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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너무 흔한 산재은폐와 직업병의 은폐 /2015.10 너무 흔한 산재은폐와 직업병의 은폐 조성식 회원,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얼마 전 특수검진 시, 한 노동자에게 직업병에 해당하는 D1 판정을 하였고, 얼마 후 그 사업장의 사업주에게 항의와 함께 판정을 바꾸어 달라는 부탁을 들었다. 그 사업장은 자동차 휠을 만드는 사업장의 사내하청 회사였다. 작업 중 소음 노출 수준이 높고, 소음으로 인한 직업성 난청도 적지 않게 발생하는 사업장이었다. D1 판정을 한 노동자의 경우, 한쪽 귀는 소음 노출로 인해 생기는 감각신경성 난청과 중이염으로 인한 전음성 난청이 동반된 혼합성 난청으로 직업성 소음 노출로 인한 소음성 난청이 존재하였기에 직업성 질환으로 판정을 내렸고, 다른 쪽 귀는 '소음성 난청 주의'에 해당하는 C1 판정을 하였다. 하지만 사업주는 이 노동자가 중이염의..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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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너무 흔한 산재은폐와 직업병의 은폐 /2015.10

너무 흔한 산재은폐와 직업병의 은폐


조성식 회원,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얼마 전 특수검진 시, 한 노동자에게 직업병에 해당하는 D1 판정을 하였고, 얼마 후 그 사업장의 사업주에게 항의와 함께 판정을 바꾸어 달라는 부탁을 들었다. 그 사업장은 자동차 휠을 만드는 사업장의 사내하청 회사였다. 작업 중 소음 노출 수준이 높고, 소음으로 인한 직업성 난청도 적지 않게 발생하는 사업장이었다. D1 판정을 한 노동자의 경우, 한쪽 귀는 소음 노출로 인해 생기는 감각신경성 난청과 중이염으로 인한 전음성 난청이 동반된 혼합성 난청으로 직업성 소음 노출로 인한 소음성 난청이 존재하였기에 직업성 질환으로 판정을 내렸고, 다른 쪽 귀는 '소음성 난청 주의'에 해당하는 C1 판정을 하였다. 하지만 사업주는 이 노동자가 중이염의 병력 때문에 소음이 난청이 아니니 일반질병(D2) 판정으로 내려달라며 항의를 동반한 부탁 전화를 한 것이었다.


현재 특검 제도는 직업병 발견의 측면에서 그리 잘 작동하고 있는 제도는 아니라고 판단된다. 현재의 특검 제도가 진폐증과 소음성 난청의 조기 발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도 하고, 직업성 질환의 경우 잠복기가 긴 질환이 많은데 이를 적절한 검사로 찾아내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또한, 현재의 검사 항목이 부실하거나 부족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의 2013년도 근로자 건강진단 실시결과를 보면, 특수검진 후 7,804명의 노동자에게 직업성 질환이 발견되었고, 이중 소음성 난청이 7,388명, 진폐 관련성 질환이 162명이었다. 이 두 질환의 비율은 발견된 전체 직업성 질환의 95%를 넘어선다. 이처럼 직업성 질환은 특수 검진을 하더라도 소음성 난청과 진폐증 이외에는 잘 발견되는 않는 것이 현실이다.


▲  2013년도 특수검진결과에서의 직업성 질환의 질환별 유소견자 수 (%)


또 한편 특수검진은 사업주의 부담으로 검사가 진행되고, 대다수 특수검진기관은 사립의료기관이다. 따라서 특수검진기관에서 일하는 의사들은 전문가로서 성심껏 직업병을 발견해야 하기도 하지만, 비용을 지급하는 사업주의 눈치를 안 보기는 어려운 것이 또한 현실이다. 위와 같이 사업주가 항의 섞인 부탁 전화를 한 건 검진비를 지급한다는 갑의 위치를 이용해서 압박하려는 의도로 판단된다. (하지만 필자는 판정을 바꾸지는 않았다.) 이 회사의 경우 원청회사에 노동조합이 있었고, 원청 노동조합에서도 판정번복을 원하는 것 같지는 않은 눈치였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없는 회사는 상황이 더 어렵다. 노동조합이 없는 회사는 사업주가 검진기관을 차기 연도에 쉽게 변경할 수 있으므로, 해당 검진기관에서 일하는 의사들은 이 같은 전화가 상당한 위협이 된다. 


소음성 난청의 경우는 근로자 건강 실무지침에 직업성 난청에 해당하는 데시벨까지 명시되어 있어 판정을 비교적 명확하게 내릴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대다수의 직업성 질환은 노동자의 증상에 기반을 둬 판정을 내리게 되어 직업성 질환을 놓치지 않을까 고민을 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업주가 항의를 할 경우 진단을 놓칠 수도 있겠다는 판단도 하게 된다. 이처럼 사업주의 부담으로 진행되고 사업주가 임의로 검진기관을 바꿀 수 있는 경우, 특히 노동조합이 존재하지 않거나 힘이 미약한 경우에는 더욱더 사업주의 압력으로 발견된 직업병도 은폐되기 쉬운 것이 21세기 한국의 현실인 것이다


사고로 인한 산업재해도 언론에서도 몇 차례 보도되었듯이 광범위한 은폐가 일어난다. 심지어는 응급한 상황인데도, 산재 발생을 숨기기 위해서 119구급차를 부르지 않고 응급환자를 개인 트럭으로 수송하거나, 지정병원(이 경우 산재가 아니라 공상 처리해주는 병원)의 차량을 불러서 이송하는 경우가 흔한 것이 현실이다. 이 같은 사고성 재해로 사망하는 노동자가 한해 1,000명이 넘고 이조차도 은폐된 숫자이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수많은 산재가 발생하지만 많은 수가 은폐되고 있다. 또 한편으로 많은 유해 작업과 위험작업을 원청이 아닌 하청 업체·중소 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하고 있고, 이들 노동자에서 재해와 직업성 질병이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이 같은 산재 은폐를 막고 작업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적절한 개입 수단이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산재 은폐를 막고 작업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노동조합과 같은 노동자의 조직이 중소기업과 하청사업장까지 확대·강화됨으로써 산재 은폐를 하지 못하게 감시하고 작업환경을 개선하도록 사업주를 압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산업재해 은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하며, 중대 산업재해에 대해서 사업주를 비롯한 경영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