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중지권 기획] 실패에서 배운다-공공운소노조연맹 /2015.7

실패에서 배운다

- 작업회피권을 단협에 넣기


 

중대재해 예방과 작업중지권 실현을 위한 ‘당장멈춰’ 팀

 

 

 

이번 달 당장멈춰 팀에서는 철도현장에서 ‘작업회피권’을 단체협약으로 체결하기 위해 애쓴 경험을 가지고 있는 공공운수노조·연맹의 이태영 동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와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철도노조 노안부장 시절에 작업중지와 관련한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계실 텐데요. 그 사례를 말씀해 주세요.

 

작업중지에 대한 사례를 말씀드리기 위해서는 그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철도산업이 지금처럼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적용의 대상이 된 것은 2001년 가을경이에요. 당시는 철도노동자 사망사고가 지금보다 훨씬 빈번했어요. 그러다 보니 정부도 공무원으로 분류되는 노동자의 작업장 안전보건을 공무원 관계 법령이 아닌 강도 높은 산업안전보건법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요구를 회피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2001년 철도산업이 산안법 적용 대상으로 확인됐고, 2002년 유예기간을 거쳐서, 2003년 봄부터 본격적으로 산안법적용이 됐습니다. 그리고 ‘산업안전보건규칙’에 궤도작업에 대한 내용이 신설됩니다.당시는 철도노조가 민주노총으로 전환하는 과정이기도 했는데, 철도 현장에서 발생하는 조합원의 산재 사망 등을 공론화하면서 노동안전에 대한 사회적 문제 제기를 본격화하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그것이 민주노조 운동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또 하나의 계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본격적으로 작업중지 경험에 대한 말씀을 드리면, 철도노조에서 진행한 작업중지는 사실상 사후적 개념의 ‘조치’가 많았어요. 시설, 전기, 차량 등에서 중대재해나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3일에서 5일까지 작업중지가 이루어지기도 했는데, 특히 사망사고가 나면 장례투쟁과 함께 작업중지가 진행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싸움을 통해서 사상사고가 많이 줄어든 게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예방적 차원의작업중지 경험은 사실 많지 않았어요. 사실 따지고 보면 사고 발생 이후 단행한 작업중지 경험도 그렇게 많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사상사고는 잦았지만, 사고 발생 이후에도 작업중지를 못 한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나요?

 

철도의 특성상, 특히 운전, 운수 쪽에서는 사후적 차원의 작업중지를 못 한 경험이 많아요. 사고현장을 반드시 보존해야 한다는 규정이 분명하게 되어있지 않기도 했고요. 특히 운전, 운수 2개 직종은 승객과 직접 상대하는 대면노동을 해야 하니 사고가 발생해도, 사고현장을 보전하는 것보다 어떻게든 차량이 운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우선이 되지요. 그러다 보니 결국 사고 조사 규정을 둘러싼 공방이 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규정대로 했느냐, 안했느냐, 서류가 제대로 갖춰져있느냐, 아니냐 등에 대한 책임 공방이 되는 거죠.


철도현장에서 ‘작업중지권’의 맥락에서 ‘작업회피권’을 단협에 넣고자 노력하셨다고 들었는데요. 당시의 고민을 소개해 주십시오.

아까 말씀드렸듯이 철도현장이 산안법 적용대상이 되면서 ‘산업안전보건규칙’에 ‘궤도’ 작업과 관련한 내용이 신설되고 ‘안전작업계획서’라는 절차가 마련됐어요. ‘안전작업계획서’는 공공기관에서 진행하는 단속적 근무에 대해서 작성하게 되어있는 것으로, 관리감
독자, 작업자, 업무 내용, 업무 도구, 업무시간 등을 구체적으로 적시하도록 한 것이에요. 그런데 사실상 계획서 자체를 개판으로 쓰는 경우가 더 많았어요. 아까도 말했듯이 철도현장 같은 경우 사고 발생과 관련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서류가 유일한 조건인데 말이죠. 사측은 문제없게 서류를 완비해 놓은 상황이고, 조사하면 직원과 조합원들은 시달리니 조사 자체를 회피하려고 하고요. 결국, 죽은 자
만 말이 없으니, 돌아가신 당사자의 책임으로 떠넘겨지는 상황이 많아서, 이걸 줄여야 한다는 고민이 있었어요.

 

‘안전작업계획서’는 공사 차원에서 사전에 교육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업무 내용이든, 업무 도구든 안전작업계획서랑 현실이 다를 때 근무지정 장소를 이탈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회피권’을 노동자의 권리로 단협을 체결하고자 했던 거죠. ‘계획서’대로 해야 안전한 작업이 가능한데, 그렇지 않으면 해당 작업을 거부하거나, 회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었죠. 특히 철도현장 유지보수 작업자들은 사무소에서만 일하는 게 아니니까요. 선로에 문제가 발생하면 준비를 해서 문제가 있는 곳까지 이동하는데 도구나 인력이 충분치 못하면, 노동시간도 길어지고, 갑자기 발생하는 기상 상황 등에 영향을 받을지도 모르니 이런 권리가 필요한 거죠. 서류상에 5명인데 실제로는 3명만 투입하거나, 사용해야 할 도구가 3개인데 1개밖에 없다면 이동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려던 거죠.


당시 제기할 때 공사의 반응은 어땠나요?

 

처음엔 조합 간부들도 너무 센 주장을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했을 정도니 공사는 당연히 안 된다고 했고요. 사실 공사와는 ‘안전작업계획서’의 항목을 결정하는 것부터 사사건건 시비가 있었어요. ‘안전작업계획서’에 인력을 쓰는 것에 대해서 넣자고 하니까, 인력이 안전문제랑 무슨 상관이냐는 거예요. 겨우 노동부에서 인력이 안전문제에 속한다고 해서 항목에 넣었을 정도니까요.


안전작업계획서’ 자체를 잘 쓰도록 공사를 강제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을 것 같네요.

 

사실 제도가 있더라도 현실에서 지켜지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공공기관들이 노동안전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낮거든요. 작업환경을 포함해서, 작업자를 둘러싼 모든 것을 노동안전영역으로 봐야 하는데, 그런 인식을 하고 있지 않지요. 지금은 그나마 정신건강 문제까지 주목하는 것으로 관심이 확대된 것은 분명하지만, 한 명의 노동자가 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조건을 돌아봐야 하는 수준으로 확장되어 있지는 않죠. 그래서 제가 철도노조에 있을 때는 인력이나, 노동시간, 구속시간, 휴식 등 이런저런 문제를 노동안전 측면에서 손대려고 했습니다.


단협으로 관철하지 못했지만, 의미 있는 노력이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어떻게 평가하세요?

 

그때 활동했던 분들과 같이 논의한 것은 아니라 평가하기가 쉽지는 않네요. 어쨌든 상황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것은 아니니까요. 문제의식이 있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현장개선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특히 저는 고정관념, 관행을 깨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던 것 같아요. 자동차 공장에서는 컨베이어 벨트를 세우거나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를 바꿔 기존의 일상과 관념을 깰 수 있다면 철도현장의 단속업무에서는 노동자들이 습관으로 몸에 익숙해져 있는 것을 바꾸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철도노조에 있을 때 그런 안전문제에 대한 관념을 깨기 위해서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비승, 비강, 돌방 금지를 위해서 싸움을 치열하게 했던 적이 있거든요.


비승, 비강, 돌방이 뭐죠?

 

철도차량 입환 작업(차량의 분리, 결합, 차량의 선로를 바꾸는 전선 작업을 칭하는 용어)을 할 때, 입환기를 세우지 않고 수송원인 작업자가 달리는 차량에 뛰어오르는 게 ‘비승’, 뛰어내리는 게 ‘비강’이에요. ‘돌방’은 열차를 멈추지 않은 상태로 연결하거나 분리하는 거예요. 수송원이 비승해서 차량에 올라타서 차량끼리 체결된 부분을 돌려서 풀어주면, 뒤에서 차량이 와서 ‘탁’하고 차량을 쳐주면 자연스럽게 그 힘으로 차량이 분리되도록 하는 것, 그 반대로 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비승, 비강, 돌방은 하나의 세트로 이뤄지는데, 굉장히 위험하죠. 달리는 차량에 뛰어서 올라타고, 뛰어내리니까. 비승, 비강, 돌방 하다가 죽기도 합니다. 그래서 공사 차원에서 비승, 비강을 규정으로 못하게 했죠. 그런데 어둡거나, 눈비 올 때 작업을 빨리 마치려고 작업자들이 하는거예요. 눈이나 비 온 날 발이라도 헛디디면 정말큰 일 나는 거잖아요. 비승, 비강, 돌방을 못하면 차 량을 하나씩 하나씩 신호에 맞춰서 넣고, 한대를 분리하고, 다시 나와서 분리해야 하니까, 기관사와 수송원이 모종의 합의를 해서 진행하는 거죠. 그래서 3~4년 정도 전국에서 가장 입환 작업이 많은 곳을 골라서 조합간부들이 1주일 정도씩 상주하면서 지속적으로 대판 싸움을 했던 적이 있어요.

 

 

 

▲ 비승, 비강 작업사진

 

 

 

▲ 돌방 작업을 지시하는 사진

 

공사 측에서 제어를 안 하나요?

 

돌방은 현실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기관사랑 수송원이 상호 합의해서 작업할 수밖에 없거든요. 관제실에서 무전을 다 듣고 있고요. 그렇게 돌방을 치는 것을 알지만, 눈 감는 거죠. 그런데 사고가 나면, 서류에는 하지 말라고 되어 있는데 한 것이니까. 기관사는 ‘돌방하는지 몰랐고, 주행 신호가 떨어져서 운행한 것이다’라고 말하죠. ‘출발 요청해서 움직인 것이다’라고 해버리니 할 말이 없게 되는 거죠.

 

노조 차원에서 정말 중요한 일을 한 것인데, 잘 안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조금 더 안전하게 일하기 위해서는, 안전하지 못한 현실을 드러내고 확인해야 하고, 현재의 조건에서 안전하게 일하기가 불가능하니 인력투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는데, 조합간부들이 현장을 휘저으니까 불편하게 느끼더라고요. 조합간부가와서 관리자랑 싸우고 난리가 나니까. 그것 자체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돌이켜보면 당시에 다른 방식을 썼어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도 되지요.


작업중지는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힘을 가지고 통제력을 발휘하자는 의미인데, 당시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겠네요.

 

당시 ‘작업회피권’이라는 단어를 쓰게 된 이유도 그런 맥락이 있었어요. 작업중지라는 단어가 집단적 개념으로 들려서 너무 무겁고, 어렵게 다가가는 측면이 있다고 느꼈고요. 또한, 개인에게 권리를 주는 게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고요. 위험에 대한 개인마다 판단이 다르기도 하니까요. 가령 안전 작업계획서와 다르더라도 ‘나는 괜찮아’라는 사람도 실제 있으니까요. 또 노동자에게 현재 작업중지권이 주어져 있지 않고, 사측에게만 권한이 있으니까. 작업거부와 회피는 노동자 개인이 단독으로라도 일시적으로 업무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해야 할 필요성에서 구상했던 거죠. 또 때마침 철도에는 안전작업계획서라는 근거가 있으니까 그런 구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작업중지권’의 개념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는 측면에서 작업거부와 회피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해왔는데, 공공운수노조연맹 차원으로 그런 고민을 함께해가면 좋겠네요.

 

저도 고민은 있지만, 어려움은 있어요. 철도는 앞서말했지만, ‘안전작업계획서’ 같은 개입할 거리가 있었는데, 다른 곳은 그런 것을 쓴다는 얘기를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공공영역에서는 위험 그 자체에 대한 최소한의 규정이나 기준조차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상당수가 개별노동을 하거나, 소규모 노동, 단속노동을 하니까요. 그리고 각각의 조건이 다 다르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