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1월_특집3] 주 52시간제, 방송 노동의 상황은 괜찮습니까? / 2021. 01

[과로사회에서 노동존중사회로]

주 52시간제, 방송 노동의 상황은 괜찮습니까?

성상민 후원회원,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활동가


온갖 말도 탈도 많았지만 어찌 됐든 '주 52시간제', 엄밀하게는 '주 40시간 노동시간 상한제'가 지난 2018년 공공기관과 공기업, 300인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올해 2021년 7월부터는 5인 이상의 사업장에 모두 적용된다. 물론 여전히 반발도 적지 않다.

2019년까지는 '장기 불황'을 이유로, 2020년부터는 한국을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퍼져 여전히 종식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경제적 타격을 이유로 계속 주 52시간제를 유예하거나 피해가려는 움직임이 끊이지가 않았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러한 소식 등을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전달하는 언론을 비롯한 방송 제작 현장 전체가 노동시간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노동 시간 규제에 대응한 방송업계의 '꼼수'

애당초 방송 제작 현장은 '주 68시간제'이건 '주 52시간제'를 시행하건 별로 상관이 없던 영역이었다. 2019년 7월 전까지는 근로기준법(이하 근기법) 상의 '근로시간 특례업종'에 지정된 26개 업종에 '방송업'과 '영상·오디오 기록물제작 및 배급업'(방송 프로그램 제작업)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방송 산업'의 특성상 일률적으로 근로시간을 규제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근기법의 '근로시간 특례업종'에 방송업은 오랜 시간 속해 있었고, 방송사와 외주 제작사들은 이를 이유로 정규직·비정규직·프리랜서 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방송 노동자들을 마음껏 밤을 새우게 하며 일을 시킬 수가 있었다. 어차피 노동청에 진정을 넣어도 방송업의 야근과 과로를 사실상 합법적으로 보장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대응할 여지도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8년 근기법이 개정되며 시대착오적이었던 '근로시간 특례업종'은 기존 26개 업종에서 5개 업종으로 대폭 축소됐다. 이와 함께 '방송업'과 '영상·오디오 기록물제작 및 배급업'도 특례업종에서 제외되어, 오랜 시간 적용을 받지 않던 근기법 상의 근로시간 기준을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하게 되었다.

▲   최규석의 만화 <송곳>의 한 장면. 방송 노동은 언제가 되어야 "코리아 스타일"이 아니라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킬 수 있을까. 역설적으로 이 작품을 드라마로 방영한 JTBC도 주 52시간제를 가장한 "꼼수"를 쓰는 상황이다.

 방송사과 외주 제작사는 이러한 '비상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개정된 근기법을 세세하게 검토한 끝에 또 다른 '꼼수'를 창안하게 되었다. 근기법 상에 있는 3개월 단위의 '탄력적 근로시간제'나 '유연근무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된 것이다.

최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문제를 제기한 JTBC의 꼼수가 바로 이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악용이다. 방송 노동자들을 불러 모을 때는 '주 52시간제를 지켜서 촬영에 나서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계약서를 그 자리에서 바로 쓰지 않는다. 방송 제작 현장은 오랜 시간 '프로그램 촬영 때문에 시간이 없다'는 것을 명목으로 방송 촬영에 투입되어 일을 시작하고 나서야 계약서를 쓰는 악습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계약서를 쓰게 되면 방송 노동자들은 이상한 구석을 그제야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철석같이 믿었던 '주 52시간제'는 사실 주 52시간을 3개월(12주)로 환산해 '3개월 624시간'으로 명시한 탄력적 근로시간제였으며, 이를 제외하면 일일 노동시간은 물론 주간 노동시간 제한도 없다. 이동 시간도 근로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오로지 3개월 노동을 마치고 624시간을 넘겼으면 추가 수당을 지급한다는 조항이 전부이다.

이는 명백히 근기법을 위반하는 움직임이다. 근기법은 3개월 단위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시행할 수 있다고 되어 있으나 이는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 합의가 필요하며 설사 시행하더라도 일일 12시간, 주간 52시간을 넘길 수 없다. 허나 JTBC는 이러한 조항을 제시하고도 정작 계약서 자체는 이전처럼 근로계약서가 아닌 '프리랜서 용역계약서'로 작성해서 노동자를 속이고 제대로 된 법적 조치도 회피하려는 이중의 꼼수를 부리고 있다. 

이러한 조항으로 인해서 방송 노동자들이 2020년 많은 제보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 보내왔다. 방송사의 '주 52시간제' 약속을 혹시나 하고서 믿었다가 속았다는 것에 대한 분노와 함께. JTBC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 공문을 보내 2020년부터 자사를 통해 방송하거나, 자사가 제작에 직접 참여하는 드라마들은 모두 이러한 조항을 적용하고 있다고 답변한 바 있다. 동시에 다른 방송사들은 자신들과 같은 주 52시간제도 시행하고 있지 않다면서 오히려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주장도 함께 답변에 실었다.

장시간노동 폐지 외면하는 방송업계

그러나 JTBC의 태도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것과는 별개로, JTBC의 주장을 마냥 변명이라며 무시할 수도 없는 게 우리의 씁쓸한 현실이다. JTBC의 말대로 다른 방송사들이 제작하는 프로그램의 제작 현장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주 52시간제에 대한 이야기나 약속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도 JTBC와 똑같이 방송 스태프들 대부분을 직접 고용한 노동자처럼 취급하며 일을 시키고 있지만, 이들을 법적인 노동자로 인정하는 대신 명목상 '개인 사업자'로 취급하는 프리랜서 용역 계약서만을 계속 체결하는 상황이다.

당연히 노동시간에 대한 명문화된 조항도 없다. JTBC가 근기법을 악용한 꼼수로 노동자들을 혼란스럽게 한다면, 다른 방송사들은 주 52시간제의 전면 시행이나 방송업의 근로시간 특례업종 제외 조치는 자신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이전과 똑같은 야간·장시간 노동을 그대로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물론 '일단' 지상파 방송사는 계속 노력 중이다. 2019년 6월부터 KBS·MBC·SBS 지상파 방송사 3사는 드라마 외주 제작사들의 연합체인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와 2018년 최초로 결성된 방송 스태프들의 노동조합인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그리고 전국언론노동조합과 함께 표준근로계약서 의무 작성과 표준임금기준 마련, 근기법상의 노동시간 준수 등을 골자로 한 4자 협의체에 참여 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래대로라면 2019년 하반기에 시행이 되었어야 할 표준근로계약서를 비롯한 각종 사항은 협의체가 결성된 지 1년 반 가량이 지나도록, 2020년이 끝나가도록 여전히 합의가 끝날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

방송사와 외주 제작사들은 아직 합의가 진행 중임을 이유로 프로그램 제작 현장에서 주 52시간제의 전격적인 시행을 계속 거부하는 상황이다. 앞서 언급했던 대로 2021년 7월부터는 5인 이상 모든 사업장에서 주 52시간제가 전면적으로 시행되지만, 과연 올해 7월까지 4자 협의체의 합의가 끝날 수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자신들이 '공영방송'이라는 것에 자부심이 있는 KBS와 MBC가 정작 자신들이 제작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노동자들의 권리 문제에 있어서는 적극적으로 입장을 표명하거나 변화를 위해서 나서지 않고 있는 모습은 방송 노동이 놓인 현실을 매우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렇게 지상파 방송사들이 미적이는 가운데 JTBC는 편법적이고 자의적으로 해석한 주 52시간제를 내세우며 노동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2020년에도 여전히 열악한 방송 노동의 상황이 방송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영상 영역에도 점차 번져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네이버TV나 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되는 웹드라마들은 오래전부터 노동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았으며,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를 통해 방송되는 작품들도 노동 조건에서는 전혀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키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마치 최규석의 만화 <송곳>이 지금은 철수한 프랑스계 할인마트 기업 '한국까르푸'의 사례를 소재로 삼으며 프랑스 자국 내에서는 노동법을 성실히 준수하는 기업이 정작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악덕 사업주에 대한 처벌이나 징계가 부족한 국내의 현실을 악용하는 모습을 그렸듯, 똑같은 일이 방송 노동에서 벌어지고 있다. 

대체 언제까지 이러한 방송사들이 '무늬만 프리랜서'를 악용하여 노동자를 혹사로 밀어 넣는 만행을 가만히 보고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감독급/팀장급 스태프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은 한계가 있었지만, 이미 고용노동부는 2018년과 2019년 두 차례의 드라마 제작 현장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방송 스태프 다수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바 있다. 2000년대부터 계속 이뤄진 방송 노동자 개개인의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에서도 스태프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전례가 다수 있다.

이런 사례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방송사나 외주 제작사는 요지부동이다. 소송을 건 당사자만이 근로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부당해고를 당한 뒤 사측의 재판 방해로 부당하게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에서 패소하고 억울함을 호소하며 세상을 떠난 CJB 청주방송 故 이재학 PD와 같은 안타까운 사례도 생기고 있다,

많이 늦었지만 2020년 12월, 방송통신위원회는 지상파 방송사 재허가 요건에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조건으로 삽입하며, 처음으로 방송사를 평가·관할하는 기준에 방송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에 대한 요소를 삽입한 바 있다. 노동 시간 문제 또한 이러한 움직임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서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나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와 같은 시민사회단체나 노동조합의 활발한 움직임과 꾸준한 감시, 현장 노동 문화의 개선도 동반되어야 하지만, 우선 방송 영역에 막중한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올바르게 사용해야만 할 것이다.

동시에 고용노동부나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콘텐츠진흥원과 같은 방송 노동과 유관한 부처들 간의 협력을 통해 종합적인 방송 노동 대책을 입안하기 위해 야간·장시간 노동을 비롯한 해묵은 방송 노동의 문제가 지니는 심각성을 반드시 인지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다각도의 노력이 있어야 노동계가 오랜 시간 투쟁을 하여 쟁취한 '주 52시간제'가 비로소 방송 영역에서도 정착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