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 강화되는 폭염, 고열작업자 안전대책 시급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5767


고용노동부 통계자료를 보면 2012년 이후 최근 5년간 열사병 같은 온열질환 재해를 입은 노동자는 58명이며, 이 중 11명이 사망했다. 폭염에 장시간 노출될 수밖에 없는 건설업 재해자가 31명으로 가장 많았고, 제조업 재해자가 11명으로 뒤를 이었다. 올해 들어 일사병이나 열사병 같은 온열질환자(노동자 포함)가 이미 376명 발생했고, 이 중 2명은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열사병의 원인은 태양이 아니라 저열한 제도/ 2015.7

열사병의 원인은 태양이 아니라 저열한 제도

 

 

류현철 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얼마 전 반가운 산재 승인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내심 재판까지 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했던 사안이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인정되어 승인됐다는 것이다.

 

지난해 늦여름이나 초가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조선소에서 일하던 만 23살의 젊은 하청 노동자의 '돌연사' 건으로 연락이 왔다. 그는 8월 한여름 낮에 조선소에서 작업하던 도중 혼자 쓰러진 상태로 동료 작업자에 발견돼 응급실로 후송됐으나 결국 사망했다.

 

담당 의사는 심근경색을 사망 원인으로 의심했고, 돌연사의 가장 흔한 원인이 되는 것이 뇌심혈관계 질환이기에 그쪽으로 가능성을 두고 있었으나 국과수의 부검 결과 뇌심혈관계 질환의 가능성은 배제됐다는 것이다.

 

"의사 선상, 뭐라도 쫌 방법을 찾아보소! 어떻게 안 되겠능교?"

 

부검 소견으로 산재의 가능성도 멀어지는 듯해 답답한 마음에 내게 연락을 넣었던 모양이었다. 부검 소견상 사인은 불명이었지만, 응급실 진료 기록상 간 수치가 높아서 급성 간 부전에 의한 사망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언급은 있었다고 했다.

 

당일 오전까지도 멀쩡하게 일하던 젊은 노동자의 급작스러운 죽음을 급성 간 부전으로 인한 것이라고 보는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았지만, 간 효소 수치가 급성 간 부전을 언급할 정도로 높았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열성 질환(열사병)의 경우에 간 효소 수치의 급격한 상승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뭐라도 '쫌' 해봐야 했다

 

최초 발견 후 후송된 응급실 진료 기록 전체, 부검 소견서, 과거 건강 검진 기록을 다시 검토했다. 최초 발견자의 진술을 다시 확인하고 고인이 일하던 조선소 현장을 찾아갔다. 그의 일은 선체 외부 용접을 하기 위해서 선체 안에서 용접할 철판을 100~120도까지 예열하고 용접이 잘 이뤄지도록 백킹제라는 것을 탈부착하는 업무였다.

 

그가 쓰러진 날은 8월, 한여름 낮의 날씨는 작업장의 열기를 더했을 것이다. 열사병의 가능성은 컸다. 그러나 열사병의 경과로는 너무 급작스러운 사망이었다. 의료 기록에서 응급 검사 기록상 높은 간 효소 수치, 심근경색으로 인한 사망으로 의심했던 심근 효소 수치의 증가(열사병의 경우에도 심근효소 상승 이 있을 수 있다)를 확인했다. 이 역시 열사병에서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역시 발견부터 사망에 이르는 시간 경과상 열사병으로 인한 사망의 가능성은 적었다.

 

그러나 최초 도착 시 질식 상태에 대한 언급, 응급 간호 기록지에서 기도 흡인을 할 때 음식물이 배출됐다는 사실 역시 확인했다. 최초 발견자가 말했던 구토의 흔적이나 얼굴이 검게 돼 있었다고 언급한 정황과 맞춰보면 기도 폐색으로 인한 질식의 가능성이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열사병으로 그렇게 이른 시간에 사망에 이르기는 힘들 것이고, 또한 정상적인 경우라면 술에 취하거나 뇌 손상도 없는 젊은 성인 남자가 구토로 질식에 이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열사병으로 활력과 의식이 떨어진 상태에서의 구토라면 다르다.

 

"열중증(열사병)으로 인한 활력 및 의식 저하를 동반한 구토, 구토물의 기도폐색으로 인한 질식사"가 의심됐고 기존의 문헌 자료 검토와 의무 기록, 현장 검토 기록을 첨부해 업무와 관련한 사망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업무 관련성 평가 소견서를 작성했다. 그 건이 다행히 산재로 인정되었다.

 

필사의 노동, 목숨까지 앗아갔다

 

근간의 일 중 적지 않은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먼저 젊은 조선소 하청 노동자의 외로운 죽음이 업무와 관련된 것이었음이 입증된 것이 중요한 의미이다. 남겨진 가족에게는 아주 작은 위안이라도 될 것이다. 또 한편으로 직업환경의학을 하는 의사로서의 작은 의미와 보람을 일깨워준 일이기도 하다.

 

응급실에서 처음 고인을 접한 의사 의견도, 국과수 부검의의 의견도 의학적 사실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으며 그들의 책무를 다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다만 그들은 고인의 직업과 일을 돌아볼 자리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 죽음이 의미하는 바를, 그 죽음의 진짜 원인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인은 열사병, 기도 폐색이면서 또한 원·하청 제도이기도 하다. 그것을 밝히고 이야기하는 것이 직업 환경 의학 의사의 일이다.

 

8월 한여름 거대한 강철 구조물 안에서 벌어지는 필사의 노동. 조선소 하청 업체 노동자는 추천을 받아 직영으로 들어가게 해준다는 직영 추천제가 주는 작은 희망에 매달려 그렇게 일하다가 쓰러졌다. 스물세 살이었다. 고인이 남긴 휴대 전화의 문자 대화들을 보라. 이런 현실에서 빚어진 노동자의 죽음이 업무와 관련한 사망임을 밝히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사후약방문일 뿐이다.

 

 

 

 

▲ 열사병으로 사망한 노동자 휴대폰에 남아 있던 문자

 

이런 애달픈 죽음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바로 이제부터 할 일이다. 열사병에 이르게 하는 혹독한 작업 환경이 개선돼야 할 것이며, 더불어 자신의 건강과 안전에 위협을 느끼게 되는 상황에서는 작업을 중단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를 줘야 한다. 어떻게든 직영이 되고자 가혹한 조건의 노동을 감내하고 휴식의 기회조차 내놔야 하는 현실 속에서 하청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은 위협받기 마련이다.

 

다시 뜨거운 여름이 다가온다. 노동자들의 건강을 열사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맞서야 할 것은 무심한 태양이 아니다. 열사병의 원인은 태양이 아니라 저열한 제도(制度)에 있다.

 

[언론보도] "너무 위험해서 못해요!" "그럼, 나가!" (프레시안 2015.07.16)

출처 :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8157

"너무 위험해서 못해요!" "그럼, 나가!"
[노동자 건강권 실태 ①] 위험 작업, 노동자의 '거부할 권리'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원 2015.07.16

 

 

 

지난 4월 한 달간 민주노총과 함께 '노동자 건강권 실태 조사'를 진행한 노동 안전·보건단체들이 전국 산업 단지 노동자 건강권 실태 조사 결과를 <프레시안>에 보내왔습니다. 이 조사는 서울 구로, 경남 녹산, 울산 매곡, 대구 성서 산업 단지에서 일하는 중소 사업장 노동자 757명을 대상으로 이뤄졌습니다. 대구 산업보건연구회, 마산·창원·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등 각 지역 단체들이 참여한 실태 조사 결과를 2회에 걸쳐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일 하다가 위험하다고 느낀 적 있었나요?"라는 질문에, 곧바로 "많죠"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금속노조 서울지부 남부지역지회 마리오아울렛분회 윤유석 부분회장의 말이다. 주말에는 10만 명도 찾는다는 대규모 아울렛 매장에서 시설 관리 업무를 했기 때문에, 일도 많고 위험한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2014년 여름은 무척 더웠다. 특히 7, 8월에는 하루 최고 33~35도에 육박하는 살인적인 폭염주의보였던 날이 많았다. 그 때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물류센터 외벽 도색 작업을 지시했다. 외부 업체에게 맡길 경우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었다. 1층은 그나마 낮기 때문에 할 만했다. 그러나 약 7미터 높이의 2층은 높기 때문에 작업 자체가 어려웠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비계나 '아시바 사다리' 설치를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는 페인트 붓을 장대로 길게 연결해 도색을 하라고 했다. 페인트 붓을 6~7미터 길이로 연결하라는 것이다. 어떤 곳은 안전 난간이 없는 2층 발코니에서 칠하기도 했다.

 

위험을 느낀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안전 도구인 안전모와 안전화를 요구했다. 회사는 그 요구에 한참을 뜸들이다가, 작업이 끝날 때쯤에야 선심 쓰듯이 가져다줬다고 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어지럼증과 구토 증상을 보였고, 수 명의 노동자들이 일사병으로 쓰러졌다. 한 노동자는 어지럼증이 너무 심해 구토를 하며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지만, 회사는 어떠한 조치도 없었다. 쉴 공간이 없어서 길바닥 나무 그늘에 앉아서 잠시 쉬는 것이 전부였다. 병원비 지급 또한 거부당했다. 노동자들은 폭염주의보 속에서는 작업을 자제해 달라고 수차례 구두 및 메일로 요청했지만, 회사는 그 요청을 묵살하고 쓰러지면 회사에서 책임질 테니까 그냥 작업 하라고 말할 뿐이었다.

 

이렇게 일하다 위험하다고 느낀 경우, "못하겠다"고 회사나 관리자에게 얘기하기는 어려운 걸까?

 

"못하겠으면 나가라는 식이니까요. 항의하면 해고라고 어디 써 있는 것은 아니지만, 회사가 지속적으로 외주화를 추진하면서, 신규 입사자보다 나가는 사람이 더 많은 상황에서 누구도 '위험해서 못 하겠다' 말을 못 하는 거죠. 더군다나 2014년 초에 외주화로 인한 권고 사직까지 내린 적이 있기 때문에 더 더욱 못한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죠."

 

일하다 위험해도 회사에 개선 요구 못해

 

일하다 위험을 느끼는 것은 비단 제조업이나 건설업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윤유석 부분회장처럼 제조업에서 일하지 않는 경우에도 일하면서 위험한 일을 많이 겪는다. 그러나 어떤 일을 하는 노동자든, 일하다 위험을 느끼는 경우에도 작업을 중단하기 어렵다. 이번 전국 산업단지 노동 건강권 조사에서도 '일하다 위험이 발생했을 때, 노동자가 작업을 멈출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22.6%가 노동자가 그런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응답했다.

 

작업 중단은커녕, 회사에 개선을 요구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산업 단지 노동자들의 12.2%는 일 하다가 병에 걸리거나 다칠 것 같은 위험을 항상 느끼며, 41.7%는 위험을 느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이런 위험을 느꼈을 때, 회사에 개선을 요구했다는 응답은 21.7%에 불과했다. 절반 정도는 회사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해결했고, 30.8%는 위험을 느꼈지만 무시하고 계속 일했다고 응답했다.

무시하고 일했다고 응답한 88명 중 39명은 '개선을 요구해도 회사가 들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답했고, 37명은 '늘 있는 일이라서 매번 개선을 요구할 수 없다'고 답했다. '불이익이 걱정돼서 개선 요구를 못 했다'는 답도 18명이었다(복수 응답).

 

제 역할 못 하는 정부와 사업주, 대신 노동조합에는 기대

 

정부가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해 제 역할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84.9%의 노동자가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다. 사업주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느냐에 대한 응답에서도 58.0%의 노동자가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다.

 

산업 단지 사업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규모 사업장이 산업 안전의 사각지대라는 것을 노동자들도 느끼고 있는 것이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안전 관리자나 보건 관리자 등 산업 안전·보건 체계와 안전·보건 관리 규정, 안전·보건 교육을 모두 면제 받는다. 사업장 규모가 작아서 자체적으로 안전·보건 체계를 갖추기 어렵다면 이를 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런 대책은 부족하기만 하고 지금으로서는 방치되고 있는 수준이다.

 

그 결과의 한 지표가 산업재해다. 고용노동부 산재 통계에 따르면, 2014년 1년간 산업재해를 당한 9만909명 중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비율은 32.4%,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비율은 81.0%에 달한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100명 당 1.19명이 산재를 당해, 5인 이상 사업장 전체 재해율 0.42%의 3배에 달한다.

 

공단 구조 고도화와 함께 산업 단지에서 늘어나고 있는 서비스 산업 역시 산업 안전의 또 다른 취약 분야다. IT산업(소프트웨어 개발 및 공급업, 정보 서비스업, 컴퓨터 프로그래밍, 시스템 통합 및 관리업 등)은 사업 규모와 관계없이 안전·보건 교육 의무가 면제된다. 사무직으로만 구성된 사업장은 산업 안전·보건 체계와 안전·보건 관리 규정, 안전·보건 교육을 모두 면제받는다. IT 노동자나 사무직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 직무 스트레스와 이로 인한 근골격계 질환, 뇌심혈관 질환이 사회적으로 알려진 것이 오래되었는데도 여전히 이렇다.

 

노동조합 있으면 건강이 나아질까?

 

정부와 사업주에 대한 이런 실망감에 비하여, '노동조합이 생기면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이 더 나아질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무려 40.6%의 노동자가 '매우 그렇다', 42.3%의 노동자가 '그렇다'고 응답해 노동조합이 자신들의 건강권을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크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노동조합을 향한 이런 기대는 근거가 있다. 기존의 여러 연구에 따르면, 노동조합이 있으면 노동자들이 집단 교섭을 통해 작업장 안전·보건 문제를 개선할 수도 있고, 작업 환경 및 유해 요인에 대한 지식이 증가하며, 작업장 내 안전 문화를 조성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노동자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이 기대는 아직은 말 그대로 '기대'에 불과하다. 대표적인 산업 단지인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노조 조직률은 2%라고 한다. 기대를 현실로 만들기 위한 행동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