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1월_특집3] 주 52시간제, 방송 노동의 상황은 괜찮습니까? / 2021. 01

[과로사회에서 노동존중사회로]

주 52시간제, 방송 노동의 상황은 괜찮습니까?

성상민 후원회원,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활동가


온갖 말도 탈도 많았지만 어찌 됐든 '주 52시간제', 엄밀하게는 '주 40시간 노동시간 상한제'가 지난 2018년 공공기관과 공기업, 300인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올해 2021년 7월부터는 5인 이상의 사업장에 모두 적용된다. 물론 여전히 반발도 적지 않다.

2019년까지는 '장기 불황'을 이유로, 2020년부터는 한국을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퍼져 여전히 종식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경제적 타격을 이유로 계속 주 52시간제를 유예하거나 피해가려는 움직임이 끊이지가 않았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러한 소식 등을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전달하는 언론을 비롯한 방송 제작 현장 전체가 노동시간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노동 시간 규제에 대응한 방송업계의 '꼼수'

애당초 방송 제작 현장은 '주 68시간제'이건 '주 52시간제'를 시행하건 별로 상관이 없던 영역이었다. 2019년 7월 전까지는 근로기준법(이하 근기법) 상의 '근로시간 특례업종'에 지정된 26개 업종에 '방송업'과 '영상·오디오 기록물제작 및 배급업'(방송 프로그램 제작업)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방송 산업'의 특성상 일률적으로 근로시간을 규제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근기법의 '근로시간 특례업종'에 방송업은 오랜 시간 속해 있었고, 방송사와 외주 제작사들은 이를 이유로 정규직·비정규직·프리랜서 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방송 노동자들을 마음껏 밤을 새우게 하며 일을 시킬 수가 있었다. 어차피 노동청에 진정을 넣어도 방송업의 야근과 과로를 사실상 합법적으로 보장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대응할 여지도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8년 근기법이 개정되며 시대착오적이었던 '근로시간 특례업종'은 기존 26개 업종에서 5개 업종으로 대폭 축소됐다. 이와 함께 '방송업'과 '영상·오디오 기록물제작 및 배급업'도 특례업종에서 제외되어, 오랜 시간 적용을 받지 않던 근기법 상의 근로시간 기준을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하게 되었다.

▲   최규석의 만화 <송곳>의 한 장면. 방송 노동은 언제가 되어야 "코리아 스타일"이 아니라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킬 수 있을까. 역설적으로 이 작품을 드라마로 방영한 JTBC도 주 52시간제를 가장한 "꼼수"를 쓰는 상황이다.

 방송사과 외주 제작사는 이러한 '비상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개정된 근기법을 세세하게 검토한 끝에 또 다른 '꼼수'를 창안하게 되었다. 근기법 상에 있는 3개월 단위의 '탄력적 근로시간제'나 '유연근무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된 것이다.

최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문제를 제기한 JTBC의 꼼수가 바로 이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악용이다. 방송 노동자들을 불러 모을 때는 '주 52시간제를 지켜서 촬영에 나서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계약서를 그 자리에서 바로 쓰지 않는다. 방송 제작 현장은 오랜 시간 '프로그램 촬영 때문에 시간이 없다'는 것을 명목으로 방송 촬영에 투입되어 일을 시작하고 나서야 계약서를 쓰는 악습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계약서를 쓰게 되면 방송 노동자들은 이상한 구석을 그제야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철석같이 믿었던 '주 52시간제'는 사실 주 52시간을 3개월(12주)로 환산해 '3개월 624시간'으로 명시한 탄력적 근로시간제였으며, 이를 제외하면 일일 노동시간은 물론 주간 노동시간 제한도 없다. 이동 시간도 근로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오로지 3개월 노동을 마치고 624시간을 넘겼으면 추가 수당을 지급한다는 조항이 전부이다.

이는 명백히 근기법을 위반하는 움직임이다. 근기법은 3개월 단위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시행할 수 있다고 되어 있으나 이는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 합의가 필요하며 설사 시행하더라도 일일 12시간, 주간 52시간을 넘길 수 없다. 허나 JTBC는 이러한 조항을 제시하고도 정작 계약서 자체는 이전처럼 근로계약서가 아닌 '프리랜서 용역계약서'로 작성해서 노동자를 속이고 제대로 된 법적 조치도 회피하려는 이중의 꼼수를 부리고 있다. 

이러한 조항으로 인해서 방송 노동자들이 2020년 많은 제보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 보내왔다. 방송사의 '주 52시간제' 약속을 혹시나 하고서 믿었다가 속았다는 것에 대한 분노와 함께. JTBC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 공문을 보내 2020년부터 자사를 통해 방송하거나, 자사가 제작에 직접 참여하는 드라마들은 모두 이러한 조항을 적용하고 있다고 답변한 바 있다. 동시에 다른 방송사들은 자신들과 같은 주 52시간제도 시행하고 있지 않다면서 오히려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주장도 함께 답변에 실었다.

장시간노동 폐지 외면하는 방송업계

그러나 JTBC의 태도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것과는 별개로, JTBC의 주장을 마냥 변명이라며 무시할 수도 없는 게 우리의 씁쓸한 현실이다. JTBC의 말대로 다른 방송사들이 제작하는 프로그램의 제작 현장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주 52시간제에 대한 이야기나 약속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도 JTBC와 똑같이 방송 스태프들 대부분을 직접 고용한 노동자처럼 취급하며 일을 시키고 있지만, 이들을 법적인 노동자로 인정하는 대신 명목상 '개인 사업자'로 취급하는 프리랜서 용역 계약서만을 계속 체결하는 상황이다.

당연히 노동시간에 대한 명문화된 조항도 없다. JTBC가 근기법을 악용한 꼼수로 노동자들을 혼란스럽게 한다면, 다른 방송사들은 주 52시간제의 전면 시행이나 방송업의 근로시간 특례업종 제외 조치는 자신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이전과 똑같은 야간·장시간 노동을 그대로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물론 '일단' 지상파 방송사는 계속 노력 중이다. 2019년 6월부터 KBS·MBC·SBS 지상파 방송사 3사는 드라마 외주 제작사들의 연합체인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와 2018년 최초로 결성된 방송 스태프들의 노동조합인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그리고 전국언론노동조합과 함께 표준근로계약서 의무 작성과 표준임금기준 마련, 근기법상의 노동시간 준수 등을 골자로 한 4자 협의체에 참여 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래대로라면 2019년 하반기에 시행이 되었어야 할 표준근로계약서를 비롯한 각종 사항은 협의체가 결성된 지 1년 반 가량이 지나도록, 2020년이 끝나가도록 여전히 합의가 끝날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

방송사와 외주 제작사들은 아직 합의가 진행 중임을 이유로 프로그램 제작 현장에서 주 52시간제의 전격적인 시행을 계속 거부하는 상황이다. 앞서 언급했던 대로 2021년 7월부터는 5인 이상 모든 사업장에서 주 52시간제가 전면적으로 시행되지만, 과연 올해 7월까지 4자 협의체의 합의가 끝날 수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자신들이 '공영방송'이라는 것에 자부심이 있는 KBS와 MBC가 정작 자신들이 제작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노동자들의 권리 문제에 있어서는 적극적으로 입장을 표명하거나 변화를 위해서 나서지 않고 있는 모습은 방송 노동이 놓인 현실을 매우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렇게 지상파 방송사들이 미적이는 가운데 JTBC는 편법적이고 자의적으로 해석한 주 52시간제를 내세우며 노동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2020년에도 여전히 열악한 방송 노동의 상황이 방송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영상 영역에도 점차 번져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네이버TV나 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되는 웹드라마들은 오래전부터 노동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았으며,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를 통해 방송되는 작품들도 노동 조건에서는 전혀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키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마치 최규석의 만화 <송곳>이 지금은 철수한 프랑스계 할인마트 기업 '한국까르푸'의 사례를 소재로 삼으며 프랑스 자국 내에서는 노동법을 성실히 준수하는 기업이 정작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악덕 사업주에 대한 처벌이나 징계가 부족한 국내의 현실을 악용하는 모습을 그렸듯, 똑같은 일이 방송 노동에서 벌어지고 있다. 

대체 언제까지 이러한 방송사들이 '무늬만 프리랜서'를 악용하여 노동자를 혹사로 밀어 넣는 만행을 가만히 보고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감독급/팀장급 스태프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은 한계가 있었지만, 이미 고용노동부는 2018년과 2019년 두 차례의 드라마 제작 현장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방송 스태프 다수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바 있다. 2000년대부터 계속 이뤄진 방송 노동자 개개인의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에서도 스태프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전례가 다수 있다.

이런 사례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방송사나 외주 제작사는 요지부동이다. 소송을 건 당사자만이 근로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부당해고를 당한 뒤 사측의 재판 방해로 부당하게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에서 패소하고 억울함을 호소하며 세상을 떠난 CJB 청주방송 故 이재학 PD와 같은 안타까운 사례도 생기고 있다,

많이 늦었지만 2020년 12월, 방송통신위원회는 지상파 방송사 재허가 요건에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조건으로 삽입하며, 처음으로 방송사를 평가·관할하는 기준에 방송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에 대한 요소를 삽입한 바 있다. 노동 시간 문제 또한 이러한 움직임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서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나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와 같은 시민사회단체나 노동조합의 활발한 움직임과 꾸준한 감시, 현장 노동 문화의 개선도 동반되어야 하지만, 우선 방송 영역에 막중한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올바르게 사용해야만 할 것이다.

동시에 고용노동부나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콘텐츠진흥원과 같은 방송 노동과 유관한 부처들 간의 협력을 통해 종합적인 방송 노동 대책을 입안하기 위해 야간·장시간 노동을 비롯한 해묵은 방송 노동의 문제가 지니는 심각성을 반드시 인지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다각도의 노력이 있어야 노동계가 오랜 시간 투쟁을 하여 쟁취한 '주 52시간제'가 비로소 방송 영역에서도 정착할 수 있지 않을까.

 

[일터1월_특집1] 누더기가 된 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 지금처럼 해서 노동시간 단축 이뤄질까? / 2021.01

[과로사회에서 노동존중사회로]

누더기가 된 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 지금처럼 해서 노동시간 단축 이뤄질까?

박기형/상임활동가

▲ 2018년 국회에서 통과한 주52시간 근무제가 1월부터 50~299인 사업장에, 7월에는 5~49인 사업장에 시행된다. 대통령 공약으로 "노동존중 사회"를 내세우고 장시간 노동을 없애겠다고 말 했지만, 정부와 여당은 재계가 반대할 때마다 세부 규정에서 장시간 노동을 허용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장시간 노동은 언제쯤 사라질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주52시간 상한제가 드디어 본격 시행된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020년 12월 50~299명 사업장에 대한 주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계도기간을 연말에 종료하겠다고 발표했다. 주52시간 이상 노동을 규제하는 근로기준법(아래 '근기법') 개정사항을 2021년부터 제대로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노동부는 그간 중소규모 사업장 등에 주52시간제 도입에 대한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서 계도기간을 부여했다. 이제 당장 1월부터 50~299명 사업장에 적용되고, 7월부터 5~49명 사업장에 대한 자율적 개선지원 사업도 시행된다.

2021년 주52시간 상한제가 본격 시행되니, 드디어 장시간 노동을 해소할 길이 열렸다고 반가워해야 할까? 반갑게 맞이하기엔, 상황이 녹록지 않다. 오히려 장시간 노동 타파는 요원해 보인다.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과제들이 산적해있지만,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노동자와 시민들이 그들에게 부여한 소명을 쉽사리 내팽겨쳤다. 오히려 노동시간을 늘리고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일을 벌이고 있다. 주52시간 상한제가 본격 시행되지만, 장시간 노동 타파를 위한 여정은 더디기만 하고, 심지어 무산될 위험에 처했다.

노동존중 약속은 저버린 지 오래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면서, '노동존중 사회'를 실현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진행된 노동개악을 되돌려, 노동권을 제대로 보장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에 부응해야 할 의무가 그들에게 있었다. 이를 위해 노동 관련 법령을 개정하고 행정지침을 시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자신들의 약속을 저버리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노동기본권 보장을 요구하는 '전태일3법', 그리고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라는 사회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2020년 12월 국회에서는 근기법 개악이 이뤄졌다. 장시간 노동 구조를 유지해 자본과 기업에게 부담을 덜어주려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노력'은 주52시간 상한제를 둘러싼 논쟁에서 계속 확인되었다. 주변 상황 악화를 노동시간 규제 완화의 핑계 삼으며 자신들이 만든 법에 예외를 계속 둘 뿐만 아니라, 미약하게나마 보장된 노동기본권조차 후퇴시켰다.

대표적인 국면들을 돌아보자. 먼저 2018년 3월 정부와 국회는 근기법을 개정해 노동자의 1주일은 휴일을 포함한 7일이며, 그 1주간 법정 근로시간은 40시간임을 명시하였다. 2018년 7월 1일부터 공공기관과 300명 이상 사업장에서 주52시간 상한제를 먼저 시행하였다. 하지만 주 52시간 상한제 도입을 놓고 재계의 반발이 일자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시도했다. 또한 주 52시간 상한제 적용에 계도기간을 설정하고, 그 기간을 몇 차례 연장했다.

지난 2019년 8월에는 고용노동부가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하겠다며, 장시간 노동을 조장하는 조치들을 시행하였다. 당시 고용노동부는 일본의 수출규제를 "자연재해와 재난 또는 이에 준하는 사고가 발생해 이를 수습하기 위한 연장근로를 피할 수 없는 경우"로 본다며, 관련 사업장에 '인가연장근로'를 허용했다.

기존 법제도에서는 노동시간 규제의 취지에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에 따른 재난 또는 이에 준하는 사고가 발생해 이를 수습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거나 재난 등의 발생이 예상돼 이를 예방하기 위해 긴급한 조치가 필요한 경우'만 특별연장근로를 인가하도록 하고 있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 해석으로 기업들은 노동부 장관 승인만 받으면 노동자들에게 무한 연장노동을 시킬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고용노동부는 탄력근로제 대상업무를 확대하는 고시와 함께 탄력근로제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법정 연장근로 한도에 구애받지 않고, 얼마를 더 일하든지 노사가 서면합의한 시간만을 일했다고 허용해준 것이다.

2020년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2020년 1월 31일 고용노동부는 특별연장근로 인가사유를 규정한 근기법 시행규칙 9조를 개정했다. 2019년 8월에는 기존 법제의 해석을 유리하게 해준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이를 넘어 법제 자체를 유리하게 바꾸어주었다. 인명보호·안전확보, 돌발적 상황 수습, 업무량 폭증, 소재·부품 연구개발까지 특별연장근로가 가능하도록 인가 사유를 확대했다. 특별연장근로 활용 기간 또한 지난 조치에서 제한한 1년 내 90일이라는 한도를 확대하기까지 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때가 코로나19 발생 전이었다는 것이다. 2020년 7월 15일에 이르러서는 코로나19 사태를 빌미로 삼기 시작했다. 국가 위기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해야 한다며, 특별연장근로 활용 가능 기간을 한시적으로 조정했다. 그러나 이 조치는 특별연장근로 인가사유 확대를 사후적으로 정당화해주는 것에 불과했다. 역시나, 주52시간 상한제 시행 의지는 온데간데 없었다.

개악으로 열린, 장시간 불규칙 노동으로의 길

국회에서 공수처 설치를 둘러싼 대치가 격화되던 2020년 12월, 민주당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6개월 확대, 선택근로제 정산기간을 3개월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근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선진국' 유럽과 일본에서는 탄력근로제를 운용하면서도 장시간 노동을 규제하기 위해 총노동시간을 규제하지만, 정작 한국은 탄력근로 등 변형근로 도입 시 추가적 총노동시간 제한에 대한 규정은 없었고, 최장 주 64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건강권 침해 우려가 있는 걸 고려해, 11시간 연속휴식시간제도도 담고 있으나, 그에 대한 해석이 1일(24시간) 단위가 아니기에 건강권 보호조치의 실효성 자체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마저도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합의사항으로 뒀다. 이는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근로자대표를 임명하는 등 근로자대표제를 악용해온 그간의 관행을 고려할 때, 법적용 제외의 길을 터준 것과 다를 바 없다.

또한 양적으로 노동시간을 늘릴 수 있도록 해준 것에 더해, 불규칙노동까지 확대될 위험이 커졌다. 기존 3개월 탄력근로제는 '일별' 노동시간을 합의해야 했다. 하지만 신설된 3개월 초과 사항에 대해선 '주별' 노동시간만 정하면 된다. 이를 노동자에게 2주 전까지만 알려주면 되며, 그마저도 업무량 급증 등 사유가 있으면 근로개시 전까지만 알려주면 된다. 이로 인해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시간을 예측도 할 수 없고, 결국 노동 통제권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자본과 기업의 이윤 창출 압박이 노동자들을 더욱 옥죌 것이다.

여전히 강고한 포괄임금제

노동시간 자체를 규제와 더불어 임금 제도를 통해 장시간 노동 관행을 유지, 운영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동안 포괄임금제도는 사무직군, IT·게임 업계 등에서 장시간 노동을 심화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지적되어 왔다. 현행법상 포괄임금제는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로 한정해, 명확한 노·사 합의가 있고, 노동자에 불이익이 없으며, 제반 사정에 비추어 정당하다고 인정될 때에 유효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실제 근로시간 산정이 어렵지 않은 경우에도 광범위하게 악용되고 있다.

포괄임금제는 무엇보다 노동자 건강 측면에서도 악영향을 미친다. 포괄임금제가 시간 외 근로를 전제하고 있으니, 노동자는 회사에서 지시하는 야간, 주말 연장근로를 거부하기 힘들어진다. 포괄임금제는 장시간 노동시간 관행을 조장하고 유지하는 요인이다. 이에 대해서도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사회 실현의 과제 중 하나로 초과수당 제대로 안 주는 포괄임금제를 규제하고, '눈치야근 잡는 출퇴근시간기록의무제(일명 칼퇴근법)'를 제정하고, 퇴근 후 카톡 업무지시 근절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공약을 내걸었다. 이 약속 또한 이행되지 않고 있다. 자연스레 임금체불은 막대히 쌓여만 가고, 노동자들은 과로에 지쳐 쓰러져 죽어간다.

최근 정의당을 중심으로 포괄임금제 폐지 논의가 재점화되고 있다. 포괄임금제는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지만, 현실에서는 오랜 기간 불법과 편법에 기대 강고한 제도로 자리 잡았다. 근본적으로는 이를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 또한 현재는 과로사 산재신청 시 실노동시간 입증 책임이 노동자에게 부과되어 있는데, 근무시간 기록의무를 져야 할 주체를 사업주로 규정하여 노동자의 산재신청을 막지 않게 해야 한다. 고용노동부 또한 포괄임금제 규제 지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단속조차 안 하고 방관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행정 집행을 해야 한다.

장시간 노동 근절, 노동존중 사회의 전제조건

문재인 정부는 주 52시간 상한제 도입 취지를 잊었는가. 노동존중 사회 실현이라는 소명을 부여받았음을 잊었는가. 21세기에도 한국은 장시간 노동이 만연해 있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연평균 노동시간인 1700시간보다 400~500시간 이상 길다.

주40시간 노동이 노동법에서 규정한 원칙이자 노동기본권 실현의 핵심임에도, 여전히 우리는 장시간 노동의 굴레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주52시간 상한제를 둘러싼 싸움에서조차 자본과 기업의 반발에 밀려, 그리고 말로만 노동존중을 외치며 정작 저들을 대변하는 정권에 속아 뒷걸음질치고 있다. 노동자·시민의 안녕을 위한, 일터에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의 여정을 새롭게 재조직해야 할 때이다.

[노동시간센터] 201903 월례토론 "유연근무제와 페미니즘" 북토크

노동시간센터 월례토론

2019.03 "유연근무제와 페미니즘" 저자 국미애 선생과 함께 하는 북토크




3월 21일 목요일에는 "유연근무제와 페미니즘(2018, 푸른사상) 저자인 국미애 선생님을 모시고 북토크를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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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근무제가 정말 장시간 노동체제에 균열을 가할 수 있을까?

사실은 유연근무제가 가정에서나 일터에서나 성별 분업을 고착화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유연근무제 중 하나로 불리는 시간제일자리는 여성노동자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노동자에게 시간 주권이 없을 때, '유연근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쉽게 부담의 전가가 일어나는가? 


등 여전히 많은 질문을 남겼지만, 여성운동이나 노동운동 양쪽에서 모두, 

가부장제와 결탁한 장시간노동체제에 대한 문제제기와 저항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국미애 선생님의 발제 자료와 월례토론에 대한 오마이뉴스 기사를 싣습니다. 


국미애_0321_유연근무제와페미니즘.pdf


오마이뉴스 기사 보기 ==> 유연근무제는 장시간 노동체제를 흔드는 기획이 될 수 있을까?




4월에는 "과로자살 2019, 한울아카데미"의 저자 김명희 선생님을 모시고 북토크가 예정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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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 탄력근로제 확대의 진실 국회 토론회: 장시간·저임금 노동 및 과로사의 제도화



이정미 의원실·노동법률단체·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공동주최


탄력근로제 확대의 진실 국회토론회

: 장시간·저임금 노동 및 과로사의 제도화


일시: 2019년 3월 20일 수요일 오후2시

장소: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 


프로그램


사회: 이용우 (변호사, 민변 노동위원회)


발제1

경사노위 합의와 한정애 법률안의 절차적·내용적 문제점

- 정병욱 (변호사, 민변노동위원회 위원장)

- 김태욱 (변호사, 사무금융노조 법률원)


발제2

건강권 측면에서 본 탄력근로제 확대의 문제점

- 류현철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토론

- 오진호 (직장갑질119 총괄 스태프)

- 진재연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사무국장)

- 박준도 (노동자의 미래 정책기획팀장)

- 최은실 (노무사, 불안정노동철폐연대)

- 임종린 (화학섬유식품노조 파리바게뜨 지회장)


주최

이정미의원실, 노동법률단체[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 민수자시회를위한변호사모임노동위원회,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법률원(민주노총, 금속노조, 공공운수노조, 서비스연맹),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법률위원회],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안내] 2019 노동시간센터 월례토론

2019년 노동시간센터 월례토론



3월) "유연근무제와 페미니즘" 북토크

- 국미애 (성평등 정책연구자)

- 2019년 3월 21일 목요일 저녁7시

4월) "과로자살" 북토크

-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 역자)

- 2019년 4월 18일 목요일 저녁7시

5월) 플랫폼노동자의 노동시간 

-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 2019년 5월 16일 저녁7시


신청 및 문의: laborr@jinbo.net  / 02-324-8633

장소: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서울 동작구 남부순환로 2019, 501호) 


[안내] 2019년 개정된 노동안전보건제도 강연회 (부산)


"2019년 개정된 노동안전보건제도 강연회"

매일 5~6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사망사고로, 직업병으로 죽임을 당하고 있는 한국사회, 노동자 건강권 현실은 처참합니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선 노동안전보건제도를 제대로 이해하고

노동자민중의 요구와 투쟁이 함께 해야 노동자 건강권을 제대로 지킬 수 있는 노동안전보건제도로 바꿀 수 있습니다. 


- 장소: 민주노총 부산본부 4층 대회의실 

- 참가비: 1만원 (2강좌)

- 문의: 010-6333-4395


강좌1.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 이해 

- 일시: 2019년 1월 23일(수) 19시30분

- 강사: 이숙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강좌2. 2019년 달라진 산업재해보상보험법

- 일시: 2019년 1월 30일(수) 19시30분

- 강사: 조애진 (법률사무소 시대 변호사)


* 근로기준법 59조 개정 및 탄력근로시간제를 둘러싼 현장 간담회 

- 일정: 2019년 3월 14일(목), 3월 28일(목) 예정 


주최: 사회변혁노동자당 부산시당,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만평] 사람 ≠ 용수철 / 2018.12


특집1. 위기를 위기로 덮는 방법 / 2018.12

위기를 위기로 덮는 방법


전주희 (노동시간센터 회원,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최근 개봉한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IMF 위기'로 회자되는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다. 젊은 남성들, 그러니까 'IMF 키드'로 어린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된 이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보았을까?

"역시 종자돈이 있어야 위기 때 과감하게 투자를 할 수 있어. 우리한테 인생역전은 이럴 때 가진 돈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이거거든."
"그래. 곧 또 닥칠 텐데, 알바해서 참 많이도 모아봐라. 쯧쯧"


자신들도 어이가 없는지 낄낄거리며 영화관을 빠져나간다.

IMF 위기. 따지고 보면 이상한 말이다. 김영삼 정부시절 경제위기가 있었고,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IMF(국제통화기금)에게 구제금융을 요청했다는 단순한 사실을 뒤집어놓는다. IMF로부터 야기된 위기인지, IMF로 극복된 위기인지도 불분명하다.

하지만 때로는 모호한 의미가 복잡한 사건을, 엉킨 실타래를 표현하기도 한다. 단어 혹은 개념은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단어들 간의 관계이다. IMF 그리고 위기라는 단어가 맺는 관계. 이것은 위기의 자리이동 혹은 한 국면에서 다른 국면으로 위기의 전화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위기는 여전히 한국사회를 떠받치는 불안의 이면이지만, 이것은 우리가 다른 위기 속에 놓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위기는 무엇일까?

<국가부도의 날>에서 내가 본 것은 위기의 층위다. 자본의 위기가 곧 노동자의 위기로 전화되는 국면, 자본이 위기를 극복했을 때 노동자의 위기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장면으로 펼쳐지는 그 순간 말이다.

경제위기라는 이 의도적인 모호한 단어는 이 분열, 삶의 위기가 곧 자본의 위기가 되지 않는 IMF 이후 20년의 현실에 베일을 드리우는 효과적인 이데올로기가 된다. 그럼에도 위기는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우리는 피부로 느낀다. 하지만 이 생활세계의 바깥에서 어떤 자본은, 어떤 부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조건에서 부를 축적하며 황금의 20년을 살아왔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기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떤 위기인가이다. 자본의 위기는 곧 삶의 위기로 간주되지만, 삶의 위기는 자본의 위기가 아닌 시대. 둘 중 하나는 현실이고 둘 중 하나는 기만인 이 기묘한 위기의 시대.

자본의 축적이 개인의 더 나은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 지금, 우리는 '유연화'라고 부르는 노동의 위기를 지렛대 삼아 유래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는 자본이 어떻게 지난 20년간 부를 축적해왔는지,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처한 삶의 위기를 어떻게 재료로 삼아왔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 노동시간 단축은 왜 흔들렸는가?

한때는 영광의 표현으로, 지금은 비난의 표현이 된 '촛불정부'. 문재인 정부는 수많은 논란과 반발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과 노동시간 단축을 감행했다. 그리고 이제 탄력근로제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2018년 최저임금 16.4% 인상에 맞서 보수 언론이 내건 대응은 '자영업자의 눈물'과 '중소 자본의 한숨'이었다. 이것은 노동시간 단축 관련 보도에서도 반복된다. 언론사들은 이른바 '지불능력'이 없는 중소영세 사업장들의 문제를 현장의 목소리를 인용해 앞 다퉈 보도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최저임금의 가시적 인상을 무력화하고, 주 40시간인 법정노동시간을 사실상 주 52시간으로 대체하는 효과를 가지게 된 기묘한 상황이 펼쳐졌음에도 말이다.

이때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론'을 이야기했다. 여기서 소득은 노동자들의 임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영업자의 소득까지 포함한 자본소득을 의미하고 이는 중소영세사업장의 소득분배를 개선하는 것을 포함한다.

즉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은 이론상으로는 대기업과 상위 1% 혹은 상위 10%의 부의 집중이 사실상 대다수 노동자 대중들의 소득을 약탈한 결과이며, 이러한 부정의한 분배를 다시 바꾸겠다는 것의 부분적 인정인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최저임금인상과 같은 조치와 함께 무엇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약탈적 거래, 건물주들의 약탈적 지대 수취의 문제 해결이 우선해야한다.

왜냐하면 보수언론이 떠들어대는 중소영세 사업장의 '약한 지불능력' 원인이 중소기업의 부실함이나, 우후죽순으로 난립하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태생적 한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원인이 아니라 지난 20년간의 결과이다.

다시 말해 부실한 중소기업이나 준비 안 된 자영업자들의 취약함은 지난 20년간 구조화된 거대자본과 중소자본 간 생산력 차이의 결과이며, 이 생산력의 차이는 IMF 이후 구조조정을 통해 체질이 강화된 재벌이 "약탈적 산업생태계"를 구축하면서 높아진 지배력의 결과이다. 그 결과 대기업은 자본집약적 고부가가치 부분과 중소기업의 노동집약적 저부가가치 부문으로 나뉘었다(홍장표 2014). 이에 따라 노동자들의 삶 역시 기업규모 뿐만 아니라 업종과 고용형태에 따라 분할되었다.

탄력근로제 확대가 지시하는 태세전환

그러기에 최근 정부에서 강행하고 있는 탄력근로제 확대 추진은 매우 중요한 전환처럼 보인다. 이는 '줬다 뺏는' 최저임금, 노동시간단축의 연장으로 보일 수 있지만 보다 궁극적으로는 소득주도 성장론의 폐기이다. 그리고 지난 20년간 진행된 IMF 위기를 노동자 대중의 '삶의 위기'로 정정하려는 시도의 발 빠른 포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포기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후보의 입을 통해 드라마틱하게 표명되었다. 탄력근로제 확대 추진, 최저임금 결정구조 이원화, 제주영리병원 허용 등과 관련된 입장은 그가 여전히 후보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위력을 행사하고 있다. 최종적으로 그는 소득주도 성장의 속도조절을 이야기하며 현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을 사실상 폐기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탄력근로제 확대와 관련한 보수 언론의 초점은 '중소기업 살리기'라는 프레임으로 정당화된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탄력근로제 확대를 둘러싼 여·야를 비롯한 정치권 일반의 논조는 그 차이가 식별불가능하다. 지난 12월 3일 바른미래당과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한국게임산업협회가 공동주관한 "ITC분야, 52시간 근무, 정답인가?"라는 정책토론회의 부제는 아이러니하게도 '저녁있는 삶과 선택근로제를 중심으로'이다.

여기에서는 "획일적인 노동시간 단축" 혹은 "과도한 노동규제"를 한목소리로 비판하고 있다. 탄력근로제 도입의 정당성을 획일적인 노동시간 단축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 여기서는 IT업계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러한 주장의 이면에는 또 다른 차원이 존재한다. 그것은 법에 대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일지라도 국가가 필요한 이유는 이 획일적인 법, 제도가 반드시 자본주의의 재생산에 필요한 계기들을 마련하기 때문이다. 가령 기업은 노동력의 사용을 위해 노동력의 재생산 따위는 관심이 없기 마련이기에, 국가는 기업의 무정부적인 경쟁을 제어하며 교육이나 의료 등의 '획일적인' 조치를 취하며 노동력을 재생산해야할 필요가 있다.

정치는 이러한 보편성(그들이 "획일적"이라는 부정적 뉘앙스로 끌어내리고 있는)의 계급적, 사회적 의미를 둘러싸고 벌어진다. 그런데 경제부총리 장관 후보와 여, 야 모두는 지금 최저임금과 노동시간단축에 이어 탄력근로제 확대에 이르러 이러한 법의 보편성을 공격하고 있다.

이것은 지난 IMF 위기이후 20년간 시장권력이 국가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인 권력기반을 갖추었으며, 이제 그 시장권력이 국가의 정책과 제정된 법을 얼마나 마음껏 휴지조각으로 만드는 지를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본의 반격이 한 두해의 일이 아님을, 단지 올해의 노동정책을 둘러싼 문제만이 아님을 익히 알고 있지만, 그래도 새삼스러운 것은 단지 '촛불정부'의 실망만은 아닐 터이다.

IMF 위기 이후, 20년 동안 이 위기는 과연 어떤 위기였는지, 누구의 위기였으며, 누군가는 이 위기가 엄청난 기회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얽힌 실타래를 붙잡고, 성급하게 풀리지 않는 매듭을 자르지 않고 한 올 한 올 풀어내는 시도를 우리는 매번 반복했지만 또 다시 반복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전히 보수언론이 매순간 꺼내드는 '경제위기'에 움츠러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