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평] 수취인 불명... / 2019.10

[연구보고서] 신자유주의 시대의 과로자살 : 사례 비교 연구 (2018)


연구 참여자 (소속)

김영선 (노동시간센터),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서선영 (연세대), 천주희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전주희 (노동시간센터), 예동근 (부경대), 김직수 (사회공공연구원), 강민정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 

* 순서는 보고서 목차 순 


본 연구 <신자유주의 시대의 과로자살 : 사례 비교 연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2017년 노동보건 연구 '공모' 사업의 일환으로 일환으로 작성되었다 (연구기간: 2017.9.1~2018.8.31)


- 1 과로자살 20180831 (최종보고서) ◆ n2.pdf


[노동시간 에세이 - 과로자살 거둬내기] 노동자 연쇄 자살 미스터리, 강력한 처벌로 막을 수 있나? / 2018.03

노동자 연쇄 자살 미스터리, 강력한 처벌로 막을 수 있나?

전주희 노동시간센터


집배원 노동자들의 강탈당한 시간

지난 2월26일 고 임선빈 집배원이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고인을 포함해 지난 5년간 80여 명의 집배 노동자들이 뇌심혈관계 질환과 자살 등으로 사망했다. 한 사람의 죽음조차 다양한 원인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들 죽음은 수많은 원인 중에서 공통적인 한 장소를 지목하고 있다. 사람들의 안부를 묻는 소식들이 모이는 곳, ‘우체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더 이상 안녕하지 않다. 이 죽음의 기이함은 범인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살인으로 규정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노동자들은 자기 죽음으로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지목했지만, 그 범인은 여전히 살아있는 노동자들의 삶을 지휘하고 있다.

오늘날 노동자들의 연쇄적인 죽음은 미스터리 스릴러물을 닮았다. 죽음은 이미 벌어졌고, 우리는 다음의 죽음을 예상한다. 죽음의 원인이 무엇인지, 범인이 누구인지도 모두 다 알고 있다. 그런데도 죽음 이후, 그러니까 살아있는 우리들이 죽음의 원인과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것이야말로 미스터리하지 않은가?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2014년 10월부터 2017년 9월까지 3년간 전국 9개 우정청 중 서울, 강원청을 제외한 7개의 우정청에서 집배 노동자들의 초과 노동시간 중 17만 시간이 삭제되었다. 장시간 노동의 은폐를 위한 초과 노동시간의 조작은 집배 노동자들의 연쇄적인 죽음이 과로사가 아니라는 근거로 제출되기도 했다. 실제 우정본부는 작년 6월 경기 가평우체국 소속 집배 노동자가 뇌출혈로 사망했을 때 “우리는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주 52시간을 준수하고 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4,452명의 집배 노동자의 노동이 삭제된 17만 시간, 1일 8시간으로 환산하면 21,250일, 이를 또다시 1년 365일로 환산하면 58년 2개월. 이들의 시간을 노동자들에게 되돌려 준다면, 아니 애초에 그들에게 그 시간을 강제하는 방식으로 강탈하지 않았다면 80여 명의 연쇄적인 죽음의 스릴러물은 상연되지 않았을까? 아니면 적어도 80명의 숫자가 채워지는 것을 고작 지연시킬 수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

삭제된, 17만 시간의 노동시간은 연쇄적인 죽음의 원인이라기보다는 더욱 더 근본적인 원인을 지목하는 ‘단서’다. 무엇이 노동자들로 하여금 17만 초과노동을 감수하게끔 했는지, 우정본부는 어떻게 집배 노동자들의 과도노동을 강제해왔는지를 밝혀내기 위한 단서 말이다. 집배노조는 박근혜 정부 당시 공공기관에 강요됐던 성과연봉제 도입이 초과근로시간을 축소, 조작하게 만든 주요한 원인이라고 지목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공공부문의 성과연봉제는 폐기될 예정이지만 과도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성과장치들과 장시간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법, 제도적 장치들이 존재하는 이상 노동자들의 연쇄적인 자살을 포함한 죽음은 예고될 수밖에 없다.


KT, 439명의 노동자 연쇄죽음의 아카이빙¹이 보여주는 것

KT노동인권센터는 2006년부터 자신들의 일터에서 일어나는 노동자 죽음의 사례를 아카이빙하기 시작했다. 2006년부터 2017년까지 439명의 죽음을 기록했다. 이들은 왜 하필 2006년이라는 시간에서 출발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들은 동료들의 죽음을 기록함으로써 그들의 죽음을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시간으로 기입하고자 한다. 


KT노동인권센터와 ‘노동자의 벗’ 소속 7명의 노무사는 2017년에 무려 1,800여 쪽에 달하는 <KT노동인권백서>를 출간했다. 백서는 439명의 죽음이 KT 민영화와 노동탄압의 결과라고 그 원인을 지목했다. 

“KT 민영화는 1980년대부터 그 정지작업이 시작돼 사업 분리, 분할 매각, 정부지분 축소 등을 거쳐 2002년에 정부 지분을 완전히 매각하면서 완료됐다. 그 이후 15년이 흘렀다. 처음에 정부는 민영화를 통해 경쟁을 도입하면 국민들에게 질 좋은 통신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민영화의 결과는 해악적이었다. 국민들은 높은 통신비 부담에 고통 받고, 노동자들은 끊임없는 구조조정과 실적 경쟁에 시달리며 죽음으로 내몰렸다.”(<KT 노동인권 백서> 중)

2006년은 KT 내에서 CP라는 저성과자 퇴출 프로그램이 시행된 시기이다. 2002년 민영화되기 직전 7천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됐고, 민영화 이후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구조조정이 이어졌다.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해고가 수차례 진행되어 4만 명이 퇴출당했다.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사측은 이후 ‘상시적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CP명단을 작성하고 이들을 지속적인 일터 괴롭힘과 강제적인전환배치 등에 노출했다. 업무상의 저평가자를 일컫는 ‘C-플레이어들(C-player)’은 신자유주의가 내거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경영전략”이 탄생시킨 새로운 집단이자, 어떻게든 정리되어야 할 문제가 있는 집단으로 등장했다.

KT노동자들이 아카이빙한 죽음의 목록 중 눈에 띄는 것은 ‘명퇴 후 사망’과 ‘자살’이다. 통상 ‘노동자의 죽음’은 노동자의 신분이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상태에서의 죽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명퇴 후 죽음’까지 아카이빙한 것은 이들 죽음의 원인이 KT 민영화와 구조조정에 의한 것임을 뜻한다. 작업장 바깥에서 개별적으로 맞이하게 된 죽음을 다시 불러들여 2006년-KT라는 시공간에 다시 배치함으로써 KT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일터가 여전히 ‘죽음의 KT’임을 말하고 있다. 

또 하나는 41건의 자살을 함께 포함한 것이다. 이 중에는 ‘저항’의 맥락에서 의미화 할 수 있는 자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로자살은 그 자체로만 놓고 보면 입증하기 힘든 문제다. 자살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선택이라는 허구적 믿음의 강력한 산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고통들과 함께 배치되었을 때 과로자살은 맥락화된다. 과로자살은 심리부검과 같은 접근으로 개인으로부터 자살 원인을 추적한다고 해서 해명될 수 없다. 즉, 과로자살은 자살의 문제가 아니라 과로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과로자살이 발생한 ‘장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다른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야만 노동자의 자살이 살아있는 노동자들의 고통과 함께 연결될 수 있다. 그러한 한에서 개별 노동자가 고통을 드러내는 양상 중의 하나의 경우로 자살을 선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구체성에 접근할 수 있다. 강제 전환배치와 일터 괴롭힘 등으로 인한 노동자 자살은 한국사회에서 과도노동 즉, 과로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우체국 노동자의 자살처럼 한국사회는 여전히 장시간 노동이 과도노동의 중요한 원인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장시간 노동은 오랜 관행처럼 이어져 온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장시간 노동과 구별된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민영화, 상시적인 구조조정이라는 맥락 하에 진행되고 있는 성과 프로그램들은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저항이 체계적으로 분쇄되어 노동자들이 개별화된다는 것에 있다. 성과 프로그램은 우체국과 KT에서 자본-노동 간의 갈등뿐만 아니라 노동자와 노동자들 사이의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관계를 무력하게 만드는 갈등의 원천이 된다. 우체국 관리직들은 자신들의 성과등급을 위해 집배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을 종용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장시간 노동을, 높은 노동강도를 압박해왔다. KT 노동자들의 일터 괴롭힘 역시 오직 자본에 의해서만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

한국사회에서 신자유주의는 장시간 노동의 보다 기술적인 적용으로 나아간다. 자본은 법정 노동시간을 준수하면서도 보다 촘촘한 망으로 노동성과를 압박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노동조합이나 현장 활동가들은 가장 먼저 타깃이 된다. 집합적 힘이 분쇄되었을 때 노동자들은 서로에게 무관심하며, 무력하다. 경쟁은 노동자들의 집단적 관계를 냉소적 관계로 대체한다. 

집배 노동자들이나 KT 노동자들의 연쇄 자살은 과로자살의 또 다른 잔혹을 드러내준다. 어제의 동료들이 오늘에는 성과 프로그램의 실행자가 되거나 혹은 그 앞에서 침묵하게 될 때, 노동자들의 자살은 고독사를 닮는다. 


강력한 처벌 이전에 ‘권리’를 보장해야 

문재인 정부는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2022년까지 산재 사망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선언한 뒤 따른 후속 조치다. 하지만 직무 스트레스나 일터 괴롭힘의 문제는 개정된 법안에서도 여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 과로의 적극적인 해석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개정된 법마저 때늦은 법으로 당도해 버렸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강력한 법 집행을 위해 법의 적용 대상을 확대하고 처벌을 강화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어떤 강력한 처벌도 노동자의 죽음이 발생한 그 장소에 당도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가장 발 빠른 집행자는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이다. 이들의 집합적 힘을 모조리 분쇄한 뒤에, 강력한 법의 보호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법이 의무와 처벌만을 명시하는 순간 ‘치안’이 된다. 특히나 노동법이지 않은가. 노동의 권리야말로 법의 언어 속에 각인해야할 단어다. 그것이 없다면 노동의 보호란 자본 통제의 다른 이름이다. 함께 일한 동료가 죽었다면 그것도 연쇄적으로 죽었다면, 그 원인이 규명될 때까지는 중대재해 현장이다. 이에 대해 작업을 중지할 권리가 노동자에게 있어야 한다. 과로의 의미가 과도한 노동이라는 의미를 넘어서는 오늘날, 노동자들의 작업중지권이야말로 노동자들의 안전을 스스로 담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다. 문재인 정부가 진정 산재 사망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싶다면 노동자들이 스스로 작업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하지 않을까?


* 각주

1) 데이터를 보관, 기록해두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시간 에세이] 상식이 된 비정상성을 해체한다는 건! /2016.11

상식이 된 비정상성을 해체한다는 건!

 


김영선 노동시간센터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냐!”

 

4일제가 미디어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4일제를 도입하면 연평균 2,000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의 벽을 허물어 일자리 창출, -가정 균형, 출산율 제고가 가능해진다는 이야기가 반복된다. 시기적으로 수상쩍은 것은 차치하고라도 제도와 현실 간 격차가 한국사회의 극심한 시간 불평등 문제를 전혀 건드리지도 않고 있어 미디어상의 주4일제는 포퓰리즘적 정책에 지나지 않는 일종의 판타지일 가능성이 높다. 제도 만능주의식 제도 도입만으로는 시간권리의 구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 길은 장시간 노동을 당연함으로 여기는 구조적인 비정상성을 해체하는 데 있다.

 

장면1: “그래도 우리는 평균이에요!” 한 부품업체의 지회장과 인터뷰 때 들었던 답변이다. 여기서 말하는 평균은 월 초과노동시간만 60시간을 넘는데 이는 수요일 빼고 매일 2시간 잔업에 매주 특근을 포 함한 수치다. 평균이란 표현 속에는 장시간 노동이 감내할만한 것으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정도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물론 그것이 문제라는 점을 잘알고 있지만 어디인들 안 그렇겠어!”라는 자조가 장시간 노동을 문제 제기의 대상이 아니라 견딜만한 것으로 용인하게 한다.

 

장면2: “그래도 이게 어디야!”라는 아쉬움 속 만족감, “숨 좀 쉴 수 있게 됐다는 안도감, 심지어 이제야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 같다는 행복감까지 뜻밖의 답변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한 공사와의 인터뷰 시 직원들이 내놓은 답변이다. 만족감과 안도감, 감사함과 자긍심 또는 성취감이나 우월감도 엿볼 수 있던 인터뷰였다. 직원들이 입이 닳도록 칭찬한 것은 리프레시 휴가제, 연차휴가 일부의 앞뒤로 주말을 더 해 10일 가량을 연속해서쉴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당연한 권리임에도 휴가의 연속 사용을 감사와 자긍심으로 언어화하는 것은 우리의 무효화된권리 상태를 반증하는 양상이라고 본다.

 

특정한 양상이 반복되면 하나의 패턴이 생겨나고 나아가 그것은 자연스러운 질서로 구축된다는 앙리 르페브르의 표현대로 당연하지 않은 것임에도 그것이 반복되면 하나의 상식으로 여겨지고 일종의 자연 상태를 구축하게 마련이다. 장면1과 장면2는 비상식적인 장시간 노동이 자연화된 사회의 일면들이다. 또한, 제도와 현실간의 격차가 상당히 큼에도 그 격차 자체가 일상이 된 사회, 비당연함이 아무렇지 않게 여겨지는 사회의 일상 풍경일 것이다.

 

사회 구조와 감정 구조는 긴밀하게 연동된다. 장시간 노동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표현들은 그 사회의 감정 상태를 드러낼 것이다. “다 그래, 당연한 거 아냐!”, “다들 그러는데 어쩌겠어!”라는 냉소 섞인 탄식, “어쩔 수 없다는 무기력,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냐!”라는 비관적인 태도 또는 유별나게 왜 그래!”라는 핀잔을 듣지 않는 수준에서 장시간 노동을 회피하는 전략, 역설적으로 자유시간을 스스로 포기하고 다시 일터로 회귀하는 모습까지! 시간의 권리가 온전히 작동하지 못하는 사회의 웃픈 감정 상태들 아닐까 싶다.

 

이런 상태에서는 자유 시간의 가능성과 희망을 최대화하는 방향의 삶을 선택하고 실천하려는 표현들보다는 바람과 기대를 스스로 낮춤으로써 차라리 제약의 테두리(장시간 노동 체제)적응하는 게 낫다는 순응주의적 표현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게 평균이에요라는 표현은 장시간 노동의 박탈 효과가 얼마나 고약한지 인지하지 못하는 저인지 상태 또는 자유 시간이 박탈됐다는 감각이 무뎌진 상태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장시간 노동에 따른 박탈 효과는 굳이 여기서 언급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장시간 노동은 자유 시간의 폭을 현저히 축소시켜 골병과 과로사의 위험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세계와의 교류 가능성과 상상의 가능성을 떨어트려 다르게존재할 가능성을 박탈한다. 건강을 챙기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가족을 챙기는 일련의 방식들이 유독 상품 집약적인 서비스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시간 박탈감을 최대한 보상받으려는 몸부림 또는 박탈을 최소화하려는 회피 전략의 결과들이다.

 

낡은 질서에 덧대진 새로운 테크닉들

시대나 사회마다 상식의 범주들이 있다. 상식의 범주들은 특정한 맥락 속에서 다양한 장치들을 통해 생산된다. 이를테면 발전국가 시기의 인간형인 근면 주체는 조국 근대화의 기치 아래 잘살아 보세와 같은 구호, 공장 새마을운동의 깃발, 근면 정신 교육, 모범 근로자 상, 사회정화프레임 등을 통해 만들어졌다. 이런 근면 주체는 희생(저임금-장시간 노동)을 감내하고도 내달릴 수 있도록 동원된 주체 상이었다. 그런데 상식의 범주는 시대나 사회의 변동에 따라 마찬가지로 변화한다.

 

그렇지만 장시간 노동이라는 낡은 사물의 질서, 낡은 존재의 질서, 낡은 사회의 질서가 해체되지 않은 채 비정상 상태는 더욱 고착되고 있다. 저임금-장시간 노동은 과거 발전주의의 유물만은 아니다. 새로운 신자유주의 장치들은 비가시적인 방식으로 또는 자기 통치의 방식으로 장시간 노동이라는 비정상성을 재생산하고 있다. 현재의 과로사는 발전주의적 폭력과 신자유주의적 폭력이 중첩된 필연적 산물이다.

 

지난 한 해 직장인의 공감을 얻은 신조어 1위인 메신저 감옥이라는 표현처럼, 스마트폰 이후 사람들은 퇴근하더라도 일상이 일의 요소에 의해 간섭받을 가능성에 항상 노출되고 있다. 레이그 램버트는 이를 정보 시대의 그림자 노동이라 일컫는다. 일상에의 업무 간섭정도가 높아진 만큼 스트레스가 증가했음은 물론 개인의 자유 시간이나 여가가 더욱 단절적이고 파편화되리라 예측 할 수 있다. 이는 길이의 관점을 넘어 배치의 관점에서 시간의 문제를 고민해야 할 지점이자 기술의 자본주의적(신자유주의적) 사용을 공동선의 관점에서 문제 삼아야 하는 지점이다.

 

한편, 성과 장치는 사람들 스스로 자기개발에 더욱 신경쓰고, 자기평가에 엄격하고, 자기책임을 다하도록 내몰고 있다. 일명 자기계발하는 주체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인간형이다. 자기계발하는 주체는 규율화된 근면 주체처럼 일터를 벗어난다고 해서 성과평가로부터 자유로워지진 않는다. 일터 밖 일상에서도 자기분석-자기개발-자기평가-자기책임을 더욱 경쟁적으로 알아서 수행해야 할 운명에 놓여있는 존재다. 자기계발이란 이름의 주술은 한 톨의 자유시간까지도 경쟁력을 드높이는 연료로 태워져야함을 주문한다. 우리는 신기술의 파괴적 효과와 모든 문제를 개인 내부의 문제로 환원하는 자기 통치 장치들의 문제가 있는 요소들이 어떠한 태클 없이 일터와 일상에 파고들어 장시간 노동을 재생산하는 지점을 가시화하고 그 연결고리를 적극적으로 차단할 필요가 있다.

 

비정상 상태에서 다른 삶을 발명한다는 건!

장시간 노동에 대한 개인의 해법은 다양하다. 누구는 시간 관리를 더욱 효율화하는 방식을, 누구는 시간 절약 상품을 구매하는 방식을, 누구는 가사·육아·간병 등을 외주화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렇지만 이 모두는 상품 서비스에의 의존성을 높일 뿐이다. 시간 권리의 촉진과 관련된 것은 아니다. ‘상품 서비스에 기댄개별적 해법들은 소비자본주의의 자장에서 맴돌게 할 뿐 장시간 노동이라는 비정상의 테두리를 문제 삼지 못한다.

 

공동선의 관점에서 시간 권리를 지향하는 언어들이 어느 사회, 어느 시기보다 더욱 요구되는 상황이다. 상품소비에 기댄 개별화된 방식이나 제도 만능주의식 제도 도입은 비정상성의 덩어리를 해체하는 데 한계가 자명하다. 물론 비정상성을 떠받치는 얽힌 고리들을 끊어내는 게 만만치만은 않다. 비정상성은 초자연적 힘으로 저절로 해체되는 것이 아니다. 할리우드식 영웅이 나타나 악의 요소를 모조리 제거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문제 해결의 만능열쇠가 있는 것도 아니다. 비정상의 해체가 내재한 필연도 아니다. 비정상성의 얽힌 고리들의 배치를 하나씩 전환하는 작업이 필요할 텐데, 여기에는 1) 앞서 언급했던 신기술의 자본주의적 사용을 제한하는 조치와 경쟁적 성과 장치의 반인권적 요소들을 제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2)뿌리 깊게 베어 일상 속 알게 모르게 관통하고 있는 기존의 노동 규범들은 일상의 언어, 관계의 방식, 성공의 재현, 문화적 형태로 유통·소비되면서 삶의 폭, 삶의 방식, 상상의 가능성을 옥죈다. 장기적으로는 기존 규범, 기존 판단 기준, 기존 인식 틀의 당연함을 낯설게 하고 비틀 필요가 있다. 3) 다른 상상/기획을 희석하고 포위해 버리는 담론들은 형태를 달리하면서 반복 출몰해 장시간 노동을 자연화한다. 이에 대항하는 언어를 발명하는 작업 또한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여기에는 자본주의 노예제살인으로 간주되지 않는 살인같은 공격 화법을 동원해 사회 구조적인 자유 시간의 박탈을 폭력으로 간주해 그 폭력 양상을 드러내는 작업에 서부터 게으를 권리저녁 있는 삶같이 다른 삶의 선택 가능성을 높이는 작업이 유용할 것이다. 4) 장시간 노동을 존속시키고 있는 큰기둥인 임금 체계의 부적절함을 개혁하는 것을 포함해 새로운 소득 구조를 요구하는 작업도 병행되어야 한다. 5) 이와 함께 제도 차원에서는 장시간 노동을 대놓고조장하는 고질적인 제도들을 제거하고 제도의 현실성을 높이는 작업도 요구된다. 그렇지 않는다면 장시간 노동이라는 비정상성을 방기한다는 혐의에서 벗어나지 못할뿐더러 하루가 멀다고 발생하는 과로사의 행렬을 막을 수 없다.

 

상식으로 굳어진 비정상성을 해체한다는 건 아마도 혹자의 말처럼 이교도가 되어야 할 각오” 를 요구할지도 모른다. 다른 기획, 다른 욕망, 다른 실천, 다른 삶을 발명한다는 것은 아마도밟아 본 적 없는 고향, 가나안 땅으로 달려가려는 파라오 체제의 히브리인들이 품은 열망만큼이나 두려움을 수반하고 믿음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게 사는 건가?”, “이렇게 살아야 하나처럼 현재의 비정상 상태를 상대화하는 목소리들이 이곳저곳에서 꿈틀대고 있다. 이는 그 자체로 새로운 가능성의 조건일 수 있다. 일종의 자기에 대한 자유의 가능성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비정상성의 당연함을 비 당연시하는 목소리들이 이어지도록 연결할 차례다.

 

제도 차원의 시간 단축이 시간 권리를 반드시 보장하지는 않는다. 시간 단축은 자유 시간 그 자체가 아니라 실질적인 자유를 누리기 위한 조건 중 하나다. 단순히 시간 단축을 위한 노력뿐만 아니라 쉼을 적극적으로 실천할 필요가 있다. 윌터 브루그만의 표현을 빌자면, 쉼은 그 자체로 자유 시간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리는 신자유주의적 장시간 노동체제에 맞선 저항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주체를 발명하기 위해서는 쉼을 향한 감각과 역량을 자극·교육해야 한다. ‘개미와 베짱이류의 근면 이데올로기만을 반복한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상상/욕망/경험/실천/존재할 가능성을 발명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특집 2.2016년은 다섯 번째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의 해, 제대로 해서 골병을 잡자 /2016.1

2016년은 다섯 번째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의 해, 제대로 해서 골병을 잡자

 


이숙견 상임활동가


기억하시나요? 

 

2003년에 제정된 사업주의 근골격계질환 예방의무근골격계질환 유해요인조사가 어떻게 법제화 되었는지. 1997IMF 경제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현장의 노동강도는 강화되고 자본의 현장통제력이 강화되었고, ‘고용안정에 밀려 숨죽이며 강화된 노동을 감내해야했던 노동자들은 하나 둘씩 뇌심혈관계질환과 근골격계질환으로 몸과 마음이 벼랑 끝으로 내몰렸습니다. 하지만 2002년 근골격계직업병 집단요양투쟁으로 절박한 노동 현실을 드러내며, 더 이상 몸과 마음을 훼손당하지 않고 골병을 해결하기 위해서 개인의 문제, 개별적 작업환경문제를 넘어서 집단적인 작업환경 개선, 노동 강도저하, 노동자의 현장통제력 강화가 필요함을 제기하고 요구했습니다. 그리하여 전국을 뒤흔든 투쟁이 될 수 있었고, 유해요인조사 법제화 또한 가능했습니다

 

 

그로부터 다섯 번째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를 앞두고 있는 지금.

현장에서 그리고 여러분에게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는 어떠한 활동, 사업입니까? 2 015년에 진행한금속노조의 근골격계질환 유해요인조사 실태파악과 대안마련 조사결과를 보면, 당시의 활력과 긴장은 사라진 채, 대부분의 현장에서 담당자 중심의 3년마다 돌아오는 관성화된 사업으로 전락되어 치료받을 권리는 물론이고 보호예방이라는 법적 취지조차 무색하게 된 상황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틈타 유해요인조사를 폐기하자는 경총의 뻔뻔스러운 요구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출처 : 일과건강

 

다시 시작해봅시다!!

2016년에 진행하는 유해요인조사는 제대로 해서 골병을 잡아봅시다. 여전히 골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노동자의 건강권쟁취와 골병을 제대로 잡아내기 위한 유해요인조사가 되기 위해서 몇 가지 제안해봅니다. 먼저, 담당자 중심이 아닌 전체 노동조합의 활동으로 상정되고 준비되어야 합니다.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는 조합원의 건강권 쟁취, 현장 조직력과 통제력 강화, 제대로 치료받을 권리 찾기, 노동조건개선 등 현장문제 전체를 포괄할 수 있고, 포괄해야만 제대로 골병을 잡을 수 있기 때문에 목표설정부터 사업기획과정까지 노동조합 전체의 고민과 준비, 활동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 조사와 개선, 평가를 하는 모든 과정이 조합원의 요구와 참여를 모아내고 실현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이 되려면 실제 조사에 함께 할 수 있는 조합원을 조직하고 일상적으로 활동이 가능할 수 있는 체계(예를 들어 근골격계 실행위원구성, 부서별 개선위원회 구성 등)를 마련해야합니다. 만약 전문가에게 의뢰를 한다거나 사측주도로 유해요인조사가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노동자의 알권리 보장과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최대한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세 번째, 그동안 조사에만 매몰되었던 유해요인조사를 넘어서 느리더라도 실제로 현장의 변화를 조합원이 함께 경험하고 실현할 수 있는 일상 활동이 되어야합니다. 3년마다 하는 유해요인조사가 아니라 3년동안 개선하는 활동으로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마지막으로, 기간 진행된 유해요인조사에 대한 평가를 시작으로 이번 유해요인조사에서 해야 할 목표를 설정하고, 유해요인조사 사업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의 구체적인 활동 평가를 통하여 성과를 축적해 내고 부족한 부분은 보강해 나가는 활동이 되어야합니다.


2016년 안팎으로 녹록하지 않는 한 해이지만 이번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는 관성화 되고 있는 사업에 활력을 만들어내는 활동으로, 공상이 아닌 제대로 치료받을 권리 쟁취로, 인간공학적 개선만이 아니라 노동강도를 포함한 근본적인 노동조건의 개선으로, 자본의 이윤보다는 노동자의 몸과 삶이 우선인 현장과 세상 만들기로 거듭날 수 있는 활동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도 이러한 활동에 한 주체로서 함께 할 것을 약속합니다.

 

  • 한채원 2016.06.22 17:02 ADDR 수정/삭제 답글

    산재로 임시유해요인조사를 실시했는데 그로부터 3년후 정기 유해유해요인조사를 실시하는 겁니까?

  • 한채원 2016.06.22 17:03 ADDR 수정/삭제 답글

    아님 임시 상관없이 그냥 3년마다 정기 유해요인조사를 하는겁니까?

  • 한노보연 2016.06.22 23:15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정기유해요인조사는 3년에 한번해야하고요 선생님이 말씀하신것 처럼 산재가 발생하거나 근골부담작업에 해당하는 작업, 설비를 도입하거나 작업량, 환경 등 변경을 한 경우 지체없이 조사를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