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 우리가 함께 안다는 것 - 남보경 (2021 제2회 청소년 노동안전보건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우리가 함께 안다는 것

 

나는 작년 6월 초, 알바를 구했고 두 달 반가량의 짧고도 고된 노동을 하고 알바를 그만두었다. 내가 알바를 구하기 전부터 내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알바를 구하거나 이미 하고 있었다. 학교도 다니고 있고 고등학생이라 당장 입시 문제가 제일 시급했던 나에게는 시간적 여유도 없고 엄마도 강하게 반대하는데 굳이 알바를 구할 이유가 없었다. 아마 작년 초까지 계속 그런 생각을 해오던 도중, 어느 날 엄마, 아빠와 갈등이 심하게 일어났다. 그로 인해 독립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나는 이미 알바를 알아보던 중이었다.

알바를 구하는 가게는 항상 있지만, 청소년을 고용하는 가게는 손에 꼽는다. 알바 어플에 들어가 나이제한 없음으로 검색을 해도 항상 청소년은 고용 안 함을 내건 가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청소년은 아는 지인을 통해 알바를 구하거나, 가족들의 일을 돕지만 가끔 나처럼 운 좋게 청소년을 고용하는 곳을 만나 알바로 채용이 되기도 한다.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 친구들이 여러 가게에 전화를 돌리고 청소년은 구하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끊임없이 들을 때 다섯 가게도 안 되어 나를 고용하겠다는 곳을 만났기 때문이다. 알바가 구해졌을 때는 정말 너무 신이 났다. 나도 이제 사회인이 된 기분이 들었고 돈을 열심히 모아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자는 생각도 하며 한창 들떠있었다. 일이 힘들더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잘하게 되리라 믿었다. 하지만 내 생각과 현실은 꽤 달랐다.

나를 고용한 곳은 여러 매체에서 힘들다며 떠드는 고기 집이었고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았지만, 처음에는 크게 상관없으리라 생각했다. 처음 일을 배울 때만 해도 내가 하는 건 거의 없었고 같이 일하는 알바생이 대부분을 하며 일을 가르쳐 줬기 때문에 힘들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자연스럽게 나도 잘 하게 되겠지, 인정받겠지 생각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시간이 점점 지나며 실수를 해서, 포스기에 주문 찍는 걸 깜빡해서, 너무 느려서 등등의 이유로 혼이 나는 날들만 늘어갈 뿐이었다. 날이 가며 점점 일하는 능력이 늘어가고 육체적인 힘듦은 익숙해져 갔지만 날이 갈수록 혼나는 일이 늘어갔다. 처음에는 실수를 해서 혼이 났다면 나중에는 실수를 전혀 하지 않아도 느리다고 혼이 나고, 상을 꼼꼼히 안 닦는다고 혼이 나고, 손님이 없을 때에는 일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고 혼이 나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며 화를 냈다. 제일 억울하게 혼이 났던 건 사장님이 그릇을 높게 쌓아놓지 말래서 그대로 했는데 나중에 사모님이 왜 그릇을 충분히 높게 쌓아놓지 않았냐고, 아직도 자기가 가르쳐줘야 하냐며 혼을 냈을 때다. 그때는 아무리 열심히 해보려 노력해도 자꾸 하나씩 까먹는 스스로가 너무 미웠었다.

알바를 하며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을 했다. 일이 처음이니 모르는 게 당연하고, 실수하는 게 당연한데 매일 혼나며 스스로가 많이 위축되고 월급을 받을 때도 괜히 눈치가 보여서 쩔쩔맸다. 일을 하고 돈을 받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나는 일을 하고서도 내가 돈을 받는 만큼의 일을 하는지 항상 고민하고 자책했다. 실제로 나와 같이 일했던 오빠는 내게 네가 알바라는 자각이 있어야 해. 나도 알바이긴 하지만 돈을 주면 그 돈이 아깝지 않을 만큼의 일을 해야지.”와 같은 말을 했다.

나는 일을 하고도 돈을 떼어먹힐 뻔하고, 근로계약서도 못 쓰고, 주휴수당도 못 받고, 아팠을 때 욕을 한참 들어먹었다. 한번은 불판을 들고, 숯불 통을 맨손으로 잡았다가 손가락에 꽤 크게 화상이 난 적이 있다. 가만히 있어도 손가락이 너무 뜨겁고 아파 차가운 물을 컵에 담아 계속 잡고 있었지만 다른 일을 하느라 손을 떼면 금세 다시 손이 아파서 너무 괴로웠다. 하지만 크게 다친 것도 아니고 손가락 조금 다쳤다고 걱정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말을 하면 또 혼이 날까 너무 눈치가 보여 제대로 말하지도 못했다.

또 한 번은 정말 크게 아팠던 적이 있다. 열이 39도까지 오르고 목이 부어 죽도 두 입 먹다가 못 먹을 정도로 아팠었다. 학교도 이틀이나 빠졌었는데 몸이 아픈 것도 아픈 것이었지만 코로나 걱정도 있어서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장님한테 전화해보니 떨떠름한 목소리로 알겠다고 했다. 병원에 가도 약만 처방해주고 열이 안 내리면 다시 오라는 말만 들어서 특별히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약을 먹어도 열이 안 내리며, 나는 두 번째 전화를 해야 했다. 사장님은 그냥 일하기 싫어서 그러는 거 아니냐.’, ‘열나는 거 병원에 입원해서 링거 맞으면 금방 내리는데 왜 아무것도 안 했냐.’, ‘토요일에 갑자기 빠진다고 하면 대타도 없는데 그러면 어쩌냐.’ 등등 내가 아픈 걸 꾀병이라 치부하며 소리를 지르며 내게 화를 냈다. 나는 너무 억울해 눈물을 흘리면서 아니라고 해봤지만 믿질 않아서 결국 전화를 끊은 뒤 내가 갔던 병원에서 처방받았던 약 봉투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주기까지 했다.

멀쩡하던 내가 갑자기 열이 나고 몸살이 났던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갑자기 고된 노동을 하게 돼서 몸에 무리가 되서 열이 났던 거라고밖에 추측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아팠던 것에 대해 사장은 걱정은커녕 내가 꾀병을 부리는 건 아닌지 의심만 잔뜩 했다. 더 슬펐던 건 내가 그 당시에 했던 생각들이다. 아파서 하루, 이틀 빠졌다가 잘리는 건 아닌지, 또 혼이 나진 않을지 너무 무서워 전화도 겨우 했었다. 왜 아픈데 아플 걸 미리 알고 미리 연락해야 하고, 열이 펄펄 끓어도 꾀병이 아니라는 걸 애써 증명해야 하고 내가 푹 쉬고 나을 수 있도록 보장받지 못하는 걸까?

그렇게 하나, 둘씩 의문이 쌓이며 나는 겉핥기로만 알고 있던 근로기준법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게 된다. 비록 내가 일했던 곳은 근로기준법상 5인 미만 사업장이었지만, 5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사장이 약속한 시각만큼 일을 시키지 않고 일이 없다고 일찍 퇴근시키면 그만큼의 돈도 다시 받을 수 있었고, 근로계약서를 안 쓰는 것도 불법이고, 청소년은 밤 10시 이후부터 오전 6시까지의 야간 근로도 불법이고, 야간에는 야간수당이라고 원래 급여의 1.5배를 줘야 하며 알바라도 생리휴가에 퇴직금도 받을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정말 많은 것들이 있었다. 청소년은 근로계약 불이행에 대한 손해배상액이나 위약금을 정하는 계약도 청소년을 대상으로는 불법이었다.

나는, 그리고 나와 같은 청소년들은 지금까지 너무 많은 것들을 모르고살았다. 알바하며 주휴수당이란 것을 받아본 청소년은 아마 극소수 중에서도 극소수일 것이다. 보통의 청소년들은 주휴수당이라는 게 있는지도 잘 모르고 5인 이상 사업장과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사업장의 기준이 나누어지며 5인 이상 사업장이면 다양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얼마나 억울한 현실인가? 법을 잘 알지 못하면 내가 받을 수 있는 돈을 못 받고 내가 쉴 수 있는 날에 쉬지 못하고 아파도 내 돈으로 치료해야 한다. 하지만 청소년은 상대적으로 법에 대해 잘 알지 못할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은 청소년이 최대 몇 시간까지 일할 수 있는지, 어디서 일하지 못하는지, 그리고 근로계약서의 개념 정도까지만 가르친다. 5인 미만 사업장과 5인 이상 사업장이라는 게 있고, 주휴수당은 어떤 사업장이든 관계없이 받을 수 있고, 받아야 할 돈을 못 받으면 노동부에 찾아가 진정을 넣거나 민사소송을 걸 수도 있으며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 월급 400만 원 미만 근로자를 대상으로 무료로 소송을 지원하고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에게 보험 급여를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산재보상보험법 등 노동자를 위한 법이 다양하게 있다는 사실을 모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나는 이 모든 사실을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차이다. 내가 얼마만큼의 돈을 받을 수 있는지 보다 중요한 건, 내가 앎으로 인해 내 권리를 보장하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태일 열사도 근로기준법이란 것을 모를 때에는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일이 그저 시다들이 덜 힘들게 그들을 도와주는 것에서 그쳤지만, 근로기준법이란 게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 그는 달라졌다. 아는 게 있으니 힘이 생긴 것이다. 결국 그가 살아생전에는 원하는 바를 못 이뤘지만 자본가들이 그의 눈치를 보며 그에게 꼭 개선해준다는 거짓말이라도 하게 만든 것은 그가 아는 게 생겼고 그로 인해 무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앎이란 그런 것이다. 안다는 것은, 그저 머릿속에 있음으로 제 역할을 다하는 게 아닌, 그것을 꺼내어 쓸 때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보장받을 수 있는지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할까? 근로기준법만 알면 끝나는 걸까? 주휴수당만 받아내면 끝나는 걸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알아야만 한다. 당장 우리가 다니는 학교의 청소노동자, 급식노동자 등의 노동자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저 멀리 공장에 다니는 노동자들의 농성은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의 삶과 우리의 삶이 어떤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는지. 그들의 삶은 곧 우리 삶이다. 우리는 누구나 노동을 하고 살아간다. 그 말인즉슨, 내가 노동자로 살아가는 한 다른 노동자가 천시 받고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데 어떻게 내가 내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겠냐는 말이다. 저 사람들의 삶이 곧 내 삶이 될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싸우지 않으면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 또한 알아야 한다. 당장은 주휴수당 못 받은 것으로 끝나겠지만 나중에 가면 퇴직금도 못 받을 수 있고, 내가 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하고 천대받을 수 있고, 직장에 들어가 최저시급도 못 받으며 일을 할 수도 있다. 그 모든 것들을 알고서야 비로소 세상이 보이고 내가 보인다. 사실 다른 사람의 삶까지 알아야 한다는 말은 엄청나게 생뚱맞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사람의 삶이 이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청소년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성인인 노동자들에 비해 어리다고 더 무시당하는 경향이 있다. ‘어리니까 잘 모르겠지, 어리니까 그냥 고분고분하겠지.’ 등등. 이런 차별적인 생각들이 청소년 노동자들의 무지와 어우러져 나와 같은 사람들이 더욱더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살아가게 만든다.

특히나 여성 청소년 노동자들은 성희롱을 들어도 꾹 참고 넘겨야만 하는 상황을 많이들 겪게 된다. 나도 알바를 했었을 때 같이 일했던 오빠가 불편한 상황을 수도 없이 만들었지만, 그때마다 그냥 웃으며 넘겨야만 했다. 일하는 첫날부터 내게 성적인 이야기들을 수차례 해왔고 나는 그 상황이 무지하게 힘들었다. 웃으며 대하는 것도, 내 몸에 손을 대는데도 그러지 말라고 하지 못하는 것도, 집에 따라오지 말라고 할 수 없는 것도. 그 모든 것들이 내가 너무 예민한 탓일까 생각하고 고민하게 했다. 그렇다고 마냥 그에게 벽을 칠 수는 없었다. 우선 그는 사장의 조카였고, 일을 잘했다. 그래서 내가 등갈비를 어떻게 자를지 모른다거나 예약 손님이 왔을 때 상을 어떻게 차려야 하는지 헷갈린다거나 찌개류가 나갈 때 어떤 반찬이 나가야 하는지 헷갈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내게 모르는 게 있으면 다 물어보라고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혼나지 않게, 그리고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이면서 내게 성적인 얘기들을 꺼내고 집 가는 길을 허락 없이 따라오고 자꾸 불편한 얘기들을 해서 일을 그만둘까 고민하게 만든 사람이었다.

나와 같은, 혹은 나보다 더 심한 일을 겪는 사람들이 아주 많을 것이다. 직장 내 성희롱을 당해도 알바를 하는 곳은 작은 사업장이라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특히나 심한 일이 아닌, 어디 가서 말하면 그게 성희롱이냐 할 것 같은 일,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는 말을 들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일들은 밖으로 꺼내어 이야기하기도 꺼려진다. 이게 여성 청소년 노동자의 현실이다.

나는 알바를 하며 가게에서 겪었던 많은 일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너무 힘든 시간이었고 매일 욕먹고 첫날부터 성적인 얘기를 들어야 했고 내가 집 가는 길을 같이 일하는 오빠가 따라왔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로 인해서 내게 어떤 권리가 있는지,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는지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학습지 노동자로 일하며 유령회원으로 인해 자신의 월급이 부당하게 깎이는 경험을 겪은 엄마의 일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내 주변 사람들이 어떤 일을 겪는지에 더 눈이 가게 되었다.

청소년 노동자가 겪는 차별, 여성 노동자가 겪는 차별 등 직장 내에는 여러 차별이 있고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채 노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비록 작은 관심일지도 모르고 아무 도움이 되어주지 못하겠지만, 내가 알고 내 엄마가 알고 내 옆의 사람들이 안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고 그게 바로 연대이며 우리가 앎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함께 앎으로써 함께할 수 있고, 우리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싸울 수 있다. 싸우지 않더라도 덜 외로울 수 있고, 일터에서 더 당당해질 수 있다. 아주 작은 것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 전과 후는 아주 단단하고 얇은 유리벽이 그 사이를 가르고 있다. 분명히 다르다. 알기 전과 후는, 우리가 모르고 외면해오고 있던 것들의 단면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제 이 모든 것들을 알게 되었기에 함께일 수 있다. 청소년 노동자의 알 권리는 그렇게 실현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