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Z 다양한 노동이야기] 물 관리의 토대를 마련하는 '수문조사' 노동 / 2020.12

[A-Z 다양한 노동이야기] 

 

물 관리의 토대를 마련하는 '수문조사' 노동

 

다연 / 상임활동가 

 

52일간의 비. 올해 장마는 그야말로 기록적이었다. 한국은 여름에 집중되는 호우 때문에 해마다 비로 인한 재해들이 발생하는 지역이기는 하지만, 올해는 그 피해 규모가 더 컸다. 게다가, 기후위기로 인해 앞으로 이렇게 예측할 수 없는 긴 폭우와 그로 인한 홍수와 같은 재해 발생률이 더 높아지리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예상에 따라, 홍수와 같은 '물과 관련된 사고'에 대비하는 일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 그러한 대비체계를 구축하는 일의 뒤에는 사람이 있다. 바로 한국수자원조사기술원(한국수자원공사와 다르다!)의 수문 조사 노동자들이다. 한국수자원조사기술원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유량조사단이 설립된 2007년 부터 수문조사에 몸담아 온 민주노총 한국수자원조사기술원지부의 임혁진 지부장을 만나, 수문조사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365일 중 100일 넘게 강 안팎에서

수문조사는 한 마디로 국가의 물 관리에 필요한 각종 기초 데이터를 모으는 작업이다. 우선 수문조사의 1차적 목적은 홍수예보/경보를 위한 것이지만, 이외에도 여러 목적을 위해 다양한 종류의 조사를 수행한다. 수문조사는 크게 (1) 수문조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강하천의 물의 양 조사(유량조사) (2) 토양에 흡수된 형태로 존재하는 물의 양 조사(토양수 분량조사) 그리고 (3) 대기중으로 방출되는 물의 양을 측정(증발산량조사) (4) 강하천에 쌓인 토사량을 파악(유사량조사)하는 업무들로 구성된다. 그리고 이렇게 생산된 자료를 바탕으로, 홍수 뿐만 아니라 물 분쟁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갈수(비가 내리지 않아 강물이 마르는 일)에 대비하고, 국내의 수자원 활용 계획을 세우며, 깨끗한 물을 공급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수문조사는 국내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의 안정적인 생활과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 기본이 되는 물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노동이다.

"기기는 좋아졌어도, 실질적으로 하천 유량 조사는 백 년 전부터 그랬듯, 하천에 직접 들어가서 측정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비가 많이 오면 대피하거나 집에 머무를 수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희는 내린 비 양에 따라 하천의 유량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1년 주기로 전부 파악해야 하기에 오히려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예전에는 14박 15일씩 외부 출장을 나갔습니다. 하천수위가 높을 때와 낮을 때의 수치를 모두 조사해야 하는데, 큰 규모의 하천이라면 수위가 낮아지는 게 느리다보니 오래 기다려서 측정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현재는 노동존중이라는 슬로건 아래 주52시간제가 법으로 도입되어, 이렇게 긴 출장은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보통 길게 나가면 4박 5일 정도 나가요. 그런데도 1년 총 출장 일수를 따져 보면 100일에서 120일에 달합니다."

유량 조사의 경우, 홍수기 이전에는 홍수기 조사를 준비하고, 홍수기 이후에는 홍수기 때 수집한 데이터들을 모아 분석하여 보고서를 작성한다. 하지만 출장은 홍수기뿐만 아니라, 저평수기(홍수기 외의 시기)에도 나가야 한다. 1년의 365일 중 100일에서 120일의 출장은 그 자체로 체력에 부담이 된다. 여름 홍수기 때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지치는 습하고 더운 날씨에 장화와 방수 작업복을 입고 일해야 한다. 게다가 하천의 물살을 버틸 수 있을 만한 무거운 장비들을 사용해야 하다보니 근골격계에도 무리가 온다. 임혁진 지부장은 자기 자신도 허리가 안 좋고, 몇년 전부터 수술까지 받아야 할 만큼 허리가 안 좋아진 분들이 아주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조사원들의 업무상 어려움에 대한 내외부의 평가 간 온도차도 있다, 현장 경험이 없는 내부에서는 출장가서 놀다오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조사원들이 앓는 근골격계 질환들이 단순히 개인의 소홀한 몸 관리 문제로 치부되는 경우도 있다.

 

▲   수문조사를 위해 강 안팎을 오간다. 조사원들은 위험한 외부환경에 늘 노출된다.

여전히 위험한 노동 환경

"예전에는 대형 화물차가 쌩쌩 오가는 교량 위에서 라바콘(안전고깔) 하나없이 3~4시 간씩 측정을 했어요, 낙동강 같은 곳에서는 작업복 하나 없이 여섯 시간, 여덟 시간씩 도로 위에 서 있기도 했고요. 밥도 못 먹어서, 중간에 빵 하나 먹으면서 일했어요. 그러다 2010년쯤 일용직 노동자 한 분이 돌아가시는 사고가 났죠. 그걸 계기로 안전장비가 확 늘어났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잃은 뒤에야 겨우 조금바 뀌는 현실. 그렇다면 그 이후로는 안전하게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을까? 나아지긴 했지만, 5~6 년 전 또 다른 사망사고가 있었다. 잇따른 사고들로 인해 노동자들은 '나도 언제 사지로 내몰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늘 마음 한 켠에 있는 데, 작년 홍수기 때 얼마나 위험할지 알 수 없는 계획되지 않은 지점에 조사를 나가라는 요구가 있었다. 노조는 이 위험한 요구를 거부하는 노동자들의 의견들을 모아, 초대원장에 대한 퇴진투쟁을 단행했다(물론 그 시기까지 축적되어 온 많은 문제가 있었다). 이를 계기로 새 원장이 부임했고, 단협도 대대적으로 개정했다. 이제 노조 차원에서 단협에 기초해 주말 근무나 위험도를 예상하기 어려운 계획되지 않은 지점에서의 측정은 막아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노동자 개개인들이 더 경각심을 갖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얼마 전에 다시 강에서 조사를 하던 한 노동자가 물에 빠져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동지의 장례식장에서 들어보니, 진짜 다 한 번씩은 죽을뻔한 경험을 했더라고요. 이 상황에서 이렇게 해서 살았다'는 얘길 다들 했어요."
 

▲   올해 오랜 장마로 불어난 강에서 수문조사를 진행한 현장.


늘어난 사업예산에도 충원은 미숙련 비정규직으로

이렇게 위험한 작업을 거부하기 어렵게 만들면서도, 총 업무량 또한 증가시키는 원인들에는 수문조사 노동의 낮은 단가와 기재부에서 인력 충원을 위한 예산을 배치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

"한국의 많은 현장 노동들이 그렇듯이, 이 업무에 대한 단가 역시 굉장히 낮습니다. 단가가 낮으니 사측에서는 물량을 최대한 확보하려 합니다. 보통 1년에 한 하천에 대해 36회 조사를 나가는데, 4대강 실시 설계를 할 때는 그 두 배 가량의 조사를 나가야 했습니다."

일은 두 배가 되었으나, 필요한 인원의 일부만이 채워지는데 그나마도 비정규직으로 충원되었다. 내년에도 유량측정 업무는 더 확대될 예정인데, 이러한 현실은 여전히 그대로다.

"통합적인 물 관리를 위해 유량측정 사업의 중요성이 커졌고, 이에 따라 환경부에서 사업 확장을 위해 예산을 증액했습니다. 사업이 확장된 만큼, 사업을 수행할 정규직 노동자들을 더 뽑아야 했고요. 그런데 기재부가 사업 예산은 증액하면서도, 충원에 필요한 예산은 할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사람은 더 필요하고, 예산은 부족한 상황에서 선택지는 비정규직 채용밖에 없었던거죠

보통 한 팀이 4명으로 꾸려지는데, 이제 내년부터는 모든 팀이 3(정규직)+1(비정규직)으로 구성됩니다. 노조에서는 당장 노동강도를 너무 높일 수는 없으니 그러한 채용 방침을 일단은 수용하지만, 2년만 그렇게 하고 그 이후에는 그럴 수 없다고 막아놓은 상태입니다. 하지만 사측에서 정규직 충원을 위해 노력하더라도, 기재부에서 또 안 된다고 하면 방법이 없어요. 이런 상황이니 점점 노동강도가 증가될까 우려가 됩니다."

비정규직 배치는 다양한 지점에서 문제가 있지만, 우선 기존 노동자들의 업무 강도를 높이고 팀원 모두의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대한 문제가 된다. 특히 유량 조사의 경우에는, 현장 경험이 오래 쌓여야 불어난 강물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노하우를 습득할 수 있다. 심지어 오랜 작업 경력이 있다고 할지라도, 강에 들어가서 하는 작업은 늘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을 안고 있다. 얼마 전에 일어난 사고도 사망한 노동자도 경력 10년 이상의 전문가였는데, 초심자의 경우는 오죽할까. 그러니 2년간의 짧은 계약 기간만 근무하며, 숙련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비정규직들에게는 자칫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를 주요 업무들을 맡기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대부분의 업무는 고스란히 숙련된 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 팀원은 4명이지만, 실질적으로는 3명이 업무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사람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일, 직업윤리와 노동안전 사이에서

"수문조사는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내기 위해 필요한 기초자료를 생산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직업윤리를 생각하면, 어떤 상황에서든 조사를 나가야 하지만, 그렇게 하면 노동자 자신의 안전은 포기해야 한다는 문제가 생기죠. 여기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내부에서 공식적으로 위험작업 거부의 중요성이 이야기되고는 있습니다만, 실제로 저희는 비가 많이 오면 '나가서 찍어야하는데, 이렇게 안 나가도 되나' 하면서 불안해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불안감은 차차 줄여나갈 수 있도록 해야겠지만요. 이렇게 노동 특성상 위험요소가 상존하는 곳에서 일해야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반드시 누군가는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 스스로가 이러한 일을 선택한 만큼, 어떻게 노동환경을 개선해 나갈 것인가에 방점을 찍고 노력해나가려고 합니다."

노동환경 변화에 있어서는, 임혁진 지부장은 우선 작업 자체가 자동화될 수 있도록 기계 교체가 이루어져야 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 역시 안전한 노동 환경은 사측이 노동자에게 주는 특별한 선물이 아니라 그들이 의무적으로 보장해야 하는 영역임을 인식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동자가 안전을 위해 스스로 지켜야 할 수칙과 사업주가 해야 할 일에는 분명히 구분이 있음을 알고, 후자에 대해서는 사업주에게 당연히 요구해야 한다는 당부를 했다.

특정 노동에서 노동자가 마땅히 따라야 할 바가 있다면, 그 목록에는 반드시 '자신의' 생명 보전과 자기효능감, 행복의 증진 등이 반드시 포함될 것이다. 누군가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다른 누군가의 생명이 희생되는 사회에선 그 누구도 '진정' 안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환경이 바뀌기 위해선 기술적인 면에서의 개선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정부 기관조차 재정예산을 이유로 노동자의 삶을 정책의 뒷전으로 밀어내는 태도다. 자기 몫의 삶을 힘껏 살아내 온 이들의 죽음을 도외시한 채 살아남은 이들에게 동일한 위험을 지게 하는 무책임한 태도 말이다. 이러한 정부의 태도는 사회 전체에 잘못된 사인을 준다. 사람이 중요하지만 '돈'을 생각하면 "소수의 희생" 은 어쩔 수 없고 문제 삼지도 않겠다는 사인을 말이다. 무엇을 우리 사회의 가치로 삼을 것인가. 이 질문에 노동자의 삶이 최우선이라고 답 할 수 있는 정부의 태도 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