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호_연구리포트] 2021 한국 과로사•과로자살 발생 현황 이슈페이퍼

2021 한국 과로사과로자살 발생 현황 이슈페이퍼

 

장향미 회원, 노동시간센터

 

2020년도 한국 과로과로자살 현황

동아시아과로사통신은 한국(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대만(OSHLink), 일본(POSSE) 세 국가의 노동안전보건분야 시민단체가 과로사과로자살의 현황을 파악하고, 이에 함께 대응하고자 만든 네트워크입니다. 올해부터는 각 국의 매년 과로사과로자살 현황과 산재 승인율을 추적을 목적으로 한 이슈페이퍼를 발간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번 연구리포트 코너에서는 지난 2015~2020년 과로사과로자살 발생건수 및 산재승인율 변화 추세를 다루고 있는 한국의 이슈페이퍼를 싣습니다.

 

1. 2020년도 업무상 뇌심혈관계 질병과 사망(과로사 추정), 정신질환, 자살(과로자살) 산재

현황

2020년 업무상 뇌심혈관계 질병에 대한 산재 판정건수는 2,429, 승인건수는 929건으로 승인율은 38.25%이다. 이 중 사망자수는 273명으로 나타났다. 업무상 정신질환에 대한 산재 판정건수는 581, 승인건수는 396건으로 승인율은 68.16%이다. 업무상 자살에 대한 산재 판정건수는 87, 승인건수는 61건으로 승인율은 70.11%이다.

[1: 업무상 뇌심혈관계 질병, 정신질환, 자살 통계(2020)]

케이스

질병
총계(질병+사망) 사망
산재신청 승인 승인율 산재신청 승인 승인율
업무상 뇌심혈관계 질병 2,429 929 38.25% 670 273 40.75%
업무상 정신질환 581 396 68.16% - - -
업무상 자살(과로자살) 87 61 70.11% 87 61 70.11%

(자료출처 : 근로복지공단)

 

2. 업무상 뇌심혈관계 질병과 그로 인한 사망(과로사) 발생 현황

산재 인정을 받은 뇌심혈관계 질환 사망자수(과로사)2015149명에서 2019292명으로 매년 늘어나고 있다. 2018년 뇌심혈관계 질환의 산재 승인률이 41.28%로 전년대비 8.72%으로 상승하였는데, 이는 정부가 과로사 인정 기준을 완화한 영향이 크다. 2020년 뇌심혈관계 질환의 전체 산재 승인건수는 929건으로 전년대비 26.56% 줄었으나, 산재 승인 사망자수는 273명으로 전년대비 6.5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 상대적으로 과로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더 늘었다.

[2: 업무상 뇌심혈관계 질병(2015-2020)]

케이스


연도
총계(질병+사망) 사망
산재신청 승인 승인율 산재신청 승인 승인율
2015 1,970 482 23.45% 585 149 25.47%
2016 1,911 421 22.03% 577 150 26.00%
2017 1,809 589 32.56% 576 205 35.59%
2018 2,241 925 41.28% 612 266 43.46%
2019 3,077 1,265 41.11% 747 292 39.09%
2020 2,429 929 38.25% 670 273 40.75%

(자료출처 : 근로복지공단)

 

3. 업무상 정신질환 및 자살(과로사) 발생 현황

최근 6(2015~2020) 업무 관련 정신질환 및 자살의 산재 신청 및 승인건수는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이다. 업무 관련 정신질환 산재 인정률 또한 201538.18%에서 202068.16%로 증가하였고 업무 관련 자살 산재 인정률도 201537.29%에서 202070.11%로 증가하였다. 2018년 업무 관련 정신질환 및 자살 승인률이 전년대비 각각 15.85%p, 22.86%p 증가하였는데, 질병판정위원회 심사위원 구성의 변화와 함께 심사과정에서 판정 요건의 해석을 종전보다 폭넓게 해석함으로써 승인률이 전체적으로 높아진 영향에 따른 것이다.

[3 : 업무상 정신질환 발생 현황(2015-2020)]

케이스




연도
총계 승인질병상세
산재신청 승인 승인율 우울증 적응장애 급성 스트레스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불안장애 기타
2015 165 63 38.18% 17 13 9 14 2 8
2016 183 85 46.45% 14 21 5 25 4 16
2017 213 126 59.15% 52 32 8 21 1 12
2018 268 201 75.00% 72 53 15 36 5 20
2019 331 231 69.79% 66 78 15 39 13 20
2020 581 396 68.16% 113 162 23 55 19 24

 

[4: 업무상 자살(과로자살) 발생 현황(2015-2020)]

케이스




연도
총계 승인질병상세
산재신청 승인 승인율 우울증 적응장애 급성 스트레스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불안장애 기타
2015 59 22 37.29% 13 2 - - 2 5
2016 58 20 34.48% 7 - - - 1 12
2017 77 44 57.14% 34 - 2 2 2 8
2018 95 76 80.00% 49 2 3 1 3 18
2019 72 47 65.28% 25 1 5 - 2 14
2020 87 61 70.11% 41 1 1 - 3 15

(자료출처 : 근로복지공단)

 

4. 통계분석

1) 업무상 뇌심혈관계 질병과 그로 인한 사망

산재 인정을 받은 뇌심혈관계 질환 사망자수(과로사 추정) 는 2015년 149건에서 2019년 292건으로 매년 늘어나고 있다. 2018년 정부가 과로사 인정 기준을 완화하면서 이전 대비 과로사의 산재 승인율이 높아진 영향도 있다. ‘만성 과로’의 경우 기존에는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일 평균 60시간 초과하는 경우 업무와 질병의 연관성이 크다고 봤다. 2018년 개정된 고시에서는 기준 시간(52시간)을 추가하고, 업무 부담이 가중될 수 있는 조건을 추가되었다. 또 과로 시간을 산출할 때 야간근무는 주간근무 시간의 30%를 가산하도록 했다.

과로사 승인률이 높아졌다고 해도 전체 업무상 질병 승인율이 60% 정도인데 반해 최근 6년간 뇌심혈관계 질병에 대한 산업재해 신청자 3,767명 중 과로사 인정을 받은 노동자는 1,335명으로 과로사 인정률은 여전히 35%로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장시간 노동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2018년 7월1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에서 주52시간 근무제(주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가 시행되었고, 2020년1월1일부터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 2021년7월1일부터 5인이상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적용범위가 확대되었다. 그러나 2018년~2020년 기간 동안 매년 300명에 가까운 과로사 사망자수가 발생하였으며 과로사는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

지난 7월 17일 세계보건기구와 국제노동기구는 2000년~2016년 194개국의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뇌심혈관계 질환 사망자 실태를 분석한 공동연구보고서를 발표하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한국에서 10만 명당 5.9명이 장시간 노동에 의해 사망했다고 밝혔는데, 한국 통계청 자료에 대입했을 때 뇌심혈관계 질환 사망자는 2,610명으로 계산됐다. 해당 보고서의 수치를 통해 짐작컨대, 현재 산재 인정 통계에 잡히지 않는 과로사 사망자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2) 업무상 정신질환과 자살

최근 6년(2015~2020년) 업무관련 정신질환 및 자살의 산재 신청 및 승인건수는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이다. 업무 관련 정신질환 산재 인정률 또한 2015년 38.18%에서 2020년 68.16%로 증가하였고 업무 관련 자살 산재 인정률도 2015년 37.29%에서 2020년 70.11%로 증가하였다. 2018년을 기점으로 산재 승인률이 올라갔으나 산재 신청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OECD 보건통계(Health Statistics) 2021>에 따르면 한국은 인구 10만 명당

자살사망자가 24.7명으로, OECD 평균인 11명 보다 2배 이상이며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2019년 한국 자살사망자수는 13,799명이며 2019년 경찰청 변사자통계에서 직장 또는 업무상의 문제로 사망한 사람은 598명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2019년 업무상 자살 산재 신청건수는 72건으로, 경찰청 변사자 통계의 직장 또는 업무상 문제로 사망한 598명과 비교했을 때 업무관련 자살의 산재 신청건수는 약 12%로 여전히 매우 낮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됨에 따라 정신건강 악화와 자살 위험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 7월4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1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2020년 자살사망자 수는 잠정치 기준 13,018명으로 2019년보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사회적 영향이 본격화되는 2~3년 후 자살 증가 가능성을 예측하고 있다. 1998년 무렵 한국이 겪었던 IMF 시기에는 경제위기로 인해 직장을 잃거나 사업이 어려워지는 등의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많았지만, ‘회사의 어려움’을 이유로 진행된 구조조정 끝에 남은 이들의 업무상 부담 역시 늘어났던 시기였다. 당시 한국의 자살율은 급증했다. 코로나의 영향이 가시화되는 시기, 그러한 과거 경험이 반복될 수 있다. 과거에 대한 학습을 바탕으로, 과로사•과로자살이라는 사회적 재난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

 

 

[8월_과로사통신] 과로자살, 개인의 취약성이 아니라 노동조건의 문제로

과로자살, 개인의 취약성이 아니라 노동조건의 문제로

 

김다연 상임활동가

 

낮은 과로자살 산재 신청률, 과소보고 된 업무관련 자살

 

2018년 과로자살 산업재해(이하 산재’) 신청 건수는 95건으로, ‘직장 및 업무상의 문제로 자살한 이들 487명 중 19.51%에 불과했다. 2019년도에는 자살한 598명 중 72명만이(12%)신청했다. 그나마 공식적으로 보고되는 과로자살 건수도 실수치를 반영하기 어렵다. 이유는 경찰청에서 전체 자살 건을 자살 동기(원인)별로 분류하는 방식에 있다. 경찰청은 정신적정신과적 문제와 여타 다른 자살 원인들을 각자 독립적인 원인으로 설정하고, 이 중 한 가지를 선택하여 분류한다. 2014~2019년까지 여러 동기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건 정신적정신과적 문제였다. 하지만 설사 정신적정신과적 문제가 자살을 야기하는 직접적 원인이라 할지라도, 이는 동시에 다른 근본적인 원인으로 인해 나타난 결과일 수 있다. 혹은 다른 원인들과 혼재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복잡한 면면들은 고려되지 않는다. 결국 과로자살을 포함한 여러 자살 사건들이 단순한 정신적/정신과적 문제로 묻히는 경우들이 발생한다. 과로자살 현황이 온전히 집계되지 않고, 그나마 과로자살이라는 제 이름을 입고도 산재를 통해 공식적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매우 적은 현실. 정신적인 고통을 유발하는 노동현장의 조건들이 제대로 조명되지 않고, 많은 자살이 개인과 그 가족의 비극으로만 남고 있다.

그럼에도, 고무적인 변화도 있었다. 업무상 정신질환이나 자살에 관한 산재승인 기준이나 법원의 판결은 노동자의 자살이 그 개인의 취약성이 아니라 노동조건을 봐야 할 문제라는 점을 보다 인정하는 쪽으로 개선되어왔다.

 

과로자살 산재승인율의 증가

기본적으로 한국의 산재보험법에서는 자살을 스스로 고의적으로자해를 하여 사망한 것으로 보고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자살의 원인은 개인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다만 업무가 정신질환을 포함한 정상적인 인식능력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혹은 정신적 이상 상태를 유발했고, 그 이상 상태에서 비자발적으로자살로 내몰린 경우는 업무상 재해로 본다. 자살 그 자체가 아니라 업무로 유발된 정신 이상 상태가 있었는지에 방점을 찍는다. 산재보험법 대통령령에서는 후자에 해당하는 3가지 사유를 명시하고 있다.

(1) 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이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
(2) 업무상의 재해로 요양 중인 사람이 그 업무상의 재해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
(3) 그 밖에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하였다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

[1] 산재보험법 시행령 제36(자해행위에 따른 업무상의 재해의 인정기준)/2020.01.07. 개정안 기준

 

이 때문에, 일반 질병의 경우 산재승인을 받으려면 그 질병이 업무와 관련이 있다는 것만 입증하면 되지만 과로 자살의 경우는 이중 증명의 부담이 있다. 자살하는 당시 정신적 이상 상태였고 그 이상 상태가 업무와 관련성이 있다는 것 모두를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인 점은, 법원의 판정과 근로복지공단의 <정신질병 업무 관련성 조사 지침>모두 과로자살의 산재승인 가능범위를 확대해왔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정신적 이상 상태를 의학적과학적으로 명확하게 정신질환으로 판단되는 경우에 한정했다. 또 업무 때문에 발생한 정신질환과 자살의 인과성을 소극적으로 해석하거나, 당사자가 겪었던 정신질환과 자살이 업무와 관련이 있다고 해도 비슷한 업무를 하는 사회평균인에 비해 그 조건이 더 극심하지 않았다면 자살은 환경이 아니라 개인의 특이성에 기인한다고 봤다. 그러나 근래 법원은 개인의 내성적인 성격(현재까지도 일명 정신적 취약성으로 간주되는)이나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정신질환 유발 소인, 혹은 업무 외 다른 스트레스 요인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업무가 자체가 정신질환을 발생시켰거나 혹은 악화시켰고 그로 인해 자살을 했다면 산재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는 추세다. 근로복지공단의 <정신질병 업무 관련성 조사 지침> 역시 몇 차례 개정되면서, ‘정신적 이상 상태를 보다 폭넓게 해석하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왔다.

 

3차 개정 정신질병 업무관련성 조사 지침(2016년도 개정)에서는 자살의 업무관련성 조사 시 정신병적 이상 상태확인을 요구하고 있어, ‘정신적 이상 상태를 정신질환을 보유한 상태로 협소하게 규정한다. 하지만 제4차 개정지침(2019년 개정)은 정신질환에 국한되지 않는 이상 상태, 정상적인 인식능력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로 완화했다. 또한 제4차 개정 조사지침은 업무와 재해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한 명백한 증명이 아니더라도 사회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의 추정으로 증명할 수 있고, 망인의 내성적인 성격이나 자살 직전 정신병적 증상(환각, 망상, 와해된 언행 등)이 없었다는 사실도 그 인과관계를 증명하는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판시한 판결(대법원 2017. 5. 31.선고 201658840)을 참고사례로 싣고 있다. 이는 지침이 지향하는 방향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들은 산재 승인율에도 영향을 미쳤다.


2015년도 2016년도 2017년도 2018년도 2019년도 2020년도
신청() 59 58 77 95 72 87
승인() 22 20 44 76 47 61
승인율(%) 37.3 34.5 57.1 80 65.3 70.1

[2] 2015-2020 과로 자살 산재 현황(출처 : 근로복지공단)

 

물론 산재 신청률 자체가 매우 낮다. 게다가 자살이 산재일 수 있다는 인식 자체가 보편적이지 않은 문화에서도 산재를 신청한다는 건, 근거가 명확해서 승인 확률이 높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주를 이룰 것이다. 그러니 폭넓은 범위의 다양한 사례들을 포함한 시기의 승인율은 또 다를 수 있겠다. 그래도 2015년과 2020년을 비교할 시 2배 가까이 증가한 승인율은, 개인의 성격이나 유전적 특성보다 그가 처해 있었던 노동조건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쪽으로 변화한 질병판정위원회 내부의 가치관과 법원의 판결 추세, 산재에 대한 사회적 태도의 변화 등이 반영된 결과라 볼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산재보험법 시행령 제36(1) 중 세 번째 기준인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하였다는 것이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경우(20194차 개정지침)조항이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하였다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로 변경되었고, 이는 올해 1월 제4차 개정지침에 추가로 반영되었다. 여기서 상당인과관계의 인정이란 일반적인 경험과 지식에 비추어 그러한 사고가 있으면 그러한 재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인정되는 범위에서 인과관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며, 반드시 의학적과학적으로 명백하게 입증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그 인정되는 범위의 크기는 논쟁 지점이다. 그렇더라도 의학적 인정이라는 말이 빠졌다는 건 나름 큰 의미를 가진다. 바뀐 지침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던 이력이 없고 유서도 남기지 않은 경우나 급작스러운 환경변화로 단기간 내 큰 충격을 받아 자살한 경우와 같이 정신적 이상 상태를 의학에 의거해 입증하기 어려웠던 사례라도, 노동환경이 큰 정신적 고통을 유발할만 했다면 자살과 업무 사이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고 산재를 승인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과로자살, 정신적 이상상태 매개 없이 산재 승인 받을 수 있어야

 

정신적 이상 상태입증 요건이 이렇게 변화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이상상태를 과로자살의 산재승인 요건으로 두는 법 제도에는 여전히 비판 지점이 있다. 이미 기존의 여러 연구들은 자살이 이미 정신질환을 전제한다거나, 또는 자살은 본래 원천적으로 고의성을 부정할 수 없는 현상이고(위에 언급했듯 정신질환을 매개하지 않은 자살은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해 산재인정을 하지 않는다) 또 정신질환 발병 없이도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들이 존재하는 현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등의 다양한 의견들을 내놓아왔다. 어떤 근거가 더 합당한지는 논의가 필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노동자의 과로자살에서 정확히 지목해야 할 것은 정신질환이나 정신적 이상상태 여부가 아닌, 그 노동자가 얼마나, 어떤 식으로, 어떤 대우 속에서 일을 했는가를 봐야한다는 점이다. 법 제도 역시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보고서] 사무금융노동자 업무상 정신질환 실태 및 대응연구

사무금융노동자 업무상 정신질환 실태 및 대응연구 보고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와 사무금융노조는 2020년 '사무금융노동자 업무상 정신질환 실태 및 대응 연구'를 진행했다. 본 연구를 통해, 사무금융노동자들의 전반적인 정신건강 현황을 드러냄과 동시에, 금융업종 기업의 조직문화와 실적 중심의 일 문화, 감정노동과 정신질환 문제를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금융업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노동자 자살 문제와 업무상 정신질환 문제가 노동환경 및 기업의 성과주의 시스템과 어떻게 연관되어있는지 구체화하고 의미를 해석했다. 

_금융노동자_업무상_정신질환_실태조사_보고서_최종_제출용_★.hwp
1.25MB

 

1. 연구 배경

(1) 연구배경

(2) 연구목표 

(3) 연구방법


2. 기사 분석: 추세 

1) 연구 목표 및 방법

(1) 첫째, 금융업 자살 실태에 대한 우회적 탐색 

(2) 둘째, 금융노동자 자살은 어떻게 재현되고 있나?

(3) 셋째, 연구 방법


2) 연구 내용 

(1) 시기별 자살 실태

(2) 자살 사건은 어떻게 씌여졌나?


3) 소결: 증가 추세 그리고 원인의 개인화 

(1) 증가 추세

(2) 원인의 개인화

(3) 무엇을 할 것인가?


3. 설문 분석: 실태

1) 연구 목표 및 방법 

2) 연구 내용

(1) 참여자 특성 

(2) 심화분석 

3) 소결 


4. 면접 분석: 의미

1) 연구 목표 및 방법 

2) 연구 내용 

(1) 성과압박, 닿지 못할 숫자를 항상 이고 있는 삶

(2) 우리의 월급은 고객에게 욕 먹는 값

(3) 조직 내 괴물과 그 괴물을 키우는 구조 

(4) 기술 변화로 인한 과로와 구조조정의 불안 

(5) 일하는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더욱 강화시키는 것들

(6) 대응방안과 필요한 지지  

3) 소결 


5. 개선 방안 

1) 회사별 노동자 정신건강 증진 체계 수립 

2) 실적 중심주의에 기대지 않은 금융노동

3) 고객에 의한 스트레스도 달라질 수 있다

4) 노동조합의 중장기적 전략 및 정책 수립

 

[알아보자, Law동건강] 아파트 관리인의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 판례

[알아보자, Law동건강]

* 이번호부터 연구소 노무사 회원들이 노동 판례 리뷰, 현안 비평, 법제도 연구 등 노동안전보건 이슈를 다루는 코너를 시작합니다. 구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1. 들어가며

2020년 12월, 연구소 선전위로부터 <알아 보자, LAW동건강> 코너에 필자로 함께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당시에는 나 혼자만 필자로 하는 게 아니라 다른 노무사 세 분과 함께 쓰는 것이라 부담이 없을 것이라 생각 하여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작성 하려다 보니, 주제 선정부터 난관이었다. 이 코 너의 첫 기고자이기도 해서 부담도 되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지난 2019~20년 업무상 정신질환 연구모임에 함께 하며 정신질환 산업재해에 대해 조금 들여다본 인연을 바탕으로, 업무상 스트레스에 따른 자살과 관련한 판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2. 사건의 경위

이 사건은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재직하던 망인이 특정 입주민의 민원에 시달리다 2017.7. 사업주에게 사직 의사를 밝힌 이틀 뒤 자살한 사건*이다. 이후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이하 ‘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를 신청하였으나, 공단은 망인이 개인적, 경제적 문제, 정신적 취약 성 등 개인적 소인으로 자살한 것이라고 판단 하여 망인의 자살과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유족은 공단의 처분에 불복하여 고용노동부 산재보험보상재심사위원회 에 재심사를 청구하였으나 기각 당하였고, 이후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였다.

* 입주민의 지속·반복적인 민원 제기로 인한 업무상 스트레스 등으로 우울증세가 유발 및 악화되어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사례(서울행정법원 2020.9.18. 선고 2019구합 62826 사건) 

3. 사실관계

가. 망인의 업무 : 망인은 2011년 5월부터 아파트 위탁관리업체에 입사하여 LH 국민임대아 파트의 관리소장으로 근무해온 자로, 아파트의 LH 대응 및 입주민 민원처리를 총괄하였다. 주로 지자체 또는 LH의 지시사항 처리, 민원 해결 등 관리소장이 직접 담당하는 업무를 처리 하였다.

나. 망인의 업무상 스트레스 요인

① 이 사건이 일어난 아파트는 망인이 입사하기 전부터 국민임대아파트 전환 과정에서 LH와 입주민 사이에서 갈등이 있었으며, 이후에도 아파트 내 가건물 철거, 노인정 난방비 공 동부담, 동대표 선출 과정 등의 문제로 갈등이 지속적으로 발생하였다. 

② 특정 입주민 A의 지속적인 민원제기가 있었다. A는 수시로 관리사무소에 방문하거나 전화하여 층간소음이나 CCTV 관련 민원을 수 차례 제기하였다. A는 LH에도 직접 층간소음 민원을 제기하여, LH에서 최상층 끝집으로 이 사를 제안하기도 하였으나 A는 거절한 바 있고, 이후 LH는 망인에게 층간소음 관리위원회 를 구성하도록 하였다. 특히, 망인의 사망 이틀 전인 2017.7.20., 망인과 A는 1시간 가량 대화하였는데, 당시 A는 망인과 관련없는 LH직원으로부터 안내를 잘못 받은 부분에 대해 망인에게 삿대질하고 윽박지르며 질책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망인은 머리를 긁으면서 조아리듯이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었다.

다. 사건 발생 직전 상황 : 망인은 2017.7.20. A의 질책 이후 회사 대표에게 전화하여 사직 의사를 밝혔으나 대표는 만류하였다. 그러자 망인은 직원에게 책상서랍열쇠와 인장 등을 인계하고 일찍 퇴근하였으며 다음 날인 7.21. 결근한 뒤, 7.22. 새벽 자택 부근 산책로에서 나무 에 목을 매어 사망하였다.

라. 망인의 개인적 스트레스 요인 : 2017년 초 망인이 투자하고 있던 부동산에서 세입자와 의 문제로 법원 이야기가 오가는 등 법적 문제 가 있었다는 동료 직원 진술이 있다.

마. 망인의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내역 : 망인은 2017.7.11. 및 2017.7.19. B정신건강의학과에 내원하여 진료를 받았고, ‘혼합형 불안 및 우울 장애, 비기질성 불면증’ 진단을 받았다.

4. 법원의 판단

법원은 공단과 달리, 망인은 입주민의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민원 제기로 인한 업무상 스트레스가 개인적인 경제적 문제와 정신적 취약성 등의 요인에 겹쳐서 우울증세가 유발 및 악화되었고, 그로 인하여 정상적인 인식능력등이 결여되거나 현저히 저하된 상황에서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하여, 유족의 손을 들어주었다. 특히, A의 잦은 민원과 이 과정에서의 A의 언행으로 망인이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 놓였 일터을 것을 인정하면서, 2017.7.20. 사직의사 표시 이후 다음 날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도 식사를 거의 하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한 채 불안감을 호소하다 사망에 이른 점에서 2017.7.20. A 의 민원이 자살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였다고 판결하였다. 또한, 망인의 정신건강 의학과 상담기록에서 부동산 문제가 있기는 하나 객관적으로 밝혀지지 않았고, 이 외에도 업무와 관련한 상담 내용도 있던 점을 고려하였을때, 2017.7.20. 상당한 업무상 스트레스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개인적 소인의 발현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하였다.

5. 이 판결의 의미

2017년 이후 대법원은 자살의 산재인정 여부와 관련해, “업무상의 재해란 업무수행 중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근로자의 부상·질병· 신체장애 또는 사망을 뜻하는 것이므로 업무와 재해발생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그 인과관계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증명하여야 하지만,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며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따라서 근로자가 극심한 업무상의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정신적인 고통으로 우울증세가 악화되어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하여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단할 수 있는 경우라면,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 관계가 인정될 수 있고, 비록 그 과정에서 망인의 내성적인 성격 등 개인적인 취약성이 자살을 결의하게 된 데에 영향을 미쳤다거나 자살 직전에 환각, 망상, 와해된 언행 등의 정신병적 증상에 이르지 않았다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대법원 2017.5.31. 선고 2016두58840 판결 참조).”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 사건 또한 위와 같은 법리에 따라 망인의 자살과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한 것이다.

이 사건에서 공단과 법원의 판단이 상반되는 지점은 망인의 부동산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공단은 망인의 상담기록에서 주로 부동산 문제가 언급되고 동료 직원이 2017년 초 망인이 부동산 문제로 고충을 겪고 있다고 진술한 점을 토대로 부동산 문제로 인해 우울증세가 발현되어 자살하였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 인다.

그러나 이러한 공단의 판단은 개인적 취약성이 있더라도 규범적으로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경우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판례의 입장과 다르게, 개인적 취약성을 산재 불승인에 대한 적극적인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특히, 이 사건 공단의 불승인 처분 및 고용노동부의 재심사 청구 기각이 앞서 언급한 대법원 판결이 있었던 2017.5.로부터 1년 이상 지난 시점에서 이루어 진점을 생각해보면, 여전히 개인적 취약성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을 알 수 있다.

이 사건은 다행히 법원에서 원처분이 취소 되었으나, 취소되기까지 약 2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러나 다른 유족이나 재해자도 똑같이 이 기간을 감내할 수 있을까. 산재를 신청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것은 공단에서 산재 인정이 되는 것이고, 이것이 ‘신속· 공정한 보상’을 목적으로 하는 산재보험의 취지일 것이다. 법원까지 가지 않더라도, 산재신청과정에서 규범적으로 업무와 재해 간 상당인과관계가 추단된다면 개인적 취약성의 여부와 관계없이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코로나 시대, 한국의 과로사와 과로자살 / 2020.12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코로나 시대, 한국의 과로사와 과로자살

 

장향미 / 한노보연 회원 

 

일터에서의 과로는 너무나 흔하지만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을만큼 심각하다. 나는 2018년 과로 자살로 여동생을 잃은 이후로 과로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후 한국, 일본, 대만의 비영리단체들이 운영하는 「동아시아 과로사감시(Karoshi Watch in East Asia)」에 함께 하며, 과로사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사람들에게 알리고 함께 해결해나가기 위해 노력해왔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동아시아과로사감시팀이 2020년 대한직업환경의학회 가을학술대회에서 발표할 기회를 얻어 한국의 과로사 실태에 관하여 발표문(20년 11월 14일)을 작성하였고, 발표문을 여기 싣는다.

노동자 억누르는 과로와 업무상 정신질환

먼저 한국의 과로사 현황을 살펴보자. 2015년부터 2020년 6월까지 한국에서 뇌혈관 및 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한 경우의 산재 보상 자료를 보면, '과로사'로 분류된 산업 재해 신청 건수는 2015년 585건에서 2017년 576건으로 감소했으나, 2018년 612건, 지난해인 2019년에는 747건으로 다시 증가하고 있다. 올해 2020년 6월까지의 신청 건수는 373건이었다. 이 중 산재로 인정되는 과로사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2015년 149건에서 2017년 205건, 작년 2019년은 292건으로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 2019년 승인율은 39.1%로 2018년보다 낮았고, 산업 재해로 인정된 것은 292건으로 2018년보다 26건 증가했다.

업무로 인한 정신질환 산재 신청 자료를 보면, 2014년~2018년까지 지난 5년 동안, 966명의 근로자가 직장에서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았으며 이 중 35%가 자살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 중 522건만이 승인을 받아, 승인율은 약 54%에 불과하다. 승인받은 정신질환 산업재해 건수 중에서, 176명이 사망한 경우였다. 사망 원인을 분석한 결과 약 80%가 '과로와 스트레스'로 자살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가 과로 가중시킨 2020년

▲   과로는 열심히 일 한다는 미덕이 될 수 없다. 정신질환과 자살 등 노동자 안전과 건강을 헤치는 심각한 문제다. 출처: 정희망,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사진전 "오늘도 다녀오지 못했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계속되고 있고, 감염병은 노동 시장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올해 자료는 아직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코로나19가 미친 영향을 말 해볼 수 있겠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 온라인 플랫폼 기반 음식 배달 서비스와 기존 배달 서비스 모두 빠르게 성장했다. 그 사이, 2020년 10월까지 총 13명의 택배 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했다. 올해 9월 택배과로사대책위원회는 800명의 배송 기사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했는데, 배달 노동자의 주당 평균 근무 시간은 71.3시간이었다. '3개월 동안 주당 60시간 이상' 또는 '1개월 동안 주당 64시간 이상'을 기준으로 하는 과로사 인정 기준(고용노동부 고시)을 넘는다. 응답자의 91%는 코로나 이후 근무 시간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배달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라 독립된 사업주로 간주된다. 따라서 회사는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주당 40시간의 노동 시간을 준수할 필요도, 배송 기사의 사망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질 필요도 없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특수고용노동자에 관한 특례에 따라 보험에 가입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업주와 노동자가 보험료를 50:50으로 나눠 내야 하고, 스스로 보험 가입을 거부할 수 있기 때문에 보험가입률이 매우 낮다.

공무원들도 코로나19로 인해 과로로 고통받고 있다. 방역을 맡은 공무원 3명이 올해 상반기 과로로 사망했다. 공무원 및 지방 공무원 복무규정에 따르면, 주 40시간 근무가 원칙이지만, 행정 기관 또는 지방 자치 단체의 장은 초과 근로나 토요일/공휴일에 근무를 지시할 수 있다. 또, 전시·사고·​​재해로 인한 비상 근무 시 휴가를 제한하고 있으며, 토요일/공휴일/야간에 비상 근무가 가능하다. 공무원 복무 규정에 따르면, 놀랍게도 토요일/공휴일 근로 혹은 비상 근무 시에는 초과근무시간에 대한 제한이 없다.

노동과 노동자 자살

한국자살예방센터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잠정적인 여성 자살 사망자 수는 1,924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1% 증가했다. 이는 남성 자살률이 6.1% 감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87년도 이래로, 여성 자살률만 증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여성 자살률 증가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일자리 감소였다. COVID-19의 영향은 여성 노동자가 대부분인 대면 서비스 산업에 집중되었다. COVID-19가 돌봄의 부담을 증가시킨 것도 여성의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미쳤다. 한국의 자살률은 IMF 금융 위기 이후 급격히 증가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우울증과 자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 역시 있다. 택배 노동자들의 끊임없는 투쟁과 과로사에 대한 사회적 관심 증가로 인해 한국에서는 택배산업이 시작된 지 28년 만에 처음으로 8월 14일이 '택배 없는 날'로 지정되었다. 택배회사들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분류 작업에 추가 인력 배치, 배송 기사들에게 산재 보험 가입을 장려하는 등의 방안들을 발표했고, 정부도 조치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제 약속이 실제로 이행되는지 지켜봐야 한다.

희망을 만드는 길

피해자들과 유족들은 자신들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바탕으로, 중요한 사회 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올해 피해자들과 170개 NGO 및 사회단체가 모여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를 출범시켰다. 기업의 과실로 노동자와 시민이 건강에 손상을 입거나 재해를 입은 경우, 기업과 정부 모두가 그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법을 만들자는 것이다. 10만 명의 동의를 얻었기 때문에, 이 법안은 국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우리는 변화를 원하고 만들어 낼 것이다.

[일터 정신질환 짚어보기] 산재보험 취지에 부합하는 업무상 정신질환 판정을 요구한다 / 2020.07

[일터 정신질환 짚어보기] 

 

 

산재보험 취지에 부합하는 업무상 정신질환 판정을 요구한다

 

 

박경환, 이성민 / 한노보연 회원 

 

 

산업재해 신청 사건을 진행하다 보면, 재해자의 산업재해 신청에 대한 사업주 의견이 제시되는 경우가 있다. 사업주의 의견은 주로 ①이 사고(혹은 질병)는 재해자 개인의 잘못으로 발생했으므로 산업재해가 아니다 ②같은 환경의 다른 직원들에겐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재해자에게만 발생한 질병이기에 산업재해가 아닌 개인적 질병이라는 취지의 주장이 주로 담긴다.

이런 내용의 사업주 의견을 접하면, 사업주들이 업무상 재해 원인을 재해자와 함께 일했던 동료 탓으로 돌리고 모든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가 느껴져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대부분의 경우 그런 주장은 업무상 재해 인정 여부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을 알기에 나는 담담히 무시하곤 한다. 

왜냐면 '무과실책임의 원칙'에 따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재해자의 과실로 발생한 사고(질병)도 보호 대상에서 배제하지 않으며, 업무상 재해를 판단할 때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일반적으로 보통의 체격이나 건강 상태를 가진 '사회 평균인'이 아니라 '재해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근거가 되는 판례는 다음과 같다.

▲   정신질환의 업무상 재해 판단은 산재보험제도의 무과실책임 원칙에 따라야 하므로 재해자의 과실 여부는 판단 요소가 아니다. 고려 요소는 재해자의 업무상 스트레스이다.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근로자의 과실을 이유로 책임을 부정하거나 책임의 범위를 제한하지 못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해당 재해가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에 규정된 근로자의 고의·자해 행위나 범죄 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돼 발생한 경우가 아닌 이상 재해 발생에 근로자의 과실이 경합돼 있음을 이유로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하는 경우에는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대법 2017. 3. 30. 선고 2016두31272)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사회 평균인이 아니라 질병이 생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대법 2017.8.29. 선고 2015두 3867)

따라서 사업주가 업무상 재해 책임을 재해자에게 전가하거나 설령 산업재해의 과실 원인이 재해자에게 있다 하더라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의거해 보상은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재해자 개인의 질병 감수성이 사회 평균인과 다를 경우, 재해자 개인에게 초점이 맞추어져야지 사회 평균인의 기준을 근거로 업무상재해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판례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에서 정신질환의 업무상 재해를 판단한 경우를 살펴보면 산업재해 보상제도의 업무상 재해 판정 원칙과 모순되는 결과를 빈번히 볼 수 있다.

개인 과실로 인한 업무 스트레스

(사례1) 유치원 교사인 A씨는 최근 우울증을 진단받았다. A씨는 일터에서의 업무 미숙으로 인해 동료 노동자들과 갈등이 있었으며, 업무수행 중 발생한 실수에 대해 징계 처분을 받기도 하였다. A씨는 최근 우울증의 원인이 일터에서의 업무 스트레스라고 생각했다. A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우울증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업무 스트레스의 발생 원인이 A씨의 과실이므로 A씨의 우울증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결과가 담긴 통지서를 받았다.

다른 업무상 재해 사건과 달리 정신질환의 산업재해 신청 사건에서는 일터에서의 '개인의 과실' 여부를 비교적 자세히 살펴본다. 가령, 근로복지공단은 '업무 관련성 조사 지침'을 통해 정신 질병의 업무 관련성 조사 시 ①사고와 관련하여 본인의 고의 또는 법이나 규칙 위반이 있었는지 ②법적 문제나 감사 등에 연루된 사건인지 등을 조사하도록 한다. 재해조사 과정에서 업무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 사건에 재해자의 과실이 확인되면, 업무상 재해 판단에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정신질환의 업무상 재해 여부를 판단한 질병판정위원회의 판정 근거를 살펴보면, 상당수 사례에서 재해조사 결과, 일터에서의 업무 스트레스를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업무 스트레스가 '개인의 과실'과 결부되었다는 점을 근거로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고 판단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한 상병이지만, (당해 스트레스를 유발한) 귀책 사유는 재해자 본인 요인이 더 크다고 사료됨.", "정당한 징계에 의한 스트레스 이외에 다른 업무상 스트레스가 확인되지 않은 점을 고려하였을 때, 신청 상병의 발병에 있어서 업무적 요인의 기여도 보다는 개인적 요인의 기여도가 높은 것으로 판단됨."

개인적 취약성에 따른 스트레스

(사례2) B씨는 회사에서 업무를 시작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회사의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업무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던 B씨는 '불안장애'를 진단받았다. B씨는 '불안장애'에 대해 산업재해 신청을 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B씨의 업무가 통상적인 근로자들이 수행하는 업무이며, 높은 수준의 업무 스트레스가 없었을 것이라며 불승인 처분을 통지했다.

업무상 재해로 불승인된 정신질환의 질병판정위원회 판정서에는 '개인적 취약성'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이때 '개인적 취약성'은 주로 청구인이 통상적인 업무를 했기 때문에 정신질환이 발생할만한 수준의 업무 스트레스에 노출된 것은 아니라는 결론, 혹은 일터에서의 업무 스트레스는 확인되지만, 사회 평균인이 용인 가능한 수준의 스트레스이므로 신청한 정신질환과는 무관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데 사용된다. 이런 판단에 객관적인 기준을 찾아보기는 힘들며, 통상 판정위원들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정신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업무 스트레스 수준이 결정되는 것으로 보인다.

"근무 중 상사와의 마찰, 폭언 등은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극단적 스트레스로 보기는 어려워 '우울장애'를 인정하기 어려우며 (중략) 업무 관련성 보다는 개인적 소인 및 취약성, 스트레스에 의한 것으로 보임.", "직장 내 상사와의 갈등상황 및 부당해고가 일부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심각한 심리적 타격을 주었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움이 있어 (중략) 개인적 취약성 및 생물학적 요인에 의해 발병한 것으로 판단됨."

정신질환이라고 판단 기준이 달라야 할 이유는 없다 

산재보험제도는 무과실 책임의 원칙과 질병에 대한 개인의 감수성을 고려해 업무상 재해 여부를 판단하도록 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정신질환의 업무상 재해 판단에 있어 '개인 과실'과 개인적 소인이 불승인 처분의 근거로 제시되는 경우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정신질환의 업무상 재해 판단은 일터에서 재해자에게 업무스트레스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 즉, 정신질환과 관련된 업무 스트레스에 대한 재해자의 과실 여부를 평가할 필요는 없으며, 업무 스트레스가 재해자의 과실로 발생했다고 해도 재해자가 겪은 업무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원칙을 무시한 판정은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무과실책임 원칙'과도 모순된다.

또한, 업무 스트레스에 대한 개인적 감수성을 고려한 판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사회 평균인의 입장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라도, 재해자 개인에게는 상당한 업무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다. 현재 근로복지공단은 '개인적 취약성'을 다른 업무 스트레스 요인을 배제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데, 재해조사 과정에서 재해자의 성격이 스트레스에 취약하다고 판단된 경우 이는 불승인의 근거로 제시될 것이 아니라 업무 스트레스에 취약한 개인적 감수성을 고려해 상병의 업무 관련성을 긍정하는 방향으로 검토돼야 한다.

'신속하고 공정한 보상'이라는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목적을 다시 생각해본다면, 적어도 업무상 재해의 판정 원칙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일이 가능해질 것이다.

[일터 정신질환 짚어보기] 업무상 정신질환 여부, 어떻게 결정되나 / 2020.06

[일터 정신질환 짚어보기] 

 

 

업무상 정신질환 여부, 어떻게 결정되나

 

 

최민 / 상임활동가 

 

과로사는 임상 진단명이 아니다. 이미 발생한 뇌심혈관질환 사망에 '과로'가 원인이 되었는지를 사후적으로 평가하여 붙이는 사회적이고 제도적인 이름이다. '업무상 정신질환'도 마찬가지다. 진단을 따로 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진단된 다양한 정신질환에 대해 업무상 요인이 발생의 원인인지, 또는 악화 요인으로 상당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평가한 뒤에 사후적으로 붙는 이름이다.

일하는 도중에 일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업무상 사고'와는 달리, 업무상 질병은 업무 중 뿐만 아니라 집에서 쉬다가, 혹은 퇴직한 이후에 발병할 수도 있고, 업무의 어떤 요인이 어떻게 질병을 일으켰는지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업무상 사고와 업무상 질병은 다른 판정 과정을 거친다.

근로복지공단은 지역본부별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를 운영한다. 해당 질병과 관련된 임상의사, 직업환경의학 의사, 인간공학자나 변호사, 노무사, 산재보험전문가 등 전문가들로 질병판정위원을 구성하고, 이들 중 5~7명으로 판정회의를 열어 재해자의 신청서, 근로복지공단 지사에서 실시한 조사 내용 등을 기초로 업무상 질병 여부를 결정한다.

2018년 한 해 동안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검토한 건이 1만 건이 약간 넘었는데, 한번 회의에 10건 정도씩 검토하다보니, 판정 결과가 나오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산재로 승인되는 정신질병

정신질환도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위와 같은 절차를 밟는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에서는 '근로기준법' 제76조의2에 따른 직장 내 괴롭힘,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업무상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질병을 따로 명시하고 있다.

또,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별표 '업무상 질병에 대한 구체적인 인정 기준'에서도 신경정신계 질병을 규정하고 있는데, 물질의 급성 중독에 따른 질병 외에 '업무와 관련하여 정신적 충격을 유발할 수 있는 사건에 의해 발생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업무와 관련하여 고객 등으로부터 폭력 또는 폭언 등 정신적 충격을 유발할 수 있는 사건 또는 이와 직접 관련된 스트레스로 인하여 발생한 적응장애 또는 우울병 에피소드'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여기에 제한되지 않고, 공황장애 등과 같은 불안장애, 수면장애, 주요우울장애 등이 모두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된 바 있다. 고객과 관련하지 않은 업무상 스트레스로 발생한 적응장애나 우울병 에피소드 역시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된다.

진단명에 제한되지 않고, 어떤 정신질환이라도 업무상 부담이 질병의 악화에 기여했다고 판단되면 산재보상이 승인되는 편이다. 근로복지공단에서 활용하고 있는 '정신질병 업무관련성 조사지침'에서 제시하는 정신질병의 종류와 업무관련 위험요인은 다음과 같다.
  

▲   정신질환 업무관련 유해요인 표.


자살이나 자해의 경우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 '근로자의 고의·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은 업무상의 재해로 보지 아니한다'고 한다.

하지만 시행령은 ▲업무상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이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 ▲(정신질환이 아니더라도) 업무상의 재해로 요양 중인 사람이 그 업무상의 재해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 ▲그밖에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하였다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 자해행위에 따른 업무상 재해도 인정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이에 따라 한 해에 30~50여건의 자살 사건이 업무상 재해로 승인되고 있다. 이때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라는 것이 반드시 정신질환을 진단받는다든지, 환각 등의 증상을 보이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자살'을 선택했다는 것 자체를 판단 능력이 현저히 저하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업무상 스트레스와 정신질환의 관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는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 인과관계가 있는' 경우를 업무상 재해로 본다. 이때 '상당인과관계'가 중요하나 뚜렷하게 정의되어 있지는 않은데, 보통은 '사회상규 상 일반적인 지식이나 경험에 비추어 어떤 원인이 있으면 그러한 결과가 발생하리라고 인정되는 관계'로 생각할 수 있다.

현재 정립되어 있는 대법원 판례에서는, 이 인과관계란 '반드시 의학적, 자연과학적' 인과관계는 아니고, 노동자의 '취업 당시의 건강상태, 발병경위, 질병의 내용, 치료의 경과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사실 업무상 유해요인과 질병 사이의 관계가 확실해 질병판정위원회를 거치지도 않아도 되는 진폐증이나 소음성 난청을 제외한 대부분의 질병에서 업무상 요인이 '의학적, 자연과학적' 인과관계를 갖는다는 것을 밝히는 일은 쉽지 않다. 뇌심혈관질환, 근골격계질환, 정신질환 등 흔히 거론되는 여러 업무상 질병들은 다양한 요인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이다.

정신질환의 경우, 업무상 스트레스 뿐 아니라, 경제적 문제나 가족관계 등 개인적 스트레스 상황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신체적 질병에 따라 이차적으로 발생하는 정신질환도 있을 수 있고, 질병의 특성상 외부 요인보다는 내적인 요인(신경계 발달이나 유전 등)이 훨씬 중요하다고 알려진 질병도 있다. 그래서 업무상 질병 여부 판정 과정은 쉽지 않고, '의학적, 과학적' 인과관계에만 기대서 판단할 수도 없다.

현재 근로복지공단과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는 업무상 스트레스와 업무 이외의 스트레스 요인, 질병에 대해 조사한 뒤 이를 바탕으로 '업무상 스트레스가 질병 발생이나 악화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 인정되는지를 '노사정에 의해 추천된 전문가들의 합의'에 의해 결정하고 있는 셈이다.
  

판정 과정의 개선 과제

근로복지공단의 '정신질병 업무관련성 조사 지침'에서 조사하도록 정해놓은 '주요 업무상 스트레스 요인'에는 업무상 사고, 폭언·폭력·성희롱, 업무의 양과 질 변화, 업무의 실수· 책임, 민원·고객과의 갈등, 회사와의 갈등, 배치전환, 직장내갈등, 업무부적응, 괴롭힘·차별 등이 포함된다.

지침은 해당 요인 자체의 심각성 뿐 아니라, 노동자의 주관적 충격 정도를 감안하고, 사건 발생 이후 처리과정에서의 적절한 지원과 지지, 근로자 보호가 가능한 체계였는지를 감안하여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과정 등을 고려하여 주요 스트레스 요인의 심각도를 확인하도록 하고 있다. 정신질환과 관련된 조사 과정은 예전에 비해 상당히 진전되었지만, 이에 대한 평가와 판정은 아직은 각 사례마다 개별적으로 이루어진다.

한 사례를 보자면, 50대 초반의 남성 A씨는 공공기관의 관리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평소 스트레스가 심한 직장은 아니었다. 그는 고향에서 취업하여 오랫동안 한 도시에서 살아왔는데, 갑자기 전혀 다른 도시로 전보가 났다. 믿어왔던 본부장이 자신을 내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직위가 낮아진 것은 아니지만, 강등 혹은 좌천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가족이 다 함께 사는 곳을 옮기는 것도 만만치 않아 결국 낯선 도시로 혼자 이사했다. 새로운 도시에서 근무를 시작하고 한 달 뒤 A씨는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는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 모임에 참여하는 한 가족의 사례를 재구성한 것이다. A씨의 죽음은 산업재해로 승인받지 못했다. A씨의 업무 변화와 관련된 스트레스와 새로운 도시에서 부닥친 직장 문제의 구체적 증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정신질환을 진단받은 재해 당사자 혹은 자살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이 관련한 '충분한' 증거를 수집하여 제출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많다. 모든 업무상 질병 입증 과정이 다 어렵지만, 정신질환 특히 자살에 대해서는 재해당사자 측의 입증책임을 덜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또 폭력이나 폭언, 징계 등과 같은 뚜렷한 이벤트가 있는 경우에 비해, 장기간에 걸친 과로처럼 저강도의 만성적인 스트레스 요인에 의해 발생하거나 악화된 정신질환의 경우 판정위원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일본은 여러 가지 업무스트레스를 강, 중, 약으로 평가하도록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놓았다. 그리고 '중에 해당하는 스트레스 요인이 2개 이상이면 승인' 등 매우 구체적인 승인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승인 지침 자체가 편향될 수 있고, 판정위원들의 자율적인 판단 여지를 좁히는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업무 스트레스 요인을 세분하여 평가하도록 해 판정의 일관성을 높일 수 있다. 따라서 국내에서도 자살뿐 아니라 정신질환 판정과 관련된 체계성을 좀 더 갖추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대만의 과로사와 업무관련 정신질환 / 2020.04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대만의 과로사와 업무관련 정신질환 

 

 

 

황이링 / 대만 OSHLink 활동가 

 

 

 

첫 번째 대만 소식으로 대만의 과로 이슈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과로 문제는 특히 동아시아에서 두드러지는 문화현상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오직 일본, 대만, 한국에서만 과로 때문에 발생한 뇌심혈관계질환을 직업병 보상의 범주에 넣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대만에서는 과로와 관련된 질병의 산재 보상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산재보험국의 통계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9년까지 모두 679명의 노동자가 업무관련 뇌심혈관계질환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이 중 236명은 사망하였고, 173명은 영구적인 장애를 입게 되었습니다.

 

과로는 중요한 업무 유해요인입니다. 대만에서는 8일에 한 명씩, 노동자가 과로 때문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노동 시간을 증명하기 어렵거나, 엄격한 인정 기준 때문에 산재로 보상받지 못한 숨겨진 사례가 많기 때문입니다. 대만에서는 1991년 처음으로 뇌심혈관계질환의 업무상 질병 인정 기준이 발표되었습니다. 그러나 뇌심혈관계질환이 공식적인 직업병 목록에 오르지는 못했기 때문에, 업무관련성이 의심되는 사례들은 개별적으로 승인 여부가 결정되었습니다.

또, 업무상 질병 인정 기준이 매우 엄격했습니다. 직장에서 발생한 사례만 업무관련성이 인정됐고, 뇌심혈관계질환이 발병하기 바로 직전의 업무 부담만 고려됐습니다. 그래서 인정기준은 1991년 만들어졌지만, 2006년에서야 뇌심혈관계질환으로 산재 보상 승인을 받는 첫 사례가 나타납니다. 그 뒤로도 인정 기준은 몇 차례 수정되다가, 가장 큰 변화가 2010년에 일어났습니다. 난야테크놀로지(Nanya echnology Company)에서 일하던 추샤오핑(徐紹斌)의 과로사 때문입니다.

출근시간이 되어도 추샤오핑이 방에서 나오지 않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아버지가 방으로 들어갔고 그의 주검을 발견하였습니다. 당시 29세였던 그는 매일 12시간씩 일했고, 어떤 때는 16~19시간 일하기도 했습니다. 사망 전 달에는 연장 근무만 111.5 시간이었습니다. 그의 가족들은 그의 죽음이 과로사라고 확신하고, 산재 보상을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무실이 아니라 집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당시로는 업무상 질병에 해당하지 않았습니다. 회사는 그가 사망하자 정기적인 연장근무는 없었다고 발뺌했고, 결국 그의 유가족은 산재 보상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저는 입법의원 황수잉(黃淑英)의 보좌관이었고, 추샤오핑의 가족들은 황수잉 의원의 사무실에 와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우리는 유가족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관심을 촉구했고, 기자회견 이후 추샤오핑의 가족들은 대만사회의 많은 지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대만 노동부는 사회의 큰 압력을 받은 끝에 일본을 따라 직업병 인정 기준을 낮추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다음 해인 2011년, 직업병 인정 가이드라인이 개정되고 나서, 총 88명이 업무관련 뇌심혈관계질환으로 산재 보상을 받았습니다. 가이드라인 개정 전보다 2.6배 늘어난 숫자입니다.

업무 관련 정신질환과 자살

업무 관련 뇌심혈관계 질환 외에, 최근에는 업무 관련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점점더 많아졌습니다. 2009년 업무관련 정신질환 인정 기준이 수립되었지만, 그 후로 10년간 산재로 승인된 사례는 36건뿐입니다. 승인 사례 대부분은 산재 사고 후 발생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입니다.

그러나 많은 대만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 성과 압박, 직장 내 성폭력, 일터 괴롭힘과 관련된 정신질환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산재 보상 청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충분한 증거를 모으기 어렵습니다.

2009년 이후 대만 정부가 업무 관련성이 있다고 인정한 자살 사례는 7건에 불과합니다. 첫 사례는 2012년에 발생한 장페이퐁(張倍逢)의 자살 사건입니다. 그는 포모사 플라스틱 그룹(Formosa Plastic Group)의 안전관리자였습니다. 그는 공장 건설 현장의 안전보건 감독을 맡았는데, 하청 회사에서 안전 규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상사에게 상황을 보고하려고 했지만, 돌아온 답은 예정된 기한 내에 건설이 마무리되도록 눈감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막중한 부담감을 느낀 그는 결혼식을 1주일 남겨둔 2011년 10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죽기 전 그는 "정부, 회사의 안전요구사항을 충족시킬 수 없었습니다. 회사에 너무 미안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책임을 다하겠습니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그의 자살은 대만에서 처음으로 업무관련 자살로 승인되었습니다.
       
너무 많은 죽음이 계속되고 있기에, OSHLink는 2015년 <과로의 섬, 대만>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우리는 이 책에 과로로 사망한 대만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과로 문제가 왜 발생하는지 다루고자 했습니다. 책 발간 이후 대만 입법 의원들은 노동부에 과로 실태를 보고하도록 했고, 이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해, 드디어 의회에서 2주에 84시간이던 노동시간 기준을, 1주에 40시간으로 줄이는 법 개정안이 통과됐습니다. 우리가 해낸 일은 대만의 과중한 노동을 변화시키기 위한 작은 걸음에 불과했지만, 앞으로도 자신의 안전과 노동권을 지키려는 모든 노동자의 싸움에 계속 함께할 것입니다.

[일터 정신질환 짚어보기] 노동자의 정신적 고통이 산재가 되기까지 / 2020.04

[일터 정신질환 짚어보기] 

 

 

노동자의 정신적 고통이 산재가 되기까지

 

 

 

류한소 / 선전위원

 

 

 

노동안전보건운동의 역사는 '보이지 않는 고통'에 이름을 부여해 온 역사다. '직장 내 (성)폭력', '가학적 노무관리', '갑질', '직장 내 괴롭힘' 등 노동자가 일터에서 겪는 정신적 고통에 붙인 이름들의 목록이 그렇다. 노동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심리적 요인에 대한 관심은 20세기 중후반부터 대두됐다. 이 요인에는 자본주의의 주요 생산방식의 변화, 일터의 조직, 노동자에 대한 관리 및 통제 방식의 변화를 반영되어왔다. 따라서 정신건강의 침해를 호소하는 노동자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러한 질병을 일터에서 일으키는 위험 요인들 또한 많아진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을 바라보는 개인적/사회적 인식이 변했고, 의료지식 및 전문가도 변화했으며, 제도적 차원에서의 인정과 보상도 변화했다. 이렇게 다양한 사회문화적 각축장을 통해 이미 존재하고 있던 고통들이 이름을 얻으면서 노동자의 정신적 고통도 비로소 부상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국내의 정신질환 집단산재투쟁

국내의 정신질환 산재에 관한 논의는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탄압을 고발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도 정신질환 산재를 개별적으로 신청한 사례는 있었으나 노조탄압으로 인한 정신질환에 대해 집단으로 산재신청을 제기한 첫 사례는 2003년 청구성심병원 노동자들의 집단요양투쟁으로 알려져 있다.

연이어, 공황장애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말도 생소했던 2004년, 도시철도기관사들이 집단산재신청 투쟁을 시작했다. 당시 근로복지공단은 사상사고 경험 여부로 산재여부를 따졌지만, 이 투쟁들은 사고 경험 유무와 상관없이 구조조정으로 인한 1인 승무 등 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이 심각하게 침해될 수밖에 없는 근무환경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음을 밝히는 계기가 되었다.

비슷한 시기, 민영화에 따른 경영효율화를 위해 인력 퇴출 프로그램을 운영한 KT(2004년)와 노조탄압을 당한 하이텍알씨디코리아(2005년) 노동자들 역시 적응장애, 우울증 등에 대한 산재신청으로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알렸다. 이러한 투쟁들 때문인지 근로복지공단의 2006년 통계부터는 이전까지 작업관련성 질병에 '기타'로 들어가던 정신질환 항목이 별도 범주의 항목으로 분류됐다. 그 뒤로 2008년 이랜드 일반노조, 코스콤 비정규지부, KTX 새마을호 승무지부 등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에 대한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실시했으며, '적응장애',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같은 진단명은 문제를 제기하고 싸우는 사람들이 마주했던 현실을 고발하는 언어로 자리 잡았다.

2009년 쌍용자동차 문제는 정리해고와 국가폭력이 노동자뿐 아니라 그들의 동료와 가족들에게도 신체적 외상은 물론, 정신적 외상까지 입힌다는 것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2011년에는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와 무급휴직자, 그 가족을 위한 심리치유센터 '와락'이 개소했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심리적 위기상황을 치유하기 위한 '두리공감'이 개소한 것도 2011년이었다. 이처럼 '싸우는 사람들'의 마음 건강에 대한 관심은 2016년 여러 단체가 참여해 출범한 사회활동가와 노동자들을 위한 심리치유 네트워크 '통(通)통(統)톡(talk)'으로 이어졌다.

 


감정노동의 이슈화

정신질환 산재의 제도화 과정에서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감정노동의 이슈화이다. 감정노동이란 단어가 생소하던 2008년부터 민주노총 서비스연맹과 유통업종(백화점, 면세점) 노동조합들은 감정노동 문제를 부각시키고 산재 인정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 결과 2015년 3월, 양대 노총과 여러 단체로 구성된 '감정노동 전국 네트워크'가 출범했으며 같은 해 12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감정노동 문제를 제도화한 "서울특별시 감정노동 종사자의 권리보호 등에 관한 조례"가 통과됐다.

이와 더불어 KTX 승무원(2015년), 마트 계산업무 노동자 산재 인정(2016년) 등은 열악한 근무환경과 지속적인 성희롱 및 폭언에 시달리는 서비스업 노동자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산재로 인정하기 시작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콜센터에 전화를 걸면 나오는 "2018년 10월 18일부터 산업안전보건법에 고객응대근로자 보호조치가 시행됩니다"라는 자동음성도 오래전부터 감정노동의 이슈화를 위해 싸워 온 사람들의 성과다.

위에서 살펴본 조직된 노동자들의 집단산재신청으로 시작된 정신질환 산재에 대한 논의는, 이제 '갑질'이나 '직장 내 괴롭힘'이란 언어를 통해 노동운동을 넘어 한국사회에 만연한 악질적 갑을관계와 조직문화에 경종을 울리면서 일상의 민주주의를 재고하는 계기로 쓰이고 있다. 2017년에 설립된 '직장갑질 119'에 고발된 기가 막히는 사례들은 우리 일터가 얼마나 다양하게 노동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지를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이 결과, 비록 실효성에는 많은 비판이 있었으나 2019년 7월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면서 '직장 내 괴롭힘'이 법적으로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라고 정의됐고 정부 차원에서 이를 규제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이름을 부여하는 일, 우리가 해야 하는 일

정리하자면, 국내 정신질환 산재 논의는 '싸우는 노동자'들의 집단요양투쟁을 시작으로 감정노동의 이슈화를 거쳐 일터의 전반적 조직문화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데까지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어왔다. 이외에도 장시간 노동으로 발생하는 정신질환이나 자살 및 사고 현장을 목격한 노동자들의 트라우마 관리 등으로 논의영역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또한 무엇보다 여성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일상적으로 겪는 구조적 차별로서, 노동권과 건강권에 주요한 영향을 끼치면서도 그간 '노동 문제'가 아니라고 치부되어온 직장 내 성폭력과 이로 인한 여성 노동자들의 건강 피해를 업무상 질병으로 제도화하기 위한 노력도 정신질환 산재를 논의할 때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에서 언급한 사례들의 공통점은 노동과정에 계속 존재해왔지만 이름을 부여받지 못했던 정신적 고통들에 이름을 붙이고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장을 펼쳐왔다는 점이다. 아픔에 이름을 부여하고 인과적 설명을 통해 그 고통의 실체를 확인하며 그 고통이 발생하는 맥락을 찾는 일은, 그로 인한 아픔이 기존 지식체계나 타인에 의해 관찰되기 힘들수록 더욱 중요하다.

나아가 그 고통이 개인의 심리적 기질이나 배경이 아닌, 일터의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고통의 실체를 확인하고 발생하는 맥락을 찾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정신질환 산재에 대한 논의는 시작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향후, 기존의 좁은 인과관계 중심의 산재 논의를 사회적 협의 등으로 확장 시켜야 하며, 변화하는 자본주의와 이에 따라 변화하는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건강권을 사고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신질환 산재에 대한 논의가 그 사회의 전반적인 감수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깊고 다양한 토론이 요구된다.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한국은 과로자살이 뜨거운 이슈입니다 / 2020.03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한국은 과로자살이 뜨거운 이슈입니다 

 

 

 

최민 / 상임활동가 

 

 

 

대만과 일본, 한국의 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일하는 활동가입니다. 동아시아는 역사적, 문화적 공통점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공통점 중 하나는 노동시간이 길고, 과로사와 과로자살이라는 말이 일상적인 곳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한국과 대만, 일본의 노동인권과 노동자 건강을 위해 활동하는 NGO들이 모여 '동아시아 과로사 감시'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세 나라의 과로사나 과로자살 사건을 공유하면서, 서로가 처한 상황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 노동자들이 스스로 일터의 주인이 되어 과로사나 과로자살이라는 말이 사라지도록 만들기 위해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 보려고 합니다.

   "동아시아 과로사 통신"을 통해 공통적인 문제 양상을 발견하고, 동아시아 국가 차원에서 공동의 대응을 모색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첫 번째 이야기는 한국의 '과로자살'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과로사 못지않게, 과로자살이 뜨거운 이슈입니다. 과로사는 조금씩 변화를 기대해보고 있습니다. 2018년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그전까지 매주 68시간까지 합법적으로 일 시킬 수 있던 조항이 바뀌어 이제 주당 노동시간이 52시간으로 제한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운수업이나 감시 업무 등은 여전히 이 조항의 예외가 되어 무제한 노동을 시킵니다. 결국 많은 택시운전기사나 경비노동자들이 뇌심혈관질환으로 사망하고 있습니다. 연장노동시간 제한이 엄격해지자, 노동강도가 높아진 일터도 많습니다. 여전히 남은 과제가 많습니다.

그에 비해 과로자살은 최근에야 관심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은 자살률이 매우 높은 나라입니다. 2018년 총 1만3670명이 자살로 사망했습니다. OECD 평균 자살률의 2배가 넘습니다. 교통사고사망자 수의 3배에 달하는 숫자입니다. 한국의 자살률은 동아시아 경제위기가 있던 1998년 급격히 증가했고, 그 뒤 신자유주의 체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이래로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뚜렷한 사회경제적 변화 상황에서 자살률이 크게 늘어났는데도, '노동자들이 일터에서의 괴롭힘과 스트레스 때문에 자살하고 있다'는 인식은 최근에야 높아졌습니다.

한국 정부의 자살예방대책 역시 사회적 원인을 찾아 해결하기보다 자살에 대한 인식 개선, 자살예방을 위한 홍보와 정신보건 서비스 강화, 정신의학적 고위험군 관리에만 맞춰져 왔습니다. 사회적으로 자살자는 '유리 멘탈'이라는 낙인이 강해 일 때문에 발생한 자살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경우가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노동자의 자살이 언론에서 다뤄지고 있습니다. 2019년 연말과 2020년 연초에도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과로자살(Karo-jisatsu)이 여러 건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장시간 노동'뿐 아니라 업무과정에서 발생한 과중한 스트레스로 인해 노동자가 선택한 자살을 모두 과로자살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을 먼저 말씀드려야겠네요.

이런 정의는 먼저 과로사와 과로자살이 이슈가 된 일본의 사례를 따른 것입니다. 사실상 한국에서 하는 과로자살은 '업무 관련성 자살'(Work-related suicide)과 같은 말입니다. 2019년 12월 5일,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시범사업의 동료지원가였던 25살 뇌병변장애인 설요한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취업을 원하는 중증장애인 참여자를 발굴하고 상담을 제공하는 역할이었습니다. 그에게는 한 달에 60시간 일하면서 4명의 참여자를 발굴해서 한 명당 5번씩 상담을 해야 한다는 목표가 주어졌습니다. 임금은 고작 66만 원이었습니다. 사업을 주관한 공공기관은 중간 실사를 진행하겠다면서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그 동안 받은 임금 일부를 반납하라고 압박했습니다. 실적 채우랴 실사 준비하랴 부담이 컸던 설요한씨는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는 문자를 남기고 생을 저버렸습니다.

그런가 하면 2019년 11월에는 42세의 경마 기수가 자살했습니다. 한국에는 공식 경마장이 세군데인데, 그 중 부산경남경마장에서만 지난 10년간 7명이 자살했습니다. 이번에도 그 경마장이었습니다. 문중원씨는 경마장 운영과 관련된 비리를 고발하고, 말을 타다 다쳐도 보상도 받지 못하며, 위험한 말이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없는 기수의 현실을 알리는 유서를 남겼습니다. 그의 고용상 지위가 노동자가 아니었기에 통계상 산업재해로 계산되지 않겠지만, 우리는 그의 죽음 역시 '노동자가 일 때문에 선택한 과로자살'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조금은 달라 보이는 두 사건을 모두 과로자살이라고 부릅니다. 일터에서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지 못하고, 성과 압박과 경쟁 구조에 노동자가 벌거벗은 채 던져져 발생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극도의 스트레스가 무기력과 절망감으로 이어지는 순간 노동자 자살은 어디서든 발생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런 문제가 동아시아만의 문제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미국의 직장에서 벌어지는, 총기 난사 후 자살 사건이나 프랑스에서 대규모 구조조정 이후 연달아 발생한 자살 사례들도 같은 맥락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플랫폼이다, IT 혁명이다 하면서 노동자가 점점 더 개별화되는 지금, 더 많아지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듭니다. '동아시아 과로사 감시'가 이런 걱정스러운 상황을 바꿔나가는 작은 힘이 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