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부터 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평등한 일터에서 ‘자율성’은 어떻게 압박이 되는가 / 2020.02

평등한 일터에서 자율성은 어떻게 압박이 되는가 : 출판사 편집자 차소영 님 인터뷰

 

지안 상임활동가

 

인턴·실습 노동이란 다른 형태의 임금노동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특이한 방식의 노동이다. 해당 기업에 정식으로 고용되는 것이 아닌데다가 교육·경험 제공·경력의 이유로 보조금 수준의 저임금 지급 또는 무임금도 정당화 된다. 또 인턴·실습 노동자는 교육과 경험, 경력, 고용 가능성이라는 명목 하에 저임금과 각종 열악한 처우를 감내해야 한다. 이러한 불안정 일자리는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 자체로도 문제적이지만, 나아가 경력·경험과 노동조건, 권리의 문제들이 상호 교환되는 것처럼 생각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더욱 비판이 필요하다. 인터뷰를 통해서 일하는 과정에서 인턴·실습 노동자들이 어떤 위치에 서게 되는지, 그 위치는 어떤 감정적 문제들을 낳는지를 중심으로 인턴 노동문제를 볼 수 있었다.

 

지난 호 인터뷰이들의 경우에는 방학 기간을 통해 졸업 의무사항인 대학생 현장실습을 나갔던 상황이었다면, 이번 인터뷰를 통해 만난 출판사 편집자 차소영님은 대학 졸업 이후 첫 직장으로 대형 출판사의 계열사에서 인턴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졸업 이후 일자리를 구하는 입장인 만큼 인턴 일을 하게 된 배경과 동기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4대 보험도 없었으며, 연차·병가도 없어 눈치를 보며 부탁을 해야 했지만, 워낙 저임금 일자리였지만 신입직원을 잘 뽑지 않는 출판업계에서 경력을 쌓으려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하는 과정에서도 직장 내 관계들, 이 일자리가 정식 고용으로 이어질 것인지 등등의 문제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지난 130일 첫 직장에서의 인턴 경험과 현재 출판노동자로써의 노동경험을 듣기 위해 2015년부터 4~5년 간 출판사 편집자로 일해 온 차소영 님을 합정역 인근에서 만났다.

 

자율성과 마감기한 사이, 출판노동자의 업무 스트레스

 

차소영님은 a출판사 인턴으로 10개월을 근무한 이후 계약연장으로 6개월 정도 더 근무를 했다. a출판사를 그만둔 이후로는 b, c출판사의 정규직 직원으로 일했다. 인턴으로써의 노동경험의 특성을 비교하기 위해 우선 편집자들의 노동에 대해 들어보았다. 먼저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편집자들이 어떤 노동과정을 거치는지 물었다.

 

편집자가 하는 일은 소속 출판사나 분야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긴 해요. 예를 들어 문학 분야의 경우는 저자와 관계를 맺고 쌓는 일이 중요하다면, 인문사회 분야는 번역서가 절반이기 때문에 해외 신간 서적을 조사·검토하고, 역자를 찾는 일이 중요하죠. 제가 일하는 인문사회 분야의 경우 원고가 들어오면 아주 기본적인 오탈자·오역 잡기부터 사실관계를 찾고 검토하는 역할을 합니다. 특히 역사서 같은 경우는 사실관계 확인이 매우 중요해요. 교정 단계 이후에 책이 만들어지면, 마케팅 자료를 마케터에게 넘겨주고 디자인 컨셉, 표지, 책의 판형 등 발주를 넣죠.”

 

출판사 편집자들은 2~3개에서, 많게는 4개 정도의 원고를 각자 담당하는 시스템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서 말한 작업과정이 한 번에 1권씩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한 편집자가 여러 개의 원고를 각각의 진행 단계에 맞춰서 작업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그리고 서로의 교정본에 대해 편집자 간 크로스 체크를 하는 과정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편집일이 담당 원고를 가지고 각자 작업하는 업무 특성이 있기 때문에 일의 자율성이 대단히 크다.

 

저는 인턴으로 일했던 당시에 기존 인턴 업무를 한 게 아니라 일반 사원과 똑같이 책임편집도 맡았어요. 당시 낮도 밤도 없고, 주말도 없이 야근을 정말 많이 했죠. 그런데 이게 참 까다로운 부분인 점이 편집 일이란 오역을 잡으려고 한번 원서 대조를 하면 한도 끝도 없는 일이예요. 한 문장 한 문장 단위로 확인을 할 수도 있고, 반대로 이상한 문장 정도만 골라서 확인할 수도 있어요. 그러니 적당히 교정을 보고 시간 내 마감만 맞추는 편집자들도 있죠. 그만큼 편집자 개개인의 역량과 노력에 기대는 부분이 커요

 

업무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자율성이 크지만 책이 예정된 시기에 원활히 출간되기 위해 필요한 마감기한이 엄격히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 마감에 대한 편집자들의 스트레스가 극심하다. 실제로 마감 기간은 가장 바쁜 시기이기도 하며 양적으로도 노동시간이 늘어난다. 특히 편집자들이 사무직 직군 중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대표적인 직종이라는 점에서 업무 연관 스트레스나 장시간 노동에 따르는 건강장해 문제도 질문했다.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교정 작업이예요. 3번의 교정 작업을 거치는데, 1교가 끝나면 검토한 내용을 저·역자에게 보내요. 이 코멘트를 얼마나 관철시키느냐가 해당 편집자의 역량이라고 볼 수 있죠. 3교까지의 교정 작업이 끝나고, 마지막 최종 체크를 하는 마감기간은 마지막 체크 단계라고 보면 돼요. 특히 차례나 소제목, 쪽수 등에서 오타가 나면 큰일이잖아요. 이미 3번에 걸쳐서 확인한 원고라고 하더라도 분명히 놓치는 경우가 생겨요. 그래서 마감 시기에 긴장하면서 한번 확인한 걸 두 번, 세 번씩 보는 거죠. 책의 내용을 읽는 게 아니라 그 안의 글자들을 전부 확인하는 단계예요. 얇은 책은 그나마 다행인데, 제가 인턴 때 편집했던 책은 무려 1400쪽에 달하는 역사서였어요. 그럼 확인하는 데만 이틀은 꼬박 봐야 하는 거죠.”

 

한편, 분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저·역자와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도 편집자의 중요한 업무다. 그렇지만 출판사 직원인 편집자와 저·역자의 위치란 이미 위계적으로 구성되기 쉽다. 특히 경력이 얼마 안 된 편집자와 이미 많은 책을 집필한 저·역자의 관계에서는 더 수직적인 관계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고, 그런 점에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책에 대한 코멘트 및 교정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어려움 때문에 업무스트레스를 호소하는 편집자들이 많다. 차소영 님 역시 편집자로 일하면서 경험한 건강 문제 중 업무 스트레스를 첫 번째로 꼽았다.

 

한번은 당시 일했던 출판사에서, 원로인 저자와 함께 주 1회 강연을 하고, 그 강의록을 가지고 묶어서 책으로 출판한 적이 있어요. 담당 편집자인 제가 매주 강의록을 교정해야 했는데, 강의록이 강의 전 날 밤에 도착하는 경우엔 밤새 교정을 보고 인쇄를 진행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교정한 원고를 원로인 저자가 맘에 들어 하지 않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 교정본을 본 저자가 새 강의록을 보냈는데, 교정 이전으로 싹 다 되돌린 내용인 거예요. 토씨 하나 고치지 말라는 거죠. 그 날 내가 일한 것에 대한 완전한 부정을 당했다는 마음에 화장실 가서 울기도 했고, 큰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종합하면 편집자의 업무란 저자와의 관계, 일의 자율성, 마감기한 등등 스스로 상황에 대응하고 조절해야 하는 역량이 중요하다는 업무의 특성이 있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특성들이 노동자 개인에게 부담이 되기도 하고 압박감으로 작용한다. 그렇지만 일을 조율할 권한이나 대응력이 없는 신입 직원이 이런 일을 담당해야 한다면 어떨까? 또는 정식 직원도 아닌 인턴 노동자가 담당했다면 어떨까? 직원도, 외부인도 아닌 애매한 지위와 더불어, 고용승계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평가 속에서 편집자의 자율성에 맡기는 업무들은 대단히 좋은 성과를 내야한다는 압박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책의 무게만큼 과중한 출판 노동자의 업무 스트레스

 

인턴 노동경험의 감정들: 불안, 경쟁, 굴욕감, 압박

 

차소영님이 일했던 a출판사는 매년 2명의 인턴을 뽑아 책의 보도자료를 작성하거나 편집장을 보조하는 역할을 10개월 동안 시킨 뒤, 2명 중 1명을 정직원으로 채용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정규직 전환의 가능성은 채용공고나 구두를 통해서 전달되지도 않았고, 관례처럼 해왔다는 모호함 속에서 당시 함께 인턴을 하게 된 2명은 자연스럽게 비/자발적인 경쟁 구도에 놓이게 되었다.


이번에도 똑같이 두 명을 채용했으니 한 명을 정직원으로 고용승계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당연히 들었죠. 같이 채용된 인턴과의 관계에서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갈등의 이유는 개인적 문제나 성격 차이 등일 수 있지만, 서로 경쟁하는 구도에 놓여있었다는 게 보다 근원적인 원인이었어요. 이미 경쟁관계 속에 있다는 스트레스로 다른 사람과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들도 더 곡해하게 되는 거죠.”

 

인턴 기간 동안 인사평가 등 고용승계와 관련된 평가제도가 있었는지 물었으나, 오히려 그런 평가 기준이 마련되어있지 않았고 편집장과 대표의 주관과 잣대에 고용승계가 달렸다는 점이 더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도록 한 원인이라고 답했다. 기준이 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일 외적인 요소까지 신경을 쓰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인턴 분은 성격이 아주 좋아서 모든 직원들과 친하게 지냈어요. 그런 게 절대 채용 여부에 결정적일 리가 없는데도 이상하게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미래를 생각해봤을 때 내가 고용승계가 되면 과연 다른 직원들이 좋아할까 이런 생각도 들고. 그럼 인턴이니까 다른 직원들이랑 더 잘 지내야 하는 걸까 하는 정말 막연한 불안감도 들고요.”

 

이 막연한 불안감은 10개월의 인턴 생활이 끝난 후에도 관례와 다르게 계약직으로 채용되면서 지속되었다. 그리고 결국 6개월 만에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많은 업무량과 경쟁 속에서 열심히 일한 결과로 계약연장이 되었음에도 스스로 관두게 된 이유를 물었다.

 

일차적으로 계약직으로 고용된 것에 대한 불안감이 컸고, ‘정규직이 될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고민과 희망을 또 다시 견디는 게 너무 힘들고 굴욕감이 컸어요. 계약연장 과정에서 편집장이 당시 인턴 공고에 명문대 출신자들도 많이 응시했는데, 그들이 원하는 일을 줄 수 있는지 확신할 수가 없어서 안 뽑았다, 학벌이 낮으니까 너 뽑은 거다이런 식으로 말했어요. 근데 그 말은 사실도 아니었어요. 그 전해에 인턴을 거쳐 정직원이 된 선배 한 명도 편집장이 말한 그 대학 출신이었거든요. 아무튼 저는 그 출판사의 유일한 계약직이 되었고, 임금도 인턴 때보다는 올랐지만, 신입사원 초봉보다 못한 돈이었어요.

정작 일하는 과정에서는 편집장은 제 역량을 의심한 적이 없어요. 학술서 같이 어려운 책들은 항상 다 저한테 넘겼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정규직이 다시 될지 안 될지 처분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는 게 너무 참담했어요.”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원래 인턴의 직무는 편집장, 편집자들의 보조적인 역할로 정해져있었으나, 차소영님은 채용 이후 인턴 직무에 배치된 것이 아니라 책임편집·외주한 결과물 최종 확인 등 일반 편집자들과 동일한 업무에 배치된 것이다. 심지어 처음 실무를 경험한 상황에서 인턴들에 대한 교육은 물론 기본적인 업무 인수인계조차 없어, 첫 편집을 하면서 옆자리 사원에게 물어가며 일을 시작했다. 게다가 원래 편집 과정에서 필요한 크로스체크과정도 없었다. 책 한권에 대한 책임이 온전히 자신에게 주어져 있다는 생각은 강한 압박감으로 작용했다.

 

인턴으로 일하는 동안 마감기간에는 밤에 불을 켜놓고 잘 정도로 큰 압박감에 시달렸어요. 제가 더욱 과도하게 긴장을 느낀 부분도 있는데, 그건 처음부터 전혀 훈련이나 교육이 안 된 채로 실무에 투입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실무 용어들도 하나도 못 알아듣는 상태에서 옆 사원에게 물어가며 엄청난 부담감에 시달리며 진행을 했어요. 그게 습관이 돼서 마감할 때마다 큰 불안감을 느낀 것 같아요. 마감 기한이 항상 촉박한 것도 한 가지 원인이고요. 출판사고에 대한 불안이 컸는데, 누가 크로스체크라도 해줬으면 부담이 좀 덜어졌을 것 같아요.”


일터에서의 불평등한 관계가 인턴·실습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게 문제

 

특히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는 이런 불평등이 인턴 노동자 개개인에게 어떤 감정적 문제를 주는지, 감정적 손상의 문제를 들어볼 수 있었다. 정규직 사원 앞에서 들었던 위축감, 사원복지와 회의구조에서의 소외로 인한 배제감, 인턴에게 쉽게 가해지는 폭언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지적되었다. 이 문제는 인턴, 실습이라는 제도가 일터에서 공식적으로 불평등한 관계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심화되고 있다.

 

물론 어느 직장이나 그 안의 관계가 평등하기란 어렵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사내 직급 간 격차뿐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 간의 차별들은 뿌리 깊은 일터의 불평등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연장선에서 인턴이라는 제도와 지위 역시 위축감과 압박감, 배제의 문제, 그리고 그것과 연관된 감정적 손상을 낳는다. 그러나 인턴노동의 경우 이런 모든 요소들이 불완전한 노동’ ‘경험, 경력의 기회라는 언어를 통해 정당화된다는 점이 가장 문제적이다. 이런 기제와 더불어 인턴노동자들은 어떤 경우에는 (노동조건 또는 불평등한 대우) 인턴이기에 감내해야하는 불공평함이 전제되고 어떤 경우는 (업무량, 장시간 노동) 동일한 한명의 직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이런 지점을 통해 어떻게 인턴이 저임금 인력으로 활용되고 있는지, 기업은 어떤 동기를 가지고 인턴제도를 유지하는지 차후의 인터뷰를 통해 더 밝히고자 한다.

 

[A-Z 노동이야기] 원고느님의 신성함을 알렷다? / 2014.11

원고느님의 신성함을 알렷다?
- 13년 베테랑 출판 기획편집자와의 인터뷰

 


정하나 선전위원

 

 

 

“당신에게 ‘책’이란?” 모 예능프로그램 MC가 초대 손님에게 하듯, 나도 다짜고짜 이렇게 묻고 싶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는데, 장장 13년 동안 책 만드는 일을 계속 해 온 그녀였기 때문이다. 일하는 출판사는 몇 번 옮겼지만, 딱히 쉰 적도, 다른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만나자마자 제일 먼저 이 질문부터 하고 싶었다. 대학 졸업 후 30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 출판계에서 일하고 있는 유지현(가명) 씨. 대체 이 사람에게, 책은 어떤 의미일까?

 


Q. 와! 대체 13년 동안이나 출판사에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신 건가요?


A. 저도 깜짝깜짝 놀라요. 이러다가 출판계의 조상, 화석이 될지도? 하하하. 계속 책을 만들고 있었죠 뭐. 출판 편집자(에디터)이니까요. 전반 7~8년은 주로 원고 교정·교열을 했어요. 저자가 완성해서 가져온 원고를 보고 문장을 잘 다듬어서 책으로 낼 수 있게 하는 일이요. 그러다 어느 시기부터 출판 분야에서 ‘기획편집’에 대한 요구가 훨씬 커졌고 저도 경력이 쌓이면서 업무가 진화해 갔어요. 어떤 책을 내고 싶은지 구상을 한 후 신간 기획서를 내고 회의를 거쳐 승인이 떨어지면, 저자를 섭외하고 원고 받아 교정 교열하고, 책으로 만들어서 판매 홍보하고. 정말 책 한 권을 만들어서 독자 손에 전달하기까지 필요한 전 과정을 다 핸들링하는 일이지요.

 

 

Q. 흔히 출판 쪽은 박봉이고 일도 힘들다고 하던데, 무슨 마력이 있었나 봐요, 계속 편집자의 길을 가시는 걸 보니. 책 만드는 일이 그렇게 재미있나요?

 

A. 처음 출판사 쪽으로 취업 진로를 결정할 때에는 이쪽 일이 엄청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고요. 칼럼 같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아직 잘 모르겠으니 배워야겠다, 출판사에서 일하면 돈도 벌고 글 쓰는 법도 배울 수도 있겠거니 하면서 문을 두드렸어요. 첫 직장은 정말 작은 출판사였는데 초봉 70만 원을 받기로 하고 들어갔고, 출근한 첫날부터 밤 10시까지 일을 했어요. 거기서 한 5년 반 정도 일했는데 책 제목 짓기는커녕, 왜 책 앞뒤 표지에 있는 카피 문구 있잖아요? 그런 것도 한번 안 써 보고 내도록 교정교열만 했었지요. 그 다음에 갔던 출판사에서도 마찬가지로 업무는 똑같았는데, 일은 더 많았어요. 신간 출판량이 워낙 많았던 곳이라 밤새서 일하고, 사무실에서 자고 새벽 6시에 일어나 일하고 했던 기억이 있네요.

 

그때가 지금보다 젊었고 일하는 데 시간도 훨씬 많이 썼지만, 책 만드는 사람으로 진짜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건 기획편집을 시작하고 나서부터인 것 같아요. 이 세상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나 가치관을 담은 책을 만들 수 있는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의미가 점점 더 크게 느껴지거든요. 그리고 이전에도 분명 책을 만드는 과정에 있었지만 보다 주체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느껴요. 물론 신경 쓸 일은 훨씬 늘어났지만요. 

 

 

Q. 아까 편집자가 신간 구상과 기획을 한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저자보다 책을 먼저 만들기 시작하는 거라고 볼 수 있겠네요.

 

 A. 일단, 회사에 나는 ‘어떤 책을 내고 싶다’는 제안서를 써내요. 주제를 잡고 주제를 살릴 수 있는 컨셉을 명확하게 잡아서요. 예를 들면 제가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굉장히 큰 소리로 떠드시는 노인 한 분을 거의 매일 뵙는데요. 볼 때마다 큰 목소리로 떠드시거나 주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끔 하는 행동을 하고 계셔요.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예쁘게 늙는 법’에 대한 책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 싶은 거죠. 그런데 주제를 잡은 것만으로는 책을 절~대 낼 수 없어요. 노인복지를 전공한 선생님을 찾아가서 ‘선생님, 노인에 대해 잘 아시죠. 책 한 권 내시면 어때요?’ 한다고 해서 책 원고가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 어떻게 늙는 게 문제인지, 교양이란 대체 무엇인지, 대체 어떤 독자층에 얘기를 들려주고 싶은지 등 세부 컨셉을 잡아나가야 합니다. 설득력 있는 제안서를 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트렌드를 잘 꿰고 있어야 해요. 기획서를 받는 편집장님과 사장님이 1차 설득대상인데 ‘이런 책이 진짜 없느냐? 없으면 왜 없겠느냐, 안 팔리니까 없겠지.’라고 하시면 대답할 말이 있어야겠죠. 요즘 대중들이 원하고 있다는 걸 어필하면서도 살짝 방향성이나 컨셉이 새로운 신간 출판을 설득력 있게 제안할 수 있으려면 많이 보고 듣는 과정이 필요해요.

 


Q. 시중에 있는 듯하면서 없는, 신선하지만 너무 앞서나가지 않은, 그야말로 대중과 ‘썸’타는 책이어야 한다는 말씀 같은데. 신간 아이디어는 얼마나 자주 제출해야 하나요?

 

A. 출판사마다 다른데, 저희는 신입 포함 모든 편집자가 한 달에 한 번은 기획서를 제출해요. 그러려면 여러 가지 많이 보고, 사람도 많이 만나서 얘기도 나누면서 기획할 아이디어를 머릿속에 많이 넣어두어야 하지요. 저도 업무 중에 SNS 확인, 주요 일간지 및 잡지 기사 읽기, 각종 포탈의 메인이슈 클릭해 보기를 열심히 해요. 어떤 때는 내가 노는 건가 일하는 건가 약간 애매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봐두면 다 쓸데가 있더라니까요. 아! 전번 다니던 회사에서 스타 에디터급 선배가 계셨어요. 베스트 오브 베스트셀러를 많이 낸 분이시죠. 이분 같은 경우 대중음악이나 영화 인기순위 1위부터 10위를 매일 숙지하고 있는 건 물론이거니와, 사회 각 분야 최신 소식이나 유행은 다 섭렵하고 계셨어요. 출근해서 ‘어제 ○○○영화 관객 몇 명 들었대요?’라고 여쭤보면 즉각 대답해 주시곤 했죠. 기획 들어가기 전에 유사도서 20권 읽기, 저자 섭외 단계에서는 저작 몽땅 섭렵하기. 이런 게 그 선배의 ‘기본’이었어요. 대충 느낌 오시죠?

 

 

Q. 잘 만들어진 기획서가 통과되면 그 이후에는 어떤 과정이 필요한가요?

 

A. 이제 바로 저자를 컨택(섭외)하는 단계입니다. 사실 이 단계가 가장 어려운 단계에요. 실제로 저는 신간 기획서가 거의 통과되는 편인데 저자 컨택이 어려워서 좌초된 적이 몇 번이나 있어요. 칼럼이나 논문 같은 걸 보고 기획안을 만들었을 경우 특정 저자를 염두에 두고 쓴 것이기 때문에 그 선생님을 찾아갔을 때 이미 책을 낼 수 있는 원고를 가지고 계실 수도 있지요. 그렇지 않을 때는 즉, 편집자가 발굴한 저자인 경우 제가 먼저 기획취지를 잘 설명하고 샘플 원고를 써 보시게 합니다. 한 챕터(장) 분량만 받아서 읽어보고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을 거치고요. 괜찮으면 계약을 하고 정식원고 집필을 진행하는 거죠. 원고가 그렇게 완성이 되면 교정교열 단계인데요. 교정교열은, 하아. 장담컨대 앞으로 이 일을 10년을 더 해도 절대 빨리 단축해서 할 수 없을 거예요.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 있잖아요. 거기 나오는 달인들이 눈감고 초밥을 쥐어도 밥풀 300개, 종이 대충 잡아도 A4 한 권 분량 딱딱 나오는 것처럼 한 10년 일했으면 교정교열 1회만 보면 완벽하면 좋겠는데, 절대 그런 일은 없어요. 교정교열은 무조건 최소 3교, 많을 때는 6교~10교까지도 봐야 하고, 그것도 혼자 보는 게 아니라 반드시 동료들과 돌려보는 협업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후 수정이 잘 반영되었는지를 보는 적자대조, 그리고 최종교를 보게 됩니다.

 

교정교열 할 때 책 디자인도 함께 진행해요. 편집 디자인이라고 하죠. 표지와 내부 디자인을 맡기는데 외주를 줄 수도 있지만, 저희 출판사는 내부에 디자이너가 있어요. 그 다음이 인쇄죠. 디자인, 인쇄의 단계에서도 역시 편집자가 책의 컨셉을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표지의 색감과 선명도를 체크하는 일까지 모두 하나하나 함께 확인합니다. 디자이너와 인쇄 담당자와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마지막 책이 나올 때까지 그야말로 같이 책을 만드는 거지요. 책이 나온 후엔 마케팅팀과 홍보 전략을 같이 짜고요.

 

 

Q. 과정을 들어보니 사람을 정말 많이 만나야 할 것 같아요. 그게 스트레스이진 않나요?


 

A. 출판 쪽 일은 절대 혼자 할 수 없어요. 과정마다 사람을 만나야 일이 됩니다. 아까 설명해 드린 교정보는 것만 해도 혼자서는 완벽한 교정이 절대 불가능해요. 많은 사람과 만나고 일과 일정을 조정하는 게 물론 쉽지는 않지요. 다들 각 분야에서 전문가이신 만큼 각자의 스타일과 주장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대하기 힘든 존재는 ‘원고’님입니다. 사람은 그에 비하면 어휴~ 아무것도 아니에요. 좀 과장인 듯 들릴지 모르겠지만, 문자의 거룩함이랄까? 문자에 대한 존중이 없으면 이 일을 시작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교정보다가 우리‘는’ 으로 할까 우리‘가’로 할까 몇 십 번을 고민합니다. 별거 아닌 거 같아도, 특히 소설 같은 경우는 뉘앙스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원고에 새겨진 글자 하나하나를 붙들고 저희는 수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어요.

 

 

 

13년, 유지현 씨가 출판 노동에 더욱 즐거움을 느끼며 베테랑 편집자로 발전해 간 세월이기도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출판 노동자로서 살면서 직업병 한두 개 안 생겼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장시간 컴퓨터 앞에서 일하다 보니 예전보다 눈이 침침해졌고 목 어깨가 종종 뻐근하다고. 이는 비단 유지현 씨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출판사에서는 직원복지 차원으로 몸살림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유지현 씨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앞으로 어떤 책을 내고 싶으냐고. 이 잘못 굴러가는 세상을 근본부터 바꾸는 책, 그런 목소리를 내는 책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지현 씨가 낸 책을 읽고 세상을 바꾸는 독자들, 나도 사뭇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