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고용허가제 10년, 이주 노동자의 삶은 안녕했을까? (대안미디어 너머, 2014.09.20)

이 글은 경기지역 대안미디어 '너머' 에 기고한 글입니다

출처 : http://www.newsnomo.kr/news/articleView.html?idxno=228


고용허가제 10년, 이주 노동자의 삶은 안녕했을까?

재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  rotefarhe@hanmail.net

2014.09.02  13:58:06

며칠 전 이주노동자의 노동 실태를 다룬 한겨레신문 기사를 접했다. 기사를 읽어내려 가는 동안 내 눈을 의심하고 싶었다. 충남 예산에 있는 단무지 공장에 채용된 33살 캄보디아 여성 이주 노동자는 그녀의 동료들과 함께 공장 사장의 부인이 데려다 주는 전국 15개 지역의 무밭을 돌아다니며 노예처럼 팔려 다녔다. 공장 사장 부인은 매일 아침 6시면 그녀를 밭에 내려놓고 일이 끝날 때쯤 태우러 돌아왔다.일은 이주 노동자가 했는데 일당은 항상 사장 부인이 챙겼다. 이렇게 그녀는 한 달 350시간을 일하며 월급으로 단돈, 95만 원을 받았다.


밭일이 없는 날에는 사장이 운영하는 단무지 공장에서 포장 일을 했다. 그것도 아니면 ‘풀 뽑는 게 쉬는 거’라는 사장 부인의 잔소리를 들으며 공장 주변 풀을 뜯었다. 오롯이 쉬는 날은 태풍이 오는 날이었다. 동료 6명이 함께 생활하는 컨테이너 숙소에는 가스레인지가 없어서 나무로 불을 때 물을 끓여 먹었고, 화장실이 없어서 산속으로 들어가 호미로 땅을 파고 볼일을 해결했다.


고용허가제 = 노예허가제


이 끔찍한 일이 어떻게 가능한 걸까? 그 배경엔 2004년 8월 17일 ‘외국인 근로자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도입된 고용허가제가 있다. 고용에 관한 권한을 모두 고용주에게 부여한 고용허가제로 인해 이주 노동자들은 사업장 이동 시 고용주의 동의가 필요해 제한을 받고, 단기순환 원칙으로 인해 최대 10년 가까이 체류하는 동안 불안정한 지위를 가지며 정주하는 생활을 할 수 없다. 따라서 고용주는 고용허가제로 인해 노동조건 개선 없이도 안정적으로 노동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반면 이주 노동자들은 열악하고 부당한 처우를 받지만,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조건에 처해있다. 그 결과 이주 노동자는 노동3권은 물론이고 인간답게 살아갈 기본적인 권리조차 송두리째 고용주에게 종속된 채, 착취와 억압 그리고 온갖 차별과 폭력에 노출되어 노예 같은 노동을 강요당하고 있다.


고용주가 인권침해뿐 아니라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하게 하는 무소불위의 부당한 고용허가제라는 법은 ‘법치’라는 이름으로 불법의 낙인을 찍어버리는데 앞장서고 있는 정부의 또 다른 폭력일 따름이다. 21세기 판 노예제를 관리 감독해야 할 정부는 헛발질로 일관하고 있다.


이젠 퇴직금조차 받기 어려워져


지난 2014년 1월 정부는 이주노동자의 퇴직금에 해당하는 7월 28일부터 출국 만기보험금을 ‘출국 후 14일 이내’에 지급한다는 개악 안을 발표했다. 이 제도로 인해 이주 노동자들은 이제 퇴직금도 고국에 돌아가는 공항 혹은 고국에서 받아야 한다.


문제는 출국 만기보험금을 지급하는 곳이 24시간 운영되지 않기 때문에 출국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공항에서 퇴직금을 받을 수 없다. 또한, 이주 노동자들의 고국이 한국 사회처럼 은행이 흔하고, 금융 시스템이 잘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애로사항이 많을 수밖에 없고, 수수료, 환율의 차이 때문에 퇴직금을 온전하게 받기 어렵다.


결정적으로 제대로 퇴직금을 받지 못했을 때 대책이 없다. 한국에서도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고국으로 돌아간 이주 노동자에게 퇴직금을 100% 지급하는 것이 가능한가? 그나마 한국에서는 퇴직금을 못 받으면 고용노동부에 가서 진정도 넣고, 이주노동자의 기본권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에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으나 이제 그마저도 어렵게 되었다.


안전하고 건강한 삶은 꿈도 못 꿔


이렇게 취약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보니 이주 노동자들은 안전하고 건강한 삶을 꿈꾼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허리 한번 못 펴고, 자는 시간 빼고 밤낮으로 일하다 혹여 다쳐도 산재는 입도 뻥끗 못 한다. 그랬다가는 불법이라는 낙인에 찍혀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쫓겨나기 일쑤다. 이러한 삶을 바꾸기 위해 이주 노동자들이 노동 3권 보장을 외치며 노동조합을 만들었으나, 노조 합법화 관련해서 대법원에 7년째 법안이 계류 중이다.


한편, 지난해 5월 고용노동부 발표에 의하면 2012년 산재 사고로 사망한 이주 노동자는 88명, 재해자는 5,222명이었다. 그나마 통계로 확인된 재해자가 이 정도다. 더욱 심각한 것은 최근 5년간 내국인을 포함한 전체 재해자는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주 노동자의 재해는 매년 증가했다. 고용노동부는 현장에서 실효성이 있는 안전 교육과 이주 노동자의 언어로 만든 안전 보건 관련 자료를 개발하고 보급하겠다고는 하나 미봉책에 불과하다.


근본적으로 이주 노동자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우선 고용허가제를 폐기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최소한 노동3권 등 법적 권리를 온전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하면서 차별 없는 생활임금보장을 전제로 작업량과 노동 시간을 줄이고, 유해하고 위험한 작업에 노출된 노동자를 보호하고 예방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출처 : 이주노조


이주 노동자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한 때


고용허가제 10년을 경과한 지금, 기본적인 이주 노동자의 노동권, 건강권,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전면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제도 개선과 대안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이주 노동자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지지다.


사는 게 힘들고 바쁘다는 이유로, 나와 다르다고 해서 이주 노동자의 현실과 문제에 대한 관심을 제대로 갖지 못한다면 이주 노동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별과 폭력은 도를 더해 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들을 향한 차별과 폭력은 모든 일하는 이들에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땅에서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170만 이주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주변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삶부터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것, 우리네 사람들의 몫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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