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건설 현장 '걱정 인형'이 만들어가는 노동안전보건 활동 / 2020.04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건설 현장 '걱정 인형'이 만들어가는 노동안전보건 활동

 

 

 

푸우씨 / 상임활동가 

 

 

 

조용준 동지의 전화는 쉴 틈이 없다. 인터뷰하는 도중에도 그의 핸드폰은 연신 바쁘게 울려 댔다. 건설노조 수도권남부본부 노안국장인 조용준 동지에게는 '경기건설기계지부 스카이지회 지회장'이라는 다른 직함도 있다. 그래서인지 온종일 전화를 붙잡고 연락을 주고받는다. 조합원들의 생계와 직결된 현장 배차 또한 그에게 중요한 역할이기 때문이다. 한때 '사장님(?)'으로 불렸던 조용준 동지는 건설노조 수도권남부본부에서 건설기계 장비인 스카이크레인을 운행하는 특수고용노동자를 책임지며, 동시에 1만 명에 이르는 건설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의 문제를 담당하고 있다. 지난 3월 24일 화성행궁 인근 카페에서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건설법인 부도... 노동조합 활동으로 이끌다

'사장님'이었던 그가 어떻게 노동조합 활동을 하게 됐는지 궁금했다. 
  
"2013년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동료들을 모아서 팀을 구성하고 있었고, 그 친구들을 모아서 어떤 건설법인의 일을 하게 됐는데요. 하루아침에 그 법인이 부도를 맞았어요. 그러다 보니 일했던 것을 한 푼도 받지 못했어요. 4~5천 만 원 정도를 체불로 통째로 날리게 됐거든요. 너무 억울해서 소송했는데, 결국 한 푼도 못 받은 건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아는 동생에게 전화가 온 거예요. '형님 저 일 하다가 회사가 부도를 맞았는데, 어떻게 합니까?'라고 말이죠. 제가 해줄 수 있는 얘기가 없었는데, '포기하든지, 노동조합이 있다고 하는데 한번 찾아가 보던지'라고 했거든요. 그리고 일주일 후에 전화가 왔어요. 체불 문제가 해결됐다고 말이죠. 그 얘기를 듣고 저도 노동조합을 찾아가게 됐어요. 당시에 특수고용노동자라는 개념도 별로 없었으니까, 사업자가 노동조합을 한다는 게 신기했고, 우리가 노동자라고 이야기하는 게 신기했던 것 같아요. 그리곤 줄곧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이렇게 저렇게 하다 보니 이런 역할을 하고 있네요. (웃음)" 
    
그런 그가 하는 노동안전보건 활동은 어떤 것인지를 물었다. 

"아쉽지만, 건설 현장에서는 아직 노안활동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타 산별이나 업종 같은 경우 예전부터 노안활동이 있었고, 그러다 보니 노안활동의 핵심이 '예방'이고 '예방'이 중심인데, 그에 비해 아직 건설에서는 노안활동이 시작 단계에 있어서 그렇지 못한 것 같거든요. 그런 상황이다 보니 저 같은 경우에 노안활동이라고 하면, 사고와 같은 재해가 발생한 결과에 대한 후처리가 많은 것 같아요. 특히 작은 규모의 건설현장은 안전보건의 사각지대가 많고, 무방비 상태에 놓인 경우가 많아서 사고가 빈발합니다. 그럴 때 발생하는 사고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중심으로 활동을 하고 있어요.

건설 현장에서도 형틀, 목공 일을 하는 건설 노동자들은 사고가 발생해서 다치거나, 근골격 계질환과 같은 질병이 발생했을 때 산재보험으로 처리하는 일들이 조금씩 생기고 있는데, 저와 같은 건설기계 장비를 다루는 소위 특수고용 노동자인 건설노동자들은 각종 안전사고가 발생해도 특히나 보상조차 받기 어려운 현실에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안전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노조가 담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크게 하고 있어요." 

조용준 동지는 특히 건설기계 장비의 전도나 파손과 같은 사고 또한 건설현장의 안전관리의 문제와 중요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대부분 건설기계, 장비 사고가 발생하면 노동자가 운행을 잘못한 것으로 몰아가는데.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건설 현장의 안전관리를 소홀히 하면서, 막상 사고 나면 노동자 책임으로 몰아가는 전형적인 논리거든요. 차량이 전도되는 사례는 명백히 지반침하와 같은 원인이 있고, 차량이 부딪쳐서 파손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예요. 출고 때부터 장비에 부착해 놓은 제조사의 안전센서를 무리하게 장비 운행을 시키려고 끄도록 요구하거든요. 가령, 30cm 정도의 간격이 있으면 안전센서가 계속 울리는데, 조금 더 붙여서 일을 시키려고 안전 센서를 끄도록 요구해요. 그런데 개인 노동자는 힘이 없으니까,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요. 안전 문제 때문에 거부하면, 다음부터는 그 사람은 일 안 시키거든요. 위험을 감수하고, 일해 주는 사람만 쓰려고 하는 거죠.

근데 그 결과로 사고가 발생하면 건설기계를 다루던 노동자가 미숙해서 사고를 낸 거로 몰아가요. 그럴 때마다 건설사에서 하는 얘기가 있어요. '장비 운용은 당신들 몫 아니냐!' 이러는 거죠. 사실상 그런 게 만연했던 건설 현장인데, 건설노조가 생기고 조금씩 바뀌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노동조합이 없으면 말도 못 하고, 개인이 장비파손, 안전사고에 대한 모든 걸 뒤집어쓰는 경우가 매우 흔해요." 

'걱정 인형'으로 불려도 좋은 이유

주변 동료들이 그런 피해의 당사자가 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다 보니, 그에게는 항상 걱정이 많다. 노안국장 역할을 하면서 특히 안전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조합원들에게 잔소리를 많이 한다. '무리해선 안 된다', '서두르면 안 된다'와 같은 잔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늘게 됐다고 한다. 

"제 별명이 뭔지 아세요? '건강 염려증? 걱정 인형?' 뭐 그렇게 얘기하더라고요. 동생 중 한 명이 '저 형은 참 걱정도 많아'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얘기가 기분 나쁘지 않은 게 '그래도 내 얘기를 듣고는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조용준 동지는 노안국장이 되면서 작년 하반기부터 건설노조 수도권남부본부에서 노안위원회를 구성하고, 격월 회의와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건설노조의 지역본부에서 노안위원회를 구성하고, 교육과 활동을 시작한 것은 첫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대한 경험을 물었다. 

"이제 시작하는 것이라서 특별한 건 없어요. 건설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은 정책의 문제이기도 한데, 사실상 정책적 방향과 입장을 낼 단계는 아니고요. 다만, 시작했다는 것 자체에 의의 가 있다고 생각해요. 또 건설 현장에서는 건설 기계, 타워크레인, 토목건축, 전기 등 다양한  분과가 있는데, 이런 동지들이 모여 서로의 경험을 차곡차곡 모아나가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전문가는 아무도 없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저희 노안위원회 회의 때마다 같이 회의도 하고 교육도 하고 하면서 도움을 주지만, 막상 그냥 자신 현장에서 일 해왔던 사람들이라서 아직 잘 모르는 게 더 많아요.

그래도 이 사람들이 모여서 우리 현장의 안전 문제와 관련한 얘기를 나누고, 이에 대한 경험을 쌓다 보면 뭐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보면서 안전과 의료의 문제는 무엇보다 사전에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그런 차원에서 건설노동자가 안전 문제에 있어서는 항시적인 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더 크게 느끼고 있어요. 노안위원회를 구성하고, 정기적인 회의를 하면서 이제 그 준비와 시작을 하는 것이죠." 

건설노조 수도권남부본부에서는 지난 3월 초 대의원 대회의 사전 프로그램으로 안전보건 감수성 교육을 했다. 반응이 어땠을지 궁금했다. 

"제 경험으로는 대의원 대회에서 교육한 것도 처음이고, 그것도 안전과 관련한 주제를 가지고 얘기를 한 것도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졸지 않고 다들 열심히 들으시더라고요. 아무래도 피부로 다가오는 문제가 있기도 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또한 건설노조에서도 고용을 넘어 안전한 현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조금씩 올라오고 있다고 생각하거 든요. 특히 건설노동자의 연령대가 높은 편이고 장년인 경우가 많아서 교육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건설기초안전보건교육처럼 정부 위탁 기관이 하는 형식적인 교육이 아니라 노동자의 입장에서 안전과 건강에 대해서 권리라고 말하는 교육 말이죠."  

"한 번에 생각이 바뀌는 것은 어려워 보여요. 그래서 더 반복적인 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저도 그렇고 나이가 있는 동지들은 돌아서면 금방 까먹거든요. 반복 교육을 통해서 듣고 또 들어야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제 시작한 거지만, 그렇게 끊임없이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게 노동조합이 필요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고용과 생존을 넘어
 

조용준 동지는 건설 현장에서 조합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찾아가는 현실에서 그 시작으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노동조합이 고용과 생존을 넘어, 안전을 요구하고 더 많이 말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교육을 받다 보니 노동조합이 안전을 요구하고, 안전을 관철할 때 현장의 산업재해가 확실히 줄어든다는 걸 배웠고 알 수 있었어요. 안전을 요구하고, 행동하는 노동조합이 바꾸는 현장이 저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건설 현장은 젊은 노동자가 많이 부족한데요. 적절한 임금도 받아야 하고 고용도 보장받아야겠지만, 무엇보다 안전한 현장을 만들어야 젊은 노동자들이 찾고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이야기] 코로나 음성 증명서 / 2020.04

[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이야기] 

 

 

 

코로나 음성 증명서 

 

 

 

이정엽 / 후원회원, 직환의 

 

 

 

나는 현재 한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19와 관련된 진료를 하고 있다. 초기에는 특정 국가의 여행력 또는 환자와의 접촉력이 있는 자만 검사가 이루어졌으나 현재는 이러한 기준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의사의 소견에 따라 의심 환자로 분류되면 해당 검사를 받을 수 있다. 의사의 판단 기준은 지역 내 전파 수준, 검사 가능 여력 등에 따라 기관별로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가끔 판단을 내리기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네, 어떤 점 때문에 걱정되어 오셨나요?"

"제가 지난번에 대구를 한번 다녀와서요."

"최근에 확진자와 접촉한 적이 있다던가, 해외를 다녀왔다거나, 그 외에 다른 의심 되는 노출은 없으셨고요?" 

"네."

"최근 열이 나거나, 기침, 인후통과 같은 호흡기 증상이 있거나, 기타 불편한 증상이 있으신가요?"

"아니요, 저는 아무 증상도 없어요. 멀쩡합니다."

"그렇군요. 아무런 증상이 없는데 단순히 대구를 다녀왔다는 이유만으로 저희가 의심환자로 분류하지는 않기 때문에 검사 대상에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우선 사람 많은 곳 방문은 피하시고 손 위생을 철저히 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며칠 후라도 의심 증상이 발생한다면 그때는 다시 방문 해주시고요." 

"저 오늘 검사받아서 음성이라는 결과서를 회사에 제출해야 하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회사에서 저는 일 못 시켜준다고..." 

"......."


물론 회사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다. 이 노동자가 비록 증상은 없지만, 감염자가 아니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혹시라도 이 병이 자신의 회사 내에서 퍼진다면 그로 인한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 지역을 다녀온 사람들은 얼른 모두 검사받고 정상이라는 소견서를 떼어오라고, 그렇지 않으면 근무를 시킬 수 없다고 아마 이 노동자의 사업주는 지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의사의 입장에서 이 사람을 의심 환자로 분류하기는 무리가 있다. 접촉력을 고려하기 이전에 우선 감염을 의심할 수 있는 증상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의심환자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사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은 반면, 검사 가능 물량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라 유행 지역을 방문했다는 사실만으로 모두 검사 오더를 하게 되면 정작 확인이 꼭 필요한 고위험 환자가 방문한 경우 제때 검사받지 못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나는 단순히 유행 지역을 방문한 것만으로는 감염의 가능성이 높지 않고, 무증상기에는 타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매우 낮기 때문에, 증상이 나타나는지 주의 깊게 관찰하다가 의심 증상이 발생하는 즉시 직장 출입을 막고 검사를 진행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만에 하나 이 노동자가 최근에 감염된 무증상 환자라 해도 잠복기에 검사를 시행하게 되면 결과가 위음성(양성이어야 할 결과가 음성으로 잘못 나옴)으로 나올 수 있어 검사 자체의 신뢰도가 낮아지게 된다. 개인적인 사정에 따라 분류의 잣대를 다르게 들이밀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업주와 의사 각자의 사정 못지않게 자신의 사정이 절박한 것은 그 노동자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은 몸이 멀쩡한데 검사를 받아 오지 않으면 일을 시켜 주지 않는다니 당장 먹고 살길이 막막할 것이다. 사정을 들어보면 그나마 한 직장에 안정적으로 고용된 경우에는 2주간 휴가를 받는 정도로 정리되기도 하지만 건설업, 대리운전업 등 고용이 불안정한 업종에 종사하는 경우 아예 고용을 거부당하기도 하는 듯하다. 천안에 장례식장을 다녀왔더니 검사를 받고 오지 않으면 일을 시켜 줄 수 없다는 말에 찾아온 미장공, 고객의 요청에 따라 대구까지 운전해주고 돌아왔더니 내일부터 출근하지 말라는 말을 들은 대리운전 기사 등 안타까운 사연들을 많이 접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사례들이 곳곳에서 발생하자 급기야 질병관리본부에서는 학교 및 회사에서 코로나19의 음성 증명서 요구를 자제해 달라는 권고를 내리기까지 했으나 여전히 회사의 지시대로 검사를 받기 위한 노동자들의 방문은 계속되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쪼록 이 신종 전염병 사태가 이른 시일 내에 종식되어 모두가 더는 불안감에 떨거나 피해를 보지 않고 이전과 같이 각자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대만의 과로사와 업무관련 정신질환 / 2020.04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대만의 과로사와 업무관련 정신질환 

 

 

 

황이링 / 대만 OSHLink 활동가 

 

 

 

첫 번째 대만 소식으로 대만의 과로 이슈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과로 문제는 특히 동아시아에서 두드러지는 문화현상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오직 일본, 대만, 한국에서만 과로 때문에 발생한 뇌심혈관계질환을 직업병 보상의 범주에 넣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대만에서는 과로와 관련된 질병의 산재 보상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산재보험국의 통계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9년까지 모두 679명의 노동자가 업무관련 뇌심혈관계질환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이 중 236명은 사망하였고, 173명은 영구적인 장애를 입게 되었습니다.

 

과로는 중요한 업무 유해요인입니다. 대만에서는 8일에 한 명씩, 노동자가 과로 때문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노동 시간을 증명하기 어렵거나, 엄격한 인정 기준 때문에 산재로 보상받지 못한 숨겨진 사례가 많기 때문입니다. 대만에서는 1991년 처음으로 뇌심혈관계질환의 업무상 질병 인정 기준이 발표되었습니다. 그러나 뇌심혈관계질환이 공식적인 직업병 목록에 오르지는 못했기 때문에, 업무관련성이 의심되는 사례들은 개별적으로 승인 여부가 결정되었습니다.

또, 업무상 질병 인정 기준이 매우 엄격했습니다. 직장에서 발생한 사례만 업무관련성이 인정됐고, 뇌심혈관계질환이 발병하기 바로 직전의 업무 부담만 고려됐습니다. 그래서 인정기준은 1991년 만들어졌지만, 2006년에서야 뇌심혈관계질환으로 산재 보상 승인을 받는 첫 사례가 나타납니다. 그 뒤로도 인정 기준은 몇 차례 수정되다가, 가장 큰 변화가 2010년에 일어났습니다. 난야테크놀로지(Nanya echnology Company)에서 일하던 추샤오핑(徐紹斌)의 과로사 때문입니다.

출근시간이 되어도 추샤오핑이 방에서 나오지 않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아버지가 방으로 들어갔고 그의 주검을 발견하였습니다. 당시 29세였던 그는 매일 12시간씩 일했고, 어떤 때는 16~19시간 일하기도 했습니다. 사망 전 달에는 연장 근무만 111.5 시간이었습니다. 그의 가족들은 그의 죽음이 과로사라고 확신하고, 산재 보상을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무실이 아니라 집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당시로는 업무상 질병에 해당하지 않았습니다. 회사는 그가 사망하자 정기적인 연장근무는 없었다고 발뺌했고, 결국 그의 유가족은 산재 보상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저는 입법의원 황수잉(黃淑英)의 보좌관이었고, 추샤오핑의 가족들은 황수잉 의원의 사무실에 와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우리는 유가족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관심을 촉구했고, 기자회견 이후 추샤오핑의 가족들은 대만사회의 많은 지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대만 노동부는 사회의 큰 압력을 받은 끝에 일본을 따라 직업병 인정 기준을 낮추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다음 해인 2011년, 직업병 인정 가이드라인이 개정되고 나서, 총 88명이 업무관련 뇌심혈관계질환으로 산재 보상을 받았습니다. 가이드라인 개정 전보다 2.6배 늘어난 숫자입니다.

업무 관련 정신질환과 자살

업무 관련 뇌심혈관계 질환 외에, 최근에는 업무 관련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점점더 많아졌습니다. 2009년 업무관련 정신질환 인정 기준이 수립되었지만, 그 후로 10년간 산재로 승인된 사례는 36건뿐입니다. 승인 사례 대부분은 산재 사고 후 발생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입니다.

그러나 많은 대만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 성과 압박, 직장 내 성폭력, 일터 괴롭힘과 관련된 정신질환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산재 보상 청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충분한 증거를 모으기 어렵습니다.

2009년 이후 대만 정부가 업무 관련성이 있다고 인정한 자살 사례는 7건에 불과합니다. 첫 사례는 2012년에 발생한 장페이퐁(張倍逢)의 자살 사건입니다. 그는 포모사 플라스틱 그룹(Formosa Plastic Group)의 안전관리자였습니다. 그는 공장 건설 현장의 안전보건 감독을 맡았는데, 하청 회사에서 안전 규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상사에게 상황을 보고하려고 했지만, 돌아온 답은 예정된 기한 내에 건설이 마무리되도록 눈감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막중한 부담감을 느낀 그는 결혼식을 1주일 남겨둔 2011년 10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죽기 전 그는 "정부, 회사의 안전요구사항을 충족시킬 수 없었습니다. 회사에 너무 미안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책임을 다하겠습니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그의 자살은 대만에서 처음으로 업무관련 자살로 승인되었습니다.
       
너무 많은 죽음이 계속되고 있기에, OSHLink는 2015년 <과로의 섬, 대만>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우리는 이 책에 과로로 사망한 대만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과로 문제가 왜 발생하는지 다루고자 했습니다. 책 발간 이후 대만 입법 의원들은 노동부에 과로 실태를 보고하도록 했고, 이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해, 드디어 의회에서 2주에 84시간이던 노동시간 기준을, 1주에 40시간으로 줄이는 법 개정안이 통과됐습니다. 우리가 해낸 일은 대만의 과중한 노동을 변화시키기 위한 작은 걸음에 불과했지만, 앞으로도 자신의 안전과 노동권을 지키려는 모든 노동자의 싸움에 계속 함께할 것입니다.

[일터 정신질환 짚어보기] 노동자의 정신적 고통이 산재가 되기까지 / 2020.04

[일터 정신질환 짚어보기] 

 

 

노동자의 정신적 고통이 산재가 되기까지

 

 

 

류한소 / 선전위원

 

 

 

노동안전보건운동의 역사는 '보이지 않는 고통'에 이름을 부여해 온 역사다. '직장 내 (성)폭력', '가학적 노무관리', '갑질', '직장 내 괴롭힘' 등 노동자가 일터에서 겪는 정신적 고통에 붙인 이름들의 목록이 그렇다. 노동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심리적 요인에 대한 관심은 20세기 중후반부터 대두됐다. 이 요인에는 자본주의의 주요 생산방식의 변화, 일터의 조직, 노동자에 대한 관리 및 통제 방식의 변화를 반영되어왔다. 따라서 정신건강의 침해를 호소하는 노동자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러한 질병을 일터에서 일으키는 위험 요인들 또한 많아진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을 바라보는 개인적/사회적 인식이 변했고, 의료지식 및 전문가도 변화했으며, 제도적 차원에서의 인정과 보상도 변화했다. 이렇게 다양한 사회문화적 각축장을 통해 이미 존재하고 있던 고통들이 이름을 얻으면서 노동자의 정신적 고통도 비로소 부상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국내의 정신질환 집단산재투쟁

국내의 정신질환 산재에 관한 논의는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탄압을 고발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도 정신질환 산재를 개별적으로 신청한 사례는 있었으나 노조탄압으로 인한 정신질환에 대해 집단으로 산재신청을 제기한 첫 사례는 2003년 청구성심병원 노동자들의 집단요양투쟁으로 알려져 있다.

연이어, 공황장애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말도 생소했던 2004년, 도시철도기관사들이 집단산재신청 투쟁을 시작했다. 당시 근로복지공단은 사상사고 경험 여부로 산재여부를 따졌지만, 이 투쟁들은 사고 경험 유무와 상관없이 구조조정으로 인한 1인 승무 등 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이 심각하게 침해될 수밖에 없는 근무환경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음을 밝히는 계기가 되었다.

비슷한 시기, 민영화에 따른 경영효율화를 위해 인력 퇴출 프로그램을 운영한 KT(2004년)와 노조탄압을 당한 하이텍알씨디코리아(2005년) 노동자들 역시 적응장애, 우울증 등에 대한 산재신청으로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알렸다. 이러한 투쟁들 때문인지 근로복지공단의 2006년 통계부터는 이전까지 작업관련성 질병에 '기타'로 들어가던 정신질환 항목이 별도 범주의 항목으로 분류됐다. 그 뒤로 2008년 이랜드 일반노조, 코스콤 비정규지부, KTX 새마을호 승무지부 등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에 대한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실시했으며, '적응장애',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같은 진단명은 문제를 제기하고 싸우는 사람들이 마주했던 현실을 고발하는 언어로 자리 잡았다.

2009년 쌍용자동차 문제는 정리해고와 국가폭력이 노동자뿐 아니라 그들의 동료와 가족들에게도 신체적 외상은 물론, 정신적 외상까지 입힌다는 것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2011년에는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와 무급휴직자, 그 가족을 위한 심리치유센터 '와락'이 개소했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심리적 위기상황을 치유하기 위한 '두리공감'이 개소한 것도 2011년이었다. 이처럼 '싸우는 사람들'의 마음 건강에 대한 관심은 2016년 여러 단체가 참여해 출범한 사회활동가와 노동자들을 위한 심리치유 네트워크 '통(通)통(統)톡(talk)'으로 이어졌다.

 


감정노동의 이슈화

정신질환 산재의 제도화 과정에서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감정노동의 이슈화이다. 감정노동이란 단어가 생소하던 2008년부터 민주노총 서비스연맹과 유통업종(백화점, 면세점) 노동조합들은 감정노동 문제를 부각시키고 산재 인정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 결과 2015년 3월, 양대 노총과 여러 단체로 구성된 '감정노동 전국 네트워크'가 출범했으며 같은 해 12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감정노동 문제를 제도화한 "서울특별시 감정노동 종사자의 권리보호 등에 관한 조례"가 통과됐다.

이와 더불어 KTX 승무원(2015년), 마트 계산업무 노동자 산재 인정(2016년) 등은 열악한 근무환경과 지속적인 성희롱 및 폭언에 시달리는 서비스업 노동자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산재로 인정하기 시작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콜센터에 전화를 걸면 나오는 "2018년 10월 18일부터 산업안전보건법에 고객응대근로자 보호조치가 시행됩니다"라는 자동음성도 오래전부터 감정노동의 이슈화를 위해 싸워 온 사람들의 성과다.

위에서 살펴본 조직된 노동자들의 집단산재신청으로 시작된 정신질환 산재에 대한 논의는, 이제 '갑질'이나 '직장 내 괴롭힘'이란 언어를 통해 노동운동을 넘어 한국사회에 만연한 악질적 갑을관계와 조직문화에 경종을 울리면서 일상의 민주주의를 재고하는 계기로 쓰이고 있다. 2017년에 설립된 '직장갑질 119'에 고발된 기가 막히는 사례들은 우리 일터가 얼마나 다양하게 노동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지를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이 결과, 비록 실효성에는 많은 비판이 있었으나 2019년 7월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면서 '직장 내 괴롭힘'이 법적으로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라고 정의됐고 정부 차원에서 이를 규제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이름을 부여하는 일, 우리가 해야 하는 일

정리하자면, 국내 정신질환 산재 논의는 '싸우는 노동자'들의 집단요양투쟁을 시작으로 감정노동의 이슈화를 거쳐 일터의 전반적 조직문화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데까지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어왔다. 이외에도 장시간 노동으로 발생하는 정신질환이나 자살 및 사고 현장을 목격한 노동자들의 트라우마 관리 등으로 논의영역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또한 무엇보다 여성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일상적으로 겪는 구조적 차별로서, 노동권과 건강권에 주요한 영향을 끼치면서도 그간 '노동 문제'가 아니라고 치부되어온 직장 내 성폭력과 이로 인한 여성 노동자들의 건강 피해를 업무상 질병으로 제도화하기 위한 노력도 정신질환 산재를 논의할 때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에서 언급한 사례들의 공통점은 노동과정에 계속 존재해왔지만 이름을 부여받지 못했던 정신적 고통들에 이름을 붙이고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장을 펼쳐왔다는 점이다. 아픔에 이름을 부여하고 인과적 설명을 통해 그 고통의 실체를 확인하며 그 고통이 발생하는 맥락을 찾는 일은, 그로 인한 아픔이 기존 지식체계나 타인에 의해 관찰되기 힘들수록 더욱 중요하다.

나아가 그 고통이 개인의 심리적 기질이나 배경이 아닌, 일터의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고통의 실체를 확인하고 발생하는 맥락을 찾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정신질환 산재에 대한 논의는 시작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향후, 기존의 좁은 인과관계 중심의 산재 논의를 사회적 협의 등으로 확장 시켜야 하며, 변화하는 자본주의와 이에 따라 변화하는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건강권을 사고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신질환 산재에 대한 논의가 그 사회의 전반적인 감수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깊고 다양한 토론이 요구된다.

특집3. 여성 돌봄노동의 사회적 인정을 위해 / 2020.04

 

여성 돌봄노동의 사회적 인정을 위해

 

 

 

정경희 / 운영위원

 

 

 

오승은 전국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부장, 김정아 재가요양전략조직사업단 조직국장을 모시고 여성 방문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현재 준비 중이거나 논의하고 있는 것은 어떤 내용이 있는지 들어보았다. 평일 점심시간인데도 코로나19로 문 연 음식점을 찾기 어려웠던 3월 26일 대림역 인근 카페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명확한 업무규정과 대응매뉴얼 시급

코로나19 비상상황에서 돌봄 노동자에게 마스크를 지급해야한다는 요구가 있었고, 대면접촉을 해야 하는 돌봄 노동자의 수입이 급감했다는 소식도 이어졌다. 전염병 비상시국에서 중년여성이 대부분이고 대표적 돌봄 노동자인 재가요양보호사에 대해 어떤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김정아: "마스크 같은 보호구나 안전장비 지급이 없어, 시설의 경우는 서울시나 공단에서 일정 지원해주는데, 재가 요양으로 방문하시는 분들은 대체로 개별 구매해야 해요. 최근 서울시가 시설에 4만8천 개, 재가에 1만 개 보급해줬어요. 그러나 공지가 일괄 되는 게 아니고 아는 사람만 받으러 가야 하는 한계가 있어요. 방문해야 할 가정의 안전 여부에 대한 정보도 제공받지 못하고 있어 노출되면 알아서 자가 격리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오승은: "대한의협에서 자가격리자의 부양자나 동거인을 위한 행동수칙으로 1m 이내 접촉은 위험하다든지, 분변은 접촉하면 안 된다 등이 권고돼있던데, 만약 이용자가 자가격리자인 경우 가족은 이것을 지킬 수 있을지 몰라도 요양보호사는 업무 특성상 지킬 수가 없어요. '주의해야 한다'라는 문구만 있고 명확한 업무에 대한 기준이나 비상시 작업매뉴얼이 없어서, 불안한 이용자는 매칭을 중단하고 있어요. 공공영역인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이하 서사원)은 지역사회 정보를 파악해 일괄 공지하고, 비상시에는 다른 서비스 유형을 준비하고 있거든요. 공공기관이니 가능한 거죠.

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의 코로나19 대응 3차 지침에서 기존에 지원해주던 사회복지사 임금에 대해 계속 지원해주겠다고 했는데, 3월 24일 발표한 4차 지침에서 '시설급여 등 종사자에 대해 확진 또는 자가격리 기간은 유급병가로 처리한다'는 내용을 발표했지만, 여전히 민간센터의 재가요양보호사에게는 그림의 떡이고, 방문할 가정의 안전성에 대한 대책은 여전히 없어요."

 


이용자에 대한 조직적 관리, 위험 예방 지름길

각기 다른 환경의 가정을 방문했을 때 위험한 상황은 다양하다. 여성이기 때문에 더 취약한 성폭력뿐만 아니라 인격모독이나 사건·사고 발생 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권리로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작업중지권이 명시돼 있다. 이것을 방문노동 과정에서 실현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김정아: "위협적이고 불편한 상황을 자연스럽게 모면하고 카리스마 있게 이용자와 보호자를 제어하느냐가 업무능력의 기준으로 현장에서 얘기되고 있거든요. 그러나 서사원의 경우 이용자와 첫 매칭 시 기관의 팀장이 먼저 가서 초기상담을 해요. 제공할 서비스 내용과 이용자의 권리, 요양보호사가 노동자로서 갖는 권리, 이용자가 하면 안 되는 것에 대해 사전에 설명하고 나서 같은 조의 요양보호사 2명과 팀장이 함께 이용자와 상견례를 하면서 다시 한번 강조한다고 해요. 이때 하면 안 되는 부당한 요구에 대해서도 몇 가지 예시를 들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이용자가 1:1로 내가 부리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관리·보호받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 안전에 상당히 도움이 된다는 의미 있는 말씀인 거죠."
 
오승은: "매년 복지부에서 발간하는 업무 매뉴얼이 있어요. 보호사가 해야 할 일과 이용자의 안전을 위한 일,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대처 방법이 나와 있어요. '부당한 요구를 받았을 때 말로 이해를 구하고 설명한다. 작업자 선에서 해결되지 않으면 언쟁하지 말고, 기관센터장과 상의한다.' 뒷부분에 센터는 지휘·감독의 책임이 있다고 모호하게 되어있는데, 사실상 개인의 책임으로 다 미루고 있거든요. 제대로 하려면 그 현장을 벗어날 수 있어야 하고, 기관에서는 업무를 재배치해야 한다는 게 기본인 건데, 민간기관처럼 호소가 들어가면 중단과 동시에 사실상 실직으로 이어지는 것부터 막아야 해요. 이용자에 대한 교육도 들어가야 하고, 그 사람에게 필요하면 휴가를 주고 다른 이용자로 연결해주는 조치까지 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김정아: "서사원 단체협약안의 내용 중 초기상담 및 계약단계에서 음성과 서면으로 안내하고, 똑같은 내용을 노동자에게도 알리고 중간 점검한다는 내용이 있어요. 법 내용대로 하면 '차단할 수도 있다'가 아니라 '신고하고 처벌할 수 있다'로 안내돼야 하는 거죠. 고객이 바로 수익으로 연결되는 민간에서는 어렵다고 하겠지만요."

 


제대로 된 노동권 보장이 필수

방문노동자의 경우 다음 작업을 위해 이동 시간은 필수적이지만 근무시간에 포함되지 않고, 휴게시간이나 식사 시간도 보장받지 못한다. 개인 휴대폰으로 이용자와 연락하기 때문에 업무시간 외 고객 응대 문제가 매번 발생한다. 이것을 개선하려면 추가 재정이 필요한데, 민간센터의 재무회계 도입이 선행돼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또 방문노동자의 작업환경은 개별 가정이다. 이에 맞는 적절한 개선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오승은 : "서사원은 8시간 근무시간 산정에 이동 시간, 중간에 점심시간, 회의 시간도 넣으면서 월급을 주는데 당연히 돈이 더 필요하죠. 그래서 추가 재정이 있어야 해요. 자치구별 종합재가센터 만드는 건 정부계획이에요. 민간기관 측에서 헌법소원도 하고 수가 인상이라는 부대조건을 두고 시행 유예기간도 두는 등 회계 투명성 확보를 위해 엄청 힘겨루기해서 재작년부터 장기요양기관 재무회계 규칙을 단계적 도입했고, 작년에 첫 결산보고를 했어요. 전체 수가 중 인건비 비율이 정해져 있는데 곧 공개가 되는 것 같아요. 공공영역에서 투명하게 운영하는 종합재가서비스센터가 잘 자리 잡아가면 재정확보와 함께 제대로 된 인건비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김정아: "폰 연락 자체가 엄청난 감정노동인데 업무용 폰을 지급하려면 수가에 책정되어야 해요. 요구사항이나 필요한 게 있으면 센터를 통해서 전달되게끔 해달라는 구조가 정해지면 되는 데 그건 계약단계부터 3자 대면이 돼야죠."
 
오승은: "단협안 내용 중 사업장 소독을 포함한 안전보건관리를 매번 하고, 위험 물질을 없애고, 와상편마비 집중이용자인 경우 2인 1조 배치, 특히 경험이라든가 그날 일정에 따라서 필요한 인원을 배치해달라는 요구가 있어요. 그러나 사업주의 의지가 있어도 남의 집에 가서 일일이 점검하고 개입을 할 수가 없으니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여성 노동에 대한 편견을 활용한 일자리를,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돌봄 노동으로

대부분 중년 여성이 종사하는 돌봄 노동은 업무가 광범위하고, 민간에서 비계획적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수요와 공급에 불균형이 일어나 불안정한 나쁜 일자리로 이어지면서, 사회적으로 부차적인 노동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 사회서비스 종사자 근로조건 개선방안(국미애, 2018)에 따르면, 요양보호사는 상시근무로 월급제를 원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하는 비율도 68.2%로 높았다.

오승은: "어느 집에 여자 하나 보내는 사업인데 많은 엄마들이 집에서 모든 일을 다 하는 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잖아요. 밥도 해줘야 하고 정서도 감당해줘야 하는 것처럼 요양보호사도 특별히 업무 구분 없이 당연히 모든 업무를 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게 여성 노동에 대한 나쁜 인식과 편견을 활용한 일자리라는 생각도 들어요."
 
김정아: "옷을 하나 사 입으면 그 옷을 만드는 노동이 있고, 그것을 파는 노동의 가치가 인정되잖아요. 그런데 돌봄 노동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데 당신이 와서 해주는 일쯤으로 생각하는 사회적 인식이 너무 커요. 당사자 스스로 갖고 있는 사고도 크게 벗어나지 않아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지 싶어요."

오승은: "지자체가 파악하고 공급 계획을 세우는 게 맞는 거죠. 돌봄 노동 자체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인정돼야 임금도 올라가고 고용안정도 되는 거라 노조가 요양, 보육, 장애 활동 지원, 사회복지 단위를 합쳐서 시민 대상으로 모두를 위한 돌봄이라는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어요. 돌봄이 민간에 맡겨지다 보니 코로나 사태에서 구멍들이 드러났고, 국가가, 공공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확인이 된 것 같아요. 돌봄 노동의 사회적 가치를 확인하고 공공의 목소리에 동참해 주시라는 캠페인을 여름쯤에 전면적으로 시작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가져주셨으면 해요."

특집2. 방문노동의 공공성 보장, 안전보건의 출발점 / 2020.04

방문노동의 공공성 보장, 안전보건의 출발점

 

 

박기형 / 상임활동가 

 

 

방문노동은 각 가정에 방문하여 특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을 일컫는다. 재가요양보호사, 도시가스 안전점검원, 통합사례관리사, 다문화가정 방문지도사, 정수기·에어컨·인터넷 설치 등 가전통신서비스노동자 등이 포함된다. 여기서 우리는 이 다양한 노동들이 사회의 필수적인 서비스에 해당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더욱이 각 가정 또는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제공되는 것이기에, 서비스 수요자들이 거주하는 공간에 방문하고 대면 접촉하는 일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집으로 찾아가고 사람을 만나는 일을 통해서만 서비스가 제공되고 서비스가 목적하는 바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방문노동은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서비스들이 실현되는 한 형태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공성이 사람 간의 관계에서 실현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방문노동 형태를 띠는 각종 서비스에서 공공성이 담보되고 있는가? 그리고 이러한 공공성을 보장하는 일은 노동자의 안전보건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일까? 여성 방문노동자의 안전보건은 무엇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이번 4월호 <일터>에서는 다양한 방문노동의 형태 중 돌봄 노동 영역에서의 변화에 주목해보려 한다.
 
"불필요한 신체접촉에 언어폭력..." 
 

돌봄노동은 여러 방문노동 중 사회복지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서, 가장 공공성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그동안 돌봄 노동이 제공되는 방식은 공공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국 사회는 90년대 말부터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로의 전환 이후 여러 부문에 걸쳐 민영화가 진행되었고, 사회복지 서비스에서도 민간위탁 방식이 널리 확산되었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반면, 대가족 중심에서 핵가족 또는 1인 가구 중심으로 가계 구성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는 발전국가 시기에 유지되었던 복지서비스 제공방식, 즉 국가가 경제발전에 집중하는 대신 복지 문제는 각 가정에서 자율적으로 해결하도록 하는 방식이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그에 따라 돌봄 노동의 영역에서 제도적 공백이 발생했고, 이에 대응할 필요성이 증가했다. 하지만 민영화 흐름 속에서 정부는 충분한 수준의 역량과 재원을 투입하지 않았다. 대신 시장을 통해 공백을 메우고자 했다.

바로 민간위탁 방식을 통해 사회복지 서비스의 수요를 충족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시장경쟁을 통해 서비스의 질을 높이겠다는 취지가 무색해질 정도로 임금 떼먹기, 부당해고뿐만 아니라, 재정 운영상의 비리 등 각종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그에 따라 서비스의 질 또한 개선되기는커녕 악화 되었으며, 재가요양보호사들의 안전과 건강 또한 위협받기에 이르렀다. 서울의 어느 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요양보호사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경험을 토로했다.

"60대 후반의 남성 한 분이 계시는 집에 방문하는데요. 몇 번 불쾌한 신체 접촉을 하려고 했어요. 닫힌 공간에서 단둘이 있으니 일할 때 늘 불안할 수밖에 없죠. 더구나 제 일에 대해서도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고요. 여성 이용자나 이용자의 보호자들로부터도 언어폭력을 듣기도 해요. 사람 하나 또는 아줌마를 데리고 쓰고 있다는 말을 통화하면서 서슴없이 하실 때도 종종 있어요."
 
그러나 센터에서는 이들의 고충을 듣고 제대로 해결해주기보다는, 대상자 교체라는 손쉬운 방법을 택한다. 심한 경우에 대상자가 요양보호사 교체를 요구하면, 자칫 대상자와 갈등이 빚어져 센터의 실적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여, 그 요구가 적절한 것인지 검토하지도 않은 채, 일방적으로 요양보호사를 교체하기도 한다. 이에 불응하여 문제를 제기하자, 해당 센터에서 백화점 물건을 바꾸는 것과 같다는 식으로 대꾸했다고 한다. 와상환자를 혼자서 돌보다 어깨가 상하더라도, 산재 보상이나 재활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더욱이 일거리를 받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고용불안에 늘 시달린다. 고용 형태도 문제지만, 중년 여성은 이 일자리를 잃으면 다른 곳으로 가기가 힘든 것도 이유다. 그로 인해 문제 제기는 더욱더 어렵다. 이는 요양보호사의 고충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해당 서비스 이용자들도 제대로 된 돌봄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게 된다. 공공운수노조 재가요양전략사업단 김정아 조직국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동안 신고제로 운영하면서, 쉽게 센터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해줬어요. 그러니 해당 센터가 충분한 재정과 적합한 운영방식을 취하고 있는지 검토하지 않았죠. 예컨대, 인천에 센터를 설립하고서 서울 중랑구에서 대상자를 모집해 서비스 제공하는 일도 부지기수였습니다. 사회복지사가 매달 점검하러 온다고 하지만, 대상자의 상황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채 주먹구구식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죠. 설립부터 점검까지 체계적인 관리가 부재했던 것이죠.

그러나 센터들은 이용자의 보험금이 수익의 원천이니 어떻게든 이용자들을 붙잡아두려고 했어요. 이용자를 유치하기 위한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이용자들의 자기부담금을 깍아주는 편법을 쓰고, 요양보호사의 임금을 빼돌려 차액을 별도로 충당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났었죠. 그러는 와중에도 이용자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각 상황에 맞게 어떤 서비스가 더 제공되어야 하는지를 고려하는 사례별 관리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알선·파견용역업체'와 다를 바 없는 센터
 

센터와 이용자, 요양보호사 간의 소통은 오직 건수를 채우기 위해서만 이뤄질 뿐, 실제 서비스가 제공되는 과정에서는 소통이 부재했다. 결국 센터는 요양보호사와 이용자를 연결해주기만 하는 '알선·파견·용역업체'와 다를 바 없었다. 서비스의 질 관리는 오직 요양보호사의 몫으로 남겨졌다. 하지만 요양보호사 혼자서 이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성희롱 등 성폭력의 위협과 센터로부터의 고용불안 등은 요양보호사가 위축될 수밖에 없도록 했다.
 
또한 센터로부터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한 이용자들과 그들의 보호자들은 요양보호사의 역할과 지위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자신들이 고용해서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사람처럼 생각했다. 이로 인해 요양보호사는 어떤 관계로부터도 고립될 수밖에 없었고, 돌봄 노동 자체도 요양보호사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되었다.
 
이에 대한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최근 돌봄 노동의 공공성을 인정하면서 제도상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사회서비스원이다. 사회서비스원은 돌봄서비스를 정부가 직접 제공하기 위해 설립한 공공기관이다. 이를 통해 공공성을 강화하고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한다.
 
아직 시범사업 수준이지만, 서울시와 대구시, 경기도, 경상남도 4곳에서 운영하고 있다. 물론 사회서비스원에서도 이동수단 및 이동 비용 제공 문제, 안전보건 관련 예방조치 문제 등 개선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 그런데도 민간위탁 방식에 비해 확연히 달라진 점이 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지부 김혜미 지부장은 현장의 변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전에는 혼자서 한 분을 돌봤었는데, 이제는 요양보호사 둘이 들어가요. 그러면 확실히 안정감이 생기죠. 이용자들도 좀 더 주의하게 되고요. 함부로 할 수 없는 거죠. 그리고 처음 방문할 때는 센터의 관리자도 동행해요. 그냥 전화로만 연결해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용자의 상태나 환경도 점검하죠. 무엇보다 함께 방문해서 이 서비스는 무엇인지, 어떤 것들을 제공하는 건지 상세히 설명하죠.

이후에 이용자가 문의 사항이나 불만이 있으면 관리자를 통해서 센터로 연락을 해요. 민간에는 매번 개인번호를 교환하니 한밤중이나 주말과 휴일 할 것 없이 연락이 오고 부당한 요구까지 듣기도 해요. 이제는 요양보호사와 이용자 둘만의 개인적 관계가 아니라, 센터 차원에서 제공하는 사회서비스로서 프로세스가 갖춰졌어요. 센터, 이용자, 요양보호사 간의 소통이 잘 이뤄지면서 신뢰감도 생겼죠. 그러면 어떤 케어가 필요한지 확인하고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게 되겠죠. 안전확보와 서비스 질 향상 모두 가능해지는 거죠."

 


요양보호사는 직업, 개인의 봉사에 기대서는 안 된다
 
이에 더해 직접 고용에 따른 고용 안정성 담보뿐만 아니라, 인력 증원 및 돌봄 노동 중 발생하는 산업재해에 대한 보상과 치료 등이 가능해지는 부분도 주목해야 한다. 나아가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마스크와 손 소독제 지급 등의 안전보건 문제를 집단적으로 협의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도 중요한 지점이다. 개별 노동자의 지위에서 집단적인 노사관계로 전환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무엇보다 지자체의 재정투입이 공적인 책임으로 이어지면서 센터가 직접 사례관리를 하게 된 것이 핵심적인 변화다. 요양보호사의 지위 인정과 안전보건 관리, 서비스 질 관리 등 모두가 가능해지기 위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건강보험공단의 보험료 중 일부를 장기요양보험으로 적립하고 이를 지원금으로 제공하는 간접적인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직접적인 재정투입과 이를 통한 공공성, 공적 책임강화가 요구되는 이유다.
 
하지만 사회서비스원이 시범적으로 시행된 이후, 사유재산 침해 등을 이유로 민간센터들의 반발이 극심한 상황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직은 법 제도로 정착하기까지 갈 길이 멀다고 한다. 그런데도 김혜미 지부장과 김정아 조직국장 모두 강조한 바는 다음과 같다.

"돌봄 노동은 사회복지 서비스로서 공적인 것이잖아요. 그런데 요양보호사 한 사람의 착하고 선한 마음, 개인의 봉사에 기대서는 안 되는 것이죠. 사회에 필수적인 것이니 조직적, 집단적으로 해결해나가야죠. 그런 점에서 돌봄노동뿐만 아니라 방문 노동 전반의 공공성 강화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특집1. 방문노동의 '위험'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2020.04

 

 

방문노동의 '위험'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김지안 / 상임활동가 

 

 

 

어떻게 위험의 원인을 '방문노동'에 내재하는 것으로 설명하지 않으면서, '방문노동'이라는 독특한 노동형태가 가진 문제점을 잘 드러낼 수 있을까? 2019년 여름, 울산 경동도시가스 검침원 투쟁 이후로 방문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위험과 안전 문제가 잘 알려지게 되었다. 또 투쟁을 통해서 이미 수많은 검침원, 그리고 타 직종의 방문노동자 역시 언어적, 신체적 폭력부터 괴롭힘, 성폭력 등 지속적이고 일상적인 문제를 겪고 있었다는 점이 드러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관심 속에서 방문노동이 그 자체로 위험한 노동으로 인식될 우려가 있다. 주로 방문노동의 위험이, 1인이 가정 등 사적 공간을 방문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또 대다수가 여성 노동자로 구성되어있다는 점에서 설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험의 원인을 '방문'하는 방식 자체, 또는 여성 노동자들의 취약성으로 접근하면 '방문노동'의 위험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되어버린다. 그렇기에 방문 노동자의 안전과 권리를 위해 먼저 필요한 것은 위험이 어떤 조건을 통해서 가능했고 방치되어왔는지, 왜 매일의 일상 노동 속에서 되풀이되어왔는지 더 질문하는 일이다.

 


방문노동의 위험 잘 드러내기
  
울산 투쟁 초기 경동도시가스는 위험세대를 별도 관리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노조의 지속적인 2인 1조 요구에 대해서는 "0.1%의 블랙컨슈머" 때문에 사회적 비용을 감수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형적으로 성폭력 문제를 몇몇 가해자의 잘못으로 축소하는 입장이다. 한편 몇몇 언론들은 여러 직종의 방문노동자가 겪는 위험을 보도하면서 '헐벗은 나체의 고객'이나 '남성 1인 가구' 등의 헤드라인을 부각시켰다. 이러한 보도방식은 방문노동에 따른 위험을 지적했다는 측면에서는 정반대의 경향처럼 보였지만, 남성 가해자의 심각한 가해 행위와 더불어 방문노동자의 대다수가 여성 노동자라는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이런 강조는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방문노동자에 대한 성폭력 사건이 소수의 가해자에 의해 발생한다는 기업의 논리를 강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더욱이 가해 행위에 초점을 두자, 가해자의 성별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성별 역시 중요한 위험 요인으로 부각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위험세대를 선별해 원청 남성 직원과 동행하도록 하거나, 위험세대는 남성 검침원이 방문하겠다는 기업의 대안들이 제기되거나 검침원을 남성으로 모두 바꾸라는 인터넷 댓글 등이 나타났다.

하지만 여성운동과 페미니즘이 오랫동안 말해왔듯이, 성폭력은 그것을 용인하고 묵인하는 사회문화, 사회 전반의 낮은 젠더감수성 속에서 벌어진다. 그렇기에 성폭력은 결코 소수의 남성 또는 개인에 의한 문제로만 접근해선 안 된다. 문화적 차원이나 성폭력의 발생 조건을 지적하지 않고 몇몇 개인의 일탈로 설명하는 것은 가장 흔히 문제를 축소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일터에서 발생한 성폭력 역시 노동자가 처한 위험이 방치되고 지속 반복되었던 구조적 문제를 짚어야 한다. 또한 무엇보다 우리는 고객에 의한 폭력을 방치한 기업과 사업주의 책임을 주목해야 한다. '여성' 방문노동자라는 점이 곧 성폭력과 고객의 폭력에 취약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방문 노동자'의 권리와 안전이 부재한 노동환경이 여성 노동자들이 더욱 쉽게 성폭력 및 폭력에 노출되도록 하는 것이다. 즉 방문노동의 노동환경이 위험을 만들어내는 일차적 조건으로써 더욱 드러나야 할 것이다.

 


방문노동의 '위험', 어떻게 봐야 할까
  
그럼 이 위험을 어떻게 봐야 할까. 방문노동은 확실히 일터의 공간적 특성이 위험을 쉽게 발생시키는 첫 번째 요인인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고객을 대면하는 업무에서, 노동자가 고객이 가진 위계에 쉽게 대응하기 어렵게 만드는 기제를 잘 알고 있다. 노동자를 고용한 기업이 노동자의 안전할 권리보다 고객의 피드백·항의를 우선하기 때문이다.

방문노동의 경우, 대면 업무가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기에 이런 기제가 심화되기 쉬운 여건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 역시 방문 형태의 노동 자체가 곧바로 위험이라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방문 대상자인 고객에 대한 제재나 인식 개선의 노력이 전혀 없이 문제를 방치하는 것, 그리고 업무 중 안전사고나 폭력 사건이 발생해도 정확히 대응하거나 신고하기보다 상황을 무마하고 넘기도록 하는 '실적제' 또는 '할당제' 역시 중요 원인 중 하나다.

또 고객에게 입은 피해를 회사나 중간기관에 사후적으로 신고하더라도 별 응답이 없거나, 오히려 노동자를 교체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큰 문제다. 이용자와 노동자를 연결해주는 기관에는 이용자를 유치하는 일이 곧 이윤으로 직결되기에, 전적으로 이용자의 편의를 봐주는 데다가, 노동자를 쉽게 해고하고 교체하는 게 가능한 상황도 노동자의 권리를 약화시키는 원인이다. 이런 관계 속에서 어떻게 노동자가 제대로 된 노동의 권리를 말하거나 문제가 발생했을 시 정확한 대응을 할 수 있는 힘과 역량을 가질 수 있을까.

그런 와중에 기업과 기관들의 실효성 없는 대책의 반복 또한 드러났다. 2015년 경동도시가스 업무 매뉴얼에는 위험 상황에서 '다음 가정을 빨리 방문해야 한다.'고 말하며 자리를 피하라고 제시되어있었다. 이는 보건복지부가 제작한 <노인장기요양 방문요양·방문목욕 급여 제공 매뉴얼>에 나오는 재가요양보호사 업무 지침에서도 거의 유사하게 존재한다. 그러니 과연 단순히 '사적 공간'에 '방문'해서 노동한다는 점 때문에 위험이 발생한다고 할 수 있을까. 결국 매뉴얼이 시사하는바 역시 기업과 기관들이 위험이 쉽게 가중될 수 있는 노동조건을 조장해왔으며 노동자의 안전은 협소하게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시간 일자리, 비정규 노동의 특징 또한 불안정 노동을 심화하는 조건이다. 이때 불안정한 노동 자체도 문제이지만, 그에 더해서 노동자의 안전과 책임에 대한 부재가 대단히 심각하다. 예를 들어 재가요양보호사는 한 기관이 보통 1명의 노동자와 1건만 계약을 진행하기 때문에 흔히 노동자들은 장시간 일하기 위해서 2~3개의 기관과 고용계약을 하는 방식으로 일한다.

하루 동안 2~3명의 이용자에게 요양 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건마다 계약을 맺은 기관이 다른 셈이다. 이럴 경우, 노동자의 사회보험료 지급 등은 각 기관이 같은 비율로 나눠서 납부하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복잡한 고용관계 속에서 노동자의 안전에 대한 책임 또한 소실될 수밖에 없다. 근본적 해결을 위해선 건당 계약, 단시간 고용 등 불안정 노동을 심화하는 조건들을 없애야 하며, '방문노동'의 형태를 충분히 고려한 산안법 적용, 사업주 책임이 부여되어야 한다.

한편에서 현재 방문노동자가 겪고 있는 고객에 의한 다양한 폭력의 양상들, 괴롭힘, 사적 연락, 성희롱 및 성폭력 문제는 안전을 일상적으로 위협하는 문제들이다. 하지만 이것이 방문노동자가 경험하는 안전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일례로, 도시가스안전점검원들은 계단, 비탈길 등을 워낙 잦게 이동하기에 이동 중 안전사고가 발생하기 쉽다. 발목 염좌나 인대 부상은 빈번한 직업병이다.

또 검침 업무를 위해 확인해야 하는 계량기는 대개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건물 측면 위에 붙어있는 경우가 많다. 보통 다세대주택이나 빌라에서 건물 측면 또는 뒤편으로 가는 길은 자물쇠로 잠겨있기 마련이다. 높이 있는 계량기를 확인하기 위해 담이나 발판을 딛고 올라가 살펴보거나 출입문이 잠긴 경우에 어쩔 수 없이 출입문을 넘기 위해 담을 타는 일이 빈번하다. 이 경우 담에서 떨어지거나 하여 다치거나 정신을 잃은 노동자를 아무도 발견하지 못해 시간이 지나 스스로 정신을 차리고 수습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도시가스안전점검원/검침원에게 2인 1조가 필요한 까닭을 성폭력 등의 위험뿐 아니라 위와 같은 사고성재해 등 노동자의 안전과 관련된 여러 맥락을 통해 생각할 수 있는 대목이다.

 


위험을 가중시키는 조건들: 노동시간, 실적제, '사적 관계'의 형성 
  

방문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업무를 매번 관리 감독하는 게 어렵다는 이유로 대단히 임의적이고 기업 편의적인 방식으로 책정된다. 대부분 실제 일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보다 노동시간이 낮게 책정되어 있다. 예를 들면, 간주노동시간제로 운영되는 도시가스안전점검원이나, 구청 소속으로 일하는 방문간호사, 통합사례관리사 등을 제외하고는 정해진 서비스 제공 시간에 따른 방문 횟수가 노동시간 책정의 주된 방식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할당된 세대 수와 정해진 '간주노동시간'이 적절하게 설정되어 있는지, 정규 노동시간 동안 일하더라도 일과 중 휴게시간과 공간은 제대로 부여되고 있는지, 방문 시 심각한 상황에 처한 서비스 이용자를 발견했을 때 마음을 추스르거나 숨을 돌릴 시간은 주어지고 있는지, 위험 상황에 처했을 때 작업중지는 가능한지 등도 따져봐야 할 쟁점들이다.

또한 노동시간에 대한 단순한 양적 관리뿐 아니라 '실적제' 형태로 노동을 통제·감시하는 체계도 여러 방문 노동에 공통적으로 존재한다. 적은 노동시간 동안 정해진 할당량을 채워야 한다는 것은 다양한 직종에 여러 종류의 위험을 낳는다. 검침원들은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바쁘게 이동하다 이동과정에서 산재가 발생하기 쉽고, 방문간호사들은 담당하던 노인의 사망을 최초 목격하더라도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경찰신고 등 조치를 취하고서는 곧바로 다음 가정을 방문해야 한다.

한편 시급제로 임금이 책정되는 직종들은 더욱 노동시간 문제가 심각하다. 건당 계약을 하거나, 시간당 임금이 정해지는 장애인활동지원사, 재가요양보호사 등의 직종에서는 서비스 이용자가 할당받은 서비스 시간에 대한 수가에서 임금이 책정되는데, 노동한 만큼 시간이 정해지는 게 아니라 서비스의 제공 시간이 정해지고, 그만큼의 임금만 산정이 되는 방식이다. 중간기관인 방문요양기관이나 장애인활동지원 단체의 이윤과 운영관리비도 동일한 수가에서 지급되기 때문에, 초과근무가 발생하더라도 기관이 노동자에게 수당을 제대로 지급할리 만무하다.

그런데 이렇게 이용자에게 부여된 서비스 제공 시간만큼만 일하는 것이 실제로도 가능할까? 환자인 노인이나 장애인의 컨디션이나 업무 지시 등 상황에 따라서 초과근무 시간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때, 돌봄노동의 경우 서비스 제공과정에서 이용자와 노동자 사이의 관계가 불가피하게 형성되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이러한 관계형성으로 인해 노동자 스스로는 노동시간을 통제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사회복지 서비스의 경우에는 방문의 대상이 주로 장애인, 노인, 환자, 이주여성 등이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취약한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종종 장애인활동지원사나 재가요양보호사를 주민등록상 비상연락망에 등록하기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럴 정도로 이들을 돌보는 노동자는 이용자들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적인 부탁이나 업무 외 시간에 오는 연락, 업무 범위를 벗어난 일을 지시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물론 이러한 사적 부탁, 업무 외 지시, 업무 외 연락 등은 노동자의 입장에서 대단히 거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특히 다수의 노동자가 불안정한 고용형태를 가지면서 이용자의 민원, 항의에 중간기관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현 체계상에서 더욱 그렇다.  이런 점에서 이용자의 사적 연락, 부탁 등 소위 '갑질'이 지적되어왔다. 하지만 과연 이 모든 문제를 이용자의 '갑질'로만 해석할 수 있을까. 이용자의 '갑질' 뒤에는 노동자 개인에게 사회복지 서비스의 공백의 책임을 전가하는 위탁운영 기관, 더 중요하게는 지자체 및 정부의 복지서비스 체계가 있다. 이런 전체적인 맥락과 상황마다 결이 지적되지 않고 단순히 이용자와 노동자 간의 문제로 축소되어선 안 된다. 노동자가 사적인 부탁이나 업무 외 지시를 받지 않도록 업무용 폰 지급부터 정해진 노동시간을 초과하지 않도록 관리/감독이 필요하며, 다른 편에서는 이용자에 대한 복지 전달 체계 자체를 검토하는 일과 불편사항을 전담하는 별도 인력이 필요하다. 

 


안전하고 건강한 방문노동을 위한 과제

한 명의 사람이 사회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돌봄의 영역은 매우 광범위하지만, 정작 제공되는 서비스와 시간은 제한적이다. 그러니 제도적 공백을 방문노동자의 사적 시간과 사적 관계로 메우는 일이 발생한다. 개인의 헌신과 시간 투여에 의존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되고 있는 사회복지 영역에서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나아가 월급제 등 정확한 노동시간 책정과 업무의 명확한 분할을 통해 방문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뿐만 아니라 방문노동자가 일상적으로 겪는 감정노동부터 고객에 의한 괴롭힘, 성희롱 등 성폭력 문제, 이동 중 안전사고, 만연한 근골격계질환, 정신건강 등의 문제를 제대로 다룸으로써 현재 협소하게 인식되고 있는 방문노동자의 위험을 다각도에서 보는 일이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기업과 기관이 직접 문제적 행동을 한 고객을 제재하는 것부터 일상 수준에서 고객 인식 개선을 위한 캠페인을 진행하고, 실태조사와 안전조치를 마련하는 것까지 다양한 대응책과 개선방안을 만들어 가야 한다. 더 중요하게는 방문노동자들에게 위험을 예방할 수 있도록 작업중지권의 보장, 그리고 방문노동 전 직종에 만연해 있는 실적제, 할당제와 같은 노동 통제를 위한 제도들이 전부 폐지되어야 할 것이다.

노동안전보건 운동의 오래된 관점 중 하나는 위험 요인이 일터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바로 사고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위험 요인의 관리, 즉 안전 교육과 매뉴얼의 보급 등 예방적 차원의 문제부터 사고에 대한 대응, 그리고 재발 방지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과 조치가 노동자의 안전을 가름한다. 따라서 방문노동 역시 어떤 조건 속에서 안전 문제가 지속·반복되고 있는지를 규명하는 것, 그리고 어떻게 방문노동의 특성에 맞게 노동과정과 환경에 대한 책임을 사업주나 (대부분 민간에 위탁운영하고 있는 지자체와 같은) 원청에 부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까지 나아가야 한다.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유투버에게도 매니저가 있다고?! / 2020.04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유투버에게도 매니저가 있다고?! 

 

 

 

 

박기형 / 상임활동가 

 

 

크리에이터. 원어를 그대로 번역한다면 창작자.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직업이 바로 크리에이터다. 하나의 고유명사로 자리 잡은 크리에이터는 유튜브, 아프리카TV, 트위치 등에서 라이브 방송을 하거나 영상을 기획·제작하여 올리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 크리에이터들이 영상을 만드는 과정은 전통적인 방송, 영화 산업에서의 영상물 제작과는 다르다. 그래서 방송, 영화 산업을 가리켜 레거시 미디어, 동영상 공유 서비스 또는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을 가리켜 뉴미디어라고 분류하기도 한다. 언제나 영상기술이 발전하면서, 뉴미디어들이 등장하곤 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검색조차 텍스트가 아닌 이미지, 특히 영상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유망직종과 산업은 정말 새로운 것일까? 모두가 꿈꾸는 크리에이터의 일은 정말 장밋빛으로 물들어 있을까? 취미와 일이 일체가 되는 삶을 누릴 수 있을까? 휴대폰과 태블릿, PC 화면에 송출되는 크리에이터의 방송이 기획, 제작, 방영되기까지 어떤 노동과정이 숨어있는 것일까? 한 MCN(Multi Channel Network, 다중 채널 네트워크) 업체에서 일하는 H씨를 지난 3월 28일에 만나 얘기를 나눴다.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의 산업구조와 MCN의 역할

MCN은 뭐 하는 곳일까? MCN은 한 마디로 인터넷 방송의 SM, YG, JYP와 같은 곳이다. 방송 스트리머,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의 콘텐츠를 유통하고 콘텐츠 기획·제작을 지원하며, 저작권을 관리해주고 광고를 유치하는 등 각종 매니지먼트를 제공하는 기획사다.

대표적인 회사로 CJ E&M과 같은 대기업도 있지만,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스타트업 기업인 샌드박스 네트워크, 트레져헌터 등이 있다.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에서 영상을 찍고 올리는 사람과 보는 사람만 있으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데 왜 연예기획사 같은 회사가 등장한 것일까

 
"유튜브나 트위치와 같은 곳에서 크리에이터 혼자 일하는 게 아니에요. 일종의 협업구조죠. 방송 콘텐츠의 수요 측면에서는 크리에이터와 시청자 둘만 있지만, 공급 측면에서는 크리에이터와 플랫폼 그리고 광고주가 있어요. 광고주가 중요해요. 크리에이터의 영향력이 커지면, 광고주가 자신들의 제품 또는 이벤트를 홍보하기 위해 접근해요. 방송이나 영화처럼 광고비를 얼마 줄 테니 영상이나 라이브 방송 때 노출 시켜달라고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죠. 이때 광고주들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 홍보 효과를 누리고 싶죠. 크리에이터들은 광고의 대가로 최대한 많은 이윤을 얻고 싶고요.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해요. 광고주와 크리에이터 간의 비대칭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크리에이터는 사업자 등록의 여부와 관계없이, 개인으로 활동하는 것이죠. 하지만 광고주는 기업들이죠. 플랫폼 업체 입장에서도 광고주들이 이윤 측면에서 중요하죠. 그런 상황이니 크리에이터 혼자서는 광고주와 제대로 협상할 수가 없어요. 협상력이 떨어지는 거죠. 더구나 광고업계는 바닥이 좁기 때문에, 어느 한 광고주와 관계가 어긋나면 다른 광고주들로부터도 광고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요. 정말 '대도서관' 같은 사람, 뭐 방송으로 치면 유재석이나 강호동처럼 대체 불가능한 크리에이터가 아닌 이상 힘들다는 거죠.


더구나 광고 요청이 여러 군데서 연락 오기도 해요. 이럴 때 크리에이터 혼자 대응하려면, 정작 콘텐츠와 구독자 관리에 신경 쓸 여력이 없어요. 쉽게 말해, 공장에서 팔 물건을 만드는 것과 자본투자를 유치하는 것 간의 차이와 마찬가지죠. 투자를 받도록 도와줄 조력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게 바로 MCN입니다."
 
달리 말해, MCN 개별 크리에이터들의 합집합과 같다. 아니, 그 이상의 효과를 낳는다. 크리에이터 입장에서는 집단으로 협상할 수 있는 단위를 갖게 된다. 반대로 MCN 입장에서는 영향력이 큰 크리에이터를 확보하면 할수록 플랫폼, 광고주, 기타 업체들과의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한 마디로, 회사 대 회사의 구도를 갖게 되는 것이다. 크리에이터가 안정적으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차원에서 지원을 제공해주는 대신 MCN은 크리에이터가 얻는 수익의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받는다. 일종의 광고대행사와 같다고 보면 편하다.

크리에이터와 MCN은 어떤 관계를 맺는 걸까?

크리에이터와 MCN의 관계는 크게 네 명의 행위자들 간의 관계로 이뤄진다. 크리에이터⇄매니저⇄광고매니저⇄광고주. 매니저는 크리에이터를 응대하고, 광고매니저는 광고주를 응대한다. 이후 회사 내에서 담당 매니저와 광고 매니저가 상호소통을 한다. 예컨대, 광고주 A가 이러이러한 상품을 광고하고 싶다고 하는데, 크리에이터 B한테 맡기면 좋을 것 같다고 한다는 걸 광고매니저 C가 매니저 D에게 전달한다. 그러면 매니저 D가 판단해서 광고주 A 및 광고매니저 C 등과 합의를 하고, 해당 내용을 크리에이터 B에게 전달한다. 크리에이터 B의 의견을 확인한 후 매니저 D는 다시 광고매니저 C에게, 광고매니저 C는 광고주 A에게 요청사항을 전달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광고가 체결된다.

광고 계약 체결 및 관리 외에 MCN의 주요 업무 중 다른 하나는 바로 크리에이터에 대한 매니지먼트다. 우리가 흔히 매니저 하면 떠올리는 건, 로드 매니저다.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으로 익숙한 연예인 매니저의 한 형태다. 하지만 로드매니저만 연예기획사에 있는 건 아니다. H씨는 연예인에 대한 매니지먼트의 유형이 다양한 것처럼 MCN에서도 파트너십 매니저는 여러 역할을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로드 매니저처럼 각종 행사나 방송에 동행하기도 하죠. 하지만 이보다 더 많이 수행하는 역할들이 있어요. 방송 콘텐츠의 특성이나 구독자 성향, 영상별 포인트, 인기 요인 등 각종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홍보 전략이나 콘텐츠 기획을 짜는 것이죠. 또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광고를 유치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크리에이터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각종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도 하고, 해당 크리에이터의 방송, 영상을 모니터링하고 피드백을 주기도 해요. 만약 크리에이터가 활동하다가 악플에 노출되거나 개인사로 힘들어할 경우에 상담사 역할을 하기도 하죠. 데이터 분석가부터 PD, 상담사까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죠."

전략분석부터 크리에이터 발굴까지

"그뿐만 아니라 잠재력 있는 크리에이터들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역할도 해요. 유튜브로 치면, 구독자 수가 많은데 상품 가치가 있는 영상을 만들지는 못하고 있으면, 광고주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해요. 어떤 경우에는 구독자 수가 많지는 않지만, 개성 있는 영상을 만들고 있다면, 기술적으로 더 완성도 있는 영상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하고요.

게임 크리에이터로 치면, 한 크리에이터가 롤이라는 게임만 해요. 방송에서 게임도 잘할 뿐만 아니라, 시청자와 소통도 잘하고, 본인 캐릭터도 특이하죠. 그런데 롤 게임 하나만 하면, 광고주들의 관심을 얻긴 어려워요. 롤은 이미 유명한 게임이니 광고를 널리 띄울 필요도 없고, 다른 게임 광고주들은 이 방송에 광고를 올릴 유인도 없죠.

이때 만약 MCN에 크리에이터가 들어오게 되면, 다양한 게임을 다룰 수 있도록 하도록 교육을 제공함과 동시에, 해당 크리에이터의 게임 패턴, 게임 능력, 시청자에 대한 반응과 소통 방식, 구독자·시청자들의 댓글과 채팅창, 조회 수가 높은 영상의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주죠. 그러면 주요 키워드와 내용, 형식이 드러나죠. 이렇게 해당 크리에이터의 특성과 장단점에 맞는 게임들을 선별하고, 게임별로 적합한 방송 전략을 세워줘요."
 
H씨에 따르면, 흔히 업계에서 크리에이터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연기자형이다. 즉흥적인 진행과 다채로운 표현력이 장점이다. 하지만 기획력이 떨어져서 짜임새 있는 방송은 힘들다. 하지만 시청자와의 소통이 원활하고 리액션이 좋다. 더욱이 광대와 같이 콩트를 통해 시청자들을 울고 웃기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렇다면, 라이브 스트리밍에 적합하다고 한다.

다른 유형은 기획자형이다. 본인이 계획한 시나리오대로 영상을 찍는 것을 좋아하며, 실제로도 영상이 진행되는 시나리오를 탄탄하게 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들은 편집점을 잘 잡아서 VOD를 잘 만들 수 있기에, 유튜브 등 제작된 영상에 적합하다.

게임 크리에이터의 경우에도 이러한 두 유형에 맞게 게임들을 추천해준다고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자들과 리액션을 주고받으면서 진행하는 것에 적합한 게임과 상황별 콩트와 시나리오를 짜서 진행하는 것이 적합한 게임으로 나뉜다. 그에 맞게 진행하도록 제안하는 것이다. 연기자형에게는 방송 들어가기 전에 캐릭터를 잡아서 철저히 보여주려는 이미지와 특징들을 중심으로 연기를 보여주라고 지도하기도 한다. 본인이 잘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를 고려하기도 하고, 게임에 따라서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해보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영상 제작 자체에 내재한 쌍방향 소통

쌍방향 소통이라고 하면, 1980년대 말부터 뉴미디어라고 지칭된 여러 미디어 매체들의 특성으로 언제나 거론되던 것이다. 그래서 색다를 것이 없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H씨는 쌍방향 소통의 위상이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과거 인터넷이 유행할 때, 쌍방향 소통이 언급되는 지점은 영상 제작과정과는 별개였다. 영상이 제작된 이후 제작된 영상을 시청한 시청자들이 방송사의 인터넷 게시판이나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후기를 남기고 피드백을 줬다. 하지만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은 시간적으로 거의 즉시 피드백이 오가며, 공간적으로도 분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론 유튜브처럼 제작된 영상을 올리는 경우에는 제작과정 자체에 쌍방향 소통이 내재해있지는 않다.

하지만 유튜브의 실시간 방송이나 트위치 등의 라이브 방송의 경우에는 영상 콘텐츠 자체가 시청자와의 실시간 소통을 통해 만들어진다. 시청자와 소통하며 영상의 내용이 채워진다. 시청자의 참여가 언제나 영상 기획·제작·편집에 내재해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형식의 집단적인 영상 제작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동시에 H씨는 크리에이터 개인의 특성이 오롯이 반영되는 점이 독특하다고 지적했다. 방송과 영화 제작과정에는 출연자, 연출자, 기획자가 모두 분리되어 있지만,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의 경우에는 크리에이터로 참여하는 이들 간의 역할 배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누구나 출연자, 연출자, 기획자로 분할 수 있기 때문에, 각자의 캐릭터와 인간적인 매력이 콘텐츠에 녹아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크리에이터의 특성이 중시되며, 그러한 특성을 지닌 영상물이 자유롭게 올라가고 사람들이 접할 수 있다는 점이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만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파트너십 매니저들이 매니지먼트를 하거나 MCN에서 기술적인 지원을 할 때도 주의하는 사항이 있다. 물론 계약 조건에 따라 지원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겠다. 하지만 H씨에 따르면, 크리에이터의 특성을 해치지 않는 한에서 최대한 자유롭게 콘텐츠를 만들 수 있도록 필수적인 조치에 국한해서 지원하는 것이 권장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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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 산업은 밝고 희망차기만 할까?
  
지금까지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과 MCN, 크리에이터, 파트너십 매니저들이 어떤 관계를 맺고 일하고 있는지, 이들이 속한 산업의 구조는 어떤지, 이들이 하나의 영상 콘텐츠를 만들 때 어떤 노동과정을 거치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과연 MCN에서 일하는 이들과 크리에이터의 노동은 영상에서 비치는 것처럼 언제나 활력이 넘치고 생기발랄하기만 할까? 5월호에서는 H씨와 함께 급성장하는 산업들이면 언제나 수반되는 각종 노동문제가 여기서도 반복되고 있음을 확인해보려고 한다.

 

[국제안전보건기준비교검토] 독일 산업안전보건 체계가 한국 산안법 전면개정안에 주는 메시지⑥-산업재해보험 ② / 2019.04

[국제안전보건기준비교검토]

 

 

 

독일 산업안전보건 체계가 한국 산안법 전면개정안에 주는 메시지⑥

-산업재해보험 ②

 

 

 

 

임혜인 / 회원, 노무사  

 

 

 

 

<머리말>

산업안전보건 국제기준 비교 연구팀에서는 2018년 9월부터 독일 산업안전보건법과 체계를 공부하면서, 한국 산업안전보건 체계가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여섯 번째 글로 산업재해보험 문제의 두번째 내용을 다룬다. 

한국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의 목적에 따르면 재해근로자에 대한 보상·재활·사회 복귀는 산재보험법이 달성해야 할 소명이다. 이하에서는 독일 산재법의 관련 내용 중 한국 산재보험법의 목적 실현을 위한 시사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산재보험급여의 직권 지급

독일의 법정 산재보험 급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재해노동자에게 직권으로 지급된다. 이는 사업주 및 산재전문의사의 '산재신고의무'와 관련된다. 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는 사고의 규모와 상관없이 산재보험조합(이하 산재조합)에 이를 신고해야 한다.

또한 산재전문의사는 재해노동자를 치료함과 동시에, 산재조합에 이를 보고해야 한다. 산재보험요율의 인상 등으로 사업주가 신고의무를 해태하기도 하나, 재해노동자 본인 스스로 또는 동료를 통해 병원을 방문하기 때문에 사업주가 신고하지 않더라도 병원에서 신고가 이루어진다.

 

산재조합은 조사원칙에 따라 사실관계를 직권으로 조사해야 한다. 이때 조합은 피보험자인 재해노동자에게 유리한 사정을 고려하여야 한다. 이러한 독일의 산재신고절차는 산재보상을 위한 재해노동자의 신청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의 산재보상절차와 차이가 있다.

노동자나 사용자가 산재발생사실 또는 산재보상신청에 대한 현실적인 부담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특히 노동자의 경우 산재신청 후 보상지급여부에 대한 불확실성, 사업주와의 관계 등으로 인해 산재보상 신청조차 주저하며 적절한 보상 및 요양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러한 지점에서 재해노동자의 신청을 전제로 하지 않는, 산재보험급여의 직권 지급은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직업재활을 넘어 사회재활까지

독일은 직업재활을 넘어 사회재활까지 도모하며 이를 위한 세세한 부분까지 법률로서 보장한다. 독일의 사회재활급여에는 재해노동자가 지속적인 차량 사용이 필요한 경우 지급하는 '차량에 대한 보충급여', 산재로 장애를 갖게 된 재해노동자가 치료시설 이용을 위해 주거지를 개축·수리하거나 이사를 하는 등의 상황을 지원하기 위해 지급하는 '주거지에 대한 보충급여', 재해노동자가 가계를 이끌어나가기 불가능한 상황을 지원하기 위해 지급하는 '가계보조 및 어린이 돌봄비용' 등이 포함된다. 법률과 제도로서 재해근로자의 사회화를 지원하고자 하는 노력은 우리의 산재보험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적극적인 사업장복귀관리

독일의 모든 사업장은 재해노동자가 1년 동안 계속하여 또는 단속적으로 6주를 초과하여 노동 불능이면 그 노동자에 대하여 사업장 복귀관리를 하여야 한다. 목적은 재해노동자의 노동 불능을 억제 및 예방하고 실직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있다.
 

<사업장 복귀 단계>
1. 노동 불능 6주 초과 확인
2. 사업장복귀관리팀 구성
3. 해당 취업자와 최초 접촉
4. 해당 취업자와 대화
5. 해당 취업자의 동의하에 사업장 내에서 사례를 의논
6. 사업장 내에서 해결방안을 찾지 못 할 경우 외부 자문 활용
7. 확실한 사업장복귀대책 합의
8. 대책 시행
9. 대책의 효과 점검

 
  사업장복귀관리에 따른 독일의 재해노동자 직업복귀율을 따져봤을 때 사업장복귀관리에 따른 독일의 재해노동자 직업복귀율은 산재보험의 재활 관리와 추가·특별 직업재활을 받은 산재 노동자 통틀어 98%가 직업복귀가 가능했다.¹ 우리나라의 2018년도 재해노동자의 직업복귀율이 65.3%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독일과 같은 재해노동자의 사업장 복귀를 위한 제도적 지원이 절실하다.

 이상 재해노동자에 대한 보상, 재활, 사회복귀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독일의 산업안전보건체계를 살펴보았다. 독일은 재해노동자에 대한 보상-재활-사회복귀의 단계가 일련의 과정으로서 관리되는 것으로 보인다. 의료적 치료와 현금급여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우리의 산재보험제도와 차별점이 있다. 독일과 같이 재해노동자에 대한 보상-재활-사회 복귀의 과정이 상호 연관되어 기능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산재보험 제도 또한 그 목적 실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각주1. DGUV(2018), Guidelines in Case Management of Work Accidents and Occupational Diseases/ Rehabilitation Management
in the German Social Accident Insurance, p. 40.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투명함을 만들어내는 노동자 / 2019.04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투명함을 만들어내는 노동자

 

 

 

 

김지원 / 후원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되는데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된다고 했어요."
- 영화 '베테랑'에서

경인 지역의 한 중소기업은 유리제품을 만들고 있다. 화학용기, 화장품 용기, 약병,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초자부품 등을 대기업의 주문에 따라 생산해내고 있다. 반세기의 오랜 역사를 지닌 이 회사는 아쉽게도 산업안전보건 관계자에게는 참으로 계륵 같은 곳이다.
2010년에는 산업재해 다발 사업장으로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사망이나 중독 같은 심각한 재해는 아니라 할 수 있는 소음성 난청으로 유소견자가 3명 나와서 3%의 재해발생율을 기록했다. 그 때 노동자수가 100여 명이었고 지금은 50명 정도이다. 단순 계산으로는 직업병 유소견자가 두 배 가량 폭증한 것처럼 통계적 착시를 보여주게 될 것이다.

 

직업병·산업재해 유소견자가 발생하면 해당 관서에는 평소보다 귀찮은 일들이 생긴다. 현장지도를 하고 유소견자 관리를 해야 한다. 소음성 난청의 경우 청력 검사 과정이나 결과 판정에 문제가 있는 경우 병원이 행정 처분을 받기도 한다. 실제로 한 병원은 이곳의 건강검진을 맡았다가 특수건강진단 업무 2개월 금지 처분을 받은 적도 있다. 병원 평가에도 문제가 생길 수가 있기 때문에 이 회사 맡기를 꺼려 직원 건강진단 실시에 어려움을 느낀다는 현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산업보건의 요구가 더 절실한 곳이 오히려 전문가들이 기피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유리를 만드는 산업의 현황은 어떨까. 2019년 현재 한국유리공업협동조합의 조합원 명부를 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나뉘는 것을 볼 수 있다. 대기업에서는 기술력이 좀 더 필요한 판유리, 건축자재, 자동차유리, 용광로 내열소재, LCD의 기판이나 액정유리 등을 만든다. 중소기업에서는 식품용기와 그릇, 화장품 용기, 약병, 화학실험용 비커나 플라스크 일체, 음료수병 등을 만들고 있다. 전통적인 제조업에 가깝다 보니 규모를 가리지 않고 산재사고가 발생하는 편이다. 최근에는 모 대기업 공장에서 판유리에 깔려 근로자가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중소기업에서 주로 만들어내는 유리제품들은 원료들을 혼합하여 뜨거운 열로 녹인 뒤 용해·성형하고 서서히 식혀 후처리와 가공을 하고 포장, 출하하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고열·적외선에 의한 온열장애·백내장 등의 발생 가능성이 생기게 되고, 분진에 의한 호흡기 질환, 소음에 의한 난청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공장에서도 수십 년간 난청이 발생하여 왔고, 최근 작업환경 측정에서는 유기화합물인 디클로로메탄이 노출기준치를 상회하여 측정되었다. 하지만 관할 관서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정의 본질은 크게 바뀌지 못했다.

영세한 업체들은 중국과의 경쟁에 밀리거나 가파른 임금 상승의 여파로 회사 자체의 규모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결국 지금의 이 노동자들이 정년을 맞이하게 되면 자연스레 사라질 사양산업이라는 걸 사장과 직원들 모두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산재를 추방하기 위해 우리 모두 노력하지만, 허탈하게도 글로벌한 세계 자본의 흐름에 따라 직업병을 유발하는 산업들이 구조조정의 흐름 속에 재편되거나 사라져가는 경우도 많다.

4차 산업혁명이 화두지만 우리 주변에는 아직 옛날 '공장'들이 남아있고 여전히 힘들고 위험한 일을 예전과 다름없이 묵묵히 해 나가는 노동자들이 있다는 것도 기록해본다.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실질적인 노동안전보건활동이 되기 위하여 필요한 것들 / 2019.04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실질적인 노동안전보건활동이 되기 위하여 필요한 것들

-서울교통공사노조 한창운 노동안전국장 인터뷰

 

 

 

 

지안 / 상임활동가 

 

 

 

 

지난 3월 19일 한창운 노안국장과의 인터뷰를 위해 노조가 있는 차량기지를 방문했다. 이날의 인터뷰는 매우 다채로웠다. 노안활동가와 조직들의 연대 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부터 노안활동이 법적인 경계를 아울러야 한다는 의견, 그리고 미조직, 영세사업장의 노안문제를 위해 상위 노조들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여러 가지 층위에서 노안 활동가로서의 고민을 들을 수 있었다.

-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 노동안전보건국장 한창운입니다. 현장에서는 기술파트의 신호를 담당하고 있어요. 지난 2017년 5월 서울지하철이 통합되었는데요. 노조의 통합은 18년 2월 14일에 있었습니다. 통합 전에는 1~4호선의 노동안전부장을 했었습니다. 줄곧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해온 셈입니다."

- 기술파트 신호 담당이란 어떤 업무인가요?


"자동차도 신호가 있잖아요. 열차는 자동신호이긴 한데, 그게 그냥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역, 열차, 그리고 양자를 이어주는 총 세 가지의 설비가 있어요. 신호설비가 자동으로도 되지만 안전 간격을 유지하면서 열차가 오갈 수 있도록 조정하는 일입니다. 쉽게 생각하면 예전에는 손으로 깃발을 들어 신호를 보내는 일이었죠. 사람 힘으로 선로를 바꾸던 업무가 요새는 프로그램화가 되어 전자적으로 움직입니다. 즉 여러 열차가 신호를 토대로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역할입니다."

 

- 어떻게 노조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노안활동을 하게 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지회장도 하고, 대의원 현장 간부도 하다가, 선배 활동가의 권유로 근골격계 실행위원을 1년 정도 하게 되었어요. 그 후에는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하 명산관) 활동했습니다. 서울교통공사에는 직종별로 명산관이 있어요. 저는 기술 파트이니 기술 담당 명산관 활동을 했습니다. 2016년도부터 서울지하철 1~4호선 노안부장을 하게 되어 현재의 활동까지 이어지게 되었어요."

- 근골 실행위를 통해서는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2004년에 처음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를 했어요. 근골 사업 이후에 근골 예방 활동을 해야 한다고 요구해서 사측과 합의해 '근골 예방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그 안에는 근골 실행위원이 월 16시간 활동해야 한다, 등의 조항이 있었어요. 이 조항에 따라서 유해요인조사에 따른 실행이 잘 되고 있는지, 조사 결과에 따른 단기, 중기, 장기 계획들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현장 점검을 하는 거죠. 노동조합 주도로 이루어졌지만, 사용자 측도 불러서 함께 입회 합니다. 이러한 활동이 근골격계 실행위원의 담당입니다.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는 법적으로는 3년에 한 번 씩 조사를 하게 되어있어요. 그렇지만 조사를 한다는 것이 활동의 전부는 아니라는 점이 중요해요. 만약에 노조 집행부가 사용자 측과 친화적인 어용노조라면, 사용자 측과 자체 조사를 하는 방식으로 상당히 형식적인 조사가 이루어질 때가 있죠. 그래서 조사를 한다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입니다. 시간과 돈이 많이 들더라도 좋은 기관에 의뢰해서 제대로 된 조사를 하는 것이 이상적이겠죠.

보통은 노조, 사용자 측, 연구용역 기관 세 주체가 같이 90일에서 150일 정도 조사를 합니다. 2020년에는 모든 호선을 통합해서 진행하려고 해요. 조사한 지 3년이 안 된 셈이지만 통합이라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2년만인 내년도에 조사를 실행할 예정입니다."
 

- 최근에 무인운전 테스트를 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장기적으로는 무인운전을 통해 인력을 감축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은데요. 1인승무제와 비슷한 맥락에서 대응이 필요한 일일 것 같아요.


"무인운전은 사용자 측에서 지속적으로 시도를 해왔던 사업 이에요. 먼저 무인운전은 안전문제와 직결됩니다. 열차가 안전하지 않다면, 노동자뿐만 아니라 탑승한 승객들 전부가 위험에 노출됩니다. 그런 점에서 무인운전 시스템이 정말 100%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무인운전은 검증되지 않은 시스템이라는 것이 노조의 입장입니다.

인력감축 문제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무인운전뿐만 아니라 1인 승무제 자체의 문제가 있습니다. 차장과 승무원, 이렇게 2인제로 운영되던 것이 두 가지 역할을 1명이 맡게 되면서 업무가 과중해지기 때문에 안전에도 당연히 구멍이 뚫립니다. 예를 들어 2002년 대구지하철 참사도 1인 승무제를 도입한 후 발생한 사고라고 봅니다. 여러 가지 기록에도 나와 있지만 2인 승무만 되었어도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을 거예요. 노조의 기조는 2인 1조가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는 것입니다.

현재 서울 지하철 1~4호선은 2인 승무제이고 5~8호선은 1인 승무제입니다. 물론 1~4호선이 10량으로 5~8호선보다 2량이 더 많은 것도 있지만 5~8호선은 나중에 만들어진 호선이니 자동 운전 시스템이 되어있어요. 여기서 사용자 측은 자동운전도 아니고 무인으로 운영을 하고 싶은 거죠. 작년에 노조가 싸워서 무인운전 도입은 안하는 것으로 일단락이 되었습니다. 그 뒤로는 서울시, 서울교통공사, 노조가 무인운전시스템에 대해서 사회적 논의를 하기 위해 공청회를 열자고 한 상황입니다."

-산보위 활동을 오래 해오셨는데, 새로 산보위 구성하려는 사업장에 조언을 해준다면요?


"당연히 처음부터 모든 걸 잘할 수는 없을 거예요. 분기마다 실행해야 하는 사업들이 있고, 그것과 별도로 해당 시기에 현장에서 이슈가 되는 문제들이 있을 거예요. 그래서 산보위 활동이란 항상 전략·전술이 필요한 일이거든요. 가장 중요한 건 산보위 활동을 잘 하고 있는 노조를 방문해서 직접 참관을 해보는 거라고 조언해드리고 싶어요. 최근 산보위를 구성하게 된 학교 비정규직의 경우에는 너무 도움을 주고 싶어요.

사실 학교뿐만 아니라 조리원들의 작업환경이나 처우가 굉장히 심각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근골 사업만 제대로 해도 환경 개선부터 시작해서 인원충원까지 충분히 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다른 곳들 역시 직종과 개별 사업장의 상황에 따라서 그 특성이 있으니 산보위 구성은 정말 절실한 문제일 거예요. 관련해서 자문이나 도움 요청이 온다면 언제든지 가능한 만큼이라도 돕고 싶습니다. 두 번째로는 조사를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되, 그 이후의 어떤 예방책들을 만들 것인지, 어떤 방법으로 관리·감독할 것인지를 잘 생각해야 합니다."

한창운 활동가가 인터뷰 내내 강조했던 것은 어떤 사업이든 얼마든지 형식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라는 것이었다. 노안활동은 노조가 사업과 활동에 얼만큼 개입하고 주체적으로 질문하고 문제제기하는지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산안법은 현장에서의 웬만한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채널로써 중요하다고 봅니다. 특히나 사업장의 모든 안전은 산보위에 달려있다고 봐야죠. 물론 산보위 역시 매우 형식적으로 진행될 수도 있어요. 법에 아무리 보장되어있더라도 형식적으로 하려면 얼마든지 형식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그런 점에서 노조의 의지가 확고하지 않으면 산보위가 있다는 것도 큰 의미가 없어요. 의결 사항들도 법적으로, 형식적으로만 넘어갈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어쩌면 있는 사업을 제대로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법에 나와 있는 것만 제대로 하려고 해도 쉽지가 않아요. 예를 들어 근골 조사만 하려고 해도 활동가 조직이라든지, 교육이라든지, 부수적인 활동과 사업이 필요해요. 특히 노안 사업을 할 때 현장에서는 귀찮아하는 것도 있긴 있어요. 이럴 경우에 충분히 사업을 설명하고 동의를 얻어내야 해요. 그런 과정이 없으면 또 '왜 하냐, 해봤자 바뀌지도 않는데'라는 의견들도 생겨요. 이런 의견은 노조가 설득해서 돌려야 할 우리의 몫이죠."

- 말씀하신대로 실질적으로 노안활동이 현장에서 의미가 있으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의지가 있고 마음이 있는 활동가들이 중요합니다. 경험도 있어야 하고요. 경험과 더불어서 공부를 많이 해야 해요. 지금은 예전 같지 않게 사용자 측도 안전관리자나 전문가들이 많아요. 그래서 법리싸움이 치열합니다. 거기서 이기지 못하면 아무것도 못해요. 아까 말한 것처럼 한 50%만 진행해놓고 이건 사업 진행한 거다, 라고 사측이 주장하기도 해요. 그럴 때는 노조가 나서서 싸워야겠죠. 그래서 공부와 투쟁이 동시에 필요한 일입니다. 지식적으로 우위에 있는 상태에서 투쟁해야 승산이 있을 거예요.

두 번째로는 어떤 법 조항에 근거해서나 어떤 담론의 결과물을 넘어서, 그 해당 사업장의 직접적인 활동을 통해서 사업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안활동이 당연히 법을 넘어서는 지점도 있어야겠지만, 일차적으로는 법적 지식도 갖추면서 각 사업장에 맞는 활동을 통해 개선을 해야 한다고 봐요."

- 노안활동가로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노안활동가끼리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노조, 노안 단체, 노안 활동가, 기관 등이 정보도 교류하고 연대하는 것이 있어야 해요. 힘든 사업장이 있으면 가서 도와주기도 하고 고민도 나누고 해야 서로 발전이 생겨요. 뛰어나게 잘하는 사업장이 있거든요. 그런 사업장에서 처음 노안활동 시작하는 곳이나 힘든 사업장에 가서 도와주고 조언만 해줘도 엄청나게 도움이 될 거라고 봅니다.

노동안전보건 영역은 활동가가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한도 끝도 없이 할 수 있는 분야예요. 그만큼 할 게 많다는 얘기기도 하고 가능성이 많은 영역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현재도 네트워크가 없는 건 아니지만, 활동가 개인의 인적 네트워크 범위를 넘어서서 좀 더 높은 차원에서 일상적으로 교류하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담당 기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노동안전문제는 노사가 없는 문제라고 흔히 말하는데, 실제로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특히 영세사업장 같은 경우에 당연히 노조가 없을 확률이 높고 작업 환경도 더 열악할 겁니다. 그런데 그런 사업장에서 열악한 노안 문제를 제기하려면, 다시 그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주체인 노조가 없다는 모순이 있어요. 저는 이 문제를 더 상위 조직, 더 체계 잡힌 노조가 있는 단위에서 나서서 같이 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노안활동가로서 가장 주요하게 고민하는 지점이고 그 문제를 계속 제기하고 싶습니다."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안전하게 아이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싶은 "과학실 포뇨의 꿈" / 2019.04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안전하게 아이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싶은 "과학실 포뇨의 꿈"

 

 

 

경희 / 선전위원

 

 

 

 

초행길 운전의 걱정은 포뇨(<벼랑 위의 포뇨>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캐릭터 이름)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봄바람에 넘실대는 오이도 앞바다에 싹 날려버리고, 이은영 선생님과 윤승섭 선생님을 지난 3월 21일 퇴근 후 오이도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초·중·고등학교에 과학실험수업을 위해 과학실무사가 있다는 사실을 나만 몰랐나 싶다. 일을 하게 된 계기가 듣고 싶었다.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 관심이 많았는데 학교 과학실에서 일하는 과학실무사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대학 다닐 때 생물을 전공했고, 1995년 졸업 후 전북정읍 초등학교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아무도 과학실이 위험한 곳이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는데 위험한 약품들이 너무 많았어요. 희석해서 써야 하는 황산, 염산 같은 원액이 밀폐장이 아닌 나무장에 놓여 있었어요."

 

아이를 가르칠 수 있다는 부품 꿈을 안고 출근한 첫날, 아무런 설명 없이 유해물질과 맞닥뜨리다니 당황했을듯한데 그보다 그녀를 놀라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수업에 동참하고 함께한다는 기대를 안고 갔는데, 그야말로 보조 역할만 하는 거였어요. 교장, 교감선생님 같은 관리자로부터 허드렛일이나 하는 시녀나 몸종처럼 대하는데서 인격적인 모멸감을 느꼈어요. 수업하기 전에 아이들에게 실험에 대해 설명을 해 준 적이 있었는데, 선생님이 '네가 뭔데 교권을 침해하느냐'고 해서 위험한 실험이 아닐 때는 수업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어요."

그러나 안전에 대한 대처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과학실험을 지도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이은영, 윤승섭 선생님은 지적한다.

"과학실험 시 과학실무사가 보조 선생님으로 함께하는 것이 아이들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필수교구 실험자재 92종, 권장교구까지 하면 200~300종, 거기에 소모품, 약품까지 1000종이 넘는데, 종종 위험한 일이 발생해요. 비커에 물을 넣고 그 안에 알코올이 든 작은 비커에 이파리를 넣고 엽록소를 빼는 실험을 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비커가 엎어져서 알코올이 쏟아지고 불이 번진 거예요.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니까 알코올에 불이 붙었을 때 물을 뿌리면 더 번진다는 사실을 몰랐던 교사가 물을 뿌려서 눈썹이 탄 아이들도 있었어요."

일당제에서 무기한 비정규직 교육청 소속 무기계약직이 되다

아이들 교육에 이바지한다는 자부심으로 힘든 나날을 버텨왔다는 그녀는 9대 1의 경쟁률을 뚫고 2008년 오이도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과학실무사를 하게 되었다.

"전에는 학교장에 채용해서 나온 일수만큼 세어서 월급을 주는 일당제였어요. 2007년 이후 '2년을 근무하면 무기계약직이 된다'는 법이 적용돼서 현재는 교육청 소속 무기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어요.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닌 무기계약직이요. 풀어 얘기하면 무기한 비정규직이죠. 과학실무사는 교사들이 과학실험 수업을 위해서는 사전실험, 실험자재 구입, 실험도구 정리, 약품구입 등을 위해 과학실무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여 생겼고, 이 직업이 등장한 지는 30년이 되어가요. 전문적인 준비와 지식이 필요한데도, 관리자나 교사는 아무나 해도 되는 쉽고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과학실무사는 주 업무에 버금가는 행정업무가 많았다.

"출근하면 과학실험 신청서를 보고, 각 학년별 반별로 다른 수업내용에 맞춰서 바구니마다 실험준비에 필요한 것들을 채워 넣어두죠. 수업진행 중일 때는 행정업무를 해요. 컴퓨터, 프린터기, TV 등 기자재가 고장 나면 수리기사님과 연결하는 문제나 프린터기 잉크가 떨어지면 품의하고, 정보화 기자재 허브 등에 대한 품의와 구입을 해요. 학교운영위원회 선출, 회의주관, 학부모 소통에 대한 업무, 학교 홈페이지 운영을 하고 있어요.

학교운영위준비, 홈페이지 관리, 기자재유지보수 등의 업무는 대부분 3월에 집중돼서 너무 힘들어요. 아이들의 안전을 확보하고 실질적인 과학수업이 되려면 과학실무사에게 본연의 업무를 주고 역할 분장이 돼야 해요. 다른 행정업무를 하다보면 과학실험을 준비할 시간이 없어요."

과학실무사에게 행정업무가 많게 된 것은 2012년도에 행정실무사제도가 생기면서라고 한다. 노동자가 일하다 다치거나 질병에 걸려서 그만두는 경우가 없어야 하는데, 이런 일은 일어났다.

"교육청에서 과학실무사 처우를 개선해주면서 행정업무를 몇 개 받으라고 했어요. 그래서 업무 폭탄을 맞은 거예요. 충북에서 과학실무사가 학교 내 나무에 목을 메달아 사망하는 일이 있었어요. 일이 너무 많아 힘들어서 쉬려고 했는데 병가제도를 잘 몰라서 사직서를 낸 거예요. 직후에 병가를 일주일보다 더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취소하려 했으나 학교에서 들어주지 않은 거죠.

온몸을 다 바쳐 일하다 병까지 얻었는데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거예요. 2013년도에는 과학실무사가 부가적인 업무를 하던 와중에 과학실 전체가 전소되는 일이 있었어요. 예전에는 교사들이 나누어서 했었는데, 지금은 교무실, 행정실, 과학실에 1명씩 있는 실무사가 다 해야 해요."
 

 

고무장갑 낄 틈도 없이 설거지하느라 지워진 지문

과학실무 중에는 실험자재에 의한 사고나 유해물질로 인한 노출사고 등이 여느 공장 못지않게 위험이 높은 수준으로 보였다. 10년 이상 주부습진이 없던 적이 없다며 보여준 그녀의 엄지와 검지는 지문이 거의 지워진 상태였다.

"6학년 실험 중 '산소·이산화탄소 발생실험'이 있어요. 삼각 플라스크에 고무마개를 끼우고 고무마개 안에 유리관을 집어넣는 실험이에요. 시간이 없다 보니 빨리빨리 세팅을 해야 하는데, 유리관을 고무관에 끼우는 과정에서 유리관이 파손되면서 손바닥이 찢어졌다는 사람들이 셋 중 한 명꼴이에요.

포르말린 병에 개구리, 뱀 등을 담아놓은 표본이 깨져 제가 기간제 교사를 피신시키고 치우는 과정에서 호흡곤란으로 쓰러져 119에 실려 갔던 적도 있죠. 그 후로 저는 장에 궤양성 염증이 생겼어요. 부천의 한 선생님은 시력이 점점 퇴화되는 질환에 걸리셨는데, 염산 증기에 노출이 된 것 같지만, 그것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아서 모두 개인적으로 치료를 받고 있죠."

화학물질은 예전에 엄청 많았지만 현재 초등에서는 13종정도 남았다고 한다. 올해도 묽은 염산 대신 진한 식초로 대체되었지만, 중·고등학교는 아직 100종이 넘고 과학영재고등학교는 훨씬 많다고 한다.

"약품냄새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세요. 밀폐시약장이 있어도 냄새가 새어나와요. 그래서 일하는 곳과 떨어진 곳에 약품장을 두는 게 필요하죠. 물질안전보건자료(MSDS)가 있긴 한데 그것으로 인해 안전을 위한 조치가 취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와 관련한 행정업무만 많아지는 것 같아요.

노동부에서 조사를 나온 적이 있는데 물질안전보건자료가 비치되지 않은 경우 교장과 과학실무사에게도 과태료를 내게 하더군요. MSDS가 뭔지도 몰랐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는데 말이죠. 또 보호장구가 있어도 착용할 새도 없고, 지급되지 않는 곳도 있어요. 의무적으로 지급해야 하는 규정이 없잖아요. 그래서 급식실에도 적용되는 산업안전보건법이 과학실에는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급식실 못지않게 알코올램프에 의한 화상, 베임, 절단 같은 사고도 자주 발생해요.

특수검진을 하려 할 때 5만 원이면 되는데, 타학교의 경우 근거가 없다고 교장선생님이 못하게 하면서 학기말에는 몇 천만 원이 남아서 교장실 소파를 교체하거나 행정실 천공기를 구입하는 기이한 일들이 벌어져요. 정말 필요한 건강이나 안전에는 인색하면서 말이죠."

 


내가 나를 버리면 남도 나를 버린다

이은영 선생님은 교육공무직 노동조합 경기지부 과학실무사분과 부분과장을 맡고 있고, 윤승섭 선생님은 과학실무사분과장을 맡고 있다.

"무기계약직이 되기 전에 교장선생님이 출장을 가면 과학수업동안 하는 일 없다고, 제 차를 타고 가세요. 차 안에서 '내년에도 재계약하고 싶지?' 하면서 자기 말을 잘 들어야 재계약 할 수 있다고 했어요. 당시 재계약은 목숨 줄과도 같은 거였어요. 그래서 부당하고 억울하고 분해서 노동조합에 가입했어요.

가족여행으로 연차를 쓰려고 했는데 하루 전이라고 연가승인을 못 해주겠다고 하더군요. 도교육청에 민원 올리고, 노동조합에도 알렸어요. 다음날 교장선생님이 저를 투명인간 취급했어요, 더 힘들어졌다고 다시 도교육청에 민원을 넣었더니, 교장선생님 태도가 확 바뀌었어요.

하라는 대로 다 하면 인간취급도 못 받지만, 강하게 당당하게 나가면 함부로 못한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어요. 2015년에는 파업이라는 걸 나가봤고,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도 약품장을 앉은 자리와 분리되게 설치하는 것을 요구해서 관철시켰어요. 제 몸은 제가 지켜야겠더라고요."

평소 만들기를 좋아해서 과학실 일이 적성에 잘 맞다는 윤승섭 선생님은 분과대표의 일 년간 끈질긴 전화로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엄지와 검지 사이에도 깊은 상흔이 있었다.

"과학실무사의 99%가 여선생님이어서인지, 자신을 너무 아끼지 않는 것 같아요. 내가 나를 버리면, 남도 나를 버리는 거예요. 참고 인내하는 것이 해법은 아니라는 것을 빨리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건강과 안전을 먼저 지키는 것이 모든 일의 기본이고, 그런 측면에서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에 과학실무사가 꼭 적용되었으면 해요."

불가능할 것 같았던 물고기 소녀 포뇨의 '인간이 되고자 하는 꿈'이 이루어지듯, 아이들의 실질적인 과학실험을 위해 필요한 과학실무사의 무기한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도 언젠가는 정규직이 되는 날을 고대한다.

[현장의 목소리] 반복되는 중대재해, 악순환의 고리 끊어내야 / 2019.04

[현장의 목소리] 

 

 

 

 

반복되는 중대재해, 악순환의 고리 끊어내야 

 

 

 

 

박기형 / 상임활동가 

 

 

 

 

지난 3월 13일 오전에 한화 대전공장 폭발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노동자 세 분의 합동 영결식이 열렸다. 사고 발생 28일 만이었다. 진상조사와 재발 방지를 위한 합의문을 받고 나서야 장례를 치르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 어려웠을 한 달여의 시간 동안 장례식장을 지키며 유가족들과 연대해온 민주노총 대전지역본부 오임술 노동안전국장을 지난 3월 15일 대전에서 직접 만나 한화 대전공장 폭발사고 이후 대응 과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 한화 대전공장 폭발사고에 어떻게 연대하게 되셨나요?


"장례식장을 먼저 찾아가 유가족들을 뵈었죠. 물론 사고가 발생했을 당시부터 체계적으로 결합하지는 못했어요. 아무래도 한화 대전공장은 한국노총 사업장이고 돌아가신 분 중 한국노총 조합원도 계셨으니까요. 민주노총대전지역본부에서 이번 중대재해 사망사고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고심이 많았죠.

그렇지만 이번 사고에 결합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하고 지역본부 차원에서 대응하게 되었죠. 그때 다른 시민사회단체들 또한 함께 해주었고, 이후 방사청 항의 방문이나 국회 투쟁에 정의당 대전시당에서도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대전지역본부뿐만 아니라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이 연대하여 지원하게 되었어요. 저는 장례식장에 자주 거하며, 정의당 대전시당 대변인과 함께 유가족들에게 대응 과정에 필요한 조언을 드렸죠. 

그때 유가족들이 고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 김미숙님의 투쟁을 보고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주셨어요. 사고 발생 직후인 2월 15일에 청와대 게시판에 '한화 대전공장 폭발 진상규명' 국민청원을 올리셨죠. 유가족들이 크게 분노하신 건 작년에 발생했던 사고 이후로 9개월 동안 진상조사,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조치 등 하나도 제대로 이뤄진 게 없었다는 사실 때문이에요.

 

국민청원이 진행될 때쯤 저 혼자서라도 연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장례식장에 찾아가게 되었죠. 유가족들께서 많이 질타하셨어요. 지역에서는 도대체 뭐 하고 있었냐고. 그 말을 듣고 나니 참 마음이 무거웠어요. 물론 대책위원회가 꾸려지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곁에서 뭐라도 함께 하며 힘을 보태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때 유가족들이 세종시, 한화, 방사청, 노동청 등으로의 항의 방문 및 지역 내 현수막 게시 등 연대를 요청했고, 지역활동가들과 함께 곁에서 도움 드리게 되었어요."


- 작년에 있었던 사망사고에 대해 좀 더 얘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우선 지난 2월에 있었던 사망사고는 70동 공장에서 벌어진 것이에요. 로켓 추진체와 코어를 분리하고 유압실린더를 연결하는 이형작업을 하다 폭발이 발생해서 20~30대 청년노동자 세 분이 돌아가셨죠. 같은 사업장인 한화 대전공장에서 작년에도 비슷한 사망사고가 있었어요. 2018년 5월 29일 51동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다섯 분이 중대재해로 사망했죠.

사고가 발생한 이후 노동청에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했고, 처벌 126건, 과태료 2억 6156만원(322건), 시정지시 31건, 권고 7건 등 총 486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행위를 적발했어요. 그리고 한화 측에서도 안전대책을 시행한다는 명목으로 공정위험평가서 또는 위험요인발굴서를 작성하기로 했었죠. 그때 노동자들이 참여해서 70개 동에서 135건의 위험요인을 발굴했다고 해요.

하지만 어떠한 개선 조치나 재발방지 대책이 취해지지 않았어요. 2018년 5월 발생했던 사고의 원인에 대해서도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고요. 안타까운 건 당시 위험요인발굴서를 작성했던 분 중의 한 분이 이번 폭발사고로 돌아가신 거예요. 유가족들이 분노하신 것도 그때 제대로 조사, 처벌, 개선이 이뤄졌으면, 이런 일이 반복되었겠냐는 거죠. 더구나 최신식 첨단무기인 천무를 생산하는 공장의 작업환경이 다른 일반 공장들보다도 더 열악하다는 것에 충격을 많이 받으셨다고 해요."
       
- 비록 대책위가 꾸려지지 않았지만, 유가족들과 함께 대응해오셨잖아요. 지역 차원에서는 어떤 활동들을 진행하셨나요?


"대책위가 구성되어서 그 일원으로 참여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활동하기엔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렇지만 진상규명, 재발방지 차원에서 유가족들과 공감대가 형성되었죠. 결국 한화 대전공장에서 반복되는 중대재해를 해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할 수 있는 선에서 도움을 드리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과 같은 법률적 자문이나 현수막과 성명서 등의 내용 수정 및 게시, 항의 방문 시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의 연대요청 등을 계속했죠. 특히 한화 및 유관기관들과 유가족들이 합의하는 과정에서 작업중지해제심의위원회에 노동자 참여권을 보장받기 위한 조항을 넣을 수 있도록 유가족들과 여러 차례 소통했어요."

- 3월 4일 대전시, 대전고용노동청, 대전소방본부, 방위사업청 등이 참여하고 더불어민주당이 주재한 '한화 중대재해 관계기관 회의'에서 유가족들의 요구사항이 담긴 합의문이 받아들여졌잖아요. 여기서 어떤 내용을 강조해야 한다고 조언하셨나요?


"노동자들의 위험은 작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가장 잘 알잖아요. 그래서 노동자들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죠.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가 추천하는 외부 전문가가 작업중지해제심의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조언했어요. 유가족분들 또한 외부에서의 개입과 견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셔서, 외부 전문가 참여 보장 내용이 합의문에 반영되었어요. 폭발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선 화약만이 아니라 작업공정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죠. 그래서 앞으로 해당 합의문에 근거해서 외부 전문가 선정 과정에서 다양한 인원을 추천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겠죠. 

이와 함께 연 1회 위험환경평가를 시행하기로 합의도 했어요. 여기에 방사청, 노동청, 대전소방본부, 대전시와 대전소방본부가 추천한 전문가 외에 조합원 투표로 선출된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 참여하지요. 그리고 작업 중지 및 해제, 위험환경 평가를 실시할 때, 위험요인발굴서를 심의위원들이나 조사단에게 공유하기로 했잖아요. 이 정도에 만족할 수는 없겠지만, 이전에 비해 노동자들의 참여 측면에서는 진전된 부분이 있다고 봐요."

- 방산업체가 갖는 특수성 때문에 노동자에 대해 기밀엄수, 보안유지 등을 이유로 통제가 어느 정도 가해진다고 알고 있는데, 노동자 참여 측면의 진전은 어떤 내용인가요?


"위험요인발굴서의 공개 및 공유, 합동조사단에 의한 위험환경평가를 약속이 의미 있는 이유는 노동자 참여가 일정 수준이나마 보장받았다는 것뿐만 아니라 한화 대전공장의 특수성 때문이기도 해요. 한화 대전공장은 군사무기를 만드는 방산업체예요. 그래서 국방부와 방사청이 모두 연관되어 있어요. 기밀유지, 보안 등의 이유 때문에 외부에서 관리감독하기가 어려운 특성이 있는 거죠. 더구나 발주처가 국방부인데다, 거의 방산업을 특정 기업들이 독점하다시피하기 때문에 패널티를 가하기가 여러모로 어렵죠.

그리고 해당 사업장에 적용되는 안전관련 법제도도 방위사업법, 산업안전보건법 둘 다 적용을 받아요. 그래서 사업장 안전문제에 대해 어디까지가 노동청이나 방사청의 책임인지 명확하지 않아요. 서로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떠넘길뿐이죠. 이런 식으로 방산업체 사업장이 지닌 특수성 때문에 안전보건관리가 제대로 되기 어려운 한계가 있어서 감독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죠.

그만큼 안전보건 관련 정보가 보안 문제를 이유로 은폐되지 않고 노동자와 조사단에게 공개하는 것도 중요해요. 노동자 자신이 어떤 위험에 노출되는지 알면, 대응하거나 관련된 요구를 할 수 있으니까요. 작업장의 정보가 공개된다 하더라도 일상적인 안전보건 활동 같은 작업장 분위기가 중요해요. 작업장 내에서 노동조합 활동이 활발해져야, 합의문의 내용이 작업장에서 진짜로 실현되고, 안전한 작업장을 노동자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현장 통제력을 가질 수 있다고 봐요.

- 대전 한화공장 폭발사고의 원인에 대한 진상조사가 진행되고 있잖아요. 이형 작업에 대한 실험 조사로 물리적 요인 또는 작업장 내 위험이 밝혀진다고 해도, 그걸 제거 또는 관리하기 위해 작업장 안팎에서 유가족들 또는 연대단체 및 활동가들과 고민을 나눈 적이 있으신가요?


"유가족 중 몇 분은 한화와 관계기관들이 처벌받지 않는 것에 많이 답답해하고 화도 내셨어요. 사업장에 대한 관리 감독의 책임을 그들에게 물을 수 없는 상황에 실망하신 거죠. 그래도 대응 과정에서 저나 다른 분을 통해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에 대해 알게 되셨죠.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의 취지와 내용에 크게 공감하시더라고요.

또한, 노동조합이 사업장의 안건보건문제에 대해 대처하는 방법도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어요.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노동안전보건활동에 대한 인식이 낮은 곳이 많아요. 대개 당장 위험하지 않고, 내가 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유로 안전보건문제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요. 하지만 정말 산재사망사고가 없었을지, 정말 위험하지 않은 것인지 의문이 들어요.

자신들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죠. 더욱이 노동안전보건활동은 임금과 각종 수당 등 다른 문제들에 비해 부차적인 것으로 자주 밀려나죠. 특히 단체협상이 시작되면, 협상 테이블에서 노동안전보건문제는 거래를 위한 수단, 흥정의 대상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보니 지속적이고 확실하게 안전보건과 관련한 활동을 해내기가 어렵죠.

작업장 내 어려움도 있지만, 중대재해의 경우 지역 차원에서 연대해서 경험을 나누고 함께 대응하는 것이 중요해요. 이를 위해 중대재해에 대처하는 매뉴얼을 고민할 필요가 있어요. 그런데 매뉴얼을 포함한 대응활동이 가능한 조직 단위가 없어요. 예를 들어, 한화 대전공장 폭발사고 발생 시, 대전충청권 내에서 공동대응을 할 수 있는 조직 단위가 필요한 거죠. 이를 위해서 공장 담을 넘어선 지역 내 역량 있는 네트워크가 구축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특집1. 산재 유가족, 그들의 못다한 이야기 / 2019.04

[특집 산재 유가족 ,슬픔을 안고 연대로 나아가다①]

 

 

 

 

산재 유가족, 그들의 못다 한 이야기 

 

 

 

 

정리 선전위원회

 

 

 

 

하루 5~6명의 노동자가 죽는 나라. 감춰지거나 혹은 밝힐 수 없는 노동자들의 죽음은 훨씬 많을 거라 짐작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신년사에서 안전, 특히 산업재해 예방에 정부가 정책 역량을 집중할 계획임을 거듭 강조했다. 이미 2022년까지 산재사망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하며 자살예방, 교통안전, 산업안전 등 3대 분야를 국민생명 의제로 설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연일 노동자의 사망 소식은 끊이지 않는다. 한 시인은 얘기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하지만 우리 사회는 한 사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다. 그만큼 사회안전망은 허술하고, 노동자의 건강권은 침해당하기 일쑤다.

 

일하다 세상을 떠난 노동자의 이야기는 주목받지 못한다. 더군다나 유가족들의 존재는 더욱 흐려진다. 그러나 여기 자신들의 목소리를 드높여 사회를 바꾸기 위한 행동을 시작한 유가족들이 있다. 지난 3월 17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3명의 유가족과 함께 가슴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부터 최근 유가족 모임을 만들기까지의 경과를 이야기 나눴다.

- 대담 참여 유가족 : 장향미 님(ST유니타스 고 장민순 씨 유가족), 김미숙 님(태안화력 고 김용균 씨 유가족), 김용만 님(군포 토다이 현장실습생 고 김동균 씨 유가족)

  • 진행: 이나래 (상임활동가)
  • 기록: 박기형 (상임활동가) 

 

소개 부탁드립니다.

 

김용만 “제 아들 동균이가 한국 토다이 분당점에서 일하다가 뛰쳐나가서 다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저 혼자 3~4개월 정도 힘들게 싸웠죠. 시민단체도 만나고, 전교조나 민주노총과 힘을 합쳐서 매주 수요일마다 광장에 모여서 집회를 6개월 정도 했어요. 1인 시위도 회사 앞에서 했죠. 1년 10개월가량 진행했습니다. 제대로 진상 규명 되지 못했어요. 사과 한마디 받아본 적도 없어요. 사측과는 협의가 돼서 끝났지만, 과제가 남았죠. 현장실습생 홍수현 양, 이민호 군 등이요. 그때 싸웠을 때 좀 더 강력하게 밀고 나갈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제 아들은 인터넷 쇼핑몰을 전공했어요. 자격증과 특허 5개씩 땄죠. 학교는 실적 때문에 전공이 다른 곳으로 내보냈어요. 회사는 인력을 확보하는 게 중요했겠죠. 실습 전에 학교 선생님과 상담했는데 대기업이라 대우가 좋을 것이라고 했데요. 또 선생님은 교장·교감의 압박을 받기도 했겠죠.”

 

김미숙 “용균이도 학교에서 견학 가면 전공이나 원하는 것과 맞지도 않고 현장 상태가 안전하지 않다고 했는데, 피해서 간 게 태안화력발전소였어요. 교수들은 취업률을 목표로 여기저기 알선해줬죠. 사실 전 안전하지 않다는 걸 느끼지 못하고 살았기 때문에 나보다는 낫겠지 하고 보냈어요. 취업하는 것 때문에 걱정도 되고, 그런 상태에서 애가 어쩔 수 없이 일하는 상태가 됐죠. 동료들도 위험 취업하더라도 취업 하기 힘드니깐 여기서 버티다 경력 쌓아 이직해야지 생각했을 텐데 결국 다치게 되죠. 30대가 없고 아주 많거나 어리거나, 비슷한 또래들 많았다고 했어요. 자기가 위험한지 모르고 일하는 경우가 태반이었죠. 그냥 여기는 당연히 그렇게 일하는 곳인가 보다 생각했던 거예요.”

 

장향미 “동생은 웹디자이너였어요, 공단기, 영단기 등 상품 이름으로 많이 알려진 회사였어요. 회사에 다닌 지 2년 8개월 정도였고, 웹디자인 경력은 10년 정도 됐죠. 이 업종이 야근을 많이 해요. 그렇기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불만을 얘기할 수 없는 분위기죠. 오전 10시에 출근해서 새벽 3~4시까지 일을 했어요. 5일 중 3일은 야근이었죠. 포괄임금제여서 일한 만큼 제대로 돈도 못 받았어요. 일하면서 건강 상태가 나빠졌어요. 불면증, 스트레스로 밥을 못 먹어서 살이 많이 빠졌죠. 동생이 죽은 게 작년 1월이었는데 2017년도 여름부터 휴직하고 싶다고 신청했더라고요. 그런데 두 번인가 반려가 됐고, 마지막으로 동생이 퇴사를 할 수 밖에 없다고 얘기해서 그때서야 한 달 휴직을 받았어요. 일로 괴롭힘을 당한 거죠. 일을 안 해야 하는데, ‘못 해’라는 말이 안 나왔고 동생 입장에서는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런 상황에서는 시야가 좁아져요. 다른 생각이 나지 않는 거죠. 힘들면 그만두면 되지가 안 되는 거예요.”

 

 

산재 유가족에게 사건 발생 이후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 걸로 예상돼요. 실제 가족의 죽음 이후 가장 어려우셨던 점이 무엇이었나요?

 

장향미 “증거를 확보하기가 어려워요. 입증해야 하는 책임이 유가족들에게 있다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책임은 회사에 있는데 회사가 아니라 유가족이 입증해야 하는 상황인 거죠. 회사가 자료를 다 가지고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뿐이에요. 자료를 요청할 때 우울증이 있었기 때문에 개인의 문제이지 회사랑은 관계없다고 얘기하기까지 했어요.”

 

김용만 “저희도 그랬습니다. 경찰이 우울증이 있는지 의료기록을 확인해오라고 했어요.”

 

김미숙 “여기 회사도 용균이 잘못으로 죽었다고 말했어요. 가지 말라는 곳 갔고 하지 말라는 것 해서 죽은 거라고요. 그런데 회사 동료들은 이상 신호가 발생하면 무조건 고치러 가야 한다고 말했어요. 얘길 듣고 회사 사람들이 용균이 잘못으로 돌리려고 하나보다 판단했죠. 사회 시스템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처음 겪는 일이기 때문에 판단이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직접 일하는 장소도 가봤죠. 현장 상태가 너무 열악했어요. 탈의실부터 모든 경로 다 가봤죠. 회사는 부검 관련해서도 술이나 약물 등 주장을 했어요. 회사가 개인의 문제로 돌리려고 했던 거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기 계신 분들의 경우 대책위원회도 꾸려지고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등이 함께 힘을 모았는데 그 과정에서 어떤 것들이 도움이 되었나요?

김미숙 “힘 있게 갈 수 있었던 점이요. 저 혼자만이 아니라 100개 넘는 단체가 함께 했어요. 사회 전체의 문제, 비정규직과 안전 문제에 대해 발언할 때마다 도와달라고 호소했죠. 사실 한 집 건너 한집이 비정규직이잖아요. 연대할 수 있었기 때문에 힘 있게 할 수 있었어요.”

 

김용만 “혼자서 시작했어요. 여기저기 찾아다녔죠. 가정이나 개인의 잘못이라고 하는데, 증거를 찾아서 입증해야겠구나 싶었어요. 하지만 회사에서 동료들 입단속을 시켰더라고요. 6~7월까지 증거 수집하러 혼자 다녔어요. 언론에 알리려고 했는데 자살 사건이어서 어쩔 수 없다고 기피하더라고요. 조그맣게 대책위가 생기면서 힘을 얻을 수 있었어요. 내가 죽더라도 이거는 해야겠다는 심정이었습니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서 한 사람의 목숨이 아니라 가정과 다른 사람들의 삶이 파괴됐어요.”

 

 

그렇다면 산재 유가족에게 가장 필요한 정부와 사회의 지원은 무엇이라고 보세요?

 

장향미 “산재 신청의 문턱이 높아요. 입증자료 모으는 것부터가 힘들죠. 회사가 순순히 내주지 않거든요. 저희도 법원에 증거보존신청, 판결까지 받아서 받아냈어요. 그런데도 회사가 불성실하게 자료를 줬죠. 법적 강제력이 없어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거죠. 어떻게든 은폐시키려고 해요. 법적 강제력 없는 상황에서 자료를 확보하는 싸움이 불가능합니다. 개인 대 조직의 싸움이기 때문이죠. 대책위와 함께할 수 있어서 가능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유가족이 그렇게 못하기 때문에 포기해요. 그런데 자료를 모아도 문제에요. 추가 자료요청, 진술요청, 자료보관 등, 산재 판결이 날 때까지 죽음을 안고 있어야 해요. 경제적 문제를 떠나서 이게 끝나지 않으면 일상으로 돌아가지를 못해요. 오래 걸리는 산재승인 기간문제도 있죠. 그리고 무엇보다 산재인정 여부나 개인보상 차원의 문제로 여겨지고, 그러다 돈 때문에 저러는 거 아니냐는 유가족에 대한 비난이 가해지기도 해요.”

 

김미숙 “서로가 자책하게 돼요.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는데, 거기만 안 보내면 되었는데, 그만두라고 왜 말하지 못했을까, 했는데도 적극적이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여러 생각이 들어요. 치유는 그냥 되지 않아요. 법 제도가 바뀌고 개선되는 상황을 봐야 치유가 되는 거예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죽은 사람이 헛되이 죽은 게 아니라는 걸 입증해야죠.”

 

김용만 “죽을 때까지는 고통 속에서 가슴 아파하면서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변화 없이는 그런 상황이 반복될 거잖아요. 그걸 지켜보기 힘들어요. 나 혼자보다는 같이 뭉쳐서 해결해나가고 싶어요. 사실 삶 자체도 피폐해졌습니다. 저도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못 자요. 1년 동안 악몽에 시달렸어요.”

 

 

유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다시는 이 같은 사건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어떤 게 필요할까요?

 

장향미 “정부도 문제의식을 점차 가지게 되는 중인 것 같아요. 사실 개인의 문제라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나약한 사람만 있는 걸까요? 사회 구조적 문제죠. 자살자 한 명으로 인해서 영향을 받는 사람은 평균 8명 정도 될 거예요. 그에 따른 여파가 있을 거란 거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케어를 해줘야 해요. 하지만 현재로는 없죠. 지자체에서는 연락을 취하고 매뉴얼을 갖추려고 하는 것 같은데 초반이라 배려 없이 기계적이고 유가족 입장에 와 닿지 않아요.”

 

김미숙 “사람 목숨값이 제일 싼 거로 취급되잖아요. 영국처럼 강력하게 기업을 처벌하는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김용만 “교육부의 개악 안으로 그동안 요구해온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폐지 노력이 물거품이 됐어요. 다시 요구해야 합니다. 사실 공공기관의 정책을 신뢰하기 어려워요. 유가족, 시민단체, 전문가 등의 참여하에 바꿔나가야 해요.”

 

 

장향미 님은 과로사·자살 유가족 모임에 참여하고 계시고, 다른 두 분도 얼마 전 출범한 산업재해, 현장실습 유가족 모임에 함께 하고 계시는데요.

 

장향미 “일본 과로사, 과로자살 모임에 참여했던 연구자분이 주도해서 유가족들과 연락이 닿게 되어 모임이 결성됐어요. 우리 사회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회사와 어떻게 싸워나가야 하는지 배워나가 다른 가족들은 시행착오를 안 겪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유가족 가이드라인을 만들 계획이에요. 일련의 절차와 노하우, 쟁점 등을 다룰 생각입니다. 누구도 내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누구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죠. 일본은 유가족 모임이 지속되면서 과로사 방지법까지 만들어 냈어요. 향후엔 이를 한국에서도 실현해보고 싶은 바람이에요.”

 

김미숙 “힘을 모아서 싸워나가야 해요. 법제도를 개선해나가는 것조차 유가족들이 나서지 않고서는 못해요. 다른 사람들은 자기들한테 닥치지 않을 것이라 자기 문제가 아닐 것이라 생각하기 쉬워요. 유가족들이 뭉친다면 사회적 목소리도 커질 거라 생각해요.”

 

김용만 “들불처럼 번질 거라 생각합니다. 여러 산재사망 유가족 모임이 서로 연대하지 않으면 사회를 바꾸기 쉽지 않을 거예요.”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에 전해졌으면 하는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미숙 “인식의 변화, 법제도 변화, 노동과 안전에 대한 생각이 전환되어야 해요. 사회가 안전하게 상생하여 삶이 윤택해지려면 우리가 나서야 해요. 의지가 있다고 하지만 기득권 세력의 저항도 있고, 기업이나 정치인들은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하잖아요.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예요.”

 

장향미 “정부도 기업도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해서 경제가 안 좋아진다고 하는데요. 그런 논리면 소위 선진국들은 다 경제위기에 처해야겠죠. 탄력근로제를 확대하려고 하는 건 기업의 입장을 반영하는 거예요. 출산율이 낮아져서 위기라고 하는데 안전하지 않은 나라에서 누가 아이를 낳고 싶겠어요. 자살률, 산재사망률 높은 이유가 뭔가요. 해결 방법을 1차원적으로 접근하면 안 돼요.”

 

김용만 “현실을 바꾸기 위해선 유가족들이 가만히 있으면 안 돼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싸워나간 것처럼 같이 일어설 수 있어야 해요. 생업에 쫓기다 보니 힘들겠지만, 당사자들이 힘들더라도 서로 다독여주며, 서로 연락을 해서 뭉치고 연대를 해서 강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정부-노동자-기업이 상생해서 살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도록 노력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