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호_특집3] 노동자 참여, ‘제대로 된’ 위험성평가의 시작

노동자 참여, ‘제대로 된위험성평가의 시작

 

김다연 상임활동가

 

본 인터뷰는, 노동자들이 직접 참여한 위험성평가를 진행한 경험이 있는 KB오토텍과 신한발브의 이야기를 담았다. 두 사업장은 위험성평가를 1년에 한 번 해야 하는 형식적인 책무가 아니라, 일상적인 노동안전(이하 노안)활동에 위험성평가를 녹여내 운영하고 있었다. 이들이 위험성평가를 지회의 노안사업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해 온 노력과 운영방식, 개선점에 대한 고민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금속노조 충남지부 KB오토텍지회 박종국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인터뷰

 

위험성평가는 언제부터 진행하셨나요?

2016년에 위험성평가를 노조에서 직접 해보려고 했고, 현장의 위험요인 조사와 위험성 평가까지 마쳤으나 사측의 노조파괴 시도로 중간에 무산됐습니다. 그러다 2018, 2019년에 걸쳐 노조에서 처음으로 개선과정까지 포함한 위험성 평가 전체 절차를 진행했어요.

물론 이보다 먼저, 사업장 내에서 활동하는 안전보건지킴이를 구성했어요. 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운영하는 안전보건지킴이 사업을 차용한 건데요. 20188월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이하 산보위)에서 안전보건지킴이를 공식적으로 운영할 것을 사측과 합의하고, 30명 정도를 뽑았어요. 6시간의 활동 시간을 확보해서 2시간은 구성원 전체 회의 및 교육을 진행하고, 나머지 4시간은 사업장 안전보건과 관련한 현장의 의견들을 수렴하고 개선하는 데 활용했습니다.

이렇게 했던 이유는, 1년에 1회 하는 위험성평가만으로 사업장의 안전보건에 관한 실질적인 문제들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서예요. 사업장의 유해위험요인을 발견하고 개선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해보려고 안전보건지킴이 제도를 도입한 거죠. 위험성평가도 일상적 활동 중 하나예요. 또 이렇게 조합원들이 활동해야, 노안위원들도 지치지 않고 오래 갈 수 있기도 하고요.

이렇게 노안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던 데에는 노안부의 노고가 커요. 조합원의 산재 대부분을 승인받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아프거나 사고를 당하는 건 개인의 부주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환경의 문제라는 이야기도 나누고요. 그러면서 노안부에 대한 조합원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고, 이후 위험성평가를 포함한 일상적 노안활동도 조합원의 지지를 받으며 시행할 수 있었죠.

 

위험성평가 절차는 어떻게 되나요?

절차상으로는, 우선 위험성평가를 하면 위험성평가의 목표와 절차·수행 시기·협력 기관 등 관련한 모든 사항을 조합원과 공유합니다. 그리곤 부서마다 조사 날짜를 정한 뒤, 조사를 시행하죠. 이때 안전보건지킴이 위원들이 조사 과정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맡아요. 필요하면 노안위원과 협력 기관의 노안활동가가 참여해서 돕기도 해요. 하지만 위험유해요인을 찾고, 위험성 크기를 판단하고, 개선안을 도출하는 건 현장 노동자들입니다. 해당 공정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는 현장 노동자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효과적인 개선을 도출할 수 있으니까요.

 

조사 과정에서 의견이 엇갈릴 경우,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나요?

처음엔 노안문제에 있어 더욱 민감한 노안위원 없이 조합원과 실행위원에게만 위험성평가를 맡길 경우, 사업장의 위험이 혹시나 축소되는 건 아닐까 염려가 되기도 했어요. 그래도 일단 1차 조사는 전적으로 맡기고, 자율적으로 진행하도록 했습니다. 만약 보충할 부분이 있다면, 노안위원이 의견을 내고 설득하거나 실행위원이 질문을 던지기도 했어요. 이를 통해 현장의 위험을 새롭게 확인할 수 있도록요.

부서별 논의를 할 때도, 서로 의견이 엇갈릴 때가 있어요. 누군 괜찮다 하고, 누군 위험하다고 하는 거죠. 이럴 땐 논의를 거친 뒤, 어떻게든 합의안을 도출해요. 서로 자기 의견을 조금씩 조정하고, 함께 만든 방안이어야 모두가 개선에 참여하거든요. 만약 누군가의 의견을 배제해버린다면, 그 사람은 해당 개선안에 동의할 수가 없겠죠. 그러면 개선과정이나 다음 위험성 평가에 참여하지 않을 테고요. 무엇보다도 위험성평가에 참여하는 이들이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그냥 옛날처럼 전문가에게 맡기는 거나 다를 바 없죠.

 

위험성평가는 불이행 시 처벌 수위가 크지 않아, 실효성이 없는 제도란 평가도 있는데요.

물론 위험성평가를 안 할 때 받는 처벌 수위가 너무 낮긴 하죠. 하지만 위험성평가를 이행하도록 하는 다른 방안을 모색할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산보위에서 위험성평가 진행하기로 합의한 뒤, 불이행하면 산안법상 위반사항 해당해요. 이처럼 현장에서의 산안법상 위반사항을 근거로, 사측을 고소·고발할 수도 있죠. 저희의 경우엔 위험성평가를 단협의 조항으로 넣기도 했습니다. 위험성평가를 실시하지 않으면, 단협안 위반이 되도록요. 이외에도 가능한 여러 방법을 동원해 압박을 넣어, 위험성평가를 실시하도록 강제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것도 KB오토텍 노조가 힘이 있으니 가능하단 거죠. 또 저희는 그간 노안활동을 전개하면서 조합원과 소통을 해왔잖아요. 그 결과, 현장의 위험에 대한 노동자들의 전반적인 인식이 높아졌어요. 회사가 이걸 깨고 위험성평가를 하지 않거나, 제대로 시행하지 않는 것도 쉽지 않아진 거죠. 저희가 이렇게 되기까지 10년이나 걸렸어요. 사측의 노조파괴도 겪으면서요. 상황이 이러니 노조에 힘이 없거나 미조직 사업장 경우에는 위험성평가 진행 자체가 쉽지 않죠. 무엇보다도 위험성평가를 실시하지 않을 경우, 그 처벌 수위가 높아져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2. 금속노조 경기지부 화성지역지회 신한발브분회 김현호 사무장 인터뷰

 

위험성평가는 어떻게 시작됐나요?

당시 현장엔 절삭유가 여기저기 흐르고, 금속분진이나 오일 미스트, 소음, 안전조치 없는 중량물 취급공정 등 다양한 문제가 산재해있었습니다. 13~14년도 현장엔 연간 발생하는 재해만 50건이 넘었고, 그중에선 1~3달씩 요양해야 하는 사고나 질병을 경험하는 사례가 많았어요. 현장의 문제를 의식하던 중, 노안활동이 활발한 금속 경기지부로 넘어오게 되면서 본격적인 노안활동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후 노안부장과 임원, 분회의 대의원으로 구성된 노안보건팀을 구성하면서 활동을 시작했죠.

노안보건팀은 생애전환기 검진과 격년 위암 검진을 위한 추가 휴가와 비용 지급을 단협안에 추가하고, 내실 있는 정기안전교육 실시, 안전 보호구 지급 요구 등 여러 사업을 진행했어요. 그중 하나가 공정별 현장 환경문제 및 위험도에 대한 체크리스트작성입니다. 위험성평가 제도를 활용한 건 아니었으나 위험성평가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현장의 근골격계 유해요인, 사고성 재해 유발요인, 소음, 화학물질 등을 관리하는 활동을 시작한 거죠. 이를 바탕으로 2015년부턴 조합에서 기존에 노사협의회로 대체되던 산보위를 운영키로 사측과 합의했어요. 다음 해, 산보위는 일상적 노안활동을 위한 공식제도인 위험성평가를 실시하기로 했고, 그해 3분기 신한발브에서 위험성평가를 처음 실행하게 됐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위험성평가를 구성했나요?

일단 구성원 내부적으로 위험성평가가 뭔지, 어떻게 진행되고 왜 필요한지를 잘 모르는 상태였어요. 위험성평가와 관련된 전반적인 교육이 필수적인 상황이었죠. 그래서 조합의 상집간부와 실행위원,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해서 3번의 교육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교육 이후, 노동자 의견이 반영된 위험성평가를 실시했어요. 조사는 두 가지 단계로 구성했고, 시트는 금속노조에서 만든 위험성평가 시트를 사용했습니다. 우선 실행위원과 작업자들이 함께 현장 라인을 돌며, 직접 사진과 영상을 찍어요. 그리곤 해당 공정의 위험유해요소나 개선안에 대해 여러 의견을 나누고, 시트를 작성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어요. 이때 위험성평가 진행에 필요한 실행위원은 사측에서 3, 노안보건팀에서 5인 해서 총 8명으로 구성했고요. 실행위원은 자신이 맡은 공정의 위험성평가를 진행하고, 서로 주마다 1회씩 만나서 함께 토의하곤 했습니다.

신한발브가 고안한 위험성평가의 구성은 해당 공정을 가장 잘 아는 작업자의 시선에서 유해위험요소를 찾아내는 동시에 실행위원이라는 제삼자의 눈을 통해, 교차관찰이 가능하다는 점이예요. 오래 일한 작업자는 그 공정의 전문가가 되기도 하지만, 자칫하면 작업 공정에 내재한 유해위험요소에 익숙해질 수도 있거든요.

위험성평가를 통해 실행위원과 작업자인 조합원이 서로 눈높이를 맞춰나가며 현장의 다양한 유해위험요소를 발견하고, 이들의 개선점을 찾고, 앞으로의 노안활동에서 염두에 둘 만한 지점을 파악할 수 있게 됐어요. 사측의 실행위원 역시 위험성평가를 통해 도출된 위험은 물론 현장의 개선이 필요하단 것을 인정하게 됐고요. 평가가 끝난 이후에는 정기안전 교육시간을 활용해, 조합원을 대상으로 결과 보고와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이후의 개선은 어떻게 이뤄졌나요?

단기간 내로 현장에 정말 많은 개선이 필요하단 사실을 사측과 공유하고, 설득하기 위해선 보고서 작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어요. 일단 해당 공정의 유해위험요소와 위험성평가를 작성한 시트는 각 공정에 비치해뒀어요. 그리곤 노안보건팀에서 위험성평가를 토대로 한 별도의 보고서를 작성하고, 이를 설득의 근거자료로 활용했습니다.

현장의 모든 개선안이 한 번에 적용된다면 좋겠지만, 회사의 예산 사정상 그럴 순 없었어요. 개선이 필요한 여러 문제를 투자가 많이 필요한데 현재 예산에서 당장 가능하지 않아, 장기적으로 진행해야 할 문제 회사의 설비팀이나 법무팀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 재료를 구매해 현장의 관리자나 작업자가 직접 개선할 수 있는 문제, 이렇게 세 단계의 범주로 나눴어요. 이를 바탕으로 개선 계획을 세운 뒤, 조금씩 개선해 왔죠. 이후 2018년 위험성평가 때는 산보위에서 조합 측 실행위원의 활동 시간을 보장받고, 회사의 예산안에서 별도의 현장 개선 사업 예산 항목을 편성하기도 했습니다.

 

제대로 된 위험성평가를 진행하려면요?

아무래도 개선안 실행을 위한 재원 확보가 어려우면, 위험성평가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게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죠. 자원이 적거나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업장은, 현장의 위험을 안다고 해도 실제 개선으로까지 이어지기가 어렵습니다. 지자체나 정부의 대출이 있긴 하지만, 대출요건 중 하나가 현재의 재정 상태여서 사실상 대출을 승인받기가 어려운 실정이에요. 업종에서의 경력이나 회사가 가진 영업력 등 다양한 요소를 자산으로 보고, 대출 여부 평가를 한다면 좋을 텐데 말이죠. 앞으로는 어려운 상황에 놓인 현장에서도 노안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필요한 재원의 여러 지원책이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다른 하나는 저희가 위험성평가를 진행한 지 6년 정도가 됐는데요. 매년 실시하는 조사다 보니 공정에 큰 변화가 없는 이상, 사실상 내용에 큰 차이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조합원도 매년 똑같은 거 진행하는구나, 큰 변화 없는데 기존의 개선점을 추진하면 되는 거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요. 현장의 위험을 발견하고 사고나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이 있을지, 더 해볼 수 있을 만한 것은 없을지 새로운 고민이 듭니다.

 

특집3. 2018년의 문송면을 만나다 - 1973년생 금속노동자 김현호 님 인터뷰 / 2018.06

2018년의 문송면을 만나다

[문송면·원진레이온 직업병 30년 무엇이 달라졌나] 1973년생 금속 노동자 김현호 님 인터뷰

 나래 (한노보연 상임활동가)


1973년생 15살 문송면. 그는 온도계 공장에서 일하다 2개월 만에 수은중독에 걸려 숨졌다. 가난했기 때문에 그 시절엔 고향을 떠나 서울로, 모두가 서울로 몰려들었다. 문송면도 그런 사연을 안고 고향인 충남 서산에서 혼자 서울까지 올라왔다. 

문송면은 병원을 전전한 지 한 달 만에 서울대병원에서 수은중독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노동부는 서울대병원이 산재지정병원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회사는 맹독성 물질인 수은에 관한 설명, 교육도 하지 않았다. 무방비 상태에 놓여있는 15세 청년 노동자를 밤낮으로 일만 시켰다. 이 사건은 많은 노동자, 시민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장례식 때는 영등포 로터리에서 수천 명의 시민이 운집한 가운데 노제를 치렀다. 노동자, 활동가, 의료인, 시민들이 일터를 안전하게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를 외쳤다. 그의 죽음은 원진레이온의 집단 이황화탄소 중독 사건을 알리고, 직업병 문제가 이슈화되는데 큰 발화점이 되었다. 

그의 죽음 이후에도 우리 사회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죽음을 견뎌왔다. 직업계고 현장실습생, 구의역 청년 노동자, 청년 드라마 PD, 메탄올 실명 사건, 반도체 노동자 직업병 문제 등 1973년과 2018년을 교차하는 노동자들의 아픔, 죽음 그리고 희망을 2018년의 문송면과 만나고 싶었다. 지난 525일 동네의 작은 카페에서 자동차 엔진부품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김현호 님을 만나 30년 전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김현호 님은 1973년 문송면 님과 같은 해에 태어났다. 자동차 엔진 부품을 생산하는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신한발브에 다니며 노동조합에서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 고향도 충남 서산이라고 했다. 만약 아버지가 서울로 올라오지 않았다면 본인도 충남에 살면서 우연이라도, 어쩌면 문송면을 만나지 않았을까라며 말을 이어나갔다. 

"문송면 님이 서울에 올라와 수은공장에 다니지 않았다면, 수은중독에 걸릴 회사가 아니었다면 만나지 않았을까요? 제가 일한 곳도 구로였어요. 지금 다니고 있는 신한발브에 입사해서 노동조합운동 할 때까지 살아계셨으면 벗으로, 동지로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요."

 30년 전 문송면 님이 일했던 온도계 공장은 액체 수은이 깔렸고, 수은증기가 가득했다. 노동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그는 직접 수은을 온도계에 주입했다. 결국 일을 시작한지 한 달 조금 지나 이상 증후가 나타났고 불면증, 발열, 두통 등에 시달렸다. 30년이 지난 지금 노동자들이 일하는 일터의 모습은 어떨까? 

"제가 다니는 신한발브라는 곳은 자동차 엔진 부품을 생산하는 공장입니다. 원재료를 절단해서 열로 가열하고, 프레스로 성형해서 성형된 원재료를 가공해 완제품을 만들어요. 그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는 소음입니다. 소재 운반, 포장, 기계 장착할 때 중량물 취급도 많아요. 그래서 근골격계 질환도 많고, 오일미스트, 분진이 많이 날려서 심각한 피해를 입기도 해요. 설비가 비좁게 들어서 있어서 노동자들이 많이 부딪혀 찰과상, 좌상을 입는 경우도 많아요. 모든 재해 가능성을 품고 있는 곳이죠." 

18년 동안 일 한 본인 역시 작년에 어깨에 염좌가 생겨 치료를 받았다. 주변에 요양 중인 동료들도 있고, 요양까진 아니더라도 파스로, 물리치료로 버티는 이들이 많다. 2017년에만 현장에서 드러난 재해가 50건인데, 드러나지 않은 재해는 더욱 많다. 2014년도에는 경기도에서 재해율 2위를 차지했다. 회사는 특별근로감독을 받기도 했다.

[출처: 김현호]


김현호 님은 공장의 유해화학물질과 중량물 취급, 소음, 비좁은 공간 등도 문제지만 심야노동, 장시간 노동도 본인을 비롯 동료들을 신체적·심리적으로 고통스럽게 하는 주요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장은 주간·야간 맞교대로 돌아갑니다. 주간근무는 오전750분에 시작해서 오후530분까지 8시간 근무를 합니다. 2시간 잔업이 있는 날은 저녁730분까지, 4시간 잔업은 저녁930분에 끝나요. 야간근무는 밤 10시에 시작해서 다음날 새벽6시까지 8시간 근무를 합니다. 잔업이 있으면 오전 8시까지 일 하죠. 보통은 잔업이 있어요. 제가 알고 있기론 71년에 신한발브가 창립해서 지금까지 한 번도 바뀌지 않은 근무시간표예요."

 2013년 완성차 공장에서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시행한 이후 자동차 부품회사들이 연속적으로 교대제 변경을 진행했다. 장시간 노동과 심야노동 단축에 대한 노동운동의 요구와 싸움이 있었기에일궈낸 결과였다. 하지만 완성차 1차 하청업체인 신한발브에 바로 적용되진 못했다. 만성피로, 소화불량이 일상인 조합원들에게 장시간노동, 심야노동 철폐는 간절한 염원이기도 하다.

 1969년 전태일 열사가 근로감독관에게 쓴 자필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오늘날 여러분께서 안정된 기반 위에서 경제번영을 이룬 것은 과연 어떤 층의 공로가 가장 컸다고 생각하십니까? 여기에는 숨은 희생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어린 자녀들은 하루 15시간의 고된 노동으로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돼 왔습니다." 전태일도, 1988년 문송면도, 2018년 김현호도, 장시간·심야노동은 노동자의 몸과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 

"인간을 표현하는 여러 단어가 대체로 맞겠지만, 절대 틀린 게 바로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적응하는 인간'이라는 표현입니다. 제가 주야 맞교대를 18년 동안 일을 했지만 절대 적응할 수 없는, 몸이 적응하지 못하는, 심리적으로 적응하지 못하는 게 바로 심야노동이고 교대근무입니다." 

일터에서 다친 동료의 문제를 상담해주고 안전한 현장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활동하는 그에게도 노동안전보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중요한 계기가 있었다. 

"제가 2000년에 입사하고 얼마 안돼서 아내가 아이를 낳았어요. 현장에서 일하고 돌아와 샤워하고 방바닥에 잠깐 누웠다 일어났는데, 제가 일어났던 자리에서 아이가 쭉 미끄러져 뒤통수를 부딪 혔어요. 제 몸 자체가 오일미스트에 쌓여있었기 때문이죠. 그런 현장에서 일하고, 동료들이나 저 역시도 중량물 취급 작업 하면서 재해를 입게 되고, 이 재해를 산재로 받지 못하고 공상조차도 쉽지 않았죠. 동료들이 그렇게 다치는데도 회사의 반응은 '너가 잘못해서 다쳤잖아, 너가 다친걸 우린 이해할 수 없다'고 얘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노동안전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어요."

 아이의 넘어짐으로 김현호 님은 세상을 다르게, 좀 더 곧게 바라보게 됐다. 그런 그에게 1973년 동갑내기 문송면 님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문송면 님이 돌아가시고 10년 후쯤 제가 27~28세에 신한발브에 입사하고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문송면, 원진레이온 등 노동안전보건운동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살아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문송면 님의 삶을 들여다볼수록 감회가 새롭습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노동자의 안전, 사회 전체 안전에 대한 내용들을 깊고 넓게 바라보면서 인식을 확장해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이윤이 아니라 사람의 건강, 안전이 먼저 고민되고 우선시 되는 사회로 나아가야죠. 이 문제는 결코 우리 사회 지도층이나 자본에 맡길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일터에서 일하고, 아프고, 다치는 노동자가 직접,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하는 문제라고 봅니다. 몸으로, 물리적으로 함께 하고 있진 못하지만 우리가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 그런 인사를 문송면 님에게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