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귀에 드는 골병 소음성 난청 / 2017.2

귀에 드는 골병 소음성 난청



권종호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할석(割石). 돌을 나누거나 베어낸다는 뜻이다. 건설 현장에서는 잘못된 콘크리트 구조물을 해체하거나 수정하는 작업을 칭하는 용어다. 얼마 전 이 작업을 30년 해온 한 분이 배치 전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내원하셨다. 이 분의 청력은 소음성 난청 진단 기준 에 가까운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다. 콘크리트를 30 년 깨는 동안 청력이 온전히 남아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동안 귀마개는 좀 사용하셨는지 물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써 본 적 없었다는 대답 이 돌아왔다. 그에 덧붙여 처음 일을 배울 때 그런 거 쓰면 안 된다고 배웠다는 이야기도 하셨다. 깨는 동 안 나는 소리를 들어야 어떤 부분을 깨고 있는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귀마개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귀마개를 사용하면 주파수나 귀마개 종류에 따른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략 15~25dB의 소음을 줄여주는 것으 로 알려져 있다. 어차피 귀마개를 하더라도 어느 정 도의 소리는 듣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소음의 크 기가 3dB만 줄어도 소음의 에너지는 반절로 줄기 때문에 청력 손상을 막는 데는 충분히 효과적일 수 있다. 따라서 귀마개를 한 상태로 들리는 소리에 익숙해지는 것이 좋다.

 

하지만 실제 노동 현장에서는 말처럼 쉽지가 않다. 귀마개를 착용하려는 노동자의 의지가 있더라도 일 에 문제가 생기고, 일이 더뎌지는 상황에서 꾸준히 귀마개 착용을 할 수 있는 노동자는 많지 않다. 더욱 더 근본적인 원인은 그 적응 기간 생기는 문제를 용 인해주는 사업주나 관리자는 더 없다는 것이다. 또 한, 잦은 착용으로 인한 외이도염, 귀 덮개 형태 착 용 시 착용 부위의 통증, 청력 둔화로 인한 안전사고 위험 등 귀마개 자체가 가지는 문제도 노동자의 귀 마개 착용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앞서 30년간 활석 작업하셨던 분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이미 30년간 귀마개를 하지 않고 할석 작업을 해온 노동자분의 청력은 떨어질 대로 떨어져 이제는 귀마개를 하는 상태보다 소음을 덜 듣는 수준이 되었다. 그분은 시끄러운 소리지만 어차피 참고 견디며 일해야 하는 줄 알고 미련하게 일한 것 같다고, 요즘엔 집에서 TV 볼륨 때문에 아내분과 말다툼도 잦아졌다고 하셨다. 열심히, 문제없이 잘 해내려고 참고 견디며 일해 온 노동자의 귀에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혼자 안고 가야 할 골병만 남은 것이다.

 

고용노동부의 통계자료인 근로자 건강진단 시행 결과를 연도별로 살펴보면 2012년 6,684명, 2013년 7,388명, 2014년 8,428명, 2015년 10,042로 소음성 난청으로 직업병 유소견자(D1) 판정을 받은 노동자의 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귀마개의 지급조차 되지 않던 옛날보다, 귀마개 착용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교육도 많아지고 충분히 지급하는 사업장도 많아졌지만 소음성 난청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는 결국 귀마개 착용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소음 사업장의 관리에 있어서는 귀마개 착용과 같은 노동자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소음 감소를 위한 공학적 개선이 꼭 필요하다. 즉, 소음 발생 기계, 기구의 대체, 시설의 밀폐, 흡음재, 덮개, 방음벽 설치 등 소음을 줄이는 근본적인 소음 관리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개인 보호구 지급보다 투자비용이 많고 밀폐, 흡음재, 덮개 등의 사용으로 인해 생산 효율의 감소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시행되는 경우가 거의 없고,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강제도 되지 않는다. 심지어 이러한 시설 개선과 관련한 산안법 시행규칙 제120조에는 “다만, 작업의 성질상 기술적, 경제적으로 소음 감소를 위한 조치가 현저히 곤란하다는 관계 전문가의 의견이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소음 감소 조치를 하지 않는다).”라는 면피 문구만 버젓이 들어있다. 결국, 전혀 해결되지 않는 직업병인 소음성 난청은 여전히 자본의 논리 아래에서 노동자 개인의 책임만 강조하고 교육하고 있다.

 

2015년 기준 직업병 유소견자(D1) 중 소음성 난청이 차지하는 비율은 96.8%에 달한다. 2012년부터 95% 수준을 벗어난 적이 없다. 다른 직업병에 비해 명확한 직업병 판정의 기준이 있다는 점도 그 영향이 있겠지만 그만큼 의심할 여지없는 직업병이라는 점, 그 발생 빈도가 높고 전혀 줄지 않는다는 점은 여전히 철저한 관리가 필요한 상태라는 것을 나타낸다. 고용노동부는 이러한 소음성 난청에 대해 아무리 보호구 착용을 교육해도 안 된다고 매너리즘에 빠질 것이 아니라 소음 발생 시설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자본의 논리를 넘어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 노동자의 건강을 팔아 자본의 배를 불릴 것인가.

 

 

<일터> 통권 157호 / 2017.2





- 차례 - 


[특집] 노동조합의 2017 노동안전보건 활동 방향을 묻다

26 2017년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 사업계획

28 활동이 취약한 지회 역량 강화에 힘쓴다!

30 노동안전을 넘어 공공안전으로

32 죽지 않는 현장을 만들 겁니다!

34 현장에서 우선순위 중 하나로 고민하는 노동안전보건 활동으로 


4 [노동안전건강뉴스] 


6 [지금 지역에서는] 러시아, 중국, 카자흐스탄, 브라질은 석면생산, 수출을 중단하라!


8 [포커스] 안전보건공단 노동자 건강증진활동의 아이러니


10 [알기 쉬운 위험성 평가] 위험성 평가, 사례로 배워 제대로 하기 (3) 


12 [현장의 목소리] 시그네틱스 노동자의 기나긴 해고와의 싸움


16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언제가 모든 사람에게 솔직한 PD가 되고 싶어요


20 [연구소 리포트]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권 실태


24 [사진으로 보는 세상]


36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귀에 드는 골병, 소음성 난청


38 [지키고 되살리자, 작업중지권] 당장멈춰 3년의 활동, 남은 과제들


42 [시간의 재발견] 노동시간 줄이겠다는 노동부 행정해석이나 우선 변경하길


46 [문화읽기] 전화벨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뭐였을까?


48 [발칙X건강한 책방] 이어말하기의 힘으로 2017년 봄을 부르다


50 [유노무사의 상담일기 더불어 與] 현대자본의 산업안전보건 책임에 관한 몰상식적 행태


52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국민조사위 발족


54 [이러쿵저러쿵] 불신의 시대에서도 웃으면서 살 수 있기를


56 한노보연 이모저모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너무 흔한 산재은폐와 직업병의 은폐 /2015.10

너무 흔한 산재은폐와 직업병의 은폐


조성식 회원,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얼마 전 특수검진 시, 한 노동자에게 직업병에 해당하는 D1 판정을 하였고, 얼마 후 그 사업장의 사업주에게 항의와 함께 판정을 바꾸어 달라는 부탁을 들었다. 그 사업장은 자동차 휠을 만드는 사업장의 사내하청 회사였다. 작업 중 소음 노출 수준이 높고, 소음으로 인한 직업성 난청도 적지 않게 발생하는 사업장이었다. D1 판정을 한 노동자의 경우, 한쪽 귀는 소음 노출로 인해 생기는 감각신경성 난청과 중이염으로 인한 전음성 난청이 동반된 혼합성 난청으로 직업성 소음 노출로 인한 소음성 난청이 존재하였기에 직업성 질환으로 판정을 내렸고, 다른 쪽 귀는 '소음성 난청 주의'에 해당하는 C1 판정을 하였다. 하지만 사업주는 이 노동자가 중이염의 병력 때문에 소음이 난청이 아니니 일반질병(D2) 판정으로 내려달라며 항의를 동반한 부탁 전화를 한 것이었다.


현재 특검 제도는 직업병 발견의 측면에서 그리 잘 작동하고 있는 제도는 아니라고 판단된다. 현재의 특검 제도가 진폐증과 소음성 난청의 조기 발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도 하고, 직업성 질환의 경우 잠복기가 긴 질환이 많은데 이를 적절한 검사로 찾아내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또한, 현재의 검사 항목이 부실하거나 부족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의 2013년도 근로자 건강진단 실시결과를 보면, 특수검진 후 7,804명의 노동자에게 직업성 질환이 발견되었고, 이중 소음성 난청이 7,388명, 진폐 관련성 질환이 162명이었다. 이 두 질환의 비율은 발견된 전체 직업성 질환의 95%를 넘어선다. 이처럼 직업성 질환은 특수 검진을 하더라도 소음성 난청과 진폐증 이외에는 잘 발견되는 않는 것이 현실이다.


▲  2013년도 특수검진결과에서의 직업성 질환의 질환별 유소견자 수 (%)


또 한편 특수검진은 사업주의 부담으로 검사가 진행되고, 대다수 특수검진기관은 사립의료기관이다. 따라서 특수검진기관에서 일하는 의사들은 전문가로서 성심껏 직업병을 발견해야 하기도 하지만, 비용을 지급하는 사업주의 눈치를 안 보기는 어려운 것이 또한 현실이다. 위와 같이 사업주가 항의 섞인 부탁 전화를 한 건 검진비를 지급한다는 갑의 위치를 이용해서 압박하려는 의도로 판단된다. (하지만 필자는 판정을 바꾸지는 않았다.) 이 회사의 경우 원청회사에 노동조합이 있었고, 원청 노동조합에서도 판정번복을 원하는 것 같지는 않은 눈치였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없는 회사는 상황이 더 어렵다. 노동조합이 없는 회사는 사업주가 검진기관을 차기 연도에 쉽게 변경할 수 있으므로, 해당 검진기관에서 일하는 의사들은 이 같은 전화가 상당한 위협이 된다. 


소음성 난청의 경우는 근로자 건강 실무지침에 직업성 난청에 해당하는 데시벨까지 명시되어 있어 판정을 비교적 명확하게 내릴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대다수의 직업성 질환은 노동자의 증상에 기반을 둬 판정을 내리게 되어 직업성 질환을 놓치지 않을까 고민을 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업주가 항의를 할 경우 진단을 놓칠 수도 있겠다는 판단도 하게 된다. 이처럼 사업주의 부담으로 진행되고 사업주가 임의로 검진기관을 바꿀 수 있는 경우, 특히 노동조합이 존재하지 않거나 힘이 미약한 경우에는 더욱더 사업주의 압력으로 발견된 직업병도 은폐되기 쉬운 것이 21세기 한국의 현실인 것이다


사고로 인한 산업재해도 언론에서도 몇 차례 보도되었듯이 광범위한 은폐가 일어난다. 심지어는 응급한 상황인데도, 산재 발생을 숨기기 위해서 119구급차를 부르지 않고 응급환자를 개인 트럭으로 수송하거나, 지정병원(이 경우 산재가 아니라 공상 처리해주는 병원)의 차량을 불러서 이송하는 경우가 흔한 것이 현실이다. 이 같은 사고성 재해로 사망하는 노동자가 한해 1,000명이 넘고 이조차도 은폐된 숫자이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수많은 산재가 발생하지만 많은 수가 은폐되고 있다. 또 한편으로 많은 유해 작업과 위험작업을 원청이 아닌 하청 업체·중소 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하고 있고, 이들 노동자에서 재해와 직업성 질병이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이 같은 산재 은폐를 막고 작업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적절한 개입 수단이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산재 은폐를 막고 작업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노동조합과 같은 노동자의 조직이 중소기업과 하청사업장까지 확대·강화됨으로써 산재 은폐를 하지 못하게 감시하고 작업환경을 개선하도록 사업주를 압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산업재해 은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하며, 중대 산업재해에 대해서 사업주를 비롯한 경영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