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리포트] 특성화고 실습실 유해환경 개선을 위한 조사 및 분석 연구 / 2019.02

[연구리포트]

 

특성화고 실습실 유해환경 개선을 위한 조사 및 분석 연구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연구 배경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SKY 캐슬이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이제 학벌도 계급과 계층에 따라 결정된다고 하지만, 한국 사회 누구도 대학 서열, 학벌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 비하면 특성화고 학생들의 문제에 대해서는 참 관심이 적은 편이다. 201711월 제주에서 전공과 관련 없는 생수 업체에서 특성화고 이민호 씨가 현장실습 도중 사망한 것을 계기로, 교육부는 조기취업형 현장실습을 폐지하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제도 변경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난 1월 사실상 조기취업형 현장실습을 부활시키겠다는 제도 보완책이 나왔다. 2017년 한 해에만 2명의 고등학생이 현장실습 도중 사망했고, 이 때문에 제도가 바뀌었다는 것은 다들 잊은 듯하다. 농담처럼 교육계와 우리 사회의 관심은 인문계 고등학교>초등학교>중학교>특성화고등학교 순이라고 자조하기도 하는데, 이래서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특성화고 학생들의 실습실 환경을 보면 이런 자조가 농담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특성화고 학생들은 실습실에서 상당 시간 교육을 받고, 전문교과 교사들은 가르치는 업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특성화고 실습실은 일반적인학습 환경으로서 학교보건법에서도, 교사가 일하는 일터로서 산업안전보건법에서도 전혀 관리받지 않고 있다. 2016년 한 기계과 교사의 제보로 처음 특성화고 교내 실습실의 환경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구소에서는 서울노동권익센터와 서울성모병원의 지원을 받아 서울시 내 2개 특성화고의 실습실 환경을 조사했다.

 

  당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일반 사업장 노동자들이 노출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유해물질에 교사와 학생이 모두 노출되고 있었다. 기계과 용접 실습의 경우 소음은 TWA79.8~87.1 dB(A), 용접 흄 및 분진은 1.56~5.86 mg/이었다. 자동차과의 경우 소음은 72.1~86.4 dB(A), 용접 흄 및 분진은 0.92~2.72 mg/이었다. 이는 조선소 용접작업자나 자동차 정비사업소 작업환경측정 사례와 유사한 수준이다. 중금속 및 유기용제 노출 수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런 노출 수준은 산업안전보건법상의 노출 기준보다는 낮지만, 통계적으로 보면 노출 기준을 초과할 때도 있으며, 당장 노출을 줄이기 위한 행동이 필요한 노출 수준을 웃도는 수준이다. 2016년 이 연구 결과를 서울시교육청에 알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고, 결국 2018년에 서울시교육청이 특성화고 실습실 작업환경 실태 조사연구 용역을 내게 되었다. 이 연구를 통해 더 다양한 특성화고와 실습실의 실태를 드러내고, 특성화고의 특성에 맞는 교사와 학생의 안전보건 관리 체계를 제안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연구 결과 1 : 학교 실습실,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

 

전문교과 교사들이 상당한 수준의 유해물질에 노출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학교 실습실은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상 교육서비스업은 시행을 유보하거나 제외 조항으로 되어 있는 영역이 많다. 그래도 가장 기본적인 안전보건 조치 중 하나인 작업환경측정, 특수건강진단 등은 적용 제외가 아니다. 물론 지금까지 특성화고 내 실습실과 전문교과 교사를 대상으로 이런 법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조차 거의 없었다. 학교 환경 측정 시에도 실습실은 제외하고 조사를 하기도 한다.

 

특성화고 실습실 작업환경측정은, 청소년이 함께 노출된다는 점을 고려해 적정한 노출 기준을 마련해서 진행해야 한다. 전문교과 교사들의 건강을 위해서 특수건강진단 적용 의무 여부를 확인하고, 적절한 수준에서 실시해나갈 필요가 있다. , 교육서비스업에서 실시 의무가 없는 안전보건교육, 보건관리자 선임,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운영 등도 교육청 단위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특성화고 학생에 대해서는 안전교육에 산업안전보건교육을 포함하여 강화할 뿐 아니라, 교사들도 노동자로서 필요한 안전보건교육을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현행 학교보건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학교 보건위원회에 노동안전보건 담당자가 들어가 역할을 하는 방안도 모색할 수 있다.

 

연구 결과 2 : 실습실 환경 개선과 교육 강화, 전문인력 선임 필요

 

  연구 중 가장 중요한 과정은 실습실 방문 조사였다. 2개 산업정보학교, 5개 공업고등학교를 방문학교로 선정하였다. 대표적인 학과들은 모두 한군데 이상 학교에서 방문이 가능하도록 하였고, 방문 시 해당 학과에 속한 실습실을 가능하면 모두 관찰하도록 했다. 한 개 학교를 제외하고는 모두 2인의 연구진이 방문하여, 짧은 시간 현장을 돌아보는 대신 놓치지 않고 문제를 발견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방문 전 연구진 회의를 통해 특성화고 실습실 현장평가용 위험성 평가 도구를 만들었다. 안전보건 체계, 피난수단 및 안전 장비, 개인보호장비, 위험정보전달, 환기장치 등 총 9개 영역에 대해 각각 2~5개 문항으로 구성했다. 조사 이후 학교에서도 실습실 환경관리를 위해 활용되기를 바랐다.

 

학교 방문 결과, 안전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높아졌으나, 산업안전, 산업보건으로까지 확대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안전교육은 증가했으나 산업안전보건교육은 부족하고, 안전보건규정이나 화재안전설비는 갖춰져 있지만 산업안전보건 관련 설비는 미비했다. 

이를 개선하려면, 실습실 환경 개선과 안전보건증진 활동을 위해 실습 안전과 보건을 목적으로 하는 예산을 따로 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 비용 중 일부는 과목별로 필수적인 보호구를 제공하는 데 사용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학교에 따라 예산 규모와 환경 수준의 차이가 컸는데, 학교에 따라서는 간단한 호흡기 보호구 구입 마저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안전보건과 관련된 비용에 대해서는 프로젝트나 성과 중심의 접근 대신 보편적인 예산 배분이 필요하다. 

학교 실습실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안전보건 관점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현존하는 실습실에 바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 실습실이나 학교 신축 과정에서는 설계 단계에서부터 안전보건을중요 요소로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세안시설, 조도나 채광, 적절한 면적, 국소배기장치, 내장 안전 설비 등은 애초 설계 단계에서부터 충분히 고려돼야 할 것이다.

그나마 산업안전보건 분야에 부족한 관심마저도 특정 부분에 집중돼 있었다. 예를 들어, 화학물질 관리의 기본이 되는 물질안전보건자료에 대한 인지도는 매우 낮았다. 유기용제뿐 아니라, 용접봉, 납땜 실 등도 모두 화학물질로 다뤄져야 하고 물질안전보건자료 등을 갖춰야 하는데, 교사나 학생 모두 거의 인지하지 못 하고 있었다. 화학물질 격리, 밀봉, 문서관리 등도 잘되지 않고 있었다. 인간공학적 유해요인에 대한 인지도 역시 낮았다. 

더불어 과별, 학교별 유해요인 노출 및 실습실 환경에 차이가 매우 크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개선 과정에서 유해요인 노출이 많은 과, 고독성 물질 노출이 많은 과 실습실을 우선 개선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 실습실 개선을 개별 학교에 맡기는 방식보다, 교육청에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가능하다면 교육청이 계획을 수립해 순차적으로 개선해나가는 것이 효율적인 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였다. 일부 학교에서 돈과 시간을 들여 개선 활동을 했지만, 안전보건 측면에서 부적절하거나 효과가 떨어지는 방식을 채택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안전보건 전문가가 아닌 각 학교 교사들이 개선 활동을 책임지는 방식 대신, 교육청이 나서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실습실 환경만 개선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 보호구 착용, 안전작업 등 작업 관행과 문화를 바꿔나가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방편 중 하나로, 기능 및 자격 시험 평가 항목 점수 구성에서 안전 비중을 높이는 방안도 고민할 수 있다. 교사와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산업안전보건 교육을 점검하고 강화해야 하며, 학교 위험성 평가에 실습실을 포함시켜야 한다. 나아가 교육청 차원에서 실습실 안전보건 총괄하고 관리/지원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선임하여 이와 같은 과제를 추진해 나가는 방안을 고민할 것을 제안한다. 이런 전문인력 선임은 정책의 효율성을 높일뿐 아니라, 교육청이 특성화고 학생과 교사의 안전 보건 문제 해결을 중요한 문제로 보고 있다는 신호가 될 것이고, 현장에서의 변화를 추동하는 힘이 될 것이다.

 

후속 과제


 이번 연구는 특성화고 실습실 환경 조사에서도 아주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실측도 없었고, 문제의 실마리를 드러낸 정도였다. 범위를 더 넓혀서 특성화고 교사의 노동건강권, 특성화고 학생들의 건강권 전체의 과제로 생각해본다면 앞으로 할 일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학교 실습실 안전보건을 증진하고 교사와 학생의 건강권을 확보하기 위한 후속 연구들이 진행되어야 한다.

 당장 산업안전보건법 이행을 위한 과제들이 있다. 표본 학교를 대상으로 실습 중 유해물질 노출 수준을 실제로 측정해 평가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를 통해 실습실 유해환경 평가모델을 만들어, 작업환경측정처럼 정기적인 관리와 감독을 해나가야 한다. 대표성 있는 표본 학교의 교사를 대상으로 특수건강진단을 시행하고 특수건강진단 시행 매뉴얼을 제시할 필요도 있다. 기계과, 전기과, 자동차과, 미용과 등 주요 전문과별 실습실 표준모델을 개발하여 각 실습실의 설계, 건축, 장비 설치, 환기설비, 유지 보수와 관련한 표준을 선정하고, 이를 근거로 학교별로 실습실에 개선과제를 적용하도록 도와야 한다.

 이번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서울시 교육청에서 특성화고 유해환경 개선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구에서 제안했던 것처럼 교육청 차원에서 개선 활동을 직접 진두지휘하지 않고 개별 학교의 개선 활동이 된 점은 아쉽고, 제안된 다양한 후속 연구와 사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매우 안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연구 결과가 서울시교육청에 특성화고 실습실 상황까지 고려한 산업안전보건 체계 수립의 근거가 되기를 기대한다. 향후 각 시도교육청에서도 포괄적인 산업안전보건 체계를 수립하고 운영하는 데에 본보기가 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노동시간 에세이] 처음 만난 일터에서 일 때문에 생을 마감한다,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자살 / 2017.9

처음 만난 일터에서 일 때문에 생을 마감한다,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자살

최민 상임활동가, 과로자살 연구팀

잇따른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자살

이미 잘 알려진 세 건의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자살 사건에서 얘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마이스터고등학교 전자과에 재학 중이던 A 씨는 식품 공장에서 현장실습을 시작했다. 처음 해 보는 조리육 포장 일, 힘들어도 참고 하던 중 회식 때, 나이가 많던 입사 동기에게 공개적으로 머리를 밟히고 뺨을 맞는 일이 있었다. 가해자는 폭행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고 협박했다. 주말 동안 회사를 떠나 집에 있는 동안, 용기를 내 회사에 신고하고 현장실습을 중단하기로 결심했지만, 그 뒤 벌어질 상황에 대한 압박감이 너무나 컸다. ‘저는 너무 두렵습니다.’라는 글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회사 기숙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¹

B 씨는 인터넷쇼핑몰을 전공했지만, 취업률을 높여야 하는 학교에서는 식당 취업을 추천했다. 하루 11시간 미만 근로를 한다는 ‘근로계약서’를 썼지만, 실제로는 이러저러한 ‘벌칙’ 명목으로 2시간 먼저 나오는 일이 잦았다. 정리하다 보면 퇴근 시간인 밤 10시를 넘기는 것도 일쑤, 보통 11시나 11시 반쯤 퇴근했다. 오픈 준비와 마감을 모두 해야 하는 ‘오마벌칙’은 막내인 B씨에게만 적용됐다. 취업 직후부터 시작됐고, 전체 근무일 중 절반 정도에 해당했다. 언어폭력이나 성적 괴롭힘도 심했다. 고인은 친구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에서 자신이 하는 일이 “욕먹기”라고 농담처럼 얘기했다. 차라리 입대 해야겠다 결심하고, 상사에게 그만두겠다고 말한 그 날, 그는 선배에게 크게 꾸지람을 들은 뒤, 오후에 매장을 나가 생을 마감했다.

C 씨는 통신사 고객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했다. 해지방어부서에서 일했다. 매일 달성해야 하는 통화 숫자와 해지방어율이 정해져 있었다. 회사는 매일 아침 전체 센터의 실적을 공지하며 수시로 압박했다. 각자의 실적은 상대평가로 성과급 결정에 반영되었다. 수습 기간에는 3등급이었지만 정식근무 이후에는 선배 노동자들과 경쟁하게 되면서 실적은 9등급, 실적급은 4만 원에 불과했다. 해지를 방어하는 동시에 상품 판매 영업도 해야 했다. 이 역시 매일 실적 목표가 제시되고 있었고, 실적을 못 채우면 업무종료 후 남아서 영업 전화를 돌리거나 영업을 잘 한 사람의 콜을 듣고 공부해야 했다. 고객들에게 심한 말을 듣고 힘들어하는 날도 있었지만, 고객들을 응대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보다 실적을 채우지 못해 상사로부터 받는 압박이 더 커보였다고 한다.²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했지만, 부모는 참고 다녀보라고 다독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틀 뒤 고인은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현장실습생에게 가해지는 이중의 괴롭힘³

A, B 씨의 사례에서는 모두 일터 괴롭힘이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일터 괴롭힘은 일터에서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위해하거나 사회적으로 배제하거나 누군가의 일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행위를 뜻한다. 일터 괴롭힘 연구자들은 공통으로 일터괴롭힘의 바탕에는 권력 불균형이 놓여 있다고 강조한다. 일터 괴롭힘의 피해자는 지위가 낮거나, 사회적 약점을 가지고 있거나, 소수자인 경우가 많다. 피해자는 보통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고, 괴롭힘의 과정에서 그 열등한 지위가 더욱 공고해진다.

그런 점에서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은 일터 괴롭힘의 대상이 되기 쉽다. 무엇보다 사회에 만연한 나이주의, 청소년에 대한 무시와 차별을 들 수 있다. 청소년의 나이에 따른 차별에 근거한 일터 괴롭힘은 현재진행형이다. 방화문을 만드는 업체에서 일하는 한 현장실습생은 한 달 중 1주일가량 잔업을 하는데, 언제 어떻게 잔업을 하는지 미리 알 수가 없다. 퇴근할 즈음 갑자기 ‘오늘 야근해라’고 하면 거절하지도 못한다. 이렇게 갑자기 야근 당하는 사람들은 모두 ‘젊은 애들’이다. 갑작스러운 연장 근무를 ‘명령’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이 청소년이고, 어린 노동자는 어른 말씀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증권회사에서 일하는 현장실습생의 동기는, 다른 직원들이 제출한 서류를 검토하는 역할을 한다. 보완이 필요해서 ‘보완하세요’라고 쪽지를 보냈더니 ‘보완하세요?? 너 지금 몇 살이니?’라는 답을 받았다. 동기의 선배가 대신 사과했는데도, 상대방은 사과하지 않았다.

나이 어린 현장실습생은 성인보다도 쉽게, 일을 제대로 못 한다거나, 알려줬는데도 왜 따라 하지 못 하냐는 압박과 폭언, 폭력의 대상이 된다. 자동차 정비업체에서 세차를 맡은 현장실습생은 첫 출근 했던 날의 기억을 묻자 ‘욕을 많이 먹었다’고 답했다. 첫날이니까 ‘당연히 잘 못 하고’, ‘잘 못 하니까 욕먹으면서 배우는’ 날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청소년이라는 점 외에 ‘현장실습생’이라는 점은 이들이 일터괴롭힘에 더 취약하도록 강제한다. 현장실습생 취업률을 유지하려고 하는 학교 정책은 오히려 일터괴롭힘을 호소하는 학생에게 ‘참으라’고 강요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다른 청소년 노동자보다 현장실습생을 일터괴롭힘에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한 현장실습생의 담임 교사는 SNS로 ‘회사를 그만두면 학교에 대한 배신’이라고 문자를 보냈고, 선임과의 갈등으로 퇴사를 원하는 학생이 세 차례나 요청할 때까지 복교 요청을 묵살했다.

현장실습 자살자들의 자기평가 과정

일터 괴롭힘의 피해자는. 처음에는 열등해서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 아니었더라도 괴롭힘의 과정에서 ‘괴롭힘을 당할만한 사람’이 되어간다. 예를 들어, 일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고 일에 투입해버리면, 그 사람은 일을 못 하는 사람이 된다. 학력이나 성별 때문에 차별당하던 사람은 이를 비판했을 때 조직에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으로 매도되거나, 차별을 못 견뎌 일을 그만두면 참을성 없는 사람으로 평가된다. 그런 악순환 속에서 일터괴롭힘 피해자는 자신감을 잃고 위축되며, 한 현장실습생 인터뷰에서 보듯이 ‘자기 자신이 싫어지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스스로를 실패자로 평가하고, 자신이 쓸모없거나 부족한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과정은 자살자가 자신의 삶이 무가치하다고 인식하고 자살에 이르게 되는 자기 인식 과정과도 유사하다. 그리고 이런 자기 평가 과정은 일터 괴롭힘에 시달리던 A, B 씨 사례뿐 아니라 과도한 실적 압박에무방비로 노출됐던 C 씨의 사례에서도 마찬가지로 발견된다. 사실 전공과 전혀 관계없는 일터에 ‘실습생’ 신분으로 취업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기 쉽게 만드는 밑그림이 된다. 거기에 C씨가 다녔던 전체 회사 차원에서 강도 높게 추진되는 실적 경쟁이나 압박이 이런 부정적인 자기 평가를 악화시켰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박형민은 일부 자살에는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해 ‘성찰성’이 담겨있다고 말한다. 이 경우 자살자는 자신의 삶과 죽음을 숙고하여 문제 상황을 인식하고, 자신과 삶에 대해 평가를 내린다. 이 과정에서 자살자는, 자신이 더 이상 살아갈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또는 자기 죽음을 통해서만 문제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를 내리면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⁴⁾

청소년은 특히 성인에 비해 사회적 자원이나 경험, 여유가 부족한 경우가 많아 다른 선택지에 대한 사고가 제한적일 수 있다. 이 경우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자신이 죽음을 통해서만 문제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왜곡된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 청소년 자살은 특히 그들이 가진 자원이 빈약한 상황에서는 더욱,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좌절될 때 성인에 비해 더 심한 스트레스와 좌절을 경험한다는 기존 논의도 숙고해봐야 한다.⁵⁾

실제로 A 씨의 경우 회사에 직장 동료의 폭력을 고발했으나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채 문제 상황을 직면해야 했고, B 씨의 경우 사직을 결심했으나 이에 대한 직장 상사의 강력한 압박이 있었다. C 씨도자살 이틀 전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고, 그날 자살 기도가 있었지만, 부모님은 힘들어도 이겨내 보라고 응대했다. 자살을 ‘차악의 선택’, 능동적인 행위라고 볼 때, 비교적 저임금에 구하기 어렵지 않은 일터에서 일하던 이들임에도, 죽음을 결심한 순간 다른 선택지가 없는 처지처럼 느꼈는지에 대해 공감할 수 있다.

현장실습생의 자살을 함께 생각하기

파견형 현장실습 그 자체가 특성화고 학생들의 이런 부정적인 자기 평가를 부추기고, 대안을 구하는 행위를 억누르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실습생을 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일터에, 실습생이라는 취약한 상태로 내보내지고, 취업률을 유지하기 위해 학교는 사직을 가로막는다. 부모와 교사는 흔히 ‘참아보라’는 격려 이외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 한다. 이런 다양한 모순이 응축된 파견형 현장실습을 폐지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그 외에도 우리에게는 남아있는 질문들이 있다. ‘청소년’이자 ‘실습생’에게 가해지는 노동권 침해, 처음 맞닥뜨린 일터에서 겪은 압력과 스트레스, 가족과 학교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폭력적인 질서. 이런 어려움은 다시 어떤 경로를 통해 우울감, 자살사고, 자살 행동으로 이어졌을까?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저임금의 일자리, 졸업 때까지만 버티면 되는 일자리, 돌아갈 학교도 아직 남아 있는 그들은 왜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

혹시 현장실습생 외에도 많은 청소년들이 일터에서의 문제 때문에 자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이건 정말 ‘특성화고 현장실습생’들에게 좀 더 고유한 문제일까? 대학신입생이나 사회초년생의 자살과 한국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의 자살은 어떤 측면에서 유사하고 어떤 측면에서 다를까?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의 자살을 되짚어 보는 과정은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에서 출발하여 일하는 청소년의 노동 과정과 그 과정에서 부딪치는 문제들, 이로 인한 자기 평가와 자기 인식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모두 찬찬히 들여다보는 과정이 될 것이다. 청소년 노동자, 실습생 노동자로서의 노동권 침해와 이런 침해가 자살 사고나 자살 행동에 이르는 과정을 좀 더 세밀히 들여다보면서, ‘청소년 자살’ 연구에서 다루지 못했던 현장실습 노동과정의 경험과 그 고통, ‘현장실습 대책 논의’에서 다루지 못했던 ‘자살에 이르는 심리적, 인지적 경로’를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