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1. '갑'의 '폭력'을 넘어서 일터 괴롭힘 발견하기 / 2019.07

[일터괴롭힘 없는 평등한 일터 만들기①] 

 

 

'갑'의 '폭력'을 넘어서 일터 괴롭힘 발견하기 

 

 

지안 / 상임활동가

 

 

감정은 한국의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문제로써 중요한 주제다. 이 감정과 관련된 노동문제는 갑질, 감정노동, 괴롭힘, 직장 폭력 등 여러 가지 개념의 혼용을 통해 이야기되고 있다. 가령 갑질이라는 말은 일터에서 벌어지는 각종 폭력을 곧바로 문제화하는 직관적인 말이다.

그러나 한 노동자가 맺고 있는 고객, 상사, 매니저, 사장, 동료, 거래처 등등과의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권력 문제를 제기할 때 갑질이란 말은 각 관계들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경우이든 우리는 쉽게 갑이라는 개인의 과도한 권력 행사를 비난하거나, 이러한 폭력이 가능해 왔던 한국의 위계적인 문화를 비판하게 된다. 본 글을 통해서 갑질이라는 유용한 서사의 한계점을 지적하면서 각 용어의 본래 의미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문제를 개인적·문화적 측면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관점에서 구조적인 문제로 볼 필요성을 제기한다.

갑질로 명명하는 방식의 한계점

앞서 말했듯이 갑질이라는 말은 노동자의 감정을 둘러싼 복잡한 문제들을 직관적으로 설명하기 좋은 언어로 쓰이고 있다. 무엇보다 갑질은 계약상의 갑을관계에서 따온 말이기 때문에 꼭 노동관계에서의 권력 문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건물주의 갑질, 기업주의 갑질, 상사의 갑질, 고객의 갑질, 거래처의 갑질 등등 다양한 경우에 통용된다. 한국의 위계적인 사회문화를 잘 반영해주는 언어로써 유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점에 있어 이 말은 노동관계의 특수성을 보지 못한다는 몇 가지 한계를 가지고 있다. 먼저 어떤 사건을 갑질 문제라고 읽어 낼 때 우리는 자동으로 어떤 갑의 지위를 가진 개인의 위력 행사에 초점을 맞추거나, 낮은 인권감수성을 토대로 벌어지는 한국사회의 수직적인 위계 문화를 비판하게 된다. 물론 감정노동과 일터괴롭힘은 구체적인 사람을 통해서 발생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쉽게 갑이라는 명확한 대상이 행사한 폭력을 문제 삼게 된다. 하지만 이 문제의 원인을 갑이라는 개인의 일탈이나 폭력성으로 읽어내는 것은 감정노동과 괴롭힘의 구조적인 측면을 비가시화한다.

서비스 노동자들의 감정노동은 차치하고서라도, 조직적 괴롭힘을 통해 해고하거나 성과 달성을 목표로 상사가 팀원들을 압박한다거나 하는 것들은 분명 노동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감정이 자본의 조직관리, 경영방식으로 활용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 한국사회의 고질적 문제로 지목되는 위계 문화로 이 문제에 접근할 경우에는 광범위하게 들어맞는 틀이기 때문에 노동문제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다. 집주인의 갑질과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상사의 갑질을 동일하게 한국적 위계 문화의 결과로 볼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문화적인 문제로 해석한다면, 그것이 노동관계 안에서 어떻게 더 심화 되는가, 혹은 달라지는가를 봐야 한다. 그래서 개인적인 접근이든 문화적인 접근이든 일터에서 벌어지는 감정노동, 괴롭힘, 감정소진·부하, 폭력의 문제들을 말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우리는 자본이 어떻게 감정을 이용해서 노동자들을 관리하거나 탄압함으로써 이윤을 창출하는지 노동의 관점에서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로 괴롭힘을 의 어떤 행위로 상상한다면 괴롭힘이 발생하는 장을 수직적인 구도로 설정할 수 있다는 우려다.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신설된 괴롭힘의 법적 정의는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이다. 직장에서의 지위뿐만 아니라 관계상의 우위 역시 포함되는 것이다. 이미 우리는 사회적 차별과 배제가 성별, 나이, 계급, 학력, 성정체성 등을 매개로 어떻게 중층적으로 발생하는지 알고 있다. 이러한 정체성들은 관계에 따라서 상대적이기 때문에 갑이라는 고정된 위치로 괴롭힘의 가해자를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사람이 맺고 있는 여러 가지 관계 속에서, 누구라도 권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갑이라는 위치를 유동적으로 이해해야만, 일터에서 벌어지는 괴롭힘의 다양한 양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로 갑질은 서비스 노동자들의 감정노동과 그 밖의 일반적으로 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온갖 감정 문제를 모두 포괄하기 때문에 혼란을 준다. 전자가 구체적인 상품으로 기능하는 노동의 한 종류라면, 노동자들이 보편적으로 겪고 있는 감정적인 부하나 소진에는 다른 이름이 필요하다. 감정노동의 개념을 규정한 사회학자 혹실드는 감정이 인간에게 내재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사회적 형태로 만들어지고 교환된다고 설명한다. 감정이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교류된다는 속성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에 의해 조직적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즉 감정노동이란 노동과정 속에서 감정이 하나의 상품으로 기능하고 판매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때 노동자들은 회사가 원하는 감정의 표현규칙을 수행해야 한다. 기업의 구체적인 판매 전략이 의도하는 규칙을 따라야 하므로 감정에 대한 노동자의 자율성은 최소화되며, 자신이 느끼는 것이자 동시에 상품인 감정에 대한 소외가 발생한다.

여기서 고객과 직접 대면하는 감정노동자라고 하더라도, 직종과 업무에 따라서 노동자가 자신의 감정표현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자율성의 정도는 다르다. 따라서 감정의 자율성에 대한 자본의 착취를 문제화해야 하는 지점 또한 다를 것이다. 이러한 수준들을 구별해야만 자본이 노동자의 감정을 도구화하는 방식들을 구체화할 수 있다.

일터 괴롭힘 발견하기

이렇게 상품으로써 감정노동과 일터에서의 감정소진·부하의 문제가 구별되지 않고 모두 감정노동으로 불리기 때문에 이 두 가지 문제와 괴롭힘과의 차이점도 불명확해진다. 특히 감정소진·부하의 문제와 괴롭힘을 구별하기 어렵다. 그러나 감정노동과 감정부하·소진이라는 현상 자체가 괴롭힘이 되지는 않는다. 전자의 문제들에서 상품이든 그렇지 않든 노동자 자신의 감정표현에 대한 자율성이 문제가 된다면, 일터괴롭힘은 특정 인물에 대해 체계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심리적 압박·공격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핵심이다.

물론 일터괴롭힘 역시 발현되는 방식이 매우 다양하기에 일터괴롭힘이 정확히 어떤 행위들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거나 규정하는 것 자체가 까다롭다. 그래서 우리는 그럼 이것도 저것도 다 일터괴롭힘이야? 기준이 대체 뭐야?’라는 식의 방해를 가장 많이 마주하게 된다. 일터 괴롭힘: 사냥감이 된 사람들에서 일터괴롭힘을 발견할 수 있는 몇 가지 지점을 소개한다. 우선 일터괴롭힘을 폭력과 구분해야 한다. ‘폭력과 구별하지 않고 일터괴롭힘을 이야기할 때 괴롭힘의 다양한 차원을 보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최근 직장갑질이나 폭력으로 이슈화된 사안들은 직접적·물리적인 폭력 행사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터괴롭힘은 당사자 외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도 가해질 수 있다. 그렇기에 신체적 폭력이나 눈에 드러나는 심각한 폭언과는 다른 층위에서 괴롭힘문제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개인 간의 갈등이나 불화를 괴롭힘과 구분하는 것 또한 일터괴롭힘 문제를 가시화하기 위해 중요하다.

책의 저자 류은숙은 우선 일터괴롭힘의 양상이 매우 다양하고 문제의 수준도 광범위하다는 점을 설명한 뒤 여러 가지 사례 속에서 일터괴롭힘의 공통적인 특성을 묶어낸 일반적인 정의를 소개한다.

일터 괴롭힘은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위해하거나 사회적으로 배제하거나 누군가의 일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행위다. 괴롭힘 행위는 장기간에 걸쳐 주기적 빈도로 반복해서 발생한다. 괴롭힘의 대상은 열등한 지위로 귀결되는 과정을 겪으며 체계적/조직적으로 자행되는 부정적인 사회적 행동의 표적이 된다. 고립된 별개의 사건 또는 힘이 비슷한 쌍방 간에 일어나는 갈등은 괴롭힘이라 부를 수 없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일터괴롭힘은 장기간에 걸쳐, 주기적인 빈도로 반복되며, 이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괴롭힘의 행위가 고조되는 특성을 가진다. 즉 노동과정에서 갈등이 일회적으로 발생했을 때 그것을 모두 일터괴롭힘 문제로 접근하자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지속적으로 반복되는지 봐야 한다. 물론 권력의 불균등 속에서 갈등이 언제든 쉽게 괴롭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 역시 주시해야 할 것이다.

일터괴롭힘이 드러나는 방식을 더 발견하고 포착해내기 위하여 다시 본 글의 제목으로 돌아가려 한다. 우리는 권력을 나보다 높은 지위를 가진 어떤 의 위력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계들 속에서 발현되는 상대적인 모습들로 상상해야 한다. 이 상상력을 통해서 괴롭힘눈에 보이지 않고그래서 공감할 수 없는 타인의 일이 아니라, 일터의 평등한 감각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감각은 누군가를 일터의 정당한 구성원이 되지 못하도록 하는 불평등이 어떻게 유지되고 있으며 왜 노동과정에 있어 필연적으로 존재하고 있는지 밝혀낼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