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보고서] 신자유주의 시대의 과로자살 : 사례 비교 연구 (2018)


연구 참여자 (소속)

김영선 (노동시간센터),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서선영 (연세대), 천주희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전주희 (노동시간센터), 예동근 (부경대), 김직수 (사회공공연구원), 강민정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 

* 순서는 보고서 목차 순 


본 연구 <신자유주의 시대의 과로자살 : 사례 비교 연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2017년 노동보건 연구 '공모' 사업의 일환으로 일환으로 작성되었다 (연구기간: 2017.9.1~2018.8.31)


- 1 과로자살 20180831 (최종보고서) ◆ n2.pdf


[노동시간 에세이 - 과로자살 거둬내기] 자살의 안과 밖: 보이는 그물과 보이지 않는 괴물 / 2018.01

자살의 안과 밖: 보이는 그물과 보이지 않는 괴물

예동근 부경대학교


1. 폭스콘의 과로사와 투신자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있다. 중국 대륙에 투자한 대만계 기업 폭스콘에서 14명의 직원이 연속 투신자살했다. 그 후 폭스콘은 기숙사 등 많은 건물에 자살방지용 그물을 설치했다. 기숙사 창문도 30초의 시간을 들여야 열리게끔 설계하였고, 심리상담원을 두어 실시간 상담을 할 수 있게 했다. 하루 자살 관련 상담 전화만 1,000건이 넘는다고 한다.

당시 폭스콘의 최고경영자 테리 고우는 주주와의 연례 만남 자리에서 "노동자들이 업무에 지쳐 발생한 사건이 아니었다. 단조로운 업무와 일부 관련이 있을 수 있지만 90%는 개인 관계와 가족 분쟁으로 인한 것이었다"¹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공장 노동자의 상당수는 20~25세 사이의 연령대로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있었고 사랑하는 이와의 분리 심리적 충격과 의지할곳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또 몇몇 노동자들은 보상금을 위해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었다고 추가했다.

글로벌 유명 브랜드인 애플 회사도 비판 여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착취공장”, “자살공장”을 이용하여 돈벌이한다는 비난은 계속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2010년 스티브 잡스 전 애플 최고경영자는 “폭스콘은 노동 착취 공장이 아니다. 식당과 수영장까지 갖춘 꽤 괜찮은 공장”이라며 “자살시도가 어이지고는 있지만 40만 명에 달하는 공장 직원들의 수를 고려하면 미국 전체 자살률보다 낮다”²고 답변했다. 이렇듯 공장에서 자살 사건이 발생하면 기업들은 자살의 원인을 개인적 요인에서 찾는다. 자살자의 성격, 우울증, 대인관계, 빚 등 개인적 요인들을 수없이 나열한다. 그리고 투신자살자의 동정론자들은 기업의 문화, 조직, 장기근무, 직장 내 스트레스 등 구조적 요인에서 찾는다. 기업을 대변하는 사람들은 한술 더 떠 공업사회, 지식정보사회의 성격이 강할수록 자살은 피할 수 없는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2. 폭스콘이 요구하는 것은 스톰트루퍼

누가 젊은 청년노동자들을 보이지 않는 자살의 그물로 조이고 있는가? 아이러니하게 “고객제일”은 폭스콘의 사훈이며, 회사의 신조다. 고객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충성을 요구한다. 보통 경쟁사들은 제품 정보가 빠져나갈 것을 우려해 같은 공장에 납품을 맡기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폭스콘은 각각의 공장에 보안을 엄격하게 유지한다. 폭스콘은 업무 시간에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또한, 공장 내부에 거의 모든 시설이 갖춰져 있고, 기숙사까지 있어 공장 밖으로 나갈 일을 거의 만들지 않는다. 특히 폭스콘 공장의 근무 교대 시각에는 금속 탐지기를 거치고 몸수색을 받는다. 이런 철저한 비밀유지 덕분에 제조사들은 폭스콘을 신뢰한다.

룽화(龍華)에 근무하는 폭스콘 직원은 27만 명, 24시간 3교대로 각종 전자제품을 쉴 새 없이 생산하고 있다. 거대한 기지 안에는 생산 공장과 직원 숙소뿐만 아니라 식당, 병원, 잡화점, 은행, 소방서 등 70여 동의 건물이 모여 있다. 5만 명이 동시 식사할 수 있는 20여 곳의 대형 식당에서는 매일 15만 명분의 식사가 준비되는데 소비되는 쌀 양만 40t이 넘는다. 이 같은 광경은 생소하고 무섭다. 5만 명이 함께 식사할 수 있는 공간에서 똑같은 작업복만 입은 낯선 사람을 보았을 때 무엇이 생각나겠는가? 은하제국의 스톰트루퍼가 떠오른다. 개인의 생각, 기호, 취미, 창의성 전혀 중요하지 않다. 말해도 들어주지 않고, 기계처럼 손만 놀려야 할 때, 20대 젊은 피가 솟구치는 청년들은 참을 수 있을까?

맑스는 이것을 “소외”라고 정의했다. 인간이 소외되면 투명인간처럼 되고, 주변 사람은 생소하고, 주변 환경은 두렵고, 삶은 무미건조하다. 지속적 감시에서 노동하는 사람은 초조하기 쉽고, 얇아지는 지갑과 지친 몸을 바라보면 삶은 초라해진다. 더욱 무서운 것은 AI시대를 준비한다는 핑계로 “스타워즈”의 출현을 알리는 작업이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제조업체 폭스콘은 지금 지구에서 가장 많은 전자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폭스콘과 유사한 세계적 기업들이 로봇생산에 경쟁을 올리고 있다.

얼마 전 폭스콘은 4만 대의 Foxbots를 투입한다고 선포했다. 폭스콘 자살 사건 이후 각종 분쟁과 사회여론에 시달리었고 중국 내 인건비도 갈수록 높아짐에 따라 폭스콘 대표는 2011년에 “100만 로봇 시대”를 공언했다. 복잡한 전자제품에서 인간은 “정밀한 손”이란 우세가 사라지면 곧장 로봇에 대체될지도 모른다. 인간 노동자들이 “자살공장”을 탈출하면 모르겠지만, 그들은 더 스타워즈의 스톰트루퍼처럼 변할지도 모른다.


3. 화웨이(華爲)는 천국인가? “자살문”인가?

2007년은 화웨이에 있어서 불행한 해 일지도 모른다. 중국에서 가장 전도유망한 기업으로서 찬사를 받았지만, “자살문”이란 오명도 동시에 달고 있었다. <신주간>잡지는 “화웨이는 중국에서 가장 힘들게 일 시키는 기업”이란 제목으로 연쇄 자살 사건을 다루었다.³

화웨이 대표는 군인 출신이다. 조직문화는 군사화 되어 있다. 이 부분은 폭스콘과 비슷하다. 고학력자들을 뽑고 있지만, 신입사원들의 입사교육은 군사화 됐다. 교관도 중국 군인의 자랑으로 여기는 “국기반”(國旗班)에서 영입하고, 2주간 군사교육과 함께 회사교육을 한다. 회장과 사부(지도교수), 신입사원이 일체화된 “회사부일체” 세뇌 교육을 시킨 후, 회사와 함께 공존 할 수 있는 기본훈련을 3개월 진행한다.

대부분 신입사원은 3개월 기간에 임용되지만, 그 압력은 매우 크다. 연쇄 자살 사건도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화웨이 기업이 전자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데 집중하는 만큼, 최고의 엘리트들을 모집하지만 그들은 새로운 분야에서 방황하고, 짧은 시간에 평가받아야 하고, 수시로 잘릴 수 있는 위기감에서 생활해야 했다. 자살한 장루이(張銳)는 이렇게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비록 소프트분야에서 내공을 쌓았지만 통신영역에서 있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실습기간을 지나도 바로 잘리지는 않겠지만, 모든 사람이 경쟁하고 있기에 너무 힘들다.”

화웨이 회장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간이침대”문화는 화웨이문화의 상징이고 자랑꺼리였지만, 연쇄자살사간이 일어 난후, “자살도구”란 오명을 받았다. 간이침대는 군인의 배낭처럼 수시로 몸에 붙어 있고, 전투도구로 인식되게 하였다. “간이침대는 절반의 집이다. 화웨이 사람들의 체력과 지력을 집에 보내지 않고 최대 한계로 빨아 먹고 있다.”

이처럼 고학력 엔지니어들, 중간 관리자 심지어 화웨이 회장도 우울증에 걸렸다고 자백하고 있다. 대부분 시간을 회사에 보내는 이들은 여가시간이 없고, 심지어 애인과 만날 시간도 없어 길게는 두 달 뒤에야 애인의 얼굴을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회사는 “위기론”을 주지시키며 회사와의 “운명공동체”를 강조하여 내부경쟁을 조장하고 있다. 한편으로 회사의 소속감을 강조하여 안정감을 찾게 하지만, 과도한 압력과 내부경쟁은 오히려 회사 소속감과 안정감을 상실하여 직원들을 소외시켰다고 볼 수 있다.

드라마처럼 모든 것을 회사를 위해 헌신하였는데, 하루아침에 헌신짝처럼 던져졌을 때 어떤 기분일까? 화웨이뿐만 아니라 중국, 나아가 한국, 일본 등 IT, 게임관련 기업들도 비슷한 딜레마를 갖고 있다. 이런 직종 자체가 “자살 세포”를 갖고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화웨이가 존재하는 도시 심천 자체가 “우울증의 도시”, “자살의 도시”다. 이 도시에는 화웨이와 비슷한 거대기업 텐센트, ZTC 등 많은 IT기업이 있다. 한편으로 “IT도시”로 선망의 대상이고, 활기찬 도시, 꿈의 도시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시들시들 병들어 가고 있다.⁴⁾

2007년 심천시 위생국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18세 이상 심천주민들의 정신질환률은 21.1%로 중국 도시 가운데 가장 높았다. 그리고 우울증 발병률은 7%로서 당시 전 세계 우울증 발병률 3.1%를 초과하였으며, 불안장애 환자는 9.94%로서 10명중 1명이 불안장애 환자이다. 더 무서운 것은 당시 심천의 연평균 자살자가 2,000명으로서 당시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높았다고 한다. 10만당 자살률로 환산하면 당시 800만 심천인구로 볼 때 25%이다. 이는 OECD 국가에서 자살률 1위를 기록한 한국보다 높은 수치이며, 서울의 자살율과 막상막하다.

우리는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각종 자살예방책을 찾으면서 “자살방지” 그물을 설치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도시, 그리고 그 도시 안에 회사들이 사즉생의 결단으로 경쟁에 뛰어들고, 돌진하는 시스템은 자살을 탄생시키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괴물”이 아닐까?

[특집] 3. 전자산업 노동자 건강권 투쟁의 나아갈 길

[특집3] 전자산업 노동자 건강권 투쟁의 나아갈 길


최민 선전위원장


일터에서는 지난 9월, 삼성반도체에서 일했던 고 황유미, 고 이숙영 씨의 백혈병이 법원에서 산업재해로 확정된 것을 계기로 반올림이 걸어온 길을 살펴보았다. 여러 사람의 힘과 땀, 눈물이 7년간 영화보다 더한 이야기들을 만들고, 반올림은 이름 그대로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과 인권을 지키는 울타리가 돼 왔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들의 증언에서 출발한 반올림은 삼성반도체, 삼성 전자 피해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반도체 산업, 전자 산업 전반의 노동안전 문제를 제기하고 대변해 왔다.    

반올림에게는 수많은 과제가 여전히 산적해 있다. 항소가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한 법정 투쟁, 새로운 산재 신청자들의 산재 인정 투쟁, 삼성과의 교섭 등 지금까지 해 왔던 활동을 이어 나가는 것이다. 

더불어 일터라는 지면을 통해 반올림만이 아닌 우리가 전자산업 노동자 건강권을 쟁취하기 위해 앞으로의 과제를 몇 가지 정리해보며 새로운 한 계단을 오르기 위해 발돋움 하고자 한다.


백혈병, 암을 넘어 ‘건강권’ 쟁취로


처음 반올림이 결성되게 된 계기가 백혈병이었고, 이번에 법정에서 직업병으로 인정받은 것도 백혈병이다. 올 여름에는 같은 반도체 생산업체인 에스케이하이닉스에서도 백혈병 발병 사례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고, 아이폰을 만드는 폭스콘 중국 공장에서도 백혈병 환자가 연이어 발생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전자산업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얻게 된 건강 문제가 백혈병만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것이 유방암이다. 2012년에는 19세부터 5년간, 유기용제와 방사선 및 야간작업을 포함한 교대근무를 해 왔다는 점을 고려하여 삼성반도체에서 일했던 노동자에게서 발생한 유방암이 산업재해로 인정되기도 했다.

생식 건강문제도 관심사 중 하나다. 생식 건강 문제에는 임신, 출산과 관련된 건강문제 뿐 아니라 가족계획, 인공임신중절, 성병 등 생식기관이나 생식 기능과 관련된 건강문제가 포함된다. 이미 대만, 영국, 미국 등에서 반도체 산업에 종사하며 화학물질을 취급했던 여성 노동자의 자연유산 위험이 증가하거나, 가임 능력이 감소해서 임신이 잘 되지 않는다는 보고도 있다. 남성 노동자 역시 가임 능력이 감소한다는 보고도 있다. 국내에서도 반도체산업에 종사하는 20대 여성노동자는 같은 나이대의 일하지 않는 여성과 비교했을 때 자연유산이 57%, 생리불순이 54% 많다는 보고가 있었다. 

백혈병과 암을 넘어 이런 다양한 문제, 좀 더 흔하게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실제 위험이 높은지, 높다면 원인은 무엇인지 규명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아니, 질병이 아니라 다양한 ‘상태’ 에 대한 민감한 조사가 필요하다. 전자 산업에는 젊은 여성 노동자들이 많다. 이들은 젊고 건강하다. 건강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하지만 ‘질병’으로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이제는 ‘질병이 없는 상태’ 를 넘어 보다 확장된 ‘건강하게 일할 권리’ 를 얘기해야 한다. 화학물질 뿐 아니라 야간작업, 인간공학적 위험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전자산업 노동자들이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노동자의 건강권, 주민들의 환경권


2013년 1월 삼성반도체 화성 공장에서 불산 누출 사고가 발생하고, 삼성전자가 이를 늑장 신고했을 때, 사망자 과실이라며 사고 발생 경위에 거짓을 섞어 해명했을 때, 공장 주변 지역 거주자들의 이해가 회사보다는 노동자들의 이해와 일치한다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최근 자주 발생하는 화학물질 누출 사고에서 쉽게 알 수 있듯, 화학사고가 일어나면 공장 노동자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 모두 피해자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노동자들과 주민들이 함께 사고 예방 체계, 응급 대책을 마련할 것을 회사 측에 요구하고 감시해야 한다. 또 그에 앞서 지역 사회에 공존하고 있는 공장이 어떤 위험 물질을 사용하고 있으며, 어떤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알아야 한다. 

1980년, 90년대부터 일본과 미국에서 반도체 공장 때문에 토양과 지하수가 오염되어 지역 주민들이 오염 물질에 무방비로 노출된 사건이 있었다. 이들 국가에서 반도체 산업에 의한 환경 파괴를 감시해 온 활동가들은 기업이 지역사회의 의혹과 비판에 대해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 걸음이며, 국가와 지역사회가 기업을 제대로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자리와 환경’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우기는 기업들에 맞서 노동자, 지역사회, 환경을 잇는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올림 역시 이미 화학물질 관리에 대한 지역사회 알 권리 획득을 위한 활동에 함께 해 왔다. 비교적 건강한 성인으로 구성된 노동자들에 비해, 지역 주민 중에는 어린이와 노인과 같이 유해물질에 특별히 취약한 사람들도 많아 비교적 낮은 농도의 유해물질 노출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전자 산업 나아가 기업 활동 전반에 대한 주민들의 감시 강화와 알 권리 보장이라는 측면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전자산업 노동자의 국제적 연대


전자산업은 전 지구적 분업이 매우 발달한 산업이다. 미국의 애플 본사에서 아이폰을 디자인하고 중국의 폭스콘 공장에서 제품을 만든다. 1980년대 미국과 일본, 영국에서 주로 발전했던 반도체 산업이 1990년대에는 타이완, 한국으로 이전했고, 이후 중국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전자산업 공장들이 들어서다가, 최근 노동환경 개선 요구가 높아지자 중국에 있던 공장들이 남미로 이전하는 것이 모두 전 지구적 분업을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전자산업의 국제적 분업 가장 말단에는 전자산업 폐기물 문제가 있다. 잘 사는 지역의 전자산업 쓰레기들이 못 사는 지역에서 처리된다. 유해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이나 교역을 막기 위한 국제 협약이 있지만 여전히 중고 전자제품이라는 미명으로 전자 쓰레기들이 수출되고, 이런 폐기물 해체 작업 도중 많은 노동자들이 유해물질에 노출된다. 


 ▲ 인도 델리의 전자 폐기물 재활용 현장 


인도에서는 2011년 전자산업 폐기물 법이 시행되어 일정한 요건을 갖춰 정부의 허가를 얻지 않으면 전자 폐기물 해체 사업을 못 하게 됐고, 수도인 델리는 전자산업 폐기물 해체 작업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인도의 한 환경 단체에 따르면 2013년, 14년에도 델리 내 여러 지역에서 전자산업 폐기물 해체 사업이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납, 수은, 카드뮴 등 유독물질을 포함하고 있는 전자산업 폐기물이 조악한 방법으로 해체되는 사이 인도 안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 이주해 온 여성과 아동 노동자들은 이런 독성 물질에 마구 노출된다.


국제연대가 거창하거나 먼 얘기만은 아니다. 전자산업과 관련된 국제환경협정을 받아들이고 이행하도록 강제하거나 이런 표준에 맞는 국내법을 만들고 정비하는 제도 개선 활동, 한국의 활동과 성과를 국제적으로 알리고 교육해 새로 전자산업이 발흥하는 지역에서 우리가 겪은 지난한 투쟁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을 수 있도록 지지, 지원하는 활동,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 적절한 노동, 환경 규제를 지키도록 강제하는 활동 등 조금씩 시작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활동들이 본격화되어야겠다. 


새로운 산업, 새로운 문제들


반올림 운동의 중요한 성과 중 하나는 ‘청정산업’ 이라던 반도체 산업의 맨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반올림 덕에 우리는 공기 샤워와 방진복으로 상징되던 먼지 하나 없는 반도체 공장이라는 이미지가 사실은 노동자의 건강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도체 산업은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다더니, 사실은 물도, 화학물질도 많이 쓰는 산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동안 널리 쓰이지 않던 인듐이라는 희귀 광물은 LED나 LCD 만드는 데 유용해서 최근 20여 년간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일본과 한국이 주요 사용 국가이다. 그런데 이 물질을 사용한 노동자들에게서 폐 조직이 섬유화 되는 증상이 발생해 새로운 직업병으로 알려졌다. 하루가 바쁘게 변하는 세상에서, 새로운 산업은 우리가 아직 모르던 새로운 위험의 등장일 수도 있는 것이다. 

확실한 증거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심각한 위험의 가능성이 있을 때는 예방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사전 예방 원칙에 입각해서 새로운 산업, 새로운 유해요인, 새로운 노동자 집단의 등장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새로운 위험에 민감해지는 길은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뿐이다.


반올림 투쟁은 고 문송면 투쟁, 원진레이온 투쟁,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에 이어 한국 노동안전보건 역사에 큰 획이 되는 투쟁이다. 지난한 투쟁을 거쳐 이제 한 계단 올라섰다. 한 숨 고르면서 다음 걸음을 준비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