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현장과 지역에서 새로운 시도를 고민하다 (1) 금속노조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최진일 조합원 인터뷰 / 2018.04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일터>는 지난 2010년부터 3년여간 [노안활동가에게 듣는다] 코너를 통해 전국의 노동안전보건 활동가들이 현재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개인적인 고민과 꿈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독자들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자 하였다. 그리고 몇년이 지난 지금 그때 활동가들은 어떤 고민을 이어가고 있는지, 새롭게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펼치고 있는 동지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다시 시작하는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는 충남 서산에 있는 동희오토에서 자동차를 만들면서 지역에서 행복한서산을꿈꾸는노동자모임(행서모)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하는 최진일 조합원를 시작으로 연재를시작한다.

높은 노동강도를 견디며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전화나 문자로는 몇 번 이야기 나눴는데 이렇게 뵌건 처음이다.

최진일 조합원은 전날 밤 야간 근무를 마치고 민주노총 서태안 위원회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터에서, 현장에서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하는 활동가들 만나 다양한 고민과 활동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잘 부탁드린다. 우선 간단하게 본인 소개를 부탁드린다.




"아마 다들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동희오토에서 일하고 있다. 동희오토는 2006년 입사해서 일하다 2008년 해고되고 현대차 본사 앞에서 투쟁하면서 2011년 말에 다시 복직했다."

최진일 조합원은 함께 해고 된 8명의 동료들과 복직 투쟁을 했다.

"회사에서 법적인 해고 사유를 '이력서 허위 기재'라고 했는데, 그거야 회사 주장이고 현장에 투쟁이 있었다. 그때가 피치업이라고 회사가 노동강도를 높이려는 상황이었다. 당시엔 한국노총 조합원이었는데 대의원들 중심으로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면서 대응을 했는데 그것 때문에 회사에 난리가 났다. 제가 있던 업체는 폐업하면서 저를 포함한 동료들이 해고됐다. 이후에 민주노총에 가입해서 쭉 복직 투쟁을 했다."

당시 투쟁은 노동강도 저지 투쟁이었지만, 사실상 노조 민주화에 대한 투쟁 의미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회사는 아주 완강히 저항했다.

"동료들이 투쟁하기 이전에 동희오토에서 민주노조 투쟁을 시작한 게 2004년부터였다. 그때는 조합원도 300∼400명 정도 됐는데 그때도 노조 활동을 하려고 하면 조합원 소속 업체가 폐업되고 다시 업체가 들어오고 그런 게 반복되면서 지지부진한 상황이었다."

이미 민주노조 투쟁이 쉽지 않은 현장인데 여기에서 일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물었다.

"그때만 해도 동희오토처럼 완성차가 아닌 수십 개의 하청 업체 비정규직 노동자가 완성차를 만드는 현장이 여기 말고 없었다. 그래서 동희오토는 자본에는 꿈의 공장이라고 불렸다. 동희오토라는 현장이 비정규직 운동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뜨거운 감자여서 여기를 왔는데, 와보니까 활동가들이 곳곳에 있었다. (웃음) 입사할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현장에서 문제를 제기하면서 회사가 나를 뒷조사하고 해고까지 됐다."

현장에서 소소하지만 소중했던 시간들

언제부터 이른바 현장에 투신해서 운동해야겠다 생각했는지, 그런 결심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물었다.

"대학교에 입학했는데 선배들은 등록금 투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노수석 선배라고 시위 중에 돌아가셔서, 입학하자마자 열사 투쟁을 했고 그게 제일 큰 계기였다. 사실 동기들이나 선배들한테 농담으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대학에 갔을 때 운동권이 많이 있었으면 나는 안 했을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얼마 안 되는 사람들만 활동하다 보니 절실했던 게 있었던 것 같다."

노동강도가 높기로 악명이 높은 곳이라 일 자체가 어렵지는 않았는지 물었다.

"동희오토 가기 전에 이미 제조업 사업장에서 일은 해봤는데 컨베이어 노동은 여기가 처음인 데다 여기는 워낙 노동강도 자체가 높으니까 힘들었다. 게다가 노동강도가 점점 강해졌다. 입사했을 때만 해도 UPH라고 한 시간에 자동차가 나오는 속도가 32대였는데 지금은 60대가 나온다. 속도는 2배가 빨라졌는데 당연히 인원이 두 배가 늘지는 않았으니 힘들다. 교대하고 야간에 일하는 것도 처음 입사했을 때는 30대라 버텼는데 이제는 슬슬 힘들어진다."

최진일 조합원은 강도가 높은 일을 하면서도 소소한 활동들을 펼쳐왔다.

"처음엔 제가 일하던 업체 안에서만 알음알음 활동을 했다. 4∼5명이 소소하게 회사의 속셈을 알아야 한다고 (웃음) 속셈학원 모임을 만들고 활동했다. 얼마 하지는 못했는데 그러다 처음 집단행동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여성 노동자분이 신입 사원으로 들어왔는데 한 분이 야간에 일 적응을 못 해서 반장이 엄청 갈궜다. 면담 들어가면 울면서 나오고 그래서 마침 저랑 같은 조원이라 쉬는 시간에 조원들이랑 의논을 했고, 한국노총 위원장한테 이야기해서 해결해달라고 하자고 결정해서 10명 정도가 찾아갔다. 그때 한국노총 위원장이 안타깝다고 알겠으니 회사에 이야기하겠다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퇴근했는데, 다음날 현장을 가보니 업체 사장이 노발대발 난리를 쳤다. 한국노총 위원장이 문제 해결은 커녕 업체 사장한테 우리가 한 이야기를 고자질했다. 그 뒤로 현장에서 일하는 동료들은 한국노총이 누구를 위한 노동조합인지 분명이 알게 됐다."

온갖 멸시와 왕따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활동

이른바 현장 활동 주범으로 찍힌 최진일 조합원은 복직 이후에도 지금까지 현장에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단속을 받고 있다.

"동료들이랑 같이 해고됐을 때 아예 민주노총 조합원은 없었고 현장이 한국노총으로 싹 정리된 상황이었다. 회사는 우리가 복직하기 전까지 현장 관리를 했다. 민주노조 조합원 하고는 아예 말도 못 섞게 단속을 한거다. 물론 업체가 많다 보니 분위기가 조금씩 달랐는데, 의장 쪽에서 일했던 동지는 관리자들이 대놓고 욕하고 폭력적인 분위기를 만들길래 우리가 모여서 그 업체를 쳐들어가서 관리자랑 푸닥거리를 했던 적도 있다. 관리자들은 우리를 늘 감시하니까 동료들이 말 섞는 것도 못 했다. 밥 먹을 때도 옆에 아무도 앉지를 않았다. 언젠가는 제가 한 번 동료들 옆에 가서 앉아봤는데 한 이틀인가 지나서 한 놈이 따로 얘기 좀 하자더라. 그러더니 하는 말이 미안한데 애들이 네가 옆에 앉아서 정말 불편해한다고 그러지 말라고 그러더라. 그래서 그래 그러냐 그랬다."

복직 이후 꽤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분위기는 별로 바뀌지 않았다고 했다.

"막 복직했을 때처럼 긴장이 있는 건 아닌데 지금도 여전히 관리는 한다. 최근에 있었던 일인데 회식이 있었다. 회식 때도 다들 제 옆에 오기 힘들어하는데 조금 말이 통하는 동갑내기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술이 좀 들어갔는지 저한테 사장하고 너무 싸우지 말고 잘 지내라고 그러면서 나랑 같이 가서 사장한테 술 한잔 따라주고 오자는 하더라. 저는 됐으니까 너나 갔다 오라고 그래서 혼자 갔는데 다시 오더니 표정이 일그러져서 오더라. 이 친구 딴에는 뭔가
관계를 풀어보려고 한 건데 사장이 진일이랑 친하게지내지 말라고 했다면서 왔다."

이런 회식 자리도 너무 괴롭고 힘들 것 같았다. 나라면 저란 상황을 견딜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맞다. 사실 회식에 별로 가고 싶지 않다. 처음에는 일부러라도 꼭 갔었는데, 그때는 아예 회사가 회식 때 제가 앉아야 하는 자리를 만들고 옆에 관리자들로 포위시켜 버리기도 했는데 그나마 싸워서 관리자들이 옆에 없는 거다."

큰 전환점을 맞은 산재 인정 투쟁

동희오토 현장에 있는 활동가들에게 황재민 씨 산재인정 투쟁은 큰 전환점이 되었다. 이 전환점을 어떻게 마주하게 되었는지 물었다.

"현장에서 일하다 사람이 쓰러질 정도면 뭔가 이야기가 들리는데 그때는 전혀 몰랐다. 그런데 저희랑 알고 지내는 공장 형님이 정문 앞에 어떤 여성분이 피켓을 들고 있다고 전했다. 그래서 그다음날 동료들이랑 가봤는데 황재민 씨 아내분이었다. 일단 연락처 주고받고 다음에 상황을 들어보니 이미 산재를 한창 진행해서 심사청구가 끝나고 재심사청구를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그때만 해도 저희가 노안투쟁이나 산재 관련해서 고민이 적었기 때문에 이야기를 듣고 충남 갑을오토택에 있는 안재범 동지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 이훈구 동지께 도움을 요청했다."

동료들은 두 분에게 이번 일과 관련한 이야기를 듣고 생각보다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우리가 민주노총 조합원으로 복직은 했지만 별다른 활동을 못 하고 있는데, 이것마저 듣는다못하면 민주노조가 있는 게 별 의미 없지 않겠냐. 그래서 이게 보통 일이 아니란 건 알지만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도 다시 산재를 신청해서 진행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가 투쟁하면 회사가 황재민 씨에게 보상하고 산재는 법원에 가서 다툴 생각이었다. 그런데 안재범 동지와 이훈구 동지가 회사에서 공단에 거짓 자료를 제출하는 등 산재 조사 과정이나 절차상 문제가 있으니 근로복지공단에 재조사를 요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의견을 줬다. 비록 전례는 없지만 한번 해보자고 마음을 모았다."

특집 3. 저희는 뜨거운 감자가 아니라 민주노조를 하고 싶습니다 / 2017.10 ·11

저희는 뜨거운 감자가 아니라

민주노조를 하고 싶습니다

- 자동차판매연대노동조합 김선영 위원장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 이 글은 김선영 위원장과의 인터뷰를 구술형식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인터뷰는 지난 10월 17일에 진행했습니다. 

저는 자동차를 파는 비정규직 노동자였어요

하는 일은 현대자동차 대리점에서 자동차를 판매하는 일이었어요. 지금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해고되서 투쟁하고 있고요. 주변 사람들은 제가 대기업에 자동차 세일즈맨이라 돈을 많이 벌었겠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한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자동차 회사인 현대기아차도 IMF 금융위기 때 몸집을 줄이려고 노동자를 해고하고 정규직을 비정규적으로 일하게 했거든요. 그래서 예전에는 자동차를 현대기아차 직영점에서 판매했는데 IMF 이후부터는 직영점이 아닌 대리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차를 팔게 되었죠. 이제는 세월이 흘러서 전국에 현대차 직영점이랑 대리점이 400개 정도로 똑같이 있고요. 일하는 노동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6,000명 정도로 똑같아요. 현대차는 직영점 운영하면서 들어가는 비용, 노동자들 임금과 복지 등 비용을 대리점 소장한테 떠넘기면서 차는 차대로 똑같이 파니까 엄청 남는 장사를 하고 있어요.

저희는 무조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했어요

2001년부터 대리점에서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정규직이랑 똑같이 차를 팔지만, 비정규직이었고 근로계약서, 기본급, 퇴직금, 4대 보험도 없이 일했어요. 현대기아차 정규직 노동자들은 열심히 투쟁해왔기 때문에 노동조건을 많이 개선했는데 저희는 투쟁을 안 해서 제가 입사했을때나 지금이나 별로 바뀐 게 없어요. 대리점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직영점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랑 달라서 자동차를 못 팔면 월급이 하나도 없고 부진자교육에 끌려가고 해고도 됐고요. 

그래서 어떻게든 정규직노동자들보다 차를 많이 팔아야 하니까 고객들이 서비스를 많이 바라면 제 돈 써가면서 차를 팔았죠. 정규직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제 살 깎아가면서 차를 안 팔아도 되니까 저희가 차 가격 깎아주고 서비스를 과도하게 하면서 시장질서 망가트리고 손님 뺏어간다고 손가락질을 많이 했어요. 사실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인데 저희는 당장 차를 못 팔면 길바닥에 나앉으니까 별다른 방법이 없고, 차를 많이 팔아도 정작 남는 건 또 별로 없었어요. 이 악순환이 지금까지 계속된 거고요.

더는 이렇게 살기 싫어서 노동조합을 만들어야겠다 결심했어요

일도 일인데 대리점 소장들에 비인격적인 태도가 너무 부당했어요. 저희는 A 대리점에서 B 대리점으로 옮기고 싶어도 대리점 소장끼리 동의서가 없으면 이동을 못 했어요. 대리점 소장한테 완전히 종속돼서 일한 거죠. 저도 소장한테 다른 직원들 다 있는 회의에서 "개새끼야 병신아 왜 인생을 이렇게 사냐." "나 같으면 쪽팔려서 그렇게 안 살고 일 그만두겠다." 이런 폭언을 매일 들었어요. 차를 못 팔고 돌아오면 서류를 얼굴에 집어 던지기도 하고요. 그때는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언젠가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인간답게 살자고 마음먹었던 것 같아요.

현대기아차는 노동자를 갈라치기 해서 손도 안 대고 코 풀고 있어요

2016년에 노동조합을 만들고 현대기아차에 진짜 사장 정몽구가 우리 문제 책임지라고 요구를 했어요. 현대기아차에선 대리점이랑 우리 회사랑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죠. 이 문제는 지금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으로 다투고 있는데 현대차는 우리랑 전혀 관계가 없다면서 김앤장이랑 손잡고, 기아차는 태평양이랑 손을 잡더라고요. 노동조합은 소송은 소송대로 하면서 조합원들이 일하고 있는 대리점 소장들에게 교섭도 요구했는데 대리점 소장들이 너희는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 사업자니까 교섭에 나올 이유가 없다고 버티더라고요. 노동부에서도 노동조합이 교섭을 요구했으니 대리점 소장이 교섭에 나와야 한다고 명령을 내렸는데 지금까지 버티면서 이것도 소송을 진행하고 있어요.

아마 대리점 소장들은 소송 끝날 때까지 시간을 끌 거예요. 현대기아차가 대리점 소장들이 모여 있는 협회에다 노동조합이 교섭을 요구해도 절대 응하지 말고 시간을 끌어서 재판으로 가라고 지침을 내렸거든요. 대리점 소장은 정규직 노동자가 퇴사해서 현대기아차에 면접을 보고, 본사에서 사람을 결정하면서 다시 현대기아차랑 대리점 계약을 맺는 구조라서 현대기아차 말을 듣지 않을 수가 없어요. 재계약도 현대기아차 손에 달려있으니까 대리점 운영할 때도 고분고분 말을 들어야 하고요.

누가 봐도 진짜 사장은 현대기아차 아닌가요

예전부터 대리점별로 현대기아차 내부 인터넷 페이지에 들어갈 수 있는 아이디가 있었어요. 이걸로 인터넷 페이지 들어가서 차 가격은 얼마인지, 어떤 행사를 하는지, 공지사항은 뭔지 등등 본사에서 내려오는 정보를 확인하고 차를 팔았거든요. 그런데 저희가 노동조합을 만드니까 아이디로 여기를 못 들어오게 막았더라고요. 

아침에 출근하면 8시 반에 현대차에서 사무실에 설치해준 빔으로 방송 보면서 아침 체조하고, 현대차에서 만든 H-뉴스 듣고 조회를 했는데 그것도 싹 없어졌어요. 부진자 교육도 현대차에서 직접 했는데 이 교육도 없어졌고요. 현대차가 우리한테 들어주던 상해보험도 이젠 대리점 협회가 들고 있어요. 이게 다 왜 그런지 아시겠죠? 이제라도 현대차가 비정규직 노동자 진짜 사장이라는 걸 은폐하고 지우겠다는 거예요.

우리를 지켜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15년 전에 어떤 비정규직 노동자가 산타페 차를 팔았어요. 그런데 그 차가 1주일 만에 고장이 나서 손님이 대리점을 찾아왔죠. 그 손님은 차가 고장 났으니 화가 나니까 차를 판매한 노동자한테 책임지고 새 차로 교환해 달라고 요구하는데, 그건 비정규직 노동자 혼자 책임질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대리점 소장이랑 현대차는 나 몰라라 하더라고요. 결국, 그 손님이 차를 판매한 노동자한테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펴서 1달 만에 죽었어요. 현대차는 끝까지 자기 직원이 아니라고 아무런 보상도 안 했어요. 

나중에 이 문제가 산타페 차 동호회 인터넷 카페에서 알려지고 방송까지 되니까 현대차에서 유족한테 이 사실을 밖에 말하지 않는 조건으로 합의했다고 알고 있어요. 그때 다들 상심이 컸어요. 차를 잘 못 만든 건 현대차인데 왜 일하다 죽는 건 우리인 건가 억울하잖아요. 그때부터 현대차에서 산재보험은 아니지만, 상해보험을 비정규직 노동자한테 들어줬다고 하는데 이제는 그것마저 현대차가 안 해주는 거예요.

자본과 싸우는 것도 힘에 부치는데 같은 노동자를 설득해야 해요

2015년에 노동조합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금속노조를 찾아갔어요. 그때부터 금속노조 미조직 비정규 담당 활동가분이랑 전국 다니면서 노동자들 만나고 조직을 했죠. 그 다음해엔 금속노조에서 조합원이 많지 않아서 지회를 구성하기는 힘드니 일단 노동조합을 먼저 띄우고, 조합원을 더 조직해서 금속노조에 가입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노동조합 먼저 띄우고 금속노조에 가입하려고 가입 신청을 했는데 현대기아차 정규직 조합원들이 저희가 금속노조 가입하는 걸 반대한다는 거예요. 당시 금속노조 위원장이 저를 찾아와서 노동조합 규약이 가입을 요청하면 한 달 이내로 승인하게 되어 있는데, 한두 달만 기다려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농담으로 "이거 얘기가 길어지는 거 아니냐." 물어보니 그렇지 않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때만 해도 노동조합은 규약이 있고 정규직이 반대한다고 노동조합 가입을 막는 건 민주노조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절대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 했는데 벌써 1년 반이 지났어요. 현대기아차 정규직 노동조합은 금속노조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려고만 하면 항의하고 몸싸움까지 벌였어요. 

금속노조에서 대의원대회를 열고 표결로 결론 내려 해도 투표 자체를 거부해서 회의 자체를 무산시켰고요. 저희는 현대기아차가 워낙 힘이 강한 회사라 거기랑 싸우는 것도 힘든데 같은 노동자들과 다투고 노조를 설립할 권리도 박탈당하는 상황이에요. 저는 지금도 왜 우리가 정규직 노동조합의 허락을 받고 금속노조에 가입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돼요. 아무리 노동조합에서 내부적인 갈등이 있다고 해도 규약은 지키고 안에서 토론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잖아요.

그렇지만 끝까지 정규직 노동조합에 손을 내밀 거예요

지금 이 갈등은 현대기아차 자본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갈라치기하고 분열하게 하려는 전략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무리 정규직 노동조합이 우리를 배척하고 서운하게 해도 끝까지 설득할 거예요. 우리가 힘을 합치지 않으면 현대기아차 자본을 절대 이길 수 없거든요. 그러니 금속노조도 현대기아차 정규직 노동조합도 우리를 뜨거운 감자로만 취급하지 말고 민주노조다운 결정을 내렸으면 해요. 제가 알고 있고 기대했던 민주노조, 노동조합은 이런 게 아니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