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선을 넘는 현장의 냄새 / 2019.10

선을 넘는 현장의 냄새

이이령 직업환경의학과 전공의, 운영집행위원

 

김기사그양반. 선을 넘을 듯, 말듯 하면서 절대 넘지 않아. 근데 냄새가 선을 넘지

영화<기생충>에서 반지하 집 특유의 냄새가 몸에 밴 운전기사 기택(송강호)의 냄새가 불쾌한 박사장(이선균)이 하는 대사다. 이 영화는 지워지지 않는 가난의냄새를 모티브로 부의 양극화에 대해 얘기한다. 뜬금없이 영화 <기생충>의 냄새 이야기를 한 이유는, 최근에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 업체와 철강 대기업 본사를 차례로 방문한 기억 때문이다.

음식물쓰레기 재활용 업체의 악취

얼마 전 소규모 사업장 특수건강진단 사후관리 목적으로 음식물쓰레기를 퇴비로 재활용하는 업체를 방문했다. 음식물쓰레기 특유의 비리고 불쾌한 냄새가 몸에 온전히 배긴 생산직 노동자들은 특별한 증상 및 질환이 없었고, 관련 업계에서 수년간 일하며 냄새에 무뎌져 특별히 힘들지는 않다고 하였다. 작업환경측정은 지극히 정상이고 대부분 자동화된 공정이라 수리 외에는 사고의 위험도 낮았다.

건강상담 후 순회점검 차 방문한 현장의 악취는 동네 음식물쓰레기 수거통 안에 코를 박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심해 오래 있지는 못하고 나왔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내 옷과 몸에 비린내가 배겨 퇴근길 지하철에서는 왠지 모르게 위축되었는데, 하루 종일 악취 속에서 일하면서도당당했던 노동자들을 생각하니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대기업 본사 계단의 향기

며칠 후 보건관리 대행업무 수행차 철강 대기업 본사 건물에 갔다. 보통 계단에는 퀘퀘한 냄새가 나기 때문에 심호흡을 한번 한 후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문을 열었는데, 예상 외로 은은하고 기분 좋은 향기가 났다. 이후 업무는 지극히 통상적이어서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 회사의 향기는 여전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본사 건물이라 그럴 수 있겠거니 했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 회사는 10여년 전부터 냄새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공장 내 냄새 발생 저감을 위한 전담조직을 구성하고, 자체 관리기준을 수립해 휘발성 유기화합물, 황화수소, 이산화황, 암모니아 등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냄새 발생원을 차단하는 대기환경 개선을 수행하고 있었고,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질병의 전조일 수도, 삶의 질 자체일 수도 있는 냄새 현장에서 냄새는 노출로 인한 심각한 사고발생 전 조치를 취하는 단서가 되기도 하지만, 특별한 경우 외의 일상적인 직업보건에서는 냄새에 대해 잘 다루지 않는다. 기업에서 냄새에 적극 대응하는 경우는 보통 노동자 건강 및 삶의 질 측면보다는 지역 주민들의 민원 때문이다.

밀폐공간 중독 사망, 건설업배달업의 사고, 장시간 고강도 노동으로 인한 과로사 등이 여전히 많은 헬조선의 노동시장에서 삶의 질에 가까운 사업장의 냄새에 대한 질문은 치열한 노동 현실을 잘 모르는 의사의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다하지만, 현장의 냄새는 예민한 일부 사람들의 문제제기가 아니다. 참았던 냄새가 에탄올이 아닌 메탄올이라면 시력을 잃을 수도, 전자산업 노동자들처럼 화학물질에 의한 혈액암이나 생식독성이 생길 수도 있다. 또한 저농도 만성노출로 인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신경계 등의 문제가 생길수도 있으며, 질병이 생기지 않더라도 현장의 냄새로 인한 불쾌함과 작업장에 대한 불안감 자체도 노동자 개인과 회사 조직에게는 큰 문제가 된다.

악취는 존재하지만, 노동자에게 안 느껴지도록 하려면?

음식물쓰레기에서 발생하는 악취는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냄새에 대한 대응을 고려하면, 두 회사의 사례는 구조적으로 양극화된 한국의 노동현실을 반영한다. 냄새로 대비되는 두 회사의 노동 조건, 노동 환경의 차이를 좁힐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노동자들은 악취에 적응해 살아가고 있었으며, 회사는 영세하며 제도적으로 규제했을 때 여러 한계가 있어 나 혼자서는 답을 찾지 못했다.

반지하냄새야. 이사 가야 없어져

영화<기생충>의 기정(박소담)은 반지하를 떠나야만 냄새가 없어진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노동자를 없애지 않고, 자원 재활용에 필요한 시설을 없애지 않고, 저개발 국가에 떠넘기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거시적으로는 양극화된 한국의 노동현실의 격차를 줄이고, 미시적으로는 현장의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여러 주체들의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

[연대발언] 임신 중 여성노동자 업무에 기인한 태아 건강손상 산업재해 인정을 위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 기자회견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에서 개최한 "임신 중 여성노동자 업무에 기인한 태아 건강손상 산업재해 인정을 위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 기자회견"에서 연대발언하였습니다. 

연대발언 내용과 기자회견문입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일하는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최민입니다. 현재 독일에서는 "임신 중 모의 보험사고로 인한 태아의 건강손상도 보험사고이다. 이 한도 내에서 태아는 피보험자와 동일하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보험에 의한 보호는 모체가 직접 직업병에 이르지 않는 직업상의 영향에 의한 경우에도 인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의 이런 조항 역시 그냥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1969년 태아 풍진에 걸려 출생하여, 중증 뇌손상을 가지게 된 어린이의 장애가 산재보험으로 보호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긴 법적, 사회적 논쟁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간호사로 어린이 병동에서 일하다 임신 중 풍진을 겪었기 때문에 생긴 선천성질환이었습니다. 

처음에 산재보험운영기관으로부터 급여를 거절당했던 이 어린이는, 지역사회법원에 소송 청구, 주 사회법원에서 항소심을 거치며 결국 연방헌법재판소에서 중요한 판단을 이끌어냅니다. 태아를 모든 보험급여로부터 배제하는 산재보험법의 규정은, 기본법 상 인간의 존엄 보호, 생명과 신체의 완전성에 대한 권리, 보편적인 평등의 원칙, 엄마가 받아야 할 보호와 돌봄의 권리에 반한다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바로 우리가 지금 주장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이후 이 판결에 따라 국가보험법이 개정되었고, 엄마가 직업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도, 임신 중 노출된 직업적 요인에 따라 발생한 태아의 질병 역시 산재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산재 보상에서 이런 변화가 생기자 이후 이에 따라 임신 중 여성 노동자를 특별히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법적 조항이 강화되었다는 점입니다. 독일에서는 임신한 여성 노동자에대해서는 위험성평가를 한 명씩 개별로 해서 위험을 평가하고 개선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법적 보호가 확립되지 않은 바이러스 등 생물학적 요인으로부터 보호 뿐 아니라 성과급 등 스스로 업무 강도나 노동 속도를 높여 일하게 되는 것조차 임신 여성 노동자들이 하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습니더.

이번에 생식독성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노동자들의 선천성 질환아 출산이 30%이상 높다고 나타난 연구결과가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기사로 알려졌다시피 이 결과는 방사선, 바이러스, 교대근무 등 임신 결과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요인들이 빠진 결과입니다. 비파괴 검사를 하는 제조업 다양한 현장이나 방사선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병의원 등에서 방사선에 노출될 수 있고, 정말 많은 가임기 여성노동자들이 교대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야간 교대근무는 유산 위험을 높이고, 조산이나 출생시 적은 체중 등 문제를 낳습니다.  또, 반올림에서 지적하신 것처럼 남성노동자에게 영향을 끼쳐 발생한 태아 손상도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시간을 미루어왔던 판결이 잘 결론날 뿐 아니라 이번 사건을 계기로 예방 측면으로까지 모성보호, 여성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입법이 넓어지길 바랍니다. 모든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권리, 노동자에게 유해한 물질에 대해 알권리,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에 대한 기업, 정부의 책임을 강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상의 변화로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그런 성과를 내기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

공공운수노조는 산재보상보험법 위헌소송을 신청한다.

 

엄마의 노동조건이 태아에게 영향을 미쳤다면

선천적 장애를 가진 아이를 산업재해로 인정하라!

 

 

10년의 세월은 제주의료원 여성노동자와 선천적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에겐 고통의 시간이었다.

 

제주의료원에서 2009, 104명의 선천성 심장질환 아이 출산과 관련해 우리 노조와 당사자는 2012년 태아의 장애를 산업재해로 인정하라는 신청을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했다.
그러나 공단은 불승인했고, 서울행정법원은 여성근로자의 임신 중에 업무에 기인하여 태아에게 건강손상이 발생하였다면 이는 근로자에게 발생한 업무상 재해로 보아야 한다며 인정했다.

2016년 고등법원은 산재보험의 수급자는 업무상의 사유로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노동자여야 한다는 이유로 다시 결과를 뒤짚었다.

동년 6월 대법에 상고했고지만, 지금까지 대법원은 결정을 내리지 않아 부모와 아이들의 고통은 계속 되고 있다.

 

 

또 다른 제주의료원이 대한민국 곳곳에 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는 우송대 산학협력단에 자녀 건강 손상에 대한 산재보상 방안연구용역을 발주했다. 보고서는 한국의 16살 이상 40살 이하 가임기 여성노동자 354575명 중 3%106669명이 생식독성 유해물질을 다룰 것으로 추정했으며, 매년 생식독성 취급군에서 태어나는 170명의 선천성 질환아 중 42명은 사업장의 유해물질 탓에 질환이 생긴 아이들로 추정하고 있다. 최소한 추정해도 생식독성 취급군은 비취급군보다 선천성 질환아를 낳을 확률이 33% 더 높았다.

제주의료원은 상대적으로 안정되고 문제 원인추적이 가능했지만, 비정규직 파견노동 등 불규칙한 노동환경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작업환경측정, 건강검진에서 누락되는 경우가 많은 여성노동자들의 조건을 고려한다면 고용부 연구결과는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장애아를 출산한 노동자 부모들은 이유도 모른채 장애아를 출산한 자신을 탓하며 힘들게 지내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대법원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 제1호 업무상 재해에 어머니인 여성노동자의 업무에 기인한 태아의 건강손상이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적용)하는 것은 위헌이며, 또한 입법을 하였으나 불완전하고 불충분한 입법으로 노동자의 권리가 침해되었음을 인정하고,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하라

 

하나, 정부는 자녀 건강 손상에 대한 산재보상 방안연구 결과에 따라, 임신 중에 업무상 유해요소에 노출되어 자녀가 출산 후 사망하거나 선천성 질환을 가지고 태어난 경우도 업무상 질병의 범위에 포함되도록 산재보상보험법을 즉각 개정하라.

 

하나, 정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모성보호와 산업재해보상보험 정책의 획기적 변화뿐 아니라 여성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권리, 노동자에게 유해한 물질에 대해 알권리,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에 대한 기업, 정부의 책임을 강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시행규칙을 입법하라.

 

 

공공운수노조는 국가가 모성보호의무 및 사회보장사회복지증진 의무를 다해 헌법에 명시된 평등의 원칙을 위반하지 않도록 감시할 것이다.

또한 엄마, 아이 그리고 자신의 아픔을 숨겨야 하는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다시 촉구하면서 여성노동자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위해 노력하겠다.

 

 

201941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알림] 전자산업 직업병과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서명에 함께해요!

지난 2015년 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15개국에서 모인 60여명의 활동가,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국제적으로 전자산업 생산에 사용되는 유해화학물질 문제를 토론했습니다. 아래 내용은 4일간의 회의에서 채택한 "도전장"입니다. 더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제품과 관행을 도입하고, 유해화학물질 사용과 노출, 폐기를 줄이기 위해 전자산업이 해야 할 일들을 담았습니다. 이제 세계의 여러 단체 및 개인들에게 이 “도전장”에 연명해 주시기를 요청합니다. 여러분의 목소리를 모아서, 3월 중순에 전자산업체들에게 이 “도전장”을 제시할 계획입니다. 

 

- 주소 : https://docs.google.com/forms/d/1i7alQ3ruH_FEYIUg_jxm9MW6p2KQnkX6Tgrp5h2QVFI/viewform

 

[전자산업을 향한 도전]

 

세계 전자산업은 전자제품 생산과 사용을 더 안전하고 지속가능하도록 개선해야 하며, 유해화학물질 사용, 노출, 폐기를 없애가야 한다.

 

- 도전

우리는 전자산업 브랜드 기업, 생산업체, 납품업체들에게 요구합니다. 더 안전한 대체물질을 개발하고 도입하여 화학적∙물리적 유해요인들을 예방적으로 줄이고 제거하십시오. 이는 기업과 정부 뿐 아니라 원료 추출∙가공부터 전자제품의 생산∙이송∙판매∙사용과 제품 사용 후 재활용과 폐기까지 전자제품의 생애주기 전체에 연관된 모든 이들을 향한 요구입니다. 우리는 외부화된 비용을 내부화해야 한다는 원칙 과 생산자 책임 확대의 원칙 을 지지하며 강조합니다.

 

- 인권, 노동권, 환경보호

이 도전의 목표는 안전하고, 건강하고,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공정하며, 지속가능한 생산입니다. 이 목표를 위해 전자산업은 다음과 같이 인권과 노동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에 대한 권리. 기업은 일터에서 노동자가 다치거나 병들지 않도록 효과적인 보호를 보장할 책임이 있습니다.
* 전자제품의 전 생애주기에서 사용되는 물질이나 폐기되는 물질로 인해 피해를 받지 않고 건강한 지역사회와 안전한 환경을 누릴 권리.
* 일터에 존재하는 유해요인들, 존재하는 모든 화학물질과 환경으로 배출되는 물질들에 대해 알 권리.
* 유해성이 발생하였을 때 효과적으로 제거할 권리. 여기에는 아프거나 다친 노동자들을 위한 보상과 지역사회나 환경에 미치는 유해성에 대한 책임이 포함됩니다.
* 노동자들이 방해받지 않고 단결할 권리와 단체협상을 할 권리.

 

- 필요한 실천과 변화

특별히 전자산업 브랜드 기업, 생산업체, 납품업체에 요구하는 여섯 가지 핵심적인 변화와 실천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투명해야 합니다. 어떤 화학물질들을 사용하고 배출하는지, 그 물질들과 관련하여 환경과 인간에게 대한 어떤 유해성이 알려져 있는지(생식독성을 포함하여) 노동자, 지역사회, 공중에 모든 정보를 공개하십시오.

 

2. 더 안전한 화학물질을 사용해야 합니다. 제품 생애주기 전반에 사용되는 유해 물질들을 평가하고, 이들을 더 안전한 물질로 대체하십시오. 환경이나 인간에게 어떤 건강영향을 미치는지 아직 모르는 물질이라면 사용을 피해야 합니다. 그 특성이 적절하고 완벽하게 파악되지 않은 물질에 대해서는 유해성에 대한 모든 검사들이 이루어질 때까지 사전예방의 원칙을 적용해야 합니다.

 

3. 노동자를 보호하십시오. 화학물질 영향을 받는 노동자들을 포함하여 다른 관심있는 노동자들 및 그들의 단체들과 함께, 제품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모든 작업장과 노동자들에 대하여 포괄적인 유해성 모니터링을 개발하고 실행하십시오. 여기에는 노출을 측정할 수 있는 모니터링, 질병을 찾아내고 예방하기 위한 건강상태 조사 뿐 아니라 훈련과 역량강화, 산업위생 모니터링도 포함됩니다. 노동자는 유해한 노동조건에 대해 협상할 수 있어야 하고, 불이익의 걱정 없이 유해 작업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4. 참여를 보장하십시오. 일터와 지역사회에서 화학물질과 폐기물을 제대로 관리하는데 참여하고자 하는 노동자와 주민들의 노력을 존중하십시오. 여기에는 실효성 있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노동안전보건위원회)와 훈련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일도 포함됩니다.

 

5. 지역사회와 환경을 보호하십시오. 제품의 생애주기 어디에서건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십시오. 모든 배출물질에 대해 효과적이고 투명하며 독립적인 모니터링을 수행하십시오. 공기, 물, 토양으로 배출되는 유해물질을 없애 가십시오.

 

6. 사람과 환경에 끼친 피해에 대해 보상하고 복구하십시오.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되어 피해를 입은 노동자들(현직, 전직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나 지역 주민들이 긴급한 치료와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방법과 재원을 마련하십시오. 문제해결에 필요한 만큼 충분한 기간 동안 환경과 일터를 복구할 수 있도록 기금 조성 방안을 마련하십시오.

 

 

 

  • 민들레홀씨 2015.03.29 04:28 ADDR 수정/삭제 답글

    이재용은 전자산업 유해물질 취급공정 노동자들에게 생명수당 지급하라!!

[특집] 1. 노동보건의 후미진 곳, 그곳엔 여성이 있다 / 2015.2

가부장적 문화와 남성 중심의 사회구조 속에서 여성들의 삶과 노동, 그리고 권리는 가려지기 십상이다. 그렇기에 여성노동자의 건강권 문제는 더 주의를 기울여 조명할 필요가 있다. 노동안전보건에 있어 견지해야할 젠더관점, 최근 승소판결을 받은 ‘제주의료원 집단유산 산재인정’ 사례, 여성주체들이 전하는 여성노동의 생생한 노동현실을 확인해 보자.


[특집1]

노동보건의 후미진 곳, 그곳엔 여성이 있다


공유정옥 회원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의대생 때 병원으로 실습을 갔었다. 몸통과 팔다리에 전극을 붙여 심장에서 나오는 전기 신호를 기록하는 심전도 검사를 맡았다. 환자를 아프게 하는 검사가 아니라 어려울 게 없어 보였다. 하지만 실전은 달랐다. 갈비뼈를 기준으로 지정된 위치에 전극을 붙여야 하는데, 여성의 경우 젖가슴 때문에 정확한 위치를 잡을 수가 없었다. 맨살에 손을 대는 일이라 젊은 여성 환자들은 같은 여성끼리인데도 민망해했다. 남성들보다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려서 힘들었고, 별 일도 아닌데 부끄러워하며 시간을 끄는 환자가 야속했다.

 

한 두 해가 지나 인턴(수련의) 신분으로 병원에서 다시 일하게 되었다. 인턴의 수많은 업무 중 수술을 앞둔 남성 환자들에게 소변 줄을 끼우는 일이 있었다. 누가 정했는지 몰라도 여성 환자는 간호사가, 남성 환자는 인턴이 하는 게 불문율이었다. 요도를 통해 긴 소변 줄을 밀어 넣는 동안 환자들은 아파했다.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하는 게 내겐 가장 중요했다.

 

어느 날 소변 줄을 넣던 중에 환자가 발기했다.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였다. 그때서야 다른 생각이 들었다. 왼손으로 음경을 쥐고 오른손으로 긴 소변 줄을 밀어 넣는 이 일을, 왜 내가 하는 건가. 수술을 앞두고 소변 줄을 넣는 일이며 사타구니를 면도하는 일이 하나같이 여성은 간호사가, 남성은 의사가 하기로 되어 있는 불문율은 왜 생긴 걸까.

 

 

 

▲ 윤필 작가가 그린 ‘성별분업’에 대한 그림. 출처 : 인권운동사랑방

 

 

세상에는 성별에 따른 촘촘한 규칙들이 있었고, 나도 그것들 속에 있었다. 젠더는 권력 관계였고, 그래서 상대적이었다. 환자나 간호사 앞에서 나는 남성 젠더인 의사로 일해야 했고, 의사들 내부로 돌아와 ‘진짜’ 남성 의사들 사이에 있으면 여성 젠더로 자리매김 되었다. 내가 배운 의학 교과서의 지식은 백인 남성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이었고, 심전도 검사의 표준도 그러했다. 심전도 검사를 받을 환자의 절반이 젖가슴을 가진 여성인데도. 나는 그런 표준에 길들여졌기에 교과서대로 검사할 수 없는 환자를 불편해할 뿐이었다.

 

노동자 건강권에서도 젠더 문제는 촘촘하고 강력하다. 안전보건 문제가 아직 덜 알려진 곳이 어디냐 묻는다면, 여성들이 많이 일하는 곳이라 답하면 된다. 마트 계산원, 식당 홀 서빙, 어린이집 교사나 병의원 간호사 등 사회적으로 여성의 얼굴을 가진 직종들을 생각해보면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도움과 챙김을 받아 물건을 사고 밥을 먹고 가족을 챙기며 치료를 받지만, 이들의 건강이나 권리에 대한 얘기는 아직 제대로 시작도 되지 않았다.

 

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한 운동 속에도 젠더는 있다. ‘산재 노동자’ 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는 단연코 남성, 아버지, 혹은 남편이다. 반도체 공장에서 ‘꽃다운’ 나이에 병들고 죽어간 노동자들은 ‘소녀’ 이거나 ‘누이’ 로 불렸다. 생식독성을 일으키는 유해요인 문제는 여성 노동자들이 각별히 처한 위험으로 인식되기 전에, 숭고한 모성을 보호해야 하거나 저 출산 문제 악화를 막아야 한다는 얘기와 범벅되곤 한다.

 

2013년 국제노동기구는 <안전보건의 젠더 감수성을 위한 10항> 가이드라인을 발간했다. 노동안전보건에서도 젠더 차이를 고려하고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법과 정책, 위험성 평가와 연구, 교육과 훈련 등을 평가하고 개발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안전보건지표에 여성이 처한 문제들이 담기지 않는다는 지적, 작업도구나 개인보호구도 일정한 체격의 남성을 표준으로 삼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국제노동기구가 이런 권고안을 만들게 된 배경은 ‘여성 노동자의 건강권 문제가 감추어져 있다’ 는 인식에 있다. 보이지 않던 문제를 누군가 말했기 때문에 이제라도 이런 인식이 생겼을 거다. 우리가 여성 노동자 건강권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그 문제를 말하기까지 힘들었을 누군가, 그 말 때문에 힘들었을 누군가에게 그 지식을 빚진 셈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촘촘하고 강력하고 당연해 보이는 젠더 구조 속에서 누군가 여성 노동자로서의 건강권을 주장하기 시작하고 있다. 내 눈으로 못 보았던 문제를 대신 알려주고 있는 목소리들이다. 마땅히 귀 기울이고, 같이 메아리를 만들어갈 방법을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