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노동자 건강권 쟁취, 조금 더 담대하게! - 반올림 이상수 활동가 인터뷰 / 2020.05

노동자 건강권 쟁취, 조금 더 담대하게!

-반올림 이상수 활동가 인터뷰

나래 상임활동가

인터뷰하러 가는 길, 마치 헤어졌던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인 것 마냥 들썩거렸다. 5년 넘게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이하 연구소)와 동고동락했던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은 올해 1월 말 각자 둥지를 틀게 됐다. 오랜 시간 노동자 건강권 쟁취를 위해 묵묵히 걸어온 이들이 독립 공간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지난 4월 22일 오후 구로구 반올림 사무실에서 2017년부터 상임활동가로 일해 온 이상수씨를 만나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 그리고 노동안전보건 활동가로서의 고민을 나누었다.

반올림과의 만남, 다시 만난 세계

가장 첫 질문으로 반올림에서 상임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상수씨 본인 역시 삼성전기에서 PCB(인쇄회로기판)를 연구, 개발하는 일을 했다. 1999년에 입사해서 11년 조금 넘게 일을 하고 퇴사했다. 이때의 경험이 상수씨를 반올림 투쟁에 함께하게 했다.
  
"반올림의 이종란 활동가를 만나게 됐는데 저에게 뭘 많이 물어봤어요. 제가 일했던 곳에서 사람이 병에 걸리고 심지어 죽기까지 했으니까요. 도움이 될 수 있으니 몇 번 자문도 하게 됐죠. 법정 증언도 했어요. 이후 농성을 하게 되면서 농성장에 직접 가기도 했어요. 그렇게 인연이 시작됐죠. 안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아프셨던, 돌아가신 분들을 제가 개인적으로 알았던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 현장에 대해선 잘 안다고 할 수 있었죠. 자세히 들여다보니 PCB(인쇄회로기판)를 만드는 게 LCD(액정표시장치) 못지않게 유해하다는 걸 배웠어요. 중요한 계기가 됐죠."

그곳의 모습이 상수씨에겐 아직도 선명하다. 다양한 색깔의 화학물질이 목욕탕 크기의 어딘가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기도 하고, 거대한 기계들이 돌아가면서 만들어내는 소음 등 일단 공장에 들어선 순간 압도된다.

하얀 방진복을 입고 '클린룸'에 들어선 순간 누구나 멍해지는 걸 느낀다. 기압 자체가 다르다. 온도, 습도, 불빛 등 환경 요인으로 전혀 다른 세상에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을 제공한다. 반도체 산업은 '굴뚝 없는 산업'으로 불린다. 환경오염도 없고 더불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위험하지 않은 듯한 이미지를 풍긴다.

하지만 올해 2월 기준 삼성 계열사(전자산업 분야)의 직업성질환 제보현황을 보면 총 588건, 그중 사망은 179건에 달한다. 상수 씨가 일했던 삼성전기에서도 제보가 25건, 사망은 17건에 달한다.

"반올림 운동 그 자체가 인상적이에요. 개인적으로 이전에 거쳤던 전업활동가는 아니지만 활동가로 살아오면서 이래저래 받았던 좌절, 상처가 치유되는 기간이기도 했어요. 반올림의 운동은 산재피해가족운동이기도 하면서 활동가, 시민, 의사, 법률가, 언론인 등 각자 자기 몫을 해냄으로써 불가능했을 과제를, 다들 버거웠을 과제를 끌어안고 성과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의 노력을 신뢰하게 됐죠."

촛불 투쟁 그리고 희망

반올림과 인연을 맺게 된 이후부터 상임활동을 하는 지금까지 가장 기뻤던 때가 언제였는지 떠올려 달라고 했다. 그는 2018년인 2년 전 삼성전자와 맺은 협약을 떠올렸다. 전자산업 노동자의 직업병 문제를 전 사회적으로 알리게 된 삼성전자 노동자 황유미씨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지 11년, 중재가 시작된 지 4년 만에 일군 의미가 큰 성과였다.

"기뻤어요. 사실 2015년 10월부터 시작한 농성에 대해서 많은 고민이 있었어요. 2015년 10월 7일 삼성전자 서초사옥이 있는 강남역 8번 출구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는데 삼성전자, 반올림, 가족대책위가 수용해서 만들어진 조정위원회가 열렸지만 삼성전자는 조정위 권고가 아닌 자신들이 만든 보상위원회 때문에 조정위 권고안을 미루자는 입장을 발표했어요. 저희는 '직업병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보상,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간 거예요. 2016년엔 삼성전자가 옴부즈만 위원회를 공식 출범시켰어요. 이런 과정을 거치며 사회 전체 인식은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가 해결된 거 아니냐였어요. 전혀 아니었는데 말이죠.

그런데 2016년 11월 말부터 광화문에서 촛불이 벌어지면서 완전히 뒤바뀌었어요. 당시 광장에서 황상기 아버님이 중앙 연단에서 연설도 하셨죠. 그때 우리가 맨날 하는 방진복 다잉 퍼포먼스를 했는데, 사실 사람들이 되게 낯설어했거든요. 그런데 해가 바뀌고 연초에 퍼포먼스를 사람들이 알아보고 낯선 이에게 설명도 해주시더라고요.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봐 준다고 느꼈어요. 촛불을 거치면서 생긴 힘이 농성을 지속할 수 있게 했고, 그렇게 버틴 힘으로 협상까지 갔다고 생각해요. 사회 변화에 대한 희망을 다시 할 수 있었던 경험이었습니다."

반올림의 시작은 삼성반도체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씨의 죽음이 계기가 되었고, 진실에 다가갈수록 삼성전자만의 문제가 아님이 밝혀졌다. 황유미씨 산재 신청을 준비하면서 미국의 IBM, 타이완의 RCA 공장 등 암으로 죽어 나간 젊은 노동자의 이야기가 한국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2008년 본격적으로 반올림 이름을 사용하면서 활동 목표를 '직업병과 환경오염이라는 반도체 산업 세계화에 대한 폭로와 저항'으로 설정한 것도 그 까닭이다.

담대함으로 나아가는 노동자 건강권 운동을 꿈꾸다

최근 상수씨와 반올림에 전환점이 된 사건이 있다. 바로 서울반도체의 이가영씨 산재 사망과 대학교 현장실습생 방사능 피폭 사고 그리고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이다. 이가영씨는 서울반도체에 2015년 2월 입사했다. 그리고 2년 뒤 악성림프종을 진단받았고, 2018년 9월 림프종이 재발했다. 그는 유해 물질에 대한 교육, 보호조치를 받지 못했고 주야 2교대로 장시간 근무했다. 어렵게 산재 인정을 받았지만 회사는 산재 취소 소송까지 냈다. 게다가 회사는 올해 1월 14일 직원 잘못으로 사고가 발생했으며 설비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한 내용의 사내 뉴스를 내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2019년 7월에는 서울반도체에서 대학생 현장실습생 방사능 피폭 사고가 있었다. 안전장치가 임의로 해제된 반도체 결합검사용 X선 발생장치에 손을 넣고 작업을 하다 피폭을 당한 것이다. 이들 역시 현장실습 첫날부터 하루 10시간 이상 근무한 것이 증언을 통해 드러났다. 이 사건은 서울반도체 및 전기전자업종 노동자 건강권 확보를 위한 안산·시흥지역 네트워크가 피해자 가족과 함께 대응하면서 학교와 업체 측에 사과, 보상, 재발방지 대책 등 합의와 이행을 앞두고 있다. 특히 현장실습 나가기 전 안전보건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애쓸 예정이다.

▲   작년 8월 27일 안산시청 앞에서 "서울반도체 및 전기전자업종 노동자 건강권 회복을 위한 안산시흥지역 네트워크 발족" 기자회견이 열렸다. 안산시흥지역의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등 다양한 곳이 지금도 함께 하고 있다. ⓒ 반올림

  
"서울반도체 사건은 악랄한 기업의 문제고, 방사선 피폭 사고입니다. 반도체 전자산업에서 유해화학물질을 주된 주인공으로 얘기해왔는데 방사선도 등장한 거죠. 게다가 피해자로 현장실습생까지 생긴 거예요. 저는 대학생도 현장실습을 한다는 걸 이번 계기로 알았어요. 고등학생만 하는 줄 알았거든요.

사실 서울반도체에 노동조합도 있었지만 노조도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보고서야 뒤늦게 산재 사고를 알았어요. 회사는 이가영씨가 산재 인정받았을 때 그걸 되돌리겠다고 취소 소송을 냈어요. 고인이 살아있을 때 그 소식을 듣기까지 했고, 결국 돌아가시면서 장례 투쟁까지 해서 비로소 소송 취하가 됐죠.

산업기술보호법 개악도 저희에겐 매우 중요한 사건이에요. 개정된 걸 알고 나서 분노와 허탈이 뒤섞였어요. 노동자의 알권리가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간신히 진전되는 와중에 누군가 반칙을 써서 바꿔놓은 느낌이었죠. 10년 만에 산재인정 받은 삼성LCD 반도체 피해자 한혜경씨가 가장 많이 하는 얘기가 '왜 나한테 알려주지 않았냐'는 거에요. 회사 다닐 때 극기훈련을 가서 나무에 매달려 떨어지면 혼나고, 물에 들어가서 숨 차는 훈련을 받았었데요. 말도 안 되는 복종훈련을 받은 거죠. 그런 걸 가르칠 시간은 있었으면서 정작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는 알려주지 않았던 거죠.

그런 배경이 있어 산업기술보호법 대응 활동에 특히 한혜경씨와 김시녀 어머니가 활동을 열심히 하셨어요. 저는 알권리라는 건 기본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단지 일하는 사람에게만 공개하면 되는 문제인가 싶어요. 당연히 직업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청소년, 청년들에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반올림은 개정 산업기술보호법이 유해 물질에 대한 알권리, 사업장의 유해환경 공론화할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실제 개정법 시행 바로 이틀 전 2월 19일 서울행정법원은 '작업환경보고서 일부 비공개 결정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직업병 피해노동자의 산재 입증, 나아가 작업장의 안전보건 조치를 사전에 할 수 있는데 참고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기업의 영업비밀이라는 주장에 내몰린 것이다.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결국 3월 5일 반올림과 산업기술보호법 대책위는 헌법소원 투쟁에 돌입했다. 이 싸움은 한국 사회의 노동자 알권리가 얼마나 진전될 수 있느냐의 촌각을 다투는 중요한 싸움이 될 것이다.

상수씨는 마지막으로 노동안전보건 문제에 대해 훨씬 담대하게, 꿈을 같이 꾸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전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2018년 김용균 죽음 이후 한국사회의 안전에 대한 감수성 자체가 바뀌었다고 봅니다. 지금은 이전의 성과를 기반으로 담대한 진전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 것 같아요. 노동안전보건 문제가 우리 사회 전체의 과제가 됐다는 것은 전체 사회 운동 속에서 유기체적으로 놓일 수 있다는 것 아닐까요. 함께 성과를 만들어나가면 좋겠습니다."

특집3. 노동안전보건 '활동'으로서의 조사를 바라며 / 2020.01

[산재예방을 위한 조사활동이란 무엇인가③]

 

 

노동안전보건 '활동'으로서의 조사를 바라며 

 

 

박기형 / 상임활동가 

 

 

"위험에 관한 과학적 조사는 어디서나 환경과 진보와 문화의 전망에서 산업체계에 대해 가하는 사회비판의 뒤를 절름거리며 따라간다."
- 울리히 벡, 『위험사회』 중

 

최근에 <휴지조각이 된 조사보고서>라는 제목의 토론회가 열렸다. 거기서는 주로 조사보고서에서 원인이 드러났음에도 예방을 위한 권고안 이행이 되지 않는 문제를 지적했다. 권고안 이행의 문제는 이행을 둘러싼 정치적 투쟁의 중요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조사활동이 보고서라는 문서 하나를 더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조사활동의 목적이 결국 예방에 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예방을 위한 조사란 도대체무엇일까? 권고안 이행 이전에 그렇게 권고안을 만들어내는 작업 단계에서부터 예방을 염두에 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조사활동을 통해 사고나 직업병을 비롯한 산업재해의 원인이 명확히 드러나는 사안의 경우에는 구체적인 요구를 담은 권고안을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조사를 하더라도,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밝히기 어려운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난관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 전자산업, 반도체 제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산업재해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에 맞선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반올림 활동가들을 2019년 12월 23일에 만나 '예방'을 위한 조사, 노동안전보건 '활동'으로서의 조사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다.

 

조승규 : "반올림에 산재상담을 요청하는 분들 중에 조사를 해도 직접적 원인을 규명하기 어려운 분들이 많아요. 반도체 직업병이라고 할 때, 온갖 종류의 암과 희귀질환이 다 들어가 있어요. 반도체 사업장에서 일했던 분들이 걸린 질병이 워낙 많기도 하고, 질병 하나하나 뜯어봐도 질병 자체의 기전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들이 대다수예요.

더구나 해당 작업장에서 어떤 공정으로 어떤 물질을 사용하는지도 잘 알려지지 않는 상황이죠. 자신들의 직무정보를 모르는 경우도 다반사구요. 협력업체에 소속된 분들은 더욱 알기 힘들고요. 그러다보니 산재승인을 위한 업무관련성 입증이 상당히 어려워요. 오랫동안 싸운 덕에 최근에야 산재인정을 받는 질병들도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죠."

이상수 : "최근에 정부 주도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반도체 제조업 현장을 대상으로 직업성 질환역학조사를 했잖아요. 그때 10여 년 간의 코호트 추적조사와 위험군을 대상으로 집단조사나 일반인구집단과의 비교를 해서 백혈병이나 비호지킨림프종과 같은 혈액암의 발생 및 사망 위험비가 높은 것이 확인이 되었죠.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있어요. 얼마나 현장 자체에 대한 조사를 진행할 수 있는가에 대해선 의문이 남기 때문이에요. 작업환경측정 등 기존자료들이 갖는 한계나 사업장 환경의 변화 등에 대해서도 고려해봐야 할 점이 있어요."

그렇다면, 질병판정위원회에서 반도체 직업병과 관련한 업무관련성을 판단하는 과정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최근 업무관련성의 판단기준과 판정을 위한 조사과정에 대해서 반올림에서도 고민중인 지점에 관해 물었다.

이상수 : "반도체 제조업 현장이 위험하다는 건 반올림 투쟁이나 앞선 산재 승인 건들을 통해 사회적 공감대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봐요. 충분히 반도체 사업장이 위험하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 여지가 있다는 게 확인된 것이죠. 2019년 5월에 발표된 역학조사 결과도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고요.

이렇게 반도체 사업장이 유해물질을 취급하고 있어서 노동자에게 위험하다는 것에 사회적 문제의식이 형성되고 있는데도, 반도체 노동자들이 앓고 있는 각종 암과 희귀질환이 사업장에서 취급하는 각종 물질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게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은 정말 부당한 일이죠. 거칠게 말해, 과학적, 의학적 조사에 한계가 있는 것을 노동자들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요."

조승규 : "산재보험의 측면에서 볼 때, 반도체 사업장에서 보고되는 희귀질환들의 기제-메커니즘이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산재승인을 하지 않고 적절한 보상과 적합한 재활·치료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 과연 산재보험의 사회보험으로서의 성격에 부합하는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어요. 만약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한 것이라면, 더 엄격한 입증이 필요하겠지만, 그게 아니잖아요. 더욱이 산재승인에 어떤 법리를 적용할 것인가도 쟁점이지만, 판단근거로 활용될 각종 조사결과들이 얼마나 노동자의 입장에서 이뤄지는지 모르겠어요."

사회보험으로서의 산재보험이 갖는 취지를 살리는 방식으로 업무관련성 판단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업무관련 성을 판단하는 것은 보상과 재활·치료의 제공과 연관되는 것이긴 하지만, 유해위험요인 자체를 제거 및 개선하는 등의 예방활동과 직접적으로 결부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반도체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조사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


이상수 : "우선 파킨슨병의 경우를 떠올려보면 어떨까 싶어요. 파킨슨병은 이미 일정한 기제와 기전이 밝혀졌다고 해요. 그렇다 보니, 오히려 반도체 사업장에서 일했기 때문이 아니라 유전을 비롯한 다른 요인 때문에 걸린 것이라는 식으로 산재승인을 거부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러한 판단은 전자산업업계, 반도체 제조업 현장에서의 유해위험요인 노출 특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것입니다. 일반적인 사업장이나 일상생활환경과는 노출방식이 완전히 달라요."

조승규 : "노출특성을 반영하지 않은 채로 개별역학조사가 수행되는 것이죠. 그런데 정말 적용한 조사방법이 해당 사업장에 타당한지, 데이터 측정 과정중에 과소/과대하게 나올 가능성은 없었는지 등 사업장 특성을 반영해서 조사를 진행해야 하는데, 반도체 사업장의 개별역학조사나 작업환경측정에서 그게 얼마나 깊이 있게 고민되고 반영되었을지 의문입니다. MSDS와 같은 기본 자료 제공도 영업비밀, 기술유출이라는 식으로 규제하는 상황이니 물리적 한계도 분명하고요.

반도체 노동자의 삶을 위한 조사가 이뤄지고자 한다면, 더 수준 높거나 많은 양의 지식이 필요한 게 아니에요. 더 세련된 조사방법을 쓰는 식의 기술적인 문제도 아니고요. 전자산업업계의 노출특성과 노동자 경험을 반영하려는 태도, 즉 조사에 임하는 목적과 문제를 이해하는 관점이 어떠한가의 문제죠. 나아가 조사자체도 금전적 보상을 해주어야 하느냐 마냐는 식의 판단을 위한 과정에 국한하지 말아야 해요. 보상 이후 사후조사로 전환하고서, 예방을 목표로 삼아 다양한 노출경로, 확인되지 않은 위험물질 등의 가능성을 열어두고서 이 모두를 검토하는 방향이면 어떨까 싶어요. 재해조사경위서에서 나온 다양한 사항들도 적극 반영해보고요."

이상수 : "만약 예방을 위한 조사 자체를 지향한다면, 그 출발점으로 개별사건을 넘어서는 산업 전반 파악하는 집단역학조사나 산업 전체 점검을 시도해볼 수 있겠죠. 그렇게 다른 산업재해에도, 산업 전반에 적용 가능한 노동안전보건 활동으로서의 조사가 적극적으로 이뤄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예방'을 위한 조사, '활동'으로서의 조사가 무엇인지 답을 내릴 수는 없었다. 다만, 우리가 조사를 '활동'으로서 이해하고, '예방'을 위해 조사를 하고자 한다면, 무엇에 주의해야 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흔히 안전보건과 관련한 조사활동은 전문가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안전은 공학적 차원의 문제고 보건은 의학적 차원의 문제이기에, 전문가의 역량이 필수적이라 여긴다. 이러한 인식은 일면 타당하다. 분명히 사업장에서 유해위험요인을 파악하고 작업환경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지식과 노하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일하는 사람이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드는 일은 전문지식 없이는 불가능하고 전문가만이 담당할 수 있는가?

그렇진 않다. 반올림 투쟁이 보여주듯이, 일터에서의 위험에 대처하는 일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정보의 수준과 양만으로 좌우되지 않는다. 반대로 현장노동자의 경험 또한 귀중한 지식, 합리적 근거자료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건강하게 일할 '권리'라는 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일터에서의 안전보건문제는 '노동자의 삶과 자본의 이윤 중 무엇을 더 중시하는가'를 두고 투쟁의 장 속에 있다.

일터에서의 위험을 측정하고 판단하는 일을 단지 전문가의 몫이나 기술적인 문제로 한정해버려서는 안 된다. 조사과정을 객관적, 중립적으로 진행한다고 하면서, 기술적인 측정 외에 어떠한 가치 판단도 할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의 삶이 중심에 놓는 조사, 조사자의 눈앞에 언제나 노동자의 삶이 자리한 조사야말로 노동안전보건 '활동'으로서의 조사가 아닐까. 그 구체적인 상은 앞으로 만들어가야 할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언론보도] “유미가 살아 돌아오지 않는 한…가슴만 더 아파요” (한겨레)

[커버스토리]“유미가 살아 돌아오지 않는 한…가슴만 더 아파요”

속초 |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황유미씨는 아버지의 택시 뒷자리에서 숨졌다. 2007년 3월6일,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백혈병 치료를 받고 속초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앞좌석에 있던 유미씨 부모는 심상치 않은 딸의 숨소리를 듣고 영동고속도로 갓길에 급히 차를 세웠다. 어머니가 딸의 눈을 감겼다. 삼성전자에 취직해 기숙사로 떠나는 열여덟살의 유미씨를 속초시외버스터미널에서 기쁜 마음으로 배웅한 지 3년5개월 만에 부부는 딸을 영원히 잃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12080600035&code=210100&sat_menu=A070

[기자회견] 문송면, 원진 30주기 추모와 반올림 농성 1000일 기자회견


[기자회견문]

살아오는 문송면 원진 노동자 함께 걷는 황유미

74일 삼성을 포위하라

 

30년 전 바로 오늘 19887215세 소년 노동자 문송면 군이 수은중독으로 사망했다. 같은 해, 열악한 현장의 현실이 알려진 원진 레이온 이황화탄소 중독은 산재로 인정된 노동자만 915명이었고, 30년 전의 중독은 매해 죽음으로 이어져 현재까지 230명이 산재로 사망했다. 그 과정에는 137일간의 장례투쟁과 7년간의 노동자, 시민의 연대 투쟁이 있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OECD 경제규모 11위 국가로 고 성장을 했지만, 노동자들의 산재사망은 달라진 것이 없다. 30년 전 15살 송면이 를 죽음에 이르게 한 수은 중독은 국제적으로 사라졌지만, 한국에서는 4단계 하청이 진행된 말단 하청 노동자 20명의 수은중독이 발생했다. 2016년 삼성과 LG 핸드폰 부품 하청공장에서 불법 파견되어 일하다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한 7명의 청년노동자, 지하철 구의역에서 홀로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다 들어오는 열차에 치여 사망한 19세 청년 노동자 김군, 2017년 현장 실습 중 커다란 적재기에 끼여 사망한 특성화고 이민호 군. 그리고 매년 600명 이상이 사망하는 건설현장, 매년 2400명이 넘게 산재로 사망하는 대한민국 자체가 바로 이 시대의 문송면 이며 원진레이온 노동자이다.

30년 전 원진레이온의 수 년간의 투쟁 또한 바로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2007년부터 시작된 삼성전자 직업병 인정 투쟁이 10년이 넘게 지속되고, 반올림 농성이 1,000일을 맞고 있다. 320명의 직업병 피해자와 118명의 사망이 발생한 삼성은 2015년 스스로 요구하여 설치된 조정위원회의 권고안을 무시한 채, 일방적인 자체 보상위원회를 가동하더니 그 해 107일 조정위원회를 통한 대화마저 단절했고, 이는 반올림 농성 1,000일로 이어졌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다.

 

더욱이, 산업안전보건법으로 노동자에게 제공하고 공개하도록 되어 있는 작업환경 측정 보고서를 산재신청 노동자에게 주지 않아, 법정 소송까지 진행 공개하라는 판결을 받았으나 이마저 거부했다. 동종업계에서는 다 공개하는 자료를 영업비밀이라는 주장으로 공개를 거부하더니, 법원이 인정하지 않자 이제 국가핵심기술이라는 논리를 들어 공개를 막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삼성을 여전히 비호하는 친삼성언론과 함께 산자부 등의 정부기관까지 합작하고 있다.

 

30년 전 문송면, 원진레이온 산재사망이 오늘 하청, 파견 노동자의 산재사망으로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핵심적 주범은 바로 재벌 대기업이다. 십수년 동안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지목되는 건설업, 조선업은 현대,SK,대우, 포스코 등 줄줄이 재벌기업의 하청 노동자다. 삼성은 반도체 직업병뿐만 아니라, 작년에는 삼성중공업의 크레인사고로, 2013년에는 울산에서 물탱크 폭발사고로, 불산 누출로 하청 노동자가 사망했고, 지역 주민을 위험으로 몰고 간 바 있다. 삼성은 이렇게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가면서도, 노조의 결성은 하청 업체를 진두지휘하면서까지 철저하게 파괴했다. 정경유착, 불법경영세습. 분식회계 등 끝이 없이 드러나고 있는 삼성의 범죄행위는 재벌 체제를 해체하는 것만이 한국사회 양극화의 해결방안이라는 것을 오히려 웅변하고 있다.

 

오늘 우리는 1988년의 문송면, 원진 레이온 산재사망 투쟁이 2018년 반올림 투쟁으로 이어지고 있고, 근본적 해결을 위한 재벌 개혁 투쟁으로 확대되어야 함을 다시한번 확인하는 바이다. 재벌 대기업의 탐욕을 위한 무차별적인 위험의 외주화가 중단되지 않으면, OECD 산재사망 1위국의 오명은 앞으로도 계속 지속될 수밖에 없다. 삼성을 비롯한 재벌 대기업의 영업비밀 주장을 끝장내지 않는 한 수 많은 직업병 노동자, 23의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양산을 막을 수 없다.

 

30주기 추모 조직위, 반올림, 민중공동행동은 74<30주기 추모와 삼성포위의 날>을 힘차게 전개할 것이며, 더 많은 시민과 노동자가 참여하는 공동행동을 더욱 힘차게 지속해나갈 것이다.

 

201872

문송면·원진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 추모조직위원회, 반올림, 민중공동행동


070230주기반올림기자회견.hwp


2018 오렌지 인권상 오렌지가좋아 추모문화제




지난 6월 8일 금요일 저녁7시, 강남역 반올림 농성장에서 2018 오렌지 인권상 오렌지가좋아 추모문화제가 진행됐습니다. 

현장에서 열심히 해주시는 분들이 있기에, 오렌지 인권상이 더욱 빛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