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리포트] 특성화고 실습실 유해환경 개선을 위한 조사 및 분석 연구 / 2019.02

[연구리포트]

 

특성화고 실습실 유해환경 개선을 위한 조사 및 분석 연구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연구 배경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SKY 캐슬이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이제 학벌도 계급과 계층에 따라 결정된다고 하지만, 한국 사회 누구도 대학 서열, 학벌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 비하면 특성화고 학생들의 문제에 대해서는 참 관심이 적은 편이다. 201711월 제주에서 전공과 관련 없는 생수 업체에서 특성화고 이민호 씨가 현장실습 도중 사망한 것을 계기로, 교육부는 조기취업형 현장실습을 폐지하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제도 변경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난 1월 사실상 조기취업형 현장실습을 부활시키겠다는 제도 보완책이 나왔다. 2017년 한 해에만 2명의 고등학생이 현장실습 도중 사망했고, 이 때문에 제도가 바뀌었다는 것은 다들 잊은 듯하다. 농담처럼 교육계와 우리 사회의 관심은 인문계 고등학교>초등학교>중학교>특성화고등학교 순이라고 자조하기도 하는데, 이래서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특성화고 학생들의 실습실 환경을 보면 이런 자조가 농담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특성화고 학생들은 실습실에서 상당 시간 교육을 받고, 전문교과 교사들은 가르치는 업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특성화고 실습실은 일반적인학습 환경으로서 학교보건법에서도, 교사가 일하는 일터로서 산업안전보건법에서도 전혀 관리받지 않고 있다. 2016년 한 기계과 교사의 제보로 처음 특성화고 교내 실습실의 환경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구소에서는 서울노동권익센터와 서울성모병원의 지원을 받아 서울시 내 2개 특성화고의 실습실 환경을 조사했다.

 

  당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일반 사업장 노동자들이 노출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유해물질에 교사와 학생이 모두 노출되고 있었다. 기계과 용접 실습의 경우 소음은 TWA79.8~87.1 dB(A), 용접 흄 및 분진은 1.56~5.86 mg/이었다. 자동차과의 경우 소음은 72.1~86.4 dB(A), 용접 흄 및 분진은 0.92~2.72 mg/이었다. 이는 조선소 용접작업자나 자동차 정비사업소 작업환경측정 사례와 유사한 수준이다. 중금속 및 유기용제 노출 수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런 노출 수준은 산업안전보건법상의 노출 기준보다는 낮지만, 통계적으로 보면 노출 기준을 초과할 때도 있으며, 당장 노출을 줄이기 위한 행동이 필요한 노출 수준을 웃도는 수준이다. 2016년 이 연구 결과를 서울시교육청에 알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고, 결국 2018년에 서울시교육청이 특성화고 실습실 작업환경 실태 조사연구 용역을 내게 되었다. 이 연구를 통해 더 다양한 특성화고와 실습실의 실태를 드러내고, 특성화고의 특성에 맞는 교사와 학생의 안전보건 관리 체계를 제안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연구 결과 1 : 학교 실습실,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

 

전문교과 교사들이 상당한 수준의 유해물질에 노출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학교 실습실은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상 교육서비스업은 시행을 유보하거나 제외 조항으로 되어 있는 영역이 많다. 그래도 가장 기본적인 안전보건 조치 중 하나인 작업환경측정, 특수건강진단 등은 적용 제외가 아니다. 물론 지금까지 특성화고 내 실습실과 전문교과 교사를 대상으로 이런 법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조차 거의 없었다. 학교 환경 측정 시에도 실습실은 제외하고 조사를 하기도 한다.

 

특성화고 실습실 작업환경측정은, 청소년이 함께 노출된다는 점을 고려해 적정한 노출 기준을 마련해서 진행해야 한다. 전문교과 교사들의 건강을 위해서 특수건강진단 적용 의무 여부를 확인하고, 적절한 수준에서 실시해나갈 필요가 있다. , 교육서비스업에서 실시 의무가 없는 안전보건교육, 보건관리자 선임,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운영 등도 교육청 단위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특성화고 학생에 대해서는 안전교육에 산업안전보건교육을 포함하여 강화할 뿐 아니라, 교사들도 노동자로서 필요한 안전보건교육을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현행 학교보건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학교 보건위원회에 노동안전보건 담당자가 들어가 역할을 하는 방안도 모색할 수 있다.

 

연구 결과 2 : 실습실 환경 개선과 교육 강화, 전문인력 선임 필요

 

  연구 중 가장 중요한 과정은 실습실 방문 조사였다. 2개 산업정보학교, 5개 공업고등학교를 방문학교로 선정하였다. 대표적인 학과들은 모두 한군데 이상 학교에서 방문이 가능하도록 하였고, 방문 시 해당 학과에 속한 실습실을 가능하면 모두 관찰하도록 했다. 한 개 학교를 제외하고는 모두 2인의 연구진이 방문하여, 짧은 시간 현장을 돌아보는 대신 놓치지 않고 문제를 발견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방문 전 연구진 회의를 통해 특성화고 실습실 현장평가용 위험성 평가 도구를 만들었다. 안전보건 체계, 피난수단 및 안전 장비, 개인보호장비, 위험정보전달, 환기장치 등 총 9개 영역에 대해 각각 2~5개 문항으로 구성했다. 조사 이후 학교에서도 실습실 환경관리를 위해 활용되기를 바랐다.

 

학교 방문 결과, 안전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높아졌으나, 산업안전, 산업보건으로까지 확대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안전교육은 증가했으나 산업안전보건교육은 부족하고, 안전보건규정이나 화재안전설비는 갖춰져 있지만 산업안전보건 관련 설비는 미비했다. 

이를 개선하려면, 실습실 환경 개선과 안전보건증진 활동을 위해 실습 안전과 보건을 목적으로 하는 예산을 따로 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 비용 중 일부는 과목별로 필수적인 보호구를 제공하는 데 사용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학교에 따라 예산 규모와 환경 수준의 차이가 컸는데, 학교에 따라서는 간단한 호흡기 보호구 구입 마저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안전보건과 관련된 비용에 대해서는 프로젝트나 성과 중심의 접근 대신 보편적인 예산 배분이 필요하다. 

학교 실습실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안전보건 관점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현존하는 실습실에 바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 실습실이나 학교 신축 과정에서는 설계 단계에서부터 안전보건을중요 요소로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세안시설, 조도나 채광, 적절한 면적, 국소배기장치, 내장 안전 설비 등은 애초 설계 단계에서부터 충분히 고려돼야 할 것이다.

그나마 산업안전보건 분야에 부족한 관심마저도 특정 부분에 집중돼 있었다. 예를 들어, 화학물질 관리의 기본이 되는 물질안전보건자료에 대한 인지도는 매우 낮았다. 유기용제뿐 아니라, 용접봉, 납땜 실 등도 모두 화학물질로 다뤄져야 하고 물질안전보건자료 등을 갖춰야 하는데, 교사나 학생 모두 거의 인지하지 못 하고 있었다. 화학물질 격리, 밀봉, 문서관리 등도 잘되지 않고 있었다. 인간공학적 유해요인에 대한 인지도 역시 낮았다. 

더불어 과별, 학교별 유해요인 노출 및 실습실 환경에 차이가 매우 크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개선 과정에서 유해요인 노출이 많은 과, 고독성 물질 노출이 많은 과 실습실을 우선 개선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 실습실 개선을 개별 학교에 맡기는 방식보다, 교육청에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가능하다면 교육청이 계획을 수립해 순차적으로 개선해나가는 것이 효율적인 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였다. 일부 학교에서 돈과 시간을 들여 개선 활동을 했지만, 안전보건 측면에서 부적절하거나 효과가 떨어지는 방식을 채택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안전보건 전문가가 아닌 각 학교 교사들이 개선 활동을 책임지는 방식 대신, 교육청이 나서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실습실 환경만 개선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 보호구 착용, 안전작업 등 작업 관행과 문화를 바꿔나가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방편 중 하나로, 기능 및 자격 시험 평가 항목 점수 구성에서 안전 비중을 높이는 방안도 고민할 수 있다. 교사와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산업안전보건 교육을 점검하고 강화해야 하며, 학교 위험성 평가에 실습실을 포함시켜야 한다. 나아가 교육청 차원에서 실습실 안전보건 총괄하고 관리/지원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선임하여 이와 같은 과제를 추진해 나가는 방안을 고민할 것을 제안한다. 이런 전문인력 선임은 정책의 효율성을 높일뿐 아니라, 교육청이 특성화고 학생과 교사의 안전 보건 문제 해결을 중요한 문제로 보고 있다는 신호가 될 것이고, 현장에서의 변화를 추동하는 힘이 될 것이다.

 

후속 과제


 이번 연구는 특성화고 실습실 환경 조사에서도 아주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실측도 없었고, 문제의 실마리를 드러낸 정도였다. 범위를 더 넓혀서 특성화고 교사의 노동건강권, 특성화고 학생들의 건강권 전체의 과제로 생각해본다면 앞으로 할 일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학교 실습실 안전보건을 증진하고 교사와 학생의 건강권을 확보하기 위한 후속 연구들이 진행되어야 한다.

 당장 산업안전보건법 이행을 위한 과제들이 있다. 표본 학교를 대상으로 실습 중 유해물질 노출 수준을 실제로 측정해 평가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를 통해 실습실 유해환경 평가모델을 만들어, 작업환경측정처럼 정기적인 관리와 감독을 해나가야 한다. 대표성 있는 표본 학교의 교사를 대상으로 특수건강진단을 시행하고 특수건강진단 시행 매뉴얼을 제시할 필요도 있다. 기계과, 전기과, 자동차과, 미용과 등 주요 전문과별 실습실 표준모델을 개발하여 각 실습실의 설계, 건축, 장비 설치, 환기설비, 유지 보수와 관련한 표준을 선정하고, 이를 근거로 학교별로 실습실에 개선과제를 적용하도록 도와야 한다.

 이번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서울시 교육청에서 특성화고 유해환경 개선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구에서 제안했던 것처럼 교육청 차원에서 개선 활동을 직접 진두지휘하지 않고 개별 학교의 개선 활동이 된 점은 아쉽고, 제안된 다양한 후속 연구와 사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매우 안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연구 결과가 서울시교육청에 특성화고 실습실 상황까지 고려한 산업안전보건 체계 수립의 근거가 되기를 기대한다. 향후 각 시도교육청에서도 포괄적인 산업안전보건 체계를 수립하고 운영하는 데에 본보기가 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국제안전보건기준에 관한 비교연구 검토] 산업안전 전문인력의 독립성 보장, 어떻게 할까? / 2018.12

산업안전 전문인력의 독립성 보장, 어떻게 할까?

최민 상임활동가


산업안전보건 국제기준 비교 연구팀에서는 2018년 9월부터 독일 산업안전보건법과 체계를 공부하면서, 한국 산업안전보건 체계가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 글로 산업안전 전문인력의 독립성 문제를 다룬다... <기자말>

일터에서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 증진하기 위해 특수건강진단이라는 제도가 도입돼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정하고 있는 특정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노동자는 본인이 사용하는 물질과 관련하여 건강검진 항목을 정하고 결과를 해석할 수 있는 의사로부터 건강진단을 받아야 한다. 이를 일반건강진단과 다른 특수건강진단이라고 한다.

이 특수건강진단에 종사하는 책임의사 148명이 참여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한 가지 이상 윤리적 이슈를 경험했다는 응답자는 83.1%나 됐다. 의사들이 마주한 윤리적 이슈는 검진비용 덤핑 등 부당유인행위를 목격하거나(55.4%), 실적에 대한 압박을 받거나(42.0%), 검진판정에 대한 부당한 개입을 경험(33.1%)하는 것이었다.¹⁾

유해물질에 노출된 노동자에게 적절한 정보와 건강 관리 방안을 제시하고, 직업병 발생을 감시하기 위한 특수건강진단이 덤핑으로 '손님'을 유인하는 미끼가 되거나 심지어 검진 판정에 대한 부당한 개입을 경험한 의사도 세 명 중 한 명이나 되다니 놀라울 지경이다. 의사 그것도 전문의라면 자기 직업 영역에서는 전문가로서의 독립성을 존중받고, 또 그에 대해 본인이 책임지는 것이 당연한데, 특수건강진단 영역에서는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사업주가 고용하는 전문가, 독립성은 어떻게?

현실이 이렇다 보니 독일 산업안전보건 체계를 살펴볼 때, 연구팀에 있는 직업환경의학의사들이 크게 주목했던 점이 '산업보건의사와 산업안전 전문인력의 독립성'에 대한 강조와 보장이다. 독일은 한국과 법체계가 달라, '산업보건의 및 산업안전 전문인력에 관한 법률'이 따로 있는데, 이 법 4절 통칙 중 제8조는 아예 제목이 '전문지식의 적용에 있어서의 독립성'이다.

독일 법은 "산업보건의와 산업안전전문인력은 노동의학적, 안전공학적 전문지식의 적용에 이어서 지시를 받지 않아야 하며, 부여받은 업무의 수행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산업보건의 역시 의사로서 '의사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며, 의료상의 비밀유지 의무규정을 준수하여야 한다고도 분명히 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의료법 상 당연한 의무이기도 하고, 법이 아니더라도 전문가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윤리 조항임에도 굳이 법에 이런 전문가로서의 독립성을 명시해 둔 것은, 아마도 한국의 직업환경의학 의사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처럼, 산업보건의나 산업안전전문인력을 고용하는 당사자가 사업주라는 데서 오는 윤리적 문제가 분명히 발생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독일 법에서도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 산업보건의나 산업안전 전문인력이 참여하게 되어 있지만, 이들은 사용자 위원도 아니고 노동자 대표위원도 아닌 독립적인 지위로 위원회에 참여하도록 보장받는다.

전문가의 독립성, 법적 보장과 노동자의 견제로

물론 독일에서도 산업보건의를 채용하거나, 직접 채용하지 않고 계약을 맺어 산업보건 관련 업무를 맡기는 경우, 채용이나 계약의 주체는 사업주다. 그렇다면 이런 법적 조치들은 미사여구에 불과한 게 아닐까?

법적 조항이 전문가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틀을 제공한다면, 전문인력에 대한 사업주의 전횡을 제어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이 바로 노동자의 참여다. 산업보건의 및 산업안전 전문인력에 관한 법률 9조는 아예 이들의 '노동자대표위원회와의 협력'이 자세히 열거돼 있다. 산업보건의와 산업안전전문인력은 임명이나 면직이 모두 '노동자대표위원회'의 공동 결정 사항이다. 산업안전과 관련된 전문가의 고용에 대해 사업주뿐 아니라 노동자도 관여할 수 있기 때문에, 고용 혹은 계약을 빌미로 한 사업주의 부당한 관여를 방지할 수 있다.

또 만일, 산업보건의 또는 산업안전전문인력이 노동의학적 또는 안전공학적 조치를 제안했는데, 그것을 회사의 안전보건담당자가 거부할 경우, 이 전문가에게는 사업주에게 직접 의견을 제안할 권리가 보장된다.

사업주가 그 제안을 거부할 때는 그 이유를 서면으로 통지해야 하고, 이를 '노동자대표위원회'에도 알려야 한다. 즉, 노동자 건강과 관련된 전문가 의견이 회사의 입맛에 따라 거부되거나 사장되는 것을 막아주는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의 독립적 역할과 지위, 권한을 법으로 보장하고, 노동자 참여 제도를 통해 보완하는 곳에서 산업보건의사를 포함해 산업안전전문가들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할 수 없는 많은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산업안전보건법의 가야 할 또 하나의 방향이다.

※ 각주
1) 김정민 등, 특수건강진단 책임의사의 윤리적 이슈 경험 및 업무만족도 실태와 자가평가 업무수행능력과의 관련성, 2017년도 제58차 대한직업환경의학회 봄학술대회 포스터 발표

특집2. 28년 만의 산안법 개정, 노동·시민사회 총력 모아야 / 2018.11

28년 만의 산안법 개정, 노동시민사회 총력 모아야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 실장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의 역사는 노동자 죽음과 투쟁의 역사이다. 30년 전 문송면, 원진 레이온 노동자의 죽음과 사회각계 각층의 투쟁이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으로 이어졌다. 2018년 28년만의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 제출도 기간의 죽음과 투쟁이 만들어 낸 것이다.

문송면, 원진레이온 투쟁으로 진행된 1990년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의 핵심은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노사 동수 규정을 비롯한 노동자 참여권 확대와 정기 안전보건교육 실시, 직업병 예방을 위한 화학물질 조사 및 조치 의무와 건강관리 수첩제도 등 14개 항목'이었다.

그 이후에도 근골격계 질환 집단 산재신청, 석면, 철도 지하철 궤도안전, 병원 감염성 질환, 청소노동자 씻을 권리, 전기 안전, 타워크레인 안전, 산재은폐, 감정노동 보호 등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시행규칙 조항 하나하나에 노동자의 피 눈물이 배어 있다.

최근 7~8년은 하청 산재사망 문제를 지속 제기하면서 산업안전보건법 29조가 계속 개정되어 왔고, 구의역 참사 이후에는 위험의 외주화 금지 의원입법 법안도 발의되었다. 산재사망 기업 처벌강화는 10여 년 전부터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을 진행하면서 기업살인법 제정에 대한 요구가 계속되어 왔으나, 실질적 입법 투쟁이 진행된 것은 2012년 민주노총과 민변 등이 특별법 안을 준비하고 추진하면서부터 였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시민재해를 포괄하는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 투쟁으로 이어져, 2017년에야 입법발의가 되었다. 20대 국회 환노위에는 산재사망 처벌강화 특별법이 법사위에는 재난안전에 관한 특별법 형태로 의원입법 발의안도 있다. 위험의 외주화 금지와 산재사망 처벌강화는 입법발의도 지난한 과정이었지만, 18대, 19대 국회에서는 심의도 없이 회기만료로 폐기를 반복했다. 20대 국회에도 도급금지, 처벌강화, 안전보건정보 노동자 알 권리 등 다수 법안이 의원입법으로 발의되어있다.

28년만의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은 개정되는 '주요 내용만 8개 분야의 32개 조항'에 달한다. 그리고, 산업안전보건법 법률은 그대로이면서 순서와 배치를 바꾸어 놓거나, 하위 법령에 있던 것을 법률로 올려놓은 것도 많아 조문 비교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상황은 경총을 비롯한 사업주 단체와 보수 전문가들이 '후퇴, 졸속, 일방 강행' 등의 프레임을 만들고, 최소한 '법 개정을 지연시키거나 회기 만료로 또 다시 쓰레기통으로 폐기 처분'하게 만드는 길로 가게 만들거나, '취지는 좋으니 통과시키고 보자'라는 안일한 대처로 몰고 가고 있다.

민주노총은 2월 입법예고안에 대한 입장에서 '28년만의 전부 개정안'이라고 하기에는 노동자 정신건강에 대한 대책이 누락되어 있고, 노동자 참여와 관련 조항이 없다는 점을 강하게 지적했다. 이후 감정노동 보호와 관련해서는 법안이 별도로 통과되었고, 일터 괴롭힘 금지와 관련해서는 근기법, 산안법, 산재법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으나,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법사위에서 계류된 상태이다.

노동자 참여 확대 조항의 핵심인 명예산업안전감독관 권한을 비롯해 세부 내용들은 대부분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관련 사항으로 법률에서 다루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러나, 노동자 참여 확대가 전부 개정안의 주요 내용으로 애초부터 제출되지 못한 점은 한계로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국무회의를 통과한 산안법 개정안이 현행 법 대비 진전된 내용과 문제점을 최대한 정리 해 보려한다.

첫째, 일하는 사람으로의 보호대상 확대

개정안은 산업안전보건법 전문에 '일하는 사람'을 명시했다. 그러나, 실제 내용에서는 사업주 정의에 특수고용, 배달노동 등의 중개사업주, 프랜차이즈 본부만 구체적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부여하는 사업주를 명시했다. 다만, 정부의 책무에 '일하는 사람의 안전 및 건강의 보호증진'을 명시하여 정부의 사업 확대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현재의 산업안전보건법이 구체적 안전조치, 보건조치를 명시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이하 하위 규칙)은 사업장 전체에 대한 조치로 근로자 여부를 따지지 않는 조치가 많고, 구체적으로 조치 대상을 정할 수 밖에 없는 보호구 지급, 안전교육, 건강검진 등은 '소속 노동자'로 되어 있으므로, 이러한 구체적 실물 내용이 반영된 것이다. 일부 전문가는 '일하는 사람'의 정의가 없어 대표적인 산재보고의 경우에도 사업주는 어디까지가 대상인지 알 수 없다 라는 주장을 펴면서, 일하는 사람 조항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개정안에 사업주 정의 자체가 '근로자를 사용하는' 이라고 명시되어 있어 산재보고는 고용사업주가 하는 것이므로, 경총과 보수 전문가의 주장은 과도한 해석이다. 오히려 문제는 특수고용 노동자 정의가 '주로 하나의 사업' 이라는 산재보험법 특수고용 정의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어 건설기계, 화물, 택배, 퀵 서비스 등 위험도가 높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적용 제외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개사업주의 경우에도 이륜자동차로 한정하고 있고, 프랜차이즈 본부의 경우에도 '소속근로자' 로 한정하여 가맹점에 자회사 형태로 인력 공급이 되는 경우에 대한 보호조치가 누락 된다. 이에 개정 논의과정에서 범위대상 확대와 보호조치 내용의 확대가 필요하다.

둘째, 원청 책임의 확대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29조는 그 태생이 건설, 조선, 제조업의 하청 산재에 대한 보호조치로 계속 추가 확대되어 왔다. 그러나, 서비스업 등 여타 산업의 다양한 하청산재 문제를 포괄하지 못했고, 임대 위탁 등 다양한 계약형식으로 책임에서 빠져나가는 원청 문제가 지속되어 왔다. 병원, 지하철의 청소 노동자, 삼성전자 서비스 등등 다양한 하청 산재 문제가 도급의 정의, 일부 도급, 형식상 임대 위탁인 경우 등을 빌미로 법령에 있는 원청의 의무는 실제 감독, 처벌 과정에서 번번이 누락되었다.

개정안은 도급의 정의를 확대하고, '관계 수급인'정의를 도입하여 다단계 도급 시에 도급인이 누구인지 불명확했던 점을 원 도급인으로 명확히 하였으며, 도급인이 제공, 지정하는 장소도 포괄하게 하는 진전된 내용을 담고 있다. 내용적으로는 안전교육의 확인의무를 추가하고, 작업환경측정, 위험성 평가 조항에서 하청 노동자 공정까지 포괄하도록 하고, 노동자 대표가 원청의 하청 산재예방 조치를 요구하면 사업주가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개정안에 대해 '임대' 정의가 포함되어야 건설현장, 제조업 현장의 장비 임대계약 형식의 고용과 서비스업의 장소임대 형식의 사실상 하청 문제가 해결된다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타워크레인으로 한정하여 원청 책임강화로 입법예고 되었던 법안을 건설기계 등으로 일부 확대했고, 다른 문제는 반영되지 못했다.

또한, 경총 및 보수전문가들이 원청 책임확대를 반대하면서, 원 하청 책임 명확화를 주장하고, 원청 책임확대가 불법파견 판정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을 수용하여 '보호구 착용의 지시 등 작업행동에 관한 직접적인 조치는 제외' 조항을 추가 명시했다. 안전보건의 기본 조치인 안전교육은 원청에 확인의무만 부여하고, 보호구 지급은 하청 사업주에게 부여하고 착용지시 등은 제외하는 결과로 된 것이다.

또한, 발주처 책임강화를 비롯하여 건설업의 별도 절을 만들어 건설 산재사망 감소 대책을 추진하면서, 건설업이 주 대상이지만 법령상으로는 원청의 책임으로 되어있던 공기단축, 위험 공법 변경금지, 원 하청 산보위 등의 규정이 건설업으로만 한정되게 되었다.

셋째, 산재사망에 대한 처벌 강화

산재사망에 대한 솜방망이 기업처벌에 대해 그동안 민주노총은 세 가지 문제를 제기해 왔다. ① 산재사망에 대해 평균 500만원 이내의 솜방망이 벌금과 형사 처벌 사례가 전무 한 점 ② 하청산재사망에 대한 원청 처벌이 안 되고 있는 점 ③ 기업 최고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안 되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출되었던 것이 '산재사망 처벌강화 특별법'이며, 시민재해까지 포괄하는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이다. 그 동안 정부는 솜방망이 처벌에 대해서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의 양벌 규정으로 해결될 수 있다며 법원과 검찰의 문제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개정안에서는 형사 처벌과 기업 법인의 벌금을 분리하여 법인 벌금을 10억원 이하로 개정했다.

또한, 기업의 대표이사가 이사회에 산재예방계획을 보고하고 집행하게 하여 산재사망에 대한 기업의 최고책임자 처벌이 가능하도록 하는 근거 조항을 제출했다. (물론 이 또한 재판을 통한 실질 처벌이행은 지난한 과정이겠지만) 아울러 경총과 사업주 단체에게 가장 민감한 제도인 수강명령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입법예고안에 있었던 산재사망에 대한 1년 이상의 하한형 도입과 건설업의 불법 하도급으로 인한 산재사망 시 원청에게 3년 이상 하한형 처벌은 경총과 건설협회, 보수 전문가들의  공세에 밀려 삭제되었다. 당연 조항이었던 '수강명령'도 할 수 있다로 개정되는 등 후퇴했다.

하한형 처벌은 국내에도 형법과 시설물 안전관리 특별법에 유사법례가 있는 조항이다. 고용노동부 연구보고에 따르면 2016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범 중 전과자 비율은 21%로, 9범 이상인 경우도 91명이나 된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을 밥 먹듯이 하는 실태가 반복적 산재사망으로 귀결된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경총과 보수전문가들은 형사 처벌 조항 도입을 근원적으로 반대하고 있고, 법무부 관료들은 사업주 단체의 논리와 똑같이 "과실범인데 왜 하한형 까지 도입 하느냐"며 반대했다. 결국 규제개혁위원회와 법제처 내부 심사까지 끝난 조항이 막판 뒤집기를 당했다.

10월 31일 바른미래당에서 주최한 토론회에서는 하한형 도입을 삭제하고 7년 이상을 10년 이상으로 강화한 처벌 조항까지 문제 삼았다. 현재 국회에는 산재사망에 대한 하한형 도입에 대한 의원입법 발의안이 2개 있으나, 건설업 불법 하도급 산재사망 하한형은 발의안이 없는 상태이다. 민주노총은 추가 입법발의를 통해 하한형 도입이 국회에서 병합 심사를 통해 반영되도록 계속 추진해 나갈 것이다.

넷째, 위험의 외주화 금지

도급금지는 2013년 국회의원 산업안전보건법 입법발의가 있었고,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생명안전업무의 도급 금지를 포함한 특별법' 발의가 있었고, 구의역 참사 이후에는 철도안전법 등 추가발의가 있었다. 현재 20대 국회에는 4개의 도급금지 법안이 발의되어 있다. 그 동안 정부는 도급금지는 위헌조항이라는 경총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여 반대하더니, 이번 개정안에는 도급금지를 명문화 하고, 도급인가제도 정비, 도급인가의 경우 재하도급 금지하고, 관련 처벌조항 도입 등이 제출되었다.

원청의 의무로 적격 수급인 선정의무도 도입되었으나, 처벌 조항은 없다. 도급금지의 경우 그 동안 그 대상의 기준 문제가 쟁점이었고, 개정안은 현행 도급인가 대상을 그대로 도급금지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결국 개정안은 도급금지는 도입했으나, 그 대상과 범위는 고용노동부 자체 조사결과로 22개 사업장에 852개 사업장으로 한정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국무회의 통과 법안에서는 일시 간헐적인 경우도 제외하고, 기술적 문제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적용 제외를 열어두는 것으로 후퇴했다. 또, 하위 법령의 위임 규정도 없어 추가적 확대는 계속 입법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총과 보수전문가들은 '외국의 입법례가 없다, 과잉입법으로 위헌이다'라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외국의 경우에는 한국과 같은 사실상 인력 공급, 불법 파견형태의 도급이 없다. 또한, 산업안전보건법이 아니라 민법이나 형법 조항을 통해 하도급의 변경 시 부당한 고용문제나 노동조건의 저하가 있는 경우 처벌하고 있다.

원하청이 산업의 특성처럼 되어 있는 건설업의 경우에도 미국, 영국 등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발주 계약 지침을 통해 원청이 하도급을 주지 않고 직접 고용으로 시공하는 비율을 50%, 60%이상으로 하고 있다. 보수 전문가들은 외주화를 금지할 것이 아니라 적격 수급인 선정의무에 처벌 조항을 도입하는 것이 예방조치로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탁상 위의 법 조문으로 현실을 호도하는 주장이다. 적격 수급인 선정의무는 화학물질 관리법 하위 법령에서 도입된바가 있으나, 보호구 지급 등 산업안전보건법 준수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어 적격수급인이라는 규정이 극단적으로 협소하다. 중국위생안전법도 유사한 내용이 있으나, 구체적이지 않고 협소하다.

결국 적격 수급인 조항에 처벌 조항을 도입하면 '적격수급인'기준이 포괄적으로 되어 보수 전문가들이 그토록 주장하는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 처벌로 되거나, 보호구 지급 등 협소하게 규정되어 현실적으로는 의미 없는 조항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격수급인 선정 조항을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도급금지 조항을 무력화 하고자 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이미 도급금지의 범위와 추가확대의 대상과 절차를 법 조문으로 제시한 바가 있다. 도급금지 법 개정안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와 국회 투쟁이 필요하다.

다섯째, 물질안전보건자료 정부 보고제도와 영업비밀의 제한

화학물질 독성정보와 관련한 현장의 현실은 이렇다. 물질안전보건자료(MSDS)가 있기는 한데 산안법에서 영업비밀로 할수 없다고 규정한 것도 영업비밀로 기재되어 있거나, 영업비밀 대상인 경우에도 아무런 절차나 기준 없이 기업 마음대로 영업비밀로 하고 있다. 화학물질 관리법에서는 기업의 영업비밀 남발에 대해 법에서 별도의 기구를 두어 심의를 하도록 2년 전에 이미 개정되었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전혀 진행 되지 않고 있었다. 개정안은 두 가지 방향이다. 하나는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노동부에 보고하도록 하여 법에 공개하도록 되어 있는 화학물질을 기업이 비공개 남발하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영업 비밀에 대한 기준은 산재예방정책심의위에서 다루고, 영업비밀을 하려면 사업주가 안전공단에 신청 심의해서 결정하도록 하고, 화학물질 독성 정보에 대해 노동자 대표, 질병판정위원회, 의사, 대행기관 등이 요청하면 정보공개를 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개별 기업들의 반대가 가장 강력한 법안이다. 이에 입법예고에서 3년으로 되어 있던 기간을 5년으로 후퇴하고, 국외기업에 대해서는 별도 조항을 추가 하는 등 수정되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더욱이 부칙에서는 보고의무를 5년 이내로 하고 있다. 이미 화학물질 관리법에서 민간이 참여하는 심의기구 별도 운영을 하고 정착화 되고 있어 개정 요구를 하였지만 반영되지 않고 있다.

여섯째, 제도의 실질화를 위한 조치

개정안에는 각종 안전보건제도의 실질화를 위한 조치도 포함되거나 추가 개정되었다. 유해위험 방지계획서 제도의 경우 하위령에 있던 이행평가를 법령으로 명문화 했다. 위험성 평가의 경우에는 노동자 참여를 추가했다. 특수건강검진제도와 작업환경 측정제도와 특수건강진단의 경우에는 전문기관을 두도록 하여, 제도는 있으나, 현장에서는 실질 효과가 없고 대행기관의 돈벌이로만 전락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보완책이 마련되었다.

노동자의 작업거부에 대한 사업주의 불이익 처분에 대한 형사 처벌 조항이 도입되고, 역학조사에 노동자 참여, 메탄올 중독사고 등 의료정보에 대한 고용노동부 통보가 가능하도록 한 조치등도 기간의 현안 투쟁에서 제기된 문제가 반영된 조항이다. 작업중지의 경우 기존에는 기계 기구에 대한 사용중지 등만 법령에 있고, 작업중지는 정책과 지침으로만 진행되어 사업주 단체의 끊임없는 소송과 제기가 있었으나, 노동부 작업중지를 법제화 하고 있다.

그러나, 입법예고안의 전면 작업중지는 폭발, 누출 등 협소한 범위로 축소되어 국무회의를 통과했고, 노동자 대표의 작업중지권은 아예 입법예고에서 조차 제출되지 않았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이 밖에도 세부적인 내용을 담고 있고, 보칙으로 있던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을 본조 산업안전관리체제로 이동하는 등 체계 변화를 통한 제도 실질화도 일부 반영되어 있다.

개정안이 이제 국회로 이송되었다. 경총과 건설협회 및 보수 전문가들의 공세로 후퇴도 많이 했지만, 국회에서는 보수 야당이 또 다시 칼날을 휘두를 준비를 하고 있다. 개정안에 대해 보다 면밀한 분석과 현장과 밀착한 교육선전을 통해 후퇴된 내용을 다시 살리고, 개정안 통과에 총력을 다해야 할 시점이다.

이에 보수 전문가의 호도에도 휘둘리지 않고, 취지는 좋으니 그대로 통과시키자는 안일한 대처도 경계하면서 노동·시민사회의 총력을 모은 공동투쟁을 다시 한번 제안 드린다.

[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입사 6개월 만에 폭삭 늙는 신규 간호사들에 대한 이야기 / 2018.07

입사 6개월 만에 폭삭 늙는

신규 간호사들에 대한 이야기

이이령, 운영집행위원/직업환경의학 전공의


지난 6월 월드컵 기간 동안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신태용 감독의 수명은 모르긴 몰라도 한참 줄어들었을 겁니다. 1차전 스웨덴과의 시합 전 결의에 찬 당당한 표정은 두 경기를 내리 진 1주일 만에 폭삭 늙고 지친 표정으로 변했습니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직무스트레스는 너무 심해 감독 개인의 건강을 위해서는 아무도 안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엉뚱한 연상일 순 있지만 짧은 시간에 폭삭 늙어버린 신태용 감독을 보고 나니, 저는 특수건강진단 문진을 할때 만나는 신규 간호사들이 생각 났습니다.

신규 간호사 대상 특수건강진단

#1. 23세 여성 신규 간호사인 김신규(가명)가 ‘배치전 건강진단’을 위해 진료실에 들어온다. 아직 근무시작 전인 그녀는 학생 때 보고 들은 병원 생활에 대한 걱정이 있었지만 그래도 첫 직장에 대한 신기함과 기대감이 있는 밝은 표정이다. 어디 아픈 데 없이 튼튼하다고 한다. 나는 야간근무, 교대근무, 직무스트레스 등 간호사의 근무환경과 건강 영향에 설명한 후, 잘 지내고 6개월 후에 건강한 모습으로 보자고 하였다.

#2. 첫 번째 ‘특수건강진단’ 문진으로 만나게 되는 김신규 간호사는 진료실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6개월 전과 다르다. 얼굴의 모든 근육엔 힘이 없는 듯한 무표정으로, 졸린 듯 눈은 반쯤 감긴 상태로 돌을 얹은 듯 축처진 어깨를 겨우 끌고 터벅터벅 들어와 의자에 풀썩 앉는다. 심하다고 느끼는 신체 증상엔 피로감, 눈 충혈, 팔 · 다리 · 어깨· 허리 통증, 하지 부종, 소화불량, 불면증 및 불규칙한 생리 등이 있고, 모두 입사 후 생긴 증상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증상 백화점 수준이다. 증상과 근무환경 등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이제야 나에 대한 신뢰가 생겼는지, 여러 어려움에 대해 얘기하며 눈시울이 붉어진다. 나는 조직적 · 개인적 해결책을 나름 얘기해주지만, 그녀의 조건에서 모두 적용할 수 있는지는 확신이 안선다. 그래도 진료실을 나가는 표정과 발걸음은 들어올 때 보다는 그나마 낫다. 내가 해결해준 건 하나도 없지만, 짧지만 얘기를 들어주고 아픔을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어서였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故 박선욱 간호사도 신규 간호사였다

위의 내용은 특수건강진단 시 흔히 만나게 되는 신규 간호사의 사례입니다. 특수건강진단을 하다 보면 여러 업종의 노동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중 가장 많은 신체 증상을 호소하는 직군은 50대 남성 경비 노동자도 40대 여성 급식 조리 노동자도 아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어린 입사 후 6개월가량의 신규 여성 간호사들입니다.

지난 2월 고 박선욱 간호사가 스스로 삶을 마감한 것도 신규 간호사로 근무한 지 약 6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취직하기 어려운 요새 세상에 대학 병원 간호사면 안정적이며 월급도 괜찮은데, 남들 다 참으며 잘 다니는데 그걸 못 참냐며, 적응을 못 하는 개인 탓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태움’, 부족한 교육, 병원의 고질적인 인력 부족, 고강도 장시간 노동, 생명을 다루는 업무 스트레스, 회사 내 지지체계의 부족 등의 여러 구조적 문제는 신규 간호사가 감내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신규 간호사의 1년 내 이직률이 40%에 육박하는 국내 현실은 구조적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줍니다. 온갖 곳이 아픈 채로 회사에 다니거나, 견디지 못한 채 퇴사하거나, 퇴사도 어려워 급기야 삶을 마감함으로써 퇴사하는 상황까지 벌어집니다. 직무스트레스, 감정노동 등으로 입사 6개월 만에 표정이 없어진 채 몸과 마음이 폭삭 늙어버리는 것은 김신규 간호사, 故 박선욱 간호사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신규 간호사들 이야기일 것입니다.


해결은 가능해야한다

이런 상황을 신규 간호사 혼자 해결하긴 어렵고, 직업환경의학과 의사가 야간노동자 특수건강진단으로 해줄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개인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누군가가 대신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주체적이며 집단적으로 고민하고 제기하고 해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최근 간호사의 임신순번제, 장기자랑, 야간근무 수당 등의 문제가 사회적 이슈화되어 간호사·간호조무사 등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스스로 병원을 바꾸고 있는 대구가톨릭대병원 사례, 민주노총 의료연대를 비롯해 간호사단체 · 개별 간호사 및 노동시민사회 단체들이 공동으로 구성하여 활동하는 ‘고 박선욱 간호사 공대위’ 등이 좋은 사례일 것입니다. 

그리고 노동조합이 있다는 것에 안주하지 않고, 서울대병원 등 여러 노동조합처럼 지속해서 노력하는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노동자들만 노력한다고 완전히 해결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보건업은 근로기준법이 개정된 시끄러운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노동시간 특례업종입니다. 교대·야간근무를 하는 보건의료노동자는 건강 측면에서 노동시간이 오히려 더 짧아야 하며, 유럽 등 대부분의 해외에서는 보건업도 노동시간 규제의 예외가 아닌 점 등을 고려하면, 간호사의 장시간 고강도 노동·인력 부족 등을 해결하기 위한 국내 법 · 제도적 변화는 가능하며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학교와 병원도 신규 간호사 교육의 내실화, 직무스트레스 및 감정노동관리, 이직률 감소를 위한 정책 그리고 학생 때부터의 노동안전보건 교육 등 다방면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체념 · 이직 · 퇴사 그리고 죽음 이외에, 가치 있고 즐거운 병원 간호사 생활은 실현 가능한 목표이며, 같은 병원 동료로서도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언론보도] [커버스토리-노동자 건강진단을 진단한다] 고장 난 직업병 경고등 특수건강진단 (매일노동뉴스)

[커버스토리-노동자 건강진단을 진단한다] 고장 난 직업병 경고등 특수건강진단진단비용 내는 사업주 눈치 보기로 부실 키워 … 사후관리 안되는 반쪽짜리 진단 한계
문재인 정부가 2022년까지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공약했지만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지난해 산재사망자는 2016년보다 10.1%(180명) 증가한 1천957명을 기록했다.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2280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피부병 생겨도 대체 어렵다던 금속가공유가 바뀐 사정 /2016.2

피부병 생겨도 대체 어렵다던 금속가공유가 바뀐 사정


이선웅 후원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몇 달 전, 같이 보건관리대행을 나가는 간호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한 사업장에서 직업성 피부질환이 생긴 것 같으니 의사방문을 예정보다 빨리하자는 것 이었다. 며칠 후 사업장을 방문하여 노동자들을 면담했다. 태양광 전지를 만드는 곳이었다


피부증상자는 모두 6개월 전 새로 생긴 웨이퍼 공정의 노동자들이었고, 전체 웨이퍼 작업 노동자 35명중 10명에서 증상이 발생했고, 이 중 일부는 현재도 증상이 있었다. 증상은 대부분 팔 부위에 금속 가공유가 튀어 생긴다고 하였다. 대개 1~2cm 크기의 붉은 발진이 생겨서 가렵다가, 노출이 없어지면 사라졌다. 하지만 오래 남아있던 경우, 약국에서 연고를 사서 증상을 조절한 분도 있었다. 또 정비작업 시 다리에 대량으로 묻은 한 분은 범위가 넓고 증상이 심해 피부과 진료를 받았으며, 다행히 조장이라 관련 업무를 스스로 그만두고 나서야 호전되었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공정에 투입된 직후부터 석달 사이에 주로 증상이 생겼는데, 주기적 정비 과정 중에 묻는 경우가 많다고 하였다. 이전에 쓰던 토시는 효과가 없었고 열흘 전부터 몇몇 증상자에게 제공된 신형내화성 토시는 효과가 있어 이를 사용한 분들은 증상이 호전되기도 하였다.


노동자들은 그동안 사업장에 이에 대한 조치를 요구하지 않고, 스스로 조심하여 작업하거나 개인적으로 치료하다가, 증상자가 여럿임을 뒤늦게 알게됐다. 그래서 지난달에야 안전관리자의 현장방문중에 얘기하여 보건대행기관에 전달된 것이다. 증상 양상으로 볼 때 자극성 접촉성 피부염으로 판단 되었고, 노출이 차단되면 증상도 비교적 잘 호전되는 것으로 보였다. 얼마 전부터 강화된 보호구 착용으로 증상자 수는 최근에 줄어든 것 같았고, 상담 시 발진이 남아있던 세 분도 다행히 불편감이 가벼워 노출만 피하면 호전될 것으로 보였다. 물질안전보건자료를 확인해 보니, 신규 웨이퍼공정의 금속 가공유에 포함된 항균제 성분 이소티아졸론이 원인으로 생각됐다. 이는 일반적인 절삭유 성분은 아니고, 부식성이 매우 강하여 피부에 화상을 일으킬 수 도 있는 강력한 피부자극물질이었다. 또 피부, 호흡기 알레르기 가능성도 보고되어 있어, 다른 질병 발생도 걱정되었다.


현 상태에서 질환의 치료요양보다는 원인 차단과 제거가 중요하니, 전 웨이퍼 공정 노동자에게 내화성 토시, 앞치마, 고글을 지급하여 착용하도록 하였고, 피부접촉 즉시 세척이 가능한 현장 세척실 설치를 권고하여 담당자도 약속하였다. 그렇지만, 원인 물질의 대체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는 거의 최초로 도입된 공정이라 방법이 없다고 했다. 현재 노동자들의 증상이 심하지는 않지만, 발생자가 많고, 사고로 심하게 피부나 눈에 노출될 경우 위험성이 크고, 다른 질환의 발생 가능성도 있어 근본적으로 대체물질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했으나, 담당자는 공정상의 불가능함을 얘기할 뿐이었고 상부에 보고할지도 의문스러웠다.


나는 직업성 피부질환은 수시건강진단 항목에 해당하고 노동자 개인, 노동자 대표, 보건관리대행기관 등이 건의하면 피부증상자가 특수검진을 받고 이에 대한 사후관리 보고를 노동부에 해야 한다고 했다. (사업주가 특수건강진단 대상업무에 노출되는 근로자중 직업성 천식, 직업성 피부질환 증상을 호소하는 근로자에 대하여 실시하는 건강진단으로 근로자가 직접 요청 근로자대표 또는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 당해 근로자 대신 요청 당해 사업장의 산업보건의 또는 보건관리자(보건관리대행기관 포함)가 수시건강진단을 건의하는 경우 시행할 수 있다.) 사실 수시건강진단을 해도 원인파악이나 사후관리는 같기 때문에 이 건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고 실제로 건의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수시건강진단 얘기를 하니 담당자는 좀 더 심각히 받아들였다. 나는 두 달 안에 증상자가 없어지지 않거나, 새 증상자가 생기면 수시건강진단을 하기로 하고 대체물질 개발은 가능한 빨리 조치하며 이에 대해 매달 확인하겠다고 했다. 다음 달 내화성토시와 보호구가 전부 지급되었고 세척실도 설치되었으며 신규 증상자는 없었다.


두 달 후 상담 시, 세척실이 도움되어 증상자는 거의 없었는데, 절삭유가 묻은 작업 셔츠를 하루 이상 입을 경우 가슴에 증상이 생겼던 경우가 두 명 있었다. 이에 매일 작업복을 교체하라고 안내했다. 물질 대체는 계속 어렵다고 했다. 다음 달, 증상자는 더는 없었으며 다른 질병도 다행히 발견되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공정상 물질 대체가 불가능 하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수시건강진단의 필요성도 스스로 잊고 있었다.


그런데 몇 달 후 위생기사로부터 그 사업장이 물질을 대체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피부 질환 때문이 아니라 원가절감을 목적으로, 이미 시험가동 중이라고 했다. 다행히 운 좋게 예전보다 안전한 물질로 대체되긴 했지만, 결국 나는 노동자들의 건강권이 이윤에 의해 무시되는 현장 속에 같이 있었던 셈이다. 물질 대체를 좀 더 적극적으로 요구하거나 수시건강진단을 시행하여 노동자 건강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을 더 인식시켜야 했다는 아쉬움이 들었고, 다음에는 사후관리를 위해서 뿐 아니라 재발방지를 위해서도 직업성 피부질환이나 천식의 경우 수시건강진단을 적극적으로 건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성 피부질환은 증상이 약해 개인적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고, 이 사례와 같이 집단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알려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근본적인 현장 관리를 위해서는 노동자들 역시 수시건강진단을 요구하거나 보건관리대행 기관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꼭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너무 흔한 산재은폐와 직업병의 은폐 /2015.10

너무 흔한 산재은폐와 직업병의 은폐


조성식 회원,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얼마 전 특수검진 시, 한 노동자에게 직업병에 해당하는 D1 판정을 하였고, 얼마 후 그 사업장의 사업주에게 항의와 함께 판정을 바꾸어 달라는 부탁을 들었다. 그 사업장은 자동차 휠을 만드는 사업장의 사내하청 회사였다. 작업 중 소음 노출 수준이 높고, 소음으로 인한 직업성 난청도 적지 않게 발생하는 사업장이었다. D1 판정을 한 노동자의 경우, 한쪽 귀는 소음 노출로 인해 생기는 감각신경성 난청과 중이염으로 인한 전음성 난청이 동반된 혼합성 난청으로 직업성 소음 노출로 인한 소음성 난청이 존재하였기에 직업성 질환으로 판정을 내렸고, 다른 쪽 귀는 '소음성 난청 주의'에 해당하는 C1 판정을 하였다. 하지만 사업주는 이 노동자가 중이염의 병력 때문에 소음이 난청이 아니니 일반질병(D2) 판정으로 내려달라며 항의를 동반한 부탁 전화를 한 것이었다.


현재 특검 제도는 직업병 발견의 측면에서 그리 잘 작동하고 있는 제도는 아니라고 판단된다. 현재의 특검 제도가 진폐증과 소음성 난청의 조기 발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도 하고, 직업성 질환의 경우 잠복기가 긴 질환이 많은데 이를 적절한 검사로 찾아내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또한, 현재의 검사 항목이 부실하거나 부족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의 2013년도 근로자 건강진단 실시결과를 보면, 특수검진 후 7,804명의 노동자에게 직업성 질환이 발견되었고, 이중 소음성 난청이 7,388명, 진폐 관련성 질환이 162명이었다. 이 두 질환의 비율은 발견된 전체 직업성 질환의 95%를 넘어선다. 이처럼 직업성 질환은 특수 검진을 하더라도 소음성 난청과 진폐증 이외에는 잘 발견되는 않는 것이 현실이다.


▲  2013년도 특수검진결과에서의 직업성 질환의 질환별 유소견자 수 (%)


또 한편 특수검진은 사업주의 부담으로 검사가 진행되고, 대다수 특수검진기관은 사립의료기관이다. 따라서 특수검진기관에서 일하는 의사들은 전문가로서 성심껏 직업병을 발견해야 하기도 하지만, 비용을 지급하는 사업주의 눈치를 안 보기는 어려운 것이 또한 현실이다. 위와 같이 사업주가 항의 섞인 부탁 전화를 한 건 검진비를 지급한다는 갑의 위치를 이용해서 압박하려는 의도로 판단된다. (하지만 필자는 판정을 바꾸지는 않았다.) 이 회사의 경우 원청회사에 노동조합이 있었고, 원청 노동조합에서도 판정번복을 원하는 것 같지는 않은 눈치였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없는 회사는 상황이 더 어렵다. 노동조합이 없는 회사는 사업주가 검진기관을 차기 연도에 쉽게 변경할 수 있으므로, 해당 검진기관에서 일하는 의사들은 이 같은 전화가 상당한 위협이 된다. 


소음성 난청의 경우는 근로자 건강 실무지침에 직업성 난청에 해당하는 데시벨까지 명시되어 있어 판정을 비교적 명확하게 내릴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대다수의 직업성 질환은 노동자의 증상에 기반을 둬 판정을 내리게 되어 직업성 질환을 놓치지 않을까 고민을 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업주가 항의를 할 경우 진단을 놓칠 수도 있겠다는 판단도 하게 된다. 이처럼 사업주의 부담으로 진행되고 사업주가 임의로 검진기관을 바꿀 수 있는 경우, 특히 노동조합이 존재하지 않거나 힘이 미약한 경우에는 더욱더 사업주의 압력으로 발견된 직업병도 은폐되기 쉬운 것이 21세기 한국의 현실인 것이다


사고로 인한 산업재해도 언론에서도 몇 차례 보도되었듯이 광범위한 은폐가 일어난다. 심지어는 응급한 상황인데도, 산재 발생을 숨기기 위해서 119구급차를 부르지 않고 응급환자를 개인 트럭으로 수송하거나, 지정병원(이 경우 산재가 아니라 공상 처리해주는 병원)의 차량을 불러서 이송하는 경우가 흔한 것이 현실이다. 이 같은 사고성 재해로 사망하는 노동자가 한해 1,000명이 넘고 이조차도 은폐된 숫자이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수많은 산재가 발생하지만 많은 수가 은폐되고 있다. 또 한편으로 많은 유해 작업과 위험작업을 원청이 아닌 하청 업체·중소 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하고 있고, 이들 노동자에서 재해와 직업성 질병이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이 같은 산재 은폐를 막고 작업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적절한 개입 수단이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산재 은폐를 막고 작업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노동조합과 같은 노동자의 조직이 중소기업과 하청사업장까지 확대·강화됨으로써 산재 은폐를 하지 못하게 감시하고 작업환경을 개선하도록 사업주를 압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산업재해 은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하며, 중대 산업재해에 대해서 사업주를 비롯한 경영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