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 2018 전국평등행진 부산기자회견

[기자회견문]

사람이 이유다!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어느덧 1년하고도 6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인천퀴어퍼레이드 사태 등에서 목격했듯 혐오단체들의 횡포가 갈수록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제는 여러 목소리를 내는 현장을 방해하는 것을 넘어서 각종 법률의 제정도 가로막는 실정이다. 얼마 전에는 인권교육지원법이 학교에서 동성애 교육을 허용하는 법안이라며 혐오단체들의 집중 공격을 받았고 결국 법안이 철회되는 일이 있었다. 지난 2014년에도 인권교육지원법은 혐오세력의 강력한 항의에 의하여 철회되었고 이 법안뿐 아니라 인권 강화를 위한 많은 법안들이 이런식으로 철회되어 왔다. 국회는 시민들을 향한 공격들을 방조해왔고 국회로 쏟아지는 혐오세력의 공세에는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조용히 법안을 철회하는 등 그들의 행위에 동조하는 모습만 보여왔다.

 

국회가 집중공격을 받는다면 당사자들에게 쏟아지는 공격과 그들의 아픔은 어떠하겠는가. 실제 이번 인천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의 정신적 상처가 극심하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되기도 하였다. 지난 토요일 치러진 제 2회 부산퀴어문화축제는 해운대구청이 중립이라는 이름뒤에 숨어 혐오세력들의 행위를 방조하면서 준비과정과 진행과정 동안 극도의 불안속에서 치러졌다. 축제는 퀴어와 퀴어들과 함께 연대했던 시민들의 힘으로 무사히 치러졌지만 준비하는 과정에서 겪은 정신적 심리적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성소수자들의 우울증과 자살율은 이미 적신호가 켜진지 오래이다. 성소수자뿐 아니라 난민, 장애인, 여성 등 사회 각계각층에서 비명이 터져나온다. 차별금지법 발의를 더 이상 늦추지 말아야 할 이유, 사람이다. 국회는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을 발의하여야 한다.

 

작년 2017, 부산은 물론 전국 곳곳에서 시민들의 서명을 받으며 대중과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열망을 모았다. 그리고 오늘 차별금지법 발의와 제정을 향한 열망을 다시 한 번 모아 여기 모였다. 지금 이 시간, 부산은 물론 전국에서 오는 1020일 광화문부터 국회까지 평등행진을 할 것을 선포하고 있다. 시민들의 염원을 국회는 똑똑히 보아야 할 것이다. 더불어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인 2018년의 남은 시간, 우리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하여 방방곡곡 캠페인과 평등을 발의하라 온라인 행동 등 국회를 움직이기 위한 다양한 직접행동을 이어갈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 땅 위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바람이다, 국회는 지금 당장 평등을 발의하라! 부산시와 각 구청은 혐오세력들의 인권침해행위에 방조하지 말고, 모두의 인권을 위해 힘써라!

 

20181016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특집2. 중증장애인 노동권 실태와 노동권 투쟁의 의의 / 2018.04

중증장애인 노동권 실태와 노동권 투쟁의 의의

정다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중증장애인의 경제 활동 실태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과 빈곤은 별개로 생각할 수 없는 문제이다. 굳이 수치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일단 중증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경우를 보기가 드물고, 직장 생활을 하는 경우는 더 드물다. 장애로 인한 경제적인 부담은 고스란히 가족 구성원에게 떠넘겨지고, 가족이 부양의 부담을 감당하지 못 하는 경우 장애인은 거주시설에 보내진다.

고용과 관련된 여러 가지 통계 자료 중에서도, 전체 인구 통계와 비교하면 눈에 띄게 차이 나는 중증장애인 통계는 바로 현격히 높은 ‘비경제활동인구’이다. 전체 인구의 경우, 10명 중 3.6명이 비경제활동인구지만 중증장애인 비경제활동인구는 10명 중 7.8명이다. 이처럼 중증장애인의 현격히 높은 비경제활동비율은 더욱 질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취업을 하지 않은 중증장애인을 경제활동인구인 실업자로 볼 것인가, 비경제활동인구로 치부하고 기생적 소비계층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이다. 실업자는 노동을 제공할 ‘의사’와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구직활동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중증장애인은 전체 인구보다 노동할 ‘의사’가 부족한가? 혹시 노동할 ‘능력’을 의심받는 존재로 여겨지는 것은 아닐까? 중증장애인은 왜 구직활동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가?

중증장애인에게 노동권이란 단순히 생존의 문제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독립된 구성원으로서 자기 삶을 계획하고 결정할 수 있는 기반의 문제이기도 하다. 대부분 중증장애인은 노동할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 비장애인 중심의 노동 환경에서 ‘능력’을 의심받으며 ‘훈련’만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왜 중증장애인들이 구직을 포기하겠는가? 중증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와 제도가 뒷받침된다면 중증장애인도 노동을 선택할 수 있다. 이 사회는 그 선택지 자체를 고려하지도, 만들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장애인이 ‘노동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복지서비스에 머무르며 보호받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노동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노동을 선택할 수 있도록 ‘중증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노동’을 정책으로 만들어야 한다.

중증장애인이 접근 가능하며 사회 통합적인 노동

‘중증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노동’으로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제14조’에서는 보호 고용을 정의하고 있다. ‘보호 고용’이란 정상적인 작업 조건에서 일하기 어려운 장애인을 위하여 특정한 근로 환경을 제공하고 그 근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보호 고용의 본 취지는 근로 경험이 없는 중증장애인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하고 후에 일반 고용으로의 전환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보호 고용을 제공하는 직업재활시설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선 짚어볼 문제점은, ‘최저임금법 제7조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에 따른 최저임금 적용 제외 인가 인원의 94.4%가 직업재활시설에서 노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법 제7조에 따라 장애인을 고용한 사업주는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장애인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제외 인가를 신청한 후, 정해진 절차를 거쳐 인가를 받으면 장애인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직업재활시설은 이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매년 20~30개씩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최저임금 적용 제외 인가 장애인 인원수도 3,436명(`12년)→8,108명(`16년)으로 늘어나고 있다.

또한, 중증장애인 생산품 우선 구매 제도, 기능보강사업, 고용장려금 등의 여러 가지 직업재활시설 지원 제도에도 불구하고 직업재활시설의 많은 중증장애인은 보호 고용에서 경쟁 고용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 복지라는 이름으로 장애인을 지역사회로부터 격리하고 배제했던 ‘장애인 거주시설’과 마찬가지로 직업재활시설도 장애인의 노동에 있어서 사회 통합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된 것이다. 요컨대 모든 일터가 중증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장애인의 사회통합이 가능하다. 중증장애인을 한데 모아 그들만이 노동하는 보호 고용은 ‘중증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노동’일 수는 있어도, 사회 배제적인 요소가 다분하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방향이 될 수 없다. 실제로,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한국의 장애인권리협약 이행 상황에 대한 유엔의 최종 견해’¹에서 ‘심리사회적 장애를 가진 장애인이 결과적으로 최저임금 이하의 보상을 받는 것과 개방된 노동시장으로 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 보호 작업장이 지속되는 것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민간 기업에 책임을 떠넘기는 ‘의무고용제도’는 이미 한계를 드러내 

장애인고용법 시행 25년이 되어가고 의무고용 이행률도 많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의무고용률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의무고용을 준수하지 않았을 때 내는 고용부담금 현황을 살펴보면 2016년 기준으로 민간 기업은 4,424억 원, 공공기관은 150억 원, 국가 및 지자체는 28억 원을 냈다. 특히 대기업일수록 의무고용 이행률이 낮다는 것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부담금을 내지 않기 위해 장애인을 고용하려고 하기보다는 부담금을 내는 방식을 간편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의 이와 같은 행태에도 고용노동부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기업의 의무고용 이행을 위해 과연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기업들이 낸 고용부담금으로 조성된 ‘장애인 고용촉진 및 직억재활 기금’으로부터 운영비와 사업비를 출연받기 때문이다. 의무고용제도는 한국의 주된 장애인 고용 정책이지만 그것을 이행하면 운영비가 고갈된다. 정부가 장애인 고용 정책에 대하여 일반 회계를 투여하지 않는 한, 모순적인 상황일 수밖에 없다.

「기업체 장애인고용실태조사(2016)」를 통하여 장애인 근로자 채용이 쉽지않은 이유를 조사하였는데, ‘장애인에게 적합한 직무가 부족해서(32.0%)’, ‘업무 능력을 갖춘 장애인이 부족해서(20.6%)’, ‘장애인 지원자 자체가 없어서(12.1%)’라는 응답 결과가 나왔다. 기업의 이윤과 효율을 중심으로 문제를 진단한다면, 장애인의 노동력은 평가의 대상일뿐이며 비장애인보다 능률이 떨어지는 존재일 뿐이다. 결국, 장애인 고용률을 높이기 위한 처방으로 장애인을 기업이 원하는 수준만큼 훈련만 반복하는 것 이상이 제시되지 않는다. 

중증장애인 노동권 정책 요구 3가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장애인 고용 정책은 그 심각성에 비해 민간의 영역으로만 떠넘겨져 있기 때문에 국가 주도의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2017년 11월 21일부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소속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에서 중증장애인 노동권 보장을 위한 3가지 정책을 요구하며 85일간 점거 농성을 했다. 그 결과 고용노동부와 장애계 간의 민관협의체가 구성되어 정책협의를 진행 중이다.

정책 요구 첫 번째는 중증장애인 특성과 속도를 고려한 신규 ‘공공일자리’ 1만 개를 창출하는 것이다. 중증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한 사회적 활동, ▲장애인동료 상담 활동 ▲장애인 인권 옹호 활동 ▲장애인인식개선 활동 ▲장애인 민원 안내 활동 ▲장애인문화 예술 활동 등을 종합적인 직무로 구성하여, 그 업무를 신규 ‘공공일자리’로 만들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로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제외 규정 (최저임금법 제7조) 폐지 및 지원 대책 마련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제도의 취지는 취약한 노동자 계층을 지나친 저임금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사회적인 관점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가장 취약한 노동자 계층인 중증장애인에 대해서도 예외일 수 없다.

세 번째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사업을 중증장애인 중심으로 전면 개혁하고 선 배치·후 훈련 제도인 ‘지원 고용’을 확대하는 것이다. ‘지원 고용’이란 일반 사업장에 중증장애인을 우선 취직시키되, 중증장애인의 적응을 돕는 ‘직무지도원’이라는 인력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직무 지도원은 장애인의 직장으로 찾아가 작업 분석, 직무 분석, 환경 분석, 고용주와 직장동료와의 대화 등을 통해 장애인이 직업기술을 현장에서 배우고 적응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²을 한다. 장애인 고용 패러다임이 분리에서 통합으로 전환되고 있는 시점에서 지원 고용은 대폭 확대되어야 한다.

마치며

중증장애인은 노동시장에서 지워진 유령 같은 존재였다. 소득과 직업이 필요한 중증장애인이라 할2009지라도 ‘실업자’라는 인정도 받지 못했고, 오랜 시간 동안 비경제활동인구로 방치됐다. 즉, 노동하고자 하는 의지와 능력이 없는 사람들로 취급받아온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라는 출연기관에 모든 것을 떠넘겼고, 공단은 기업이 내는 부담금으로 근근이 연명하며 기업이 원하는 대로 장애인의 노동력을 평가하고 관리·감독하는 기관이 되었다. 직업재활시설은 중증장애인의 노동을 저임금·사회 분리 정책으로 전락시켰다.

돌이켜보면 ‘장애인 운동’이란 교육권·이동권·사회서비스권리·주거권 등 수많은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를 조금씩 바꾸는 것이었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통해 일반 버스를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탈 수 있는 저상버스로 바꾸었더니 모든 사람이 버스를 편리하게 탈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모든 일터가 중증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일터가 된다면? 모든 사람이 성과와 효율 중심으로 평가받지 않고, 고유의 특성을 존중받으며 안전하게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중증장애인의 노동권 투쟁은 단지 장애인만의 문제로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윤과 효율 중심의 한국 사회 전체를 바꾸는 투쟁으로 나아갈 것이다.


* 각주

1) 한국 국회는 2008년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함. 이에 한국 정부가 제출한 국가 보고서를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심의하여 2014년 9월 30일에 채택함.

2) 네이버 지식 백과 참조

- 국립특수교육원, 특수교육학용어사전, 2009

특집1. 만인을 위한 노동사회의 유니버설 디자인 - 노동시장으로의 참여를 넘어 공공시민노동 체제로 / 2018.04

만인을 위한 노동사회의 유니버설 디자인

- 노동시장으로의 참여를 넘어 공공시민노동 체제로

노들장애학궁리소 김도현 연구활동가


장애인 노동권, 그 엄혹한 현실에 대하여

3년마다 보건복지부가 시행하는 장애인실태조사 자료에 의한 2014년 장애인의 실업률은 6.3%로 같은 기간 전체 인구 실업률 3.5%의 1.8배 정도이다. 그러나 정부가 얘기하는 실업률이라는 것이 워낙 기만적이어서 실제 사람들이 느끼는 실업률과는 큰 차이가 난다. 장애인의 경우 15세 이상 노동 가능 연령 인구 중 2/3에 가까운 61.0%가 비경제활동 인구로 분류되어 있어(전체 인구에서는 36.9%가 비경제활동인구임), 사실 공식적인 실업률은 별 의미가 없다. 더구나 보건복지부는 오랫동안 장애인 실태조사에서 실망실업자가 포함된 실업률을 산정하였고 이것이 공식적인 실업률로 주로 사용되었지만, 2008년도부터는 아예 이를 누락시켰다. 그래서 장애인계에서는 경제활동인구와 비경제활동인구를 구분하지 않은, 전체 노동 가능 연령 인구 중 미고용률 63.4%가 훨씬 더 의미 있는 수치라고 보며 전체 장애 인구 중 70% 가까이가 실업 내지는 반실업 상태에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사진 출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그러나 이렇게 취업해 있는 36.6%의 장애인들이 처해 있는 노동 환경 역시 열악함을 면치 못하고 있다. 임금 노동자 중 임시직(28.8%)과 일용직(31.4%) 비율의 합이 60.2%로, 고용계약 기간이 1년 이상인 상용직의 비율은 39.8%에 불과하다. 그리고 취업 장애인의 임금 수준은 153만 원으로 우리나라 전체 상용 노동자 평균임금 329만원(고용노동부,「사업체 노동력조사」(2014년 2/4분기), 5인이상 사업체)의 46%에 불과한 수준이다. 한마디로 장애인에게는 건강한 일자리가 존재하지 않으며, 일하면서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불인정노동자로서의 장애인

소위 자본주의 중심부 국가이자 장애 정책이 잘되어 있다고 하는 나라들도 장애인의 고용률에서는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은 수치를 보여준다. 한국의 장애 인권이나 장애인복지 관련 지표들을 살펴보면 거의 모든 것들이 OECD 34개 회원국 중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지만, 2000년대 후반 장애인 고용률은 OECD 국가 평균과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¹ 그리고 이는 ‘장애(인)’이라는 근대적 범주의 형성 과정을 이해한다면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자본주의의 형성기, 즉 본원적 축적기는 토지에서 쫓겨났지만 임노동 관계에 편입되지 못했던 소위 ‘부랑자’가 대량으로 양산된 시기였다. 느리고 자율적이며 유연한 형태의 노동에 익숙해 있던 많은 사람은 칼 맑스(Karl Marx)가 『자본』에서 사용한 표현을 빌자면 “별다른 도리가 없어서” 그렇게 부랑자가 되었는데, 이들을 임노동 관계로 포섭하기 위해 국가는 강제 수용과 훈육 정책을 실시하게 된다. 서구 사회복지 역사에서 등장하는 구빈원(workhouse)은 바로 이러한 강제 노동과 결합한 수용소였다.

그런데 구빈원에서는 일정 시점부터 효과적인 훈육과 나태의 방지를 위해 수용자들을 분류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핵심적인 목표는 ‘일 할 수 없다고 간주한 사람들’을 일할 수 있지만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로부터 분리하는 것이었다. 구빈원과 같은 시설 밖에서의 구제 조치(원외 구제)를 폐지한 영국의 1834년 「개정구빈법」(The Poor Law Amendment Act)은 빈민들을 분류하면서 아동, 병자, 광인, 심신결함자(defective), 노약자(the aged and infirm)를 특별히 중요한 다섯 개의 범주로서 설정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범주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잔여적인 방식으로 노동 능력자로서 간주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러한 다섯 가지 범주 중 아동을 제외한 네 가지 범주가 바로 장애인을 구성하게 된다.

즉, 일을 할 수 있는 몸(the able-bodied)을 선별하기 위해 일을 할 수 없는 몸(the disable-bodied)을 명확히 규정하고자 했고, 이로부터 오늘날과 같은 ‘장애인’(disabled people)라는 개념이 발명된다.² 요컨대, 근대 사회로의 전환기에 생겨난 장애인이라는 범주는 근대의 자본주의적 노동에서 배제 당해온 사람들, 즉 ‘불인정 노동자’(不認定 勞動者, unrecognized worker) 집단을 가리켰던 개념인 것이다.³

노동개념의 혁신과 공공시민노동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장애인의 노동권이 보장되는 사회로의 전환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 필자는 그러한 전환을 ‘공공시민노동’이라는 개념의 확립과 시스템의 구축을 통해 만들어가자고 제안하고 싶다.

기본적으로 공공시민노동이라는 ‘개념’은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을 전제로 한다. 첫째, 노동은 상품이 아니라는 것. 오스트리아 출신의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Karl polanyi)는 근대 자본주의가 노동·토지·화폐를 상품처럼 다룸으로써 시장경제 체제를 확립했지만, 그것은 단지 ‘상품 허구’(commodity fiction)일뿐이며 노동·토지·화폐는 결코 본래적인 의미에서의 상품일 수 없다고 말한다. 상품이란 판매를 위해 생산되는 것인데, 토지는 자연의 다른 이름이고, 노동이란 인간의 다른 이름이며, 화폐는 신용관계의 매개물이기 때문에, 판매를 위해 더 생산하거나 덜 생산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1944년 개최되었던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서는 통상 ‘필라델피아선언’이라고 불리는「국제노동기구의 목표와 목적에 관한 선언」을 채택하게 되는데, 이 선언에서 가장 먼저 제시되고 있는 원칙도 바로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둘째, 노동은 헌법의 정신에 따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시민권, 즉 ‘권리’로 존재해야 하며, 더구나 노동(근로)은 단지 ‘권리’인 것만이 아니라 교육과 마찬가지로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라는 것. 대한민국의 헌법은 제32조 ①항에서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라고 노동할 권리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②항에서 “모든 국민은 근로의 의무를 진다”라고 적시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것이 이처럼 권리이자 동시에 의무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예에서 명확히 드러나는 것처럼 민간(시장)의 영역에 방치되어서는 안 되며, 공적인 개입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예컨대 공교육이 존재하지 않고 사교육(교육시장)만이 존재한다면, 혹은 공교육+‘α’의 위상으로 사교육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교육+‘α’의 위상으로 공교육이 존재한다면, 교육은 결코 권리도 될 수 없고 국가가 부과하는 의무도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노동이 하나의 권리이자 의무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노동 역시 시장이 아닌 공공의 영역에 존재하거나 최소한 공공의 영역에 의해 통제될 수 있어야만 한다. 즉 공공시민노동+‘α’의 위치에 노동시장이 자리매김 되도록 함으로써, 일정 연령 이상의 모든 이들에게 기본적으로 공공이 노동의 기회를 보장해야만 하는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공시민노동 ‘정책’은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원칙을 따른다. 첫째, 공공시민 노동을 통해 제공되는 급여는 전체 상용노동자 평균 임금의 50% 이상(2014년을 기준으로 하자면 최저 약 165만원)에서 정해진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터무니없이 낮은 민간영역의 최저임금을 견인하는 효과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공공시민노동으로 인정되는 활동은 국가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흔히 ‘제3섹터’라고 불리는 광범위한 시민사회의 다양한 단위들과 공공시민노동을 하려고 하는 개인들 자신으로부터 신청을 받는다. 그리고 그러한 단위 및 개인이 신청한 활동이 공공시민노동에 합당한지는 기초지방자치단체 단위로 꾸려지는 ‘공공시민노동위원회’에서 심의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위원회에는 여성·성소수자·장애인·노인·이주민·청소년 등의 소수자를 포함해서 지역사회를 대표할 수 있는 다양한 시민위원들이 2/3 이상 참여를 한다. 물론 이러한 위원회와는 별도로 ‘공공시민노동청’도 중앙과 지방에 필요한데, 공공시민노동청은 기본적인 행정 업무를 총괄하는 것과 더불어, 보다 핵심적으로는 공공시민노동을 하기를 원하지만 스스로 적절한 활동을 찾거나 개발하지 못한 이들을 지원하는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한편, 공공시민노동위원회에서 이루어지는 공공시민노동으로의 인정에 대한 심의 기준은 ‘해당 개인이 지닌 현재적 조건 및 능력’에 비추어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물질적·정신적·정서적 삶에 기여’를 하는가의 여부 이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기준을 적용할 경우 현재 매우 심각한 정신적 장애를 지니고 있거나 식물인간 상태에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그들의 생존 활동 자체를 노동으로 인정하게 된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노동이란 ‘해당 개인이 지닌 현재적 조건 및 능력’에 비추어 판단되며, 그/그녀의 생존(활동)은 그/그녀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회구성원들에게 상당한 정신적·정서적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도 학업노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인정하여 일정 수준의 급여를 단계별로 지급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학생들의 학업은 이 사회가 유지·발전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활동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상이 실현될 수 있다면,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출현과 더불어 노동을 할 수 없다고 치부됐던 중증장애인이나 발달장애인들도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한 만큼은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여성(또는 남성)의 가사 활동도 새롭게 그 가치를 공인받을 수 있으며, 현재 광범위한 사회문제가 되는 청년실업 문제도 실질적인 돌파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공공시민노동의 적용 집단이 점차 확대되고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노동에 대한 정의와 관념이 일정하게 재구성될 수 있다면, 그 토대 위에서 기본소득 제도의 도입도 병행해 추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동의 재구성을 통해 만인을 위한 노동사회가 구축될 때에만, 노동은 다른 사람을 밀어내야만 내가 앉을 수 있는 ‘의자놀이’가 아니라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자기 삶의 가치를 실현해 나가기 위한 하나의 시민권으로서 자리매김 될 수 있을 것이다.


* 각주

1) 김성희 외, 『장애인 복지지표를 통해 살펴 본 OECD 국가의 장애인 정책 비교 연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1, 122쪽.

2) Michael Oliver, The Politics of Disablement, St. Martin’s Press: New York, 1990, pp. 32~34.

3) 김도현,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메이데이, 2007, 7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