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게임 속 노동과 노동의 시뮬레이션 / 2019.04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게임 속 노동과 노동의 시뮬레이션

 

 

 

 

김상민 / 문화사회연구소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할 때쯤 아이패드라는 물건이 세상에 나왔다. 노트북이나 데스크탑 컴퓨터 보다 납작한 이 태블릿으로 이런저런 것을 하는 것이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되었다. 유튜브를 찾아보거나 게임을 하는 것이 대부분의 용도였다. 친구들이 하던 게임이나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게임을 설치해 플레이하곤 했는데, 유난히 좋아했던 게임들이 있다. 다름 아닌 미용실 게임과 햄버거 가게 게임이었다.

 

 

노동과정부터 자본주의 윤리의식까지 가르치는 게임의 공식 


미용실 게임은 플레이어가 애견 미용사가 되어서 줄 서 있는 손님을 자리로 안내하고 머리를 손질한 다음 샴푸를 하고 드라이어로 말려 주고서 돈을 받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빨리하지 않거나 순서가 꼬이면 손님들이 화를 내고 가버리거나 돈을 지불하지 않기도 했다. 햄버거 가게도 비슷하다.

아이 입장에서는 난이도 높은 게임이나 멀티 플레이어 게임은 즐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나마 단순한 루틴으로 이루어지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적절한 타이밍에 클릭이나 터치를 해주기만 하면 되니 나름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주어진 단순 업무를 완료하면 금색 동전이나 초록색 지폐가 짤랑 혹은 촤르륵 소리를 내면서 자기의 아바타에게 날아가는 장면을 보는 것은 무척 보람된 일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단순한 놀이와 그에 대한 보상은 많은 게임들이 채택한 기본적 방식이다. 플레이어가 받는 보상이 실제 돈은 아니지만, 게임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주어진 임무(머리 깎기, 햄버거 만들기 등)를 한정된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수행할 때에만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가르친다. 아이는 게임을 플레이할 뿐이지만 언젠가 자신이 살아갈 현실의 노동 조건 하에서 어떻게 고객에 응대하고 주어진 노동의 프로세스에 맞춰나가야 하는지 학습하고 있는 듯 보인다.

물론 정해진 순서나 시간에 맞추지 못하거나 한눈을 팔아 손님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는 경우에는 여지없이 자기 노동에 대한 적절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는 매우 자본주의적인 윤리의식도 어느새 심어준다는 점에서 아이들의 게임이지만 진지하게 들여다볼 필요도 있다.

어느새 게임들은 점점 세련되고 복잡한 방식으로 디자인된다. 화려한 그래픽과 실감 나는 장면, 캐릭터의 묘사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게임 내에서 노동하도록 혹은 '노동을 플레이'하면서 게임을 즐기도록 한다. 일종의 시뮬레이션 게임들에서 특히 그런 특성들이 보인다. 예컨대 농사 시뮬레이션 게임이나 트럭운전 시뮬레이션 게임은 플레이하는 일-노동이 얼마나 신나고 흥미롭고 매력적인지를 보여준다.

농사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는 광활한 미국, 유럽의 농장에서 가축을 기르거나 각종 트랙터와 콤바인 등 성능 좋은 첨단 농기계와 시설을 선택해가면서 파종에서부터 수확과 저장에 이르기까지 실제 농사를 짓는 것과 똑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현재 실제로 시판되고 있는 고가의 농기계 브랜드가 그대로 등장하고 농장주와 계약을 맺어 특정 농작물을 수확하는 등 농사를 지어보지 않은 이들도 실감나게 농사를 지어볼 수 있다.

트럭운전 시뮬레이션 게임 또한 플레이어가 운전기사가 되어 유럽의 경계를 넘나들며 여러 나라의 풍경과 날씨, 도로 등을 경험하면서 화물을 정해진 시간 안에 배달하는 것이 목표다. 실제 판매되고 있는 유명 자동차 제조사의 트럭 모델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게임 속에서 대출도 받아야 하고 운전 도중 사고가 발생하거나 교통법규 위반을 할 경우 수리비가 들거나 벌금을 내야 할 수도 있다. 트럭에서 라디오를 듣거나 내비게이션 장치를 켤 수도 있고 심지어 장시간 운전 시에는 졸음운전을 할 위험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게임은 정말 '게임'일 뿐일까

이처럼 현실에서의 노동 환경과 조건은 시뮬레이션 게임 속으로 들어오면서도 여전히 유지되는 것처럼 보인다. 플레이어들은 노동에 대한 시뮬레이션으로, 즉 노동을 재미로 플레이하면서 경험의 재미를 얻는다. 게임이 재현하는 상황이나 시각적 경험은 현실에서와 무척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게임을 통해서 플레이하는 노동은 언제나 노동이 아니라 플레이, 즉 놀이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게임 속에서의 노동이 무의미하거나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노동을 시뮬레이션함으로써 플레이어는 여전히 노동을 경험하는 셈인데, 때로는 그 노동의 시간과 강도가 단순히 감내해야 할 것, 게임처럼 즐겁고 즐길만한 것으로 낭만화하게 된다.

게임은 게임일 뿐이니 즐기기만 하라는 것도 일견 맞는 말이지만, 게임 속에서 이루어지는 플레이어의 노동과 그 노동에 투여되는 시간, 그리고 플레이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는 실제로 매우 물질적인 것으로 그것이 현실과 맺는 관계는 매우 밀접하다. 말하자면, 게임의 플레이 혹은 게임을 통한 노동은 그 자체로 플레이어의 재미만을 제공하도록 설계되지는 않는다.

모든 노동의 절차가 자동화되고 가상화되는 게임 자체의 매력에 빠져들면서 플레이어는 스스로 경영자가 되는 자본주의적 인간, 호모에코노미쿠스, 나아가 노동을 놀이하거나 놀이로 노동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지금 여기에서의 노동 현실과 조건을 그저 하나의 시뮬레이션의 대상으로 경험한다.

또한 게임은 플레이어의 노동 시뮬레이션이면서 동시에 플레이어의 게임 데이터 수집과 이를 통한 미래 경제의 시뮬레이션이 될 수도 있다. 트럭운전 시뮬레이션 게임 플레이어들의 데이터가 머지않아 무인(자동운전) 트럭의 인공지능 알고리즘이나 플랫폼을 제작하기 위한 기본 데이터로 쓰일지 누가 알겠는가. 게임 속 노동이 현실노동의 시뮬레이션이 되고 또 그것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자동화의 시뮬레이션이 되는 그런 시대가 금방 도달할 것만 같다. 그때 인간의 노동은 또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까.

 

 

 

 

 

특집2. "형의 이름을 밝히는 것, 그것이 나의 바람입니다" / 2019.04

[특집 산재 유가족 ,슬픔을 안고 연대로 나아가다]

 

 

 

 

"형의 이름을 밝히는 것, 그것이 나의 바람입니다"

 

 

 

나래 / 상임활동가

 

 

 

 

사랑했던 이의 이름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건 어떤 무게일까. 감히 상상하기도 힘들다. 2017년 4월 비상식적인 장시간 노동과 비정규직 스태프 해고 문제로 괴로워한 형의 이름이 새겨진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동생 이한솔씨를 지난 3월 30일 신촌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tvN의 <혼술남녀> 조연출을 맡았던 고 이한빛 PD의 죽음은 감춰져 있던 방송업계의 장시간 노동, 비정규직 문제 등을 세상에 알리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사회적 관심과 응원,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 속에서 CJ E&M에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했던 유족들은 마침내 회사의 공식 사과를 받았다.

재발방지 대책 마련의 일환으로 CJ E&M의 출연기금, 유족 기부금, 시민들의 성금이 모여 '방송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한 줄기의 빛'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2018년 1월 24일 설립됐다. 이후 여러 사건이 있었고 1년이 지났다. 그에게 현재 센터의 주요 사업과 활동에 관해 물었다.

"혼술남녀 사건 이후로 대책위 활동을 하면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이하 센터)까지 이어온 운동의 흐름이 있었습니다. 방송업계에는 다양한 문제가 있는데, 그걸 해결하기 위한 주된 사업이 바로 'Drama Safe 캠페인'입니다.

제작 가이드 라인은 캠페인 차원에서 나온 거고 노동법 강연, 쉼터 공간 마련 활동을 병행해서 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현장에서 노동시간이 살인적이란 건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제도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안 지켜지는 것도 있고, 아예 사각지대 영역도 있기 때문에 다방면으로 접근하려고 합니다.

상식적 노동환경으로 바뀔 수 있도록 다방면의 활동을 이어가는 과정이라고 보면 됩니다. 구체적으로는 현재까지 드라마 제작 개선활동 TF를 구성해서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활동이 한 축으로 있었죠. 또 다른 하나는 제보센터를 운영해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노조와 대응하는 건데요. 심각한 현장은 건별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센터는 디지털미디어시티역 근처에 있는데, 역주변엔 방송국이 참 많다. CJ E&M은 물론이고 MBC 본사, SBS 프리즘타워, KBS 미디어센터, YTN 본사 뉴스퀘어, JTBC 본사뿐만 아니라 IT 기업도 상당수다. 방송업계 노동자들이 하루의 상당 부분을 보내는 곳이기도 하다.

당연히 센터는 현장의 목소리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홈페이지 익명 게시판, 온라인 채팅 등으로 제보가 들어온다. 다들 흩어져서 일하기도 하고 아직 자신을 드러내고 문제를 밝히기 어려워하는 분위기가 있다. 지금도 방송업계는 장시간 노동이 심각하다. 다른 문제도 상당하지만, 하루 21시간씩 일하는 문제가 워낙 심각하다 보니 다른 유형의 제보가 들어오기엔 갈 길이 멀다.

"작년만 하더라도 33건의 제보가 들어왔어요. 다 다른 드라마였어요. 제보가 안 들어오는 드라마도 있을 거에요. 웹드라마를 제외한 수치죠. 웹드라마도 다른 차원으로 심각한데요. 주로 들어오는 건 KMS(KBS, MBC, SBS), CJ E&M, JTBC 쪽으로 들어옵니다. 종편 합쳐 1년에 드라마가 백 건 정도 제작돼요. 그렇기 때문에 현장을 전수 조사하면 2건 중 1건은 노동시간 위반으로 걸린다고 예상해요."

고 이한빛 PD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고인의 죽음을 '평소 근무태도가 불량하고 나약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했던 CJ E&M측도 유가족과 연대 단위의 대응과 지지로 결국 자사 홈페이지에 공식 사과문을 게재하고 관행적인 제작시스템을 선진화하겠다고 밝혔다. 

유가족들은 고인의 죽음은 명백히 개인의 죽음이 아닌 사회적·구조적 문제로 인한 것임을 주장했고 회사도 이를 결국 인정했다. 절대 쉽지 않은 싸움이었고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쉽지 않은 길을 가고 있는 그였다.

"응원을 많이 받아요. 그럴 때 제일 보람찹니다. 문제가 해결되고 그럴 때마다 건건이 기쁘죠. 형의 이름을 걸고 하는 활동이니깐요. 최대한 많은 가치를 만들어 나갈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응원을 들을 때 기뻐요."

유가족은 관련자를 처벌하기보다 방송사에서 책임을 지고, 형의 죽음 이후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해결책이라 생각하고 노력해왔다. 그에게 센터 설립을 결정하기까지 유가족으로서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 물었다.

"그때와 비교해 지금은 질감과 온도가 좀 다른데요. 형은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고, 그와 더불어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어요. CJ E&M 측이 정말 밉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회사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드라마 산업 전체와 묶여있는 것이기 때문에 형의 이름을 잘 간직하고, 기억하고 추모하는 차원에서 형이 바라던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초기 협상 국면에서 처벌 같은 건 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죠. 대신 CJ E&M이 선도적으로 드라마 산업의 구조를 바꾸는 역할을 하라고 요구했고요. 부담감은 있었지만 해야 할 일은 명확했던 것 같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진 않았어요. 위로금을 받아봐야 마음이 쓰여서 쓸 수도 없었을 거고요. 센터에 사용하도록 하는 게 맞았던 거죠."
 
며칠 걸러 노동자의 자살 소식은 심심치 않게 들린다. 하지만 소식을 접한 이들의 눈총은 따가울 때가 많다. 그렇게 힘들면 그만둬야 했지 않느냐는 시선과 안타까움이 뒤섞여 있다. 유가족으로서 이런 사람들의 시선과 인식이 어떻게 다가올까.

"사회적 타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황은 안타깝죠. 사회적 타살, 노동에 대한 관점이 아직 시대가 요구하는 감수성을 못 따라오는 것 같기도 해요. 과거 산업화시대 유산이 지금의 수많은, 특히 젊은 노동자들을 옥죄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아요.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그냥 시키는 대로 일하라는 게 익숙했던 사회가 이제는 새로운 감수성을 받아들여야 건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도 요새 위로와 지지가 많아지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특히 젊은 층의 사람들은 어떤 문제인지 잘 알기 때문에요."

작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죽음을 계기로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개정 됐고, 한편에선 산재, 재난 유가족들이 모여 직접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최근엔 노동자 죽게 한 기업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는 자리에 함께하기도 했다. 이처럼 단순히 피해자의 자리가 아니라 문제를 드러내고, 변화를 직접 만들어가기 시작한 유가족들의 모임 구성과 활동에 대해 물었다.

"유가족들의 경우 비슷한 입장일 것 같아요. 삶의 선택지가 다양하겠지만 사실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유가족은 삶 자체가 온전하게 살아가지 못해요. 아마 유가족 모임을 만드신 분들도 당연하단 생각을 갖고 계실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가 떳떳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말이에요. 저도 그랬고요. 사회가 유가족을 존중해주고 함께 모여 활동해나가길 바랍니다.

그 활동의 의미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더불어 방송업계에 맞게 노동자에게 필요한 권리를 요구하려면, 모여서 문제를 토로하고 그것들을 이슈화시킬 수 있는 응집력과 조직들이 더 필요해요. 제작사는 거대 제작사까지 더해서 더 뭉치고 강해지죠. 하지만 일하는 사람들은 비정규직, 프리랜서 등 다 흩어져 있어요. 조금은 어려워도 일터에서 꿈을 포기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과 모여서 함께 해결해나가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