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6월호_노안활동가에게 듣는다] 현장 안전에 타협이란 없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대의원 안규백 활동가 인터뷰

현장 안전에 타협이란 없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대의원 안규백 활동가 인터뷰

유청희 상임활동가

 

GM의 대우자동차 인수 후 2001년 1,785 명 노동자 해고, 2005년 1,700명 공장 복직, 2017년 군산 공장 폐쇄. 바로 한국지엠 노동자들에게 지난 20년 간 일어났던 일이다. 최근에도 창원 공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량 해고되기도 했다. 사측과 여기 동조하는 언론은 끊임없이 한국지엠의 위기가 강성 노조 때문이라는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이런 회사에서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끈질기게 해온, 연구소 회원이기도 한 안규백 한국지엠 대의원을 만났다.

안규백 활동가는 한국지엠 부평공장에서 대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측은 인원 투입은 하지 않은 채 생산성 향상을 이유로 노동강도를 강화하려는 시도를 지속했고, 작년 8월 노조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현장 투쟁을 했다. 안규백 활동가의 선택은 작업중지였고, 작년 10월 해고되었다. 이후 그는 대의원으로 활동하며 지방노동위원회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작업중지를 하면 회사가 노동자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경우가 많고, 법원에서 다툴 시 오히려 노동자가 불리할 때도 많다. 이런 현실을 모를 리 없는 그가 작업중지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 안규백 활동가는 인력 충원 없이 생산성 향상만 요구하는 사측에 맞서, 무엇보다도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이 일순위임을 외쳐왔다. 

 

안규백 활동가가 노동안전보건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다. 그는 한국지엠이 운영한 기술교육원 출신인데, 2006년 부평 공장에 입사해서 목격한 현장은 '암울'했다고 한다.

"대우자동차가 지엠에 넘어가면서, 부평공장이 차를 제대로 생산 못 하던 상황이었어요. 그러다가 신차 생산이 시작되면서 인력이 필요해진 시기에 정규직으로 입사했죠. 운이 좋았어요.

입사 후 충격적이었던 것이, 보전 요원이 설비 수리하다가 협착되면서 크게 다친 일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자체에 대해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고, 라인은 계속 돌아가는 것을 목격했어요. '사람이 죽어나가도 라인은 멈추지 않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는 과정 중에도 해마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 대의원과 사측이 협의를 하고요. 작업량은 그대로 유지하고 사람을 빼는 일이 횡행했어요. 거기서 빠진 인원은 정년 퇴직시키거나 추가로 필요한 곳으로 보내고. 신규 채용은 안 하고, 하더라도 최소 인원만 뽑는 시기가 있었어요. 그런 과정에서 뭔가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장에서 알게 된 선배들과 현수막 게시하면서 선전전하고, 선전물도 뿌리고요."

무거운 현장에서 내딛은 한 걸음

당시는 지엠에서 해고됐다가 복직한 1,750명의 노동자와, 안규백 활동가와 같은 신규 입사자가 함께 일하는 상황이었다. 각종 암이나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가 계속 나왔지만, 조합원들은 업무 연관성을 적극적으로 제기하지 못하고 있었다. 회사는 이를 ‘개인 질병’으로 봉합했다.

"제가 입사한 후부터 10년 동안 매달 사망자가 나왔어요. 사고사는 많지 않았어요. 회사는 개인질병이라고 하지만, 의문이 들었습니다. 1750명이 해고됐다가 복직되는 5년 동안 노동자들이 피폐해진 것 같았어요. 다시 일 하면서도, 술 없이는 삶이 유지가 안 되는 분들도 계실 정도로요. 그때는 정말 브레이크 없이 계속 노동강도를 올리고 있었어요. 저는 사망자가 속출하는 일이 노동강도와 뗄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현장에서의 문제제기는 아예 없었고요. 그래서 대의원과 (회사) 부서에서 생산량 증가에 합의하는 것에 문제제기하고, 생산량 증가는 노동강도 심화와 관계가 있다고 선전물도 배포했죠. 안전사고 나면 대응 매뉴얼 요구하면서 일상적인 안전보건 활동도 하고요."

입사 이후 안규백 활동가는 현장의 몇몇 조합원들과 함께 가칭 ‘조립2부 노동강도 완화 대책위원회’를 결성해서 작은 실천들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침체된 회사 분위기 속에서도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이어갔고, 조금씩 변화를 목격하기도 했다.

"바로 효과가 나타났다고 보지는 않아요. 안돈 줄이라고, 라인 중지하는 선이 있어요. 문제가 발생하면 직장(중간관리자)을 호출하는 선인데요. 이 선을 당기면 라인의 일부가 멈춰요. 라인이 완전 중지되지 않게 하려고 직장이 오는 거죠. 제가 처음 입사했을 때에는 사람들이 안돈 줄을 잡지 못했어요. 멈추면 정말 큰일 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도 제가 근무하는 2공장은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서 적어도 안돈 줄은 잡게 됐죠. 그런 부분들이 대책위원회가 만든 작은 기틀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 이후 실제 작업중지 사례도 있었고요. 조합원들이 그런 과정에서 자신감을 회복해갔다고 생각합니다."

위험한 현장을 멈추자, 첫 번째 '작업중지'

회사는 현장 안전을 전혀 우선하지 않았다. 설비에 문제가 생기면 라인을 정지하고 원인을 찾아 재발방지를 해야 하지만, 회사는 정지에 대한 책임소재만(작업자 판단 때문인지 설비 유지보수 때문인지) 따졌다. 2011년, 안규백 활동가는 사업장에 사고가 나자 작업중지를 걸고 회사에 대책을 요구했다. 현장을 안전하게 바꾸는 일에 있어 그에게 타협이란 없었다.

"대의원 당선되고 활동하던 때인데 보전 작업자가 작업 도중 다쳤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어요. 매뉴얼 상으로는 2인 1조 작업이지만 보통 한 사람씩 하거든요. 차 시트를 들어 차에 장착하는 기계가 있는데, 센서에 문제가 있었는지 작동이 안 된 거예요. 혼자 보다가 손가락 협착이 되어 찢어진거죠. 사고가 났는데도 라인은 정상 운영하고 아무 조치도 없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작업중지로 싸워볼 수 있겠는지 판단하기 위해서 건강한 노동세상 장안석 동지랑 의논했어요. 각오는 되어있었습니다. 기아자동차 작업중지 사례를 참고하고 가능하겠다 판단해서, 라인 정지하고 노동조합에도 연락했죠. 이길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때 주장한 것은 사고 사례를 모든 작업자들에게 알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동종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서 안전교육 요구했고요. 이때 120분 넘게 라인을 세웠어요. 회사가 요구사항을 수용했고, 20분 안전교육도 실시했죠. 작업중지 시간이 총 126분이었는데, 회사가 이 중 106분을 문제 삼아 생산 손실 이유로 저를 징계했습니다. 저는 바로 지엠에서 산재 사고가 은폐되고 있다고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배포 하고, 법적 조치를 예고했습니다. 그러자 회사가 해고 안 할테니 정직 1개월로 마무리 하자고 제안 해왔어요.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없던 것으로 하자는 것도 아니고 정직 1개월이라는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그래서 그 제안을 받지 않았죠. 결국 정직 2개월로 결론 났습니다."

현장을 바꿔보려는 여러 시도

한국지엠 노동조합은 2016년 연구소와 함께 노동강도평가를 진행해 보고서로 내기도 했다. 이런 조사 활동을 통해서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또 기억에 남는 현장 변화 시도는 무엇이 있는지 들어보았다.

"대의원, 정책부장, 노동안전보건실장 하면서 보니 회사와 협의하면서 노동자 입장의 근거로 제시할 데이터가 없더라고요. 또 현장 조직도 하고 싶었고요. 그래서 보고서를 내기로 하고 부서마다 현장위원들을 선임했어요. 현장위원들이 발로 뛰면서 직접 조사한다는 게 중요했어요. 이들이 노안활동가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고요. 그분들 중에 관심갖고 했던 분들은 한두 명 정도였고, 지속되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의미는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쉽지만 현장에서 큰 반응은 없었어요. 조합원들은 눈에 보이는 변화가 없으면 반응하기 어려우니까요. 노동강도평가를 한 번으로 끝낼 것은 아니고, 차종도 바뀌었고 평가한지 5년이나 지났으니 다시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당시 지적됐던 문제들이 개선되었는지도 확인해야 하고요.

그 외에 기억나는 활동으로는, 원하청 공동 안전보건사업 제안했던 것인데요. 사업계획을 세우다가 비정규직 실태조사 사업으로 확대해서 진행한 겁니다. 비정규직 지회와 함께 현장 안전점검도 하고요. 그 과정에서 비정규직 청소노동자가 청소하다가 발가락 골절되고 해고까지 당할 뻔한 일이 있었는데, 산재 처리하고 해고도 막아냈어요. 그분에게 문자메시지 받았는데 참 뿌듯하더라구요. 어떨 때는 뭘 하고 있나 생각 들기도 했었는데 이런 일로 뿌듯함을 느낀 적이 있네요."

두 번째 작업중지, 멈추지 않는 투쟁

안규백 활동가는 최근 또 한 번 작업중지를 하고 회사에서 해고를 당했다. 중징계가 내려질 수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작업 중지를 선택한 그에게, 그런 결정의 바탕에는 어떤 생각이 있었는지 물었다.

"작업중지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큰 사고가 아닌 경우에는 왜 그걸 가지고 작업중지를 하냐고 하는 경향이 있어요. 지금은 작은 사고지만 내버려두면 더 큰 사고가 된다고 저는 말 하는데요. 직접적 안전 문제는 아니지만, 짭수(시간당 차량 생산 대수) 투쟁같은 부서 현안 문제에는 현장에서 더 동의하는 편이고요. 과거부터 내려오는 것으로 잘 아니까요. 안전사고 문제로 세운 것은 대우자동차 역사상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라인을 끊을 수 있는 것은 노동조합뿐이에요. 이건 일상적 쟁의권의 문제죠, 합법인가 불법인가를 넘어서.

처음 라인 세웠을 때는 2시간 동안 공장을 세웠는데, 공장 가동이 안 되니까 회사가 휴업 결정 내리고 남은 사람은 다 퇴근을 시켰죠. 이것의 학습 효과로 변화가 생깁니다. ‘우리가 일하지 않으면 선다’는 인식이 생겼어요. 최근 작업중지 이후에는 해고 확정통보 받고 다음 날 출근을 했는데, 제 선거구의 조합원들이 많이들 출근을 안했더라고요. 또 일부는 출근했다가 두시간 만에 퇴근을 하기도 하고요. 거기서 자부심을 느꼈어요. 그날은 라인이 가동되다 말다 하다가, 4시간 휴업으로 결정 됐습니다."

이번 작업중지는 현장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까? 이런 투쟁을 통해 안전권, 건강권에 대한 생각이 다른 동료들에게까지 퍼질 수 있지 않을까? 노동자들이 작업중지를 비롯한 안전과 건강에 관한 의제를 더 일상적이면서도 중대한 사안으로 받아들이게 하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지 물었다.

"노동안전보건 감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윤보다 사람이 먼저여야 한다는 감수성 키우기요. 잘 못하면 노동조합이 있어도 회사가 안전 문제에 대해 전혀 무서워하지 않기도 해요. 노안실장할 때 조합원들이 일상적으로 겪고 있던 근골격계 문제를 집단의 문제로 올려내지 않았던 것이 아쉬워요. 다시 해보면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회사는 끊임없이 생산성 요구하고, 10명이 하던 일을 7명에게 하라고 하죠. 설비는 90년대 말 설비 그대로인데요. 회사의 논리를 깰 수 있는 방법은, 지금의 심각한 노동강도 때문에 사람이 망가진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치료받게 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현장을 조직하는 게 중요해요.

마지막으로는 노동조합이 다양한 사회연대활동을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해요. 코로나는 우리만 조심한다고 안 걸리는 것이 아니잖아요. 지엠은 인천의 중심 기업인 만큼, 코로나 예방을 위한 지역 활동을 해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우리가 임금 인상만 집중했던 것도 사실이라 그것을 돌아보고 변화를 만들면 좋겠다는 그런 고민이 있어요."

안규백 활동가는 두 번의 작업중지를 했고, 그로 인해 징계를 받고 해고를 당했다.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철저한 노동안전보건 활동이 있어야 하고, 사고 원인을 파악하고 재발 방지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 한다. 싸우면 싸울수록 노동자에게 힘이 생긴다고.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활동을 이어가는 그에게 응원을 보낸다.

[안내] "노동안전활동 공부할 사람 모여라~" 새움터 프로그램

"노동안전 활동 공부할 사람 모여라~" 

첫모임 6월 14일 금요일 저녁6시30분 

충남서북부노동건강인권센터 새움터 (010-8484-4122)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보석세공 노동자들의 삶도 보석처럼 빛나길 / 2019.01

보석세공 노동자들의 삶도 보석처럼 빛나길

- 금속노조 서울지부 동부지역지회 종로주얼리분회 김정봉 분회장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 


이번 <일터>는 많은 사람이 소중한 사람과 기쁘고 행복한 날을 축하하고, 기억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각종 주얼리를 만드는 노동자이자 노동조합의 분회장인 김정봉님을 만났다. 김정봉님은 우연히 보게된 <전태일 평전>에서 만난 그때와 자신이 일하는 현장이 다르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다른 삶을 위해 노동조합을 선택했다고 했다. 인터뷰는 지난 12월 28일 영하 16도의 강추위를 뚫고 종로 주얼리타운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진행하였다.


일터를 바꾸기 위해 만든 노동조합

"안녕하세요. 저는 종로에서 반지, 팔지, 목걸이, 귀걸이 등을 만드는 보석세공 노동자면서 금속노조 조합원이에요. 노동조합을 만들게 이유는 현장이 너무나 열악했기 때문이에요."

김정봉 분회장은 2018년 4월,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동료 6명과 노동조합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간단히 설명해 드리자면 분야로 나눌 때 주물과 왁스 작업을 시작으로 해서 주물 마친 물건을 다듬는 캐스팅, 광택, 조각, 세척, 출고, 디자인, 캐드까지가 있는데, 이렇게 각각 일하는 사람들이 보석세공사라고 보면 돼요."

김정봉 분회장은 보석세공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세상 사람 모두에게 이전의 인식을 꼭 깨고 싶다고 말했다.

"저희가 노동조합을 만들고 서울지방노동청에도 계속했던 이야기인데요. 흔히 종로 보석세공업체들은 영세사업장 아니냐. 그래서 현장이 열악한 건 어쩔 수 없고, 노동조합 만들면 사업주가 망하는 거 아니냐고요."

1980년대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지금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반면에, 보석세공업체는 규모가 커지고 발전했지만, 그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은 1980년대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보석세공사 1명이 다양한 분야의 일을 혼자 다 했거든요. 그런데 이 시스템은 굉장히 수공업적이고 생산력이 떨어졌어요. 결국 업체들이 업무 자체를 분화하고 전문화하는 거로 바뀌었고 생산성과 매출이 올라가니까, 이제는 한 업체당 최소 10명 이상 보석세공사 노동자를 고용할 정도로 성장했어요. 게다가 이쪽은 업체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가장 더운 여름, 겨울 한 달씩만 비수기이고 나머지는 일도 많고 정말 바빠요."

김정봉 분회장은 현재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종로 전체 보석세공업계 규모가 업체 500여 개, 매장 700여 개, 종사자 1만 명 정도 된다고 말했다.

나이 마흔에 경력 20년차, 퇴직 앞둔 노동자들은 불안

"우연히 고등학교 때 금속공예를 전공해서 일을 시작했어요. 현장이 워낙 열악하니까 젊은 사람들이 일을 안 하려고 하니 친구 한 명 데려오면 사장님이 10만 원씩 주고 그랬거든요. 저도 소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할 줄 아는 게 이거니까 친구 소개로 입사했고 그때 받은 10만 원으로 고기 사 먹었어요."

김정봉 분회장은 어느덧 19년 차 보석세공 노동자가 되었다. 이쪽 업계에서 버티고 일한 사람들은 나이 마흔이면 대부분 20년 차라고 말했다. 

"그만두는 사람도 많아요. 특히 대학에서 공예를 전공한 사람들은 좋은 스펙이 있어서 다른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고등학교 친구들도 꽤 많이 있었는데 지금은 5명 남아있는 것 같아요."

청년인 김정봉 분회장이 벌써 20년 가까이 일했다고 하니, 보석세공 노동자들은 보통 언제까지 일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정년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니까 일은 오래 할 수 있고 60세 넘어서도 일하는 형님들이 있는데요. 그런데 아무래도 경력이 30년 넘어가면 제일 먼저 해고되는 것 같아요. 보석세공사들이 초보자 생활이 긴데 이때 엄청나게 고생하거든요. 그래서 이직이 잦아요. 다른 업체에서는 경력자 대우해준다고 하니까요.

이렇게 옮기다가 업체들이 잠깐 비수기 때 일 없다고 나이 많고 제일 돈 나갈 때 많은 50대부터 잘라요. 문제는 이분들이 다시 취업하기도 어렵고 4대 보험에 가입한 것도 아니고 따로 노후 대책이 있지도 않다는 거예요."

김정봉 분회장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서울노동청과 협의를 하는 과정에서 최근 3년간 보석세공노동자의 퇴직금과 관련한 진정만 800여 건이었다고 했다. 업체들이 비수기에는 보석세공 노동자들에게 퇴직금 일부를 지급하면서 해고하고, 성수기가 되면 다시 고용하는 악순환을 계속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과 해고가 가장 두려워요"

"일하면서 제일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무래도 위험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각종 화학물질 증기에 노출되고 다 마시면서 일하는 게 제일 문제 같아요. 저도 노동조합을 만들고 활동하기 전에는 솔직히 안전불감증이라고 하나요, 그랬었어요.

아무렇지 않게 제 눈앞에서 황산, 유산, 양잿물, 공업용 과산화수소, 세척제를 사용하고 동료들은 청산가리로 작업하고요. 가끔 일하다 입술에 혀가 닿을 때가 있는데 그때는 철 맛도 나더라고요."

김정봉 분회장은 화학물질 위험 못지않게 안전사고 역시 자주 발생한다고 말했다.

"지금이 1980년대도 아니고 2018년인데 아직도 광택 작업하는 분들은 그라인더로 일하는데, 거기에 손이 말려서 절단 사고가 나는 경우도 있었죠."

김정봉 분회장에게 만일 보석세공 노동자가 일하다 다치거나 병들었을 때 업체에서 어떠한 조치를 하는지 여쭤보았다.

"제가 아는 한 누가 산재를 한 적 없어요. 업체에서 병원비는 내주는데, 다시 출근하면 나가라고 한다고 해요. 일하다 다치면 해고에요."

이런 와중에 김정봉 분회장의 한마디로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며칠 전에 처음으로 특수건강검진을 받았어요.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유쾌하지는 않더라고요. 진료받는 내내 혈압이 높다, 난청이 있다, 심장이 빨리 뛴다, 폐의 40%가 기능을 못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의사 선생님이 상담하면서 작업 환경 때문은 아닐 것 같고, 담배 피우는 걸 줄이라는 거예요."

처음 건강 검진을 통해 몸에 이상을 확인하고 놀랐을 김정봉 분회장에게 왜 이러한 증상이 있는지, 이후 무엇을 해야 하는지, 혹시 업무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지 물어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김정봉 분회장은 이러한 현실을 마주하며 노동조합을 만들고 지속해서 조합원들과 노동법 교육, 산업안전보건 교육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있다고 했다.

김정봉 분회장은 짧은 활동이지만 조금씩 현장이,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처음에 종로에 노동조합이 등장했을 때 보석 세공업체들이 다 영세업체인데 노동조합을 어떻게 하냐 이런 이야기가 팽배했어요. 저희가 노동조합을 만들고 매일 캠페인을 했는데 그때도 첫 달에는 신기하게 선전물을 받더니 두 달째는 사업주가 눈치를 줘서 안 받더라고요. 그러다 세 번째 달에는 노동자들이 수고하라고 응원해주더니 네 번째 달에는 노동조합이 주는 선전물은 받아야지라고 인식하더라고요.

앞으로는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더니 뭐가 바뀌더라 이런 생각을 하도록 성과를 만들고 싶어요. 며칠 전에 2년 전에 해고 된 노동자가 서울노동청에 진정해서 그동안 못 받았던 퇴직금 50%를 바로 다음날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결과들을 만들어가고 싶어요."

처음 써본 근로계약서, 처음 즐겨본 연차휴가

노동조합을 낯설어할 수 있는 보석세공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어떻게 알려나가는 활동을 했는지 궁금했다.

"종로에서 같은 업계 노동자, 업체 사장들에게 며칠 남지 않은 이번 노동절에는 꼭 쉬자는 캠페인을 했어요. 이후에는 업체들이 근로계약서는 쓰고 일 시켜야 한다, 건강하게 일할 권리가 있으니까 산안법을 지켜라 이런 기본권에 대한 캠페인을 했어요."

김정봉 분회장은 노동조합의 활동이나 이후 목표가 대단히 아이러니 하게도 법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라 했다. 업체들이 법을 지키지 않으니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법을 지키도록 하고, 노동자들은 법에서 보장하는 권리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우리 노동조합의 목표는 간단해요. 종로에 있는 보석세공업체는 모두 법을 지키도록 하는 거예요. 이번에 제가 일하는 업체와 노동조합이 단체협약을 맺었는데요. 내용이 근로계약서 써라, 연차는 줘라, 출산 휴가 보장해라, 부당해고 금지하라는 거에요. 다 법에서 보장하는 것들이고 다른 업체들도 모두 이 정도는 지켜줘야 한다고 봐요."

그렇다면 노동조합이 생기고 일터에는 어떤변화가 일어났을까?

"뭐 특별히 바뀐 건 없는데요. 일하고 처음으로 근로계약서를 써봤고 연차를 써봤어요. 성희롱 예방교육, 안전교육을 받아봤고요. 회사에서 화학물질정보(MSDS)를 준비해서 비치하더라고요. 작업환경측정은 지금 하고 있어요."

김정봉 분회장이 아닌 인간 김정봉, 남편이자 아버지 김정봉으로서 변화는 없는지 여쭤보았다.

"처음 연차 썼을 때가 생각나네요. 아내는 출근해야 해서 6살 딸이랑 저랑 둘이 에버랜드를 갔거든요. 그때 아이가 저랑 눈만 마주쳐도 아빠 사랑해라고 하는데 정말 울컥하고 기쁘더라고요. 요즘은 한 달에 한 번 아내랑 연차 맞춰서 데이트를 해요.

뭐 대단한 걸 하는 건 아닌데 둘이 영화보고 밥 먹고 차 마시고 그러면서 서로 더 아껴주고 존중해주게 되더라고요. 얼마 전에는 아내가 선전전 할 때 춥다고 롱패딩을 사주면서 당신한테 이런 모습이 있는지 몰랐다면서 건강해 보인다고 앞으로도 잘하라고 응원해주는데 정말 고마웠어요."

'김정봉이란 사람의 꿈은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다.

"글쎄요. 이상적인 걸 좋아하지 않아서 특별한 꿈은 없는데요. 이제는 4대 보험에 가입해서 나중에 아내랑 국민연금이랑 퇴직금으로 노후를 대비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에 대해 김정봉 분회장은 눈을 반짝이며, 힘주어 말했다.

"이제야 사람답게 사는 것 같고요. 권리를 보장하라는 주장이 너무나 정당한데 이걸 얻으려면 요구해야 한다는 것도 명확해진 것 같아요. 보석세공업계에서 노동조합이 처음 만들어지기도 하고 워낙 인식 자체가 없어서 앞으로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노동조합과 함께 하고 현장에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