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과로사통신] 대만의 과로사와 업무관련 정신질환 / 2020.04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대만의 과로사와 업무관련 정신질환 

 

 

 

황이링 / 대만 OSHLink 활동가 

 

 

 

첫 번째 대만 소식으로 대만의 과로 이슈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과로 문제는 특히 동아시아에서 두드러지는 문화현상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오직 일본, 대만, 한국에서만 과로 때문에 발생한 뇌심혈관계질환을 직업병 보상의 범주에 넣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대만에서는 과로와 관련된 질병의 산재 보상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산재보험국의 통계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9년까지 모두 679명의 노동자가 업무관련 뇌심혈관계질환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이 중 236명은 사망하였고, 173명은 영구적인 장애를 입게 되었습니다.

 

과로는 중요한 업무 유해요인입니다. 대만에서는 8일에 한 명씩, 노동자가 과로 때문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노동 시간을 증명하기 어렵거나, 엄격한 인정 기준 때문에 산재로 보상받지 못한 숨겨진 사례가 많기 때문입니다. 대만에서는 1991년 처음으로 뇌심혈관계질환의 업무상 질병 인정 기준이 발표되었습니다. 그러나 뇌심혈관계질환이 공식적인 직업병 목록에 오르지는 못했기 때문에, 업무관련성이 의심되는 사례들은 개별적으로 승인 여부가 결정되었습니다.

또, 업무상 질병 인정 기준이 매우 엄격했습니다. 직장에서 발생한 사례만 업무관련성이 인정됐고, 뇌심혈관계질환이 발병하기 바로 직전의 업무 부담만 고려됐습니다. 그래서 인정기준은 1991년 만들어졌지만, 2006년에서야 뇌심혈관계질환으로 산재 보상 승인을 받는 첫 사례가 나타납니다. 그 뒤로도 인정 기준은 몇 차례 수정되다가, 가장 큰 변화가 2010년에 일어났습니다. 난야테크놀로지(Nanya echnology Company)에서 일하던 추샤오핑(徐紹斌)의 과로사 때문입니다.

출근시간이 되어도 추샤오핑이 방에서 나오지 않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아버지가 방으로 들어갔고 그의 주검을 발견하였습니다. 당시 29세였던 그는 매일 12시간씩 일했고, 어떤 때는 16~19시간 일하기도 했습니다. 사망 전 달에는 연장 근무만 111.5 시간이었습니다. 그의 가족들은 그의 죽음이 과로사라고 확신하고, 산재 보상을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무실이 아니라 집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당시로는 업무상 질병에 해당하지 않았습니다. 회사는 그가 사망하자 정기적인 연장근무는 없었다고 발뺌했고, 결국 그의 유가족은 산재 보상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저는 입법의원 황수잉(黃淑英)의 보좌관이었고, 추샤오핑의 가족들은 황수잉 의원의 사무실에 와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우리는 유가족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관심을 촉구했고, 기자회견 이후 추샤오핑의 가족들은 대만사회의 많은 지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대만 노동부는 사회의 큰 압력을 받은 끝에 일본을 따라 직업병 인정 기준을 낮추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다음 해인 2011년, 직업병 인정 가이드라인이 개정되고 나서, 총 88명이 업무관련 뇌심혈관계질환으로 산재 보상을 받았습니다. 가이드라인 개정 전보다 2.6배 늘어난 숫자입니다.

업무 관련 정신질환과 자살

업무 관련 뇌심혈관계 질환 외에, 최근에는 업무 관련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점점더 많아졌습니다. 2009년 업무관련 정신질환 인정 기준이 수립되었지만, 그 후로 10년간 산재로 승인된 사례는 36건뿐입니다. 승인 사례 대부분은 산재 사고 후 발생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입니다.

그러나 많은 대만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 성과 압박, 직장 내 성폭력, 일터 괴롭힘과 관련된 정신질환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산재 보상 청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충분한 증거를 모으기 어렵습니다.

2009년 이후 대만 정부가 업무 관련성이 있다고 인정한 자살 사례는 7건에 불과합니다. 첫 사례는 2012년에 발생한 장페이퐁(張倍逢)의 자살 사건입니다. 그는 포모사 플라스틱 그룹(Formosa Plastic Group)의 안전관리자였습니다. 그는 공장 건설 현장의 안전보건 감독을 맡았는데, 하청 회사에서 안전 규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상사에게 상황을 보고하려고 했지만, 돌아온 답은 예정된 기한 내에 건설이 마무리되도록 눈감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막중한 부담감을 느낀 그는 결혼식을 1주일 남겨둔 2011년 10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죽기 전 그는 "정부, 회사의 안전요구사항을 충족시킬 수 없었습니다. 회사에 너무 미안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책임을 다하겠습니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그의 자살은 대만에서 처음으로 업무관련 자살로 승인되었습니다.
       
너무 많은 죽음이 계속되고 있기에, OSHLink는 2015년 <과로의 섬, 대만>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우리는 이 책에 과로로 사망한 대만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과로 문제가 왜 발생하는지 다루고자 했습니다. 책 발간 이후 대만 입법 의원들은 노동부에 과로 실태를 보고하도록 했고, 이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해, 드디어 의회에서 2주에 84시간이던 노동시간 기준을, 1주에 40시간으로 줄이는 법 개정안이 통과됐습니다. 우리가 해낸 일은 대만의 과중한 노동을 변화시키기 위한 작은 걸음에 불과했지만, 앞으로도 자신의 안전과 노동권을 지키려는 모든 노동자의 싸움에 계속 함께할 것입니다.

[일터 정신질환 짚어보기] 노동자의 정신적 고통이 산재가 되기까지 / 2020.04

[일터 정신질환 짚어보기] 

 

 

노동자의 정신적 고통이 산재가 되기까지

 

 

 

류한소 / 선전위원

 

 

 

노동안전보건운동의 역사는 '보이지 않는 고통'에 이름을 부여해 온 역사다. '직장 내 (성)폭력', '가학적 노무관리', '갑질', '직장 내 괴롭힘' 등 노동자가 일터에서 겪는 정신적 고통에 붙인 이름들의 목록이 그렇다. 노동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심리적 요인에 대한 관심은 20세기 중후반부터 대두됐다. 이 요인에는 자본주의의 주요 생산방식의 변화, 일터의 조직, 노동자에 대한 관리 및 통제 방식의 변화를 반영되어왔다. 따라서 정신건강의 침해를 호소하는 노동자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러한 질병을 일터에서 일으키는 위험 요인들 또한 많아진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을 바라보는 개인적/사회적 인식이 변했고, 의료지식 및 전문가도 변화했으며, 제도적 차원에서의 인정과 보상도 변화했다. 이렇게 다양한 사회문화적 각축장을 통해 이미 존재하고 있던 고통들이 이름을 얻으면서 노동자의 정신적 고통도 비로소 부상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국내의 정신질환 집단산재투쟁

국내의 정신질환 산재에 관한 논의는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탄압을 고발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도 정신질환 산재를 개별적으로 신청한 사례는 있었으나 노조탄압으로 인한 정신질환에 대해 집단으로 산재신청을 제기한 첫 사례는 2003년 청구성심병원 노동자들의 집단요양투쟁으로 알려져 있다.

연이어, 공황장애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말도 생소했던 2004년, 도시철도기관사들이 집단산재신청 투쟁을 시작했다. 당시 근로복지공단은 사상사고 경험 여부로 산재여부를 따졌지만, 이 투쟁들은 사고 경험 유무와 상관없이 구조조정으로 인한 1인 승무 등 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이 심각하게 침해될 수밖에 없는 근무환경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음을 밝히는 계기가 되었다.

비슷한 시기, 민영화에 따른 경영효율화를 위해 인력 퇴출 프로그램을 운영한 KT(2004년)와 노조탄압을 당한 하이텍알씨디코리아(2005년) 노동자들 역시 적응장애, 우울증 등에 대한 산재신청으로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알렸다. 이러한 투쟁들 때문인지 근로복지공단의 2006년 통계부터는 이전까지 작업관련성 질병에 '기타'로 들어가던 정신질환 항목이 별도 범주의 항목으로 분류됐다. 그 뒤로 2008년 이랜드 일반노조, 코스콤 비정규지부, KTX 새마을호 승무지부 등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에 대한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실시했으며, '적응장애',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같은 진단명은 문제를 제기하고 싸우는 사람들이 마주했던 현실을 고발하는 언어로 자리 잡았다.

2009년 쌍용자동차 문제는 정리해고와 국가폭력이 노동자뿐 아니라 그들의 동료와 가족들에게도 신체적 외상은 물론, 정신적 외상까지 입힌다는 것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2011년에는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와 무급휴직자, 그 가족을 위한 심리치유센터 '와락'이 개소했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심리적 위기상황을 치유하기 위한 '두리공감'이 개소한 것도 2011년이었다. 이처럼 '싸우는 사람들'의 마음 건강에 대한 관심은 2016년 여러 단체가 참여해 출범한 사회활동가와 노동자들을 위한 심리치유 네트워크 '통(通)통(統)톡(talk)'으로 이어졌다.

 


감정노동의 이슈화

정신질환 산재의 제도화 과정에서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감정노동의 이슈화이다. 감정노동이란 단어가 생소하던 2008년부터 민주노총 서비스연맹과 유통업종(백화점, 면세점) 노동조합들은 감정노동 문제를 부각시키고 산재 인정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 결과 2015년 3월, 양대 노총과 여러 단체로 구성된 '감정노동 전국 네트워크'가 출범했으며 같은 해 12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감정노동 문제를 제도화한 "서울특별시 감정노동 종사자의 권리보호 등에 관한 조례"가 통과됐다.

이와 더불어 KTX 승무원(2015년), 마트 계산업무 노동자 산재 인정(2016년) 등은 열악한 근무환경과 지속적인 성희롱 및 폭언에 시달리는 서비스업 노동자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산재로 인정하기 시작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콜센터에 전화를 걸면 나오는 "2018년 10월 18일부터 산업안전보건법에 고객응대근로자 보호조치가 시행됩니다"라는 자동음성도 오래전부터 감정노동의 이슈화를 위해 싸워 온 사람들의 성과다.

위에서 살펴본 조직된 노동자들의 집단산재신청으로 시작된 정신질환 산재에 대한 논의는, 이제 '갑질'이나 '직장 내 괴롭힘'이란 언어를 통해 노동운동을 넘어 한국사회에 만연한 악질적 갑을관계와 조직문화에 경종을 울리면서 일상의 민주주의를 재고하는 계기로 쓰이고 있다. 2017년에 설립된 '직장갑질 119'에 고발된 기가 막히는 사례들은 우리 일터가 얼마나 다양하게 노동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지를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이 결과, 비록 실효성에는 많은 비판이 있었으나 2019년 7월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면서 '직장 내 괴롭힘'이 법적으로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라고 정의됐고 정부 차원에서 이를 규제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이름을 부여하는 일, 우리가 해야 하는 일

정리하자면, 국내 정신질환 산재 논의는 '싸우는 노동자'들의 집단요양투쟁을 시작으로 감정노동의 이슈화를 거쳐 일터의 전반적 조직문화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데까지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어왔다. 이외에도 장시간 노동으로 발생하는 정신질환이나 자살 및 사고 현장을 목격한 노동자들의 트라우마 관리 등으로 논의영역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또한 무엇보다 여성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일상적으로 겪는 구조적 차별로서, 노동권과 건강권에 주요한 영향을 끼치면서도 그간 '노동 문제'가 아니라고 치부되어온 직장 내 성폭력과 이로 인한 여성 노동자들의 건강 피해를 업무상 질병으로 제도화하기 위한 노력도 정신질환 산재를 논의할 때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에서 언급한 사례들의 공통점은 노동과정에 계속 존재해왔지만 이름을 부여받지 못했던 정신적 고통들에 이름을 붙이고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장을 펼쳐왔다는 점이다. 아픔에 이름을 부여하고 인과적 설명을 통해 그 고통의 실체를 확인하며 그 고통이 발생하는 맥락을 찾는 일은, 그로 인한 아픔이 기존 지식체계나 타인에 의해 관찰되기 힘들수록 더욱 중요하다.

나아가 그 고통이 개인의 심리적 기질이나 배경이 아닌, 일터의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고통의 실체를 확인하고 발생하는 맥락을 찾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정신질환 산재에 대한 논의는 시작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향후, 기존의 좁은 인과관계 중심의 산재 논의를 사회적 협의 등으로 확장 시켜야 하며, 변화하는 자본주의와 이에 따라 변화하는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건강권을 사고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신질환 산재에 대한 논의가 그 사회의 전반적인 감수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깊고 다양한 토론이 요구된다.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한국은 과로자살이 뜨거운 이슈입니다 / 2020.03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한국은 과로자살이 뜨거운 이슈입니다 

 

 

 

최민 / 상임활동가 

 

 

 

대만과 일본, 한국의 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일하는 활동가입니다. 동아시아는 역사적, 문화적 공통점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공통점 중 하나는 노동시간이 길고, 과로사와 과로자살이라는 말이 일상적인 곳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한국과 대만, 일본의 노동인권과 노동자 건강을 위해 활동하는 NGO들이 모여 '동아시아 과로사 감시'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세 나라의 과로사나 과로자살 사건을 공유하면서, 서로가 처한 상황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 노동자들이 스스로 일터의 주인이 되어 과로사나 과로자살이라는 말이 사라지도록 만들기 위해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 보려고 합니다.

   "동아시아 과로사 통신"을 통해 공통적인 문제 양상을 발견하고, 동아시아 국가 차원에서 공동의 대응을 모색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첫 번째 이야기는 한국의 '과로자살'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과로사 못지않게, 과로자살이 뜨거운 이슈입니다. 과로사는 조금씩 변화를 기대해보고 있습니다. 2018년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그전까지 매주 68시간까지 합법적으로 일 시킬 수 있던 조항이 바뀌어 이제 주당 노동시간이 52시간으로 제한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운수업이나 감시 업무 등은 여전히 이 조항의 예외가 되어 무제한 노동을 시킵니다. 결국 많은 택시운전기사나 경비노동자들이 뇌심혈관질환으로 사망하고 있습니다. 연장노동시간 제한이 엄격해지자, 노동강도가 높아진 일터도 많습니다. 여전히 남은 과제가 많습니다.

그에 비해 과로자살은 최근에야 관심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은 자살률이 매우 높은 나라입니다. 2018년 총 1만3670명이 자살로 사망했습니다. OECD 평균 자살률의 2배가 넘습니다. 교통사고사망자 수의 3배에 달하는 숫자입니다. 한국의 자살률은 동아시아 경제위기가 있던 1998년 급격히 증가했고, 그 뒤 신자유주의 체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이래로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뚜렷한 사회경제적 변화 상황에서 자살률이 크게 늘어났는데도, '노동자들이 일터에서의 괴롭힘과 스트레스 때문에 자살하고 있다'는 인식은 최근에야 높아졌습니다.

한국 정부의 자살예방대책 역시 사회적 원인을 찾아 해결하기보다 자살에 대한 인식 개선, 자살예방을 위한 홍보와 정신보건 서비스 강화, 정신의학적 고위험군 관리에만 맞춰져 왔습니다. 사회적으로 자살자는 '유리 멘탈'이라는 낙인이 강해 일 때문에 발생한 자살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경우가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노동자의 자살이 언론에서 다뤄지고 있습니다. 2019년 연말과 2020년 연초에도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과로자살(Karo-jisatsu)이 여러 건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장시간 노동'뿐 아니라 업무과정에서 발생한 과중한 스트레스로 인해 노동자가 선택한 자살을 모두 과로자살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을 먼저 말씀드려야겠네요.

이런 정의는 먼저 과로사와 과로자살이 이슈가 된 일본의 사례를 따른 것입니다. 사실상 한국에서 하는 과로자살은 '업무 관련성 자살'(Work-related suicide)과 같은 말입니다. 2019년 12월 5일,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시범사업의 동료지원가였던 25살 뇌병변장애인 설요한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취업을 원하는 중증장애인 참여자를 발굴하고 상담을 제공하는 역할이었습니다. 그에게는 한 달에 60시간 일하면서 4명의 참여자를 발굴해서 한 명당 5번씩 상담을 해야 한다는 목표가 주어졌습니다. 임금은 고작 66만 원이었습니다. 사업을 주관한 공공기관은 중간 실사를 진행하겠다면서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그 동안 받은 임금 일부를 반납하라고 압박했습니다. 실적 채우랴 실사 준비하랴 부담이 컸던 설요한씨는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는 문자를 남기고 생을 저버렸습니다.

그런가 하면 2019년 11월에는 42세의 경마 기수가 자살했습니다. 한국에는 공식 경마장이 세군데인데, 그 중 부산경남경마장에서만 지난 10년간 7명이 자살했습니다. 이번에도 그 경마장이었습니다. 문중원씨는 경마장 운영과 관련된 비리를 고발하고, 말을 타다 다쳐도 보상도 받지 못하며, 위험한 말이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없는 기수의 현실을 알리는 유서를 남겼습니다. 그의 고용상 지위가 노동자가 아니었기에 통계상 산업재해로 계산되지 않겠지만, 우리는 그의 죽음 역시 '노동자가 일 때문에 선택한 과로자살'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조금은 달라 보이는 두 사건을 모두 과로자살이라고 부릅니다. 일터에서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지 못하고, 성과 압박과 경쟁 구조에 노동자가 벌거벗은 채 던져져 발생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극도의 스트레스가 무기력과 절망감으로 이어지는 순간 노동자 자살은 어디서든 발생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런 문제가 동아시아만의 문제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미국의 직장에서 벌어지는, 총기 난사 후 자살 사건이나 프랑스에서 대규모 구조조정 이후 연달아 발생한 자살 사례들도 같은 맥락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플랫폼이다, IT 혁명이다 하면서 노동자가 점점 더 개별화되는 지금, 더 많아지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듭니다. '동아시아 과로사 감시'가 이런 걱정스러운 상황을 바꿔나가는 작은 힘이 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