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통권 197호 / 2020.07

 

[특집] 코로나19와 K-방역
1. 정책 목표에 기반한 '산재 발생 평가'가 필요하다 
2. 시스템을 구축하고 환경을 바꾸는 산재예방정책을 바라며 
3. 한국 산재예방정책이 나가야할 방향을 제시하다 

[지금 지역에서는] 

롯데백화점에서 범일동까지 

[일터 정신질환 짚어보기]

산재보험 취지에 부합하는 업무상 정신질환 판정을 요구한다 

[연구리포트] 

누가 노동자의 밤을 사는가? 

[동아시아 과로사 통신]

대만의 COVID-19 판데믹과 과로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활동지원사 노동자의 쉴 권리 보장을 위해  

[현장의 목소리] 

학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외치다 "우리가 가는 길이 바로 여성노동자의 길"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부딪히며 배우며 만들어간 안전보건 활동 

[문화로 읽는 노동] 

그 노동자는 왜 복직투쟁에 나섰나 

다큐영화 <그림자들의 섬>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스테인리스 식기 제조 노동자에게 왜 급성 진폐가 발생했는가?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與]

손/손목부위 근골격계질병, 손목결절종 

[노동자 건강상식]  

식품 알레르기 

[발칙 건강한 책방]

건강 불평등, 성인지적 관점에서 접근하기 

[이러쿵 저러쿵]

2020 <올해의 현장> 스케치 

[안전보건동향] 
[한노보연 이모저모]

issuu.com/kilsh2003/docs/2020_7_-__499686de1be0a7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대만의 COVID-19 판데믹과 과로 / 2020.07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대만의 COVID-19 판데믹과 과로

 

 

황이링 / 대만OSHLink 활동가 

 

코로나19가 2019년 말 중국에서 처음 시작되자, 대만 정부는 바이러스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재빨리 국가 차원의 방역 조치를 취했다. 2020년 1월, 대만의 질병관리본부는 중앙방역대책본부(Central Epidemic Command Center)를 출범하고 여러 정부 부처를 아우르는 코로나19와의 싸움을 시작했다. 

이로부터 140여 일 동안 중앙방역대책본부는 매일 대만 국민들에게 감염병의 전세계적 유행과 관련한 최신 소식을 뉴스 브리핑으로 발표했다. 이 일일 뉴스 브리핑은 6월 7일을 마지막으로 일간 발표에서 주간 발표로 전환하였다.

6월 7일 현재, 대만의 COVID-19 감염 사례는 총 443명이고, 이 중 사망자는 7명, 현재 입원 중인 환자는 6명뿐이다. 나머지 감염인은 모두 회복됐다. 6월 7일은 대만 내 감염이 56일째 보고되지 않은 날이기도 하다. 하지만 코로나19 방역 성공은 방역과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희생을 치르고 얻은 것이다. 방역과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대만의 감염병 예방 활동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코로나19와 지치지 않고 싸우면서 그들의 건강은 위험에 처했다. 

팬데믹 영향을 받은 노동자들

방역과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분명 팬데믹으로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장시간 노동과 연장 근무를 수행해야만 했다. 또한 대만에서 매일 2천만 장의 마스크를 생산하기 위해, 92개의 수술용 안면 마스크 생산 라인이 추가됐고, 여기서 일한 노동자들 역시 장시간 일해야만 했다. 마스크 배급을 위해 약국이나 편의점에 이 마스크를 배송한 우체국 집배원이나 민간 기업의 택배 노동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또한 대만의 청소, 위생 노동자들 역시 심각한 과로에 시달렸다. 예를 들어, 타이베이 도시철도(Taipei Rapid Transit Corporation)에서는 방역 정책 중 하나로, 모든 역에서 소독 단계를 상향했다. 기차 차량 출발 전 소독은 8시간당 한 번, 승차권 자동 발매기는 4시간마다 한 번 소독했다. 

지역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일부 청소 노동자들은 강화된 소독 주기 때문에 식사도 제때 하기 어렵다고 한다. 은행 직원들의 노동강도도 최근 크게 증가했다.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정부에서 보조금 및 수당을 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원 절차를 진행해야 하는 은행 직원들에게는 큰 업무 부담이다.

노동시간은 같지만, 추가 업무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도시철도 차량이나 승차권 자동판매기를 소독하는 청소 노동자들의 경우, 노동시간이 늘지는 않았지만, 전에는 하루 2번 하던 소독을 이제 훨씬 더 많이 수행하게 되었다. 건물 경비 노동자들의 경우 예전에는 하지 않았던 업무, 예컨대 건물 출입자의 체온을 재고, 손소독제를 사용하도록 하는 추가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팬데믹 시기의 장시간 노동

대만 근로기준법 32조와 40조는 "천재지변이나 사고, 예기치 못한 상황"이 있을 경우 고용주가 노동자에게 연장 근무를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에 의해 고용주는 노동자에게 휴가 사용을 중단하도록 요청할 수 있고, 하루 노동시간으로 제한된 12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을 요구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현재 감염 상황이 "천재지변이나 사고, 예기치 못한 상황"에 들어가는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노동부는 1998년부터 대규모 감염병은 근로기준법이 규정하는 '이 범주'에 속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동시간 연장은 반드시 노동조합의 동의를 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의 경우 노동시간 연장 문제 논의는 노사협의회의 승인을 받아 이루어져야 하며, 노동청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하지만 노동자가 미루었던 휴가를 나중에 쓴다고 하더라도 장시간 노동이나 휴가의 중단은 노동자의 부상이나 건강 문제 위험을 높인다. 

 

▲   대만의 노동자들이 코로나 방역과 감염 예방을 하면서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 노동자들이 건강을 헤치지 않도록 적절한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건강 위험으로 이어지는 과로

이미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진 많은 연구에서, 하루 11시간 이상 일하면 하루 7~9시간 일하는 경우보다, 급성심근경색 발생 위험이 2.9배 높아진다고 한다. 일주일에 66시간 일하는 노동자는 이보다 짧게 일하는 노동자보다 업무 관련 사고를 경험할 위험이 1.88배 높다. 일주일 단위로 규칙적으로 쉬지 못하거나 6일 이상 연달아 일하는 노동자는 죽상경화증, 비만, 이상지질혈증, 대사증후군 등이 발생할 위험이 증가하고, 업무 관련 사고의 발생 위험도 커진다.

바로 얼마 전에도, 창화시 중앙의 마스크 생산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업무 도중 손가락 끼임 사고가 발생하여 손가락을 절단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장시간 노동은 어깨, 허리, 목 등 근골격계에 통증과 경직을 가져오고 스트레스나 정신 건강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산재 보험 당국이 제공한 통계에 따르면, 대만에서는 8일마다 1명씩 과로로 사망하거나 장해를 입는다. 과로가 이 나라의 매우 중요한 문제라는 점을 보여주는 끔찍한 진실이다.

코로나19 싸움은 적절한 방역 물품의 생산과 제공, 백신 개발, 바이러스 검체 채취와 검사 등의 측면에서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장시간 노동 역시 큰 건강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코로나19와의 장기전을 이겨내기 위해서도, 관련 공공기관이나 민간 부문 모두, 필요한 곳에 더 많은 인력을 사전에 배치하고, 좀 더 효율적인 작업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일터 정신질환 짚어보기] 산재보험 취지에 부합하는 업무상 정신질환 판정을 요구한다 / 2020.07

[일터 정신질환 짚어보기] 

 

 

산재보험 취지에 부합하는 업무상 정신질환 판정을 요구한다

 

 

박경환, 이성민 / 한노보연 회원 

 

 

산업재해 신청 사건을 진행하다 보면, 재해자의 산업재해 신청에 대한 사업주 의견이 제시되는 경우가 있다. 사업주의 의견은 주로 ①이 사고(혹은 질병)는 재해자 개인의 잘못으로 발생했으므로 산업재해가 아니다 ②같은 환경의 다른 직원들에겐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재해자에게만 발생한 질병이기에 산업재해가 아닌 개인적 질병이라는 취지의 주장이 주로 담긴다.

이런 내용의 사업주 의견을 접하면, 사업주들이 업무상 재해 원인을 재해자와 함께 일했던 동료 탓으로 돌리고 모든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가 느껴져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대부분의 경우 그런 주장은 업무상 재해 인정 여부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을 알기에 나는 담담히 무시하곤 한다. 

왜냐면 '무과실책임의 원칙'에 따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재해자의 과실로 발생한 사고(질병)도 보호 대상에서 배제하지 않으며, 업무상 재해를 판단할 때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일반적으로 보통의 체격이나 건강 상태를 가진 '사회 평균인'이 아니라 '재해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근거가 되는 판례는 다음과 같다.

▲   정신질환의 업무상 재해 판단은 산재보험제도의 무과실책임 원칙에 따라야 하므로 재해자의 과실 여부는 판단 요소가 아니다. 고려 요소는 재해자의 업무상 스트레스이다.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근로자의 과실을 이유로 책임을 부정하거나 책임의 범위를 제한하지 못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해당 재해가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에 규정된 근로자의 고의·자해 행위나 범죄 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돼 발생한 경우가 아닌 이상 재해 발생에 근로자의 과실이 경합돼 있음을 이유로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하는 경우에는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대법 2017. 3. 30. 선고 2016두31272)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사회 평균인이 아니라 질병이 생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대법 2017.8.29. 선고 2015두 3867)

따라서 사업주가 업무상 재해 책임을 재해자에게 전가하거나 설령 산업재해의 과실 원인이 재해자에게 있다 하더라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의거해 보상은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재해자 개인의 질병 감수성이 사회 평균인과 다를 경우, 재해자 개인에게 초점이 맞추어져야지 사회 평균인의 기준을 근거로 업무상재해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판례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에서 정신질환의 업무상 재해를 판단한 경우를 살펴보면 산업재해 보상제도의 업무상 재해 판정 원칙과 모순되는 결과를 빈번히 볼 수 있다.

개인 과실로 인한 업무 스트레스

(사례1) 유치원 교사인 A씨는 최근 우울증을 진단받았다. A씨는 일터에서의 업무 미숙으로 인해 동료 노동자들과 갈등이 있었으며, 업무수행 중 발생한 실수에 대해 징계 처분을 받기도 하였다. A씨는 최근 우울증의 원인이 일터에서의 업무 스트레스라고 생각했다. A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우울증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업무 스트레스의 발생 원인이 A씨의 과실이므로 A씨의 우울증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결과가 담긴 통지서를 받았다.

다른 업무상 재해 사건과 달리 정신질환의 산업재해 신청 사건에서는 일터에서의 '개인의 과실' 여부를 비교적 자세히 살펴본다. 가령, 근로복지공단은 '업무 관련성 조사 지침'을 통해 정신 질병의 업무 관련성 조사 시 ①사고와 관련하여 본인의 고의 또는 법이나 규칙 위반이 있었는지 ②법적 문제나 감사 등에 연루된 사건인지 등을 조사하도록 한다. 재해조사 과정에서 업무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 사건에 재해자의 과실이 확인되면, 업무상 재해 판단에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정신질환의 업무상 재해 여부를 판단한 질병판정위원회의 판정 근거를 살펴보면, 상당수 사례에서 재해조사 결과, 일터에서의 업무 스트레스를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업무 스트레스가 '개인의 과실'과 결부되었다는 점을 근거로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고 판단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한 상병이지만, (당해 스트레스를 유발한) 귀책 사유는 재해자 본인 요인이 더 크다고 사료됨.", "정당한 징계에 의한 스트레스 이외에 다른 업무상 스트레스가 확인되지 않은 점을 고려하였을 때, 신청 상병의 발병에 있어서 업무적 요인의 기여도 보다는 개인적 요인의 기여도가 높은 것으로 판단됨."

개인적 취약성에 따른 스트레스

(사례2) B씨는 회사에서 업무를 시작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회사의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업무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던 B씨는 '불안장애'를 진단받았다. B씨는 '불안장애'에 대해 산업재해 신청을 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B씨의 업무가 통상적인 근로자들이 수행하는 업무이며, 높은 수준의 업무 스트레스가 없었을 것이라며 불승인 처분을 통지했다.

업무상 재해로 불승인된 정신질환의 질병판정위원회 판정서에는 '개인적 취약성'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이때 '개인적 취약성'은 주로 청구인이 통상적인 업무를 했기 때문에 정신질환이 발생할만한 수준의 업무 스트레스에 노출된 것은 아니라는 결론, 혹은 일터에서의 업무 스트레스는 확인되지만, 사회 평균인이 용인 가능한 수준의 스트레스이므로 신청한 정신질환과는 무관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데 사용된다. 이런 판단에 객관적인 기준을 찾아보기는 힘들며, 통상 판정위원들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정신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업무 스트레스 수준이 결정되는 것으로 보인다.

"근무 중 상사와의 마찰, 폭언 등은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극단적 스트레스로 보기는 어려워 '우울장애'를 인정하기 어려우며 (중략) 업무 관련성 보다는 개인적 소인 및 취약성, 스트레스에 의한 것으로 보임.", "직장 내 상사와의 갈등상황 및 부당해고가 일부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심각한 심리적 타격을 주었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움이 있어 (중략) 개인적 취약성 및 생물학적 요인에 의해 발병한 것으로 판단됨."

정신질환이라고 판단 기준이 달라야 할 이유는 없다 

산재보험제도는 무과실 책임의 원칙과 질병에 대한 개인의 감수성을 고려해 업무상 재해 여부를 판단하도록 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정신질환의 업무상 재해 판단에 있어 '개인 과실'과 개인적 소인이 불승인 처분의 근거로 제시되는 경우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정신질환의 업무상 재해 판단은 일터에서 재해자에게 업무스트레스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 즉, 정신질환과 관련된 업무 스트레스에 대한 재해자의 과실 여부를 평가할 필요는 없으며, 업무 스트레스가 재해자의 과실로 발생했다고 해도 재해자가 겪은 업무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원칙을 무시한 판정은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무과실책임 원칙'과도 모순된다.

또한, 업무 스트레스에 대한 개인적 감수성을 고려한 판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사회 평균인의 입장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라도, 재해자 개인에게는 상당한 업무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다. 현재 근로복지공단은 '개인적 취약성'을 다른 업무 스트레스 요인을 배제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데, 재해조사 과정에서 재해자의 성격이 스트레스에 취약하다고 판단된 경우 이는 불승인의 근거로 제시될 것이 아니라 업무 스트레스에 취약한 개인적 감수성을 고려해 상병의 업무 관련성을 긍정하는 방향으로 검토돼야 한다.

'신속하고 공정한 보상'이라는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목적을 다시 생각해본다면, 적어도 업무상 재해의 판정 원칙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일이 가능해질 것이다.

특집3. 한국 산재예방정책이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다 / 2020.07

[산재예방정책을 진단한다] 

 

 

한국 산재예방정책이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다 

 

 

선전위원회 편집

 

한국 정부의 산재 예방 정책은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겠다는 분명한 목표와 방향을 가지고 추진되어 왔다. 그러나 추진 과정에서 부처 간 불협화음, 전문 역량 부족, 이슈 되는 특정 의제만 추진되는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났다. 

정부의 산재 사망사고 예방 정책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안전보건관리체계와 노사 자율 안전보건점검, 정부 역량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강태선 세명대학교 보건안전공학과 교수,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가 모여 지난 7월 2일 오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사무실에서 대담을 가졌다. 사회에는 최민 한노보연 상임활동가가, 기록에는 박기형 한노보연 상임활동가가 맡았다. - 기자 주


집중과 선택이라는 전술이 유효했는가?

최민: 1~2년 전부터 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이 산업재해 전반이 아니라 산재 사망사고에 집중하고, 특히 건설업과 추락사고 중심으로 정책을 펼쳐왔습니다. 이러한 정책 방향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정진우: 이번 정부 들어서 사고 사망 재해를 줄이는 것을 더욱 강조하며 전력투구한 것 같습니다. 정책 방향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런데 중대 재해 예방에만 집중하니, 현장에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어요. 중대 재해를 막으려면 체제를 강화하고 여건과 역량이 갖춰져야 할 텐데, 역량 강화에는 소홀히 하고 있어요. 지나치게 보여주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니 일상적 안전보건에는 무관심하거나 역행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안전 관련 교육프로그램도 부실해지고 있고요. 사고 사망 재해에 집중해야 하니, 공공기관에서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들을 정리하는 차원이겠죠.

하지만 사업장의 안전보건 수준과 관리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안전감수성, 안전의식, 안전관심을 높여야 하는데, 여기에 필수적인 교육 제공, 시스템 정비 등을 예전에 비해 소홀히 하는 게 아닐까 우려됩니다.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부작용이 심할 수 있어요. 너무 산재 사망사고에만 올인하는 게 문제라는 것이죠. 하인리히 법칙을 떠올려 보면 현장에서 빈번한 아차사고에 더욱 유의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차사고 없이 중대 재해가 발생하기도 하죠. 그렇지만 전조가 될 수 있는 아차사고를 드러내고, 교훈으로 삼는 활동이 병행되어야 해요. 그게 보이지 않는 것이란 말입니다. 한 마디로, 밸런스가 없는 게 아닐까 싶어요.

강태선: 저는 정책의 전면을 다 모르지만, 제한적인 수준에서라도 평가해보면, 정부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그동안 정부가 못했다기보다는 전략이 부재했다고 봐요. 한국은 안전보건 정책을 오랫동안 펼쳐왔죠. 문제는 국정감사나 노동부 자체 감사를 준비하는 게 목적이었다는 거죠. 산업재해는 막을 수 없다는 게 안전보건 하는 사람들의 통념이었다고 생각해요. 패배주의에 젖어있던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 책잡히지 않을 수 있는 정책 수준에서 머물렀던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산재 사망사고 절반 줄이기라는 정책 목표를 제시한 것을 높이 평가합니다. 집중과 포기가 필요한 것이었죠. 업종은 건설업, 사고유형 중에는 추락을 선택했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포기한 것이죠. 포기하면 당연히 욕먹을 수 있겠죠. 하지만 한 번도 집중해보지 않았으니 해볼 만 한 시도였어요. 물론 포기된 측에서는 불만이 많겠죠. 

예를 들어, 보건 관련 업무를 하던 사람은 한 번도 가지 않은 건설 현장에 나가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어요. 건설 직렬 쪽에서는 학교에서 4년 동안 구조역학 등 각종 지식을 배워서 들어왔고, 건설 현장 점검을 하려면 토질에 관한 지식 등 알아야 할 것이 많은데, 제대로 배우지도 않고 점검하러 보내냐는 반발도 있고요. 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선택하고 집중하지 않았던 안전보건 영역에서는 필요한 일이었어요. 

사망사고, 중대 재해 예방 활동이라는 건 결국 위험을 평가하고 줄이는 것이잖아요. 효과가 분명히 검증된 것에 집중하는 게 유효한 전술일 수 있죠. 사다리와 비계 등을 중점으로 현장 점검하고, 시스템 비계 시장을 넓혀준다든지. 건설업의 안전보건 관행이 많이 바뀌리라 기대하는 것이죠. 물론 평가는 3년 뒤에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다만, 사망률 외에 더 많은 지표를 내고 평가 기준으로 필요가 있어요. 여러 가지 자료 공개도 해야 하고요. 아직 그런 게 부족하다 보니,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기 힘들고 평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류현철: 인적, 재정적 자원이 순식간에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역량 축적도 시간이 필요한 일이니, 특정 의제나 국면에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선택을 하게 된 의사결정 과정, 집중의 방법이 적절했는지 되묻고 싶어요. 강한 리더십에 따라 정책 실현의 동력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의사결정권을 가진 몇몇 사람의 판단에 따라 집중사업이 훅훅 바뀔 수도 있잖아요. 

정책 효과를 면밀히 검증하기보다는 단일 지표 감소에만 너무 주목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정책실행 과정과 그 효과에 대해 더 들여다보고, 다양한 주체들의 의사를 고려했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물론 정책 기조를 명확히 세우고 집행한 적이 적다 보니 정책 성과를 알리는 데만 주의를 기울였을 수도 있다고 봐요. 향후 평가도 더 세밀하고 하고 논의의 장을 열어둘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선순위를 정할 때부터 효과를 평가하고 알리기까지, 순환 논리의 오류에 빠진 게 아닌가,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빠진 게 아닐까 우려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지금과 같은 방향을 지속하는 게 바람직할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진우: 저는 의욕은 있었는데 실력이 부족했다고 정리하고 싶어요. 그리고 실력이 없으면 의견수렴이라도 제대로 해야 했다고 봐요. 하지만 예전보다 오히려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사다리 정책이 대표적이에요. 법령 개정이 단기간에 어려우니 지침으로 내놓는 것인데, 이번에 산업안전보건법을 전부개정 하면서 사다리 관련한 규칙을 개정하지 않았어요. 앞뒤가 맞지 않죠. 

전문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니 주먹구구식 행정이 되는 게 아닐까요. 도급 관련해서도 마찬가지 일이 벌어졌어요. 내외부에서 의견수렴이 안 되고, 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 간 의견조율도 잘 안 되고, 그러다 보니 정책 수립과 집행이 거칠게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정책은 실험 대상이 아니잖아요. 완벽하지 않더라도 최대한 정책의 질을 높여서 수립·시행하는 게 정책담당자들의 자세가 아닐까요.

시스템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민: 의사결정 절차도 중요하지만, 선택한 정책의 실효성 또한 중요할 텐데요. 시스템 비계 설치가 추락사 예방 효과가 검증되었다지만, 패트롤 운영이나 시스템 비계 시장 확대 등의 정책이 추락사 예방과 향후 건설 현장 안전수준 증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강태선: 사실은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격입니다. 절차나 방법의 타당성을 검증하려면 더 분석할 자료가 있어야죠. 죽은 사람과 다친 사람의 통계만 있잖아요. 그러나 워낙 사태가 심각하니 정책은 구사해야 하고, 현재 취합된 통계로 정확한 대책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으니 외국의 정책을 모사하게 되죠. 

법 제도는 알 수 있어도, 정책의 실행 전략은 암묵지에 해당하니 알 수가 없습니다. 패트롤 같은 건 이렇게 할 것이라고 일정 부분 추정한 것일 텐데요. 사다리 지침이나 도급 지침의 경우에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아쉬운 점은 분명해요. 안전보건공단이나 현장과 소통이 잘 안 됐고, 실효성 측면에서도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결국 어떤 전략을 구사해야 하고, 어디까지 동의를 구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건 정책기획과 집행의 영역에 속하지 않을까요. 체계 정비를 위한 과도기가 아닐까 해요. 정리되지 않은 자료와 제도를 가지고, 여러 정책을 시도해보는 과정이랄까요.

류현철: 다른 측면에서 접근해보고 싶어요. 전술을 잘 짜는 것도 중요하고 시도해보면서 수정해나가는 것도 중요하죠. 하지만 정책을 시행했다면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 것인지도 살펴봐야 할 지점이 아닐까요? 

일터의 노동자들까지 여파가 미칠 수 있을지. 최근 발생한 파쇄기 사고, 질식 재해 그리고 추락재해 등은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사항은 아니잖습니까. 모든 현장과 해당 현장의 말단까지 완벽히 관리할 수 없다면, 노동자들에게까지 정책효과가 파급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안전교육 프로그램이나 대국민 홍보뿐만 아니라요. 

예를 들어, 당사자들이 당면한 위험 상황에 대해 작업 거부할 수 있도록 하고. 개개인이 어려우면 대변할 수 있는 조직에 권한을 보장해주는 등. 노동자나 노동단체의 참여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비록 노동부나 안전보건공단에 비해서 전문성이 부족하지만, 안전보건 주체를 다변화해서 포괄적으로 안전보건 관련 활동을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특히 노동자들 스스로의 권리 보장 및 실현을 위한 노력도 중요할 것이고요. 이렇게 안전보건 관련한 주체들을 포괄하는 거버넌스, 기관 간, 이해관계자들 간 협의체를 만들어가는 일, 이를 도외시하면 앞으로의 정책 방향 또한 협소해질 수밖에 없어요.

정진우: 안전보건 활동의 주체라는 측면에서 사업장 차원의 자율적인 안전보건 활동이 필요합니다. 안전보건 행정 역량과 자율 안전보건관리, 이는 양대 축이죠. 전자뿐만 아니라 후자도 부족합니다. 행정부가 단기실적에 급급해선 곤란해요. 행정기관의 관리감독이 직접 이뤄지지 않더라도 안전보건 활동의 기본에 해당하는 자율규제를 실제로 작동될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상당한 역량 투여가 필요합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려운 일이다 보니 손 놓고 있는 게 아닐까 걱정됩니다. 예를 들면, 근로자 참여 제도를 재정비하는 일입니다. 노동조합이 없는 곳, 특히 소규모 사업장에서 이것이 보장되려면 근로자 대표가 실질적인 권한을 가질 수 있어야죠. 법에는 근로자대표를 선출하도록 되어 있는데 선출 절차나 활동내용 등이 규정되지 않은 채로 있죠. 근로자 참여 인프라가 체계적으로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자율규제가 작동하기 어렵습니다. 기업 규모를 떠나서 자율적인 활동으로 많은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데 이런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려는 노력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전문성뿐만 아니라 진정성도 없는 게 아닐까 싶어요.

최민: 노동자 참여제도와 자율 안전점검은 묘하게 겹치면서도 어긋나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자율 안전점검을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하는가일 텐데요. 한국의 경우 기업들이 자율 안전점검을 규제나 책임 회피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율 안전점검이 현장에서 작동되지 않는 것은 정부가 정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기보다는 기업의 이해관계가 우선되기 때문이 아닐까요? 

정진우: 자율 안전점검은 로벤스 보고서에서 제기된 개념이었습니다. 법규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정부의 관리감독만으론 사업장 안전보건 전반을 커버하기 어렵다는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법 제도를 보완하는 수단이었죠. 법을 지키기 어려우니 현장에 맡겨달라는 것은 아니죠. 

그런데 산업안전보건법의 목적에서도 자율규제 개념이 빠져 있어요. 이건 정부도 이를 사족으로 생각했다는 걸 반증하는 게 아닐까요. 행정의 부족한 점을 메우려면, 근로자 참여를 빼놓고는 자율 안전규제를 얘기할 수 없습니다. 현장을 가장 많이 아는 주체 중 하나니까요.

강태선: 저도 100% 동의합니다. 지난번에 OSHA 대표가 내한했을 때, 사업주만이 안전한 현장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는 300만 개가 넘는 사업장이 있어요. 모든 일터를 감독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죠. 사업주의 윤리에만 의존할 수도 없고요. 

▲   강태선 세명대학교 보건안전공학과 교수.

결국 관리감독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사업주에겐 경각심을 주는 게 필요하고, 특히 안전보건 관련 법규를 이행하기 쉽다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어요. 법 이행에 따른 시행착오가 생길 수 있어요. 이를 지도하는 과정도 수반돼야 합니다. 

억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감독행정력이 중요하고, 근로감독관들도 재량권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대로 재량권을 발휘하는 게 결국 전문성이죠. 현장 개선을 위한 관리감독, 지도 등은 법으로 규정하기 어려워요. 일정한 프로세스와 인적 역량이 갖춰져야 합니다. 현재 한국의 조건에서 자율규제와 억제 효과가 실현될 수 있을까요?

류현철: 근로감독관의 재량권과 관련해서는 전문성과 공정성 모두 필요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사전적이든 사후적이든 생산에 차질이 발생한다는 이유로, 영세하다는 이유로 작업 중지를 내리지 않는 경우도 많잖아요. 기업의 이해관계를 먼저 고려한 게 아니었을까 의구심이 듭니다. 

감독관에게 바라는 전문성이라는 것이 무엇이 기반해야 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어요.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사고 예방과 개선을 위한 작업 중지 요구를 하고 이를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과정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현재 재량권이 언제 어떻게 발휘되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강태선: 사실상 지금은 재량권이 없는 것과 다를 바 없죠. 사업주가 노동자를 보호하도록 유도하지 못한 정부의 잘못이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패트롤 운영 관련해서 참고할 부분이 있어 보입니다. 조그만 현장들의 경우, 감독관당 1년에 최소한 30~40개를 돕니다. 주로 형식적으로만 감독하는 것에 그쳐요. 똑똑한 사업주, 소위 악성 사업주들은 규제망에 걸려들지 않습니다. 말 잘 듣고 실태를 모르는 사업주는 끌려다닌다, 이런 인식이 만연해있죠. 

이번에 집중적으로 패트롤을 운영했잖아요. 현장에서는 '우리도 드디어 감독을 받았다, 정부가 이런 곳에도 오네.' 이런 반응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점검받아보니까, 주로 추락 중심으로 하더라 크게 부담 안 되더라, 추락 관련 안전조치를 잘했으면 감독받는 게 어렵지 않더라, 이제 사업주들도 해야겠다, 해볼 만 하다는 인식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사업주의 의지가 형성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류현철: 그와 함께 사업주가 안전한 현장을 만들 수 있기 위해선 제반여건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안전에는 비용이 들어가잖아요. 결국은 안전조치를 이행할 수 있는 의지만이 아니라,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죠. 소규모 사업장 등에서는 실제로 비용부담이 크죠. 이를 감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여전히 사업주의 선의에 기대는 방식이 아닐까요?

정진우: 한 가지 정책으로는 부족합니다. 단발성으로 그칠 수 있어요. 한 번 지적하고 개선되지 않으면, 회초리를 들고 '이제부터는 정말 혼낼 거야' 같은 식으론 안전보건체계가 구축되지 않습니다. 기초적인 인프라가 구축되고서 이런 집중정책이 작동되어야 자율 안전보건관리가 제대로 정착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관리감독 및 사업장의 역량이 축적될 수 있죠. 지속가능한 정책, 장기적 전망을 지녔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안전보건 관리 체계·조직 변화 전제돼야

류현철: 현재 안전보건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느냐는 중요한 질문입니다. 현재 정책은 몇몇 리더십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스템으로 자리 잡은 것은 아니죠. 안전보건관리 시스템 구축을 위해선 무엇이 중요한 과제일까요?

 

▲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강태선: 안전보건은 여러 행정이 중첩되는 영역이죠. 타워크레인과 승강기 관련 대응이 좋은 모범사례입니다. 행정안전부와 노동부, 또는 국토부와 노동부가 서로 협조해서 정책을 마련했었죠. 관계부처들에 걸쳐있는 문제들이 많죠. 건설 현장 화재 사고도 마찬가지고요. 한 부처의 몫으로만 남겨두지 말고 협력체계를 구축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류현철: 그리고 안전보건 행정의 주요 관계를 사업주와 정부의 관계로 규정한다면, 노동조합 참여가 안전보건 수준을 높이는 데 유효하다는 얘기와 충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강태선: 안전보건영역은 노사자치에 전적으로 맡겨둘 수 없다고 봅니다. 원칙적으로 노사자치가 가능하려면, 기반이 마련되어야 해요. 최저수준을 지킬 수 있도록 규범과 규칙을 만들어야 하고요. 이는 정부와 사업주 간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겠죠. 만에 하나 노사가 합의해서 위험수당 받고 넘어가는 식이 되어선 안 되잖아요.

정진우: 사업장을 배로 비유하면, 사업주가 선장이라고 할 때, 선원들을 잘 관리해서 순항할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야 합니다. 이때 정부는 배 건조와 운항, 선원 관리 등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 관리감독하는 역할을 하겠죠. 사업주가 산재 예방 활동에 관한 의지와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거죠. 현장에서 안전보건 활동을 직접 해나갈 수 있도록 독려하고 교육도 제공해야 합니다. 단순히 감시하는 차원으로만 접근하면 한계가 있습니다.

류현철: 노동자 참여를 좀 더 얘기해보면, 독일의 경우 산재보험 자체에 노동조합이 관여하도록 하고 있고, 노동자 평의회를 통해서 사업주의 안전보건 활동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한국 산안법에도 노동자 참여가 보장되어 있고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산업안전 보건위원회나 명예산업 안전감독관의 실질적 운영 문제가 제기되는데, 여기에 주의를 덜 기울이고 있는 게 아닐까요? 더 활성화하려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내부에서 감시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려면, 위험을 인지할 수 있는 사람이 주체가 되어야 할 텐데요. 타임오프 때문에 활동에 제약이 있는 것도 해결해야 하고요.

정진우: 저는 노동조합 있는 사업장과 없는 사업장의 차이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더욱 취약한 곳은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들이죠. 그곳에서 노동자가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유명무실한 게 문제입니다. 노동부에서 이런 문제의식이 없는 것 같아요. 노동조합 요구에 대응하는 수준에 그치죠. 산재 사망사고의 대부분이 작은 사업장에서 발생하는데, 안전보건 활동을 마련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습니다. 

독일의 종업원 평의위원회, 영국, 일본의 노동자대표제도와 같은 모델을 더 적극적으로 고민해서 도입해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안전보건에 의지가 있는데, 왜 이런 걸 하지 않는지 의문입니다.

안전보건 역량 강화를 위한 과제

최민: 노동조합과 시민단체의 입장에서는 노동부나 안전보건공단이 기업의 이해관계만 대변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많습니다. 이번 현대제철 산재 사망사고 사례처럼 제대로 된 판단과 조치하지 않는 일이 발생했고요. 행정의 측면에서 현장의 근로감독관이 노사관계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떤 게 개선되어야 할까요? 인력과 예산을 더 투여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안전보건청 설립이나 조사 권한 확대 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강태선: 최근 인력과 예산이 늘고 있는 추세이지요. 지방 근로감독관을 늘려서 현장 인력을 확충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본부의 인력 증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현장 점검, 사고 대응이 2차적인 전문성이라면, 1차적인 전문성은 어떻게 하면 자율 안전관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할 것인가, 입니다. 기술적 접근 외에 전략적 접근을 할 수 있는 인력이 중요합니다. 본부와 중앙의 정책 그룹을 확충해야 합니다.

정진우: 동의합니다. 그런데 해외와 비교하면 인력이 부족하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만약 확충한다면, 인력의 정예화가 전제돼야 합니다. 채용, 경력관리, 교육 훈련 등 인사 문제와 관련해 개혁이 필요하고요. 시험 준비만 해보고 현장경험이 전무한 사람이 어떻게 정책을 제대로 수립할 수 있겠습니까. 현장경험을 축적하고 정책에 녹여낼 수 있도록 세심한 인사정책이 필요합니다.

강태선: 그걸 위해서는 담당자들에게도 유인이 필요합니다. 안전보건 전문가가 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그런 조직에 어떤 걸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개별 담당과에서 하는 일을 총괄하고 성과분석 및 정책 입안을 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고, 그런 곳에 안전보건 담당자들을 세울 수 있도록 동기 부여하고 역량 강화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해외 사례에 비춰 인력 수준이 상대적으로 비슷하다고 해도, 권한이 어느 정도인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충분한 정책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조직이어야 합니다. 안전보건청 같은 대안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조직개편은 장기적인 과제 단계적 이행 전략을 수립해가야 합니다.

류현철: 구조적 문제 또한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구의역 김군, 고 김용균 투쟁 등에서 제기된 '위험의 외주화'가 안전 보건의 핵심 문제라 할 수 있을 텐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안전보건 행정은 이에 어떻게 대응해나가야 할까요?

강태선: 구조적 문제에 대응하려면 사고조사부터 제대로 해야 합니다. 사고조사에선 기술적 원인부터 구조적 원인까지 폭넓게 다룰 수 있습니다. 단순 처벌이 아닌 재발 방지를 위한 조사로 제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술적, 법적으로 위반요소만 찾을 것이 아니라 근본적 개선사항까지 밝히는 거죠. 조사보고서를 통해 공식적으로 법에 반영하고 현장에서 개선하는 프로세스를 갖춰나가야 합니다. 

모든 걸 안전불감증으로 치환하는 건 문제지만, 모든 게 도급 때문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비약이 있습니다. 제대로 된 사고조사가 반복, 축적될 필요가 있습니다. 나아가 관련 자료를 공개해서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대안들이 제출되어야 합니다. 안전보건공단이나 노동부에서 사고조사에 더 주의를 기울이면 좋겠습니다.

류현철: 건설업 다단계 하도급이나 특수고용노동자 등의 경우 예방적 차원에서 기술적 안전보건 문제만이 아니라 고용 형태, 산업구조를 바꿔나갈 필요가 있잖아요. 이럴 때 왜 정부는 법 제도를 적극적 해석하고 적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일까요?

▲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정진우: 정부 부처 간 역할이 구분되어 있고, 문제해결에 서로 긴밀하게 협조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컨대, 불법 파견으로 인한 산재 사고의 경우, 누가 봐도 불법 파견인데 안전보건 관련 부서는 관심이 없고 다른 부서 소관이라고 눈감아 버리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만약 산업안전보건법에 특고 관련한 조항을 넣을 때도 더 세심하게 고민할 수 있는데, 특고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을 세우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 같아요. 건설 현장 안전감시단도 외주화하는데, 이를 산안법상 안전관리자처럼 허용해주는 것도 문제입니다. 안전관리자는 종합건설사가 직접 고용해야 하는데 말이죠. 전문성과 권한에서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이런 식으로 서로 일을 구분 짓고 책임을 미루는 것은 노동부와 공단이 직무유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봅니다. 범정부 차원의 긴밀한 업무 연계, 안전보건관리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강태선: 그런 점에서 지금과 같은 노력을 계속 기울여나가면 좋겠습니다. 진지한 노력에 대해서는 성과 여부를 떠나 칭찬도 하고 날카롭게 비판도 하고요. 함께 안전한 일터를 만들어갈 수 있길 바라고,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최민: 오랜 시간 대담을 나눴는데요. 현 산재 예방정책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산재 예방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을 위해 더 많은 고민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특집2. 시스템을 구축하고 환경을 바꾸는 산재예방정책을 바라며 / 2020.07

[산재예방정책을 진단한다] 

 

 

시스템을 구축하고 환경을 바꾸는 산재예방정책을 바라며

 

 

박기형 / 상임활동가 

 

지난 2019년, 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은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겠다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선택과 집중 전략을 취했다. 산재 사망사고가 다발하는 일터 중에서도 건설 현장, 그중에서도 추락사를 줄이고자 했다. 시스템 비계 설치 점검, 안전패트롤 운영 등 추락사 예방정책을 시행하고, 행정력을 건설현장 안전점검에 집중했다. 이러한 조치가 현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만약 당장 효과가 드러나지 않기에 좀 더 지켜봐야 한다면,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 유효할 수 있을까? 정말 건설현장이 안전한 일터가 되기 위해선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 이러한 질문을 안고, 지난 7월 1일 광화문 부근 카페에서 강한수 건설노조 토목분과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건설사들은 "안전관리능력"을 갖춰야 하고, 정부는 안전한 건설 노동환경을 갖추도록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택과 집중, 그 너머의 문제들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은 2018년 타워크레인 사고 집중 점검, 2019년 건설현장 추락재해 집중 점검, 2020년 건설현장 화재사고와 질식사고 집중 점검 등 주요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특정 의제를 중심으로 대응해왔다. 건설현장에서 두드러진 사고유형별로 집중 점검을 시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건설현장의 노동자들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우선 정부가 건설현장 안전에 관심과 의지를 갖고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것은 유의미한 변화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노동부가 종합대책을 내놓았지만,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기기엔 두루뭉술한 내용이 많았거든요. 그러니 현실에서 집행될 수 있도록,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 확실한 효과를 노릴 수 있는 전략이라 할 수 있었죠. 하지만 문제는 선택을 하면, 포기하는 부분이 생긴다는 것이에요. 건설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고, 계속해서 발생하는 여러 유형의 사고들을 놓치게 된다는 것이죠.

특정 의제에 집중하더라도 여러 사고 형태들을 모아서 분석하는 일도 병행이 되어야 해요. 각각의 사안에 대한 세부대책 또한 마련되어야죠. 종합대책이 부실하면 그걸 탄탄하게 만드는 것으로 가야 하는데, 사회적 이슈가 된 사안에 건별로 대응하는 게 아닐까 우려스러워요. 단편적인 방안만 내놓는 게 아닐까 싶은 거죠. 이슈화된 특정 사안에만 관심이 옮겨가는 것은 그만큼 노동부 내 산업안전 관련된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닐까요?"

강한수 위원장은 사안별로 집중해서 점검하고 관련 대책을 시행하는 것이 해당 사안을 해결하는 데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집중점을 옮겨갈 때 그 효과가 지속될 수 있을지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만약 타워크레인 집중점검에서 추락사 집중점검으로 정책의 강조점을 바꿔 갈 때, 타워크레인과 관련한 안전수준이 정말 올라간 것인지 평가하고,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단계라면 타워크레인 안전점검의 역량을 이전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새로운 대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역량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가기만 하는 것이라면, 안전관리가 누적되거나 증대해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노동부에서 이 점에 유의해서 산재예방정책을 검토·수립·시행하고 있는지 물어야 할 필요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 2019년, 추락재해 예방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는데, 그 효과가 정말 나왔는지도 앞으로 지켜보면서 평가하는 일도 병행되어야 합니다. 과연 실제로 추락재해가 줄고 있는지 모니터링해야죠. 무엇보다 사망재해에 초점을 두고 했던 것인데 추락사로 이어지는 동안, 수많은 '아차 사고'가 있었을 것이잖아요.

또한 사망자만큼 중경상의 부상자도 많을 것이고요. 추락사가 줄었다면, 그만큼 중경상 사고도 함께 줄어든 것인지 점검이 필요해요. 집중을 통해 파급효과를 노린 것이라면, 사망사고 외에 다른 추락 관련 산재들도 줄어야 제대로 된 정책효과가 아닐까요?

나아가 파급효과가 있다면, 화재사고, 질식사고 집중점검으로 옮겨갈 때 추락 관련한 안전점검 또한 지속할 수 있을지도 평가가 필요하고요. 결국 중요한 문제는 집중점을 옮겨갈 때, 감독을 안 한다고 이전의 상황으로 되돌아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죠. 이러한 집중사업이 시스템을 구축하는 형태로 나아가는 촉발제가 될 수 있는지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해요."
   
제대로 된 '자율안전점검'이 가능하려면?
   

"만약 안전 장구 미지급으로 착용하지 않아서 다치거나 죽었다면, 그걸 누구의 잘못으로 규정해야 하나요? 그럴 때 미착용으로 노동자 과실로 규정하는 게 타당할까요? 만약 지급했다면, 순시가 돌아다니면서 노동자들에게 안전벨트와 안전모 착용하라고 지적했어요. 그리고 노동자들도 착용했죠.안전관리의 주요 논리 중 하나가 바로 '자율규제'다. 그런데 과연 한국의 건설현장에서 자율안전점검이 가능한 조건일까? 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의 안전점검, 관리·감독을 통해 현장에서 사업주와 노동자들이 함께 안전한 건설현장을 만들어갈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고 있을까?

"한국의 사업주들은 안전보건과 관련한 관리·감독에 이렇게 생각을 많이 할 거예요.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 '근로감독관 나왔을 때만 조심하면 된다', '이때만 바짝 조심하면 괜찮을 거다' 등. 예를 들어 중대재해가 발생했어요. 해당 사업장에 특별근로감독이 나오죠. 그러면, 너네 한 번 정신 차려 보라면서, 온갖 산안법 위반사항을 적발하고 과태료를 물리죠.

이렇게 징벌적으로 점검하는 방식이 반복되다 보니, 현장에서도 거부감이 생길 수밖에 없죠. 아무리 준비해봤자 걸릴 거 다 걸린다, 평소에 신경을 써도 못 피해간다는 부정적인 인식과 회의적인 정서가 뿌리 깊게 형성되어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집중점검정책이 끝나면, 다시 이전의 수준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건설현장의 유해위험요인은 매우 다양하다. 모든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 만만치 않으며, 정부의 안전점검도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 그런 점에서도 자율안전관리가 필요하지만, 현장 상황에 따라 역량이 천차만별이다. 현대건설, 포스코 등 대기업 건설현장의 경우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안전관리자, 보건관리자 등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꾸리고 운영하게 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노동부나 안전보건공단도 소규모 건설현장에 더 집중하려고 했다. 그런데 실제로 대기업 건설현장에서 자율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건설현장 산재사망사고의 원인을 살펴보면, 관리가 되는 현장과 아닌 현장의 차이가 별로 피부로 와닿지 않아요. 다시 말해 건설현장 간 차이가 없는 것이죠. 건설 현장에서 산재사망사고가 다발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언제나 시공이 우선이 되기 때문이에요. 안전조치가 온전히 이뤄지고 나서 작업을 시작하는 건 어느 건설현장이 부족한 것이죠. 포스코의 경우엔 CCTV를 설치하고 안전관리자를 곳곳에 두고서 구역별로 상시 점검하고 있어요.

하지만 안전조치, 안전교육, 안전설비, 작업현장을 점검한 뒤 작업을 개시하는 안전관리 절차는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아요. 안전점검 이후 인력을 투입하지 않고 있죠. 작업 자체를 전문건설사에 위임하고 원청은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감시·감독하는 형태로 진행하고 있는 식인 거죠. 결국 강압적인 안전관리가 이뤄지게 되죠. 안전패트롤 운영이 그 연장선에 있어요.

문제는 안전관리자는 원청이 직접 고용하지만 패트롤은 하청을 준다는 점이에요. 안전관리자들이 모든 현장을 다 확인하지 못하기 때문에 안전팀 인력 중 일부를 용역으로 사용해요. 안전팀이 관련한 지시를 하고, 패트롤은 손발이 되어 돌아다니죠. 하지만 건설현장 안전 관련 지식과 권한이 부족하다 보니 제대로 된 점검이 어려워요. 물론 작업자들이 유해위험요인을 일하면서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안전팀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이런 식으로 운영하는 게 적절한 것인지 모르겠어요."

예컨대, 한 건설현장에 패트롤이 돌아다니고 있어요. 거기서 콘크리트 타설작업이 이뤄지고 있죠. 타설 작업할 때, 펌프카가 엄청난 압력으로 콘크리트를 쏴요. 타설 지점에서 도킹을 잡은 사람, 옆에서 라인에 맞게 골고루 뿌리는 작업을 도와주는 사람 등이 여럿 모여서 작업하고 있어요. 문제는 펌프카의 바퀴가 떠 있는 채로 작업이 이뤄진다는 거예요. 쏘는 방향에 따라 특정 부위에 하중이 쏠리죠. 그때 지반침하로 인한 펌프카 전도가 자주 발생해요. 그러면 이 작업자 서너 명 중 한 명은 늘 사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위험이 늘 있다면, 타설 작업 전에 지반조사를 해야 하잖아요. 지반침하 위험이 있다면 타설작업을 중지하고요. 작업 재개 전에 충분한 조치가 취해져야 하고요. 그런 안전점검, 중지 및 재개 의사결정이 현장의 패트롤이나 안전팀을 통해 이뤄질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점검체계가 갖춰진 곳이 별로 없어요. 그럴 권한과 역량이 부족해요. 더욱이 공사기간을 맞추는 게 최우선 원칙이다 보니, 안전점검할 시간적 여유도 없습니다. 작업중지하고 점검하는 데 따른 책임을 누구도 지기 싫어하게 되고요."

그 결과, 건설현장의 자율안전점검을 하더라도 대부분 작업자에 대한 규제 중심으로 좁혀지게 된다. 안전패트롤이 상주하면서 돌아다녀도, 노동자들이 안전장구를 잘 착용했는지, 작업자가 작업 과정에서 안전조치를 충실히 하고 있는지 등 작업자 개인에 대한 규율 위주로 점검한다. 사람의 행위만 통제하려는 방식 말이다.

이에 대해 노동자들은 안전을 강조하는 것에 반발감만 생긴다고 토로한다. 작업환경은 별로 바뀌지 않는데 노동자들만 못살게 굴고 귀찮게 한다는 부정적 인식이 생기는 것이다. 왜 이런 행위자 규제 중심의 안전조치만 이뤄지게 되는 것일까? 이는 다단계 하도급이라는 구조적 요인뿐만 아니라, 안전사고 원인 분석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발판이 고장 나서 또는 난간이나 낙하 방지망이 없어서 추락하면 그때는 누구에게 과실이 있는 건가요? 자동차 사고의 경우, 운전자의 과실 여부를 주로 따지죠. 하지만 도로 설비가 부실했다면, 차선이나 신호등에 문제가 있었다면, 싱크홀 같은 게 생겨서 사고가 발생했다면, 그건 운전자의 과실이 아니잖아요. 노동자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 안전불감증 프레임을 넘어설 수 있어야 해요."

강한수 위원장은 건설현장의 '환경이 변화해야 한다'고 반복해서 강조했다. 건설현장의 안전시스템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노동자 개인이 주위를 살피지 못했거나 실수를 했더라도, 다치거나 죽지 않을 수 있어야 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관점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정부기관, 지자체 등에서 건설현장 안전점검 보고서 및 개선 계획들을 제출한다. 하지만 건설현장 사고원인의 대부분은 노동자의 과실, 특히 개인 부주의로 기록되어 있다. 추락사 또한 개인이 안전고리를 착용하지 않고 일을 해서, 부주의로 발을 헛디뎌서 죽은 것이라고 적혀있기도 한다. 그런데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죽었다는 단순한 인과관계로 설명되는 추락사의 경우에도, 정말 노동자 개인만 탓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노동부가 작년 한 해 시스템 비계를 건설현장에 널리 도입하기 위해 취했던 여러 노력은 특기할만하다. 추락사가 벌어지는 환경적 요인을 개선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대부분의 산재사망사고의 원인은 개인의 기저질환, 부주의 등으로 기록되고, 대책도 안전불감증을 개선해야 한다는 실체를 알 수 없는 내용으로 채워진다.

사고 원인을 무엇으로 규정하는가, 사고 조사를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도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 이를 위해 기존의 사고조사를 재검토해서 원인 규정부터 새로이 할 필요가 있다. 안전설비 부실, 작업 개시 전 안전조치 미비, 장구 미지급 등 다양한 환경적 요인을 포함해야 할 것이다. 

제대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건설현장의 안전점검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책임을 명확히 묻는 것도 필수적이에요. 만약 안전조치하라고 잔소리만 한다고 행하는 건 아니잖아요. 스스로 할 마음이 들어야지요. 물론 마음을 먹어도 소홀하게 될 수 있으니 자극을 주거나 독려하는 등의 관리가 필요하겠죠.

다시 말해, 건설사 스스로가 바뀌어야 하죠. 집중사업 이후 건설사의 태도를 바꿔내기 위해 두 가지 방향의 조치를 취할 수 있겠죠. 우선 유인책이랄까요. 적정공사기간 및 적정공사금액을 보장하고, 안전관리비 계상 및 집행 등에 건설사가 안전관리를 더 잘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는 거예요. 그리고 재해율이 평균 미만일 때, 입찰 시 PQ점수를 조정해주거나 산재보험요율 줄여주는 것도 그렇죠.

문제는 유인만 제공하는 것으론 불충분하다는 거예요. 더군다나 건설사들이 악용할 수 있어요. 적당히 재해율 지표만 관리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산재은폐를 하거나 법적으로 문제 되지 않을 정도로만 조치하는 것이죠. 실질적인 안전조치를 하는 사람이 바보라는 인식이 생길 수 있어요.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나중에 걸리면 벌금만 내면 되고, 소송 가면 변호사만 잘 쓰면 된다는 식이에요. 책임을 적당히 지려고 하는 분위기가 만연해요. 그마저도 하청업체나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려고 하고. 건설사들의 태도 변화가 쉽지 않아요. 그러니 강한 충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죠. 일정한 강제가 필요하니, 과태료나 벌금 강화, 경영책임자 처벌, 공공기관 공사 수주나 시공 자격 박탈 등의 요구가 제기되는 것이죠. 잘못을 확실히 밝히고 강력히 처벌해야, 적당히 넘어가야지 하는 수준 이상으로 안전에 관심을 쏟을 테니까요.

비유하자면 지금은 공부하는 사람이 제대로 공부하려고 하기보다는, 책상이 없어서, 의자가 불편해서, 더운데 에어컨이 없어서, 필기구가 안 좋아서 공부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공부할 수 있도록 이거저거 사달라고 하는 수준에만 머물러 있어요. 물론 이렇게 환경을 조성하는 것, 그래서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건 중요하죠. 하지만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는 거잖아요.

모든 걸 정부나 하청업체, 노동자의 탓으로만 돌리려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죠.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만큼 그에 따른 책임을 부과하고 이행하지 않을 시 처벌하는 것도 필요해요. 자신에게 필요하거나 유리한 것만 챙기려고 하는 것은 막아야죠. 은근슬쩍 넘어가지 않게 면밀히 감독하고, 원인을 제대로 밝히고, 확실히 처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소규모 건설현장 관리 방안도 고민해야

추락사 예방을 위한 집중안전점검을 할 때, 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은 소규모 건설현장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실제로도 소규모 건설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더 많이 발생하며, 시스템비계와 같은 안전설비를 갖추지 않는 일이 더 빈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스템비계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여 시스템비계 공급을 늘리고 가격을 낮추는 등의 지원책 시행, 현장 안전점검 확대 등의 안전정책만으로 충분할지 되짚어봐야 한다.

소규모 건설현장에서 안전조치가 미비한 이유는 단지 안전설비 가격이 비싸기 때문일까? 또는 소규모 건설현장에서 안전관리 인력이 부족한 것은 단지 안전관리체계를 갖출 만한 인적, 재정적 여력이 부족해서일까? 왜 이런 안전관리 역량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지 되풀어 볼 필요가 있다.

"소규모 건설현장의 안전사고 예방이 안전점검만으로 가능할지 의문이 듭니다. 건설업의 경우 면허등록을 해야 해요. 신고제로 이뤄지죠. 건설산업기본법 규정에서는 종합건설업, 전문건설업 등 영업의 종류에 따라, 그리고 토목·건축·산업환경설비 등의 내용에 따라, 법인과 개인의 경우에 따라, 자기자본금 기준이 책정되어 있어요. 갖춰야 할 전문인력의 규모도 있고요.

그런데 자기자본금이나 소지면허 등에 허위기재사항이 많고, 면허대여의 문제가 있어요. 페이퍼 컴퍼니를 세워서 일만 따고 다시 도급을 주는 경우도 많고요. 그러니 현장의 실제 관리자와 서류상 책임자가 다르거나, 더욱이 관리책임자 자체가 없는 상황이 생기기도 해요.
 
그러니 시공 능력뿐만 아니라 안전관리 능력 자체가 확인이 안 됩니다. 건설업체 관리가 허술하게 이뤄지는 것이죠. 재정과 인력이 부족한 것은 단순히 소규모라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소규모여도 현장을 관리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들을 운영할 수 있는지 검토할 수 있는데, 그것 자체가 전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죠. 안전관리 능력이 없는 업체들을 난립하게 해놓고 영세하다고 봐주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고 행정기관이 무책임한 것이죠.

무엇보다 건설현장은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안전, 건물을 짓는 사람들의 안전을 우선해야 하잖아요. 시공능력이라는 것도 건물 자체를 지을 수 있느냐의 능력인데, 건물을 짓는다는 건 마냥 세우는 게 아니라 튼튼한 건물을 안전하게 짓는 걸 묻는 거잖아요. 그러니 건설업 허가를 더 강하게 규제하고 더 면밀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적어도 규모에 상관없이 각 현장별로 안전관리책임자가 상주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관리자 선임 기준도 조정하고, 선임만으로 그치지 않고 실제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안전한 건설현장을 만드는 것은 단지 특정 사고유형만 점검하는 일로 달성되지 않을 것이다. 집중과 선택의 전략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선, 해당 전략이 다양한 변화를 촉발할 수 있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도록 제반 조건을 마련하는 일과 병행되어야 한다. 건설현장의 안전보건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실효성 있는 안전조치가 작업 과정 전반에서 사전에 실행되는 등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시스템이 안착할 수 있도록 더 체계적인 정책, 장기적인 계획이 마련될 수 있기를 바란다.

특집1. 정책 목표에 기반한 '산재 발생 평가'가 필요하다 / 2020.07

[산재예방정책을 진단한다] 

 

정책 목표에 기반한 '산재 발생 평가'가  필요하다

 

최민 / 상임활동가  

 

이제 1년에 2천여 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숨진다는 얘기는 많은 시민, 노동자들이 알게 된 것 같다. 산업재해 발생 건수, 사망자 수, 질병에 의한 사망과 사고 사망의 정확한 통계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전반적인 국가 통계를 모두 표와 그래프 형태로 제공하는 통계청 포털에서도 지난 20여 년간의 업종별, 성별, 산업재해 발생 건수와 사망자 수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외에 매년 고용노동부(노동부)는 지난해를 기준으로 '산업재해 발생 현황'을 발표한다. 여기에는 해당 연도의 전체 산업재해 발생 현황과 개요, 주요 특징 등이 담겨 있어, 노동부가 산재 통계 중 어떤 부분에 어떤 의미를 두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2020년 4월 27일 노동부는 '2019년 산업재해 발생 현황'을 발표했다.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는 2020명으로 이 중 사고 사망자는 855명, 질병 사망자는 1165명이었다. 2018년에 비하면 전체 산재 사망자 수도 122명이나 감소했고, 특히 사고 사망자 수가 크게 줄었다.

사망 만인율도 줄어서 2018년 1.12에서 2019년 1.08이 됐다. 질병사망 만인율은 오히려 증가했지만, 사고사망 만인율은 10% 가까이 줄어 0.46이 됐다. 하지만 2022년까지 산업안전 분야에서 사고 사망률을 절반으로 낮추겠다는 공언을 달성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특히 사고사망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려는 더 커진다.

 

▲   한 사업장에서 발생한 산재사고로 사망한 노동자가 쓰고 있던 안전모


  
건설업 사고사망, 예방 정책 때문에 줄어들었다?
  
2020년 1월 초, 노동부는 2019년 산재사고 사망자가 2018년에 비해 116명이나 감소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는 1999년 사고사망자 통계가 시작된 이후 가장 큰 감소 규모라고도 했다. 특히 건설업 사망자 수가 485명에서 428명으로 57명이나 감소했고, 이는 선택과 집중 방식의 사업장 관리·감독, 발로 뛰는 현장 행정 때문이라고 했다. 전체 산재보험 대상 근로자 수가 나오기 전이라 '사고사망률'을 알 수 없는 상황인데도, 이례적으로 일찌감치 현장 패트롤이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2019년 산업재해 발생 현황'의 결과는 이와 다르다. 건설업에서 사고사망자 숫자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건설업의 사고사망만인율은 1.65에서 1.72로 오히려 늘었다. 건설업 사고사망자 숫자가 줄어든 것은 산재예방정책이 효과를 거뒀기 때문이 아니라, 2019년 건설 경기가 나빴기 때문이었다. 건설업 노동자가 줄어서 사망사고도 줄어 보였던 것뿐이다.

 

▲   2015~2019 건설업 사고사망자 수 및 사고사망만인율 추이


  

건설업은 2018년에 비해 산재보험 대상 근로자 수가 45만 명가량 감소했기 때문에 사망 만인율이 오히려 증가했는데도, 사망자 수가 57명이나 감소한 것이다. 만인율이 줄지 않았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면 2018년 수준의 사망률만 유지됐어도, 건설 사고사망자는 410명이어야 하는데, 이보다 많은 428명이 건설업에서 사망했다는 뜻이다. 2018년 수준의 사고사망 만인율만 유지됐어도 죽지 않았을 노동자 18명이 오히려 더 죽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문제는 노동부와 안전공단의 사망사고 감소 대책의 주요 대상이 '건설업'이었다는 점이다. 노동부와 안전공단은 2018년부터 추락사고 예방 중심, 건설업 안전 비계 설치 중심의 사고사망재해 예방 활동을 본격적으로 펼쳐왔다. 2018년 건설업 사고사망자 수는 20여 명 감소했지만, 사고사망 만인율은 줄어들지 않았다.

2019년 초 노동부는 2018년 5월 이후 건설업 산재예방 사업을 본격화했기 때문에, 아직 효과가 나타날 시간이 부족했다고 평했다. 그러나 타워크레인에 대한 관리 후 타워크레인 사망사고가 줄어드는 등 성과가 있었고, 늘어난 사고사망 숫자는 산재보험 적용이 확대되어 ▲ 산재로 인정되는 사고 사망이 증가했고 ▲ 이전 년도에 사망했지만 유족급여를 뒤늦게 받은 경우가 포함돼 있어, 당해연도 발생 사고사망자 수는 감소하고 있다고 평가했었다.

우리는 당시에도 변명 대신 건설업 산재예방활동 중간 점검과 진지한 평가를 요청했다. 건설업에서 사망사고 건수나 사망 만인율이 큰 차이가 없더라도, 집중 예방활동을 하는 추락사고가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그 효과는 어떤 규모의 건설 현장에서 주로 나타나고 있는지, 아직 뚜렷하지는 않지만 이런 예방활동이 앞으로 성과를 거두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지 등의 분석이 필요했다.
   
단순 통계가 아닌, 정책 목표에 따른 평가를

그러나 노동부는 이런 분석 없이 2019년에도 시스템비계 설치를 통한 추락 사고 예방, 현장 패트롤 사업을 추진하였다. 그리고 건설업 사망 만인율은 또 줄지 않았다. 지난 5년간 건설업 사망 만인율은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다. 현장 패트롤을 통해 어떤 효과를 거두려고 했는지, 그 목표는 어떻게 달성되고 있는지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으면, 결과론적인 평가를 할 수밖에 없고, 건설업 사고사망자 수 혹은 사고사망 만인율이 줄어들지 않으면 건설업 집중 예방 활동이나, 현장 패트롤을 지속할 근거도 사라진다.

처음으로 산재예방정책이 구체적인 전략적 목표를 가지고 접근하고 있는데, 섣부르게 비판하는 것은 아닌지, 1~2년 사이에 당장 가시적 효과가 없다고 비판하는 것은 근시안적이라든지, 오히려 고용노동부와 공단은 산재 예방을 새로이 접근해보려고 하나 행정력이 부족해서 그 효과가 잘 안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이니, 예산과 사람을 더 투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산재보험이 집계하는 건설노동자 추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건설업에서 산재 사고사망률이 증가한 것 자체가 착시라는 주장도 있다.

건설노동자 사고사망자의 절대 숫자가 감소한 것은 분명 환영할만한 일이나, 위와 같은 주장들이 근거를 가지려면, 계속 강조하는 대로 시스템 비계 설치 독려와 패트롤 중심의 안전공단, 고용노동부 산재예방 사업이 어떤 점에서 효과를 거두고 있고, 어떤 점에서 부족한지 진지한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 당장 현재의 전략을 바꾸거나, 유지해야 한다는 단편적인 '싸움'이 아니라, 제대로 된 분석과 평가, 토론이 필요하다.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사망자 감소

전체적으로 산재사고사망이 감소하고 있는 것도 산재 사고 사망 예방 정책에 힘입었다기보다, 산재율이 높은 업종이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드는 것의 영향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전체 사고사망률 평균보다 사고사망 만인율이 낮은 업종의 비중(기타의 사업, 기타, 전기·가스·수도업의 합)은 2017년 56.2%, 2018년 57.7%, 2019년 59.7%로 계속 높아졌다. 산재예방정책이나 안전조치 등이 특별히 달라지는 게 없어도 산업구조 변화만으로도 산재 사망사고는 줄어드는 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산업별 사망 만인율의 변화를 보면 사망률이 높은 임업과 광업, 건설업에서는 사망률이 오히려 증가했다. 운수·창고·통신업에서 사망 만인율이 가장 크게 감소했고, 원래 사망 만인율이 낮은 편이던 기타의 사업에서도 사망 만인율이 0.03명(1만명 당) 감소한 것을 제외하면 제조업을 비롯한 나머지 산업에서 사망률은 큰 변화가 없다.

특별한 노력 없이 2018년의 산재사고 사망률이 그대로 유지된다 하더라도 2019년에는 사망자 수가 893명으로 총 78명 감소했을 것이다. 일종의 자연감소분이다. 그러나 2019년 실제 사고사망자 수는 855명이므로, 추가 감소 사망자 수는 38명이다.

노동부는 2018년과 비교했을 때 사고사망자 수가 116명이나 줄어든 것은 성과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 116명의 사고사망자 감소 중 사망사고 발생 위험이 낮은 산업 비중이 높아지는 산업구조 변화로 인해 발생한 일종의 자연감소 사망자 수는 78명, 행정과 정책의 개입 등으로 인해 이보다 더 많이 추가된 사망자 수 감소분은 38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최근 3년간의 산재사고 사망자와 사망률 변화 역시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영향이 더 크고, 산업안전 실태가 개선되어 발생한 변화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법이 있고, 체계가 있고, 행정 인력이 있는 나라라면 당연히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자연감소 이외의 사고 사망이 감소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산재 통계의 목표는 '일터를 안전'하게 하는 것
   

▲   정부는 산재 통계의 수치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일터를 안전하고 건강하게 해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산재 통계의 수치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일터를 안전하고 건강하게 하는 것이다. 산재 예방 정책이 시기별로 목표로 삼는 산재사망률 혹은 재해발생률은 달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보다 효율성, 이윤 등을 중시하는 관행이 쉽사리 달라지지 않을 것이고, 제대로 된 정책이 시행되더라도 효과가 나타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 다양한 지표들을 활용한 분석을 통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이유를 분석하고 이에 따라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새로 수립해야 한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지만, 지속해야 할 정책 과제가 있다면, 이를 설득해야 한다.

노동부와 안전공단은 2018년부터 해 오고 있는 산재 예방 정책과 그 목표 지표에 대한 평가, 산재 사고 사망 감소를 위한 전략과 전술에 기반한 분석, 그리고 이에 따른 예방 정책에의 시사점을 제안해야 한다. 현장 패트롤, 시스템비계 도입과 같은 기술적인 접근 외에 원청 책임 강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건설현장 불법하도급 근절 등 '큰 얘기'를 계속 주장하는 건설노동자와 노동조합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이를 산재예방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노동부가 산재 발생 현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져야, 산재 사망률도 줄어들고 일터도 조금 더 건강하고 안전해질 것이다.

[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여전히 먼 50cm / 2019.07

[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여전히 먼 50cm

 

 

이정엽 /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후원회원 

 

 

어느 무더운 여름날, 당시 전공의였던 나는 보건관리 업무를 위해 한 휴게소를 방문하게 되었다. 건강 상담이 끝난 뒤 현장 순회를 위해 휴게소 내의 여러 시설을 둘러보던 중, 손님이 아무도 없는데도 서서 대기하고 있는 편의점 여직원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전 상담을 할 때 허리 통증을 호소했던 분이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갔다.


“계속 서 있으시면 허리가 더 아프지 않으세요? 손님이 없으실 때만이라도 좀 앉아 있으시지요.”


그러자 그 여직원이 쓴웃음을 지으며 “여기는 의자가 없어요.”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계산대 뒤 쪽으로 건너가 보니 휴지통과 몇 가지 개인 짐만 놓여있을 뿐 정말로 의자는 없었다. 비록 아무런 동작 없이 가만히 서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몸을 똑바로 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신체에 상당한 부담을 준다. 따라서 장시간 서서 근무할 경우, 하지 근육의 피로도를 증가시키며 하지 정맥류, 족저근막염, 요통의 발생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 직업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근무 중 틈틈이 의자에 앉아있을 필요가 있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위에서 가끔 감사가 내려오기 때문에 앉아 있으면 안 된대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좀 더 확인이 필요할 것 같아 담당자를 찾았다. 마침 담당자는 편의점 옆 중앙계산대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심지어 그분 또한 계속 서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담당자의 말로는 자신이 속한 사업장은 한국도로공사로부터 용역을 받아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상황인데 가끔 도로공사에서 운영서비스평가를 하러 내려올 때가 있기 때문에 근무 태도 등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판매 직원이 앉아 있으면 평가 점수가 깎이는 거냐고 되묻자, 자신도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저자 이정엽님이 직접 그린 그림. 앉을 권리는 판매노동자의 건강권이다.  

 

노동자의 앉을 권리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80조에는 ‘사업주는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근로자가 때때로 앉을 기회가 있으면 해당 근로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의자를 갖추어 두어야 한다.’라고 노동자의 앉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또한 2년 전에 우리 기관에서 이 사업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근골격계유해요인조사에서도 조리, 판매, 가판 등의 부서에서 근로자들이 장시간 서서 일하고 있어 허리 및 다리의 부하를 감소시키려는 조치가 필요함을 제기한 바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용역을 받는 입장에서 이 권리를 보장해 주었을 때 불이익을 받을 위험이 있는 한, 내가 아무리 작업 환경 개선을 요구하더라도 반영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 했다.


휴게시설 운영서비스 평가 시 고려 사항이 아님
우선은 정말로 도로공사 평가 시에 직원들의 앉아있는 자세가 점수에 반영되는지를 명확하게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로 보였다. 나는 한국도로공사에서 실시하는 ‘휴게시설 운영서비스평가’의 담당자에게 연락을 취하여 해당 평가 시 직원이 앉아있다면 평가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지 직접 확인해 보았다. 담당자는 비록 평가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직원이 고객을 응대할 때의 언행을 반영하기는 하나 직원이 서거나 앉아있는 자세는 평가 항목에 없다고 했고, 내가 여러 차례 되물었지만 앉은 자세가 점수에 반영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답변은 변함이 없었다. 그렇다면 해당 사업주는 아마 정확한 확인 없이 막연하게 직원은 항상 서서 근무하는 것이 더 친절하고 공손해 보일 것으로 생각하여 그렇게 지시한 것이 아닐까? 나는 법적 근거, 의학적 소견, 한국도로공사로부터 받은 답변 등을 첨부하며 이들에게 잠시 앉거나 기댈 수 있는 입좌식 의자의 지급을 권고함과 동시에 이들이 고객을 응대하지 않을 때에는 틈틈이 앉을 수 있도록 지도해 주기 바란다는 소견서를 작성하여 담당자를 통해 사업주에게 전달했다.


판매노동자에게 여전히 먼 50cm
노동자 뒤쪽에 의자가 놓여 있을 경우, 보통 엉덩이와 의자 간의 거리는 50cm가 채 되지 않는다. 앉을 권리를 집단으로 요구하기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그 짧은 간극을 메우는 일은 아직도 달성하지는 못한 듯 보인다. 판매직 노동자의 의자에 앉을 권리를 찾기 위한 노력은 지난 2008년 전국적인 캠페인을 통해 사업주의 법적 의무에 의자 비치가 추가되는 등 소기의 성과가 있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2018년 김승섭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판매노동자의 27.5%가 일하는 곳에 직원용 의자가 없다고 응답했으며 의자가 있어도 사용할 수 없다는 답변 또한 37.4%나 되어 판매노동자의 3분의 2는 온종일 서서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판매노동자에서는 일반 여성에 비해 무려 하지정맥류가 25.5배, 족저근막염이 15.8배, 엄지발가락이 휘는 무지외반증이 67.0배나 더 발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업병을 예방하기 위한 다양한 개선방안은 큰 비용이라는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 현장에 반영되지 못하고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다. 그럴수록 앉을 권리 보장과 같이 비용이 거의 들지 않으면서도 장기적인 효과가 있는 개선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들의 지속적인 권리요구 및 고용노동부의 철저한 관리 감독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새내기' 노안활동가의 좌충우돌기 / 2019.07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새내기' 노안활동가의 좌충우돌기

 

 

 

박기형 / 상임활동가 

 

 

누군가 돈보다 건강과 생명이 우선이라고 생각해 우리 사업장을 안전하게 만들어보겠다고 나선다. 하지만 노동안전보건활동의 벽은 높아 보인다. 근골격계유해요인조사, 위험성 평가, 작업환경측정 등 이름도 생소한 조사 사업들, 산업안전보건위원회와 같은 여러 회의, 용어부터 어려운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재보상보험법 등등. 이 모두를 알아야만 노안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막막할 따름이다. 다치고 아픈 사람이 있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문제를 찾고 해결해야 할지 몰라 답답하다. 제대로 해보고 싶어도, 주변에서 지지를 받기는커녕 너도 모르는 걸 어떻게 하냐고 구박받기도 한다. 남을 설득하기 위해선 뭐라도 설명해야 하는데 나조차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골머리를 싸매다 몇 번이나 좌절하고 나면, 이젠 공상처리나 잘 해주자고, 조사는 외부 전문 업체에 맡겨서 구색만 맞추면 되지 않냐고 나를 다독이게 된다. 이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저도 솔직히 노안활동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시작했어요. 노조를 만들면서 간부를 뽑는데, 얼떨결에 직책을 맡게 되었죠. 노안은 별로 하는 일이 없다고 들었는데, 막상 업무를 해보니 할 일이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몇 번 포기할까 고민 많이 했어요(웃음).”

현대위아안산지회는 2017년 11월 18일 설립된 신생 노조다. 조광옥 노안부장도 지난 1년 8개월여의 기간 동안 노안을 담당한 새내기(?) 노안활동가다. 참 시작하기 어려운 노안활동. 높아보이기만 하는 벽을 그는 어떻게 뛰어넘어보려 했을까? 지난 6월 21일 안산에서 그를 만났다.

 

현대위아아산지회 조광욱 노안부장

 

노안활동가 양성학교, 빡센(?) 교육의 힘

“노안활동이 할 일이 많긴 하죠. 그렇지만 어렵고 힘들다고 느끼는 건,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활동 내용 전반과 구체적인 사항을 파악하려면, 정보가 필요한데 그걸 구하기가 어려운 거죠. 무슨 자료를 참고해야 할지, 인터넷에서 어떻게 찾아봐야할지 모르는 거죠. 정보만 구할 수 있어도 머리 싸매고 공부해서라도 해볼 수 있을 텐데 말이죠.”


대개 노안활동을 시작하면,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어디서 정보를 찾아야 할지 알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신생 노조라면, 조합 내에서 도움을 얻을 사람도 거의 없다. 조광옥 노안부장 또한 조합에서 본인이 노안부장을 처음 역임한 만큼, 막
막함이 컸다고 토로했다.


“그런데 금속노조 노안활동가 양성학교에서 많이 달라졌죠. 머리털 나고 그런 교육은 처음 받아봤어요. 노안활동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가, 거기 가서 빡세게(?) 배웠죠. 매월 1박 2일 일정으로 6회 차 교육을 받았어요. 단체협약 체결부터 각종 조사방법들, 사고 시 대응체계까지 노안활동 전반에 대해 다뤘죠. 물론 다 소화할 순 없었죠. 자료집도 받아왔지만, 활동하면서 다시 들춰보지도 못했어요. 그렇지만 활동하면서 교육 내용이 반복 학습되더라고요. 그러다 어느 날 산보위를 열었는데, 자기도 모르게 배운 대로 노안 사업에 대해 요구하고 회사에 반박도 하게 되더라고요. 그때부터 자신감을 얻었죠.”

2007년 금속노조가 처음으로 실시한 노동안전보건 실태조사 결과에서 당시 조합원들은 비정규 영세지회들에서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증진하기 위해선 활동가 양성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요구했었다. 이에 금속노조는 2008년 산별교섭을 통해 100인 이하 사업장의 노동안전보건 활동가들에게 월 16시간의 활동시간을 보장하는 합의를 이뤄냈다. 각 사업장에서 노안 활동을 시작하거나 더 잘 해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 위한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조광옥 노안부장의 경험은 체계적인 교육, 조직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활동가를 양성하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우리에게 중요한 일, 할 수 있는 일부터 차근차근

자동차 모듈을 생산하는 현대위아 안산공장의 노동자들은 생산라인에서 장시간 서서 일한다. 이 때문에 근골격계질환이 흔히 발생한다. 조합원들의 부담을 낮추고자, 조광옥 노안부장은 생산라인 변경, 휴식시간 보장 등의 조치를 검토하다, 우선 의자 놓기 사업부터 시작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처음엔 노안사업이 잘 이뤄지는 기존 사업장들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욕심이 막 나니 조급했죠. 뱁새가 황새 쫓아가는 격이었어요. 하지만 차츰 깨달았죠. 거창한 일부터 하기보다는 우리 조합의 상황과 조건에 맞는 것부터 우선순위를 두고 차근히 해가야 한다는 것을요. 조합원들에게 가장 급한 것부터 또는 조합이 할 수 있는 것부터 시도해보기로 했어요. 2018년 초에 산보위를 설치 및 운영해야 한다고 회사에 요청했어요. 

그런데 회사는 계속 조합의 요구를 묵살했습니다. 그러다 안전교육 미실시로 회사를 고발했고, 그걸 계기로 회사에서 조합의 요구를 받아들여 그해 6월쯤에 처음 산보위를 시작하게 되었죠. 그때부터 의자 비치 사업을 제안했어요. 하지만 마음대로 되진 않더라고요. 회사는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업장 기초질서를 운운하거나 앉았다섰다를 반복하면 허리에 더 부담된다는 핑계를 대면서, 의자를 비치하지 않았어요. 결국 지회에서 사서 놓기로 했어요. 이전에는 바닥에 박스를 깔고 쉬었거든요. 그때와 비교하면, 편하게 쉴 수 있게 되었다고 조합원들이 만족하고 있어요. 점차 의자 비치 늘리고 휴게실도 제대로 확보해야죠.”

 

2018년 파업 당시 집회 모습. 조합원들의 열기가 뜨거웠다. 


실천은 곧 끊임없는 연습이다


이 외에도 조광옥 노안부장은 교육을 통해서 알게 된 것, 다른 노안활동가가 알려준 것을 하나씩 실천해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노안 활동에 대해 알게 되니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시도했다가, 노동청에 욕도 먹고 사측과 다투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런 우여곡절을 통해 점차 활동도 익숙해지고 자신만의 노하우도 쌓아갈 수 있었다.


“작업중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눈이 번쩍 뜨이는 거에요. 위험을 우리가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음을 깨달은 거죠. 그런데 문제는 말만 하면, 다 작업중지가 되는 줄 알았던 거예요(웃음). 노조 설립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지게차 밧데리가 노후되어 황산 냄새가 퍼져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힘들어했어요. 그래서 사장한테 가서 지게차 작업을 중지하겠다고 말했죠. 그걸로 사측과 갈등이 있었지만, 이러저러해서 다행히 지게차 밧데리 교체를 하게 되었죠.


작업중지뿐만 아니라 1588-3088 위험상황 신고 전화도 해봤죠. 그때 전화로 별 얘기 다 들었어요. 진짜 신고 전화 받는 곳 맞나 싶었다니까요. 어느 날 야간작업하는데,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거예요. 기계설비 문제 때문이었죠. 작업자들 여럿에게 구토 증상이 나타났어요. 위험하다고 판단해서, 배운 대로 1588-3088에 전화했죠. 그런데 도로 이런  갖고 전화했냐고 퉁명스럽게 얘기하더라고요.

기분도 상하고 제대로 신고받지 않는 것 같아 항의 하기로 마음먹었죠. 그러다 잠깐 후에 지청의 과장한테 전화가 왔어요. 지금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다음날 나가겠다고 하더라고요. 다음 날 아침에 2~3명 근로감독관이 나왔어요. 사측과 협의해서 기계설비 점검해서 기름이 누출되었을 때 조치방안을 마련하고, 해당 설비에 MSDS를 게시하기로 했죠.”


공장의 담을 넘은 노안활동가 네트워크


조광옥 노안부장은 한 문제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며 배우고, 좌충우돌하며 배운 것을 써먹어 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사업장에서 노안활동가들이 고군분투하다 보니 여러모로 힘이 들 때도 많았다. 이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것이 다른 노안 활동가들의 조언과 도움이었다. 근골격계질환으로 산재신청을 하려고 할 때, 다른 지회의 노안활동가들이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 자기 힘만으론 해내지 못했을 것이라며, 공장의 담을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지회 노안활동가나 안산노동안전센터의 도움이 컸죠. 최근에 근골격계질환으로 조합원들이 병원에 진단받으러 갈 때, 업무관련성을 제대로 입증받기 위해서 간호사이기도 한 조합의 노안차장과 동행하도록 했어요. 진단에서부터 산재신청의 성패가 갈릴 수 있다는 사실을 다른 노안활동가에게 배웠거든요. 노안담당자의 동행 조치도 다른 지회를 참고한 것이에요. 앞으로 건강검진기관과 보건관리자도 조합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변경하고자 산보위에서 논의 중입니다. 어느 기관이 좋은지 다른 노안활동가에게 조언받아보려 해요.”


이렇게 노안활동의 경험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장이 중요하다. 누군가 벽에 부딪혔을 때, 함께 벽을 무너뜨리거나 벽을 넘을 수 있도록 힘을 보태줄 수 있는 이들이 있어야 한다. 조광옥 노안 부장은 금속노조 노안활동가 양성학교에서 배운 지식만큼 값진 것은 바로 노안활동가 간의 네트워크라고 말했다. 노안활동가들끼리 모인 SNS 소통창구에서 여러 사업장의 노안활동 소식 및 정보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험성 평가를 예로 들면, 각 사업장의 결과보고서나 조사 준비 과정에 대해 공유함으로써, 신생 사업장에서도 위험성 평가를 스스로 수행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다.


노안활동, 어렵지 않아요~~


“사업장의 담을 넘어서서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배울 수 있다면, 노안활동의 벽이 많이 낮아질 것 같아요. 건강과 생명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어딨겠어요. 모두가 안전한 일터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도록,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더 늘어나길 바랍니다. 저도 아직 배우는 단계지만, 나중에는 다른 활동가들에게도 저의 경험을 나눠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현장의 목소리] 공장 담벼락을 넘어, 노동자와 지역 주민의안전한 삶과 일터를 만들자 / 2019.07

[현장의 목소리] 

 

 

공장 담벼락을 넘어, 노동자와 지역 주민의 안전한 삶과 일터를 만들자

 

 

나래 / 상임활동가 

 

 

2014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발생한 화학물질 사고만 15건. 전부 충북에서 발생한 사고의 건수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5월 13일 제천시 한 업체에서 화학물질 폭발사고가 터져 3명이 숨지기도 했다. 사실 이런 사고는 충북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고용노동부의 ‘화학물질 취급 사업장 산업재해 발생 현황’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 7월까지 4년 7개월간 화학물질 취급 사업장에서 화학물질에 의한 폭발·파열·화재나 화학물질 누출·접촉으로 사망한 노동자가 총 100명에 이른다. 부상자도 2천169명에 달한다. 유해 위험물을 취급하지만 안전교육을 시행하지 않은 사업장은 총 1천228곳에 달한다.


과연 대한민국에 안전한 곳이 있는지조차 의문인 현실에서 ‘자본의 탐욕으로부터 안전한 삶과 일터!’를 핵심 키워드로 삼는 충북노동자시민회의가 작년 9월에 출범했다. 유해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떤 고민과 활동을 이어나고 있는지 소집권자이기도 한 조남덕 씨를 지난 6월 25일 화요일 청주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충북 노동자시민회의 소집권자,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콘티넨탈 지부장 조남덕

 

“저는 자동차 계기판을 만드는 노동자입니다. 회사에서 근무한 지는 23년 정도 됐습니다. 한 곳에서만요. 그리고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콘티넨탈지회장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충북노동자시민회의(이하 노동자시민회의)는 유튜브에 한 청년 노동자가 나와 박근혜가 퇴진하면 나의 삶이 바뀔 수 있는 것이냐고 묻는 동영상이 주요한 출발점이었습니다. 박근혜 퇴진 이후에 촛불의 힘이 실제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일터가 바뀌는 운동으로 발전하고, 노동자와 시민이 그 운동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고민이 있었죠. 그쯤 충북지역의 다이옥신 소각장 문제, 라돈침대 문제가 부각됐던 때이기도 합니다.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통해 자신의 일터를 바꾸고, 시민사회단체는 지역사회의 개입을 통해 활동하는데 그 과정에 노동이 배제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있었습니다. 지역과 노동이 어떻게 만날 것인가 고심했죠. 동시에 유해화학물질을 빼놓을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지역의 단체와 노동조합이 만나 간담회를 진행했고, 작년 9월 창립총회를 열었습니다. 이후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공부도 하고, 운영위원회 회의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역에서 노동과 안전, 건강을 키워드로 삼는 조직이 생겨나면서 주변에서 어떤 반응이 있었는지 물었다.

“다들 처음에는, 특히 노동조합의 경우 ‘뭐지?’ 이런 분위기가 있었죠. 노동조합이라고 하면 보통 정해진 A, B, C가 있는데 노동조합이 유해물질, 환경문제를 갖고 뭔가 해보자고 하니깐 취지는 공감하나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지역에서 노동자들이 경제적 이익 투쟁 말고 환경 문제를 두고 지역사회에서 목소리를 낸 건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선전전을 하며 확인한 것은 반응을 적극적으로 주시는 분의 경우엔 내용에 공감하며, 노동자들과 이 문제에 나서서 얘기할 필요가 있다고 연락을 주기도 하셨고요. 충북이 워낙 대기질 문제가 심각하기도 하거든요. 더불어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을 넘어서는 제기를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도 있었습니다.”


자신이 일하는 일터의 담벼락을 뛰어넘는 것. 그것이 노동자시민회의의 출발점이자 도전이기도 했다. 쉽지 않은 환경에서도 사람들은 모여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일 계속되는 사고 소식에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제천 사고와 관련해 관심이 많습니다. 활동을 아직 왕성하게 하는 단계는 아니지만, 이 문제와 관련해서 카드 뉴스도 제작하고, 기자회견도 열었어요. 지역사회와 노동자들에게 이 문제를 알려내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거죠. 또 다른 활동은 대기오염물질 조작사건과 관련해서 노동조합도 찾아가고, 간담회도 하고 공동 기자회견도 열었어요. 사업장 전면 실태 재조사 촉구 기자회견이었죠. 이때 많은 기자가 찾아와서 솔직히 놀라기도 했어요. 지역사회의 노동자들이 공장 밖을 나와 환경문제, 유해물질문제에 대해 함께 목소리를 냈기 때문에 이만큼의 관심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노동자시민회의는 본인 스스로 어떤 역할을 부여하고 있을까.


“사실 사고가 나면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알기 쉽지 않아요. 사고가 난 현장에 가까이 사는 사람들도 이것이 나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럴 때 ‘당신 삶에 어떤 영향이 있어요.’라고 해석해주고, 그것이 왜 일어났는지, 어떤 것들이 차단되어야 우리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지 계속 설명해주는 것, 그리고 각 일터와 내 일상이 연결되어 있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 저희의 역할이기도 하죠. 그런 활동이 우리의 1차
목표입니다.


제천 사고의 경우에도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굉장히 한정될 수밖에 없어요. 정보가 워낙 차단되어 있거든요. 그런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정부와 기업에 우리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줄 필요가 있죠. 노동자시민회의가 확인한 것은 그동안 노동조합이 자기 사업장, 자기 안전문제가 아니고서는 지역과 함께 하겠다는 고민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점이에요. 그것을 앞으로 해나가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고, 기자회견을 통해 지역사회가 관심을 갖게 됐다는 걸 본 거죠. 이런 것들이 계속 필요합니다. 또한 이런 것들이 충북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연결 되어야 하고요.”

 

노동자시민회의 회원들이 지역에서 거리 선전전을 진행하는 모습. 이들에게 거리에서 시민과 노동자를 만나는 것은 중요한 활동 중 하나다.


가장 최근 이슈가 됐던 제천 화학폭발사고의 경우에도 노동자시민회의 가 갖는 주요한 문제의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화학폭발사고가 난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사고 원인조차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노동자시민회의를 포함한 지역 노동계가 기자회견을 통해 노동자와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진상조사 및 대책 마련을 촉구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사고가 난 공장은 유해화학물질을 일상적으로 취급하는 화학업체이다. 그런데도 사고가 발생한 것은 관리·감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동안 여러 번의 위험 신호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사고를 겪은 후 노동자 시민회의 역시 고민이 깊어졌다.

“저희가 평상시 생각했던 것보다 위험에 정말 그대로 노출됐다는 것이 확인됐죠. 위험을 평소에 관리·감독 하지 못했고, 지자체 역시 현황 파악도 하지 못한 것이죠. 그런 상황 자체에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동자시민회의가 계속 주장한 것은 사업장에서 유해화학물질이 얼마나 사용되고 있고, 관리되고 있는지 지역과 일터의 노동자들이 알 수 있도록 언제든 자료를 요구하고 받아볼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라는 것이었어요. 어떤 대책위를 꾸린다고 하더라도 피해 보상 얼마로 끝날 뿐이고, 제도적 변화는 없을 거란 생각이 이번 사례를 통해 재확인된 거죠. 사실 지역 명예산업안전감독관 같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참여할 수 있는 제도도 있거든요. 이런 것들을 어떻게 구축해 나갈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지난 2016년 7월 26일, 조남덕 씨 본인 역시 화학물질 유출 사고를 직접 경험한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연일 반복되는 화학물질 사고가 남의 일 같지 않다. 공단 내에서 ‘티오비스’라는 화학물질 2개, 드럼 300리터가 유출 됐는데 그 자체로 유해물질은 아니지만, 유해물질인 황화수소가 생성될 수 있어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물질이기도 하다. 반경 300미터 지역엔 대피령이 내려졌다. 사고 공장과 콘티넨탈의 지도상 직선거리는 300미터였다. 하지만 당시 콘티넨탈엔 대피령이 내려지지 않았다. 게다가 콘티넨탈 직원들은 가스 누출사고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듣지 못했다. 결국 당시 지회장이었던 조남덕 씨는 조합원들을 대피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용자 측은 조남덕 씨를 사업장을 무단으로 이탈했고, 회사의 작업 복귀 요청에 불응했단 이유로 징계위에 회부했다. 현재 대법원에 가 있는 상태다.


“최근 사고를 보면 우리 사업장 상황과 겹쳐 보여요. 일하는 공간에서 엄밀히 말하면 노동자에게 위험을 거부할 권리가 없어요. 특히 이번 산안법 개정을 보며 더욱 걱정되는 상황이죠. 자꾸만 노동자들 스스로 위축시키고,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간다면 어느 누가 자신과 일터의 안전을 위해 권리를 행사하려고 할까요?”


일터에서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위험한 작업을 거부하거나 피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 더불어 알권리 역시 제대로 보장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권리는 아래로부터, 위험 노출이 쉽게 될 수 있는 곳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란 곳이 길 하나만 건너면 바로 SK하이닉스 공단이 있어요. 근처에 5천 세대가 넘는 주거지역이 있고요. 실제 비오거나 날씨가 흐리면 냄새가 많이 나요. 신고해도 지자체는 알았다고만 하고요. 해당 주민들은 이상한 걸 알아요. 그런데 답답한 게 냄새로 아는 것 외에도 어떤 것이 위험한지 알아야 하는데 알 수 있는 정보가 없어요. 앞으로 공장이 더 들어올 텐데, 주민이나 노동자가 얼마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 알 수가 없죠. 무엇보다 주민과 노동자들에게 정보를 제대로 알려주고,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제공해줘야 해요.


노동자시민회의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은 일터가 안전해야 지역 시민의 안전도 지킬 수 있다는 거예요. 노조가 있는 사업장보다 노조가 없는 곳,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곳 등 여기서 노동자시민회의가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봅니다. 안전을 지키는 주체는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 노동자, 지역 주민들이거든요.”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목숨 걸고 쪽팔리지 않게 지역신문 만들게요" / 2019.07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목숨 걸고 쪽팔리지 않게 지역신문 만들게요" 

 

 

정경희 / 선전위원

 

 

사회를 움직이는 다섯 권력 중 하나라 불리는 언론의 사회적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인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질문을 던지는 기자의 모습은 멋지게 비춰지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책임 있는 일을 하는 그들은 어떤 고단함과 즐거움이 있을지 궁금했다. 늘 인터뷰를 하는 입장이었는데 받아보긴 처음이라며 쑥스러워하는 화성지역신문 ‘화성저널’ 윤미 기자를 지난 6월 11일 화성 어느 호숫가 근처 커피숍에서 만났다.

초중고 동안 책 보면서 밤샘하기가 부지기수였고, 활자중독증에 가까울 정도로 책을 많이 봤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글쓰기는 자연스럽게 따라가고, 학교 다닐 때 글을 곧잘 쓴다는 얘기를 듣기도 한 그녀가 작가보다 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대학생활 때 학생기자를 하기도 했었고, 인도 여행 3개월 동안 현지에서 글을 써잡지에 기고한 경험이 있어요. 그러면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경험을 글로 작업하는 과정에 매력을 느껴 기자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일간지나 공중파 방송에 입사하려면 보는 1차 서류전형, 2차 서술시험, 3차 면접시험을 일컬어 언론고시라고 부르는데 이것을 준비하다가 굳이 어려운 시험을 준비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전문지 만드는 곳에 들어가 기자생활을 시작했어요. 신문사는 나름대로 원하는 글의 틀이 있으니 첫 직장 수습기자 때 엄청 혼나고 많이 깨졌죠. 글쓰기가 좋아서 이 직업을 한 것 같지는 않아요.”

 

윤미 기자


언론자유 수호, 공정보도, 품위유지, 정당한 정보수집, 올바른 정보사용, 사생활 보호, 취재원 보호, 오보의 정정, 갈등·차별 조장금지, 광고·판매활동의 제한 내용이 기자윤리강령이지만, 7년차에 접어드는 기자생활을 하면서 생긴 나름의 원칙이 있다면 소개를 부탁했는데, 피할 수 없는 현실적 고민도 털어놨다.

“기본적으로 언론사나 기자로서 하면 안될 몇 가지가 있거든요. 그런 것이 원칙인데 솔직히 기사 쓰고, 신문 만드는 사이클 돌아가는 게 바빠서 깊이는 생각 못 하는 게 사실이지만, 적어도 내 이름을 걸고 만드는 신문이고 기사잖아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목숨 걸고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지면이 가지고 있는 힘이 있고, 없어지지 않는 기록물이기 때문에 가치를 갖고 있거든요.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내 이름이 박힌 결과물이 있는데 부끄럽지 않을 정도가 되려면 내가 하루하루를 좀 더 치열하고 더 고민해야 하는 것이 힘들죠. 


그러다 보면 신문사의 기자가 부족한 구조에서 소진이 돼요. 집안일도 하고 애들도 케어해야 하는데 이쪽에 너무 쏠려있면 집안일을 못하게 돼요. 그래서 균형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가가 가장 큰 고민이에요. 언론사라는 게 공익을 위해 힘쓰지만, 공기업이 아닌 사기업이거든요. 운영자 입장에서는 광고도 받아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기사를 쓰는 공공의 역할은 자본과 권력에서 독립적이어야만 하죠. 그래서 항상 괴리가 있고,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평행선에서 기자도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기레기’라는 표현을 제 앞에서 쓰는 분도 계시고, 현실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도 있는데 그런 얘기를 들으면 상당히 마음이 아프죠.”


일간지 기자는 보통 조간신문을 체크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윤미 기자가 발행하는 신문은 주간지라서 호흡이 긴 기사를 쓰게 된다고 한다. 일과가 궁금했다.


“일간지와는 다르게 주간지라서 기획기사나 아이템 취재기사 같은 호흡이 긴 기사를 쓰죠. 월요일은 어떤 취재를 할지 아이템 회의를 해요. 회사에 도착하면 이메일로 온 보도자료, 화성시 행사와 시장 스케줄을 확인해요. 취재원을 만나서 정보를 듣고, 취재처는 평균 하루 3명 이상 만나요. 오전에 만나고 같이 점심을 먹거나 오후에 한두 군데 취재처를 돌면서 흐름을 듣고, 어떤 취재를 하면 좋을지를 기획 하죠. 회사에 돌아가서 취재정보 보고를 하죠. 돌아다니면서 나왔던 정보나 취재원에게 들은 이슈는 회사에 보고하고, 취재가 완료됐으면 기사를 웹하드에 올려서 편집 기자한테 줘야 해요. 외근이 잦다 보니 근무시간은 자유로운 편이에요.”


주간신문 특성상 마감 날 기사를 몰아 쓰는 경향이 있어서 기사 마감할 때가 제일 힘들다고 한다.


“기사의 특성상 취재를 한 명만 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사안이 있으면 거기에 관계되는 많은 사람을 취재하면 할수록 기사의 팩트나 신뢰도가 높아져요. 그런데 각각의 사람마다 스케줄이 있기 때문에 일정 잡기가 힘들기도 해요. 사안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면 주간지는 마감 날까지 취재해서 정보를 모은 다음 통합해서 기사를 쓰게 되니까 자꾸 늦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마감 날 닥쳐 기사를 쓰게 되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기사도 써야 하고 편집·교열도 봐야 하니 여러 업무가 하루 이틀 동안에 몰리니까 예민해지고 피를 말리는 것 같아서 항상 신문 마감하고 나면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머리를 풀로 가동하고 오랜 시간 집중을 해야 하고, 오탈자는 교열팀에서 잡아줘야 하는데 지역신문사는 그것을 할 수 있는 인력이 없잖아요. 그래서 1인 다 역을 해야 하는 거죠. 끝나고 나면 너무 피곤해요.”

마감이 끝나고 나면 소진이 클 것 같은 데, 어떻게 만회하는지, 평상시 스트레스 해소방법을 물었는데 선 뜻 술을 주로 먹는다고 했다. 마시고 나면 더 피곤한데도 말이다.


“전 애주가입니다. 마감하고 나면 동료 기자와 먹기도 하고 애인과 마시기도 해요. 편집국 동료들과 마시면 급하게 빨리 먹으니까 빨리 취해서 집에 보내어지죠(웃음). 요즘은 나이 좀 먹었다고 술 마신 다음 날 컨디션이 상당히 다르더라고요. 사실 운동을 좋아해서 수영, 달리기, 걷기를 주로 하는데 일주일에 3번 이상은 시간을 내려고 노력해요. 이것의 궁극적인 목표는 술을 먹기 위해서예요(웃음).


업무 특성상 사람을 많이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듣죠. 머리가 복잡하고 심신이 피곤할 때가 와요. 그럴 때 밖에 나가서 집 근처 천변 코스를 한 시간 정도 걷거나 뛰어요. 우울하고 불안했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면서 어떤 게 문제이고, 어떤 걸 가지치기 해야 하는지 알게 되죠. 마음먹은 것과 행동이 같이 가진 않아서 문제지만.”

기사가 사회적으로 변화를 만들어냈을 때, 문제점을 지적한 기사로 인해서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됐을 때, 보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책임이나 부담을 느낄 때도 있다고 한다. 덧붙여 중립에 대한 도덕적 회의도 가지고 있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 대한 비위라든가 고발성 기사를 통해 결국 그 사람이 해직이 나 해고를 당해 내부적으로 청소(?)됐을 때 보람도 느끼지만, 책임감도 느끼죠. 인간적으로 미안하기도 하고, 저 사람도 하나의 가장인데 직장을 잃게 만들지는 않았나 하는 부담감도 있어요. 기자나 언론은 치우치지 않고, 편파적이지 않게 중립을 지향하잖아요. 그런데 우리 사회구조가 그렇게 공평하지 않잖아요. 갑을 관계처럼 힘이 쏠려있다는 거죠. 정치도 그렇고. 그러면 지역신문 기자로서 약자의 목소리를 듣고, 주목해서 기사를 쓰지 않으면 그들의 목소리가 묻히는데 어디에 중점을 맞춰야 하는가가 항상 고민이에요.


예를 들어, 화성청소년상담사들이 계약해지 집회를 할 때 현장에 취재하러 가면 기자들이 거의 없어요. 현장에 많이 안 나와요. 그냥 보도자료 받고, 사진 받아서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말이죠. 그럴 때 가슴이 아파요. 나라도 가서 저 사람들의 목소리를 현장성 있게 전달하고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포털뉴스에 노출되지 않아 영향력이나 전파력이 약한 플랫폼을 가진 지역신문의 한계를 느낄 때도 있지만, 지역 언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윤 기자는 화성지역 언론이 발전하기 위한 방향을 내놓기도 했다.


“화성지역은 인구 유입 속도(곧 100만 도시를 앞두고 있다)나 산업의 변화는 빠른데, 그에 반해 문제나 지역 사안이 있을 때 시민단체와 지역 언론이 담론화하고 토론회를 여는 등 같이 나아가는 것이 아직 활발하지 않은 것 같아요. 서울의 1.4배로 넓은 화성 전체를 아우르는 시민 네트워킹이나 점점이 활동하는 조직이 얽혀서 모이는 장이 약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민 개개인의 정치적 감수성이나 시민운동에 대한 감수성 또한 아직은 부족하죠. 이것을 조직하고 장을 만들어가는 역할을 지역 언론이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화성시 인구는 6월 기준 78만 이에요. 이 정도 되면 활발히 활동하는 성격이 다른 시민단체가 다섯 개 이상은 돼야 하지 않은가. 그래서 전선이 구축되고 시민의 안건이나 거버넌스 의제가 행정과 정치권과 활발하게 핑퐁 역할을 하면서 건강하게 다양한 색깔을 내면서 지역 여론을 형성하는 바탕이 마련돼야 한다고 보는 거죠.”


언론사 운영에서 재정 독립을 할 수 있는 방안으로 광고보다 독자 구독료로 움직이는 지역신문이 가장 건강하고 이상
적이라 말하는 그녀는 마지막으로 일터 독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남겼다.


“내가 사는 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고 지역에서도 활동을 꾸려가면서 지역 언론이나 정치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지방자치·지방분권이 강해졌다는 것은 지자체장의 권력이나 예산 권한이 점점 커진다는 얘기거든요. 이 사람들이 일을 제대로 하는가를 볼 수 있는 시민이 필요해요. 자신이 존재하는 위치에서 좋은 변화를 일으키려면 할 수 있는 게 뭔지 고민해보고, 생각에만 머물지 않고 행동으로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봐요.”

 

* 참고) 현재 윤미 기자는 화성저널을 퇴사했습니다.

 

 

[연구리포트] 유연 노동시간과 정신건강: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의 영향 미리보기 / 2019.07

[연구리포트] 

 

 

유연 노동시간과 정신건강: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의 영향 미리보기 

 

 

이혜은 /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 

 

 

1. 들어가며
올해 초,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을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하는 데 합의하였다. 노동계의 깊은 우려와 반대에 불구하고 경영계의 손을 들어준 결정으로 평가되고 있다.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를 위한 조항으로 ‘근로일간 11시간의 휴식 의무화’ 가 더해졌으나 그마저도 ‘불가피한 경우’,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 ‘합의’에 따라 무산될 수 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라는 용어 자체는 필요에 따라 근무시간을 조정하는 제도이니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제도로 느껴질 수도 있다. 탄력근로를 찬성하는 경영계에서는 “사용자는 생산성을 높이고 경영 환경을 개선할 수 있으며, 근로자도 근무시간이 줄고 휴일이 늘어나는 등 일과 생활의 조화를 꾀할 수 있다”고 포장한다. 과연 탄력근로 확대가 ‘주당 최대근로시간 52시간’의 효과를 무력화시키지 않고 제도를 안착화시키는 방안이 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보다 탄력근로의 단위기간이 훨씬 긴 선진국들 사례 (물론 그들의 전체 노동시간은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 없이 짧기에 단위기간 만의 비교는 의미가 없다) 가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으나 기존의 유럽 연구에서도 유연노동시간에 대
한 우려를 찾아볼 수 있다. 2000년 유럽근로환경조사의 응답자 21,505명에 대해 분석한 연구01에 의하면 유연한 노동시간을 일하는 경우 (하루 노동시간이 매일 같지 않거나, 매주 근무일수가 일정하지 않거나, 하루 중 일하는 시간대가 일정하지 않은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고 호소하는 비율이 건강문제에 따라 1~12% 가량 높았다. 요통, 두통, 불안, 스트레스, 사고 등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서 건강 상태의 유의한 차이를 보였다. 당시 조사 대상이었던 유럽 국가들의 노동시간은 연간 1400~1800 시간 정도로 약 2,000시간인 우리나라보다 훨씬 짧은 상태였음에도 그렇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불과 얼마 전까지 주당 최대 노동시간은 68시간까지도 가능했기에 사실상 굳이 탄력근로제를 시행하지 않더라도 합법적인 연장근로를 통해 많은 노동자들이 ‘유연하게’ 일했다. 따라서 기존의 데이터를 이용해 탄
력근로제 확대가 가져올 영향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취업자를 대표하는 근로환경조사의 대규모 데이터를 이용하여 유연한 노동시간을 일하는 노동자들의 특성과 정신건강과의 연관성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2. 연구 대상과 방법
연구에 사용한 데이터는 2017년 근로환경조사 자료로 우리나라 전체 경제활동인구를 대표하는 데이터이다. 연구대상은 시간제 노동자를 제외한 전일제 임금근로자로 한정하였다. 그 외에도 불안정 고용과 시간선택제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주당 근무시간 30시간 이하의 단시간 노동자와 근무시간대는 일정치 않지만 탄력근로제와는 별개의 비전형노동시간인 교대근무자 역시 분석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주요 분석 항목의 결측치가 있는 경우는 분석에서 제외되었다. 총 분석대상자는 대표성을 반영하는 가중치를 적용했을 때 28,345명이었다.


유연 노동시간은 1) 매일 노동시간의 길이가 같다 2) 매주 근무일수가 같다 3) 매주 근무시간대가 같다 의 3가지 문항에 하나라도 ‘아니오’로 응답한 경우로 정의하였고 모두 ‘예’로 대답한 경우 비유연 노동시간으로 간주하였다. 주요 결과변수인 우울증상과 불안증상은 지난 12개월간 경험한 적 있다고 응답한 경우로 정의하였다. 모든 빈도 분석과 평균 계산, 로지스틱회귀분석은 가중치를 적용하여 수행하였다.


3. 연구결과

3.1 유연노동시간 노동자는 어떤 특성을 지니는가


전체 분석대상 28,345명 중 5066명 (17.9%)이 유연 노동시간에 해당하였다. 유연노동시간 노동자와 비유연 노동시간 노동자의 인구학적, 직업적 특성 분포는 다음 표 1에 비교하였다. 비유연 노동시간 군에 비해, 유연 노동시간 노동자들은 남성의 비율이 더 높았다. 사무종사자의 비율이 다소 낮고 대신 판매종사자, 기능원과 장치/기계 조작 종사자 등 제조업 생산직에 해당하는 직업군의 비율이 높았다. 비유연 노동시간 노동자들의 경우, 법정노동시간인 주 40시간 이하인 경우가 약 60%를 차지하였으나, 유연노동시간 노동자들의 경우, 약 40%로 훨씬 낮은 비율을 보여 유연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길었다. 월평균 소득은 유연 노동시간 노동자들이 조금 높았는데, 유연 노동시간의 경우, 장시간 노동과 비전형 노동시간 (야간, 휴일 등)에 따른 연장근로수당이 소득을 높였을 것으로 보이며, 이는 탄력근로제의 확대 시 양상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

 

노동조건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는 평균 주당노동시간으로 층화하여 유연노동시간 여부에 따라 노동시간 관련 노동조건을 비교해보았다. 주당 노동시간을 31~40시간, 41~52시간, 53시간 초과로 나눠서 비교해보면, 모든 노
동시간 분류에서 유연노동시간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더 나쁜 결과를 보인 항목이 많았다. 같은 노동시간 일하는 경우, ‘유연하게’ 일하는 노동자는 밤 근무, 저녁 근무, 토요일 근무, 하루 10시간 이상 근무한 날짜, 11시간 미만 휴식하고 다시 일한 경험이 ‘유연하지 않게’ 일하는 노동자보다 많은 것이다. 이미 주 평균 52시간 한계를 지키고 있어 특히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주당 노동시간 41~52시간 그룹의 경우, 유연노동시간 군이 밤 근무 횟수, 저녁 근무 횟수, 하루에 10시간 이상 근무하는 횟수가 모두 많았고, 특히 하루 10시간 이상 근무하는 횟수는 2배 가량, 11시간 이상 휴식하지 못한 경험은 2.5배가량 높았다.


3.2 유연노동시간과 정신건강

그림1 주당 노동시간과 유연노동시간 여부에 따른 우울/불안 증상
*성별, 연령, 직업군, 업종, 소득을 보정한 결과임


노동시간과 유연 노동시간 여부에 따른 우울증상과 불안증상의 위험은 다음 그림 1과 같다. 법정노동시간인 주당 노동시간 31~40시간 이면서 비유연 노동시간인 노동자를 비교군으로 했을 때, 노동시간이 길고 유연노동을 하는 경우에 우울증상 및 불안증상의 위험이 컸다. 특히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52시간 이하인 경우에도 유연노동시간 노동자의 우울증상은 비교군의 3.37배, 불안증상은 3.78배로 큰 차이를 보였다. 이는 오히려 주당 평균 53시간 이상 노동하는 비유연 노동시간 노동자의 위험도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4. 마치며
본 연구 결과는 하루 근무시간의 길이나 주당 근무일수가 불규칙한 경우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52시간 이하인 경우라도 야간 근무, 휴일 근무, 하루 장시간 노동 등 나쁜 노동조건이 동반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우울증상과 불안증상의 위험이 3배 이상 매우 높아짐을 보여주었다. 주당 노동시간 52시간 상한제로 조금이라도 노동자 건강에 긍정적 효과를 원한다면, 성급한 탄력근로제의 확대는 막아야 할 것이다.

 

* 각주

01 Costa G, Akerstedt T, Nachreiner F, Baltieri F, Carvalhais J, Folkard S, Dresen MF, Gadbois C, Gartner J, Sukalo HG, Härmä M, Kandolin I, Sartori S, Silvério J.Flexible working hours, health, and well-being in Europe: some considerations from a SALTSA project. Chronobiol Int. 2004;21(6):831-44.

특집4. 일터괴롭힘 없는 일터를 위한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과제 / 2019.07

[일터괴롭힘 없는 평등한 일터 만들기④] 

 

 

일터괴롭힘 없는 일터를 위한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과제

 

 

최민 / 상임활동가 

 

 

오는 7월 16일부터 일터괴롭힘 예방을 위한 조항이 포함된 근로기준법이 시행된다. 이 날부터는 취업규칙에도 일터괴롭힘 예방을 위한 조치가 포함돼야 한다. 일터괴롭힘이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한국사회에서 회자된 것이 몇 년 되지 않았다
는 점을 고려하면 큰 진전이지만, 누구나 ‘일터괴롭힘’ 문제가 법이 도입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없으리라는 점을 잘 알 것이다. 괴롭힘이 없는 일터를 넘어, 노동자가 존중받는 일터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것은 직장 내 괴롭힘인가요?


일터괴롭힘과 관련된 교육에서 ‘반말하는 것은 직장 내 괴롭힘인가요? 일을 정말 못 하는 사람을 혼내는 것도 문제가 되나요?’와 같은 질문을 흔히 받는다. 직장내성희롱 금지법이 만들어졌을 때도 유사한 상황이었으리라 생각된다. 나도 말이나 행동을 함부로 한 직장 상사가 능글맞게 웃으며 “이것도 성희롱인가?”, “이건 아니지?”라고 던지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다. 중요한 것은 ‘성희롱 목록’에 들어가는 행동만 조심하는 것이 아니다. 내게 익숙한, 성별과 성정체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기반한 여러 말과 행동이 타인을 배제하고 고통스럽게 할 수 있다는 자각과 이에 비추어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는 성찰이다. 일터괴롭힘 문제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특정한 행동이나 행위가 일터 괴롭힘인지 아닌지가 아니다. ‘직장에 갈 때 영혼은 집에 두고 가는 거야,’ ‘이런 직장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먹고 사는 게 먼저지, 지금 자존심 챙길 때냐’ 하는 사회적 통념에 기댄 우리의 무딘 말과 행동이 누군가를 모욕하거나 배제하고, 고통스럽게 할 수 있다는 성찰이다. 나라도 그런 언행을 하지 않겠다는 책임감, 이런 문화를 바꾸어 내겠다는 고민이 중요하다.


당신은 괴롭힘 행위자? 동조자? 방관자?


예전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로부터 ‘선배에게 폭언을 들을 때, 옆에 있던 너도 동조자라고 생각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괴롭힘의 순간에 당하는 사람의 편에 서지 못 했던 것은 나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너무 부끄러운 나머 지, 오히려 ‘내가 직접 나쁜 짓을 한 건 아니잖아’, ‘그래도 나중에 위로해주지 않았나’ 하는 억울한 마음이 먼저 들기도 했다. 하룻밤 뒤척이고 나서야, 뒤늦게 정말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괴롭힘이 눈앞에서 벌어질 때, 그 순간 바로 제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괴롭힘’ 상황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감수성이 필요하다. 괴롭힘 행위자와의 관계에서 불편함이 발생하거나 본인에게도 불똥이 튈 수도 있다는 점을 감수할 용기도 필요하다. 용기와 감수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교육과 훈련, 경험을 통해 기를 수 있다. 일터괴롭힘이 단순한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직장 문화와 직장 내 관계로부터 기인하는 문제라는 점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저 멀리 있는 ‘악독한’ 상사와 ‘불쌍한’ 피해자에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나를 포함한 ‘우리 일터와 직장’의 문제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나 쉽게 동조자나 방관자가 될 수 있다. 그렇지 않도록 일터괴롭힘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고, 일터를 인권의 눈으로 돌아보게 하는 경험을 조합원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노동자를 존중하지 않는 일터에서 누가 이익을 얻나?

물론 나와 우리 스스로의 행동을 돌아보는 것과 함께 이런 살풍경한 직장 분위기로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인지,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은 누구인지 따져보는 것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에 따르면, 회사의 이익을 위한 경영 전략 차원에서 괴롭힘을 당했다는 응답이 22.4%나 됐다. 노동조합 활동이나 노동자들의 모임을 방해하기 위한 괴롭힘을 당해봤다는 답변도 4.6%나 됐다. 개인적 차원의 괴롭힘을 먼저 생각하기 쉽지만, 조직적 괴롭힘 피해도 상당한 수준이다. 직장에서 직장내 괴롭힘이 실적이나 성과 향상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4명 중 한 명은 그렇다고 답했다. 일터괴롭힘 문제가 가해자를 적발해, 처벌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보여준다. 개인간의 괴롭힘이나 갈등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사실은 과도한 업무량이나 비체계적인 조직 내 의사 결정 과정, 비합리적인 평가 체계 등의 조직 문제가 갈등을 격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일터괴롭힘 문제가 발생했을 때, 노동조합이 나서 경영진과 회사 자체의 문제를 드러내고 이런 조직적 수준에서의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도록 해야 한다.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일


일터괴롭힘 문제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목록화 하고, 여기 해당하는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요리조리 몸을 사리는 방식으로 이해되지 않도록 노동조합이 노력해야 한다.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이 일터괴롭힘을 폭넓게 이해하고 직장 내 인권과 관계 문제에 대한 감수성과 용기를 기를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취업규칙이나 직장 내 규정을 만드는 과정에서 도, 신고와 공개적인 조사 및 징계로 이어지는 단선적인 해결법 외에 피해자 혹은 신고자의 의사에 기반한 다양한 방식의 문제 해결 방법도 마련하여, ‘괴롭힘인지 아닌지’에 대한 지루하고 폭력적인 논쟁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대응 규정 혹은 노동인권 존중에 관한 규정을 만들어,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처리 방법과 원칙을 구체적으로 정해둔다. 조사 기간이나 조사위원회 구성, 일터괴롭힘 여부를 결정할 기구 등을 미리 정하며, 여기에 노동조합이 참여하도록 한다. 처리 과정에서 사생활 보호 등 피해자 혹은 신고자의 인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노동조합 내에서 일터괴롭힘 문제를 담당할 사람을 정하고, 그가 충분한 역량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 기회를 제
공해야 한다. 고용노동부도 직장내괴롭힘 예방 대응 업무를 총괄 담당하는 직원을 ‘상담원’과 같은 이름으로 둘 것을 추천하고 있다. 이 담당자가 단순히 신고를 접수하고 행정적으로 처리하는 사람에 머물지 않고, 처리 과정 전반을 인권의 관점에서 진행해 갈 수 있도록 일터괴롭힘 교육, 상담 교육, 인권교육 등을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


노동조합이 없는 우리는?


일터괴롭힘의 문제는 ‘관계’의 문제이고, 집단적인 대응이 없이는 해결이나 처리, 예방이 모두 요원하다. 노동자는 노동조합이 있을 때 더 존중받기 쉽고, 일터괴롭힘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도 있다. 하지만 일터괴롭힘으로부터 보호받는 것이 조직된 노동자에게만 가능한 권리이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일터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폭력과 무권리, 무존중 상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 자체가 노동자들의 권리를 실현하고, 노동자들이 집단적인 행동을 경험할 수 있는 과정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동료들과 함께 문제적 상사에 대해 얘기하기, 우리 직장 상황을 반영하는 일터괴롭힘 교육을 요청하기, 증거를 모으고 대책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기, 취업규칙과 법에 근거한 조사와 처리를 함께 요구해보기, 산재 신청이나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등 취할 수 있는 절차를 찾아 보기 등 시도해볼 수 있는 일은 많다. 피해자가 원인제공자로 쉽게 둔갑하는 일터괴롭힘의 특성상, 홀로 있을 때는 문제가 무엇인지 조차 뚜렷하게 알기 어렵다. 함께 이야기할 때 무엇이 문제인지 알게 되고, 해결책도 떠올려 볼 수 있다. 일터괴롭힘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온 직장갑질119와 같은 민간단체도 있고, 노동권익센터나 근로자복지센터 등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지원 조직들의 도움도 받을 수 있다. 우리의 괴로움과 고통을 ‘함께’ 얘기하는 데서 출발하자.

특집3. 사장님, 직장 내 괴롭힘 신고합니다! / 2019.07

[일터괴롭힘 없는 평등한 일터 만들기③] 

 

 

사장님, 직장 내 괴롭힘 신고합니다!

 

 

조은혜 / 돌꽃노동법률사무소 공인노무사,

직장갑질119 법률 스탭, 한노보연 회원 

 

 

“할 줄 아는 게 뭐예요? 본인이 잉여인원인 거 알죠?” 입사 10년 차인 A 씨가 올해 새로 온 상사B 씨로부터 매일 같이 듣고 있는 말이다. A 씨는 전년도까지만 해도 성과평가 최고등급을 받을 정도로 우수하게 근무해왔던 재원이었으나, 상사 B씨에게 밉보인 이후로는 저성과자로 분류되어 원래 담당하던 업무에서도 배제된 상태다. 다른 직원이 모두 모여 있는 자리에서 고성을 지르는 것은 기본이고 B 씨의 지적에 대답이라도 하게 되면 폭언은 두 배가 되어 돌아온다. 상사 B 씨와 함께 보낸 2개월 동안 A 씨는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증까지 생긴 상태이다.


위 사례는 민간단체인 직장갑질119에 제보된 사례로, 유사한 사례들이 매일 수십 건씩 제보된다. 이런 사례에서 답변할 수 있는 내용은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상대방으로부터 모욕적인 언사를 들은 경우에는 형법상 모욕죄가 성립될
수 있다. 우선 폭언내용을 녹취해 놓는 것이 좋다.”는 정도였다. 만약 모욕죄 성립이 안 된다면 할 수 있는 것이 있냐고 내담자가 물었을 때, 당시에는 답변드릴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것이 노동관계법령 내에 정의되어 있지도 않았고, 정의도 존재하지 않으니 구제 방법도 요원했다.


앞으로는 어떻게 바뀌나?

오는 7월 16일부터 시행될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따르면 위와 같은 상사의 갑질은 ‘직장 내 괴 롭힘’으로 회사에 신고할 수 있고 조사를 통해 사실로 밝혀지면 징계 대상이 된다. 사용자는 신고를 접수하거나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인지한 경우에는 지체 없이 조사를 하여야 한다. 신고를 이유로 사용자가 피해근로자나 신고자에게 불이익을 주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피해근로자 보호조치는 물론이고, 조사 결과 직장 내 괴롭힘이 사실로 확인된 경우 사용자는 피해근로자의 요청이 있으면 근무 장소의 변경, 유급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처를 해야 한다. 또한 괴롭힘 발생 사실이 사실로 인정된 때에는 그 행위자에 대하여 징계, 근무 장소의 변경 등의 조치를 해야 하며, 이때 사전에 피해근로자의 의견을 듣도록 하고 있다.


이번 개정을 통해 직장 내 괴롭힘 등으로 인한 업무상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업무상 질병이 발생한 경우에도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상기 사례의 경우 A 씨의 불면증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원인으로 인정된다면 산재가 가능하다.

상사 B 씨를 직접적으로 처벌할 수는 없나?

현재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내용으로는 상사 B씨를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죄목으로 직접 형사 처벌할 수는 없다. 가해자를 형사 처벌하기 위해선 예전처럼 모욕죄, 폭행죄 등 형법상 성립요건이 갖추어진 경우에 개인적으로 고소해야 한다. 가해자를 직접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없어 많은 이들이 아쉬워했던 부분이다. 물론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이번 개정안은 회사 내부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자체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끔 하였다.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 기재사항으로 ‘직장 내 괴롭힘의 예방 및 발생 시 조치 등에 관한 사항’을 신설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고용노동부 매뉴얼은 ▲사내에서 금지되는 직장 내 괴롭힘 행위, ▲직장 내 괴롭힘 예방 교육 관련 사항, ▲직장 내 괴롭힘 사건처리 절차, ▲피해자 보호조치, ▲행위자 제재, ▲재발방지 조치 등의 내용을 기존 취업규칙에 추가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상시 근로자 10인 이상 사업장에서 이를 노동부 장관에게 신고하지 않을 시에는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취업규칙을 통해 실효성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취업규칙을 개정하기 전에 회사 자체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를 익명으로 실시하여 어떤 종류의 직장 내 괴롭힘이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는지, 징계 수위의 적절성, 조사절차에 관한 의견 등을 파악한 뒤 이를 내용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또한 신고자 및 피해근로자의 신원이 드러나지 않도록 신고자 보호와 관련된 규정 및 공정한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동조합 또는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의 참여를 보장하는 규정이 함께 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아쉬운 점은?


직전에도 언급했던 가해자 처벌조항이 없는 점, 그리고 근로기준법으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규정하다 보니 5인 미만 사업장에는 하위 법령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간접고용(파견, 용역, 사내하청 등),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한 경우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지 않는다. 이 부분은 취업규칙 규정 신설 시 적용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으로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가 대표이사 등 사용자일 경우 신고를 그 가해자에게 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고용노동부 매뉴얼에서는 대표이사 등 최고 경영자가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로 지목된 경우에는 감사가 조
사한 후 이사회에 보고하는 방식을 채택하라고 권고하고 있으나, 감사나 이사회가 없는 중소·영세사업장에서는 실천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유의미한 변화

아쉬운 점이 분명 존재하지만,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정의가 신설된 것만으로도 유의미하다. 처벌 규정이 다소 미흡하고, 현장에서 제대로 운영될 수 있을지 우려의 시선들이 있지만 우선 노동자들이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투쟁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갖춰진 것만으로도 진일보했다고 볼 수 있다.

직장 내 수직적 직급체계가 일반화되어 있던 우리나라 사회에서 상명하복은 회사 내 진리처럼 여겨져 왔다. 아무리 부당한 명령이라 하더라도 감내해야 했고, ‘사회생활은 다 그런 거야’라는 말 아래 모든 것이 묵인되어 왔다. 하지만 2014 년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비행기 회항 사건 이후로 갑질에 대한 비판 여론이 점점 수면 위로 떠 오르기 시작하였고, 개인이 혼자 참아내야 하는 문제로 치부되던 상사의 갑질이 어느새 사회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한 행위로 인정된 것이다. 직장갑질119 카톡 채팅방에 많이 올라오는 질문 중의 하나가 바로 ‘제가 이러이러한 일을 겪었는 데 이것도 갑질인가요?’라는 질문이다. 지금까지는 상사의 갑질에 자존감이 꺾이고 스트레스를 받아도 원래 사회생활은 이런 거니까 하며 참고 넘어갔던 일들이 사실은 문제 제기가 가능한 부당한 대우였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이들의 입을 열게 한 것만으로도 성공적인 첫걸음이라고 본다. 부족한 부분은 앞으로 계속해서 바꿔나가면 될 일이다.

앞으로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한다면?

이 개정안은 시행일인 2019년 7월 16일 이후에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부터 적용된다. 사용자에게 신고하게 되더라도 그 직장 내 괴롭힘 발생사실이 입증되어야 하므로 녹취록이나 증인 등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반드시 모아놓아야 하며, 신고 등으로 인해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게 되면 노동부에 신고가 가능하다. 전문가의 조력이 필요하다면 직장갑질119 오픈채팅방에서 상담을 받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특집2. 5년이 지난 지금도 다 회복되지 않았어요 / 2019.07

[일터괴롭힘 없는 평등한 일터 만들기②] 

 

 

5년이 지난 지금도 다 회복되지 않았어요 

 

 

선전위원회

 

 

“그녀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그녀는 자신이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여전히 그녀는 술을 마셔도 되는지, 안 마시면 안 되는지 자신이 없다. 자신이 미안해하지 않고 뻔뻔한 사람 일지도 모른다고 가끔 생각한다. 그러다가 다시 그렇다면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뻔뻔하게 살겠노라고 마음먹는다. 그녀에게는 늘 오늘이 최선이지만, 그 최선이 다른 사람의 발끝에도 못 미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A씨가 자신의 경험을 짧은 소설로 표현한 ‘그녀의 오늘’ 중에서 인용

 

A씨는 2012년 가을부터 2013년 가을까지 약 11개월간 일했던 사무실에서 일터괴롭힘을 당했다. 일터 괴롭힘으로 인한 피해 얘기뿐만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일터괴롭힘으로 객관화한 생존자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했더니, 5년이 지난 지금도 이 문제에 객관적이거나 회복됐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지금도 두 가지 완전히 다른 마음이 공존한다. 하나는 내가 좀 더 용기 내서 싸웠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괴롭힘을 당한 후 우울증 치료를 받게 됐는데 이걸로 산재를 신청하거나 소송을 걸어야 했지 않았나 하는 생각. 강하게 싸웠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나약하고 당장 먹고 사는 게 급급해서 그렇게 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있다. 그런가 하면, 정반대의 생각도 여전하다. 그래도 처 음에는 나한테 잘 해줬던 사람인데, 대체 무슨 일을 계기로 이상해졌는지 몰라도, 관계가 괜찮은 시기도 있었는데, 내가 좀 더 참았어야 했던 거였을까, 이렇게까지 서로 감정이 나빠지지 않았을 방법이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여전히 한다. 지금도 이 문제를 객관화해서 보거나 회복됐다고 말하기 어렵다.”

매뉴얼에 나온 모든 괴롭힘을 다 당했어요

A씨는 자격증이 있는 전문가다. 회사에 취업하거나, 유사한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무실을 운영하기도 하는 직종이다. 자격증을 취득한 후 바로 입사한 첫 번째 사무실에서는 성희롱 사건이 있었다. 6개월 만에 자리를 옮겼다. 사장 1인과 A씨는 자격증이 있는 전문가이고, 이들을 도와주는 행정담당자 1명까지 총 3명이 일하는 작은 사무실이었다. A씨는 그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안 고용노동부 매뉴얼에 나와 있는 일터괴롭힘 유형을 거의 다 당했다.


“정확히 언제부터, 왜 시작됐는지는 모르겠다. 처음 보고서를 냈을 때 ‘내가 원하던 게 바로 이거’라며 칭찬을 듣기도 했다. 그나마 짚이는 것은 일 시작한 지 얼마 되어 다리를 다친 것이다. 회식 후 귀가하다 한 번, 출장 다녀오다 또 한 번 발목 인대를 다쳐 몇 달간 깁스를 했다. ‘산재 안 된다’는 얘기는 물론이고, ‘꼴 보기 싫으니 깁스를 풀어라, 목발 치워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다리가 불편해 택시를 타고 출근했더니, 둘이서 ‘돈도 많다, 택시 타고 출근하고 건방지다’고 대화하기도 했다. 사장이 나가는 업계 내 모임에도 못 나오게 했다. 다른 사무실 후배의 손을 빌리면서도 내게는 제대로 된 일을 주지 않다가, 일을 달라고 요청하자 골치 아파 ‘처박아 두었던’ 일이라며 행정업무를 시키기도 했다.

사장과 실장이 돌아가면서 혹은 함께 ‘옷을 못 입어 다른 사무실 보기 창피하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는 직접적인 폭언을 퍼붓고, 회의 시간에 쳐다본 것을 ‘노려본다’고 화내기도 했다. 업계 다른 사람들에게 ‘정말 싫다’며 험담하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다. 심지어 사무실에 바퀴벌레가 나오거나 화장실 변기가 막혀도 내 탓을 했다. 처음에는 장난인가 싶었는데, 어느새 나와 무관한 일들이 내가 한 일이 돼 있었다. 물을 마시면 물을 많이 마신다고, 화장실을 가면 화장실을 자주 간다고 나무라기도 했다. 괴롭힘은 점점 심해졌다. 마지막으로 출근한 날에는, 결국 그 둘이 한쪽씩 팔을 잡고 나를 물리적으로 끌어내기까지 했다. 원래 정해진 계약 기간까지의 3개월치 급여를 주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외면하는 주변 사람들


A씨 사례는 소규모사업장, 좁은 업계에서 특히 더 일터괴롭힘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사정을보여준다. A씨와 사장을 모두 아는 같은 업계 사람들은, 얘기를 꺼내려고 하면 말을 돌려버렸다.

“셋밖에 없는 상황에서 두 사람이 나를 그렇게 대할 때 완전히 고립되어 있다고 느끼게 된다. 내게 너무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내가 뭘 잘못했을까, 어떻게 하면 잘 지낼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지속적으로 그런 대우를 당하면, 모든 것이 내 잘못인 것처럼 느껴진다. 업계 내에서 나보다 선배인 사장이 나에 대해 험담을 하고, 함께 있는 것을 싫어하니 외부 모임에서도 따돌림을 당하게 됐다. 사장과 겹치는 모임에서는 장소가 바뀌었는데 내게만 공지를 안 해줘 틀린 장소에서 기다린 적도 있다. 그 모임 선배로부터 ‘그렇게 눈치를 줬는데 와서 (자신을) 곤란하게 했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선배들은 사장의 행동에 관해 얘기하려고 하면 아예 말을 못 꺼내게 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당연히 몸과 마음은 지치게 된다. A씨는 퇴사 이후 오랫동안 우울증 치료를 받기도 했다. 업계 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자신감을 다시 찾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렇게 회복하게 되는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은 거의 도움을 주지 않았다.


“내가 가장 크게 도움받은 사람은 차라리 병원 선생님들이었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내 잘못이 아니고, 누구나 힘든 상황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됐다. 정신과 의사든 산재 때문에 만나는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든, 의사 선생님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서 잘 알고 지지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의사 입장에선 작은 도움이라 해도 당사자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업계 내 주변 사람 중 상당히 민주적 혹은 진보적이라는 사람들도 A씨가 도움을 요청할까 회피하기만 했다. 아마도 ‘일터괴롭힘’이라는 잣대를 우리 업계에, 아는 선배에게 똑같이 적용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의 벽이 작용했을 것이다. A씨는 괴롭히는 2명하고만 일했기 때문에, 도움을 줄만한 직접적 직장 동료는 없었던 셈이지만, 직장 내에 다른 동료가 있었던들 도움이 되었으리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이유다. 가해자와 불편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외면하는데, 심지어 본인의 직장 내에서 상사가 가해자로 지목되었을 때, 피해자 편에서 상황을 헤쳐나가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일 수 있다.


당신 잘못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는 흔히 ‘개인적인 갈등’으로 치부된다. 실제로 시간이 지나고 나서 모아놓고 보면 괴롭힘으로 보이는데, 당시에는 ‘그럴 수도 있는 일’, ‘피해자도 일부 책임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쉽다. 이런 조건에서 A씨는 홀로 지난 일을 글로 적어 내려가며 곱씹는 과정에서 조금씩 다시 일어설 힘을 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당한 사건과 당시 상황을 글로 적어보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사실 아주 여러 번 쓰고 다시 쓰는 과정이 있었다. 동료에게 내 사정을 알려주려고 쓰기도 하고, 소송이나 산재 같은 법적 절차를 밟는다면 혹시 쓸 일이 있을까 싶어서 써 보기도 했다. 문학성은 거의 없지만, 소설 버전도 있다(웃음). 여러 차례 쓰고 또 쓰면서 ‘누가 겪어도 힘든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 게 나 자신에게 위로가 되었다. 내가 나약해서 못 버틴 것이 아니라, 누가 겪더라도 힘들고 괴로운 일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게 되니, 마음이 훨씬 나아졌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일을 하면서 치유되는 게 있었다. 나도 다른 데서 일을 시작하고, 그 일이 궤도에 올라가니까 힘이 되었다. 사장과 겹쳐서 쫓겨나다시피 한 모임 대신, 업계 내 다른 모임에 나가서 사람들을 새로 사귀고 만난 게 도움이 되기도 했다. 일터괴롭힘이다 보니 당연히 ‘일’과 ‘업무’, ‘커리어’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피해자들이 힘들어도 일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연스럽게, 다른 피해자들에게 먼저 겪고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한국에서 미투운동에 불을 붙인 서지현 검사가 했던 말과 같았다. 당신 잘못이 아니다.


“무엇보다 당신이 잘못한 게 아니고, 당신이 이상한 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그 상황을 겪으면 누구나 그렇게 된다. 나도 그걸 받아들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 내가 다르게 했어야 하나’ 후회하는 생각이 자주 나니까. 얼마 전에도, 직장 내에서 찍혀서 따돌림 당하다가 결국 해고당한 분의 한탄을 들을 일이 있었다. 그때도 그렇게 말했다. 당신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 아니라고. 미투 운동에서 하는 얘기와 같다고 생각한다. 실제 로 일터괴롭힘 피해자 중 많은 사람이 여성일 것이다. 건장한 성인 남성보다 신체적이든 사회적이든 불리한 사람이 타겟이 되기 쉬울 테니까. 나처럼 다친 상황, 정신적으로 약한 상황, 임신 상황 등 여성이 일터에서 약점을 갖게 되는 순간이 많은데, 일터괴롭힘에서도 ‘여성’ 노동자의 문제에 좀 더 신경 써야 한다.”


일터괴롭힘 생존자 A씨가 볼 때, 7월부터 시행 되는 법적 변화에 큰 기대는 없다.

“이번에 생기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에서는 사업주에게 신고하라고 돼 있는 게 제일 아쉽다. 나도 그랬고, 많은 작은 직장들에서 사업주가 괴롭히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이럴 때는 법에 기대려 해도, 방법이 없다. 이럴 때 누구에게 신고하고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보완돼야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문제를 자꾸만 고객응대 노동자 중심으로 얘기하는 것도 아쉽다. 일터괴롭힘이 감정노동자나 판매노동자들에게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닌데, 진상고객에 의한 괴롭힘만 강조되는 것 같다. 이러면서 마치 고객 문제인 것처럼, 기업이나 사업주에게는 책임이 없는 것처럼 문제를 몰아가는 것 같다. 물론 이 와중에 국가나 정부도 딱히 책임을 지려는 것 같지 않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언론과 사람들의 입길에 ‘일터괴롭힘’이라는 말이 오르내리고, 법에도 몇 개 조항이 들어간 것은 시작일 뿐이다. 괴롭힘 없는 일터, 나아가 노동자가 존중받는 일터는 곧 시행되는 법 조항만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특집1. '갑'의 '폭력'을 넘어서 일터 괴롭힘 발견하기 / 2019.07

[일터괴롭힘 없는 평등한 일터 만들기①] 

 

 

'갑'의 '폭력'을 넘어서 일터 괴롭힘 발견하기 

 

 

지안 / 상임활동가

 

 

감정은 한국의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문제로써 중요한 주제다. 이 감정과 관련된 노동문제는 갑질, 감정노동, 괴롭힘, 직장 폭력 등 여러 가지 개념의 혼용을 통해 이야기되고 있다. 가령 갑질이라는 말은 일터에서 벌어지는 각종 폭력을 곧바로 문제화하는 직관적인 말이다.

그러나 한 노동자가 맺고 있는 고객, 상사, 매니저, 사장, 동료, 거래처 등등과의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권력 문제를 제기할 때 갑질이란 말은 각 관계들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경우이든 우리는 쉽게 갑이라는 개인의 과도한 권력 행사를 비난하거나, 이러한 폭력이 가능해 왔던 한국의 위계적인 문화를 비판하게 된다. 본 글을 통해서 갑질이라는 유용한 서사의 한계점을 지적하면서 각 용어의 본래 의미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문제를 개인적·문화적 측면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관점에서 구조적인 문제로 볼 필요성을 제기한다.

갑질로 명명하는 방식의 한계점

앞서 말했듯이 갑질이라는 말은 노동자의 감정을 둘러싼 복잡한 문제들을 직관적으로 설명하기 좋은 언어로 쓰이고 있다. 무엇보다 갑질은 계약상의 갑을관계에서 따온 말이기 때문에 꼭 노동관계에서의 권력 문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건물주의 갑질, 기업주의 갑질, 상사의 갑질, 고객의 갑질, 거래처의 갑질 등등 다양한 경우에 통용된다. 한국의 위계적인 사회문화를 잘 반영해주는 언어로써 유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점에 있어 이 말은 노동관계의 특수성을 보지 못한다는 몇 가지 한계를 가지고 있다. 먼저 어떤 사건을 갑질 문제라고 읽어 낼 때 우리는 자동으로 어떤 갑의 지위를 가진 개인의 위력 행사에 초점을 맞추거나, 낮은 인권감수성을 토대로 벌어지는 한국사회의 수직적인 위계 문화를 비판하게 된다. 물론 감정노동과 일터괴롭힘은 구체적인 사람을 통해서 발생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쉽게 갑이라는 명확한 대상이 행사한 폭력을 문제 삼게 된다. 하지만 이 문제의 원인을 갑이라는 개인의 일탈이나 폭력성으로 읽어내는 것은 감정노동과 괴롭힘의 구조적인 측면을 비가시화한다.

서비스 노동자들의 감정노동은 차치하고서라도, 조직적 괴롭힘을 통해 해고하거나 성과 달성을 목표로 상사가 팀원들을 압박한다거나 하는 것들은 분명 노동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감정이 자본의 조직관리, 경영방식으로 활용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 한국사회의 고질적 문제로 지목되는 위계 문화로 이 문제에 접근할 경우에는 광범위하게 들어맞는 틀이기 때문에 노동문제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다. 집주인의 갑질과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상사의 갑질을 동일하게 한국적 위계 문화의 결과로 볼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문화적인 문제로 해석한다면, 그것이 노동관계 안에서 어떻게 더 심화 되는가, 혹은 달라지는가를 봐야 한다. 그래서 개인적인 접근이든 문화적인 접근이든 일터에서 벌어지는 감정노동, 괴롭힘, 감정소진·부하, 폭력의 문제들을 말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우리는 자본이 어떻게 감정을 이용해서 노동자들을 관리하거나 탄압함으로써 이윤을 창출하는지 노동의 관점에서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로 괴롭힘을 의 어떤 행위로 상상한다면 괴롭힘이 발생하는 장을 수직적인 구도로 설정할 수 있다는 우려다.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신설된 괴롭힘의 법적 정의는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이다. 직장에서의 지위뿐만 아니라 관계상의 우위 역시 포함되는 것이다. 이미 우리는 사회적 차별과 배제가 성별, 나이, 계급, 학력, 성정체성 등을 매개로 어떻게 중층적으로 발생하는지 알고 있다. 이러한 정체성들은 관계에 따라서 상대적이기 때문에 갑이라는 고정된 위치로 괴롭힘의 가해자를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사람이 맺고 있는 여러 가지 관계 속에서, 누구라도 권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갑이라는 위치를 유동적으로 이해해야만, 일터에서 벌어지는 괴롭힘의 다양한 양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로 갑질은 서비스 노동자들의 감정노동과 그 밖의 일반적으로 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온갖 감정 문제를 모두 포괄하기 때문에 혼란을 준다. 전자가 구체적인 상품으로 기능하는 노동의 한 종류라면, 노동자들이 보편적으로 겪고 있는 감정적인 부하나 소진에는 다른 이름이 필요하다. 감정노동의 개념을 규정한 사회학자 혹실드는 감정이 인간에게 내재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사회적 형태로 만들어지고 교환된다고 설명한다. 감정이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교류된다는 속성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에 의해 조직적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즉 감정노동이란 노동과정 속에서 감정이 하나의 상품으로 기능하고 판매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때 노동자들은 회사가 원하는 감정의 표현규칙을 수행해야 한다. 기업의 구체적인 판매 전략이 의도하는 규칙을 따라야 하므로 감정에 대한 노동자의 자율성은 최소화되며, 자신이 느끼는 것이자 동시에 상품인 감정에 대한 소외가 발생한다.

여기서 고객과 직접 대면하는 감정노동자라고 하더라도, 직종과 업무에 따라서 노동자가 자신의 감정표현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자율성의 정도는 다르다. 따라서 감정의 자율성에 대한 자본의 착취를 문제화해야 하는 지점 또한 다를 것이다. 이러한 수준들을 구별해야만 자본이 노동자의 감정을 도구화하는 방식들을 구체화할 수 있다.

일터 괴롭힘 발견하기

이렇게 상품으로써 감정노동과 일터에서의 감정소진·부하의 문제가 구별되지 않고 모두 감정노동으로 불리기 때문에 이 두 가지 문제와 괴롭힘과의 차이점도 불명확해진다. 특히 감정소진·부하의 문제와 괴롭힘을 구별하기 어렵다. 그러나 감정노동과 감정부하·소진이라는 현상 자체가 괴롭힘이 되지는 않는다. 전자의 문제들에서 상품이든 그렇지 않든 노동자 자신의 감정표현에 대한 자율성이 문제가 된다면, 일터괴롭힘은 특정 인물에 대해 체계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심리적 압박·공격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핵심이다.

물론 일터괴롭힘 역시 발현되는 방식이 매우 다양하기에 일터괴롭힘이 정확히 어떤 행위들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거나 규정하는 것 자체가 까다롭다. 그래서 우리는 그럼 이것도 저것도 다 일터괴롭힘이야? 기준이 대체 뭐야?’라는 식의 방해를 가장 많이 마주하게 된다. 일터 괴롭힘: 사냥감이 된 사람들에서 일터괴롭힘을 발견할 수 있는 몇 가지 지점을 소개한다. 우선 일터괴롭힘을 폭력과 구분해야 한다. ‘폭력과 구별하지 않고 일터괴롭힘을 이야기할 때 괴롭힘의 다양한 차원을 보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최근 직장갑질이나 폭력으로 이슈화된 사안들은 직접적·물리적인 폭력 행사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터괴롭힘은 당사자 외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도 가해질 수 있다. 그렇기에 신체적 폭력이나 눈에 드러나는 심각한 폭언과는 다른 층위에서 괴롭힘문제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개인 간의 갈등이나 불화를 괴롭힘과 구분하는 것 또한 일터괴롭힘 문제를 가시화하기 위해 중요하다.

책의 저자 류은숙은 우선 일터괴롭힘의 양상이 매우 다양하고 문제의 수준도 광범위하다는 점을 설명한 뒤 여러 가지 사례 속에서 일터괴롭힘의 공통적인 특성을 묶어낸 일반적인 정의를 소개한다.

일터 괴롭힘은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위해하거나 사회적으로 배제하거나 누군가의 일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행위다. 괴롭힘 행위는 장기간에 걸쳐 주기적 빈도로 반복해서 발생한다. 괴롭힘의 대상은 열등한 지위로 귀결되는 과정을 겪으며 체계적/조직적으로 자행되는 부정적인 사회적 행동의 표적이 된다. 고립된 별개의 사건 또는 힘이 비슷한 쌍방 간에 일어나는 갈등은 괴롭힘이라 부를 수 없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일터괴롭힘은 장기간에 걸쳐, 주기적인 빈도로 반복되며, 이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괴롭힘의 행위가 고조되는 특성을 가진다. 즉 노동과정에서 갈등이 일회적으로 발생했을 때 그것을 모두 일터괴롭힘 문제로 접근하자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지속적으로 반복되는지 봐야 한다. 물론 권력의 불균등 속에서 갈등이 언제든 쉽게 괴롭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 역시 주시해야 할 것이다.

일터괴롭힘이 드러나는 방식을 더 발견하고 포착해내기 위하여 다시 본 글의 제목으로 돌아가려 한다. 우리는 권력을 나보다 높은 지위를 가진 어떤 의 위력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계들 속에서 발현되는 상대적인 모습들로 상상해야 한다. 이 상상력을 통해서 괴롭힘눈에 보이지 않고그래서 공감할 수 없는 타인의 일이 아니라, 일터의 평등한 감각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감각은 누군가를 일터의 정당한 구성원이 되지 못하도록 하는 불평등이 어떻게 유지되고 있으며 왜 노동과정에 있어 필연적으로 존재하고 있는지 밝혀낼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