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과로사통신] 노동시간 제한이 부재한 과로사회, 일본 / 2020.05

노동시간 제한이 부재한 과로사회, 일본

이와하시 마코토 POSSE

 

일본은 '과로사'라는 말을 만들어낼 정도로 과로가 심각한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2019년까지 의미 있는 법적 노동시간 제한이 없었습니다. 이는 회사가 노동자에게 1년 동안 하루 24시간, 365일 일을 시켜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었습니다. 지금은 고용주들이 한 달에 100시간 이상의 연장근무를 시킬 수 없도록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과로사 역치'라고 불리는 월 80시간의 연장근무보다 20시간이나 많은 장시간 노동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일본의 과로사 현황

1980년대에 노동법률가, 의사, 노동운동가들이 함께 '과로사'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 직장에서의 일 때문에 발생하는 죽음과 질병의 숫자는 극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일본 정부의 과로사 백서에 따르면, 2018년 과로에 의한 뇌혈관, 심혈관질환 혹은 그 사망으로 산업재해보상보험에 보상을 신청한 사례는 모두 877건입니다. 이 중 업무관련성이 있다고 승인된 것은 238건 뿐이고, 이 중 82건이 사망 사건이었습니다. 2017년에는 업무상 과로에 의한 질환으로 승인된 것이 253건, 이 중 92건이 사망 사건이었습니다. 2002년 이후, 일본에서는 매년 100여 건의 과로사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고, 이는 4일에 한 명씩 과로로 사망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한 달에 100시간 이상의 연장 노동을 하거나, 2~6개월 동안 한 달에 80시간 이상의 연장 노동을 한 경우에만 과로사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산업재해로 인정하고 있는 사례들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점을 지적해야 합니다. 자신의 가족 중 한 사람을 잃은 유가족들이 나서, 그 죽음이 업무와 관련됐다고 '증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과로사 사례가 아예 보고되지 않거나, 특별한 이유가 없는 '급성심장사'로 처리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이런 점에서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과로 때문에 자신의 삶을 잃고 있는지 제대로 정보도 모으지 않고 있습니다.
  

▲  일본에서 과로사는 1980년대부터 꾸준히 문제제기되었다. 그럼에도 2015년 일본의 대기업 광고회사 덴츠에서 일하던 다카하시 마쓰리 씨가 과로자살로 유명을 달리했다. 여전히 장시간 노동과 블랙기업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 ANN 방송화면 캡쳐

 
일본의 블랙기업과 과로자살

과로자살은 말 그대로 과로에 따른 자살이라는 뜻입니다. 과로자살은 장시간 노동이나 업무의 양적, 질적인 변화에 따른 정신질환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2018년 자살을 포함해 과로로 인한 정신질환으로 산재 보상을 신청한 건수는 모두 1820건으로, 역사상 가장 많은 숫자였습니다. 이 중 정부가 산재로 인정한 것은 465건이고, 이 중 76건은 노동자의 자살 혹은 자살 시도였습니다. 과로사 피해자들이 주로 40대~50대의 남성 노동자들인 데 비해, 과로자살은 성별에 관계없이 젊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많이 발생합니다. 과로자살이 매년 늘어가는 이유는 노동자를 일회용품 취급하는 '블랙기업'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 만연한 장시간 노동과 일터 괴롭힘을 생각해보면, 465건이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은 아주 명확합니다. 경찰청에서 자살 사건을 수집해 분석한 결과, 2천여 건의 자살은 업무와 관련해서 발생한다고 합니다. 매년 2천여 명의 노동자가 업무와 관련된 이유로 자신의 목숨을 던지고 있는데, 정부는 이 중 100건도 안 되는 사례에 대해서만 보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산재인정을 위해 넘어야 할 난관들

이렇게 많은 사례들이 보고도 제대로 안 되는 이유는 1) 과로사라고 생각하는 경우, 가족을 잃은 누군가가 자료를 모아 산재보상을 신청해야 하고 2) 유가족이 스스로 과로의 증거를 충분히 모았을 때에만 정부로부터 산재 승인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노동자 가족들이 산재 보상 신청을 하지 않으면, 이 사건은 그대로 숨겨지게 됩니다. 그 죽음이 과로에 의해 발생했거나, 다른 업무 관련 문제와 관련이 높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노동자나 유가족이 신청하지 않으면, 정부나 지방 노동 관서에서는 먼저 나서 회사를 조사할 권한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유가족이 최소한 그 죽음이 업무와 관련되었다고 의심을 하고, 이 노동자가 극심한 장시간 노동이나 일터괴롭힘 혹은 다른 어떤 이유 때문에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는 믿을만한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 과로자살로 보고되는 데 필수적이라는 뜻입니다.

많은 고용주들은 직장 내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노동자들에게 연장근무를 강요해서 발생한 손해에 대해 책임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일터 괴롭힘과 관련된 많은 경우에서, 자살의 원인이 업무와 관련돼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유가족들이 중요한 증거를 성공적으로 수집한다 해도, 정부가 그 죽음을 업무와 관련되었다고 승인하고 보상을 제공할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가족들이 그 질병이 과로 때문이라고 생각한 사례는 877건이었지만, 그 중 238건만 업무와 관련이 있다고 승인되었습니다. 수백 명의 노동자, 유가족 들은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남겨졌습니다.

일본의 고용주들은 노동자들에게 장시간 노동을 시키는 것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노동자들은 수백시간에서 심하면 수천 시간에 해당하는 자신의 삶을 일하느라 빼앗기게 됩니다. 이를 멈추기 위해 노동조합과 사회단체들은 노동자들과 가족들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고, 정부나 회사로부터 정당한 보상을 요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언론보도] 52시간 근로시대, 과로 기준은 아직 60시간 (한국일보)

52시간 근로시대, 과로 기준은 아직 60시간

정부가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으로 과로사회 탈피의 첫발을 내디뎠으나 정작 ‘과로’의 기준은 종전대로 주 60시간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http://www.hankookilbo.com/v/ab525b3aac52477dbcc9bb535c8e102a

[노동시간에세이] 일상이 '일'로만 채워진다면 /2015.7

일상이 '일'로만 채워진다면

 

 

김세은 노동시간센터(준),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3년 전인가, 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어쩌다 보니 마무리 단계 작업이 내게 몰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분명히 나 혼자 하기에는 벅찬 작업이었다. 결국 그 일은 내게 떨어졌고 혼자서 마무리를 감당했다. 기한이 촉박하게 정해졌던 일이라, 아침에 출근해 새벽 2~3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며칠간 지속했다.

 

그 기간 동안, 집에 가서는 정말 최소한의 잠만 자고 다시 출근했다. 생애 처음으로(!) 식욕 저하를 겪으며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지냈다. 몸은 피곤했지만 밤늦게 누워도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주말을 포함해 며칠간, 나는 '그 일'을 하는 것 외에는 다른 일을 전혀 할 수 없었다. 그 상황을 피해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도 있었다. 괴로운 나날들이었다. 내 마음을 살필 여유 따위는 없었다. 지금까지도 그 날의 순간들이 여전히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은 한 가지 강렬한 기억 때문이다.

 

그 시기의 어느 날 새벽 퇴근길, 병원을 나와 택시를 잡기 위해 도로변을 향해 걷고 있을 때였다. 30m 정도의 거리를 그저 걸어가고 있을 뿐이었는데,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물론 실제로 숨이 막힌 것은 아니었지만 처음 겪어본, 숨이 막힐 듯한 느낌이었다). 심장이 갑자기 멈춰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 순간, 과로사 하는 사람들이 사망하기 전 어떤 상태일지 짐작할 수 있었고, 건강에 별다른 문제가 없더라도 계속 이렇게 살다가는 나도 갑자기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별 탈 없이 그 일을 곧 마무리할 수 있었고, 결국 지나간 일이 되었다. 나는 원래의 적절한 출퇴근 패턴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 후로도 이따금 하루 이틀씩 밤늦게 퇴근하는 일이 있긴 했지만, 휴식 없이 며칠을 연이어 밤늦도록 일한 적은 다시 없었고, 숨이 턱 막히는 일도 없었다. 다행이었다.

 

 

 

 

▲ 뉴욕 마천루 꼭대기에서 낮잠자는 노동자들

 

 

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여가' 없는 며칠

 

이전에도, 장시간 노동이 우리의 삶과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 그리고 많은 이가 장시간 노동을 하도록 내몰리는 여러 가지 사회적 환경과 여건에 대해 늘 관심을 놓지 않으려 나름대로 애써 왔다. 장시간 노동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며,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것 중 한 가지라고 생각해왔다.

 

그 숨 막히던, 죽을 것 같은 느낌을 경험한 후 나는 장시간 노동이 개개인의 삶과 일상을 얼마나 피폐하고 괴롭게 만드는지 이전보다 더욱 생생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강연이나 수업, 문헌 등을 통해 알아왔던 장시간 노동의 영향에 관한 여러 연구 결과들을 일부나마 몸소 체험했다고나 할까. 그 체험은 괴로움 투성이었는데 그 중 한 가지는, 그 일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 그 일 외에는 다른 것을 전혀 할 수 없다는 그 자체였다. '느긋하게 밥 먹으며 이야기하고 싶다', '소설책이나 주간지를 읽고 싶다'와 같은 소박하고 사소한 바람조차 이루기 힘들었다. 원래의 적절한 노동 시간을 유지할 때는 늘상 하던 일인데도 말이다.

 

또한, 다른 이와 대면해서 이야기를 나눌 여유조차 없었으므로 그런 어려움에 대한 공감이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도움을 얻는 것도 힘들었다. 같은 공간에서 동료 여럿이 함께 일하고 있었지만, 그 중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것은 나 혼자였던지라, 나는 혼자 일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찾아온 외로움과 고립감도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다행히 사려 깊은 나의 동료들은 내 어려움을 먼저 알아채고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고 시도했다(하지만 그러한 시도가 실질적인 도움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가까이서 지낸 동료에게서도 도움을 얻기 어려웠으니, 당연히 친구나 가족에게 하소연조차 하기 어려웠다. 정신 없이 시간에 쫓기는 동안 나 자신이 '일하는 기계'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  자료 출처 : 2014 국민여가활동조사보고서  
 

세상에서 하나뿐인 '나'라는 인간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크고 작은 사건이나 감정들은 완전히 배제된 채, 그저 최소한의 잠을 자고 최소한의 음식을 먹으며 그 외 대부분의 시간 동안 정해진 목표대로 일하는 생활. 단 며칠뿐이었지만 그 동안 내 삶은 전혀 내 것이 아니었다.

 

꼭 필요하고 옳은 일을 하고 있다거나 경제적 대가를 충분히 받을 수 있을 테니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그런 상황을 견디는 것이 정말 괜찮은 것일까?

 

아무리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소중한 가치를 지닌 일이라고 해도, 그 노동으로 평범하고도 소중한 일상을 무너뜨리게 된다면 바람직한 상황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참여했던 프로젝트 역시 분명히 사회적으로 좋은 목적을 가진 일이었지만,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기 위해 시달리며 일상을 빼앗긴 나는 어느새 그 일이 지닌 훌륭한 가치 나 목적은 이미 잊어버렸던 것 같다.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그저 내달려야 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괴롭도록 일에 내몰렸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음에도 상황이 종료된 후에도 나는 한동안 자존감이 낮아진 상태가 지속돼 꽤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일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고, 어느 정도 의욕을 회복하기까지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렸다. 약 일주일,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내겐 제법 깊은 생채기를 남긴 셈이었다.

 

일상이 무너진 노동, 그 삶의 주인은?

 

그 후로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또다시 이전과 같은 괴로운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주어진 시간에 대해 좀 더 신중히 고려하게 됐다. 그나마 이러한 고려와 선택이 가능한 것은 내게 일에 대한 선택권이 있고 시간에 대한 통제가 어느 정도 허락된 덕분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이 팍팍한 사회에서는 비교적 운이 좋은 축에 속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저 며칠이 아니라 그 이후로도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생활을 오래 지속해야했다면 내 삶은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해본다. 어쩌면 지금과는 좀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울면서 어떻게든 견뎌냈을 수도 있다. 견뎌냈더라도 그 후 더 오랫동안 무력감과 회의감으로 괴로워하지 않았을까.

결국 참다 못해 사표를 쓰고는 일터를 박차고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직장 생활을 하는 거의 내내 장시간 일하도록 내몰리는 많은 이를 생각하게 된다. 개인이

 

처한 상황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특정 업무를 약속한 기한에 맞춰 마무리하기 위해 단기간 동안 내몰리는 정도가 아니라, 낮은 임금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서 선택의 여지없이 훨씬 절박한 이유로 긴 시간동안 쉼 없이 일을 해야만 한다면, 과연 그 삶이 어떨지...

 

내가 단지 며칠간 겪었던 여러 괴로움을 오래도록 감내해야 한다면, 그가 과연 그 삶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오랜 시간동안 일에 얽매여 일상이 무너진 삶, 그 삶의 주인은 누구인가.
 

[특집] 1. 여름휴가, 잘 다녀오셨습니까? / 2014.8

[특집1] 여름휴가, 잘 다녀오셨습니까?


대담 : 김영선 국학중앙연구원, 송홍석 노동시간센터(준)

정리 : 선전위원회


바캉스의 계절, 대기업들의 집단 휴가철인 8월이다. <잃어버린 10일, 경영 담론으로 본 한국의 휴가정치>의 저자 김영선 교수와 한국의 휴가 양태와 그 속에 숨겨진 휴가 역사와 정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화려한 휴가 ?


송홍석(이하 송)) 먼저, ‘휴가’ 하면 떠오르는 생각은 무엇인가?

김영선(이하 김)) 누군가에게는 ‘쉰다’는 게 영원히 불가능한 꿈일지도 모르겠다. 제대로 쉰다는 게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송) 최근 대기업들이 2주간의 집중 휴가제다, 연중 자율휴가제다, 휴테크다 뭐다 시행하는 걸 보면 많은 노동자들이 점점 더 휴가다운 휴가를 누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매체에서 보여주는 휴가의 모습이 노동자들 다수의 휴가 모습은 아닌 것 같다. 어떻게 보는가? 

김) 그렇다. 이맘때쯤이면 안식, 배낭, 아이디어 휴가 등 다양한 휴가 관련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통칭하면 리프레쉬 휴가라고 한다. 겉으로 보면 리프레쉬 휴가가 화려하고, 흔해 보인다. 언론에서는 이런 형태의 휴가를 유독 많이 부각한다. 대신 보편적으로 보장된 법정휴가의 문제는 잘 건드리지 않는다. 재충전, 자기 성찰, 싱크 위크 등 재미있어 보이는 내용이 많지만, 거기에는 사실 생산성, 아이디어, 경쟁력, 자기계발 등 기업의 경쟁력을 전제하는 언어들이 깔려있다.  

역사적으로 국가와 기업들은 휴가를 언급하지 않고 무조건 통제하고 막아왔다. 그런데 90년대 중반 들어 기업들이 휴가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휴가란 노동으로부터 면제된 자유시간이고 노동자가 알아서 쓰면 되는 시간인데, 그 시간마저 자기계발, 생산성, 아이디어를 위한 업무 활동의 연장선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리프레쉬 휴가를 다녀오면 간단하게라도 보고서를 써야 하는데, 여기에는 마케팅, 아이템, 혁신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내야 한다. 이런 것들이 리프레쉬 휴가 이면에 있는 진실이다.


송) 특별휴가니까 누구나 갈 것 같지는 않다. 

김) 특별형태 휴가가 누구에게 부과되는지 봐야 한다. 특별 휴가는 직장에서 특별히 실적이 높은 핵심 인재만을 대상으로 한다. 이런 휴가를 받은 사람들은 회사로부터 인정을 받고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는 징표이고, 반대로 이런 휴가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회사로부터 배제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런 특별 형태의 휴가나 휴가 담론은 기업들이 전방위적으로 끌어가고 있다.


휴가, 안 가는 건가! 못 가는 건가!


송) 특별 휴가는 차치하고 보편적 휴가인 연차 휴가마저 맘대로 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서 법정 휴가 일수는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실제 사용하는 휴가 일수는 많은 차이를 보일 것 같다(1년 8할 이상 출근 시 15일의 유급연차휴가가 발생하고 최대 25일까지 유급휴가를 법적으로 보장받고 있다). 그런데 자본가들은 이렇게 된 원인을 근로자들이 임금 보전을 위해 휴가를 모두 쓰지 않는다며 단순히 노동자 선택의 문제로 돌리고 있다.

김) 자세히 확인해봐야겠지만 실 휴가 사용률(소진율)은 50%를 맴돈다. OECD 국가 평균이 70~80%인 것에 비해 상당히 떨어진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한국은 4~5일의 여름휴가가 고작인 데 많은 국가는 2주 연속 휴가를 강력하게 보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속적인 짧은 휴가는 노동자의 시간 권리가 완전히 박탈되었다는 징표다. 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소득 보전이 이야기되는데 사실은 업무과다, 여유 없는 인력의 부족이라고 본다. 이제는 돈을 적게 받아도 되니까 가족들과 쉬고 싶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물론, 중소기업 노동자들이나, 임금과 시간이 직접 연계되는 제조업 사업장에서는 소득 보존 경향이 높다. 그러나 직장에서 ‘소득보전’보다 훨씬 자주 언급되는 언어는 ‘상사/동료의 눈치’다. 업무량과 눈치는 하나다. “이 바쁜 와중에 출산 휴가 3개월을 다 써? 아줌마 다 되셨네!!”라는 팀장의 발언은 휴가권리를 철저히 봉쇄할뿐더러 ‘아줌마’라는 낙인까지 찍는다. 

‘상사/동료의 눈치’는 ‘팀제’라는 경쟁적 노동패턴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한 사람에게 3~6개월짜리, 1년짜리 장단기 과제들을 여러 팀에 걸쳐 배치하는 경쟁적 상황에서는 당연히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휴가요? 남들 이야기입니다~


송) 단 얼마간의 연차도 쓰기 힘든, 일주일 휴가도 배부른 이야기라 할 노동자들도 있다. 경제의 양극화만큼이나 휴가의 양극화도 심화하는 것 같다. 

김) 기업의 규모 차이는 휴가 기간과 휴가비의 차이로 연결된다. 길게 휴가를 갈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다. 기간을 보장받는 만큼 휴가비의 여유가 있다는 것이니까. 대기업 노동자들은 여름휴가 전후로 연차를 더 붙여서 일주일을 쉴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더 심각한 양극화는 고용 조건에서 비롯한다. 연차 휴가를 쓴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정규직이다. 실제 비정규직이 쓸 수 있는 유급의 연차 휴가는 없다. 1년 미만의 계약기간을 가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한 작업장에서 10년을 일해도 연차 휴가가 발생하지 않는다. 임금, 복지, 작업복, 신분증 차이만큼이나 휴가의 차이도 크다.

그래서 휴가 부여 기준을 낮춰야 한다. 프랑스는 1936년부터 6개월 근무 시 연차휴가 1주일을 부여했다. 자유시간, 여가, 휴가를 시민의 권리로 여기는 의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일본도 1993년 연차 휴가 부여 기준을 1년에서 6개월로 줄였다. 비정규직이 절반을 넘어선 한국 사회에서 1년을 근무해야만 휴가가 발생하는 기준은 자본 편의적이다. 노동자 중심적인 휴가 부여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송) 지금은 누구나 입에 오르내리는 언어가 되었지만, 한국에서 ‘휴가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임금노동자인 나를 고용하고 있는 고용주가 필요한 만큼만 부여하고, 그 의미를 각인시켜 왔던 것 같다.

김) 주말 노동이 평일 노동과 그렇게 다르지 않았던 80년대 말까지 주말이란 관념은 그리 크지 않았다. 현재와 같은 주말이란 인식은 90년대 이후의 것이다. 마찬가지로 80년대 말까지 휴가는 그야말로 사치였다. 휴가를 도덕의 언어로 강력하게 통제한 것이다. 87년 이후 휴가가 하나의 권리로 등장하는 듯했지만 당시에도 ‘너희가 지금 먹고 놀자는 얘기냐’, ‘베짱이가 되려나 보다’, ‘과소비’, ‘낭비’ 등의 도덕 프레임으로 휴가권리를 억제했다. 


노동자들의 휴가 되찾기


송) 상품 소비적 휴가 문화도 문제인 것 같다. 직장 생활에 지친 이들에겐 고민할 필요 없는 손쉬운 방법이긴 한데, 뭔가 아쉽다. 다른 건강한 휴식, 휴가는 없을까?  

김) 상품의존주의 경향이 높은 것은 소비자본주의 사회의 보편적인 특징이다. 게다가 예측 불가능한 짧은 휴가를 보내는 한국 사회에서는 상품 소비적인 경향이 강하다. 휴가가 길면 여러 가지 선택지가 가능하지만 휴가가 짧으니 선택의 폭이 좁다. 짧은 시간에 좋은 곳에 가서 좋은 거 먹고 좋은 거 보는 상품 집약적인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휴가가 짧은 시간에 내가 아버지다움, 남편다움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적지 않은 기회라는 점이다. 가족으로부터 인정도 받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이런 기회인 휴가를 망치고 싶지 않으면 위험도가 낮고 만족도가 높은 상품들을 투입해야 한다. 

문제는 여기에 대체재가 별로 없다는 거다. 서구 사회에서는 상품 소비적인 휴가 패턴이 있는가 하면 시민사회, 노동진영에서도 ‘다른’ 휴가 방식을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마을 공동체 프로그램과 가족휴가를 연계하거나 생태 운동, 먹거리 운동 등과 휴가를 연계하는 프로그램을 한국에서는 아직 찾기 어렵다. 휴가를 어떻게 쓰느냐는 어떻게 건강한 시민을 만들고 주체적인 삶을 기획할 것이냐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 


송) 책 <잃어버린 10일>에서 노동자의 휴가 권리 찾기로 ‘쉼 없는 2주 연속 휴가의 실현’을 주장했는데, 그 의미는 무엇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김) 한국에서 2주 연속 휴가를 쓰려면 머리에 총 맞은 사람 취급을 받는다. 한국사회 휴가의 특징은  ‘비예측적이고 불연속적인 최소’ 휴가다. 기업의 생산성, 업무 흐름에 방해받지 않은 최소한의 휴가만이 주어진다. 2주 연속 휴가는 휴가의 본래 의미를 강조한 ILO의 권고 사항이다. 그래야 건강, 가족, 자유, 민주주의를 챙길 수 있고 이것은 시민다움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두려움 없이 쉼 없는 2주 연속 휴가’를 위해서는 시간권리를 합리적 선택으로 유도할 수 있는 장치들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

[알림] 토론회-한국 장시간 노동의 원인과 해법 3가지_노동시간센터(준) 주최

최근 장시간 노동이 사회적 쟁점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노동시간 단축은 이제 거부할 수 었는 시대적 요구가 된 듯 합니다. 

정부와 기업은 이미 발빠른 대응을 보여주고 있으나 아직 노동의 준비는 부족합니다. 

어쩌면!! 지금은 위기의 순간입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준)는 노동시간 문제에 대한 노동의 목소리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노동시간센터에서는 노동과 시간에 대한 꾸준히 고민을 축적해 온 진보적학자들과 함께 3차례 강연회을 준비했습니다. 

다양한 시각을 통해 한국 노동시간 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해보는 자리로 마련하였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1회] 노동시간과 젠더: 일과 일상생활의 불균형. 성별불평등은 어떻게 지속되는가?

* 날짜 : 7월 25일(금) 19시

* 발제 : 신경아 _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여성과 일> <젠더와 사회> 저자


[2회] 장시간 노동의 현재: 양태와 원인, 대안" 

* 날짜 : 8월 8일(금) 19시

* 발제 : 김영선 _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연구교수, <잃어버린 10일> <과로사회> 저자


[3회] 노동시장과 노동시간: 무엇이 문제인가?" 

* 날짜 : 8월 29일 (금) 19시

* 발제 : 강수돌 _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자본을 넘어 노동을 넘어>, <일중독 벗어나기> 저자



*공개 강연/토론회 장소는 정동 경향신문 15층 민주노총 교육원 입니다. (3회 모두)