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읽는 노동] 상공인들의 노동을 찾아서 : 청계천 사람들의 노동을 기록한 작가들의 사진 / 2020.05

상공인들의 노동을 찾아서 : 청계천 사람들의 노동을 기록한 작가들의 사진

최혁규 문화사회연구소

 

노동자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우리는 노동자를 어떻게 상상하는가?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노동자를 어떤 방식으로 재현해왔는가? 노동자를 기록한 대부분의 사진은 노동 현장을 포착하거나 노동자들이 연대하여 투쟁하고 있는 모습을 담았다. 전자든 후자든 포토제닉한 순간을 담아내기 위해 노동자의 손과 표정 그리고 땀을 사진적 표현의 중심에 놓곤 한다. 이를 통해 투박하고 강인한 노동자의 모습을 담아내면서 일종의 숭고미를 그려낸다. 이는 비단 노동자라는 대상을 다룰 때만이 아니라, 노동이라는 행위를 사진 이미지로 기록해 보여주고자 할 때 흔히 취하게 되는 전략이다.
 

▲   그림 1. 『사진과 함께 보는 노동자역사 알기』(노동자역사 한내, 2015, 한내), 『연장전: 우리 시대 노동의 풍경』(노순택·박점규, 2017, 한겨레출판), 『어제와 오늘 2』(20세기민중생활사연구단, 2007, 눈빛). ⓒ 알라딘

 


노동자에 대한 지배적인 재현과 상상

노동자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르포르타주의 목적으로 찍은 사진부터 예술 작품으로서 촬영된 사진까지, 일상적인 삶을 포착한 사진부터 투쟁의 모습을 담은 사진까지 다양하다. 대표적으로는 '노동자역사 한내'에서 출간한 <사진과 함께 보는 노동자역사 알기>에 수록된 사진들이 있다. 이 사진집은 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록한 사진들을 집대성한 자료로써, 노동운동에 참여한 노동자들의 모습을 통시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노순택이나 정택용 같은 작가들의 사진은 노동자들의 일상과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에 밀착해 예외적인 일상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과 그들의 희비를 포착한다. 또한 20세기민중생활사연구단과 눈빛출판사가 출간한 사진집은 일반적인 민중들의 생활을 담았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들로 노동의 풍경을 살펴보기에 충분하지 않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공장 자동화를 도입하면서 다품종 소량생산을 지향하는 포스트포드주의로 전환되었고, 노동력에 이어 인간의 생각과 감정도 교환될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노동은 육체노동과 지적노동 그리고 감정노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세분되었고, 노동을 구획하는 시공간적 경계도 유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노동자에 대한 상상과 재현은 기존의 공장 노동자의 형상에서 그 이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기에 지금의 노동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언어를 발명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처한 상황을 제대로 포착할 수 있는 이미지들을 기록하거나 우리가 놓쳤던 노동의 역사적 이미지를 발견할 필요가 있다.
    

▲  그림 2. 『다시 보는 청계천 1965-1968』(구와바라 시세이, 2017, 청계천박물관), 『노무라 리포트: 청계천변 판자촌 사람들 1973-1976』(노무라 모토유키, 2013, 눈빛), 『청계천 사람들: 삶의 투쟁의 공간으로서 청계천』(최인기, 2017, 리슨투더시티). ⓒ 알라딘

 

 
어디에도 있지만 동시에 어디에도 없는 소상공인의 노동

소상공인 집단의 계급적 위치가 모호하기 때문일까? 소상공인 혹은 소상공업 노동은 제대로 다뤄진 적이 없는 것 같다. 대개 소상공인은 혼자서 일하거나 한두 명의 직원들을 둔 채 일하고, 한 사업체의 경영자이지만 동시에 노동자로서 쉬는 날 없이 일한다. 그리고 업체에 고용된 임노동자들은 때로는 사장 이상으로 업체 경영에 신경 써야 하는 위치에 처하기도 한다. 일종의 소규모 업체가 가진 운명공동체적 성격 때문이다. 이러한 소상공인들은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식당과 카페 같은 곳에서부터 시장의 상점이나 공방과 공업소 같은 곳들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정부의 경제정책이나 주요 담론에서 소상공인들의 문제는 중요한 쟁점이 되지 않는다. 물론 정부는 필요시 소상공인들을 항상 국가의 중요한 경제적 주체로 호명하지만, 정작 이들이 처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줄 정책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 운동은 소상공인의 애매한 계급적 위치 때문인지, 아니면 노동조합법 바깥에 있기 때문인지, 이들을 노동운동의 주체 혹은 노동운동에 연대하는 주체로 인식하지 않는다.

임금 문제만을 두고 본다면, 소상공업 사장과 노동자는 대립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국 경제가 대기업 중심으로 구조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소상공인들은 착취와 수탈에 노출되어 있다. 그런데도 우리가 노동을 다룰 때 이들의 노동은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한 점에서 보자면, 이들은 노동문제에 있어서 어디에도 있지만 동시에 어디에도 없는 자들이다.



청계천 일대 상공업, 그곳에서 포착한 삶으로서의 노동
 

이들의 모습과 역사를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공간은 서울의 주요 상공업 지역인 청계천 일대이다. 청계천 일대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중심업무지구이면서 역사적으로 오래된 상공업 지역이다. 이 지역의 근현대적 형성은 전후 도시 빈민들의 역사와 함께한다. 6.25 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청계천변에 판자촌을 형성해 살기 시작했고, 이들은 넝마 줍는 일을 하거나 매각된 식민지기 물품이나 미군 부대에서 나온 군수품 등을 변형하거나 분해해 파는 일로 생계를 유지했다. 이들에게 노동은 생존과 직결된 삶 그 자체였다. 196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된 판자촌 강제 철거에도 불구하고, 노점에서 시작된 상공업 행위는 점차 주변 주거 지역으로 확산되어 지금과 같은 광범위한 상공업 상권을 만들었다. 이 상권은 청계천을 따라 신설동과 황학동 일대에서 동대문을 지나 을지로 입구까지 길게 이어진다.
   
일찍이 청계천 일대의 도시빈민과 상공인에 주목한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은 청계천 주변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가졌다. 1960년대 중순의 청계천 일대의 모습에 주목했던 일본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구와바라 시세이, 1970년대부터 청계천 일대에서 사역하면서 도시 빈민들의 삶을 기록한 목사 노무라 모토유키, 그리고 그와 함께했던 정치인이자 빈민운동가였던 의원 고 제정구, 1980년대 말부터 청계천을 따라 걸으며 이 일대의 상공인들을 기록한 사진작가 이한구1), 청계천 일대 상공인들의 노동과 투쟁을 기록한 빈민운동가이자 사진작가인 최인기2) 등이 있다.

어떤 이는 청계천 도시 빈민들의 삶을 개선하고자 노력했고, 어떤 이는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강제 퇴거의 위기에 놓인 청계천 상공인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담아낸 사진은 그 누구도 기록하지 않았던 청계천 사람들의 노동을 찍은 역사적 증거물이자, 도시빈민과 상공인의 삶을 증명하는 투쟁의 무기였다. 이는 현재 청계천·을지로 일대 재개발 반대 투쟁에서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기록이자 다가올 미래를 향해 있는 이미지

노동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지만, 우리가 노동을 기록하고 표현하고 상상하는 방식은 꽤 단순하다. 청계천 사람들을 찍은 사진들은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던 노동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사진들은 그동안 우리가 노동을 이야기할 때 잘 떠올리지 않았던 소상공인들의 노동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이다. 또한 플랫폼 노동자, 긱 노동자(gig worker) 등 노동의 형태가 점차 파면화되고 다양해지면서 노동자를 상상하는 다양한 방식을 고안해내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청계천 사람들의 노동을 기록한 작가들의 사진은 과거의 기록이지만 다가올 미래를 향해 있는 이미지이다. 어쩌면 이 사진들은 청계천 사람들의 현실을 기록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찍혔는지도 모른다.

참고자료.
1) 이한구의 청계천, PROLOGUE
http://www.artkoreatv.com/news/articleView.html?idxno=12884

2) 청계천·을지로 개발에 저항하는 사람들(최인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_w.aspx?CNTN_CD=A0002597402

[현장의 목소리] “전태일의 정신을 이어갑니다” / 2019.01

“전태일의 정신을 이어갑니다”

서울봉제노동조합 이정기 지회장 인터뷰

장영우 (선전위원)


작년 11월 봉제노조 창립총회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봉제노조 이정기 지회장을 보문동 일터에서 성탄일에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이정기 지회장은 성탄절임에도 불구하고 쉬지 않고 출근했다. 인터뷰 중에도 이정기 지회장의 재봉틀은 계속 돌아갔다. 



- 봉제 일하는데 노동환경은 어떻습니까?

"저희는 일이 있을 때 일을 하고 없을 때는 놉니다. 객공이라고도 합니다. 좋은 말로 프리랜서로고도 하겠네요. 재단사, 미싱사의 직종마다 차이는 좀 있겠지만 일감이 들쑥날쑥 합니다. 일이 몰릴 때는 햇볕한번 보지 못하고 하루 16시간씩 일하기도 해요. 일이 없을 때는 아예 놉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부업을 하는 경우도 있고요. 봉제업하는 사업주이자 노동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저 같은 경우 아내랑 둘이서 일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대규모로 옷 만드는 건 중국이나 베트남으로 이전해서 소규모로 부부가 같이 일하거나 몇 명이서 일합니다. 이러니 사장이라고 해도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지요. 주 52시간 노동시간, 최저임금 같은 건 다른 나라 이야기예요. 4대 보험 같은 사회보장이 없어요. 일이 많을 때는 사람을 구하기 힘들고 일감이 없을 때는 일을 구하기 힘들어요. 이러니 월급제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지 않아요. 예전에는 그래도 일감이 꾸준하게 있어서 요즘은 일감이 없어서 더 문제긴 하고요.

저는 18살 때부터 30년 미싱 일을 했어요. 그런데 제가 막내뻘이에요. 더 이상 젊은 친구들은 이 일을 하지 않으려 하죠. 일이 규칙적이지 않으니 임금은 낮고, 4대보험도 안되는데 좁은 데서 계속 앉아 있는 등 작업환경은 열악하니깐요. 젊은 사람들은 거의 없고 간혹 젊은 사람들이 있다면 이주노동자들이예요."


- 여기서는 어떤 옷들을 만드나요?

"저는 주로 남자 상의를 만들지만 일감이 없는 경우에는 바지나 다른 옷도 만들어요. 미싱사는 여자가 많은데 남자 옷 만드는 남자미싱사들도 있어요. 요즘 양복은 기성복 많이 입지만 예전에는 대부분이 남자들이 양복을 재단도 하고 미싱도 했어요. 여기서 옷을 만들어 동대문에 납품합니다."


- 일하다 보면 건강에 좋지 않으신지요?

"예전에는 재단사들이 옷감을 자르다가 손가락, 손가락 사이가 잘리기도 했는데 지금은 이런 사고는 별로 없고요. 미싱하는 사람들은 바늘에 가끔 찔리기도 하는데, 큰 사고는 아니니깐요. 대신 한 자세로 오래 일하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허리, 어깨의 관절통을 호소해요.

예전처럼 일감이 꾸준하게 있었을 때는 일정하게 수입이 보전이 되었어요. 그때는 누가 시켜야 일하는 구조였다면 지금은 일감이 있으면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어요. 미싱하는 사람들도 일감이 있을 때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열심히 일해요. 저 또한 20년 전 보다 지금 일을 더 많이 하는거 같네요.

그리고 여기 옷 먼지가 많아요, 옷 운반하다가도, 옷감을 가위질로 자르다가도 눈에 보이지 않는 옷 먼지가 많이 생겨요. 여기 책상도 손가락으로 한 번 문지르면 옷 먼지가 손가락에 까맣게 묻어 있어요. 그래서 저도 그렇고 제 주변에는 비염이 많아요. 목이 칼칼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30년 전에는 좁은 공간에 소설에 나오는 다락을 만들어 다닥다닥 붙어서 일하고 거기서 잠도 자고 했는데 요즘은 다락에서 일하는 데는 거의 없다고 봐야죠."


- 노동조합을 만드신 이유는요?

"작업환경이 안 좋다보니 예전부터 개선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요즘은 자기 목소리를 내는 단체가 많잖아요. 근데 저희는 아직까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없잖아요. 우리 봉제노동자들은 제조업처럼 한 곳에 모여있지 않고 서울에 뿔뿔이 흩어져 조직하기 힘들었던 점이 있고 노동자도 있고 노동을 하는 사업주도 있으니깐 노조가 안 만들어졌던 거요. 상황이 이러니 노조를 만든다고 해서 다른 노조처럼 노동시간이나 임금협상을 이야기할 수도 없잖아요.

그런데 요즘 소상공인 이야기 많이 하잖아요. 우리도 소상공인인데 우리를 대변하는 단체가 없었고 아무도 우리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정치하는 사람들도 우리를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선거 때 잠시 이야기할 뿐이라서 현장에서 바뀐 건 없어요. 근데 봉제노동자들은 정말 많아요. 서울의 지하에 있는 공장은 봉제공장이라고 보면 되요. 창신동, 신당동, 보문동, 길음동, 중곡동, 면목동 등 봉제 공장이 상상보다 많아요.

시에서 낸 통계를 보면 봉제 노동자가 9만3000명이나 되요. 물론 80년대는 27만 명으로 지금보다 훨씬 많았지만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목소리를 내지 못하니깐 사회적인 관심도 못 받았어요. 그래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조를 만들게 된 거예요. 사람들을 모으면 뭔가 할 수 있는게 생길 거 같기도 하고요."


- 노동조합을 통해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우선은 노조를 통해 복지나 처우를 향상시키는 것을 생각하고 있어요. 공제회를 만들어 퇴직금을 조성하고 비영리의료기관과 협약을 맺어 의료적인 필요가 있을 때 쉽게 이용할 수 있게 하고 기금을 마련해서 급전이 필요한 경우 이 기금을 통해 대출 받는 것 같은 사업을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더 나아가 당장은 해결방안이 없어 보이는 일감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해요. 우리끼리 할 수 있는 부분은 우리가 하고 우리가 하고 우리가 못하는 건 관청이나 서울시에 이야기 해보려고 해요."


- 봉제일 하는 분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봉제 일을 오래한 분들은 비록 학력은 초졸이나 중졸로 짧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채로 살아왔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30년 이상을 살아왔기 때문에 자부심이나 자존심이 있어요. 한편으로는 대체적으로 순응하는 편이라 수입이 줄어들 경우 싸워서 쟁취하기 보다는 '내가 좀 더 일하면 되지'라는 생각하는 편이예요.

노조에 대해서 좋지 않게 인식하는 분들이 많아요. 지난번에 공제 관련하여 시급한 서비스를 논의하려고 설문지를 돌렸어요. 필요성을 느끼고 호응해주는 사람들이 있는가 반면 사업주들은 크게 손해 보는 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예전에 청계노조에 대한 반감, 노조하면 시위나 폭력 같은 선입견이 있어 반응이 좋지않은 경우도 있어요. 이건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라고 생각되는데 다들 나이가 있다 보니 설득이 쉬울 것 같진 않아요. 노조홍보를 겸해서 일일이 방문해서 설문지를 돌렸는데 아직까지도 설문지 작성하는 것도 겁먹고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한편으로는 노조 만들어서 할 수 있는 게 뭐냐고 회의적인 사람들도 있어요. 저희는 노조를 만들어 임금을 교섭하고 노동시간을 줄이려는 걸 하는 건 아니니깐요. 하지만 소외되고 관심 받지 못하고 살아왔던 분들한테 사소한 것들이지만 챙겨주고 신경써주는 단체가 있고 이 단체를 통해 소속감을 느끼면 좋겠어요. 이분들이 생각이 잘 안 바뀌어 그렇지 우리들의 진실성을 알아준다면 노조를 끝까지 믿어줄 거 같아요."


- 지회장은 어떻게 하시게 되었는지요?" 

"저는 과거에 청계피복노조활동을 했어요. 하지만 생계에 바쁘다 보니 이런 쪽 일은 잊고 살았어요. 그래서 지회장을 생각해 본적은 없어요. 우리 환경이 워낙 열악하다 보니 노조가 만들어지면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주변에 사람이 없다보니 지회장을 하게 된 점도 있고, 제가 미싱사다 보니 상황도 잘 알아 노조일 하는 것이 일하는 분들한테 설득력도 있는 거 같아 하게 됐습니다."


-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더 하시자면요.

"어떤 분들은 옷감을 기계에 찍으면 옷이 바로 만들어지는 줄 알아요. 하지만 옷 만드는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 손이 많이 가는 노동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합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힘든 환경에서 봉제 일에 종사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소상공인들이 힘들다는 이야기는 많이 하지 않습니까? 소상인들도 임대료나 인건비 때문에 힘들고 저희 소공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힘든 사업주에게 임금 받는 노동자들도 더 힘들 거예요. 우리 노조는 노동자와 사업자와 함께 살길을 찾아보자는 겁니다. 사업자와 노동자를 분리하여 갈등을 일으키자는 목적으로 노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임을 알려드리고 싶네요. 그래서 많은 분들 같이 하고 우리 목소리를 내고 사회적으로도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