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리포트] 서울성모병원 청소노동자 근로실태 보고서 / 2019.05

 [연구리포트] 

 

 

서울성모병원 청소노동자 근로실태 보고서 

 

 

유형섭 / 보건의료학생 매듭 

 

 

1. 서론

 

지난 몇 년간 청소 노동자의 고용불안, 저임금, 열악한 휴게시설 등이 이슈였다. 대학 청소노동자 노동안전실태조사를 통해 시설관리를 담당하는 노동자들은 무거운 물건 취급, 불편한 자세에서의 반복적인 작업, 청소에 쓰이는 화학물질, 보호장비 부족, 적절하게 지급되지 않는 휴식공간 등에 의해 건강권이 침해 받고 있음이 드러났다.01 또한 청소용역 노동자들에 대한 인권실태에 대한 연구에서, 대부분 비정규직 저임금의 여성 노동자로 자신의 노동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일상적으로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2. 연구 대상 및 방법

 

서울성모병원의 청소 용역을 담당하고 있는 대건 기업에 소속되어있는 청소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연구는 면접조사로 진행하였으며 대상자 선정 시 협력업체의 협조를 받아 13명의 노동자에게 면접조사를 진행하였다. 면접의 내용은 인적사항, 근로조건, 휴게공간, 건강 실태 및 산재 보상여부, 인권 침해 및 직무 스트레스에 대한 부분을 30-1시간 동안 인터뷰하였고 2-3명씩 그룹을 지어 총 13명의 노동자와 면접을 진행하였다.

 

3. 연구 결과

 

(1) 사업장 특성

대건 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청소노동자는 총 264명으로 여성 200, 남성 64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교대 근무가 아니라 데이(6:30- 15:30) 188, 이브닝(14:00-21:00) 45, 나이트(22:00-5:00) 31명의 전담 근무자를 두고 있으며, 주당 근무 시간은 평균 40시간이며 근속연수에 상관없이 최저임금을 받고 있다. 계약 기간은 나이에 따라 달라지며 만 60세 미만의 노동자의 경우 매년 계약서를 다시 작성하며 따로 정년이 있지는 않으나 60세 이상 노동자의 경우 6개월마다 계약서를 다시 작성하고 있다. 해당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은 부재한 상태이다. 휴가 역시 근무시간 대 별로 다양하나 데이 근무의 경우 공식 휴가일수는 18일이다. 휴게 시설의 경우 성별에 따라 구분되어 있다. 정기적으로 작업장 내 유해물질 관리 교육과 성희롱 성폭력 예방교육, 산재 보상에 관련한 교육 등을 진행하고 있다.

(2) 면접조사 결과

면접 대상자는 13명으로 모두 여성이었다. 데이근무자가 11, 이브닝 근무자가 2명으로 구성되어있었으며 평균 연령 60.3, 평균 근속연수는6.9년이었다. 이 중에는 다른 건물에서 청소노동을 하시다가 오신 분들이 2, 그 중에 한 명은 타 병원 근무 경력이 있었고, 나머지 11명의 경우 서울성모병원에서 처음 청소 노동을 시작하였다.

 

① 근로 조건, 노동시간 및 임금

데이 근무자의 경우 출근시간이 이른 편이지만, 일찍 오는 것에 대한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계약서를 자주 써야하며,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지만 고용해주는 것 자체에 만족했다. 이에 고용불안을 느끼기보다는 고용관계에서 오는 당연한 것이라는 태도를 보였으며, 계약 취소를 걱정하기보다는 체력이 가능 할 때까지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임금 역시 다른 직원들과 비교해서 차이 없이 동등하다는 것을 수용하였다. 휴가의 경우 쓰고 싶을 때 쓸 수 있는 것에 만족하나 적은 것에 불만을 표하는 사람도 있었다. 정작 휴가가 몇 일인지 다들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였다.

 

② 휴게시설 및 노동조합

데이 근무의 경우 아침과 점심에 각각 1시간씩 휴식시간이 정해져 있고 휴게시간은 철저히 지켜지고 있다. 그 시간 동안은 휴게실에서 동료와 수다를 떨거나 식사를 한다. 휴게시설 자체는 냉난방, 샤워, 냉장고 등이 잘 갖춰져 있고 넓어서 만족하는 편이며 개선사항은 없다.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필요성을 아예 못 느끼시는 분부터 없다는 사실이 부당하다는 의견까지 다양하였다.

 

휴게실은 만족해요. 보일러도 뜨뜻하고, 면적도 넉넉해요.” / “(노조에 대해 묻자) 그냥 가는 거지 뭐..” “잘 모르겠어요..” / “용역 노동자들도 노조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다른 계약직 경우에도 있는데 우리는 왜 없는지..”

 

노동강도 및 건강 실태, 산재 여부

노동 강도와 관련해서는 다들 자신이 할 수 있는만큼의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모두 스스로 건강하다 하였고, 일하다 다치거나 다칠 뻔한 적은 없다고 기술하였다. 반면, 청소 업무 중에 병원 청소가 유동인구가 많아 힘들고 기피하는 장소이며, 걸레질을 많이 하니 어깨와 팔이 아프고, 병동이 아닌 다른 층에서 청소 업무를 맡는 경우 담당하는 구역이 넓어 항상 다리가 아프다는 의견 역시 있었다.

 

일하다가 아파진 곳이 딱히 있진 않아요. 오히려 건강해졌어요.” / “어깨와 팔이 많이 아파요. 걸레질을 워낙 많이 하니깐. 많이 걸어서 다리도 아프고요. 일하다가 아플 때 정형외과나 한의원에 가요.”

 

그 외 피부나 호흡기 질환 등을 앓거나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였고, 청소 시 필요한 보호구는 적절히 제공한다. 하지만 주사바늘에 찔리는 경우는 허다하게 발생한다고 하였다. 재해 발생 시 사무실에선 산재 보상을 받을 수 있고 락스 등 청소에 쓰이는 유해물질에 대한 교육도 정기적으로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주변에서 산재보상을 받은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간호사 분들 열심히 일하시지만 실수 하실 때도 있어서 사실 다들 그런 경험(주사 바늘에 찔린 경험) 거의 있을 거에요. 사무실에 보고하면 응급실도 가서 항체 있는 거면 주사 맞긴 하지만, 어떤 환자의 것인지 대부분 모르고 기분 나쁜 경험이에요.”

 

④ 인권 침해 및 직무 스트레스

직장 동료 특히 같은 구역을 청소하는 노동자들끼리는 사이가 좋은 편이며 다들 즐겁게 일하고 있다 하였다. 협력업체 소장, 부소장과의 관계도 원만한 편이다. 환자 및 보호자와 그리고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진과의 표면적인 마찰은 없으나 그 기저에는 우리는 이 병원에서 가장 낮은 사람이자, 부딪히면 손해를 많이 입는 위치에 있으므로 마찰을 일으키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폭언이나 폭행, 성추행 등 직접적으로 인권침해를 당하는 경우는 없었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심심치 않게 일상에서 마주치면서 무시당하는 경험을 한다.

 

병원 구성원끼리 갈등은 없어요. 우리가 제일 밑바닥인데요 뭐. 우리에겐 발언권이 없어요, 민원 들어오면 우리만 손해니깐 그런 소지를 만들지 않아요.”/ “우리는 항상 비켜야하는 느낌, 먼저 양보해야 해요.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입에 붙었어요.” / “나이먹고 이런 일 하는 거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도 아닌데, 간호사나 의사 등 다른 구성원들이 같은 인간으로 대해주지 않을 때 좀 그런 것이 있다. 우리도 한 인간으로 대해줬으면 좋겠다.” / “의사 선생님이 인사 받아주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매번 보는 사이인데 고개라도 끄덕여주시지.. 그럴 때마다 맘이 상합니다.”

 

4. 논의

연구 결과 노동 강도나 휴게시설을 비롯한 자신 들의 업무와 업무 환경에 대해서는 대부분 만족하는 편이었다. 반면 불안정한 계약 조건, 최저임금, 노조의 부재 등에 대해서는 표면적으로는 만족하나 고용해주는 것이 다행이라는 식의 현실에 순응하는 태도를 보였다. 면접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다들 건강하며, 재해를 경험한 적이 없었고, 유해물질 관리에 대해 철저히 교육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건강근로자효과일 수도 있으며, 협력업체가 건강한 사람을 위주로 채용하였을 수도 있다. 면접 대상자가 모두 여성이며 주로 데이 근무자라서 보다 위험한 일을 맡는 남성 노동자나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야간근무를 맡는 노동자가 조사에 빠져 있기도 해, 이 역시 편향이 있을 수 있다. 또한 아픈 원인을 자연스러운 노화의 현상이나 가정에서 가사일을 부담하기 때문으로 유추하는 인식 때문에, 일 때문에 아픈 것인지 아닌지를 분간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면접 시 언급된 근골격계질환 등에 의해 건강이 손상되거나, 예리한 물질에 의해 사고손상이 발생하고 특히 오래 걸어 다녀 발생하는 업무상 손상의 경우 선행연구에서 역시 나타난 바와 동일해 의미가 있어 보인다.

인권침해와 관련해서는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병원에서의 위치, 사회에서의 위치가 낮게 설정되어있다 인식하고 있고, 먼저 조심히 행동하려고 하였다. 물론 대부분의 의료진, 환자, 보호자들 모두 자신들에게 잘 대해준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래서 하나같이 병원 구성원들이나 학생에게 하고 싶은 말에 우리도 한 인간으로 대해줬으면 좋겠다.” “우리도 너네랑 똑같은 사람이다!”라 응답하고 있을 것이다. 즉 아무리 근무환경이 안전하고 휴게시설이 잘 되어 있어도, 비정규직, 저임금, 여성 청소노동자로서 사회적으로 낮은 대우를 받는 것이 지금의 근무 환경을 수긍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대우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역시 중요해 보인다.

 

5. 결론 및 제언

자신이 하는 일에 자긍심을 갖고 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알 것이며, 이는 자신들의 노동권이 보장받고, 고용이 안정되고 만족스러운 임금을 받으며, 자신의 일을 누군가가 천대하지 않아야 가질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직장 안팎에서 변화가 이루어져야한다. 직장 안에서는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라는 이유로 차별 받지 말아야하며, 병원, 협력업체와 노동자 사이의 의사결정구조 등에 대해 노동조합 등을 통해 노동자로서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한다. 그동안 여성노동, 청소노동은 집안일과 마찬가지로 가치있는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단지 집안일이 집밖에서 연장되어 실행되는 것에 불과하다고 인식되었

. 하지만 병원의 건물은 저절로 깨끗해지지 않는다. 환자의 건강과 직결되는 병원의 위생환경유지/관리에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은 필수적이다. 의료진과 마찬가지로 청소노동자 또한 환자들의 건강을 돌보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서 병원 안팎의 노력으로 변화의 노력을 기울인다면 노동자의 건강권은 자연스럽게 지켜질 것이다.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시간의 의미를 묻는 하나의 방식, 미시마 유키오의 <목숨을 팝니다> / 2019.05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시간의 의미를 묻는 하나의 방식, 미시마 유키오의 <목숨을 팝니다> 

 

 

김직수 /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

 

 

필자는 "당신 인생에서 단 한 권의 책을 꼽으라면?"이라는 질문에 주저 없이 답하는 사람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모든 텍스트란 개인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리 읽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인생 단 한 권의 책' 부류의 질문에서 유독 불리한 작가가 있기 마련인데 한국에서는 이에 해당하는 작가로 미시마 유키오를 꼽고 싶다. 

우리 사회는 그를 '천황 만세를 외치며 할복자살한 극우파 작가'쯤으로 고정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작가의 생애와 사상이 그의 작품과 별개인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명백히 그의 작품에 다른 결이 존재함에도 이를 사상하고 단순화하는 것은 극우 사상만큼이나 해롭다. 그의 작품들을 일련의 사회적 메시지로 읽고자 하는 경우 그가 제시하는 '처방'은 위험할지언정, 그의 '진단'은 놀랍도록 날카로우며 당대의 진보적 지식사회의 그것에 비하더라도 참신한 것들이 적지 않다.

흔히 미시마의 작품은 '심미주의적' 경향을 띤 것으로 이야기되며, 실제로 그의 작품들에서 직접적인 정치적 언급은 그다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심지어는 일본의 근대 문학이라는 직접적인 카테고리를 다루면서도 좀처럼 미시마를 언급하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는 그가 내세우는 '아름다움'에 관련되며, 더욱 정확히는 그가 아름다움을 내세우게 만드는 현실의 '추악함'에 관련된다. 

그의 작품으로 <가면의 고백> <금각사> <비단과 명찰> <풍요의 바다> 등이 흔히 언급되는데 이런 '대작'들과 비교되면서 흥미 위주로 가볍게 쓰인 소설로 평가받는 책이 <목숨을 팝니다>이다. 하지만 나는 의도되었든 의도되지 않았든 간에, 이 책을 시간과 그 의미에 대해 천착하고 있는 작품으로 꼽는다. 전후 일본인들이 그들의 시간을 살아내는 모습에서 미시마는 어떤 추악함을 읽어냈던 것일까.

미시마가 자위대의 궐기를 호소하며 할복자살한 1970년으로부터 2년여 전에 쓰인 이 작품은 하니오라는 한 청년의 자살 시도로부터 시작된다. 하니오는 자본주의의 첨병으로 일컬어지는 광고업계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고 있던 어느 날 석간신문을 읽다가 갑자기 죽고 싶다고 생각한다. 석간신문을 읽다가 글자가 바퀴벌레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죽음의 충동을 느낀 것이다. 그가 읽던 신문에는 공무원의 스파이 행위, 도쿄를 뒤덮은 스모그, 하네다 공항 폭탄테러, 은행강도 사건 등 온갖 '추악한' 일에 대한 기사들이 가득했지만 그는 그저 '판에 박은 듯 똑같은 하루'라고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 세상에 살아 봐야 의미가 없다고 느낀 이유는 무엇일까. 하니오가 생각해낸 답은 그가 '열심히 일하는 착실한 사원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자살에 실패한 하니오는 회사를 그만두고 신문에 목숨을 판다는 광고를 낸다.

그런데 놀랍게도 손님들이 찾아온다. 어느 자산가 노인은 젊은 아내의 외도에 복수하기 위해 하니오에게 함께 죽어줄 것을 요청하고 어떤 꼬마 아이는 흡혈귀인 자신의 어머니에게 하니오가 피를 바쳐 기쁨을 주기를 원한다. 자신을 대신해 생체실험의 대상이 되어 주기를 원하는 의뢰인이 나타나는가 하면, 하니오가 첩보전의 희생양이 되어 주기를 요구하는 스파이 집단도 의뢰인으로 등장한다. 하니오는 그저 무덤덤하게 의뢰를 받아들여 충실히 수행한다. 공교롭게도 사건들이 해결되는 가운데 하니오는 계속 살아남는다. 그런데 이 모든 사건들의 배후에 ACS(아시아 컨피덴셜 서비스)라는 비밀조직의 그림자가 끊임없이 드리워진다.

의뢰인들이 화폐를 매개로 하니오에게 해결을 요청하는 문제들은 질투, 연민, 공포, 충성과 같은 다양한 감정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이러한 인간 군상을 통해 미시마는 전후 일본 사회의 다양한 모순, 보다 정확히는 의미의 상실과 관계의 파괴를 보여준다. 기업사회로의 변모가 계속되면서 장시간 노동의 굴레에 빠진 경제동물이 되어버린 노동자, 교환의 대상으로 전락한 사랑, 아무도 서로를 돌봐 주지 않는 파괴된 공동체, 의롭지 못한 일로부터 등을 돌리는 나약한 기회주의 등 이 모든 것들은 하니오의 죽음을 통해 해결될 터였다.

"세계가 의미 있는 것으로 변하면 죽어도 후회는 없다는 기분과, 세계가 무의미하니 죽어도 상관없다는 기분이 어디서 서로 화해하는 것일까. 그러나 결과가 어떻든 하니오에게는 죽음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ACS로 의심되는 검은 손의 조직적인 움직임으로 인해 하니오는 계속해서 무의미의 연쇄 속으로 떠밀려갔다. 그들은 끊임없이 하니오의 뒤를 쫓으며 문제가 불거지는 것을 막는다. 하니오는 그저 자유롭고 싶었다.

"하니오는 무의미에서 시작해, 그 무의미에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는 자유를 누리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그 의도는 다양하지만 화폐를 매개로한 의뢰인들의 요구에 목숨을 거는 행위들을 반복하면서, 삶의 의미에 대한 부정 그 자체가 하니오에게 하나의 의미가 되었고 그로 인해 역설적으로 죽고 싶지 않다고 느끼게 된 것이다.

한편 ACS의 존재는 고도로 성장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시간의 의미를 다룬 또 다른 역작인 미하엘 엔데의 <모모>에 등장하는 회색인간들을 떠오르게 한다. 이들의 그늘 아래 등장인물들이 '살아도 사는 게 아닌' 무의미한 삶을 계속하게 된다는 점은 놀랍도록 닮아 있다.

<목숨을 팝니다>에서는 주인공 하니오가 목숨을 파는 거래 행위를 계기로 등장인물들과 대화를 나누고, 또 하니오의 공감 능력에 의해 그들이 지닌 문제가 드러난다는 점도 비슷하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모모가 평범하지만 '신비한' 능력을 통해 잿빛 시간을 사는 사람들에게 심장으로 느끼는 시간의 의미를 일깨워준다면 하니오는 자신은 이미 한 번 죽었다는 사실에서 깨달은 삶의 의미, 시간의 의미를 묻는다는 점이다.

전후 일본 사회의 자본주의적 고도성장의 이면을 미시마는 한 청년노동자의 자살 시도라는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행위로부터 불러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이해하기 어려운' 죽음의 선택이 만연한 세상을 살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과로 자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전후 일본인들이 그들의 시간을 살아내는 모습에서 미시마는 어떤 추악함을 읽어냈던 것일까. 미시마는 전후 일본 사회의 자본주의적 고도성장의 이면을 한 청년노동자의 자살 시도라는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행위로부터 불러낸 것이 아닐까.

갑자기 과로 자살을 언급하는 이유는 광고회사에서 그저 열심히 일하다 어느 날 죽음을 선택하는 하니오의 모습이 필자에게는 과로 자살자의 하나의 전형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물론 미시마가 하니오의 자살 시도의 동기를 일일이 묘사하고 있지는 않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저 열심히 일한 것이 원인인 것 같다'는 작중 하니오의 언급은 흘려듣기 어렵다. 미시마의 작품 가운데 보기 드물게 직접적으로 노동쟁의 사건을 다루었으며 <목숨을 팝니다>와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소설인 <비단과 명찰>에서도 그 단초를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일본 사회에 만연해 있던 가부장적 노사관계가 파탄을 맞이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미시마가 철저한 평등주의자는 아니었지만 그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은 '천황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것이었다. '질서의 회귀'를 통해 근대를 극복하고자 했던 그에게 자본주의 체제와 그속에서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의 노예가 되어 무의미한 세계에 직면하는 모습이 아름답지 못했던 것이리라. 잘 알려져 있듯 미시마는 '안보투쟁'의 한복판에서 도쿄대학 전공투 학생들과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긴장뿐만 아니라 묘한 상호 존중과 공감을 읽어낼 수 있는데 그것은 이들의 자본주의와 근대성에 대한 문제의식, 그리고 '절대자'를 중심으로 하는 질서의 회복을 통해 그것을 넘어서고자 한 의지였다. 미시마에게 그 절대자가 '천황'이었다면, 전공투 학생들에게 그것은 '프롤레타리아'였다. 오늘날의 68혁명에 대한 해석의 틀을 빌리자면 전공투가 탈물질주의적 좌파였다면, 미시마는 탈물질주의적 우파였다.

물론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던 전복적 시도들을 '실패'로 기억하고 있지만, 삶과 그 본질로서의 시간의 의미를 묻는 목소리에 다시금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다. 과로 자살로 스러져가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통해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업무관련성 전문조사(역학조사) 이야기 / 2019.05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업무관련성 전문조사(역학조사) 이야기 

 

 

김대호 / 근로복지공단 직업환경연구원 

 

 

필자는 업무상 질병관련 역학조사를 수행하는 기관인 직업환경연구원(구 직업성폐질환연구소)의 업무관련성평가부에서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로 일을 하고 있다. 이에 직업환경연구원이 수행하는 역학조사 과정과 직업병을 밝혀내기 어려웠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직업환경연구원에는 다양한 사건들이 의뢰되는데, 불산에 노출되었다고 주장하는 7명의 건설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산재신청을 한 사건이 있었다.


불산 누출 직접적인 증거 찾기 어려워

산재신청을 한 날짜가 불산에 노출되었다고 주장하는 날짜로부터 한 달 뒤였기 때문에 감기 몸살 증상이 있었다는 것 외에는 한 달 전의 불산 누출 여부를 확인할 수가 없었고, 고용노동부 담당지청에서도 이미 조사를 하였지만 최종적인 판단을 할 수 없었다.

산재요양 신청 상병을 보니 '간질성폐질환', '호흡곤란', '뇌경색증', '뇌병증', '두통', '저산소혈증', '가려움증', '불면증', '탈모성모낭염'으로 다양하게 기재되어 있었는데, 7명에서 공통적인 신청 상병은 '간질성폐질환'이었다. 이러한 상태로 사건은 필자에게 배당이 되었다.

우선 필자는 사업장 조사를 하기 전에 의무기록을 검토한 후 신청인들을 모두 불러내 면담부터 시작하였다. 이들은 모두 건설 노동자들로 여기 저기 장소를 옮겨 다니면서 철골을 설치하는 업무를 수행하였는데, 월요일인 13일에 불산을 취급하는 업체의 증축공사 현장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들이 호소한 증상 중에서 감기 몸살이라고 표현되는 근육통/오한은 7명 모두에게 있었고, 그 외 기침은 2명, 열감은 3명이었으며, 두통/어지럼증이 5명, 가려움증이 6명, 귀에서 소리가 들리는 이명이 4명, 관절통이 3명이 있었는데, 첫 면담 당시에는 불산에 노출되었다고 주장하는 13일 저녁에 증상이 발생하였다고 진술하였다.

검토한 흉부 컴퓨터단층영상에서 비정상적인 소견인 간유리 음영(Ground Glass Opacities)이 관찰되는 경우가 5명이 있었는데, 이 중 3명은 경미하였고, 입원 치료까지 하였던 2명은 '간질성폐질환'을 진단받을 정도로 심하였다. 이외 2명의 흉부 영상에서는 비정상적인 소견이 없었다.

면담을 마친 후 불산을 취급하고 있는 업체를 방문하여 전체 공정과 설비 시스템에 대한 이해, 그리고 대기오염 방지설비 및 불산의 입고 및 출고되는 과정을 조사하였고, 13일 당일의 불산 입출고 내역을 확인하였지만, 우리 조사팀 모두 현장에서 불산 누출의 직접적인 증거를 찾기가 어려웠다.

불산 취급 업체 측은 화학물질 누출 흔적이 없고, 다른 직원들 중 이상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며, 겨울에 노동자들이 무리하게 일을 하였다면 감기 몸살은 걸릴 수 있는 것이 아니냐며 항변하였다.


과거 구미 불산 누출 사건에서 관찰한 유형과 일치 

우리 역학조사팀은 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면서도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 자료를 다시 검토하고 추가 면담 조사를 위해 지방에서 지내고 있었던 7명의 신청인들을 직업환경연구원으로 불러내었다. 집단 요양신청을 하였던 7명의 노동자들이 입을 맞추어 진술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휴대폰을 모두 압수하고, 면담 전후의 사람들을 격리시킨 상태에서 다시 자세하게 조사를 시작하였다.

7명이 모두 함께 근무한 날은 13일이 유일하였고, 13일 오전에 불산 취급 업체의 직원과 공사 현장의 다른 협력업체 직원들이 있었지만, 점심시간 이후로는 신청인 7명만 있었다고 하였다. 증상 발생 시기는 1명이 13일 저녁으로 가장 빨랐고, 2명은 다음 날인 14일 오전과 오후에 시작되었으며, 2명은 이틀 후인 15일 오전에, 나머지 2명은 15일 오후에 증상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 면담 당시에는 13일 퇴근 후에 모두 증상이 나타났다고 진술하였기 때문에 불산 노출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던 것이 서로 간의 대화를 차단한 후 집중 면담을 해보니 과거 구미 불산 누출 사건에서 관찰되었던 노출과 증상 발현까지의 잠복기(노출 후 1~2일)가 일치하였다.

이와 같은 면담 내용을 마무리 한 후 불산 취급 업체에서 입수한 자료들을 검토한 결과, 두 가지의 불산 노출 경로를 추정할 수 있었는데, 첫 번째는 집진시설에서 배출되는 불산에 노출될 가능성이었고, 두 번째는 원료가 입고되는 과정에서 불산이 누출됐을 가능성이었다.

우선 노동자 7명이 작업했던 위치 주변에는 대기오염 방지설비(이하 스크러버) 7기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각 스크러버의 배출물질이 한 방향으로 이동할 경우 작업위치가 밖이라고 하더라도 작업자들이 일정 농도의 불산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2주 전부터 작업을 시작하였는데, 왜 13일에만 불산에 노출되었으며, 7명의 흉부 영상에서 중증도가 각기 다르게 나타났는지는 설명하지 못하였다.

두 번째는 불산이 입고되는 과정에서의 누출인데, 불산 노출이 있었다고 판단되는 13일 당시 불산은 작업시간동안 총 3회 입고되었고, 원료가 출고되는 곳에는 불산 누출이 있을 경우 알람이 울리도록 되어 있었으나 입고되는 곳에는 센서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13일 당시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센서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입고 설비 쪽에서 누출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또한 폐질환 정도에 따라 불산 노출농도가 다르다고 추정되는 3개의 집단이 구분되고 이를 감안하면 누출지점으로부터 가까운 곳에서 작업하였던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고농도에 노출되었고, 먼 곳에 있었던 사람들은 거리에 따라 급격하게 불산 농도가 감소하여 저농도로 노출되었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는데, 이들의 흉부 영상에 나타난 중증도와 누출지점으로 추정되는 곳으로부터의 거리가 일치하였다.

결론적으로, 직업환경연구원의 업무상질병심의위원회에서는 신청인 7명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증상과 임상경과 및 흉부 영상에서의 동일한 소견, 그리고 날짜별 작업내용과 공사현장의 작업환경 및 불산에 노출된 13일의 오전과 오후에 공사현장 인원 배치 등을 종합하여, 노동자 7명의 임상증상들은 모두 13일 월요일에 불산 취급 업체의 증축 공사현장에서 근무할 당시 오후 2시 경에 불산이 입고되는 상황에서 노출된 불산에 의한 업무상 질병으로 판단하였다.

역학조사를 실제로 수행하는 일도 복잡하고 어렵지만, 수집된 자료와 현장 조사 결과들을 종합하여 최종적인 판단에 이르는 과정도 매우 고되고 어려운 일이다. 또한 역학조사는 노동자에게 발생한 질병의 원인을 찾는 일인데 아직까지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질병이 있다는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역학조사 제도는 질병의 직업적 원인이 밝혀진 노동자들에게는 환영 받는 제도이지만, 그렇지 못한 노동자들로부터는 큰 질타를 받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병들지 않는 노동환경을 만들어가기 위해 역학조사는 계속되어야 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유해물질들과 직업병을 발견하며, 기존 유해물질들의 새로운 노출 경로들도 밝혀내어야 한다. 더불어 역학조사 소요기간도 단축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직업환경연구원의 전문 인력 확충이 필요하다.

[현장의 목소리] 공단의 담을 넘어 희망을 찾는다 / 2019.05

[현장의 목소리] 

 

 

공단의 담을 넘어 희망을 찾는다

 

 

나래 / 상임활동가 

 

 

지하철 4호선 하늘색 선을 남쪽으로 쭉 따라가다 보면 거의 끝자락에 가서야 눈에 들어오는 역명이 있다. 안산역이다. 반시화 산업단지가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일명 반월시화 공단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공단이란 명칭에서 풍겨오는 것들 드러내고 싶었던 것인지 2011년에 안산시와 시흥시는 어두운 이미지의 고정관념 타파와 사단 구조고도화산업의 기류에 발맞춰 신선한 산단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스마트허브라는 명칭을 사용키로 한다. 이름을 바꾼다고 속이 자연스레 바뀌진 않는다. 반월시화 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환경의 변화를 몸소 경험해야 한다.

25만여 명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일하고, 전체 입주업체 80%가량이 소규모 영세기업이다. 이들은 법 테두리 망에서 가장 벗어나 있다. 일명 작은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뿐만 아니라 산업안전보건법도 적용 제외되는 내용이 상당하다. 그러다보니 문제를 드러내는 것부터 실제 노동조건을 바꾸기 쉽지 않다. 이런 현실의 벽을 넘고, 공장과 공장의 담벼락을 넘어 지역으로 함께 모여 공단 노동자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행동을 조직하는 모임 반월시화공단노동자권리찾기모임 월담의 이미숙, 유월 활동가를 지난 423일 안산역 인근에 위치한 월담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미숙 “반월공단, 시화공단 두 곳은 70년대 중반 서울이 과밀화되고, 무분별한 공업화 정책으로 유해물질이 포화상태가 되면서 정책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탄생했어요. 수도권에 있는 공장을 이전할 곳을 골랐고, 서울과 가까운 안산과 시흥이 선택됐죠. 업체당 고용 인원은 평균 20명 이내에요. 그정도로 영세하죠.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로 살기 힘들다고 하는데, 특히나 이곳에 있는 소규모업체 노동자들은 더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어요.”

유월 “‘왜 반월시화 공단인가?’라는 질문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이곳은 안산에서 봤을 때 상당히 중요한 곳이에요. 많은 일자리, 공간,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크죠. 안산에 살면서 노동자 관련한 것을 한다고 하면 반월시화공단을 빼놓을 수가 없어요.”

주요 문제로 지목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악취. 시 역시 해결을 골몰하고 있지만 뾰족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경제발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입주한 공단이 오히려 노동자, 주민의 생활, 건강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유월 “시에서도 장기적으로 환경 기준을 높여 부합하지 않는 업체들은 내보내는 방향으로 한다던데, 여전히 지금도 냄새가 심해요. 지금도 안개가 끼면 공단에서 맡았던 냄새를 상가나 주거단지에서 맡기도 해요. 그때 왜 악취가 나지 생각했는데 공단에서 맡았던 냄새가 여기서도 나는 걸 알았죠.” 월담이 생긴 지 5년째인데 시작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해오는 것이 있다. 바로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는 일, 선전전과 ‘난장’이다. 선전전은 매주 목요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진행하고 있고, 지금은 노동법률상담을 중심으로 하는 난장 사업은 매월 둘째주 수요일 저녁 안산역에서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이미숙 “난장 사업은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우리가 직접 들어보자는 거였어요. 우리가 하는 이야기들이 공단 노동자들에게 뜬구름 잡는건 아닌지, 어떤 이야기를 해야 닿을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처음 세웠던 것들이 잘 지켜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꾸준히 거리로 나가서였을까. 문제가 생겼을 때, 혹은 궁금한 게 있을 때 월담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졌다고 한다. 이렇게 공단의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며 공단이 어떤 곳이라고 느꼈는지 물었다.

유월 “상담은 다양한 케이스가 접수돼요. 이곳은 법이 없는 곳이란 생각이 들어요. 상담뿐 아니라 공단 연구사업 자료, 통계를 찾아서 사업 기획을 하기도 해요. 예를 들면 15~16년 전자산업 규모가 가장 컸던 때인데 그 뒤론 규모가 줄었어요. 앞으로도 공장 해외 이전으로 더 감소할 것으로 예상돼요. 그런 과정에서 만나는 노동자들이 문제를 얘기하면 그걸 주목하죠. 최근 주목하는 변화론 아파트형공장 증가에요. 임대사업자들이 들어와서 투기를 하는 거죠. 임대료를 주면 그만큼 노동자들에게 가는 부분이 줄어들거든요.”

그간 활동해오며 기억에 남는 사람 혹은 사건은 없었는지 궁금했다.

유월 “딱 한 명은 아니고요. 많은 사람이 자기 일터가 불법인데, 내가 말을 못하니깐 견디고 살아야 한다 생각을 많이 해요. 법은 복잡하고, 무엇이 합법이고 불법인지 알 수 없거든요. 어떤 경우가 있었냐면 한 회사 사장이 당장 이번 달부터 토요일 근무가 노동시간에 포함 안 된다고 하면서 임금을 깎았다는 거예요. 최저임금 인상되니깐 임금 안 올리려고요. 무슨 수를 쓴다거나, 산입범위를 조정하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이번 달부터 법 적용이 달라졌다고 하는 거예요. 당사자가 이상하게 생각해서 저희한테 물어본 거죠. 정말 뻔뻔한 거짓말인데, 그게 회사 안에선 법으로 정착돼요. 그리고 또 다른 사례는 노무사한테 거짓말을 하게 한 경우도 있어요. 당연히 노무사면 불법인걸 알았을 텐데도 거짓말을 한거죠. 그런데 사람들은 노무사라고 하니깐 부당해도 사인을 하고요.”

이미숙 “16년에 인권침해 실태조사를 한 적이 있어요. 10명 정도 만나서 인터뷰를 했거든요. 괴롭힘 사례가 많았어요. 정말 아직도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심각했죠. 화장실 횟수 제한부터 가방/사물함 검사까지. ‘머리가 왜 이따위야.’, ‘반바지는 왜 입었어.’ 등의 복장 검사도 있고, 외모지적도요. ‘아줌마, 어이’는 기본이죠. 마음에 안 드는 사람 찍어서 괴롭히고, 산재 처리해서 회사 피해 입혔다고 은근히 퇴사하게 하고요. 그 이야기를 하면서 몇몇 분들이 공장 다니면 다 그런 거아니냐고 하시더라고요. 스스로 그런 대우를 받아도 되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 거죠. 사실 공장 다닌다고 그런 취급을 받아도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저도 생각해보면 공장 다닐 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현실에서 그런 것들이 바뀌지 않고선 직장내괴롭힘방지법이 시행된다고 해서, 현장에서 정말 얼마나 작동할까 싶어요.”

기본적인 노동조건/환경 문제, 유해 화학물질 문제와 더불어 직업계고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문제도 월담의 주요 관심사다. 20183월부터 7월까지 진행된 직업계고 산업체파견 현장실습 노동환경 및 노동세계 진입 실태조사는 반월시화공단의 참여자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조사 지역이 될 만큼 반월시화공단엔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등 각지에서 온다. 경기도 지역이 특히 많으며, 안산에 있는 한 공고의 경우 15년부터 16년까지 반월공단 내 213개 업체에 생산직으로 현장실습을 보냈다. 그 외 안산, 시흥 지역의 공업고가 반월공단 내 제조업체로 현장실습을 보냈다. 전공과 관련 없는 제조업 생산직으로 말이다.

유월 “저희가 만난 현장실습생 분들은 본인이 배운 걸 실습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떤 분이 그러더라고요. 첫날 공장에 들어갔는데 ‘아 여긴 아니구나’ 생각했데요. 일 시작하기도 전에요. 너무 지저분하고, 내가 지낼 일터로서 현장실습만 아니면 당장 그만뒀을 곳이라고요. 그래서 그날 입시 준비하는 거로 마음 먹었데요. 이렇게 공장 노동자로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니에요. 다른 분들은 실습만 끝나면 당장 그만둬야지라고 생각했다고 하더라고요. 실습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어요. 위반사항도 너무 많았고요. 조사에 참여한 현장실습생 분들이 자기들이 아니면 젊은 층의 노동자가 올 가능성이 없다고 했어요. 최저임금 받는데 왜 여길 오냐는 거에요. 단체 카톡방에서 흔히 나오는 말이 상여금 없으면 폰팔이 하지 공장에 왜 있겠냐는 거에요. 서비스업에서 남성들이 할 수 있는 일로 핸드폰 판매가 있다면, 그런 걸 하지 최저임금 받으면서 뭐하러 공장에 있냐는 거죠. 노동시간 따져보면 최저임금도 안주는 거죠. 현장실습생인 자기들이 아니면 여기 올 사람 없는 거고, 기업도 이 제도를 활용하는 거고요. 남성의 경우 산업기능요원으로 군대안 가는 거 아니면 할 이유가 없다는 거에요. 이후 자기가 공장 노동자로 일 한다고 해도, 이곳은 아니란 판단을 하는 거죠.”

월담은 올 하반기 본격적으로 직업계고 현장실습 문제를 다룰 계획이다. 학교 앞 선전전부터 현장실습을 나가기 전 학생들을 모아 모임을 만들어 실습 나가기 전 여러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모아내기 위함이다. 마지막으로 영세하단 이유로 적용이 필요한 법에서 오히려 배제되고 있는 문제를 물었다. 지난 411일 헌법재판소는 상시 4인 이하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을 일부만 적용하고 부당노동행위 조항도 적용하지 않는 근로기준법과 시행령을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근거로 근로자 보호의 필요성과 사용자의 법 준수 능력간의 조화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들었다. 사업의 영세성, 관리감독의 어려움, 비용 지불 능력의 어려움 등을 들어 차별과 배제 정당성을 오히려 국가가 승인한 것이다.

이미숙 “어떤 분이 상담하러 오셨는데 물어보니 5인 미만 사업장이더라고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이 ‘그럼 난 노동자도 아니네’라고 하시더라고요. 우리가 만나는 분들 대부분이 그래요. 모든 게 법으로 해결되진 않지만 기본적으로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은 전면적용되어야 해요. 그런 것들이 기본적으로 갖춰지지 않으면 너무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게 돼요.”

유월 “어떤 문제가 있다고 하면 법을 통한 방법이나 다른 방법을 모색해요. 그런데 5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뭐가 안 나와요. 뭘 얘기해도 일단 법이 없단 거죠. 당사자도 어렵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보통 상담에서 끝나죠. 정말 큰 문제에요. 공단에서부터 가장 큰 문제가 되기 때문에 공단에서부터 폐지하자고, 공단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어요.”

안전보건공단의 슬로건은 안전은 권리입니다이다. 과거보다 진일보한 것은 맞지만 슬로건과 현실이 전혀 맞지 않는 상황은 변화가 필요하다. 일하는 사람 누구라도 권리에서 배제당할 이유는 없다. 그것이 안전과 권리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반월시화 공단노동자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월담에서 그 희망의 새싹이 움트길 고대한다.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봄을 타고 전해 온 땅을 일구는 농민 이야기 / 2019.05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봄을 타고 전해 온 땅을 일구는 농민 이야기 

 

나래 / 상임활동가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점. 서늘하게 코끝을 감쌌던 기운은 말랑해져 새삼스레 다가오고, 눈길이 잘 가지 않았던 길가엔 어느새 푸른 새싹들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길거리뿐만 아니라 시장과 마트에 가면 계절의 변화가 확연하다. 푸른 잎의 채소들이 가득하고, 심심했던 과일 코너가 알록달록한 색으로 채워진다. 건조한 아스팔트가 가득 깔린 도시에 어떤 이들이 봄기운을 전해주는 걸까. 봄기운이 완연한 지난 4월 11일에 경기도 연천에서 농사 짓는 농민 이석희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석희씨는 올해로 58세다. 계절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은 그의 얼굴은 유난히 단단했다. 농사지은 횟수만 30년이 넘었다. 20대에 군 제대를 하고 부모님이 일궜던 땅에서 농민의 삶을 이어 나갔다. 부모님이 짓던 방식으로 농사를 짓다가 7년 전부터 친환경 재배를 하고 있다. 벼, 사과, 감자, 마늘, 양파 등 다양한 경작물을 그의 손으로 직접 키운다. 정성이 가득 담긴 친환경 무농약 인증 농산물은 학교 급식 재료로 출하되고 있다. 그러면 땅을 일구는 농민의 하루는 어떨까?

"새벽 5시 반에 일어납니다. 전날 스케줄을 확인해서 수첩에 적어요. 오늘은 사과 작업을 했죠. 내일 또 사과 작업을 해야 해요. 친환경이기 때문에 기계유제로 불리는 기름을 뿌려줘요. 아침밥은 오전 7시 정도에 먹고, 작업을 계속하고 저녁 6시 반까지 일을 합니다. 올해가 내 나름의 고비거든요. 그래서 일을 좀 많이 하는 편이라 그 시간에 끝나요. 보통 오후 6시 반 정도면 종료하거든요. 사실 이렇게 오래 일하면 몸이 못 버텨요."

경기도 연천에서 땅을 일구고 있는 농민 이석희씨.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날씨와 기상이 농사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매년 가을이 되면 그해 벼농사가 풍년이었네, 흉년이었네 하는 기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성공 여부가 하늘에 달렸단 말인즉슨 농민들의 수입 역시 하늘에 달려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각각의 계절을 이석희씨는 어떻게 보내고 맞이하는지 궁금했다.

"겨울엔 공부를 많이 해요. 유투브로 공부한 걸로 마늘농사 덕을 봤어요. 겨울에도 쉬지 않아요. 미리 해둘 게 많습니다. 예를 들어 땅 일은 안 하지만 돌을 줍는다든지, 각종 주변 정리도 해야죠. 개인적으론 책을 많이 읽기도 해요. 농사에 필요한 물리적 일도 하고 나를 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요. 본격적으로 일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기죠. 올해 3월 27일에 감자를 심었어요. 농작물은 빨리 심는다고 빨리 나는 게 아니거든요. 너무 더운 여름날에는 작업 시간을 조정해요. 그땐 기상시간이 빨라져요. 새벽 5시 정도요. 일어나서 오전 10시까지 일하고 오후에는 쉬는 식이에요."

그해 날씨와 환경에 따라 수확이 일정치 않기 때문에 사실상 농민들의 수입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풀리지 않을듯한 문제를 해소하려고 농민수당 시행이 최근 농민들 사이에서 요구되고 있다.

 '농민수당'은 농가의 기본소득을 보장해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를 지킬 거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중앙정부가 직접 입안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자체별로 시행여부가 나뉜다. 지난해 6월 전국 최초로 농민수당 지급을 시작하기로 한 곳은 전남 해남군이다. 관내 전 농가를 대상으로 하며 지역상품권으로 연 60만 원을 상·하반기 농가별 균등 지원할 계획이다. 이 외에도 부여군, 고창군, 강원도 등이 시행 예정에 있다. 이석희씨가 속한 경기도는 경기 기본소득위원회가 출범해 경기농민기본소득제를 검토하고 있다.

"농작물에 따라서 수확시기가 다 달라요. 감자는 5월 말, 마늘은 6월 말 정도요. 그럼 수익금은 그 이후에 들어오죠. 그 다음에 사과는 8월 말이고요. 벼는 11월 말에 탈곡해서 보내고요. 그럼 그 이후에 출하대금이 들어오는 거죠. 최근에 좋아진 점은 농민수당이 등장하기 시작한 거예요."

 이석희씨는 농민수당에 대한 고민, 요구와 함께 친환경 농업의 지속성도 중요한 문제라 얘기했다. 친환경 농업은 합성농약, 화학비료 및 항생·항균제 등 화학자재를 사용하지 않거나 사용을 최소화해서 농업생태계와 환경을 유지·보전하면서 안전하게 농·축·임산물을 생산하는 농업을 가리킨다.

"저도 솔직히 말하면 돈을 벌기 위해 친환경 농법을 선택한 것도 있어요. 동시에 농민으로서 자부심도 중요했죠. 저 말고 다른 농민 분들도 친환경으로 재배를 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토양을 지키고, 수자원 보호할 수 있고요. 친환경을 할 수 있으면 당당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려움이라고 한다면 풀 문제죠. 솔직히 제초제 한 방이면 끝나거든요. 그걸 극복해야 해요. 친환경으로 하니까 안정적으로 가격을 받을 수 있으니 선순환으로 친환경 작업이 가능해요."

 그는 친환경 농업이 지금보다 더 확산되고, 많은 농민들이 할 수 있으려면 필요한 재원을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온전히 경제적 부담을 개인이 져야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사실은 어려워요. 제가 그나마 희망을 갖는 건 작년부터 제 값을 받을 수 있는 학교에 출하 한다는거에요. 귀농하는 사람들이 어떤 작물이 좋을지 물어봐요. 특용작물은 없다고 대답해요. 예전엔 업체들도 무조건 싼 값을 찾아 다녔는데, 이제는 식품 유통 딜러들도 상품을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걸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약간의 희망이 보인달까요."

농민들은 시민들의 건강한 밥상을 책임지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들의 안전과 건강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농민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의무가입 대상이 아니다.

여러 어려움에 봉착하면서도 이겨낼 힘과 농민으로서 자부심을 다지고 있는 이석희씨에게 '그럼에도' 농민으로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주변 친구들 보면 정년퇴임해서 노후 걱정을 많이 하거든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엔 이제 조금씩 빛을 보기 시작하고 있어요. 전 팔십 정도까진 농사일을 하려고 해요. 더 오래 농사지으려고 운동도 하고 있고요. 일단 농업은 매력적입니다. 기회가 주어지거든요."

그러나 시민들의 건강한 밥상을 책임지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들의 안전과 건강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에 의하면 농업은 타 산업에 비해 재해율이 높아 건설업, 광업과 함께 3대 위험산업으로 분류될 정도다. 우리나라에서도 광업, 임업, 어업 다음으로 재해율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농민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의무가입 대상이 아니다. 자영업자로 분류되거나, 농업사업장이 대부분 5인 미만이라 제외됐던 것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고자 2016년 '농어업인의 안전보험 및 안전재해예방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긴 했지만 임의가입이며, 민영보험을 채택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제도도 제도지만 이석희씨는 농민들이 산재로 인식하지 못하고 피로가 누적되어도 잘 느끼지 못하는 등의 문제도 있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최근 기계 작업이 활발해지면서 관절염 같은 질환은 많이 줄어들었다 했다. 기본적으로 농사일은 중량물 취급이 흔하고, 무릎을 꿇거나 쪼그려 앉거나 허리를 구부려 일하는 부담 작업이 많기 때문에 신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관절염은 농업인의 가장 흔한 질병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제가 봤을 때 최근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정책은 지자체 농업기술센터의 농업기계임대 사업이에요. 저도 필요시 5천원~8만원 정도 저렴한 임대료 내고 해마다 대여하고 있어요. 바뀌었으면 하는 정책은 프로젝터처럼 뭉텅이로 몇몇에게만 지원하는 사업 말고, 농민수당처럼 모든 농민들에게 골고루 나눠줬으면 좋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농업기계임대사업의 경우 돈이 많은 농민이든 가난한 농민이든 모두 저렴하게 필요한 기계를 대여할 수 있어서 좋아요. 있는 사람이 계속 지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골고루 사람들이 나눠 쓸 수 있는 사업이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농업의 기계화도 산재 위험과 동시에 농민들의 노동강도 부담을 완화하는 큰 변화 중 하나지만 이주노동자의 농촌 유입도 영향이 크다. 이석희씨도 농촌에서 이주노동자는 아주 중요하다고 했다. 이주노동자 없으면 한국의 농촌이 망한다는 말도 공공연하다. 그럼에도 농촌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문제로 임금차별, 그 중에서도 여성/남성 이주노동자들 간의 성별임금격차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그쵸. 확실히 예전보다 힘든 일이 덜하니까요. 내일도 이주노동자 1명 와달라고 요청했어요. 이 근처에도 인력사무소가 2군데 있어요. 말레이시아 분들이 오는데 일을 잘하세요. 덕분에 외국어번역 어플도 깔았고요. 일당은 여성 6만원, 남성 9만원이에요. 일의 차이가 없는데 말이죠. 한국문화의 나쁜 예에요. 이주노동자 본인들도 그 부분을 참 이상하게 생각해요. 자기 나라에서는 안 그렇다고요."

 현재 그는 농민의 권리 향상과 현실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 전국농민총연맹 활동도 함께 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같은 조직이 있잖아요. 왜 농민들은 없을까 싶었죠. 현재 전국농민회총연맹 연천군 미산면 회장을 맡고 있어요. 요즘엔 지역 문제에 집중하고 있고, 농민수당을 얘기 많이 하고 있어요. 아이들에게 좋은 세상을 열어주고 싶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을 묻자 이석희씨는 무엇보다 농민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농민들의 과제가 더 큰 것 같아요. 농민들이 먼저 소비자에게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와 함께 해결해 나갈 것들을 알려나가야 해요. 우리가, 농민들이 진실을 알릴 때만이 소비자에게 당당히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

특집3. 위험은 노동시간 규제가 없는 곳, 가장 낮은 위치로 전가된다 / 2019.5

[모든 사람에게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③]

 

위험은 노동시간 규제가 없는 곳, 가장 낮은 위치로 전가된다

 

지안 / 상임활동가 

 

 

2017년 한국은 OECD 36개 국가 중 두 번째로 높은 노동시간을 기록했다. 초과 노동을 하는 사회에서 그 어떤 노동자도 노동시간 규제의 예외로 존재해선 안 된다.

법정 노동시간인 주 40시간에 주당 최대 연장근로시간인 12시간을 합친 '주당 52시간'은 말 그대로 최소한의 조치다. 그러나 근로기준법 59조 특례조항에 따르면 특정 운송업과 보건업 등 5가지 업종은 연장근로 제한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 경우에는 '합의'를 통해 주 당 52시간도 초과하는 노동이 법적으로 가능해진다. 장시간의 과로가 노동자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에도 법은 예외적인 노동자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의 건강은 '합의'의 대상이 아니다.

인터뷰이인 민주노총 IPOC지부 이동우 지부장은 인천항의 9개 부두운영회사가 공동 설립한 IPOC(인천내항부두운영주식회사) 소속이다. 야간 노동 후 연속 11시간 휴게시간을 부여하는 제도가 생겼다는 것은 노조 설립 이후의 성과다. 한편으로 전창환 지부장이 소속된 민주노총 인천지역일반노조 항만지부는 일용직 노동자로 구성된 노조다. 노조가 있지만 인력공급을 담당하는항운노조에서 이들의 권리를 인정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노동시간뿐 아니라 4대보험과 같은 기본적인 법적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24일 <일터>는 인천항에서 일하는 항만하역 노동자인 전창환 민주노총 인천지역일반노조 항만지부 지부장을 만나 장시간 노동이 어떤 문제를 야기하는지 들어보았다.

실제로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노동환경이 맞물리는 조건 속에서 각종 위험작업이 일용직 노동자에게 부가되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여기에 선박이라는 물류체계의 특성상 장시간 노동이 집약적으로 발생한다. 

민주노총 IPOC지부 이동우 지부장은 인천항의 9개 부두운영회사가 공동 설립한 IPOC(인천내항부두운영주식회사) 소속이다. 야간 노동 후 연속 11시간 휴게시간 부여 제도는 노조 설립 이후 만들어진 성과다.

그러나 전창환 지부장이 소속된 민주노총 인천지역 일반노조 항만지부는 일용직 노동자로 구성된 노조다. 노조가 있지만 인력 공급을 담당하는 항운노조에서 이들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 노동시간뿐 아니라 4대 보험과 같은 기본적인 법적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물량에 맞추는 일용직 노동자의 노동시간

인천항으로 배가 들어오면 TOC(부두운영사)의 정규직 노동자들은 배를 총괄하여 담당한다. 배에 어떤 물건이 실려 있는지를 파악하여 필요 장비와 인력을 요청한다. 현장에서는 한 조의 작업 시간을 '1슈트'라고 말한다. 오후 조로 8시간 근무하면 이는 '1슈트의 작업을 했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연달아 2슈트를 근무하면 연장근로 수당이 나왔다. 오전 4시에 마치는 새벽 근무 후 오전 8시부터 시작되는 오전 근무를 하는 장시간 노동이 만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노조가 슈트를 붙여서 일해 받는 연장근로 수당을 없애면서 사실상 연장근로 자체가 금지됐다. 

또 오전 0시를 넘겨 야간 노동을 하면 다음 날은 무조건 휴무다. 2018년 3월 연장근로 제한 특례 업종 26종 중 21종이 폐지되었고, 남아있는 5가지 특례업종에서 연장근로가 발생하면 '연속 11시간 휴게시간을 부여하라'는 2항이 같은 해 9월 1일부터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즉 수상운송업에 해당하는 항만노동은 여전히 노동시간을 제한받지 못하고 있지만 TOC가 노사 합의를 통해 59조 2항인 '연속 11시간 휴게시간 제도'를 규정화하면서, 연근(2슈트 이상 노동)이 사라지고 연장 근로 후의 연속 11시간 휴게시간이 보장되었다. 이 덕분에 현장에서 장시간 노동에 따른 문제는 비교적 적은 편이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 법적 규제는 말 그대로의 최소한의 보장이다. 특히 탄력근로제가 도입된다면 물량에 따라 노동시간과 노동 강도가 단시간에 집중되는 항만노동은 더욱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이동우: "IPOC 노동자들 같은 경우는 연장근로 금지, 철휴(24시 이후 노동)시 '연속 11시간 휴게시간' 제도 도입 등을 통해서 자체적인 노동시간 규제가 어느 정도 되고 있는 편입니다. 그러나 탄력근로제가 도입되면 이런 노력들이 물거품 됩니다. 인청항 특성 상 배가 많을 때는 많고 없을 때는 없기 때문이죠. 탄력근로제가 도입되면 이 스케줄에 맞춰 노동시간을 조정하게 될거고, 특정 기간에 노동강도와 시간이 집중될 거예요. 항만노동자들이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탄력근로제 저지가 노동시간 규제에 있어서 관건이예요." 

IPOC 노동자들에게 탄력근로제 저지가 중요한 이슈라면, 일용직 노동자들은 현재도 자신의 노동시간과 일정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가장 큰 이슈다. 일용직 노동자들의 들쭉날쭉한 노동시간은 우리가 왜 노동시간 규제의 필요성과 탄력근로제 도입 반대를 위해 싸우는지 문제의 시급함을 드러낸다. 

전창환 : "근무시간은 주·야간 하루 2번 나눠서 8시간을 기준으로 해요. 앞뒤로 1시간 연장근로가 가능하고요. 그런데 배 출항 시간이 가까운 경우에는 그냥 연장수당을 받으면서 몇 시간이고 연속해 작업해야 해요."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스케줄에 따라 하역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박의 스케줄에 맞춰져 있었다.

또 인력 배치에서 일용직 노동자는 가장 뒷순위기 때문에 '내가 언제 일을 할 수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항만업 자체의 물량이 감소한 상황에서 일이 있을 때 최대한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강력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전창환 : "일용직 노동자들은 내가 일을 안 하면 돈을 못 벌기 때문에 무조건 회사 스케줄에 맞춰요. 일용직 노동자들도 순번이 정해져 있어요. 순번대로 돌기 때문에 본인 차례를 건너뛰면 언제 다시 일을 하게될지 몰라요. 그래서 가정일이나 일상생활을 포기하고 계속 근무를 할 수밖에 없어요. 지금 인천항 물량이 계속 줄기 때문에 아르바이트하는 사람도 많아요."


가장 열악한 노동자에게 전가되는 가장 위험한 작업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은 항만노동자 재해비율이 전체 산업 평균과 비교했을 때 2배 정도 높으며 항공운수사업과 비교했을 때 6배 정도 높다고 밝혔다.

전창환 지부장이 직접 찍은 인청항 항만노동 현장의 모습이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하역작업은 '홀드'라고 불린다. 기계가 운반할 수 있도록 제반 작업을 하는 업무다. 과중한 무게를 드는 작업이 많아서 당연히 허리와 다리 등 근골격계질환이 많이 발생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 물류 사이를 걸어 다니면서 기계가 들어 올릴 수 있도록 줄 거는 작업이 많은데 건설작업에 사용되는 집채만 한 원목과 쇳덩이 사이로 기어들어 가 작업을 해야 한다. 아무리 조심해도 무릎을 부딪치거나 쌓여있는 물류 사이로 사람이 빠지는 일이 부지기수다. 물건들이 겉으로는 평평하게 쌓여있어도 까딱하면 중심이 무너져서 크게 다칠 수 있는 위험한 작업이다. 중량물의 무게뿐만 아니라 작업의 긴장도가 심각하다. 

전창환 : "항만에는 '윈지'라는 크레인을 조작하는 작업과 '홀드'라는 크레인 운반에 필요한 제반 작업을 담당하는 업무가 있어요. 윈지 작업은 총 노동시간인 8시간 중에서 2시간마다 교대근무를 해요. 이 업무를 하려면 항운노조 소속이어야 하고 교육을 이수해야 해요. 

홀드는 기계로 할 수 없는 작업을 의미해요. 항만은 물건 자체의 무게가 톤수 단위이기 때문에 당연히 크레인 조작보다 훨씬 노동강도가 클 수밖에 없어요. 물건을 준비한 후 물건과 장비를 연결해야 해요. 또 컨테이너 사이에 물건이 쌓여있으면 그걸 꺼내는 작업도 있어요. 기계가 할 수 없는 기타 모든 작업이라고 보면 돼요.

원래 이 홀드 작업도 항운노조 노동자들이 하던 작업이었어요. 2007년 10월 1일부터 항운노조에 소속되지 않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일하게 됐는데 이때부터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홀드 작업을 전가했어요." 

항만에는 IPOC 소속 노동자와 민주노총 항만지부의 일용직 노동자 외에도 항운노조에 소속된 정규직과 일용직 노동자들이 있다. 항운노조도 IPOC에서 월급을 부담하기 때문에 IPOC 소속으로 현장 인력공급을 받고 있다. 즉 IPOC 소속 노동자, 항운노조의 정규직과 일용직 그리고 항운노조에 소속되지 못한 일용직 노동자들이 인천항에서 하역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이다. 

일용직 노동자 중에서도 항운노조에 소속되지 못한 노동자들은 장기간 인천항에 근무하면서 같은 작업을 하더라도 4대 보험, 퇴직금 등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근로계약서를 매일 다른 하역회사와 새로 작성하기 때문이다. 

전창환 : "항운노조 소속인지 여부에 따라 같은 일용직 노동자라도 산재 적용이 달라요. 소속되지 않은 일용직 노동자들의 경우 몸이 회복된 상태에서 일을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친 상태에서 그냥 일해요. 노동자를 고용한 회사에서 산재 책임을 져야 하는데 사고가 날 때 그걸 회사에서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죠.

홀드 작업을 하다가 다칠 땐 장비에 든 보험으로 산재 처리를 받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산재처리에서 임금의 70%를 적용받는다면 일용직 노동자는 그중에서도 70%만 받아요. 누가 산재처리를 해주려고 하겠어요? 타박상 등의 사고는 일상다반사기 때문에 그냥 자비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보다 심한 수준의 산재가 발생하면 사측은 산재처리를 하지 않고 회사가 재해에 대해 일정 금액을 보상하는 공상처리를 유도해요. 공상처리를 안 하면 회사에서 다음에 안 불러주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따를 수밖에 없어요." 

선박이라는 위험한 환경에서 안전사고에 대한 대책과 산재 처리도 불가한 상황은 전형적인 위험의 외주화 문제다. 여기에 물류량에 따라 들쭉날쭉한 일용직 노동자들은 별도의 휴식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다. 잠깐 담배를 피우며 허리를 펴는 것이 전부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항운노조는 일반노조 조합원들의 기본적인 노동조합 활동마저 저지하고 있다. 4대 보험과 같은 법적 조치는 물론 기본적인 복지조차 차별적으로 운영되는 상황이다. 이는 항만지부 일용직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3년 동안 인천항에서 항만노동자로 일한 전창환 지부장은 여전히 매일 다른 하역회사와 근로계약서를 작성한다. 다쳐도 산재 보상을 받지 못하고 마땅한 휴게공간도 없이 일용직 노동자들은 선박 안의 가장 위험하고 강도 높은 작업을 담당한다. 

이처럼 '위험의 외주화'가 본격화된 사회에서 노동의 종류에 따라 법 적용 제외를 만들어낸다면, 과연 그 사회를 누가 지탱하는가? 

사회의 위험이 법적 규제가 없는 곳으로 전가되고 있다. 규제가 없는 이러한 곳에서 물량과 배 출항 시간을 맞추는 사람은 누구인가? '법 적용 제외'라는 아이디어 자체에 대해 반대할 수밖에 없다. 노동시간 규제의 필요성이 제한 없는 연장근로가 노동자의 삶과 건강을 훼손하기 때문에 모든 노동자에게 법이 전면 적용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IPOC 노조의 경우처럼 연속 11시간 휴게시간을 도입하더라도 우리는 59조가 제안하고 있는 노사 간 연속근로 합의 자체를 반대해야 한다. '법 적용 제외'라는 개념이 남아있는 한 위험한 노동은 전가될 뿐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전 지부장은 인터뷰를 마친 후 "오늘 근무를 못 해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야 한다"며 자리를 떴다. 일용직 항만노동자들의 초과 노동시간과 안전장치 없는 노동환경 그리고 일의 불안정함은 우리가 모든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