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4. 일터괴롭힘 없는 일터를 위한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과제 / 2019.07

[일터괴롭힘 없는 평등한 일터 만들기④] 

 

 

일터괴롭힘 없는 일터를 위한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과제

 

 

최민 / 상임활동가 

 

 

오는 7월 16일부터 일터괴롭힘 예방을 위한 조항이 포함된 근로기준법이 시행된다. 이 날부터는 취업규칙에도 일터괴롭힘 예방을 위한 조치가 포함돼야 한다. 일터괴롭힘이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한국사회에서 회자된 것이 몇 년 되지 않았다
는 점을 고려하면 큰 진전이지만, 누구나 ‘일터괴롭힘’ 문제가 법이 도입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없으리라는 점을 잘 알 것이다. 괴롭힘이 없는 일터를 넘어, 노동자가 존중받는 일터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것은 직장 내 괴롭힘인가요?


일터괴롭힘과 관련된 교육에서 ‘반말하는 것은 직장 내 괴롭힘인가요? 일을 정말 못 하는 사람을 혼내는 것도 문제가 되나요?’와 같은 질문을 흔히 받는다. 직장내성희롱 금지법이 만들어졌을 때도 유사한 상황이었으리라 생각된다. 나도 말이나 행동을 함부로 한 직장 상사가 능글맞게 웃으며 “이것도 성희롱인가?”, “이건 아니지?”라고 던지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다. 중요한 것은 ‘성희롱 목록’에 들어가는 행동만 조심하는 것이 아니다. 내게 익숙한, 성별과 성정체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기반한 여러 말과 행동이 타인을 배제하고 고통스럽게 할 수 있다는 자각과 이에 비추어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는 성찰이다. 일터괴롭힘 문제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특정한 행동이나 행위가 일터 괴롭힘인지 아닌지가 아니다. ‘직장에 갈 때 영혼은 집에 두고 가는 거야,’ ‘이런 직장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먹고 사는 게 먼저지, 지금 자존심 챙길 때냐’ 하는 사회적 통념에 기댄 우리의 무딘 말과 행동이 누군가를 모욕하거나 배제하고, 고통스럽게 할 수 있다는 성찰이다. 나라도 그런 언행을 하지 않겠다는 책임감, 이런 문화를 바꾸어 내겠다는 고민이 중요하다.


당신은 괴롭힘 행위자? 동조자? 방관자?


예전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로부터 ‘선배에게 폭언을 들을 때, 옆에 있던 너도 동조자라고 생각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괴롭힘의 순간에 당하는 사람의 편에 서지 못 했던 것은 나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너무 부끄러운 나머 지, 오히려 ‘내가 직접 나쁜 짓을 한 건 아니잖아’, ‘그래도 나중에 위로해주지 않았나’ 하는 억울한 마음이 먼저 들기도 했다. 하룻밤 뒤척이고 나서야, 뒤늦게 정말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괴롭힘이 눈앞에서 벌어질 때, 그 순간 바로 제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괴롭힘’ 상황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감수성이 필요하다. 괴롭힘 행위자와의 관계에서 불편함이 발생하거나 본인에게도 불똥이 튈 수도 있다는 점을 감수할 용기도 필요하다. 용기와 감수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교육과 훈련, 경험을 통해 기를 수 있다. 일터괴롭힘이 단순한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직장 문화와 직장 내 관계로부터 기인하는 문제라는 점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저 멀리 있는 ‘악독한’ 상사와 ‘불쌍한’ 피해자에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나를 포함한 ‘우리 일터와 직장’의 문제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나 쉽게 동조자나 방관자가 될 수 있다. 그렇지 않도록 일터괴롭힘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고, 일터를 인권의 눈으로 돌아보게 하는 경험을 조합원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노동자를 존중하지 않는 일터에서 누가 이익을 얻나?

물론 나와 우리 스스로의 행동을 돌아보는 것과 함께 이런 살풍경한 직장 분위기로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인지,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은 누구인지 따져보는 것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에 따르면, 회사의 이익을 위한 경영 전략 차원에서 괴롭힘을 당했다는 응답이 22.4%나 됐다. 노동조합 활동이나 노동자들의 모임을 방해하기 위한 괴롭힘을 당해봤다는 답변도 4.6%나 됐다. 개인적 차원의 괴롭힘을 먼저 생각하기 쉽지만, 조직적 괴롭힘 피해도 상당한 수준이다. 직장에서 직장내 괴롭힘이 실적이나 성과 향상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4명 중 한 명은 그렇다고 답했다. 일터괴롭힘 문제가 가해자를 적발해, 처벌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보여준다. 개인간의 괴롭힘이나 갈등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사실은 과도한 업무량이나 비체계적인 조직 내 의사 결정 과정, 비합리적인 평가 체계 등의 조직 문제가 갈등을 격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일터괴롭힘 문제가 발생했을 때, 노동조합이 나서 경영진과 회사 자체의 문제를 드러내고 이런 조직적 수준에서의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도록 해야 한다.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일


일터괴롭힘 문제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목록화 하고, 여기 해당하는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요리조리 몸을 사리는 방식으로 이해되지 않도록 노동조합이 노력해야 한다.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이 일터괴롭힘을 폭넓게 이해하고 직장 내 인권과 관계 문제에 대한 감수성과 용기를 기를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취업규칙이나 직장 내 규정을 만드는 과정에서 도, 신고와 공개적인 조사 및 징계로 이어지는 단선적인 해결법 외에 피해자 혹은 신고자의 의사에 기반한 다양한 방식의 문제 해결 방법도 마련하여, ‘괴롭힘인지 아닌지’에 대한 지루하고 폭력적인 논쟁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대응 규정 혹은 노동인권 존중에 관한 규정을 만들어,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처리 방법과 원칙을 구체적으로 정해둔다. 조사 기간이나 조사위원회 구성, 일터괴롭힘 여부를 결정할 기구 등을 미리 정하며, 여기에 노동조합이 참여하도록 한다. 처리 과정에서 사생활 보호 등 피해자 혹은 신고자의 인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노동조합 내에서 일터괴롭힘 문제를 담당할 사람을 정하고, 그가 충분한 역량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 기회를 제
공해야 한다. 고용노동부도 직장내괴롭힘 예방 대응 업무를 총괄 담당하는 직원을 ‘상담원’과 같은 이름으로 둘 것을 추천하고 있다. 이 담당자가 단순히 신고를 접수하고 행정적으로 처리하는 사람에 머물지 않고, 처리 과정 전반을 인권의 관점에서 진행해 갈 수 있도록 일터괴롭힘 교육, 상담 교육, 인권교육 등을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


노동조합이 없는 우리는?


일터괴롭힘의 문제는 ‘관계’의 문제이고, 집단적인 대응이 없이는 해결이나 처리, 예방이 모두 요원하다. 노동자는 노동조합이 있을 때 더 존중받기 쉽고, 일터괴롭힘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도 있다. 하지만 일터괴롭힘으로부터 보호받는 것이 조직된 노동자에게만 가능한 권리이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일터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폭력과 무권리, 무존중 상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 자체가 노동자들의 권리를 실현하고, 노동자들이 집단적인 행동을 경험할 수 있는 과정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동료들과 함께 문제적 상사에 대해 얘기하기, 우리 직장 상황을 반영하는 일터괴롭힘 교육을 요청하기, 증거를 모으고 대책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기, 취업규칙과 법에 근거한 조사와 처리를 함께 요구해보기, 산재 신청이나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등 취할 수 있는 절차를 찾아 보기 등 시도해볼 수 있는 일은 많다. 피해자가 원인제공자로 쉽게 둔갑하는 일터괴롭힘의 특성상, 홀로 있을 때는 문제가 무엇인지 조차 뚜렷하게 알기 어렵다. 함께 이야기할 때 무엇이 문제인지 알게 되고, 해결책도 떠올려 볼 수 있다. 일터괴롭힘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온 직장갑질119와 같은 민간단체도 있고, 노동권익센터나 근로자복지센터 등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지원 조직들의 도움도 받을 수 있다. 우리의 괴로움과 고통을 ‘함께’ 얘기하는 데서 출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