으로, 홍보팀 일부 직원을 영업팀으로, 재무팀 일부 직원을 영업팀으로 보냈다. 이러한 조직개편은 회사가 시설관리팀 노동자들이 직무를 맡을 수준이 부족해서 전환배치가 어렵다는 이유로 정리해고했다는 말과 배치되는 행위다. 현장에서 들리는 얘기로는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나서 권고사직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회사가 인원 감축을 위해 전환배치를 한 것 아니겠냐며, 노동자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고 한다. 마리오 아울렛은 한때 300여 명의 정규직 노동자가 있었지만, 지 금은 정규직이 100명도 안 된다.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유일한 답이다!

 

김명성 분회장은 생각보다 싸움이 길어지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것이 고민이라고 했다.


“사실 노동조합 활동한 거 후회를 안 한다면 거짓말일 것 같아요. 딸 셋에 아내까지 책임지고 가정을 꾸려야 하는데. 가족들 눈치가 보이더라고요. 친구들도 처음엔 잘 해보라 하더니, 시간이 지나니까 네가 무슨 투사냐, 너는 가족 생각은 안 하느냐, 너 잘났다고 싸우는 거냐고 하니까 감정이 나빠지더라고요.”

 

그래도 이 싸움을 포기하지 못 한 것은 억울한 마음 때문이다.

 

“처음에도 억울하다는 심정 하나로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억울한 마음이 더 커지는 것같아요. 그래서 힘들지만, 꼭 이겨야겠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홍성열 회장이 누구보다 명예욕이 큰 사람인지라, 우리보다 더 아프고 잠도 못 잘 정도로 힘들어할 거라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어요. 회사나 노동조합이나 서로 이 상황이 힘드니까 빨리 현장으로 돌아가서 회사는 체불임금 지급하고 업무 정상화하고, 저희는 다시 하던 일을 하는 것만이 유일한 답일 것 같아요.”

 

김명성 분회장은 인터뷰를 마치며 투쟁에 연대해준 동지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농성장 보셔서 아시겠지만 연대 단위에서 보내온 플랑이 쭉 걸려있어요. 우리보다 먼저 정리해고 싸움을 하고 있는 쌍차 동지들, 지난번 영등포 근로복지공단에서 투쟁 같이했던 갑을오토텍지회 동지들이 연대해주셨어요. 갑을 동지들은 다음번엔 라인별로 플랑 맞춰서 오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연대 동지들의 플랑으로 마리오 아울렛을 둘러쌀 예정이에요.”

 

 


[현장의 목소리] 안전한 삶을 보장하지 못하는 한·미동맹이 대체 무슨 소용일까 /2015.8

안전한 삶을 보장하지 못하는 한·미동맹이 대체 무슨 소용일까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하주희 변호사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


메르스로 온 정국이 혼란에 빠졌던 지난 5월. 미국 의 주요 언론을 통해 유타 주에 있는 미 국방부 산하 더그웨이 연구소에서 4월 24일 살아 있는 탄저균을 각 산하 실험실에 보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산하 실험실 가운데에는 경기도 평택에 자리 잡고 있는 주한미군 오산공군기지 51비행단이 포함돼 있었다. 치사율 90%에 달하는 살상력으로 생물학 테러의 대명사로 알려진 탄저균이 활성화된 상태로 민간물류배송업체인 페덱스(Fedex)를 통해 한국에 들어온 것이다. 이번 문제가 심각한 것은 일련의 과정을 한국 정부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편, 사실관계 확인 이후에도 한국 정부는 이번 사태를 단순 '배달 사고'로 규정하면서 이 사안이 확산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한편, 시민사회는 6월 22일 8,704명의 국민 고발인단 모집을 통해 주한미군 관리자인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 사령관과 테렌스 오쇼너시 주한 미7공군 사령관 2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지난 7월27일 이번 싸움에 주요 역할을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미군 문제연구위원장 하주희 변호사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처음 언론 보도를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어이가 없었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미군 관계자에 따르면 2013년부터 미군은 국내 미군기지 에서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생물무기와 관련된 실험을 하겠다'는 입장을 줄곧 밝혔습니다. 한국이 이러한 실험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고도 했고요. 그런데 이번 사건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 문제와 직결된 만큼 미군이 다시는 이러한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국민고발인단 소송 발표 기자회견 발언에 나선 하주희 변호사


미군은 왜 치사율 90%에 달하는 탄저균을 국내에 들이려고 했나요?

"미 국방부가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7월 24일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사균화된 생물학적 물질을 산업계, 학계 및 기타 실험실 등에서 연구, 개발, 시험 평가 목적으로 정기적으로 배달해왔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 연구, 개발, 시험의 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히 무엇인지 우리는 아는 게 없고 구체적으로 알 방법도 없다는 점이죠." 


이번 보고서에 명확한 해명은 없지만, 그간 미군이 발표한 입장을 유추해보면 탄저균이 어떠한 이유와 목적으로 국내에 들어왔는지 알 수 있다. 미군은 2011년 4개년 프로젝트로 주피터(JUPITR, 합동 주한미군포털 및 통합위협인식(Joint USFK Portal and Integrated Threat Recognition))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주피터 프로그램의 목적은 '한반도에서 벌어질 수 있는 세균전 등 위기 상황에 대비해 이전보다 강력한 감시체계를 구축하고 탐지 능력을 확보하는 것'인데 그 연장선에서 탄저균을 국내에 들여보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미군은 올해 3분기 이내 북한을 비롯한 주변 국가에서 생화학무기를 사용했을 때 초기에 확인할 수 있는 최전방 감시소를 설치하려고 계획했다. 이번 사태 역시 국내에서 생화학 무기로 인한 테러 등 위협이 벌어졌을 때 해당 물질이 무엇인지 국내 미군기지에서 분석을 마쳐 주한 미군 사령관이 직접 상황을 판단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도에서 탄저균을 들여왔다. 실제 미군의 공식문서를 통해 서울 용산기지와 오산기지 등에 분 석 장비를 도입했고, 2015년 3분기에 오산기지에서 주요 장비의 시연작업이 진행될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2013년 4월 주피터 프로그램 책임자인 피터 이매뉴얼 에지우드 생화학센터 생명과학부문장이 했던 언론과 인터뷰가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한다. 피터 이매뉴얼 씨는 한국 정부가 주둔국에 호의적 이며 생화학무기 실험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어느 정도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미군은 한국을 첫 번째 실험장으로 시작해서 이후 전 세계 미군기지로 유사한 탐지시설을 늘려갈 계획이었다. 


이번 사태 주요 원인으로 소파협정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문제인가요?

"우선 이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상의 규정은 없습니다. 그래서 미군기지에 어떤 물품들이 반입되는지, 미군이 어떤 작전을 하는지 알 수도 없고 통제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통관과 관세문제이긴 하지만 SOFA 9조상의 미군 군사화물에 대해 통관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도록 한 조항이 회자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조항으로 인해 페덱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탄저균이 들어있는 택배 물품과 일반 택배 물품과 뒤섞여서 일해야 했다. 만일 배달하는 과정에서 작 은 실수라도 있었다면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이 위태로운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 공공운수노동 조합은 이러한 상황을 연출한 페덱스를 생화학무기 법과 감염병예방법 위반으로 지난 7월 21일 서울서부지검에 고발했다. 


"페덱스 노동자들의 안전에 대해 사측이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이점을 방치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노동자들의 안전을 스스로 법에 맞게 보장하고 있는지 묻고, 사측에게 이점을 강제 한다는 측면에서 이번 고소 고발이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심각성을 인식한 때문인지 8월 1일 언론을 통해 페덱스는 더 이상 고위험병원체 배송 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국내 감염예방법과 시행령·규칙에 따르면 탄저균은 생물테러 등의 목적으로 사용돼 국민 건강에 심각 한 위험을 줄 수 있는 고위험 병원체로 분류돼 있어 국내 반입 시 보건복지부 장관의 허가를 받게 돼 있다. 그러나 SOFA 제26조(보건과 위생)에는 위험 물질 반입 시 사전통고나 허가같은 내용을 포함하지 않고 있어 미군은 보고의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군은 26조를 들어서 보고 할 의무가 없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26조는 분기별로 질병이 발생하지 않았음을 보고할 의무가 없다는 조항인데 미군은 감염된 사람이 없으니까 없었다고 보고하면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결과 가 중요한 게 아니라 왜 들여왔는지를 말해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고위험병원체의 반입과 목적을 통제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소파 협정 7조에는 접수국 법령을 존중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직접적인 규정이 없으면 당연히 국내법을 준수해야 합니다." 



▲  주한미군의 탄저균 불법 반입 실험을 규탄하는 시민들의 목소리


미 국방부가 이번 사태에 대해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어떻게 평가하나요?

"서두에도 말씀드렸지만, 이번 발표로는 이번 사태의 원인을 밝힐 수가 없습니다. 책임자도 특정할 수 없다고 결론 내리면서 처벌하지도 않았고요." 


이번 보고를 통해 더그웨이 연구소로부터 지난 10년간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7개국 86개 시설에서 저농도의 살아있는 탄저균을 배달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연구·개발용으로 쓰이는 탄저균은 특정한 경우를 제외하고 완전히 비활성화된 상태로 배송하도 록 돼 있는데 그 규정을 지키지 않고 탄저균을 배달한 것은 심각한 규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살아있는 탄저균의 숫자가 적어 일반 대중에게 는 위험이 노출되지 않았고, 이번 사고의 경우 정확한 원인이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책임 주체도 특정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미 합동 조사단이 이번 보고서를 기초로 조사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무엇부터 제대로 해야 할까요? 

"지금은 명백한 진상규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미군이 과연 무슨 목적으로 무슨 물질을 다른 나라에 보내왔는지, 특히 한국에서 무엇을 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가 명확하게 밝혀져야 합니다. 한국에는 주피터 프로그램과 관련한 실험이 존재하고 이것과 관련해서 주한 미군 사령관이 이후 한국과 계속 협의하고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얘기하고 있잖아요. 사실 이렇게 위험한 프로그램을 지속하겠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안전과 한반도 평화를 생각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미군 이 이번 보고서를 자체 내부 조사를 통해 발표했잖아요. 거기에 기초해서 조사하겠다고 하는 얘기는 조사를 거기까지만 하겠다는 얘기라서 무척 우려스럽습니다. 미국은 과거 소련이 군부대의 실험실에서 탄저균 실험을 해서 생물무기금지협약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유엔 안보리에 제소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놓고 이제와서 자기는 해도 괜찮다는 건지.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이 없는 보고서에 기초한 조사로는 한국에서의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정부는 이번 미군의 보고서 결과를 기다리겠다면서 합동 조사단 운영 및 구성을 연기해왔다. 또 한 조사단의 업무 및 역할을 조사 그 자체에 제한시켰다. 따라서 조사 결과에 따른 문제 해결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미정부가 남북이 분단되어 있는 상황이라고 해서 어떤 행위든 정당화 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한국정부와 미국이 동맹이라고 말하면서 정작 한국국민의 생명 안전에 대해서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면 동맹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죠. 참고로 미국 이 일본이나 독일에는 공식적으로 사과의 뜻도 표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국 정부가 국민의 대표로서 이번 사태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한국정부가 적극 나서지 않으니까 불가피하게 헌법상 주권자인 국민과 언론, 시민사회단체, 저희 같은 법률가 단체 등 각자 할 수 있는 역할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행동해야죠. 고 발과 관련해서도 조만간 고발인 조사가 있을 예정 인데 이후에 고발인도(피고발인도) 불러서 조사할 지 의문이에요. 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평화는 포기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서 대응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소파에 명시적으로 국내에서 반 입금지물품을 반입할 때에는 한국정부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여야 합니다. 독일 소파에는 이미 규정이 있거든요." 

[현장의 목소리] 일하는 사람이 존중받는 병원을 만들고 싶어요 /2015.7

일하는 사람이 존중받는 병원을 만들고 싶어요
- 보건의료노조 고려수요양병원지부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

 

 

 

2008년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에서 문을 연 고려수요양병원은 서울 구로, 금천구에서도 200병상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안엔 강남점 오픈을 앞두고 있을 정도로 업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병원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일하는 치료사들은 병원 명성과 달리 20대임에도 근골격계 질환으로 인한 통증과 관리자들의 성추행을 견디며 일하고 있었다. 그중엔 희선씨도 있었다. 희선씨는 이 병원 6년 차(치료사 9년차)면서 팀장으로 일하며 병원의 부당함에 대해 할말은 하는 정의로운 직원이었다. 희선씨는 본인 또한 근골격계 질환 또한 직업병이라는 생각에서 산재를 신청했고 병원의 협박과 모욕에도 굴하지 않고 끝내 산재 인정을 받아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희선씨는 눈앞에 펼쳐있는 병원에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고심하던 중 동료들을 설득해 노동조합을 만들기로 했다. 1년 반을 준비했지만 병원에 노동조합 설립 움직임이 들통이 나는 바람에 140여 명의 직원 중 27명이 모여 지난 4월 3일 보건의료노조 고려수요양병원지부 노동조합 깃발을 올렸다.

 

며칠 후 70명의 직원이 한국노총 산하 한국철도노조를 만들었고, 복수노조 창구 단일화를 통해 지부는 교섭권을 박탈당했다. 이후 지부는 상식적으로 요양병원 노동자들이 한국철도산업노조에 가입한 것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웠고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노동조합의 명칭을 철도사회산업노동조합으로 변경하고 가입규약까지 바꿔버렸다. 병원은 현재 대표교섭권이 있는 한국노총과 교섭을 진행하고 있어 지부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하 치료실에서 쉼 없이 일하는 치료사들

 

심희선 지부장 : 우리 병원은 주로 중풍이 오거나 뇌혈관질환이나 뇌·척수에 손상이 온 중추신경계환자들의 재활을 위한 병원이에요. 병원 이름 이 손 수(手)자를 써서 고려'수'요양병원이듯 다른 병원과 다르게 기구나 기계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요.

 

치료사들은 이점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손목 질환, 허리디스크 등 골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치료사들은 환자 한 명에 1타임(30분)씩 하루 꼬박 8시간을 치료한다. 쉬는 시간은 허락되지 않는다. 오로지 다음 환자 치료를 위한 대기 시간만이 존재한다.

 

심희선 지부장 : 만약 1타임이 비면 치료실 한쪽에 있는 테이블에서 차트를 쓰면서 대기해요. 그러다 전화 오면 받고, 직원들이 부르면 가고. 그런데 병원은 치료 안하는 시간은 가만히 있으니까 쉬는 시간이라고 주장해요.

 

임미선 부지부장 : 예를 들면 연말(혹은 월말)에 성과 보고를 하면서 치료사들의 치료 시간을 평균으로 계산하는데 15개 타임 중 10번 정도 일한 걸로 나와요. 분명 치료가 없는 타임에 차트도 쓰고 치료 외에 업무도 하는데 직접적으로 환자를 치료한 것만 타임수로 인정하는 거죠. 대기시간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계산하니까 마치 우리가 5타임을 쉬는 것처럼 되요.

 

김지윤 사무장 : 시간뿐만 아니라 환경도 열악해요. 구로 병원에 있을 땐 치료실이 지하 2층에 있어서 환기가 전혀 안 되니까 1타임하고 나면 머리가 어지럽고 그랬어요. 그래서 다음에 병원 만들 때는 치료실을 지하에 짓지 말라고 요구했었는데 금천 병원도 기어코 지하 1층에 치료실을 만들어서 치료사들은 인후통, 인후염을 달고 살아요.

 

그뿐만 아니라 2014년 병원은 일방적으로 취업규칙을 변경을 강요했다. 그 결과 직원들 연차 15개에서 공휴일을 제외하면서 연차가 6개나 없어졌다. 또한, 연차 촉진제를 시행했는데 그마저도 2개월 전 서면 통보 등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결국 연차를 더 쓰지도 못하고 연차수당도 못 받게 됐다.

 

 

▲  부당한 노동환경을 바꾸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고 싸움을 결의한 보건의료노조 고려수요양병원지부 노동자들

 (왼쪽부터 임미선 부지부장, 심희선 지장, 유지현 보건의료노조위원장, 김지윤 사무장)  

 

 

동료 치료사가 일을 그만두길 바라게 하는 병원

 

치료사들은 높은 노동 강도와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인해 3년 이상 병원에 다니지 못한다. 중간관리자들의 경우 병원이 어렵다는 이유로 팀장들에게 각 팀 내에서 권고사직 명단을 제출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라도 다른 병원을 찾게 된다. 또한 병원은 이를 이용해서 동료가 그만둬야 남은 사람들의 연봉이 오를 수 있다고 분위기를 조장한다.

 

심희선 지부장 : 치료사 대부분 결혼하거나 출산을 하면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출산하고 다시 돌아온 사람도 없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안 되는 거죠. 병원이 5년 차 넘은 직원들하고 연봉협상 할 때 "너희는 연애 안 하느냐" "너희 그만 안 두느냐" 는 등 노골적으로 그만두라고 말해요.

 

임미선 부지부장 : 연 차가 쌓인 동료들이 많으면 저희한테 "네가 연봉 많이 받고 싶으면 옆 사람을 나가게 해라"라고해요. 이러니까 동료가 그만둔다고 해도 내년엔 연봉이 오르겠다는 생각을 하게끔 분위기를 조장해요.

 

골병을 견디며 일하는 치료사들

 

치료사들은 자신들의 골병이 직업병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고통을 혼자 감내하는 것 말고 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러나 심희선 지부장의 산재신청을 계기로 동료들은 골병이 직업병이고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김지윤 사무장 : 동료들이 손목을 다치거나 허리디스크로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때까지도 저는 산재신청 하면 병원에서 돈을 내야 하는 줄 알았어요. 지부장이 산재신청 했을 때도 팀장에서 강등되니까 무서워서 앞으로 누가 산재신청 하겠나 생각했죠.

 

심희선 지부장 : 재신청 한다니까 회사에서 "네가 죽은 것도 아니고 병신도 아닌데 왜 산재를 신청해서 병신 낙인을 찍히려고 하느냐" "산재인정 받아서 병신 되면 다른 데 가서 일할 수 있겠느냐" 등등 온갖 협박을 했죠. 그래도 결국 산재 인정을 받았어요.

 

일상적인 성희롱에 노출된 치료사들

 

연차가 낮고 나이가 어린 재활치료사들일수록 병원 관리자들에 의한 성희롱에도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었다.

 

심희선 지부장 : 하루는 술자리에 불려서 갔는데 저를 제외한 8명이 모두 남자 직원들이었는데, 저한테 오빠라고 부르라는 거에요. 또, 여성의 성기를 반복해서 묘사하거나 언급하길래 나중엔 듣기가 너무 힘들어서 지금 불쾌하다 그만하라고 하니까 그냥 웃어 넘기더라구요.

 

노동조합은 4월 28일 고용노동부 관악지청에 직장 내 성희롱 문제로 진정서를 제출했다. 한편, 현재까지도 병원 직원들은 사실관계를 전면 부인하는 것은 물론, 진짜 문제를 제기하고 싶으면 고소해야 하는데 증거가 없지 않으냐는 적반하장 식의 태도를 보인다.

 

1년여의 준비 끝에 노동조합 깃발을 띄우다

 

병원의 태도에 염증을 느낀 심희선 지부장은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부지부장, 사무장을 중심으로 27명의 노동자들과 결의를 모았다.

 

김지윤 사무장 : 지부장이 노동조합을 만들자고 제안했을 때 놀라웠죠. 마치 지구에 큰 이변이라도 일어날 것만 같은 두려움도 있었고요. 그렇게 한 달을 고민하다 함께하기로 마음먹고 1년 3개월 동안 함께 준비했어요.

 

임미선 부지부장 : 저도 처음에 지부장님한테 제의를 받았을 때 꼭 해야 하나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그런데 병원에서 연차나 취업 규칙 문제가 계속 터지니까 노동조합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준비하면서 노동법, 역사 교육받으면서 이 사회의 구조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면서 점점 더 생각이 확고해진 것 같아요.

 

노동조합을 만들고 지부는 병원에 교섭을 요구하며 다음과 같은 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병원은 다수 노조인 한국노총과 이야기하겠다면서 민주노조와의 대화를 일체 거부하고 있다.

 

 

 * 대표적인 노동조합 요구사항

1. 고용안정을 위한 호봉제 도입
2. 연차/공휴일 개별 지급 및 연차 사용의 자율성 보장
3. 휴게시간 및 휴게공간 보장
4. 직장 내 문화 개선위한 방안 (조직문화, 성희롱 예방)
5. 노조업무를 이행하기 위한 타임오프 시행

 

 

당신들을 만나서 참 행복하고 감사하다

 

인터뷰를 마치며 향후 투쟁에 대한 각오, 동료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부탁했다.

 

 

 

▲  보건의료노조 고려수요양병원지부 노동자들

  

임미선 부지부장 : 노동조합하면서 몰랐던 부분도 알게 되고 이제는 동료를 넘어서 함께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아요. 노동조합을 만나지 못했다면 예쁜 옷 사고, 맛있는 것 먹으러 다니고, 남자 잘 만나서 시집가는 것에 관심을 두고 살았을 텐데, 앞으로 내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었어요.

 

김지윤 사무장 : 사람들이 노동 조합한 거 후회하지 않느냐고 많이 물어보는데 저는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어요. 오히려 노동조합 활동하면서 깨닫고 배우게 된게 많아요. 집에서도 이왕 시작한 거 실패해도 괜찮으니까 제대로 싸우라고 응원해주세요. 앞으로도 노동조합에 가입했다고 노동자들이 탄압받지 않는 세상을 위해서 싸울 거예요.

 

심희선 지부장 : 성과라고 하면 성과인데 지난 5.1 노동절에 처음으로 유급 휴가를 받았어요. 이렇게 차츰차츰 빼앗겼던 우리 권리를 하나씩 찾으려고 해요. 무엇보다 제가 운이 좋아서 우리 조합원들처럼 멋진 사람들을 만나서 참 행복하고 감사한 것 같아요. 앞으로 제가 더 많이 배우고 노력해서 동료들과 끝까지 함께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이후 과정에서 병원은 노동조합의 소식지 배포 등이 경영상 심각한 피해를 줬다며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심희선 지부장 등 노동조합 간부 3명에게 각각 3천만원씩 총 9천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간부를 포함한 전체 조합원들은 병원의 탄압에도 굴복하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 존중받는 병원을 만들기 위해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모아내고 있다. 힘든 여건에서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고려수요양병원지부 조합원들의 건투를 빈다!


 

[현장의 목소리] 우리 삶도 형광등처럼 반짝반짝 오래가자 /2015.6

우리 삶도 형광등처럼 반짝반짝 오래가자

해외 먹튀 자본에 맞서 투쟁하는 금속노조 경기지부 오스람분회


재현 선전위원


오스람은 세계적인 기업 지멘스(Siemens)의 자회사였다 3년 전 분사한 세계 3대 조명회사 중 하나다. 1987년 오스람은 국내 회사 승산과 50%씩 합작 투자로 경기도 안산 반월·시화 공단에 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1994년 오스람은 승산 회사 지분을 100% 인수하고 오스람 코리아로 상호를 변경, 본격적으로 한국 시장에 투자를 확대했다. 1995년엔 콤팩트 형광 램프(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오스람 제품) 자동화 라인을 도입하는 한편, 서울·부산 등 영업소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점차 높였다. 최근 들어서는 급부상 하고 있는 LED 또한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생산량을 자랑한다.

오스람은 친환경 조명을 만들어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기본 철학을 갖고 있다. 또한, “사람과 환경에 대한 책임을 갖고 있고 에너지 효율적인 제품으로 지구 온난화 대책에 지속적으로 공헌한다”는 사명을 가진 회사다. 그런데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아니고, 작년 9월 오스람 코리아가 매년 약 200억 원의 영업 이익을 내기 위해 삶을 다 바쳤던 노동자들의 목에 구조조정의 칼날을 들이밀었다. 자신들이 떠벌려온 철학에 반하는 천박한 해외 먹튀 자본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사진 설명 : 해외 먹튀자본에 맞서 투쟁하는 금속노조 오스람코리아분회 조합원들 (출처 : 금속노조 경기지부)


설비 및 시설 투자 없이 현장을 방치한 오스람 코리아


“최근 LED 시장이 호황을 맞으면서 전통 조명 시장이 사양 산업으로 접어드는 추세에요. 그렇다 보니 회사는 설비 투자를 안 하고, 신입 사원도 안 뽑았죠. 부족한 인력은 물량에 따라 전환 배치하면서 공장을 운영했어요.” (최영식 부분회장)


분회장, 부분회장, 수석부분회장은 노조 결성 이전 10년여 가까이 노사협의회 노동자 대표 위원이었다. 이들은 줄곧 회사에 앞으로 LED 시장이 계속해서 확대될 테니 국내 공장도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소 설치나 설비 및 기술 개발 투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중국이나 다른 나라들이 아무래도 인건비가 싸니까 그쪽에 LED 설비 공장을 세우고 한국은 계속 등한시 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도 최근 들어 저희가 제조해서 판매하는 것보다 수입해서 판매한 매출이 훨씬 증가했어요.” (권남규 수석부분회장)


마른 수건을 쥐어짜는 오스람 코리아


이들은 처음 오스람 코리아를 입사할 때만 해도 반월·시화 공단에서 임금을 손에 꼽을 정도로 높게 받았다. 98년 IMF 외환위기 때에도 환율 차이로 인해 많은 이득을 내면서 크게 어려움을 못 느꼈다.그런데 2000년대 들어 호봉제를 연봉제로 바꾸면서 임금 체계가 완전히 무너졌고, 저임금 구조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매년 기본적으로 뽑던 신입사원도 2012년 이후 명맥이 끊겼다. 한때는 300명이 넘었던 현장인데 이제는 약 220명의 노동자만이 남아있다.


“전통 방식의 조명이 사양 산업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어요. 백열전구가 오래됐다고 해도 지금도 사용하잖아요. 기존공사 설비 또한 여전히, 전통 방식 조명이 필요하고, 하다못해 기본적인 A/S를 위해서도 필요해요. 그런데 제가 입사한 이래 회사는 단 한 차례 적자도 없었고, 5년간 1,088억 영업 이익을 냈는데도 단 1%도 재투자가 없었어요. 최대한 수익을 뽑아냈으니 정리하겠다는 거죠. 해외 먹튀 자본의 마지막 본 모습을 보는 것 같아요.” (최용식 부분회장)


오스람 코리아는 LED 시장이 지속해서 성장하더라도 100년의 역사를 갖고 있어서 쉽게 망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그러다 2012년 8월 부임한 방인철 사장이 꼬박 2년만인 작년 9월, 희망퇴직이라는 미명하에 노동자들의 목에 구조조정이라는 칼날을 들이밀었다.


노동조합 깃발을 세우다


“작년 8월에 전 직원 앞에서 약속했어요. 본사 차원에서 인원을 줄이려고 하는데 오스람 코리아도 예외는 아닐 것 같다, 그러나 생각보다 늦춰질 것으로 예상한다, 늦출 수 있게 본사에 얘기하겠다, 앞으로 희망퇴직 관련해선 노사협의회와 먼저 논의하겠다고. 그렇게 약속을 했어요. 그런데 완전 뒤통수를 맞은 거죠.” (조동윤 분회장)


하루아침에 공장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에 떤 노동자들은 이쯤 되면 노조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들을 제출하면서 한 달 만인 지난 2014년 10월 18일 115명에 노동자들의 결의로 금속노조 오스람 코리아 분회노동조합을 출범했다.


“99년에 부서장 (공장장급)이 너무 강압적이라 힘들어서, 최소한 그 밑에 있는 관리자라도 잡자는 생각에 핵심 생산 파트 엔지니어, 팀장, 반장 전체 다해서 33명이 집단 사표를 썼던 적이 있어요. 노조를 만드는데도 시간이 필요하니까 우선 우리끼리 강한 의지만 믿고 집단행동을 한 거죠. 그런데 회사가 하루 만에 전원 사표를 수리하고, 완전 참패를 당했죠. 당시 주동한 사람들은 회사에 다시 못 들어왔어요. 중간에 있던 사람들은 재입사를 했고요. 이날 이후로 노·사 힘 관계가 회사한테 확 넘어갔고, 1년 후에 자연스럽게 연봉제를 도입한 거죠.” (조동

윤 분회장)


현장에선 노조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99년의 트라우마는 넘기 힘든 벽이었다. 일부 노동자들은 회사가 어렵다고 하고, 임금도 적지만 그래도 내가 다니는 동안 형광등은 팔릴 거라는 생각으로 버텼다.


“노조 출범식 날 저는 사람들이 현장에서 억눌려 있던 감정들이 폭발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또 노사협의회와는 다르게 이제는 회사와 대등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고요.” (권남규 수석부분회장)


“저는 속으로 됐어! 그랬어요. 저희가 나름 노사협의회를 준 노조 수준으로 강경하게 하고 있다고 자평도 하고 그랬거든요. 근데 한편, 그래도 항상 힘의 논리에서 회사에 밀리다 보니 노동조합에 대한 필요성과 아쉬움을 오랫동안 느꼈었는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잖아요.” (최영식 부분회장)


노조는 절대 인정 할 수 없다


10월 18일 노조 출범 이후 11월 복수노조 단일화 창구 절차를 밟고 11월 회사에 단협 체결을 위한 교섭을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고, 지난 2월이 돼서야 첫 교섭 테이블에 나왔다.


“회사가 교섭을 회사 밖인 제3의 장소에서 퇴근 이후인 저녁 7시 노동자 3명이 하자는 거에요. 우리는 회사 안에서 오후 3시에 6명이 하자고 했죠. 결국, 제대로 된 교섭 한번 못해보고 조정 신청에 들어갔죠. 경기지방노동위원회가 회의 장소를 회사와 제3의 장소를 교차하겠다는 조정안을 제출했는데, 회사가 결국 거부하면서 교섭은 해보지도 못하고 파업권이 생긴 거예요. 이후에 1월 말 확대 간부 중심으로 첫 파업에 돌입했고, 언론에서도 우리 소식을 보도해주고, 노동부도 압박을 하니까 2월 26일 회사가 교섭에 처음 나왔어요. 별 논의는 없었지만 2월 이후에도 최근인 5월 말까지 11차례 교섭을 했는데, 논의가 진행 된 건 하나도 없어요” (조동윤 분회장)


오스람 코리아는 노동조합의 요구가 부담스러워서 교섭을 게을리 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일관되게 금속노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였다. 몇몇 회사 관리자들은 지금도 금속노조가 아니면 대화에 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번에 얘기하는 게 교섭을 하더라도 분회 사람들 하고만 하면 안 되겠냐고 하는 거예요. 우리끼리 있으면 말실수를 해도 넘어갈 수도 있고 그런데, 금속노조 경기지부나 안산지역 지회가 오면 부담스럽다는 거죠.” (권남규 수석부분회장)


“이게 참 아이러니한 게 회사가 희망퇴직이 필요하다면서 말했던 논리가 글로벌 경제 전반이 어려워서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라고 얘기했거든요. 그런데 노조를 만드니까 요새 경기가 좋아졌다, 그러니까 굳이 노조 안 만들어도 된다는 거예요. 20년 내내 회사가 어렵다고 하더니. 어떤 임원은 민주노총에서 스킬 다 배우고 나중에 기업노조를 하는 게 어떻겠냐. 민주노총만 제발 하지 말아 달라는 거죠.” (최영식 부분회장)


오스람 코리아는 지금까지도 줄곧 노동조합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분회는 그 이유를 이렇게 판단했다.


“노조가 만들어지면 회사 경영에 침해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한국 공장을 정리할 때 노조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차이가 굉장하니까요. 그러니 저희가 3월 11일부터 2시간씩 파업을 해서 매출 손해가 굉장할 텐데 회사가 꿈쩍을 안 해요. 이것만 봐도 공장 철수를 위해 어떤 손해를 감수하더라고 노조만큼은 인정하지 않는 게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조동윤 분회장)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함께 극복했으면 좋겠어요


“반월·시화공단에서 8년 만에 신생 금속노조가 생겼다고 해요. 저희가 공단 노동자들의 희망이 돼야 하는 위치에 있는 거죠. 꼭 투쟁 승리해서 우리가 만드는 조명처럼 반월·시화공단 노동자들에게 빛이 되고 힘이 되는 노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권남규 수석부분회장)


“분회장, 수석 모두 고생 많이 하고 있어요. 저는 질긴 놈이 이긴다고, 질기게 싸우면 꼭 이길 거라고 생각해요.” (최영식 부분회장)


“회사가 문 닫기 직전인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서 노조를 만든 경우는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도 노조를 만들 수 있었던 건 우리의 절박함이 조합원에게 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노조 만들고 교섭 진행하면서 눈에 보이는 결과가 꼭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못 만들어서 조합원들이 많이 힘들텐데 그 점이 미안해요. 그렇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함께 극복해서 꼭 이 싸움 이겼으면 좋겠어요.” (조동윤 분회장)

[현장의 목소리] 회사는 교대제 합의 후 신종 노조파괴 공작, 위장취업까지/ 2015.5

[현장의 목소리]

회사는 교대제 합의 후 신종 노조파괴 공작, 위장취업까지


안재범 운영집행위원 (갑을오토텍지회 노안부장)


2014년 회사는 심야노동을 철폐하고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노동조합의 교대제 취지에 동의하여 주간 연속 2교대제와 월급제에 합의했다. 하지만 회사는 교대제 합의서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교대제 합의는 잘못되었고 기업의 생존을 위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며 호소문을 발표했다. 또한, 기초근무질서 준수라는 명분으로 관리자들을 동원해 현장을 감시하고 통제했다. 이에 노동조합은 현장 노동자들의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가 최우선으로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현장 순회를 비롯해 안전점검을 강화했다.


사건의 발단 및 개요

2015년 2월 5일 14시 10분경 명예산업안전 감독관 직무수행을 위해 현장 안전보건사항을 점검하던 중「CAC 언로딩기의 산업용 로봇」이 오작동으로 인해 멈춘 상황을 목격했다.

이후 작업자는 주 전원을 끄지 않은 상태로 도어를 열고 로봇 안으로 들어가 불량제품을 꺼내려고 했다. 그때 다른 작업자가 지나가다 열린 도어를 건들어서 도어가 닫힐 뻔한 위험천만한 상황을 목격했다. 현장에서 바로 작업 중지를 시켰고 회사 측 안전관리담당자를 불러 작업자의 특별 안전교육실시 여부와 도어 및 안전장치가 제대로 돼 있는지 확인을 요청했다.

아니나 다를까 노동조합에서 조합원에게 확인한 결과 회사는 특별안전교육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 지금까지 실시한 것으로 거짓 서명을 하도록 했던 사실이 들통 났다.

또한, 로봇의 안전장치와 작동 여부도 센서 부위에 자석과 테이프가 부착되어 안정상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어가 닫히면 별도의 리셋 스위치를 작동하지 않아도 로봇이 스스로 움직이는 위험천만한 상태였다. 즉, 로봇 펜스 안에서 불량 제품을 꺼내거나 고장이나 수리, 점검 중에 누군가 실수로 도어를 닫으면 끔찍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태였다.


작업 중지와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이러한 사실을 회사의 안전보건 담당자와 함께 목격하고 위험천만한 상황에 대해 작업 중지를 요청한 것이다. 이후 노동조합은 현장 조합원들을 휴게실로 모아 작업 중지를 한 이유와 회사의 안전보건 실태 등을 설명하고 공정별 요구사항과 노동조합 요구안을 마련하는 토론을 진행했다.

회사는 “산업용 로봇의 방호장치와 안전상의 문제 그리고 특별안전교육의 허위작성을 인정하고 노동조합이 요구한 긴급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고 했고 노동조합이 요구한 ▲로봇 관련 해당 작업자 특별안전교육 시행 ▲로봇 관련 전 공정 노사합동 특별안전점검 시행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직무수행 방해 및 특별안전보건 교육 허위작성에 따른 해당자 징계건 등을 전면적으로 수용했다. 작업 중지 6시간 만에 긴급 산업안전보건위원회 합의를 통해 작업을 재개하며 일단락 지은 것이다.


산보위 합의 후 “악의적인 회사 측 고소”

그런데 사건이 있고 한 달 후 회사가 도리어 노동조합과 간부를 대상으로 업무방해 및 폭력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이후 곧바로 4명의 조합원이 복수노조 설립 신고를 하더니, 지난해 말 경력직으로 취업했던 신입조합원 29명이 집단으로 금속노조를 탈퇴하고 복수 노조에 가입했다. 회사 측에 의해 현장에 민주노조 파괴 시나리오가 작동한 것이다. 또한, 노사가 노동자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긴급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합의했던 문제를 갖고 노동조합을 고발한 것이다. 민주노조 파괴 공작도 모자라 노동자의 안전 문제까지 활용하는 파렴치한 행위를 자행한 것이다.



회사의 민주노조파괴 시나리오

제보를 통해 확인한 결과 2014년 교대제 합의 후 회사 측은 새로 뽑은 신입사원 60명 중 일부를 서울 종로구 모처에 모아 민주노조 파괴 공작을 기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다른 사업장 노조 파괴 사례 교육은 물론 입사 후 현장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등등에 대해 비밀리에 사전 교육을 받은 것이다. 또한, 입사 당시 회사에서 갑을오토텍엔 강성 노조가 있으니 회사 편에 있는 기업노조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채용조건은 금속노조에 가입하지 않는 것 등의 강요를 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민주노조 파괴를 위해 채용된 신입사원들 사이에서 “각 팀장이 가입을 권유한 기업노조는 원서를 받아놓고 하루 이틀 뒤 가입하기 바란다” “기업노조에 가입신청 했다고 해서 바로 알려지는 건 아니다”라는 문자 메시지가 서로 공유되어 민주노조 파괴 공작이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 확인되었다.

또한, 민주노조 파괴를 목적으로 입사한 직원들에게는 처음부터 팀장, 조장 등 직책이 부여됐고 월급도 차이가 났다. 일부는 그룹 내 다른 계열사인 동국실업에서 지난해 11월 단체협약을 체결할 때 본사 간부 직원처럼 행세했던 사람도 있었다. 이는 갑을오토텍 민주노조 파괴를 위해 갑을 그룹사 차원에서 작전을 지시하고, 계획을 세웠다는 것을 반증한다.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노조법·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집중 조사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은 4월 14일부터 현장에 근로감독관 3명과 산업안전감독관 2명, 안전보건공단 관계자 2명을 파견하여 사용자의 노동관계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진행했다. 특히, 신입사원을 대거 채용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특전사 출신 신입사원을 대거 채용해 기존 노조를 대체할 신규노조 설립을 추진한 의혹과 사업장 산업안전보건 전반적인 실태와 법 위반사항 등을 중심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지금 현장에서는

회사의 민주노조 파괴 공작에 분노한 조합원 3명이 시작한 아침출근 선전전은 일주일도 안 돼 점점 늘어 매일 100여 명이 함께하고 있다. 노동조합 통제와 지침이 아닌 현장 조합원 스스로가 조직되어 구역별 현수막과 피켓을 만들고 이후 대응들을 논의하고 만들어 가고 있다.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 지금 현장에서는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이번 민주노조 사수투쟁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현장의 목소리] 길었던 여정의 마무리, 그리고 새로운 출발 - 동희오토 산재인정투쟁 /2015.4

현장의 목소리

길었던 여정의 마무리, 그리고 새로운 출발

-동희오토 황재민 씨 산재인정투쟁 승리와 지회의 계획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 사무장 최진일


<<황재민 씨 산재사건 경과>>

 2013. 7. 19   뇌경색 발병, 야간 중식시간에 식당에서 쓰러짐

 2013. 8. 18   산재 최초요양신청 불승인 (사측 종용으로 증빙자료 없이 졸속처리)

 2014. 5.       산재 심사청구 불승인

 2014. 5. 20    부인 김려화씨 공장 앞에서 아이 업고 1인 시위

 2014. 6.        금속노조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와 만남

 2014. 7. 1     산재 재심사 청구 최종 불승인

 2014. 7. 15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투쟁 돌입

 2014. 9.        산재 행정소송 접수

 2014. 12. 4    사측과 보상 합의, 대신기업이 보상금 지급과 산재 협조 약속

 2014. 12. 11   근로복지공단과 담판, 재조사 결정

 2015. 1. 9      대신기업 현장조사

 2015. 2. 9      근로복지공단 대전질판위원장 면담

 2015. 2. 16    대전질판위 항의방문 (노조참여보장 요구)

 2015. 2. 23    대전질판위에서 산재로 승인


보령지사 면담을 통해 전면적인 재조사가 결정된 이후 지회는 일체의 관련된 자료를 제출했다. 동희오토 의장라인의 편성효율, 타 공장과의 노동강도 비교, 열악한 작업환경 및 스트레스에 대한 증거자료와 진술서, 사고 당일 현장 온도와 식당 온도에 대한 증빙 자료, 사고 정황에 대한 진술서 등 상당한 분량의 자료가 준비되었고 여기에 의학적 소견들이 추가로 준비되었다.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로부터 업무 연관성이 있다는 소견을 확보하고 내과 전문의로부터는 기존의 심부전 진단이 의증에 불과하다는 소견을 확보했다. 과거 정상소견을 보인 검사기록도 추가했다.

이후 대신기업에 대한 현장조사를 거쳐 질병판정위원회가 열렸다. 이 과정에서 지회는 노동조합의 공식적인 참여를 보장받고자 많은 노력을 했지만 끝내 관철하지는 못했다. 현장조사 과정에서는 금속노조 조합원을 현장에 들여보낼 수 없다는 사측의 결사적인 반대가 문제였고, 질판위에서는 ‘본인과 가족, 법정대리인이나 관련 전문가’만이 참석해 의견을 진술할 수 있다는 규정이 문제였다. 불합리한 똥고집을 부리는 사측을 통제할 규정은 없지만, 노동조합의 참여를 가로막을 규정은 넘쳐났다.



1년 7개월 만의 승인





질병판정위원회는 결국 기존 판정을 번복하고 황재민 씨의 뇌경색을 산재로 인정했다. 주당 60시간을 넘지 않았지만 주야 맞교대로 인한 만성 과로가 인정되었고, 추가 제출된 의료기록으로 기왕증이 부정된 것이 핵심적인 이유였다.

“과로의 인정기준을 초과하는 근로시간은 확인되지 않으나, 심방세동과 심부전에 대한 의무기록이 명확하지 않아 기왕력으로 확진하기 어려워 신청 상병에 영향을 끼쳤다고 볼 근거가 미약하고, 온도, 조도, 소음 등의 근무환경, 높은 업무편성률, 신청인의 주야맞교대 근무형태 특히 주간근무에 비하여 더 많은 육체적·정신적 부담을 발생시킬 수 있는 야간근무를 주간근무와 동일하게 수행하여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에 노출되었을 것으로 판단되어 신청 상병은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 - 업무상질병판정서 중

당사자인 황재민 씨와 가족들은 그동안의 고통과 좌절을 뒤로하고 삶의 희망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동희오토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여타 완성차공장보다 월등히 높은 노동강도로 만성적인 과로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그동안 수많은 산재가 은폐되어 온 동희오토의 현실이 명확히 드러난 것이다. 현장의 노동자들은 산재승인에 박수를 보냈고 끈질기게 싸우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희망은 있다는 자신감을 확인했다. 지회는 비참한 현실을 바꾸어 내고 새롭게 민주노조의 영향력을 확대할 일말의 가능성을 획득했다.

이제, 원인과 싸워야 할 때

황재민 씨 사건은 비인간적인 노동강도로 인한 산재였고 일단 이번 승인으로 재해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회사와 공단이 지도록 만들었다. 이제 남은 것은 다시는 현장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 그리고 노동자들이 더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현장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지회는 황재민 씨 사건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근골격계질환 산재인정을 중심으로 하는 건강권 확보투쟁을 벌이기로 했다. 근골격계 질환이 동희오토의 노동강도 문제를 가장 명확히 보여주는 사안인 동시에 지금 당장 가장 많은 노동자가 고통을 겪고 있는 지점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상 황재민 씨 사건이 처음으로 겪어본 산재 사건인 지회에는 너무나 커다란 과제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세부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과 함께 건강권과 산재 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해결능력을 키우는 일부터 시작했고, 황재민 씨 산재 투쟁의 과정에서 아낌없이 힘을 보태준 한노보연 동지들이 여전히 함께 해주고 있다.



<한노보연과 함께 테이핑 요법 교육 중인 조합원들>


단계론적 사고를 뛰어넘는 돌직구를 던져보자!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는 1,500명 공장에서 단 6명의 조합원만으로 이루어진 극소수노조다. 단체협상은커녕 전임자조차 하나 없이 전 조합원이 주야 맞교대 근무를 하고, 그 와중에 잠을 줄여가며 노동조합 활동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지회에 앞으로의 근골격계 투쟁, 건강권 쟁취투쟁은 어찌 보면 무모한 도전이다. 그동안 민주노조의 깃발을 세우고 사수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시간을 보냈고, 전원 해고와 장기간의 복직 투쟁을 거치면서 건강권의 문제는 어느새 지회 시야 밖으로 밀려나 있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었고 노동조합을 안정화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산재 문제는 우리도 남들처럼 ‘번듯한’ 노동조합이 된 후에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우리는 황재민 씨와 가족들에게도 몇 번이나 이런 말을 했다. ‘노동조합이 힘이 없어서 뭐 하나 장담할 수 있는 게 없어 미안합니다.’ 라고. 그런데 연대해준 동지들은 오히려 우리에게 이렇게 물었다. ‘번듯한 정규직노동조합들은 이제 이런 투쟁 않으려고 하는데, 왜 그럴까요?’ 아직 정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어쩌면 당장 눈앞에 두개골이 함몰되고 좌반신이 마비된 황재민 씨의 처절한 모습이 우리가 ‘번듯한’ 노동조합에 대한 허상을 깨고 ‘닥치고 투쟁’하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지회가 동희오토 현장에 민주노조를 세워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가장 큰 이유도 다름 아닌 살인적 노동강도의 문제였다. 노동조합을 만든 이유였던 것이 이제는 ‘나중에 생각할 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다행히 지회는 황재민 씨 산재인정투쟁을 통해 자신을 스스로 가두었던 틀을 깨고 투쟁하고 승리하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가진 것이 없어서 잃을 것도 없는 6명의 조합원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이 경험은 지회의 앞길에 분명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어느덧 우리는 ‘노동조합’에서 ‘노동’보다 ‘조합’이 커져 버린 시대를 살고 있다. 이제부터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가 만들어나갈 근골격계 투쟁은 부디 ‘조합’보다는 ‘노동’에 힘을 싣는 과정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황재민 씨 산재인정투쟁에 함께 한 금속노조 충남지부 김창헌 노안부장과 갑을오토텍 지회 안재범 동지를 비롯한 충남지부 동지들, 금속노조 노안실장과 한노보연 동지들에게 특별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동지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동희오토 본관 앞 무재해현황판을 쇠파이프로 부술지 돌로 부술지 논의하고 있었을 것이다.

[현장의 목소리] 나와 내 동료들이 행복해지기 위해 싸운다

나와 내 동료들이 행복해지기 위해 싸운다

- 현대위아평택 가스 누출사고 대응 투쟁 이야기

 


선전위원  재현

 

지난 115일 현대위아 평택 2공장 SM 테크에서 유독가스 누출 사고가 있었다. 당시 유독가스에 노출된 12명의 노동자가 구토, 안구 통증, 신체 마비 등 고통을 호소했다. 인터뷰가 있던 2월 말까지 사고 원인은커녕 회사의 사과 한마디 듣지 못했다. 노동자의 편에 서야 할 고용노동부조차 회사와 다를 바 없는 태도로 일관했다. 대체 사고 당일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만났다.

 


냄새 난다 항의해도 무시하던 회사

 

김경진(조직부장) : 1120분쯤 코를 찌르는 심한 냄새가 났어요. 처음에는 페인트나 신나 작업을 하는 줄 알았죠. 그러다 점심시간이 돼서야 라인 하나(J3)를 없애면서 폐 세척액을 탱크로리 차량으로 옮기느라 나는 냄새라는 걸 알았어요.

 

냄새의 원인은 엔진에 도포된 방청제를 제거하기 위한 세척 작업에서 생긴 폐 세척액이었다. 지하 탱크에 저장되어 2년가량 방치된 상태였다.

 

위응량(부지회장) : 그날 작업이 있는지 조·반장도 전혀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보통은 냄새가 심해서 작업자들이 대부분 퇴근한 저녁에 하거나, 3주에 한 번 정도 주말에 하는데 그날은 특별한 경우였죠.

 

박인규(교선부장) : 평소에도 세척 작업을 자주 해서 냄새가 나기는 하는데 그날은 유독 심하더라고요.

 

김경진 : 냄새가 하도 심해서 세척액 퍼내는 데를 가니까 2공장 원청에서 나온 관리자가 세척액 푸는 직원한테 작업 지시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근무시간인데 냄새도 많이 나고 그러니 작업을 나중에 하면 안 되느냐 물었어요. 그런데 아무 대꾸가 없더라고요.

 

당시 세척액 푸는 작업을 뉴그린이라는 폐기물 수거 업체에서 했는데, 작업자들은 방독면을 끼고 일했다. 그러나 방독면 없이 현장에 있던 50여 명 노동자들은 1시간 가까이 가스 누출에 방치된 채 불쾌한 냄새를 맡을 수밖에 없었다. 식당이나 탈의실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이 여성 노동자 한 명이 점심도 못 먹고 탈의실에서 쉬던 도중, 탈의실에서도 냄새가 심해 구토를 하며 몸에 마비 증세까지 생겨 119로 실려 나갔다.

 

위응량 : 회사는 한 시간 동안 내버려 두더니 나중에 조치를 한다는 게 현장 바깥으로 대피시키는 게 다였어요. 그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현장 소장이 가스 냄새가 가득한 식당에서 특별안전교육을 하겠다고 하는 거예요. 조합에선 노동부를 계속 불렀어요. 그런데 전화를 받은 근로감독관이 시종일관 자기들이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했죠. 그때 현장에선 세 분이 또다시 구토 증세를 보이고 이후에도 두 차례 119를 부르니까 나중엔 소방방재청, 경찰까지 현장으로 총출동하더군요. 노동부는 2시 반 다 돼서 왔어요.

 

노동부 관계자는 회사 관리자에게 전화로 신속한 사고처리를 지시했다고 했지만 현장은 방치되어 있었다. 소방방재청은 얼마나 능력이 뛰어난지 사고 누출의 원인으로 지목된 탱크로리 차량을 후각으로 검사하더니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조합은 재조사를 요구했고, 3시간이 지나 노동부 도움으로 유해물질 측정 기기로 다시 조사했다. 그러나 이미 현장은 환기가 다 된 상태였고, 유해물질은 검출되지 않았다.

 

위응량 : 사고 다음 날 아침 사장을 찾아가 산보위를 개최해서 어떤 가스가 누출된 건지, 피해를 본 조합원들 대책은 어떻게 세울 건지 논의하자고 했어요. 그랬더니 사장이 일단 (근골 예방) 체조를 해야 하니까 조회 끝나고 얘기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리곤 퇴근할 때쯤 돼서 이미 기업 노조랑 산보위를 하고 있으니 금속노조랑 할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같은 날 구토, 두통을 호소한 9명의 노동자는 회사 지정병원에서 특수건강검진을 받았다. 특수건강검진이라고는 하나 병원 측은 무슨 검사를 하는지 노동자들에게는 알려주지 않고, 회사 관리자인 현장 소장하고만 소통했다. 검진 결과 대부분 각막 및 결막 화상 등으로 일주일간 안정이 필요했다. 그러나 회사는 정 힘들면 연차로 퇴근하라고 강요했다. 결국, 조합은 회사에 사과와 사고 원인 규명, 피해 노동자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현장 1인 시위 및 출근 투쟁을 시작했다.

 

위응량 : 120일부터 시작했는데 처음엔 회사 관리자들이 동영상 촬영해가고, 명단 적어가고 하면서 조합원들이 위축됐어요. 그래도 이제는 계속하다 보니 조합원 참여율도 높고, 기업 노조 사람들도 회사 사람들 안 볼 때 웃어 주고 가기도 해요.

 


사고 난지 한 달 만에 시료 채취가 제대로 된 감독인가요?

 

김경진 : 121일에는 노동부 평택지청 산재예방과를 찾아갔어요. 과장이랑 면담을 하는데 가스 누출로 몸이 아픈 거랑 유해 가스는 아무 관련이 없으니 정 아프면 병원에 가라고 하데요. , 사고 이후에 회사가 사과 한마디를 안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어보니까 그건 근로개선과 가서 얘기하세요.’ 그러는 거예요. 면담이라고 그렇게 1시간 앉아 있었는데, 지나고 보니 우롱 당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130일에는 금속노조의 요구로 경기지부·지회 노안 간부들과 노동부 평택지청장이 면담을 했다. 노동부는 이 자리에서도 12명의 피해자와 가스 누출 사고는 무관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면담 과정에서 세척제에 발암 및 생식독성 가능성이 있어 금속노조에서 금지 물질로 규정·관리하고 있는 트리에탄올 성분이 함유된 점을 확인했다. 금속노조는 우선 노동부에 세척액 성분 분석, 현장점검 실태에 관한 원청 사업주 관리 책임성 등 확인을 요구했다. , 피해자 12명의 치료비 및 근태 인정,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해 조합을 포함한 노사 공동대책 회의를 제안했다.

 

위응량 : 노동부 면담 있고 나서 210일에 노동부에서 2명이 와서 시료를 채취해갔어요. 13일엔 시정명령이 나왔는데 앞으로 작업자에게 방독 마스크 지급해라, 국소배기장치 제대로 점검하고 보완해라 그게 전부더라고요. 시료 분석 결과는 3월 초에 나온다고 하는데 사실 기대가 크지 않아요. 당일 탱크로리에서 세척액을 퍼 나르면서 가스가 누출된 건데 뒤늦게 시료 채취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노동부는 이래 놓고 자기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하겠죠.

 

현대위아는 자동차 핵심부품인 엔진을 비롯하여 공작기계를 생산하며 잘 나가는 회사다. 그러나 정작 일하는 노동자들은 구토가 나고 몸에 마비가 올 정도로 아파도 회사 눈치 보고, 참고 일하는 삶을 살고 있다. 더군다나 이제 3월 재계약 시즌이 다가왔다. 자칫 회사 눈 밖에 났다가는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



현대위아평택 비정규직 지회의 노동부 앞 집회 현장

 


위응량 : 저는 관리자로 5년을 일했어요. 2013년 금속노조가 다수가 되니까 위장 폐업을 하고 다시 만든 회사에 들어오면서 금속노조에 가입했어요. 회사는 노동자를 노예로 봐요.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행복할 권리가 있는데 근무 시간에 화장실 가면 이름 적히면서 살고 있어요. 인간답게 살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네요. 민주노조가 없으면 우리는 더욱 회사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나와 내 동료들이 행복해지기 위해 싸울 거예요.

 

박인규(교선부장) : 사회가 발전했다 하는데도, 기계를 돌리고 사회를 움직이는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대우도 안 하고 쓰고 버리려고만 하니까 그 현실이 안타까워요.

 

민경복(대의원) : 사고가 있던 날도 바로 옆 동료한테 냄새가 나지 않았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냄새난다는 거예요. 다들 잘릴까 봐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참고 일하는 거죠. TV 광고를 보니까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하는데, 노동자를 무시하고 기계 취급하는 회사가 어떻게 성장할 수 있겠어요?

 

조합을 만든 지 만 2년이 안 되다 보니 경험도 부족하고 아는 것도 많지 않았지만, 이번 사고로 노동조합은 회사가 노동자들을 어떻게 여기는지 배웠다. 그래서 노동조합, 그것도 민주노조가 왜 필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단다. 사고와 이후 활동을 보며 건강한 일터를 만드는 데 민주노조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함께 깨닫게 된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온 힘을 다하는 현대위아 평택지회 동지들의 건투를 빈다.



[현장의 목소리] 빅브라더에 맞서 말과 글을 지키려는 사람들 / 2015.2

빅브라더에 맞서 말과 글을 지키려는 사람들
사이버 사찰에 맞서 긴급행동에 나서다

 

 

 

재현 선전위원

 

 

작년 9월 15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에 대한 모독을 참을 수 없다. 사이버상의 국론 분열에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9월 18일 검찰은 유관기관을 소집하여 논의 끝에 ‘사이버 허위사실유포전담수사팀′을 발족, 인터넷 포털 사이트 등에서 발생하는 허위사실유포에 대해 직접 수사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검찰이 공공연하게 사이버 검열 및 사찰에 대한 입장을 밝히자 사회적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다음카카오가 검찰과의 유관기관 회의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꼴이었다. 노동자·시민들은 정부의 권력 감시로부터 비교적 안전하다고 알려진 ‘텔레그램’ 메신저로 집단 사이버 망명을 시작했다.

 

검찰의 발표가 있던 날. 정진우 당시 노동당 부대표는 종로경찰서로부터 ‘송수신이 완료된 전기통신에 대한 압수·수색·검증 집행 사실 통지’ 우편물을 하나 받는다. 내용인즉 2014년 5월 1일부터 6월 10일까지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 대화 상대방 아이디 및 전화번호, 수발신 내역 일체, 그림과 사진 파일에 대해 압수·수색·검증 집행이 있었다는 내용의 통지서였다. 그는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끔찍한 그 느낌을 지금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한 명이 사이버 사찰 피해자가 아닌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감시사회로 가는데 제동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싸움의 주체로 서고자 결의했다. 그 길에 함께하고자 정보 인권·시민사회·법률 단체들과 함께 ‘사이버 사찰 긴급행동’을 구성하여 저항을 시작했다.

 

그 날의 끔찍함은 이루 말할 수 없어

 

“지금껏 활동하면서 구속도 돼보고, 형사적인 탄압을 많이 받아왔지만 그런 것과 이번 압수수색 결과 통지서를 받았을 때 느낌은 많이 달랐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하고 피해를 당한 주변 사람들에게 굉장히 미안했다.”

 

정진우 당시 노동당 부대표는 지난 6월 10일 박근혜 정부에게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노동자·시민 만민공동회를 주관하다 집회 중 연행, 그 길로 구속되었다. 6월 17일 서울구치소에서 보석으로 출소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재판부의 보석 결정이 못마땅했는지 보석취소 청구를 강행하더니 6월 16일 영장을 발부받아 뒤늦게 어떻게든 그를 가두기 위해 6월 10일 낮 12시부터 딱 12시간 사이버 사찰을 해서 수사 자료를 완성했다.

 

 

 

말과 글을 포기 할 수 없었다

 

“처음엔 사찰 사실을 알고 화도 나고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혼자 끙끙 앓았다. 그러다 마음을 다잡았다. 이번 문제가 개인 사찰의 문제가 아니라, 삼성서비스, 밀양 투쟁 등 공적인 사회 활동에서 메신저로 주소 받은 내용이 정부에게 넘어간 문제였기 때문에 혼자 끙끙 앓고 위축되어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0월 1일 ‘카카오톡 압수수색 규탄 기자회견’을 통해 제 일로 사람들이 스스로 주춤하고 검열하면서, 말과 글을 읽도록 하는 것이 이 정권과 자본이 노리는 것이니 절대 말과 글을 포기하지 말고 저항의 직접 행동으로 나서자고 제 심경을 밝혔다.”

 

검찰의 압수수색 당시 그가 나눴던 메신저 대화에는 신용카드 비밀번호, 초등학교 동창들과 나눈 대화, 각종 투쟁 사안들을 주고받았다. 검찰은 그와 직접 대화를 하지 않아도 같은 대화방에 있었다는 이유로 2,368명을 사찰했다. 이들 중에는 정진우 본인도 전혀 모르는 사람도 태반이었다. 이후 그는 검찰과 다음카카오에 어떤 과정으로 어떠한 내용을 사찰했는지 사실관계를 요구했다.

 

“10월 9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과 다음카카오에 사실 확인을 요구했다. 검찰은 지금까지 답이 없는데, 다음카카오는 변명에 가까운 답을 보내왔다. 검찰이 요구해서 자료를 줄 수밖에 없었다는 답이었다. 이후에 사회적으로 사이버 사찰 논란이 커지자 검찰과 다음카카오 사이에 공방이 벌어졌다. 검찰은 다음카카오가 사전에 추린 자료를 넘겨받았다고 주장했다. 다음카카오는 본인들은 자료를 추릴 방법도, 그럴 생각도 없다며 검찰이 시켜서 자료를 보냈다고 주장했다.”

 

‘사이버사찰 긴급행동’ 출범하다

 

10월 23일 정보인권활동을 하는 진보네트워크센터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천주교 인권위원회 등 시민사회단체와 피해 당사자가 있는 노동당 등이 모여 <사이버사찰 중단! 검경의 개인정보수집 반대! 사이버사찰 금지법 제정! 을 위한 ‘사이버사찰 긴급행동’>을 출범했다. 이들은 사이버 사찰의 직접적인 피해자 2,368여 명을 비롯해 훨씬 더 많은 사람을 대중적인 저항의 주체로 묶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사이버 사찰을 막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데 시간이 필요하므로 무분별한 사이버 사찰을 시도하는 사법 기관을 압박하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

 

“이번 사건의 경우 결과 통보 늦고, 내용도 불충분하지만 9월 18일 압수수색이 끝났다는 통지를 받았다. 그런데 2,368명은 통지조차 없다. 본인이 사찰의 피해자인지도 모른다. 누가 봐도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법에서는 제3자이기 때문에 다음카카오·검찰, 누구도 통지의 의무가 없다. 또한, 압수수색 과정에서 당사자 참여 권리의 문제가 있다. 다른 압수수색의 경우 본인 혹은 법정 대리인의 참여가 보장된다. 그런데 이번 경우엔 당사자 참여권이 전혀 보장되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민변의 카카오톡 등 사이버 공안탄압법률대응팀과 수사기관이 사이버상에서 송·수신되는 정보, 전기 통신 내용을 사찰하거나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원칙적 금지하고, 메신저에 대한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압수수색 관행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사이버사찰금지법’ 제정을 위한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사이버 사찰 피해자에서 저항의 주체로 나서다

 

지난 12월 23일 사이버사찰 긴급행동과 피해자 24명은 국가와 다음카카오를 상대로 압수수색 통지와 수색 범위에 관한 형사소송법을 위반을 이유로 300만 원의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또, 헌법 제12조 영장주의 및 청구인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밀양, 삼성전자서비스 등 투쟁하는 주체들과 촛불 시민 등 사이버 사찰의 피해자 24명에게 소송을 권하고 법률 위임장을 받았다. 헌법소원의 경우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심판 결정과 맞물리면서 최소한의 법과 민주주의를 외면하는 헌법재판소에 판단을 묻는 것이 적절치 않은 것 같다는 주변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손해배상소송과 헌법소원으로 보상을 받으려는 것보다 더 많은 분에게 피해 실상을 알리고 감시 사회로 나가고 있는 사회 현실을 문제 뜯어고쳐야 한다는 취지가 크기 때문에 계획대로 진행하게 되었다.”

 

투쟁하는 이들 모두 저항의 주체로 나서자

 

그는 우선 1차적으로 피해 당사자들이 이번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용기를 낸 것처럼 이후엔 더욱 많은 사람이 저항행동에 함께 나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대중행동 못지않게 국가와 자본의 사이버 사찰 1순위일 수밖에 없는 활동가들에게도 당부의 말을 남겼다.

 

“저의 경우 대체로 정보 공안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카카오톡 단체 방이 많았다. 문제는 저뿐만 아니라 활동가들 모두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저도 정보 인권 활동하는 동지들을 지지, 지원하는 것에 그쳤는데 더는 그러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활동하는 사람들의 공적인 토론, 사적인 영역, 말과 글을 통제하려는 국가와 권력의 감시 문제에 있어 직접 맞서 싸우는 당사자들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9월 필자도 사이버 망명 행렬에 동참했던 기억이 난다. 다들 약속이나 한 듯 카카오톡 단체방 사람들이 한꺼번에 탈출했다, 그 날 난 차마 문득 다시 꺼내보고 싶은 메시지들과 사진이 아쉬워 몇 날 며칠을 홀로 그 방을 지켰다. 또, 한편엔 내가 활동하면서 나눈 이야기들이 당당하니까 잡아가려면 잡아가 봐라! 그런 심정이었다. 그러나 소극적인 저항(?)은 며칠을 버티지 못했고 결국, 텔레그램으로 망명했다. 어느덧 이 생활도 익숙해져서 망명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즈음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저항을 시작한 그를 만났다. 이 싸움이 더욱 더 큰 사회적 저항의 물결로 가득해지길 희망하며 건투를 빈다!

[현장의 목소리] 2014년 ‘현장의 목소리’ 그 이후 / 2015.1

2014년 ‘현장의 목소리’ 그 이후




재현 선전위원



2개월 전. 새해 첫 현장의 목소리는 2014년 한 해 우리가 만났던 현장들 가운데 승리의 소식을 모아 전하고자 방향을 정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획 의도대로 진행할 수 없었다. 지금 이 시간까지도 싸움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중에는 자본 스스로 노동조합과, 더 나아가 전 사회적으로 맺은 합의를 어기면서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곳이 있다. 그래서 2015년 첫 ‘현장의 목소리’는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자본에 맞서 싸우고 있는 현장을 재조명하기로 했다.



○ 금속노조 레이테크코리아분회

지난해 8월 난생 처음 노동조합을 경험하고 파업 투쟁을 벌이던 레이테크코리아 분회 조합원을 만났다. 레이테크코리아는 대표적으로 라벨(견출지)을 만드는 회사로 300만 불 수출을 기록할 정도로 시장 경쟁력이 있는 회사였다. 그러나 회사의 성장 이면엔 작업장과 탈의실에 있는 CCTV 감시와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했던 노동자들이 있었다. 


우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회사로부터 시간제 비정규직 전환을 강요받고, 더는 참을 수 없었던 70여 명의 노동자들은 2013년 5월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온갖 회유와 협박에도 투쟁은 끈질기게 이어졌고, 그 결과 지난 10월 24일 노사 간 쟁점이었던 작업장 이전을 다시 합의했다. 또한, 조합원 전원 서울 발령, 노사공동답사로 서울 공장 부지를 확정, 최저임금에서 기본급 2만 원을 인상하는 등 임·단협을 체결했고 길고 길었던 136일 파업을 종료했다. 


레이테크코리아, 노동조합과의 약속을 저버리다


그런데 또다시 회사의 태도가 돌변했다. 노동조합과 협의 없이 서울 신당동에 창문 하나 없는 곳에 작업장을 마련했다. 또한, 조합원에게 이른바 ‘순응 서약서’를 강요하였다. 정년연장에 관한 합의를 어기면서까지 조합원 3명을 퇴직금 10만 원 백화점 상품권 하나와 함께 12월 말 강제 퇴사시켰다. 현재 조합원들은 환풍 시설이 전혀 없는 현장에서 나는 본드 냄새로 호흡기 질환과 구토, 어지럼증을 참아가며 일한다. 또한, 휴게실과 탈의실조차 없어 회사 복도에 앉아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회사가 지난 10월 자신들의 비인간적인 행태가 알려지고 사회적 비난 여론이 일면서 국정조사 대상 사업장으로 선정되는 것을 막고자 우선, 노동조합과 합의를 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또한 회사가 ‘순응 서약서’ 요구를 통해 23명의 조합원을 어떻게든 자발적으로 내보내고 시간제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시간제 일자리 정책의 민낯을 보여주는 레이테크코리아 투쟁


지난 12월 10일 금속노조 서울지부와 노동조합은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노·사 합의를 무시하고 몰상식한 노조 탄압을 벌이는 회사를 규탄하고, 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출처 : 레이테크코리아분회 트위터


난생처음 노동조합을 만들고 힘든 투쟁을 벌인 끝에 현장으로 돌아간 조합원들이 회사가 스스로 했던 약속을 이행할 때까지 지치지 않고 마지막 힘을 다할 수 있길 희망한다.


○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1,895일 투쟁 끝에 노·사가 사회적 합의를 맺으며 불법파견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쟁취했던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이 다시 길거리에 나섰다. 지난 해 10월 인터뷰 당시 기륭전자분회는 사회적 합의를 어기고 일터를 버리면서까지 야반도주한 최동열 회장을 사기죄로 구속하는 고발 운동을 마치고, 그 다음 사회적 투쟁을 고민하는 시기였다. 


900만 장그래의 목소리를 알리러 나선 기륭전자분회


지난 12월 박근혜 정부는 기간제 노동자의 고용 기간 제한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국회 또한 비정규직 양산을 넘어 정리해고제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 모습을 본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은 기륭 자본의 문제를 넘어 이 사회 900만 비정규직의 목소리를 알려내고 비정규직·정리해고제 철폐를 위한 사회적 투쟁을 시작하기로 했다. 


출처 : 참세상


첫 시작으로 12월 22일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은 10년의 투쟁으로 어디 성한 곳 하나 없는 몸을 이끌고 오체투지 행진에 나섰다. 많은 사람이 건강을 염려하며 만류하기도 했지만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은 이번 오체투지 행진은 자신과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몸을 더욱 낮추고 함께하겠다는 결의를 밝히는 행진이기 때문에 선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오체투지 행진에는 교직원공제회 콜센터, 학교비정규직, LG U플러스, 씨앤엠 등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인권·문화예술·종교계를 비롯해 시민사회가 함께 연대했다. 


비정규직·정리해고 철폐를 염원하는 노동자들


지난 12월 26일을 끝으로 1차 오체투지 행진은 1월 7일 쌍용차 해고자 전원복직, 정리해고 철폐를 위한 2차 오체투지 행진으로 이어졌다. 2차 행진에는 기륭전자분회를 비롯해 스타케미칼, 콜트-콜텍 등 정리해고에 맞선 투쟁을 하는 노동자들과 쌍용차 노동자들이 함께 나섰다. 2015년 비정규직·정리해고제 철폐를 위해 물꼬를 트고자 하는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의 싸움에 뜨거운 연대의 마음을 전한다. 


2015년 한 해도 비록 큰 힘은 되지 못할지라도, 전국 곳곳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잊지 않고 ‘현장의 목소리’로 알려내는데 함께하겠습니다.

[현장의 목소리] 일하다 죽었는데 자살이라뇨?? / 2014.12

일하다 죽었는데 자살이라뇨?

현대중공업 산재사망 노동자 故 정범식 씨 이야기



재현 선전위원



지난 2014년 4월 26일 11시경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블라스팅[각주:1] 작업을 하던 사내 하청 노동자 정범식 씨가 에어호스에 목이 감긴 채 3m 난간에 매달려 사망했다. 이를 발견한 동료들은 에어호스를 끊고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사고 직후 현장에선 故 정범식 씨가 자살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마침 오후 3시경엔 수사를 맡은 울산 동부 경찰서는 부검의 소견으로 봤을 때 故 정범식 씨의 사인은 경부압박질식사에 의한 자살로 추정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현대중공업은 울산 동부 경찰서의 말을 빌려 언론을 통해 故 정범식 씨가 자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달랐다. 부검은 저녁 6시가 돼서야 이뤄졌기 때문이다. 


울산지역 노동자 건강권 대책위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故 정범식 씨의 부인 김희정 씨는 경찰과 회사, 언론 누구의 말도 믿을 수 없었다. 그렇게 9개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진실은 안개 속이다.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일까?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김희정 씨를 만나 자초지종을 들어보기로 하였다.



조선소가 그렇게 위험한 곳인지 몰랐다


“오전 11시쯤 동료에게 전화가 왔다. 남편이 많이 다쳤으니까 울산으로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편이 죽을 만큼 심각한지 몰랐다. 그저 심하게 다친 줄만 알았다. 그러다 성남에서 내려가는 길이었는데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병원에 왔을 때 이미 숨이 멎어있었고, 심폐소생술을 계속 해도 차도가 없으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故 정범식 씨는 현대 미포 조선에서 10년, 목포에서 3개월, 그리고 15일 전 다시 현대 중공업에서 일을 시작한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그렇다 보니 김희정 씨는 사고 전까지만 해도 현대중공업이 산재사망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곳인지도 몰랐다고 했다. 


“조선소 일이 힘들다는 건 알았는데 이렇게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지는 몰랐다. 주말부부로 멀리 떨어져 지내다 보니 제가 괜한 걱정 할까 싶어 집에 힘든 내색 한번 잘 비추지 않는 성격이었다.”



회사와 경찰 모두 신뢰할 수 없었다


“회사도, 경찰도 남편이 자살했다고 하는데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사고가 있고 하루는 장례식장에 서문기업(하청업체) 사장이 왔었다. 그리고 무릎을 꿇더니 뒷일은 내가 책임질 테니 빨리 장례를 치르자고 했다. 남편을 언제까지 저렇게 둘 수 없어서 사장 뜻대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장례 이후에 지금까지 단 한 번 연락이 없었다.”


6월 3일 울산 동부 경찰서에서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결과는 역시 경부압박질식에 따른 자살이었다. 근거로 1) 사고 현장이 故 정범식 씨 작업장과 떨어져 있고 2) 에어호스에 목이 감겼는데 저항한 흔적이 없고 3) 3달 전 부부가 다퉜던 카카오톡 메시지가 있고 4) 신용카드와 통신비를 연체했고 5) 4개월 전 아내에 대한 의심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았던 내역을 꼽았다.


울산 동부 경찰서의 수사결과는 김희정 씨와 지역 동지들의 분노를 키웠다. 현장 검증에선 에어호스에 결함이 있던 정황이 밝혀졌다. 또한, 故 정범식 씨 사진을 보면 아래턱에서 왼쪽 가슴, 허벅지에 쇳가루가 박혀있다. 특수 보호구를 쓰고 일했는데도 불구하고 눈에도 쇳가루가 묻었다. 종합해보면 에어호스 결함으로 온몸에 쇳가루가 노출돼 시야 확보가 되지 않았던 故 정범식 씨가 난간에 매달렸을 가능성이 높다.


더군다나 故 정범식 씨 작업장은 항상 쇳가루가 뿜어져 나오는 곳이다. 벌건 대낮에도 손전등이 없인 한 치 앞도 이동이 어렵다. 사고가 일어나기 너무나 쉬운 환경에 있는 노동자가 사망했는데 산재 가능성은 배제하고, 故 정범식 씨를 둘러싼 가족관계, 채무관계 등 개인적인 정황을 근거로 수사를 종결한 울산 동부 경찰서의 발표는 가히 충격적이다.


“부부라면 안 싸울 수 없지 않나. 주말 부부다 보니까 문자를 주고받다 보면 싸울 수도 있고, 또 살다 보면 카드 값이나 휴대폰 요금을 미납할 때도 있는데 그런 것을 이유로 남편이 자살했다는 데 도저히 이해가 안됐다.”


김희정 씨는 경찰 조사 발표 후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우기로 결심했다. 


“처음 남편이 죽었을 때부터 울산산추련, 노조에서 도움을 주려고 옆에 계셨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장례를 치렀다. 그 결과가 이거였다. 그러다 경찰 발표 이후에 울산저널 용석록 기자에게 전화가 왔다. 자기가 봐도 이건 자살이 아니니 지역 활동가들한테 도움을 청해보라고. 그래서 지역 분들께 다시 연락했고 싸우기로 마음먹었다.”



남편의 명예를 찾아주고 싶었다


“큰 애가 고1인데 그 밝던 아이가 아빠가 죽었다는 충격으로 7개월이 지나도록 아빠 영정사진을 못 쳐다본다. 집 밖으로도 안 나가서 학교도 못 가고 있다. 저도 싸우기 전에는 집안에서 매일 우는 게 다였다. 그래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아빠가 최고라 여기던 애를 위해서, 그리고 남편의 잃어버린 명예를 찾아주겠다는 결심으로 나서게 되었다.”



출처 :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공장과 경찰 앞 1인 시위를 시작으로 기자회견도 하면서 故 정범식 씨의 억울한 죽음을 알렸다. 그 결과 지난 10월 17일엔 울산 지방 경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故 정범식 씨 사건이 다뤄졌다. 당시 울산 지방 경찰청장은 부실 조사를 인정하며 재조사를 약속했다. 이후 싸움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최근엔 수사 결과에 대해 의문을 갖는 법의학자, 정신과 전문의 등 각계각층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담은 울산 MBC시사프로그램 ‘돌직구 40’이 방송되기도 했다. 


“아까 1인 시위하는 거 봐서 알겠지만, 다들 새벽부터 바쁘게 출근하지 않나. 인사를 하고 싶어도 참 어려운데. 그중에 그래도 한두 분은 수고하십니다! 말 한마디 건네거나, 손 한번 잡아주는 분들이 있다. 그분들이 힘이 많이 된다.”


현대 중공업은 올해만 벌써 9명의 하청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했다. 계열사 전체로 보면 12명이 산재로 사망했다.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현미향 활동가는 상황이 이쯤 되니 회사 내 안전 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여론과 연이은 산재사망 사고에 관해 부담을 느낀 현대중공업이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에 故 정범식 씨가 자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중공업 입장에선 때마침 이번 사고엔 목격자가 없었고, 손발이 척척 맞는 울산 동부 경찰서가 옆에서 큰 몫을 하면서 시나리오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번에 취재하면서 사내 하청 노동자 죽음의 행렬에도 굳건한 현대 재벌공화국의 울타리 안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故 정범식 씨와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쯤으로 치부하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하는 박근혜 정권에 맞선 세월호 유가족의 모습이 겹쳐 마음이 더욱 아팠다.


그래도 여전히 희망을 발견한다. 한 사람의 죽음이라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들.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진실 규명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싸우는 유가족들과 이들 옆에서 함께하는 노동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의 애씀이 있기에 그렇다. 이러한 노력과 마음들이 모여 현대 재벌과 조선소 울타리를 넘어 일하는 모든 이들의 죽음의 행렬이 멈추는 그날을 꿈꾼다. 

  1. 금속을 매끄럽게 하고 이물질을 제거하여, 도장을 쉽게 하고 선박 수명을 늘리기 위해 선박 표면에 쇳가루를 쏘는 작업 [본문으로]

[현장의 목소리] 이런 사람이 병원 운영해도 되나요? / 2014.11

이런 사람이 병원 운영해도 되나요?

 


재현 선전위원

 

 

충북 청주노인전문요양병원에서는 고령의 여성 간병사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220일이 넘는 파업과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공공예산 예산 157억 원을 들여 만든 청주노인전문병원을 청주시로부터 위탁 운영하고 있는 씨앤씨병원(원장 한수환)이 각종 불법과 노동탄압을 자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 10월 노동조합을 만들고 병원 측에 교섭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병원은 조합원을 부당해고 하였다. 3월엔 인력충원 없이 3교대로 전환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밀어 붙여 3월 29일 파업에 돌입했다. 병원 측은 5월 1일 약 2억 원의 연봉을 약속하며 악질적인 노조파괴 전문브로커를 행정부원장을 영입하면서, 사태를 파국으로 끌고 갔다. 이 브로커는 직원 동의 없이 직원 정년을 만 60세로 하는 취업규칙을 만들어, 조합원 11명을 문자 통보로 해고하였다. 이 해고가 부당하므로 원직 복직시키라는 충북지방노동위원회의 판정이 있었지만, 병원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10월 현재 전체 해고자만 16명, 부당정직 및 부당전보를 받은 조합원만 9명이다.

 

병원 측은 근무체계를 바꾸려면 시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조례를 어겨가면서 3교대에서 2교대로 근무형태 변경을 추진했다. 그 결과 180여 병상을 보유한 병원의 간병 인력이 46명에 불과해, 간병사 1인이 3개 병실 24명을 돌보게 되었다. 병원 측은 부족한 인력을 채우기 위해 언어도 통하지 않는 중국인 도급 간병사 인력을 투입했고, 별도의 도급 관리자가 관리하고 있다. 이들은 노조파괴 전문브로커와 함께 전국의 병원을 돌아다니며 파업을 무력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 결과 환자들의 안전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 되자 나이 육십을 바라보는 권옥자 분회장은 지난 10월 29일까지 24일간 단식농성을 하였다.

 

한편, 지난 10월 20일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 한수환 병원장이 출석했고, 다음날 병원 측은 노조와 교섭에 임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것일까? 병원 측의 전향적인 태도에 조합의 입장은 무엇이고, 이후 투쟁에 대한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청주 시청 앞 천막 농성장을 찾았다. (인터뷰 당시 권옥자 분회장님은 단식 22일차였다)

 

 

교섭은 무슨 교섭!

 

“전에도 교섭하자고 하면서 조합원을 대기 발령시켰다. 단식도 그 이후에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면서 시작했다. 지금 여기 농성장에 부당 해고, 징계 받은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 현장에 우선 복귀시켜야 교섭에 나갈 수 있다. 220일 넘게 파업하는데 지금까지도 자기는 의사고 너희는 간병사기 때문에 우리는 동등한 관계일 수 없고, 그래서 교섭도 내가 하면 노조가 따라서 하는 거고 내가 (교섭에) 나가주면 고맙게 생각하라는 태도에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청주시는 뭘 하고 있었나?

 

분쟁이 막 시작되었던 5월, 청주시장은 지방선거로 인해 공백이 있던 시기였다. 문제는 지방 선거 이후에도 지금의 사태는 노사관계 문제라며 수수방관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결과 20건의 위법사항과 임금 체불액이 8억 9천 3백만 원인 것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이런 청주시의 태도는 한수환 병원장의 노조탄압에 날개를 달아줬다.

 

 

환자는 CCTV로 보면 되잖아!

 

한수환 병원장은 지난 3월 3교대제 시행에 이어 6월 2교대제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우리 병원은 다른 병원들과 달리 공공병원이라 법에 딱 맞게 1인 1실로 지어졌다. 심지어 병실엔 창문도 없다. 그래서 환자들이 방치되기 쉬운 구조인데 회사는 인력충원도 없이 교대제를 바꾸면서 뻔뻔하게 환자를 CCTV로 보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게 있으면 사고가 나도 모니터링을 할 수 있으니까 오히려 좋게 바뀌는 거라고 말했다. 아니 환자들이 사고 나기 전에 예방해야지 사고가 나고 어디가 다치고 부러진걸 아는 게 무슨 소용인가

 

 

안하무인 파업파괴자들

 

6월 2교대제 전환 이후 부족한 인력을 채우기 위해 현장에 들어온 도급 간병사들은 병원에 상주하면서 상전 노릇을 하고 있다.

 

“이 사람들 알고 보니까 전국 돌아다니면서 파업 현장에 다니는 도급 간병사들이다. 얼마 전엔 자기들 입으로 경기도에 있는 병원에 있다 왔다고 하더라. 도급 간병사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 한 번은 환자가 기저귀 갈아달라고 얘기하니까 등을 때린 일도 있었고, 환자들이 먹지도 않는 약을 먹이려고 해서 글씨를 볼 줄 아는 환자들이 왜 나한테 내가 먹지도 않는 약을 먹이느냐고 하니까 벽에 밀치고 위협하는 일도 있었다.”

 

권옥자 분회장은 노조 파괴 전문 브로커를 병원 직원으로 데려와서 운영하는 한수환 병원장이 무슨 의사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이런 사람은 의사 면허증도 박탈시켜야 하는 거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체 우리를 왜 해고 하는 거냐?


“파업이 길어지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우린 요구사항도 없다. 4년에 한 번 위탁회사 바뀔 때 안 짤리고 계속 일하게 해달라는 거 그거 하나다. 임금을 올려달라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벌써 몇 명을 자른 거냐.” “가족들도 간병으로 지쳐서 마지막에 찾아오는 곳이 요양병원이라는 특성도 있고 간병사들의 평균 연령이 높아 노동 강도가 더욱 강할 수밖에 없는 게 요양병원이다. 그래서 어렵게 노동조합 만들고 우리도 힘들다는 얘기를 이제 조금했는데 그 대가가 1년 가까운 시간 길바닥 농성이다. 우리 문제를 해결 못 하면 다른 요양보호사들이 목소리 내기가 더 어려워질 텐데 큰일이다.”

 

 

 

▲ 지난 10월 6일 청주시노인전문병원 정상화를 위해 권옥자 분회장이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출처 : 미디어 충청)

 

인터뷰 이후 10월 31일과 11월 1일 이틀간 정부기관의 중재로 노사 교섭이 있었으나 최종 결렬됐다. 노조는 근무형태 변경과 관련해서 전문기관 컨설팅 결과를 바탕으로 안을 마련해보자고 양보했으나 병원 측이 인력 충원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또한, 취업규칙을 이유로 들면서 올해 말 60세가 되는 권옥자 분회장을 비롯해 정년 60세가 넘는 노동자들을 촉탁직으로 계약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청주노인전문병원 노동자들의 투쟁은 공공요양병원이 민간위탁으로 맡겨졌을 때 원활한 의료 서비스 제공과 안전하고 투명한 운영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 투쟁이다. 생애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병원에 오는 노인들의 안녕한 삶을 보장해야 하는 공공요양병원을 민간에 위탁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부의 제도 개선이 시급한 때이다. 파업을 끝내면 조합원들하고 손잡고 야유회를 가고 싶다는 분회장님의 작은 소망이 겨울이 오기 전에 하루빨리 이뤄질 수 있도록 청주노인전문병원 노동조합의 투쟁에 많은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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