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3. 노동안전보건 '활동'으로서의 조사를 바라며 / 2020.01

[산재예방을 위한 조사활동이란 무엇인가③]

 

 

노동안전보건 '활동'으로서의 조사를 바라며 

 

 

박기형 / 상임활동가 

 

 

"위험에 관한 과학적 조사는 어디서나 환경과 진보와 문화의 전망에서 산업체계에 대해 가하는 사회비판의 뒤를 절름거리며 따라간다."
- 울리히 벡, 『위험사회』 중

 

최근에 <휴지조각이 된 조사보고서>라는 제목의 토론회가 열렸다. 거기서는 주로 조사보고서에서 원인이 드러났음에도 예방을 위한 권고안 이행이 되지 않는 문제를 지적했다. 권고안 이행의 문제는 이행을 둘러싼 정치적 투쟁의 중요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조사활동이 보고서라는 문서 하나를 더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조사활동의 목적이 결국 예방에 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예방을 위한 조사란 도대체무엇일까? 권고안 이행 이전에 그렇게 권고안을 만들어내는 작업 단계에서부터 예방을 염두에 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조사활동을 통해 사고나 직업병을 비롯한 산업재해의 원인이 명확히 드러나는 사안의 경우에는 구체적인 요구를 담은 권고안을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조사를 하더라도,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밝히기 어려운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난관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 전자산업, 반도체 제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산업재해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에 맞선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반올림 활동가들을 2019년 12월 23일에 만나 '예방'을 위한 조사, 노동안전보건 '활동'으로서의 조사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다.

 

조승규 : "반올림에 산재상담을 요청하는 분들 중에 조사를 해도 직접적 원인을 규명하기 어려운 분들이 많아요. 반도체 직업병이라고 할 때, 온갖 종류의 암과 희귀질환이 다 들어가 있어요. 반도체 사업장에서 일했던 분들이 걸린 질병이 워낙 많기도 하고, 질병 하나하나 뜯어봐도 질병 자체의 기전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들이 대다수예요.

더구나 해당 작업장에서 어떤 공정으로 어떤 물질을 사용하는지도 잘 알려지지 않는 상황이죠. 자신들의 직무정보를 모르는 경우도 다반사구요. 협력업체에 소속된 분들은 더욱 알기 힘들고요. 그러다보니 산재승인을 위한 업무관련성 입증이 상당히 어려워요. 오랫동안 싸운 덕에 최근에야 산재인정을 받는 질병들도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죠."

이상수 : "최근에 정부 주도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반도체 제조업 현장을 대상으로 직업성 질환역학조사를 했잖아요. 그때 10여 년 간의 코호트 추적조사와 위험군을 대상으로 집단조사나 일반인구집단과의 비교를 해서 백혈병이나 비호지킨림프종과 같은 혈액암의 발생 및 사망 위험비가 높은 것이 확인이 되었죠.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있어요. 얼마나 현장 자체에 대한 조사를 진행할 수 있는가에 대해선 의문이 남기 때문이에요. 작업환경측정 등 기존자료들이 갖는 한계나 사업장 환경의 변화 등에 대해서도 고려해봐야 할 점이 있어요."

그렇다면, 질병판정위원회에서 반도체 직업병과 관련한 업무관련성을 판단하는 과정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최근 업무관련성의 판단기준과 판정을 위한 조사과정에 대해서 반올림에서도 고민중인 지점에 관해 물었다.

이상수 : "반도체 제조업 현장이 위험하다는 건 반올림 투쟁이나 앞선 산재 승인 건들을 통해 사회적 공감대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봐요. 충분히 반도체 사업장이 위험하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 여지가 있다는 게 확인된 것이죠. 2019년 5월에 발표된 역학조사 결과도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고요.

이렇게 반도체 사업장이 유해물질을 취급하고 있어서 노동자에게 위험하다는 것에 사회적 문제의식이 형성되고 있는데도, 반도체 노동자들이 앓고 있는 각종 암과 희귀질환이 사업장에서 취급하는 각종 물질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게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은 정말 부당한 일이죠. 거칠게 말해, 과학적, 의학적 조사에 한계가 있는 것을 노동자들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요."

조승규 : "산재보험의 측면에서 볼 때, 반도체 사업장에서 보고되는 희귀질환들의 기제-메커니즘이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산재승인을 하지 않고 적절한 보상과 적합한 재활·치료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 과연 산재보험의 사회보험으로서의 성격에 부합하는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어요. 만약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한 것이라면, 더 엄격한 입증이 필요하겠지만, 그게 아니잖아요. 더욱이 산재승인에 어떤 법리를 적용할 것인가도 쟁점이지만, 판단근거로 활용될 각종 조사결과들이 얼마나 노동자의 입장에서 이뤄지는지 모르겠어요."

사회보험으로서의 산재보험이 갖는 취지를 살리는 방식으로 업무관련성 판단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업무관련 성을 판단하는 것은 보상과 재활·치료의 제공과 연관되는 것이긴 하지만, 유해위험요인 자체를 제거 및 개선하는 등의 예방활동과 직접적으로 결부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반도체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조사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


이상수 : "우선 파킨슨병의 경우를 떠올려보면 어떨까 싶어요. 파킨슨병은 이미 일정한 기제와 기전이 밝혀졌다고 해요. 그렇다 보니, 오히려 반도체 사업장에서 일했기 때문이 아니라 유전을 비롯한 다른 요인 때문에 걸린 것이라는 식으로 산재승인을 거부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러한 판단은 전자산업업계, 반도체 제조업 현장에서의 유해위험요인 노출 특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것입니다. 일반적인 사업장이나 일상생활환경과는 노출방식이 완전히 달라요."

조승규 : "노출특성을 반영하지 않은 채로 개별역학조사가 수행되는 것이죠. 그런데 정말 적용한 조사방법이 해당 사업장에 타당한지, 데이터 측정 과정중에 과소/과대하게 나올 가능성은 없었는지 등 사업장 특성을 반영해서 조사를 진행해야 하는데, 반도체 사업장의 개별역학조사나 작업환경측정에서 그게 얼마나 깊이 있게 고민되고 반영되었을지 의문입니다. MSDS와 같은 기본 자료 제공도 영업비밀, 기술유출이라는 식으로 규제하는 상황이니 물리적 한계도 분명하고요.

반도체 노동자의 삶을 위한 조사가 이뤄지고자 한다면, 더 수준 높거나 많은 양의 지식이 필요한 게 아니에요. 더 세련된 조사방법을 쓰는 식의 기술적인 문제도 아니고요. 전자산업업계의 노출특성과 노동자 경험을 반영하려는 태도, 즉 조사에 임하는 목적과 문제를 이해하는 관점이 어떠한가의 문제죠. 나아가 조사자체도 금전적 보상을 해주어야 하느냐 마냐는 식의 판단을 위한 과정에 국한하지 말아야 해요. 보상 이후 사후조사로 전환하고서, 예방을 목표로 삼아 다양한 노출경로, 확인되지 않은 위험물질 등의 가능성을 열어두고서 이 모두를 검토하는 방향이면 어떨까 싶어요. 재해조사경위서에서 나온 다양한 사항들도 적극 반영해보고요."

이상수 : "만약 예방을 위한 조사 자체를 지향한다면, 그 출발점으로 개별사건을 넘어서는 산업 전반 파악하는 집단역학조사나 산업 전체 점검을 시도해볼 수 있겠죠. 그렇게 다른 산업재해에도, 산업 전반에 적용 가능한 노동안전보건 활동으로서의 조사가 적극적으로 이뤄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예방'을 위한 조사, '활동'으로서의 조사가 무엇인지 답을 내릴 수는 없었다. 다만, 우리가 조사를 '활동'으로서 이해하고, '예방'을 위해 조사를 하고자 한다면, 무엇에 주의해야 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흔히 안전보건과 관련한 조사활동은 전문가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안전은 공학적 차원의 문제고 보건은 의학적 차원의 문제이기에, 전문가의 역량이 필수적이라 여긴다. 이러한 인식은 일면 타당하다. 분명히 사업장에서 유해위험요인을 파악하고 작업환경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지식과 노하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일하는 사람이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드는 일은 전문지식 없이는 불가능하고 전문가만이 담당할 수 있는가?

그렇진 않다. 반올림 투쟁이 보여주듯이, 일터에서의 위험에 대처하는 일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정보의 수준과 양만으로 좌우되지 않는다. 반대로 현장노동자의 경험 또한 귀중한 지식, 합리적 근거자료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건강하게 일할 '권리'라는 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일터에서의 안전보건문제는 '노동자의 삶과 자본의 이윤 중 무엇을 더 중시하는가'를 두고 투쟁의 장 속에 있다.

일터에서의 위험을 측정하고 판단하는 일을 단지 전문가의 몫이나 기술적인 문제로 한정해버려서는 안 된다. 조사과정을 객관적, 중립적으로 진행한다고 하면서, 기술적인 측정 외에 어떠한 가치 판단도 할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의 삶이 중심에 놓는 조사, 조사자의 눈앞에 언제나 노동자의 삶이 자리한 조사야말로 노동안전보건 '활동'으로서의 조사가 아닐까. 그 구체적인 상은 앞으로 만들어가야 할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특집2. 직업병 집단 조사(혹은 역학조사), 제대로 하기 위한 과제들 / 2020.01

[산재예방을 위한 조사활동이란 무엇인가②]

 

 

 

직업병 집단 조사(혹은 역학조사), 제대로 하기 위한 과제들 

 

 

 

김형렬 / 노동시간센터 

 

 

 

반도체 직업병, 집배원 과로사 이슈는 최근 2~3년 내에 역학조사 혹은 실태조사가 진행 또는 발표되었던 대표적인 사건들이다. 이들 사건 뿐 아니라 30여 년 전 원진레이온 사건, 10여 년 전 반도체 백혈병 이슈와 함께 우리 사회의 중심 사건이었던 한국타이어 노동자 집단 질병 발병 조사도 있었다.

직업병 조사 활동(혹은 역학조사)은 문제제기 단계에서 시작한다. 문제제기는 피해를 입은 노동자 혹은 유족들에 의해 시작되고 여러 사회단체에 의해 조사 필요성이 제기되는 단계를 밟는다. 다른 나라에서 문제가 되었던 사례를 국내에서 확인하고자 하는 경우도 있고, 일부 전문가들에 의해 문제제기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직업병 집단 조사의 시작, 문제제기 단계

문제제기가 이루어진다고 해서 모든 사안이 조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집단적 조사가 진행되려면 그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다수이거나 (위험의 크기), 그 문제가 매우 심각한 문제이거나 (심각성), 사회에서 주목 받고 있는 사안이거나 (공적관심), 예방의 지점이 명확히 확인될 가능성이 있는 사안인지 등을 확인하게 된다.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지려면 이를 수행할 전문가, 예산, 자료에 대한 접근 권한, 조사 대상자들에 대한 동의 획득 등 많은 자원과 노력이 필요하다. 조사 결과에 대한 우려를 가지고 있는 기업의 수동적인 태도는 문제제기를 넘어 본격적인 조사 수행을 어렵게 하는 이유다.

이 단계에서 짚어야 할 몇 가지 문제가 있는데, 첫째, 기업 혹은 국가기관의 자발적인 문제제기와 이를 근거로 본격적인 조사가 진행된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기업은 구성원들의 건강변화와 결과에 가장 빨리 접근할 수 있는 곳이지만, 질병 발생의 원인을 추적하는데 소극적이다. 1년에 10만 건에 육박하는 산재 신청 자료를 가지고 있고, 200만 명에 가까운 특수건강진단 자료를 가지고 있는 국가기관에서 논란이 되는 질병에 대해 선제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경우는 흔하게 있는 사례는 아니다.

둘째, 문제제기를 수용하고 평가하여 본격적인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결정하는 힘은 전적으로 "요구하는 힘"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들의 긴 투쟁과 요구, 노동조합을 비롯한 사회단체의 정치활동이 본격적인 조사가 이루어지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요구하지 않으면, 투쟁하지 않으면 본격적인 조사 단계에 이르지도 못하고 묻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본격적인 조사, '누가' '어떻게' 조사할 것인가?

기나긴 투쟁을 통해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하게 되도 조사를 수행하는 전문가를 선정하는 작업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기업과 노동계 혹은 피해자 단체에서 추천하는 전문가가 다른 경우가 많아, 서로 추천하는 전문가가 조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

안전보건공단과 같은 국가기관에서 조사가 이루어질 때도 자문의 과정에 영향을 미치려는 힘이 존재할 수 있다. 조사 범위를 둘러싼 논쟁도 뜨겁다. 한정된 시간과 예산, 인력 등의 문제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모든 내용,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수행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중복된 조사는 피하고, 기존 자료를 활용하는 등, 빠른 시간 내에 가장 효과적인 방식의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조사 범위를 정하고, 필요하면 조사 이후 단계에서 진행해야 할 주제를 구분하는 것도 필요하다.

조사 주체를 정하고, 조사 범위를 정하는 작업을 수행하느라 개입이 필요한 중요한 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많다. 몇 달이면 기본적인 조사를 끝내고 대안 논의를 해야 할 시점인데도 아직 조사 범위와 방법을 둘러싼 논쟁을 하는 경우도 있다. 역학조사와 집단조사의 전문가라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방법이거나 합의가 가능한 내용임에도 전문가들의 불필요한 고집, 의도적 지연 등이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조사 전문가가 있다면 좋은 일이지만, 현실에선 추천되는 전문가가 회사 측과 노동계에서 다른 경우가 많다. 조사된 결과를 숨기거나 결과를 조작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조사 작업의 결과는 열심히 찾아서 보려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논쟁하되 빠르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조사를 이끄는 힘이 필요하다. 여기서 중요한 핵심은 조사 과정에 '당사자의 참여'가 보장되는 것이다. 공식적인 회의 참여를 통해 조사범위와 내용을 정하는 과정까지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뚜렷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가 많은 조사결과, 결국 해석의 문제

기나긴 시간을 거쳐 조사 결과가 발표되지만, 원인과 해결방안이 시원스럽게 대답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최근 제기되는 문제들은 중독과 같은 전통적인 직업병과 달리, 일반인구 집단에서도 비교적 흔하게 발생하는 암, 심장질환, 정신질환 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직업적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오히려 비직업적인 원인 또한 드러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그러다보니 조사과정에서 우리가 직업병이라 주장하는 근거만큼이나 직업병이 아니라는 근거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직업병은 이미 100% 직업적인 원인에 의해 발병하는 것보다는 ①직업적 원인이 일정한 기여를 하거나, ②직업적인 요인이 일반적인 위험 요인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서 촉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거나, ③일반적인 요인과 직업적인 요인의 상호작용을 통해 해당 질병이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이유로 직업적 원인을 희석시키고 업무관련의 불확실성을 키움으로써 산업재해의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자본과 기업의 전략이 손쉽게 실행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조사결과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매우 중요해 진다. 통계적 방법을 통해 도출된 양적인 결과에만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직업병이라는 복잡다단한 현상을 설명해 내기 어렵다. 산업변화에 따라 직업병의 종류도 더욱 다양해지고, 직업병의 발병 양상도 복잡다단해졌다. 각 상황마다 위험 물질 노출 양상이 균질적이지 않으며, 여러 위험요인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이 이뤄진다. 과연 전통적인 역학연구 방법론만으로 이러한 현상을 제대로 분석해낼 수 있을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다양한 질적 방법론을 적극 조사과정에 반영하고, 당사자들의 상황과 업무 그리고 발병까지의 맥락을 이해하는 섬세한 해석과 예방과 연계된 대안 제시가 필요하다.

예방을 위한 대책 마련하기

원인을 명확히 밝힐 수 있다면, 적합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고, 그러한 대책은 공감을 얻고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위험의 크기만을 확인하고 원인을 찾지 못했거나, 유력한 원인을 확인했지만 경쟁하는 다양한 원인이 존재하여서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기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다. 만약 이런 상황이라 하더라도, 조사가 정말 예방을 위한 것이라면, 관점이나 방향이 없는 조사결과 발표가 되지 않아야 한다. '명확한' 원인이 아니더라도 '유력한' 원인이 밝혀질 수 있다.

이러한 유력한 원인들이 드러났다면, 예방을 위해 보편적인 조치를 활용할 수 있다. 해당 요인들을 제거하거나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예방 대책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직접적이거나 명확한 원인이 없다고 해서, 아무런 대안을 내놓지 않거나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은 조사의 목적에 어긋나는 것이며, 형식적인 조사문건 하나를 더하는 것에 그칠 뿐이다. 이렇게 조사결과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예방조치를 취하는 것 외에 추가조사를 여러 방향에서 제안하고 실행하는 것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조사를 통해 제안된 권고 내용은 잘 지켜지고 있나?

수백,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조사 보고서는 꼼꼼한 결과와 해석, 권고안이 담겨져 있다. 그동안 수행했던 역학조사와 직업병 실태 조사 보고서는 조사자들의 노력과 피해자들의 피땀이 실린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보고서에 담긴 수많은 권고안들은 잘 지켜지고 있을까? 모든 조사 보고서에는 권고안이 제대로 지켜지는 지 점검하고, 상황 변화가 발생할 경우, 수정된 대안을 제시하고, 변화를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할 이행점검단이 제안되어야 한다. 제대로 된 조사를 하는 것은 또 다른 단계를 예비하기 위함이다. 조사는 끝이 아니라 예방을 위한 시작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특집1. 사고조사,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 2020.01

[산재예방을 위한 조사활동이란 무엇인가ⓛ] 

 

 

 사고조사,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전주희 /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는 경향신문의 기사(2019.11.21) 제목은 노동자 사망사고를 둘러싼 상반된 의미를 불러낸다. 우선 '한해 24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죽는다. 그런데 왜 김용균 죽음만 가지고 그러나?'라는 불만 섞인 의구심이 있다. 실제 발전사의 한 안전관리자는 '발전소에서 사망사고가 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닌데, 왜 유독 이번 사건을 이렇게 조사하느냐?'고 인터뷰 도중 말하기도 했다.

언론이나 사회에서 김용균 사고에 대한 관심은 이례적이다. 매일 김용균이 있었지만, 매일 또 다른 김용균의 죽음이, 마치 릴레이 경주를 하듯이 보도된 후 잊히거나, 아예 잊힐 기회도 없이 사라졌다.

그런 의미에서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의 또 다른 의미는 사라진, 가라앉은 죽음들을 다시 길어 올리는 작업이기도 하다. 무명씨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서로 아무 관련이 없을 법한 사고들을 모아 거대한 아카이빙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죽음의 구조를 가시화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경향신문이 기사화한 1355명의 죽음에 대한 전수조사가 놀라운 이유는 그 숫자가 아니다. 숫자로 환원된 죽음은 추상적이다. 1355명과 1356명의 차이는 소수점 이하의 재해사망률로만 표시된다. 이것은 죽음의 구체성을 지우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1355명의 기록은 2400이라는 숫자로 수렴되는 연간 산재사망자 수에 저항한다. 그 구체적 죽음을 다시 기록하는 것, 그 짧은 정보의 단신들을 연결해 거대한 사고의 원인을 되묻는 작업이다. 그래서 경향신문이 제작한 거대한 죽음의 아카이빙은 지난 죽음에 대한 뒤늦은 추모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더 큰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졌다.

"이 죽음의 구조를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가?"  
 
그러니까 매일의 김용균이 있었는데, 왜 사고조사는 김용균처럼 이뤄지지 않았을까? 중대재해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고용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고 사고조사보고서를 작성한다. 김용균 사망 당시 고용노동부가 행한 특별근로감독 결과보고서는 1029건의 안전조치 위반사항을 적발했다.

이 결과로 5개 발전회사의 모든 컨베이어벨트에 안전펜스가 쳐지기 시작했다. 발전소뿐만 아니라 끼임, 협착 같은 사고에는 늘 안전펜스의 부재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안전펜스야말로 희대의 살인마인 셈이다. 안전펜스가 제 발로 도망가거나 책임을 방기했다면 말이다.

우리 사회가 노동자의 죽음에 무감각해지는 이유는 사고의 원인은 드러나지 않고, 사고만 드러나는데 있다. '위험하지 않은 일이 어디 있어? 그러니 사고가 일어나는 거지' 식의 일반화는 사고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기 때문에 반복되는 체념의 인식구조를 만든다. 안전펜스의 탓으로 돌리는 사고조사는 위험의 구조적 원인으로 다가가려는 노력을 봉쇄하고 기술적이고 기계적인 접근으로 우리의 사고를 한정한다.

이 때문에 사고조사는 사고의 구조적 원인으로 나아가야 한다. 왜 안전펜스가 쳐지지 않았는지에 대한 연결고리를 찾아 추상적이고 베일에 싸인 근본적 원인의 가장 끝에 도달해야 한다. 그렇다면 사고조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고조사는 수사가 아니다

사고를 바라보는 두 가지 편향이 존재한다. 하나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고의 원인에 대한 기계적, 기술적 접근이다. 이는 사고에 대한 근본 원인을 지우는 역할을 한다. 책임의 문제는 사라지고 기술공학적 접근을 통해 마치 위험을 해결할 수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접근은 사회적으로 사람의 죽음을 숫자로 대체하는 것과 연결된다. 즉 죽음의 구체성 대신 기계장치의 결함이나 안전장치의 강화로 문제를 가둔다.

다른 하나는 사고의 원인을 손쉽게 구조의 문제로 환원하는 경향이다. 이 경향이 극단화되면 자본주의체제가 노동자 죽음의 구조적 원인으로 지목된다. 물론 정치적인 주장은 그렇게 전개될 수 있다. 하지만 사고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음의 구체성을 규명하는 것이다. 왜 하필 김용균은 컨베이어벨트 안으로 들어가야 했는지, 그 작업방식은 어떤 결정과 구조에서 이뤄졌는지, 그 연결고리들을 추적하는 것이 사고조사의 과정이다. 그리고 그 복잡한 시스템의 가장 끝에 무엇이, 혹은 누가 있는지를 드러내야 한다. 사고조사 과정에서 죽음의 구체성을 드러내는 것은 위험의 구조적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동료 노동자들의 경험과 진술은 매우 중요하다.

매뉴얼과 현실 작업방식은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매뉴얼은 법에 따른 구체적 시행방안을 포함한다. 또한 기업의 고유한 작업 노하우를 담는다. 그러나 매뉴얼에 드러나지 않는 것은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의 권력관계이다. 이러한 권력관계가 구체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실제로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작업관행이다. 따라서 조사의 출발점은 매뉴얼이 지시하는 권력관계가 현장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그 긴장과 간극을 조사하는 것이다.

즉 사고조사의 과정은 기계와 기술 그리고 구조와 제도가 맞물리는 지점에서 권력관계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세밀화로 그려내는 작업이다. 이 때문에 조사는 범죄 여부를 파악하는 수사(搜査)도 아니고, 죽음에 대한 정치적 의미를 규정하는 정치적 수사(修辭, rhetoric)에 그쳐서도 안 된다.
 
사고만 났다 하면 '재해자 과실론'

고용노동부에서 중대재해 특별근로감독으로 이뤄지는 사고조사 외에 기업 내에서 자체적으로 수행하는 사고조사가 있다. 이는 통상 안전관리자와 기업에서 선임하는 안전전문가들이 수행한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사고는 안전관리상의 문제를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안전관리의 책임을 갖는 당사자가 사고조사의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사고조사의 객관성이 애초에 실종된다. 때문에 재해 당사자와 그의 동료들은 조사의 주체가 아니라 조사의 대상이 된다. '재해자 과실론'의 출발은 여기서부터 이뤄진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자신이나 동료가 당한 사고조사가 어떤 결론을 맺는지 알지 못한다. 발전 하청노동자들도 중대재해 사고조사서를 원청이 작성해왔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해당 사업주는 사고조사서를 작성해 고용노동부에 제출해야 한다. 그 안에는 사고의 원인, 사고의 구체 경위와 더불어 재발방지대책들이 포함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재발방지 대책 이전에 사고의 원인이다. 사고의 원인을 둘러싼 현장노동자의 의견을 봉쇄함으로써 원인은 재해자의 과실로 돌아가게 된다.

김용균 특조위는 사용자를 배제하고 정부 측, 시민대책위 측 추천위원들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하청노동자들을 자문위원으로 두었다. 객관성과 공정성을 가한다는 명분으로 사용자, 노동자, 정부, 전문가를 동수로 구성하지 않았다. 즉 사고를 조사할 때 사용자를 포함한 발전회사가 '조사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 측 관료들도 조사위원에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의 법, 행정적 시스템 역시 조사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는데, 처음부터 사용자 측이나 정부 측이 조사위원이 되어야 한다고 누구도 주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기업 내 사고에 대한 조사는 '사용자'가 '조사주체'가 된다. 따라서 구의역 김군이나 김용균, 조선업 등과 같은 사용자를 배제한 별도의 조사활동이 이뤄져야 한다. 사측의 사고조사와는 독립적인 사고조사권을 확보해야 하며, 이러한 한에서 사측과 공동의 사고조사를 수행하거나, 아니면 독자적인 사고조사 활동을 벌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사고조사를 중대재해에 국한할 필요는 없다. '아차' 사고에 그쳤더라도 심각한 산재사고나 안전사고로 이어질 뻔한 사고, 사망까지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특정 장소나 상황에서 반복된 사고 등도 사고조사권을 요구해야 한다.

노동자와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사고조사는 결코 사고가 난 후의 사후적인 과정이 아니다. 예방적 조치는 안전수칙을 강화하는 식이 아니라, 사고의 원인을 제대로 조사하는 식으로 하는 게 필요하다. 현재 형식적인 체크리스트로 유명무실한 위험성 평가를 비롯한 일상적인 안전보건활동의 실효성을 담보하는 것만큼이나, 현장노동자들이 체감하는 위험, 더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사고들을 조사하여 사고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 또한 효과적인 예방적 조치가 될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다양한 층위에서의 사고조사가 일상의 안전보건활동 증진과 강화에 밑거름이 될 것이다.

사고조사의 목적은 사고조사 보고서를 작성하고 예방하는 것

사고조사의 목적은 사고조사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이는 매우 중요하다. 보고서를 남기지 않는 사고조사 활동은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것은 5.18과 같은 역사적인 사건에서 실질적인 발포명령자가 누군지 밝혀낼 결정적 증거를 수집했음에도 공식적인 보고서 한 장 남기지 못한 것과 같다.

때문에 객관적이고 공신력 있는 사고조사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물론 그 과정은 지속적인 갈등과 투쟁의 과정이기 때문에 보고서를 작성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조사 보고서를 작성한다는 것은 사고의 구조적 원인들을 축적하고 사회적으로 공론화한다는 것의 의미를 갖는다.

김용균 특조위 당시 백도명 자문위원은 보고서 집필을 앞둔 특조위원들에게 "'왜'라는 질문을 5번 하면 구조적 원인에 도달할 수 있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에 따라 김용균 보고서는 전력산업의 민영화라는 거시적인 구조로부터 출발하지 않고, '김용균은 왜 컨베이어벨트 안으로 몸을 숙여서 작업했는가?'라는 구체적 질문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었다.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은 체계적인 연구논문을 작성하는 것과는 다르다. 구체적인 조사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김혜진 자문위원의 조언 역시 같은 맥락이다.

사고조사보고서를 작성한다는 것은 구체적인 사고, 구체적인 죽음의 경로를 추적하면서 그 배후에 가려진 구조적 원인에 도달하기 위한 인과관계의 사슬망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그러한 과정으로 쓰인 사고조사 보고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구조적 원인은 우리 사회의 매우 근본적인 문제와 맞닿아 있다. 그래서 보고서가 규명한 사고의 구조적 원인과 이것이 갖는 의미는 반드시 공장의 담벼락을 넘어선다. 이러한 사회화는 공장 안에서 벌어지는 사측의 지배력에 압력을 행사할 힘이 된다.

마지막으로 사고조사 보고서는 앞으로 더 많이 쓰이고 쓰여야 한다. 중대재해로 이어질 수 있는, 이어질 뻔한 사고들에 대한 조사활동을 통해 그 원인들이 축적될 수 있다면, 낡았지만 여전히 현실에서 강력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재해자 과실론'은 현실에서 발붙이지 못할 것이다.

<일터> 통권 191호 / 20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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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 2020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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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문재인정부 노동안전보건정책 중간평가
1. 사고조사, 무엇을 어떻게 조사할 것인가?
2. 직업병 집단 조사(혹은 역학조사), 제대로 하기 위한 과제들
3. 노동안전보건 ‘활동’으로서의 조사를 바라며 

 

[지금 지역에서는]

충청남도 유성기업 노동자 정신건강 돌봄사업이 시작되다!

 

[산재보험 톺아보기]

개별실적요율제가 산재보험의 공평성과 예방효과를 담보하는가?

 

[연구리포트]

지방자치단체 노동안전보건정책 현황과 과제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열정페이’ 담론이 던진 여전히 유효한 질문들 

 

[사진으로 보는 세상]

 

[현장의 목소리]
경쟁, 실적-장애인 청년노동자의 죽음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노동자가 건강한 사회, 간절함으로 만들고 싶어요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내일을 위한 시간: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노동자 건강의 현실세계(real world)와 실시간(real time) 확인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與]

2020년 달라지는 주요 노동관계법 

 

[노동자 건강상식] 
폐렴 


[문화읽기]

2019 <보고싶은 얼굴> 전을 보고 


[발칙 건강한 책방]

요양보호사도 아프다 


[이러쿵 저러쿵]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일들 


[안전보건동향]


[한노보연 이모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