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나의 그녀들에게 /2016.5

나의 그녀들에게

 

 

 

 

조이 회원, 산부인과 전공의

 

 

 

 

저는 강남의 한 대형병원에 근무하는 산부인과 전공의입니다. 산부인과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여성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생명탄생의 순간에 대한 경외심이 대부분이었다고 기억합니다. 그러나 산부인과 의사로 산다는 것은 생명 탄생을 돕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수많은 사연의 그녀들을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산부인과 주치의로 첫 산모의 출산을 지켜보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지만, 지난 몇 년 간 대학병원에서 지내며 마음속에 오랜 고민으로 남은 그녀들은 따로 있습니다.

 

A씨는 50대의 난소암 환자였습니다. 그녀에게는 지극정성으로 병수발을 들어주는 남편이 있었습니다. 수술과 항암치료를 마치고 지내던 중 암이 재발하였을 때 담당 교수는 그녀에게 경제적 여유가 되는지를 확인했고 돈이 얼마가 들던 뭐든 할 수 있다는 그녀의 남편의 강력한 지지에 힘입어 표적치료제 치료를 시작하였습니다. 얼마 전 외래에서 만난 그녀는 조금 야위었지만 성공적인 두 번째 항암을 마쳤고 여전히 남편과 함께였습니다. 언젠가 암이 재발할 수 있겠지만 그녀 곁에는 늘 최고의 지원자가 있을 것이고 물심양면으로 지지하는 가족들이 있을 것입니다.

 

B씨는 60대의 자궁경부암 환자였습니다. 그녀가 수술을 위해 입원했을 당시 보호자라고는 사촌언니 뿐이었습니다. 그녀의 차트에는 그녀가 기혼이고 아들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었지만 가족들을 만나볼 수 없었습니다. 수술 후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지만 그녀는 퇴원 이후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그녀를 다시 만난 건 1년 후, 그녀는 암이 재발하여 복수 때문에 부른 배를 부여 잡고 온 얼굴에 멍이 든 상태였습니다. 상담을 진행하며 그녀로부터 폭력적인 남편이 있었고 항암치료를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그녀가 그 몸으로 일을 계속 해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몇 달 간의 치료가 끝나고 그녀는 다시 일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의 소견서를 요구했습니다. 그럴 상태가 아니라고 일을 쉬어야 한다고 소견서를 써줄 수 없다고 하자 그녀는 일을 하지 못하면 돈을 벌 수 없다고 이미 치료를 위해 빚을 졌고 그걸 갚아야 한다며 울었습니다. 그녀는 재발 가능성이 커서 꾸준히 외래에 다녀야 했지만 그때 이후 그녀를 볼 수 없었습니다.

 

사실 A씨를 보면서 많은 고민이 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녀는 치료도 성공적인 편이고 든든한 가족의 지원이 있어 암환자들 중에서 운이 좋은 편에 속합니다. A씨를 생각하게 되는 것은 B씨와 같은 환자를 마주할 때 입니다. B씨가 A씨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B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생각하게 됩니다.

 

치료를 결정하는 것은 의사의 몫이 아닙니다. 의사가 최선의 치료를 권할 수는 있지만 결국 치료를 선택하는 것은 환자의 몫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데에 있습니다. 경제적인 뒷받침이 중요합니다. 진단 당시의 경제적 상태, 치료 과정 중 지속적으로 경제적 지원이 가능한지에 따라 환자는 의료진이 권하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녀들은 목숨을 위협하는 거대한 질병의 파도앞에서도 경제적 상황과 타협합니다. 시스템앞에서 개개인일 뿐인 의사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크지 않습니다. 아프면 누구나 치료받을 수 있는 사회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고 해도 누구나 똑같이 최선의 치료를 받을 수는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매일매일 그러한 현실 속의 그녀들을 마주하며 그녀의 질병을 규정하는 것은 의학적인 상태만이 아니라 그녀를 둘러싼 주위환경과 그녀의 조건들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앞으로 그녀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과연 어떤 의사로 살 것인지 고민해봅니다. 일에 치어 바쁘게 사느라 잠시 내려놓았던 고민들을 다시 일깨워주는 나의 그녀들에게 감사합니다. 이제 고민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해 볼 시기가 된 것 같습니다. 그 고민을 확장해가는 지점에서 연구소 회원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