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노동자 안전보건실태조사] 한노보연 +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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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도 계속되는 산재, 산재, 산재!

방송도 산재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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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목소리] 무늬만 프리랜서, 방송사의 책임을 묻는다- CJB 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원회 진재연 집행위원장 인터뷰 / 2020.04

무늬만 프리랜서, 방송사의 책임을 묻는다

- CJB 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원회 진재연 집행위원장 인터뷰

 

최민 상임활동가

 

한국 사회는 일하는 사람이 쉽게 억울하고, 억울한자리에 놓이는 곳이다. 2004년부터 청주방송에서 일했던 이재학 PD도 그랬다. 조연출로 입사한 뒤, 청주방송에서 다양한 방송프로그램의 조연출과 연출 업무를 했다. 매년 정규직 PD2배에 이를 정도로 많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왔다. 자유롭게 프로그램만 만든 게 아니다. 지자체 보조금을 따내기 위해 사업 계획서를 쓰고, 공무원들과 협의하여 방송을 제작하고, 프로그램 종료 후 정산하는 등의 대외 업무도 했다. 일상적으로 업무를 보고하고 결재용 서류를 써 냈다. 모두 청주방송 PD로서 한 일이다.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되는데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된다고 했던가. 2018년 문제가 생겼다. 동료 프리랜서, 비정규직 스태프들의 인건비 증액과 인원 보강을 나서서 요구했다. 그러자 갑자기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해고가 아니라 프리랜서 계약종료라고 했다. 억울한 마음에 직장갑질119를 찾았고,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시작했다. 소장을 접수한 지 14개월이 지난 뒤에야 1심 판결이 선고되었는데, 결과는 패소. 재판 과정에서 CJB는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이재학 PD를 위해 나선 증인들을 회유하기도 했다. 결국 고인을 돕기로 했던 증인 한 명이 진술을 번복하기까지 했다. 1심 선고 후, 어머니에게 전화하여 억울하고 억울하다는 말만 하며 울었다고 한다. 판결문을 받자마자 곧바로 항소장을 접수하고, 끝까지 싸워보겠다 다짐했지만, 분노와 억울함이 더 컸다. 결국 202024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게 없다, 억울해 미치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21956개 단체가 모여 ‘CJB 청주방송 이재학 PD 사망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명예회복,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고 이재학 PD 죽음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뿐 아니라, 방송계의 오랜 문제인 무늬만 프리랜서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움직임이다. 얼마 전인 323일 이재학 PD49재가 있었다. 대책위원회 진재연 집행위원장을 만나 대책위의 싸움에 대해 들었다.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를 파헤치고 해결하기 위한 싸움

이재학 PD의 경우, 직장갑질119 등을 통해 법정 투쟁을 함께 하고 있던 사람들도 있었고, 이전에 미디어오늘에 소송 과정이 보도되기도 하는 등 알고 있던 분이라 더 마음이 아팠다. 이재학 PD가 돌아가시기 전에도 방송 산업 내에 무늬만 프리랜서 문제가 너무 심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상황이었다.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일하는 드라마 제작 스태프들의 근로자성이 인정됐다고 하는데도 여전히 방송작가, 독립PD 등은 허울 좋은 프리랜서다. 방송작가나 독립PD들은 개편 때 잘리면 그만이다. 그런 경우 한 건, 한 건 법정에서 노동자성을 다투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재학 PD 사건의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명예회복도 중요한 과제지만, 방송사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목표로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코로나 영향으로 집회 한 번 잡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래도 49재는 같이 해야 하지 않나 해서 청주방송 앞에서 작은 집회로 진행했다. 조계종에서 천도제를 지내주셨는데, 큰 위로가 되었다.“

지난 227일 대책위원회는 회사와 합의를 통해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게 되었다. 그러나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린다는 합의하에 대책위원회와 회사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첫 회의부터 난관이었다. 회사 측에서는 고인이 억울하다고 한 재판 과정에 참여했던 사측 변호사를 진상조사위원으로 추천했다.

회사는 합의서에서 진상조사위 꾸리고 성실하게 임하겠다 약속했다. 합의문에는 객관적인 진상조사를 위해, 진상조사위원을 방송사 내부위원이 아니라 외부위원으로 구성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사측에서는 이재학 PD1심 재판 과정에서 동료들의 증언을 방해하고, 중요한 증거들을 은폐한 혐의가 있는 사측 변호사를 진상조사위원으로 추천했다. 이런 행동은 사실상 진상조사를 방해하는 것이다. 앞에서는 합의서 쓰고, 사과했다고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전혀 협조하지 않고 있다. 지금도 적당한 외부위원을 찾기 힘들다며 위원 구성을 계속 미루고 있다. 회사 내부 사람을 조사위원으로 넣어달라는 논리인데, 그렇게 되면 방송사 직원, 노동자들이 제대로 진술에 참여할 수가 없다. 일단 대책위 추천 진상조사위원들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49재가 끝나고 진상조사위원들이 현장조사를 했다. 1~5층 돌면서 직원들도 만나고 실제 일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는데, 그 자리에 전 보도국장인 고위 인사가 배석했다. 그러니 분위기가 얼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에도 청주방송 모기업인 건설사의 이두영 회장이 직원들 앞에서, 진상조사위원회를 청주방송 음해세력이라고 말하며, 조사에 협조하기 어렵도록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그 뒤로 회사 분위기가 긴장될 수밖에 없다.”

진재연 집행위원장은 청주방송 진상조사위원회는 관례적으로 요구하여 꾸리게 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재학 PD억울함의 실체를 밝혀야 하는 과제가 절실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재학 PD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의 도화선이 된 청주방송 비정규직 처우 문제를 제대로 파헤쳐야 한다. 동료들의 처우 문제를 제기했다가 해고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본인이 당했던 불공정함 뿐 아니라, 청주방송 내 비정규직 처우 문제를 밝히는 게 고인의 명예회복에도 중요하다. 이후, 문제제기 과정에서 폭언과 괴롭힘을 당했고, 소송 과정에서 위증과 은폐 시도가 있었다. 이러면서 믿었던 동료에게 배신당하기도 했다. 결국 이 과정을 거치면서 이재학 PD가 다른 출구가 없다고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회사와 함께 다시 짚어보면서, 회사도 반성하고 밝혀내는 것은 중요한 과제다. 유가족 입장에서도 중요한 문제다. 이재학 PD14년 동안 정규직보다 더 열심히 일했는데, 사측에서는 홈페이지 리뉴얼한다면서 이재학 PD가 연출했던 프로그램 보기도 삭제하고 있다. 유가족에게는 고인의 모든 흔적을 지우고, 명예를 훼손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재판도 이어가고, 진상규명을 제대로 하여, 고인이 어떻게 일했는지 밝히는 것, 그야말로 노동자였다는 걸 밝히는 게 중요하다.”

열악한 노동환경을 정당화하는 한 마디, ‘방송 펑크낼 거야?’

대책위원회에서 만든 카드뉴스 중 똑똑한 사람들이 많이 모인 방송국이 왜 후진적으로 운영되는지 너무나도 안타깝다는 메모가 인상적이었다. 방송국이 유난히 비정규직, 프리랜서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1991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부터, 중소제작사 지원 정책이라는 명목으로, 지상파 프로그램 외주편성 비율을 정해두게 된다. 외주제작사에 방송 기회를 일정 정도 이상 줘서, 외주제작사를 키워서 방송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IMF 이전까지만 해도 외주제작사의 직접고용이 어느 정도 유지되었지만, IMF이후에는 고용자체가 불안정해지면서 비정상적인 고용형태가 복합적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드라마 제작 현장을 예로 들면, 100명 중 5% 정도가 방송사 정규직이다. 나머지 95%의 비정규직도 고용 형태가 매우 다양하다. 프리랜서, 파견, 도급 등등. 아예 무계약 상태로 일하는 노동자도 많다. 구두계약조차 없는 상태로 일한다. 그러다보니 그냥 짤리는일도 여전히 많다.”

이 업계에서는 그래도 방송은 내보내야 하지 않냐.”는 말로 모든 것이 넘어가고 있기도 하다. 방송 나가야 한다는 것이 지상과제다. 그 외의 문제제기를 하기 어렵다. 그러니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후 수십 년간 특례업종으로 밤샘노동을 당연히 해 온 것이다. ‘방송 펑크 낼 거야?’라는 말이면 모든 게 정리돼 왔다. 우리가 관행이라 부르며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방송사 노동자들 사이의 위계나 서열 문제도 심각하다. 꼭 정규직-비정규직뿐 아니라, 직군별로나 고용 형태 별로 서로 이해도 높지 않고 경쟁하는 분위기도 있다. 같은 직군 내에서도 경력에 따라서 임금 차이도 크고 위계도 심하다. 노동자들 사이에 이런 차이를 줄이는 게 중요한데, 그러려면 시스템이 제대로 돼야 한다. 직군별로, 맡은 역할이나 일한 연차 등에 따라 임금이 정해진다든지, 표준적인 계약의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하는데, 방송계는 계속 주먹구구식으로 굴러가고 있다. ‘여기서는 10만원인데, 할래?’ 이런 식으로 계약을 맺는 경우가 아직도 많다.”

방송노동자들을 노동자가 아닌 척하는 방송사, 거기서 비롯된 열악한 노동환경과 장시간노동, 과로사와 안전문제, 저임금과 폭력적인 직장 문화 등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것도 4~5년 정도의 일이다. 진재연 집행위원장은 2016년 이한빛 PD의 죽음 이후, 방송작가유니온,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등이 결성되면서 이제야 얘기가 시작되고 있다고 본다. 방송계에서 프리랜서 방송 노동자들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모으고 조직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가 않다.

예를 들어, 이 투쟁에서도 청주방송 내 비정규직이 모이는 것도 쉽지 않다. 오히려 비정규직이나 프리랜서는 고용 불안이 너무 크니 불안해하고 있다. 회장 말 한마디에 사내 분위기가 얼어붙기도 하고, 대책위에 도움을 주던 분이 힘들다는 연락을 해오기도 했다. 방송계에서 몇 년간 문제제기가 이어지면서, 현장도 변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여전히 현장 노동자 모임하면, 누가 알까봐 걱정하는 수준이다. 사실상 방송 현장이 인맥으로 이어지는 주먹구구식 구조이다보니, 권리를 주장하고 문제제기하는 것이 고용 문제와 직결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방송사 정규직 노동자와의 관계도 쉽지 않다. 제작 현장에서는 정규직 노동자가 회사 관리자 역할을 하고, 업무를 지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 감정이 쌓이기도 하고, 이 사이에서 단결이나 연대로 한 발 나아가는 것도 어렵다. 그런 점에서도 노동자성 인정 문제가 중요하다. 그래야 노동자로 문제제기나, 싸움이나, 연대를 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

 

방송계에 만연한 무늬만 프리랜서

대책위원회는 청주방송뿐 아니라, 방송계 전반의 무늬만 프리랜서문제를 함께 제기하고 있다.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고용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없더라도, 처우 개선이나 조직화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남기고 싶다. 그래서 지상파 4사 앞에서 1인 시위도 진행하고 있다.

수많은 방송사와 제작사 안에 제3, 4의 이재학이 있다. 이재학 PD가 해고되기 전, 동료들의 처우개선 문제제기했던 순간을 떠올려본다. 그런 얘기를 하기까지 얼마나 고민했을지 생각해본다면, 그렇게 용기를 냈던 사람이 결국 비극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게 안타깝다. 장시간 노동하면서 임금도 제대로 못 받고, 부당한 처우에 목소리 한 번 내기 어려운 비정규직,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함께 내는 것이 이재학 PD의 뜻을 잇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책위에서는 무늬만 프리랜서 관련 실태조사도 하고 있고, PD 외에 다양한 방송직군 증언대회도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 상황에서도, 방송계 노동자는 고용 형태에 따라 천차만별의 처지에 놓인다고 한다. 재택근무하면서 안정적인 급여를 받는 정규직도 있지만, 일당 받는 직군들은 방송 하나 취소되면 생계에 직격타를 입는다. 반대로 별다른 예방 조치 없이 수십 명의 스태프가 장시간 촬영을 강행하여 불안감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모든 일하는 사람이 존중받으며,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지금 이재학 PD의 죽음에 대해 청주방송의 책임을 묻는다.

[건강한노동이야기] 일하다 다치면 구급차도 제 돈으로 불러요(2020.6.16, 민중의소리, 최민)

6월 15일, 한 리얼리티 프로그램 촬영 중 낙상사고가 발생했다는 보도가 났다. 3일 전 스태프 1명이 무대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있었지만, 후속 조치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촬영을 계속했다. 그러다 결국 출연자가 방송 도중 사고를 당해 팔이 골절된 것이다. 화려한 방송 무대 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지난 주에 만난 한 드라마 스태프는 몇 년 전 기억을 꺼냈다. 업계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라고 했다. 새로운 작품에 합류하게 된 첫 날이었다. 방송계에서 제대로 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흔치 않다. 그도 특별히 ‘사인하는 과정’ 없이 바로 일에 투입되어 촬영 준비에 들어갔다.

그런데 빨리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사고를 불렀다. 높은 곳에 장비를 설치하고, 뛰어내렸는데 하필 바닥에 웅덩이가 있었다. 한 쪽 발이 끼면서 발목 인대가 끊어졌다. 발을 움직일 수도 없어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로 갔는데, 응급실 비용도, 구급차 비용도 본인이 부담했다. 이후 수술과 재활 치료 비용은 그의 몫이었던 것은 물론이다.

 

www.vop.co.kr/A00001494504.html

 

[건강한 노동이야기] “일하다 다치면 구급차도 제 돈으로 불러요”

화려한 조명 뒤 실종된, 방송노동자의 치료받을 권리

www.vop.co.kr



[언론보도] [건강한 노동이야기] 억울함에 죽음 택한 노동자를 살릴 정치는 어디 있을까?(20.03.30. 민중의소리)

 

총선이 2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노동자가 억울함을 호소할 길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도록 하는 정치는 가능할까요? 

이번 주 <건강한 노동이야기>는 청주방송 이재학 피디 이야기입니다.

 

https://www.vop.co.kr/A00001478822.html

 

[건강한 노동이야기] 억울함에 죽음 택한 노동자를 살릴 정치는 어디 있을까?

 

www.vop.co.kr

 

[언론보도] “주 40시간 노동, 2003년 도입했는데 아직까지…” (19.12.09, 미디어오늘)

출처 미디어오늘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4053

“주 40시간 노동, 2003년 도입했는데 아직까지…”
노동부 ‘주 52시간제’ 계도기간 늘리자 노동계 집단 반발 “16년 기다렸는데 또 기다려달라?”

손가영 기자 ya@mediatoday.co.kr 이메일 바로가기 승인 2019.12.09 15:12

 

정부가 오는 1월부터 주 52시간 노동제를 지켜야 할 중소기업(노동자 50인 이상 300인 미만)에 추가 계도기간을 부여하자 방송·노동계 단체, 산재 피해자 모임 등이 “주 52시간제 파기 시도를 당장 철회하라”며 집단 반발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김용균재단 등 25개 노동·법조·언론·의학계 단체는 9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소기업의 주 52시간제 적용을 추가로 유예한 정부를 한목소리로 규탄했다.

기존 계획대로면 노동자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은 내년 1월부터 주 52시간제를 시행해야 한다. 300인 이상 대기업은 지난해 7월1일부터 주 52시간제를 시행했고 50~300인 규모 중소기업엔 오는 1월까지 1년 6개월 준비기간을 줬으며 5~50인 미만은 2021년 7월부터 주 52시간제를 갖추게 된다. 그런데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18일 ‘충분한 계도 기간을 두겠다’며 중소기업에 적용 유예 방침을 밝혔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4053

 

“주 40시간 노동, 2003년 도입했는데 아직까지…” - 미디어오늘

정부가 오는 1월부터 주 52시간 노동제를 지켜야 할 중소기업(노동자 50인 이상 300인 미만)에 추가 계도기간을 부여하자 방송·노동계 단체, 산재 피해자 모임 등이 “주 52시간제 파기 시도를 당장 철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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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 ]방송노동 주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훼손을 규탄하는 기자회견

문재인 정부는 주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 유예를 즉각 철회하라!

방송노동자는 여전히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으로 신음한다!

 

뉴스1, 오대일기자

 

문재인 정부의 노동 정책이 계속 후퇴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 당시 문재인 후보가 직접 공약으로 약속했던 최저임금 1만원 약속은 일찌감치 무너졌다. 공공기관 비정규직을 정규화하겠다는 약속 역시 자회사 정규화라는 꼼수를 쓴지 오래다. 한국도로공사가 대법원의 직고용 판결을 무시하고 노동자를 탄압하는 모습은 문재인 정부의 노동에 대한 인식이 밑바닥으로 추락했음을 단적으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주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 역시 무너질 위기에 놓여 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1118,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 시행 준비가 아직 충분치 않다는 이유로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에게 계도기간을 추가적으로 부여하겠다고 발표했다. 구체적인 계도기간은 이번 달까지 확정지을 계획이지만, ‘9개월 이상 계도기간을 부여할 수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재갑 장관은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동시에 이재갑 장관은 근로기준법 시행규칙을 개정하여 현재는 재난 및 이에 준하는 사고 발생시에만 주어지는 특별연장근로 허용 사유를 일시적인 업무량 급증 등 경영상 사유에 대해서도 허용을 하도록 고려해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본래 정부가 발표했던 계획대로라면 내년 11일부터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에서도 주 52시간제가 시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이재갑 장관의 기자회견을 통하여 이 계획은 사실상 물거품이 되었다. 동시에 피치 못할 상황에서만 제한적으로 허용되어야 할 특별연장근로역시 경영상 사유에 대해서도 허용하겠다는 입장은 계도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주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가 기업의 입맛에 따라 좌지우지되도록 만들 가능성이 무척이나 높다.

 

정부의 노동 공약이 후퇴하는 상황에서 방송 노동 역시 후퇴할 위기에 놓여 있다. 작년 근로기준법 시행령이 개정되고 나서야 비로소 방송업은 오랜 시간 방송 노동자들을 장시간-야간 노동으로 몰아넣던 근로시간 특례업종에서 벗어났다. 방송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오랜 시간 동안 관행으로 정착된 야간-장시간 촬영으로 인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버텨야만 했다. 새벽에 촬영을 시작해 다시 새벽에 촬영이 끝나는 상황에서 몇몇 스태프들은 집에 들어가는 대신 찜질방에서 쪽잠을 잤다. 충분히 쉴 시간도 없는 방송 노동자들에게는 촬영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 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2018SBS 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촬영 중 폭염 속에서도 76시간 연속으로 촬영을 강행한 뒤, 겨우 집에 도착한 노동자 한 명이 과로로 사망한 사건은 많은 이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계속 많은 방송 노동자들이 죽거나 다치는 와중에서도 방송사와 제작사는 정부가 나서기 전까지 자발적으로 방송 노동 시간을 줄이지 않았다.

 

본래 정부가 발표한 계획대로라면 올해 7월부터는 300인 이상 사업장, 내년 1월부터는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 그리고 202171일부터는 5인 이상 사업장 전체가 주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를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의 기업 친화적인 근로시간 단속 유예 조치로 인하여 방송 노동은 특례업종에서 해제되었어도 여전히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노동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

 

정부가 제대로 노동시간 문제를 신경 쓰지 않는 사이, 이미 방송사들은 정부의 조치를 농락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300인 이상 방송 노동 사업장부터 근로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된 올해 7월 이후에도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미디어신문고에는 두 차례의 초과 노동 신고가 접수되었다. CJ ENM OCN 드라마 <미스터 기간제>826일부터 831일까지 주 72시간 촬영을 강행했다. 최근 방송을 시작한 MBC 드라마 <나쁜 사랑> 역시 1118일부터 1124일까지 주 75시간 촬영을 이어 나갔다. 정부가 방송 노동을 근로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대놓고 지키지 않는 것이다. 특히 공영방송인 MBC와 이한빛 PD의 유가족 앞에서 노동시간 개선을 약속한 CJ ENM이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한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지키지 않은 모습은 너무나도 뻔뻔스럽고 놀라울 따름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방송사들이 엄연히 법으로 규정된 주 52시간제를 어기는 상황에서 진작에 끝났어야 할 유예기간이 늘어나고, 예외조항이 늘어난다면 방송 노동의 상황은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악화될 것이 뻔하다. 공영방송의 노동 환경마저도 바꾸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함에 이미 많은 방송 노동자들이 상처를 입었다. 정부가 방송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움직이는 대신 머뭇거리에 바쁜 상황에서, 고용노동부의 주 52시간제 훼손 시도는 여전히 병들고 다치는 많은 방송 노동자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대신 날카로운 쐐기를 꽂았다. 기본적인 건강권과 휴식권도 보장되지 않은 노동 환경 속에 방송 노동자들은 여전히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방송노동자는 여전히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으로 신음하는데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 유예가 웬 말이냐!

정부는 방송 노동자들의 혹사를 부추기는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 파기 시도를 당장 철회하라!

고용노동부는 기업 편인가! 병들고 다치는 방송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라!

방송사들은 모두가 행복하고 건강한 방송 노동 환경을 하루 빨리 만들어라!

 

2019129

연대 서명한 단체와 개인

기자회견 참석자 일동

 

128일 오후 10시까지 총 25개 단체 / 66명 개인이

연대 서명에 동참해주셨습니다.

(이하 가나다순)

 

 

[단체]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김용균재단, 노동건강연대, 다산인권센터, 더불어사는 희망연대노동조합, 더불어사는 희망연대노동조합 방송스태프지부, 더불어사는 희망연대노동조합 딜라이브지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민주언론시민연합,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보건의료학생 매듭, 불교평화연대, 생명안전 시민넷, 언론개혁시민연대, 언론인권센터,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자유언론실천재단,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전국언론노동조합, 참의료실현 청년한의사회, 청년유니온, 플랫폼C,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개인]

강석경 (CJ제일제당 진천공장 현장실습생 김동준 어머니), 김도현 (수원 은하종합건설 김태규 누나), 곽경민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권명환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권하늬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 김경욱 (개인), 김광현 (보건의료학생 매듭), 김도희 (개인), 김두범 (플랫폼C), 김미정 (서울특별시 동부권직장맘지원센터), 김민숙 (청년유니온),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김유경 (돌꽃노동법률사무소), 김정희 (한국예술종합학교), 김창욱 (한동대학교), 김한울 (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김형근 (개인), 김혜영 (개인), 김혜은 (인권교육센터 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노서영 (유니브페미), 류다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문우정 (개인), 박진아 (보건의료학생 매듭), 박찬진 (금속노조 기아자동차 비정규직지회), 박철우 (대학생), 백명일 (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 백주은 (프리랜서), 변성찬 (한국독립영화협회), 서채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성상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한국독립영화협회), 신예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신유경 (보건의료학생 매듭), 신은실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신현숙 (개인), 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유경혜 (사회변혁노동자당), 이광석 (문화연대), 이상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이상민 (대학생), 이상수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이서영 (보건의료학생 매듭),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원재 (문화연대), 이윤형 (연세대학교), 이종란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이한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장예정 (천주교인권위원회), 장태린 (숙명여대 노동자와 연대하는 만 명의 눈송이 만년설’), 전소현 (개인), 전정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정병욱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정승연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 조건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조경숙 (만화평론가), 조세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천용희 (SK브로드밴드 노동자), 천지선 (법률사무소 지선), 최성규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최은주 (시민), 최혁규 (문화사회연구소), 최효재 (서울대학교), 하정은 (보건의료학생 매듭), 한별 (삼색불광파), 홍수경 (중앙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사회학과), 홍태화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최종_방송노동_주52시간제_훼손_시도_규탄_기자회견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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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 이한빛PD 3주기 추모제 "다시는"

 

연구소도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과 함께 참여합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이한빛 PD 3주기 추모제를 후원하는 카카오 같이가치 캠페인! 
댓글과 공유하면  카카오가 대신 기부합니다. 

https://together.kakao.com/fundraisings/69918

[A-Z 노동이야기] 화면 밖에서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 / 2017.10·11

화면 밖에서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

- 방송작가 황민주 님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우연한 기회에 방송국 조연출로 알바를 하면서 방송작가의 꿈을 키웠다던 황민주님은 지난 3년간 방송국에서 일했다. 최근에는 현장에서 일하는 방송작가 노동자의 노동인권을 위해 ‘공정노동을 위한 방송작가 대나무 숲’를 운영하며 온오프라인 할 것 없이 활동하고 있다. 이번 일터에서는 황민주님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방송작가 생활 3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방송작가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대학에서 언론 정보학을 전공했는데 정작 학교 다닐 때는 전공을 살릴 생각이 없었어요. 부모님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으면 좋겠다고 강하게 권유하셨거든요. 그래서 학교 휴학하고 시험 준비를 했는데 도저히 못할 것 같아서 공부는 정리하고 학교 복학 전까지 등록금 마련하려고 알바를 구했어요. 그때 마침 한 파견업체에서 제 전공을 보더니 방송국에 자리가 있으니 오라고 해서 그때부터 1년 반 동안 방송국에서 뉴스 송출하는 조연출 알바를 했어요. 왜 뉴스 진행할 때 앵커가 보는 카메라 화면을 프롬프터라고 하잖아요 그걸 만들었어요.

그리고 뉴스에 필요한 영상 틀어주고 그 밑에 자막 넣고, 앵커 뒤에 있는 배경화면에 맞는 사진이나 영상도 찾고요. 한 달 일해서 받는 월급은 150만 원 정도였는데 그것도 제가 새벽 4시까지 출근이라 하루 교통비 1만 5천 원이 포함된 거였어요. 사실상 최저임금도 못 받으면서 일한 거죠. 그렇게 일하면서 제가 예전부터 글 쓰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 조연출 일보다 옆에서 방송 작가가 하는 일이 재미있어 보이더라고요. 그때부터 방송 작가가 되기로 했어요."

그 뒤로 황민주님은 KBS 구성작가 협의회 홈페이지에 구인구직 글이 올라오는 걸 보고 이력서를 보내며 일을 찾았다. 이곳 홈페이지가 방송 작가 구인구직이 제일 활발한 곳이기 때문이다. 지상파 3사에서 운영하는 아카데미에서 구성작가 반 수업을 듣지 않는 이상 대부분은 방송사나 외주제작사가 작가의 이력서를 보고 직접 계약하는 형태로 작가 일을 시작한다.

"제가 보낸 이력서를 보고 KTV라고 국가에서 운영하는 정책방송원 방송국에서 연락이 와서 휴먼다큐 프로그램에서 일하게 됐죠. 서울에서 세종시까지 출퇴근 하는 게 힘들어서 6개월 정도 막내 작가로 일했어요. 그다음엔 MBC에서 1년 가까이 일하고, 채널 A에서 1년 반 정도 일했고 입봉도 여기서 했어요."

- 방송국에서 하루 동안 어떤 일을 하나요.
"KTV 방송은 수요일에 한 번 30분 동안 방송했기 때문에 주 단위로 일을 했어요. 방송내용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일반인들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였어요. 그래서 방송을 하는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다음 방송 아이템을 찾거나 사람을 섭외했어요. 섭외가 확정되면 전화로 사전 인터뷰하고 어떠한 내용으로 촬영하면 좋겠다는 구성안을 촬영팀에 작성해줘요. 촬영팀은 그대로 주말 내내 영상 찍어서 월요일에 제작팀에 줘요.

그 다음날부터 막내작가들은 촬영한 걸 프리뷰라고 해서 영상에 있는 모든 상황을 말로 풀어요. 누가 등장했다 어떤말을 했다 등등요. 그걸 보고 제작진이 방송에 나갈 영상을 대략 편집한 가편집본을 만들면 저희는 자막 입히고, 더빙하고 작업을 마치죠. 1주일 내내 이렇게 방송을 만들면 수요일 오전에 부장급 임원들이랑 시사회를 열고 수정 의견 있으면 반영해서 저녁에 방송을 내보내요. 그렇게 방송 끝나면 다시 아이템 찾고 지난주에 했던 일을 반복하고요."

황민주 님은 매주 계속되는 방송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최소 10개 이상의 아이템을 확보하려고, 퇴근하거나 주말에도 아이템 찾기를 쉴 수 없었다고 한다.

"MBC에서는 창사특집 방송이었는데 청년을 주제로 해보자는 것 외에 세부적인 내용이 없어서 방송 제작보다는 가장 처음 기획부터 같이했어요. 그때는 아이템 회의 정말 많이 했는데 하면서 허탈했던 기억이 있어요. 피디나 조연출분들이 요즘 불안정한 청년들, 3포 세대 청년들 취재해보자면서 누가 좋을지 고민하는데, 사실 자기들 눈앞에 방송 작가들이 있잖아요. 최저임금 받으면서 주말도 없이 일하는데 저희가 그렇게 일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나 봐요. 아무튼, 그래서 기획이 정해지면 방송에 필요한 출연진, 대역배우, 소품, 광고까지 모든 섭외를 다 하는 게 중요했어요. 

채널A에서는 오후 시간대 뉴스 프로그램에서 일했어요. 주간에 있던 뉴스들에 이슈가 된 몇 개를 선정해서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방송이었죠. 그때는 점심시간 전까지 주요뉴스를 선정하는 게 중요해서 아침에 늘 쫓기며 일했던 것 같아요. 출근하자마자 회사 내부 홈페이지에서 기자들이 이슈들 발제한 자료 읽고, 오늘 청와대, 국회 등에서 어떤 주요 뉴스가 있는지, 자료를 받으려면 어느 기자에게 연락하면 되는지 확인하고 현장에 연락해서 자료 요청하고 인터뷰를 받고 그랬었죠. 그리고 나서 생방송 때 전체적인 영상을 어떻게 구성할지 스케치해서 제작팀에 넘기고, 앵커한테 순서지랑 대본 주고, 패널한테는 예상 질문과 답변할 때 참고해야 할 자료를 정리해줬죠. 방송 시작하면 작가 몇 명은 부조정실이라고 하는데 거기서 방송을 송출하고 몇 명은 스튜디오에서 앵커랑 패널들한테 진행 상황 알려주고, 속보 있으면 안내하고 그렇게 하루 일을 마무리했어요."

- 일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건 뭐였나요.
"처음 조연출 알바 할 때 세월호 참사가 있었어요. 그때는 저뿐만 아니라 다들 너무 슬퍼해서 평점심을 유지하고 방송하는 게 힘들었죠. KTV에서 일할 때는 일을 해도 해도 끝이 없어서 답답했어요. 일반인들 섭외하는 것도 어려웠고요. 제가 만약 섭외를 못 하면 선배 언니들이 "너가 설득력 있게 말을 못 해서 그런 거라"고 혼낼 때는 서럽기도 하고요. 채널 A에 있을 때는 촛불 정국이라 뉴스가 너무 많았잖아요. 일도 많은데다 박근혜랑 태극기 부대 쳐다보면서 일하는 게 힘들어서, 그때는 진짜 영혼은 집에 두고 몸만 출근해서 기계처럼 일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방송 작가들은 다 공감 할 텐데 전화하는 일이 어려웠어요.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방송을 출연해달라고 전화하고, 인터뷰도 해야 하는데 용기가 안 나더라고요. 그래도 방송 작가는 전화로 일 시작해서 전화로 일 끝나니까 꾸역꾸역했던 것 같아요. 아 그리고 뉴스 프로그램을 하다 보니까 온갖 시사 문제를 이해하고 내용을 쫓아가는 일도 처음엔 쉽지 않더라고요."

- 방송 작가에 대한 처우는 어떠했나요.
"어디를 가나 막내 작가는 대부분 최저임금 못 받아요. 2~3년 정도 지나야 그나마 최저임금 받으려나요. 여기는 돈이 진짜 안 돼서 서울에서 혼자 살면 월세 내고 남는 것도 없어요. 그리고 만일 방송 촬영을 마쳤어도 방송국에서 내부 사정으로 방송을 못 하거나 안 하잖아요 그걸 방송이 죽는다고 하는데 그랬을 때 우리는 주급을 못 받아요. 내부 사정으로 방송이 죽었는데 그 피해는 방송 작가들이 받는 거예요."

그래서 방송 작가들은 월드컵이나 올림픽 때 경제적으로 제일 어렵다고 한다. 이 기간이 되면 각 방송사는 2~3주 정도 기존 방송 편성을 죽이고 스포츠 경기로 채운다. 이렇다 보니 방송 작가들 세계에서 월드컵이나 올림픽은 불청객 취급을 받는다.

- 그런데도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건은 슬픈 내용이었는데 개인적으로 보람 있었던 기억이 있어요. 얼마 전에 아파트 주민이 외벽 청소하던 노동자 생명줄을 끊어서 죽인 일이 있었잖아요. 제가 사건사고 담당이라서 소식 접하고 유족분에게 전화로 인터뷰를 요청했어야 했는데, 그때 너무 죄송하고 미안해서 머뭇거렸거든요. 그러다 전화를 걸었는데 유족분이 흔쾌하게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방송 이후에도 직접 전화를 주셔서 언론 보도 때문에 너무 큰 도움 받았다고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때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기쁘더라고요."

- 일하면서 다치거나 아프면 어떻게 해결하나요? 그리고 현장에서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점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아무래도 컴퓨터 작업이 많으니까 목, 어깨, 손목 이런 데가 늘 아파요. 그런데 산재는 신청도 어렵고 승인받는 것도 어렵잖아요. 저희는 산재보험료를 안 내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정규직으로 일하면 무급으로라도 병가 내고 쉬려고 할 텐데 방송 작가는 99%가 비정규직이니까 병가 내고 쉬는 건 불가능하죠. 지금 당장 꼭 바꾸고 싶은 거는 다운 계약서를 써보는 거예요. 방송 작가들이 평균 6개월이나 1년에 한 번씩 프로그램이나 방송사를 바꾸게 되거든요.

그런데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계약서를 써본 적이 없어요. 제가 정책방송원에서 일 할 때도 거긴 정부기관인데 계약서를 안 쓰더라고요. 그러니까 정확히 내 월급이 얼마인지 노동조건은 어떠한지 몰라요. 제가 MBC에서 일하게 됐을 때 조연출한테 월급이 얼마냐고 물어보니까 "근데 그걸 왜 물어보세요"라고 답을 하더라고요. 노동부도 우리는 노동자가 아니고 개인사업자라서 보호해줄 수 있는 방법이 없데요. 정권 바뀌고 나서는 노동자성을 인정받을 만한 자료를 찾아오라고는 안내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그래서 황민주 님은 방송 작가들 스스로 어떤 조건과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알 수 있고,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항의할 수 있도록 근거가 되는 표준 계약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강조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사실 방송 작가들이 열악하게 일하는 거 모르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렇지만 방송 작가들 이 일을 너무 하고 싶어서 시작했거든요. 일하면서 자부심도 느끼고 즐겁게 살고 있고요. 그런데 한쪽에선 방송 작가들이 너무 불쌍하고 열정 페이 받으면서 일하는 사람으로 비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복잡해요.

어떨 땐 열악한 환경이 알려지면 좋겠다는 마음과 우리가 불쌍하게 여겨지는 것 같아서 괜히 불편한 마음 사이에서 늘 왔다 갔다 하게 돼요. 그래서 요즘 생각하는 게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불쌍하다고 생각하는게 아니라 방송 작가들 스스로 어떠한 마음으로 어떠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변화가 필요한 건 무엇인지 말하고 알리는 게 너무나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되도록 더 많은 작가들을 만날 거예요."

[A-Z 노동이야기] 음식의 종합예술가, 푸드스타일리스트 / 2017.9

음식의 종합예술가, 푸드스타일리스트

- 푸드스타일리스트 김아름 님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바야흐로 먹방의 시대다. 방송과 SNS에선 언제든 음식을 먹는 장면과 그 음식을 아주 저렴하고 쉽게 만드는 영상들이 수없이 방영된다. 이러한 먹방 컨텐츠가 최근 인기가 점차 줄고는 있지만 1인 가구와 혼밥족에게 여전히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번 일터가 만난 김아름 님도 그 영향력을 매일 같이 확인하며 일하고 있다.


▲ 화려한 조명 뒤에 보이지 않는 푸드스타일리스트 


본인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김아름이고요 컨텐츠 회사에서 1년 차 푸드스타일리스트로 일하고 있어요. 컨텐츠 회사란 말이 익숙하지 않을 수 있는데 SNS에서 음식 만드는 영상이 나오는 회사들은 다 컨텐츠 회사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먹방부터, 요식업, 구매대행, 책 발간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어요.”

요리사를 할 수도 있었을텐데 이 일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고등학생 때부터 요리를 좋아해서 대학 진학을 푸드스타일리스트학과로 했어요.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졸업해서 처음엔 레스토랑에 매니저로 취직해서 일했어요. 레스토랑 운영과 관련해서 전반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는데 일이 너무 힘들고 저랑 맞지 않는 것 같아서 그만두고 무역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했어요. 그런데 몸은 편해도 너무 무료하니까 다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어서 고민하다가 지금 이 회사에서 푸드스타일리스트로 일을 하게 되었어요. 요리사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이 일을 하게 된 건 요리도 기본 잘하면서, 음식과 함께 공간을 연출하면서 다양한 소품을 사용하고, 사진과 영상도 촬영하면서 종합적으로 일을 할 수 있어서 저랑 맞고 재미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푸드스타일리스트는 일할 수 있는 분야도 다양해요. 요리책을 만들기도 하고 호텔, 웨딩홀, 출장뷔페, 파티룸 등에서 음식 세팅하는 일을 푸드스타일리스트가 하거든요. 방송이나 광고, 음식점 메뉴판에 들어가는 사진이나 영상을 제작하는 일도 하고요.”

지금은 회사에서 주로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운영은 어떻게 하나요?

“이 회사가 10대~20대층을 주 타깃으로 SNS, YouTube 채널에서 음식 만드는 방송을 하다 보니, 그 음식을 정하고 만들기 위한 레시피와 재료 준비를 하고 직접 만들어요."

김아름 님의 회사와 비슷한 컨텐츠 회사가 요즘 매우 많아지다 보니 경쟁이 아주 치열하다고 한다. 그래서 푸드스타일리스트들은 동영상 조회수나 좋아요와 공유 횟수, 댓글 반응 등에 굉장히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방송할 때 보는 사람이 나중에 혼자서 만드는 법을 따라 할 수 있도록 쉽게 만들어요. 그래야 사람들이 직접 요리를 하게 되고, 그러면 외식업계 광고주나 회사에서 저희 회사에 광고를 문의하고 계약하죠. 그다음부턴 저희가 요리를 정하고 레시피를 만들 때 계약을 한 회사 제품을 사용해요. 요리를 할 때 사람들이 사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거나 계속 그 제품을 노출해서 판매에 도움이 되게 하는 거죠.”

사회적으로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이른바 혼밥으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다 보니, 각종 컨텐츠 회사와 외식업계 이러한 방송을 통해 시장을 창출하고 수익을 내고 있었다.

출근해서 퇴근까지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집에서 아침 5시에 일어나요. 준비해서 나가면 5시 반이고 버스랑 지하철 타고 한시간 반 정도 가요. 회사 근처에 도착하면 헬스장 가서 운동하고 씻고 10시에 출근해요. 출근하면 오늘 어떤 요리를 할 지 확인하고 스튜디오에 가서 냉장고 확인하고 없는 재료가 있으면 회사 차 끌고 재래시장, 백화점 등에 가서 장을 봐요. 회사 도착하면 12시쯤 되고 장바구니 들고 스튜디오로 가요. 저희는 어차피 요리할 때 음식 맛보고 먹어야 하니까 점심을 따로 안 챙겨 먹어요. 1시쯤 되면 이제 요리를 해요 하루에 4~5개 정도 만드는데 평균적으로 저녁 8~9시가 돼야 끝나요. 그나마 쉬운 요리가 많아서 빨리 끝난다고 해도 7시에요. 이렇게 촬영하는 게 1주일에 한 두 번 정도 돼요.”

김아름 님은 요리를 마쳐도 일이 끝이 아니라고 한다. 뒷정리하는데 만 1시간 정도 걸리고 사무실에 올라가서 업무 일지 쓰고 영수증 정리해야 퇴근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리가 없는 날은 어떻게 일과를 보낼까?

“보통 금요일에 긴 회의를 해요. 회사에서 방송 반응이 어땠는지 SNS 좋아요 횟수, 댓글 반응 같은거 정리해서 피드백을 주거든요. 그럼 그거 평가하면서 다음 한주는 어떤 요리를 할지 레시피는 뭐로 할지 논의해요. 요리를 정하는 방식은 회의 때 푸드스타일리스트 각각 한 명씩 레시피를 제출하고 이건 어떤 층이 좋아할 것 같고, 이렇게 하면 더 간단할 것 같다 등등 설명을 해요. 그 음식이 채택되면 미리 손질해야 할 재료 같은 게 있으면 준비해서 방송을 대비하죠.”

레시피 연구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거 같아요?

“그나마 촬영이 없을 때 레시피를 연구하니까 몸은 살짝 여유가 있는데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상당해요. 주로 대부분 먹방 TV에 나와서 사람들이 알 만한 거, 방송에서 입체적으로 보이기 쉬운 치즈 요리를 많이 연구하는데 사실 워낙 먹방이 많고 오래되면서 사람들이 식상해 하는 게 있어요. 그런데다 저희는 광고 계약 한 회사 제품을 사용해서 레시피를 만들어야 하니까 요리에 제한이 많아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이 회사는 최근 해외에서 유명한 음식을 구매대행 하거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등 새로운 수익 모델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요즘엔 요리하는 것도 계속하면서 회사에서 낸 레스토랑메뉴를 음식으로 만들고 사진이랑 영상 촬영하는 일이 많아요. 그리고 책도 내려고 해서 그거 작업하고 있고요. 사실 이런 게 회사한테 수입이 되니까 일할 때 시간을 많이 쏟게 되는데, 방송은 돈은 별로 안 돼도 회사 인지도가 쌓이는 거니까 그것대로 해야 하거든요. 이러니 매일 새벽에 퇴근하고 회사 간이 침대에서 쪽잠 자고 일어나서 헬스장 가서 씻고 다시 일하고 이 루트를 반복하고 있어요."

일하면서 속상했던 점은 없나요?

"아무래도 다치거나 아플 때 마음이 안 좋죠. 요리하면서 손에 물이 많이 닿으니까 주부습진, 포진 이런 게 심해요. 약 바르고 고무장갑 끼고 별 방법을 써봐도 손에 물이 들어오니까 내가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 하나 싶어요. 그리고 매일 서서 일하니까 허리도 아프고 부종이 너무 심해요. 집에 와서 꼭 족욕을 하는데 그런데도 안 풀려요. 다리에 쥐가 나니까 새벽에 자다가 깬 적도 많고요. 공간 연출할 때 무거운 나무판 같은 거 들고 다니고, 시장도 한꺼번에 많이 보니까 그 무게도 부담이 돼요.

아픈 거 말고는 아무래도 같이 일하는 동료들 나잇대가 저랑 비슷하다 보니 또래 친구들보다 일을 못 한다는 생각이 들 때 속상해요. 선의의 경쟁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게 없지 않아 있거든요. 살이 계속 찌는 것도 짜증이 나고 스트레스에요. 일하면서 음식 맛보고 해야 하니까 입사해서 지금까지 살이 8kg 나 쪘어요. 내 능력으로 최선을 다했는데 남들이 그건 아니라고 질책 할 때도 힘들고 속상해요. 이럴 때 친구들한테 속 시원히 마음에 있는 이야기하고 싶은데 친구들은 대부분 학교에 다니니까 공감도 안되고 제가 회사 힘든 이야기를 하면 하루 이틀이면 들어주지만 제가 매일 그러니까 이젠 듣기 싫어하죠."

반대로 일하면서 즐거웠던 적은 언제에요?

"누구나 다 아는 방송이나 책에서 제 손이 나올 때 기쁘고 뿌듯해요. 음식점 갔을 때 메뉴판에 제가 만들고 촬영한 음식이 있으니까 자부심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런 재미라도 있어야죠. 그리고 촬영할 때 어려운 요리인데 뭔가 쉽게 척척 될 때가 있어요. 자주는 없는데 그럴 때가 기쁜 것 같아요. 말하고 나니 속상한 게 더 많네요."

사람들이 푸드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 인식이 불편하거나 그렇지는 않나요?

“대부분 신기해하거나, 우와 그런 것도 있어요! 와 멋있다 대박이다!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듣는 것 같아요. 어떤 분들은 요리 엄청 잘하겠네!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그럴 땐 속으로 조금 찔려요. 요리를 기본 하는 거지 요리사처럼 그렇게 잘하는 건 아니거든요. 아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결혼해서 남편 밥 하나는 잘하겠다고 1등 신붓감이라는 이야기를 하세요. 특히 회사에서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저만 보면 매번 그 말씀을 하세요.”

5년 뒤나 10년 뒤에는 어떻게 살고 있을 것 같아요?

"글쎄요 이 일은 계속할 것 같은데 지금 회사에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신생 회사라서 체계가 계속 바뀌고 자리도 불확실해서요. 동료들도 이 회사는 한 번 쯤 경험해보고 더 큰 회사를 가거나 프리랜서로 일하려고 해요. 지금도 일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 뭐 해먹고 살지 이걸 진짜 많이 생각해요. 지금 일이 워낙 힘들고 만족도가 떨어져서 그런지 이 생각을 계속하게 돼요. 그리고 독립도 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인터뷰 하다 보니 대학 입학할 때 이 일을 너무 하고 싶어서 자기소개서에 큰 포부를 쓰고 면접 보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지금 일이 조금 익숙해지면서 나태해진 게 없지 않아 있는데 인터뷰하면서 그때의 포부 자신감을 다시 찾아가는 느낌이 들어요. 고맙습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아름 씨는 언젠가 반드시 세계일주의 꿈을 이루고 싶다고 한다. 많은 사람에게 유익하고 즐거움을 주는 푸드스타일리스트로써 꼭 성공하길 바라며 원하는 세계일주의 꿈도 꼭 이룰 수 있기를 늘 응원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