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일터 통권 196호 / 2020.06

[특집] 코로나19와 K-방역
1. 노동안전보건의 경계를 허무는 전장, 노동자성 인정
2. 법이 허용해온 노동권 사각지대, 특수고용노동자
3. 단결권 보장을 통해 만들어갈 노동권 사각지대의 노동운동

[지금 지역에서는] 

여전히 반복되는 사법기관의 솜방망이 처벌

[일터 정신질환 짚어보기]

업무상 정신질환 여부, 어떻게 결정되나

[연구리포트] 

한국 임금노동자의 장시간 노동과 자살 연구

[동아시아 과로사 통신]

코로나 재난과 공무원 과로사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사회복지사는 왜 착하고 희생적이어야 하나요?

[현장의 목소리] 

집단 안질환에 대한 회사의 조치는 ‘작업용 고글’이 전무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아프면 쉬고, 예방은 과도하게

[문화로 읽는 노동] 

자본주의 발전 시기 여성노동의 면면을 드러내다 :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약정을 통해 배제할 수 없는 노동자 건강권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與]

직업성 정신질환 승인 후 업무 복귀 시 사업주 조치의 중요성

[노동자 건강상식]  

감염병과 백신 개발

[발칙 건강한 책방]

“변방의 자리에서 다른 세계를 상상하다”

[이러쿵 저러쿵]

노동자의벗, 산업안전보건법 세미나를 돌아보며

[안전보건동향] 
[한노보연 이모저모]

 

issuu.com/kilsh2003/docs/2020_6_-_

[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약정을 통해 배제할 수 없는 노동자 건강권 / 2020.06

[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약정을 통해 배제할 수 없는 노동자 건강권

 

 

박승권 / 후원회원 

 

 

사업장 환경안전 담당자에게 작업환경이나 작업 조건에 대한 건강상 위험을 조언할 때면 '걔네 받는 돈이 얼만데요~' 식의 답변을 듣는 경우가 가끔 있다. 

이는 나름 풍족한 급여 혹은 추가적 급여로 대우받는 노동자의 건강권에 대하여는 더 관대하게 대해도 괜찮다는 것, 느슨하게 보호하는 게 타당하다는 것처럼 들리곤 한다. 

그런데 일반인이나 심지어 노동자 본인마저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노동자의 건강권은 급여 혹은 기타 가치와 교환 가능할까?


건강을 교환할 수 있는가? 

'교환이 가능할 수 있다' 생각이 드는 것은 우리나라 민법이 계약자유의 원칙을 기초로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흔히 사인 간의 관계에서 '당사자 간 좋으면 그만'이라는 식의 사고에 빠지기 쉽다. 

아울러 위험, 생명 수당이라거나 최근 이슈가 되었던 폭염, 혹한 수당 등이 급여를 구성하는 항목임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얘기가 더더욱 그럴듯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다소 잘못된 생각이다.

헌법에 모든 국민은 노동의 권리를 가지며 노동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정해져 있다. 헌법재판소는 '노동자의 건강권'에 대해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기초가 되고 국가의 보호 의무가 인정되는 기본권이라고 판시했다.(2016헌바77)

많은 법학자들은 이러한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민법 103조(사회질서에 반하는 내용의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의 적용을 받는다고 본다.

정리하자면, 약정한 노동조건을 통해 헌법상의 권리로 인정되는 이른바 노동자의 건강권을 침해할 정도가 사회질서를 위배할 수 있는 수준일 때 그 법률행위는 '무효'가 되는 것이다.

반사회적 행위에 대한 민법 제103조의 '무효의 예'를 다소 극단적으로 상정해보면, 드라마나 영화에서 등장하는 '신체 포기각서'를 쓰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엄연히 사회의 올바를 풍속을 해치는 행위로서 사회질서에 반하기 때문에 '무효'(처음부터 효력을 인정하지 않기에 취소와 다른)인 것이다. 

그렇다면 사후 건강권, 쉽게 말해, 업무에 기인한 건강 문제가 발생한 후에 보상을 요구할 권리는 사전 고용계약으로 배제하는 것이 가능할까?



산재보험의 목적

이에 대한 설명은 더 간단하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노동자가 업무상 부상 또는 질병에 걸릴 경우 사용자가 요양비나 휴업급여 등을 부담해야 하는데 근로기준법은 강행법규라서 당사자 합의로 적용 배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즉, 사적자치를 기본권 보호를 위해 어느 정도 배제한다는 의미인데, 이는 퇴직금을 월급에 포함하거나 받지 않기로 맺은 약정이 무효인 이유와 비슷한 성격이다.

산재보험 목적 또한 그 맥락을 같이 한다. 흔히 산재보험의 목적을 노동력 훼손에 따른 손실 보상을 실현하는 것만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산재보험은 잘못을 따지지 않고 보장하는 사회보험이다. 

더군다나, 적용 대상 노동자 모두가 당연 가입되며 이들의 최소한의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한 생활 보장적 성격이 점차 강해지는 것이 그 특징이므로 약정에 의해 배제하는 것이 당연히 불가능하다.


일할 환경에 대한 권리

헌법재판소 판결에 따른 헌법상 노동의 권리는 '일할 자리에 관한 권리'만이 아니라 '일할 환경에 관한 권리'도 함께 내포하고 있는데 이에는 건강한 작업환경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도 포함한다. 

또한 그 권리는 급여나 직급은 물론, 사업장의 규모, 업종 등에 상관없이 모두가 누려야 할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권리이므로 그 수준에 차등을 둘 수 없다.

위험수당 등은 노동을 수행함에 있어 조건 자체가 일반적인 때보다 특수하다고 인정되어 관행적으로 지급되는 상여금의 한 종류일 뿐이다. 이러한 성격의 수당이 노동자의 기본권 보호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팍타 순트 쎄르반다(Pacta sunt servanda)'라는 매우 유명한 로마법 법언은 '맺은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건강권을 침해할 수 있는 약속은 서면이건, 구두건, 묵시적 합의건 그 절차를 불문하고 애초에 약속의 대상 자체가 될 수 없으므로 약속을 지킬 수 없다.

[현장의 목소리] 집단 안질환에 대한 회사의 조치는 '작업용 고글'이 전무 / 2020.06

[현장의 목소리] 

 

 

집단 안질환에 대한 회사의 조치는 '작업용 고글'이 전무

 

 

이숙견 / 상임활동가 

 

 

연구소 상임활동을 하면서 여러 현장의 식당을 가 본 경험이 많았다. 주로 부산울산경남지역의 현장이었는데, 그중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식당은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맛이 좋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현대자동차 노동조합과 함께했던 노동강도 평가 사업이나 간부 교육 등으로 울산공장을 방문하였기에, 매일 3만 명이 넘는 노동자(많게는 4만~5만 명 이상)의 아침, 점심, 저녁을 책임져야 하는 식당 노동자의 작업환경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진 못하였다.

2020년 4월 22일, 금속노조 울산지부 현대그린푸드울산지회는 14명의 노동자에게 집단으로 발생한 안질환의 원인 규명과 노동조건 개선 요구와 함께 회사의 탄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였다. 무엇이 14명의 노동자에게 집단적인 안질환을 발생시켰는지, 한 달이 지난 현재는 어떠한 상황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지난 5월 26일 금속노조 현대그린푸드울산지회를 방문하였다. 마침 노동조합 상집간부 회의로 지회장님과 다른 간부들도 만날 수 있었다.


집단적 안질환이 발생되기까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은 22개의 식당이 운영되고 있으며 5개의 섹터로 관리되고 있다. 회사는 주)현대그린푸드로 현대백화점그룹의 계열사이다. 이번 안질환이 발생한 식당은 52공장 식당으로 지난 2월부터 3월에 걸쳐서 14명의 작업자가 각막 손상, 그로 인한 안구 건조증, 눈물 흘림, 비비면 멍이 드는 안질환으로 연·월차를 내고 자비로 안과 치료를 받아오다가 이러한 사실을 인지한 조합원이 노동조합에 제보하여 알려지게 되었다. 52공장 식당에서 집단 안질환이 발생한 원인은 무엇인지, 기자회견 이후 노동부의 원인 규명 조사는 어떠했는지 물었다.

"현대자동차에서 사용하는 식판은 폴리카보네이트를 원재료로 사용하는 플라스틱 식판이기에 깨끗하게 씻어도 식단의 종류에 따라 식판에 음식 얼룩이 남는 경우가 있어요. 실제 락스와 세제를 혼합하여 사용하지 못하지만, 52공장 식당은 식판 침지세척 과정에서 락스를 세제와 함께 사용하였고 식탁 청소 시에도 락스를 사용한 것으로 제보되었죠. 이 과정에서 발생한 유해가스로 인하여 집단 안질환이 발생한 것으로 보여요."

"노동조합에서는 14명이 집단발병하였기에 중대재해로 보고,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하였으나, 고용노동부는 근로감독관 1명을 파견하여 단독으로 피해자를 면담하는 등 형식적인 현장 조사를 했어요. 실제 현장 조사과정에서 노동조합은 연락을 받지 못해서 참여조차 하지 못했죠. 그러다 보니 안질환이 발생했던 당시 작업조건-환기 시설, 작업장 온도, 락스의 비율 등-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노동부의 1차 조사에서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에 노동조합은 노동부를 방문하여 항의 면담을 하였고, 노동부는 어쩔 수 없이 6월에 2차 역학조사를 하기로 한 상황이에요."

울산공장 식당에서 일하는 작업자는 약 830여 명이다. 8시간을 일하는 정규직 조리원이 340명이고, 단기 작업(4~6시간)자인 조리 보조원이 약 340명, 관리자인 조리사가 120여 명으로 구성되어있다. 현대그린푸드 울산지회는 2018년 8월 26일 창립하였고, 대부분 조합원은 정규직 조리원이다. 이번 안질환의 피해자는 대부분 비조합원으로 노동조합이 이번 사건에 대하여 대응을 하자 회사에서 탄압과 입막음을 해왔다고 주장했다. (현대그린푸드 측은 그간 언론보도를 통해 압박, 회유 등 제기된 문제에 대해 "노초 측 주장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편집자 주) 노동조합이 제보를 받고 현장조사를 하자 회사는 어떠한 행동을 하였는지, 안질환 피해자 14명은 산재 신청을 했는지 물었다.

"회사는 노동조합이 이 사건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자마자 '노동조합에 이야기해서 일을 크게 만드냐?'며 제보자 색출에 들어갔고, '누가 물어보면 다른 말 하지 말고 마스크를 써서 그렇다'라는 답변 강요와 함께, 조합원을 1:1로 면담하여 근태복원과 치료비를 회사가 부담하겠다며 회유와 협박을 했어요. 그리고 현대자동차 환경보건팀이 득달같이 52공장을 방문하여 식판 등 잔류물 조사를 자체적으로 하여 잔류물이 없었다는 결과와 함께, 락스 희석농도 적절, 배기 닥터 정상작동, 에어컨 바람이 세서 환기가 안 된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라며 노동부 울산지청에 보고했지요. 결국, 노동부의 1차 현장조사는 회사의 급박한 조치가 이루어진 상태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피해자들이 대부분 비조합원이기에 회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회사의 1:1 면담, 관리자의 압박은 개별 노동자와 조합원에겐 큰 부담이었어요. 치료를 받았지만, 개인 근태로 처리하거나 자비로 부담하였기에 조합 차원에서 피해자의 협조가 없으면 근거자료를 확보하기가 어렵죠. 결국, 현재 산재 신청을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집단 안질환 발생 외 안전보건 의제

노동조합은 기자회견을 통하여 회사에 5가지의 요구안을 제시하였다. 첫 번째는 중대재해자 14명 전원의 산업재해처리와 인정, 두 번째는 식당에 사용 중인 저가형 세제 사용 중단과 식당 노동자와 현대차 조합원의 건강권을 고려한 친환경 세제 전면교체 및 애벌 세척기 도입, 세 번째는 식판 심지 세척과 식탁 청소 시 락스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에탄올 대체 요구, 넷째는 환경호르몬 논란이 되는 플라스틱 식판을 스테인리스 식판(STSS304)으로 교체, 마지막으로 그동안 장시간에 걸쳐 유독가스에 노출된 작업자들에게 특수건강검진 실시와 노조가 추천한 전문위원이 포함된 공동조사와 긴급 노사협의회 개최이다. 기자회견 이후 현장은 얼마나 달라졌는지, 이번 안질환 이외의 노동자 건강권 문제는 무엇이 있는지 물었다.
 
"노동부의 1차 조사 결과에서도 뚜렷하게 회사의 문제점으로 확인된 내용이 없기에 눈에 보이게 달라진 것은 없어요. 락스 비율 정도를 고려하거나 환기 시설을 개선한 정도이며, 실제 노동조합이 요구한 내용은 대부분 개선되지 못하고 있어요. 오히려 예전보다 더 힘든 상황이 회사가 작업자의 눈을 보호한다며 '작업용 고글'을 착용하라고 지시했죠.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도 힘겨운데 고글까지 착용하기 때문에 더욱 작업자들이 힘들게 작업을 해야 해요. 모두가 다 뜨거운 불 앞이고, 조식 1000명, 중식 2200명의 식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마스크도 해야 하고, 앞치마도 입어야 하며, 여기에 고글까지 끼면 엄청나게 습기가 차요. 특히 식당은 고열작업이 많고 세척과정에서도 더운물을 많이 사용하기에 고글착용 시 김이 서려서 앞이 보이지 않게 되요. 이 때문에 사고 발생의 위험을 더욱 높이는 조치라고 생각해요. 회사의 이러한 일방적인 조치는 작업자의 고충이나 노동조합의 요구를 전면 무시한 행위인 거죠."

"급식노동 자체의 작업환경으로 화상, 피부질환, 호흡기질환 등에 늘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반복 작업, 중량물 작업도 많기에 근골격계질환자도 많아요. 3만 명 이상의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배식을 하기에 감정노동에도 많이 노출됩니다. 특히 주간 연속 2교대제에 맞춰서 음식을 제공하기 때문에 교대작업으로 인한 수면장애와 스트레스가 심각해요. 오전반은 4시에 출근하기 때문에 새벽 3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해야 합니다. 지속적인 교대근무로 오전반 근무가 되면 불안해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실제 뇌심혈관계 질환도 많이 발생하고요."

노동조합 결성 이후 안전보건 과제

현대그린푸드 노동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15년 이상이며, 대부분 조합원의 평균 근속연수는 20년이 넘는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2018년에 최저임금이 10.8% 인상되면서 임금인상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하지만 회사는 아무런 설명 없이 임금피크제와 격월 지급이던 상여금 600%를 매달 지급으로 바꾸는 내용에 대한 개별 동의서를 받았다. 결국, 상여금은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되어 임금은 동결되었고, 주 52시간 상한제 도입으로 겉으로는 노동시간이 단축되었으나 실제 작업량과 인원은 그대로였기에 현장의 노동강도는 엄청나게 높아지게 되었다. 결국, 2018년 8월 현대그린푸드 울산지회가 창립하였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게 되면서 현장의 달라진 점은 무엇인지, 앞으로의 노동조합의 계획은 뭔지 물었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아파도 산재로 나가지 못했어요. 회사 때문에 눈치도 많이 보고,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부담이 될까봐 참고 일했죠. 하지만 노조가 만들어지니깐 산재로 나가는 것이 조금 수월해졌어요.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수 있고, 노조를 통해서 산재 인정과정에서 도움도 받을 수 있어요. 하지만 산재로 나가면 비는 인원에 대하여 4시간 임시 가사보조원이 충원되는데 4시간만 보조가 되기 때문에 실제로 많은 도움이 되지 못해서 여전히 동료들의 힘들까봐 부담이 되죠."

"6월에 있을 2차 현장 조사에 최선을 다해서 임하고 싶어요.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여, 노동조합이 요구한 요구가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조합원의 작업환경을 고려한 맞춤형 건강검진 실시와 안정적인 산보위 운영, 작업장내 민주적인 조직문화를 위한 개선 노력도 필요합니다. 특히, 대부분 조합원은 여성노동자이고, 22개 식당 관리자는 남성 조리사로 구성되어있기에 오랫동안 위계적인 구조로 인한 비민주적인 조직문화가 지속하여 왔어요. 최근에 회사가 노동조합을 와해시키기 위해서 1기 노조 간부 모두를 전환배치 하는 등 일터괴롭힘도 심한 상황이에요."

주식회사 현대그린푸드는 푸드서비스사업(급식사업)뿐 아니라 외식사업, 리테일사업, 식자재유통사업, 해외사업, 건강식 사업 등의 다양한 식품 관련 사업을 펼치고 있는 국내 대표적인 식품회사이다. 그렇기에 2019년 연간 매출액은 3조 1243억 원이고, 영업이익은 899억 원, 당기순이익은 639억 원으로, 연말 기준 자산총계 2조 9666억 원 규모(출처 : 다음 백과)의 회사다. 하지만 회사가 이렇게 확장하기까지 현대그린푸드 노동자의 노력과 희생에 대한 인정과 보상은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최저임금 인상을 적용하지 않기 위해 꼼수를 부렸고, 이러한 과정에서 참지 못하고 노동조합을 만들자 간부들을 전환배치했다. 심지어 집단 안질환 발생으로 작업환경 개선을 요구하자 개별 작업자를 압박하여 노동조합의 요구를 배제하고 있다. 여기에 노동부는 회사의 입장만을 반영한 채 현장 조사를 하였으며, 노동조합의 집단 항의 면담을 진행하자 겨우 2차 현장 조사를 하겠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가 현대그린푸드 울산지회만의 문제일까?

"우리는 임직원의 보람과 행복을 중시한다. 우리는 모든 임직원을 회사의 가장 소중한 자산으로 여기고, 개개인의 인간적 존엄성을 존중하며 각자의 자질과 능력에 따라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고 정당한 평가를 통해 보상받을 수 있는 조직문화의 조성을 통해 개인의 꿈과 미래가 보장되는 자랑스러운 일터가 되도록 노력한다."(출처: 주식회사 현대그린푸드 홈페이지)라고 명시한 임직원은 과연 누구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1년 동안 식사 제공 수 2억 끼, 운영영업장 수 570개, 직원 9700명을 거느린 주식회사 현대그린푸드는 국내 식품 산업을 선도하는 기업답게 노동자에게 정당한 보상과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을 유지 증진하고 노동자의 인간적 존엄성을 존중하는 사업주의 책임과 의무를 제대로 해야 한다.

[노동안전보건 할동가에게 듣는다] 아프면 쉬고, 예방은 과도하게 / 2020.06

[노동안전보건 할동가에게 듣는다] 

 

 

아프면 쉬고, 예방은 과도하게

 

 

최민 / 상임활동가 

 

 

한국에서 코로나19 첫 번째 확진자가 나온 것이 1월 20일. 5월 31일까지 133일, 벌써 4달이 넘는 시간이다. 2015년 메르스 때 첫 확진자 발생부터 신환자가 0명이 될 때까지 44일 걸렸던 것에 비하면 정말 긴 시간이다. 그나마 한국은 유럽이나 미국에 비하면 지금까지는 매우 안정적으로 이 새로운 감염병을 견뎌내고 있다.

K-방역의 우수성도 있겠지만, 사회구성원이 직접 접촉을 덜 할 수 있도록 대신해주는 많은 노동자, 우리가 만나고 생활하는 곳곳을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구석구석 소독하는 노동자들 덕에 우리의 일상이 유지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렇게 '대신' 해주던 콜센터노동자, 택배 노동자들이 과로사로, 연쇄 감염으로 건강을 잃은 뒤에야 이런 논의에 등장한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말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노동조합, 노동안전보건활동가들이 있다.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 한창운 노안국장을 만나 코로나 시기 노동조합의 대응을 들었다.



코로나19 감염위험 대응 과정

한창운 국장은 메르스 때는 노동조합 전임 활동가가 아니었다. 사실 현장에서는 메르스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1월에 코로나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노동조합이나 교통공사 모두 마찬가지였다. 2월에 감염병 예방 단계가 '경계'로 상승하면서, 공사에서 먼저 대책팀을 꾸리고 노조와도 협의를 시작했다.

"서울교통공사가 빨리 대처했고, 잘했다고 국제적으로도 칭찬을 많이 받고 있어요. 메르스 때 감염병 유행에 대비한 매뉴얼을 가지고 있었고, 거기에 준해서 준비를 할 수 있었거든요. 기존 시스템이 있었으니까,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던 거죠. 노조에서도 2018년 말경부터 법정 감염병과 관련된 대책을 세우자는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A형간염 등 법정 감염병이 있는데, 이 사람들의 공간 사용이나 치료비 등을 회사에서 보장해야 한다고 제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공사에서 심각하지 않게 받아들여서 의결하지는 못하고, 2019년에 의논만 좀 하다가 잊혔는데, 1년 뒤에 코로나가 터진 거죠."

"코로나 관련해서 첫 번째 대응이 코로나 관련 위험 국가로 지정된 7개 아시아 국가 방문자에 대해서는 유급 공가를 준다는 대책이었습니다. 처음 제안했을 때는, 악용하는 사람이 나오느니 마느니 하다가, 결국 악용 사례를 걱정하는 것보다는 예방이 중요하다는 걸 노사가 공감하게 된 거죠."

"공가는 병가와는 달리 '공적인 이유로 사용하게 되는 휴가'예요. 확진되고 나면 병가를 쓰면 되죠. 그런데 이건 확진되기 전에, 의심스러운 사람은 일터에 안 나오게 해서 질병 전파를 막자는 것이니, 따로 유급으로 휴가를 보장하는 것이 바르다고 봤어요. 한두 건 악용했을 수도 있지만, 공공기관에서 확진자가 없었다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하철에서 확진자 나와서 사업장 폐쇄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조합원들 자신도 많이 조심했죠. 심각 단계에서는 부고 소식 알리면서도, 장례식장 오지 말라 공지하기도 하고요."

 

▲   코로나19 감염예방을 위해 지하철 내부를 소독 중이다. 시민과 노동자 모두의 안전을 위한 방역조치는 필수적이다. 나아가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감염되지 않게 충분한 안전보건조치를 취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고위험군에 대한 예방적인 유급 공가 보장

감염 고위험군에 대한 예방적인 유급 공가 보장은 코로나19 감염병 진행 단계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되었다. 2월 말, 대구·경북 지역에서 감염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을 때는, 대구·경북 지역 다녀온 사람이나 그 지역민과 접촉한 경우는 유급 공가를 보장했다.

3월 말 이후, 국내 확진자가 감소하고, 해외에서 유입되는 인구가 늘어나면서부터는 유학생 등 해외 거주 자녀가 들어온 경우, 무조건 유급 공가를 보장해줬다. 이를 통해 조합원 중 확진자가 없었다는 점이 성공한 것이라고 본다. 대구·경북에 다녀오기만 한 사람도 공가를 주면서, 아프면 쉬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게 각인된 것이, 코로나를 겪으면서 크게 달라진 점 중 하나다. 다만, 이런 대응이 개별 단위사업장만으로 적용된 것은 아쉽다.

"대응이 정부 수준에서 이루어졌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의심자 혹은 감염이 걱정되는 사람에게는 유급휴가를 보장하라고 정부가 똑똑히 말해줬어야죠. 나라에서 지정한 감염병이니까, 국가에서 보장해야죠. 고용노동부의 처음 대응 지침에서도 공가 사용은 '확진자'만 쓰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확진되기 전에, 걱정되거나 의심될 때부터 마음 놓고 안 나올 수 있어야죠. 무급이었으면 나오는 사람들 분명 있었을 거예요. 기침을 뭐 여덟 시간 내내 하는 건 아니니까, 참을 수 있다면서 나올 거고, 쉬라고 해도, 들어가라고 해도 버틸 사람들이 있죠. 월급이 깎여버리면요. 처음에 지하철 중에서도 이런 공가 지급 원칙이 어디는 적용되고, 어디는 적용이 안 됐다가 이제 보편적으로 적용되게 되었습니다. 노동조합들끼리 하는 궤도 노동안전위원회가 있으니까 거기서 우리가 시작한 공가 사용지침을 공유하면서, 부산지하철, 철도 등 다른 데들도 적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공사만 보면 '아프면 쉬어라' 이게 화두입니다. 우리는 병가 사용이 그렇게 빡빡한 곳이 아니었는데도, '감기 걸려서 쉰다' 하면, '야, 그런 거 가지고 안 나오냐' 하는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조금만 열이 나도, 기침 조금만 해도 쉬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됐죠. 출근해도 소속장이 바로 들여보내고 있거든요. 그런 게 사회가 변하는 큰 흐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에는 '아프면 쉬는 것'이 자기 권리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조합원들도 많았는데, 앞으로는 이런 인식은 확실히 자리 잡힐 거로 생각해요."

교통공사에서 선제적으로 예방 차원의 공가를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노동자들의 감염 예방이 곧바로 시민들의 안전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서울시에서는 코로나19 신규 환자가 급증하던 2월 말, 코로나19 감염병 위기경보가 '경계' 단계로 격상되자, 지하철 역사와 전동차 방역 소독을 크게 강화했다. 원래 주 1회 실시하던 지하철 역사 내부 방역을 주 2회로, 화장실 방역은 일 1회에서 2회로, 일회용 교통카드 세척은 5일 1회에서 1일 1회로 늘렸다. 전동차 내 방역소독을 회차 때마다 매번 실시하고, 주 2회 실시하던 의자 옆 안전봉과 객실 내 분무 소독도 회차 때마다 실시하는 것으로 늘렸다.

시민들은 안전해졌지만, 노동 강도는 높아진다. 노동자들에게 보호구와 보호복은 제대로 지급되는지, 늘어난 방역과 관련된 위험은 잘 예방되고 있는지도 문제가 된다. 하지만 청소와 방역은 교통공사 노동자가 직접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교통공사 노동조합에서 직접 챙기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원청의 안전보건관리 책임 강화가 필요

"청소나 방역은 자회사에서 하거든요. 방역 강화하면서 일이 2~3배는 늘었을 겁니다. 보호구라도 더 주라고 공사에 여러 차례 말은 했어요. 언론에 비치는 건 세계적으로 대단한 K-방역이라지만, 그 이면에는 노동자들이 노동 강도 증가나 감염 노출, 보호구 적기 지급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도 있었죠. 회사에 이런 것들을 제기했습니다. 회사에서는 자회사라서 직접적으로 개입하면 안 된다는 핑계를 대지요. 자회사 담당자 만나서 얘기를 해보기도 하고, 교통공사와 하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자리를 통해서도 청소노동자 보호 대책 마련해야 한다는 당부를 했습니다."

"소독 등에 독성물질 포함될 수 있으니, 이점 유의해야 한다는 것과 제대로 된 보호구 지급 등이었어요. 보안경도 줘야 하고, 마스크도 보건용 마스크를 주고, 방진복도 필요하면 지급해야 하고요. 그런데 현장에서 봐도 덴탈 마스크 쓰고 작업하는 경우가 많고, 라텍스 장갑도 안 쓰시기도 하더라고요. 보안경은 정말 쓴 사람을 못 본 것 같고요. 역에서 일하는 우리 조합원들은, 한참 마스크 품귀일 때도 이틀에 한 번씩은 마스크를 지급받았거든요. 공사에서도 마스크 확보에 공을 들였고요. 코로나 사태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보호를 다르게 받고 있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보호를 덜 받고 있죠."

2018년 김용균 노동자 사망과 이어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이후 원청의 안전보건 관련 책임이 강조되고 있지만, 아직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2019년부터는 공공기관 안전관리에 관한 지침을 통해, 원청과 하청 노사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안전근로협의체'를 운영하도록 하고 있지만, 현재는 심의, 의결권도 없어 심도 있는 논의가 되지 않고 있다. 교통공사의 시설물과 역사를 방역하는 것인데도 예산을 직접 추가 지급하는 것을 공사는 꺼리게 된다. 절차상의 문제도 있고, 고용상의 책임 문제로 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의 책임 있는 안전관리가 가능하게 되려면 구조적인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

"안전근로협의체 준비할 때 공사 담당자에게 청소 노동자 보호구 등 문제를 제기하니, 우리 예산을 줄 수도 없고 애매하다고 변명하더라고요. 결국은 예산 문제로 귀결되는데, 현재는 예산 전용 등 여러 문제가 남게 됩니다. 안전근로협의체가 법적 구속력이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원청에서 모든 책임을 제대로 질 수 있게 만들어야죠.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에 원청의 책임이 강조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관념적, 형식적으로만 선포됐을 뿐이라고 봐요. 실질적으로 예산 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원청 노동조합인데도 '자회사에 잘하라고 권고하라'는 정도의 얘기밖에 못 한다는 게 답답하죠."

공공기관 감염병 종합예방대책 수립이 시급하다

이런 문제점을 포괄적으로 담을 수 있는 공공기관 감염병 종합예방대책을 만드는 게 남은 숙제라고 생각한다.
 
"마스크 수급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우리 사업장에서도 보호구가 여전히 문제이긴 하거든요. 식약처에서 마스크 물량을 의료, 방역, 안전, 국방, 교육, 안전 등 정책적 목적으로 배치하고 있는데, 여기에 철도나 도시철도 사업이 빠져 있어요. 그뿐만 아니라 버스 등 대중교통 단위를 포함해야죠. 우체국도 마스크를 보장받지 못해서, 식약처에 가서 따지고 투쟁했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것들 포함해서, 포괄적인 감염병 종합대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의료기관은 기본이고, 다양한 공공기관의 대응도 체계적인 정비가 필요한 것 같아요. 의료 노동자에 대해서 이제야 정비한다고 하는데 청소 노동자에 대한 대책이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들어요. 서울교통공사만 보면, 지하철 이용하면서 전파가 없고, 종사자 중 확진자가 없는 제일 큰 공은 청소노동자인데, 실질적으로 보호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거든요. 또 이번 과정에서 철도, 지하철 수입이 많이 줄었거든요. 적자가 커지는 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안전예산이 줄어들거나 그런 방향으로 튀지 않도록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런 건 정부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죠."
 
이번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가장 큰 원칙으로 삼았던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코로나19에 약간은 과도하게 대하고 있기도 한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예방적인 거죠. 예방은 약간 과한 게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우리가 말로는 항상 예방을 과하게 하자고 했지만, 지키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그게 감염병에 관해서는 지켜졌던 거죠. 예방은 그렇게 해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이 코로나19에 대응하면서 배운, 아프면 쉬는 게 기본적인 권리라는 사실, 예방은 과도하게 하는 게 맞는다는 경험, 여전히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다르게 보호받고 있다는 깨달음을 놓치지 않고, 노동안전보건활동을 이어가기를 응원한다.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사회복지사는 왜 착하고 희생적이어야 하나요? / 2020.06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사회복지사는 왜 착하고 희생적이어야 하나요?

 

 

정경희 / 선전위원 

 

"뭔데? 지는 얼마나 잘났다고, 처음부터 다 알았나? 환자 앞에서 우릴 그렇게 무안 주면, 지가 올라가는가 보지?" 

실습 일과를 마친 후 동기들과 수다가 없었다면 버티기 어려웠을 시절. 젊은 시절이 좋았어도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빛바랜 시간들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사회복지학과 실습을 마치고 지금은 휴학 중인 소나기님을 지난달 13일 안양역 근처 카페에서 만나 그가 겪은 생생한 실습 이야기를 들었다.


장애인 복지관에서 실습을 시작한 이유 
 

사회복지학과 실습은 보통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 때 많이 하는데, 사회복지사 자격증에 필요한 160시간, 4주를 기본으로 한다. 
대략 3~4월에 실습하고 싶은 곳을 서너 군데 정해두고 자기소개서와 프로파일을 작성하고, 그 후엔 4월부터 6월 사이에 사회복지 실습이 인정되는 각 기관이나 단체에서 실습생 모집 공고가 올라오면 지원한다. 

소나기님은 장애인복지관에서 실습을 했다. 사회복지사가 되려는 이유와 장애인복지관을 실습 장소로 선택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봉사활동 중에 누군가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사회복지사의 꿈을 키우게 되었어요. 고등학교 때 장애아동 방과 후 프로그램에 자원봉사자로 활동을 했었는데요. 가끔이었지만 공원에 산책을 나갈 때면 먼저 와있던 부모들은 장애 아동을 보고 같이 못 놀게 하거나 비장애 아동을 데리고 공원을 나가시더라고요. 

그때부터 지역사회에서 장애아동들이 받는 편견과 차별들이 하나씩 눈에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스며들 수 있는 방법을 계속 고민했고, 실습해 장애인 복지 분야를 조금 더 알아보고 싶었어요."

"복지관의 직원 출근 시간은 8시 50분부터 오후 6시까지이고, 실습생은 8시 40분부터 오후 6시까지였어요. 그런데 오후 5시 50분경 팀장님과 마무리 모임하면, 정시에 마치는 날이 거의 없었어요. 저녁 7~8시까지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일과의 시작과 마무리는 팀장님 조회에요. 팀장님께서 실습생이 다 왔는지 확인 후 오늘, 내일의 업무를 설명해주십니다. 

그다음엔 사회복지 사무실로 올라가 한가운데 일자로 쭉 서서 매일 다른 멘트로 아침저녁 인사를 해요. 예를 들면, '안녕하십니까. OOO 실습생 인사드리겠습니다' 구호를 외친 후 '활기찬 O요일 되십시오'라 하고, 끝날 때는 아침과 똑같이 구호를 외치고 '오늘도 열심히 배웠습니다'라고 합니다. 

매일 다른 멘트를 생각해야 했고, 얼마나 창의적이고도 인상적인 인사를 하는지 항상 팀장님이 확인하셨기 때문에 실습생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어요. 인사 시간만 다가오면 다들 불만이 많았지만, 전통이었기에 따를 수밖에 없었어요. 실습 2주 동안은 방과 후 프로그램을 돕는 역할을 했어요. 프로그램 특성상 점심 보조를 했는데, 그동안 점심을 빨리 먹어야 해서 먹는 둥 마는 둥 할 수밖에 없었죠."

보통 4주간 실습 중 첫 주는 대부분 교육, 2주 차부터는 기관마다 다른데 실습 간 복지관에서는 해마다 방학프로그램 부담임으로 배치해왔다고 한다. 

마지막 주는 관장, 팀장 면담이나 1주 차 교육을 계속 이어갔다. 실습프로그램을 마치고 어떠했는지 소회를 물었는데 시작 전부터 수퍼바이저의 고정관념과 편견 때문에, 세 번의 심리적 지진을 느꼈다고 한다.

"실습 일주일 전 실습 기관의 담당 수퍼바이저와 만나서, 실습 일정이나 필요한 과정에 대해 설명을 듣는 오리엔테이션이 있었어요. 실습생 10명 중 여자가 7명 나머지는 남자였어요. 

실습 일정에는 1박 2일의 대규모 캠프가 있었는데, 실습생 2명은 복지관에 남아야 하고, 남자는 무조건 캠프를 가야 한다고 했어요. 선택권 없이 여자 실습생만 남을 수 있다는 말이 충격적이었어요. 그러나 첫 만남이라 어떤 말씀도 드릴 수 없었죠."

"반팔 티셔츠는 되도록 입지 말고 전문직처럼 보이게 남자는 카라티, 여자는 블라우스를 입으라며, 옷차림에 대해 한 명씩 일일이 지적하는 것을 보고 두 번째 지진을 느꼈어요. 그리고 자기소개서를 보시더니 갑자기 제 이름을 부르셨어요. OOO! 학생회 했네! 콕 집어 질문 없냐고 해서 복장규제와 캠프참여를 정함에 남녀차별에 대해 질문했고, 무거운 것은 남자가 들어야 한다는 고정된 성 역할을 이해시키려고 계속 말씀하시더라고요. 

말이 길어져서 더 이상의 질문은 하지 않았는데, 마지막에 학생회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제가 이런 질문 할 것을 예상했고, 이해시키기 위해 일부러 지목했다 하시더군요. '실습 그만두겠는데?'라고도 하셨어요. 제 마음에는 세 번째로 지진이 일었어요." 

"항상 수퍼바이저 손바닥 위에 있는 느낌" 

시작 전부터 받은 충격으로 실습을 꼭 해야 하는지 회의감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실제 진행한 실습내용이 본인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물었다.

"실습 기간 동안 이용인에게 다가가는 방법, 복지관의 역할 등 정말 많은 사회복지 지식들을 배웠어요. 하지만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는 팀별 과제라든가, 프로그램을 만들어 진행해보는 과정들이 없었고, 실습생은 활동에 참여하면서 사회복지업무를 어깨너머 봐야 했어요. 이미 짜인 프로그램에 실습생이 투입돼서 보조하는 역할이었기에 배웠다기보다는 봉사활동을 한 느낌이었어요."

일반적으로 실습비를 개인이 실습 기관에 8~10만 원을 직접 지불하지만, 실습 기관에 따라 예외적으로 실습비를 받는 경우도 있다. 당시 실습비의 대부분은 식사비나 회식비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기관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기관에선 실습생에게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한편, 실습 평가점수는 실습 기관의 수퍼바이저에 의해 좌우된다고 한다. 그래서 수퍼바이저의 권력은 실습생들에게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수퍼바이저가 실습생들의 개인 평가점수를 학교에 제출하게 돼 있어요. 실습 도중에 실수했거나 OT에서 했던 질문 같은 것으로 밉보이면 수퍼바이저는 맘대로 점수를 깎으면 그만이잖아요. 

그런데 실습생에게는 '이 점수가 취업까지 연결된다', '지금 네가 하는 행동은 미래에 네게 돌아간다'라는 메시지가 강해요. 그래서 실습생은 항상 수퍼바이저의 손바닥 위에 있어야만 했어요. 굴욕적인 일을 겪어도 참아야 했고, 회식 자리는 실습의 연장이 돼서 항상 필수로 참석해야 했어요."

이어서 들려준 1박 2일 캠프에서 이야기는 '실습생을 부려먹었다'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프로그램 전반에 대한 진행, 고깃집에서 서빙, 수영장 안전요원, 늦은 시간까지 회식이 비용을 지불하고 경험하는 실습의 과정으로 보기에는 부적절해 보였다.

"매년 캠프를 가지만 이번에는 자원봉사자 인원이 부족했어요. 호텔 전체를 빌려 행사를 진행했는데, 각 부서 팀장님들과 실습생이 이리저리 뛰어다녀야만 했어요. 가기 전에 각각의 프로그램에 실습생을 미리 한 명씩 배치했는데, 실습생은 프로그램 준비 과정을 모르다 보니까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었어요. 

사전 정보도 없이 시작된 터라 다들 우왕좌왕했어요. 낮에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한 번도 안 해본 것을 설명해야 했고, 남자실습생은 워터슬라이드 안전요원을 하다가 다치기도 했어요. 그러고 나서 저녁 식사 시간에는 일손이 부족하다고 수영장 옆에서 진행하다 젖은 옷을 갈아입지도 못한 채, 식당으로 가야 했어요. 식사 준비를 돕고 서빙도 해야 했어요. 

같은 차를 타고 왔던 이용인이 불판을 바꾸고 자리를 안내하는 저를 보곤 실습생이 이런 것도 하냐고 묻기도 하셨어요. 저녁 프로그램이 끝난 후엔 평가회의 겸 회식을 한다고 해서 완전 긴장을 했어요."
 

육체적 힘듦보다 회식에서 겪은 바가 훨씬 굴욕적이었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평가 회의가 끝난 후 회식을 이어가던 도중에 국장님께서 갑자기 '너희를 우리 기관에 붙여 줄 거로 생각하느냐. 여기 들어오기 힘들다. 아예 너희의 희망을 자르는 거다' 하시는 거예요. 그러고는 갑자기 '첫 잔은 원샷을 해야 된다'며 건배 제의를 했어요. 저는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는 편이라 무척 당황했죠. 

그때 누군가 '국장님께서 하시면 저희도 할게요'라고 용기 있게 말했고, 국장님은 보란 듯이 술잔을 비워버리셨어요. 저는 원샷이 힘들어 반만 마셨는데, 옆에 있던 친구들은 눈이 빨개지면서까지 다 마시는 거예요. '술을 이렇게 열심히 마셔야 하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회식 말미에 국장님께서 '술잔을 비우라고 한 것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대처나 적응능력을 본 거다'라고 하셨어요. 캠프 와서 실습 시간 160시간을 초과했는데, 이런 굴욕적인 상황을 겪어야 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느꼈어요. 복지관에 취직시켜준다고 해도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복지사에 대한 전망을 갖고 실습을 나갔는데, 실망스러웠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실질적인 실습이 되려면 개선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조직문화가 바뀌어야 해요. 복지기관들이 보수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기도 해요. 예를 들어, 탈색모거나 밝은 염색을 한 사회복지사에 대해 컴플레인이 들어오니 가급적이면 실습생도 검은색의 단정한 머리를 해야 하더라고요. 

주변에 수평적 조직문화를 가진 복지관에서 실습한 사례가 있는데, 팀장, 부장님의 이름을 부르며 장난도 치고, 저희처럼 이미 기획된 캠프 프로그램에 자원봉사활동 하는 게 아니라 사회복지사와 함께 캠프를 기획하여 프로그램을 구축해 나가는 경험했다고 합니다. 

애초에 복지관의 조직체계에서부터 차이가 있었더라고요. 말단 실습생의 경험으로는 '모든 게 내가 맞다'라고 생각한 것부터가 수직적 조직문화의 시작이 아닐까 해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태도가 수평적 조직문화의 시작이라 생각해요."

사회복지사는 왜 착하고, 희생해야 하지?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한국 사회에서 사회복지기관이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에 필요한 재원은 어떻게 마련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재정이 취약할수록 일선 근무자의 근무조건·환경이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업무의 특성상 감정노동이나 스트레스로 인한 소진이 많을 텐데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도 들어보았다.

"복지관 프로그램은 대부분 후원금으로 진행하는데요. 사회복지사가 현장에 많이 나간다고는 하지만, 후원금을 따와야 하기에 앉아서 서류 작성이 더 많더라고요. 보통 계획안, 보고서, 결과서를 작성하는데, 규모가 작고 재원이 적은 복지관의 경우는 더욱 예산을 많이 따와야 해서 서류도 많이 필요해요. 

유니세프,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처럼 위탁재단이나 법인이 클수록 후원금이 많아요. 그래서 임금을 받을 때 재단에서 특별수당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아무래도 재원이 많을수록 할 수 있는 업무 범위도 넓어지고 업무수행도 좀 더 안정적이에요. 하지만 사회복지사가 후원금 납부나 종교를 강요당하는 사례가 있기도 해요. 사실 사회복지사는 업무 강도에 비해 처우가 낮다 보니 많은 분이 이직합니다. 

이 진로에 큰 목표를 가지고 왔지만, 복지관의 비리나 사회복지 현실을 접하고 나니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복지를 하면서 부당함을 당하기보다는 오히려 부당함을 헤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현실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야 할지 막연해져서 고민도 많이 되더라고요."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은 복지서비스를 제공만 하지 받지는 못하고 있어요. 관장, 국장처럼 높은 직급과 달리, 입사 초년생은 고용조차 불안정하잖아요. 주변에 졸업하고 취직한 지 1~2년 된 선배님들의 퇴직 사례를 종종 들어요. 업무 강도가 지나치게 높거나 직장 내 대인관계에서 생긴 문제로 그만두시는 분이 많더라고요. 

사람을 많이 상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서비스가 대중들에겐 '착함'이라는 프레임을 갖고 있잖아요. 그러다니 감정 소모가 있어도 무시되는 거 같아요. 이를 관리해줄 제도도 없고요. 사회복지사들도 다른 일반 직장인과 다를 바 없는데, '왜 착해야만 하고, 봉사나 희생을 강요당해야 하지?' 의문이 들어요."

소나기님은 실습의 과정을 거치면서 뭘 할 수 있을지 회의가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수평적 조직문화에 기반한 노동환경, 사회복지환경을 만들어보고자 장기적인 진로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졸업 후 사회복지 분야의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재단이나 법인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소나기님이 바라는 사회복지공동체가 실현되기를 기대하고 응원한다.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코로나 재난과 공무원 과로사 / 2020.06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코로나 재난과 공무원 과로사 

 

 

김영선 /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 

 

재난 때마다 공무원 과로사가 발생한다. K-방역모델이 국제표준으로 추진될 만큼 주목을 받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코로나19에 따른 비상상황으로 주말에도 출근해야 했던 전주시 공무원(43세)과 성주군 공무원(47세)이 2월 말 3월 초에 연이어 과로사했다. 

비상 근무로 20여 일간 하루도 쉬지 못하면서 쓰러졌다가 다시 현장으로 복귀한 포항시 북구보건소 감염관리팀장(53세) 또한 과로사 위험에 노출되기는 마찬가지였다. 4월 말 코로나19 관련 업무를 관리하던 합천군 공무원(56세)도 과로로 사망했다.

되짚어 보면, 폭염 등 기후 변화로 인한 재난 시기에도 사망 사건이 발생했고 이제는 매년 발생하다시피 하는 동물 전염병 때에도 방역 공무원의 과로사가 반복됐다. 지난 3월 말 파주시에서 수의사로 일하던 주무관(52세) 또한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매일 사무실에서 숙식하며 방역 업무를 담당하던 중에 과로사했다. 

일련의 사건은 재난 시기 공무원이 비상 근무에 따른 과로 위험에 어떻게 노출되어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   공무원 과로사는 재난 상황의 예외적인 사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누적되어 있던 과로위험이 재난 시기에 격발되어 표출된 시스템 상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


노동인권은 재난과 양립할 수 없는가?

재난은 길을 잃은 상태를 말한다. 재난의 영어 단어인 disaster의 어원은 행성이 궤도에서 벗어난 탓에 발생하는 미지의 사태들을 가리킨다. 전례 없는 사태는 안전을 위협하는 것은 물론 한 사회에 잠재되어 있던 문제들을 한꺼번에 드러낸다. 

무대 뒤편에 감춰졌던 사회의 취약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계기다. 노동자가 어떻게 취급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최전선, 초토화, 쑥대밭, 대란, 대공포, 창궐, 초유의 사태, 전시 상황, 군사작전, 포화 속, 총동원, 코로나 전사, 최전선 영웅 등으로 묘사되는 재난 상황에서는 권리와 원칙들이 쉽게 유예되거나 무력화되기 일쑤다. 무권리 상태로 내몰리는 형국이다.

재난 대응 시 휴게시간이나 쉴 공간 또는 숙소 등을 포함한 편의 조치는 찾아보기 어렵다. 방호복을 착용하는 경우 피로와 스트레스가 평상시보다 더 쌓인다. 방호복을 입고 있으면 한겨울이어도 땀이 비 오듯 흐른다고 말할 정도다. 

그렇기에 반드시 한두 시간 정도 쉬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언제 휴게시간을 가져야 할지, 그 규정은 어떻게 되는지 모른다고 토로한다. 주말 근무가 연속되지만 대체 휴무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하소연도 다반사다. 재난은 그런 권리들을 쪼그라들게 만든다.

복무 규정과 봉사자 이데올로기

과로사가 양산될 수밖에 없는 장치들을 보자. 

하나, 공무원은 복무 규정 탓에 과로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긴급 상황의 동원을 가능하게 하는 '복무 규정'(비상 근무와 근무시간의 변경 조항 등)으로 근무시간이 고무줄처럼 늘어나거나 수시로 변경되기도 한다. 

비상 근무의 종류, 발령 일시, 발령 사유 등의 기준은 꽤 구체적으로 명시된 데 반해 그 사용 제한에 대한 내용은 사실상 찾기 어렵다. '주말에도 출근(대체 휴무 없음)' 식 비상 근무를 방기하는 복무 규정은 공무원 과로사를 반복 양산하는 하나의 원인이 된다. 초과근무만 월평균 150~200시간에 달할 정도다. 비상 근무를 '여는' 조치와 함께 '닫는' 조치를 병기해야 할 것이다.

둘, 공무원에 부여된 헌신, 봉사, 수호, 사명감, 책임감 등 봉사자 이데올로기도 장시간의 비상 근무를 정당화한다. 봉사자 이데올로기는 재난 상황일수록 과로 위험에 대한 사회적 발언을 어렵게 만든다. 재난 상황의 공무원도 안전권, 건강권, 시간 권리가 전제되어야 하는 노동자임에도 말이다.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사명감을 갖추는 일과 별개로 휴게시간, 최소한의 휴식 시간, 대체 휴무, 초과근로 제한 등의 시간 권리를 가리는 방식의 비상 근무는 제한되어야 한다. 재난 시 공무원 과로사가 발생할 때면 헌신과 희생으로 미화되곤 한다. 재난 상황에서 봉사자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동원되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명감, 헌신, 희생이 전면에 내세워지는 가운데 죽음을 유발하는 '과로'의 문제는 은폐되는 효과가 발휘된다는 점이다. 봉사자 이데올로기는 공무원 과로사를 반복 양산하는 또 하나의 원인이다.

예외적 사례라고?

공무원 과로사를 재난 상황에서 발생하는 예외적인 사례라고 생각할 수 있다. 비상 근무 탓도 탓이지만 이러한 관점은 그간에 켜켜이 누적된 과로 위험을 간과하게 한다. 한국의 공무원 수는 OECD 국가와 비교해 최저 수준이다. 

이는 인력의 과소 상태를 방증하는 대표적인 지표다. 평상시 초과근무만 월평균 150시간에 달하는 경우도 발견된다. 과로 상태가 만성화되어 있음을 가늠케 한다. 지자체 현업 공무원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공무원 과로사는 재난 상황의 예외적인 사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누적되어 있던 과로 위험이 재난 시기에 격발되어 표출된 시스템상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 

바이러스 감염병 재난은 '신종'이라 이름을 갈아가며 반복 발생한다. 빈도도 높고 주기도 짧아지고 있다. 그 종류도 많아지고 있다. 재난의 반복성만큼이나 공무원 과로사도 예감될 수밖에 없는 문제다.

비상 근무에 따른 공무원 과로사, 되풀이될 문제인가? 그 고리를 끊어야 한다. 노동인권에 기초한 원칙에 따라 대응할 필요가 있다. 안전권, 건강권, 시간 권리를 명문화하는 것을 포함한 대응 원칙 말이다. '긴급 상황'이란 이유로 과로를 조장하는 방식의 대응은 또 다른 문제를 유발한다. 

OOO 전사나 영웅으로 호명하거나 직업정신을 앞세워 희생을 동원하는 방식의 대응은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을 낳을 뿐, 재난 대응으로는 부적절하다. 노동자 인권을 명시하는 것이 재난 대응의 첫걸음이자 모두의 안전을 담보하는 최선의 방역이다.

[일터 정신질환 짚어보기] 업무상 정신질환 여부, 어떻게 결정되나 / 2020.06

[일터 정신질환 짚어보기] 

 

 

업무상 정신질환 여부, 어떻게 결정되나

 

 

최민 / 상임활동가 

 

과로사는 임상 진단명이 아니다. 이미 발생한 뇌심혈관질환 사망에 '과로'가 원인이 되었는지를 사후적으로 평가하여 붙이는 사회적이고 제도적인 이름이다. '업무상 정신질환'도 마찬가지다. 진단을 따로 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진단된 다양한 정신질환에 대해 업무상 요인이 발생의 원인인지, 또는 악화 요인으로 상당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평가한 뒤에 사후적으로 붙는 이름이다.

일하는 도중에 일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업무상 사고'와는 달리, 업무상 질병은 업무 중 뿐만 아니라 집에서 쉬다가, 혹은 퇴직한 이후에 발병할 수도 있고, 업무의 어떤 요인이 어떻게 질병을 일으켰는지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업무상 사고와 업무상 질병은 다른 판정 과정을 거친다.

근로복지공단은 지역본부별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를 운영한다. 해당 질병과 관련된 임상의사, 직업환경의학 의사, 인간공학자나 변호사, 노무사, 산재보험전문가 등 전문가들로 질병판정위원을 구성하고, 이들 중 5~7명으로 판정회의를 열어 재해자의 신청서, 근로복지공단 지사에서 실시한 조사 내용 등을 기초로 업무상 질병 여부를 결정한다.

2018년 한 해 동안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검토한 건이 1만 건이 약간 넘었는데, 한번 회의에 10건 정도씩 검토하다보니, 판정 결과가 나오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산재로 승인되는 정신질병

정신질환도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위와 같은 절차를 밟는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에서는 '근로기준법' 제76조의2에 따른 직장 내 괴롭힘,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업무상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질병을 따로 명시하고 있다.

또,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별표 '업무상 질병에 대한 구체적인 인정 기준'에서도 신경정신계 질병을 규정하고 있는데, 물질의 급성 중독에 따른 질병 외에 '업무와 관련하여 정신적 충격을 유발할 수 있는 사건에 의해 발생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업무와 관련하여 고객 등으로부터 폭력 또는 폭언 등 정신적 충격을 유발할 수 있는 사건 또는 이와 직접 관련된 스트레스로 인하여 발생한 적응장애 또는 우울병 에피소드'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여기에 제한되지 않고, 공황장애 등과 같은 불안장애, 수면장애, 주요우울장애 등이 모두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된 바 있다. 고객과 관련하지 않은 업무상 스트레스로 발생한 적응장애나 우울병 에피소드 역시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된다.

진단명에 제한되지 않고, 어떤 정신질환이라도 업무상 부담이 질병의 악화에 기여했다고 판단되면 산재보상이 승인되는 편이다. 근로복지공단에서 활용하고 있는 '정신질병 업무관련성 조사지침'에서 제시하는 정신질병의 종류와 업무관련 위험요인은 다음과 같다.
  

▲   정신질환 업무관련 유해요인 표.


자살이나 자해의 경우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 '근로자의 고의·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은 업무상의 재해로 보지 아니한다'고 한다.

하지만 시행령은 ▲업무상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이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 ▲(정신질환이 아니더라도) 업무상의 재해로 요양 중인 사람이 그 업무상의 재해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 ▲그밖에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하였다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 자해행위에 따른 업무상 재해도 인정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이에 따라 한 해에 30~50여건의 자살 사건이 업무상 재해로 승인되고 있다. 이때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라는 것이 반드시 정신질환을 진단받는다든지, 환각 등의 증상을 보이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자살'을 선택했다는 것 자체를 판단 능력이 현저히 저하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업무상 스트레스와 정신질환의 관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는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 인과관계가 있는' 경우를 업무상 재해로 본다. 이때 '상당인과관계'가 중요하나 뚜렷하게 정의되어 있지는 않은데, 보통은 '사회상규 상 일반적인 지식이나 경험에 비추어 어떤 원인이 있으면 그러한 결과가 발생하리라고 인정되는 관계'로 생각할 수 있다.

현재 정립되어 있는 대법원 판례에서는, 이 인과관계란 '반드시 의학적, 자연과학적' 인과관계는 아니고, 노동자의 '취업 당시의 건강상태, 발병경위, 질병의 내용, 치료의 경과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사실 업무상 유해요인과 질병 사이의 관계가 확실해 질병판정위원회를 거치지도 않아도 되는 진폐증이나 소음성 난청을 제외한 대부분의 질병에서 업무상 요인이 '의학적, 자연과학적' 인과관계를 갖는다는 것을 밝히는 일은 쉽지 않다. 뇌심혈관질환, 근골격계질환, 정신질환 등 흔히 거론되는 여러 업무상 질병들은 다양한 요인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이다.

정신질환의 경우, 업무상 스트레스 뿐 아니라, 경제적 문제나 가족관계 등 개인적 스트레스 상황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신체적 질병에 따라 이차적으로 발생하는 정신질환도 있을 수 있고, 질병의 특성상 외부 요인보다는 내적인 요인(신경계 발달이나 유전 등)이 훨씬 중요하다고 알려진 질병도 있다. 그래서 업무상 질병 여부 판정 과정은 쉽지 않고, '의학적, 과학적' 인과관계에만 기대서 판단할 수도 없다.

현재 근로복지공단과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는 업무상 스트레스와 업무 이외의 스트레스 요인, 질병에 대해 조사한 뒤 이를 바탕으로 '업무상 스트레스가 질병 발생이나 악화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 인정되는지를 '노사정에 의해 추천된 전문가들의 합의'에 의해 결정하고 있는 셈이다.
  

판정 과정의 개선 과제

근로복지공단의 '정신질병 업무관련성 조사 지침'에서 조사하도록 정해놓은 '주요 업무상 스트레스 요인'에는 업무상 사고, 폭언·폭력·성희롱, 업무의 양과 질 변화, 업무의 실수· 책임, 민원·고객과의 갈등, 회사와의 갈등, 배치전환, 직장내갈등, 업무부적응, 괴롭힘·차별 등이 포함된다.

지침은 해당 요인 자체의 심각성 뿐 아니라, 노동자의 주관적 충격 정도를 감안하고, 사건 발생 이후 처리과정에서의 적절한 지원과 지지, 근로자 보호가 가능한 체계였는지를 감안하여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과정 등을 고려하여 주요 스트레스 요인의 심각도를 확인하도록 하고 있다. 정신질환과 관련된 조사 과정은 예전에 비해 상당히 진전되었지만, 이에 대한 평가와 판정은 아직은 각 사례마다 개별적으로 이루어진다.

한 사례를 보자면, 50대 초반의 남성 A씨는 공공기관의 관리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평소 스트레스가 심한 직장은 아니었다. 그는 고향에서 취업하여 오랫동안 한 도시에서 살아왔는데, 갑자기 전혀 다른 도시로 전보가 났다. 믿어왔던 본부장이 자신을 내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직위가 낮아진 것은 아니지만, 강등 혹은 좌천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가족이 다 함께 사는 곳을 옮기는 것도 만만치 않아 결국 낯선 도시로 혼자 이사했다. 새로운 도시에서 근무를 시작하고 한 달 뒤 A씨는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는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 모임에 참여하는 한 가족의 사례를 재구성한 것이다. A씨의 죽음은 산업재해로 승인받지 못했다. A씨의 업무 변화와 관련된 스트레스와 새로운 도시에서 부닥친 직장 문제의 구체적 증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정신질환을 진단받은 재해 당사자 혹은 자살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이 관련한 '충분한' 증거를 수집하여 제출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많다. 모든 업무상 질병 입증 과정이 다 어렵지만, 정신질환 특히 자살에 대해서는 재해당사자 측의 입증책임을 덜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또 폭력이나 폭언, 징계 등과 같은 뚜렷한 이벤트가 있는 경우에 비해, 장기간에 걸친 과로처럼 저강도의 만성적인 스트레스 요인에 의해 발생하거나 악화된 정신질환의 경우 판정위원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일본은 여러 가지 업무스트레스를 강, 중, 약으로 평가하도록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놓았다. 그리고 '중에 해당하는 스트레스 요인이 2개 이상이면 승인' 등 매우 구체적인 승인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승인 지침 자체가 편향될 수 있고, 판정위원들의 자율적인 판단 여지를 좁히는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업무 스트레스 요인을 세분하여 평가하도록 해 판정의 일관성을 높일 수 있다. 따라서 국내에서도 자살뿐 아니라 정신질환 판정과 관련된 체계성을 좀 더 갖추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특집3. 단결권 보장을 통해 만들어갈 노동권 사각지대의 노동운동 / 2020.06

[노동권 회색지대에 맞서다③] 

 

 

단결권 보장을 통해 만들어갈 노동권 사각지대의 노동운동

 

 

박기형 / 상임활동가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인 일하는 사람들에게 당면한 물음이 있다. 우리는 '노동자'로서의 법적 지위와 그에 걸맞은 권리를 누리고 있는가? 

특수고용 노동자(아래 특고)나 플랫폼 노동자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이 겪는 안전보건 문제를 얘기할 때마다 '노동자성' 문제가 근본적인 쟁점으로 거론된다.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음에 따라, 이들이 겪는 문제는 노동법뿐만 아니라 산업안전보건법 등 제도 내에서 해결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더욱이 노동자 스스로 요구하지 않으면 논의조차 되기 어렵다. 집단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지만 함께 모여서 노동조합을 만드는 일조차 쉽지 않다. 이런 난관을 넘어서기 위해 그동안 노동운동계에서는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전태일 3법 제정'의 의미와 노동운동의 과제는 무엇일지, 지난달 19일 박정환 서비스연맹 정책기획국장을 연맹 사무실에서 만나 얘기를 나눠보았다.

 

서비스연맹 박경환 정책기획국장을 만났다.


노동권 사각지대의 핵심 쟁점, 노동자성 인정

박정환 정책국장은 노동조합의 법적 지위를 인정받는 일이 난관이었다고 말했다. 서비스연맹에서도 특고와 플랫폼 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활동을 벌였는데, 그때마다 부딪혔던 문제가 바로 노동조합을 만드는 일, 특히 설립 필증을 받는 것이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조법)' 제10조(설립의 신고)에 따르면, 설립신고서를 접수하면 행정관청에서 3일 이내에 신고증을 교부하게 돼있다. 물론 법에 규정된 사항에 따라 행정관청에서 설립신고서를 반려하거나 보완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정당한 이유 없이 신고필증을 기간 내에 교부해주지 않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박정환 정책국장은 가전통신서비스 노동자의 사례를 들며, 노동조합 설립에 대한 법적 인정 문제를 지적했다. 서비스 연맹 산하의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동조합 코웨이 코디·코닥지부는 노동조합 설립 필증을 받는 데 무려 103일이나 걸렸다.

회사와 노동부를 상대로 한 투쟁 끝에 지난 5월 13일 노동조합 필증을 발부받았다. 그리하여 가전제품 방문판매서비스 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 법적 지위를 보장받고 집단적으로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동안 행정관청에서는 노동자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인정해주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어요. 노조법에서는 신고제로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 행정에서는 허가제처럼 운용되고 있었죠. 최근 노동부 또한 노조설립에 대한 태도를 바꾸고 있다지만, 여전히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 노동자처럼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 대해서는 보수적이었죠. 

노조법 제2조를 개정하는 것은 이러한 노조설립 절차를 변화시키는 것이죠. 합법노조와 불법노조, 법외노조 구분이 의미가 없어지는 거예요. 모든 일하는 사람들이 결사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죠."

전태일 3법 중 한 축은 바로 노조법 제2조를 전면개정하는 것이다. 현행 노조법 제2조 제1항은 노동 3권을 보장받는 근로자를 임금으로 생활하는 자로 한정한다. 같은 법 제2조 제2항은 사용자를 해당 사업의 사업주 등으로만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제1항을 개정해 '특수고용노동자의 단결권'을 쟁취하고, 제2항을 개정해 '원청의 사용자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이러한 변화의 연장선에서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단결권 보장, 자주적 노동운동의 기초

노동자들의 집단적 움직임이 중요한 이유는 일터의 노동환경을 노동자 스스로 바꿀 수 있는 토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은 단결권이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단체교섭을 하더라도 사업주와의 교섭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노조로서 안정적 지위를 확보하지 못함에 따라, 안전보건 문제를 논의하거나 작업환경을 바꿔나가는 일에서도 충분한 역량을 마련하거나 발휘하기 어려웠다. 그러다보니 사업장 바깥에서 정부와 법원의 조치가 이를 대신하면서, 제대로 된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기도 했다. 

특수고용노동자나 플랫폼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법적 지위를 보장받게 되면, 더 확실한 자주성을 획득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조건에 맞게 요구를 만들고 관철시켜 나갈 수 있다.

물론 노조를 결성하고 단결권을 보장받는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서비스업처럼 고용구조가 복잡한 경우, 교섭을 진행하면서 드러내고 대응해야 할 쟁점이 많다.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것뿐만 아니라, 사용자성을 드러내고 복수의 사용자를 대상으로 각각의 책임을 구체화하는 게 필수적이다. 박정환 정책국장은 면세점 노동자의 사례를 소개했다

"산업구조와 고용구조가 복잡해지면서, 노동권 사각지대가 만들어지는 거 같아요. 서비스업이 대표적이죠. 면세점의 서비스노동자는 면세점의 여러 가게 중에서도 특정 브랜드의 매장에서 일하고 있죠. 그런데 면세점이나 해당 입점 업체가 아닌 면세점 판매위탁법인에 고용되어 있어요. 면세점-입점 업체-판매위탁법인 3자 간 라이선스 계약을 맺어서, 인력을 공급받는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면세점 서비스노동자가 일하는 장소가 면세점과 해당 매장이라는 점이에요. 예컨대 화장실 개선, 의자 비치 등 노동환경 개선 요구를 하려면, 면세점과 매장과 협의가 필요한 거예요. 고객 응대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정노동을 예방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죠. 

결국은 지시·관리·감독 등의 실질적 사항 즉, 공동사용자성을 문제 삼아야 하죠. 면세점 위탁법인과 협상 후 업체와 면세점에 요구를 전달하는 이중 교섭 전략만으론 한계가 있어요. 실효성 있는 조처를 하게 하고 실질적인 종속관계를 드러내기 위해선 이들 모두와 교섭할 수 있어야 해요. 노조법 제2조 개정이 그 발판이 될 수 있어요."


플랫폼 산업,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플랫폼 산업 또한 서비스업과 유사한 구조를 지니며, 노동자성 인정을 위한 투쟁의 연장선에 있다. 온라인 플랫폼, 클라우드 등이 노동을 매개하는 새로운 창구로 등장하게 되면서, 복잡한 노동관계의 또 다른 유형이 등장했다. 

동네 배달대행사와의 위탁계약이나 인력관리업체와의 아웃소싱 계약 등을 맺음으로써,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고 복잡해진다. 이에 따라, 법이 규정한 사용자와 노동자의 지위는 현실에 대입할 때마다 불명확해진다.

그럴 때,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한편에서는 플랫폼 자본주의, 플랫폼 산업이라 불리는 것들은 '혁신'과는 거리가 멀며, '새로운 노무관리' 수단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기존 노동자 개념으로부터 배제된 노동자들을 포함시키기 위해 법규정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특수고용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온전히 전통적인 노동자성 개념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현실적 문제들이 있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자영업자로서의 특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지, 복수의 사용자가 있을 때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사업장 변경이 잦은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법적 권리가 보장될 수 있는지 등의 문제가 남는다. 그리하여 법제도를 단순히 확장하는 것으론 부족하고, 기존의 노동자 개념 자체를 문제삼아 재규정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얘기되기도 한다.

박정환 정책국장은 이러한 논쟁 가운데 중요한 것은 해당 산업과 노동시장 내에서 질서와 규범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누구까지 사용자와 노동자로 볼 것인지, 그때 말하는 사용자와 노동자는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다퉈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주적 노동운동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며, 이런 점에서 전태일 3법 입법 요구가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는 것일 테다.

 

배달원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 관계자들이 17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배달 앱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전배달료 보장, 지역 차별 개선 등을 촉구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단결권 보장을 넘어선 노동운동의 과제
 

그럼에도 남는 문제는, 단결권이 법적으로 보장된다고 해도 현실에서 노동자들이 단결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이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온라인 플랫폼으로부터 일감을 할당받는다. 그러니 다른 노동자를 한정된 일감을 두고 경쟁하는 사람으로 인식한다. 임금을 더 많이 받기 위해 지금과 같은 고용 형태를 감내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에 따라 노동자들 간의 연대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서비스업 특고의 경우 고용 기간이 짧은데, 이는 노동조건이 불안정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노동자가 이직을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 이직을 통해 자기 가치를 올려 더 높은 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고, 상황에 따라 노동시간을 조정하거나 잠시 일을 그만둘 수 있는 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서비스업 특고의 경우에도, 고용유지 및 소득안정 등의 문제를 놓고 고민이 깊었다. 이때 돌파구를 만들기 위해, 산재보험을 비롯한 4대 보험 문제 등 안전보건, 복지 의제와 관련해서, 노동자성 인정의 중요성 및 연대의 필요성 등을 알려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박정환 정책국장 또한 서비스 노동자들의 경우에도, 안전보건과 복지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하자 노조 활동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고 강조했다. 안전보건을 비롯한 다양한 노동 의제를 함께 고민하고 투쟁하기 위한 집단으로서의 단위, 노동조합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전태일 3법 제정을 계기로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조합 조직화가 더욱 활성화되고, 나아가 플랫폼 노동자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플랫폼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동료의 죽음을 안고 시작한 노안 활동 / 2019.06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동료의 죽음을 안고 시작한 노안 활동 

 

 

나래 / 상임활동가 

 

격동의시기였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열기 속에서 탄생한 금속노조 SJM지회는 이현옥 노안위원에게 노동운동의 시작이자 마침표가 될 곳이기도 하다. 그 역시 근무를 시작한 20대 시절엔 노동조합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회사가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마주한 현실은 결코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 생각으로 시작한 활동이 조직부장, 체육부장, 부지회장을 거쳐 가장 최근엔 노동안전부장을 4년간 역임했다. 그에게 노안활동의 의미를 물으니 "가장 힘들었고, 가장 의미 있는 활동"이었다고 웃으며 대답했다. SJM지회는 2012년 용역업체를 동원해 직장폐쇄를 단행했던 노조파괴 사업장이기도 했다. 이 투쟁을 계기로 노조는 공장 담벼락을 넘어 지역과 함께 살기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이현옥 노안위원 역시 안산노동안전센터 운영위원, 마을 협동조합 마실의 이사로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5월 22일에 그를 직접 만나 공장 담벼락을 넘어선 노안활동의 고민을 들어봤다.
 



 후배의 죽음과 본인의 아픔으로 시작한 노안활동

"제가 활동하게 된 계기요? 투쟁하신 분들이 가열찬 투쟁 열기만으로 활동했던 건 아니고, 살펴보면 가족, 친지, 그 분들을 도왔던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함께 했던 것도 있어요. 저 역시도 노동조합 활동을 옆에서 보면서 저 활동이 정말 필요하고 정당한 활동이라고 생각해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겁니다. 일터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죠."
 
반월공단과 시화공단 두 곳에 있는 SJM은 각각 자동차 벨로우 생산과 발전소, 조선소 등에 들어가는 플랜트 사업을 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장시간노동 철폐, 심야노동 철폐를 위해 주간연속 2교대제 전환, 주40시간 노동 쟁취 투쟁 활동에 집중했다. 그 활동 가운데 노동안전보건운동을 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저에겐 두 가지 계기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여종엽이란 후배 때문이었어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제가 노동안전보건 활동에 관심이 없을 때, 노동조합도 노안활동보다 조직화 문제에 관심이 많을 때 그 친구가 근골격계 질환으로 아주 아팠어요. 저희가 플랜트 용접 일을 하다 보니깐요. 산재 신청을 하고 다시 현장으로 복귀하고.. 그게 반복됐죠. 그러다 보니 업무 강도가 높은 상황에서 아픈 동료에 대해 따뜻한 마음으로 잘 위로해주질 못했어요. 관리자나 주변 동료들이요. 그 친구가 얼마나 아팠는지 몰랐으니깐요. 기억나는 게 종엽이가 날 좋을 때 공장 담벼락에 앉아서 혼자 있는걸 보고 가끔 같이 이야기도 나누고 했었어요. 그러다 얼마 뒤 그 친구가 자살했어요. 노조에서 함께 산재 투쟁을 벌였고요. 결국 산재로 인정이 됐죠. 그 계기로 노동조합도 노동안전보건활동에 눈을 뜨게 됐어요."

"두 번째는 저의 산재 경험 때문이에요. 8년 전쯤에 일을 하다가 다쳤어요. 위험했죠. 큰 쇳덩어리가 넘어져서 저를 쳤는데, 쇠붙이에 머리를 부딪혔는데 이마가 오픈됐죠. 인생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치료가 잘 됐죠. 저 역시 산재를 당하고 보니 노동안전보건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2004년 11월 5일, 31세의 젊은 나이로 자살한 여종엽씨는 10년 넘게 조립작업을 해오다가 2001년 목과 어깨에 근골격계 질환을 얻어 산재 요양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통증이 재발했고, 2003년까지 산재와 공상 치료 그리고 복귀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2004년 4월엔 허리에 근골격계 질환까지 얻게 됐다. 허리치료를 위해 산재 요양을 신청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산재승인 여부를 계속 미뤘고, 그 과정에서 고인은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우울증까지 발생해 정신적 건강마저 크게 훼손됐다. 산재로 인한 고통을 멈추기 위해 극단적 선택을 한 그의 죽음은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고 큰 충격과 아픔을 준 사건이기도 했다. 이후 노동조합은 노동강도, 근골격계질환 등 다양한 의제로 노안활동을 벌여나갔다.

"근속이 오래되다 보니까 제가 노안부장 포함해서 노안활동만 10여년 가까이 했는데, 사실 우리 사업장 100%가 근골 질환자들이에요. 치료 안받아본 사람이 없고 공상, 산재를 안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다 아파요. 그래서 종엽이가 많이 아팠던 거고 그 친구가 가고 나서 현장 개선 사업에 집중했죠. 근골격계유해요인 조사도 하기 시작했고요. 증상이 있으면 동행 진료해서 진단이 나오거나 증상이 있으면 근무 중 치료를 하거나 휴업 치료를 받게 하거나 단계별로 면담을 통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공상 없는 일터의 중요성

이현옥 노안위원에게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사업은 어떤 것이었는지 물었다.

"제가 노안부장을 하면서 가장 문제의식을 느낀 건 '공상' 문제였어요. SJM이 공상 제도가 얼마나 잘 되어 있었냐면 무조건 증상 있어서 요구하면 진료를 통해 휴업치료를 받을 수 있었어요. 아파서 일 못 하겠다고 얘기하면 2~3주 휴업을 했죠. 급여도 120%까지 줬고요. 사실 그땐 급여가 아주 낮았기 때문에 처리해준 것도 있죠. 그러다 보니 치료를 많이 받기는 하는데 도리어 환자가 늘어난 거에요. 우리 입장에선 아이러니했죠. 그러면서 공상이란 제도가 정말 우리한테 좋은 것인가라는 고민이 들기 시작했어요."

"두 번째는 산재 은폐 문제였죠. 그래서 공상을 줄여야겠다고 판단해 노조 임원들과 상의했어요. 공상 문제를 짚어야 한다, 왜냐면 이 제도를 그대로 두면 회사도 노동조합 탄압의 구실로 삼겠다 싶더라고요. 노동력 상실 문제는 자본과 굉장히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2012년에 직장폐쇄가 있었다고 봐요. 직장폐쇄 전 압박이 많았거든요. 회사가 우리에게 했던 말이 환자가 너무 많다, 1년에 의료비로 5억 이상이 든다, 근로 손실수가 어마어마하다고 했거든요."

"직장폐쇄 투쟁 승리하고 나서 노안부장이 됐어요. 그 뒤에 임원들과 본격 논의를 시작해서 현장에서 공상을 없애고 산재로 집중하자고 했어요. 조합원들의 반발이 거셌죠. 그 좋은 제도를 왜 없애냐고요.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어요. 문제를 더 크게 봐야 했죠. 단순한 공상 문제가 아니었어요. 산재은폐로 인한 사업장 개선 문제, 공상은 나가지만 재발 방지가 안 되는 문제 같은 거요. 그래서 금속노조 노안실에 문의를 해봤어요. 금속 사업장 중에 산재하는 곳이 있냐고 하니 금호타이어, 유성 정도를 얘기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뒤에 계획을 세워 재해가 발생하면 공상이 아닌 산재로 처리한다고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통해 합의했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온거죠. 그땐 잠을 못잘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다행히 잘 버텨온 것 같습니다."

그는 획기적 변화가 단번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점진적으로 조금씩 변화하는 것, 조합원 마음속에 각인되면서 조금씩 바뀌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당시 일을 회상했다. 어려움이 많은 현실 속에서 노동조합이 노동안전보건 문제에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를 뭐라고 생각할지 궁금했다.

"노동안전은 권리라고 하죠. 생산의 도구로 활용되어선 안돼요. 그렇기 때문에 알권리 사업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왜 문제가 되고, 어떤 이유로 이렇게 해야 하는지를 모두가 알아야 하는 거죠. 노동자가 시민이기도 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공장이란 담벼락을 넘어서 시민과 아직 조직되지 못한 노동자들에게 문제를 알려나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봐요. 사실 공장 담벼락 안으로 들어가기 쉽지 않거든요. 노동안전보건운동을 노동조합만 있는 곳에서 할 건 아니잖아요?"


 2012년 직장폐쇄 투쟁을 경험하며 이현옥 노안위원은 연대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러다보니 SJM이라는 일터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 더 확장된 운동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 고민속에서 2년 전 안산노동안전센터가 설립됐다. 설립 과정에 누구보다 애정과 힘을 쏟은 그였다.

"거창할 게 없어요. 미조직 노동자, 노동안전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산재 받을 권리, 알권리 등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을 하자고 생각했어요. 거리 상담, 산재 접수, 직접 방문해서 면담도 하고요. 소책자도 만들어서 홍보도 했죠. 지금 그 정도로 사업을 하고 있어요. 우리가 SJM 직장폐쇄를 당하고 나서 탄압을 이길 수 있었던 아주 중요한 힘은 사회적 연대의 힘이었어요. 단사의 힘으로 버티긴 했지만 주변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힘들었을 거에요. 그래서 사회연대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무언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게 안산노동안전센터의 탄생 계기에요. 조합원들이 기부금을 모아주기도 했죠. 저희 사업장뿐 아니라 안산지역의 금속노조 사업장, 화섬 사업장도 함께 고민하고 힘을 모았습니다."

실제 SJM이 위치한 반월시화공단은 대부분이 영세사업장이다. 그러다보니 아주 열악한 사업장이 많다. 각 사업장 안으로 직접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은 본인들의 점심시간을 활용하고 있다. 공단 중식 선전전을 통해 여러 노동조합의 보안부장들이 권리수첩도 배포하고, 직접 만나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전국에서 고군분투 하고 있을 노동안전보건 활동가들에게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안을 챙겼으면 좋겠습니다. 주변을 챙기고 그들과 같이 만들지 않으면 결국 고립될 수밖에 없어요. 그것이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소설은 '땀'을 흘린다 / 2019.06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소설은 '땀'을 흘린다 

 

 

이종찬 / 문화사회연구소

 

 

<땀 흘리는 소설>(창비교육, 2019)은 "문학 수업을 통해 노동을 공부할 방법"에 대한 하나의 답변 격으로 기획되어 출간된 한국 단편소설 선집이다. 총 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이 책의 출발점은 "문학을 업으로 삼은 평론가들과 출판 관계자들에 대한 섭섭함"이었다고 엮은이들은 밝히고 있다.

이 책의 편집위원들은 모두 교육 현장에서 직접 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의 문제의식은 "젊은 세대와 함께 읽을 만한 제대로 된 노동 문학 선집"이 마땅히 눈에 띄지 않았다는 데 있다. 물론 한국 사회에 노동문학의 흐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70~80년대의 노동 문학에 치우쳐 있었던 데 편집자들의 고민이 자리하고 있다. 오늘날의 청(소)년 세대와 함께 '지금 여기의 노동 문학'을 이야기하기에 그것들로는 시간의 이음매가 잘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준비된 이 책은 "21세기에 새롭게 일과 직업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설 선집"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노동의 구체적 양태는 시대에 따라 그 모습들을 달리해 왔다. 어제의 노동과 오늘의 노동이, 더 나아가서는 내일의 노동이 같은 형태를 띌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인간의 노동 환경이 시대를 막론하고 꾸준히 열악하였음을 따로 강조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땀 흘리는 소설> 속 이야기들에서 우리의 시선을 끄는 건 여전히 비루한 노동 환경으로 비롯된 감정의 어떤 무늬들이다. 노동의 조건이 가혹하다는 걸 '아는' 것과 그 가혹함으로 인해 초래된 마음의 무늬들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좋은 문학과 예술은 인간과 세계를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끈다.

먼저 김혜진의 <어비>를 읽는다.

도서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어비'는 동료 직원들 사이에서 수수께끼 같은 인물로 통한다. 소설 속 그의 모습은 자발적 유폐자의 형상을 닮아 있다. "그냥 별로 말할 게 없어요. 진짜요." 그는 말하자면 "여기까지라고 금을 그어 놓고 내내 그 경계를 지키는 데 필사적인 사람" 내지는 "있었나 싶으면 어느새 가고 없는 사람"이다. 여기까지 보면 자의식 과잉의 인물로 보이지만 그것도 아니다. 어비는 의식적으로 타인들과의 관계 맺음을 회피하는 유형이 아니라 그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물 쪽에 훨씬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고 있는 소설 속 화자인 '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어비는 "웃으려고 하는데 그게 맘대로 안 되는 것 같았다."

단체 생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노출하던 어비는 어느 날 팀장으로부터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클레임의 원인 제공자로 부당하게 지목받는다. 어비는 끝까지 자신의 잘못이 아님을 주장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회사를 그만 둔다. "햇볕 한 줌 들지 않는 이 커다란 창고를 빙빙 돌면서 인생을 낭비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나' 역시 얼마 뒤 퇴사를 하게 되는데 몇 주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생활용품 창고에서 어비와 다시 마주친다. 그 날 퇴근 후 '나'와 어비는 처음으로 같이 저녁 식사 자리를 하게 되면서 가까워지는 듯 하지만 그 다음날 어비는 말없이 자취를 감춰버리고 만다. 간밤에 지갑을 잃어버린 '나'는 그것이 어쩌면 어비의짓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지만 그것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
 

 
'나'가 어비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다시 보게 된 건 인터넷 개인 방송 사이트에서다. 어비는 그곳에서 기괴한 형태의 1인 방송을 하고 있었다.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번데기를 숟가락으로 게걸스럽게 떠먹거나, 싸구려 중국 음식들을 대량으로 시켜 빠르게 먹어치우는 어비의 먹방을 본 접속자들이 여기저기에서 별 풍선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어비가 벌어들인 돈과 앞으로 벌어들일 돈"을 카운팅해 보며 '나'는 어딘지 모르게 종잡을 수 없는 기분에 빠져든다.

 

김혜진의 <어비>에서 우리가 확인하게 되는 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노동의 형태가 다양하게 분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다음과 같은 질문이 가능해진다. 어비의 인터넷 1인 방송은 노동일까 아닐까. IT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인터넷 플랫폼 공간에서 제공되는 이와 같은 '플랫폼 노동'은 우리가 알고 있는 '노동'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다음으로 읽고 싶은 작품은 구병모의 <어디까지를 묻다>이다.

'나'는 현재 카드 회사 콜센터 직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원래 꿈은 아나운서였다. 한때는 자신의 목소리가 "언어의 잎맥을 살며시, 그러고도 단호하게 켜는 활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품고 있던 그였지만 꿈을 이루지 못하고 당장의 현실에 발이 묶여서는 지금의 직장에 취업해야만 했다. 그리고 규격화된 친절함의 언어로 점철된 그녀의 목소리는 애초의 매력과 활기를 잃어버렸다. 언어 폭력과 그것을 감내해야 하는 감정 노동은 일상이 되어버린 지 이미 오래다.

그런데 어느 날 걸려온 전화는 이전과는 결을 완전히 달리 하는 것이었다. 수화기 너머 '고객님'의 목소리, 그 첫마디는 다음과 같았다. "괜찮으세요?" '나'에게 그것은 "호미로 파헤쳐진 자리를 보드라운 흙으로 덮어 다지기 위해 토닥거리는 손길"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말문이 탁 막힌 게, 그 전까지 이어져 오던 콜의 무늬에서 한 조각이 삐끗 나가 버리니까. 그동안 퍼부어진 몇 톤 치의 욕이 거의 자장가에 가까운 패턴을 이루어 왔는데 거기 갑자기 완전 5도 화음이 추가된 상황". 바로 그 때였다. '나'는 그만 "부모님 돌아가신 것처럼 통곡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통화를 이어갈 수 없는 '나'를 대신해 다른 직원이 임의로 전화를 당겨 받지만 그 또한 마찬가지의 상황으로 전개된다. 그것을 이어받은 직원 역시도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만다. 그렇게 "울음은 우리 팀 전체에 염병처럼 퍼져 나갔어요."

구병모의 <어디까지를 묻다>는 인간 내면의 심층이 지닌 복합적인 역설을 잘 드러내 보여준다. 폭언은 상담원의 마음을 허물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친절함의 말 한 마디가 도리어 그들을 완벽하게 무너뜨려 버렸다. 인간의 마음이란 것이 이토록 허술하고 모순투성이다. 우리는 아직 인간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앞으로도 여전히 그럴 것이다.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미운 오리도 산재가 되나요? / 2019.06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미운 오리도 산재가 되나요?

 

 

박승권 / 직업환경의 

 

 

"왜 너만 난리야!?"
"옆 사람들 다 멀쩡한데 왜 너만 그래?"

나름대로 운동을 좋아하고, 또 잘한다는 착각에 빠져 사는 필자에게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다. 그건 바로 중학교 체육 시간에 뜀틀 위에서 앞구르기 했던 기억인데, 반 친구들 전원(!)이 자연스럽게 임무를 완수했음에도, 유독 필자만 뜀틀 위에서 우스꽝스럽게 물구나무선 것 마냥 '1'자로 서버린 아픔이다. 수차례 시도를 해도 공처럼 구르지 못하고 뜀틀 위에서 1자로 섰다가 고목 쓰러지듯 고꾸라져 한동안 허리통증을 겪게 되었다.

업무상 질병(산재) 심의자료를 검토하다 보면 간혹 그 당시 선생님께 혼났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산재를 신청하는 노동자의 상대방을 자처하는 사업주 항변 중 단골로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논리 때문이다.

"여태껏 같은 부서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 없었는데 이번에 홍길동씨에게만 문제가 생겼다. 그러므로 산재가 아니다."

이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법)과 산재보험의 취지를 완전히 몰이해함으로써 나온 논리다. 산재보험의 목적은 업무와 관련한 안전, 보건상의 위험을 함께 대비하는 것이다. 산재를 판단하는 기준은 오로지 '업무와 질병 발병 간의 상당한 수준의 인과 관계'의 존재 여부지 노동자가 갖고 있던 위험요인이 아니다. 설령 노동자가 위험요인을 갖고 있었던들, 자연적인 경과를 따랐을 때 발병했을 시점보다 업무로 인해 상당한 수준으로 빨리 유발되었는지가 판단의 핵심인 것이다.

대법원에서도 업무와 질병 간의 인과관계를 따질 때는 보통의 평균인을 기준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당사자의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방향을 취하고 있다. 필부필녀를 기준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해당 노동자 개개인의 처지에서 "신체 부담업무"에 해당하는지, 유해요인과 질병 간의 인과성을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다.

앞서 뜀틀 얘기로 돌아오자면 당시 필자의 뒤통수는 다른 친구들보다 납작했다. 납작한 뒤통수를 갖고 있는데도 선생님의 지배·감독하에 실습에 임했고, 이 과정에서 부상(질병)을 얻었다는 것만 인정된다면 이후에는 둥근 뒤통수를 가진 친구들 기준이 아니라 '납작한 뒤통수'라는 위험요인을 가지고 있는 나의 상황에서 앞구르기와 허리통증의 인과관계만 판단하면 되는 일이다.

또 한 예로 내 친구는 병뚜껑이나 참치캔을 딸 때마다 피를 철철 흘려 놀림의 대상이 되곤 한다. 대다수 사람은 이 같은 동작을 할 때 다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 친구가 참치캔 때문에 피를 안 흘린 것은 아니므로 이 동작이 업무의 일환이었다면 당연히 산재에 해당한다.

이처럼 산재보험은 쉽게 말해 '일과 관련해 병을 얻은 근로자'를 위한 사회보장제도 중 하나일 뿐, 근로자가 잘못했다거나(고의가 아닌 이상), 업무능력이 미숙하다거나, 개인적 소인의 존재 여부는 보장 여부 판단에 중요한 고려점이 아니라는 것을 사업주든 노동자든 꼭 인지해 이로 인한 사회적 오해, 갈등이 줄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미운 오리야말로 우리 사회가 가장 먼저 품어야 할 대상이 아닐까?

[현장의 목소리] 공항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인력 부족 / 2019.06

[현장의 목소리]

 

 

공항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인력 부족 

 

 

박기형 / 상임활동가 

 

 

 

문재인 정부는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전환 대상 사업장 제1호는 바로 인천국제공항공사(이하 공항공사)로 결정됐다. 하지만 정규직 전환 약속은 자회사 전환으로 축소되었고, 심지어 자회사 전환마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성과 안전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인천공항지역지부는 인천공항 제1터미널 3층 8번 출구 앞에서 천막농성을 4개월여 넘게 이어가고 있다. 지난 5월 22일 인천공항 제1터미널 3층에 위치한 천막농성장에서 인천공항지역지부 양문영 조직부장, 정해진 노동안전보건국장, 박상민 탑승교지회장 등을 만나 현 투쟁 상황에 관해 이야기 나눴다.

정규직 전환 피하려는 채용비리의혹, 해고 구실에 불과

2017년 12월 26일 공항공사와 정규직 전환을 합의했지만 1년 후인 2018년 12월 26일 한국노총과 공항공사가 다시 합의서를 작성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2017년 합의서에는 3000여 명을 직접 고용하고 그 외 7000여 명의 인력을 2개의 별도 법인을 설립해 고용하기로 했다. 고용 형태에 관해서는 직접고용 시 관리직 미만은 면접 및 적격심사 후 채용하고 관리직 이상(보안 검색, 경비 및 야생동물은 4급 이상, 소방대는 3급 이상)은 경쟁 채용하며 탈락자는 별도회사 채용 등을 통해 고용을 보장하고, 별도로 자회사를 통해 고용될 대상 노동자는 전환 채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2018년 발표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 인천공항을 방문한 2017년 5월 12일 이후 입사한 3000여 명에 대해 경쟁 채용 도입을 추진한다고 명시했다. 어느 날 갑자기 해고의 위험에 내몰리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공항공사가 17년 5월 12일 이후 입사자들에게 경쟁 채용을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양문영 : "2018년 1월 제2터미널의 개항이 예정되어 있어서 2017년 말 개항 준비단계에서 3000여 명을 추가 채용하기 시작했었죠. 2017년 합의 당시에는 이미 일하는 인원이 9000여 명에 달했어요. 그래서 2017년 합의 과정에서 제2터미널 인원까지 포함한 1만여 명에 대해 정규직 전환을 하겠다고 약속한 것이죠. 하지만 2018년 발표를 전후로 채용 비리를 문제 삼았어요. 당시 공공기관 채용 비리가 사회 이슈로 떠오른 때였죠. 공항공사와 한국노총은 기존에 근무했던 인원은 제외하더라도, 정규직 전환 발표 이후에 입사한 사람에 대해서는 채용 비리 의혹이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어요. 그러면서 심사를 더 까다롭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경쟁 채용 방식 도입을 추진하기로 발표해버렸어요. 저희는 이에 반대하며 2017년 합의서를 지키라고 주장하고 있어요."

정해진 : "5월 12일 이후 입사자 모두에게 의혹이 있다고 전제하는 건 부당하죠. 무엇보다 채용 비리를 시험으로 거른다는 게 말이 안 되죠. 채용 비리는 불법이니까 경찰 조사나 감사를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경쟁 채용하겠다는 것은 비리를 적발하겠다는 게 아니죠. 경쟁에서 탈락한 인원은 전환 승계하지 않고 해고하겠다는 구실을 찾는 거죠. 전환대상자 임금 수준이 공사 정규직의 1/3 수준인데도, 경쟁 채용으로 시험을 치려는 것은 일정 인원은 꼭 떨어뜨리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어요."
 


인력 부족 해결을 위해 근무환경 개선해야 

이들은 모두 공항공사가 채용 비리를 운운하기 전에 가장 심각한 문제인 현장의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의 인력 부족으로 인해 갖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항공사와 용역업체가 계약한 T.O조차 채우지 못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한다.

박상민 : "탑승교 사업장의 경우 지난 1년 동안 T.O를 채워서 근무한 적이 없어요. 만약 채용 비리를 해서라도 들어오려는 좋은 직장이라면 지원하는 사람이 넘쳐야 정상이겠죠. 그런데 실제로는 지원조차 적어요. 처우가 열악하기 때문이죠.

정해진 : "설령 긴 채용 절차를 거쳐 인원이 충원되었다고 해도 처우가 열악하면 오래 남아있기가 힘들어요. 하루 일하고 그만두는 사람, 일주일하고 그만두는 사람이 많아요. 지원할 때에는 자회사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와보니 용역회사와 다를 바 없다는 걸 깨닫기 때문이에요. 자회사라 채용 기준이 올라가고 지원하는 분들의 스펙도 올라가는데, 근무환경과 조건이 개선되지 않았죠. 일은 힘들고 처우는 열악하고. 그러니 기대했던 바와 다른 상황에 크게 실망하게 되는 거죠."

교대제 개선 위해 3200여 명 충원해야

까다로워지고 길어진 채용 절차와 기간, 용역회사 시절과 다를 바 없는 처우뿐만 아니라 교대제로 인한 높은 노동강도도 인력 부족을 일으키는 주요한 문제였다. 공항은 24시간 돌아가는 사업장의 특성상 교대제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인력이 충분하지 않아 교대제로 인한 어려움이 컸다. 

양문영 : "사업장 대부분에선 3조 2교대를 운영하고 있어요. 하지만 인력 부족으로 교대제 부담이 가중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청소 노동자분들은 오전조/오후조/야간조로 고정되어 있고, 근로시간은 7시간 반씩 주6일제로 책정되어 있어요. 이 때문에 주5일제 전환을 요구하고 있어요. 

교대제에 있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도 있어요. 정규직은 4조 2교대를 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희도 4조 2교대 전환을 요구하고 있죠.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공공운수노조에서 진행한 2017년 연구보고서의 분석을 현재 인원에 적용해볼 때, 교대제 개선에 필요한 인원은 약 3200여 명 정도로 나와요. 이 정도 인력이 충원돼야 장시간 노동, 야간 노동, 높은 노동강도로 인한 과로와 산재를 예방할 수 있겠죠. 하지만 공사는 관심이 없어요. 최근 보안검색대의 경우엔 주52시간제를 도입하기 위해 인력충원 없이 교대근무를 12조 8교대로 전환하여 운영하겠다고 했죠."

제2터미널 개항 후 승객 안전 위험, 이유는?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공사는 계속해서 T.O를 줄여왔다. 반대로 제2터미널 개항과 저가 항공사 출범으로 운항 편수가 증가하여 업무량은 갈수록 늘었다. 그러다 보니 연휴나 휴가철마다 운항 편수와 이용 승객은 항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그런데도 공항공사는 제2터미널이 개항하면서 전체 근무 인원이 늘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업무량 증가 대비 인력충원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야간 노동 시 연속휴게 시간이 보장되지 않으며, 연월차 사용을 제한받고 안전 및 보건 교육도 형식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박상민 : "탑승교 근무 인원은 2018년 1월 제2터미널 개항 전까지는 여객터미널 108명, 탑승동 80명이었는데 개항 이후 각각 87명, 63명으로 줄었어요. 인원 부족으로 메뉴얼대로 근무하지 못해요. 매뉴얼에 따르면 비행기 착륙 30분 전에 점검하고 착륙 후 항공기와 접현하고 승객이 내리고 정비와 내부 청소가 끝나 항공기와 이현할 때까지, 근무자가 대기하게 되어있어요. 하지만 인원이 부족하니 핵심업무만 해요. 여기서 잠깐 접현하고서 다른 데 가서 잠깐 이현하는 식이죠. 한 시간가량 해당 근무 장소에 머물면서 탑승교 오작동 등 비상상황에 대처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는 거죠. 더구나 장비가 인천공항 개항할 때 설치한 거라 20여 년 가까이 되었어요. 그래서 노후 상태가 심각하죠. 하루에도 수십 건씩 장애가 발생해 민원이 끊이지 않아요. 그런데 공사는 최근 장비 사용 연한을 10년 더 늘렸어요. 설비 투자 없이 이윤을 늘리겠다는 거죠. 이 때문에, 근무자 과로만이 아니라 승객 안전에도 위협받을 수 있어요."

정해진 지회장도 수하물 장비 노후로 고장이 빈번하다고 지적하며 2016년 1월에 발생한 '수하물 대란'을 언급했다. 당시 3000개가 넘는 수하물을 근무자가 직접 옮겼고 그로 인해 30분 가량 업무가 지연되면서 승객의 불편함을 초래했다. 그뿐만 아니라 30~40kg의 수하물을 급하게 옮기다 보니 노동자들은 부상과 사고 위험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작업 대부분이 지하에서 이뤄져 직업병의 위험도 크다. 각종 폐기물, 오수 처리 시설과 함께 컨베이어벨트가 작동하고 있어 각종 분진과 유해물질에 노출된다. 최근 20년 가까이 근무한 조합원이 폐암을 진단받고 산재 인정받은 사례도 있었다. 하지만 컨베이어벨트 주변 안전설비가 설치되지 않은 곳이 다수며 면적 대비 환풍기 설치 대수도 부족한 실정이다. 정해진 지회장은 운영 설비도 개선하지 않는 상황이니 안전설비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고 한탄했다.
 

   
자회사 전환은 인력 부족, 열악한 처우의 근본적 문제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 모두 위협받는 상황에서 공사가 인력을 충원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건비를 절약하여 비용은 최소화하고 이윤은 최대화하겠다는 공사의 경영 태도 때문이다. 공공기관 경영평가 별도 항목으로 간접고용 인원의 정규직 전환 점수가 포함되기 때문에, 경영 평가 점수를 높이기 위해 현재 간접 고용된 인원들은 정규직 전환하겠지만 인건비 자체를 늘리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회사 전환 과정에서 사업비 규모도 줄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회사 전환 과정에서 전환 대상 사업장의 용역계약이 완료되면 운영서비스, 시설관리와 수의계약을 하는 것으로 변경된다. 이때 대부분 사업장에서 낙찰률이 떨어져 기존에 비해 낮은 단가로 사업비가 책정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자회사에 고용되더라도 노동자들의 처우가 개선되지 않거나 추가 인력을 충원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용역계약 시 물가인상분을 급여인상이 아닌 연말정산으로 대체한 사업장의 경우 전환 승계하면서 노동자들의 실질 급여가 하락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시설임대수익을 위해 안전설비·휴게공간은 뒷전

이와 함께 공항공사가 운영 설비 투자를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해진 지회장은 노동자들의 휴게공간을 제공하지 않으려는 태도와 연장선에 있다고 말했다. 공항 설계 시, 근로자 1명당 적정 사무·휴게공간 면적이 배정된다. 하지만 공항공사의 전체 이윤 중 시설임대수익이 막대한 비중을 차지한다. 공항 3층에 위치한 편의점 한 곳의 1년 임대료가 약 30억에 달할 정도다. 그러니 승객 이동이 많고 접근성이 좋으며 쾌적한 2~3층은 항공사와 면세점, 상업 시설에 임대하는 반면, 열악하고 눈에 띄지 않는 1층과 지하에 용역업체 사무소, 노조 사무실, 휴게·대기실을 배정하는 것이다.

양문영 : "자회사와 안전근로협의체를 열어 운영시설, 안전설비, 사무 및 휴게 시설을 개선하려고 해도 시설 전반에 대한 권한은 공항공사가 갖고 있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이를 위해선 공항공사와 안전근로협의체를 구성할 수 있어야 해요. 공사, 항공사 등 노조 없이 하는 안전근로협의체도 있지만 한계가 있죠. 최근 공항공사에 원하청 노사 안전근로협의체를 구성하라는 지침이 내려왔어요. 그러나 세부 운영지침이 없어서 실효성이 없는 상황이에요. 속히 구체적인 운영 방안이 나와야겠죠." 

긴 인터뷰를 마치고 보니 공항공사의 태도는 한 마디로 '비용 최소화'로 요약될 수 있었다. 인건비와 시설투자비를 아껴서 이윤을 최대한으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력 부족과 시설 노후로 인해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은 위협을 받고 있다. 부푼 마음을 안고 공항을 오가는 시민들과 공항을 일터로 삼아 삶을 영위하는 노동자들. 그들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선 속히 인력충원이 이뤄져야 하며 문재인 정부가 약속했던 정규직 전환, 그 취지가 지켜져야 할 것이다.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강사는 왜 '노동자'가 되지 못하는가 / 2019.06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강사는 왜 '노동자'가 되지 못하는가

 

 

지안 / 상임활동가 

 

 

고등교육법, 일명 강사법 시행을 약 3달 앞둔 지난 5월 10일,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A씨와 B씨를 신림역 인근에서 만났다. A씨는 201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시간강사로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B씨 역시 시간강사로 많은 대학에서 강의를 해오다가 최근 임용되어 모 대학의 비정규직 교수로 일하고 있는 중이다. 

강사법은 지난 2011년 12월 처음 발의 된 이후로 약 7년 정도 유예된 법이다. 법의 원 취지는 '시간강사'라는 열악한 일자리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마련된 것이지만, 오히려 이 법을 근거로 많은 대학들은 시간강사 일자리를 줄이고 전임교수들의 수업 시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개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악용을 방지하고자 지난 6월 4일 교육부는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발표했다. 개정안의 골자는 강사 인원을 감축한 대학에 제도적인 불이익을 준다는 것이지만 과연 실제로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앞으로 대학이 어떻게 강사들의 고용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계획이 필요할 것이며 교육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감독하고 규제해야 할 것이다. 

한편에서는 시간강사라는 직업의 열악함을, 고학력자가 저임금 일자리를 전전하거나 심지어 강의 자리를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상황을 통해 설명하는 방식이 있다. 이러한 설명은 저임금 일자리와 또 다른 저임금 일자리가 비교될 수 있는 것처럼 상황을 오도한다.

대학 강사의 일자리가 문제인 이유는 고학력자의 노동이 이토록 열악하다는 것이 서글프기 때문이 아니라, 강사들의 노동을 온전한 노동으로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건들이 있기 때문이다. 초단시간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는 사회적 현실이 대학이라는 위계적인 공간과 만났을 때, 강사들의 노동이 어떤 방식으로 은폐되고 있는지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일터>를 통해서 강사법의 보장을 둘러싼 여러 가지 입장들에 대해서 살펴보기보다는 강사의 노동을 노동으로 인식하기 어렵게 만드는 노동조건을 조명하려 한다. 

 

강사의 노동을 노동으로 인식하기 어렵게 하는 노동조건은 무엇일까?



주목되지 않는 시간강사의 노동시간, 강도, 환경  

대학에서 강의하는 교육자들이 어떤 노동을 하고 있는지 그 과정을 짐작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또 강의를 누군가의 '노동'으로 생각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한 이유로는 우선 이 노동이 가지고 있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라는 특수성이 있겠지만 그 외에도 시간강사를 노동자로 인식하기 어렵게 만드는 몇 가지 조건들이 있다.

첫 번째는 임금이 수업시수에 따라 시급으로 책정된다는 점이다. 임금은 수업시간으로 책정되는데 실제 이들이 수행하고 있는 업무는 그 시간 안에 종료되는 것이 아니다. 수업 준비부터 학생들의 과제를 피드백하고, 수업에 대한 공지를 메일링하고, 시험지를 채점해서 시스템에 입력하는 일 등등 한 학기의 대학 수업동안 필수적으로 진행되는 업무 절차들이 있다. 

A= "먼저 수업 준비 시간이 있어요. 반복해서 진행하는 과목하고 새로 맡게 되는 과목에 소요되는 시간이 다르긴 해요. 물론 기존에 해왔던 수업들도 새로 자료를 업데이트해야 하긴 하지만요. 보통 강의를 받고 나서 방학 동안 수업 자료를 어느 정도 완성을 시켜놔요. 그 시간이 상당히 많이 걸려요. 한 번은 잘 모르던 분야의 강의를 제안 받은 적이 있어서 거의 방학 내내 그 분야 공부를 하고 강의 준비를 했던 적도 있었어요. 또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시험지 채점이라든가, 수업 공지를 메일링 하는 것, 학생들이 해온 과제 피드백이 있을 것 같아요." 

이러한 진행 절차는 모두 강사의 업무이지만 공식적인 노동시간으로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보통 시간강사들이 일반적으로 받는 시급은 4.5만 원에서 8만 원 정도까지 대학마다 다르다. 이렇게 강사들의 시급이 법정 최저임금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점이 이 노동을 더욱 말하기 어렵게 하고 보이지 않게 만든다. 시급이 높기 때문에 수업과 연관된 기타의 노동들은 감수할 수 있는 일이 되며 높은 시급이 이미 충분히 보상을 제공하는 것처럼 착시를 준다.  

B = "사람들은 시간강사 시급이 높은 이유가 그런 부가적인 노동들이 포함되기 때문이라고 해요.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보면 많은 금액이기는 해요. 그렇지만 측정되지 않는 노동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노동강도는 어떨까? 많은 사람 앞에서 무언가를 설명하는 행위 자체가 긴장을 유발하거나 감정 소모, 소진 등을 야기하지 않을까. 

A= "강의를 하는 것이 체력적으로 힘든 건 사실이에요. 일반적인 강좌도 그렇지만, 요즘 대학들이 국가지원금을 받으려고 외국인 반을 많이 개설하고 있어요. 저도 예전에 전담한 적이 있었는데, 한국어 능력이 완벽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전공수업과 어려운 이론 수업을 가르치는 것이 정말 힘들었어요. 물론 상황에 맞춰서 커리큘럼을 짜고 진행을 하지만 외국인 학생들은 1:1로 붙어서 케어 해줘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수업을 하고 나면 몇 시간 되지 않더라도 완전히 탈진 상태가 돼요. 감정 소모도 크고요."

또한 강사법이 계속 유예되었던 지난 7년 동안 실제 시간강사들이 지속적으로 해고되는 일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고용불안이 노동자 개인에게 업무부담과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A= "일단 정신적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요. 요즘에는 학생들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거든요. 맨 처음 강의를 시작한 시기에는 내가 하고 싶은 강의를 한다는 게 있었어요. 그런데 강사법에 대한 이야기가 점점 나오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논의된 이후로는 학생들의 반응을 살피게 되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한 부분입니다."

학기마다 재계약 해야 하는 시간 강사들에게 고용 불안정이 가장 큰 업무 스트레스라면, 비정규직 교수들은 같은 분야에서 일하더라도 스트레스 요인이 다르다. 시간강사들보다 계약 기간은 길더라도, 학과의 각종 사업을 맡아서 진행해야하기 때문에 강의 이외의 추가 업무들이 주어진다.

B씨에게 평균적인 노동시간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자 그는 아침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업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이 큰 의미가 없다고 답했다. 수업 시간표 외에 출퇴근 시간이 정해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노동시간에 대한 상대적인 자율성이 있는 대신에 오히려 그런 조건이 더 일상과 노동을 구분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B= "저는 학기당 10학점~15학점 정도를 가르쳐요. 수업의 특성상 학생들을 피드백 해주는 데 걸리는 시간이 많은데 한 학기에 인 당 1시간은 걸리는 것 같아요. 학생 수는 200명이 조금 안 됩니다. 그리고 저 같은 경우에는 시간강사 때보다는 불안정성은 덜하죠. 최소한의 계약기간이 정해져있으니까요. 하지만 학회를 관리한다든지 하는 업무들이 있고, 또 학과의 각종 사업을 처리해야 해요. 이 업무들이 너무 과중해서 거의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는 상황이에요. 또 개인적으로는 대학에서 정년을 확정해 준 정교수들을 제외한 모든 교수들이 주기적으로 재임용 심사를 받아요. 논문을 투고하거나 학회 업무를 맡아 봉사시간을 채우는 것 등등을 통해서 실적을 계속 관리해야 해요."

시간강사들의 경우에는 수업과 다음 수업 사이에 쉬거나 수업을 준비할 수 있는 휴게 공간이 있는지도 물었다. 강사실이 있기는 하지만 휴게공간으로서의 기능은 거의 하지 못하고 심지어 학생이 면담을 요청해도 상담을 진행할 공간이 없는 상황이었다. 

A ="강사실이 있지만 일단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요. 학교마다 다르긴 하지만 비치되어 있는 물품이나 복사기, 컴퓨터 같은 것을 사용하는 것이 매우 제한적입니다. 컴퓨터가 6대 있는데 고장이 나도 고치질 않아서 2대를 나눠 사용하는 식이예요. 수업 준비를 하려면 거의 1시간 전에 가야 인쇄라도 할 수 있던 학교도 있었습니다. 또 사소한 건데 비참했던 건 학기 초에 강사실에 있던 벌레 사체가 학기 말까지도 치워져 있지 않는다던가 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때 여기가 치워지지 않는 공간이구나 하는 걸 느꼈죠."  

고용 불안정성과 불안을 지목할 수 없는 문제   

앞서 시간강사들이 노동자로 자신을 인식하기 어렵게 만드는 조건으로써 높은 시급이 지불되지 않는 노동을 견디도록 만듦으로써 가려지는 노동시간에 대해 들어보았다. 두 번째 조건으로는 대학이 편의와 비용절감의 이유로 양산한 단시간 일자리와 고용 불안정성의 문제가 있을 것이다.

시간강사들이 일하는 일자리란 대부분 단시간, 혹은 초단시간 일자리들이다. 또 학기 단위로 고용계약을 하고, 고용의 전 과정이 매우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 이들을 개인화하고 고립시킨다.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일자리의 처우가 문제가 되자, 역으로 인력감축을 시도하는 대학이라는 노동현장에서 시간강사와 비정규직 교수들이 체감하는 문제점들은 무엇일까. 

A= "국공립, 사립대학 모두 포함해서 4개 정도의 대학에서 강의를 해왔고, 적게는 3학점부터 8학점까지 강의를 해왔어요. 1학점을 주당 1시간 수업이라고 보시면 돼요. 보통 3월에 시작하는 학기의 수업은 1월 정도에 강사에게 메일로 제안이 와요. 그 시기에 연락이 안 오면 그냥 그 학교는 잘렸구나 생각을 하는 거예요. 만약에 전에 수업하던 학교에서 연락이 안 왔다면, 어떤 기준에 미달해서 수업을 못 받은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어요. 예전에 개강하고 난 이후의 수업을 갑작스럽게 소개받은 적이 있는데, 학교가 지방에 있어서 이동시간도 만만치 않았고 3학점인 수업이었는데 혹시나 다음 학기로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 때문에 받은 적이 있어요." 

B= "제가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교수 자리는 1년씩 계약연장을 해요. 만약 재계약이 안 되면 학교를 나가야 하는 상황이에요. 당장은 고용 불안에서 약간 벗어난 것은 맞지만 강사법이 시행돼 학교의 모든 강사 일자리가 3년 고용 보장으로 세팅이 되고 나면, 그 시기 이후 계약이 종료되는 비정규직 교수들은 시간강사로 일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될 거예요."

A= "한 학기가 4개월이에요. 1년에 두 학기가 모두 계약된다는 전제 하에도 8개월만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거예요. 그렇지만 저라는 사람에게 들어가는 한 달 고정 지출은 있죠. 그래서 월급을 쪼개서 쓴다고 해도 방학 때는 빚을 질 수밖에 없어요. 방학 기간에 빚을 지고 그걸 갚는데 2달 정도 지나고 아무리 쪼개서 쓴다고 해도 금방 또 방학이 와요. 실업급여 같은 경우는 3학기 당 1번씩 받을 수가 있어요. 실업급여의 조건인 180일 근무를 채워야 하는데 1주일에 제가 실제로 수업을 하는 날은 2일이기 때문에 수급 조건을 채우려면 3학기는 되어야 하는 겁니다." 

대학 내 비정규직 교수 직함들은 겸임, 초빙, 객원, 연구, 대우 등등 업무 내용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끝없이 양산되고 있었다. 계약직으로 대학 교수들이 임용되고 있는 한편에서 시간강사들은 학기 방학마다 다음 학기 계약을 기다려야 한다는 불안감을 견디고 있다.

여기서 7년 동안 유예되고 있던 강사법은 법 시행을 2달 앞둔 지금에서야 시행령 일부 개정안이 나왔다. 이 법이 실제로 대학으로 들어왔을 때 어떤 식의 효과를 낳을지, 대학이 마련하고 있는 구체적인 계획을 누구도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강사 개개인에게 정보가 차단되어 있거나 차등적으로 주어진다는 점도 불안을 가중시키는 문제다. 

B= "저도 비정규직이다 보니 앞으로 대학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정보가 없어요. 창구도 없는데다가 정보가 차등적으로 들어와요. 비정규직 교수에게 공개된 정보도 강사들에게 공개하면 안 된다는 단서가 붙고요."

A= "학부의 한 영역에 소속되어 강의한 적이 있는데 여기 소속된 강사의 숫자가 100명은 넘었어요. 3~4년 전부터 매 학기에 선생님들이 없어졌어요. 갑자기 자르면 눈에 보이니까 순차적으로 잘라나간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근데 누가 없어진다는 걸 사실 느낌으로만 아는 거죠. 우리끼리 연락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공식적인 절차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내 지인이 잘렸는데 나는 아니구나, 이런 식으로밖에 알 수 없었어요." 


  
 이중적인 정체성의 문제 

마지막 조건으로 이중적인 정체성의 문제가 강사들의 노동을 비가시화하는 주요한 맥락이 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박사과정 학생이기도, 연구자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강사인 이중적인 정체성이 스스로를 노동자로 정체화 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물론 그에 앞서 이러한 이중성을 이용해서 불합리하고 열악한 노동조건과 처우를 개인들이 감당하도록 하는 대학의 노동구조가 있을 것이다. 

A = "일자리가 불안정하다는 것에 더해서 기본적으로 시간강사라고 하는 것이 소속감이 없어요. 자신을 시간강사인 노동자로 정체화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어요. 오히려 연구자로 정체화하는 경우가 많을 거예요. 여러 대학에 출강하고 있는 시간강사들이 한 대학에 소속된 구성원이라고 생각하기도 어렵고, 대학에서도 그런 소속감을 부여해주지 않아요."  

이처럼 단시간, 초단시간 일자리 노동자로 여러 대학을 떠돌면서 강의를 하는 시간강사들의 경우에 자신을 한 대학에서 노동하는 노동자라고 인식하기 어렵다. 비정규직 교수라는 형태로 한 대학에 소속되어 노동을 하더라도 계약기간이 정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위계적인 대학 문화라는 조건 속에서 자신의 노동조건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변화를 만들기란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이런 총체적인 문제 속에서 어떻게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을 만들 수 있을까? 인터뷰이인 두 사람에게 노조 활동을 하거나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물었다. 

A= "이런 어려움들 때문에 더 뭉쳐야 하는 건데, 정확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저 스스로를 소극적인 주체로 만드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두 인터뷰이 모두 앞으로 한 대학의 소속이라는 자격이나 소속감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 일을 지금 하고 있다는 교육 노동자로서의 접근을 통해 연대할 필요성을 덧붙였다.

"이 일을 노동으로 접근했을 때 노조가 훨씬 강해질 수 있을 것 같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조에 가입을 해야겠네요."

[국제안전보건기준비교검토] 독일 산업안전보건 체계가 한국 산안법전면계정안에 주는 메시지 ⑧ / 2019.06

[국제안전보건기준비교검토] 

 

 

독일 산업안전보건 체계가 한국 산안법전면계정안에 주는 메시지 ⑧

-더 넓고 참여적인 위험성 평가가 되어야 

 

 

조승규 / 회원, 반올림 활동가, 노무사 

 

 

산업안전보건 국제기준비교 연구팀에서는 2018년 9월부터 독일 산업안전보건법과 체계를 공부하면서, 한국 산업안전보건 체계가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여덟번째 글은 연구팀의 마지막 글로 독일의 위험성평가에 대해 다룬다. 

위험성평가, 한국에도 있지만

독일은 산업재해 사망 십만인율로 볼 때 한국의 6~7분의 1 수준(2015년 기준 한국 10.1 독일 1.5)밖에 되지 않는 나라이다. 이는 산업구조의 차이 등을 감안하더라도 너무나 큰 차이다. 어떻게 독일은 훨씬 안전한 일터를 만들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을 던지면서 지난 8개월 동안 우리 연구팀은 독일과 한국의 산업안전보건법을 비교해왔다. 독일 산업안전보건법 공부를 마치는 시점에서 보니, 독일과 한국의 차이는 크게 두 가지인 것 같다. 첫째로는 독일에는 한국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 제도들이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노동자 참여권을 강력하게 부여한 사업조직법이라든가, 사업장 산업안전보건 인력의 독립성을 규정해놓은 산업보건의 및 산업안전전문인력에 관한 법률 같은 것들이 이에 해당한다. 둘째로는 한국에도 있는 제도지만 독일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 기사로 다룬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범위와 사업주의 의무나, 이번에 다루는 위험성평가가 이 두 번째 경우에 해당한다. 



다양한 위험성을 평가할 수 있어야

구체적으로 보면 독일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위험성평가가 진행되는 것일까? 먼저 독일의 위험성평가는 한국보다 더 다양한 위험성들을 고려한다. 한국의 산업안전보건법은 위험성평가를 사업장의 '건설물, 기계·기구, 설비, 원재료, 가스, 증기, 분진 등에 의하거나 작업행동, 그 밖에 업무에 기인하는 유해·위험요인'을 평가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이 문구만 보자면, 그 밖의 유해 위험요인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모든 위험성을 평가할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 앞에 나열되어있는 건설물에서부터 작업행동까지의 요소만을 평가할 뿐그 이상을 다루지 못한다.

그에 비해 독일의 위험성평가 사례를 보면 훨씬 더 넓은 위험성을 고려한다. 아래 사례를 보면 평가항목 중 시간적 압박이 있는지, 일을 통한 성장가능성이 있는지, 자유롭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위험성은 한국에서는 아직 위험요소로 대두되지 않았기에 매우 생소한 것들이다. 이렇게 더 다양한 위험요소까지 살펴볼 수 있을 때, 한국의 위험성평가도 사업장의 전반적인 위험을 총괄하는 평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의 위험성평가 예시표

현장 노동자가 평가할 수 있어야

다음으로 독일의 위험성평가는 노동자가 평가주체가 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위험성평가 제도는 작업을 하는 현장 노동자가 위험성을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인식에서부터 출발했다. 그러므로 한국의 위험성평가 제도에도 노동자 참여가 들어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사업장 위험성평가에 관한 지침을 보면, 해당 작업을 하는 노동자의 참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참여하게 할 것'으로 규정되어 있어서, 참여를 배제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있다. 또 한 해당 규정은 노동자의 참여를 '유해·위험요인을 파악하거나 감소대책을 수립하는 경우'로 제한하고 있어서 위험성평가의 핵심인 위험성을 계산하고 그것이 현재 조치가 필요한 위험인지 결정하는 단계에서는 배제하고 있다. (참고로 이번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에서 노동자의 참여가 산업안전보건법에 명시되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것은 이 지침에 위임되어 있으므로 해당 지침은 반드시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독일은 이 연구팀의 세 번째 기사(http://omn.kr/1gr8f)에서 살펴보았듯이 노동자평의회를 기반으로 산업안전보건에 있어서 노동자의 참여권이 잘 보장되어 있다. 독일의 위험성평가 제도에는 별도의 노동자 참여 규정이 없으나, 실제 사례를 보면 '현장 작업자에 의한 평가'라는 위험성평가의 취지가 잘 구현되는 방식으로 평가가 진행된다. 위의 독일 위험성평가 사례를 보면, 현장 노동자는 위험성을 평가할 수 있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으며, 사업주는 제안한 대안이 타당하면 구체적인 이행대책까지 세우도록 되어 있다. 한국에서도 현장의 목소리가 잘 반영되도록 위험성평가 제도와 평가방식을 고안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국의 산업안전보건법이 더 나아가려면

독일의 산업안전보건법을 보면서 우리는 위험성평가 뿐 아니라 산업안전보건법 전체에서 기본정신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도도 쉽게 바뀌지않는데, 그 안에 있는 원리는 도대체 어떻게 바꿀 수 있는 것일까. 유럽에서 위험성평가를 도입하게 된 배경에는, 기존제도로는 더 이상 작업장의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진단이 있었다. 한국에서도 현행 제도로는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하는데 분명한 한계지점이 있다는 점을, 사회적으로 확인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연구리포트] 과로(사·자살),통치 기술의 산물이다 / 2019.06

[연구리포트]

 

 

과로(사·자살), 통치 기술의 산물이다

 

 

김영선 /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

 

 

개인적인 것? 문화적인 것?


과로(사·자살)를 ‘권력 장치’로 풀어내는 푸코주의 분석. 생경하지만 궁금증을 유발한다. 여기서 다룰 텍스트는 Governing Employees: A Foucauldian Analysis of Deaths from Overwork in Japan(Yoshio Shibata, 2012, Global Asia Journal, 12)로 저자인 요시오 시바타는 뉴욕시티대 문화인류학 박사로 현재 리츠메이칸대에서 사회학을 강의하는 연구자다. 논문을 세 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과로(사·자살)의 원인에 대한 문화적 설명과 개인에 기초한 설명은 권력 장치의 착취 효과를 은폐하는 결과를 낳는다. 개인환원론은 권력 문제를 탈각시
키고 문화적 설명은 권력 문제를 모호하게 흐려 버린다. 2) 완벽주의 성향 등의 개인적 특성이나 소속감 등의 문화적 태도 모두 사실은 ‘통치 기술’로서의 ‘작업장 장치’에 기인한 것이다. 3) 그 장치들에 관철된 통치 기술을 드러내 이에 대항하는 집합적인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저자는 “일본 노동자들은 왜 힘든데도 일을 계속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과중노동을 ‘회사 충성심’, ‘집단주의’, ‘소속감’때문이라고 여기는데, 과연 그런가?” 두 번째 반문이다. 마지막으로 완벽주의 성향이나 개인 선택·자발성으로 보는 개인 차원의 설명에 대해 비판한다. 일본 노동자는 회사에 ‘속해 있’는 것(belong to)으로 설명되곤 하는데, 대표적으로 로널드 도어(1982)는 일본 노동자가 회사에 추가 노동을 제공하려는 의지는 회사에 대한 소속감, 멤버십 동기에 따른다고 보았다. 이렇게 일본인에게 존재적인 것처럼 전제된 소속감이나 멤버십 동기는 일본인론(nihonjinron)과 연결된다. 일본인은 개인적인 것이나 전문가적 특성보다는 집단을 우선시한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인론이 많이 사그러들었음에도 이러한 문화주의 프레임은 과로 현상을 분석하는데 여전히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에 반해, 저자는 멤버십 동기나 소속감이 동원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문화주의 담론은 통상 어떤 에토스를 국민적 특수성으로 여긴다. 이런 프레임은 많은 경우 사회적 실재를 관통하는 권력관계를 간과하곤 한다. 그는 과로(사)가 집단주의나 공동사회적 응집성에 기인한다는 설명을 거부하면서, 문화주의 담론을 ‘관리 장치’의 일부라고 본다. 문화주의 담론은 과로(사) 현상을 정당화하는 관리 장치라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자발적 과로가 과로사의 원인일 수 있겠지만, 문화적 설명은 권력 작용을 놓치고 만다. 저자는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과중 노동을 권력관계 밖에 놓여 있는 ‘문화적인 에토스’로 설명하는 건 적절치 못하다고 비판하면서, 미셸 푸코(2003, 2007)의 통치성(governmentality) 개념을 가져와 관리 장치가 노동자들을 어떻게 죽을때까지 자발적으로 일하도록 내모는지를 분석한다. 여기서 통치성은 ‘품행의 통솔’로 ‘개인들이 무언가를 하게 유도하고 관리하는 방법’을 말한다.

‘전체적인 인간’ 그 자체에 대한 평가


일본 기업처럼 평가 기준이 암묵적이고 모호한 경우에, 사실상 평가 대상은 ‘전체적인 인간’ 그 자체가 된다. 노동자가 가진 능력이나 기술에 대한 것이 아니다. ‘사회성’, ‘일하려는 의지’, ‘열심’, ‘희생’, ‘회사에 대한 충성심’ 등의 모호한 기준들은 ‘삶의 태도’ 전체를 평가 대상으로 위치시킨다. 그렇기에 노동자는 회사를 중심으로 자신의 삶 전체를 조직할 것을 요구받는다. 이러한 기대들은 회사 모토나 계명, 로고송, 배지, 심지어 콘도나 명절 선물세트 등의 회사 의례나 상징적인 장치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유통된다.

그간 작업장에서 암묵적인 평가 장치로 역할을 한 건 일본인론이었다. 관리장치로서의 일본인론은 직무에 대한 교육보다는 ‘좋은’ 샐러리맨의 ‘바람직한’ 태도를 학습시키는데 집중했다. 신참자가 ‘회사 공동사회’에 소속감을 갖기를 바랐고 자신의 직업에 헌신을 다하면서도 집단에 충성을 다하길 유도했다. 일본인론은 일종의 ‘규범화하는 담론(normalizing discourse)’인 것이다. 규범화하는 담론은 판옵티콘적 효과를 생산하는데, 이는 노동자들이 언제나 감시 또는 평가되고 있다고 인식하게 만든다. 회사 밖 활동에서도 ‘열정적’이길 요구받고 노동자 스스로도 그런 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 판옵티콘적 시선의 확장이다. 이러한 규율 메커니즘은 일터의 모든 층위에 스며들어 있다. 여기서 개별 노동자는 권력의 대상인 동시에 권력의 행사자가 된다. 판옵티콘적 권력관계망은 하라스먼트의 주요 원인으로 작동한다. 가해자의 입장에서 정시 퇴근과 휴가 신청은 야루키(열정, 헌신)의 부족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물론 많은 하라스먼트의 사례에서 보듯이, 가해자 자신 또한 노무관리의 희생자에 불과하다. 기업들은 ‘의무’와 ‘자발적인 것’ 그리고 노동과 비노동 간의 구분을 흐리는 전략을 구사해 노동자들을 무급 초과노동으로 유도한다. 노동자들이 ‘자발적’이라 이름붙인 회사의 활동들에 참여한다는 것은, 기업이 아주 손쉽게 막대한 노동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노동자들의 과로(사)를 시켜서 그런 것도 아니고 ‘노동’으로 분류조차 할 수 없으며 관리감독 하에 있던 것도 아니라고 주장함으로써 과로(사)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거부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무급 초과노동을 유발하는 간접적인 관리기술은 매우 효과적인 노동비용 절감 수단이 된다. 이러한 노무관리 기술들은 간접적으로 작동하기에, 노동자들이 그 권력의 작동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든다.


동료 경쟁과 MBO

일본에서 판옵티콘적 시선은 철저한 동료 경쟁을 통해 설계된다. 동료 경쟁은 노동자들이 게임에 참여토록 하는 의지를 발휘하게 하는 신자유주의적 통치 기술이다. 노동자들은 동료 경쟁의 과정에서 게임에 승리하기 위한 방법으로 서비스잔업이나 충성심, 소속감을 멤버십 쌓기의 일환으로 여기고, 그것을 증명하려 한다. 물론 멤버십의 기준이 명료하지 않기에, 동료 경쟁의 한계는 따로 없다. 은행원을 대상으로 한 요코타 하마오(1997)의 연구는 노동자들이 서비스잔업 같이 
‘자기 희생’을 전시하는 게임에 참여하는 풍경을 보여준다. 실제로 평가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들이기에, 노동자들은 타자의 평가적 시선에 상당히 민감하게 되고 의식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일종의 ‘인상 관리’를 위한 ‘연극적’ 행위인 것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경쟁 게임이 노동자를 ‘통치될만한’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다고 지적한다. 개별 노동자는 경쟁에서 이길 때도 있겠지만, 게임의 판에서 노동자는 또 다른 경쟁에 배치될 뿐이라는 것이다. 혹시 누가 경쟁 게임에 거부감을 가지더라도 그 게임에서 발빼기는 어려워진다. 경쟁에서의 이탈은 ‘불행’으로 미디어화되어 있기에 ‘추락의 공포’는 더욱 경쟁 게임을 추동한다. 한편, 1990년대 중반 이후 새롭게 부상한 경영 담론은 정규 고용을 줄일 것, 연공성을 줄일 것, 결과중심적인 평가체계를 구축할 것, 노동자의 책임성을 중시할 것, 전지구적 경쟁에 맞선 창발성과 성과평가 등을 강조했다. 새로운 경영담론은 자기주도성, 자립성, 위험감수, 결과에 대한 책임성 등을 내세워 복지국가에의 의존문화(culture of dependency)를 공격했던 대처, 레이건의 기업문화 담론과 상당히 흡사하다. 일본의 경영담론 또한 안정성으로 상징됐던 정규 노동자의 것들을 ‘의존성’으로 규정하고 제거되어야 할 것으로 공격해 나갔다. 개인의 자율성을 최대한 끌어내고 자신을 스스로 통치하게끔 만드는 새로운 방법으로 성과지향적인 평가체계가 도입됐는데, 대표적인 것이 목표관리(Management By Objective, MBO)다. MBO는 (1) 개인별 특정 업무를 연차별, 분기별, 월별로 구체화하고, (2) 업무 목표의 성취도를 수시로 평가하며, (3) 기업목표와 연계해 개인 업무목표를 설정하고, (4) 업무 목표를 수량화해 기업이익과 연결하는 것이다. 여기서 노동자들은 연공성에 기대지 않는 ‘기업가적’이길 요구받는다. ‘책임있는’ 사람으로서, 할당된 직무 목표를 성취해 나가는데, 실패에 따른 결과(낮은 임금, 심지어 해고까지)를 수용해야 한다. 회사를 비난하는 게 아니고! 노동자들은 이익과 비용을 스스로 계산하도록 또한 더욱 높은 직무 목표를 달성하도록 요구받는다. 업무 성과의 실패는 자기 통치의 실패와 연관되어야 한다.
MBO는 ‘자아 기술’을 도입한 통치 기술의 전형이다. (1) 직무 목표를 확인하고, (2) 어려운 목표를 성취하게 하며, (3)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4) 목표 달성에 실패하면, 비난을 감수하고 책임을 져야하며, (5) 도전 목표를 달성하면, 다음 라운드에선 더 높은 목표치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장치는 ‘무리한’ 목표까지도 수용케 할 수 있다. 만약 쿼터를 달성하지 못해 그에 따른 손실을 노동자 개인이 감수하도록 하는데, 실업의 공포가 일상화된 맥락에서는 초과노동의 수용이나 책임성을 높이는 기제로 작동한다.

또한 노동시장이 분절되어 있고 자본의 분할 지배 전략이 구사되는 맥락에서 노동자는 잔업을 더 해야 하는 압력에 내몰린다. 비정규 노동자 또한 정규직이 되려면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 압력을 받는다. 노동가격을 낮추는 경쟁 압력, 즉 노동 덤핑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과로(사·자살)로 내모는 권력 장치의 효과를 문화적인 것, 개인적인 것으로 오독하지 말아야 할 것을 주문한다. 권력 장치의 효과로 외화된 장시간 노동만을 문제화하는 접근 또한 작업장에 가로지르는 권력 장치의 폭력성을 대면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문제의 해결은 작업장에 관철된 통치 기술들을 문제화하지 않고서는 어렵다. 저자는 통치 기술에 대항하는 집합적인 대응수단을 마련해 투쟁을 전개해야 함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