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_문화로읽는노동] “이렇게도 노동재해를 이야기할 수 있구나”- 판 드라마 <야드> 관람기

이렇게도 노동재해를 이야기할 수 있구나

- 판 드라마 <야드> 관람기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에서는 야드라는 공연이 무대에 올랐다. 조선소 노동자의 산재 사고를 소재로 한 임채묵 작가의 단편소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었다. 출연진은 단 한 명, 판소리꾼이자 이날치 밴드의 보컬 안이호 씨였다. 안이호 씨는 소설 속 이야기 위에 소설을 읽은 자신의 감상과 해설을 덧붙여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냈다. 연기도 하고, 소리도 하고, 춤 혹은 몸동작도 한다. 연극, 뮤지컬, 판소리, 뭐라고 불러야 적당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제작진도 판소리와 드라마를 합쳐서 판 드라마라는 이름을 붙인 모양이다.

남의 눈으로 본 내 노동은 어떨까

시작을 알리는 공이 울리고 공연장이 칠흑처럼 어두워졌다. 무대 저 멀리 커다란 화물용 엘리베이터 출입문이 덜커덩 열렸다. 거기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그이는 제 머리통에 알루미늄 호일을 둘러 감았다가, 벗겨내어 바닥에 내려놓고, 다른 호일을 집어 들어 다시 머리통에 감고 벗겨서 내려놓았다. 하나, , , 쉬지도 않고 열 개인가 스무 개인가 호일로 만든 머리통 모양의 구체를 벗어 던질 때마다 가볍고 차가운 금속성 잡음이 무대에 번졌다.

뭘 하는 거지? 저게 뭐지? 객석에 앉은 사람들은 모두들 눈에 힘을 잔뜩 주고 배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엘리베이터에서 조금 걸어 나와 어두운 무대에 한걸음 다가섰다. 이제 엘리베이터 안을 비추던 환한 조명이 그의 등 뒤로 감춰졌다. 무대가 조금 더 밝았으면 좋겠는데. 배우가 우리 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오면 좋겠는데. 그는 그저 한 발짝만 나왔을 뿐이고, 이제 우리 눈에는 조명을 등지고 선 그의 실루엣만 보일 뿐이었다.

그는 거기 서서 알루미늄 호일을 머리에 감고, 벗겨내어 바닥에 내려놓고, 다른 호일을 머리에 감는 일을 계속 했다. 검은 실루엣을 한참 지켜보노라니 눈의 초점이 차차 흐려졌다. 어느 순간, 그가 끝없이 자라나는 자기 머리통을 떼어 던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혹은 인간의 속성 따위는 전혀 들어있지 않은, 텅 빈 가짜 머리통을 계속 찍어내고 있는 것도 같았다. 혹은 그저 기계처럼 아무 의미 없는 움직임을 반복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궁금하고, 섬뜩하고, 처연하고, 답답해졌다. 내 일상의 노동도 멀리서 남의 눈으로 보면 그렇지 않을까.

 

나는 내 노동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공연의 뼈대는 원작 소설의 이야기에 있다. 조선소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선박에 케이블을 까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제일 처음 나오는 목소리는 야드에 대해 이야기한다. 거대한 선박, 거대한 장비들, 그것들을 담고 있기에 더욱 거대한, 너무 거대해서 사람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 야드의 장대함을 열정적으로 설명한다. 흡사 자기가 일하는 곳의 위대함에 가슴이 벅찬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만, 옷섶마다 솔기마다 어찌나 쇳가루가 많은지 모르겠노라 한다. 털어도 털어도, 씻어도 씻어도, 귀신에 홀린 듯 어디선가 쇳가루가 계속 나온다. 끝도 없이 나오는 쇳가루는 과연 그이의 작업복에서 나오는 게 맞을까. 혹시 그이의 몸속 가득 쇳가루가 쌓인 건 아닐까. 피부의 주름과 땀구멍, 털 사이사이에, 온통 쇳가루가 들어찬 것은 아닐까. 세월이 더 흐르면 쇳가루 눈물, 쇳가루 땀을 흘리고 쇳가루 오줌, 똥을 싸게 되지는 않을까. 지금 그이의 몸은 본래 타고난 모습의 몇 퍼센트나 남아있는 걸까. 쇳가루가 들어차는 대신, 그이의 몸에서 사라진 것은 무엇일까.

생각을 더 이어갈 새 없이 이야기는 선박에 케이블을 까는 작업 설명으로 이어졌다. 아무리 장대한 선박도 동력과 신호를 전달하는 케이블이 구석구석 깔리기 전까지는 쓸모없는 쇳덩어리일 뿐이다. 그렇게 중요한 작업이건만 정작 케이블을 설치하는 일은 아주 간단하다’. 안이호 배우는 어느 새 고참 노동자가 되어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작업 방법을 가르쳐준다. ‘“하면 잡고 하면 당겨’. 이렇게 말하며 그는 라고 외칠 때 케이블을 움켜잡고, ‘라고 외칠 때 케이블을 당기는 시범을 보인다. 배우가 홀로 무대에 쭈그리고 앉아서 ’, ‘’, ‘’, ‘를 반복하는 동안, 관객의 머릿속에는 선박의 온갖 구멍이며 코너마다 몸을 구겨 접고 들어가 손바닥이 쓸리고 어깨와 허리를 삐어가며 케이블을 잡아당기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 노동은 그저, ‘하면 잡고 하면 당기는 일일 뿐일까.

 

가련할 손 백만 군병은 허망히 죽고

무대 위의 는 낯설고 거대한 야드에 처음 들어와 케이블을 당기는 일을 배우는 신참이다. 이런 나에게 먼저 다가와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건넨 사람이 태식이다. 나보다 몇 살 적어 싹싹하게 굴면서도 경력으로는 선배랍시고 가르쳐주는 시늉도 제법 할 줄 아는, 밉지 않은 동료. 태식이는 아침마다 야드에 울려 퍼지는 신나는 안전송뒷이야기 따위도 슬며시 귀띔해주었다. 사람이 죽은 다음 날엔 안전송을 틀지 않는다나.

어느 날, 둘이 함께 야드를 걸어가던 중 지게차가 태식이를 덮쳤다. 태식이는 내 눈 앞에서 허리부터 다리까지깔려 즉사했다. 누군가는 탄식했다. 안전통로가 아닌 곳으로 걸어 다니면 안 된다는 걸 왜 누구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느냐고. 또 누군가는 담담하게 말했다. 매년 열 명이 따박따박 죽어나가는 조선소에서 늘 일어나던 일이 일어났을 뿐이라고. 그런데 담담하건 탄식하건 다들 손바닥을 털며 일어나 하는 말은 같았다. 결국 배는 나가야 되니까(가서 일이나 하자).

결국 배는 나가야 되니까, 결국 일은 해야 되니까, 태식이가 죽은 자리는 말끔히 치워지고 야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 딱 하나 달라진 것이 있긴 했다. 사고 다음 날 아침에 안전송이 나오지 않았다.

객석에 낮은 탄식이 흘렀다. 분노인지 슬픔인지 정의하기 힘든 감정이 밀려와 나도 모르게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안이호 배우가 무대 앞으로 성큼 나오더니 판소리 적벽가한 대목을 부르기 시작했다.

가련할 손 백만 군병은앉어 죽고 서서 죽고 웃다 울다 죽고 밟혀 죽고 맞어 죽고 애타 죽고 성내 죽고 덜렁거리다 죽고 복장 덜컥 살에 맞어 물에거 풍 빠져 죽고 바사져 죽고 찢어져 죽고 흉하게 죽고 우습게 죽고무단히 죽고 함부로 덤부로 죽고 땍때그르르 궁굴다 아뿔사 낙상하야 가슴 쾅쾅 뚜다리며 죽고 실없이 죽고 가이없이 죽고 어이없이 죽고 허망히 죽고 재담으로 죽고 꿈꾸다가 죽고대해수중 깊은 물에 사람을 모두 국수 풀 듯 더럭더럭 풀며적벽 풍파에 떠나갈 제 일등명장이 쓸 디가 없고 날랜 장수가 무용이로구나

소리를 듣노라니 꽉 깨물고 있던 어금니에서 스르르 힘이 풀렸다. 앉아 죽은 이, 서서 죽은 이, 부서져 죽은 이, 실없이 죽은 이, 어이없이 죽은 이, 허망이 죽은 이들을 떠올리며 나도 모르게 아이고’, ‘저런탄식이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가련할 손 노동자여. 전쟁 같은 일터에서 전쟁처럼 더럭더럭 죽어간 사람들이여.

 

공연보다 더 긴 여운

이 작품의 뼈대는 원작 소설 속 이야기지만, 그 뼈대 위에 이야기가 불러일으킨 감정이나 심상, 생각 따위의 근육과 피부를 덧붙여 완성된 것 같다. 이야기는 말만으로도 충분히 전할 수 있지만, 이야기가 불러일으킨 감정과 심상은 말로 다 전하기 어렵다. 그래서 음악으로, 미술로, 혹은 어떤 맛이나 촉감에 빗대어 설명해야 한다.

이 공연 말미에도 소리, , 모양, 동작, 그리고 사람의 눈빛과 표정 등 비언어적 방식으로 이야기 위에 덧붙여질 감정과 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 있다. 배우의 몸짓, 무대에 준비된 장치들과 조명 같은 것들이 관객들의 눈과 귀를 통해 이성과 감정의 모든 창문을 두드린다고나 할까. 그게 바로 공연 예술의 힘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런 공연이라면, 살면서 단 한 번도 산업재해 통계를 들여다보거나 중대재해 사례를 자세히 들어본 적 없던 사람들의 가슴 속 창문도 노크할 수 있지 않을까.

(공유정옥 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