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안활동가에게 듣는다] 우리의 일터는 우리가 통제한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대창지회 이정기 노안부장 인터뷰/2021.5

[일터 5월호_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우리의 일터는 우리가 통제한다_민주노총 금속노조 대창지회 이정기 노안부장 인터뷰

 

산재로 극심한 신체적 고통을 겪으며 힘들어하는 동료에 대해 말하며 눈물을 흘렸던 이정기 노안부장. 그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아, 언젠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하 명산감)이자 노안부장인 그의 노안활동에 대해 듣다 보면, 활활 타는 용광로가 떠오른다. 그렇게 고통스러우며 슬프고, 분개하면서도 어떻게 현장의 문제로부터 고개 돌리지 않고 도리어 기꺼이 그 자리에 두 발을 박을 수 있는지, 어떻게 그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는지 궁금했다.

작업중지, 이후의 현장이 가능하게 하는 권리

대창 지회는 20164, 260여 명의 조합원을 모아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지회 설립 당시 회사에는 이미 다른 노조가 있었으나, 노조활동은 전무한 페이퍼노조였다. 사측은 조합원들을 회유하기 위해 큰돈을 내걸고 조합 탈퇴를 요구하기도 했으나, 결국 투쟁 끝에 대창지회는 이름만 남은 기존의 노조를 없애고 대표 지회로 서게 됐다. 이정기 노안부장은 2008년부터 명산감을 했지만, 본격적으로 노안활동을 하게 된 건 지회 설립 이후부터다.

“2008년 처음 명산감이 됐을 때는 이름만 있지, 힘도 못 쓰고 회의 때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다가 끝났다 하면 나가고 그랬죠. 회사에서 한 번씩 교육가라 하면 이유도 모르고 갔고요. 하지만 노조가 생긴 이후부터는 우리가 직접 노안활동을 주도하고 있어요. 제 생각엔 노안활동 덕에 노조 내부 결속력이 높아진 것 같아요. 처음 노조를 설립한 후에 불만스럽다는 사람들도 있었거든요. 우리는 인간다운 대접을 받고 다치지 않는 현장을 만들어보려고 새 노조를 설립한 건데, 몇몇은 노조 생기면 임금협상에도 유리하고,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었나 봐요.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 기대와 다르니까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고, 몇몇은 조합을 탈퇴하기도 했어요. 또 우리가 투쟁하면서 다른 곳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까 우리도 다른 사업장 투쟁을 돕거나 모금을 하자고 하면 조합에 짜증 내는 이들도 있었고요. 그래서 상집간부, 확대간부가 책임지고 이들을 설득하자고 했죠. 그런데 그런 불만들이 본격적으로 없어지기 시작한 건 아픈 조합원들의 산재 승인이 많이 나고, 노안 활동 덕분에 현장의 환경도 많이 개선되기 시작하면서부터인 것 같아요.”

현재 대창에서는 작업 중 위험할 시, 작업자가 작업중지를 내릴 수 있는 권리가 보장돼있는 편에 속한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언젠가 용해부서에서 용해로에 작업자 발이 빠지고, 유압유에 맞아 골반이 골절된 사고가 하루 사이에 연달아 일어난 적이 있었다. 연차를 내고, 시골에 내려가 있던 이정기 노안부장이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현장으로 복귀해 보니, 현장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와 똑같이 가동되고 있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용해로 작업을 중지하라고 한 뒤, 노동부 상황신고센터에 연락해 노동부에서 유선으로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도록 했다. 그날 바로 노동부, 안전보건공단 등에서 들어와 설비 및 현장을 조사했고, 현장 개선 완료 전까지 작업중지 명령을 내렸다.

이것이 대창에서의 첫 번째 작업중지다. 생산공정 특성상 용해로를 멈추는 것만으로도 하루에 수억이 깨지고, 전체 공정을 중단해야 한다. 작업중지 당일, 회사는 이정기 노안부장을 잡으러 다녔고 그는 회사 밖으로 도망가야 했다. 이후 회사는 그를 호출해 회사와 상의없이 작업중지를 걸었다며 이를 문제 삼았으나, 그는 그것이 자신의 업무이며 동지들이 다치는 것을 더는 보고 있을 수 없었다고 강경하게 대응했다. 이 첫 번째 작업중지가, 그간의 노안활동 중에서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다.

“예전에는 진짜 회사가 ‘일해’ 하면 위험해도 해야 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조합원들이 자신 있게 ‘못하겠습니다. 왜 우리가 위험한 일을 해야 합니까?’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업계 특성상 어쩔 수 없이 황산을 쓰는 공정이 있어요. 근데 고농도 황산은 시간이 지나면 안에서 결빙체가 생겨서 굳어요. 처음엔 밑바닥에 황물만 있다가 이후 덩어리가 생겨서 작업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기는 거죠. 그러면 이 황산 덩어리를 사람이 들어가서 깨야 해요. 제가 직접 해보니 멀쩡한 쇠삽이 다 삭고 녹아서 없어져요. 근데 그걸 또 시키더라고요. 작업방식을 개선하든지 외부업체에 맡기든지 하라고, 우리는 못 하겠다고 했어요. 회사에서 억지로 시키면 내가 욕먹더라도 고발하고, 책임도 질 테니까 다른 작업자들한테도 다 하지 말라고 했어요. 이후로도 문제가 생기면 절대로 혼자 작업 못 하게 하고, 조치하려고 나서지도 말고 관련 전문가 불러서 도움받으라고 해요.”

예전보다 나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너무 위험한 현장의 곳곳들

이정기 노안부장은 가능하다면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 현장이 여전히 너무 위험하다고 말한다. 조합 차원에서 제대로 산재 신청을 진행하게 된 2017년 이래, 사고성과 근골을 포함해 발생한 484건의 산재가 그의 말을 증명한다. 그래도 각고의 투쟁 끝에 많이 개선돼왔다. 앞서 언급한 황산을 다루는 작업도 여전히 위험하지만, 어느 정도는 개선된 상태라고 한다. 이외에도 현장 곳곳의 위험이 조금씩 사라졌다. 미끄럼 사고가 빈번했던 용해로 근처 쇳물이 흘러가는 탕로에서는 이제 쇳물을 부을 때 사이렌이 울리고, 레이저 안전선을 쏴 작업자의 접근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예전에는 좁은 계단에 올라서서 400kg짜리 코일을 잡아당겨 이동시키다가 추락사고도 자주 발생하곤 했는데, 그 계단도 전면 교체됐다고 한다.

또한 무거운 코일을 다루다 보니 근골질환이 빈번하게 발생하는데, 이를 반영해 작업 공정의 변경도 요구했다. 회사에서는 현재 개선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러한 변화 뒤에는 작업 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서 생산량을 위해 무리한 작업을 시키는 회사를 질타하고, 제대로 된 개선안을 가져올 때까지 절대 물러나지 않는 이정기 노안부장과 노조가 있었다. 올해 초에만 해도 안전 순찰을 없애버리려는 회사의 시도가 있었는데, 그 역시 노조의 힘으로 무력화시켰다.

“사고성 재해는 회사가 전면적으로 다 처리하거든요. 근데 근골격계 질환은 못 해주겠다는 식이에요. 한 마디로 인정을 못 하겠으니 근골격계 질환은 노동조합이 입증하라는 거죠. 여기까진 좋다고 쳐요. 근데 산재 신청하면 반대의견서 내면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요. 지금 설비를 개선 중이다, 근골격계 질환이 며칠 만에 발생하는 병이 아니다, 다른 동료들은 다 괜찮다면서요. 그럼 저는 개선 전에는 설비가 엉망이었고, 시간당 생산성도 따져서 사람들이 아프다고 하는 건 당연한 거라고 싸워요. 이렇게 자신 있게 싸울 수 있는 것도 좋은 일이죠.

활동하다 보면 산재 승인이 어려울 거 같은데 그래도 진행하는 경우가 있어요. 한 번은 정말 어렵겠다 싶은 일을 만났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다른 지회의 경험들도 비교하기도 하고, 진짜 혼자서 며칠 내내 씨름했어요. 결국 준비할 수 있는 근거 자료는 다 마련하고, 근로복지공단에 가서 열심히 괴롭히는 방법밖에는 없더라고요. 근로복지공단 직원들한테 입장 바꿔 생각해보라고 했죠. 당신네 동생이나 친척들이 회사에서 그런 일을 하고 있고, 근골격계 질환으로 아프다고 하면 어떻게 써줄 거냐고, 이 사람은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고요. 회사가 설비 개선만 해도 문제가 없었을 텐데 왜 자신의 책임을 방기한 회사의 의견만 중요시하냐고 그랬어요. 그리고 승인을 받았는데, 이때 성취감을 느꼈죠.”

이렇게 위험한 노동조건에서 고되게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보니 산재 신청 건수가 많지만, 그 모두를 이정기 노안부장과 노조의 다른 부장 한 둘이서 소화해내고 있다. 일을 마친 뒤의 새벽뿐만 아니라 주말에도 내내 시간을 쏟아야 한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개인 휴가를 써가며 활동하기도 한다. 이처럼 쉽지 않은 노안활동이지만 그의 가장 큰 고민은 다른 데 있다. 대창에는 노안활동의 중요성을 조합원들이 인정하고, 활동하는 이들을 깊게 신뢰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있다. 그런데도 새로 노안활동을 시작해보려는 조합원들은 없다.

“조합원들은 내가 어떻게 싸우는지 다 봤어요. 그래서 노안활동을 안 하려고 하는 게 있죠. 회사가 너무 막강하게 나오니까 거기에 부딪힐 자신이 없는 거예요. 지회 차원에서 활동가를 양성하려고 하는데도 안 와요. 안 오니까 어떻게 할 수가 없고요. 그런 부분이 안타깝죠.”

노동자가 무너지지 않는 현장을 위해서

여전히 현장 곳곳에 CCTV가 있고, 인당 생산성을 평가하며 인사고과나 재계약 시 산재 신청 여부를 반영하는 환경에서 노안활동을 하며 이정기 노안부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은 무엇일까. 그는 노조에서 힘을 갖고 현장 통제의 주체를 노동자로 세우는 것이라 말한다. 이정기 노안부장을 비롯한 노조는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현장을 통제하려는 회사에 맞서고 있다. 최근 회사는 지게차 작업자들의 보호구 착용 여부를 단속해 지키지 않을 경우, 징계를 내리겠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하지만 그는 보호구를 착용하는 건 회사가 주체가 돼 감시와 처벌 방식으로 강제하는 게 아니라, 노조에서 조합원들을 설득하고 행동을 바꾸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반대했다. 징계를 내리더라도 그건 조합의 몫이지, 회사의 것은 아니다. 회사의 몫은 노동자들이 왜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는지 확인하고, 문제없이 쓸 수 있는 환경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마저도 노조가 지게차 작업자들의 경우, 헤드켓이 낮아 보호구를 쓸 수 없었던 상황을 지적하고 헤드켓의 높이를 올려달라고 요구해 전면 교체를 이뤄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대창지회 이정기 노안부장

“금속노조에서 주최한 교육을 받으러 갔다가 본 문구가 하나 있어요. 현장이 무너지면 우리가 죽는다. 저는 그 문장이 가슴에 진짜로 와닿았어요. 현장은 우리가 땀 흘려서 일하는 터잖아요. 회사가 설비와 환경을 개선할 책임을 안 져서 매일 사고가 나는데, 그때마다 사고 원인으로 우리 조합원들을 문제 삼거든요. 저는 그걸 용납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의 롤모델이 되는 사업장은 자동차 부품사인 SJM이라고 한다. SJM은 용역 깡패들의 폭력을 겪을 정도로 초반에 극심한 노조 탄압을 겪는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조합의 힘을 꾸준히 키워왔다.

“이전에 SJM 현장을 한 번 둘러봤어요. 현장의 모든 게 체계적이에요. 그걸 보면서 와 조합 힘이 이 정도는 돼야 하구나 싶었죠. 거기에는 노안부장으로 오래 활동한 사람도 있지만,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곤 해요. 노조에 대한 신뢰도도 높죠. 조합원들이 조합을 믿고 따라가요. 그렇게 믿은 만큼 산재와 현장 개선, 회사와의 대립 등 모든 부분에서 월등하고 실패가 없다 보니 후회도 없는 거죠. SJM은 노조의 힘이 세니까 지금의 저처럼 고군분투 안 해도 돼요. 이외에 자체적으로도 노안 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조합이기도 하고요. SJM은 우리의 롤모델이에요. 거기를 뛰어넘는 게 우리 목표인데, 아직 갈 길이 멀죠.”

혼자서 감당해야 할 일이 많아 힘들어도, 아프고 힘들어하는 동지들을 보며 자신의 힘듦은 잊은 채 다시 한번 힘내본다는 이정기 노안부장. 진급보다는 대창의 모든 현장 동지가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그는, 바위처럼 버티고 싸워 현장의 여러 안전보건활동의 체계를 닦아왔다. 그 과정이 이어지다 보면 언젠가 이정기 노안부장처럼 많은 것을 걸고 싸울 수 있을 만큼 아주 강인하지는 못한 이들이라고 할지라도, 체계적이고 충분히 강한 노조의 힘을 바탕으로 부담감이나 불안감 없이 현장을 안전하고 더 편하게 바꿔나갈 수 있을 날이 오지 않을까. 반드시 그러하리라 믿는다.

(김다연 상임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