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에세이] 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견디는가? /2016.2

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견디는가?

- 사람을 사람취급 안하는 교대제에 관한 단상



김보성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

 


24시간 생산이나 서비스가 지속되어야만 하는 사업장이 있다고 하자. 둘러보면 그런 사업장은 주변에 많다. 전기, 가스, 수도, 통신 사업장이나 병원은 24시간 국민에게 공공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생산기술이나 업무의 특성상 24시간 가동을 해야 하는 사업장도 있다. 철강, 석유화학 사업장에서는 기계와 설비의 특성상 사업장을 24시간 가동해야한다. 이런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교대제 근무를 피할 수 없다.

 

일하는 사람의 몸과 삶을 위하는 교대제가 상식인데...

24시간 운영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교대제를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미 설치된 설비를 많이 가동할수록 더 많은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믿을 경우, 사업주와 경영진은 24시간 조업을 지향한다. 24시간 연속이 아니더라도 조업시간을 최대한 늘리고자 한다. 자동차산업이나 유통서비스업이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이 경우에도 노동자들은 교대제 근무를 하게 된다.

이러한 곳의 교대제도는 어떻게 짜야할까?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활상 해악이 최소화돼야 할 것이다. 그것이 상식적인 판단일 것이다. <교대제 분류표>에서 볼 수 있듯, 교대제 근무는 심야근무, 순환근무, 전일근무 등의 특성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활에 수많은 해악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교대제도 설계에서 노동자들의 건강과 삶의 질은 1순위 고려대상이 되지 않는다. 노동자들의 건강과 삶의 질을 조금이라도 더 배려하려면 휴식과 휴일을 충분히 제공하는 근무시간표를 짜야 하는데, 그러자면 근무조를 추가 편성하고 인원을 늘려야 한다. 그러나 기업은 이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의 증대를 원치 않는다. 결국 교대조와 인력은 최소화되고, 노동자들은 공익기업의 이익을 위해 교대제 근무의 고충을 맨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던져진다.


교대근무가 불러 일으키는 착각

교대제와 관련된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국내의 몇몇 제철공장에 방문하여 노동자들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제철소. 생산기술의 특성상 24시간 365일 조업을 이어가야 하는 사업장이다. 제철소의 교대제는 <교대제 분류표>에 따르면 순환형-심야교대-전일교대-연속조업교대에 해당한다. 방문한 제철소들은 43교대제를 실시하고 있었다. 하루 24시간을 3개 조가 8시간씩 나눠 일하고 한 조는 휴무를 갖는 것이다.

인터뷰를 하면서 두 가지 점에 놀랐다. 하나는 인터뷰한 공장들에 43교대제가 도입된 것이 1990년대 후반 이후였다는 것. 이것은 이전까지 노동자들이 연속조업 사업장에서 이론상 휴무조가 없는 33교대제로 근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1365일 달력에 빨간 날이 하루도 없는 셈이다. 끔찍한 일이다. 예컨대 현대제철 인천공장의 경우, 1997년 말에 43교대제가 도입됐다. 그 이전에는 33교대제가 유지됐다. 1989년 이후 1987년의 효과로 그나마 월 3~4회의 휴무가 보장되었으나, 33교대제가 유지되고 인원이 부족한 현실 속에서 노동자들은 흔히 근무를 하고 휴일근무수당을 지급받는 것을 선택했다. 내가 출근을 하지 않으면 그 노동 부담이 동료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수밖에 없는 근무 환경 때문이다.

한보철강 처음 시작할 때는 22교대 맞교대로 계속 일하던 시절도 있었어요. 하루에 열두 시간씩. 교대 바뀌려면 토요일은 24시간 일해야 하고. 그렇다고 달에 쉬는 날이 있느냐. 그것도 없어요. 그냥 계속 그렇게 가는 거예요. 그때 어떻게 근무를 했는지, . 지금 생각해보면 끔찍해요. 그러다가 33교대로 넘어오니까, 시간이 많이 남는 것 같더라고요. 맞교대를 하다 보니까. (웃음) 주말에도 막 쉬는 것 같고. 사실 달에 두 번밖에 안 쉬는 건데. 43교대가 이제 7~8년 정도 됐나 그런 것 같은데, 아직도 사실 쉬는데도 적응이 잘 안 되는 게 있어요. 이게 한국사람 근성인지도 모르겠는데.” - 현대제철 당진공장 근무 노동자 인터뷰 (금속노조, 2014)


비인간적 교대제, 자본의 욕심만 채운다

위의 현대제철 당진공장 노동자 인터뷰에도 비슷한 상황이 그려진다. 36522교대제로 근무하다 33교대제로 바뀌니 시간이 많이 남는 것 같더란다. 하긴 1365일 휴일 없이 일하는 건 똑같아도 하루 노동시간이 12시간인 거랑 8시간인 건 차이가 많다. 그렇게 평생을 일하다 보니 43교대제가 도입되어 휴무조가 생기자 적응이 잘 안 되는지경에 이르게 됐다.

또 한 가지 놀란 건, 비인간적인 노동환경의 대표격인 33교대제가 지금까지도 많은 제철소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여전히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뷰한 모든 공장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는 예외 없이 33교대제가 적용되고 있었다. 43교대제로의 전환은 제철 대기업의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만 해당된 변화였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조를 조직해 교대제 전환을 요구하며 싸웠고 그래서 결국 43교대제를 쟁취했지만,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여전히 그 바깥에서 휴무조 없는 교대노동을 행하고 있다. 여전히 많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33교대제 하에서 정규직에 비해 턱없이 적은 월급을 받으며 더 어렵고 위험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비인간적 노동환경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얼마 전 귀가하는 길에 아파트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벽에 붙어있는 광고전단들을 멍하니 보고 있을 때였다. 맞교대근무를 하는 경비노동자들의 근무시간 조정 건에 관련된 공고문에 눈이 꽂혔다. 공고문의 요지는 ‘2016년도 최저시급 인상으로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의 근무/휴게 시간을 조정한다는 것이었다. 퉁명스러운 공고였지만, 내막은 금세 읽혔다. 최저시급이 인상되어 경비 노동자의 급여를 인상해야 하겠지만 입주민들의 반대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르니, 동결되는 급여폭만큼 경비노동자의 휴게시간을 늘린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사는 아파트의 경비 노동자들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작년보다 더 긴 휴식시간을 갖게됐다!‘2016년에 6,030원으로 인상된 최저시급 적용도 놓치지 않고 받으며말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나는 관리비를 조금 덜 부담하게 되려나 보다.


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두고 보고 있는가

제철공장 노동자 교대근무실태를 조사하면서 느꼈던 화와 모욕감이 되살아남을 느꼈다. 이놈의 사회는 도무지 노동자를 사람으로 대우해 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노동자의 시간과 급여 따위는 비용절감과 이익창출을 위해서라면 아무렇게나 주물러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1365일 휴일도 없이 일해야 하는 근무환경에서 휴무조도 없이 교대근무를 하게 하고, 최저시급 인상분을 휴게시간 연장이라는 장난질로 때워 먹는 현실. 일터에선 야근에 주말근무에 시달리면서도 집에선 또 다른 노동자의 시간을 쥐어짜고 유린하여 얻는 편리와 이익을 취하게 만드는 현실. 나도 당하면서 또다시 그런 현실을 직조하는데 공모자가 되게 하는 잔인한 현실. 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 우리는 왜 이런 현실을 두고 보고 있는가! 노동자를 일하는 기계쯤으로나 여기는, 그래서 쓰다 보면 망가지고 망가지면 갈아치우면 된다는 생각, 그리고 그 생각에 기반해 만들어진 제도와 관행을 물어뜯듯 파헤치고 바꿔내야 한다. 일하는 우리는 모두 인간이기 때문이다. 

 

<일터> 통권 145호 / 20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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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

[특집] 응답하라 삼성, 사과와 보상이 남았다

28 직업병 피해보상, 차별과 배제없이 이뤄줘야!!

30 재해예방대책합의의 의미

32 아버지, 나 잘하고 있는 거 맞지요?

34 근로복지공단과 고용노동부도 응답하라!!

36 반올림 투쟁, 이렇게 왔다


4 [노동안전건강뉴스]


8 [지금 지역에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대중운동으로!!!


10 [달려라 건강권, 날아라 노동자]

노안 활동 매력 느낄 수 있는 교육을 합시다


12 [안전보건활동 참고서]

실무 역량을 넘어, '건강권' 활동가로


14 [현장의 목소리]

아름다운 사람들의 비행을 꿈꾸며


18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기술자'라고 쓰고 '노가다'로 막 불린다


22 [연구소 리포트]

현장 노동자의 시선으로 본 한국의료의 부끄러운 실태


26 [사진으로 보는 세상]


38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피부병 생겨도 대체 어렵다던 금속가공유가 바뀐 사정


40 [지키고 되살리자, 작업중지권]

단협을 통해 작업중지권을 얼마나 강화시킬 수 있는가?


44 [시간의 재발견_노동시간 에세이]

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견디는가?


48 [문화읽기]

겨울 딸기 사랑해도 될까?


50 [유노무사의 상담일기 더불어 與]

별일 아닐 수도 있지만, 별일 아닐 수가 없다


52 [일터 다시 보기]

2016,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도 건강하길


54 [이러쿵저러쿵]

우리의 현재는 1988년보다 행복한가?


특집 3.좋은 노동시간 만들기 /2016.1

좋은 노동시간 만들기

 


이혜은 노동시간센터(준)



2015년 연말 즈음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노동시간센터에서는 <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삶을 소진시키는 노동시간의 문제를 건강, 가족, 청소년, 시간제 노동, 심야노동과 같은 다양한 매개로 풀어냈다. 여러 언론에서도 추천할 책으로 비중 있게 소개해주고 양대 인터넷 서점의 메인에 등장할 정도로 관심을 받았는데 이는 사실 저자들의 기대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한국사회의 장시간 노동 문제나 시간 주권을 찾고자하는 외침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닌데도 여전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새롭게 한 해가 시작되는지금, 노동자의 건강을 위한 투쟁 과제에서 노동시간 문제를 놓을 수 없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더 이상 이런 시간을 견디지 않기 위해 무언가 해야만 한다.

 

 

역시 노동시간 단축

지난 9월 노사정 대타협 혹은 야합이후 정부와 새누리당이 개악안을 밀어붙이면서 양보했다는 듯이 생색을 내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노동시간 단축이다. 한국의 근로기준법에 의하면 1주간의 근로시간은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으나 당사자 간의 합의에 의해’ 1주간에 12시간 한도 내에 연장근로를 할 수 있다. 마치 일주일의 최대 노동시간은 52시간인 것처럼 보이나 휴일 근로는 연장근로에 포함 되지 않는다는 기괴한 행정해석 덕택에 토, 일요일 각각 8시간을 근무할 경우 1주 최대 노동시간이 68시간에 달하고 이 관행이 암묵적으로 묵인되어 왔다. 이번 개정안은 대단한 개선이 아니라 상식적인 해석대로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켜 최대 노동시간을 진짜로 52시간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이건 그냥 당연한 바로잡음이다.


그런데 말도 안되는 생색내기에 한 술 더 떠서 새누리당이 내놓은 개정 법률안은 기업 규모별로 단계적으로 시행하고 18시간의 범위 안에서 근로자대표와의 합의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자고 한다. 그동안 애매한 해석에 기대어 장시간 근로를 강행시키던 것을 이젠 법적으로 보장받겠다는 의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OECD에서 밝힌 국가별 통계에 의하면 한국의 노동 시간은 OECD 국가 중 멕시코에 이어 2위로 길고, 2013년 연 2079시간에서 20142124시간으로 더 늘어났다. 고용노동부가 노동시간을 줄이겠다고 각종 정책을 펴고 자동차산업을 중심으로 주간연속 2교대제도 도입되었고 박근혜 대통령이 자랑하듯이 풀타임보다 짧은 노동시간의 시간제 일자리는 늘어났다. 이런 사회분위기에서 오히려 평균 연 노동시간이 늘었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나? 여전히 누군가는 어쩌면 꽤 많은 노동자들이 더 심하게 늘어 난 노동시간에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동시간 단축은 그래서 2016년에도 여전히 유효한 구호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질 좋은노동시간 단축

2016년은 완성차 사업장에서 2013년에 도입된 주간연속 2교대제(8/8+1)의 노동시간을 1시간 더 단축하여 8/8 노동시간제를 시행하기로 한 해이다. 2015,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에서는 금속노조 노동연구원과 함께 자동차 부품사 주간연속 2교대 시행 현황과 교대제 변화에 의한 영향연구를 수행했다. 이 조사에서 많은 자동차 부품사들이 완성차를 따라 주간연속 2교대제를 도입하고 야간노동과 노동시간을 줄여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만족은 하였으나, 노동시간의 질은 더욱 나빠졌다는 것이 드러났다. 특히 부품사의 경우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 이전부터 이미 노동 강도가 높은 경우가 많아 더욱 심각하였다. 게다가 일부의 경우에는 물량보전을 위한 사내하도급이나 비정규직 문제 등 의도치 않았던 쟁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아직은 견딜만해서 노동 강도를 높일 수 있었다고 응답했던 노동자도 이제 마지막 ‘1시간 단축의 싸움은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진행할 수도 없거니와 해서도 안 된다. "물량보전=임금보전"의 공식을 버리고 필요한 생활임금을 기준으로 한 월급제 도입, 적정 노동 강도와 적정 인력으로 생산할 수 있는 물량 책정,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의 표준적 노동시간을 요구해야 할 때이다.


좋은 노동시간을 위해

노동시간 싸움은 갈수록 복잡하고 어려워지고 있다. 모두 같이 출근해서 같이 일하고 같이 퇴근하고 노동조합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더 쉬운 출발이다. 한국사회는 고용의 유연화 뿐 아니라 노동시간의 유연화도 심해지고 있다. 문제는 노동자가 선호하는 시간대에 일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입장에서 가장 효율적인 시간에 노동을 배치하기 위해 쓰인다는 것이다. 반쪽짜리 시간제 일자리나 손님 이 뜸한 시간에 일을 못하게 하고 임금을 주지 않는 알바생들의 꺾기사례를 보라. 이메일과 스마트폰으로 어디서나 업무 대기 중이면 계약된 노동시간은 의미를 잃게 된다. 심지어 배달 앱 알바나 대리운전기사처럼 노동자로 인정 받기 조차 어려운 특수고용 노동자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제는 단순한 노동시간 단축을 넘어 이들의 좋은 노동시간을 위해 새로운 전략이 필요할 때이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노력해야 할 것은 결국 경계를 허무는 단결과 요구를 조직하는 일일 것이다.노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