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에세이] 시간의 두 결: 시간 적대에 대하여 /2016.7

시간의 두 결: 시간 적대에 대하여

 


강수돌 노동시간센터 회원, 고려대 세종캠퍼스 경영학부 교수

 


하루 24시간. 일 년 365.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공평한 시간이다. 오늘날 우리는 평균 80년 산다. 물론 최근 서울 지하철 스크린도어 노동자나 공고 실습생처럼 10대에 억울하게 죽어가는 이도 많고, 90~100세를 넘기며 장수하는 노인도 있다. 그러나 살아 있는 모든 이에게 하루 24시간은 동일하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시간이 다 같은가? 다르다. 시간의 결이 다르다.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에는 크게 두 가지 결이 있다. 하나는 돈의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삶의 시간이다.

 

시간은 돈이라는 규율 

시간은 돈이다(Time is money)!” 벤자민 프랭클린(1706~1790)의 말이다. 그는 1776년 미국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이다. 그는 정치가이자 발명가이기도 했으며 사상가였다. 프랭클린의 사상은 미국 건국 초기부터 오늘날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실용주의적으로 살아가게 영향을 주었다. 그는 어느 젊은 상인에게 주는 충고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시간이 돈임을 명심하라. 하루 종일 일해서 10실링을 벌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만일 그가 한 나절 동안 밖에서 놀거나 그냥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하자. 그러면서 설사 그가 6펜스만 썼다 하더라도 그는 그것만이 비용의 전부라 생각해선 안 된다. 왜냐하면 그는 그 외도 5실링을 낭비하거나 포기한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1848년에 끌로드 F. 바스티아의 에세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 보다 발전 되었고, 마침내 1914년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폰 뷔저(von Wieser)에 의해 기회비용 (opportunity cost)’ 개념으로 각인되었다. 시간이 돈이므로, 돈 버는 일에 시간을 쓰지 않고 엉뚱한일만 하면 그 엉뚱한 일을 하느라 든 직접비용 (explicit costs)만이 아니라 원래 그 시간에 벌어야할 돈까지 벌지 못한 간접비용(implicit costs)이니, 이중의 손해(기회비용)를 본 셈이다. 이런 논리다. 어디, 많이 듣던 소리 아닌가? 그렇다. 오늘날 수 많은 우리 노동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돈의 시간이 아닌 삶의 시간으로 

그러나 또 다른 시간의 결도 있다. 돈의 시간이 아니라 삶의 시간이다. 이것을 잘 표현하는 소설이 있는데, 독일 작가 미햐엘 엔데가 1973년에 쓴 <모모>.


꼬마 모모는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재주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재주였다. 그게 무슨 특별한 재주람. 남의 말을 듣는 건 누구나 할수 있지. 이렇게 생각하는 독자도 많으리라. 하지만 그 생각은 틀린 것이다. 진정으로 귀를 기울여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줄 줄 아는 사람은 아무 드물다. 더욱이 모모만큼 남의 말을 잘 들어 줄 줄 아는 사람도 없었다. 모모는 어리석은 사람이 갑자기 아주 사려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끔 귀 기울여 들을 줄 알았다. 상대방이 그런 생각을 하게끔 무슨 말이나 질문을 해서가 아니었다. 모모는 가만히 앉아서 따뜻한 관심을 갖고 온 마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 모모는 이 세상 모든 것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 고양이, 귀뚜라미, 두꺼비, 심지어는 빗줄기와 나뭇가지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도 귀를 기울였다. 그러면 그들은 각각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모모에게 이야기를 했다.”

 

주인공 모모는 시간을 돈으로 보지 않았다. 사람이나 자연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생명의 흐름에 참여하는 것이다. 여기서 시간은 생명의 흐름, 한마디로 삶이다. 현재 우리는 여기서 존재하며 살고() 있다. 존재한다는 게 무엇인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연속적인 시간 속에 생명의 에너지로 함께 흘러가는 것이다. 느끼고 생각하고 관계하고 행동하는 그 모든 에너지의 흐름 속에 존재할 때 비로소 우리는 사회적 존재가 되고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

 

시간을 재기 위해서 달력과 시계가 있지만, 그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사실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한 시간은 한없이 계속되는 영겁과 같을 수고 있고, 한 순간의 찰나와 같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한 시간 동안 우리가 무슨 일을 겪는가에 달려 있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니까.”

 

<모모>에 나오는 다른 등장인물을 이야기를 들어보자. 모모의 이웃인 청소하는 노인 베포는 천천히, 한 호흡씩 즐기며 나아가는 삶의 방식에 대해 이야기 했다.

 

얘 모모야. 때론 우리 앞에 아주 긴 도로가 있어. 너무 길어.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 같아. 이런 생각이 들지. 그러면 서두르게 되지. 그리고 점점 더 빨리 서두르는 거야. 허리를 펴고 앞을 보면 조금도 줄어들지 않을 것 같지. 그러면 더욱 긴장되고 불안한 거야. 나중에는 숨이 탁탁 막혀서 더 이상 비질을 할 수가 없어. 앞에는 여전히 길이 아득하고 말이야.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야. 한꺼번에 도로 전체를 생각해서는 안 돼. 알겠니? 다음에 딛게될 걸음, 다음에 쉬게 될 호흡, 다음에 하게 될 비질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계속해서 바로 다음 일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그러면 일을 하는 게 즐겁지. 그게 중요한 거야.”

 

이 모든 구절은 모모의 말, 베포의 말이기도 하지만, 바로 작가 M. 엔데이 현대인들에게 들려주고픈 말일 것이다. 그는 아무리 긴 시간, 많은 일이 쌓여 있어도, 한 걸음씩 한 호흡씩 즐기면서 천천히 해나가면 어느 새 모두 할 수 있다고 했다. 시간의 흐름속에서도 특히 현재에 집중해 즐기는 것이다. 여기서는 효율이 아니라 호흡이 중요하다. 효율이 돈이라면 호흡은 삶이다. 효율이 죽음이라면 호흡은 생명인 것이다.

 

<모모>에서도 효율과 이윤의 시간을 따르는 이가 등장한다. 바로 시간저축 은행에서 일하는 회색신사들이 그렇다. 그들은 죽음을 뜻하는 효율이 생명을 뜻하는 호흡을 망가뜨리는 장면의 극치를 보여준다.


시간을 어떻게 아끼셔야 하는지는 잘 아시잖습니까! 예컨대 일을 더 빨리 하시고 불필요한 부분은 모두 생략하세요. 지금까지 손님 한 명당 30분이 걸렸다면 이제 15분으로 줄이세요. 시간 낭비를 가져오는 잡담은 피하세요. 나이 드신 어머니 곁에서 보내는 시간을 절반으로 단축할 수도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어머니를, 좋지만 값이 싼 양로원에 보내는 겁니다. 그러면 어머니를 돌볼 필요가 없으니까 고스란히 한 시간을 아낄 수 있지요.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앵무새는 내다 버리세요! 다리아 양을 만나야 한다면 두 주에 한 번만 찾아가세요! 15분 간의 저녁 명상은 집어 치우세요. 무엇보다 노래를 하고, 책을 읽고, 소위 친구들을 만나느라고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얘기가 나온 김에 한 가지 충고하는데, 잘 맞는 커다란 시계를 하나 이발소에 걸어 놓으세요. 견습생이 일을 잘 하고 있나 감시할 수 있게 말이지요.”

 

이 모든 충고는 다시 18세기 B. 프랭클린의 말로 돌아간다. “시간은 바로 돈이니, 시간 낭비는 죄악이다!”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말라!” 그리하여, 무노동 무임금. 같은 맥락에서 파업 시 임금 지불은 불법이다. 이제, 일하는 시간, 돈 버는 시간만이 바르게 사용된 시간이다. 일하지 않는 시간, 공부하지 않은 시간, 돈 벌지 못하는 시간은 인생 낭비다. 오죽하면 고등학교 교실에 이런 급훈이 나왔겠는가? “네가 잠든 사이 경쟁자의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강남엔 내 집 마련, 주차장엔 페라리.” 이런식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미래의 돈(성공)을 위해 현재의 삶(행복)을 포기하게 만든다.

 

돈의 시간에 되어 있지 않은가?

오늘날 우리 삶은 이 두 결의 시간이 대립한다. 시간 적대다. 생명의 논리와 자본의 논리가 대립한다. 물론, 생명의 논리가 자본의 논리에 저항을 하기도 하지만 자본의 논리는 권력의 힘을 업고 생명의 논리를 무참히 박살내려 한다. 이제, 계급 적대는 시간 적대로 현상한다.

 

자본은 시간을 압축하고 밀도를 높여 이윤율을 높이려 발버둥 친다. 하지만 자본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무덤을 파고있다. 세계시장이 급속도로 포화 상태로 치달았고, 원료나 에너지도 급속히 고갈된다. 실업자와 비정규직을 대량 생산하면서 구매력을 급속히 떨어뜨렸다. 은행 이자가 제로로 치닫고 재벌들이 수백 조의 사내유보금을 쌓아두는 배경이다. 효율(축적)의 논리가 자가당착이 되어 호흡(흐름)을 방해한다. 하지만 자본은 자성하지 않고, 오히려 허튼 소리만 무한 반복한다. “조금만 더 일하면 선진국 된다. 조금만 더 !”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덤 앞에 선 좀비 시스템을 구덩이 속으로 살짝 떠미는 일이다.

 

비록 생명의 논리가 자본의 논리를 압도적으로 굴복시킬 힘은 없지만, 생명의 논리가 자본의 논리에 자발적 복종을 하지 않고 스스로 꿈틀거리며 더불어 어깨를 거는 한, 좀비가 되어버린 시스템을 구덩이로 떠밀어 넣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제 생명의 시간이 빛을 발할 때가 다가온다. 우리 자신이 생명의 철학, 삶의 철학으로 무장하는 만큼 가까워지는 법!

 

최근 UCLA 앤더슨 경영대학원이 미국 사람 1,226명을 대상으로 질문을 던졌다. “여가 없이 돈을 벌 것인가, 아니면 돈을 포기하고 여가를 선택할 것인가?” 이것이 문제였다. 그 중 60.9%는 돈을 선택 했고 30.1%는 시간을 선택했다. 이들의 삶의 만족도를 분석한 결과, 돈을 선택한 이들보다 시간을 선택한 이들이 행복했다. 돈을 선택한 이들이 많이 버는 것에 집중한다면, 시간을 선택한 이들은 어떻게 쓸 것인가에 집중했다. 그런데, 돈이 충분히 있어도 쉬지 못하고 놀지 못하는 이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결론은, ‘중독이 문제다. 돈 중독, 일중독, 출세중독, 권력중독이 그것이다. ‘충분함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중독은 왜 생기는가? 내면의 공허함 때문이다. 속이 허하니 외부로부터 뭔가 채우려는 것이 모든 중독의 핵심이다. 내면의 느낌으로 표현되는 인간적 필요욕구’, 즉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모르거나 억압하고 있다는 말이다.

 

생명의 시간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이제 우리는 우리의 공허한 내면을 삶의 시간으로, 생명의 시간으로 채워나가야 한다. 내면의 느낌과 필요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존중하고 경청하고 신뢰하면 된다. ‘자기 해방이다. 그러나 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 우리의 오래된 마음의 습관이 큰 장벽이 된다. 일단 뒤틀린 현재의 모습을 직시하고 스스로 자유로워지는 것(자기 해방)이 출발점이요, 그 다음은 생명의 시간이 옳다고 생각하는 이들부터 먼저 생명의 시간을 온전히 음미하고 향유하는 연습을 함께 해나가야 한다(상호연대). 나아가, 그렇게 삶의 시간을 알차게 누리는 실천을 하면서도, 우리 사회 구성원 누구나 삶의 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끔 사회 구조를 바꿔내야 한다(사회 해방). 사회적 실천과 운동, 이것이 절실하다. 구체적으로, 노동시간 단축과 여가시간 증대, 삶의 시간 계획과 신바람 나는 프로그램 만들기 등을 가능케 할 노동 및 경제 시스템,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하는 복지 시스템, 점수 따기 식 공부가 아닌 꿈과 개성을 살리는 공부를 돕는 교육 시스템 등을 패키지로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한 사회운동이 성장하는 만큼 자본의 시간도 쉬이 사라질 것이고 좀비 같은 시스템을 땅 속에 파묻는 일도 쉬이 가능 할 것이다. 자기 해방에서 상호 연대로, 또 사회 해방으로 진전해야 한다. 바로 그 길 위에서, 시간은 더 이상 돈이 아니라 삶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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