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동료의 죽음을 안고 시작한 노안 활동 / 2019.06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동료의 죽음을 안고 시작한 노안 활동 

 

 

나래 / 상임활동가 

 

격동의시기였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열기 속에서 탄생한 금속노조 SJM지회는 이현옥 노안위원에게 노동운동의 시작이자 마침표가 될 곳이기도 하다. 그 역시 근무를 시작한 20대 시절엔 노동조합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회사가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마주한 현실은 결코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 생각으로 시작한 활동이 조직부장, 체육부장, 부지회장을 거쳐 가장 최근엔 노동안전부장을 4년간 역임했다. 그에게 노안활동의 의미를 물으니 "가장 힘들었고, 가장 의미 있는 활동"이었다고 웃으며 대답했다. SJM지회는 2012년 용역업체를 동원해 직장폐쇄를 단행했던 노조파괴 사업장이기도 했다. 이 투쟁을 계기로 노조는 공장 담벼락을 넘어 지역과 함께 살기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이현옥 노안위원 역시 안산노동안전센터 운영위원, 마을 협동조합 마실의 이사로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5월 22일에 그를 직접 만나 공장 담벼락을 넘어선 노안활동의 고민을 들어봤다.
 



 후배의 죽음과 본인의 아픔으로 시작한 노안활동

"제가 활동하게 된 계기요? 투쟁하신 분들이 가열찬 투쟁 열기만으로 활동했던 건 아니고, 살펴보면 가족, 친지, 그 분들을 도왔던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함께 했던 것도 있어요. 저 역시도 노동조합 활동을 옆에서 보면서 저 활동이 정말 필요하고 정당한 활동이라고 생각해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겁니다. 일터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죠."
 
반월공단과 시화공단 두 곳에 있는 SJM은 각각 자동차 벨로우 생산과 발전소, 조선소 등에 들어가는 플랜트 사업을 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장시간노동 철폐, 심야노동 철폐를 위해 주간연속 2교대제 전환, 주40시간 노동 쟁취 투쟁 활동에 집중했다. 그 활동 가운데 노동안전보건운동을 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저에겐 두 가지 계기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여종엽이란 후배 때문이었어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제가 노동안전보건 활동에 관심이 없을 때, 노동조합도 노안활동보다 조직화 문제에 관심이 많을 때 그 친구가 근골격계 질환으로 아주 아팠어요. 저희가 플랜트 용접 일을 하다 보니깐요. 산재 신청을 하고 다시 현장으로 복귀하고.. 그게 반복됐죠. 그러다 보니 업무 강도가 높은 상황에서 아픈 동료에 대해 따뜻한 마음으로 잘 위로해주질 못했어요. 관리자나 주변 동료들이요. 그 친구가 얼마나 아팠는지 몰랐으니깐요. 기억나는 게 종엽이가 날 좋을 때 공장 담벼락에 앉아서 혼자 있는걸 보고 가끔 같이 이야기도 나누고 했었어요. 그러다 얼마 뒤 그 친구가 자살했어요. 노조에서 함께 산재 투쟁을 벌였고요. 결국 산재로 인정이 됐죠. 그 계기로 노동조합도 노동안전보건활동에 눈을 뜨게 됐어요."

"두 번째는 저의 산재 경험 때문이에요. 8년 전쯤에 일을 하다가 다쳤어요. 위험했죠. 큰 쇳덩어리가 넘어져서 저를 쳤는데, 쇠붙이에 머리를 부딪혔는데 이마가 오픈됐죠. 인생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치료가 잘 됐죠. 저 역시 산재를 당하고 보니 노동안전보건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2004년 11월 5일, 31세의 젊은 나이로 자살한 여종엽씨는 10년 넘게 조립작업을 해오다가 2001년 목과 어깨에 근골격계 질환을 얻어 산재 요양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통증이 재발했고, 2003년까지 산재와 공상 치료 그리고 복귀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2004년 4월엔 허리에 근골격계 질환까지 얻게 됐다. 허리치료를 위해 산재 요양을 신청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산재승인 여부를 계속 미뤘고, 그 과정에서 고인은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우울증까지 발생해 정신적 건강마저 크게 훼손됐다. 산재로 인한 고통을 멈추기 위해 극단적 선택을 한 그의 죽음은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고 큰 충격과 아픔을 준 사건이기도 했다. 이후 노동조합은 노동강도, 근골격계질환 등 다양한 의제로 노안활동을 벌여나갔다.

"근속이 오래되다 보니까 제가 노안부장 포함해서 노안활동만 10여년 가까이 했는데, 사실 우리 사업장 100%가 근골 질환자들이에요. 치료 안받아본 사람이 없고 공상, 산재를 안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다 아파요. 그래서 종엽이가 많이 아팠던 거고 그 친구가 가고 나서 현장 개선 사업에 집중했죠. 근골격계유해요인 조사도 하기 시작했고요. 증상이 있으면 동행 진료해서 진단이 나오거나 증상이 있으면 근무 중 치료를 하거나 휴업 치료를 받게 하거나 단계별로 면담을 통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공상 없는 일터의 중요성

이현옥 노안위원에게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사업은 어떤 것이었는지 물었다.

"제가 노안부장을 하면서 가장 문제의식을 느낀 건 '공상' 문제였어요. SJM이 공상 제도가 얼마나 잘 되어 있었냐면 무조건 증상 있어서 요구하면 진료를 통해 휴업치료를 받을 수 있었어요. 아파서 일 못 하겠다고 얘기하면 2~3주 휴업을 했죠. 급여도 120%까지 줬고요. 사실 그땐 급여가 아주 낮았기 때문에 처리해준 것도 있죠. 그러다 보니 치료를 많이 받기는 하는데 도리어 환자가 늘어난 거에요. 우리 입장에선 아이러니했죠. 그러면서 공상이란 제도가 정말 우리한테 좋은 것인가라는 고민이 들기 시작했어요."

"두 번째는 산재 은폐 문제였죠. 그래서 공상을 줄여야겠다고 판단해 노조 임원들과 상의했어요. 공상 문제를 짚어야 한다, 왜냐면 이 제도를 그대로 두면 회사도 노동조합 탄압의 구실로 삼겠다 싶더라고요. 노동력 상실 문제는 자본과 굉장히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2012년에 직장폐쇄가 있었다고 봐요. 직장폐쇄 전 압박이 많았거든요. 회사가 우리에게 했던 말이 환자가 너무 많다, 1년에 의료비로 5억 이상이 든다, 근로 손실수가 어마어마하다고 했거든요."

"직장폐쇄 투쟁 승리하고 나서 노안부장이 됐어요. 그 뒤에 임원들과 본격 논의를 시작해서 현장에서 공상을 없애고 산재로 집중하자고 했어요. 조합원들의 반발이 거셌죠. 그 좋은 제도를 왜 없애냐고요.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어요. 문제를 더 크게 봐야 했죠. 단순한 공상 문제가 아니었어요. 산재은폐로 인한 사업장 개선 문제, 공상은 나가지만 재발 방지가 안 되는 문제 같은 거요. 그래서 금속노조 노안실에 문의를 해봤어요. 금속 사업장 중에 산재하는 곳이 있냐고 하니 금호타이어, 유성 정도를 얘기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뒤에 계획을 세워 재해가 발생하면 공상이 아닌 산재로 처리한다고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통해 합의했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온거죠. 그땐 잠을 못잘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다행히 잘 버텨온 것 같습니다."

그는 획기적 변화가 단번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점진적으로 조금씩 변화하는 것, 조합원 마음속에 각인되면서 조금씩 바뀌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당시 일을 회상했다. 어려움이 많은 현실 속에서 노동조합이 노동안전보건 문제에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를 뭐라고 생각할지 궁금했다.

"노동안전은 권리라고 하죠. 생산의 도구로 활용되어선 안돼요. 그렇기 때문에 알권리 사업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왜 문제가 되고, 어떤 이유로 이렇게 해야 하는지를 모두가 알아야 하는 거죠. 노동자가 시민이기도 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공장이란 담벼락을 넘어서 시민과 아직 조직되지 못한 노동자들에게 문제를 알려나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봐요. 사실 공장 담벼락 안으로 들어가기 쉽지 않거든요. 노동안전보건운동을 노동조합만 있는 곳에서 할 건 아니잖아요?"


 2012년 직장폐쇄 투쟁을 경험하며 이현옥 노안위원은 연대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러다보니 SJM이라는 일터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 더 확장된 운동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 고민속에서 2년 전 안산노동안전센터가 설립됐다. 설립 과정에 누구보다 애정과 힘을 쏟은 그였다.

"거창할 게 없어요. 미조직 노동자, 노동안전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산재 받을 권리, 알권리 등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을 하자고 생각했어요. 거리 상담, 산재 접수, 직접 방문해서 면담도 하고요. 소책자도 만들어서 홍보도 했죠. 지금 그 정도로 사업을 하고 있어요. 우리가 SJM 직장폐쇄를 당하고 나서 탄압을 이길 수 있었던 아주 중요한 힘은 사회적 연대의 힘이었어요. 단사의 힘으로 버티긴 했지만 주변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힘들었을 거에요. 그래서 사회연대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무언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게 안산노동안전센터의 탄생 계기에요. 조합원들이 기부금을 모아주기도 했죠. 저희 사업장뿐 아니라 안산지역의 금속노조 사업장, 화섬 사업장도 함께 고민하고 힘을 모았습니다."

실제 SJM이 위치한 반월시화공단은 대부분이 영세사업장이다. 그러다보니 아주 열악한 사업장이 많다. 각 사업장 안으로 직접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은 본인들의 점심시간을 활용하고 있다. 공단 중식 선전전을 통해 여러 노동조합의 보안부장들이 권리수첩도 배포하고, 직접 만나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전국에서 고군분투 하고 있을 노동안전보건 활동가들에게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안을 챙겼으면 좋겠습니다. 주변을 챙기고 그들과 같이 만들지 않으면 결국 고립될 수밖에 없어요. 그것이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소설은 '땀'을 흘린다 / 2019.06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소설은 '땀'을 흘린다 

 

 

이종찬 / 문화사회연구소

 

 

<땀 흘리는 소설>(창비교육, 2019)은 "문학 수업을 통해 노동을 공부할 방법"에 대한 하나의 답변 격으로 기획되어 출간된 한국 단편소설 선집이다. 총 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이 책의 출발점은 "문학을 업으로 삼은 평론가들과 출판 관계자들에 대한 섭섭함"이었다고 엮은이들은 밝히고 있다.

이 책의 편집위원들은 모두 교육 현장에서 직접 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의 문제의식은 "젊은 세대와 함께 읽을 만한 제대로 된 노동 문학 선집"이 마땅히 눈에 띄지 않았다는 데 있다. 물론 한국 사회에 노동문학의 흐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70~80년대의 노동 문학에 치우쳐 있었던 데 편집자들의 고민이 자리하고 있다. 오늘날의 청(소)년 세대와 함께 '지금 여기의 노동 문학'을 이야기하기에 그것들로는 시간의 이음매가 잘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준비된 이 책은 "21세기에 새롭게 일과 직업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설 선집"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노동의 구체적 양태는 시대에 따라 그 모습들을 달리해 왔다. 어제의 노동과 오늘의 노동이, 더 나아가서는 내일의 노동이 같은 형태를 띌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인간의 노동 환경이 시대를 막론하고 꾸준히 열악하였음을 따로 강조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땀 흘리는 소설> 속 이야기들에서 우리의 시선을 끄는 건 여전히 비루한 노동 환경으로 비롯된 감정의 어떤 무늬들이다. 노동의 조건이 가혹하다는 걸 '아는' 것과 그 가혹함으로 인해 초래된 마음의 무늬들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좋은 문학과 예술은 인간과 세계를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끈다.

먼저 김혜진의 <어비>를 읽는다.

도서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어비'는 동료 직원들 사이에서 수수께끼 같은 인물로 통한다. 소설 속 그의 모습은 자발적 유폐자의 형상을 닮아 있다. "그냥 별로 말할 게 없어요. 진짜요." 그는 말하자면 "여기까지라고 금을 그어 놓고 내내 그 경계를 지키는 데 필사적인 사람" 내지는 "있었나 싶으면 어느새 가고 없는 사람"이다. 여기까지 보면 자의식 과잉의 인물로 보이지만 그것도 아니다. 어비는 의식적으로 타인들과의 관계 맺음을 회피하는 유형이 아니라 그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물 쪽에 훨씬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고 있는 소설 속 화자인 '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어비는 "웃으려고 하는데 그게 맘대로 안 되는 것 같았다."

단체 생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노출하던 어비는 어느 날 팀장으로부터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클레임의 원인 제공자로 부당하게 지목받는다. 어비는 끝까지 자신의 잘못이 아님을 주장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회사를 그만 둔다. "햇볕 한 줌 들지 않는 이 커다란 창고를 빙빙 돌면서 인생을 낭비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나' 역시 얼마 뒤 퇴사를 하게 되는데 몇 주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생활용품 창고에서 어비와 다시 마주친다. 그 날 퇴근 후 '나'와 어비는 처음으로 같이 저녁 식사 자리를 하게 되면서 가까워지는 듯 하지만 그 다음날 어비는 말없이 자취를 감춰버리고 만다. 간밤에 지갑을 잃어버린 '나'는 그것이 어쩌면 어비의짓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지만 그것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
 

 
'나'가 어비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다시 보게 된 건 인터넷 개인 방송 사이트에서다. 어비는 그곳에서 기괴한 형태의 1인 방송을 하고 있었다.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번데기를 숟가락으로 게걸스럽게 떠먹거나, 싸구려 중국 음식들을 대량으로 시켜 빠르게 먹어치우는 어비의 먹방을 본 접속자들이 여기저기에서 별 풍선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어비가 벌어들인 돈과 앞으로 벌어들일 돈"을 카운팅해 보며 '나'는 어딘지 모르게 종잡을 수 없는 기분에 빠져든다.

 

김혜진의 <어비>에서 우리가 확인하게 되는 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노동의 형태가 다양하게 분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다음과 같은 질문이 가능해진다. 어비의 인터넷 1인 방송은 노동일까 아닐까. IT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인터넷 플랫폼 공간에서 제공되는 이와 같은 '플랫폼 노동'은 우리가 알고 있는 '노동'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다음으로 읽고 싶은 작품은 구병모의 <어디까지를 묻다>이다.

'나'는 현재 카드 회사 콜센터 직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원래 꿈은 아나운서였다. 한때는 자신의 목소리가 "언어의 잎맥을 살며시, 그러고도 단호하게 켜는 활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품고 있던 그였지만 꿈을 이루지 못하고 당장의 현실에 발이 묶여서는 지금의 직장에 취업해야만 했다. 그리고 규격화된 친절함의 언어로 점철된 그녀의 목소리는 애초의 매력과 활기를 잃어버렸다. 언어 폭력과 그것을 감내해야 하는 감정 노동은 일상이 되어버린 지 이미 오래다.

그런데 어느 날 걸려온 전화는 이전과는 결을 완전히 달리 하는 것이었다. 수화기 너머 '고객님'의 목소리, 그 첫마디는 다음과 같았다. "괜찮으세요?" '나'에게 그것은 "호미로 파헤쳐진 자리를 보드라운 흙으로 덮어 다지기 위해 토닥거리는 손길"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말문이 탁 막힌 게, 그 전까지 이어져 오던 콜의 무늬에서 한 조각이 삐끗 나가 버리니까. 그동안 퍼부어진 몇 톤 치의 욕이 거의 자장가에 가까운 패턴을 이루어 왔는데 거기 갑자기 완전 5도 화음이 추가된 상황". 바로 그 때였다. '나'는 그만 "부모님 돌아가신 것처럼 통곡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통화를 이어갈 수 없는 '나'를 대신해 다른 직원이 임의로 전화를 당겨 받지만 그 또한 마찬가지의 상황으로 전개된다. 그것을 이어받은 직원 역시도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만다. 그렇게 "울음은 우리 팀 전체에 염병처럼 퍼져 나갔어요."

구병모의 <어디까지를 묻다>는 인간 내면의 심층이 지닌 복합적인 역설을 잘 드러내 보여준다. 폭언은 상담원의 마음을 허물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친절함의 말 한 마디가 도리어 그들을 완벽하게 무너뜨려 버렸다. 인간의 마음이란 것이 이토록 허술하고 모순투성이다. 우리는 아직 인간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앞으로도 여전히 그럴 것이다.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미운 오리도 산재가 되나요? / 2019.06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미운 오리도 산재가 되나요?

 

 

박승권 / 직업환경의 

 

 

"왜 너만 난리야!?"
"옆 사람들 다 멀쩡한데 왜 너만 그래?"

나름대로 운동을 좋아하고, 또 잘한다는 착각에 빠져 사는 필자에게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다. 그건 바로 중학교 체육 시간에 뜀틀 위에서 앞구르기 했던 기억인데, 반 친구들 전원(!)이 자연스럽게 임무를 완수했음에도, 유독 필자만 뜀틀 위에서 우스꽝스럽게 물구나무선 것 마냥 '1'자로 서버린 아픔이다. 수차례 시도를 해도 공처럼 구르지 못하고 뜀틀 위에서 1자로 섰다가 고목 쓰러지듯 고꾸라져 한동안 허리통증을 겪게 되었다.

업무상 질병(산재) 심의자료를 검토하다 보면 간혹 그 당시 선생님께 혼났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산재를 신청하는 노동자의 상대방을 자처하는 사업주 항변 중 단골로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논리 때문이다.

"여태껏 같은 부서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 없었는데 이번에 홍길동씨에게만 문제가 생겼다. 그러므로 산재가 아니다."

이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법)과 산재보험의 취지를 완전히 몰이해함으로써 나온 논리다. 산재보험의 목적은 업무와 관련한 안전, 보건상의 위험을 함께 대비하는 것이다. 산재를 판단하는 기준은 오로지 '업무와 질병 발병 간의 상당한 수준의 인과 관계'의 존재 여부지 노동자가 갖고 있던 위험요인이 아니다. 설령 노동자가 위험요인을 갖고 있었던들, 자연적인 경과를 따랐을 때 발병했을 시점보다 업무로 인해 상당한 수준으로 빨리 유발되었는지가 판단의 핵심인 것이다.

대법원에서도 업무와 질병 간의 인과관계를 따질 때는 보통의 평균인을 기준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당사자의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방향을 취하고 있다. 필부필녀를 기준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해당 노동자 개개인의 처지에서 "신체 부담업무"에 해당하는지, 유해요인과 질병 간의 인과성을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다.

앞서 뜀틀 얘기로 돌아오자면 당시 필자의 뒤통수는 다른 친구들보다 납작했다. 납작한 뒤통수를 갖고 있는데도 선생님의 지배·감독하에 실습에 임했고, 이 과정에서 부상(질병)을 얻었다는 것만 인정된다면 이후에는 둥근 뒤통수를 가진 친구들 기준이 아니라 '납작한 뒤통수'라는 위험요인을 가지고 있는 나의 상황에서 앞구르기와 허리통증의 인과관계만 판단하면 되는 일이다.

또 한 예로 내 친구는 병뚜껑이나 참치캔을 딸 때마다 피를 철철 흘려 놀림의 대상이 되곤 한다. 대다수 사람은 이 같은 동작을 할 때 다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 친구가 참치캔 때문에 피를 안 흘린 것은 아니므로 이 동작이 업무의 일환이었다면 당연히 산재에 해당한다.

이처럼 산재보험은 쉽게 말해 '일과 관련해 병을 얻은 근로자'를 위한 사회보장제도 중 하나일 뿐, 근로자가 잘못했다거나(고의가 아닌 이상), 업무능력이 미숙하다거나, 개인적 소인의 존재 여부는 보장 여부 판단에 중요한 고려점이 아니라는 것을 사업주든 노동자든 꼭 인지해 이로 인한 사회적 오해, 갈등이 줄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미운 오리야말로 우리 사회가 가장 먼저 품어야 할 대상이 아닐까?

[현장의 목소리] 공항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인력 부족 / 2019.06

[현장의 목소리]

 

 

공항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인력 부족 

 

 

박기형 / 상임활동가 

 

 

 

문재인 정부는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전환 대상 사업장 제1호는 바로 인천국제공항공사(이하 공항공사)로 결정됐다. 하지만 정규직 전환 약속은 자회사 전환으로 축소되었고, 심지어 자회사 전환마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성과 안전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인천공항지역지부는 인천공항 제1터미널 3층 8번 출구 앞에서 천막농성을 4개월여 넘게 이어가고 있다. 지난 5월 22일 인천공항 제1터미널 3층에 위치한 천막농성장에서 인천공항지역지부 양문영 조직부장, 정해진 노동안전보건국장, 박상민 탑승교지회장 등을 만나 현 투쟁 상황에 관해 이야기 나눴다.

정규직 전환 피하려는 채용비리의혹, 해고 구실에 불과

2017년 12월 26일 공항공사와 정규직 전환을 합의했지만 1년 후인 2018년 12월 26일 한국노총과 공항공사가 다시 합의서를 작성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2017년 합의서에는 3000여 명을 직접 고용하고 그 외 7000여 명의 인력을 2개의 별도 법인을 설립해 고용하기로 했다. 고용 형태에 관해서는 직접고용 시 관리직 미만은 면접 및 적격심사 후 채용하고 관리직 이상(보안 검색, 경비 및 야생동물은 4급 이상, 소방대는 3급 이상)은 경쟁 채용하며 탈락자는 별도회사 채용 등을 통해 고용을 보장하고, 별도로 자회사를 통해 고용될 대상 노동자는 전환 채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2018년 발표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 인천공항을 방문한 2017년 5월 12일 이후 입사한 3000여 명에 대해 경쟁 채용 도입을 추진한다고 명시했다. 어느 날 갑자기 해고의 위험에 내몰리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공항공사가 17년 5월 12일 이후 입사자들에게 경쟁 채용을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양문영 : "2018년 1월 제2터미널의 개항이 예정되어 있어서 2017년 말 개항 준비단계에서 3000여 명을 추가 채용하기 시작했었죠. 2017년 합의 당시에는 이미 일하는 인원이 9000여 명에 달했어요. 그래서 2017년 합의 과정에서 제2터미널 인원까지 포함한 1만여 명에 대해 정규직 전환을 하겠다고 약속한 것이죠. 하지만 2018년 발표를 전후로 채용 비리를 문제 삼았어요. 당시 공공기관 채용 비리가 사회 이슈로 떠오른 때였죠. 공항공사와 한국노총은 기존에 근무했던 인원은 제외하더라도, 정규직 전환 발표 이후에 입사한 사람에 대해서는 채용 비리 의혹이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어요. 그러면서 심사를 더 까다롭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경쟁 채용 방식 도입을 추진하기로 발표해버렸어요. 저희는 이에 반대하며 2017년 합의서를 지키라고 주장하고 있어요."

정해진 : "5월 12일 이후 입사자 모두에게 의혹이 있다고 전제하는 건 부당하죠. 무엇보다 채용 비리를 시험으로 거른다는 게 말이 안 되죠. 채용 비리는 불법이니까 경찰 조사나 감사를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경쟁 채용하겠다는 것은 비리를 적발하겠다는 게 아니죠. 경쟁에서 탈락한 인원은 전환 승계하지 않고 해고하겠다는 구실을 찾는 거죠. 전환대상자 임금 수준이 공사 정규직의 1/3 수준인데도, 경쟁 채용으로 시험을 치려는 것은 일정 인원은 꼭 떨어뜨리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어요."
 


인력 부족 해결을 위해 근무환경 개선해야 

이들은 모두 공항공사가 채용 비리를 운운하기 전에 가장 심각한 문제인 현장의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의 인력 부족으로 인해 갖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항공사와 용역업체가 계약한 T.O조차 채우지 못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한다.

박상민 : "탑승교 사업장의 경우 지난 1년 동안 T.O를 채워서 근무한 적이 없어요. 만약 채용 비리를 해서라도 들어오려는 좋은 직장이라면 지원하는 사람이 넘쳐야 정상이겠죠. 그런데 실제로는 지원조차 적어요. 처우가 열악하기 때문이죠.

정해진 : "설령 긴 채용 절차를 거쳐 인원이 충원되었다고 해도 처우가 열악하면 오래 남아있기가 힘들어요. 하루 일하고 그만두는 사람, 일주일하고 그만두는 사람이 많아요. 지원할 때에는 자회사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와보니 용역회사와 다를 바 없다는 걸 깨닫기 때문이에요. 자회사라 채용 기준이 올라가고 지원하는 분들의 스펙도 올라가는데, 근무환경과 조건이 개선되지 않았죠. 일은 힘들고 처우는 열악하고. 그러니 기대했던 바와 다른 상황에 크게 실망하게 되는 거죠."

교대제 개선 위해 3200여 명 충원해야

까다로워지고 길어진 채용 절차와 기간, 용역회사 시절과 다를 바 없는 처우뿐만 아니라 교대제로 인한 높은 노동강도도 인력 부족을 일으키는 주요한 문제였다. 공항은 24시간 돌아가는 사업장의 특성상 교대제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인력이 충분하지 않아 교대제로 인한 어려움이 컸다. 

양문영 : "사업장 대부분에선 3조 2교대를 운영하고 있어요. 하지만 인력 부족으로 교대제 부담이 가중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청소 노동자분들은 오전조/오후조/야간조로 고정되어 있고, 근로시간은 7시간 반씩 주6일제로 책정되어 있어요. 이 때문에 주5일제 전환을 요구하고 있어요. 

교대제에 있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도 있어요. 정규직은 4조 2교대를 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희도 4조 2교대 전환을 요구하고 있죠.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공공운수노조에서 진행한 2017년 연구보고서의 분석을 현재 인원에 적용해볼 때, 교대제 개선에 필요한 인원은 약 3200여 명 정도로 나와요. 이 정도 인력이 충원돼야 장시간 노동, 야간 노동, 높은 노동강도로 인한 과로와 산재를 예방할 수 있겠죠. 하지만 공사는 관심이 없어요. 최근 보안검색대의 경우엔 주52시간제를 도입하기 위해 인력충원 없이 교대근무를 12조 8교대로 전환하여 운영하겠다고 했죠."

제2터미널 개항 후 승객 안전 위험, 이유는?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공사는 계속해서 T.O를 줄여왔다. 반대로 제2터미널 개항과 저가 항공사 출범으로 운항 편수가 증가하여 업무량은 갈수록 늘었다. 그러다 보니 연휴나 휴가철마다 운항 편수와 이용 승객은 항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그런데도 공항공사는 제2터미널이 개항하면서 전체 근무 인원이 늘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업무량 증가 대비 인력충원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야간 노동 시 연속휴게 시간이 보장되지 않으며, 연월차 사용을 제한받고 안전 및 보건 교육도 형식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박상민 : "탑승교 근무 인원은 2018년 1월 제2터미널 개항 전까지는 여객터미널 108명, 탑승동 80명이었는데 개항 이후 각각 87명, 63명으로 줄었어요. 인원 부족으로 메뉴얼대로 근무하지 못해요. 매뉴얼에 따르면 비행기 착륙 30분 전에 점검하고 착륙 후 항공기와 접현하고 승객이 내리고 정비와 내부 청소가 끝나 항공기와 이현할 때까지, 근무자가 대기하게 되어있어요. 하지만 인원이 부족하니 핵심업무만 해요. 여기서 잠깐 접현하고서 다른 데 가서 잠깐 이현하는 식이죠. 한 시간가량 해당 근무 장소에 머물면서 탑승교 오작동 등 비상상황에 대처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는 거죠. 더구나 장비가 인천공항 개항할 때 설치한 거라 20여 년 가까이 되었어요. 그래서 노후 상태가 심각하죠. 하루에도 수십 건씩 장애가 발생해 민원이 끊이지 않아요. 그런데 공사는 최근 장비 사용 연한을 10년 더 늘렸어요. 설비 투자 없이 이윤을 늘리겠다는 거죠. 이 때문에, 근무자 과로만이 아니라 승객 안전에도 위협받을 수 있어요."

정해진 지회장도 수하물 장비 노후로 고장이 빈번하다고 지적하며 2016년 1월에 발생한 '수하물 대란'을 언급했다. 당시 3000개가 넘는 수하물을 근무자가 직접 옮겼고 그로 인해 30분 가량 업무가 지연되면서 승객의 불편함을 초래했다. 그뿐만 아니라 30~40kg의 수하물을 급하게 옮기다 보니 노동자들은 부상과 사고 위험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작업 대부분이 지하에서 이뤄져 직업병의 위험도 크다. 각종 폐기물, 오수 처리 시설과 함께 컨베이어벨트가 작동하고 있어 각종 분진과 유해물질에 노출된다. 최근 20년 가까이 근무한 조합원이 폐암을 진단받고 산재 인정받은 사례도 있었다. 하지만 컨베이어벨트 주변 안전설비가 설치되지 않은 곳이 다수며 면적 대비 환풍기 설치 대수도 부족한 실정이다. 정해진 지회장은 운영 설비도 개선하지 않는 상황이니 안전설비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고 한탄했다.
 

   
자회사 전환은 인력 부족, 열악한 처우의 근본적 문제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 모두 위협받는 상황에서 공사가 인력을 충원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건비를 절약하여 비용은 최소화하고 이윤은 최대화하겠다는 공사의 경영 태도 때문이다. 공공기관 경영평가 별도 항목으로 간접고용 인원의 정규직 전환 점수가 포함되기 때문에, 경영 평가 점수를 높이기 위해 현재 간접 고용된 인원들은 정규직 전환하겠지만 인건비 자체를 늘리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회사 전환 과정에서 사업비 규모도 줄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회사 전환 과정에서 전환 대상 사업장의 용역계약이 완료되면 운영서비스, 시설관리와 수의계약을 하는 것으로 변경된다. 이때 대부분 사업장에서 낙찰률이 떨어져 기존에 비해 낮은 단가로 사업비가 책정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자회사에 고용되더라도 노동자들의 처우가 개선되지 않거나 추가 인력을 충원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용역계약 시 물가인상분을 급여인상이 아닌 연말정산으로 대체한 사업장의 경우 전환 승계하면서 노동자들의 실질 급여가 하락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시설임대수익을 위해 안전설비·휴게공간은 뒷전

이와 함께 공항공사가 운영 설비 투자를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해진 지회장은 노동자들의 휴게공간을 제공하지 않으려는 태도와 연장선에 있다고 말했다. 공항 설계 시, 근로자 1명당 적정 사무·휴게공간 면적이 배정된다. 하지만 공항공사의 전체 이윤 중 시설임대수익이 막대한 비중을 차지한다. 공항 3층에 위치한 편의점 한 곳의 1년 임대료가 약 30억에 달할 정도다. 그러니 승객 이동이 많고 접근성이 좋으며 쾌적한 2~3층은 항공사와 면세점, 상업 시설에 임대하는 반면, 열악하고 눈에 띄지 않는 1층과 지하에 용역업체 사무소, 노조 사무실, 휴게·대기실을 배정하는 것이다.

양문영 : "자회사와 안전근로협의체를 열어 운영시설, 안전설비, 사무 및 휴게 시설을 개선하려고 해도 시설 전반에 대한 권한은 공항공사가 갖고 있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이를 위해선 공항공사와 안전근로협의체를 구성할 수 있어야 해요. 공사, 항공사 등 노조 없이 하는 안전근로협의체도 있지만 한계가 있죠. 최근 공항공사에 원하청 노사 안전근로협의체를 구성하라는 지침이 내려왔어요. 그러나 세부 운영지침이 없어서 실효성이 없는 상황이에요. 속히 구체적인 운영 방안이 나와야겠죠." 

긴 인터뷰를 마치고 보니 공항공사의 태도는 한 마디로 '비용 최소화'로 요약될 수 있었다. 인건비와 시설투자비를 아껴서 이윤을 최대한으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력 부족과 시설 노후로 인해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은 위협을 받고 있다. 부푼 마음을 안고 공항을 오가는 시민들과 공항을 일터로 삼아 삶을 영위하는 노동자들. 그들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선 속히 인력충원이 이뤄져야 하며 문재인 정부가 약속했던 정규직 전환, 그 취지가 지켜져야 할 것이다.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강사는 왜 '노동자'가 되지 못하는가 / 2019.06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강사는 왜 '노동자'가 되지 못하는가

 

 

지안 / 상임활동가 

 

 

고등교육법, 일명 강사법 시행을 약 3달 앞둔 지난 5월 10일,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A씨와 B씨를 신림역 인근에서 만났다. A씨는 201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시간강사로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B씨 역시 시간강사로 많은 대학에서 강의를 해오다가 최근 임용되어 모 대학의 비정규직 교수로 일하고 있는 중이다. 

강사법은 지난 2011년 12월 처음 발의 된 이후로 약 7년 정도 유예된 법이다. 법의 원 취지는 '시간강사'라는 열악한 일자리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마련된 것이지만, 오히려 이 법을 근거로 많은 대학들은 시간강사 일자리를 줄이고 전임교수들의 수업 시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개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악용을 방지하고자 지난 6월 4일 교육부는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발표했다. 개정안의 골자는 강사 인원을 감축한 대학에 제도적인 불이익을 준다는 것이지만 과연 실제로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앞으로 대학이 어떻게 강사들의 고용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계획이 필요할 것이며 교육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감독하고 규제해야 할 것이다. 

한편에서는 시간강사라는 직업의 열악함을, 고학력자가 저임금 일자리를 전전하거나 심지어 강의 자리를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상황을 통해 설명하는 방식이 있다. 이러한 설명은 저임금 일자리와 또 다른 저임금 일자리가 비교될 수 있는 것처럼 상황을 오도한다.

대학 강사의 일자리가 문제인 이유는 고학력자의 노동이 이토록 열악하다는 것이 서글프기 때문이 아니라, 강사들의 노동을 온전한 노동으로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건들이 있기 때문이다. 초단시간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는 사회적 현실이 대학이라는 위계적인 공간과 만났을 때, 강사들의 노동이 어떤 방식으로 은폐되고 있는지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일터>를 통해서 강사법의 보장을 둘러싼 여러 가지 입장들에 대해서 살펴보기보다는 강사의 노동을 노동으로 인식하기 어렵게 만드는 노동조건을 조명하려 한다. 

 

강사의 노동을 노동으로 인식하기 어렵게 하는 노동조건은 무엇일까?



주목되지 않는 시간강사의 노동시간, 강도, 환경  

대학에서 강의하는 교육자들이 어떤 노동을 하고 있는지 그 과정을 짐작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또 강의를 누군가의 '노동'으로 생각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한 이유로는 우선 이 노동이 가지고 있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라는 특수성이 있겠지만 그 외에도 시간강사를 노동자로 인식하기 어렵게 만드는 몇 가지 조건들이 있다.

첫 번째는 임금이 수업시수에 따라 시급으로 책정된다는 점이다. 임금은 수업시간으로 책정되는데 실제 이들이 수행하고 있는 업무는 그 시간 안에 종료되는 것이 아니다. 수업 준비부터 학생들의 과제를 피드백하고, 수업에 대한 공지를 메일링하고, 시험지를 채점해서 시스템에 입력하는 일 등등 한 학기의 대학 수업동안 필수적으로 진행되는 업무 절차들이 있다. 

A= "먼저 수업 준비 시간이 있어요. 반복해서 진행하는 과목하고 새로 맡게 되는 과목에 소요되는 시간이 다르긴 해요. 물론 기존에 해왔던 수업들도 새로 자료를 업데이트해야 하긴 하지만요. 보통 강의를 받고 나서 방학 동안 수업 자료를 어느 정도 완성을 시켜놔요. 그 시간이 상당히 많이 걸려요. 한 번은 잘 모르던 분야의 강의를 제안 받은 적이 있어서 거의 방학 내내 그 분야 공부를 하고 강의 준비를 했던 적도 있었어요. 또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시험지 채점이라든가, 수업 공지를 메일링 하는 것, 학생들이 해온 과제 피드백이 있을 것 같아요." 

이러한 진행 절차는 모두 강사의 업무이지만 공식적인 노동시간으로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보통 시간강사들이 일반적으로 받는 시급은 4.5만 원에서 8만 원 정도까지 대학마다 다르다. 이렇게 강사들의 시급이 법정 최저임금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점이 이 노동을 더욱 말하기 어렵게 하고 보이지 않게 만든다. 시급이 높기 때문에 수업과 연관된 기타의 노동들은 감수할 수 있는 일이 되며 높은 시급이 이미 충분히 보상을 제공하는 것처럼 착시를 준다.  

B = "사람들은 시간강사 시급이 높은 이유가 그런 부가적인 노동들이 포함되기 때문이라고 해요.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보면 많은 금액이기는 해요. 그렇지만 측정되지 않는 노동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노동강도는 어떨까? 많은 사람 앞에서 무언가를 설명하는 행위 자체가 긴장을 유발하거나 감정 소모, 소진 등을 야기하지 않을까. 

A= "강의를 하는 것이 체력적으로 힘든 건 사실이에요. 일반적인 강좌도 그렇지만, 요즘 대학들이 국가지원금을 받으려고 외국인 반을 많이 개설하고 있어요. 저도 예전에 전담한 적이 있었는데, 한국어 능력이 완벽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전공수업과 어려운 이론 수업을 가르치는 것이 정말 힘들었어요. 물론 상황에 맞춰서 커리큘럼을 짜고 진행을 하지만 외국인 학생들은 1:1로 붙어서 케어 해줘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수업을 하고 나면 몇 시간 되지 않더라도 완전히 탈진 상태가 돼요. 감정 소모도 크고요."

또한 강사법이 계속 유예되었던 지난 7년 동안 실제 시간강사들이 지속적으로 해고되는 일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고용불안이 노동자 개인에게 업무부담과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A= "일단 정신적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요. 요즘에는 학생들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거든요. 맨 처음 강의를 시작한 시기에는 내가 하고 싶은 강의를 한다는 게 있었어요. 그런데 강사법에 대한 이야기가 점점 나오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논의된 이후로는 학생들의 반응을 살피게 되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한 부분입니다."

학기마다 재계약 해야 하는 시간 강사들에게 고용 불안정이 가장 큰 업무 스트레스라면, 비정규직 교수들은 같은 분야에서 일하더라도 스트레스 요인이 다르다. 시간강사들보다 계약 기간은 길더라도, 학과의 각종 사업을 맡아서 진행해야하기 때문에 강의 이외의 추가 업무들이 주어진다.

B씨에게 평균적인 노동시간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자 그는 아침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업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이 큰 의미가 없다고 답했다. 수업 시간표 외에 출퇴근 시간이 정해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노동시간에 대한 상대적인 자율성이 있는 대신에 오히려 그런 조건이 더 일상과 노동을 구분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B= "저는 학기당 10학점~15학점 정도를 가르쳐요. 수업의 특성상 학생들을 피드백 해주는 데 걸리는 시간이 많은데 한 학기에 인 당 1시간은 걸리는 것 같아요. 학생 수는 200명이 조금 안 됩니다. 그리고 저 같은 경우에는 시간강사 때보다는 불안정성은 덜하죠. 최소한의 계약기간이 정해져있으니까요. 하지만 학회를 관리한다든지 하는 업무들이 있고, 또 학과의 각종 사업을 처리해야 해요. 이 업무들이 너무 과중해서 거의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는 상황이에요. 또 개인적으로는 대학에서 정년을 확정해 준 정교수들을 제외한 모든 교수들이 주기적으로 재임용 심사를 받아요. 논문을 투고하거나 학회 업무를 맡아 봉사시간을 채우는 것 등등을 통해서 실적을 계속 관리해야 해요."

시간강사들의 경우에는 수업과 다음 수업 사이에 쉬거나 수업을 준비할 수 있는 휴게 공간이 있는지도 물었다. 강사실이 있기는 하지만 휴게공간으로서의 기능은 거의 하지 못하고 심지어 학생이 면담을 요청해도 상담을 진행할 공간이 없는 상황이었다. 

A ="강사실이 있지만 일단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요. 학교마다 다르긴 하지만 비치되어 있는 물품이나 복사기, 컴퓨터 같은 것을 사용하는 것이 매우 제한적입니다. 컴퓨터가 6대 있는데 고장이 나도 고치질 않아서 2대를 나눠 사용하는 식이예요. 수업 준비를 하려면 거의 1시간 전에 가야 인쇄라도 할 수 있던 학교도 있었습니다. 또 사소한 건데 비참했던 건 학기 초에 강사실에 있던 벌레 사체가 학기 말까지도 치워져 있지 않는다던가 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때 여기가 치워지지 않는 공간이구나 하는 걸 느꼈죠."  

고용 불안정성과 불안을 지목할 수 없는 문제   

앞서 시간강사들이 노동자로 자신을 인식하기 어렵게 만드는 조건으로써 높은 시급이 지불되지 않는 노동을 견디도록 만듦으로써 가려지는 노동시간에 대해 들어보았다. 두 번째 조건으로는 대학이 편의와 비용절감의 이유로 양산한 단시간 일자리와 고용 불안정성의 문제가 있을 것이다.

시간강사들이 일하는 일자리란 대부분 단시간, 혹은 초단시간 일자리들이다. 또 학기 단위로 고용계약을 하고, 고용의 전 과정이 매우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 이들을 개인화하고 고립시킨다.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일자리의 처우가 문제가 되자, 역으로 인력감축을 시도하는 대학이라는 노동현장에서 시간강사와 비정규직 교수들이 체감하는 문제점들은 무엇일까. 

A= "국공립, 사립대학 모두 포함해서 4개 정도의 대학에서 강의를 해왔고, 적게는 3학점부터 8학점까지 강의를 해왔어요. 1학점을 주당 1시간 수업이라고 보시면 돼요. 보통 3월에 시작하는 학기의 수업은 1월 정도에 강사에게 메일로 제안이 와요. 그 시기에 연락이 안 오면 그냥 그 학교는 잘렸구나 생각을 하는 거예요. 만약에 전에 수업하던 학교에서 연락이 안 왔다면, 어떤 기준에 미달해서 수업을 못 받은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어요. 예전에 개강하고 난 이후의 수업을 갑작스럽게 소개받은 적이 있는데, 학교가 지방에 있어서 이동시간도 만만치 않았고 3학점인 수업이었는데 혹시나 다음 학기로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 때문에 받은 적이 있어요." 

B= "제가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교수 자리는 1년씩 계약연장을 해요. 만약 재계약이 안 되면 학교를 나가야 하는 상황이에요. 당장은 고용 불안에서 약간 벗어난 것은 맞지만 강사법이 시행돼 학교의 모든 강사 일자리가 3년 고용 보장으로 세팅이 되고 나면, 그 시기 이후 계약이 종료되는 비정규직 교수들은 시간강사로 일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될 거예요."

A= "한 학기가 4개월이에요. 1년에 두 학기가 모두 계약된다는 전제 하에도 8개월만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거예요. 그렇지만 저라는 사람에게 들어가는 한 달 고정 지출은 있죠. 그래서 월급을 쪼개서 쓴다고 해도 방학 때는 빚을 질 수밖에 없어요. 방학 기간에 빚을 지고 그걸 갚는데 2달 정도 지나고 아무리 쪼개서 쓴다고 해도 금방 또 방학이 와요. 실업급여 같은 경우는 3학기 당 1번씩 받을 수가 있어요. 실업급여의 조건인 180일 근무를 채워야 하는데 1주일에 제가 실제로 수업을 하는 날은 2일이기 때문에 수급 조건을 채우려면 3학기는 되어야 하는 겁니다." 

대학 내 비정규직 교수 직함들은 겸임, 초빙, 객원, 연구, 대우 등등 업무 내용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끝없이 양산되고 있었다. 계약직으로 대학 교수들이 임용되고 있는 한편에서 시간강사들은 학기 방학마다 다음 학기 계약을 기다려야 한다는 불안감을 견디고 있다.

여기서 7년 동안 유예되고 있던 강사법은 법 시행을 2달 앞둔 지금에서야 시행령 일부 개정안이 나왔다. 이 법이 실제로 대학으로 들어왔을 때 어떤 식의 효과를 낳을지, 대학이 마련하고 있는 구체적인 계획을 누구도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강사 개개인에게 정보가 차단되어 있거나 차등적으로 주어진다는 점도 불안을 가중시키는 문제다. 

B= "저도 비정규직이다 보니 앞으로 대학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정보가 없어요. 창구도 없는데다가 정보가 차등적으로 들어와요. 비정규직 교수에게 공개된 정보도 강사들에게 공개하면 안 된다는 단서가 붙고요."

A= "학부의 한 영역에 소속되어 강의한 적이 있는데 여기 소속된 강사의 숫자가 100명은 넘었어요. 3~4년 전부터 매 학기에 선생님들이 없어졌어요. 갑자기 자르면 눈에 보이니까 순차적으로 잘라나간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근데 누가 없어진다는 걸 사실 느낌으로만 아는 거죠. 우리끼리 연락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공식적인 절차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내 지인이 잘렸는데 나는 아니구나, 이런 식으로밖에 알 수 없었어요." 


  
 이중적인 정체성의 문제 

마지막 조건으로 이중적인 정체성의 문제가 강사들의 노동을 비가시화하는 주요한 맥락이 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박사과정 학생이기도, 연구자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강사인 이중적인 정체성이 스스로를 노동자로 정체화 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물론 그에 앞서 이러한 이중성을 이용해서 불합리하고 열악한 노동조건과 처우를 개인들이 감당하도록 하는 대학의 노동구조가 있을 것이다. 

A = "일자리가 불안정하다는 것에 더해서 기본적으로 시간강사라고 하는 것이 소속감이 없어요. 자신을 시간강사인 노동자로 정체화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어요. 오히려 연구자로 정체화하는 경우가 많을 거예요. 여러 대학에 출강하고 있는 시간강사들이 한 대학에 소속된 구성원이라고 생각하기도 어렵고, 대학에서도 그런 소속감을 부여해주지 않아요."  

이처럼 단시간, 초단시간 일자리 노동자로 여러 대학을 떠돌면서 강의를 하는 시간강사들의 경우에 자신을 한 대학에서 노동하는 노동자라고 인식하기 어렵다. 비정규직 교수라는 형태로 한 대학에 소속되어 노동을 하더라도 계약기간이 정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위계적인 대학 문화라는 조건 속에서 자신의 노동조건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변화를 만들기란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이런 총체적인 문제 속에서 어떻게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을 만들 수 있을까? 인터뷰이인 두 사람에게 노조 활동을 하거나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물었다. 

A= "이런 어려움들 때문에 더 뭉쳐야 하는 건데, 정확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저 스스로를 소극적인 주체로 만드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두 인터뷰이 모두 앞으로 한 대학의 소속이라는 자격이나 소속감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 일을 지금 하고 있다는 교육 노동자로서의 접근을 통해 연대할 필요성을 덧붙였다.

"이 일을 노동으로 접근했을 때 노조가 훨씬 강해질 수 있을 것 같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조에 가입을 해야겠네요."

[국제안전보건기준비교검토] 독일 산업안전보건 체계가 한국 산안법전면계정안에 주는 메시지 ⑧ / 2019.06

[국제안전보건기준비교검토] 

 

 

독일 산업안전보건 체계가 한국 산안법전면계정안에 주는 메시지 ⑧

-더 넓고 참여적인 위험성 평가가 되어야 

 

 

조승규 / 회원, 반올림 활동가, 노무사 

 

 

산업안전보건 국제기준비교 연구팀에서는 2018년 9월부터 독일 산업안전보건법과 체계를 공부하면서, 한국 산업안전보건 체계가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여덟번째 글은 연구팀의 마지막 글로 독일의 위험성평가에 대해 다룬다. 

위험성평가, 한국에도 있지만

독일은 산업재해 사망 십만인율로 볼 때 한국의 6~7분의 1 수준(2015년 기준 한국 10.1 독일 1.5)밖에 되지 않는 나라이다. 이는 산업구조의 차이 등을 감안하더라도 너무나 큰 차이다. 어떻게 독일은 훨씬 안전한 일터를 만들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을 던지면서 지난 8개월 동안 우리 연구팀은 독일과 한국의 산업안전보건법을 비교해왔다. 독일 산업안전보건법 공부를 마치는 시점에서 보니, 독일과 한국의 차이는 크게 두 가지인 것 같다. 첫째로는 독일에는 한국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 제도들이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노동자 참여권을 강력하게 부여한 사업조직법이라든가, 사업장 산업안전보건 인력의 독립성을 규정해놓은 산업보건의 및 산업안전전문인력에 관한 법률 같은 것들이 이에 해당한다. 둘째로는 한국에도 있는 제도지만 독일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 기사로 다룬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범위와 사업주의 의무나, 이번에 다루는 위험성평가가 이 두 번째 경우에 해당한다. 



다양한 위험성을 평가할 수 있어야

구체적으로 보면 독일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위험성평가가 진행되는 것일까? 먼저 독일의 위험성평가는 한국보다 더 다양한 위험성들을 고려한다. 한국의 산업안전보건법은 위험성평가를 사업장의 '건설물, 기계·기구, 설비, 원재료, 가스, 증기, 분진 등에 의하거나 작업행동, 그 밖에 업무에 기인하는 유해·위험요인'을 평가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이 문구만 보자면, 그 밖의 유해 위험요인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모든 위험성을 평가할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 앞에 나열되어있는 건설물에서부터 작업행동까지의 요소만을 평가할 뿐그 이상을 다루지 못한다.

그에 비해 독일의 위험성평가 사례를 보면 훨씬 더 넓은 위험성을 고려한다. 아래 사례를 보면 평가항목 중 시간적 압박이 있는지, 일을 통한 성장가능성이 있는지, 자유롭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위험성은 한국에서는 아직 위험요소로 대두되지 않았기에 매우 생소한 것들이다. 이렇게 더 다양한 위험요소까지 살펴볼 수 있을 때, 한국의 위험성평가도 사업장의 전반적인 위험을 총괄하는 평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의 위험성평가 예시표

현장 노동자가 평가할 수 있어야

다음으로 독일의 위험성평가는 노동자가 평가주체가 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위험성평가 제도는 작업을 하는 현장 노동자가 위험성을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인식에서부터 출발했다. 그러므로 한국의 위험성평가 제도에도 노동자 참여가 들어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사업장 위험성평가에 관한 지침을 보면, 해당 작업을 하는 노동자의 참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참여하게 할 것'으로 규정되어 있어서, 참여를 배제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있다. 또 한 해당 규정은 노동자의 참여를 '유해·위험요인을 파악하거나 감소대책을 수립하는 경우'로 제한하고 있어서 위험성평가의 핵심인 위험성을 계산하고 그것이 현재 조치가 필요한 위험인지 결정하는 단계에서는 배제하고 있다. (참고로 이번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에서 노동자의 참여가 산업안전보건법에 명시되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것은 이 지침에 위임되어 있으므로 해당 지침은 반드시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독일은 이 연구팀의 세 번째 기사(http://omn.kr/1gr8f)에서 살펴보았듯이 노동자평의회를 기반으로 산업안전보건에 있어서 노동자의 참여권이 잘 보장되어 있다. 독일의 위험성평가 제도에는 별도의 노동자 참여 규정이 없으나, 실제 사례를 보면 '현장 작업자에 의한 평가'라는 위험성평가의 취지가 잘 구현되는 방식으로 평가가 진행된다. 위의 독일 위험성평가 사례를 보면, 현장 노동자는 위험성을 평가할 수 있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으며, 사업주는 제안한 대안이 타당하면 구체적인 이행대책까지 세우도록 되어 있다. 한국에서도 현장의 목소리가 잘 반영되도록 위험성평가 제도와 평가방식을 고안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국의 산업안전보건법이 더 나아가려면

독일의 산업안전보건법을 보면서 우리는 위험성평가 뿐 아니라 산업안전보건법 전체에서 기본정신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도도 쉽게 바뀌지않는데, 그 안에 있는 원리는 도대체 어떻게 바꿀 수 있는 것일까. 유럽에서 위험성평가를 도입하게 된 배경에는, 기존제도로는 더 이상 작업장의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진단이 있었다. 한국에서도 현행 제도로는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하는데 분명한 한계지점이 있다는 점을, 사회적으로 확인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연구리포트] 과로(사·자살),통치 기술의 산물이다 / 2019.06

[연구리포트]

 

 

과로(사·자살), 통치 기술의 산물이다

 

 

김영선 /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

 

 

개인적인 것? 문화적인 것?


과로(사·자살)를 ‘권력 장치’로 풀어내는 푸코주의 분석. 생경하지만 궁금증을 유발한다. 여기서 다룰 텍스트는 Governing Employees: A Foucauldian Analysis of Deaths from Overwork in Japan(Yoshio Shibata, 2012, Global Asia Journal, 12)로 저자인 요시오 시바타는 뉴욕시티대 문화인류학 박사로 현재 리츠메이칸대에서 사회학을 강의하는 연구자다. 논문을 세 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과로(사·자살)의 원인에 대한 문화적 설명과 개인에 기초한 설명은 권력 장치의 착취 효과를 은폐하는 결과를 낳는다. 개인환원론은 권력 문제를 탈각시
키고 문화적 설명은 권력 문제를 모호하게 흐려 버린다. 2) 완벽주의 성향 등의 개인적 특성이나 소속감 등의 문화적 태도 모두 사실은 ‘통치 기술’로서의 ‘작업장 장치’에 기인한 것이다. 3) 그 장치들에 관철된 통치 기술을 드러내 이에 대항하는 집합적인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저자는 “일본 노동자들은 왜 힘든데도 일을 계속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과중노동을 ‘회사 충성심’, ‘집단주의’, ‘소속감’때문이라고 여기는데, 과연 그런가?” 두 번째 반문이다. 마지막으로 완벽주의 성향이나 개인 선택·자발성으로 보는 개인 차원의 설명에 대해 비판한다. 일본 노동자는 회사에 ‘속해 있’는 것(belong to)으로 설명되곤 하는데, 대표적으로 로널드 도어(1982)는 일본 노동자가 회사에 추가 노동을 제공하려는 의지는 회사에 대한 소속감, 멤버십 동기에 따른다고 보았다. 이렇게 일본인에게 존재적인 것처럼 전제된 소속감이나 멤버십 동기는 일본인론(nihonjinron)과 연결된다. 일본인은 개인적인 것이나 전문가적 특성보다는 집단을 우선시한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인론이 많이 사그러들었음에도 이러한 문화주의 프레임은 과로 현상을 분석하는데 여전히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에 반해, 저자는 멤버십 동기나 소속감이 동원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문화주의 담론은 통상 어떤 에토스를 국민적 특수성으로 여긴다. 이런 프레임은 많은 경우 사회적 실재를 관통하는 권력관계를 간과하곤 한다. 그는 과로(사)가 집단주의나 공동사회적 응집성에 기인한다는 설명을 거부하면서, 문화주의 담론을 ‘관리 장치’의 일부라고 본다. 문화주의 담론은 과로(사) 현상을 정당화하는 관리 장치라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자발적 과로가 과로사의 원인일 수 있겠지만, 문화적 설명은 권력 작용을 놓치고 만다. 저자는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과중 노동을 권력관계 밖에 놓여 있는 ‘문화적인 에토스’로 설명하는 건 적절치 못하다고 비판하면서, 미셸 푸코(2003, 2007)의 통치성(governmentality) 개념을 가져와 관리 장치가 노동자들을 어떻게 죽을때까지 자발적으로 일하도록 내모는지를 분석한다. 여기서 통치성은 ‘품행의 통솔’로 ‘개인들이 무언가를 하게 유도하고 관리하는 방법’을 말한다.

‘전체적인 인간’ 그 자체에 대한 평가


일본 기업처럼 평가 기준이 암묵적이고 모호한 경우에, 사실상 평가 대상은 ‘전체적인 인간’ 그 자체가 된다. 노동자가 가진 능력이나 기술에 대한 것이 아니다. ‘사회성’, ‘일하려는 의지’, ‘열심’, ‘희생’, ‘회사에 대한 충성심’ 등의 모호한 기준들은 ‘삶의 태도’ 전체를 평가 대상으로 위치시킨다. 그렇기에 노동자는 회사를 중심으로 자신의 삶 전체를 조직할 것을 요구받는다. 이러한 기대들은 회사 모토나 계명, 로고송, 배지, 심지어 콘도나 명절 선물세트 등의 회사 의례나 상징적인 장치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유통된다.

그간 작업장에서 암묵적인 평가 장치로 역할을 한 건 일본인론이었다. 관리장치로서의 일본인론은 직무에 대한 교육보다는 ‘좋은’ 샐러리맨의 ‘바람직한’ 태도를 학습시키는데 집중했다. 신참자가 ‘회사 공동사회’에 소속감을 갖기를 바랐고 자신의 직업에 헌신을 다하면서도 집단에 충성을 다하길 유도했다. 일본인론은 일종의 ‘규범화하는 담론(normalizing discourse)’인 것이다. 규범화하는 담론은 판옵티콘적 효과를 생산하는데, 이는 노동자들이 언제나 감시 또는 평가되고 있다고 인식하게 만든다. 회사 밖 활동에서도 ‘열정적’이길 요구받고 노동자 스스로도 그런 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 판옵티콘적 시선의 확장이다. 이러한 규율 메커니즘은 일터의 모든 층위에 스며들어 있다. 여기서 개별 노동자는 권력의 대상인 동시에 권력의 행사자가 된다. 판옵티콘적 권력관계망은 하라스먼트의 주요 원인으로 작동한다. 가해자의 입장에서 정시 퇴근과 휴가 신청은 야루키(열정, 헌신)의 부족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물론 많은 하라스먼트의 사례에서 보듯이, 가해자 자신 또한 노무관리의 희생자에 불과하다. 기업들은 ‘의무’와 ‘자발적인 것’ 그리고 노동과 비노동 간의 구분을 흐리는 전략을 구사해 노동자들을 무급 초과노동으로 유도한다. 노동자들이 ‘자발적’이라 이름붙인 회사의 활동들에 참여한다는 것은, 기업이 아주 손쉽게 막대한 노동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노동자들의 과로(사)를 시켜서 그런 것도 아니고 ‘노동’으로 분류조차 할 수 없으며 관리감독 하에 있던 것도 아니라고 주장함으로써 과로(사)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거부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무급 초과노동을 유발하는 간접적인 관리기술은 매우 효과적인 노동비용 절감 수단이 된다. 이러한 노무관리 기술들은 간접적으로 작동하기에, 노동자들이 그 권력의 작동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든다.


동료 경쟁과 MBO

일본에서 판옵티콘적 시선은 철저한 동료 경쟁을 통해 설계된다. 동료 경쟁은 노동자들이 게임에 참여토록 하는 의지를 발휘하게 하는 신자유주의적 통치 기술이다. 노동자들은 동료 경쟁의 과정에서 게임에 승리하기 위한 방법으로 서비스잔업이나 충성심, 소속감을 멤버십 쌓기의 일환으로 여기고, 그것을 증명하려 한다. 물론 멤버십의 기준이 명료하지 않기에, 동료 경쟁의 한계는 따로 없다. 은행원을 대상으로 한 요코타 하마오(1997)의 연구는 노동자들이 서비스잔업 같이 
‘자기 희생’을 전시하는 게임에 참여하는 풍경을 보여준다. 실제로 평가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들이기에, 노동자들은 타자의 평가적 시선에 상당히 민감하게 되고 의식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일종의 ‘인상 관리’를 위한 ‘연극적’ 행위인 것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경쟁 게임이 노동자를 ‘통치될만한’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다고 지적한다. 개별 노동자는 경쟁에서 이길 때도 있겠지만, 게임의 판에서 노동자는 또 다른 경쟁에 배치될 뿐이라는 것이다. 혹시 누가 경쟁 게임에 거부감을 가지더라도 그 게임에서 발빼기는 어려워진다. 경쟁에서의 이탈은 ‘불행’으로 미디어화되어 있기에 ‘추락의 공포’는 더욱 경쟁 게임을 추동한다. 한편, 1990년대 중반 이후 새롭게 부상한 경영 담론은 정규 고용을 줄일 것, 연공성을 줄일 것, 결과중심적인 평가체계를 구축할 것, 노동자의 책임성을 중시할 것, 전지구적 경쟁에 맞선 창발성과 성과평가 등을 강조했다. 새로운 경영담론은 자기주도성, 자립성, 위험감수, 결과에 대한 책임성 등을 내세워 복지국가에의 의존문화(culture of dependency)를 공격했던 대처, 레이건의 기업문화 담론과 상당히 흡사하다. 일본의 경영담론 또한 안정성으로 상징됐던 정규 노동자의 것들을 ‘의존성’으로 규정하고 제거되어야 할 것으로 공격해 나갔다. 개인의 자율성을 최대한 끌어내고 자신을 스스로 통치하게끔 만드는 새로운 방법으로 성과지향적인 평가체계가 도입됐는데, 대표적인 것이 목표관리(Management By Objective, MBO)다. MBO는 (1) 개인별 특정 업무를 연차별, 분기별, 월별로 구체화하고, (2) 업무 목표의 성취도를 수시로 평가하며, (3) 기업목표와 연계해 개인 업무목표를 설정하고, (4) 업무 목표를 수량화해 기업이익과 연결하는 것이다. 여기서 노동자들은 연공성에 기대지 않는 ‘기업가적’이길 요구받는다. ‘책임있는’ 사람으로서, 할당된 직무 목표를 성취해 나가는데, 실패에 따른 결과(낮은 임금, 심지어 해고까지)를 수용해야 한다. 회사를 비난하는 게 아니고! 노동자들은 이익과 비용을 스스로 계산하도록 또한 더욱 높은 직무 목표를 달성하도록 요구받는다. 업무 성과의 실패는 자기 통치의 실패와 연관되어야 한다.
MBO는 ‘자아 기술’을 도입한 통치 기술의 전형이다. (1) 직무 목표를 확인하고, (2) 어려운 목표를 성취하게 하며, (3)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4) 목표 달성에 실패하면, 비난을 감수하고 책임을 져야하며, (5) 도전 목표를 달성하면, 다음 라운드에선 더 높은 목표치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장치는 ‘무리한’ 목표까지도 수용케 할 수 있다. 만약 쿼터를 달성하지 못해 그에 따른 손실을 노동자 개인이 감수하도록 하는데, 실업의 공포가 일상화된 맥락에서는 초과노동의 수용이나 책임성을 높이는 기제로 작동한다.

또한 노동시장이 분절되어 있고 자본의 분할 지배 전략이 구사되는 맥락에서 노동자는 잔업을 더 해야 하는 압력에 내몰린다. 비정규 노동자 또한 정규직이 되려면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 압력을 받는다. 노동가격을 낮추는 경쟁 압력, 즉 노동 덤핑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과로(사·자살)로 내모는 권력 장치의 효과를 문화적인 것, 개인적인 것으로 오독하지 말아야 할 것을 주문한다. 권력 장치의 효과로 외화된 장시간 노동만을 문제화하는 접근 또한 작업장에 가로지르는 권력 장치의 폭력성을 대면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문제의 해결은 작업장에 관철된 통치 기술들을 문제화하지 않고서는 어렵다. 저자는 통치 기술에 대항하는 집합적인 대응수단을 마련해 투쟁을 전개해야 함을 강조한다.

특집3. 중대재해 트라우마 대응 실태와 개선 방향 / 2019.06

[노동자의 힘으로 중대재해 막아내자] 

 

 

 중대재해 트라우마 대응 실태와 개선 방향 

 

 

장경희 / 회원, 충남노동인권센터 노동자심리치유사업단 두리공감 상임활동가 

 

 

책임을 전가, 축소, 은폐하려는 가해자

중대 재해 그 자체로도 그렇지만, 중대 재해 이후 트라우마를 바라보는 태도와 시각은 천차만별이다. 최근 충청남도 모 대기업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 이후 트라우마 예방을 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트라우마 예방을 위한 노사 간의 합의과정도 그렇지만, 합의 이후 회사와 근로복지공단의 태도에는 기가 막혀 분노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트라우마 예방 활동을 위해 고용노동부가 지정한 기관 중 하나였지만, 회사는 두리공감을 배제하고 싶어 했다. 배제하려는 마음이야 전부는 아니어도 일부는 이해하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예의 바르게 배제하고 싶어 했던 과정에서 확인된 회사의 태도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이 사람들은 직접 목격자가 아닙니다.” “저 사람들은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인데 힘들다고 합니다.” “근로자들은 어떻게든 놀고 싶어 하기 때문에 자기 보고식 설문지는 신뢰할 수 없습니다.” “고용노동부 트라우마 매뉴얼에는 2, 3차 피해자에 동일 부서를 명시한 적이 없습니다.” “그 많은 사람을 다 만나봐야 한다면 공장은 누가 돌립니까?”

모르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과오로 발생한 사건에서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그것의 직간접 피해가 퍼지고 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책임을 전가하고 축소하고 은폐하려는 시도는 분명한 죄다. 더불어 불특정 다수에게 낙인을 찍어 원래 그들은 문제가 많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형적인 가해자 레퍼토리다. 중대 재해 사망사고 현장에서 우리가 만난 대부분의 회사는 위와 같았다. 위 사건 당시 회의에 참석한 근로복지공단 담당자는 회사의 말이 맞다는 말 외에는 하지 않았다.

 

고통의 근원을 모른 채 자신을 탓하는 피해자

반면, 중대 재해를 경험하거나 동료의 처참한 죽음을 목격한 노동자들은 스스로 죄인이 된다. ‘내가 좀 더 일찍 발견했더라면’, ‘내가 혹시 스위치를 잘 못 누른 것은 아닌지’, ‘평소에 문제가 많았던 곳인데 주저하지 말고 개선을 요구하며 싸웠더라면’ 등이 첫 번째 동료의 죽음을 대하는 살아남은 동료들의 마음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찾아오는 죄책감, 두려움,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다. 차라리 이 상황을 만든 회사에 분노하며 고함을 치고 통곡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인 것이다. 동료와 자신이 당한 이 비참한 고통을 고스란히 가슴에 묻으며, 일상의 공포를 재경험하면서도 가
해자들의 지시를 받으며 일하고 살아내야 한다.  자신이 느끼는 고통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불면의 밤을 지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못난’ 자신을 탓한다. 이것이 트라우마다.

 

정부의 중대 재해 트라우마 대응 실태와 문제점

고용노동부는 2017년 ‘산업재해 트라우마 관리 프로그램 운영 매뉴얼’을 만들고 현재는 직업적 트라우마 전문 상담센터까지 운영하고 있다. 중대 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에 트라우마 위기에 대한 검토를 거쳐 고용노동부가 사업주에게 트라우마 프로그램 시행 명령(권고)을 내리게 된다. 그러면 사업주는 각 지역의 근로자건강센터, 직업적 트라우마 전문 상담센터 등과 연계하여 재해의 직간접피해자를 대상으로 트라우마 관리 프로그램을 시행하게 된다. 노동 현장에서 물리적으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고들과 그로 인한 신체적 손상, 사망 등에 대한 대응에서 정신적·심리적 대응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실행한다는 점에서 진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매뉴얼 시행 이후 많은 중대 재해 사업장에서 실행돼 왔다. 반면 매뉴얼과 그 시행과정에서 몇 가지 한계와 문제 들도 나타나고 있다.


첫째, 중대 재해 사건 처리 자체와 트라우마 예방 프로그램의 분리 문제다.


자연재해나 사회적·인적 재난의 원인, 사건처리 절차 및 과정, 재발위험의 방지와 안전대책 등이 심리적 위기 수준에도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중대 재해 현장에서는 이러한 통합적 접근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안전의 확보”라는 것은 사고 위험으로부터의 안전, 사고를 재경험하도록 만드는 장소·사람 등으로부터의 안전, 자신이 경험한 피해를 제기하고 시정을 요구하며 사고위험을 인식했을 때 배치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로서의 안전을 모두 포함한다. 또한 사건처리 과정 전반에서 노동자들의 참여를 보장하고 처리 결과에 동의 여부를 묻는 것은 원칙적 절차를 넘어 통제권과 자율성의 회복이라는 심리적 위기를 완화하는 주요한 기제가 된다. 하지만 고용노동부 매뉴얼에는 이와 같은 관점이 결여돼 있다.

중대 재해 사고와 트라우마 예방 프로그램을 종합적으로 안내하지 않는 문제가 나타난다. 사고의 원인과 처리 과정과 더불어 트라우마 예방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지, 누가 오는지 등을 전혀 안내하지 않는다. ‘해 주는 거니까 잠자코 해’라는 식이다. 당사자인 노동자들의 결정권과 통제권을 빼앗아 오히려 위기를 부추기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두 번째, 트라우마 예방 프로그램 자체의 한계다.

고용노동부 매뉴얼은 중대 재해 직후 직간접 피해자들에 대한 사건충격도 검사를 거쳐 고위험군에 대한 상담 및 전문기관 연계 등을 밝히고 있다. 많은 전문가가 주장하듯이 외상을 경험한 사람들의 심리적·정신적 고통의 수준을 객관적 지표로 측정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사람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증상과 발현 시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이 갖는 효과성을 확인하기 위해 사전 사후 검사가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되어선 안 된다. 심리상담의 경우도 각 지역의 근로자건강센터가 확보한 상담 인력의 부족, 1개소뿐인 직업적 트라우마 전문 상담센터 등의 한계도 있지만, 심리 상담만으로 급성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는 역부족이기 때문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전문치료기관 연계가 매뉴얼에 나와 있으나 그에 따른 비용이나 시간 등을 노동자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시스템도 개선이 필요하다.

세 번째, 사고의 원인을 제대로 밝히고, 철저한 현장 개선으로 안전한 현장을 만드는 과정이 트라우마 예방매뉴얼에 포함되어야 한다.


트라우마 예방을 위한 위기 개입은 보통 1개월에서 3개월 단기개입으로 이뤄지며, 고용노동부 매뉴얼 역시 그와 같은 기간을 명시하고 있다. 이 경우 두 측면의 대책이 세워져야 한다. 우선 트라우마 예방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기간에 철저한 원인 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처벌, 완전한 현장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트라우마를 완전히 예방할 수 없다. 다음으로 설사 위와 같은 개선이 모두 이뤄지더라도 이미 발생한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 증상들이 이후에도 계속될 경우 치료방안이 수립되고 제공되어야 한다. 급성스트레스 증상이 2개월 이상 경과되면 외상후 스트레스로 봐야하며 이는 보다 더 전문적이고 지속적인 관리와 치료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현재의 매뉴얼에 이 같은 내용들이 빠져있다.

마지막으로 트라우마 위기의 완전한 극복은 “신뢰”를 통해 이뤄진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분명한 가해자, 외부로부터의 위해적 상황 등은 ‘신뢰의 상실’을 초래한다. 중대 재해를 경험한 피해 및 생존자들은 회사와 정부기관을 불신하며 때로는 자신을 보호해주리라 기대했던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신뢰를 잃는다. 세상과 주변이 절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중대 재해 트라우마 예방에서 중요한 고리는 피해자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피해 및 생존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제대로 사과하며 그들의 요구를 알아차려 수용하고, 안전을 위해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그들에게 돌려주는 것이야말로 신뢰 회복의 실마리다. 이러한 과정이 트라우마 치유의 핵심이라고 하는 ‘사회적 지지’의 시작이다. 사람이 죽을 수 있는 노동은 이미 강제노동이다.

자동차 자율 안전주행처럼 소비자 또는 고객의 안전을 위한 기술은 나날이 발전한다. 하지만 그 소비자가 노동자로 살아가는 현장에서의 안전은 답보상태이거나 후퇴하는 듯하다. 그러니 관점과 태도의 문제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위험한 일을 하는 노동자이기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이기 때문에 죽게 된다.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 개인의 힘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이나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의 예방은 노동자가 죽지 않고 일하는 구조를 바꾸는 과정과 함께 가야만 한다.

 

<일터> 통권 184호 / 20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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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 2019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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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노동자의 힘으로 중대재해 없는 일터 만들자

1. 중대재해, 당장멈춰!

2. "중대재해 없는 사회, 부산 엘시티 사고를 다시 기업해봅니다"

3. 중대재해 트라우마 대응 실태와 개선방향

[지금 지역에서는]

경기지역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 개최

[국제안전보건기준에 관한 비교 검토 연구]

독일 산업안전보건 체계가 한국 산안법 전면개정안에 주는 메세지

[연구리포트]

과로(·자살), 통치 기술의 산물이다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강사는 왜 '노동자'가 되지 못하는가?

[사진으로 보는 세상]

[현장의 목소리]

공항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인력 부족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동료의 죽음을 안고 시작한 노안 활동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소설은 땀을 흘린다-노동문학선집 <땀 흘리는 소설>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미운 오리도 산재가 되나요?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

ILO협약 비준을 추진한다는데···

[노동자 건강상식]

대상포진

[문화읽기]

연극 <은하계 제국에서 랑데부>

[발칙 건강한 책방]

, 조선소 노동자를 읽어야 할 이유

[이러쿵 저러쿵]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삶을 꿈꾸며

[안전보건동향]

[한노보연 이모저모]

특집1. 중대 재해, 당장 멈춰! : 당장멈춰TV 제작팀 대담 / 2019. 06

[노동자의 힘으로 중대재해 없는 일터 만들자①]

 

 

중대 재해, 당장 멈춰! : 당장멈춰TV 제작팀 대담

 

 

박기형 / 상임활동가

 

 

*대담 참여자: 푸우씨(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당장멈춰상황실), 미디어뻐꾹, 이태진(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노안부장), 손익찬(법률사무소 일과사람)
*진행 및 기록: 박기형(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당장멈춰상황실


무더위가 일찍 찾아온 지난 5월 중순. 일요일 오후의 더위를 견디며, 사무실 한쪽에서 당장멈춰TV의 유튜브 영상 촬영이 진행되었다. 중대 재해와 작업중지(권)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최근 태안화력발전소, 한화 대전공장, 제천화학공장, 한솔제지 장항공장 등에서 중대 재해가 발생했다. 산업 재해로 인한 사망사고와 화학물질 누출 및 폭발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사고 발생에 관한 소식만 전해질 뿐, 현장에서 사고 발생 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사고 이후 재발방지 대책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는다. 이런 한계를 넘어서, 모든 일하는 이들이 스스로 중대 재해의 위험에 대처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당장멈춰TV 제작팀을 만나, 중대 재해 대응에 관한 대담을 나눴다.


소개 부탁드립니다.

푸우씨: 저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당장멈춰 상황실 멤버로, 미디어뻐꾹과 함께 유튜브 콘텐츠인 "당장멈춰TV"를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당장멈춰 상황실을 중심으로 작업중지권의 실효성을 갖추기 위한 노력해왔는데요, 현장에서 노동자 스스로 작업장 내 위험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미디어뻐꾹: 당장멈춰TV는 일하는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기 위해서 관련 정보를 드리는 국내 유일의 노동안전보건 전문 프로그램입니다. 당장멈춰TV 시즌1에서는 노동안전보건 의제 중 중대 재해와 작업 중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분이 당장멈춰 상황실에서 고민하고 정리한 내용을 접할 수 있도록 하고자 영상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최근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작업중지와 관련한 조항이 수정 및 신설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간략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태진: 작년 태안화력발전소 고 김용균님이 중대재해로 돌아가신 이후, 중대재해 재발방지를 위한 투쟁이 거세게 일어났었죠. 이를 계기로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이 전면 개정되었죠. 개정 이전 산안법 제26조에서 근로자의 작업거절을 규정하면서, 작업중지 및 대피 등 필요한 조처를 할 것을 사업주의 의무로 두었죠. 이번 전면개정안에서는 제26조 제2항을 분리하여, 제52조(근로자의 작업중지)로 신설하면서, 작업중지 및 대피가 사업주의 의무를 넘어 노동자 스스로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즉시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는 권리가 명확히 규정되었습니다.

손익찬: 개정 이후 사업주뿐만 아니라 근로자가 작업중지권의 행사 주체로 인정되었다는 점에서 진전된 측면이 있어요. 하지만 여전히 근로자의 작업중지 행사 요건과 관련해 모호한 부분이 많고, 하위법령도 없어요. 특히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가 가장 논쟁적이죠. 위험성 판단이 노동자, 사업주, 고용노동부, 법원 사이에 상이할 수 있어요. 이를 사용자 측이 악용할 경우, 위험하지 않은 상황이라 주장하며, 업무방해로 작업중지한 노동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어요. 더욱이 고용노동부가 해당 요건에 대한 예시 규정으로 든 것들이 재래형 안전사고에 국한되어 있어서, 작업중지를 할 수 있는 실질적인 범위가 여전히 제한될 수 있는 우려도 있죠. 작업중지 강화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제52조와 관련한 구체적인 요건과 절차, 즉 시행령, 시행규칙이 마련될 필요가 있어요.

 

유투브 채널 '미디어뻐꾹'에서 운영 중인 당장멈춰TV

작업중지가 노동자의 권리로 규정되었다고는 하지만, 말씀해주신 것처럼 실제로 작업중지를 행사하는 데는 여러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요.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중대재해 대응 시 맞닥뜨리는 문제는 무엇인가요?

푸우씨: 무엇보다 노동자들이 중대재해 발생 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잘 모른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이에요. 이는 대응 경험이 파편화·개별화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형식적인 수준에서라도 대응 매뉴얼을 갖춘 곳도 없고, 실제 대응 경험도 적죠. 비정규직의 증가가 이런 상황을 악화시켜요. 비정규직은 작업장 내 위험을 거의 공유 받지 못해요. 그러니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죠. 이 때문에 대응하기 점점 어렵게 되는 거예요.

이태진: 빈번히 사고가 일어나는 곳들이라고 해도, 작업장의 일상에서 안전사고에 대해서 보고·관리하는 시스템이 없는 곳이 대부분이에요. 그러다 보니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해당 사업장에서만 일어난 일들로 치부되면서, 대응 경험이 공유되거나 축적되지 못하는 거죠. 사고 상황 자체도 다른 사업장에 전파되지도, 해당 산별 노조에 공유되지도 않는 상황이니까요. 그래서 다른 사업장에서 동종유사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그에 대한 조사나 대처 등의 조치가 체계적으로 이뤄지기 어려워요. 그러니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몰라 우왕좌왕하게 되죠.

미디어뻐꾹: 언론에서도 중대재해 대응 과정에 관해서는 관심이 거의 없죠.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죠. 이는 중대재해 대응 과정에 대해 알려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사고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단신으로 처리되면서, 순식간에 잊히는 상황이잖아요. 사고가 이미 일어났으니 어쩔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기도 한 거 같아요.

손익찬: 대응 경험이 축적되지 않으니까, 작업중지를 행사할 수 있는 역량도 높아지지 않는 것 같아요. 사고가 일어난 후, 작업중지하고 진상조사에 들어가고 안전보건 조처를 하는 등 일련의 과정에서 노동자들 스스로 작업중지와 개선요구를 권리로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것이잖아요. 하지만 중대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우왕좌왕하는 상황이 반복될 뿐이죠. 사고가 일어나도 재발 방지를 위한 개선 조치는 제대로 취해지지 않고, 노동자들은 작업중지권을 권리로 인식하지도, 행사할 역량을 축적하지도 못한 채 위험 상황에 여전히 노출되는 악순환이 지속하는 것 같아요.

미디어뻐꾹: 중대재해 중 여전히 재래형 안전사고가 계속되고 있지만, 최근 산업구조 변화로 화학물질 누출과 관련한 안전사고도 증가하는 추세잖아요. 하지만 삼성반도체처럼, 영업비밀이라고 화학물질 정보를 숨기는 경우가 많죠. 이게 중대재해를 은폐하고 재발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화학물질 누출 및 폭발 사고는 지역 사회에도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죠. 노동자뿐만 아니라 시민 안전을 위해선 알 권리가 보장되어야 해요.

작업중지의 발동 및 해제가 제대로 이뤄져야 하는 것만큼, 사고 당사자와 동료들의 복귀 및 치유도 중요한 문제잖아요. 이에 대한 대처 및 관리가 잘 되고 있나요?

이태진: 삼성중공업 타워크레인 사고 이후 트라우마를 비롯해 노동자들의 복귀 및 치유의 문제가 주요한 의제로 떠올랐죠. 이에 따라 정부도 근로자건강센터를 중심으로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신체적·정신적 건강과 관련한 재활·치료의 체계가 제대로 갖춰진 상황은 아니에요. 현재 근로자건강센터가 충분한 시설과 인력, 적합한 프로그램을 갖추지 못한 상황이에요. 보다 근본적으로는 노동자의 치유와 복귀가 근로자건강센터만의 몫인지도 물어야 할 필요가 있어요. 사업장 내 다른 노동자나 회사, 그리고 해당 사업장이 위치한 지역 차원에서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관점에서 점차 시스템을 갖춰나갈 필요가 있어요.

푸우씨: 이에 더해, 사고 현장에 있던 분들을 피해 자화하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어요. 상담·치료가 트라우마 치유의 전부가 아니니까요. 작업장 자체가 안전해져야만, 제대로 된 복귀가 가능하죠. 이를 위해서 사고의 당사자들도 진상조사과정과 개선 및 예방 조치 마련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해요. 피해자로 대상화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손익찬: 사회에서 어떤 권리를 인정받는 것은 매우 중요해요. 권리를 얻게 되면,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 점에서 중대 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작업중지권이 사업주의 의무뿐만이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로 명확히 자리 잡을 수 있어야 해요. 그리고 모든 일하는 사람들이 이것을 자신의 권리로 인식하고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어야죠.

이태진: 결국 중대 재해에 체계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작업중지권이 제대로 보장되어야 하고, 작업중지를 행사하는 과정에서 중대 재해 대응 경험이 축적되고 공유되어야 해요. 그 한 방법으로 중대 재해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볼 수 있겠죠. 앞으로 당장멈춰 상황실에서 그런 시도를 해보려 합니다.

미디어뻐꾹: 저도 과거에 그랬지만, 작업중지를 할 수 있다는 사실과 작업중지가 정당한 권리라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당장멈춰TV 시즌1을 시작한 것이죠. 9화로 시즌1이 마무리되는데, 이후에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와 함께 노동안전보건 이슈 전체를 다뤄보고 싶어요.

푸우씨: 중대 재해 재발방지와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들어 가는데, 당장멈춰TV와 당장멈춰 상황실이 함께 노력해나가야죠. 같이 힘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