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3.아버지, 나 잘하고 있는 거 맞지요? /2016.2

아버지, 나 잘하고 있는 거 맞지요?



손성배 반올림 피해자 유가족

 


아버지는 삼성반도체 화성·기흥 사업장에서 일했다. 반도체 생산라인의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협력업체 관리소장으로 재직하셨다. 20032월 입사 뒤 2012831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아버지는 partners.samsung.com 메일을 가진 삼성 협력업체 직원이었다. 아버지는 20095월 급성이형성 (골수성·림프구성)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놀란 아내를 진정시키기 위해 태연한 척 했지만,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암 병동으로 가는 통로에서 남몰래 눈물을 삼켰다고 하셨다. 1차 골수이식 후 회복해 복직한다고 하셨을 때, 말렸어야 했다. 아들이나라 지키러 군대를 가니, 자신도 가족을 지키러 회사에 가야 한다고 했다. 그 때 꼭 말렸어야 했다. 아버지가 그 냄새나는 공장에 다시 제 발로 들어간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우리 가족 때문이었다.



 

유언처럼 남긴 기록 

살아계실 때는 산재 신청할 생각이 없었다. 대신 아버지는 자기가 잘못되면, 반올림에 전화하라며 이종란 노무사, 공유정옥 의사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복직 후 아버지는 자기가 왜 백혈병에 걸렸는지 파헤치기 시작했다. 작업환경과 관련한 업무 메일을 비공개로 운영한 가족 카페에 옮겨놓았다. 때가 되면 공장을 들락날락하는 화학물질 수거차량 사진을 찍어뒀고, 유해물질 배출함 사진을 몰래 찍어 보관했다. 한국안전환경평가원이 제출한 화학물질 사용실태 통보라는 제목의 보고서 역시 카페에 게시했다. 카페에 유언처럼 남겨놓은 기록들을 토대로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질병판정위원회에 총 세 차례 출석했다. 노무사는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다. 그러나 역시 불승인이었다.

 

사람냄새 없는 공장 

아버지는 9남매 가운데 7번째다. 형제들 가운데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났다. 2013년 작고하신 할아버지 보다 더 일찍 생을 마감했다. 아버지는 여름엔 마라톤, 겨울엔 스키를 타는 스포츠맨이었다. 그 병에 걸릴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아버지는 새벽 550분이면 집을 나섰다. 3교대하는 직원들의 얼굴을 다 봐야 한다며 때 이른 출근을 하셨다. 안개가 자욱하게 내리깔린 5층 높이의 반도체 생산 공장 사이를 걷다보면 항상 퀘퀘한 냄새가 난다고 했다. 사람냄새 없는 공장의 영업 비밀은 바로 이 불쾌한 냄새였다. 아버지를 비롯해 이 냄새를 맡으며 일하던 노동자들이 아팠다. 아프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기업은 상처받은 노동자들과 자신들은 무관하다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국가 역시 이들을 외면했다.

 

스트레스, 안 받으면 그만 아닌가?

2012년 초, 아버지의 병이 재발했다. 직전 해에 받은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다고 본다. 아버지는 정리해고를 해야 했다. 유지보수 업무를 원청인 삼성의 노동자들이 일정 부분 맡기 시작하면서 협력업체에 불똥이 튀었다. 지각이나 무단결근을 비롯한 기록이 남아 있는 사원 위주로 퇴사시켰다고 한다. 다른 협력업체 관리소장에게 수심 가득한 얼굴로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단다. 이 얘기를 들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자기가 잘리는 것도 아니면서 왜 스트레스를 받으셨을까아마도 그건 자기가 채용한 직원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에서 온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 그렇게 아버지는 또 다시 고얀 병을 온몸으로 맞았다. 최근 만난 주치의는 스트레스와 백혈병은 무관하다고 확언했다. ‘만병의 근원, 스트레스라는 말은 틀린 말인가 보다.

 

문고리 붙잡고 서 있기로

기댈 곳이 없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근로복지공단도, 회사도 다 아버지 탓을 했다. 병난 것도, 숨 쉬기를 그만한 것도 다 아버지 탓이란다. 그런데 반올림은 아니었다. 삼성 공장 노동자들이 향후 일하다 또 아프거나 죽지 않도록 작업환경을 개선하라고 외쳤다. 합당하고 배제 없는 사과, 보상을 하라고 요구했다. 당사자 가족 개개인은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11년간이나 지속하고 있다. 우리 가족은 해결로 가는 문이 조금 열려있는 와중에 반올림에 발을 내딛었다. 반올림은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는 삼성을 각성하게 했다. 닫힌 문을 열었다. 삼성의 막무가내 보상위원회에 아버지 이름이 적힌 서류를 들이밀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기껏 열어놓은 문을 내가 나서서 닫는 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나중에 병 다 나으면 반올림 사무국장을 하실 거라고 했었다. 결국 그 꿈은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지만,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그 약속을 기억한다. 그래서 문고리를 꼭 붙잡고 서 있기로 했다.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손잡고 다함께 이기는 그 날을 기대하며 불안해도 버티고 서 있기로 했다. 아버지, 나 잘하고 있는 거 맞지요?

 

 

[입장] 황상기 등 37명의 삼성직업병 피해자들 ‘반올림 협상요구안’ 지지의사 표명 (반올림)

황상기 등 37명의 삼성직업병 피해자들 ‘반올림 협상요구안’ 지지의사 표명 


우리는 삼성에 요구합니다

 

삼성전자 공장에서 일한 뒤 병에 걸린 사람들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한창 젊은 나이에 암이나 희귀난치성 질환에 걸려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 인생의 푸른 꿈을 접고 숨을 거둔 사람들.

목숨은 건졌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병마와의 싸움에 힘겨운 사람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곧 우리의 이야기라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삼성전자에게 약속받고 싶습니다.


 

하나. 마음을 담아 사과하세요.


노동자들이 병에 걸린 게 혹시 공장에서 사용한 화학물질과 방사선 때문은 아닌지, 회사도 걱정되지 않나요?

생산에 바쁘다는 이유로 안전보건교육 한번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 안전 수칙은 만들어 놓았지만 실제 그걸 지킬 수 없을 만큼 작업 속도를 다그친 것이 양심에 찔리지 않나요?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요구하는 피해자들 입을 돈으로만 막으려 했던 게 부끄럽지 않나요?


마음을 담아서 사과하세요.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책임을 시인하는 것은 성숙함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둘. 보상을 할 때 피해자들을 함부로 가리지 마세요.


삼성이 이런 말을 했더군요.

“산재 신청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나 보상할 수는 없다.”

별 근거도 없이 보상할 수는 없지 않냐는 걱정으로 들렸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 반대가 걱정됩니다.

별 근거도 없으면서 함부로 피해자들을 보상에서 배제할까봐 걱정됩니다.

교섭장에 직접 나온 사람들부터 보상하겠다는 근거는 뭔지요? 교섭장에 나가지 못할 만큼 힘겨운 처지인 사람들 보상은 나중에 정해도 된다는 근거는 있는지요?

 

우리는 삼성이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보상하기를 바랍니다.

산재 신청을 했다는 이유가 아니라, 삼성에서 일하다 병에 걸린 것 때문에 보상하기를 바랍니다.

특정 질병이 아니라는 이유로 함부로 배제하지 말고,

직영 직원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특정 업무를 한 게 아니라는 이유로, 특정 시기에 근무한 게 아니라는 이유로, 기타 등등의 이유로 함부로 보상에서 배제하지 말고.

삼성에서 일하다 병에 걸린 사람들, 특히 암이나 희귀난치성 질환에 걸려 큰 고통을 겪어온 사람들 모두에게 폭넓게 보상하길 바랍니다.


 

셋. 우리들의 알 권리를 침해하지 마세요.


공장에 보관하거나 사용하는 화학물질 정보를 보여달랬더니 영업비밀이라 합니다. 정부기관이나 외부에서 공장을 조사한 내용도 영업비밀이라 보여줄 수 없다고 합니다. 심지어 어느 공정에 어떤 보호구를 지급했는지에 대한 자료도 영업비밀이라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겠다고 합니다. 예전 자료라도 보여달랬더니, 없다고만 합니다. 내가 왜 병에 들었는지, 내 사랑하는 가족이 왜 죽어갔는지, 앞으로 이런 고통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는 정말 알고 싶습니다.

우리 집 옆에 있는 삼성 공장에 어떤 종류의 폭발물이 얼마나 보관되어 있는지, 그런 정보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삼성이 이런 정보들을 투명하게 공개하여, 훗날 이 정보를 필요로 하는 모든 이들에게 숨김없이 제공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각 공장 인근의 지역주민들에게도 안전한 마을을 만들 권리를 적극 보장하길 바랍니다.


 

넷. 다시는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대책 철저히 마련하세요.

 

우리는 반올림이 내놓은 재발방지대책 요구안인 “삼성 공장의 안전보건상태를 종합진단 받아볼 것, 앞으로도 안전보건관리를 잘하고 있는지 외부감사제도를 마련하라”는 내용을 적극 지지 합니다. 이 경우 회사눈치보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독립적이고 공정한 사람들로, 그리고 투명성이 보장되도록 해야 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삼성이 이해당사자의 참여, 제3자의 참여 등 글로벌 기업답게 기본에 조금만 더 충실하기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국제사회에서 더 이상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합니다.


 

다섯, 삼성은 어떻게 하는 것이 피해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인지, 기본으로 돌아가서 생각하십시오.

 

우리가 우리들의 아픈과거를 들추면서까지 진실을 규명하고자 나선 것은 삼성의 긴 침묵에서 받은 상처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미 사과도 받고 보상도 받은 것 아니냐는 사회의 차가운 무관심 때문이기도 합니다.

 

부디 아픔을 기억하고 상처를 보듬어주는 “대화의 본질”에 충실하시기 바랍니다.

 


1. 황상기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백혈병 사망자 故황유미 아버지)

2. 김시녀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뇌종양 피해자 한혜경 엄마)

3. 강봉신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백혈병 사망자 故김경미 남편)

4. 김기영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웨게너씨 육아종, 신장암 피해자)

5. 신○영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유방암 피해자 신○○ 언니)

6. 강덕원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유방암 사망자 故김도은 남편)

7. 이○○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뇌종양 피해자 오○○ 아내)

8. 이희진 (삼성전자 엘씨디 천안공장 다발성경화증 피해자)

9. ○○○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다발성경화증 피해자)

10. 김미선 (삼성전자 엘씨디 기흥공장 다발성경화증 피해자)

11. 이윤주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 난소암 사망자 故이은주 오빠)

12. 김지숙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 재생불량성빈혈 피해자)

13. 신부전 (삼성전자 엘씨디 천안공장 재생불량성빈혈 사망자 故윤슬기 엄마)

14. 박○○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악성림프종 사망자 故박효순 언니)

15. 이○○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화성 폐암 사망자 故이○○ 아내)

16. 김기철 (삼성전자 반도체 화성공장내 협력업체 백혈병 피해자)

17. 손성배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내 협력업체 백혈병 사망자 故손경주 아들)

18. 이용주 (삼성전자 엘씨디 천안공장 폐암 피해자 이지혜 아버지)

19. 양○○ (삼성전자 반도체 부천기흥, 엘씨디 천안, 폐암사망자 故송○○ 아내)

20. 이현배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유방암, 자궁내막증 피해자 이현 오빠)

21. ○○○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2010년 백혈병 피해자)

22. 이○○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 뇌종양 피해자)

23. 이성옥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갑상선암 피해자)

24. 박민숙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유방암 피해자)

25. 김○○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화성 융모암 피해자)

26. 김○○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유방암 피해자)

27. 조○○ (삼성전자 엘씨디 천안공장 유방암 피해자)

28. 김선희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 백혈병 사망자 故이범우 아내)

29. 김윤정 (삼성전자 엘씨디 천안공장 만성골수성 백혈병 피해자)

30. ○ ○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내 협력업체 급성신부전증 피해자)

31. 안○○ (삼성전자 엘씨디 기흥공장 만성골수성백혈병 피해자)

32. 김○○ (삼성전자 엘씨디 천안공장 만성신부전증 피해자)

33. 황○○ (삼성전자 반도체 화성공장내 협력업체 피부암 피해자)

34. 박원희 (삼성전자 반도체 부천공장 루푸스 피해자)

35. 김은숙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온양 갑상선암, 뇌수막염 피해자)

36. 김미옥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 유방암 피해자)

37. 이혜정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전신성경화증 피해자)

 

이상 37명의 피해자 가족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